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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3

유영모·함석헌 사상 연구 발표집 Ⅰ 제22차 세계 철학대회 2008

cs.libp.net/ofmkorea/CS4_2120.asp?F1=19874&F2=1&B1=&B2=&B3=&B4=&SAIR2=&MASTER=&R1=151&R2=&R3=

유영모·함석헌 사상 연구 발표집 Ⅰ / 제22차 세계 철학대회
저자사항 씨알[편]
발행사항 서울 / 재단법인 씨알 / 2008
형태사항 237p. / 초상화(인물사진) / 30cm
주기사항 제22차 세계 철학대회/때: 2008.8.2(토)-3(일)/곳: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목암홀 ---

  
 목차정보

3분과 : 유영모의 철학 : 생명과 종교 
11:10-11:10 개회 인사 / 박재순 소장 

11:10-12:30 주제 발표 

  • 생명은 웋일름을 따르는 몸사름 多夕 생명사상의 영성적 차원 / 이기상 교수 = 1 
  • 天符經을 통해서 본 東學과 多夕의 기독교이해 / 이정배 교수 = 25 
  • 道가철학과 多夕사상 / 강지연 교수 = 47 
  • 없이 계시는 하느님 多夕 유영모의 절대자 이해 / 윤정현 교수 = 57 
  • 12:30-12:50 질의 토론 

4분과 : 함석헌의 철학 : 정치와 평화 
14:00-14:10 개회 인사 / 이정배 교수 
14:10-15:30 주제 발표 
  • 내면의 정치학 - 함석헌 정치사상 / 이규성 교수 = 83 
  • 함석헌의 인간관 - 호모 레지스턴스 / 김상봉 교수 = 95 
  • 함석헌의 평화사상 - 예수ㆍ간디ㆍ함석헌의 비폭력 저항 / 유석성 교수 = 119 
  • 함석헌의 민중 평화론의 탈근대론적 해석 / 정지석 교수 = 145 
  • 15:30-15:50 질의 토론 

5분과 : 함석헌의 철학 : 역사와 현실 
16:00-16:10 개회 인사 / 정지석 교수 
16:10-17:30 주제 발표 
  •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나선형적 역사관의 형성요소에 관하여 / 김경재 교수 = 149 
  •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예수의 하느님 나라 비유 - '저절로 그러함'을 중심으로 / 김명수 교수 = 171 
  • 모성성의 주춧돌 위에 세워진 씨알, 생명사상 / 차옥숭 교수 = 193 
  • 핵심역량 개발과 마음의 계발 다석의 中庸에 대한 관점 / 이종재 교수 ; 송경오 교수 = 217 
  • 17:30-17:50 질의 토론 

하늘로 이끄는 뜻이 한글에 있다 하셨죠 ⑤-6 이정배 교수 인터뷰

하늘로 이끄는 뜻이 한글에 있다 하셨죠 - 아주경제


하늘로 이끄는 뜻이 한글에 있다 하셨죠
황호택 논설고문입력 : 2021-02-17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⑤ 이정배 교수 <上>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서울에서 인사동 삼청동 부암동 같은 곳은 그나마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다. 한양도성 성곽이 지나가고 사소문(四小門) 중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이 자리 잡고 있다. 부암동에는 김환기 미술관, 윤동주 문학관, 석파정 서울미술관, 젓가락 갤러리 ‘저집’ 등 문화 명소가 많다. 고풍스런 동네에 눈발이 날리니 분위기가 더 살아나는 것 같다. 윤동주 문학관 옆에 차를 세우는데 이정배 교수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교수의 집은 문학관에서 멀지 않았다. 대문에서 안채로 이르는 가파른 돌계단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교수 집 2층 창밖으로 부암동의 푸근한 설경(雪景)이 액자 그림 처럼 내다보였다. 이 모습을 놓치기 아까운 듯 인턴기자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교수가 고창의 윤정현 신부가 보낸 것이라며 곶감을 내놓았다. 고영재 부근 야산의 감을 따서 깎고 말려 보낸 정성이 대단하다. 릴레이 인터뷰 1호가 3호에게 보낸 곶감이다.
다석은 수를 좋아하고 셈을 즐겼다. ‘호암(문일평)이 52세(1만8545일)로 가시니 나보다 627일 먼저 나시었다.’(다석이 쓴 추도문) 다석은 이런 식으로 숫자 기록을 많이 남겼다.

-윤정현 신부, 이 교수 그리고 인터뷰어가 공교롭게도 모두 1955년생 양띠입니다. 다석이 지금 살아있으면 132세였을 텐데요. 55년생인 우리 나이의 딱 두 배가 132네요. 다석도 숫자 계산을 하다가 기묘한 우연을 발견하면 즐거워했습니다.

“다석을 공부하는 우리가 지금 다석 나이의 절반, 그러니까 다석의 허리춤 정도에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석은 ‘나만 따르라’ ‘추종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길 삼아, 다리 삼아 한 번 건너라’고 했습니다. ‘나의 허리춤을 잡고 씨름하라’는 의미로 새기고 싶습니다.

-2020년, 작년이 정년이었군요. 정년 4년 반을 앞두고 학교를 떠났더군요.

“31살에 교수로 부임해 30년을 재직했기에 남들 할 만큼 충분히 일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학내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학생들 편에서 학교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요. 교수직 사퇴를 배수진으로 치고 학교 당국과 씨름하고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세월호가 주는 충격이 컸습니다. 강단 신학자로만 학교에 머무는 것이 제 양심에 허락지 않았죠. 국가와 교회 공동체의 문제에 우리가 뛰어들어서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겸사겸사 몇 가지 이유가 겹쳐 일찍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석의 묘소는 둘째 아들 자상이 꾸리던 강원도 평창의 농장 인근에 있다. 다석은 화장을 하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아들들이 듣지 않고 묘소에 모셨다. 다석 부부 합장묘를 참배한 이정배 이은선 교수 부부. [사진=이정배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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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서 <빈탕한데 맞혀놀이>의 도입부에 자전적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서울에서 사업을 일구었다가 실패한 아버지가 고향으로 가기 싫어 처가가 있는 충북 보은으로 이사 갔다. 그렇지만 자식들은 서울로 보냈다. 누나는 이화여대에 다녔다. 그는 영락교회 재단인 대광 중고교에 다니다 기독교를 접했고, 누나와 친구들의 영향으로 감리교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저희 집안은 전통적 유교 집안입니다. 아버님은 제사를 지내면서 울기까지 할 정도로 조상들에게 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던 분이었지요. 나는 그런 배경에서 대광중고교를 다니면서 기독교를 알게 돼 감리교 신학대학에 갔어요. 김리교 신학대학 학생들 중에 목사 장로의 아들 딸이 많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자녀는 나를 포함해 몇 사람 없었던 것 같았어요. 생각만큼 학교 공부가 재미없었습니다.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하던 차에 대학 3학년 무렵 스위스 바젤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변선환 교수를 만났죠.

