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0

‘한국불교 100년’ 일본어판 출판…日쇼코 스님 전폭 지원

‘한국불교 100년’ 일본어판 출판…日쇼코 스님 전폭 지원

‘한국불교 100년’ 일본어판 출판…日쇼코 스님 전폭 지원
기사입력 2014-06-18 20:44:09

23일 일본 도쿄 긴자라이온스호텔서 출판기념회





이치노혜 쇼코 스님.
14년 전 민족사에서 발행해 화제를 모았던 사진집 ‘한국불교 100년’이 일본어판으로 출판돼 오는 23일 도쿄에서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사진과 해설이 곁들인 ‘한국불교 100년’(국배판 454쪽, 김광식, 윤창화 공편)은 지난 2000년에 출판됐으며, 근대 한국불교 1세기 즉 1900~1999년까지를 훌륭하게 조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근대 1세기 동안 있었던, 한국불교와 관련된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사건을 망라한 책이었다.

수록된 자료는 불교계에 있었던 중요 사건, 희귀사진, 기념사진, 신문, 잡지, 인물, 책, 성명서, 문건, 중요사건, 기사 등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모두 모아 총 1105컷을 수록했다.

이 책이 일본 고세이샤(皓星社)에서 일본어판으로 출판되는 데는 조동종(曹洞宗) 운쇼지(雲祥寺) 주지이며, 동아시아불교운동사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이치노혜 쇼코(一戸彰晃) 스님의 역할이 컸다. 스님이 모든 출판 경비도 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쇼코 스님은 ‘조선 침략 참회기’를 펴내 일제와 조동종의 조선침략 야합을 고발한 장본인으로, 이 책을 출판한 목적은 이 책이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불교 수탈 사진과 자료들이 많이 수록돼 있는데다 일본인들에게 광복 이후 한국불교의 발전모습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불교 100년' 표지.

출판기념회는 23일 오후5시 도쿄 긴자 라이온스 호텔에서 열리며, 한국측에서는 민족사 대표 윤재승(윤창화),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유정길 에코붓다 공동대표 등이고, 일본 측에서는 쇼코 스님, 하쿠 신쿤(白眞勲) 참의원의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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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한국 불교잡지 100년의 역사와 의미 / 김성연
기자명 김성연   입력 2015.05.31 02: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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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한국에서 최초로 간행된 불교잡지는 현전하지 않지만 1910년경에 간행된 《원종(圓宗)》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 불교잡지의 역사는 올해로 105년이 되는 셈이다. 주지하듯이 근대 잡지는 신문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고 지식의 발전을 가속화시킨 매개물이었다. 언론매체라는 것이 원래 없던 시절에 생겨난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TV나 인터넷보다도 더욱 놀랍고 획기적인 대중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을 것이다. 불교잡지는 일반적인 잡지가 지니는 의미에 더해 종교 잡지라는 특수성을 지니며 발전해 왔다. 즉,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용 잡지가 아닌, 포교를 주목적으로 하는 계몽 잡지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초기의 잡지들은 치열한 종교경쟁 시대에 불교 여론을 형성하고, 불교 지식의 보편화를 통해 대중불교를 실현하려 했던 의지의 소산이었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간행된 불교잡지의 수를 정확히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잡지 간행의 여건이 여러모로 간단치 않았던 해방 이전과 1960~70년대까지는 차치하더라도, 그 이후 특히 1990년대 이후로는 개별 사찰에서도 제각각 잡지를 펴내고 있을 정도로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오늘날 정보의 홍수 시대에 불교잡지도 그 조류를 타고 있다.

결국 변명이 되겠지만, 이러한 이유로 이 글에서는 100년 동안의 모든 불교잡지를 대상으로 논지를 전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면의 한계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필자의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단, 해방 이전의 잡지들은 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기존의 연구성과에서 밝힌 잡지명을 최대한 밝히기로 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잡지들은 잡지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를 한정하여 기관지 성격이나 주요 단체 및 사찰에서 간행한 것 중에서 어느 정도 지속성을 유지한 잡지들만을 대상으로 특징들을 살펴볼 것이다. 부득이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된 수많은 잡지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에 의해 선별하여 분류된 것으로, 이에 대한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2. 근현대 불교잡지의 간행

한국 불교잡지의 역사는 1910년경 조선불교 원종 종무원에서 발간한 《원종》으로부터 시작된다. 초기 간행된 잡지의 성격은 바로 기관지였다는 점이다. 《원종》에 이어 간행된 《조선불교월보》(1912~1913), 《해동불보》(1913~1914), 《불교진흥회월보》(1915), 《조선불교계》(1916), 《조선불교총보》(1917~1921)는 모두 기관지 성격의 간행물로서, 불교 포교 역사에 있어서 전근대의 분수령을 가르는 혁신적인 매체였다. 잡지가 개인이 아닌 기관지 성격으로 주로 간행된 데에는 식민치하의 엄격한 검열제도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금의 조달과 사업 전개상의 편의가 개인보다는 기관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관지라 할지라도 각 잡지는 1~2년의 짧은 기간밖에 간행되지 못했는데, 이를 보면 당시의 출판 여건이 그리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잡지들은 처음 시도되는 대중 잡지였던 만큼 내용적인 면에서 크게 분화되지 못하고, 불교계의 개혁 호소와 교리 소개 및 유물·유적 등의 소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 불교계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입장과 더불어 일제의 불교정책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근대적인 개혁의 시행을 강조하면서도 불교사, 고승대덕의 행장, 불교 교리 등을 많이 게재하고 있는 점은 타 종교와의 경쟁 속에서 전통적인 불교 본연의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기관지 외에 개인이 간행한 최초의 잡지로 한용운의 《유심》(1918)이 있다. 《유심》은 불교적 수양을 주로 하고 다수의 문예작품을 중심으로 편집이 이루어졌다.

1920년대는 본격적으로 ‘대중’적 규모의 독자층이 형성된 시기였다. 3·1운동 이후, 총독부의 정책 전환으로 출판법, 신문지법 등의 규제가 완화되었고, 그에 따라 1910년대에 비해 출판 산업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져 신문·잡지의 구독도 그만큼 일반화될 수 있었다. 불교잡지도 1920년대에는 12종이 신간(新刊)된 것으로 확인되며, 일부는 중간에 휴간되기도 했지만 1930~40년대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문서포교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또한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의 기관지로 《불교》가 지속적으로 간행되면서 그와 더불어 청년회나 지방 불교 단체, 중앙불전 교우회 및 학인연맹, 유학생 단체 등에서 잡지를 간행하여 잡지 간행 주체의 외연도 확대되었다.

통도사 불교청년회가 발행한 《취산보림》(1920)과 《조음》(1920), 불교 단체들이 발행한 《불일》(조선불교회 불일사, 1924), 《조선불교》(조선불교단 1924~1936), 《평범》(부산 평범사, 1926), 《불교세계》(김천 불이교당, 1927), 유학생들이 발행한 《황야》(북경 불교유학생회, 1924), 《금강저》(조선불교동경유학생회, 1924~1943), 중앙불전 교우회가 발행한 《일광》(1928~1940), 조선불교학인연맹이 발행한 《회광》(1929~1932), 발행처가 확인되지 않는 《무아》(1928) 등이 이 시기에 간행된 잡지이다.

대표적으로 1930년 이후까지 이어졌던 세 가지 잡지를 살펴보면, 우선 《금강저》는 재일(在日) 불교 청년들이 펴낸 잡지로서 당시 불교계의 실상을 비판한 글이 다수 게재되었다. 일본 유학생들은 잡지를 발간하기 위하여 방학을 이용해서 전국 사찰을 순행하며 간행비를 모으기도 하였으므로 잡지를 통한 문서포교와 더불어 포교 방면에서 큰 효과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불교》는 일본어로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불교의 각 종파가 후원한 조선불교단에서 간행한 기관지로서, 친일파의 활동과 인식, 일제의 불교정책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불교》는 무엇보다 1920~30년대의 대표적인 불교잡지였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는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에서 발간하였고,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월간으로 통권 108호를 간행하는 등 단연 돋보이는 잡지이다. 이 잡지는 기관지였기에 재단법인 교무원의 회의록에서 간행 실상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 불교잡지, 특히 기관지의 간행과 포교 형태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각 연도 교무원의 평의원 총회 회의록을 보면, 《불교》는 매월 1,000부에서 1,500부 정도가 간행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간행된 잡지는 각 지역의 본산에 배포되어 다시 각 말사나 개인에게 필요한 부수를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 잡지의 구독률이 높은 사찰은 김룡사, 마곡사, 범어사, 법주사, 통도사, 해인사 등으로 매달 평균 50부 이상을 구독하였다. 각 본산은 지사(支社)를 설립하고 종무소의 감독하에 지사장이 잡지의 구독과 각 사암의 지대(誌代)를 수납하였다. 또한 각 본말사암에서 각 개인이 생활 능력이 되는 수입이 있는 자라면 필히 잡지를 구독하게 하였고, 승려 이외의 개인 독자도 종무소나 지사에서 구독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불교와 관계되어 직접 경영하거나 간접 관계에 있는 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의무적으로 잡지를 구독하도록 권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볼 때, 당시 신도들이 잡지를 접할 수 있었던 일반적인 방법은 각 사찰을 통해서였다.

1920년대부터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많은 지식인이 필자로 참여하고, 그런 차원에서 내용 구성의 질적인 향상을 보였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종교’의 본질에 대한 탐구, 불교 정체성의 정립에 대한 인식, 교학 및 불교사에 대한 소개, 역경(譯經)에 대한 중요성 인식 등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또 본격적으로 국내외의 불교 유적을 답사하고 쓴 기행문과 시·소설과 같은 문학적인 글들이 게재되어 다양한 독자층을 흡수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1920년대는 불교 대중화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과 확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에도 불교잡지의 발간은 활발하여 새로 신간된 잡지로 총 11종이 확인된다. 《관서불교》(관서불교사, 1931), 《불청운동》(조선불교청년총동맹, 1931~1933), 《선원》(선학원, 1931~1935), 《불교시보》(불교시보사, 1935~1944), 《금강산》(표훈사, 1935~1936), 《경북불교》(경북불교협회, 1936~1941), 《신불교》(경남삼본산협회,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 1937~1944), 《룸비니》(중앙불전 학생회, 1937~1940), 《홍법우》(봉선사 홍법강우회, 1938), 《탁마》(묘향산 보현사 불교전문강원, 1938), 《불심》(1939) 등이 그것이다. 《신불교》는 1920년대부터 발간되었던 기관지인 《불교》의 속간이며,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청년회를 비롯한 불교 단체와 사찰, 학우회 등의 소식지가 활발히 간행되었다.

