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9

동성애에 대한 옹호론 / 곽분이(한성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nam's meditation


동성애에 대한 옹호론 / 곽분이(한성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 동 성 애


남전우 2010. 10. 18. 21:16

http://blog.daum.net/chrisnam1950/57

* 이 글은 진보적인 입장에 서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성서해석을 하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도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옮겨왔습니다. 다만 제가 성서해석에 있어서 상황화와 계시의 진보성에 대한 것을 다른 글에서 설명했는데...바로 아래와 같은 성서해석이 그런 면을 무시하고 구약성서의 현재적 계시성을 부정하는 해석을 하고 있음을 지적해 둡니다.
소돔에 대한 해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23:17-18, 레18:22, 롬1:15의 이러한 해석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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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입장

곽분이(한성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1. 시작하면서


서구사회는 동성애(Homosexuality)라고 부르는 것을 용인하고 받아주는 사회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라파에서는 동성애운동이 적극적이고, 긍정적 측면으로 표면화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회는 동성애적인 사고의 대중적인 표현을 ‘나쁜’, ‘죄가 있는’ 혹은 ‘개인적인’것으로 통념화한다. 따라서 오늘날 동성애자들의 정치는 이러한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드러난다. 요즈음 잡지나 영화 그리고 소설과 같은 대중문화 속에서 이와 같은 도전들이 반영되는데 이것이 동성애자들의 정치적인 발언일 때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의 목표는 그들에 대한 지지뿐만 아니라 대중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고, 성적인 억압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것이다.

서구사회의 성혁명은 대체적으로 20세기 전반기에 발생했다. 그것의 특징은 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 의학의 발전, 여성의 해방, 종교적, 사회적 이완에 따른 성적 태도와 행위의 급변에서 찾을 수 있다.(1) 성혁명의 바람이 우리 사회에서도 불기 시작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조류로 이변해가는 상황에서 특히 동성애를 논한다는 것은 금지된 영역으로 피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다만 공개적으로 정치, 사회, 종교, 집단화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 동성애 그룹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며 이미 동성애에 관한 담론이 나오고 있다.

이제 교회는 최근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던 인권문제, 민주화, 통일, 환경문제와 더불어 더욱더 심각해질 성폭행, 성희롱, 여성성직자 임명, 낙태 그리고 특히 동성애 해방같은 문제들에다 서구 쪽같이 인간의 성성(Sexuality)의 문화적-종교적 견해에 도전하는 문제들을 다루어야 할 때가 임박했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와 기독교 신학은 이제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해석이 요청된다고 필자는 느끼고 있다. 동성애는 단순히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된 것으로 성서가 우리를 그렇게 가르쳐 왔다. 따라서 더 이상 동성애는 개인적인 도덕의 문제로 취급할 수 없다고 믿는다. 오히려 그것은 공공연한 공동의 대책정책으로 그들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 사회에서 교회에서 그들을 억압하거나 소외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간의 성성(Sexuality)을 논의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실재적 정의를 명심하여 혼란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Sex)이란 용어는 보통 영어에서 생식 행위를 일컫는데 사용된다. 성성(Sexuality)이라는 말은 남성과 여성으로 우리를 규정하는 행위 전반을 일컬어 사용되어진다.(2) 연합 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가 인간의 성성에 관하여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성성(Sexuality)이란 각 개인의 개성이 지니는 중심적 차원이기도 하지만 그 개성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자기 이해와 세상과의 관계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다.”(3) 오늘날 성차별주의는 선입관을 가지고 여성을 대하는데, 쾌락이나 번식을 위한 남성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이용되는 생식적 성행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성차별주의는 이성애주의로 이끌려지는데 이것은 동성간의 사랑을 선호하는 자들을 열등하거나 인간의 존엄성이 결여된 자로 보는 사고 방식이다.(4)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동성애자들의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고 그들의 주장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운동이 70년대에 비해 상당히 진행되었고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동성애에 대한 법정 개정의 측면과 더불어 그만큼 동성애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문화적 측면에서 신학적 성찰이 요구되며 따라서 교회는 동성간의 사랑이 인간 사랑의 정당한 사랑의 형태가 되는 가능성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발제문을 통해서 동성애에 대한 성서적 입장을 재조명함으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사고의 전환을 가져 보려는 것이다. 성서는 도대체 동성애와 성에 대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교회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2. 성서와 동성애


동성애를 언급한 성서를 골라 해석할 때 우리는 몇 가지 해석상의 원칙을 마음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로 우리는 해석상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직접 참여하시고 온전한 인간해방을 위해 오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은 성서가 쓰여졌을 때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로 재조명 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기독교인들의 경험과 사고와 그 문화와의 관계를 인식하면서 성서 연구에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성서해석은 인간의 문제점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진리를 향해 완전한 개방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1) 구약의 입장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신구약에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 죄가 바로 동성애라고 이해하고 있다(창세기 18:16∼19:38). 소돔의 이야기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내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동성애의 개념이 가장 희박한 성서 구절이 바로 이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두천사가 두도시(소돔과 고모라)에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두도시를 멸망시키시기로 결정한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더 이상 어떤 류의 죄/죄들이라는 언급이 없다.

소돔에 있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롯(Lot)에게 소리치기를 “오늘밤 너희 집에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리고 나오너라.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겠다.”(창 19:5). 그러나 롯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딸을 주겠다는 대답을 한다. 여기서 우리나라 번역으로는 ‘상관 좀 해야겠다’ 또 ‘알아보겠다’라고 되어 있으나 ‘안다(Know)’라는 말은 이 히브리 성서(구약)에서는 수없이 썼다. 히브리어 ‘Yada’라는 말은 “to know” ‘안다’라는 의미다. 성의 관계를 직접 하는 것으로는 ‘Yada’라는 말을 7번을 썼다(에덴동산과 같은 곳에서). 7번을 썼을 때도 출산의 목적으로 했을 때였다.(5) 그 도시 사람들은 낯선 외지 사람으로부터 어떤 불미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들을 내놓으라고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롯이 자기의 딸을 주겠다고 한 것으로 보면 그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Hetero-sexuality) 혹은 양성애(Bisexuality)자들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틀림없이 남성 동성애(Ga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본문을 가지고 굳이 성적인 죄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동성애의 행위가 아닌 오히려 양성애/이성애 경험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의 여러 곳에서 ‘죄’를 언급할 때 소돔/고모라를 들어 말한다. 그러나 이곳들의 멸망의 죄가 ‘동성애’라는 언급은 없다.(6) 대부분의 성서 본문은 죄라는 것은 외지 사람들에게 불친절한 것, 인색하고 욕심이 많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것, 우상을 섬기는 것 등등을 가리켰다.

다음과 같은 성서 본문 속에는 단순히 “소돔의 죄”라는 언급을 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신명기 29:22∼29, 에스겔 16:44∼50, 마태복음 10:14∼15, 베드로전서 2:6∼8, 유다서 1:7 등등이다. 만일 동성애가 소돔의 죄였다면 그 본문에 언급을 했을텐데 전혀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소돔과 고모라에서와 같은 “무법한 행실, 비도덕한 행위”, “음란에 빠져”라는 표현을 썼다. 그것이 동성애인지 이성애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오히려 롯의 태도로는 이성애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서는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동성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동성애를 논하는데 더 이상 참고가 될 수 없다.

신명기 23:17∼18은 “이스라엘의 딸은 창녀가 될 수 없다. 또 이스라엘의 아들은 남창이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이성애의 성관계를 언급한 것이지 동성애의 행위가 합법적인지 아닌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구약성서에서 특히 동성애를 확실히 정죄한 본문이 레위기 18:22(원칙을 말함)에서 볼 수 있다. “너는(남자)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 또 레위기 20:13에는 형벌에 대한 언급이다. 즉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으로 반듯이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죄값으로 죽을 것이다.” 레위기에서 표현한 “망측한 짓”, “혐오스러운 짓”이라고 언급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히브리 민족의 문화적 배경에서 설명되어져야 한다.

레위기에서 정죄한 이유를 뒷받침 해주는 성서본문은 창세기 38:1∼11을 보면 알 수 있다. 창세기 38:1∼11에 나타난 오난(Onan)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고대 이스라엘 문화권에서 정죄하는 이유의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주는데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7) 이 본문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은 “정액을 땅에 쏟아 버렸다”는 것이다. 형이 죽은 후에 오난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해서 동침할 때마다 임신하지 못하도록 정액을 땅에 쏟아 버렸다는 것을 창세기 저자는 대단히 심각하게 해석하고 기록하면서 악한 일로 여기고 주께서 노하셔서 오난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8)

여기에서 우리는 세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히브리 사람들의 성의 관계는 인간을 출산/생산하는 목적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작은 집단의 족장들이 외부의 도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한 다수의 인간 출생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잉인구로 고민하는 우리들의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다. 출산에 대한 규범은 재검토되어야 할 우리들의 과제다.

둘째, 성서 전체를 통해서 생물학적인 무식에서 오는 잘못된 해석이다. 남성의 정액은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명을 낳게 하는 것으로만 믿고, 또 여성은 애를 갖는 공간으로만 즉, 씨받이로만 취급했다. 그러므로 비생산적인 정액의 흐름은 인간생명의 파괴나 살인과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성수음(Masturbation)과 남성 동성애의 행위는 생명을 죽이는 낙태와 살인으로 인정했다.(9)

셋째, “남성이 여자와 교합하듯 남성과 교합하면”(레위기 18:22) 그것은 특히 남성의 인격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위태롭게 생각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남성들까지 타락시키는 것으로 인정했다.(10) 그러므로 남성의 수음이나 남성의 동성애는 유대 기독교 전통에서 여성의 동성애보다 훨씬 비판적이었다. 유대문화의 남성 우월주의인 가부장제는 계명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만 남성의 동성애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여성의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성차별은 고대 유대문화 속에 남성우월주의로 고정화되어 왔음을 엿볼 수 있다.


2) 신약에서 바울의 태도


신약성서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예수 자신이 동성애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11)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에 나타난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희랍어로 ‘Malakos’라는 뜻으로 문자 그대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다. 동성애로 번역된 말은 바울 자신이 희랍어로 사용한 ‘arsenokoitai’이다. 희랍어 ‘malakos’는 신약성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연약한으로’ 번역하지 않고 가끔 방탕한 음란한 뜻으로 사용한다. 만약에 우리가 ‘연약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로 썼다 할지라도 그것이 동성애자들만의 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해당하는 우리 말 뜻으로는 동성애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연약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에는 이성애자들도 포함된다.(12)

19세기 카톨릭에서는 ‘malakos’를 동성애와 관련해서 생각했다. 그 전에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mastubation’(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의 성서 번역도 ‘malakos’ 를 동성애로 해석한 것은 원어인 희랍어와는 다른 해석인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서 희랍어 원전을 보면 동성애로 해석하고 있는 희랍어로 ‘arsenokoitai’도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특히 바울이 사용한 말이다. 바울이 동성애에 해당하는 말을 희랍어로 찾아 쓸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인들은 동성애에 대한 사랑과 이성애에 대한 사랑을 배타적인 두개의 선택이나 근본적으로 다른 두개의 행동 유형으로 대립시키지 않았다.(13) 즉 그리스 문화는 동성애에 대해서 수용적이며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희랍어에서 얼마든지 동성애를 표현하는 말들을 바울이 찾을 수 있었다. 4세기에 성서가 라틴어로 번역되었을 때 ‘arsenokoitai’라는 말을 남창으로 번역하였다.(14) 다시 말하면 고전 6:9, 딤전 1:10에 나타난 동성애라는 언급이 원전의 의미와 다른 뜻으로 해석하고 있으므로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인지 매춘인지 확실하지 않다.