그 당시 나는 기독교 교리에 깊이 빠져서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데, 그럼 우리 부모님은 어떡하나…”라는 고민이 컸습니다. 그런데 변 교수가 새로운 신학 사조를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유교적, 무속적, 불교적 바탕이 매우 소중하고, 서양 사람들이 갖지 못한 정신적 자산을 잘 활용하면 좋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를 학문의 길로 이끌어 준 것이지요. 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신앙 양식에 눈 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마복음 "우리를 나간 한 마리 양이 되라"

변 선생의 뒤를 이어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더니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직한 김흥호 교수(1919~2012)가 명예교수로 와 있었습니다. 바로 옆방에 있던 그분의 가르침을 받게 됐지요. 김 교수는 자신도 다석한테 그렇게 배웠다면서, 나를 한 시간씩 일찍 학교 나오게 해서 다석 사상을 가르쳐 줬어요. 그렇게 2년 이상에 걸쳐 다석에 입문했지요.”

방에 김흥호 선생이 1993년 이 교수에게 써준 글씨가 걸려 있었다. 송나라 시인 육유(陸游)가 쓴 시구 ‘시성비취묵(詩成飛醉墨)’이었다. ‘시가 떠올라 취중에 붓을 휘갈기다’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하느님의 영에 취해서 학문에 몰두하라는 김흥호 선생의 분부 같다고 해석했다.

-초기 예수 공동체의 도마복음에는 동정녀, 예수님의 부활, 재림, 대속(代贖) 신앙 이런 것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과정에서 예수가 신격화했다고 하던 데요.

“예수 사후(死後),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국교화하는 AD 4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누가 옳고 그르고, 누구는 정통이고, 누구는 이단 같은 구분이 없었습니다. 도마복음서가 있었던 것은 도마를 추종하는 예수 공동체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최초의 복음서라고 하는 마가복음서도 예수의 죽음으로 끝맺음을 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한 세기 지난 이후에 부활 이야기를 첨가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하고 따르던 공동체들이 많았습니다. 도마복음서의 공동체도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양 99마리가 있는 우리를 떠나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죄인이라 하고, 그 양을 다수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도마복음서는 차라리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되라고 합니다. 기존 교회가 제도(교리)화 하고 성직자 중심으로 변질돼 가는 정황에서 오히려 도마복음서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인간을 진정 자유롭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본 것이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는 과정에서 도마복음서는 제도를 부정하는 거추장스러웠던 책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정경에서 제외된 측면이 있습니다.”

-부활 이전과 이후의 예수는 성경에 다르게 묘사돼 있는가요.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서는 예수님이 30세 될 때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는 모습부터 시작합니다. 
그것보다 조금 늦게 쓰인 마태복음은 예수의 생애를 30년 소급해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예수의 삶이 조금씩 도그마화하고 교리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늦게 쓰인 누가복음서에는 예수의 재림, 승천, 심판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리고 가장 늦게 쓰인 요한복음에는 예수를 로고스인 하나님과 동격이라 묘사합니다.

 나중에 쓰인 복음서일수록 예수님에 대한 신성화, 예수님에 대한 교리화, 도그마화 하는 과정이 두드러집니다. 이에 반해 예수 어록을 담고 있는 도마복음은 예수의 생애를 중심으로 기록했습니다."


김흥호 교수가 제자 이정배 교수에게 써준 '시성비취묵'(詩成飛醉墨) 글씨 [사진=황호택]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음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속죄(贖罪)를 대신(代身)했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영생한다는 대속(代贖) 신앙은 정통 기독교의 중심 교리인데요. 그러나 다석은 대속 신앙에 대해 “나와 관계 없다”고 했는데요?

“톨스토이가 스스로를 비정통이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다석도 스스로 비정통이라고 했습니다. 다석이 본래는 주일 아침만 되면 연동교회 승동교회 새문안교회 등 여러 교회를 다녔고, 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을 기독교로 인도할 만큼 정통 신앙에 빠져 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유학 시절에 우치무라 간조를 만났습니다. 그의 일본식 기독교에 접하면서 다석의 마음속에는 한국식 기독교라는 형상이 잡혀갔겠죠. 
우치무라 간조는 일본적 기독교를 표방했으나 루터의 대속 신앙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석은 일본적 기독교는 물론 대속 사상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뒤 일본에 갔던 함석헌도 이 점에서 동일합니다. 대속 사상은 동물을 잡아 피를 바쳐야 했던 유대 민족의 제사 풍습의 연장선에서 나온 예수에 대한 이해지, 오늘날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는 낯설다고 본 것이지요.
서양의 기독교가 예수를 통해 구원 받는 대속 신앙을 가르쳤다면 동양은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서 해탈의 길을 가는 자속(自贖) 신앙이라고들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속과 자속의 의미를 철저히 구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수의 삶이 있었고, 그 삶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 이상 이 길이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란 차원에서 대속의 뜻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따라 살다가 우리도 그처럼 길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을 자속이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가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대속이고, 그 길을 따라가다가 우리도 그 길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 자속입니다.
그렇기에 대속 신앙이라는 말을 폐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석은 우리들 일상의 삶 자체가 대속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하지요. 물론 나 역시 인습적으로 사용되는 교리적 대속 신앙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기독교가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대속은 틀렸고 자속은 맞다는 양자택일(兩者擇一)적 이해는 오히려 다석의 생각을 그릇되게 할 수 있습니다.”

-유교적 인식이 강한 아버지께 혼날까 봐 신학대학 진학을 상당 기간 숨겼다고 했던 데요.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 시대의 양반들은 왜 기독교를 반대했습니까.

