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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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hisattva Archetypes: Classic Buddhist Guides to Awakening and Their Modern Expression by Taigen Dan Leigh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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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hisattva Archetypes: Classic Buddhist Guides to Awakening and Their Modern Expression

by
Taigen Dan Leighton
3.83 · Rating details · 12 ratings · 0 reviews
Contemporary Westerners look for spiritual guides to help them find the way to a more wholesome, productive lifestyle, and this fascinating book offers an introduction to a particular kind of guide, the Bodhisattva figures of the Buddhist tradition.Explaining the psychology of bodhisattva practice, imagery, and imagination, Bodhisattva Archetypes identifies a number of archetypal figures -- beings dedicated to the universal awakening or enlightenment of everyone. In language that is subjective and reflective -- with fascinating folklore of the Bodhisattva tradition and numerous illustrations of the icons and their sacred sites -- Taigen Daniel Leighton introduces readers to recognizable Bodhisattva archetypes, like Maitreya the future Buddha (often depicted as a fat, laughing Chinese figure) as well as contemporary figures who exemplify Bodhisattva ideals, such as Martin Luther King, Jr., Mahatma Gandhi and Henry David Thoreau. These familiar personages from non-Buddhist spiritual traditions reinforce Leighton's view that the search for spiritual well-being is global, and that, in today's world, the bodhisattva ideal is a relevant, useful guide.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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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back, 320 pages
Published February 1st 1998 by Penguin Books

Franz Metcalf
5.0 out of 5 stars A Book for All Sentient Being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ember 19, 2000
Faithful amazon.com patrons know the phenomenon of reading superlative reviews here, reviews that sadly overstate the qualities of the books reviewed. Reading the two reviews below, you might fear this is such a case. They are indeed, superb reviews, accurate, informative, yet rising to the power of poetry. But the reader need not fear; Leighton's book is honored by the reviews but has earned every such honor. And if the reviews rise toward poetry it is because the language of the book inspires them.
I read Leighton's work carefully, wearing both my hats as Buddhist and Buddhist scholar. I take both hats off to him as he has fashioned a book that scholars will learn from and practitioners will deepen with. Non-Buddhists please take note: this would be a marvelous way to begin learning what Mahayana Buddhism is really about. All persons will grow from reading this book, and I hope they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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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vi
5.0 out of 5 stars Has potential but politics questionabl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uly 25, 2001
When I initially started reading this book, I felt it had potential. Simply by describing the archetypes, it reminds us of the principles of an ethical life - that we all seem to completely forget in daily life.

I had some problems though, with the author's forays into explaining issues of race, class and discrimination. At many places, where one least expects it, he stigmatizes people who address the wrongness of discrimination and oppression and seems to think that they should just lighten up and swallow injustice.

I think perhaps in the next edition, if the author wishes to condemn violence, he should select as a case study institutional violence - rather than talking about the ways in which its victims have tried to create a more jus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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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F. Pavitt
3.0 out of 5 stars Hyperbole can get really annoying after a few hundred pages of i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ember 22, 2014
Too much gushing and oohing and aahing going on here for my taste. Hyperbole can get really annoying after a few hundred pages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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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n M Scotten
4.0 out of 5 stars Thought-proking and educational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ember 30, 2000
A wonderful introduction to bodhisattva practice and history. Rev. Leighton explores the historical manifestations of the bodhisattvas, but always returns to examples accessable to the western reader (this western reader, anyhow!) and brings the focus to the ways we can learn from the bodhisattvas, not just revere them from a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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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 라마나스라맘 시절의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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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 라마나스라맘 시절의 이야기 1


50. 인지꼴라이 딕쉬따르의 장난



인지꼴라이 야그나라마 딕쉬따르는 첸나이(마드라스)에 있던 대(大)학자인 자가디샤 샤스뜨리의 형이었다. 그는 스깐다스라맘에 와서 두세 달씩 머무르곤 했다. 그는 아주 정통주의적인 사람이어서, 매일 자신의 도띠(dhoti)를 빨곤 했다.



그의 도띠는 약간 누른빛이 돌기는 했지만,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는 찢어진 도띠를 가지고 타월을 만들기도 했다. 스리 바가반은 그것을 보다가 농담하듯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도 타월 하나 가질 수 있소?”



초기에는 시바야라는 이름의 한 안드라(Andhra-안드라프라데시 주) 헌신자가 비루팍샤 산굴에 계시던 스리 바가반을 찾아뵈러 오곤 했다. 그는 염송을 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길 위에 나뭇가지나 잎사귀가 있으면 그것을 치워서 길을 깨끗하게 했다.



그는 아쉬람으로 보내는 음식이 담긴 에짬말의 그릇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는 항상 아쉬람을 위해 뭔가 봉사를 하고 있었다. 한 번은 스리 바가반과 몇 사람이 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그는 물 한 단지를 거기까지 들고 갔다. 봉사에 대한 그의 열의가 그 정도였다.



그가 스리 바가반을 마지막으로 뵈러 왔을 때, 야그나라마 딕쉬따르도 아쉬람에 있었다. 시바야는 자신이 출가하여 묵언을 하면서 남부 지방을 순례하기로 했다면서 까비야깐타에게 자신의 가문, 종성(種姓, gothra)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해서 출가했는지를 간단히 써달라고 청했다. 그러면 필요할 경우에 자기가 말을 하지 않고도 그 정보를 써먹을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까비야깐타는 시바야를 칭찬하는 내용의 시구 10연을 써주었다. 그 시구를 쓴 종이 뒷면에다 인지꼴라이 딕쉬따르가 연필을 가지고 타밀어로 이렇게 썼다. “여기에 씌어진 것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 시바야는 타밀어를 몰랐다.



그는 남부 지방의 몇 군데를 들러 꿈바꼬남의 샹까라 정사(Sankara mutt)로 갔다. 그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그 종이를 보여주자, 그들이 그것을 읽어본 뒤에 웃었다. 그가 왜 웃느냐고 물어보자 그들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깊은 슬픔에 잠긴 그는 아쉬람으로 편지를 보냈다.



스리 바가반이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우리에게 물으셨다. “누가 이걸 썼지?” 당신은 인지꼴라이 딕쉬따르도 쳐다보셨다. 그러자 그가 즉시 말했다. “제가 썼습니다. 왜냐하면 까비야깐타가 그에 관해서 쓰신 것이 사실과 다르니까요.” 스리 바가반은 미소를 짓고 침묵을 지키셨다.



51. 묵언 요기의 초능력



나중에 시바야는 꾸뜨랄람(Coutrallam)의 묵언 스와미로 유명해졌고, 많은 정사들을 관장했다. 그는 꾸뜨랄람에서 살았다. 한 번은 에짬말과 바수데바 샤스뜨리가 그를 찾아갔다. 그때 묵언 스와미는 마두라이 미나끄쉬 사원(Meenakshi temple)의 꿈꿈(kumkum-朱砂, 붉은 분말)을 불가사의하게 자기 손바닥에 나타나게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종이 위에 “당신의 스와미도 생각하는 뭐든지 나타나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썼다. 바수데바 샤스뜨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스와미.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스와미가 말했다. “불가능할 게 뭐가 있습니까?”



샤스뜨리가 말했다. “우리 바가반께는 ‘생각’ 같은 것이 아예 없습니다. 생각을 하지도 않고 생각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리 바가반의 상태는 생각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넘어선 순수한 자각입니다.” 모두가 웃었다. 마우니스와미는 망신을 당했다고 느꼈다.



