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2

알라딘: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알라딘: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eBook]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C. 누스바움 (지은이), 조계원 (옮긴이) | 민음사 | 2015-03-25 | 원제 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



종이책정가 33,000원
전자책정가 26,400원


페이지 수 728쪽 (종이책 기준) | ISBN : 9788937431555
제공 파일 ePub(11.85 MB)

9.3



우리 사회의 법체계는 많은 부분이 혐오나 수치심과 같은 감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세계적인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에 따르면 감정도 신념의 집합체로서 공적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너스바움은 이러한 ‘혐오’와 ‘수치심’만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감정은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을 숨기려는 욕구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타자를 배척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즉 약자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는 강자들만의 부당한 논리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서문 : 감정도 분명 사고를 담고 있다
1 수치심과 혐오: 실천과 이론의 괴리
2 감정 없는 법?
3 문제가 있는 두 가지 감정

1장 감정과 법
1 감정에 대한 호소
2 감정과 믿음, 감정과 가치
3 감정, 평가, 그리고 도덕 교육
4 감정과 ‘ 이성적인 사람’: 과실치사와 정당방위
5 감정과 변화하는 사회 규범
6 타당한 공감: 양형 선고 과정에서의 동정심
7 감정과 정치적 자유주의
8 감정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2장 혐오와 우리의 동물적 육체
1 혐오와 법
2 혐오 지지자들: 데블린, 카스, 밀러, 케이헌
3 혐오의 인지적 구성 요소
4 혐오와 분개의 차이점
5 혐오는 특정 집단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
6 혐오, 배척, 문명화

3장 혐오와 법
1 불쾌감으로서의 혐오, 법적 기준으로서의 혐오
2 혐오와 범죄자: ‘동성애적 도발’이라는 항변
3 혐오와 ‘평균적인 사람’: 외설
4 불법성의 근거로서의 혐오: 소도미, 시체 성애
5 혐오와 생활방해법
6 혐오와 배심원: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살인

4장 얼굴에 새기기: 수치심과 낙인
1 붉게 달아오른 얼굴
2 원초적 수치심과 나르시시즘, 그리고 ‘황금시대’
3 불완전함에 대한 거부: B의 사례
4 수치심과 연관된 감정들: 모욕과 당혹감
5 수치심과 연관된 감정들: 혐오, 죄책감, 우울, 격노
6 건설적 수치심은 가능한가?
7 스티그마와 소인(燒印): 사회적 삶 속의 수치심

5장 시민들에게 수치심을 주어야 하는가?
1 수치심과 ‘촉진적 환경’
2 수치심을 주는 처벌: 존엄성과 나르시시즘적 분개
3 도덕적 공황: 게이 섹스와 ‘적대감’
4 도덕적 공황과 범죄: 갱단 배회금지법
5 다른 경로를 통해 도달한 밀의 결론

6장 수치심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1 촉진적 환경 형성하기
2 수치심과 괜찮은 생활 수준
3 차별 금지, 증오 범죄
4 수치심과 개인 프라이버시
5 수치심과 장애인






지은이 : 마사 C. 누스바움 (Martha C. Nuss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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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인간성 수업>,<분노와 용서>,<인간성 계발> … 총 114종 (모두보기)
소개 :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로서 뉴욕대학교에서 연극학과 서양고전학으로 학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고전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와 브라운대학교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학교 에른스트 프룬드 법윤리학 종신교수 겸 철학부 교수이다.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등과 함께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지성’에 선정되었다.
『혐오에서 인류애로From Disgust to Humanity』, 『생각의 격변Upheavals of Though...





옮긴이 : 조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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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정치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정치사상)를 받았다.「한국 사회와 애국심」,「세계시민주의와 애국심」,「옌푸(嚴復)와 번역의 정치」(공저) 등의 논문을 썼고,『공화주의와 정치이론』을 공역했다.




★ 미국출판인협회 선정 법학 분야 ‘최고의 책’ 선정
★ 2014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22위 (작가, 종교인, 과학자를 비롯한 전 분야 포함)


★ 약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려는 심리
그 근원을 밝히고 우리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경고한다

우리 사회의 법체계는 많은 부분이 혐오나 수치심과 같은 감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세계적인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에 따르면 감정도 신념의 집합체로서 공적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너스바움은 이러한 ‘혐오’와 ‘수치심’만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감정은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을 숨기려는 욕구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타자를 배척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즉 약자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는 강자들만의 부당한 논리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나는 일탈자를 낙인찍는 데 ‘정상’이라는 범주를 사용하는 것은 일정 정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원초적 수치심의 자연적 귀결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좋은 것을 제공하는 원천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유아기의 과도한 요구가 다양한 방식으로 충족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자궁 또는 가슴과 하나가 된 유아기의 더없는 행복에 향수 어린 갈망이 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해서 안정 또는 완전함을 제공해 주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정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면에서 볼 때 일반적이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좋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안정을 찾는다. 정상인들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완전하고 좋은 사람으로 정의하고 그런 사람들로 자신을 에워쌈으로써, 위안을 찾고 안정이라는 환상을 얻는다. 정상성이라는 관념은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침입해 들어오는 자극을 덮어 주는 대리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한다.
―4장 “얼굴에 새기기: 수치심과 낙인”에서

세계적인 석학 너스바움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에서 출발하여 ‘동물’로서의 인간이 갖는 ‘취약성’에 주목하고, 그러한 취약성을 숨기는 감정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부정하고 정상/비정상을 구분 지으며 타자를 배제하려는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감정들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파괴한다. 풍부한 판례와 서양 정치철학사의 주요 이론을 총망라한 『혐오와 수치심』은 점점 더 복잡한 다문화 사회에서 제기될 수 있는 모든 공적 판단에 가장 근원적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다.

★ 인간을 어떤 존재로 이해할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존중하는 사회가 될까?

인간은 머리의 생각과 몸의 욕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서, 우리가 지닌 동물적인 몸 또한 모욕적이고 부끄러운 육체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받아 마땅하다. 마사 너스바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에서 인간의 군집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자와는 달리, 인간도 ‘욕구’를 가진 유한한 몸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취약한 인간이며, 바로 여기에 우리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에는 인간이 동물적 신체를 갖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배제한다. 법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법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타당한 근거 없이 편견과 사회적 낙인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 행위의 지침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감정들, 특히 수치심과 혐오, 그리고 질투심을 경계한다.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너무나 약하고 다른 사람의 이해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누구나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연약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또한 품위 있는 사회란 이러한 인간성을 부정하지 않고, 개인이 지닌 ‘역량’이 발현될 수 있도록 ‘촉진적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옮긴이 해제」에서

따라서 전통적인 사회 규범에 얽매여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며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사회적 낙인을 조장하는 공동체주의도 경계해야 할 것이며,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보지 못하고 사회 진보의 수단으로 보는 공리주의적인(사회계약론에 기초한) 자유주의도 반대한다. 마사 너스바움은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 퇴화하는 몸을 가족 있으며, 누구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자유주의의 인간관으로 제시한다.