로마서 1:18∼32은 인간의 갖가지 죄를 언급하면서 우상숭배에 대한 죄를 강조하고 있다(22절). 주의해서 읽어보면 바울은 우리가 모든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발 달린 짐승을 숭배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상들 때문에 사람들을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23절).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울 섬겼다는 이유로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가 서로 ‘바른 관계’를 버리고 바르지 못한 관계로 욕정에 불탔으며(26절)로 표현되어 있으며 결국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이 성서 본문에는 두 남성 혹은 여성이 서로 사랑을 주고받았다는 말이 전혀 없다. 이 본문에서 특히 우리는 세가지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로마 기독교인들이 이교도 신앙의 영향 때문에 바울은 동성애의 표현으로 우상숭배의 결과라고 보았으나 그러한 행위가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둘째, 이 본문에서는 동성애의 열망을 내포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으나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또 ‘서로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였다’(25절). 그러나 이 말들의 내용속에는 서로 서로 인격적인 관계에서 형성되는 동성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바울이 한 말은 단순하다. 그는 이성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욕에 빠지는 것처럼 동성애를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성간의 이루어지는 사랑의 관계로 해석하기 어렵다. 바울이 언급한 중요한 단어는 ‘바른 관계’, ‘바르지 못한 관계’라는 개념상의 문제다. 26절에 보면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바르지 못한 관계로 또 남자들도 이와 같이 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영어에 해당하는 ‘natural(바른 관계)’을 아주 융통성 있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15)

로마서 2:14에서도 같은 희랍어 말을 쓴 ‘pushin’/‘natural’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에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실천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표준 새번역 성서에서는 희랍어에 해당하는 ‘pushin’ 영어로는 ‘natural’을 우리 말로는 ‘본성에 따라’라고 번역하고 있다.(16) 확실히 바울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인간의 ‘본능에 따라’라는 의미 이상은 없다. 여기에서 바울은 사람의 ‘본성에 따라’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른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연법을 어긴 남성 혹은 여성에 대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여성/남성의 동성애가 서로 좋아서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강요에 의해서 자연스럽지 못한 관계가 된다면 오히려 그 관계는 바른 관계가 아닌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오히려 동성간의 성의 관계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깊은 애정과 매력으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관계로 본다면 바울은 진실한 남성/여성의 동성애의 관계를 정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3. 성서의 성에 대한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동성애에 대한 시각은 확실히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동성애에 느끼는 반감은 그것을 바른 관계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방종교문화가 유대생활에 침투한 것으로 반유대인으로 취급했다.(17)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오늘 동성애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의 해석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서에는 또다른 성에 대한 규범, 태도, 실행, 실천 그리고 금지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더 이상 규범이나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성서의 성관계에 대한 태도를 몇 가지로 구분해서 살펴보겠다.

1) 나체:유대교에서는 가족들에게까지도 비난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18) 아들이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창 9:20∼27). 벗는다는 것이 부부관계에까지도 터부시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체의 해수욕장을 흔히 볼 수 없을지 몰라도 집안에서 문을 잠그고 부부가 벗는다 해서 죄라고 할 수 있는가?

2) 구약의 율법은 여자가 월경하는 동안 불결하기 때문에 여자에게 가까이 해서는 안되게 되었다. “그 여자가 불결한 기간에 눕는 자리를 앉는 자는 모두 부정하다.”는 것이다(레 18:19, 15:20∼23). 그리고 누구든지 이것을 범하면 그 대가를 받는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결별해야 한다. 오늘날 여성의 월경과 관계없이 성관계를 하기도 하고 그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레위기에서 말하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해서 그들이 죄인인가?

3) 성서는 서로 동의한 미혼 성인들 사이에 성관계를 금지한 곳은 없다. 결혼하지 않은 두 남녀의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아가서 1∼8).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비유적으로 해석을 해서 사랑의 장면을 은폐하려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교회는 혼전/혼외 성관계를 금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 독신자들, 과부나 이혼한 사람들이 옛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보면서 성관계는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속한 것으로 믿고 있다면 도대체 누가 옳은 태도인가?

4) 남성의 정액과 여성의 월경이 있는 동안 몸을 닿는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월경하는 여자에게 닿는 남자는 모두 저녁때까지는 부정하고 그리고 남자가 정액을 흘렸음은 부정하다. 그 사람은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남자와 여자가 동침하다 정액을 쏟으면 저녁때까지 부정하다는 것이다. 여자의 몸에서 흐르는 월경이면 7일 동안 부정하다고 했다(레 15:16∼24). 지금도 정액이나 월경이 부정하다고 느끼는 청교도적인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좀 지저분할 뿐이지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5) 구약에서 간음, 근친상간, 강간, 매춘 등에 관한 사회 규범은 여성의 억압과 남성들의 재산권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성은 남성의 재산권속에 속했다. 남성은 창녀집에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드나들었으며 미혼녀와의 관계는 그녀의 처녀성을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남성의 특권이었다. 창녀는 죄인으로 취급을 받을지라도 창녀를 찾아가는 남자는 죄책감이 없었다(창 38:12∼19, 수 2:1∼7).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여성들의 지휘가 향상되고 권리가 주장되는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 여성은 더 이상 남성들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과 상호 존경심으로 남성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체제로 변모해 가고 있다. 훨씬 여권이 신장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 간음한 죄는 남성도 여성도 죽음의 형벌로 다스렸다(신 22:22). 한가지 다른 점은 여기서 남성의 경우 결혼한 여자를 상대했을때 간음죄로 정죄하지만 미혼여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은 간음한 것이 아니다. 정을 통한 여자가 처녀가 아님이 증명되면 돌로 쳐서 죽이게 했다(신 22:13∼21). 여성의 순결에 대한 법은 모순성이 있다. 오늘날 소위 바람피는 남성들에게는 피임약의 발전이 아니었다면 미혼녀와의 관계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대에서는 유부녀보다는 처녀일 경우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7) 구약시대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다. 신약시대에 바울은 감독 집사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으로 일부일처제를 주장한다. 또한 이혼과 재혼을 금지했다(딤전 3:2, 12; 딛 1:6). 그러나 여전히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 사회도 있지만 현대에 와서까지도 아프리카에서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또 우리는 다시 한번 율법의 모순성을 발견한다.

8) 고대 이스라엘 유대교에서는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것은 결혼한 남자 형제 중에서 자식이 없이 죽으면 과부된 여인은 남은 다른 형제와 결혼해서 죽은 형제를 위한 씨받이가 되었다(신 25:5∼10). 예수께서도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고 있다(마 22:23∼33). 오늘날 이 해괴망측한 법규는 가정파괴 또는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된다.

9) 신약성서에서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울 자신의 충고이지 주의 계명은 아니라고 했다(고전 7). 바울은 혼인에 관한 문제들을 여러가지 면에서 가르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성서는 남성 지배 문화의 가부장제를 규범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남성 우월주의의 가부장제는 우리를 영속시킬 수는 없다.

10) 유대인들은 열두지파 안에서 동족결혼(근친결혼)이 허용되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인종간의 결혼을 반대하였던 미국 남부에서는 동족결혼이 시작되고,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동본 결혼을 허용할 조짐이 보인다. 인종간의 결혼이 금지되었으나 지금은 인종을 초월해서 국제결혼이 자유로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고 우리의 성의 형태도 급진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11) 구약에서는 독신을 비정상적으로 여겼다. 예레미야에 대한 주님의 뜻으로 독신을 예고한 것은 이스라엘의 가족들을 위해서 불길한 징조 때문이었다(렘 16:1∼4). 바울은 결혼하지 않고 독신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교들과의 관계를 두려워해서 한 경고로 이해한다(딤전4:1∼3). 아직도 카톨릭 교회에서는 신부와 수녀는 독신을 정상으로 지키고 있다.

12) 성서는 또 다른 법을 제시하고 있다. “두 남자가 싸울 때 한쪽 남자의 아내가 얻어맞는 남편을 도울 생각으로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음낭을 잡거든 너희는 여인의 손을 잘라라. 조금도 동정심을 가지지 말아라.”(신 25:11) 라고 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지금의 우리는 박수 갈채를 보낼 수도 있다.

신구약에서 노예제도는 정상적인 법이 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노예제도야말로 인간의 인권을 유린하는 악법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여성 노예신분/첩/여성을 성적 장난감으로서 또 남성은 성의 주체자로 여성은 성의 목적 대상으로만 취급될 수 없는 것이다. 여성은 노예신분인 낮은 인간이하로 취급했음을 우리는 구약성서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19) 이것은 마치 미국이 100년 이상을 노예제도 밑에 인권을 유린시킨 것과 같은 것이다.


4. 성서 권위의 문제


지금까지 논의된 여러 가지 성관계에 대한 사례들은 성서 권위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혼란과 이중성과 모순성을 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의 성생활을 이끌어 오는 법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어떤 법은 신약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변화를 볼 수 있다. 구약의 이러한 율법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복음이 아니라 율법 그 자체가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고 억압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의미하는 새로운 법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도 살아 있는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어떤 권위를 가지고 우리는 선택할 것인가?

우리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야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이롭게 해주시려고 율법의 맨 끝마침이 되셨다”(롬 10:4). 또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얽매였던 것에서 죽어서 율법에서 벗어났고 우리는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모든 성의 관습은 성령의 권위아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율법은 인간을 위해서 있어야지 인간이 그 법을 위해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20)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법의 의미를 우리는 택할 수 없을 경우도 있다. 바울은 여성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고 기도할 때 머리에 수건을 벗지 말라는 말을 함으로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의 기를 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서야말로 성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윤리만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 사랑의 윤리는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도 변함없이 지배해오는 진실한 사랑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랑이란 약속, 믿음, 존경, 신뢰를 서로 할 수 있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性)을 단순한 동물적 본능의 발산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두 사람의 인간 관계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성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깊이 있는 사랑의 표현이다.