1940년대 들어와 해방 전까지는 새로 신간된 잡지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1930년대 중반에 시작된 《신불교》와 《불교시보》가 해방 전까지 불교계의 대표 잡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일본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표방하며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때로, 식민지 조선 또한 황국신민 사상을 강요받으며 전쟁 물자를 동원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때였다. 한편 당시 불교계는 분산된 사찰 세력을 통합하여 총본산을 건설하려는 분위기가 강하였다. 결국 1937년 총본산은 건립되었지만, 총독부의 인가를 통해 추진되었다. 이후의 불교계는 친일성향으로 경도되어 심전개발 운동은 물론이고 승전기원법회, 황군장병 위문, 창씨개명 운동 등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신불교》와 《불교시보》 또한 친일성향의 글이 많이 게재되었다. 시국의 동향과 발간 주체의 성향에 따라 잡지의 성격이 크게 좌우된 사례라 하겠다.

해방공간의 불교잡지는 《신생》(1946), 《불교신보》(1946), 《대중불교》(조선불교혁신총동맹, 1947), 《불교공보》(조선불교 중앙총무원, 1949) 등 4개가 확인된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잡지 발간은 한동안 주춤하다가 1956년에 재개되었다. 《법륜》(1956), 《녹원》(1957~1958), 《불교세계》(1957), 《정토문화》(1958), 《현대불교》(1959) 등이다. 해방 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불교계도 일제불교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였다. 특히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諭示)는 비구−대처 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현대불교》는 대처승 측에서 발간한 잡지로서 1962년 7월, 《불교사상》 제10호로 속간된 후 1964년 3월에 폐간되었다.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만 해도 불안정한 정국 속에 불교잡지도 오래 간행되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는 불교잡지의 수도 조금씩 증가하고 장수하는 잡지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법시》(법시사, 1963~1992)와 《법륜》(월간법륜사, 1968~1993)은 비록 중간에 결호가 생기긴 하였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던 장수한 잡지였다.

그 외에 1967년 박대륜이 창간한 《불교계》는 1970년 《불교》(월간불교사, 1970~ )로 이름을 바꾸었다. 박대륜은 1970년 비구−대처의 분쟁 결과 한국불교 태고종이 새로 창종되었을 때 초대 종정으로 취임한 승려이다. 그가 창간한 《불교》는 태고종의 기관지로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불교》 제1호에서는 1920년대 기관지였던 《불교》의 전통을 정신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역사성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불교》와 함께 1970년대 창간된 잡지로 오늘날까지 간행되고 있는 《불광》(불광출판사, 1974~ )이 있다.

1980~90년대는 불교잡지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많은 잡지가 생겨났다. 종단 등록 수도 늘어난 데다가 각종 불교단체, 각 지방의 크고 작은 사찰 및 개인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전 시기보다 잡지 출판의 여건이 좋아졌고, 공급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의 수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제는 불교잡지도 순전히 포교를 위한 의미보다는 말을 살짝 바꾸면 홍보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3. 불교잡지의 기능과 역할

1) 근대 불교 지식인의 등용문

1906년에 설립된 명진학교는 조선불교도 비로소 신식교육을 시작했음을 대내외에 선포한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강원교육이 중심이 되어 왔던 승려 교육은 이때부터 신식교육을 병행하여 근대사회에 적합한 종교로서 조선불교의 위상을 정립하려 했다. 당시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근대화·대중화의 동력은 인적 자원의 쇄신에 있었고, 국내의 자구 노력과 더불어 1910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유학생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전체 유학생 수를 산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기존 연구성과에 의하면 1910년대 10여 명으로부터 해방 이전까지 360명 정도의 이름이 파악된다. 이 외에 중국에서 공부한 승려들의 이름도 더러 확인되며, 김법린과 백성욱과 같이 유럽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승려도 있었다. 이들 불교 유학생은 이른바 근대 ‘지식인’으로서 조선불교의 근대화를 책임진 역군으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외적인 체제 발전뿐 아니라 내적으로 종교성의 함양과 불교학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해외유학을 통해 근대불교학의 세례를 입은 세대와는 반대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근대적 지식인 계층으로 볼 수 있는 이들도 있다. 박한영, 백용성, 한용운, 이능화 등이 이에 속한다. 혹자는 이들을 ‘전근대적인 교육을 받아 성장했지만 근대적 각성을 통해서 전근대적 전통과 가치를 새롭게 인식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들 근대와 만난 전통적 지식인들은 대체로 유학생 그룹보다 선배들로서 오늘날 불교학 형성의 주춧돌을 놓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불교학은 바로 이 두 부류 지식인 계층의 학문적 업적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전문 학술잡지가 없던 시기였기에, 이들의 불교 지식과 학문적 업적은 초창기 대중 잡지를 통해서 발표되었다. 다시 말하면, 당시 불교잡지는 불교 지식인들의 거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유학한 김법린은 《불교》에 〈구미학계와 불전연구〉(49호, 1928. 7)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의 연구〉(96~99호, 1932) 〈불란서의 불교학〉(100호, 1932.10) 등을 발표하며 서구 불교학의 동태와 불교 문헌학 연구를 시도했고, 독일에서 유학한 백성욱은 자신의 학위논문 주제였던 〈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7~14호, 1925)의 연재를 통해 형이상학적 불교철학의 성격을 다뤘다. 일본 유학생인 허영호도 〈십이상연법(十二相緣法)에 대해서〉(59~63호, 1929) 〈범파양어(梵巴兩語)의 발음법에서 본 조선어발음법에 관한 일고찰〉(80~84·85호, 1931) 〈대소품반야경의 성립론〉(96~101·102호, 1932) 등을 발표하며, 문헌학적 방법론에 의한 불교학 성과를 내놓았다. 이러한 글들은 1920년대에 들어서 간행된 잡지에서 보이기 시작되며, 그것은 1910년대부터 시작된 해외 유학생들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잡지는 한국적 근대불교학 형성의 기초를 살펴볼 수 있는 1차 사료를 담고 있다. 이후 1960년대 들어서 전문 학술잡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일반 대중 잡지에서는 학술적 성격의 글(논문) 대신 지식인들의 칼럼이나 에세이 등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근대 불교 지식인의 등용문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야로 불교문학을 들 수 있다. 근현대 잡지에는 현대시는 물론이고 평론이나 수필, 기행문, 소설과 같은 산문 형식의 근대 문학 작품들이 끊임없이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한용운은 여러 잡지에서 수많은 시와 산문들을 발표했으며, 이미 1910년대에 발간한 《유심》 등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문학운동을 직접 이끌기도 했다. 불교 지식인들의 문학성을 드러낸 시나 산문 형태의 글들은 잡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다. 이 외에 특징적으로 불교 희곡이 다수 발표되었다. 그 대표주자는 희곡을 발표할 때 주로 ‘김소하’라는 필명을 사용했던 김태흡이다. 그의 희곡 작품들은 단순한 문학 작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직접 공연을 올렸다는 점에서 연극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특히 경전이나 교리의 내용을 현학적인 극형식을 빌려 표현한 것은 일반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불교잡지의 근대적 포교 방식의 채용이라는 점에서 편집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초창기 잡지는 근대불교학과 불교문학을 위한 지식인들의 등용문으로 기능했다. 따라서 오늘날 이 시기를 연구함에서 불교잡지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하지만 현재 이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심지어 다양한 필명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오늘날은 일반인들도 잡지에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당시처럼 문맹률이 높았던 시절에 글을 기고했다는 것은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초 불교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쓴 글을 통해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잡지는 이 시기 불교 연구에 많은 소스를 제공해 주는 자료라 하겠다.

2) 종교적 위상 강화와 문화전통의 강조

초창기 불교잡지의 논설란에 가장 많이 등재된 주제는 불교개혁론과 종교 정체성에 관련한 내용이다. 불교개혁론은 교육·포교·행정·사찰·승려 등 불교 집안의 모든 구태를 벗어던지고 근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도심불교를 표방하며 근대화에 몰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전통은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개혁론은 체제 개선과 종단 설립 문제에 집중되었고, 내부적으로 승려의 인식부터 변해야 함을 피력했다. 결국 불교 개혁을 통해 ‘문명’에 걸맞은 종교로서 위상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개혁을 통해서만 종교적 위상을 세울 수는 없었다. 문명 종교에 부합하는 이론과 논리가 필요했다.

19세기 말까지도 체제 내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던 조선불교는 천주교·기독교의 확장 속에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문명 종교로 인식된 기독교와는 달리 미신이나 무속으로 인식된 불교였기에 무엇보다 종교적 성격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 서구 종교의 유입은 전통 종교의 ‘종교성’을 자각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불교 지식인들은 기독교적 종교 개념에서 나아가 문명 종교로서 불교의 종교 개념을 규정하려 하였다. 기독교와의 비교를 통해 이끌어낸 불교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무신론(無神論)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것은 천지창조의 일신교적(一神敎的) 기독교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반론으로, 불교가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닌 자유의지에 의한 해탈을 궁극의 목표로 하는 종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교로서 가장 큰 특징으로 ‘철학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철학적 성격은 이성과 합리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 논리에 부합하면서 전통적인 교학 체계를 계승할 수 있는 적합한 것이었다. 서구의 학자들은 불교의 무신론과 철학적 특성 때문에 종교가 아닌 석가모니를 정점으로 하는 철학으로 분류했지만, 불교 지식인들은 오히려 역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불교만의 특성을 문명 종교의 이상으로 부각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20세기 초 불교 지식인들은 서구의 ‘종교’ 개념을 새롭게 재해석해 근대 종교로서의 불교 정체성을 정립했다. 잡지에 게재된 불교의 종교 정체성에 대한 내용은 불교도들의 공론을 형성하였고, 타 종교와 경쟁할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근현대 불교잡지는 ‘불교문화’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 불교 역사와 고승에 대한 탐구, 불교 유적지에 대한 탐방 등을 다룬 글들은 독자들에게 불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증대시키고, 불교 전통의 계승과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특히 기행문학의 형식을 빌려 전통사찰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글은 잡지 간행 초창기부터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게재되는 단골손님이다. 종교가 보편적으로 인간의 간절한 염원을 희구하여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 것이라면, 문화는 종교성이 외면으로 형상화되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문화유산은 불교를 통해 바라는 인간의 염원이 예술성의 경지로 승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지정문화재 중 상당수가 불교 문화재인 점을 감안한다면,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도 불교문화유산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는 매우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불교잡지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불교문화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자부심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한다. 불교잡지가 지니는 이 두 가지 특징은 결국 불교의 종교로서 성격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문화와 전통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특수한 불교문화의 전통을 발굴하여 일반에 소개하고 한국문화로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일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3) 불교 대중화의 선도자

불교잡지는 오늘날 포교의 가장 일반적인 수단 중 하나이다. 강연이나 법회는 일회성인 데 비해 잡지는 반영구적이며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여 포교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또한 단순히 일률적인 주제나 장르로 엮은 단행본이나 소식을 전하는 목적이 강한 신문에 비해 당대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여러 필진의 참여와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라는 점도 잡지의 가장 큰 매력이다. 결국 이러한 매력에 불교잡지의 대중화 전략이 숨어 있다. 즉, 전문성을 갖추면서 지루함을 없앨 수 있는 기획과 편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양한 편집 전략은 초창기 불교잡지에서도 나타난다. 지식의 보급은 물론 독자층의 확대와 참여를 이끌기 위해 문답란이나 여성란, 소년란, 현상공모와 같은 코너를 개설하였고, 불전의 번역 및 해설을 게재하여 어려운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오늘날 잡지까지 이어진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는 추세가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 전환하고 있다. 이에 가독성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디자인을 고려하여 삽화뿐 아니라 다양한 사진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 전략이 필요하게 됐다.