이처럼 “가치의 이질성과 비교 불가능성을 주장하면서 삶의 다양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간의 잘 삶(human flourishing)'에 대한 보편 이론을 추구하는 너스바움의 주장에 대하여 곽준혁 교수는 ”문화 상대주의가 아니면서도 절대적 진리를 고집함으로써 다양성을 파괴하는 형이상학적 본질주의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보편주의“라고 한다.


★ 차이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혐오’가 아니라
부당함에 반대하는 ‘분노’의 감정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마사 너스바움은 감정을 배제한 법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각각의 감정이 담고 있는 인지적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 이것이 법적 근거로 적합한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은 단순히 신체적 반응이나 정서적 감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요한 대상에 대한 평가적 판단을 수반한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혐오와 수치심을 분석함으로써, 마사 너스바움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법적 역할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이 두 감정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인간임을 숨기고 부정하려는 인지적 판단과 욕구를 수반하기 때문에 사회 내에서 취약한 위치를 지닌 집단을 배척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흉악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강한 응보주의)를 추동하는 대중적 감정의 하나는 범죄자에 대한 혐오다. 사람들은 끔찍한 살인자나 아동 성범죄자를 ‘인간쓰레기’나 ‘더러운 벌레’처럼 여긴다. 흉악 범죄가 일어나면 자신이 지닌 인간적 약함을 숨기기 위해 범죄자의 ‘비정상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스바움은 범죄자의 잘못에 대해 분노해야지, 이들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혐오는 상대방도 평등한 시민적 지위를 갖는 존재라는 사고를 수반하지 않으며, 자신 안의 약함과 문제를 반성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옮긴이 해제」에서

“혐오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마다 대면하기 힘든 우리 자신에 관한 사실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너스바움은 특정 범죄가 특별히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가중 처벌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를 주의 깊게 구분해서, 그들이 저지른 나쁘거나 유해한 행위를 비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으로서 그들에 대한 존중은 유지되어야 한다.
―「혐오와 우리의 동물적 육체」에서

혐오와 분노의 감정은 정치인들의 부패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분노는 저항과 건설적인 참여라는 목표를 향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혐오는 도피와 방기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을 설명한다.

분노는 위해 또는 손상에 대한 반응이며,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을 지닌다는 나의 말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기 자신인 특정 경우에 죄책감이 생긴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죄책감은 일종의 자기 처벌적 분노이며, 자신이 잘못이나 위해를 저질렀다는 인식에서 생긴다. 수치심은 결점이나 불완전성에 주목하고 감정을 느끼는 그 사람 자체가 지니는 일정한 측면들에 관심을 두지만, 죄책감은 어떠한 행위(또는 어떠한 행위를 바랬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죄책감은 행위자가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보면서, 행위자 전체로 확장되지 않는 것이다.
―「수치심과 낙인」에서


★ 낙인찍는 문화를 조장하는 ‘수치심’의 감정은
자유주의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

수치심은 자신이 완벽하길 기대하지만, 약하고 불충분하다는 판단을 내포한다. 너스바움은 정신분석학의 대상관계 이론을 바탕으로, 대체로 사람들은 타인을 일탈자로 낙인찍고 자신을 ‘정상인’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도덕적 공황’을 느끼고, 수치심을 안겨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원초적 수치심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않는 완전한 존재가 되려는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규범적으로 적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와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법적 근거로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너스바움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녀는 범죄자 신상공개와 같이 수치심을 주는 처벌에 반대한다. 이러한 처벌은 대상이 되는 사람이 지닌 평등한 인간 존엄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시민들이 수치심과 낙인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가난 때문에 모욕과 낙인을 받지 않도록 물질적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사회, 타인에게 위해를 주지 않는 성적 취향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 우리 모두가 장애를 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신체적, 정신적 특이 장애를 지닌 사람을 공동체 안으로 수용하는 사회가 그것이다.
―「옮긴이 해제」에서

수치심은 또한 ‘나르시시즘’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아이에 대한 부모의 강한 통제에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은 완전해지고 완전한 통제력을 지니려는 원초적 욕구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폄하와 어떤 형태의 공격성(자아의 나르시시즘적 계획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격렬하게 비난하는)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올바르게 유발된 수치심의 경우에도 한 구석에는 나르시시즘과 이와 연관된 공격성이 항상 잠재해 있기 마련이다.
―「수치심과 낙인」에서

아이가 근면하게 지내도록 독려한다는 미명 아래 아이를 통제하고, 아이를 자신들이 지닌 이상적인 자기상처럼 만들려고 하는 부모가 그 예이다. 그래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랑이나 우정이 깃든 관계에서 생기는 정중한 비판의 표현일 수 있지만, 사랑이나 우정도 나르시시즘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기 때문에 이 속에 수치심을 겪는 사람의 인간성 자체를 과소평가하는 미묘한 나르시시즘적 통제의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수치심과 낙인」에서

인류 역사의 진보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 때 많이 생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회는 ‘일반적인 것’을 ‘정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때 일반적인 것은 다른 것을 낙인찍을 수 있는 대상으로 설정”하면서 구범적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 철학자는 ‘인류를 위한 법률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인문학은 모든 학문과 직업의 기초

인간의 공적/사적 영역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조계는 지금도 똑똑한 인재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삶의 복잡성을 고려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너스바움은 전작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에서도 강조했지만,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령 법정에서는 법률적 지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법이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하는 책임 있는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스바움은 법학 교육에서 핵심적인 3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스스로 자신의 사고를 반성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자국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구적 차원에서 비교 시각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 다른 사람이 처한 곤경을 공감할 수 있는 서사적 상상력이다.

그리고 고대철학과 고전문학에서 정치철학, 법철학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게 섭렵하고 있는 인문학자 너스바움을 읽는 독서 경험 자체가 추론 능력과 서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이다. 이 책은 최종적으로 인간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너스바움이 한국 독자에게 주는 함의에 대해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공격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나 공격성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주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 대한 멸시와 폭려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개인의 열등감을 키우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경쟁이 이뤄지는 조건이 너무나 불평등함에도 불구하고, 경쟁의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이 져야 하는 사회는 강함과 힘을 숭상하고, 부드러움과 약함을 두려워하는 사회심리를 유발한다. 공격성이 자신이 지닌 약함을 감추려는 욕구를 반영한다는 너스바움의 분석을 고려한다면, 한국 사회에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개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소리다.
―「옮긴이의 말」에서

증오 범죄, 그들은 확실한 신념에서 범죄를 저지르는가? 결코 아니다. 어느 사회 집단이든 간에 특이한 행위와 사람에 대해 수치심을 씌워 낙인찍으려 하기 때문에, 법은 이러한 행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을 넘어 수치심을 당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법이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너스바움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특정 집단이 약자를 공격하는 건 그들이 단지 “법이 보호하지 않을 사람”임을 알아보기 때문인 연유다.

