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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한국불교의 상명하복식 유교적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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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oa2 tAufSggpunsnonsforhhtt c2uetdd016 ·

현각 스님의 한국 불교에 대한 비판이 불교계에서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그 글을 보았다.

승가의 현실과 종단의 내막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뭐라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그 비판 가운데 ‘한국불교의 상명하복식 유교적 관습’이란 말이 나오는데, ‘유교적 관습’과 ‘공자’를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점은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런 ‘유교적 관습’이 한국 사회의 도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유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공자의 사상이나 실천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나는 60이 넘어 공자의 사상에 접한 말하자면 아마츄어지만, 내가 접한 공자는 신분‧ 계층‧ 나이를 그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차원으로 넘어선 소통의 달인(?)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제자들이 본 공자의 모습은 다음의 문장 속에 표현되어 있다.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다. 毋意‧ 毋必 ‧ 毋固 ‧ 毋我가 그것이다’

석가의 깨달음과 표현은 달라도 비슷한 것으로 내게는 다가왔다.

내가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聖人들의  깨달음이나 가르침이 2500여년 간 인류 정신의 축(軸)으로 작용해 왔지만, 실제로는 그의 후계자들과 권력이나 기득권층 등에 의해 왜곡되어온 것으로부터 그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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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이병철



이른바 축의 시대의 스승들의 깨우침과 그 메시지가 그후 어떻게 왜곡되고 어떻게 이용되어왔는가는 새삼 논할 필요가 없겠지요. 문제는 지금도 종교집단이나 권력이나 사회집단들이 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과 체제유지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선각자들의 가르침에 다가가는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싶습니다.



공자의 깨우침이 유교라는 체계에 갇두어질 때 유교주의라는 폐단이 발생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대표적인 병폐가 종교와 종파주의일텐데

붓다나 예수의 깨달음이 종교화될 때

거기에서 붓다와 예수의 참모습을 만나기란 숲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보다 쉽지 않으리라 싶습니다.



현각스님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의 지적은 불교계 안에서 이미 수없이 제기되었던 문제라 싶습니다. 차제에 대개혁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이땅의 불자들에게도 큰 복연이되리라 싶습니다. 그럴 수 있기를 함께 마음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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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우

이른바'역사적 예수'연구는 많이 되어 그의 참모습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데 '역사적 석가' '역사적 공자'연구는 매우 부족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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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진영우 붓다에 대한 것은 팔리어로 기록되어 남아있는 아함경을 중심으로 읽어도 좋겠네.

근래에 팔리어 초기경전에 대한 역경작업이 많이 진행되었지.

몇해전에 모임에서 예수공부를 할 땐 도마경을 중심으로 했던 적이 있네.



 · Reply · 4 y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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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영

저도 기사 중 그 부분이 딱 걸렸는데 이렇게 설명해주시니ᆢ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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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최근에 소개를 받은 책인데, H.G.크릴의 '공자, 인간과 신화'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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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동

저는종교가 세속적인 사람과 정치사회문제와더불어 자연적 순리의 양단에치우치지않고 중용의 입장에서 각종교의 교리에 충실해야된다고보는데 너무세속적인면에 치우처다보니 이런사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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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8) Namgok Lee - 내가 어제 나를 공자 계열이라고 느꼈던 그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인간의 질적 진화에...

(18) Namgok Lee - 내가 어제 나를 공자 계열이라고 느꼈던 그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인간의 질적 진화에...






Namgok Lee
8 hrs ·



내가 어제 나를 공자 계열이라고 느꼈던 그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인간의 질적 진화에 대한 신념을 평생 간직한 사람이다.
그는 계급적이고 신분적인 바탕에서 쓰였던 '군자'라는 말을 그 것으로부터 해방하여 신분 계급을 떠나 누구라도 그가 획득한 인간의 질적 진화의 정도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이 자체가 조용(?)하고 평화적인 혁명이었다.
그는 사람을 나누는 고정된 틀로 이 말을 쓰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말하는 '군자'에 턱없이 못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내가 요즘 21세기에 보내는 공자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하는 세번째 주제가 '군자의 현대적 의미는 자유로운 인간 즉 진보적 인간이다'이다.

공자의 '도'는 그야말로 길이다.
인간의 정신적 목표들이 인간의 정치적ㆍ사회적 현실과 따로 놀지 않고, 일치시키려는,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ㆍ사회화ㆍ보편화하려는 노력을 성패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구하였다.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며 현실과 분리되어 이원화된 그런 '도'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21세기는 과거 축의 시대 인류의 선구자들이 보았던 그 인간 자체의 진화라는 목표들이 현실적이고 보편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는 시대로 보인다.
'진보'의 목표가 무엇인가?
이 점을 놓친다면, 무엇이 진보인가?