그리고 초창기 잡지에서 불교의 포교와 대중화에서 크게 기여했던 것 중의 하나는 불전의 번역이었다. 한문으로 된 부처님 말씀을 한글로 번역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당시 포교사업의 최우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역경 사업의 선두주자는 백용성이었다. 그는 3·1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타 종교 신자들이 한글로 된 경전을 읽는 것을 보고 그렇지 못한 불교의 현실을 통탄했다. 그래서 출감 후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세워 조직적인 역경 사업을 전개했다. 한용운도 일찍이 “경전이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미신처럼 믿으니 종교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래서 1930년대 초 전주 안심사에서 한글 경판이 발견되었을 때 언어도(言語道)를 초월하는 쾌락과 환희를 느꼈다고 술회했다. 역경의 중요성은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단행본뿐만 아니라 여러 잡지에 연재 형식으로 게재되었다.
그러나 초기 잡지에 게재된 경전의 단순 번역은 요즘 잡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경전 번역서가 많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도 볼 수 있어서 이제는 쉽게 경전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단순 번역을 넘어 필자의 불교학 지식을 반영하여 경전에 대한 강의 형식으로 꾸려지기는 한다. 지식 열람의 창구가 제한적이었던 20세기 초반에는 비록 번역문만 게재하는 형식이었지만 불교 대중화를 위한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현대 잡지에서 불교 대중화를 위한 기획은 지식의 전달이나 종교성 추구보다는 현대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생활법문 코너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불교와 현대과학’ ‘불교와 21세기’ 등 새롭게 바뀌어가는 일상 속에서 불교적인 모습들을 발견하고 실천해 나가는 모습들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각 잡지가 내건 표어를 보더라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대중과 더불어 생활하는 월간지’(《불교세계》), ‘현실 속의 불교를 지향하는’(《불교와 문화》), ‘창조적인 생활인을 위한 교양지’(《불광》) 등 이제 불교잡지의 주된 관심은 현대인의 삶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선(禪)불교와 불교 명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템플스테이나 신행 수기 등을 다루는 코너가 늘어나고 있다.

《불광》의 발행자 고광덕은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법사(法師)와 같다”고 했다. 일반 서적이 1명의 법사라면, 불교잡지는 수십, 수백 명의 법사를 두고 불교 포교를 하는 셈이다. 그것도 불교 강좌를 비롯해 역사, 문화,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 걸친 지식과 정보를 갖춘 능력자를 말이다. 불교잡지는 단순히 불교인들만을 위한 잡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잡지가 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4. 나오며

지금까지 근현대 불교잡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일반 잡지와는 다른 불교잡지로서 가지는 종교적 특성에 대해서 앞에 서술한 내용을 정리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기로 한다.

근대 불교잡지는 전통과 근대의 교차점에 선 당대 불교 지식인들의 사회인식과 생각들을 보여준다. 주지하듯이, 종교 개념은 19세기 말에 수용되었다. 근대적·서구적·기독교적 개념인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불교는 전통에 속한다. 하지만 종교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통만을 고수할 수 없었다. 근대 종교로 옷을 새롭게 갈아입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같은 과감한 개혁론도 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물질만능주의의 신사조를 비판하며 전통을 강조하기도 했다. 불교잡지에는 전통 종교이자 근대 문명에 부합하는 종교로 불교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논설이 담겨 있다. 이러한 글들은 당시 불교인들의 공론을 형성하고 불교의 종교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발간되는 불교잡지는 단순히 불교 자체를 알리는 차원을 넘어 현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생활법문과 명상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 되고 있다. 또한 초창기에도 해당되지만, 불교문화에 대한 강조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것은 특히 2000년대 이후 문화 전통을 되살려 세계 속에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추세와 발맞추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오늘날 발간되는 불교잡지의 이러한 특성들도 결국은 불교의 종교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

그리고 불교잡지는 1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수많은 지식인을 배출한 재원이기도 하다. 초창기 잡지의 필자들은 상당수가 해외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대인식과 사상을 불교잡지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동시에 재가불자들의 불교운동과 동향을 살피는 데도 불교잡지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잡지의 눈높이는 독자들에게 맞춰져 있고, 독자들은 잡지를 통해 공통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 근대불교의 가장 큰 과제는 근대화와 대중화였다. 종교 경쟁 시대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근대화가 시급했고, 오랜 기간 산중불교에 머물러 왔기 때문에 불교 대중화를 위한 포교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교잡지는 가장 근대적인 방법으로 가장 효율적인 포교를 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불교잡지는 포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다. 세상에 빛을 본 잡지만 해도 아마 100종이 넘을 것이다. 하지만 잡지가 시작된 1910년대부터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지난한 역사였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상과 어수선했던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으로 모든 기간산업이 피폐해진 현실들은 제아무리 종교계라도 정상적인 출판 사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 이후로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잡지 수가 늘어났다. 안정적인 경영으로 1970년대에 창간되어 40년이 넘도록 간행되고 있는 《불교》와 《불광》과 같은 잡지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인터넷 잡지도 등장했다. 이로 인해 잡지의 역할이 웹상으로 이동한 면도 없지 않지만, 문서로서 잡지가 갖는 의미가 퇴색하지 않는 이상 불교잡지의 역사는 21세기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불교의 대중화는 잡지의 목표가 아니다. 이제는 그 이상을 바라보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불교의 문서 포교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과 금속활자본이 우리나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려대장경의 조판과 조선시대 간경도감의 불서 편찬은 단순한 불심에 의한 불사였다기보다는 우리나라 불교가 지닌 포교 역량의 발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근현대 불교잡지의 간행도 문서 포교 역사의 오랜 전통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김성연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주요논문으로 〈근대 불교의 종교 비교방법을 통한 정체성 인식〉 〈1930년대 한용운의 불교 개혁론과 민족의식 고취〉 등이 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BC) 사업단에서 재직하며 동국대 강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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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이 책은 불교계의 빈약한 역사의식 및 현실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된 것이다. 불교계의 발전을 질곡하고 있었던 여타의 문제(역사·현실 인식의 부재, 자료 수집의 어려움, 중요자료의 부재 등)를 해소하려는 민족사의 노력 중의 하나로 이미 출간된 근·현대불교사 관련 출판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20세기 불교 100년을 그리 완벽하게 담아냈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데, 이는 현재 불교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 또는 한계가 생각보다 심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민족사는 앞으로 이 분야자료를 보완·수집하여 보유판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점을 염두하고 이 책의 특징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20세기 불교사 100년을 요약하고 찾을 수 있는 자료(사진, 서문, 성명처, 잡지, 관련 출판물, 유품)를 현재의 시점에서 그리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총망라하고 있다.

둘째, 20세기 불교사를 10년 단위로 정리하면서도 각 10년 내에 발생했던 정치, 사회 문화상의 변화을 취합하여 불교계의 변화와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20세기 불교계의 고뇌, 좌절, 한계, 영욕, 갈등, 지향 등이 가감없이 정리하였다. 지면에 공개하기 꺼려지는 불교계의 문제점까지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넷째, 이 책자의 기획, 자료 수집, 연출, 서술 등의 일련의 작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불교사를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전문가에 의하여 진행되었기에 그 내용 뿐만 아니라 자료의 평가 및 형평성 문제에 있어서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섯째, 20세기 불교계가 참여한 최초의 역사적 화보집으로서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섯째, 여기에 수록된 사진 중에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희귀 사진 및 그간 신문잡지 등에 게재되었으나 일반인은 접하지 못하였던 사진 등을 포함하고 있어 구체적 이해와 불교 관련 자료수집에 용이하다.
목차
1. 1900년대 전후
2. 1910년대
3. 1920년대
4. 1930년대
5. 1940년-해방 이전
6. 해방 이후-1949년
7. 1950년대
8. 1960년대
9. 1970년대
10. 1980년대
11. 1990년대
12. 부록 1 : 조선사찰 31본산 사진첩

저자 및 역자소개
김광식 (엮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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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 부천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 현재 동국대학교 특임교수
● 만해학회 회장
● 대각사상연구원 연구부장

주요저서로 『한국근대불교사 연구』, 『한국현대불교사연구』,『한용운 연구』 등 근현대불교와 관련된 30여 권이 있고, 한국불교사와 관려된 논문 220여 편이 있다.
최근작 : <한국근대불교사연구>,<백용성 연구>,<동산사상의 재조명> … 총 4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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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선 박사 되다 | 윤창화 | 민족사 - 교보문고

왕초보 선 박사 되다 | 윤창화 | 민족사 - 교보문고

왕초보 선 박사 되다
윤창화 지음 | 민족사 | 2009년 07월 0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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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70094267(8970094261)
쪽수 424쪽
크기 135 * 195 mm 판형알림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종교 > 불교 > 불교선/깨달음

왕초보에서 선 박사로!
윤창화의 『왕초보, 선 박사 되다』. 선어를 모르면 선을 배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선승의 설법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선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저자가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현대불교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수정ㆍ보완하여 엮은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주로 쓰는 선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난해한 선어일수록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는 것이 특징이다.