율법의 시각에서 성을 볼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우리들의 왜곡된 사고는 전환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무엇이 허용되고 있느냐라는 질문보다는 내 이웃인 동성애자들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의 새로운 시각으로 본다면 성서가 무엇을 명령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성서, 전통, 신학, 심리학, 인류학, 유전학 그리고 생물학 등등의 관점에서 지금 성령이 교회에게 말하려는 그 말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앞에서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동성애를 잘못된 판단과 해석으로 정죄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부정적인 판단이 어느 때 가서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정죄라고 판단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들은 성서의 동성애의 부정적인 측면은 마치 구약성서에서 노예제도를 허용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구약성서의 어느 곳에서 노예제도를 부정의한 인권유린이라는 언급이 없었다. 오늘날 노예제도를 논의할 때 그 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또 성서는 여성은 언제나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졌던 유대문화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오늘날 인정할 수 있는가? 예수 자신이 간음한 사실을 제외하고는 이혼은 절대로 안된다고 가르쳤다. 오늘 우리들이 ‘절대 안된다’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절대의 진리로 지킬 수 있는가?


5. 인간의 편견


하나님은 약한자, 힘없는자 편에 계셔서 눌린자를 해방시켜 주시고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모든 만물을 화해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지금도 우리의 역사속에 살아 계셔서 우리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기를 원하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를 구현하신 분이시다. 예수 자신이 동일시했던 세리, 창녀, 불구자, 병든자, 버림받은 사람이나 가난한 자와 함께 하셨다. 그는 인간이 어떤 위치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참 인간으로 인정해 주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우리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편견을 가지고 있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고 옳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이성애만 옳다고 길들여진 사회 풍조에서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나와 생활양식이 다르다 해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정죄할 수는 없다. 이성간의 성애가 옳다는 사고로 길들여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애를 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정죄하는 것은 성서적 윤리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동성애가 잘못이라는 사고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에서 오는 근본적인 태도와 같은 것으로 인간의 억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동성애와 이성애를 이렇게 비교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른손을 사용하는데 더 익숙하지만 왼손잡이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또 양손 모두 잘 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6. 끝내면서


필자는 성서에서 말하는 성에 대한 태도를 재조명해 봄으로서 인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단순히 동성간의 성적 흥미라든지 성적 행위로만 그들을 규정하고 싶지 않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갈망하는 두 인간(人間)간의 의미있고 뜻있는 관계의 형태로 보고 싶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늘어나고 있는 동성애자들을 정죄한다든지 은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동성애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삶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는 믿음을 통해서 그들을 향해서 우리들 자신을 활짝 열 필요가 있다. 또한 교회는 개방적으로 동성애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행위를 정죄할 수도 있고 금지할 수도 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행위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어떤 행위로만 인정하고 정죄한다는 것은 하나의 인간에 대한 억압이며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과 같고 도덕적 가치와 존경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사랑도 귀중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동성애는 또 하나의 다른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 동성애라는 개념은 이성애와는 다른 가치 부여에서 또 다른 깊은 인간 관계의 양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성성(Sexuality)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건전한 성은 통합을 향한 인간의 내적/외적 성장을 시켜준다는 것이다.(21)

하나님은 우리가 섬김속에서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은 섬김이지 결코 동성애/이성애라는 성별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파트너쉽, 인간과 인간과의 파트너쉽, 인간과 자연과의 파트너쉽,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갖가지 파트너쉽을 주셔서 우리의 삶속에 살고 있는 관계를 지어주고 있다. 톰 드라이버(Tom Driver)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성에 의미를 논함에 있어서 다음에 취해야 할 단계는 종말론의 영역에 있다고 하겠다. “오랫동안 기독교 도덕주의자들이 성문제와 관련하여 물은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가?’였다. 그러나 성에 관하여 다른 모든 윤리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물어야 할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2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약은 민족적, 계급적, 인종적, 성적, 성적인 성향, 그 어떠한 경계라도 뚫고 나간다. 예수는 이러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억압과 편견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라 했다. 또 그러한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 해방자로 오셨다.

이제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교회 밖의 사회 변두리로 소외시키기보다는 하나님의 샬롬의 나라를 이 땅위에 이루는데 우리 다같이 동역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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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무위당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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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 생명 사상의 큰 스승   
이용포 (지은이)작은씨앗201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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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208쪽

책소개

故 리영희 교수가 "우리 사회에 이런 분 또 없을 것"이라 잘라 말한 사람. 이현주 목사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분"이라 한 사람. 유홍준 교수가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고 한 사람. 모두 무위당 장일순을 두고 한 말이다. 원주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며 힘없는 이들의 벗으로 남았고, 민주화 투쟁과 생명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무위당.

2011년 5월 22일로 무위당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되었다. 1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 무위당이 살아 있다면 우리에게 뭐라고 했을까? 원주를 생명운동의 구심점으로 만든 무위당에게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름다운 지구인의 자취를 발굴해 널리 알려 온 지은이 이용포가 무위당 장일순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목차
추천의 글
저자의 말

교육 운동
선생님 가신다
하늘과 사람을 대하여 부끄럼이 없어야
사람이 곧 한울이라
줄탁동시

민주화 운동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밑으로 기어라!
함께 잘 사는 길
모든 길은 원주로 통한다

생명운동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
돌은 말이 없지만 나의 스승
모기가 불쌍해 등을 켜지 않노라
한 포기 산속 난초가 되어

장일순 선생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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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용포 (지은이) 

196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한양 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성자 가로등>이 당선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청소년 장편소설《느티는 아프다》,《뚜깐뎐》, 동화집《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장편동화 《내 방귀 실컷 먹어라, 뿡야》,《왕창 세일! 엄마 아빠 팔아요》, 인물이야기《무위당 장일순》 들이 있다.
최근작 : <풍선 바이러스>,<최치원전>,<강림도령> … 총 2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무위당 장일순, 대한민국이 기꺼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고결한 사람
당대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스승으로 삼은 사람. 고(故) 리영희 교수가 “우리 사회에 이런 분 또 없을 것”이라 잘라 말한 사람. 이현주 목사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분”이라 한 사람. 유홍준 교수가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고 한 사람. 모두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을 두고 한 말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며 힘없는 이들의 벗으로 남았고, 민주화 투쟁과 생명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무위당. 올해 5월 22일로 무위당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되었다.
1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우리는 행복한가? 구제역으로 몰살당한 가축 300만 마리는 행복했을까? 이명박 정부가 파헤치는 4대강은? 순식간에 무너진 핵발전소 덕분에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마음놓고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무위당이 살아 있다면 우리에게 뭐라고 했을까? 원주를 생명운동의 구심점으로 만든 무위당에게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름다운 지구인의 자취를 발굴해 널리 알려 온 지은이 이용포는 무위당 장일순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줄탁동시
무위당은 스물여섯 나이에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원주에서 교육 운동을 시작한다. 교육이 죽으면 미래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1953년 무위당은 성육 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교육 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인간다운 삶을 함께 배우고 느끼는 의식의 상호작용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한 교육에 반대했다.

교육이 특별히 뛰어나거나 잘난 몇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 똑똑한 영재를 하나 키우겠다고 나머지 둔재를 버리는 것은 교육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무위당이 매를 든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학생을 때리려 든 매가 아니었다.

오늘은 너희가 나를 때려야겠다. 너희들이 이토록 공부에 열의가 없으니 이게 다 선생인 내 죄가 아니겠느냐. 1번부터 나와서 날 때리거라.

그날 무위당의 종아리엔 피가 맺혔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은 무위당에 감화되기 시작한다. 훗날 무위당은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때는 조급한 마음에 ‘날 닮아라, 날 닮아라’ 했지. 허나 이젠 그때 일이 후회스럽구먼. ‘줄탁동시(?啄同時)’라는 말이 있잖은가. 무어냐 하면,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껍질을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새끼가 알에서 나오는 걸 돕기 위해 바깥에서 쪼는 것을 ‘탁(啄)’이라 하거든. 그 둘이 맞아야 된다, 이 말이야. 어린 아이가 신이 나서 하게 해야지, 부모가 억지로 당긴다고 되나? 안 되지!


모든 길은 원주로 통한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틀 뒤에 무위당이 체포되었다.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이 빌미가 되었다. 무위당은 8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와 춘천 형무소에서 3년을 복역한다.
출소 뒤 대성학원 이사장으로서 교육 운동에만 전념할 생각이었지만, 역사는 무위당을 비껴가지 않았다. 1965년 대성 고등학교 학생들이 고등학생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한일회담 반대 집회를 연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원주 시청까지 행진했다. 군사정부는 이 일을 이유로 무위당을 대성학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만든다.
이즈음 무위당은 평생 뜻을 함께한 지학순 주교를 운명처럼 만난다. 1965년 원주 교구 설립과 함께 지학순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이후 무위당과 지학순 주교는 재해대책사업위원회, 가톨릭 농민회 운동, 신용협동조합 설립 등에 힘을 모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원주캠프’가 싹트게 된다. ‘5●16 장학회 부정부패 사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거치면서 원주는 ‘70년대 원주, 80년대 광주’라고 할 정도로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가장 강력한 지원지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이 있었다.


모기가 불쌍해 등을 켜지 않는다
1980년대 민주화 세력이 정치 투쟁에 몰두해 있을 때 무위당은 자신의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 끝에 생명운동으로 한 단계 도약한다. 그는 기존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한다.

땅이 죽으면, 인간도 죽어. 생명을 기르는 땅이 죽는데, 인간인들 별 수 있겠어?
1983년 도농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이 출범한다. 무위당과 원주캠프의 생명운동이 구체화된 것이다. 조합원 36명이 낸 출자금 36만 원으로 시작한 한살림은 20여 년 만에 회원 15만 세대를 확보했다. 이제 한살림 운동은 시민●사회운동으로 발전해, 모든 사람이 함께 이루어 가는 공존공영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무위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해월 최시형이다. 무위당은 억압받던 이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해월만큼 거룩한 모범을 보여 준 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데 의지하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느니라.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그 생성을 돕고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그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니라.
《해월신사법설》 중에서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해월의 가르침은 무위당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무위당이 평생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모든 사람을 소중하고 평등하게 대한 것은 해월의 가르침이 준 깨달음 때문이었다. 무위당은 평생 삶을 통해 ‘모심과 섬김’을 실천한 사람이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물레(기계)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릴 수 있어요.

무위당은 말년에 수많은 강연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생명인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귀하고 고맙게 여겨야,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만 잘살겠다고 발버둥 치면 모두 다 죽게 된다는 경고였다.

그런데 현대 문명이 최고의 가치로 설정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어떻게든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까지도 최대로 이용해서 각자의 이득을 챙기고 사욕을 채우는 그것이란 말일세. 서로가 서로를 이용 상대로만 보고 그래서 결국 미쳐 돌아가는 거라. 여기서 오늘의 심각한 공해 문제라든가 생태계 파괴가 발생하는 건데, 사람들이 서둘러 도(道)와 덕(德)으로 삶의 축을 세우고 자연의 도리에 따라서 살아갈 때 비로소 그런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지.