52. 타타 렛디아르의 예언



스리 바가반이 구루무르땀에 계실 때, 아쭈따다샤가 당신을 뵈러 왔다. 그와 함께 아짜라빠깜 끄리슈나 렛디아르가 왔다. 몇 년 뒤에 그는 아쉬람에 정착했다. 우리는 그를 타타 렛디아르라고 불렀다. 그는 아주 건강했고, 늘 명상을 하곤 했다. 그는 점성학에도 조예가 있었다. 그는 두세 달 동안 스리 바가반과 함께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꽃을 좀 가꾸었다. 그는 몇 가지 방식으로 스리 바가반께 봉사했다.



한 번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기가 아쉬람으로 돌아오면 1주일 안에 죽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노령임에도 정정했고 (돌아와서도) 어떤 변화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 주일의 마지막 날, 그는 열이 좀 있었다. 우리는 스리 바가반께 그것을 말씀드렸다.



당신이 말씀하셨다. “그는 대단한 점성가지. 자신의 최후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아루나찰라와 합일되려고 온 거야.”



렛디아르는 그날 밤 내내 같은 상태였고, 아쉬람 안의 초가 움막 안에 있었다. 스리 바가반은 저녁 식사를 하신 뒤에 그를 보러 가서 그의 곁에 앉으셨다. B.V. 나라싱하스와미도 헌가를 부르면서 거기 있었다. 10시경에 우리는 스리 바가반과 나라싱하스와미에게, 우리가 렛디아르를 보살필 테니 가서 쉬시라고 말씀드렸다.



라마끄리슈나스와미와 내가 거기 있었다. 새벽 4시경에 타타 렛디아르의 영혼은 아루나찰라와 합일되었다. 스리 바가반께 이 사실을 알려드리자 당신은 우리에게 오전 8시까지 매장 준비를 하라고 하셨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끄리슈나 렛디아르의 친척들에게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그의 조카인 시바라마 렛디아르가 아쉬람으로 왔다. 그는 아쉬람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도 그는 아쉬람에 자주 오더니 마침내 아쉬람에서 정주했고, 15년간 아쉬람의 서점을 맡아 보다가 죽었다.



53. 탁발 나가는 일의 큰 가치



스리 바가반은 탁발(bhiksha)을 나가는 것은 좋은 수행이며, 우리의 에고와 육체 의식을 없애줄 것이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라마끄리슈나스와미는 탁발로 살아가고 싶어 했다. 그는 스리 바가반의 허락을 얻어 비루팍샤 산굴에서 살았다. 그는 읍내로 내려가 거리에서 “탁발이오, 탁발이오!” 하고 외치곤 했다. 그러면 어떤 개구쟁이들은 그가 행상인인줄 알고 탁발은 얼마냐고 하면서 놀려댔다.



스리 바가반은 이틀을 연속해서 같은 거리로 탁발을 나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는 스리 바가반의 지침을 엄격히 따랐다. 네 번째 날 그는 어느 거리로 가서 “탁발이오, 탁발이오!” 하고 외쳤다. 그가 아쉬람 사람인 줄 알아본 락슈미 암말이라는 사람이 그를 집으로 들어오시라고 하여 발을 씻겨 드리고 음식을 내왔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에게 《시바 뿌라나》(Siva Purana)를 좀 송경해 달라고 했는데, 그는 그것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그녀 자신이 그것을 송경하고 장뇌를 태웠으며, 라마끄리슈나스와미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나서 음식을 드시라고 권했다. 라마끄리슈나스와미는 너무 무안했다. 자신이 전통적인 탁발 절차를 몰랐던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는 그 뒤로 탁발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아쉬람으로 돌아왔다.



스리 바가반이 그 말을 듣자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어떡하나? 만일 우리가 가난 때문에 구걸을 한다면 무릎을 굽히고 남들에게 애걸을 해야겠지. 그는 돈이 없나? 음식이 없나? 전통을 따르고 싶었던 거지. 그게 전부야. 그래서 그는 여법하게 탁발을 청했던 거야. 나도 무관심하게 그러나 여법하게 탁발을 청했던 적이 있지.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오는 것이야. 사두들은 《시바 뿌라나》와 《뻬리아 뿌라남》에 나오는 노래를 잘 알고 있어야 돼. 누가 공양을 올리면 음식을 먹기 전에 그것을 송경해야 하거든. 북쪽 지방에서는 《기타》(Gita) 제15장과 <시바마히마 스또뜨라>(Sivamahima stotra)를 송경해야 하지.”



나는 스리 바가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듣고 나서야 《기타》를 배우고 《뻬리아 뿌라남》과 《시바 뿌라나》의 노래를 배웠다. 만약 어떤 정사에서 무슨 행사가 있으면 스리 바가반은 나더러 거기 가 보라고 하셨고, 나는 전통을 알고 있었으므로 대담하게 그런 행사에 참석하곤 했다.



54. 어머니와 아들



라마끄리슈나스와미에게 공양을 올린 락슈미 암말은 대단한 헌신자였다. 달이 새로 커지기 시작하는 날이자 타밀력의 초하루인 끄리띠까(Krithika) 날이 되면 그녀는 꼭두새벽에 목욕을 하고 여덟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산을 돌러 나가곤 했다.



그녀는 아침 5시경에 아쉬람에 도착했는데, 그녀를 보면 스리 바가반은 “오, 오늘이 끄리띠까인가? 초하루라고? 이 두 사람을 보면 이런 중요한 날들을 기억하게 되는군.”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락슈미 암말은 자기 아들에게 <다끄쉬나무르띠 송찬(頌讚)>(Dakshinamurti stotram)을 송경하게 했다. 이 소년은 이 송찬을 순서대로 외지 못했고, 더러 어떤 연들의 첫 마디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스리 바가반은 아이를 위해 그 첫 마디를 일러주시곤 했다.



샹까라의 이 <다끄쉬나무르띠 송찬>은 스리 바가반이 손수 타밀어로 번역하셨다. 스리 바가반은 당신이 번역한 연들의 첫 단어들을 합쳐서 쉽게 기억할 수 있게 하여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락슈미 암말의 아들은 나중에 띠루반나말라이 시청의 관리자로 일했는데, 지금은 은퇴하여 주(主) 아루나찰라와 스리 바가반께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라마끄리슈나스와미와 나는 별로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스리 바가반을 시봉했다. 우리는 스승이 계신 곳에서 아무 봉사도 하지 않고서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번갈아 탁발을 나가기로 했다. 라마끄리슈나스와미는 형이 그에게 매달 25루피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것은 그 당시로서는 많은 금액이었다.



읍내에는 매달 5루피를 내어 스리 바가반의 헌신자들에게 음식을 공양 올리는 여사가 한 사람 있었다. 내가 아쉬람 밖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라마끄리슈나스와미는 그녀에게 매달 5루피를 주어서 나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점심 한 끼만 먹고 저녁과 아침 식사는 하지 않곤 했다. 그녀는 그 점심을 비루팍샤 산굴로 보내주었다.



한 번은 라마끄리슈나스와미가 비루팍샤 산굴에서 따빠스를 하기로 했다. 네 번째 날에 그는 환영(幻影)을 보고 놀라서 전율했다. 그는 그 환영 속에서 자신이 꿈바꼬남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하게 여겼는데, 곧 그곳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꿈바꼬남에 있는 라마나스람을 보기를 원했고 그것도 보았다. 그는 스리 아루나찰라가 자기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은 너무나 빨리 주었다고 기뻐했다. 그는 아쉬람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흥분된 체험을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모두 그가 하는 이야기에 놀라워했다.