나는 50대의 대부분을 무소유사회의 실험에 동참하였다.
그것을 창안한 사람이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다.
그 또한 인간의 정신적 진화의 목표를 분명히 했지만, 크게 집중한 것이 그 것을 인간 사회에 어떻게 구체화ㆍ현실화할 것인가였다.
그가 죽은 후 '실현지 방식'의 실천이 진행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성급한 실현지 방식이 인간과 사회의 현실로부터 떨어져 보편화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떠났다.
그러나 야마기시는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다.

나는 공자를 좋아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순이 넘어 '논어'를 접했다.
아마 전통적인 방식으로 논어를 학습했다면 보이지 않았을 보배들이 보여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많이 달랐다.
요즘 크릴의 공자를 꼼꼼이 보고 있는 것도 그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자에 반한 것을 보면 나는 아마 그 계열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다.

새벽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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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철 南谷, 맞네. 남곡은 매우 선진적, 진보적인, 멋있는 공자 계열로 보이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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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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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철 replied · 2 replies 5 hrs


Sejin Pak "인간의 질적 진화"의 "진화"의 의미가 진화론의 진화가 아니고 영어로 하면 perfectability 완전성, 완전하게 할 수 있음, 이라고 한다면, 영어 세계에서는 공자는 perfectability of men 인간의 완전성을 믿었다고 하는데, 그 면을 보자면 서양의 계몽주의, 계몽사상 enlightenment thought에서도 역시 perfectability of men 인간의 완전성을 믿었다고 하지요. 이 면에서 만이 아니라 진보 progress라면 역시 계몽주의의 시대의 대표적인 믿음인 것이 보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동서양의 사상에 공통점이 더 많이보이네요.

2019/06/21

(8)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Ⅲ 유교(儒敎) 제12장 전설(傳說)의 발전①



(8)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Ⅲ 유교(儒敎) 제12장 전설(傳說)의 발전① (이 장에서는 공자 사후 공자가...

Namgok Lee
3 hrs · 0621

크릴의 공자
Ⅲ 유교(儒敎) 제12장 전설(傳說)의 발전①

(이 장에서는 공자 사후 공자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공자를 비난하거나 공자를 옹호하는 숱한 왜곡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 묵자(墨子)는 공자가 사망한 직후에 태어나 묵학(墨學)이라는 철학을 창시하였으며, 묵가(墨家)라는 견고하게 조직된 집단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묵자는 유가로서 학문을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유가와 절연하고 독자적인 학파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묵자> 비유(非儒)편은 유가 전체를 비난하면서 공자를 통렬히 비난하고 있는데, 훨씬 후에 쓰여져 원전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묵자가 공자 개인을 언급한 예가 거의 없으며, 공자를 기술한 것은 단 하나 뿐인데 거기에는 공자가 바보로 취급되어 있다.

묵자는 자기가 누구보다도 세상의 악을 고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며, 공자와 달리 다른 사람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나 판단의 여지를 허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가르침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가르침을 버리고 스스로 생각하려는 것은 추수를 포기하고 낟알을 줍는 것과 같다”

묵자는 빈곤, 무질서 및 전쟁을 비롯한 이 세상의 죄악을 엄격한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묵자는 자신이 진심으로 믿고 있는 귀신의 존재를 유가가 부정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天災)가 천(天)의 응징이며 폭정의 표시라는 묵자의 생각은 소위 한 대(漢代) 정통유교 속에 거의 동일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묵자가 직접 유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묵학도, 또 결국은 유교도 공자의 합리적인 철학보다 훨씬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세속적인 미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자는 사유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였지만, 진리의 고정된 척도는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책임을 맡겼고 그것도 각자의 자유에 일임하였다.
그러나 지적(知的) 자유에는 정신적 노고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인간은 대체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제자 가운데 공자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따라서 공자의 시체가 식자마자 제자들이 아늑한 지적 안식처를 세우고 그 안에서 성전(聖典) 및,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성인의 권위를 찾기 시작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런 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리 추구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온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무오류의 권위에 대한 추종’ 등은 지금도 강하게 존재한다.
아마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스스로 독재에 대한 끌림이 일어날 소지는 여전히 있다.
우리 현실에서 비록 이전투구로 보이는 현상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진정한 진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긍정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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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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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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