“‘예수 믿고 자기 조상도 못 알아볼 놈’ ‘부모가 죽어도 제삿밥도 안 챙겨줄 자식’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거죠. 아주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 조상을 안 챙기는 기독교 체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유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하느님만 알고, 집안도, 제사도 모르는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아버지도 그런 걱정을 한 거죠. 저를 손사래 하며 서울로 보낸 데는 가문의 영광을 회복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 신학대학을 나와 누추한 교회에서 목회하는 전도사가 있었는데 자식의 앞날이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 나는 교회에서 배운 배타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졌기에 아버지의 유교적 삶이 못마땅하게 보였습니다. 아버지에 맞서다 생전 안 맞아보던 뺨도 몇 차례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요. 이래저래 큰 불효를 했습니다.”
가톨릭이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엄청난 희생자를 낸 것은 장례와 제사 문제 때문이다. 전라도 금산(지금은 충남)에 사는 양반 윤지충이 천주교를 믿으면서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어머니의 장례를 가톨릭 예식으로 치렀다. 그는 1791년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신해박해다.

-가톨릭이 가혹한 박해를 받은 이후에도 개신교 선교사들이 와서 조상숭배는 미신이라고 근본주의 교리를 가르치면서 기독교와 전통사회의 갈등이 심해졌다는 시각이 있는데요.

“맞는 말씀이죠. 당시 한국에 왔던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대부분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구 우월의식, 제국주의 의식을 지니고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 것은 미개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것을 기억, 답습하여 한국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우리가 경험했던 그대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풍습과 문화를 함부로 재단하는 행태가 많습니다.
다수의 유교인들은 기독교인을 조상을 홀대하는 못된 사람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다석은 오히려 유교의 병폐가 조상밖에 모르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둘 다 문제라는 것이죠. 조상의 끝이 하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상을 유(有)라고 하면 하늘은 무(無)다, 없음까지 올라가야만 진짜 유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도 조상의 의미를 소중히 여길 때 진정한 기독교가 될 수 있다’고 했지요.”

이 인터뷰에 나오는 성경 구절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번역한 성경 2판(1999년)을 인용했다. 공동번역 성경은 요즘 우리가 쓰는 말로 돼 있어서 읽기가 부드럽다. 그렇지만 빨간색 테두리가 있는 관주 성경의 옛글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 성경에 애착을 갖는다. 결례되는 비유일지 모르지만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지금도 빨간 뚜껑의 진로 소주만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로다.’(공동번역 성경)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관주성경)


다석은 광주 동광원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대해 강의하면서 하느님의 ‘외아들’(공동번역) 보다는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관주성경)에 애착을 보인다. 다석은 독생자를 다시 ‘한(獨) 나신(生) 분(者)’이라고 순우리말로 바꾸어 풀이한다. 그러나 다석은 로마서 8장 4절을 소개하면서 공동번역이 알기 쉽게 되어있다고 말한다. 60년 동안을 보던 그 관주성경보다는 공동번역 성경을 보고 참뜻을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다석은 한글 사랑이 각별해서 순 우리말로 된 종교 용어를 많이 만들어냈는데요. 그런데 거의 안 쓰이던 순우리말로 조어(造語)를 하다 보니 더 어려워진 것이 많아요.

다석의 한글사랑과 십자가 신학


“흔히 중국의 글자는 뜻글자고 한글은 소리글자라고 구분하잖아요? 우리는 보통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라고 해서 혀가 구강의 어느 부분에 닿느냐에 따라 소리를 구분합니다. 하지만 다석은 한글 또한 뜻글자로 보았고 우리 민족을 하늘로 이끄는 천문(天文)이라고 했죠. 세종대왕은 훈민(訓民)의 차원을 넘어 천문(天文)으로 격상시켰습니다. 
무엇보다 다석은 모음의 원리가 천지인(天地人) 3재(三才) 사상을 기초로 했다고 봤습니다. 농경 중심의 중국 문명은 음양론에 토대를 두었고, 시베리아 수렵문명권인 한국의 문화는 천지인 3재 사상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석은 천지인 3재 사상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풀었지요.
 땅(ㅡ)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고된 인간의 삶(ㅣ)이 3재론 속에 담겼다고 봤습니다. 다석은 이 3재를 합해서 십자가로 풀었습니다. 땅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 현실의 세계인데, 이 땅을 뚫고 올라가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라 한 것입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십자가고, 불교로 말하면 성불(成佛)이겠습니다.

다석은 한글이 단순히 소리글자가 아니고 우리 민족을 하늘로 이끌려는 뜻을 담은 글자라 믿었습니다. 자음 역시 삼수(三數) 변화를 퉁해 설명하면서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는 뜻을 담았다 했지요. ‘ㅅ(시옷)’ ‘ㅈ(지읒)’ ‘ㅊ(치읓)’의 변화를 보십시오. 이걸 선생님은 ‘삶-잠-참’으로 설명하세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잠을 자야 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잠이란 죽음을 말합니다. 인간은 한 번 죽어야만 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선생님은 한글에 뜻이 있고, 그 뜻이 우리 인간을 하늘로 이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교수가 책 제목으로 빌려 쓴 ‘빈탕한데 맞혀놀이’도 어렵죠. 좀 쉽게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빈탕이라고 하는 것은 허공, 무, 없음이라는 말인데 결국 그 없음에 맞춰 살아가는 게 인간이 이 땅에서 할 일이라는 뜻입니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인간 속에 바탈로서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빈탕은 곧 어둠이기도 합니다. 빛으로 드러난 세상에서 견물생심(見物生心)하지 말라는 뜻도 담겼습니다. 어둠 속에서 더 큰 것과 하나 되는 삶을 살자는 초대이자 부름입니다. 
예컨대 인간은 꽃이 있으면 꽃만 보고 ‘이쁘다, 좋다, 꺾고 싶다’라는 욕망을 갖지만 꽃을 꽃 되게 하려면 그것을 있게 한 허공, 빈탕한데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알아야 없이 계신 하느님처럼 인간도 없이 살 수 있지요. 하지만 인간은 늘상 덜 없는 존재, 그래서 더러운 존재로 살고 있습니다. 덜 없다는 것은 늘 욕망적인 존재로, 탐진치(貪嗔癡)의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덜 없다’는 것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더럽다’가 되는 거예요. ‘덜 없는’ 존재가 ‘더러운’ 존재가 되는 거죠. 
없이 계신 하느님을 자신의 바탈로 모신 인간이 할 일을 자신 속 탐진치를 벗는 길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이 땅에 온 이유고 살아야 할 목적입니다. 빈탕한데 맞혀놀이가 다석의 구원관입니다.”


