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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2

손가락질하며 떠난 이들 원망 대신 자기성찰 했다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손가락질하며 떠난 이들 원망 대신 자기성찰 했다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손가락질하며 떠난 이들 원망 대신 자기성찰 했다

등록 2017-05-31 10:32수정 2017-05-31 10:46
조현 기자 사진
조현 기자

[대안공동체 탐방] 조현의 공동체마을 체험기
⑪ 못난이도 잘난이도 함께 살아가는곳


가스가야마 낙농부.일본 야마기시 공동체의 본부 격인 도요사토는 애즈원에서 차로 불과 20~30분 거리에 있었다. 애즈원에서 방문자들을 담당하는 이치가와 겐이치가 차로 도요사토까지 바래다주었다. 이치가와는 도요사토에서 나온 지 7년 만에 도요사토에 처음 들어온다고 했다. 야마기시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조차 중년을 넘겨 광야로 나갈 수밖에 없을 만큼 야마기시는 숨쉬기 어려운 공동체가 된 것일까.


도요사토는 한때 3천명이 사는 세계 최대 공동체의 명성에 걸맞은 위용을 여전히 자랑하고 있었다. 대학 캠퍼스나 아파트 단지 못지않게 잘 지어진 건물들과 아름다운 정원, 거대한 소 사육장과 야외 경기장, 대농장이 펼쳐져 있었다. 야마기시에서 떨어져 나와 인근 스즈카에 만들어진 애즈원커뮤니티가 이제 막 출발한 신생 중소기업이라면, 도요사토는 굴지의 기업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도요사토에 사는 이는 이제 500명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한때 세계 전자업계 선두였던 소니의 몰락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소니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과연 야마기시는 어떨까.

야마기시 공동체는 야마기시 미요조(1901~61)가 양계장에서 발견한 상생의 원리를 깨닫는 ‘야마기시즘 특별강습 연찬회’로 출발했다. 이후 이런 깨달음을 삶에서 실현해보자는 ‘실현지’가 1961년 가스가야마에 탄생했다. 야마기시 미요조는 1961년 사망했지만, 실현지는 전세계로 퍼져나가 일본, 스위스, 브라질,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50여곳에 만들어졌다.

이상사회 실험의 모델로 여겨지던 야마기시는 밀레니엄인 2000년 전후 큰 위기를 맞는다.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부터 찾아왔다. 1995년 아사하라 쇼코 교주의 옴진리교가 일본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13명의 사망자와 5000명의 중경상자를 낳은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일본에선 공동체생활을 하는 유사종교집단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야마기시는 어떤 종교 교리나 신념 또는 아집이 없는 ‘고정되지 않는 전진’을 주창했지만, 일반인들에겐 유사종교단체와 달라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때 세계 최대 공동체 야마기시
개인 욕구 수용 못하고 소통 안돼
3천명 공동체 5백명으로 줄어
갈곳 없는 노인들이 주로 남아



속마음 털어놓는 연찬 되살려
권력화했다던 조정위원들도 민의수렴
얼마남지않은 젊은층들 즐겁게



야마기시 떠난 동료들도 돕는 배려
외부의 차가운 시선도 달라져
거센 우환 지나 여유 평화 넘쳐



지난 2009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부작엔 신흥종교집단 ‘선두’와 후카다 교주가 나온다. 후카다 교주는 암살기술자 아오마메에 의해 호텔방에서 미세한 침에 찔려 살해된다. 후카다는 암살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죽음을 맞을 만큼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1Q84>가 나온 뒤 신흥종교집단 ‘선두’의 모델이 야마기시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키의 와세다대 스승으로 알려진, 니지마 아쓰요시 교수가 도요사토 공동체에 입회한 것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니지마 교수가 사망한 후에도 부인은 지금까지 도요사토에 살고 있다.

사린가스 사건 이후 공동체에 대한 매스컴의 비판 기사가 늘었다. 야마기시는 아기 때부터 아이들을 모아 함께 양육했다.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공복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니시요법’에 따라 초등학생들한테도 아침을 먹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들을 억지로 굶기는 아동학대라며 집중 부각되고, 야마기시를 비판하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러자 그 전까지 야마기시의 유기농 제품을 공급받으려 읍소했던 유명 백화점들이 태도를 바꿔 야마기시 제품 판매 코너를 일제히 폐쇄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거품경제가 무너져 세수 확보가 절실했던 세무당국은 야마기시 참여자들의 기부나 무보수 노동을 탈세로 간주해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야마기시 이후 공동체를 이끌던 스기모토 도시하루가 1999년 도요사토의 포도밭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 야마기시 공동체가 무려 수백억엔을 보유하고 있었던 사실이 알려졌다. 스기모토가 공동체를 성장시킨 주역이긴 했지만, 공동체원들의 자유를 제약하며 지나친 내핍생활로 이끈 것이 아니냐는 내부 비판도 제기됐다.