게이에 대한 폭력 행위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캄스톡(Gary David Comstock)에 따르면, 폭력을 일삼는 사람의 대부분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은 말썽꾸러기 청년들이다. 이들은 단지 경찰이 보호하지 않을 사람을 골라 두들겨 패길 원한다. 이들은 게이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게이이기 때문에 이들을 선택하고 이런 생각에서 증오범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사회가 이러한 행위를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신호를 받으면, 적어도 그들 중 다수는 아마 다른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6 수치심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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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동정심 등과는 달리 혐오와 수치심은 법의 근거로서 기능하는 감정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되는 이유를 밝힌다. 이는 근대 이후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인 자유주의와 관련돼 있다. 밀의 [자유론]를 깊이있게 해석하고 공동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비판한 후반부가 압권이다.
orangelamp ㅣ 2018-01-10 l 공감(1) ㅣ 댓글(0)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혐오를 조장하고 성행하게 만들었을까? 정말 의문이 드는 사안이지만, 이 책을 통해 혐오와 수치심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아리랑고개 ㅣ 2016-06-09 l 공감(1) ㅣ 댓글(0)



사람들이 입에 잘 담지않는 `혐오`. 그 혐오에 대한 관점, 그런 표현들이 가져다주는 우리 사회 듯 다양한 혐오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처음보는 사람은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꼭 한번씩 보았으면 하는 도서이다. 추천~!!
흑백나무 ㅣ 2016-06-09 l 공감(3) ㅣ 댓글(0)



700여페이지의 엄청난 분량이지만 일독해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좋은 도서에요1!!
burn1235 ㅣ 2016-05-29 l 공감(1) ㅣ 댓글(0)



이 정도의 학술서에 일러두기와 찾아보기조차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역주와 원주의 구분이 어디에도 없어서 본문 하단의 역주를 원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본문의 대괄호도 역자의 것이지요? 확인하기 위해 원문을 찾아봐야 했습니다. 중쇄에는 일러두기라도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농 ㅣ 2016-05-17 l 공감(6)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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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4편




참으로 인간답다[혐오와 수치심] 모시빛 ㅣ 2017-12-31 ㅣ 공감(11) ㅣ 댓글 (0)


참으로 인간답다

혐오와 수치심-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제목으로는 단순히 혐오와 수치심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혐오를 하다보면 수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까 어떤 식으로 이야기의 연결성이 있는가, 혐오를 받은 경우 혐오에 대해 같은 반응을 하고 난 뒤 찾아오는 자괴감과 수치감을 경험하였기에 이에 대한 감정의 기제를 생각했다.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이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혐오와 수치심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는데 저자는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였다. 저자는 감정이 법으로 작동하는 기제를 보여주며 흥미를 유도한다.

법을 판결하는 이에게는 감정이 있을지언정 ‘법률’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고 이성이 가득하다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상당부분 법률은 이 감정적인 반응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감정은 분별없는 정서적 격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개인이 지닌 중요한 가치와 목적에 맞게 조율된 지적 반응”이다.





감정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인 사례에 초점을 맞춰, 어떠한 사람이 특정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다만 그 평가에 대해서는 개별 사례별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무엇보다 수치와 혐오심에서 발현된 법의 경우 타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데 이용될 수 있기에 이 두 감정에서 나아간 법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혐오와 수치심은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을 숨기려는 욕구를 수반”하며 이것을 숨기기 위해 타인의 공격과 배제로 이어진다. 이때 이 감정은 대체로 강자들을 위한 논리로 확대 재생산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은 완전해지고 완전한 통제력을 지니려는 원초적 욕구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폄하와 어떤 형태의 공격성(자아의 나르시시즘적 계획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격렬하게 비난하는)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올바르게 유발된 수치심의 경우에도 한 구석에는 나르시시즘과 이와 연관된 공격성이 항상 잠재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왜 부끄럽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혐오하고 수치스럽게 느끼는가. 이에 관하여 고대철학과 문학, 정치철학, 정신분석학 등등의 논의를 가져와 전개하는데 흥미로움과 더불어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나약함을 숨기려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가는 인간의 감정속엔 완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나르시시즘이 숨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들은 타인의 권리와 필요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완전함에 대한 열망,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이란 부제가 결국 인간의 신적인 존재가 되고픈 갈망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늘 당하는 존재는 인간들 중에서도 더 약하고 약한 이들이 된다.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같이 하는 것보다 내 것을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갈급한 일이 된다. 이렇게 세상은 늘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 내고 또한 그들로 인해 힘을 얻는 존재들이 있다.





혐오는 우리가 될 수 없는 어떤 존재, 즉 동물성을 갖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소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혐오에 담긴] 오염에 대한 사고는 우리 자신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려는 야망을 드러내며, 이러한 야망은(어느 곳이나 존재한다 할지라도) 자기기만과 헛된 열망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약함을 숨기려 외부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한다는, 타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자신의 우월감을 강화하려는 이 감정들을 “정한론”으로 이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제 나라가 흔들릴 때마다, 서구에게 뺨맞을 때마다 그 실패와 좌절과 불만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조선침공을 주장한 일본인의 주장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사실 세부적인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동감입니다라고 표방하지는 못하겠다.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와 같은 수치심을 주는 처벌을 저자는 반대하지만 저자의 논리에 따라 당연하죠!라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사고의 정리가 더 필요하다. 이래서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은 다른가 싶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념과, 호혜성과 상호 존중으로 대변되는 사회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질서에 대한 사고다. 이때 상호 존중이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궁극적인 선에 대한 다양한 관념을 존중하는 것을 포함한다. 감정에 대한 분석과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은 서로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사고방식에 내재된 이상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혐오와 수치심이 법의 토대로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게 될 때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감정이 법적 규제의 근거로 사용되면, 서로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상호 존중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오도하여 부르는 사람에 맞게 세상을 설계해 왔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 버섯 ㅣ 2017-11-19 ㅣ 공감(0) ㅣ 댓글 (0)