선어를 공부 중인 사람들은 물론, 난해한 선어 때문에 선에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술했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선의 세계로 초대한다. 양장.

북소믈리에 한마디!
『왕초보, 선 박사 되다』는 선어란 즉흥적으로 내뱉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상적, 교학적인 바탕 위에 무집착, 일체유심조, 무분별 등의 일정한 기준을 갖고 설파됨을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선에 대한 우리의 오해도 풀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시리즈
왕초보 법화경 박사 되다
왕초보 선 박사 되다
왕초보 불교 교리 박사 되다
왕초보 천수경 박사 되다
왕초보 수행 박사 되다
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왕초보 경전 박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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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윤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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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
해인사 강원 13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졸업. 논문으로는 , , , 등이 있음. changhwa9@hanmail.net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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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 선어를 통해서 깨달음으로 들어간다

1장. 선의 기초적 이해
선의 관점 - 선과 인간의 실존
선과 학문 · 지식 · 경전
선의 의미
수행의 정의
깨달음
삼매
선문답과 법거량

2장. 화두의 의미와 참구 방법
화두와 공안 화두의 역할과 기능
화두는 누가 언제 만들었나? - 화두의 역사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
참선 수행의 세 가지 조건 활구와 사구
무기공 · 혼침 · 도거 · 산란 · 선병 성성과 적적
알음알이와 분별심 경계와 마
보림=보임

3장. 선의 사상적 뿌리
공 무아 연기법
중도 불이 열반
진여 법신 불성과 영혼
윤회와 해탈

4장. 선수행의 방법
좌선과 참선 좌선의 방법

5장. 선의 종류
여래선 조사선 간화선
묵조선 남종선과 북종선 오가칠종
염불선 대승선 소승선
외도선 범부선

6장. 선어와 선구 풀이
개구즉착 견성성불 기연
끽다거 날마다 좋은 날 냉난자지
다선일여 돈오와 점수 무심 · 무념 · 무사
무위진인 방 할
방하착 백천간두진일보
보고 듣고 아는 그놈은 누구인가 본래면목(=본지풍광)
본래무일물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사교입선 살불살조 수처작주 입처개진
심우도 심외무불 · 심외부법 · 심외무물
언어도단 오도송 · 선시 · 열반송
오매일여 위음(왕) 이전 은산철벽
이심전심 인가 일체유심조
입차문래 막존지해 정법안장 좌탈입망
주인공 즉심시불 지도무난
평상심시도

7장. 대표적인 화두
무 간시궐(마른 똥 막대기) 마삼근(삼 세 근)
동산수상행 일구흡진서강수 뜰앞의 잣나무
일면불 월면불 만법귀일 일귀하처 병정동자 래구화
판치생모 여사미거 마사도래 이?고
산은 산 물은 물

8장. 선을 이끌어 온 인물과 책
- 우둑한 선승들 -
보리달마 육조혜능 마조도일
백장회해 조주종심 임제의현
운문문언 원오극근 대혜종고
보조지눌 나옹혜근 서산휴정
경허성우

- 가렵 뽑은 선어록 -
육조단경 임제록 전등록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
대혜서장 선문염송 선가귀감

10장. 간단명료한 선어 단구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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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책은 우리나라 선불교에서 가장 많이 쓰는 선어(禪語)를 해설한 책이다. 선방과 선승, 그리고 선어록에 많이 나오는 선어(禪語), 선구(禪句), 대표적인 화두를 뽑아서 그 의미와 뜻을 해설한 책이다.
불교의 여러 용어 중에서도 선어처럼 그 개념을 포착하기 어려운 말도 드물다. 이 때문에 대부분 추상적이며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풀이에서 그치고 만다. 해설했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개념이 포착되지 않는다.
화두를 비롯한 선어·선구(禪句)에 대한 개념이 이와 같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것은 ‘선어는 해석하면 안 된다.’ 또는 ‘선의 세계는 언어나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다(不立文字).’라는 말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는 어떤 언어를 막론하고 서로의 생각, 의미, 뜻, 메시지 등을 소통시키는 공통적인 기호이다. 하나의 용어나 언어로 형성, 표현된 이상 -- 물론 선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말 속에는 의미하는 바가 있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 따라서 선어 역시 개념이 포착되지 않는다면 수행방법을 알 수도, 선을 이해할 수도 없고, 선을 공부할 수도 없다. 화두 역시 참구할 수가 없다. 개념이 포착되지 않는데 무엇을 어떻게 공부한다는 것인가?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선승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선의 진전한 향기(禪香)를 맡을 수도 없다. 선(禪)의 고향에 가 볼 수도 없다.
선어나 선구를 풀이할 때는 가능한 한 범위를 좁혀서 우리말로 알기 쉽게 풀이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해석은 지양하고 명확한 해석을 할려고 해야 한다. 구체적인 해석, 실제적 해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난해하다고 추상적으로 설명한다면 그는 아직 선을 모르는 사람이다. 난해한 언어 일수록 쉽게 풀이하는 것, 그것이 선어 풀이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선어를 그냥 즉흥적으로 또는 즉석에서 내뱉은 말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선승들이 읊은 선시나 선문답, 화두(話頭), 공안(公案), 법거량(法去量), 오도송(悟道頌) 등 선어나 선구(禪句)는 모두 일정한 기준을 갖고 있다. 즉 ‘공’ 중도, 불이, 무집착, 무분별, 일체유심조, 무심 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기준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것은 선어도 화두도 선시도 아니다. 사상적 교학적 바탕이 탄탄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선이 천 년 이상 전해 내려올 수 있겠는가?

이 책은 대중 독자를 위한 책이다. 그래서 가능한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고, 간결하고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쓰고자 했다. 물론 그 뜻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러나 때론 선을 전공하는 이들, 선방의 스님들에게도 상당한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선이 정말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 선어나 선구(禪句)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이들, 그리고 선어의 난해함 때문에 고생하는 대중 독자를 위한 책이다. 따라서 전문적인 용어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쉬운 우리말로 풀이,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우리말이 아닌 한문어로 풀이한다면 누가 알 것이며, 언어의 기호적 역할은 의미가 없어진다.

끝에는 <간단 명료한 선어 단구 풀이> 난을 두어 약 250개의 선어를 뽑아서 간단히 풀이했다.

선은 그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공부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확립하게 하는 공부이다. 희로애락, 탐진치, 비난과 칭찬 등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공부이다. 인생 일대에 한번 해 볼만한 공부이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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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dtn12 2020-09-07 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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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가 선을 알아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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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s65 2017-03-20 21:33:16
총 4 중4
중견 학자들이 슨 전문적인 선학 개론서 보다 나은것 같다. 왜냐하면 선에 대한 입문서 격으로 다룬 시중의 책들을 살펴보면 지나치게 언어로서 도무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글을 써내려 가는 학인들이 있는 이 책은 나름 선의 입문격이긴 하지만 선이란 무엇이고 선어들을 체험적으로 터득한 것을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공감이 갈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선의 특징이 불립문자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자에 집착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선을 수행할때 아에 모른 상태에서 실행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마치 길 찾기 네비게이션 처럼 처음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충실하게 따를수 있는 표준 안내도 같은 것이 필요한데 그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한다. 목적지에 가고자하는데 정작 목적지에 가려고 하는 방향은 어디이고 거리순은 어떻고 지름길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필요한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은 각각의 독자들의 몫이지만 말이다. 일단 천리 길도 한걸음 부터니까 천천히 선의 세계에 적어도 선이란 무엇이고 왜 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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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로그 리뷰 리워드 제공 2021. 4. 1 종료

굳이 분별심을 내자면 개에게도 불성은 있다. st**gaze59 | 2009-07-29 | 추천: 0 |

나더러 교과서 같다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때론 내가 외곬수라며 답답해한다. 근데 전자는 그닥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후자의 말은 귀에 내려앉자마자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지천명을 넘어서야 후자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지하철 타기이다. 4년을 한결같이 죽어라 타고 다녔던 코스인데 앉을 자리는 없을 때가 더 많고 퀴퀴한 사람냄새를 바싹 코앞에서 맡고 다니면서 ‘씻는 걸 게을리 하면 아니 되겠다.’는 교훈을 얻어 낸 그 코스보단 훨~ 헐렁헐렁 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독서를 할 수 있고 지는 해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코스를 근간에 발견하고, 지난 4년 모자란 나의 행동을 한편으론 힐책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읽고 있는 책은 비불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왕초보 禪 박사 되다.’이다. 불교 서적 쪽에서는 잘나가고 있다고 알고 있는 ‘민족사’라는 출판사의 대표이며 이 책의 저자이신 윤창화님으로부터 싸인까지 얹어서 가만히 앉아 택배까지 꽁짜로 받은 이 책은, 불교신문을 정기구독 하다 윤창화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고 멜을 보내다가 얻은 횡재라 우쭐거리면서 북로그 지인들에게 자랑 아닌 자랑을 길게도 늘어놓는다. 꽁짜 책을 읽으면 Review를 반드시 포털사이트 세 곳에 올려야 하는 그런 카페가 있는데 10%로는 그런 부담이 있는 듯도 하지만 法施(법시)를 받았으니 廻向(회향)하는 맘으로 증말 간만에 북글을 올려 본다.

오늘은 321쪽을 읽다가 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 바로 앞부분은 無字話頭(무자화두)로 유명한 조주(趙州, 778~897)선사의 狗子無佛性(구자무불성/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개에게는 업식성(業識性=중생심, 분별심)이 있기 때문이며 업식성은 업을 짓는 성품으로 차별의식과 분별의식을 가리키는데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등 흑백논리로 따지는 마음, a와 b로 이등분하여 차별하는 마음을 ’업식성‘ 또는 ’중생심‘이고 일체 중생은 모두 다 불성을 갖고 있는데 개(狗)가 미물이라고 하여 ’불성이 없을 것이다.‘ 또는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별심과 분별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결국 어리석은 중생심으로 깨달을 수 없으며 그러므로 ’있다, 없다‘라는 분별심을 갖지 말며 분별심은 ’망상‘이며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벽이라고 저자의 detail한 설명과 알고 있는 '개’에 대한 글이 있었다.