스리 바가반은 그 이야기를 들으시자 “오! 그게 따빠스인가? 꿈바꼬남을 보고, 아쉬람을 보고 하는 이런 것이 다 뭐란 말인가? 이게 따빠스야? 따빠스란 진아 안에 머무르면서 ‘나는 이것을 보았다, 나는 이것을 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지. 그런 것은 찰나적으로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



55. 맹세



우리는 스리 바가반의 친존에서 늘 행복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마치 놀이하듯이 했다. 단식을 하고, 따빠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마치 그것이 죽은 것인 양 바라보는가 하면, 하루에 두세 번씩 산을 돌기도 하고, 맨바닥에서 잠을 자는 그런 것들은 우리가 즐겨 하던 놀이의 일부였다.



스리 바가반이 스깐다쉬람을 떠나신 뒤에 브릿다짤람이라고 하는 아루나찰라 사원의 한 승려가 스깐다쉬맘에 와서 머물렀다. 그는 여신 라자라제스와리(Rajarajeswari)를 숭배했다. 그는 많은 약초들의 효능을 알고 있었고, 어떤 약초의 즙을 완화제로 마셨다.



또 어떤 약초의 즙을 한 컵 마신 뒤에는 스깐다쉬람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 앉아서 명상을 하면서 나더러 방문을 밖에서 잠가 달라고 했다. 1주일 뒤에 내가 문을 열어서 그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이런 일을 몇 번 했다. 그는 나에게 약초들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곧 잊어버렸다.



하루는 그 승려와 내가 8일 동안 내리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매일 차 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공부와 명상을 했다. 오후 10시경에는 우리가 아쉬람으로 천천히 내려갔는데, 자정 무렵에 당도하곤 했다. 스리 바가반은 그 시간쯤 해서 밖으로 나오셨다.



우리는 당신의 친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아침에 스깐다쉬맘으로 돌아가곤 했다. 우리는 나흘 동안을 그렇게 했다. 5일째 되는 날에는 잠을 자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단식이야 우리가 여러 날 할 수 있지만, 잠을 자지 않고 지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얼마나 피곤해 하는지 아신 스리 바가반이 말씀하셨다. “그만해요. 맹세를 하는 등의 장난은 그만 하면 충분하니까. 가서 식사를 하세요.” 우리는 더 이상은 계속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식사를 했다. 그것으로 우리의 맹세는 끝이 나 버렸다. 나는 다시금 스리 바가반을 시봉하기 시작했다.



56. 절을 하는 의미



며칠 뒤 나는 순례를 떠나 꼬일루르 정사(Kovilur Mutt)로 갔다. 이 정사의 장(長)인 마하데바스와미는 한때 띠루반나말라이의 이사니야 정사의 장이었다. 그는 띠루반나말라이에 있을 때 스리 바가반을 자주 방문했다.



그는 우리에게도 늘 친절했다. 디빠발리 날에는 기름 한 병과 무환자(無患子) 가루(soapberry powder-비누 대용품), 새 샅가리개 등을 가져오곤 했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인 나떼샤스와미에게 이 전통을 계승하고 따르라고 지시했다.



마하데바스와미는 우리가 스깐다쉬람을 짓도록 돈을 대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정사와 무관한 건물을 짓는 데 그가 돈을 시주하는 것에 반대했는데, 그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우리의 정사들은 어떤 제약과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스리 바가반과 그분의 상태는 최고이고, 사람에 의한 어떤 통제도 넘어서 있다. 그런 진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우리의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내가 정사의 기금에서 시주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내 개인 돈으로 시주하겠다.” 스리 바가반에 대한 그의 헌신이 그와 같았다.



내가 꼬빌루르 정사에 며칠 있다가 아쉬람으로 돌아왔을 때 스리 바가반은 내가 한 일, 간 곳 등에 대해 자세히 물으셨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마하데바스와미는 스리 바가반과 아쉬람 사람들에 대해 이것저것 친절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거기 간 날 라자(Raja)인 안나말라이 쩨따이아르와 그의 친척들이 마하데바스와미를 찾아왔습니다.”



스리 바가반은 쩨따이아르가 거기서 무엇을 하더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가 마하데바스와미에게 큰 존경심을 가지고 오체투지를 했으며, 스와미로부터 비부띠 은사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스리 바가반이 물으셨다. “자네도 마하데바스와미에게 오체투지를 했나?”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하자 당신이 왜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셨다. 내가 말했다. “저는 스리 바가반 외에는 누구에게도 절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리 바가반이 말씀하셨다.



“이런 영리하고 약은 친구가 있나! 자네의 바가반이 소파 위에 있는 이 육신뿐이란 말인가? 그는 도처에 있지 않나? 어떤 사람이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헌신한다면 어디에도 가지 말아야지. 만약 다른 곳으로 갔다면 거기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해야 돼. 언제 어디서 오체투지를 하든 자네의 스승이나 애호하는 신을 생각해야 하네. 이렇게 하면 자네의 절은 자네가 염두에 두고 있는 그 사람에게 도달할 걸세. 그렇게 해야 하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누구에게 절을 하든 항상 스리 바가반을 생각했다.



57. 산 오른돌이와 동중(動中) 명상



한 사두가 매일 산을 돌곤 했다. 그는 명상이나 염송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스리 바가반께 어떤 특정한 책을 좀 보여주십사고 청했고, 스리 바가반은 나더러 그에게 그 책을 갖다 주라고 하셨다. 나중에 당신은 나에게 그 책을 그에게 주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주었다고 말씀드리고, 스리 바가반께 그 사람은 산 오른돌이 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 왜 이 책을 찾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스리 바가반이 말씀하셨다. “산 오른돌이만한 것이 없지. 그거 하나면 충분해. 한 곳에서 염송이나 명상을 해도 마음은 헤맬 수 있지. 그러나 산 오른돌이를 하면 팔다리는 움직이지만 마음은 고요할 것이야. 걷는 동안 다른 아무 생각 없이 염송이나 명상을 하는 것을 동중삼매(動中三昧, samadhi in movement)라고 하네. 예전에 걷는 것을 그렇게 중요시한 것도 그 때문이지.



산 오른돌이는 중요하네. 산 위에는 몇 가지 약초가 있는데, 거기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건강에 좋을 거야. 산 위에는 지금도 더러 싯다들과 진인들이 계신데 우리가 볼 수는 없지. 우리가 산을 돌 때는 길 왼편을 걸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그분들의 움직임을 방해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우리는 또한 그분들을 오른돌이 하는 이익을 얻을 것이고, 그분들의 축복도 얻게 될 것이야.”



나는 산 오른돌이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주 즐거웠다. 그 이후로 나는 오른돌이에 더 열성적으로 되었다.



58. 알라멜루 암말



마두라이의 ‘띠루뿌갈’ 알라멜루 암말은 주(主) 수브라마니아에 대한 대단한 헌신자였다. 그녀는 수브라마니아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겼고, 다른 누구도 자신의 스승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띠루뿌갈(Tirupugazh)》을 송경했기 때문에 띠루뿌갈 알라멜루 암말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부(副) 징세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 띠루반나말라이로 왔다. 그 아버지가 그녀에게 스리 바가반을 뵈러 가자고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다. 그날 밤 그녀는 스리 바가반의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바가반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主) 수브라마니아가 나타났다.



다음날 그녀는 아쉬람으로 와서 스리 바가반을 뵈었다. 그런데 처음 스리 바가반을 친견할 때 아직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중에 당신이 주 수브라마니아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당신에게 완전히 순복했다. 그녀는 그 뒤에도 여러 번 스리 바가반을 뵈러 왔다.



59. 누구?