'선천적'이라는 말이 인간 행위와 무관하다는 뜻이라면 핸디캡(handicap)은 '선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 기능의 일부 영역(들)에 생긴 손상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가 이러한 손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다루는 경우에만 핸디캡이 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에게는 장애가 있다. 죽을 운명이고, 시력이 나쁘며, 무릎이 약하고, 등과 목이 안 좋고 건망증이 있는 등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다수(또는 가장 강력한 집단)가 이러한 장애를 갖고 있을 때 사회는 여기에 맞춰서 적응한다. (-) 특정 사람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특정한 성취를 이뤄내더라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성취를 '정상적'인 일반인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4분에 1600여 미터를 달릴 수 있는 사람만 일하러 갈 수 있는 세상을 설계하지 않으며, 우리가 4분에 1600여 미터를 갈 수 있도록 돕는 인공 기관(자동차, 기차, 버스)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해 맞추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지닌 손상이 일반적이지 않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걷거나 달리는 사람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위해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자신의 발로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 사이에 타고난 '선천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인간이 갖고 있는 재주를 통해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을 보충한다. 차이가 있다면 차는 일반적이고 휠체어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 유럽과 미국에서 유능한 성인이라는 허구를 점점 더 지지하면서, 이른바 "스스로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비용을 공개적으로 규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애인교육법과 장애인법이 요구하는 특별한 지원 구조에 드는 비용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비용은 장애인과 이른바 비장애인 간의 사회 이전의 차이에서 생기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를 평균적인 사람, 즉 우리가 '정상'이라고 오도하여 부르는 사람에 맞게 세상을 설계해 왔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이다. 우리는 완벽성이나 완전무결함이라는 나르시시즘적 허구로 정당화하면서, 사회 제도가 지배 집단의 필요에 의해 입각해 조직되어 온 결과 좀 더 큰 취약성을 안게 된 다수의 사람들이 지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_마사 너스바움_혐오와 수치심




여성 혐오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헤르메스 ㅣ 2016-06-09 ㅣ 공감(18) ㅣ 댓글 (0)


'혐오와 수치심'은 '시적 정의'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마사 너스바움의 책이다. 그녀는 계속 '공적인 삶의 중요성'을 강변해왔다. 공적인 삶이란 단순히 말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시적 정의'는 바로 그런 삶을 영위하는데 문학적 상상력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란 이야기였다. 따지고 보면 타인의 삶이란 우리 자신과 멀다. 타인의 내면을 내 마음처럼 볼 수 없고, 그가 삶에서 당하는 체험을 내 피부처럼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바로 타인의 상황을 마치 나의 일처럼 여기는 상상력이다. 그럴 때 문학은 좋은 토양이 된다. 문학은 무엇보다 타인의 삶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독서를 통해 그들의 상황과 내면을 경험할 수 있다. 문학은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준다. 그런 면에서 공적인 삶을 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만든다. 이기가 아닌 이타, 이용이 아닌 배려, 강요가 아닌 이해의 장으로. 그래서 너스바움은 교육이나 재판 같은 공적 제도가 문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그녀에겐 뚜렷한 지향점이 있다. 쉽게 말해, 타인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것이다. 이것을 고려하면 그녀가 왜 '혐오와 수치심'에 주목하는 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생각해 보면, 혐오와 수치심은 타인과의 연대를 막는 대표적인 감정이 아니던가! 너스바움은 감정에 주목한다. '시적 정의'에서 강조한 문학적 상상력의 대상 역시 따지고 보면 타인의 감정이었다. 그녀는 감정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비이성적이며 자연 발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성적이며 원인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그녀는 감정에 대해 '인지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감정은 배고픔이나 목마름 같은 욕구와 다르다. 왜냐하면 감정의 경우에는 믿음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정은 대상에 대한 훨씬 더 많은 사고를 수반한다. (p. 64)





감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녀는 공공성이 있는 공적 제도들을 탐구하는데, 그 제도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법이다. 그런데 그 법이 감정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감정이 인지적 산물이며 지금 우리의 법이 감정 상태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의 1장에서 충분히 논증한다. 그런 법과의 상관관계에 있어 혐오와 수치심은 더욱 중요해지는데, 그것은 혐오와 수치심이 무엇보다 범죄를 규정하는 형법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은 어떤 것이 범죄가 되는가를 규정한다. 여기서 법과 도덕은 구별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비도덕적이라고 해서 다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을 한다. 쉽게 표현하면, 비도덕적인데다 처벌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는 것에 대해서만 국가는 범죄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어느 정도 비도덕적이어야 국가가 범죄로 규정하고 개입하는가?




여기에 대해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이 하나의 원리를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해악의 원리(이 책에서는 '위해의 원리'로 번역하고 있다.) 다. 즉 동의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위해가 될 행위만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원리다. 달리 말해, 스스로 자신에게 해로운 행위를 하거나 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방이 동의를 하고 자유롭게 위해 행위에 참여한 경우는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영미법계는 이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렇게 밀의 원리를 따를 경우 문제가 생긴다. 혐오는 위해의 원리에 잘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엔 동성애자를 처벌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란 영화로 이제는 우리들에게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앨런 튜링을 생각해 보라. 그는 절대 해독이 불가능하다던 독일군의 암호 '애니그마'를 풀어 연합군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었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당시 영국에 있었던 동성애자 금지법에 의하여 범죄자가 되어 법원으로부터 화학적 거세형을 받았다. 결국 그는 거세로 인한 우울증으로 사과에다 독약을 주사하여 그것을 깨물고는 죽는다. 그러나 동성애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밀의 원리를 따른다면 결코 범죄가 될 수 없다. 앨런 튜링이 자살했던 것은 오로지 동성애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그런데 데블린은 이런 혐오마저 범죄로 규정하려 했다. 그는 도덕도 법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학자였다.




미국에도 그런 법이 있다. 이른바 소도미 법이다. 그 법은 불륜, 간통, 동성애 행위를 포함하여 상호 합의 아래 이뤄지는 다양한 형태의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한다. 앞서 밀의 원리에 따르면 상대방의 동의가 있으면 범죄가 되지 않는다. 이 법은 법이 감정을 기반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 그것이 아니면 이 법은 성립할 수 없다. 밀의 원리에 명백하게 저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블린은 이 법을 옹호한다. 혐오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밀의 원리에 위배된다. 하지만 데블린은 밀의 원리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혐오를 범죄로 규정한다. 데블린의 생각은 이러하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상호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는데 혐오는 바로 그 도덕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스바움은 그런 데블린의 생각이 도덕의 최소한으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했던 형법의 기본 정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데블린이 말하는 최소한의 도덕성이 사회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이 되어야 하지, 혐오를 근거로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데블린의 후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카스, 밀러 그리고 케이헌이 그러하다. 모두들 위해의 원리에 해당되지 않는 혐오도 법이 포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너스바움은 2장에서 그들의 논리를 차례로 논파한다. 그리고 그런 혐오는 법에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논증한다.