가장 비판적인 이들은 야마기시 안에서도 엘리트로 꼽히는 이들이었다. 야마기시즘 특강회를 이끌거나 사상과 교육, 방향을 결정하던 이들이 2000년 ‘야마기시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이탈해 시작한 게 스즈카의 애즈원이다. 이후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졌다. 더구나 처음 공동체에 들어올 때 전재산을 냈던 이들이 그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처음 낸 재산의 3분의 1 정도를 돌려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를 두고 야마기시 사람들은 공동체의 방향과 정책을 결정하던 주역들이 자성은커녕 공동체를 비난하고 나갔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도요사토 공동체 정원.그런 태풍이 휩쓸고 간 도요사토는 의외로 평화로웠다.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노인 세대가 많이 남았지만, 자포자기나 남은 자의 비감은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이 보이는 드넓은 도요사토 공동식당의 분위기와 음식도 어느 고급 호텔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다만 자신이 먹을 만큼 가져다 먹고, 설거지를 스스로 하는 게 다를 뿐이었다. 외부의 비판 이후 아이들에게도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고 먹이는 등 공동체 내 변화는 뚜렷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축사의 현대화였다. 도요사토에선 ‘와규’로 유명한 흑소 3천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사람 손이 가지 않아도 되도록 모든 사육과정을 자동화했다. 고령사회 일본에서도 더욱 고령사회가 돼 젊은 노동력이 부족한 공동체에서 앞으로도 생산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자동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오늘날의 야마기시 공동체에는 ‘잘나가던’ 과거와 달리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 도요사토엔 노동력의 주축인 20~50살이 51명이다. 따라서 이들의 일 부담이 적지 않다. 이들이 우리 돈 10만원에 불과한 1만엔의 용돈을 받으며, 개인적 자유를 구가하기는 쉽지 않은 게 이곳의 삶이다. 그러나 윗세대를 무조건 따르라는 게 예전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귀한 몸’이 된 젊은이들에 대한 배려가 크게 달라졌다.



도요사토 공동체 직판장을 책임지고 있는 윤성준씨.경기도 화성 야마기시 마을에서 자라 2009년부터 도요사토에 살고 있는 윤성준(43)씨는 “젊은이들이 너무 외롭지 않게 함께 모여 일하게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위스계 일본인 공동체원 가지야마 하이디(25)와 결혼한 윤씨는 도요사토 정문 앞에 지역민들을 위해 2014년 문을 연 직판장의 책임자를 맡고 있다. 윤씨는 “고가의 유기농보다는 지역 먹거리 정도로 만족하는 게 요즘 일본의 분위기여서 공동체에서도 유기농이 아닌 일반 농축산물을 생산하지만 유통마진 없이 저가에 판매해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야마기시에 대한 외부의 편견도 다시 누그러지고 있는 셈이다. 직판장은 시내와는 떨어져 있는데도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로 붐볐다.

도요사토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최초의 야마기시 공동체 가스가야마의 사육장에서 일하는 야마사키 아키히사(32)도 “같은 또래 4명이 밤이면 자주 모여 술도 마시면서 스포츠와 영화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야마기시 공동체는 매사 속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하는 ‘연찬’을 통한 ‘무고정 전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탈자들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한 것이 이 연찬이다. 형식만 남고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의사 결정을 하는 ‘조정위원’이 권력을 쥐고서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등의 개인적 욕구를 수용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스가야마 식생활부에서 연찬하는 공동체원들.그런데 가스가야마 공동식당에서 일하는 10명이 모여 진행하는 식생활 연찬을 보니, 활기가 넘쳤다. 그들은 점심 200명분, 저녁 240명분의 메뉴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유쾌하게 논의했다. 다음날 인근 학교 운동회에 군고구마를 가져다주자는 제안과 단풍축제의 이동판매소에 ‘나도 가보고 싶다’는 바람도 나왔다. 집을 옮기고 싶다고 신청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다거나, 남자들이 숙소 1층에서 담배를 피워 연기가 올라와 싫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한 여성은 “몸이 좋지 않아 4일간 일을 쉬었는데 내일부터는 나오겠다”고 말하며, “예전엔 쉬고 싶거나 뭔가 하고 싶어도 분위기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거의 마음을 꺼내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야마기시에 합류해 일본인 남성과 결혼해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오상순(57)씨도 도요사토의 조정위원이다. 조정위원은 도요사토에서 6개월마다 10명이 뽑힌다. 오씨는 “공동체 인터넷을 통해 하루 수십통의 크고 작은 제안이 들어온다”며 “자신의 제안이 거부당해도 다시 제안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고 했다. 공동체가 개인적 욕망 실현의 장이 아니라 함께 행복한 이상사회를 만들려는 곳인 만큼 모든 욕구를 다 수용할 수는 없지만, 좀더 개인과 사회의 욕구의 조화를 위해 더 애쓰게 된 것이다.