뿌두꼬따이의 락슈마나 샤르마와 B.V. 나라싱하스와미는 아주 초기의 헌신자들이다. 두 사람 다 돈 잘 버는 법률가로서 개업하기를 포기했다. 샤르마는 스리 바가반이 가르치는 탐구의 방법에 매료되어 아쉬람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그는 스리 바가반의 <실재사십송(實在四十頌)>을 몇 가지 운으로 산스크리트로 번역했다. 그는 그것이 출판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스리 바가반이 말씀하셨다. “그걸 몇 가지 운으로 번역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따빠스이다.”



그 원고들은 모두 아쉬람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는 스리 바가반의 철학에 대해 《마하 요가》라는 책에서 멋지게 기술했다. 그는 <실재사십송>에 대한 주석을 ‘누구’(Who)라는 익명으로 썼다.



60. 바가반은 모두의 좋은 점만 보신다



스리 바가반은 보통 남들의 좋은 점이나 나쁜 점에 대해서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아는 어떤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칭찬하시곤 했다. 가끔 우리는 우리도 죽으면 스리 바가반으로부터 좋은 말을 듣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그런 말을 듣기 어려울 것이었다(바가반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였으므로-역자). 우리는 어떤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즉시 스리 바가반에게로 가서 당신 앞에 앉아서 그 타계한 영혼에 대한 당신의 말씀을 듣곤 했다.



띠루반나말라이에는 깐다스와미라는 이름의 부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의 처신은 특별히 훌륭하지는 않았고 지역 주민들은 그를 혐오했다. 그는 가끔 스리 바가반을 찾아오곤 했다. 말년에 그는 가난에 시달렸다. 한 번은 죽이 먹고 싶었던 그가 다른 사람을 통해 아쉬람에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아쉬람 맞은편의 한 허름한 사원에 살고 있었다. 스리 바가반은 죽을 준비해서 그에게 보내주게 하셨다. 이렇게 하기를 사흘간 계속했다. 나흘째 되는 날 깐다스와미는 죽었다. 우리는 스리 바가반께 이 소식을 전해드렸다. 우리는 스리 바가반이 이 사람에 대해서는 좋게 말씀하실 것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스리 바가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깐다스와미만큼 몸과 옷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청결 면에서 그는 인지꼴라이 딕쉬따르에 버금가지. 그는 기름도 바르지 않고 비누도 쓰는 법이 없었어. 아침 8시에 성수지에 와서 도띠와 타월을 빨기 시작하는데, 그가 목욕을 끝내면 낮 12시가 되곤 했지. 그의 머리와 수염은 티 한 점 없이 깨끗했어.”



우리는 스스로 정말 부끄러웠다. 스리 바가반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만을 보시는 데 일가견이 있으셨다.



61. 베다를 배우고 싶은 욕구



한 번은 내가 코임바토르에 가까운 뻬나이유르에 있는 샨딸링가 정사(Santhalinga Mutt)에 갔다. 그때 나뚜꼬따이의 쩨따이아르 일가 사람들에 의해 그 사원의 관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몇 명의 사두가 그들의 초청을 받아 타밀 나두의 각지에서 와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그전에 스리 바가반을 뵈러 아쉬람에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관수식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식사를 했고, 그런 다음 몇 가지 사항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리 라마나스와미로부터 온 사람이라고 소개되었다.



누군가가 나더러 ‘순수한 자각’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스리 바가반이 이것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리부 기타》에서 인용해 가면서 설명을 했다. 또 속박에 관한 질문도 받았다. 나는 그것을 《베단타 쭈다마니》에서 인용해 가면서 설명했다.



사두들은 내 설명에 만족해했다. 나는 정사에서 보통 가르치는 것을 나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 친구이자 띠루깔라르 정사(Tirukalar Mutt)의 장(長)인 끄리슈나난다스와미와 의논했다. 그는 내가 베단타에 관한 책 16권을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들은 스링게리 정사의 나라싱하 바라띠(Narasingha Bharati-샹까라짜리야의 한 사람)가 선정한 것으로, 그는 지(知, Jnana)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서사문학이나 세속 문학은 공부하면 안 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이 16권의 책을 철저히 읽으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공부하고는 싶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네. 나 혼자 읽겠어. 어려운 부분은 자네가 설명해 주면 될 거고. 두 달이면 다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석 달이면 끝낼 수 있겠지. 부디 띠루깔라르로 와 주게.” 그가 말했다. 그는 내 열의에 감명을 받았다. 나는 가능한 빨리 띠루깔라르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62. 그대가 진아라면 일체를 알아야 한다



며칠 뒤 나는 아쉬람으로 돌아와서 스리 바가반께 뻬리아유르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내가 말했다.



“우리 아쉬람에서 오는 사람들은 정사들을 방문하면 베단타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 질문들에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아쉬람에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띠루깔라르 정사의 끄리슈나난다에게 부탁해서 저에게 베단타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만약 제가 띠루깔라르로 오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능한 신속하게 저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띠루깔라르로 갈 계획입니다.”



스리 바가반은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베단타를 공부하고 싶겠지만 나중에는 싯단타, 산스크리트, 논쟁술 등을 공부하고 싶겠지. 만약 자네의 진아 안에 머무르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그것은 일체를 다 배우는 것과 같지. 내가 무슨 베단타를 공부했나? 자네가 진아 안에 있으면 자네가 듣는 자네 심장의 메아리는 일체와 조화를 이룰 것이야. 이것이 소위 신의 음성이라는 거지.”



나는 즉시 베단타 공부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내면의 음성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질문들에 답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스리 바가반의 은총 때문이었다. 스리 바가반은 <진아지>(Atma Vidya)에서 이렇게 노래하셨다.



그대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른 것들을 이해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그대 자신을 이해했다면,
달리 이해할 것이 뭐가 있으랴?



63. 학자들도 우리처럼 될 것이다



한 학자가 스리 바가반을 친견하러 북쪽에서 와서 아쉬람에 며칠간 머물렀다. 그는 스리 바가반의 소파 옆에 앉아서 우빠니샤드 등 산스크리트로 된 다른 말씀들을 소리 내어 계속 읽곤 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스리 바가반께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명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스리 바가반은 인내심 있게 그 모두를 경청하셨다. 이렇게 열흘이 지나갔다. 하루는 그가 스리 바가반의 곁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는 한쪽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내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자 스리 바가반이 말라얄람어로 말씀하셨다.



“그 학자도 우리처럼 되었군.”



그랬다. 그 누구도 책 지식만으로는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상시킬 수 없다. 그 학자는 지(知)의 태양이신 스리 바가반 앞에서 자신의 학식을 과시하다가 마침내 침묵하기로 한 것이다. 학자든 무식한 사람이든 관계없이, 누구나 스리 바가반의 자비로운 눈길을 통해 평안을 얻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무지, 자만 그리고 걱정도 사라졌다.



64. 순다람발



순다람발은 마드라스 근처의 띠루발루르에 사는 한 법률가의 딸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시댁으로 가서 아주 심한 두통을 앓았는데, 어떤 치료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친정으로 돌아가자 두통이 나았다. 그런데 다시 시가로 오니 두통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면 두통을 사라지는 것이었다. 남편은 신사였다. 그는 그녀를 안쓰럽게 여겨 친정에서 살게 해주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그녀는 스리 바가반의 소문을 듣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바가반을 뵈러 왔다. 한 번은 우리가 스리 바가반과 함께 산 오른돌이를 나갔을 때 그녀가 우리와 동행했다. 그녀는 스리 바가반께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의문을 해소했다. 스리 바가반은 나를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그녀에게 쭈달라(Choodala)의 이야기를 좀 해주지.”



나는 아주 열심히 《요가 바쉬슈타》에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바가반이 말씀하셨다. “아주 좋아. 그 이야기를 아주 잘 하는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리 바가반의 친존에서는 말을 떠듬거리고 더듬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친존에서도 결코 말을 더듬지 않았다. 자애로운 어머니 앞에 있는 사람같이, 나는 당신의 친존에서 시들을 읽거나 영적인 문제를 토의할 때 즐겁고 신이 났다.