그런 다음, 3장에서 너스바움은 혐오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파헤친다. 사람들은 특정 대상에 대해 왜 혐오감을 갖는 것인가? 그녀는 단적으로 혐오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밝힌다. 혐오는 우리의 불안과 공포의 산물인데,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을 잘 살펴보면 거기엔 두 가지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전염의 공포요, 다른 하나는 추락의 공포다.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즉 우리는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추락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 때 혐오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인데, 얼마든지 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혐오의 감정을 배태한다.




최근 강남역 묻지마 살인으로 저변에 깔려 있던 여성 혐오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했는데, 너스바움에 따르면 그것도 다 설명이 된다. 물론 이것은 수치심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것이지만 혐오의 경우에도 들어맞는 설명이다. 왜냐하면 특히나 남성의 경우,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이 곧잘 혐오로 연결되는 까닭이다. 너스바움은 여성 혐오가 남성이 아주 어릴 때부터 받는 사회화 과정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남성은 어릴 때, 여성과는 다르게 사회화 된다. 여성들은 부모에게서 자신의 감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잘 표현하며 다른 이의 감정에 자주 공감하도록 하는 사회화를 거치지만, 남성의 경우엔 반대다. 아무도 자신의 내적 세계를 탐구하고 표현하라고 말해주지 않으며 어떤 감정 상태에 대해 물어도 남자니까 하는 식으로 간단한 대답으로 마무리 된다. 남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보단 무시하거나 감추도록 훈련 받는다. 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 우는 것도 모두 자신의 흠이 된다. 그런 남성성의 강요는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만든다.




35년간 남학생을 치료해 온 임상 심리학자 댄 킨들론과 마이클 톰슨에 따르면 소년들이 흔히 보이는 공격성은 결코 테스토스테론의 효과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호르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여성성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공격적인 적대감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혐오는 자신의 수치와 관계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나약하다는 생각 때문에 추락에 대한 불안이 생겨나고, 그러다 결국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전염의 공포가 엄습한다. 여성 혐오는 이렇게 자리 잡는다. 결국 여성 혐오란 자신이 느끼는 여성성에 대한 편협하기 그지 없는 적대의 산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결국 타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여성성이 절대 부족함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것은 오로지 사회의 강요가 초래한 왜곡된 시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에서 고통을 느낀다면 사회가 잘못된 안경을 씌운 것에 있다. 더구나 그 색안경은 얼마든지 버려도 되는 형편없는 것이다. 그러니 여성 혐오 또한 100% 부조리일 뿐이다.




'혐오와 수치심'은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혐오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충분히 논증해 보인다. 논의는 체계적이고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쉽게 혐오와 수치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의 형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우리들에게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분노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홧김에 저지르는 폭행이나 상해치사가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야 할까?'에 대해, 너스바움이 남성의 사회화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못했고 교육 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더욱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스바움의 말마따나 감정은 이성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자신의 감정들에 대해 차분히 헤아려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자유주의를 병들게 하는 혐오 cyrus ㅣ 2016-06-09 ㅣ 공감(33) ㅣ 댓글 (8)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 남부에 대지진이 엄습했다. 사람들은 미처 불도 끄지 못한 채 거리로 뛰쳐나왔고 도시는 곧 불길에 휩싸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들리는 땅, 타오르는 화염보다 유언비어에 더 큰 공포를 느꼈다. 일본 정부는 극도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고의로 유언비어를 퍼뜨려 분노한 민심의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혼란을 틈타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그 결과 무고한 재일 한국인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스스로 사실로 단정하고 군경을 동원해 직접 ‘조선인 사냥’에 나섰다. 일본인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총칼 등으로 닥치는 대로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조선인들을 ‘나는 조선인입니다’라는 팻말 옆에 묶어놓기도 했다. 그들의 학살 방법은 잔인함과 광기의 극치였다.















관동 대학살은 극한의 현실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과 좌절을 힘이 약한 상대에 대한 분노로 전이시켜 배설하도록 만든 전형적 정치 선동이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했듯 역사는 반복된다. 불행히도 잘못된 역사 또한 그렇다. 일본에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란 극우 단체가 있다. 이들은 반한(反韓) 나아가 혐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거침이 없다. 한국인에 대해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 ‘조선인은 기생충’ ‘바퀴벌레 구더기 조선인들’ 등 부당하게 한국인을 모욕하는 피켓과 구호가 난무한다. 재특회의 구성원은 젊은 층으로 이뤄져 있다. 저임금의 시간제 근로자 또는 최근 갑자기 늘어난 계약직 근로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좌절감을 분출하는 것이 이들 단체의 목적이다.



인간은 늘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선택의 부재, 대안 없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심하면 ‘죽음의 공포’와 맞먹는다. 우리는 그것을 아예 모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든가, 아니면 자신에게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거부해야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유도되어 행동한다. 그럴수록 찐득한 혐오의 그림자가 우리 몸에 달라붙는다.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오염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미 동성애자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과 비합리적인 혐오와 공포를 호모포비아(Homophobia)라고 명명했다. 동성애란 말만 들어도 왠지 소름이 끼치고 역겹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성애자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는 감정이나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세균이 분열하면서 번식하는 것처럼 호모포비아 분위기가 확산하면 ‘혐오범죄’로 이어진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때리거나 심지어 죽인다. 동성애뿐만 아니라 여성과 외국인, 특정인을 비하할 때 등장하는 냄새나 분비물에 관한 표현은 대표적인 혐오 발언 사례다.












이 책의 두 번째 글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임옥희 편) 27~28쪽에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 핵심 내용이 잘 정리되어 소개되었다. 《혐오와 수치심》의 두꺼운 분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독자는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27~28쪽을 읽으면 된다.







인터넷에 서식하는 수많은 남성이 ‘여성’이라는 단어만 보면 부모님의 원수를 만난 듯이 발광한다. 여성의 성기와 벼슬아치를 합친 ‘보슬아치’란 비하 표현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보지 달린 게 무슨 벼슬이냐’라는 의미다.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김치녀’는 그나마 점잖은 수준이다. 여성을 노골적으로 폄하해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한정시키는 단어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역감정에 휘둘렸다. 특정 지역이나 출신들을 맹목적으로 비하하며 편을 가르고 감정싸움을 벌여왔다.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감정은 전쟁 양상이다. 호남 사람들을 ‘홍어’로 비하한다. 이런 지역적인 특성을 이용해 삭힌 홍어가 풍기는 냄새를 호남 사람들의 인격과 동일시해서 비하하는 데 쓴다. 광주 민주항쟁 당시 시민군 전사자의 시신 썩는 냄새를 진압군이 ‘홍어 삭힌 냄새’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희생자들을 빗댄 ‘통구이’ 등도 경상도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다.