가스가야마 공동체 식당.

가스가야마의 기타오지 요리노부.

가스가야마에서 만난 기타오지 요리노부(65)는 고교 시절 학생운동의 리더였다. 당시 시국사범으로 감옥에 갇힌 그는 “오히려 밖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유를 감옥에서 느꼈다”며 18살에 야마기시에 합류했던 계기를 전했다. 야마기시는 외형상 지도자를 내세우지 않지만 기타오지는 스기모토 이후 주요 지도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도쿄대 출신들을 비롯한 야마기시의 우수한 인재들이 스즈카로 빠져나갔는데, 그들이 내게도 함께 갈 것을 권유한 걸 보면, 나도 우수한 인재인 모양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우수한 분들이 빠져나간 이곳엔 갈 곳 없는 노인과 장애인들이 많고, 화가 나면 자기 분뇨를 벽에 칠하는 분도 있다. 나는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다”

애즈원은 구태에 빠진 야마기시를 비난하며 나갔지만, 오히려 야마기시에선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이들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는 애즈원 같은 곳이 곳곳에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초기 경제적 자립에 고심하는 애즈원이 만든 비료공장의 비료를 사주며 자립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거센 태풍이 야마기시를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신생 커뮤니티 애즈원이 신선한 생기로 반짝인다면, 야마기시 공동체엔 성숙한 여유와 평화의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끝>

도요사토·가스가야마(일본)/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연재조현의 공동체마을 체험기

13 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 한국농정신문

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 기획 < 기사본문 - 한국농정신문



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대안적 삶을 찾아서 화성의 산안마을

현재위치기획 입력 2013.07.07 21:58
수정 2014.03.03

몇 해 전에 서울대학교 대입 논술고사에 한 마을이 소개된 적 있다. 꽤 긴 지문을 인용하면 이렇다.

<1953년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즈가 제창한 공동체 운동을 야마기시즘이라고 부른다. 야마기시즘이 꿈꾸는 공동체는 한마디로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마을’이다. 1958년 일본에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처음 탄생한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스위스, 브라질,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세계 각국에 40여 개가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환경 친화적 농법으로 먹거리를 생산한다. 우리나라에는 1984년에 최초로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생겼다. 이 마을의 홈페이지에는 “모든 생활과 경영을 일체 생활, 일체 경영, 일체 사회로서 해 나가고 있습니다. 양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함께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양계장이나 공동체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태만을 본 오해이고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 목적은 급료나 분배가 없는 일체 생활 속에서 사이좋게 즐겁게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저희 자신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밝고 평화로운 사회로 바뀌기를 염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마을은 무엇보다 무소유(無所有)를 삶의 근본 가치로 삼고 있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와 다르다. 이들은 마을의 재산도 주민들의 공동소유물로 보지 않을 정도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태양과 공기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도 그러해야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할 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마을 공동체의 무소유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마을은 돈이 필요 없는 사회이며, 필요한 물건은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다른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물건을 필요로 할 때에도 물론 무료로 공급해준다.>



▲ 

산안마을 사람들은 연찬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이용, 이웃과 소통한다.이 지문을 읽고 학생들이 어떤 내용의 답을 썼는지 궁금하지만, 그것까지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마을은 언제라도 찾아가 볼 수 있는 화성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마을의 역사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발안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얼마 가지 않으면 화성군 향남면이 나온다. 그곳 구문천리라는 동네에 바로 산안마을이 있다. 10여 가구쯤이 모여 사는 마을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과 각양각색의 꽃들이 가득 심겨 있어 온통 꽃밭이다. 농장이자 거주지인 마을 입구에는 안내문이 서 있는데,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의 명의이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 10여 동의 양계축사가 늘어서 있고, 그 옆에 커다란 생활집과 식당, 작업공간, 마을회관 등이 모여 있다. 여느 양계장보다 상당히 깨끗하다는 느낌과 놀랍게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양계장의 규모는 보통의 양계로 치면 이십만 마리를 키울 수 있는 크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닭은 삼만 여 마리다. 그만큼 닭들의 사육 여건이 남다르다.