순다람발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달 뒤 띠루반나말라이로 돌아와서 에짬말의 집에 머물렀다. 그녀는 첫날 스리 바가반을 뵈러 왔으나 다음날은 오지 않았다. 아쉬람에 온 에짬말이 말했다. “순다람발은 21일간 단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20일이 지나 그녀는 에짬말에게 대중공양을 한 번 낼 수 있는 돈을 주어 그 음식을 아쉬람으로 가지고 가게 했다. 그녀는 그 다음날 아쉬람에 왔다. 그녀는 아주 약해 보였다. 그녀는 21일째 되는 날에 스리 바가반의 친존에서 단식을 텄다.



그녀는 보통 침묵을 지켰고, 필요할 때는 스리 바가반께만 말을 했다. 그녀는 냉수로 목욕을 했고 머리를 결코 빗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칼이 헝클어졌다. 우리는 그녀를 ‘쑥대머리’ 순다람발이라고 부르곤 했다.



여자들은 오후 6시 이후에는 아쉬람에 머물러 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브라민 여자들은 에짬말의 집에서, 그리고 다른 여자들은 무달라이아르 할머니의 집에서 밤을 보내곤 했다. 순다람발은 에짬말에게 오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나마사바야 산굴의 반대편에 방을 하나 세내어 자취를 했다. 그리고 산을 돌거나 스리 바가반을 찾아오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그녀에게 매달 돈을 보내주었는데, 그는 송금환에다 이렇게 쓰곤 했다. “오, 이샤(Isa)! 자가디샤(Jagadisa)! 까빨리샤(Kapalisa)!”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관대한 행동에 놀라곤 했다.



이렇게 몇 달을 보낸 뒤에 순다람발은 북쪽으로 순례를 떠났다가 돌아왔고, 그러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순례를 떠났다. 그 뒤에는 띠루반나말라이에 다시는 오지 않았다. 나는 빨라니에서 그녀를 한 번 보았는데, 그 이후로는 그녀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65. 내 스승



말라얄람 꾸빤디스와미는 내가 어릴 때 나에게 베단타를 가르쳐 주고 나에게 스리 바가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분이다. 내가 스리 바가반을 시봉하고 있을 때 그가 바가반을 뵈러 한 번 왔는데, 나를 보자 아주 기뻐했다. 그는 48일간 연속해서 산 오른돌이를 했다. 한 번은 그가 스리 바가반께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야자잎 원고를 보여드렸다. 그는 베단타에 관한 사항들을 뛰어난 타밀어로 거기에 써두고 있었다.



스리 바가반이 말씀하셨다. “그는 말라얄람인이면서도 야자잎에 타밀어로 너무나 아름답게 글을 썼군!” 당신은 그의 작품을 대단히 칭찬하셨다.



그는 떠나려고 할 때 내 손을 잡아 스리 바가반의 손 안에 쥐어드리고 말했다. “이 젊은이의 아버지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아들이 베단타학자가 되기를 바라고 이 사람을 저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그에게 베단타를 가르쳤지만, 제가 순례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께 온 것은 전생에 지은 복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당신께서 그의 피난처이시니, 부디 잘 돌봐주십시오.”



그는 북받치는 감정으로 스리 바가반께 절을 하고 나서 순례를 떠났다. 그 뒤로 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뭉클 한다.



66. 자다스와미의 삼매



자다스와미는 스리 바가반이 띠루반나말라이에 오시기 전부터 산 위에 아쉬람을 설립해 두고 있었다. 그는 대단한 박애주의자였다. 그는 음식을 먹기 전에 이웃에 사는 사두들이 식사를 했는지 먼저 알아보았다. 그리고 아직 먹지 못한 사두들에게 음식을 보내곤 했다. 그러고 나서야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목욕을 하지 않고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는 너무 길어서 땅에 닿았다. 목욕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마를 때까지 누군가가 그것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는 스리 바가반께 대단히 헌신했다. 스리 바가반의 어머니가 매장될 때, 그는 모든 의식이 끝날 때까지 빨리 띠르탐에 있었다. 그는 우리가 스리 바가반의 헌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해 주었다.



스리 바가반이 어머니 삼매지로 아주 내려오시고 나서 몇 년이 지나, 한 번은 까르띠가이 축제의 엿새째 날 의식이 거행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자다스와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스리 바가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뭐든지 하게.”



나는 즉시 자다스와미의 아쉬람으로 달려갔다. 이때 그의 제자인 마다바난다는 거기 없었고, 아루빠뚜무바르 정사의 샹까라난다스와미가 와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했다. 만약 축제 기간 중에 누군가가 산 위에서나 산나디 거리(Sannadhi Street)에서 죽으면, 사원의 신이 행렬에 나오지 않곤 했다. 우리는 읍내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기 전에 자다스와미의 시신을 즉시 옮겨가기로 했다.



우리는 두 사람이 시신을 어떻게 산 아래로 옮겨갈까 궁리한 끝에, 그가 앉던 의자에 그를 앉히고 밧줄로 묶었다. 그리고 그를 세샤드리스와미의 삼매지까지 천천히 운반했는데, 너무 힘들어 우리는 숨을 헐떡거렸고 그 뒤 1주일 동안 내내 어깨가 욱신거렸다. 새벽에 우리는 스리 바가반께 우리가 한 일을 말씀드렸다.



당신은 우리의 기지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능숙하게 잘 처리했군. 이제 스리 아루나찰라의 축제에는 아무 장애도 없을 걸세. 아주 영리하군 그래!”



날이 새고 그 소식이 퍼지자 라마스와미 스와미와 다른 사두들이 왔다. 자다스와미는 돈을 한 푼도 남겨둔 게 없어서, 대중들로부터 돈과 물자를 거두어 자다스와미를 위해 좋은 삼매지를 하나 지었다. 의식이 다 끝났을 때는 오후 1시였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스리 바가반의 제안에 따라 모두 스리 라마나스라맘에서 식사를 했다. 한편 매년 까르띠가이 축제의 7일째 되는 날에는 자다스와미의 제자인 마다바난다가 구루 뿌자(guru pooja-스승에게 올리는 예공)를 거행했다.



내가 스리 바가반을 뵈러 가던 길에 뜻하지 않게 자다스와미를 만난 것은 1920년이었다. 나는 그의 몰골에 놀라서 달아났었는데, 여러 해가 지나 내가 그의 시신을 운구해야 했으니 인연도 참 이상한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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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1

알라딘: 새로운 철학 교과서

알라딘: 새로운 철학 교과서



새로운 철학 교과서 - 현대 실재론 입문 

이와우치 쇼타로 (지은이),이신철 (옮긴이)비(도서출판b)2020-08-20

새로운 철학 교과서



373쪽





책소개



저자인 이와우치 쇼타로는 1987년생으로 와세다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와세다대학, 도쿄 가정대학, 다이쇼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는 일본의 신진기예의 철학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최초의 저작이다.