혐오는 수치심을 유발한다. 부정적 수치심은 자기 파괴적 힘을 가진다. 오랫동안 혐오 발언에 시달렸던 재일 조선인들은 극우 세력의 무차별 폭력 및 혐한 시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현재까지도 지워지지 않은 낙인은 재일 조선인들의 활동을 제약한다. 차별과 강압의 부당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려면 일본인들의 보복을 감당해야 한다. 재일 조선인들은 언제 또 다시 공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무차별 폭력이나 혐한 시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부정적 수치심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가 상실된다. 반면 재특회의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오토코구미’의 행동대장 다카하시는 혐한 시위를 보고 있으면 수치스럽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다카하시는 한때 반한 감정을 가진 우익이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고집하면서 재일 조선인을 차별하는 재특회의 무지함에 부끄러움을 느껴 오코토구미에 들어가게 됐다. 이처럼 혐한 시위를 반대하는 일본인들은 혐오의 감정이 사회적 약자에게만 광적으로 표출하는 잘못된 일본 사회에 수치심을 느낀다. 이는 수치심도 긍정적으로, 건설적 방향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독특한 사례다.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자신들 기준대로 ‘종북’ 타령하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테러방지법 시행을 찬성한다. 이미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국가보안법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테러방지법을 도입하자고? 그들은 국가보안법으로 대통령을 음해하는 종북 세력을 처벌하고, 테러방지법으로 간첩 활동을 하는 종북 세력의 군사적 행동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무고한 진보 세력을 간첩으로 만들어버린 사례가 있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실체 없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에 사람들 머릿속에 공산당은 ‘빨갱이 괴물’로 자리 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파 세력은 좌파 세력을 극도로 ‘혐오’해서 법적으로 통제하려 든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한다. 일베의 혐오 발언의 심각성을 지적하면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일베를 옹호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우파의 이중성. 우파인 나도 그들 보기가 부끄럽다. 그들은 자신들이 완벽하고 이성적인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한다. 자신들의 단점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점을 은폐하기 위해서 '정신승리'에 가까운 변명만 늘어놓는다.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은 수치심을 주는 처벌이 있어야 공동체의 도덕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 하위 집단에 대한 지배 집단의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반대한다. 집단적 혐오는 파괴적이다. 역사적으로 지배 집단은 혐오라는 감정을 이용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반대 세력을 억압했다. 관동 대학살,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혐오 감정을 위악적으로 배설해서 생긴 비극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심각하다. 사회는 다양성과 자유의 목을 졸라 여기저기에 족쇄를 채운다. 그리고 ‘차이’를 ‘차별’로 키우고 모든 걸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어 힘의 서열을 매긴다. 부당한 차별은 사회 내의 정의와 평등에 어긋난다.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가 전염된 사회는 자유주의를 병들게 한다.







불완전한 삶, 혐오와 수치심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pukeng ㅣ 2015-06-22 ㅣ 공감(6) ㅣ 댓글 (0)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사람을 살해한 부모의 이야기다. 주인공 아버지는 딸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세네명의 범인을 찾아 한 명 한 명씩 살해한다. 마지막 범인은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예상하고 도망친다. 아버지와 범인은 눈이 덮힌 산에서 추격전을 벌이다가 결국 아버지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다. 성폭행 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살해한 부모. 만약 이 아버지가 스스로 죽지 않아 살인죄로 법정에 섰다면, 그저 ‘사람 셋을 죽인 살인마’로 설명이 가능할까? 이러한 사례는 ‘감정’과 ‘이성’이라는 분류가 얼마나 허상인지, 또 법이라는 체제가 감정이 배제된 이성으로서만 세워져야한다는 견해에 대해 혼란을 준다.



<혐오와 수치심>을 쓴 마사 너스바움(Martha Nurssbaum)이 책을 시작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서문 <감정도 분명 사고를 담고 있다>에서 너스바움은 감정과 이성이라는 이분법이 틀렸다고 말한다. 감정은 이성이라는, 사고하는 체제 위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법도 사실상 생각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떠한 침해가 포악한지, 어떤 상실이 인간에게 큰 슬픔을 주는지, 인간이 지닌 어떤 취약성이 두려움의 근거가 되는지에 대한 고유된 인식이 없다면, 왜 우리가 법에서 특정한 형태의 위해와 손상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즉 여러 가지 면에서 위해와 손상을 입기 쉬운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법을 필요로 한다. (22p)



감정이라는 것은 사고 위에 세워졌다는 말이다. <방황하는 칼날>의 아버지가 살인마임에도 우리가 동정심을 품는 이유는, 아버지의 분노가 타당하다는 사고 위에서 생겨난 감정인 것처럼 말이다. 감정이라는 것을 이성과 반대 항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감정이 사고 위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는 결국 감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을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에 종종 소개되는 ‘싸이코패스’ 환자가 그렇듯 말이다. 혹은 자신이 저런 감정을 가진 대중들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그렇다. 루소는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이 하층 계급에 대해 동정심을 결여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은 자신을 삶의 영고성쇠에 놓인 “인간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기”때문이라고 말했다.(101p)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사고를 한다면 감정은 이성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래서 너스바움은 감정을 법에 끌어들이기를 망설이면 안된다고 말한다.




법에서 감정에 호소하는 모든 것을 싸잡아 비난하거나, 법이론가들이 동정심, 분개 또는 불가항력적인 두려움에 대한 호소를 검토할 때 매우 자주 듣게 되는 ‘감정 대 이성’이라는 강력하면서도 잘못된 대조를 사용해서 이러한 주장을 기각해서는 안된다. 만약 모든 감정이 복잡한 평가적 인지를 포함하고 있다면 그러한 요소를 한 묶음으로 비합리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143p)



법에 감정을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어떤 감정을 타당하다고 보느냐다. 너스바움은 질문해야 하는 것은 분노와 두려움같은 감정이 이성적인 사람에게 생기냐, 안생기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분노와 두려움이 타당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가가 문제(135p)라고 말한다. 즉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이 휘둘리지 않아야 할 감정이 어떤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너사바움에게 그 감정은 혐오와 수치심이다.



