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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4

오구라 기조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1) 코지마 츠요시 <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8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1)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1)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8.01.28 
한국 사상 통사通史 그려낸 가치있는 저술
코지마 츠요시 일본 도쿄대 교수

동양일보가 연중 펼치고 있는 ‘동양포럼’으로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온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가 최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조선사상전사(朝鮮思想全史)’ 책 두 권을 펴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현대 한국 사회를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리’와 ‘기’로 해부한 독창적인 한국론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에도 번역·출간됐지만 ‘조선사상전사’는 아직까지 일본에서만 만날 수 있다.

‘조선사상전사’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교·불교·도교 등의 사상과 철학을 넘어 신화·역사·종교·정치까지 모두 담고 있다.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기자명 박장미 기자
입력 2017.10.23 

김태창 주간 삿포로 특별강연
민중 속으로 뛰어든 이들의 공통점
탈식민지화, 탈영토화 위해 온몸바쳐
일본제국주의 '천황 따르라'주입교육
폭력 아닌 '정답'논리로 인민들 지배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에서 열린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초영사관 초청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에는 훗카이도 지방정부인사, 학계, 기업관계자, 재일동포 등 30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동양일보)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 삿포로 3층 로이톤홀에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을 초청, 일본의 나츠메 소세키와 한국의 포석 조명희를 소재로 한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강연 내용을 야규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가 정리해 보내왔다. <편집자>