선생님 가신다, 선생님 이제 다시 오신다
1993년 3월 12일 평생 동지인 지학순 주교가 세상을 떠난다. 무위당도 그해 9월 병세가 나빠져 입원한다. 1994년 5월 22일, 무위당은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그 긴 세월에도 무위당을 아는 사람들은 그이가 사무치게 그립다고 한다. 신자유주의가 더욱 판을 칠수록, 사람들이 타자화될수록, 자연이 더 악랄하게 착취당할수록 그이가 더 보고 싶어진다고 한다. 왜 그럴까? 무위당은 비틀거리는 자에게 용기를 주고, 모색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고, 의심하는 자에게 신념을 주고, 방황하는 자에게 철뉙할수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무위당에게 배워야 한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과 망가지는 생명 앞에서 무위당에게 물어야 한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람이 곧 한울이니 한울님을 속이지 말라. / 한울님을 거만하게 대하지 말고, / 상하게 하지 말고, / 어지럽게 하지 말고, / 일찍 죽게 하지 말고, / 더럽히지 말고, / 굶주리게 하지 말고, / 허물어지게 하지 말고, / 싫어하고 불안하게 하지 말고, 춥고 굶주리게 하지 말라.
<십무천>, 해월 최시형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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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을 만들려고 세게 당기면 내 것이 되지 않고 쏟아질 뿐이야.˝ 장일순 선생이 무언가 자기 것이라 주장하며 가지고 싶어하는 아우 화순에게 물이 가득 담긴 대야를 당겨 보이며 한 말이다. 선생의 말은 쉽다. 
한방블르스 2012-01-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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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곁에 없어도 곁에 있는 듯한 우리들의 선생님 새창으로 보기
무위당 장일순. 돌아가신 지가 15년이 넘었는데도 더욱 그리워지는 분. 

살아 생전 한 번도 뵙지 못하고, 사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분. 

원주에 살면서도 원주에 머무르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삶으로써 자신을 드러낸 분. 

녹색평론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통해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했고, "좁쌀 한 알"이란 책을 통해, 그 분의 일화를 접하고, 삶이란, 위대한 삶이란, 결코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때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그래서 이 "좁쌀 한 알"을 선물하곤 했는데... 

"좁쌀 한 알"이 일화를 중심으로 해서 장일순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조금은 힘들 수 있다면, 이 무위당 장일순 책은 전기문의 형식을 취해, 누구나 쉽게 장일순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전개된다. 

한국의 현대사와 장일순이 삶이 작가 이용포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어 스승을 그리워하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훌륭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다. 

스승이 없는 시대,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주위를 잘 살펴보면 어른들, 스승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바로 이 무위당 장일순처럼. 

다만 스승은 우리들이 찾으려할 때 찾아지지, 그냥 왜 없을까 하며 지내면 스승은, 어른은 결코 찾을 수 없다.  

교육운동가에서 사회운동가로, 그리고 사회운동가에서 생태운동가로 꾸준히 자신을 변모해가는 데는 평등, 평화주의라는 기본 사상이 밑받침되어 있고, 위를 보고 운동을 하지 않고, 아래를 보고 운동을 하는, 아니 아래와 함께 할 때 운동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분이 무위당 장일순이다.  

그는 자신의 다른 이름인 호를 여러 번 바꾸는데, 처음에는 맑은 물처럼 살고 싶다고 청강이라는 호를 쓰고, 다음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삶으로 무위당이라는 호를 쓰고, 그리고 자신은 아주 작고 낮은 존재이지만, 그 존재 속에는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는 뜻의 일속자(즉, 좁쌀 한 알)라는 호를 쓴다. 이렇듯 호는 바로 당시 장일순의 삶을 대변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요즘처럼 4대강이다, 뉴타운이다 하여 개발만이 살 길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이 시대에 무위당의 말 하나, 글 하나,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큰 스승, 무위당 장일순. 

드러내지 않아 드러났던 그 분.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어도, 생전에 뵙지 못했어도 지금 나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늘 생각하게 해주는 스승으로 남아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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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1-05-2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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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새창으로 보기


사회부조리에 맞서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기존세력에 저항하고 하찮은 미물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사상을 고취해 왔던 장일순의 일생과 업적등을 전반적으로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또한 그가 사회적으로 맹활약을 보여 주었던 1970,80년대의 한국 국내상황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생명 사상'등은 대조적이었지만 뜻있는 사람들에겐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리라 생각한다.

흔히 의식적으로 깨우치고 불의에 저항하며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길을 고민하며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과 맞물려 돈에 걸신들리고 돈을 쫓아 버겁게 살아가야만 하는 현세태를 보면서
과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해방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세력에 맞서고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면서 갖은 자든 못 갖은 자든 함께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몸소 실천으로 옮겼던 장일순선생은 처음 교육 사업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
유신헌법 반대운동,산업개발로 인한 생태파괴,환경 오염등으로 인한 지구의 위협등을 실천적 지성인으로 일관된 삶을 보여 주고 있기에 계몽주의적이고 미래를 넓게 내다보는 천리안의 지혜를 갖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원주에서 한살림 운동을 벌였던 그는 모두가 함께 모든 생명을 함께 살려 내고,생명의 가치관.세계관으로 온 생명이 한집 살림을 살 듯 더불어 살자는 의미로 세계 문명이 핵무기,공해 등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데 자연을 착취하는 생산,한정된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등으로 결국 인류가 언젠가는 대재앙을 받는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설파하고 있으며 부모가 자식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대하듯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야 하며 상대에 대한 존경과 귀히 여기는 겸손의 정신등을 한살림에서 보여 주고 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근원지 원주가 장일순,지학순,김영주,김지하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그가 남긴 '인내천'사상을 교육사업과 민주화 운동,한살림등을 통하여 그의 뜻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현실 문제에 깊게 동참하면서도 틈틈히 붓을 들어 난을 치고 글자를 썼던 그의 서체는 치악산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석간수처럼 청정한 삶이 슴배인 그림이요 글씨였다고 한다.

386세대의 한사람으로서 학창시절 민주화 운동의 절정에 있을때 우리에게 지성과 지혜,겸손과 검약,자애등을 가르쳐 주고 세상을 밝게 보며 미물인 벌레도 함부로 다루지 않으며 가장 소중한 인간이 하늘이다라는 생명 사상을 불어 넣어 주신 장일순선생의 뜻이 물질에 쪼들려 살아가야만 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소중한 귀감이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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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2011-06-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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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많은 위인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에 대한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마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생님처럼 자신의 소신껏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신 분들이 역사적으로 참 많을 것 같아요.
특히나 우리들이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은 것처럼 말이죠.
사실 제목만 보고 어떤 분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참 궁금하더라구요.
그리고 부제로 달린 생명사상의 큰 스승이라는 부분에서 생명사상?
혹시 생명공학쪽으로 유명하신 분인가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교육운동을 평생에 걸쳐서 해오면서 우리의 근현대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무위당 선생님이 살았던 시기는 아무래도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서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든지, 생명의 소중함, 자연을 사랑하는 법 등.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에 이미 선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신 것 같아요.
그것이 어쩌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한 번 돌아봐야 하는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책의 이야기를 크게 나누어보면 교육 운동, 민주화 운동, 생명 운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많은 유명 지식인들이 기꺼이 스승으로 삼은 분.
올해로 돌아가신지 17년이 지났다고 하네요.
그 당시보다 지금 우리들이 삶이 더 좋아졌을까요?
교육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고 교육 운동에 헌신적이었지만 정작 특별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교육에 뜻을 두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인간적인 교육.
어쩌면 지금 우리들의 교육은 단순히 순위로 사람을 평가하고 서로가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보다는 먼저 경쟁을 통해서 누군가를 이겨야한다는 것을 부추기는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또한 그가 주장하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인해서 옥살이를 하고, 지학순 주교를 만나 원주의 민주화 운동의 중심점이 되기도 하는 등 어쩌면 그 자신의 뜻이라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기억되고 있다는 그만큼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 아닐까 싶네요.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한 번 무위당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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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루 2011-06-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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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새창으로 보기
무위당 장일순

 

 

      인간 속에 있으면서 영향을 끼치고 변화를 시키면서도 본인은 항상 그 밖에 있는 것 같고,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고, 밖에 있으면서 인간의 무리들 속에 있고, 구슬이 진흙탕에 버무려 있으면서도 나오면 그대로 빛을 발하고 하는 그런 사람은 이제 없겠죠.' ( p. 22. 고 '리영희' 교수님의 말씀 )

 

     누구라도 선생님을 말할 때  한마음으로 따르고 싶은 사람, 그저 모든 것을 존경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름만 말하면 누구라도 알만한 유명인사들의 입에서, 마음에서 평생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무위당 장일순.  그저 간단한 선생님의 활동만을 알고 있다가 드디어 선생님에 대해 많은 삶의 모습과 여러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책을 통해 만나면서  나 역시  왜 그렇게 많은 지식인들이,  범인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마음깊이 사모하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분이자, 누구나 쉽게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 분 처럼 그렇게 살지 못할 것임을.

 

     책을 읽어가면서  선생님이 겪어 오신 여러가지 일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 전쟁 중에 겪은 일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이 벌어지고  학업을 중단하고 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민군에게  발견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번에는 국군에게 붙잡혀  머리를 민 선생님의 모습 때문에 인민군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다시 총살을 당할 위험에 처한다. 바로 자신이 총살을 당하게 되는 순간 천주교를 믿었던 선생님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말없이 성호를 긋게 되고, 그 모습을 본 국군 소위는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소위의 명령에도 선임하사는 풀어주지 않고 이리 저리 포로가 되어 끌려 다니게 되는데,  우연히 예전에  조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국군 중령이 되어  만나면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 일을 겪으면서 선생님은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가 현재의 결과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도 크게 다가와 이 사건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화두가 되는 내용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원주에서 교육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학교를 만들고 평생을  후학을 기르는 일을 해오신 선생님은, 지금처럼 서로가 경쟁만을 통한 교육,  누군가를 이겨내는 우등생을 길러내는 교육을 반대하셨다.  함께 더불어 가는 삶을 지향하셨던 분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발견하시고  잘못 가르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자신의 종아리를 치게 하시는 참 교육자 셨고,  시간이 지난 후 그런 행동을 했었던 자신의 모습 또한  돌이켜보며 후회스러워 하신 분이시다.  여러 사회 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시련을 겪기도 하고,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오신 분이었다.

 

     1994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미래를 위한  교육을 걱정하셨던 삶,  모두가 함께 사는 삶,  나누는 삶, 자연을 사랑하는 생명운동을 펼치셨던 삶을 늘 몸으로 실천하시며  평생을 자신이 지은 작은 집에서 살아오시며 자신을 좁쌀 한 알의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자신은 좁쌀 한 알의 존재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며,  드러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큰 어른이라고 하는 이유가 너무도 많기만 하다. 