「필자의 시골 형님 댁에 13년 된 멍멍이가 한 마리 있습니다. 형님은 ‘진돗개’라고 하면서 제가 갈 때마다 목에 힘을 주시지만 거의 짝퉁이 확실합니다. 개도 10년이 되니 늙어서 그런지 다리도 절뚝거리고 수염도 하얗게 변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곧 이 사바세계를 해탈하게 될 것입니다. 그 녀석도 제가 가면 주인집 동생이라고 꼬리를 흔들면서 매우 반가워합니다. 멀리서 이름만 불러도 누군지 다 압니다. 그런데 다음날 서울로 돌아올 준비를 하면 시큰둥해합니다.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면 무척 쓸쓸해합니다. “진도, 잘 있어!”라고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물끄러미 먼 산을 쳐다보면 애써 태연한 척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개에게도 ‘고독’ ‘이별의 감정’같은 것이 전혀 없진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생각도 할까요? 그런 생각을 한다면 불성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12월이면 키운 지 10년이 돼가는 개가 두 마리 있는데 그 개 중에 한 마리가 ‘老病死’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7월 8일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개만 바라보면 막막하고 우울하다. 딸내미가 낳아 달라는 동생을 못 낳아 준 죄로 하도 소원하기에 우리 집 식구가 된 그 개는 며칠 키우다 보니 우리가 다 나가고 나면 외로울 까봐 한 마리를 더 들였는데, 먼저 들어 온 개가 새로 들어 온 개를 영~ 맘에 들지 않아 해서 둘 다 처녀 총각으로 늙어가고 있다. 그런 거 저런 거 보면 개도 생각이 있고 딸내미에게 지금까지 충성 충인 걸 보면 때론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더러 해 본다. 그 개는 조용한 걸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는 눈치다. 같은 종류의 개지만 한 마리는 번잡스럽고 먹는 거만 밝히고 그 개는 아무리 봐도 불성이 없는 것 같은데 지금 죽어가는 개는 우리 집 막내로 자신이 생각하는 걸로 봐서 굳이 분별심을 갖고 보자면 그 개는 불성이 있는 것 같다. 죽어가고 있는 그 개를 제대로 건사해 주지 못해서 업을 더 짓고 윤회가 존재한다면 내생엔 그 개가 나의 주인으로 태어나고 내가 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읽기를 다 마무리 하지 못한 채 넋두리 같은 review를 쓴다. 책읽기를 마치자마자 바로 review를 써야 하는데 차일피일 이런저런 핑계로 게으른 날들을 지내다 보면 감흥은 저만치 사라져 가 버리고 게다가 기억력도 가물가물해져서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올리던 북글 마저 몇 년째 올리지 못했다. 앞으론 방법을 바꾸어야겠다. 읽다가 중간에 review를 쓰기로... 오늘은 331쪽까지 읽다 부랴부랴 신답역에서 내렸다. 신답역은 내려서 계단을 몇 칸 올라오면 출구인데 그 앞엔 작은 공원이 있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 나무의자가 하나있는데 그 곳에 앉아 어제는 멍청히 하늘도 쳐다보는 여유를 가져보면서 ‘空 ’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허공도 다 담을 수 있는 것이 마음이라는데...-_-;

‘왕초보 禪 박사 되다’는 정말 왕초보용은 아닌 것 같다. 왕초보 일 때는 탐진치도 모르니까...^^; 제 1장 선의 이해, 제 2장 화두의 의미와 참구 방법, 제 3장 선의 사상적 뿌리, 제 4장 선수행의 방법, 제 5장 선의 종류, 제 6장 선어와 선구 풀이, 제 7장 대표적인 화두에서 ‘동산수상행’을 읽다 말았다. ‘일구흡진서강수’, ‘뜰 앞의 잣나무’, ‘일면불 월면불’, ‘만법귀일 일귀하처’, ‘병정동자래구화’, ‘판치생모’, ‘여사미거 마사도래’, ‘이뭣꼬’, ‘산은 산 물은 물’을 읽으면 화두 제목과 일면식을 하는 꼴이니 그런대로 어디 가서 귀동냥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開始悟入(개시오입)’과 ‘憂悲惱苦(우비뇌고)’라는 말이 생소해서 물어보았다 憎上慢(증상만)이 가득한 눈총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또한 불교가 쇄신해야 하는 점이 아닌가 싶다. 제 8장 선을 이끌어 온 인물과 책/우뚝 선 선승들 보리달마, 육조혜능, 마조도일, 백장회해, 조주종심, 임제의현, 운문문언, 원오극근, 대혜종고, 보조지눌, 나옹혜근, 서산휴정, 경허성우 선사 정도는 필히 숙지해 두어야 한다.^^ 가려 뽑은 선어록 육조 단경, 임제록, 전등록,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 대혜서장, 선문염송, 선가귀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글이 있고, 간단명료한 선어 단구 풀이가 있으며 마지막 장은 참고 문헌으로 갈무리가 되어 있는 이 책을 한 권 떼고 나면 ‘禪수행’으로 가는 문고리는 일단 잡은 게 되지 않나 나름대로 가늠해 본다._()_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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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dtn122020.09.07
선의 기초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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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dtn12 2020-09-07 20:13:02
선의 기초적 이해

임제(臨濟) 없는 임제선(1) - 금강신문

임제(臨濟) 없는 임제선(1) - 금강신문

임제(臨濟) 없는 임제선(1)

윤창화 민족사 대표
201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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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불교 법맥은 임제선
그럼에도 임제록 독서·강독하지 않아
고려말 이후 간행 안된 건 ‘유감’


우리나라 선종은 임제종, 임제선이다. 1990년대 중반 위빠사나가 들어오면서 ‘임제선 일색’의 분위기는 좀 탈색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선불교는 임제선 혹은 간화선이었다.

임제선의 한국 전승은 고려 말에 국사(國師) 태고 보우(1301-1381)가 받아왔지만, 임제선 일색으로 흐르게 한 이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선승인 서산대사 청허 휴정(1520~1604)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선가구감〉 말미에서 중국 5가7종을 평하면서 ‘별명 임제종지(別明臨濟宗旨)’ 장(章)을 두어, 임제선을 최고봉(最高峰)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또 서산의 법손 채영(采永, 조선 후기)은 승보(僧譜)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를 편찬(1764년, 영조 40)하면서, 임제선을 전수한 태고 보우를 우리나라 불교의 종조(宗祖)로 정하여 역사적 사실로 확정, 공표했다. 근현대의 대표적인 선승 퇴옹 성철(退翁性徹)선사도 한국불교를 임제선, 임제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선승들이 구사하는 선풍(禪風, 선사의 독특한 가르침이나 지도 방법 및 스타일) 역시 임제의현의 주특기인 ‘할(喝)’이다.

이와 같이 한국 선불교는 법맥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임제종, 임제선인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제선이 전해진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 518년 동안 그리고 근대 100여 년 동안 임제선사의 법어집인 〈임제록(臨濟錄)〉이 한 번도 간행된 사실이 없다. 어떤 책이 간행, 유포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그 책이 독서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한국서지연표〉(윤병태 저, 한국도서관협회, 1972)와 〈한국고인쇄기술사〉(김두종 저, 탐구당, 1974)에도 〈임제록〉 간행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 현존하는 고본 목록이나 자료에서도 임제록이 간행 및 유통된 적이 없다. 언필칭 임제선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임제의현의 참모습, 그가 기치로 내 세웠던 절대적인 자유인(自由人), 곧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진인(眞人)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임제록〉이 정보문헌학적으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출판, 간행된 것은 37년 전이다. 1974년으로서 당시 종정이었던 서옹선사(西翁禪師)가 연의(演義, 提唱)한 〈임제록〉(동서문화사, 1974.10.25)이 처음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나라 선원의 납자들은 말로만 듣던 임제록을 보게 되었다. 문자로나마 무위진인(無位眞人)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개 〈임제록〉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책을 읽은 사람은 한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무지(無知), 무식(無識)해야만 선승이라는 이미지는 또한 임제록에 대해서도 그대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다. 당시 서옹 스님은 〈임제록〉‘해제’에서 “그런데 조계종은 임제종 법맥을 이어오면서 (그의 법어집인) 임제록이 현존(現存)하지 못함은 유감천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개탄했고, 15여 년 전 민영규선생도 ‘몽산덕이와 고려불교’(김지견 화갑논총, 1996)에서 심도 있게 언급했다. 필자는 갈등선(葛藤禪)으로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중계할 뿐이다.

그런데 매우 궁금한 것은 너도나도 임제선을 자처하면서도 왜 〈임제록〉이 간행되지 않았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간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독서·강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약 600여년 동안 우리나라 선원에서는 임제록을 보지 않았고, 본 선승도 거의 없다.

하나 더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유명한 공안집인 원오극근(1063~1135)의 〈벽암록〉은 600여 년 동안 겨우 1회 개판·간행되었고, 무문혜개(1183~1260)의 〈무문관〉도 간행·강독된 사실이 없다. 중국 선승들에 관한 정보는 주로 〈전등록〉을 통하여 알게 되었던 것이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 ggbn@ggbn.co.kr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 [임제선사]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



임제선사' 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사할 [四喝, Sahal]

네 가지 할 (喝). 임제선사 (臨濟禪師)가 학인을 교화하기 위해 제시한 교설. 할 (...

The four types of Shout! or Katz!: In the Linji School, there are four differ...
임제록 [臨濟錄, Imjerok]

임제선사 (臨濟禪師)의 어록 (語錄). 당나라 삼성혜연 (三聖慧然) 저술

The Record of Linji (?-807) by Sansheng Huiran of Tang Dynasty.
임제진인 [臨濟眞人, Imje Jinin]

‘똥치는 마른 막대기.’ 임제선사 (臨濟禪師)가 학인 (學人)이 묻는 말에, ‘진인 (...