부암동 집 대문 앞에서 이 교수(왼쪽)와 황호택 논설고문.[사진=이주영 인턴기자]

-다석이 십자가를 동양적으로 재해석해서 일좌식(一坐食) 일언인(一言仁)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일좌식은 한 끼 식사와 명상이지요. 그런데 일언인은 제자나 연구자들의 해석을 들여다봐도 조금씩 다르고 잘 이해가 안 가요.

“김흥호 선생은 다석의 기독교를 한마다로 동양적 기독교라 풀었고 그 핵심이 일좌식 일언인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일좌식 일언인은 김흥호가 이해한 다석 사상의 본질입니다.

 ‘일좌’는 말 그대로 앉아있는 것, 명상을 의미하고, ‘일식’은 하루에 한 끼 먹는 것이죠.

일언은 남녀관계를 풀어 끊는 것입니다. 다석은 뜻과 맛이라고 하는 개념을 대비시켜 이해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맛을 찾아 살지만, 선생님은 뜻을 찾아 사는 것이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말했어요. 아마도 맛중의 맛이라고 하는 것이 남녀의 관계가 아닐까요. 그래서 ‘일언’이라고 말로 인간이 색에 사로잡혀 사는 것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쳤습니다. 말씀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맛을 버리고 뜻을 찾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흥호 선생은 마지막 일인(一仁)을 명(名)과 관계시켜 이해했습니다. 한마디로 헛된 명예욕을 벗자는 것이지요. 누구에게나 있는 몸을 갖고서 ‘몸성히’를 실천하라고 했습니다. ‘몸성히’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지면(마음 놓이)로 자신의 바탈을 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다석의 ‘일좌식 일언인’에서 인에 대한 해석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저서 ‘유영모의 귀일신학’에서 ‘일인은 늘상 걷는 일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이 교수는 “어질 인이 걷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왜 다석이 여기서 인을 사용했는지 잘 알지 못하겠으나 가늠할 여지는 있다”고 했다. 두 발로 어디든 다니고 아침마다 냉수마찰을 해 몸을 건강하게 한 것이다. 한마디로 몸성히를 삶의 근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해설했다.

다석의 一日一食과 늘상 걷기

그러나 다석은 1971년 광주 동광원 강의에서 인(仁)에 대해 “유교에서 추구하는 인”이라고 하면서 ‘어질 인’이 아니라 ‘성언 인’이라는 순우리말로 푼다. 성은 ‘(몸이) 성하다’에서, 언은 ‘언니’에서 따왔다. 그래서 성언을 찾아서 그 성언을 완전히 이루는 것, 그래서 참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인이라고 다석은 말한다.

-다석은 40년 동안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하고 체조와 늘상 걷기 등으로 건강을 다져서 그 시대로서는 드물게 91세 장수를 했는데요. 다석을 따르는 분들 중에 그런 수행법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습니까. 윤정현 신부는 한 때 일일일식을 하다가 포기하고 배꼽시계에 맞춰 먹는다던데요. 

“다석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서 일일일식을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요. 김흥호 선생은 38살 무렵부터 일일일식과 해혼(解婚)을 실천했고 그것이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함석헌 선생은 그걸 실천하려고 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지요. 나 역시도 시도했으나 거듭 실패를 했습니다. 저는 일일일식을 문자적으로, 소승적으로 생각하지 않고자 합니다. 오히려 이것을 문명비판적인 차원에서 단순성(Simplicity)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다석은 하루 한 끼를 드셨으나 잡수신 양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루 한 끼에 집착하는 문자적 의미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단순성, 즉 최소한의 물질로 살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최소한의 물질로 삶을 살아내는 것이 바로 기후(생태)붕괴 시대의 일식의 의미라 믿습니다. 이 때 물질, 곧 최소한의 물질은 정신이 되는 것이겠지요. 다석 자신도 하루 한끼 식사를 자기 생명을 바치는 정신적 행위라 여겼습니다. 내 몸이 얼마나 가난한가, 최소한의 물질로, 정신으로 살아낼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이 중요합니다.” <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이주영 인턴기자>

<이정배 교수 약력>

-1955년 출생
-1974년 대광고 졸업
-1974~1981년 감리교 신학대학 및 대학원
-1981~1986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 신학부 조직신학 전공
-1986~2017년 감신대 교수
-2010~2011년 한국조직 신학회 회장
-2012~2013년 한국문화신학회 회장
-2011~2012년 한국 기독자 교수협의회 회장-1992년 서울에서 열린 JPIC(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 대회를 계기로 토착화 신학과 생태신학을 연결하고자 애쓰다-강원도 횡성에 독서와 기도, 노동이 어우러지는 현장(顯藏)아카데미 조성 중
-<생태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2010) <한국 개신교 전위토착신학연구>(2003)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2008) <빈탕 한데 맞혀 놀이>(2011) <유영모의 귀일신학>(2020) 등 저서 다수




21세기 생태문명의 맹아를 담은 다석 사상
황호택 논설고문입력 : 2021-02-24 16:06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⑥ 이정배 교수<하>

이정배 교수의 스승인 변선환 전 감신대 학장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폭탄 선언과 함께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제창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 간 대화를 중심으로 종교간 대화를 활성화하는 운동도 벌였다. 그러다 결국 보수적인 기독교계 목사들의 표적이 되다시피 해 소속된 감리교단으로부터 출교(黜敎)당했다. 변선환 신학을 계승한 대표적인 제자가 이정배 교수다.

-변선환 학장이 1992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주도하는 교리수호대책위원회로부터 출교 조처를 당했더군요. 김홍도 목사는 지난해 광화문에서 광복절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를 대형교회 부흥 목사로 데뷔시켜준 사람인데요.

"그 당시 변 교수는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이었죠. 70,80년대부터 부흥목사들이 교회들을 크게 키우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로 교회가 엄청난 권력기관이 됐고, 부흥목사들이 교단 정치를 하면서 신학대를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대학을 학문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변선환 박사가 눈엣가시였던 것이지요. 변 학장은 신학대학을 금권과 교권으로부터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흥목사들은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변 학장의 신학적 소신을 이단(異端)이라고 몰아 출교를 시켰죠. 나도 그 때 교수였는데, 변 학장이 출교당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습니다, 학생들 수백 명이 출교를 막으려고 금란교회에 몰려갔다가 교회가 동원한 어깨들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종교인 중에서도 개신교가 유달리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태도를 가진 것 같아요.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배타적인 태도가 주로 성경 구절로부터 도출되었다고 말했는데, 주로 어떤 구절을 인용합니까?