 

    " 내 것을 만들려고 세게 당기면 내 것이 되지 않고 쏟아질 뿐이야." 세상 만물 중에 자기 것은 없었다. 내 옷, 내 집, 내 돈 ...... .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살지만, 따지고 보면 착각에 불과했다. ' ( p. 135 )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분명 그대는 나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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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2011-06-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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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생 배워서 아는 것이 한 그릇의 밥을 아느니만 못하느니라.'

 

무위당 장일순의 말이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고 습득하게 되는데 그런 세상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깨닫지 못하게 되고 잊어버리게 된다.

장일순은 그런 우리들에게 이 같은 글을 통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치라 말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 무위당 장일순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책 겉표지에 실려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농촌진흥을 위해 일하신 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장일순이라는 인물이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꼈다. 조선시대에나 있을 법한 올 곧은 사람이 현재에도 저렇게 실존하구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평생 교육운동과 민주화 운동 나아가 생명운동에 몸바친 장일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쓴 책 바로 '무위당 장일순'이다.

 

장일순은 일제 강점기인 1928년에 태어났다. 당시 그의 집은 원주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망설임이 없는 집안이였다. 조부 장경호가 그러했고 아버지인 장복흥도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런 집안의 환경 속에서 장일순 역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26살이 되던해 도산 안창호의 대성학원의 맥을 계승한다는 의미의 대성학원을 설립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육의 길에 이끌게 되었고 평생의 동료인 지학순 주교를 만나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섰으며 과도한 개발운동으로 인해 점점 피폐해져만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한살림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생명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한다.

 

그의 인생도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한국전쟁 당시 여러번의 죽을 위기를 겪기도 하였고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었다. 그런 가운데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꺾이지 않았다.

이런 그의 다짐은 그의 호에서도 알 수 있다. 60년대는 깨끗한 사회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청강(靑江)이라는 호를 사용하였고

70년대에 들어 무위당(無爲堂)이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소유의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80년대는 한 알의 작은 좁쌀이라는 의미의 일속자(一粟子)라는 호를 사용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한쪽에 치우쳐서 살아가다보면 세상은 살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협을 하고 살아가는 것인데 장일순은 그런 면에서 선(善)쪽으로 치우쳐 살아간 사람이다.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장일순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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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해가저물면 2011-06-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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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공부 | 앞으로의 일정과 그룹운영 방침 재확인

초기불교 공부 | Facebook: 希修 shared a link. Admin   ·

希修 shared a link.

< 앞으로의 일정과 그룹운영 방침 재확인 >
.
오늘 모임 때 조용히 계시던 분들께 의견도 여쭤 보고 저도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오른쪽 그룹 소개란 ("About")에 적혀 있는 대로 (다시 한 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존의 범위와 방식을, 원래의 취지를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교라는 토픽 하나만 해도 다양한 관점의 좋은 책들은 너무나 많고, 우리 각자의 시간과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어서요. 직장생활하시는 분들로서는 '교재를 미리 다 읽지 못 해도 모임에 와서 설명듣고, 이해하는 만큼 이해하고 건져갈 수 있는 만큼 건져간다'는 부담없는 방식을 선호하시는 것 같고, 불교에 아직 익숙치 않은 분들은 여러 시각/설명법을 접하는 것이 좀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도 표명하시네요.
.
그러나 좋은 책이 있을 경우 포스팅을 통해 소개해 주시는 것은 환영입니다. 호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을 경우, 그 분들끼리 따로 스터디그룹을 만드셔서 branch off 하시거나 둘을 병행하시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있겠죠. 박세진 선생님께서 "불교는 왜 진실인가"를 아주 친절히 정리한 블로그 글을 링크해 주셨으니 일독을 권해 드리고, 또 박세진 선생님과 함께 이 책을 공부하고픈 분이 계시다면 개인적으로 소통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리며.. 따라서, 현재 교재인 팔정도가 끝나는 대로, "불교는 왜 진실인가"에 대한 토론 날짜를 따로 잡지 않고 "Purity of Heart"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동안 설명이 미진했던 부분이나 일반적인 질문, 공부와 관련된 가벼운 경험담 등을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교재와 교재 사이마다 한 주씩 가질 예정이오니, 읽으신 책 (어떤 책이든) 중에 특별히 소개하고 싶으신 내용이 만약 있으시다면 포인트 하나만 잡아서 그때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Purity of Heart" 다운로드

Purity of Heart, by Ṭhānissaro Bhikkhu(revised July 28, 2020) 
The third collection of essays by Ṭhānissaro Bhikkhu. Includes: 
  • Purity of Heart, 
  • Faith in Awakening, 
  • Untangling the Present, 
  • Pushing the Limits, 
  • All About Change, 
  • The Roots of Buddhist Romanticism, 
  • Right & Wrong Reconciliation, 
  • Getting the Message, 
  • Educating Compassion, 
  • Jhana Not by the Numbers, 
  • The Integrity of Emptiness, 
  • A Verb for Nirvana, 
  • The Practice in a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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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씨알 생명 평화

알라딘: 씨알 생명 평화
씨알 생명 평화 -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이규성,이기상,유헌식 (지은이),씨알사상연구회 (엮은이)한길사2007-03-31
-------------------
- 품절 확인일 : 2011-02-24

656쪽
책소개

씨알사상연구회 월례 연구발표회에서 발표된 글 가운데 19편의 논문을 가려 실은 책. 민주화, 평화를 위한 운동가, 종교인, 문필가등으로 널리 알려진 함석헌의 철학자적 사상가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천착하고, 그것을 정갈한 순우리말 표현, 사회적 운동으로 실천한 함석헌의 삶과 그의 사상을 본받아야 한다고 지은이들은 다양한 글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왜 함석헌 사상을 연구해야 하는가 -박재순

제1부 생명의 본질은 스스로 함이다
심정과 자유의 철학 - 이규성
생명의 진리 - 이기상
씨알의 생명사상 - 박재순
문명비판과 초월적 자연주의 - 유헌식
자연과 자유 - 양명수
씨알사상과 진정성의 윤리 - 박소정
비폭력 평화정신 - 김영호
개혁적 반전 평화주의 사상 - 정지석

제2부 씨알, 오천 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나타난 '민족' 개념의 신학적 성찰 - 이정배
역사적 사실에 나타난 신의 섭리 - 김기승
함석헌의 '뜻으로 본 세계역사' -김상봉
함석헌과 우치무라 간조의 '두 개의 J' - 양현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어떻게 쓰였을까 - 이치석

제3부 나는 빈들의 소리요 바람이라
종교시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 - 김경재
씨알사상에 대한 종교적 접근 - 김명수
함석헌의 성서적, 한국적 영성과 문화신학 - 최인식
함석헌과 샤르댕의 사상 - 이병창
무교회 정신이 이끈 삶 - 백소영
함석헌과 간디 - 허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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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
책속에서
함석헌의 사상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나'와 '전체'가 소통하고, '생각하는 생각'과 '생각나는 생각'이 소통하고, '본능'과 '바탈'이 소통하고, '인위'와 '무위'가 소통하고, '스스로 함'과 '저절로 함'이 소통한다. 그래서 자연과 자유는 긴장관계를 이루면서 종합된다.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함석헌이 말하는 자연에 저항적 자유의 성격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자연과 자유' p207 중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한국인의 민족적 반성과 회개의 책이지만, 함석헌이라는 지성 개인의 삶에 대한 반성과 회개 부분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 일반에 대한 서술에서, 그 자신을 지식인에 포함된다고 본다면, 그 자신의 참회와 회개의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해방을 기존의 지식인, 엘리트의 것, 즉 자기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니라 민중의 것, 씨알의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적 사실에 나타난 신의 섭리' p346 중에서  접기
추천글
'고난의 역사'에 핀 '대자유'의 꽃 - 고명섭 (<한겨레> 문화부장《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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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규성 (지은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89년부터 2017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의지와 소통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세계관과 아시아의 철학』(2016), 『한국현대철학사론: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2012), 『최시형의 철학: 표현과 개벽』(2011), 『생성의 철학: 왕선산』(2002), 『내재의 철학: 황종희』(1994)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 더보기
최근작 : <중국현대철학사론>,<의지와 소통으로서의 세계>,<마음과 철학 : 유학편> … 총 1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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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상 (지은이)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 뒤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로 1984~2012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초대회장이었으며, 현재 우리사상연구소 소장이다. 1992년 열암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1994년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 『하이데거의 실존과 언어』,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 『철학노트』, 『콘텐츠와 문화철학』, 『... 더보기
최근작 : <소통과 공감의 문화콘텐츠학>,<동서양 철학 콘서트: 서양철학 편 (대활자본)>,<동서양 철학 콘서트: 서양철학 편> … 총 31종 (모두보기)
유헌식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대학 철학부에서 「헤겔의 역사적 사유에 나타난 새로움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헤겔철학 논문집 『역사이성과 자기혁신』, 입문자를 위한 철학 안내서 『철학 한 스푼』, 소설 작품을 철학의 시선으로 해석한 『행복한 뫼르소』를 출간했으며, 공동 작업으로 ‘통합적으로 철학하기’ 시리즈 세 권(『호수에 비친 달은 외로울까: 고독』, 『흔들려야 날갯짓한다: 성장』, 『죽음아 날 살려라: 죽음』)을 펴냈다. 크로너의 『헤겔』과 앙게른의 『역사철학』을 번역했으며, 독일관념론, 문명론, 철학의 일상화, 문예비평이 관심 ... 더보기
최근작 : <나를 찾아가는 철학여행>,<행복한 뫼르소>,<동서의 문화와 창조> … 총 17종 (모두보기)
SNS : yoorius@dankook.ac.kr
씨알사상연구회 (엮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2001년 함석헌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2002년 5월에 '씨알사상을 연구,보급하여 자유로우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인류사회 형성과 생명 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박재순 박사가 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문영, 김경재, 문대골, 김영호, 곽분이, 김조년, 김성수, 최정윤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지원과 협력으로 매달 연구 발표회를 가졌고 매년 함석헌 탄신을 기리는 학술대화마당을 열어왔다.
최근작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씨알 생명 평화>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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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님의 사상 새창으로 보기
 
한동안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분이 함석헌 선생님입니다. 1980년대까지 특히 197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면서 한국의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십니다. 이젠 세상도 많이 달라지고, 그분의 글에서 느껴지는 고어체도 약간 적응이 안되어, 잊혀져가는 옛 선각자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한번씩은 그분의 씨알의 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기는 하지만요. 얼마전 서점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새로 출간된 것을 보고 무척 반가왔습니다. 그러다 함석헌 선생님에 관해 연구한 글들 중 중요한 글들을 모은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분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두에 박재순님이 쓰신 왜 함석헌 사상을 연구해야 하는가라는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은 근대한국이 가진 사상가로 부를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분이시고, 그분이 말씀하신 생명사상은 동양의 정신으로 새로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담고 있는 커다란 그릇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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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7-04-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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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생명과 불사 - 포박자 갈홍의 도교 사상 | 나루를 묻다 8 이용주

알라딘: 생명과 불사

생명과 불사 - 포박자 갈홍의 도교 사상  | 나루를 묻다 8  
이용주 (지은이)이학사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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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21,000원 

양장본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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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도교(도가)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도교의 존재 방식을 정리하고, 도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포박자(抱朴子) 갈홍(葛洪)의 사상을 최초로 종합 정리한 저술. 갈홍의 역사적 중요성은, 그가 중국 사상사에서 처음으로, 일관된 관점으로 도교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주장, 도교의 자기 정립을 위한 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갈홍은 <포박자>의 저술을 통해 도교가 새로운 시대의 지도적 사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로운 내용과 정신적 힘을 부여하려고 했다. 이 책은 갈홍의 대표작인 <포박자>를 철저하게 분석, 해석해냄으로써 갈홍의 사상, 나아가 도교의 전체상을 밝히고 있다.