이와우치 쇼타로는 이 『새로운 철학 교과서』에 두 가지 목적을 설정하고 있다. 그 하나는 21세기에 들어서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실재’로 향하고 있는 현대철학의 ‘실재론’에 주목함으로써 ‘인간 이후’의 세계를 사유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철학에 일정한 전망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실재론’의 의의를 현대의 실존 감각에 비추어 ‘실존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목차

ㅣ머리말ㅣ 5



프롤로그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13

제1장 우연성에 저항하다 43

1. 상관주의와 신앙주의 44

2. 우연성ㆍ필연성ㆍ사실론성 67

3. 망령의 딜레마 83

제2장 인간으로부터 객체로 113

1. 객체 지향 존재론 114

2. 쿼드러플 오브젝트 135

3. 사물의 초월 163

제3장 보편성을 탈환하다 181

1.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넓이 183

2. 매개설로부터 접촉설로 208

3. 새로운 넓이의 행로―다원적 실재론 223

제4장 새로운 실재론=현실주의 251

1.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253

2. 의미의 장의 존재론 276

3. 높이도 넓이도 없이 300

에필로그 멜랑콜리스트의 모험 323



ㅣ참고문헌ㅣ 355

ㅣ후기ㅣ 365

ㅣ옮긴이 후기ㅣ 369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높이와 넓이를 상실한 세계에서 우리는 '우연성'에 농락당한다.

P. 37~38 현대 실재론이란 무엇인가? 철학적으로는 ‘20세기 후반에 융성한 포스트모던 사상을 종언시키고자 하는 운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실재론’에 의해 반상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철학에서 ‘절대적인 것’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퀑탱 메이야수, 그레이엄 하먼, 마르쿠스 가브리엘, 찰스 테일러,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같은 현대의 철학자들은 ‘실재론’의 부흥을 지향하며 현대철학의 담론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현대철학에서 포스트모던 사상의 종언과 실재론의 대두를 ‘실재론적 전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푸코, 데리다, 들뢰즈와 같은 포스트모던 사상의 논객은 근대철학을 암묵적으로 관철하고 있던 도그마를 고발했다. 즉, 이성, 주체, 의식, 진리, 보편성, 본질, 동일성과 같은 근대적 개념의 배후에 놓여 있는 자기중심성, 폭력성, 제도성, 경직성을 폭로했던 것이다. 근대 유럽의 가치 기준을 뒷받침해온 철학의 담론을 가지고서는 근대가 경험한 인류의 비참― 마녀 사냥, 종교 전쟁,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노예제, 인종 차별, 그리고 근대의 귀결로서의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에 대항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세계의 모든 사태를 하나의 틀로 완전히 이해하고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고 단언하는 근대적 개념 그 자체가 사실은 근대의 폭력을 내부로부터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제기되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사상이 씨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첫째로 근대철학의 비판이고, 둘째로 근대적 개념에 대해 상대주의의 원리를 맞세우는 것이었다. 철학을 위한 절대적인 출발점―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코기토’―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것은 인간에게 있어 해롭기까지 하다고 고발했던 것이다. 푸코의 ‘에피스테메’, 들뢰즈의 ‘반복’, ‘데리다’의 ‘차연’과 같은 개념은 일반적으로 ‘인식과 앎의 상대화 원리’로서 제출되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관심은 ‘절대적 도그마’를 거부하는 것에 쏟아졌던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상의 동기와 작업은 ‘폭력에 대항하는 철학’이라는 이미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방법이 상대주의였다는 점은 커다란 과제로서 남겨졌다. 왜냐하면 상대주의는 결국 힘의 논리를 귀결로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폭력을 악으로 보는 근거조차 상대주의에서는 상대화될 수밖에 없으며, ‘힘이 강한 것이 이긴다’는 자연의 논리에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철학은 무언가 ‘절대적인 것’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현대철학의 실재론적 전회는 포스트모던 사상의 상대주의 담론에 대해 안티테제를 강력하게 내세웠다는 점에서 철학의 보편주의로의 전회를 예감케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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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생. 일본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과에서 박사학위(국제커뮤니케이션학)를 받았다.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 조교를 거쳐, 현재는 와세다대학, 도쿄 가정대학, 다이쇼대학 등에서 비상근 강사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철학이다. 주요 논문으로 「사변적 실재론의 오류」, 「판단 보류와 철학자의 실천」 등이 있다. 『새로운 철학 교과서―현대 실재론 입문』은 저자의 첫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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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철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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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논리학』, 『진리를 찾아서』, 『철학의 시대』(이상 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순수이성비판의 기초개념』, 『학문론 또는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 『역사 속의 인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신화철학』, 『칸트사전』, 『헤겔사전』, 『맑스사전』, 『현상학사전』, 『니체사전』, 『유대 국가』, 『헤겔의 서문들』,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 『헤겔과 그의 시대』, 『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더보기

최근작 : <철학의 시대>,<논리학>,<역사 속의 인간> … 총 35종 (모두보기)

역자후기

‘현대 실재론’이 전개되는 우리 시대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의 힘들에 필적할 정도로까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대이다. 인간이 우위 내지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전개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세계를 개조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은 이산화탄소의 배출 등과 같은 인간의 작용을 통해 가뭄과 홍수, 이상 기후,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이라는 전 지구적인 조건 그 자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세계가 인간에 의해 개조될 뿐만 아니라 그 개조된 세계가 인간 존재의 조건을 뒤흔드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생태학적 위기와 인류의 생존 그 자체에 대한 불안이 전면화 되는 이 시대의 존재 조건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우리의 시간적 지속의 감각을 뒤흔들고, 그래서 충적세의 종언 이후 인류세의 전개라는 생각이 보여주듯이 인간 존재의 조건을 인간을 척도로 하여 정해져 있는 시간과 공간의 틀을 철저히 벗어나서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도 생성, 변화, 소멸하는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하나로서 여러 존재와의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세계는 인간이 사라져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주인이자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이와우치 쇼타로(지은이)의 말

전통적으로 철학에는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이 있다. 이 대립에는 ‘인식론’(사물을 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철학)과 ‘존재론’(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철학)이라는 철학 분야가 크게 관계되지만, 현대 실재론을 이러한 대립 축에서만 정리해 버리는 것은 조금 유감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것이 ‘실재론’을 표방하는 까닭에 ‘관념론’ 비판의 기능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독립해 존재한다는 것만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현대 실재론은 그다지 재미있는 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존재가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있다는 사태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관계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실재론을 실존론의 견지에서 읽으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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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인간 불평등 기원론>,<세비야의 이발사>,<피가로의 결혼>등 총 201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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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 『새로운 철학 교과서―현대 실재론 입문』은 『新しい哲学の敎科書―現代實在論入門』(岩內章太郎, 講談社, 2019)을 옮긴 것이다. 저자인 이와우치 쇼타로는 1987년생으로 와세다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와세다대학, 도쿄 가정대학, 다이쇼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는 일본의 신진기예의 철학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최초의 저작이다.

이와우치 쇼타로는 이 『새로운 철학 교과서』에 두 가지 목적을 설정하고 있다. 그 하나는 21세기에 들어서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실재’로 향하고 있는 현대철학의 ‘실재론’에 주목함으로써 ‘인간 이후’의 세계를 사유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철학에 일정한 전망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실재론’의 의의를 현대의 실존 감각에 비추어 ‘실존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저자는 ‘현대 실재론’의 주요한 네 가지 사유, 즉 퀑탱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과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 지향 존재론, 그리고 찰스 테일러와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다원적 실재론과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새로운 실재론을 간명하고도 정연하게 제시하되, 그것들이 지니는 의의를 ‘높이’와 ‘넓이’, 즉 ‘초월’ 및 ‘보편’과 관련하여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모색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것은 현대의 니힐리즘과 멜랑콜리, 요컨대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는 현대의 실존 감각에 대한 관심이다. 실존론적 관심에 대한 해명이라는 철학의 시대적 과제가 포스트모던 이후의 ‘실재론적 전회’가 지니는 철학사적 연관에 대한 해명이라는 시대의 철학적 과제를 통해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우치 쇼타로는 ‘현대 실재론’이 포스트모던 사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그것은 곧 역사주의적이고 주관주의적이며 상대주의적인 포스트모던 사상 내지 좀 더 넓게는 칸트 이후 사상이 혐오하는 ‘사물 자체’와 ‘이성’ 개념을 사변적으로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요컨대 인간이 인간 자신의 눈으로밖에 세계를 볼 수 없다면, 인간은 결국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사물 자체를 사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현대 실재론’을 이끌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 이후’의 세계, 곧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사유가 미치지 못하는 장소이기도 한 세계를 사유하고자 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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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

[ realism음성듣기 , 實在論 ]



요약 인식론(認識論)의 사고 방식으로 의식 ·주관과 독립된 객관적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올바른 인식의 목적 또는 기준으로 삼는 입장.