“보통 구약성서 출애굽기 20장 3절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가 대표적입니다. 이 두 구절을 이웃 종교를 부정하는 원리로 쓰죠. 

하지만 구약성서의 경우 핍박을 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고백적으로 했던 말입니다. 자신들 하느님이 최고, 절대라 고백함으로써 종살이하던 이국땅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가 다수의 종교가 되고, 제국주의라고 비판 받는 마당에 고백적으로 이야기했던 언어를 교리적인 차원으로 바꿔놓으면 이런 기독교의 정체성은 사람 잡는 정체성이 되어버리죠. 이런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다석은 신약성서 언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란 말씀도 달리 이해했지요. 예수가 말한 ‘나’는 육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자신 속의 바탈, 없이 계신 하느님, 곧 ‘얼나’를 일컫습니다. 다석은 우리 역시 ‘나는 길이요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라고 권면합니다. 이처럼 다석은 배타적인 성서 언어를 보편적으로 달리 사용하였습니다.”



이정배 교수의 뒤편 창 밖으로 부암동의 포근한 설경이 보인다. [사진=황호택]

-이 교수가 쓴 논문 중에 ‘천부경을 통해서 본 동학과 다석의 이해’도 있더라고요. 모든 종교가 하나로 통한다는 다석의 귀일사상(歸一思想)이 천부경에서 비롯됐나요?

“예.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유불선에 능통한 다석이 정작 동학을 언급하지 않았고, 언급하더라도 부정적인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여기서 다석과 동학을 연결 지어 생각해봐야겠다는 학문적인 관심이 생겨났지요. 그 연결 고리가 바로 천부경이었습니다. 천부경에 근거해서 동학을 보았고 바로 그 동학의 빛에서 다석 사상을 조명할 수 있었습니다. 동학을 단지 부적을 신뢰하는 비합리적 종교로 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천부경은 천지인, 3재 사상의 틀로 구성되었습니다. 천부경의 상경은 하늘, 중경은 땅, 하경은 인간을 주제 삼았습니다. 그 중 하경의 핵심은 ‘인중천지인(人中天地一)’이란 말 속에 담겼는데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중심이란 사상입니다. 한 유교 학자는 여기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넣은 ‘천인무간(天人無間)’을 보기도 했지요. 저는 이 말을 갖고서 동학과 다석을 회통(會通)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구에서 말하는 종교 다원주의 이론과도 변별된다고 여겼지요, 종교다원주의는 큰 틀에서 기독교를 유일 절대의 종교로 보지 않고 제 종교가 저마다 자기 식대로 구원의 길을 간다는 가치 다원주의를 적시합니다. 예수와 붓다 공자 같은 위대한 성인들이 궁극적 실재의 다른 표현이란 것이 서구 종교다원주의 이론의 골자입니다.

하지만 다석은 그 차원을 넘어서지요. 예수 석가 뿐 아니라 우리 인간도 그들과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라 하였습니다. 인중천지일, 모든 인간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없이 계신 이가 인간 속에 ‘바탈’로서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서구는 붓다 공자 같이 위대한 인물들을 통해서 다원주의 신학을 정립했습니다. 

하지만 다석은 ‘없이 계신 하나님’을 인간 개개인의 마음(바탈)속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덜 없는 상태에서 뛰쳐나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하나님에게 나갈 수 있는 존재라 본 것입니다. 그런 힘이 예수 뿐 아니라 우리 인간 속에 있다고 하였지요. 궁극적으로 인간 속에서 없이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귀일사상의 핵심입니다. 예수가 그랬듯이 우리도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도 예수처럼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처럼 되고 성불(成佛)하고,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과정에서 모두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 귀일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세기에는 하느님이 엿새 만에 우주를 창조하고 일곱 번째 되는 날에 쉬었다고 하는데요. 다윈의 진화론으로 보면 허황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립하지 않고 창조적인 진화, 진화적인 창조로 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일어난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에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과학의 논리는 사이비 과학이고 사이비 신학이죠. 지적 설계론은 창조과학의 발전된 형태이긴 하나 근본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성서 속의 천지창조 기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BC 580년 이후에 포로로 잡혀가서 바빌론의 문명을 경험하며 고백한 하나의 문서입니다. 그 자체로 과학적 진술이나 교리가 될 수 없습니다. 진화의 한 방향을 이끄는 신적인 원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진화와 창조는 함께 가야 옳습니다. 진화론만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되었습니다. 다석이 물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이유도 과학적 사고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변선환 아키브에서 제자들이 펴낸 책들[사진=이정배 교수 제공]

-다석을 연구하는 이 교수의 학문적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제가 다석을 연구하는 이유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서구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적 토양에서 기독교를 이해했던 감리교의 토착화 신학 전통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다석 사상은 지금까지 그 어떤 토착화 신학보다 도발적이고 창발적이라 생각합니다. 이로써 일본 교토학파의 기독교 이해를 능가하는 한국적 신학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지하듯 일본 선불교를 배경으로 한 교토학파는 공(空·Śūnyatā) 개념을 갖고서 신의 죽음 이후의 신학을 재정립했습니다. 서구신학이 로고스 개념을 가지고 신학을 만들었다면,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 이후, 공 사상의 개념으로 신학을 재구성한 일본적 기독교가 서구에서도 주목받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교만 아니라 민족 고유한 천부경에 터해 유불선을 통섭한 다석학파의 기독교가 훨씬 탈(脫)서구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이라 여겼습니다. 