The sage of Linji: When his pupil asked the Master what is the true sage, 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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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  [四喝, Sahal]

네 가지 할 (喝). 임제선사 (臨濟禪師)가 학인을 교화하기 위해 제시한 교설. 
할 (喝)하는 것에도 때와 장소, 그리고 학인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방편이 있음을 보여준 것)

1) 금강왕 (金剛王) 보검의 할 (喝) 
(이것은 한 칼에 온갖 행각 (行脚)과 알음알이를 끊어버리는 것이며)

2) 땅에 버티고 앉아있는 사자의 할 (喝) 
(이것은 말을 하거나 입김만 불어도 모든 마구니의 머리가 터지는 것이며)

3) 탐지하는 낚시 대의 풀 묶음이란 
(상대방의 콧구멍이 있는 가 또는 없는 가를 탐지하는 것이며)

4) 또 한 가지 할 (喝)은 
(한 가지의 할 (喝)로만 쓰이지 않고, 삼현 (三玄)과 사빈주 (四賓主) 같은 것들이 다 갖추어 있다는 것이다)

The four types of Shout! or Katz!: In the Linji School, there are four different expedient types of Shout! or Katzs for teaching the students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s and their capability. Cf. (Hal!) Katz!
1) The shout of the King of Diamond means cessation of all kinds of thought and cleverness in the blow of a sword.
2) The shout of a lion lying on its belly means busting the heads of all devils at the moment when its mouth opens or even at the puff of its breath.
3) A batch of grass at the end of a fishing rod refers to trying to find out whether or not a man has a hole in his nose.
4) Another kind of shout is not simply a shout but all the methods combined in addition to the "three sublime teachings" and "the relationship of the teacher and stu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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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臨濟錄, Imjerok]

임제선사 (臨濟禪師)의 어록 (語錄). 당나라 삼성혜연 (三聖慧然) 저술

The Record of Linji (?-807) by Sansheng Huiran of Ta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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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진인
[臨濟眞人, Imje Jinin]

‘똥치는 마른 막대기.’ 임제선사 (臨濟禪師)가 학인 (學人)이 묻는 말에, ‘진인 (眞人)이란 곧 똥치는 마른 막대기’라고 한데서 나온 말

The sage of Linji: When his pupil asked the Master what is the true sage, his reply was "a dry shit st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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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선사가 황벽선사에게 불법의 적실하고 적실한 큰 뜻을 물으니

임제선사가 황벽선사에게 불법의 적실하고 적실한 큰 뜻을 물으니, 


임제선사가 황벽선사에게 불법의 적실하고 적실한 큰 뜻을 물으니, 황벽이 대답하지 아니하고 곧 일어나서 매 삼십봉을 때렸으니, 그 때리는 뜻이 어떠한 뜻인지 연구할 사 105
기자명 류성태 교무   입력 2012.04.27  호수 16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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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선사가 황벽선사를 찾아뵙고 큰절을 3배 올렸다. 황벽스님이 "무엇 때문에 날 찾아왔는가"라고 묻자 "부처님의 적법 대의가 도대체 뭡니까?" 임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벽선사는 몽둥이로 후려쳤다. 임제는 시원한 답변을 듣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물러났다.

시자 목주가 "다음에 오라"고 하여 임제는 다시 와서 황벽선사에게 질문했다. 이에 또 황벽은 또 몽둥이로 후려쳤다. 이러한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났다. 임제는 "저런 미친 스님을 모시고 있는 목주 당신도 문제요"하며 떠나려 하자, 시자 목주가 "그럼 이왕 떠나는 길에 저 앞산 너머에 대우라는 큰스님이 계신데 그 스님도 큰 도를 이룬 분이니 이 일을 한번 물어보고 이유나 알고 가시오"라고 했다.

임제는 매를 맞은 것이 억울하여 산 넘어 대우스님을 만났다. 대우스님은 말하길 "이 멍청한 놈아, 천하의 제일가는 황벽선사께서 너를 지극히 생각하여 그렇게 친절히 삼일 동안이나 일러 줬거늘 그 소식을 몰랐단 말이냐?"하는 말에 임제스님은 순간 박장대소하며 크게 도를 깨쳤다고 한다.

임제는 큰 깨달음을 얻은 후, 황벽스님에게 다시 찾아간다. "네가 왜 또 왔는가?" 하니 임제 곧장 황벽의 멱살을 잡고 "한마디로 도를 일러보시오"라고 다그쳤다. 황벽 스님이 "아, 이런 놈 봤나?"하니 임제는 황벽스님의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주먹으로 내리쳤다. 황벽스님이 "아이쿠" 소리치며 넘어진 후 일어나서 임제가 크게 깨달은 것을 알고 견성인가를 내리며 제자로 삼는 장면이다.

황벽스님이 임제에게 매질을 한 것은 도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였던 것이다. 임제는 그의 어록에서 "만약 어떤 장소에서든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곳은 모두 참된 곳이며, 어떤 경계에서도 잘못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돈오(頓悟)의 소식을 전하는 선사들의 선문답이다.

임제선사는 임제종의 선구로서 그의 어록인 〈임제록〉에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글을 남긴다. 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스스로 믿고 밖에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다른 것들에 사로잡혀 삿됨과 정당함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법어이다.

한국 불교는 임제종 계통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조계종은 임제종의 간화선이 그 공부방법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소태산대종사는 임제종의 간화선에 더하여 조동종의 묵조선을 아우르는 단전주 선법을 전하고 있다(〈정전〉, 좌선법). 

소태산대종사와 임제스님이 만났더라면 또 무슨 화두를 주고 받았을까? 또 정산종사는 평상심이 도(〈정산종사법어〉 권도편 45장)라고 한 법어를 생각나게 한다.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에 도가 있다고 할 것 같다.



2021/08/17

Daily Watchwords - Wikipedia

Daily Watchwords - Wikipedia

Daily Watch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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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ily Watchwords or Losungen is an annual, globally distributed publication of the Moravian Church.

Official stamp issued by German Federal Mail (Deutsche Post) in 1980 commemorating the 250th anniversary of the first Watchwords booklet.

It was started on 3 May 1728, and is now published in 50 languages, making it the oldest and most widely read daily devotional work in the world. The publication is traditionally in the form of a book or booklet, containing a selection of short bible verses, one for each day of a year.

Old Testament texts, the "Watchwords", are chosen by lot annually in Herrnhut from a collection of 1824 verses. New Testament texts, the "Doctrinal Texts", are then selected to comment on the Watchwords. Total annual circulation is over 1.5 million copies.

This is an ecumenical ministry of the worldwide Moravian Unity that transcends confessional, political and racial barriers of all kinds.

The Moravian Daily Texts service of the Moravian Church in North America makes available by email each day's Watchwords.

References[edit]

  • Renkewitz, Heintz, Alle Morgen Neu, Herrnhut, Bad Boll, 1972

알라딘: 2019 말씀, 그리고 하루

알라딘: 2019 말씀, 그리고 하루



2019 말씀, 그리고 하루 - 헤른후트 기도서 289판
헤른후트 형제단 (엮은이),홍주민,오호영 (옮긴이)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2018-10-01
원제 : Die Losungen der Herrnhuter Brudergemeine fur das Jahr 2017, 287. Ausgabe






책소개
이 기도서는 1731년에 처음으로 책으로 출간되어 한번도 중단되지 않고 2019년 현재 289년 동안 발행되어 왔으며, 현재 61리스도인들에게 말씀개 언어로 번역되어 헤른후트공동체에 속해있는 약 110만 명뿐만 아니라, 수백만의 그과 함께하는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목차


편집자 서문
옮긴이 후기
일러두기
성경약어표
헤른후트 성경묵상집의 구성
헤른후트공동체와 ‘로중’
2019 연중 말씀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저자 및 역자소개
헤른후트 형제단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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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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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학교,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 베르크 대학교에서 디아코니아학 디플롬과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사)한국디아코니아의 대표로 일하면서 디아 코니아대학과 난민 디아코니아 실천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디아코니아학 개론」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G. 베어의 「사랑 의 도전 : 요한 힌리히 비헤른과 내적선교」, 독일 개신교 연합 (EKD)의 디아코니아 백서인 「디아코니아 신학과 실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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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영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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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 대학교 외국어학당에서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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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헤른후트(Herrnhut), 우리말로 “주님 이 보호하시는 곳”이란 뜻이다. 헤른후트공동체운동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 년 전, 독일의 북동부에 위치한 한 자그마한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그라프 폰 친첸도르프 (1700.5.26-1760.5.9)에 의해 시작된 창조적 인 디아코니아 공동체운동이다. 신앙공 동체요, 생활공동체 그리고 경제공동체였던 원시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던 친첸도르프는, 대학을 졸업하고 드레스덴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그의 일생을 변화시킨 모라비아 교도들을 만난다. 이들은 체코에서 종교개혁운동을 하다가 1415년에 화형당한 얀 후스 의 후예들이었다. 친첸도르프는 이들에게 자신의 사유지에 정착하도록 하여 그곳을 “주님이 보호하시는 곳”이란 의미로 “헤른후트”라 칭하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
1727년 7월, 이 공동체에 ‘소모임’(Band) 이 처음 조직되는데, 대략 2~3명으로 구성되고 일주일에 1-2회 저녁 모임을 가졌다. 이는 모라비안 전통을 쇄신한 것으로 5년 후, 이 공동체가 500여 명으로 늘어날 무렵 전체 속회의 수는 80여 개에 이르렀다. 1728년 5월 3일, 헤른후트 공동체에서 친첸도르프는 찬양모임에 나온 형제들에게 처음으로 다음 날을 위한 간단한 말씀을 건네주었다. 이때부터 저녁마다 간단한 성경구절과 찬송이 소개되었고, 다음 날 아침에 공동체원들에 의해 집집마다 전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 날 개신교에서 가장 널리 확산된 헤른후트 매일묵상집인 『로중』(Die Losungen)이 탄생하게 되었다. 독일어로 로중(Losung)은 ‘암호’를 뜻하는데, “제비 뽑는다”는 의미의 동사 로젠(losen)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처음에 이 기도서의 구약성서 구절은 1,800개의 구절에서 매일 제비뽑기 식으로 헤른후트에서 선택되었다. 그 당시 제비뽑기에 의한 선택은 신비주의적 사고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다음에 신약성서의 말씀은 공동체원 들에 의해 구약성서의 말씀에 대응하는 말씀이 선택되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찬송과 기도문이 공동체의 응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헤른후트 공동체는 창조적 디아코니아를 지향하며 개인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차원에서의 디아코니아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그러한 실천의 도상에서 이 짧은 말씀과 기도문은 “병사들이 싸움터에 나가면서 지니고 가는 중요한 암호”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즉 하루의 삶에서 이 짧은 말씀은 하나의 강력한 영적 무기로서 커다란 힘을 지니게 되었다. 이 기도서는 1731년에 처음으로 책으로 출간되어 한번도 중단되지 않고 2019년 현재 289년 동안 발행되어 왔으며, 현재 61개 언어로 번역되어 헤른후트공동체에 속해있는 약 110만 명뿐만 아니라,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과 함께하는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서평