관념론(觀念論)과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보편개념의 실재를 인정하는 의미에서는 대립되지 않는다.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스콜라신학의 정통파, F.브렌타노, B.볼차노, E.후설 등의 현상학(現象學)이나 A.마이농 등의 대상론(對象論)의 입장과 같이 개물(個物:하나하나의 책상이나 삼각형의 도형 등)의 실재를 인정하는 입장도 실재론이라 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경험적 실재로서의 개물과는 다른 초월적(超越的) 관념론적(觀念論的) 대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관념론적이다. 그 때문에 이 경향은 개물 이외에 보편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명론(唯名論)과 대립되고 용어로서의 ‘실념론(實念論)’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



실재론에서는 보편적인 문제는 별도로 하고 다음 입장과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① 지각(知覺) ·경험(經驗)을 그대로 실재라고 생각하는 소박실재론(素朴實在論)이다. 이것은 소박한 형이상학적 유물론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있으나 직접 여건의 주관성(主觀性) ·상대성은 예로부터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심리학의 발달과 함께 예시(例示)되는 ‘착각(錯覺)’ 등에서도 명백하다.



② 따라서 빛깔 ·냄새와 같은 주관적인 제2성질(性質) 배후에 실재하는 객관적 성질로서의 물리적인 연장(延長) ·고체성(固體性) ·운동과 같은 제1성질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데카르트, 가생디, 특히 로크), 이는 인식의 근대과학에 의한 설명과 물질의 기계적 고찰의 진전에 따라 유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험적 실재로서는 심리적 착각 등의 예에서 제1성질이 제2성질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것이 분명하며 연장이나 운동 그 자체는 경험에서의 추상(抽象)의 소산이다. 게다가 과학적 탐구는 실재적 성질의 정의를 부단히 변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입장도 결함이 있다.



③ 이 때문에 I.칸트는 제1성질을 포함한 경험적 인식의 모든 대상을 ‘현상(現象)’이라 하고 그 배후에 인식의 가능성을 초월한 ‘물자체(物自體:Ding an sich)’를 상징하였다. 칸트 이후의 다양한 실재론의 입장은 물자체라는 문제의 개념을 둘러싸고 생겨났다고 할 수도 있다.



④ 또 19~20세기에 걸쳐 G.W.F.헤겔을 정점으로 하는 독일 관념론에 대한 반동 ·비판으로서 전유럽에 다채로운 실재론과 실증주의의 입장이 생겼다. 칸트를 실재론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신칸트학파의 일원(A.릴, N.하르트만 등), 유물론 ·모사설(模寫說)을 주장하면서도 소박실재론과 객관의 정적(靜的)인 인식을 버리고 동적(動的)인 과학적 실재론(科學的實在論)의 입장을 취하는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 등이 그 예이다.



⑤ 이상의 유럽 대륙,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한 흐름 외에, 영미(英美)에 유력한 현대실재론(現代實在論)이 있다. 즉 20세기 초에 영국 헤겔학파의 관념론에 대한 비판 세력으로 대두한 B.러셀, G.무어, L.비트겐슈타인등 케임브리지학파는 미국의 R.B.페리 등 현대실재론과 함께 신실재론(新實在論)이라고 한다.



프래그머티즘도 일종의 경험적 실재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케임브리지학파의 영향을 받은 논리실증주의(論理實證主義), 또 이 학파의 무어, 그리고 후기의 L.비트겐슈타인과 흐름을 같이 하는 영국 일상언어학파(英國日常言語學派)의 경향은 경험적 실재론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논점을 내포한다. 논리실증주의는 실재론과 관념론 및 양자의 대립 그 자체가 언어 용법의 혼란에서 생기는 형이상학적 의사문제(形而上學的擬似問題)라고 생각하고 일상언어학파도 공통의 논점을 계승하지만 다시 철학용어에 의한 비일상적인 추상적 개괄화(抽象的槪括化)를 버리면 경험적 대상의 실재를 인정하는 상식적(常識的) 입장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경향은 역사 및 문체 양면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을 내포한다. 첫째, 그것은 스코틀랜드 상식철학파에서 볼 수 있는 실재론 이론에 더욱 세련되고 면밀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둘째, 앞에 서술한 전통적인 여러 실재론은 어쨌든 경험적 여건의 배후에 제1성질이나 물자체를 가정하고 거기에 객관성과 올바른 인식의 근거를 찾는 모사설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비경험적인 실재의 성질에서 그것과 경험적 여건의 연관을 말하기에는 근본적으로 난점이 있으나 이들 현대실재론은 이와 같은 사고법을 배제한다. 셋째, 그 때문에 그것은 객관적으로 가정되는 실재의 과학적인 여러 성질이나 법칙도 구체적 경험에서 추상(抽象) 또는 구성된 기호체계(記號體系)로 생각한다. 더구나 그것들을 개념실재론(槪念實在論)과 같이 실체화하지 않고, 특히 프래그머티즘과 같이 경험해명(經驗解明)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이해하고 경험적 실재론의 입장을 취한다.



참조항목

관념론, 변증법적유물론, 비판적 실재론, 소박실재론, 신실재론, 인식론, 실용주의



역참조항목

개념론, 경험적 상징론, 관계주의, 관념실재론, 기욤, 논리실증주의, 동굴의 비유



카테고리

철학 > 서양철학 >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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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함께 기르는 곳...'위스테이 별내', 그곳은 - 아주경제

[르포]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함께 기르는 곳...'위스테이 별내', 그곳은 - 아주경제



[르포]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함께 기르는 곳...'위스테이 별내', 그곳은

윤지은 기자입력 : 2020-06-25 10:12
오는 29일 입주 앞둬...'입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콘셉트법정 기준의 2.5배 달하는 커뮤니티공간, 입주민이 직접 꾸며'공동육아' 등 입주민 교류 활발...'돌보미' 등 마을일자리 탄생최장 8년간 안정적 주거 보장..."8년 이후에 대한 고민 있어야"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 별내[사진 = 윤지은 기자]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 별내[사진 = 윤지은 기자]
"다른 아파트에도 커뮤니티시설은 많습니다. '위스테이'는 단순히 돈을 내고 이용하는 커뮤니티시설 이상으로 이웃과 어울려 사는 '마을문화'가 깃들어 있는 공간이에요."

전임 정부에서 시작해 현 정부에서 마무리된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가 이달 29일 입주를 앞뒀다. '입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콘셉트인 만큼 널찍한 공동체 공간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곳의 커뮤니티공간은 법정 기준의 2.5배인 약 3000㎡에 달한다.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이름 그대로 공공이 기금을 출연해 지원하지만 공급 주체는 민간인 아파트다. 앞단에 '협동조합형'이 붙은 까닭은 민간회사가 단순히 아파트만 짓는 게 아니라 지어진 아파트를 운영할 '협동조합'까지 만들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안에는 아파트 입주민이 가입하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위스테이는 입주민이 제 손으로 제가 살 공간을 꾸미는 아파트다. 그래선지 이곳 입주민들은 비록 임차인이지만 집에 대한 애정이 그 어떤 집주인보다 깊다.