이를 위해서 나는 다석만 연구한다든지, 함석헌 박영호 김흥호 등 어느 한 인물에 치중한 개별 연구를 넘어서야 하다고 생각 합니다. 다석과 함석헌 간의 차이가 있고, 함석헌과 김흥호가 다르고 박영호와 김흥호 간의 변별력 그 자체가 다석 학파의 기독교를 성립시키는 주요한 근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석 연구자들 간에도 무수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옳고 그름의 논쟁을 벌이기보다 어떻게 다석을 재해석하고 발전시켰는가를 봐야 옳습니다. 이 점에서 다석 사상을 연구하는 모든 분들을 연구하고픈 학문적 욕심이 있습니다. 일본의 교토학파의 기독교처럼 한국에는 다석학파의 기독교가 있음을 서구에 알리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대속적인 기독교 대신 수행적인 기독교를, 배타적인 기독교가 있었다면 불이(不二)적이고 귀일적(동양적) 기독교를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석 학파의 계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을 통해서 혹은 어떤 방식으로 다석을 알게 됐는지에 따라 시각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김흥호 선생을 통해 다석에 입문한 신학자입니다. 지금의 기독교가 다석 사상을 수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다석 사상은 아직 이단처럼 취급받습니다. 그럴수록 김흥호 선생은 다석을 교회 밖의 다원주의자 사상가로만 자리매김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교회 안에서 다석을 정착시키고자 애쓰셨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스스로에게서 모순도 느꼈을 것입니다. 이화여대와 감신대라는 기독교 학교 안에 있었기에 다석을 기독교 틀 안에서 가르쳤습니다. 다석을 교회의 교사로서 만들고자 하신 것이지요. 다석 사상을 교회 안에 들여놓겠다는 생각을 나는 동의하고 지지합니다. 물론 다석 사상을 기독교 밖에서 더 넓게 이해하는 것에 찬성하지만요.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김흥호 선생을 통해서 다석을 배웠기에 대속을 버리고 자속만 취하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석에게 예수가 유일한 스승이었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물론 인습적인 구세주로서 예수의 이해는 버렸지만요.”

불교계 유교계에서도 다석 연구자 많이 나와야

-불교계 유교계에서도 다석에 대해 연구하는 분이 있나요?

“더러 있기는 하지만 주로 기독교 신학자들이 다석을 연구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웃 종교들에서 다석 연구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유교에서는 고인이 된 도원 류승국 교수가 대표적으로 다석을 좋아했고 연구했습니다. 기독교 신학자들 혹은 기독교를 바탕한 종교학자들의 연구만으로 향후 다석 사상이 충분히 발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안병무 선생이 다석 사상을 민중신학으로 발전시킨 것은 큰 공헌입니다. 다석 사상을 세상에 알린 박영호 선생의 공로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다석 사전을 만들고 있는 가톨릭 정양모 신부의 역할도 대단합니다. 다석을 한국의 하이데거로 여기며 그의 말 속에 담긴 철학적 뜻을 살핀 철학자 이기상 교수의 역할도 높이 평가합니다.

-시인 고은이, 다석에 대해 ‘총기가 넘치나 부질없는 생각을 한 늙은이’라고 코멘트를 한 게 있던데요.

“<만인보>에 적힌 이 표현에 대해 정양모 신부가 제일 분노했지요. 고은 시인으로서는 다석이 한글을 너무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고 불평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시인으로서는 다석의 언어가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은 시인은 다석이 왜 한글을 그렇게 풀어내려고 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석의 종교관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다석의 삶 중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식들을 중학교까지만 가르치고, 자신도 일본 유학을 갔다가 그만두고 돌아오고….

“다석의 행동 중에 기행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결혼한 날 신부를 놔두고 일주일 동안 목포 처가에 혼자 갔다 온 일도 있고, 그리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사경을 헤맨 일을 두고도 말이 많습니다. 오산학교 교장을 했고 교육자로 살았음에도 아마 다석 입장에서는 자녀들을 자기 방식대로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배우도록 하려던 것이 아니었겠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스스로 하는 공부, 기계적인 학습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일종의 홈스쿨링(homeschooling)이나 가정교육(home education)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이냐는 질문에는 조심스러운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정통 기독교에서는 동성애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는데요. 이 교수는 글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던 데요.

“오늘날 동성애는 과거 천동설 지동설 논쟁처럼 이제 과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 식물 세계도 동성애의 비율이 대략 10% 남짓 정도 된다고 하죠. 단지 지금까지는 과학적으로 증명을 못했을 뿐입니다.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를 여러 권 펴낸 유발 하라리도 최근 커밍아웃했죠. 기독교는 동성애의 성적 문란함에 초점을 맞추지만, 역사적으로 성소수자(性少數者·sexual minority)들이 창조적인 일을 엄청나게 해냈습니다. 동성애를 병이나 죄로 다루기보다는 그들 성정체성(성지향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그들에게는 구원이고 복음이라 생각합니다.”

동성애를 범죄로 보지 말고 성 정체성 인정해줘야

-성경에 동성애에 반대하는 구절이 더러 있지요?

“구약 롯기에 남색(男色) 이야기가 있고, 로마서에 보면 어린 소년들을 성적으로 농락하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것은 사실 동성애의 문제로 보기보다 권력의 문제로 봐야 옳은 거지요. 설령 성서 어느 부분에 그런 기록이 있다 할지라도,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XY 염색체만 알았는데 XXY 염색체도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성지향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들을 자꾸 억압하고 몰아치면 음지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나쁜 일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이들을 불행한 존재로 만든 데는 역설적으로 기독교의 책임이 큽니다.”

-세월호 아픔에 참여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 모임을 결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데, 한국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도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팩트는 분명히 있는데 서로 다른 오피니언을 만들며 싸우잖나요. 세월호를 가지고 정치가들이 이데올로기 싸움을 조장했어요. 팩트를 명확히 밝히면 오피니언 간의 갈등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시민 사회와 함께 정치인을 움직여 진실 규명하는 일에 앞장서고자 합니다. 지금도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어머님들 추위에 노숙하고 있어요.”

이정배 교수의 부인은 여성 신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선 세종대 명예교수다. 성균관대 동양철학 대학원에서 ‘조선 유교의 종교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편과 함께 스위스 바젤에서 신학대학 박사 논문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공부를 더해 박사학위를 두 개나 갖게 됐다.

“저희 집사람에 대해 물어줘서 고맙습니다. 부부관계를 너머서 학문적 동지로 살고 있습니다. 바젤 대학에서 변선환 선생 내외분과 같은 교수 지도 하에 논문을 썼습니다. 지도 교수는 알버트 슈바이처와 칼 야스퍼스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신학 활동을 하던 분이었지요. 그의 지도하에 변 선생 내외는 기독교와 불교, 우리 부부는 유교를 주제로 논문을 썼습니다. 저는 주자학 쪽으로, 저희 집사람은 양명학을 주제로 기독교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은선 교수는 부족한 한문 공부를 더하면서 8년에 걸쳐 한국 철학 분야에서 유교의 여성 종교성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향후 미래가 중국 문명과 미국 문명의 갈등으로 본다면, 종교로는 유교와 기독교가 될 텐데, 지금과는 다른 유교가 필요하고, 지금과는 다른 기독교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비판적인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설립한 한국 신(信) 연구소를 통해 기독교를 유교적으로, 여성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화전민의 집을 사서 가꾼 횡성 현장아카데미는 노동과 기도의 공동수행체로 꾸리고 있다. [사진=이정배 교수 제공]

-부암동 아카데미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요?