우선 너사바움은 혐오가 본능적이고 진화적 근거가 있다는 입장을 심리학자 로진과 앵기알, 밀러를 통해 소개한다. 이들의 혐오는 위험과 다르다. 책에 나온 예를 따르자면, 살균된 바퀴벌레가루가 여전히 혐오스럽다는 사실은 혐오대상에서 위험이 제거되더라도 여전히 혐오가 남아있다는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혐오는 이질적인 것이며 혐오로 인해 자신이 더러워질 수 있다는 사고를 수반한다. 이절적인 것이란 말은 그것이 인간답지 않은 것, 혹은 자신이 가진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 분비물 중에서 눈물만이 혐오를 유발하지 않는 이유는, 추정컨대 눈물이 유일하게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물을 통해 우리가 동물과 같은 존재하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는다. 반면 배설물, 콧물, 정액, 다른 동물적 신체 분비물은 우리를 오염시킨다고 여겨진다.(...)혐오에 담긴 핵심적 사고는 동물성을 간직한 동물의 분비물을 섭취하면, 우리 자신이 동물의 지위로 격하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170p)



너스바움은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분개와 혐오를 구분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성적인 사람의 반응으로 분개에 휩쓸리는 것은 타당할 수 있지만 혐오에 휩쓸리는 것은 타당치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개는 인과적 사고와 위해의 심각성에 대한 평가이지만 혐오는 위험성이 없더라도 그 대상이 자신을 더럽히지는 않을까하는 ‘신비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혐오의 배경이 되는 인간이 갖는 순수함에 대한 환상은 건설적이지 않다(199p)고 말한다. 그러니 어떤 집단이 비도덕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오물처럼 취급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200p) 너사바움은 동성애혐오와 여성혐오가 이런 혐오의 특성을 잘보여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특정집단을 겨냥해 투영되는 혐오의 가장 대표적인 대상은 여성의 몸이다. 여성은 출산을 하기 때문에 동물적 삶의 연속성, 몸의 유한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남성의 몸에서 빠져나간 정액이 남성에게 혐오를 유발한다면, 남성들은 여성의 몸 안에 있는 혐오물질로 인해 여성들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8p)



동성애혐오도 이와 마찬가지다.




혐오를 일으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성동성애자에 대한 남성의 사고이고, 그 속에는 항문으로 침투될 수 있다는 상상이 스며 있다. 남성의 몸 안에서 정액과 배설물이 함께 혼합된다는 생각은 상상 가능한 가장 혐오스러운 사고 중 하나다. 남성에게 침투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끈적임, 분비, 죽음을 막아주는 신성한 경계가 된다.(211p)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해 유독 심하게 나타나는 혐오 외에도 너사바움은 여러 가지 혐오와 얽힌 판례와 사례를 소개한다. 수많은 혐오들은 그 대상을 ‘이질적인 것’으로 명명한것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러한 특성들이 자신 안에도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불편해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실은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면 우리도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경고와 함께 자기 자신을 유심히 감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308p) 너사바움은 “우리는 우리가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한다”(308p)고 말한다. 그렇기에 혐오는 법에 끌어들일 수 있는 타당한 감정이 될 수 없다.




혐오가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추정상의 기준이 될 때, 그리고 특히 취약한 집단과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예속하고 주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때, 이는 위험한 사회적 감정이 된다. 우리는 혐오를 이용해야 하지만, 혐오가 담겨 있는 인간 사회의 비전에 기초해서 우리의 법률세계를 건설해 나가서는 안된다. (314p)



다음으로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혐오보다 발빠르게 법적 영역에 침투했다. 아주 쉬운 예로, 성폭행범의 신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위한 당위도 있지만 범인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행위다. 혐오가 법적인 영역에 들어오는 것보다 어쩌면 타당한 이유다. 범인은 수치심을 느낄만큼의 죄를 저질렀다는 주장은 보편적이다. 대표적으로 공동체주의 정치사상가 아미타이 에치오니도 수치심을 주는 처벌을 공유된 도덕적 가치를 표현하고 강화하는 방법으로 추천(321p)하고 있다. 이렇듯 수치심이 법적 영역에 들어오기에 타당한 감정이냐는 문제는 혐오의 문제보다 복잡하다.



너사바움은 수치심을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반응하는 고통스러운 감정’(338p)이라고 정의한다. 수치심은 보통 생애 초기인 유아기의 경험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뱃속에 있었을 때 완벽한 상태만을 느꼈던 아기가 세상에 나와 누군가가 돌봐줘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느끼면서 수치심을 느낀다는 오래된 정신분석에 따른다. 그렇기에 혐오보다 문화를 뛰어넘는 유사성을 보인다. 수치심이 혐오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가지는 이유는 에치오니가 지적했듯 수치심이 혐오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건설적 수치심’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너사바움은 한국에서도 <긍정의 배신>으로 유명한 작가인 바버라 에렌라이히의 <빈곤의 경제>가 주는 감정을 예로 든다.




이 책에서 에렌라이히는 자격증 없이 직업을 구하는 여성 행세를 하면서 경험한 바를 기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근로 빈곤층에 충분한 주거와 고용 선택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의 주요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견론짓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미국인들이 이문제 대해 충분히 최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책감은 필요한 만큼 더는 발전하지 못한다. 적절한 감정은 수치심이다.” (386p)



지금껏 자신의 삶에 대해 지적을 받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결국 건설적인 자아를 만들고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스바움이 말하는 이 매력적인 수치심과 에치오니가 범죄자를 낙인찍을 때 사용했던 수치심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수치심이 어디에서부터 오느냐’이다. 수치심을 느끼게 된 동기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391p)는 것이다. 에치오니와 같이 사회가 주는, 곧 법이 시민에게 수치심을 주는 방식은 건설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다.



<혐오와 수치심>은 법의 영역에서 혐오와 수치심은 이성적인 인간이 느낄 타당한 감정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혐오를 부르고 법으로 수치심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너사바움은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누구나 아마 어떤 면에서는 장애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자유주의 사회를 형성하고자 할 때, 삶이란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해보인다. (624p)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2018/07/21

Aging Thoughtfully: Conversations about Retirement, Romance, Wrinkles, and Regret: 9780190600235: Medicine & Health Science Books @ Amazon.com





Aging Thoughtfully: Conversations about Retirement, Romance, Wrinkles, and Regret:

We all age differently, but we can learn from shared experiences and insights. The conversations, or paired essays, in Aging Thoughtfully combine a philosopher's approach with a lawyer-economist's.

Here are ideas about when to retire, how to refashion social security to help the elderly poor, how to learn from King Lear -- who did not retire successfully -- and whether to enjoy or criticize anti-aging cosmetic procedures. Some of the concerns are practical: philanthropic decisions, relations with one's children and grandchildren, the purchase of annuities, and how to provide for care in old age. Other topics are cultural, ranging from the treatment of aging women in a Strauss opera and various popular films, to a consideration of Donald Trump's (and other men's) marriages to much younger women.