목차
도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도교 개념의 혼란
2. 종교 이해의 어려움
3. 도교 연구의 딜레마
4. 도교는 《도장》의 종교
5. 《도장》만으로는 불충분하다
6. 도교의 기원을 이해하는 차이
7. '도가/도교' 이분법의 한계

제1부 갈홍의 도교 사상

1장 갈홍 도교 사상의 형성
1. 갈홍 도법의 원류
2. 도술의 전승: 비밀 의례?
3. 가학 이외의 도술 전통
4. 갈홍 도학의 배경과 저술
5. 방술의 종합: 『포박자 내편』의 완성

2장 유교와 도교의 우열: 갈홍의 도교 경세론
1. 『포박자 내편』과 『포박자 외편』의 관계
2. 갈홍의 도가론
3. 유교와 도교의 우열: 도가 경세론의 입장

3장 도교, 유교, 무巫의 갈등: 갈홍의 도교 정통론과 요도 비판
1. 유교와 도교의 비교
2. 음사 비판의 기본 입장
3. 도교와 무의 갈등, 장자의 경우
4. 갈홍의 '사이비' 도교[妖道] 비판

4장 신선의 존재증명론
1. 세속과 신성
2. 신선과 탈유교적 세계
3. 혜강의 신선 증명론
4. 갈홍의 신선가학론
5. 갈홍 '신선가학론'의 한계

5장 도와 기: 갈홍 신선도의 사상 기초
1. 우주 기원의 상상
2. 선도 수행과 궁극적 실재
3. 도교적 생명과 기의 수련

제2부 도교 방술, 불사의 탐구

1장 불사의 신앙과 도교 방술

2장 신선은 곡식을 먹지 않는다: 벽곡(단식)의 수행
1. 벽곡(단식), 일상의 재평가
2. 벽곡 수행의 발전 과정
3. 갈홍의 벽곡론

3장 욕망의 조절, 음양의 조화: 도교 방중술의 이해
1. 방중술의 효과: 갈홍의 방중술론
2. 음양의 조화: 욕망 조절의 기술로서의 방중술

4장 몸을 다스려라, 나라를 다스리듯: '섭생'의 예방 의료론
1. 국가와 신체의 상동성
2. 갈홍의 의학 양생론

5장 마음을 다스리면 불사도 멀지 않다: '무욕'과 '무위'의 수행
1. 도교의 '마음': '마음'은 하나가 아니다
2. 무욕, 신선 방술의 기초

6장 도를 네 안에 간직하라: '존사'와 '수일'
1. 지선 관념과 수일, 존사 방술
2. 존사, 수일 방술의 발전
3. 갈홍의 존사, 수일론
4. 존사 방술과 내단 방술의 연관성

7장 세속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라: 입산, 신성 공간의 탐색
1. 산, 신령이 사는 공간
2. 신성 공간의 탐색: 입산 방술

8장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영원하라: 갈홍의 '금단' 이론, 그리고 그 의미
1. 갈홍 연단술의 전승
2. 금단 제조를 위한 준비
3. '금단'의 이론 전제: 금단의 상징성
4. 금단 대약의 종류와 효능
5. 갈홍의 불사 탐구는 헛된 것인가?

책을 마치며

부록 1 연금술과 연단술: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어둠'의 상상력
부록 2 갈홍의 저술 목록
부록 3 도교 관련 도판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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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09년 12월 5일 지성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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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용주 (지은이) 

서울대학교 인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고등연구원(EPHE) DEA 및 박사과정을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ㆍ동양학ㆍ비교종교학 등을 공부했으며, 전통적인 문文ㆍ사史ㆍ철哲의 영역뿐만 아니라 ‘과학’ 자체도 인문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대화는 그에게 중요한 화두다. 근대 중국이 서양과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겪어낸 과학과 전통 간의 대결양상을 다룬 이 책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주요 저서로 『주자의 문화 이데올로기』(2004), 『생명과 불사: 포박자 갈홍의 도교사상』(2009), 『죽음의 정치학: 유교의 죽음이해』(2015), 『동아시아 근대사상론』(2015), 『성학집요: 군자의 길, 성찰의 힘』(2018) 등이 있으며, 장차 근현대 중국의 국학운동에 관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인문학의 또 다른 실천으로서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외국의 여러 연구사례들과 대표저작들을 소개하는 일에도 진력해왔다.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대작 『세계종교사상사(전3권)』(2005ㆍ공역)를 비롯해 『20세기 신화이론』(2008), 『신화란 무엇인가』(2017), 『세계종교의 역사』(2018) 그리고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 『종교유전자』(2015)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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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포박자 갈홍의 사상을 최초로 종합 정리하다
이 책은 도교(도가)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도교의 존재 방식을 정리하고, 도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포박자(抱朴子) 갈홍(葛洪)의 사상을 최초로 종합 정리한 저술이다.
갈홍의 역사적 중요성은, 그가 중국 사상사에서 처음으로, 일관된 관점으로 도교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주장, 도교의 자기 정립을 위한 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갈홍은 『포박자』의 저술을 통해 도교가 새로운 시대의 지도적 사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로운 내용과 정신적 힘을 부여하려고 했다. 이 책은 갈홍의 대표작인 『포박자』를 철저하게 분석, 해석해냄으로써 갈홍의 사상, 나아가 도교의 전체상을 밝히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도교(도가)는 오랫동안 동아시아인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의 정신의 밑바탕이었고, 삶의 방식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가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생명, 환경, 자연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의 삶은 무엇보다도 도가적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맞이하여 도가의 '도'와 '법'과 '술'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정통을 세운 갈홍을 통해 동아시아인의 정신의 기저인 도교의 사상과 실천의 핵심을 전문 학자가 종합적으로 규명한 것에 이 책의 의의와 차별성이 있다.

동아시아의 보편 신앙, 동아시아인의 정신세계의 총체로 다가가는 통로를 발견하다
선진 시대 이전의 중국의 모든 사상, 모든 종교적 실천은 도교 세계 안에서 종합된다. 불교가 유입된 이후 중국 사상의 지형은 크게 변화하지만, 그와 더불어 도교 역시 자기 변용을 겪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발전시키면서, 중국인의 근원적 종교 경험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대에서 송명 시대를 거치면서 도교는 더욱 깊이를 더해가고, 민중 종교 전통과 융합하면서 민중적 삶은 물론 지식인들의 생활세계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도교는 동아시아의 보편 신앙, 동아시아 사람의 보편 사상-종교-신앙 복합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거대한 체계로 성장했다.
우리는 도교를 논외로 하고서 동아시아의 민중적 신앙과 종교를 말할 수 없다. 더구나 도교를 무시하고서는 지식인의 사유 체계인 주자학의 성격과 발전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도교를 무시하고 중국 불교를 충분하게 해명할 수도 없게 되었다.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와 '분명히' 크게 다르다. 노자와 장자를 논외로 하고 선불교를 이해할 수 없고, 도교의 방술을 무시하고 중국 의학을 말할 수 없다. 도교를 논외로 하면서 중국의 전통 과학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도교를 무시하고서는 소위 동아시아의 기층 신앙인 무속 혹은 샤머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몇 권의 책으로 이 거대하고 복잡한 체계, 도교를 설명할 수 없다. 도교의 역사 전체, 그 도교적 종교 사상과 신앙의 한 부분을 집성한 것으로 알려진 방대한 ≪도장≫으로도 도교 전체를 커버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인데, 겨우 70권으로 된 『포박자』로 도교 세계 전체를 설명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박자』를 통해 우리는 도교라고 하는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종교의 중요한 한 단면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한 단면이 아니라 신앙적, 사상적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포박자 내편』을 통해 우리는 동아시아인의 정신세계의 총체로 다가가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책 안에서 우리는 동양 사상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포박자 내편』은 도교의 다이제스트일 뿐 아니라 중국 정신사의 개론서, 중국 종교와 중국 사상의 입문서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 『생명과 불사』는 바로 갈홍의 『포박자』를 중심으로 도교의 핵심을 그려냄으로써 동아시아인의 정신세계의 총체로 다가가는 작은 통로를 연다.

생명과 불사: 바른 삶을 살아라

인간과 우주의 의미, 삶의 가치와 의의를 탐구하는 포괄적 관심 속에서, 갈홍은 근대 이전 동아시아 지식인의 공통 관심사들, 공분모적 철학 주제들을 다룬다. 기의 문제, 도와 이와 기의 관련에 관한 문제, 도와 세계 창조의 문제, 영혼과 정신의 문제, 육체와 정신의 연관성 문제, 수양과 수행의 문제, 바른 삶의 방식과 건강한 삶의 탐구, 과학적 자연 탐구,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사유, 인간의 완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도교 사상가 갈홍 개인의 평생의 철학적 주제였고, 세계관이자 철학이자 종교로서의 도교의 주제였다. 그가 온 힘을 기울여 탐구하고 알려주고자 했던 신선됨의 길은 결국 '바른 삶'에 대한 한 뛰어난 도교 사상가의 해답이었다.
이 책은 갈홍의 '생명과 불사'에 대한 탐구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인간 최대의 난제를 앞두고 그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적 열정이 갈홍을 움직인 동기였다. 그런 동기에서 출발한 갈홍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그런 도를 자기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의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자연과 관계 맺는 올바른 방식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한다. …… 그가 제시하는 방술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결코 무의미한 지침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현대적 윤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외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내적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라. 나의 생명을 아끼는 만큼이나 다른 생명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라. 자연을 파괴하지 말라. 너무 많이 먹지 말라.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절제하는 것을 배우라. 정신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신체를 적당하게 움직이고, 깊은 호흡을 하고, 명상하면서 자기의 내면세계를 살피는 훈련을 하라.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은 함께 가는 것이니 그 둘 모두에 관심을 가져라. 과도하게 바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적 세계에도 관심을 기울여라.
이처럼 도교 수련 이론에 근거한 갈홍의 충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도 절실한 제안이고, 의미 있는 권고로 가득하다." 접기