“여기서는 주로 학문적 토론의 장이 열리며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70년과 기독교’라고 하는 책은 2년간 작업해서 이번에 출판합니다. ‘종교개혁 500년과 이후 신학’ ‘3·1 선언 100주년과 이후 기독교’ 등의 책도 앞서 펴냈지요. 이은선 교수의 선친인 고 이신 박사의 연구서 ‘환상과 저항의 신학’, 그리고 해천 윤성범 교수 탄생 100주년을 추모한 ‘우주 보편적 영성으로서의 성과 효’란 책도 발간했습니다.”

부암동 집 대문에 현장(顯藏)아카데미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유승국 선생의 작명이다. 인(仁)의 주역적 표현이 현장이라고 한다. 드러나기도 하고 감춰진다고 해서. 횡성에서는 화전민의 집을 사서 20년째 가꾸며 예배드리고 농사를 짓고 수확도 함께 한다. 횡성은 노동과 기도의 수행 공동체이고, 부암동은 학문 공동체다.

-생태신학에 관한 논문을 많이 쓰던데요. 다석의 가르침과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다석을 생태 신학적으로 연구해서 외국어 논문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더라고요. 우선 앞서 말씀드린 
  • 일식(一食)의 개념을 simplicity(단순함)로 본 것이 생태적인 사유(思惟)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 다석의 말씀 중 중요한 것으로 견물생심(見物生心)과 견물불가생(見物不可生)이란 말이 있습니다. 
  • 견문불가생, 즉 물건을 보고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다석의 가르침이에요. 
  • 서구의 신학과 철학에서 존재는 언제나 ‘있음(유·有)’ ‘Sein'의 차원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있음’을 우선하는 세계관에서 견물생심의 유혹은 결코 소멸될 수 없을 것입니다. 
  • 견물불가생이 가능하려면 있음보다 ‘없음’을 더 중요시하고, 빛보다 ‘어둠’에 무게중심을 두는 새로운 철학이 요구됩니다.

알다시피 유영모 선생의 아호인 ‘다석(多夕)’엔 저녁 석(夕)이 3개 들어있지요, 이기상 교수가 ‘태양을 꺼라’라고 멋지게 풀어서 다석 사상의 핵심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빛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의식의 세계죠. 그런데 다석은 ‘빛(의식)을 꺼라’ ‘태양을 꺼라’고 말합니다. 빛이 꺼질 때 광대한 우주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다석은 생각의 빛을 끄고 보이는 세계를 단절하는 의식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있음을 근거로 하는 서구적 인식으로는 우리의 자본주의 문명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을 있게 하는 테두리를 먼저 보는 것, 그렇게 하면 견물불가생, 물건을 탐욕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놔둘 수 있지 않은가요?”

부암동은 다석이 과수원을 가꾸고 축산을 하고 수행을 하며 살던 구기(舊基)동에서 버스 두세 정거장 거리다. 원래 인터뷰를 횡성 현장아카데미에서 하려고 했으나 눈이 많이 오고 찻길이 험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이 교수와 우리 일행은 두 시간 동안 인터뷰를 마치고 부암동의 한 식당에서 치킨과 볶음밥을 먹고 눈길을 걸어가다가 헤어졌다. 

황호택논설위원 다석 유영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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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9

알라딘: 씨알 생명 평화

알라딘: 씨알 생명 평화
씨알 생명 평화 -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이규성,이기상,유헌식 (지은이),씨알사상연구회 (엮은이)한길사200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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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11-02-24

656쪽
책소개

씨알사상연구회 월례 연구발표회에서 발표된 글 가운데 19편의 논문을 가려 실은 책. 민주화, 평화를 위한 운동가, 종교인, 문필가등으로 널리 알려진 함석헌의 철학자적 사상가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천착하고, 그것을 정갈한 순우리말 표현, 사회적 운동으로 실천한 함석헌의 삶과 그의 사상을 본받아야 한다고 지은이들은 다양한 글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왜 함석헌 사상을 연구해야 하는가 -박재순

제1부 생명의 본질은 스스로 함이다
심정과 자유의 철학 - 이규성
생명의 진리 - 이기상
씨알의 생명사상 - 박재순
문명비판과 초월적 자연주의 - 유헌식
자연과 자유 - 양명수
씨알사상과 진정성의 윤리 - 박소정
비폭력 평화정신 - 김영호
개혁적 반전 평화주의 사상 - 정지석

제2부 씨알, 오천 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나타난 '민족' 개념의 신학적 성찰 - 이정배
역사적 사실에 나타난 신의 섭리 - 김기승
함석헌의 '뜻으로 본 세계역사' -김상봉
함석헌과 우치무라 간조의 '두 개의 J' - 양현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어떻게 쓰였을까 - 이치석