이 사업은 지난 2016년 국토교통부가 시범적으로 선보인 모델이다. 당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사회적 기업 '더함'은 기존에 있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구 뉴스테이)에다 협동조합을 결합해 호평을 받았다. 건설사와 조율해 마진을 줄이더라도 커뮤니티공간을 알차게 꾸미는 편을 택했다.
 
볕이 좋은 날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단지내 캠핑장[사진 = 윤지은 기자]
볕이 좋은 날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단지내 캠핑장[사진 = 윤지은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덕송3로 27에 위치한 위스테이 별내는 전용면적 60㎡(25평) 86가구·74㎡(29평) 252가구·84㎡(34평) 63가구 세 타입으로 구성됐다. 지상에는 차(車)가 없고 지하 주차장엔 가구당 1.3대를 주차할 수 있다. 가장 넓은 면적인 전용 84㎡ 기준으로 입주민은 △보증금 3500만원, 월세 66만3000원 △보증금 1억1000만원, 월세 45만원 △보증금 2억3370만원, 월세 10만원 등 다양한 임대료를 선택할 수 있다. 월세 안에는 커뮤니티 사용료 5만원이 포함돼 있다.

협동조합에 가입하기 위해선 임대료와 별도로 입회비와 출자금(임대차 계약 해지 시 환급)을 부담해야 하고 84㎡ 타입의 경우 출자금이 4000만원에 달하는 만큼, 생각보다 저렴한 임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더함 측은 위스테이 별내가 제공하는 '특별한 커뮤니티'는 해볼 만한 시도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더함 관계자는 커뮤니티시설 가운데 하나인 '동네카페'에서 "이곳에 있는 의자, 책상 모두 조합원의 손을 타지 않은 게 없다. 여기뿐 아니라 900평가량의 커뮤니티공간 전체가 그렇다"며 "입주민이 공간에 대해 갖는 만족도,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입주민들은 동네카페에서 오미자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나눈다. 막걸리 이름은 마을 이름을 따 '가람주'[사진 = 윤지은 기자]
입주민들은 동네카페에서 오미자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나눈다. 막걸리 이름은 마을 이름을 따 '가람주'[사진 = 윤지은 기자]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 김모 조합원의 건의에 따라 커뮤니티공간 전체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꾸며졌다. 문턱이 없고 휠체어가 드나듦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출입문의 폭도 조정됐다.

더함 관계자는 "장애인에게 좋은 일은 결국 입주민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며 "우리 단지엔 3040 유자녀 3~4인 가구가 많은 편인데, 유모차를 끌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곳의 입주자들은 자기 공간을 스스로 만들고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심지어는 아이도 함께 키운다.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생하는 일자리는 주민들의 또 다른 활력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일을 이웃이 해주는 만큼 보다 믿고 맡길 수 있고, '갑질' 등 부작용도 적을 것이라 더함은 기대하고 있다.

더함 관계자는 "저 역시 아이 둘을 기르는 아빠로서 잠깐 장 보러 가거나 미용실 갈 때 두세 시간만 아이를 맡길 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이 '틈새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입주자가 원하면 마을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마을일자리'를 계속 만들어낼 것"이라며 "이미 동네보안관(경비원), 동네벼리(미화원) 등도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목수일을 배우고 3D프린터도 사용해볼 수 있는 동네목공소[사진 = 윤지은 기자]
목수일을 배우고 3D프린터도 사용해볼 수 있는 동네목공소[사진 = 윤지은 기자]
월세 안에 포함되는 5만원으로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시설은 어느 아파트와 비교해도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운동화 세탁·건조기'까지 마련된 '동네빨래터'부터, 아이들이 바깥에서 노는 걸 부모가 지켜볼 수 있도록 투명창으로 이뤄진 '동네키움방'(키즈룸)과 '동네자람터'(칠드런스룸), 아이들을 위한 공간(1층)과 어른들을 위한 공간(2층)으로 나뉘어 마련된 '동네책방'까지 면면이 다양하다.

당구대, 다트,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마련된 '동네창작소', 동네 디제이가 음악을 틀고 주민들은 음악을 연습할 수 있는 '동네방송국', 취미로 목수일을 배울 수 있고 3D프린터까지 활용할 수 있는 '동네목공소' 등도 마련돼 있다.

동네책방 역시도 입주민이 관장을 맡는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일도 주민이 한다. 박모 조합원은 정태인의 '협동의 경제학'을 추천하면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책"이라고 썼다.
 
어른을 위한 동네책방 2층의 모습[사진 = 윤지은 기자]
어른을 위한 동네책방 2층의 모습[사진 = 윤지은 기자]
동네책방의 모습. 1층 책상에 박모 조합원이 입주민에 추천하는 책을 올려뒀다.[사진 = 윤지은 기자]
동네책방의 모습. 1층 책상에 박모 조합원이 입주민에 추천하는 책을 올려뒀다.[사진 = 윤지은 기자]
더함 관계자는 "다른 아파트는 헬스 트레이닝을 위탁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외부 헬스장과 다를 바 없고 PT(Personal training)를 받는 사람만 관심을 갖고 케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우린 '운동주치의'라고 불리는 입주민이 직접 다른 입주민에게 기구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식습관이나 건강 관련 자문도 한다"고 했다.

기꺼이 운동주치의를 맡아준 이모 조합원은 현재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피트니스클럽 프롬더바디를 운영 중인 전문가다. 보다 전문적인 PT를 원하는 주민은 월 5만원 정도만 추가로 부담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1회 수업에 수만원을 요구하는 일반 PT와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운동주치의' 이모 조합원이 건강관리법을 코칭하는 모습[사진 = 윤지은 기자]
'운동주치의' 이모 조합원이 건강관리법을 코칭하는 모습[사진 = 윤지은 기자]
공동체 공간이 장밋빛 미래만 제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함 관계자는 "1500여명의 입주자가 아무런 갈등 없이 교류할 수 있다는 건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벌써부터 흡연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다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며 "서로가 원하는 걸 진솔하게 털어놓고 한 발씩 물러서기도 할 수 있도록 '갈등조정위원회'를 단지 내 공식기구로 만들었다"고 했다.

더함은 경기권에서 별내뿐 아니라 고양시 지축지구에도 임대주택을 공급할 예정이지만, 앞으로도 이런 모델의 아파트를 계속 공급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전한다.

더함 관계자는 "위스테이 별내의 월세(커뮤니티 사용료 제외)는 2년에 최대 5% 오른다"며 "임차인은 이런 조건으로 최대 8년간 안정적 주거를 보장받지만, 우리 사업이 근거하는 민특법(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이 '8년 이후'를 특정하지 않고 있다는 건 크나큰 고민거리"라고 했다.

또 "우리가 바라는 건 (의무) 임대차 기간이 8년보다 길어지는 것, 임대료가 지금보다 낮아지는 것이 전부"라며 "정부가 더함을 뽑지 않아도 좋고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주지 않아도 좋다. 다만 (사업자가) 임차인을 배려하는 방안을 많이 담을수록 (공모에서) 높은 평가를 받도록 구조를 다시 짜달란 것이다"고 힘줘 말했다.

Do you try to set aside times of quiet for openness to the Holy Spirit?

 Do you try to set aside times of quiet for openness to the Holy Spirit? All of us need to find a way into silence which allows us to deepen our awareness of the divine and to find the inward source of our strength.

Seek to know an inward stillness, even amid the activities of daily life.
Do you encourage in yourself and in others a habit of dependence on God's guidance for each day? Hold yourself and others in the Light, knowing that all are cherished by God.
-From Advices and Queries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