2019년 헤른후트 로중 번역을 마쳤다. 한국어로 열한 번째 로중번역이다. 번역자 이면서 이 로중에 큰 힘을 받았기에 어쩌면 내 자신의 영의 양식을 스스로 경작해온 것이라 생각도 든다. 보물을 발견한 이가 몰래 그 땅을 사서 기쁨을 감추지 못한 예수님의 비유, 하늘나라는 마치 그러한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역자인 내게 로중은 그러하다. 독일 체류 동안 로중에 의지해 살아온 경험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이다. 그간 번역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고 신체적 고통도 따랐다. 작은 책이지만 아주 세밀한 번역이 필요하기에 고어체 독일어를 번역하면서 고충도 많았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 때문에 고심도 했고 기도문이기에 따르는 번역의 난해함도 있었다. 번역과정에 눈가의 실핏줄이 터져 붉은 눈으로 얼마간 지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난관에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번역과정에서 “말씀하시는 말씀” 덕택이었다.
289년 전 친첸도르프가 이 로중운동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600년 전 얀 후쓰의 후예인 신앙난민 보헤미아형제단과의 조우와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주한 이주민 공동체 안에서 하나의 영적인 슬로건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제비를 뽑는 것은 신비주의적인 요소도 있지만, 당시엔 이러한 전통이 보편적이었다. 특히 깊은 기도 후에 선택된 말씀은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친첸도르프는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확신 아래 로중운동을 전개했다. 구약성서의 구절은 그런 과정을 거쳐 선택 되어진 것, ‘로중’이다. 이러한 로중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신약성서 구절인 데, 이는 공동체원들이 오랜 시간동안 기도를 통해 채택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구약성서 한 절의 로중을 해석하면서 여러 주석서나 해석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약성서 한 구절을 통해 묵상하면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가슴에 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성경묵상시간은 조용히, 하지만 아주 강력한 영성의 불길로 이끈다. 매일 로중을 묵상하며 말씀 나누기를 하고 기도문으로 기도시간을 갖고 찬송을 부르면 더 좋다. 친첸도르프에 의하면,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응답이다.

다른 하나의 중요한 로중의 활용은 기도문 아래에 있는 두 개의 성서본문이다. 로중은 그 자체를 통해 성서의 깊은 강으로 이어지게 하는 관문이다. 기도문 아래 본문을 계속 읽어나간다면 구약성서는 4년에 한번, 신약성서는 8년에 한번 통독을 하게 된다. 로중으로 마음을 열고 기도문 아래에 제시된 성서본문을 통해 말씀의 깊은 강으로 들어가는 것도 귀중한 경험이 되리라.
마지막으로 주일날 설교 본문은 독일교회의 설교단에서 동시에 선택되는 말씀이 다. 주일에 주어지는 세 개의 본문말씀은 깊은 석의과정을 통해 선택되어진 것이다. 강단의 말씀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주일 설교본문도 로중처럼 한 주간에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세 말씀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말씀 자체가 주는 본래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설교는 “화해의 디아코니아”를 선포하는 “말씀하는 행동”이다.
한국어 로중을 열한 번째 출간하면서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처음에 로중을 한국어로 번역소개하면서 역자에게 바람 하나가 있었다. 이 로중을 통해 “행동하는 말씀”인 ‘디아코니아’가 전해지는 것이었다. 처음의 교회로 돌아가고 성서로 돌아가고자 한 헤른후트 형제단운동은 개신교 최고의 창조적 디아코니아 공동체의 산실이다. 말씀에 깊이 들어가 우리를 움직이시는 디아코노스 주님을 따라가자. 사랑의 행함은 신앙에 의해 자신을 유보하지 않고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말씀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땅에 디아코니아가 조용히, 사랑하면서, 섬기면서 퍼져나 가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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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종교학자 길희성이 꼽은 영적휴머니스트는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최고 종교학자 길희성이 꼽은 영적휴머니스트는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최고 종교학자 길희성이 꼽은 영적휴머니스트는

등록 :2021-08-10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심도학사의 서재에서 만난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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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모든 가르침의 근원이다. 또한 종교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살육하고, 전쟁을 일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사회와 남북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갈등과 적개심을 가장 부추기는 것도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운 이들이다. 따라서 종교는 가장 고귀한 인간을 지향하지만, 평균적인 인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중세적 억압을 넘어 인류 진보가 얻어낸 ‘휴머니즘’과 이상적 종교성인 ‘영성’이 만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길희성(78) 서강대 명예교수가 <영적 휴머니즘>(아카넷 펴냄)이란 책에서 제시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길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신학으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를 거쳐 학술원 회원이기도 한 그는 2011년부터 강화도 고려산 자락에 ‘심도학사―공부와 명상의 집’을 지어 영성적 고전공부를 이끌어왔다. 지난 6일 심도학사에서 만난 길 교수는 평생을 씨름해온 종교적 여정을 마치고 정자에 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무려 900여쪽의 이 책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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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교수는 크리스천이다. 외조부를 비롯해 집안에 목사와 장로들이 많다. 한완상 교수 등과 힘을 모아 새길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보조지눌의 선사상을 연구해 불교를 가르쳤고, <보살예수>나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같은 다원주의적 저작과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라는 책을 썼다. 부드러운 성품과 달리 독선적인 기독교에 대해서는 예언자처럼 매섭게 비판해와 보수개신교계에선 그를 반기독교인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가 종교적인 책을 ‘최후의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기독교와 종교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해오다 왜 말년에 ‘영적 휴머니즘’을 들고 나왔나?

“목욕물이 더럽다고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릴 수는 없다.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종교는 외피고 본질은 영적 휴머니즘이다. 이제 종교적 인간보다는 영적 인간을 말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전지구적인 문명 위기의 탈출구는 무종교도 아니고 세속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영적 휴머니즘에 있다는 것이 종교를 두고 평생을 씨름해온 내가 도착한 정착역이다.”

―‘영적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모두 하느님의 고귀한 자녀라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에 근거한 휴머니즘이다. 이런 영적 인간관은 불교, 힌두교, 그리스도교, 유교 등 세계 모든 주요 종교 전통의 공통적인 핵심이다.”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심도학사에서 만난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조현 기자



―‘세속적 휴머니즘’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는 이유는?

“중세적 신본주의를 깨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쳐 자유와 인권을 중시한 게 ‘세속적 휴머니즘’이다. 그러나 예수를 근대적 의미의 휴머니스트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세속적 휴머니즘이 지향하는 자유가 절대적 가치가 될 수는 없다. 맹목적인 자유를 위한 자유가 되는 순간 에리히 프롬의 예견대로 독재나 전체주의로 도피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된다.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힘차게 외치고 출발한 프랑스 혁명 뒤에 공포정치가 도래한 것을 보라. 도덕과 공정한 정의, 영성을 상실한 근현대 서구문명의 한계를 세속적 휴머니즘이 보여주고 있다.”

―‘세속적 휴머니즘’에서 ‘영적 휴머니즘’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는?

“전통사회의 부조리한 사회제도와 관습에서 수많은 사람을 해방시켜준 계몽주의 이전이나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질서를 유지하던 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 휴머니즘의 토대가 되는 이성과 상식에 반해선 안 된다. 하나의 종교 전통에 고착되거나 매달리지 않고, 배타적이지 않고 포용적이며, 자연계를 감싸면서도 초월하는 따뜻한 인간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개신교 신앙인으로서, 철학자로서 가장 큰 고뇌는 무엇이었나?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주의적인 신앙과 정통 교리가 인간의 상식과 지성에 반하는 면이 너무 많고 크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지성에 부담을 주거나 상식에 폭력을 가하지 않고, 종교가 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면 안 되나’ 하는 의문이 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철학자든 신학자든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내가 아는 서구 사상사를 장식한 위대한 사상가 치고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영적 휴머니즘’이 그 고뇌에 대한 답인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신앙을 유치하게 만드는, 신과 인간을 유사하게 생각하는 신인동형적 사고, 그리고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근본주의다. 많은 신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묻지마 신앙’에 빠지거나, 아예 종교에 담을 쌓고 세속적 삶에 자신을 맡긴다. 이 불행한 양극단의 선택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심도학사에서 심도학사 학장인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가 거닐고 있다. 조현 기자


―고뇌는 젊은 날 교회에서 시작됐나?

“그렇다. 영락교회 신자로서 한경직 목사의 설교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러나 전혀 감동이 없었다. 
  • 한국 개신교 주류를 복음주의라고 하는데, 
  • 말로는 죄인 죄인 하지만, 실제로는 죄의식이라는 게 없다. 
  • 차라리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면 낫겠는데 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 승리주의에 젖어 타종교를 무시하고, 
  • 미국을 할아버지쯤으로 여겨 역사의식이라는 게 없다. 
  • 기본적 이성과 상식을 무시해 세속적 휴머니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신학적 상식조차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상징이고 ‘아날로지’(유비)다. 그게 신학의 가장 기본이다. ‘저 친구는 곰이다’는 말은 ‘인간이 아니고 진짜 곰’이라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데 문자주의, 근본주의에 빠진 한국 개신교 목사와 신자들은 ‘진짜 곰’이라고 한다. 성서에 그렇게 쓰여있다는 것이다.”

―이성 없는 신앙은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교회와 신학계는 이성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만, 이성 없는 신앙은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욕망과 생각을 하느님의 뜻으로 둔갑시키기가 너무 쉽다. 중세를 대표하는 토머스 아퀴나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이어 신앙과 이성을 종합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철학적 이성보다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기술혁명시대다. 또 고대 그리스 철학보다 더 서양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을 매료시키는 불교나 노장사상 등이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상대성을 초월하지 못하는 다원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토머스 아퀴나스의 사상적 한계도 분명하다.”

―대표적인 영적 휴머니스트로 
  1. 예수와 
  2. 중국 선불교의 임제 선사
  3. 독일 수도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4.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제시한 이유는?

  1. “예수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곧 인간에 대한 사랑임을 보여준 참된 인간이었다. 
  2. 에크하르트는 내가 아는 한,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에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와 우리 인간들 사이에 조금의 차이도 없다는 것을 대담하게 가르친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3. 임제는 불교 냄새도 풍기지 않고, 어떤 특정한 이념과 관념조차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없이 당당하게 사는 벌거벗은 참사람이었다. 
  4. 최시형은 경천, 경인에서 나아가 경물까지 가르쳤다. 슈바이처보다 훨씬 먼저 인간중심주의까지 넘어선 것이다. 
길을 잃은 문명의 앞길을 비춰주는 이들이 바로 이런 영적 선각자들이다.”