제3부 나는 빈들의 소리요 바람이라
종교시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 - 김경재
씨알사상에 대한 종교적 접근 - 김명수
함석헌의 성서적, 한국적 영성과 문화신학 - 최인식
함석헌과 샤르댕의 사상 - 이병창
무교회 정신이 이끈 삶 - 백소영
함석헌과 간디 - 허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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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
책속에서
함석헌의 사상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나'와 '전체'가 소통하고, '생각하는 생각'과 '생각나는 생각'이 소통하고, '본능'과 '바탈'이 소통하고, '인위'와 '무위'가 소통하고, '스스로 함'과 '저절로 함'이 소통한다. 그래서 자연과 자유는 긴장관계를 이루면서 종합된다.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함석헌이 말하는 자연에 저항적 자유의 성격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자연과 자유' p207 중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한국인의 민족적 반성과 회개의 책이지만, 함석헌이라는 지성 개인의 삶에 대한 반성과 회개 부분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 일반에 대한 서술에서, 그 자신을 지식인에 포함된다고 본다면, 그 자신의 참회와 회개의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해방을 기존의 지식인, 엘리트의 것, 즉 자기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니라 민중의 것, 씨알의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적 사실에 나타난 신의 섭리' p346 중에서  접기
추천글
'고난의 역사'에 핀 '대자유'의 꽃 - 고명섭 (<한겨레> 문화부장《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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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규성 (지은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89년부터 2017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의지와 소통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세계관과 아시아의 철학』(2016), 『한국현대철학사론: 세계상실과 자유의 이념』(2012), 『최시형의 철학: 표현과 개벽』(2011), 『생성의 철학: 왕선산』(2002), 『내재의 철학: 황종희』(1994)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 더보기
최근작 : <중국현대철학사론>,<의지와 소통으로서의 세계>,<마음과 철학 : 유학편> … 총 1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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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상 (지은이)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 뒤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로 1984~2012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초대회장이었으며, 현재 우리사상연구소 소장이다. 1992년 열암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1994년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 『하이데거의 실존과 언어』,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 『철학노트』, 『콘텐츠와 문화철학』, 『... 더보기
최근작 : <소통과 공감의 문화콘텐츠학>,<동서양 철학 콘서트: 서양철학 편 (대활자본)>,<동서양 철학 콘서트: 서양철학 편> … 총 31종 (모두보기)
유헌식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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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대학 철학부에서 「헤겔의 역사적 사유에 나타난 새로움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헤겔철학 논문집 『역사이성과 자기혁신』, 입문자를 위한 철학 안내서 『철학 한 스푼』, 소설 작품을 철학의 시선으로 해석한 『행복한 뫼르소』를 출간했으며, 공동 작업으로 ‘통합적으로 철학하기’ 시리즈 세 권(『호수에 비친 달은 외로울까: 고독』, 『흔들려야 날갯짓한다: 성장』, 『죽음아 날 살려라: 죽음』)을 펴냈다. 크로너의 『헤겔』과 앙게른의 『역사철학』을 번역했으며, 독일관념론, 문명론, 철학의 일상화, 문예비평이 관심 ... 더보기
최근작 : <나를 찾아가는 철학여행>,<행복한 뫼르소>,<동서의 문화와 창조> … 총 17종 (모두보기)
SNS : yoorius@dankook.ac.kr
씨알사상연구회 (엮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2001년 함석헌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2002년 5월에 '씨알사상을 연구,보급하여 자유로우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인류사회 형성과 생명 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박재순 박사가 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문영, 김경재, 문대골, 김영호, 곽분이, 김조년, 김성수, 최정윤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지원과 협력으로 매달 연구 발표회를 가졌고 매년 함석헌 탄신을 기리는 학술대화마당을 열어왔다.
최근작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씨알 생명 평화>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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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님의 사상 새창으로 보기
 
한동안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분이 함석헌 선생님입니다. 1980년대까지 특히 197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면서 한국의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십니다. 이젠 세상도 많이 달라지고, 그분의 글에서 느껴지는 고어체도 약간 적응이 안되어, 잊혀져가는 옛 선각자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한번씩은 그분의 씨알의 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기는 하지만요. 얼마전 서점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새로 출간된 것을 보고 무척 반가왔습니다. 그러다 함석헌 선생님에 관해 연구한 글들 중 중요한 글들을 모은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분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두에 박재순님이 쓰신 왜 함석헌 사상을 연구해야 하는가라는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은 근대한국이 가진 사상가로 부를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분이시고, 그분이 말씀하신 생명사상은 동양의 정신으로 새로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담고 있는 커다란 그릇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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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7-04-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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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학술논문, 석사논문, 에세이,잡지기고문 2002-2003 > 연구논문 | 바보새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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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학술논문, 석사논문, 에세이,잡지기고문 2002-2003
작성자 바보새 15-09-13 02:13 조회4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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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한국신학의 태동과 흐름 2002.2 기독교사상(대한기독교서회)
김성수 함석헌과 노장사상 2002. 봄·여름 한국문화연구 제2호(이화여자대학교)
김영일 함석헌선생과 배움터 2002.3,4 씨알의 소리
김영호 함석헌의 같이살기 운동 2002.1,2 씨알의 소리
김용준 내가 본 함석헌 2002.6.18-연재 대학신문 (2002.6.18부터 연재)
김윤석 함석헌의 기독교사상에 관한 고찰 2002 전주대 선교신학 대학원 석사논문
김진 함석헌 사상의 신학적 유산 1,2 2002.9-10 기독교사상(대한기독교서회)
김치홍 함석헌의 민족정신과 우찌무라 간조 2002.11월 씨알사상연구회
東西저널 사상가 함석헌 : "민중이 깨어나야 나라가 살고 하나님 사랑도 얻게 될 것이다" 2002.4 東西저널 (월간동서저널)
박세훈 함석헌의 기독교사상 연구 :한국토착교회사관을 중심으로 2002 감리교신학대 대학원 석사논문
박재순 유영모 사상의 사상사적 위치와 현대적 의미 2002.7월 씨알사상연구회
박재순 함석헌의 씨알정신과 평화운동 2002.8월 씨알사상연구회
방석종 예언자 함석헌 선생 (원문) 2002.8.28. 기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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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룡 하나님의 발길에 채어 인도사상까지 2002.4 민족의 큰사상가 함석헌선생 (한길사)
이황직 근대 한국의 윤리적 개인주의 사상과 문학에 관한 연구;정인보,함석헌,백석,윤동주를 중심으로 2002 연세대 대학원 박사논문(국회도서관)
진영일 함석헌의 한민족의 세계사적 사명 2002.12 公州敎大論叢 39-2호(공주교육대학교)
최영묵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 연구 2002 목원대 신학대학원 석사논문(국회도서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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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함석헌의 나선형 역사 이해 2003.여름 (하나님·사람·자연이 숨쉬는)샘 20호(한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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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거짓예언자 함석헌' 위서 2003.8 책과 인생 116호
김용준 내가 만난 함석헌 선생님 2003.봄 사이2호(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김조년 함석헌과 한국의 사회운동 2003.9월 씨알사상연구회
김창규 타오르는 활화산, 함석헌 (1) , (2) 2003.9,10 희망세상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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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구 님께서 지금 여기에 계시다면 2003.10월 씨알사상연구회
이치석 20세기 전쟁폭력과 씨알교육 2003.4월 씨알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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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환 咸錫憲 翁을 생각한다 2003.1.21
장성환 다석과 씨알 2003.1,2 씨알의 소리
장회익 온생명과 함석헌 생명사상 2003.11,12 씨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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