야마기시즘이라는 말이 일본말이라 낯설게 들리기는 한다. 야마기시(山岸)라는 일본 사람의 이름에 이즘을 붙여 일종의 이념처럼 들리는데 그다지 복잡한 사상체계는 아니다. 물론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깊이가 옅은 것은 아니다.

창시자인 야마기시는 청소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하나 되어 사이좋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사회주의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고 여러 사상을 섭렵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닭을 키우던 야마기시에게 인생의 전기가 된 것은 1950년에 불어 닥친 태풍 때문이었다.

당시 태풍으로 들판의 벼가 다 쓰러졌는데 한쪽 논에서만 벼가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것을 한 농촌 보급원이 발견한 것이다. 신기해서 누구 논인지 알아보니 그 곳이 바로 야마기시의 논이었고, 그의 농사법과 양계법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농촌 보급원은 야마기시를 설득하여 농사법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하게 했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야마기시의 양계법에 공감하다가 점차 이러한 양계법을 낳은 독특한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즉, 이상사회와 인간성 회복운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우주삼라만상이 하나다’, ‘나 아닌 것이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 ‘무소유 일체 사회’, ‘교육이 아니라 함께 배우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학육이다’ 등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1956년 교토의 한 절에서 162명이 모여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가 처음으로 열렸고 이 강습은 매월 2회씩 개최되었다. 1958년, 7월 야마기시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일본 미에현 가스가야마라는 곳에서 일체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야마기시즘 실현지'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졌다. 현재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 스위스, 브라질,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8개국에 걸쳐 있다.


우리나라에서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가 시작된 것은 1966년이었다. 현재 영농법인의 대표이자 마을의 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윤성렬 씨의 아버지가 1965년 일본 가스야마 세계중앙실현지에서 연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야마기시즘은 당국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일단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자꾸 모여서 이상사회니 무소유니 하는 이야기를 하니까 당국에서 이상하게 볼만도 했지요."

그는 전직 교사다. 젊은 시절, 이상적인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실패와 온갖 역경을 거친 끝에 1984년 지금의 자리에 실현지를 마련했다. 그들은 야마기시즘 생활을 하는 곳을 실현지라고 부른다.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곳이란 뜻이다.

산안마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개인의 소유는 물론이고 공동체의 소유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아예 필요 없는 세상을 이들은 실현하고자 한다. 한편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부하며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꿈꾼다. 이러한 목표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 안내문이 서 있는 산안마을 입구.무소유와 풍요를 함께 꿈꾸다



산안마을에서 개인은 가진 게 없지만 공동체가 가진 것은 적지 않다. 5만여 평의 농장에서 일년에 십억이 훨씬 넘는 수입을 올린다.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재정은 양계를 통해 마련하는데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독특한 양계법을 통해 맛있는 유정란을 생산한다. 비법은 닭도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며 키우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닭을 사람 대하듯 한다.

닭장 안으로 들어가 사료를 주거나 알을 꺼낼 때 닭들에게 노크를 하거나 양해를 구한다. 말없이 들어갈 때는 ‘안녕’하고 눈짓으로라도 인사를 건넨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야 양계를 할 자격이 있다는 심성과 철학으로 양계를 하기 때문에 닭들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 키우는 보통 양계장의 닭들과 달리 아주 건강하다. 그렇게 닭의 생명을 존중하며 키워서 그런지 이곳 닭이 낳은 유정란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시중에서 팔리는 계란보다 3배 가량 비싸지만 한번 먹어본 사람은 대부분 이곳의 계란을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야마기시 양계법을 배워서 그 방식대로 닭을 키우는 농부들이 전국에 여럿 생기기도 했다.

산안마을은 유정란을 팔아서 번 돈으로 의식주 등 필요한 것을 모두 공동체에서 해결해 준다. 개인에게는 한 달에 5만원정도의 용돈이 주어지는데 이 돈으로 책을 사고 영화를 보고 바깥 음식을 사먹기도 한다. 돈이 더 필요하면 더 달라고 하면 되고 큰돈이 드는 물건이 필요할 경우에는 마을 회의에서 논의를 해서 결정한다.

양계와 함께 마을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일은 서로 나눠서 한다.