2021/08/15

"관악교회" | 대담 이만열 교수/장로의 삶,신앙,학문 V-제15회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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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장로/교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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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itani 1992.Self-Giving Love From an Address on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Ishitami1992.pdf

Self-Giving Love
From an Address on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Susumu Ishitani
 

 
I feel it necessary for me to start this talk by asking for forgiveness to us Japanese for what Japan and Japanese people have done or are doing wrongly or inhumanely to anyone among you. I do this act of my asking for forgiveness because it is essential to cultivate the field of mutual communication and understanding before any sharing process begins. . 
As human beings, we are confronted on this small planet by new and interwoven threats. While a few of the Earth's citizens enjoy unprecedented affluence and power, millions languish in crushing poverty, hunger, and oppression. Violence can be seen almost universally, if we pay attention to it: extrajudicial killings and genocide, torture, violation of fundamental human rights in open and hidden conflicts and wars. Rapid degradation of the environment is undermining the process of life, even exterminating many species of animals and plants.
What are we going to do in these circumstances? It must be right to say that consistency between faith and action is one of the most characteristic features of Quaker faith. When George Fox, in his youth, sought for a genuine way to find God, he looked in vain for such witnesses among the Christians he visited, and he realized that he had to live it by himself, rather than expecting it from others.
The hindrance of faith in action is fear. How are we able to overcome fears? In the history of Friends, there were many courageous ones who dared to go to jail. We are often impressed by the courageous acts of early Quakers like Fox and James Nayler, who spoke truth even • when they were surrounded by people who would persecute them severely.
Victor Frankel, the German psychotherapist who survived the horrifying experiences of Auschwitz during the Nazi time, pointed out the freedom for us to choose with determination this or that, as something that nothing and no one can take away from us human beings, even in any existential, extreme condition. He said something like this: For us, rich possibility is open to form our life to be meaningful, even at the very end of our life.
If we seek meaning for our life, our life always has meaning, under any circumstance. By finding the meaning, we are able to view things differently than before. Not that we expect something from our life, but the expectation comes out of our life, addressed to us, to draw something from us. This question addressed to us may be interpreted as the question from our Creator. For us, the crucial incidents—matters of life and death, unbearable pains and sorrows—are important for what they mean in the program of God, rather than in the unhappiness and failure they hold for us.
I would like to introduce one of the good examples of nonviolence, or the power of self-giving love. During . . . World War Il in the Japanese military concentration camp near the Kwai River in Thailand, after the hard work of the day, a shovel was missing and one of the Japanese soldiers in charge was in a rage, saying, "If anyone who hid the shovel does not come out to confess, I will shoot all you prisoners here." The atmosphere was such that this outrageous soldier would do what he said he would do. At the instant he almost started to shoot, one of the prisoners of war came out from the lineup and said quietly, "I did hide it." The Japanese soldier, in rage, gave him severe,' cruel violence, and the prisoner stood in silence without •any resistance—and finally, he was hit with the gun-stock and died. After a while, when they searched again at the entrance of the camp, they found the missing shovel. When this news spread in the camp, even the Japanese soldiers were shocked at the voluntary sacrifice the dead man had taken. The hatred the survivors felt toward the Japanese soldiers was overwhelmed by feelings of admiration of the sacrificial act of their comrade. This is an extreme example of nonviolent living and dying. But we need to be prepared ourselves for this kind of commitment. We really need God's help and guidance to be prepared for such an incident.
We look back at George Fox and other early Quakers who had similar experiences by living hard lives, yet with joy. We all know well that we are weak, but our encouragement is that when we are weak, the weakness we have can be the point of opportunity for God to reveal God's strength in us and through us. We can be a precious tool or a vessel for God to use.
So we are able to face our fears to overcome with faith in God and because of God's love and blessing. We need to channel out the power of the blessing we have received or will receive from God.
 It is never easy to overcome fear. Many people say only saints such as Gandhi or Martin Luther King, Jr. can do nonviolence . . not ordinary people like themselves. Here we can ask questions. Were Gandhi and King so special? Did they act nonvio-
lently without fears? Not at all! They were just like us, full of fears when they had not trained themselves or before they became able to trust God, depending with their destinies on God.
Avoiding [violence], we come to realize that there is so much room for nonviolence, time to try or experiment to find its possibilities. People are apt to think if we stick to nonviolence we limit ourselves and get confined and lose room to choose for survival. But this is wrong.
Quite recently, I encountered an incident at home in Japan. At midnight we had telephone calls to threaten us from a rightist. I don't know if there is a big organization behind the person calling or not. Since I am involved in peace activities I get such threatening calls from ultranationalists from time to time. I heard our national anthem and Japanese militaristic music on the line, and a man said, "I will kill you. Get out of Japan. Do you think you are qualified to be a Japanese even when you behave as you do?" He did not speak much but cut the line. The recent calls were rather often and bothered us by interrupting our sleep . We discussed among our family what we should do with the calls. This was a very precious opportunity for my children to have peace education at home. I consulted with the telephone company, but I could not get a solid solution. As our family discussed how to cope with the calls, it took us a considerably long time before I proposed, "Why not say to the man on the phone, in a low, calm voice, 'Do you believe in life after
My intention was, first, to remind our caller that we believe in eternal life after death, and therefore, threatening words he said such as "I will kill you" do not really threaten us into silence; and second, to remind the man calling us at midnight to think of what he was doing and of his own life and life after death. If he is a typical Japanese, he must have seen pictures of paradise and hell somewhere, at home or in the temples of Buddhism. He must know how we are warned to be good and live right, because of the final judgment none of us can evade after we die. This man was apt to speak nasty things to my wife and daughter on the line. He must have been prejudiced against females—a typical nationalist. I prepared a sheet of paper right near the phone at home on which I had written down what I should say as soon as I received the unwelcome call. My daughter suggested that I should start with "life after death" instead of "Do you believe?" because the man might cut off  immediately as I appeared on the line. His intention [was] only to disturb our sleep and not to talk with us.
So we decided to say, "Life after death, do you believe it?" calmly, in a low voice. We waited for his call not by sitting up, but in sleep. At 4 a.m. the next morning the phone rang. I jumped out of bed to take up the call and said what I had planned to say. The line was cut off almost before I finished the first sentence. But amazing! After that he stopped calling me in the dark hour when we were asleep. It has worked very well so far.
Nonviolence does not work if it is a shaky commitment. It must be well-focused. It requires at times self-sacrifice, but it is done lovingly and voluntarily. We are born to be loved by parents or someone who takes care of us in the place of parents. All creatures are born to be loved in the same way. Birds and animals are. All parts of creation are created to show love before they become aware of it. We are given life in this way to be able to love our babies even at the sacrifice of ourselves, their parents. We have an inborn potential to love positively and willingly. I was struck on reading in the Bible when I was in college that God loved me before I knew him. I was also struck to find out how much love parents have given to each of us at the sacrifice of themselves. We have potential to expand this capacity for loving to other people and other parts of creation.
I have witnessed and experienced nonviolent actions carried on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in many parts of the world. We have been doing a small action of nonviolence in the Yokosuka JapanU.S. Navy Yard to blockade the U.S. war vesSels coming into the crowded water areas of "Ibkyo Bay without announcing whether they bring the nuclear warheads or not. In Atsugi Air Base, we organized a wedding of an interriational couple, a Japanese woman and a North American man—both of them nonviolent activists—at the park next to the gate of the air base. The couple went over the fence to be captured by military police in order to show their con• cerns about life and the right relationship Japan and the U.S. should have to create peace in the world. Every spring in Japan we carry out a tax resistance campaign against military expenditures. We apply nonviolence in such positive ways as to create good human relations with the people who are not on our side—like tax officers and those who come to pay their taxes.
I have visited and taken part in nonviolent actions in many places outside of Japan: Washington, D.C. at the time of the Viet• nam war in the 1960s; Greenham Common in England; Faslane Peace Camp in Scotland in 1982-83; Mutlangen U.S. Air Base, with 15 French people—including two Quaker women—near Stuttgart, Germany, in 1986.
It is important that each of us as Quakers become aware of one's potential, given by God, to work for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Each one has individuality and has one's own way to serve for God's purposes. We need to grow and become a George Fox, a Gandhi, a Martin Luther King, Jr., or a Stephen who died before Paul's repentance, each in our own given ways.
Jesus showed God's love on the cross, asking God for God's for• giveness to those who thrust him with spears, to those who rebuked him and spit on him. This sacrificial love is the real power to make people renew their lives to live in love. When Jesus says, "Follow me, carrying your own cross," he is assuring happiness, joy, blessing and comfort for those who carry the cross and follow him—trusting him along the way. . 
We need to speak "yes" or "no" clearly to the world and act accordingly with sacrificial love. We live at a critical time of human existence. May we grow in faith and in action to witness to the love of God on this planet.
God comes to enter even the house of our death to guide us out of the place and into his arms. We are now in the age of choice in which we need to decide what values we seek to- attain in our life. Do we value power and money more than the spirit of love and fall into feelings of superiority over others? Or do we cherish cooperative joy to enjoy love, sharing life together? How much convenience do we seek with high technological development of electronics and computers? Where do we need to stop? We have to decide to live with will and discernment in faith.
 
Susumu Ishitani grew up in a Japanese Christian family, and was a child in Nagasaki when the atomic bomb was dropped there on August 9, 1945. He is a longtime member of Japan Yearly Meeting of Friends, and is deeply involved in Japan's Fellowship of Reconciliation.
Susumu has been at the forefront of the movement to refuse payment of that percentage of the Japanese income tax used for defense and military funding. With his family, he has acted on the concern they share about the historic legacy of Japan in Korea. He teaches ethics and English at Hosei University. His interest in the English language was fostered in part by his acquaintance with U.S. soldiers invited to his home during the Occupation of Japan after World War 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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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mphlet is composed of excerpts from an address titled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given by Susumu Ishitani at the Netherlands gathering of the Fifth World Conference of Friends in June 199*.
The text of this and other addresses, along with reactions of Friends to the experience of the World Conference, can be found in the report Faith in Action: Encounters with Friends, available from the FWCC, Section of the Americas office for $20 postpaid.
Copyright 1992 Friends World Committee for Consultation
Reprinted 1992
THE WIDER QUAKER FELLOWSHIP a program of the
Friends World Committee for Consultation,
Section of the Americas
1506 Race Street
Philadelphia, PA 19102 U.S.A.
3000M 1-92on recycled 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