These engaging, thoughtful, and often humorous exchanges show how stimulating discussions about our inevitable aging can be, and offer valuable insight into how we all might age more thoughtfully, and with zest and friendship.--------

Product details

Hardcover: 264 pages
Publisher: Oxford University Press; 1 edition (November 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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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Reviews

Review



"Nussbaum and Levmore have written a sweet book on 'humanomics,' deploying economics, law, philosophy, and literature, to craft a multidisciplinary guide to aging. They show that the stories imagined for our lives and our societies give us purchase in a way that science or history cannot quite. Wise in age themselves, Nussbaum and Levmore know full well that tips handed over on a plate like canapés cannot be the point. Old and young need this book."
-Deirdre Nansen McCloskey, UIC Distinguished Professor of Economics and of History Emerita, University of Illinois Chicago


"Aging Thoughtfully advances that goal, portraying the aging process as both universal and utterly idiosyncratic, and urging us to learn from each other and our shared history."--Los Angeles Review of Books



"Not just good but very good... Nussbaum and Levmore are as interested in asking the right questions as they are with notching the right answers."--Dwight Garner, New York Times


"These paired essays really are a conversation - thoughtful, penetrating, and hopeful - between Nussbaum (one of our wisest, smartest writers) and economist and lawyer Levmore."--Philadelphia Inquirer


"Nussbaum and Levmore provide important points for combating ageism while honoring the many changes that accompany aging. Aging Thoughtfully promises to provoke thoughtful discussion, especially among those at the cusp of older adulthood."--Christian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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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Martha C. Nussbaum is Ernst Freund Distinguished Service Professor of Law and Ethic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She is the author of Love's Knowledge, Sex and Social Justice, Animal Rights (edited with Cass Sunstein), From Disgust to Humanity, and Philosophical Interventions, among many.

Saul Levmore is Graham Distinguished Service Professor of Law, University of Chicago Law School. He is the co-author of American Guy: Masculinity in American Law and Literature.



Product details

Hardcover: 264 pages
Publisher: Oxford University Press; 1 edition (November 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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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tomer Reviews
3.5 out of 5 stars
24



Hande Z

4.0 out of 5 starsGive it a thoughtDecember 14, 2017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This is a book by two scholars from the University of Chicago telling us that old age does not suck. Nussbaum and Levmore have been aging for some time, and from the tone and content of this book, they clearly do not think themselves old. They take turns to express their thoughts on matters that concern people who have reached the point in their lives when aging, retirement, and death begin to intrude into their thoughts. Yet the authors declare that this book is not about dying.

Indeed, it is about living. The crucial qualification is that it is about living when our bodies are no longer youthful, and when there are clearly some physical things we should think carefully before trying. It is a book of encouragement – to think about what we do with the remainder of our lives, having reached thus far.

Retirement is a key point. Here the authors grapple with the question, ought we retire? Nussbaum has no intention to, and plans to continue teaching until death knocks her off her saddle. But the question is a general one as well. It involves issues of selfishness and economics. If the old do not go, how might the young rise to their places? Should we peer into retirement communities? They explore the modern trends, and the way retirement communities will change when societies change.

Using an array of established works by literary writers, from Cicero to Shakespeare, the authors address concerns of inheritance, of distribution when one is old. Using King Lear, they illustrate the problems concerning disinheritance and paying for care in our advanced years. Planning for succession is very much a subject one cannot put away for long. King Lear provides ample material in thinking about this topic.

The book also covers subjects concerning the aging of the body, and what we can do (and not do) about it. Naturally, maintaining beauty in old age is an important point – or is it? The idea of ‘disgust’ is discussed at length because this seems to affect the impressions on aging people, leading to bias and stigma. Sex and love in old age are not taboo or laughable subjects. They are, as the authors show, serious ones, and we can look forward to a more meaningful reflection of a sphere of life that people once thought was a preserve of the young and beautiful. The chapter on aging and friendship is one of the most thought-provoking one. We will enjoy the discussion on convivial conversations and the attraction of gossip, the quality of chatting that differs between younger and olde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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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people found this help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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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La Rosa

4.0 out of 5 starsEnjoyed it thoroughlyDecember 17, 2017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Enjoyed it thoroughly. Love the ingenious format of call and response essays. Thought-provoking for sure, but certainly not a light read. You'll find yourself reading paragraphs a second or third time in order to get all of the levels of meaning. I especially enjoyed Martha's use of the letters between Cicero and his good friend Atticus to illustrate how friendships take on new meaning as we age. Professorial for sure but it will make you think. Isn't that what professors are supposed to do?

4 people found this help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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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Carpenter

VINE VOICE
3.0 out of 5 stars
A Novel Approach to Good Topics that, Alas, Fails to be Very Interesting
December 11, 2017
Format: Hardcover|Vine Customer Review of Free Product( What's this? )

This book has eight chapters on topics of interest to the aging including Retirement Policy, Friendship, Aging Bodies, and Distributing Assets. Each chapter has two essays, one each from both authors (Martha Nussbaum and Saul Levmore).

Both authors are professor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and one of the weaknesses of this book is that they bring an academic perspective to all of the topics. They both exalt in the fact that they face no mandatory retirement age and look forward to working indefinitely. Nussbaum's essays, in particular, tend to be weighted toward cultural analyses including a rather long review of a Chicago production of King Lear and her analysis of several recent movies featuring aging stars in romantic relationships.

Levmore, a lawyer who also has expertise in Economics, tend to be more interesting. This surprised me as I generally prefer the philosophical perspective that I expected Nussbaum, a philosopher, to bring to the book. Both authors' essays suffer from too many references to points made later in the book and too few references to the essays of the author co-author.

The central chapters - which include essays on friendship, bodies, and looking back - are generally worthwhile and I wish they had brought similar energy to the opening and closing essays.

13 people found this helpful



L. Jonsson

VINE VOICE
3.0 out of 5 stars
Misleading look at the aging processJanuary 4, 2018
Format: Hardcover|Vine Customer Review of Free Product( What's this? )

"Aging Thoughtfully" was marketed to me as a practical book about the aging process. What I found when I read this book is that it was a philosophical look at the aging process, that will appeal to people who want to discuss age as it relates to other things at dinner parties.

This book which is written by Martha Nussbaum and Saul Levmore runs at 251 pages. It includes acknowledgements, an introduction and an index. It is divided into eight chapters, with two different sections-one by Nussbaum and one by Levmore. These sections either oppose one another, or compliment one another on the subject matter presented. Retirement plans, aging bodies, different looking bodies, romance, sex, and society's discrimination toward the elderly are all covered, with pro and con viewpoints. Retirement plans or issues with aging in general are compared to major literary characters (King Lear and how he did not have a good retirement plan) or literary figures such as Cicero and Shakespeare. Celebrities such as Ivana Trump and how they have handled rejection due to aging is also discussed.

This book is interesting if you plan to hold your own at your next dinner party in discussing the psychology of aging and how it applies to celebrities and other historical figures. A good debate will be assured with the introduction of this book, and the topics therein.

However, I was expecting a book that simply discussed growing old and the benefits and drawbacks of the aging process. I feel this book is being marketed incorrectly, and should be marketed as a philosophy or sociology type book and not under the psychology section at all. The topics are difficult enough to talk about, much less read about and the writing style of either author does not help with that. I did not enjoy reading this book and the subject matter is depressing, when it should be enligh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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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eople found this help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