일은 생활 부문과 생산 부문으로 나뉘는데, 생활은 가정이고 생산은 일터라고 할 수 있다. 생활 부문에는 식생활부, 의생활부, 주생활부, 학육 부문이 있고, 생산부문에는 양계, 채소, 공급 부문이 있다. 일은 가능하면 전문화, 분업화를 하려고 하는데 돌아가면서 일을 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던 일만 계속하면 타성에 젖을 수가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6개월마다 자신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아이들도 함께 키운다.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낳은 부모가 데리고 키우지만 초등학교 2학년을 전후해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진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마을의 모든 어른들을 부모처럼 여기며 호칭도 엄마, 아빠라고 한다.

비슷한 뜻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도 아닌 남남인 사람들이 항상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우리들은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그 때문에 그 조직을 떠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산안마을에는 그렇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게 만드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그것은 연찬이라는 독특한 방식이다.

"연찬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주적이고 자발적인 의지의 바탕에서 스스로 사는 법, 인생관, 일상의 생활이나 사회생활 등, 인생의 모든 주제에 관하여, 모두의 지혜를 모아 모두와 함께 진리는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연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집을 버리는 것이다. 연찬을 할 때 야마기시 사람들은 상식, 선입관, 고정관념 등에서 벗어나 모두가 사이좋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안을 찾고자 한다. 사람들이 다투는 것은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만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그 판단이 맞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서로 싸운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이를 잘 알고 다르게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만이 아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다. 그렇게 연찬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모두와 사이좋게, 건강하게, 물자가 풍요롭고, 정이 가득한 쾌적한 마을을 만들어가는 일은 어떤 것이고, 그를 위해 자신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생활을 그들은 연찬생활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서 들어와서 거주하는데 특별한 자격은 없다. 하지만 일단 야마기시즘 회원이 되기 위해선 무소유의 삶에 동의해야 한다. 이것을 참획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서 거주하려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야마기시즘회에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14박 15일로 진행되는 연찬학교를 마쳐야 한다.



산안마을은 자신들이 꿈꾸는 무소유와 일체생활의 이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공동체 바깥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벌이는 무소유 체험마당인 '초록축제', 어린이들이 산안마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어린이 낙원촌', 국내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워크캠프, 한일 대학생 교류 모임인 '테손', 청년들이 산안마을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볼 수 있는 생활체험 등이 그러한 프로그램이다.

돈이 필요 없고 이웃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마을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지구촌 전체가 그런 공동체 마을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은 허황된 것일까? 산안마을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꿈은 또 다른 세상을 염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최용탁 소설가

[영성위크샵] 6박 7일 <야마기시즘 연찬회> --- - 만약 한국을 방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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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위크샵] 6박 7일 <야마기시즘 연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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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한국을 방문한다면, 다음 번은 이걸 하러 가야겠다.
- 올해는 말기 환자 라이프 스토리 프로그람으로 대기 중이고, 10월에 1주간 퀘이커 리트리트를 또 한번 해야 되어서, 내년이 되어야 하겠다.
- 관광보다는 사람들과의 <깊은 만남>이 되는 이런 경험을 되풀이 하는 것이 좋다.
- 어머니 일선님은 70대에 (약 30년 전?) 카나다에서 산안마을에 찾아가서 이 프로그람을 하셨는데, 어떻게 이 프로그람에 대해 알게 되었나 생각해보자면, 그 전에 유상용님이 에미서리 그룹과 관계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산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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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
‘정말의 나’를 발견하고 ‘진실한 삶, 진실한 사회’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함께 찾아가는 자리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일시 : 2023.8.12(토) ~ 2023.8.18(금) (6박7일)
장소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1길81
대상 : 만 18세 이상
신청 : www.yamagishism.co.kr
문의 : 010-3587-1862 / ys39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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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 「특강」신청서
개최요강

개최일시

2023년 8월 12일 10시 부터 ~ 2023년 8월 18일 15시 까지 (6박7일간)


개최회장

야마기시즘 한국실현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1길 81)

참가대상

만 18세 이상으로, 6박7일 동안 참가 가능한 분
(중도 또는 부분 참가는 불가합니다)
* 특강은 일생에 한번만 참가 가능합니다.
* 심신 건강이 불안정한 분은 꼭 신청 전 상담 후 결정합니다.
* 24시간 이내 신속항원검사를 실시 후 음성 확인자.
(특강 회장 도착 후 접수시 참가자 전원 신속항원검사 추가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참가비용

40만원(입금계좌 농협 123-01-063947)

준비물

세면도구, 여벌 옷 상.하의 1벌, 잠옷

문의 010-3587-1862 /
ys39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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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연락처(관계도 기입해주세요) 예: 010-****-****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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