알라딘: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

알라딘: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 - 세계 대문화와 함께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역사를 걷다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은이),김희주,전경훈 (옮긴이)옥당(북커스베르겐)2017-05-25

양장본559쪽

책소개

지구의 탄생에서 세계대전까지, 고대 로마에서 아랍, 몽골을 거쳐 현대 미국까지, H.G. 웰스의 균협 잡힌 시각으로 풀어낸 세계사. 웰스는 세계사를 지구의 탄생에서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기획하고 유럽 중심이 아닌 동서양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기록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역사서였지만 책은 출간 즉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덕분에 이 책은 현재도 세계사 입문 추천 도서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웰스는 특히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역사 전체에서 각각의 시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고민한다.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면서도 그 모두를 꿰뚫는 인류의 지적, 정신적 진화 과정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웰스는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랐고 그런 노력이 책 전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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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의 글 | 20세기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교과서 밖 역사를 말하다
1922년 출간 당시 지은이의 글 | 방대한 세계사를 버거워하는 독자를 위한 책

1부 지구의 탄생

1장 지구의 탄생
수십억 년 전에 생긴 일 | 태양 둘레를 도는 지구의 친구들
2장 20억 살짜리 자전하는 행성
지구의 나이 | 지구 모습의 변화
3장 생명의 흔적
전기 고생대에서 발견된 것 | 물속 원형 생명체
4장 어류의 등장
생명의 진화 | 등뼈 있는 최초의 물고기
5장 생물의 육상 진출
기후 변화로 얕아진 바다 | 식물, 먼저 육지에 오르다 | 동물, 공기 호흡에 적응하다
6장 파충류 시대
올챙이 시기를 거치지 않는 생명체 | 공룡의 시대
7장 최초의 조류와 포유류
물고기를 먹고 사는 바닷새 | 새끼를 출산하는 태생동물
8장 포유동물 전성시대
지각 변동 활발한 신생대 | 학습하는 생명체 | 소통하고 의존하다

2부 인류의 탄생

9장 구석기의 시작
영장류의 등장 | 모래밭에서 찾은 아래턱뼈 한 점
10장 유사인류,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 논란 |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두개골의 정체
11장 최초의 현생인류
크로마뇽인과 그리말디인 | 구석기 마지막 인류
12장 원시인류의 사고방식
어린아이 사고방식 | 소규모 가족 집단 사회 | 말할 줄 아는 인류
13장 농경의 시작
따뜻한 지역을 찾아서 | 파종과 인간 제물 | 양석문화와 문명의 이동
14장 아스테카?마야?잉카 문명
세상의 모든 인종 | 농경 생활은 문명을 낳고

3부 고대 국가의 출현

15장 도시 국가의 탄생, 수메르와 이집트
촌락 수준 벗어난 도시 국가 | 문자를 사용하다 | 신관과 파라오
16장 정복자가 된 유목민족
척박하지만 자유로운 | 아카드와 바빌로니아 세운 셈족
17장 최초의 해양 문명
바다를 장악한 셈족 | 크노소스 해상왕국 | 크레타의 행복한 문명 생활
18장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천 년 전쟁 | 군사 대국 아시리아 | 아리아인의 등장 | 고대 도시인의 삶
19장 원시 아리아인
파란 눈의 북유럽 인종 | 세력 확장 | 발칸 반도로 남하하다
20장 다리우스 1세의 페르시아 제국
아시리아를 무릎 꿇린 칼데아 | 흔들리는 신바빌로니아 | 최초의 아리아 제국

4부 고전 사상의 탄생

21장 유대인의 초기 역사
히브리인의 기록 문학 | 셈족 유목민 족장 아브라함 | 다윗과 번영의 시대
22장 성경과 예언자
유대인을 만든 성경 | 예언자의 역할
23장 그리스 정신의 부상
서사를 사랑한 그리스인 | 공동체 의식이 생기다 | 최초의 철학자들
24장 폐허 속에서 꽃핀 지중해 문화
대제국 페르시아의 실수 |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격돌 | 헤로도토스의 선동
25장 지적 활동의 중심지, 아테네
그리스 문명을 재건하다 | 위대한 철학자들의 등장
26장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우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 이집트?페르시아?인도까지, 대제국을 향하여
27장 그리스 문화의 중심이 된 알렉산드리아
아테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 지혜의 창고를 세우다 | 파괴되는 지식의 도시들
28장 불교의 탄생
카스트의 나라 인도를 뒤흔든 석가모니 | 진리를 찾아서 | 해탈, 부처가 되다
29장 아소카, 불교를 전파하다
전쟁을 원치 않는 정복자 | 불교, 인도를 넘어 아시아로
30장 혼란의 시대를 이끈 공자와 노자
혼란의 시대 | 자기 수양으로 예를 다하라 | 사상, 만리장성 아래 묻히다

5부 로마 제국, 흥망성쇠의 역사

31장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왕국
에트루리아의 교역 도시 | 세력을 확장하다 | 피로스 전쟁, 대전쟁의 서막
32장 지중해를 공략하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격돌 | 한니발, 알프스를 넘다 | 제3차 포에니 전쟁 | 살아남은 셈족 왕국
33장 도시에서 제국으로
성장하는 로마 | 동화 정책과 자유농민의 공화국 | 부자들의 공화국으로 변질되다 | 노예 반란과 시민전쟁 | 군사령관의 공화국 | 카이사르와 제국의 시대
34장 세상을 지배하는 두 세력
로마와 한나라 | 훈족의 서진
35장 노예 제국
평민의 삶 | 노예제 위에 세운 경제 | 노예 학대 금지령
36장 콜로세움의 신들
숭배의 종교에서 구원의 종교로 | 영생과 삼위일체 | 국가 종교에서 개인 종교로
37장 예수의 등장
지상에 지은 하늘나라 | 착한 사마리아인 | 예수, 세상의 빛으로
38장 그리스도교의 나라
사도 바울, 교리를 전하다 | 신학 논쟁, 갈라지는 교파 | 박해를 딛고 국교로
39장 로마 제국의 분열
다가오는 재앙 | 위험한 거래, 제국을 삼키다 | 해체되는 로마
40장 서로마 제국의 멸망
유럽사에 등장한 훈족 | 훈족의 아틸라, 유럽을 분열하다 | 시민 정신을 버린 서로마 제국의 최후

6부 침체된 중세 유럽과 번성하는 아시아

41장 비잔틴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끊임없는 전쟁, 쇠락하는 문명 | 야만의 시대 | 폭풍전야
42장 수나라와 당나라
문명을 꽃피우다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받아들인 당 태종
43장 이슬람 제국
아라비아의 베두인족 | 신의 사명을 받은 마지막 예언자 | 일어서는 이슬람
44장 이슬람, 새로운 문명을 낳다
뻗어 나가는 제국 | 폐허 속에 문명의 싹을 틔우다 | 근대 과학의 문을 연 연금술사
45장 신성로마 제국
봉건 제도로 일어서는 유럽 왕국 | 프랑크 왕국, 서로마 제국을 꿈꾸다 | 유럽의 황제가 되고픈 교황 | 침입자들 | 서로마 제국의 부활
46장 십자군 전쟁
비잔틴 제국을 위협하는 셀주크튀르크 | 성전을 선포하다 | 성지로 향하는 십자군 | 교황, 유럽을 지배하다 | 권력에 취한 교황 | 타락하는 교회
47장 교황의 몰락
교황 선출 문제 | 황제를 파문하다 | 황제의 반격 | 추락하는 교황권 | 아나니 사건 | 서방 교회의 대분열
48장 세계 최대 제국, 몽골
몽골족의 부상과 서방 정벌 | 제국의 분열 | 오스만튀르크를 깨우다

7부 근대 유럽의 형성과 제국주의 시대

49장 유럽 지성의 부활
십자군 전쟁 이후 찾아온 안정 | 도전하는 지성, 베이컨의 등장 | 사라센인이 전해준 종이와 인쇄술 | 지식과 방법의 전달자, 몽골인 | 마르코 폴로 여행기의 영향 | 콜럼버스와 잇따른 해외 원정
50장 종교개혁
분열하는 라틴 교회 | 성경의 보급과 루터의 등장 | 로마 가톨릭교회의 변화
51장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스페인 왕
막시밀리안 1세의 혼맥 정치 | 교황 편에 선 카를 5세 | 신교와 구교의 갈등 | 유스테 수도원으로 물러나다
52장 유럽, 격변의 시대로
변화의 바람 | 새로운 문명 | 정치 체제 변화 | 분열된 신성로마 제국, 다가오는 러시아 | 분열과 다양성의 시대
53장 대항해시대
아메리카 대륙을 둘러싼 지배권 싸움 | 영국 동인도회사의 인도 장악 | 러시아의 동진
54장 식민지 전쟁
새로운 땅을 찾아서 | 영국 식민지 주민의 불만 | 미국의 독립선언 | 연방 통합의 조건
55장 프랑스대혁명과 권력의 이동
흔들리는 절대왕정 | 국민의회의 입헌군주정 | 공화파의 주도권 장악 |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
총재정부와 나폴레옹
56장 나폴레옹의 몰락과 유럽
왕정복고 | 빈 체제하의 유럽

8부 자연과학의 시대

57장 자연과학의 발전
지식 확장에 나선 영국 왕립협회 | 증기기관과 교통수단의 발달 | 기술 혁명은 야금술의 발전을 낳고 | 자연과학의 산실이 된 독일 | 비행기의 등장
58장 기계혁명과 노동의 변화
기계혁명 대 산업혁명 | 기계의 등장으로 변화하는 노동력 | 단순 노동에서 지식 노동으로
59장 근대 정치·사회 사상의 발전
사유의 빛 | 사유재산 제도 비판 | 사회주의, 함께 나누는 사회 | 공산주의와 자유무역 철학 | 인류 공동체를 향하여
60장 미국의 성장
통일국가의 초석이 된 철도와 증기선 |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 남북전쟁 | 링컨, 미합중국을 이루다
61장 독일의 발흥
다시 시작된 유럽의 패권전쟁 | 프랑스를 물리치고 독일 전역 통일
62장 증기선과 기관차의 제국
팽창주의의 한계 | 증기기관, 멈추지 않는 제국의 심장
유럽 열강들의 새로운 각축전 | 트란스발의 보어인
63장 유럽의 아시아 침략과 일본의 부상
아시아를 분할 점령하다 | 일본의 강제 개항 | 유럽 제국의 일원으로
64장 해가 지지 않는 나라
1914년의 대영 제국 | 팍스 브리태니커

9부 제1차 세계대전과 피의 근대사

65장 제 1차 세계대전
전운이 감도는 유럽, 총성이 울리다 | 헤어나올 수 없는 전쟁 속으로 | 폐허가 된 유럽, 그리고 종전
66장 러시아 혁명
쫓겨나는 전제 군주 | 볼셰비키 혁명과 러시아 내전 | 전란이 남긴 상처
67장 세계 정치와 사회 재건
전후 처리, 불씨를 남기다 | 윌슨의 국제연맹, 어설픈 구원 | 인류 역사의 서막을 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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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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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2017년 5월 27일자 '새로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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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허버트 조지 웰스 (Herbert George Wells)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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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 사회 비평가이다. 1866년 9월 영국 켄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린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열세 살부터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일을 했다. 이후 다시 학업을 시작해 대학에 진학한 뒤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지질학 등을 공부했다. 졸업 후 교사로 일을 하다 건강이 나빠져 요양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1895년에 출간된 <타임머신>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간 여행과 미래 세계가 소재인... 더보기
최근작 : <The Island Of Doctor Moreau, 모로 박사의 섬 (영문원서)>,<H. G. WELLS Short Stories, Vol. 2 (영문원서)>,<H. G. WELLS Short Stories, Vol. 1 (영문원서)> … 총 6212종 (모두보기)
김희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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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펍헙번역그룹에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사악한 소년》 《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죽을 때 추억하는 것》 《독일사 산책》 《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공역)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16종 (모두보기)
전경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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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교의 국제대학원을 수료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로 살면서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전업 번역자로서 글을 읽고 쓰고 옮기는 일로 살아간다. 역서에 『20세기 이데올로기』, 『페미사이드』, 『가톨리시즘』, 『농경의 배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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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간 즉시 수백만 독자를 사로잡은 세계사의 귀환

공상과학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대문호 허버트 조지 웰스는 1920년 놀라운 책을 출간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집필하기 시작해 펴낸 책은 놀랍게도 소설이 아닌 역사책이었다. 1,324쪽에 달하는 그의 책은 세계 지식인들 사이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출간 즉시 수백만 부가 팔린 이 책 《세계사 대계(The Outline of History)》는 우리나라의 신채호, 함석헌은 물론 흑인 해방 운동가 말콤 X와 인도의 네루 수상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대단한 독서가였던 신채호는 1928년 뤼순감옥에 있을 때 면회 오는 이관용 조선일보 기자에게 《세계사 대계》 일본어판을 구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으며, 오산학교 시절 함석헌은 《세계사 대계》에 심취해 한동안 이 책만 읽을 정도였다. 말콤 X는 감옥에서 이슬람 국가운동 지도자 엘리야 무함마드를 만난 뒤 역사의 중요성에 눈 떴는데 그 과정에서 그의 역사인식을 새롭게 해준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가 H.G. 웰스의 《세계사 대계》였다. 네루 수상은 《세계사 대계》를 읽고 역사 집필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해 《세계사 편력(Glimpses of World History)》까지 집필했다. 그의 《세계사 편력》에 ‘H.G. 웰스에 따르면, H.G. 웰스가 지적했듯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걸 보면 네루 수상이 얼마나 H.G.웰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세계사 대계》가 출간되고 2년 후 웰스는 세계사를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더 간결하고 쉬운 책으로 출간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에 번역 출간된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A Short History of the World)》이다. 이 책은 당시 대중을 상대로 펴낸 최초의 한 권짜리 세계사 책이었으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 만들어진 역사서이기도 했다(출간된 해 200만부 판매 추정). 덕분에 이 책은 현재도 세계사 입문 추천 도서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웰스는 왜 역사에 주목했을까?

웰스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려면 당시 시대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은 각국의 경제력을 배출할 판로가 필요했고, 이에 해외 식민지나 세력권을 넓히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제국주의 열강은 발칸과 근동 지역을 두고 대립하고 있었는데, 이때 대립의 주인공은 영국과 독일이었다.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가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동맹국과 협상국 간의 국제전으로 확전되어 개전 1주일 만에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열강이 참전한 대전쟁이 되었다. 영국은 식민지 병사의 희생과 해상전의 압도적인 우세로 승리했지만 이 전쟁에서 1,000만 명 이상이 살상되었고 종전 이후까지 유럽이 입은 상처는 실로 엄청났다.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전염병과 식량 및 물자 부족으로 유럽 전역이 고통받았다(65장).
웰스는 이 책에서 전쟁을 “하려고만 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 “세계대전이 왜 시작되었는지가 아니라 왜 예방하지 못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웰스의 관심은 온통 세계의 운명에 집중된다. 그는 세상은 바뀌어야 하고 그러려면 민중을 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역저 《세계사 대계》와 이 책《H.G. 웰스의 세계사 산책》이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썼다”는 웰스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되어 어떤 우여곡절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쉽게 풀어냄으로써 누구라도 쉽게 세계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책 속에는 승자의 세계만이 아니라 역사를 함께 일구어온 수많은 인종과 전쟁에서 패해 역사에서 사라진 국가와 종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깔려 있다. 저자는 역사를 완성하는 것은 일부 국가나 인종이 아님을, 과거의 역사를 딛고 바른 역사관을 가진 족속들이 세상을 발전시켜왔음을 보여준다. 세계 지성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역사서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과학의 눈으로 보고 소설가의 감성으로 풀어낸 균형 잡힌 세계사

이 시기의 많은 역사서는 정치가, 이상주의자, 군사 인물 등 ‘위대한 사람들’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보았지만 웰스 식 역사 서술은 다르다. 그의 역사서의 특징은 서사이다. 인간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서술과정에서 책은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저자가 생물학을 전공하고 다윈의 진화론에 심취한 다윈주의자답게 생명과 지구의 초기 역사에서부터 글을 시작해 이후 사회와 문명이 진화해 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따라서 독자는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지구의 탄생과 인류의 탄생 과정을 만날 수 있다.(1부, 2부)
둘째, 저자는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과는 달리 동서양을 오가며 입체적인 인류사를 풀어낸다. 훈족과 이슬람 세력이 유럽에 미친 영향뿐 아니라 그들 내부 역사까지 살펴봄으로써 이들이 유럽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 원인을 알 수 있게 한다.(34장, 40장, 43장, 44장)
셋째, 저자는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역사 전체에서 각각의 시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고민하여 주요 사건들을 기록하고 이들을 꿰뚫는 인류의 지적·정신적 진화 과정에 주목한다(4부, 8부). 인류 문명과 인간 사회가 발전하는 모습을 묘사할 때는 물론이고 전체 역사에서 그것이 어떤 배경을 지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정리해 주는 부분에서는 그의 뛰어난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넷째, 무엇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웰스는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히기를 소망했고 그런 노력이 책 전체에 반영되었다. 56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 얕은 물 속 원형 생명체로 존재했던 생명들이 육지에 상륙하는 과정, 인간을 제물로 받치며 신을 모시던 원시인간들의 문명인으로의 진화 과정, 시리아와 아라비아를 떠돌던 셈족이 수메르를 정복하고 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우는 과정, 훈족의 아틸라가 유럽을 분열하는 과정 등이 흥미롭게 글을 풀어가는 웰스만의 전개 방식 덕에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게 넘어간다.
저자가 한 권에 세계사를 모두 담으려하다 보니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이번 판본에 옮긴이 주로 보강했다. 또 이번 판본에는 최신 사진 이미지와 자료가 보강되어 최근의 역사 현장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추가되었다.

100년 전 웰스가 보내는 우려와 경고

웰스는 문학 작품을 통해 미래 세계에 대한 경고를 계속했다. 탱크나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이것이 전쟁에 이용될 것이라고 얘기했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시험에 성공하자 비행기를 이용해 폭탄과 가스가 살포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조화로운 국제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꿈꾸었던 그의 간절한 바람이 이 책 끝부분에서 잘 드러난다(67장). 인류의 경쟁과 전쟁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자연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풍요와 밝은 미래만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님을 밝히는 대목에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영국이 유럽공동체에서 탈퇴하고 국제 관계가 공존에서 독자생존으로 전환되는 이 시기에 그의 이러한 메시지는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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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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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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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솜씨도 flow도 좋은 책. H.G. 웰스의 스토리텔링과도 같이 잔잔하지만 빠르게 펼쳐지는 세계사 survey. 사선사실의 나열만으로도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싶다.  구매
transient-guest 2019-03-08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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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음미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 좋은 번역입니다.  구매
밭고랑 2019-10-2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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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6] 세계사 산책 새창으로 보기
제목 : 세계사 산책

작가 : 허버트 조지 웰즈

번역 : 김희주

출판사 : 옥당

읽은날 : 2019/04/01 - 2019/07/01

분류 : 일반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가 유명한 공상과학 소설 투명인간을 쓴 소설가다. 

소설가가 쓴 역사책이라니.. 아주 깊이있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다루어야 할 세계사의 내용들을 꽤 많이 다루고 있다. 

말 그대로 산책을 한다. 

저자가 살았던 1920년대 초반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내용이 담겨있다. 덕분에 서양의 과학문명 혁명을 당시의 사람을은 어떻게 느꼈는지, 그리고 1차세계대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서양인이다보니 서양중심적 사고는 어쩔 수가 없고, 동양의 훈족, 돌궐족, 몽골족을 섞어어 이야기하는 건 한계다. 

세계사책은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내용이 많이 update되기 때문에 과거책만 보는 것은 좋은 책읽기는 아니다. 

하지만 당시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세계사를 어떻게 보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옥당이 과거의 역사책을 여러권 출판했다. 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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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꿈꾸며 2019-07-0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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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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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8

한국 기독교와 역사 | 헐버트 선교사의 한국인의 종교성에 대한

한국 기독교와 역사 | Facebook


Kil Hyun Jo
26S MttatSyS fpratfoienoc sad2o2ecreSd:47a ·



공부하다가 헐버트 선교사의 유명한 말을 올려봅니다.
한국인의 종교성에 대한
유명한 말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한국인들이 사회에서는 유교 신자가 되고, 철학에서는 불교 신자가 되며, 어려움에 처할 때는 신령 숭배자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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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Deuk Oak

Admin

+2


'유교 신자'나 '불교 신자'보다는 유교인, 불교인이 좋을 듯. 신령숭배자 혹은 정령숭배자. all-round Korean을 번역하기가 쉽지 않음. 번역은 한 단어라도 빼먹으면 안 되므로.






Kil Hyun Jo

Author

쉽지 않아서 생략했는데 칼같이 지적을 해 주셨네요^^;


Joon Park

저는 "전방위적으로 한국인은... 혹은 한국인은
전방위적으로..." 정도로 해석하면 어떤지 생각해 봅니다.


Sung Deuk Oak

Admin

+2


Joon Park 팔방미인^^ 예전에는 전방위 = 팔방 혹은 사방.
Hangsan Ahn

통찰력이 느껴지네요



Kil Hyun Jo

Author

Hangsan Ahn 헐버트 선교사가 우리 역사의 자주성도 강조하고, 단군신화 속에 나타난 유일신론/삼위일체론도 언급할 만큼 통찰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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