10월 16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호텔 로이톤삿포로(ロイトン札幌)에서 주 삿포로 대한민국총영사관 주최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조명희(趙明熙)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를 통해 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하다’가 개최되었다. 바깥에서는 한반도나 일본의 혼슈(本州)보다 먼저 첫겨울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강연 장소인 300명을 수용하는 대형 홀이 곽 찼고,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가 충만하고 있었다. 시작하기 전 홀에는 5살 때 고아원에서 도망치고 10여 년 동안 혼자서 살다가 세계적 가수가 된 최성봉 소년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그리고 존 레논의 ‘이메이진(Imagine)’, 고바야시 사치코(小林幸子)의 ‘꿈의 끝(夢の涯て)’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모두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고 계속 꿈을 가지는 것의 중요함을 부른 노래들이다.
또 2시간의 강연을 마친 후에는 만찬회가 열렸는데,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하려고 하는 참가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김 주간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주최자 쪽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김 주간, 영사관 관계자와 미래공창신문 야마모토(山本恭司) 교시 편집인과 필자만이 경식을 취하면서 야심한 시각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상아탑을 떠나서 ‘민중 속으로’
이 강연에 즈음하여 김 주간은 지금 왜 오늘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라는 한일의 대표적인 작가를 이야기하느냐에 대해 밝혔다. 포석 조명희(抱石趙明熙)는 잘 알다시피 1894년 마침 동학혁명,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일어난 한반도 역사가 대전환된 해 충북 진천(鎭川)에서 태어났다.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3.1운동에 참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석방 후 그는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동양철학과로 유학하면서 재학 중에 문학에 눈을 뜨게 되고 1920년에는 희곡 ‘김영일(金英一)의 사(死)’로 창작극작가로 데뷔했다. 다음해 고국에 돌아온 그는 1920년대에 대표작인 ‘낙동강(洛東江)’을 비롯하여 많은 시, 희곡, 소설 등을 발표하면서, 독립운동·노동운동·사회주의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식민지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러시아의 한인촌에 가서 고려인 문학과 교육에 힘을 기울었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하에서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고 말았다.
소세키도 역시 어린 시절은 불우하고 여러 번 입양되다가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젊은 소세키는 한시문(漢詩文)을 즐겼으나 문명개화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제국대학(帝國大學·뒤의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에히메(愛媛)와 구마모토(熊本)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문부성(文部省)의 명을 받아서 영국 런던에 국비유학생으로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신경쇠약을 앓고 귀국명령을 받게 되고, 귀국 후에는 도쿄대학 교수와 제일고등학교 강사를 했지만 결국 교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자의 신분으로 소설가가 되었다.
김 주간은 그들의 삶이 30대에 한국을 떠나서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유학하고 또 50대에서 대학총장의 지위도 다 놓아두고 단신 일본에 가서 도쿄대학에서 공공철학 운동을 시작한 자기 인생과 겹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보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소세키와 조명희가 조금 스스로를 굽히기만 하면 상아탑 안에서 그런대로 안정된 생활과 신분 보장, 그리고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문학자로써 민중 속으로 뛰어들고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위해 활명연대(活命連帶)하려 했다는 점이다.
젊은 소세키는 영어와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일본인으로서 무엇 때문에 영문학을 공부하는가? 문명개화(文明開化)니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니 하기 위해 영문학자의 설을 일본에 수입하고 짝퉁 영국인이나 되자는 것인가?”라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게다가 실제로 대영제국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살아보니까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대제국을 건설해본들 거기에 사는 영국인들은 별로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당시의 제국 일본의 밝지 않는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마침내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 것이다.
‘산시로’에서 주인공 산시로(三四?)가 도쿄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콧수염을 기른 (소세키의 분신과 같은) 남자와 같은 자리에 앉으면서 러일전쟁 후 “앞으로는 일본도 점차 발전하겠지요?” 라고 말하자 그 남자가 “망할 거야”라고 딱 잘라버리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말로를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엘리트 교원의 자리를 내던지고 소설가가 되었으며, 근대주의·자본주의·제국주의에 분주하면서 내면이 ‘식민지화’된 지식층의 모습을 비판적 또는 풍자적으로 많이 그렸다.
한편 조명희의 경우는 보다 직접적·구체적으로 한반도 땅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는 식민지 민중의 비참한 모습을 소설에 많이 묘사하고 ‘낙동강’에서는 제국주의 권력에 의한 고문으로 빈사상태로 석방되는 독립운동·사회운동 지도자를 등장시켰다. 그 작품에는 경찰 측 인물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비록 놓인 상황은 다르지만 조명희도 소세키도 식민지화·영토화된 영혼들을 구해내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민중 속으로 뛰어든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정답 없는 물음’을 계속 물어야
강연 중 김태창 주간은 김선우 화가가 소세키 작품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행인’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리고 조명희의 작품세계를 그려낸 ‘아무르 강의 생명수’, ‘낙동강’을 소개하고, 김영미 시인의 시 ‘낙동강이 흐른다’(일본어 번역: 오구라 기조 교수)를 낭독했다. 또 나츠메 소세키, 조명희, 그리고 중국을 대표하는 루쉰(魯迅)의 세 사람에 대해 김태창 주간이 직접 지은 시 ‘정답 없는 물음’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정답 없는 물음’과 관련해서 김 주간은 일찍이 어느 고등학교 교장 연수회에서 강연했을 때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떤 교장선생이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은 어디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김 주간은 “고등학교까지는 정답이 있는 교육을 합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는 것을 가르치는 곳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삿포로의 청중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강연 후의 만찬회 때 한 여자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나는 정답을 찾기 위해 대학교로 들어갔는데 정답이 없는 곳이 대학이라면 그 정답은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뒤에 영사관 직원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을 때에도 어느 직원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답’이야말로, 달리 말하면 재빨리 정답을 얻고자 하는 심리야말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로 이어지는 무서운 함정이다. 서구제국주의는 막강한 군사력만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은 ‘서양화가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세계를 농락했고, 일본제국주의는 “천황폐하를 신으로 받들고, 천황의 정부의 법을 따르고, 천황의 백성인 일본인과 같이 돼라.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식민지(본국도)를 지배했다. 히틀러의 나치스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답이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정답이었고, 중국에서는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이 정답이고,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정답이다.
이처럼 모든 제국주의·전체주의는 폭력·통제·감시보다 오히려 ‘정답’을 가지고 인민들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시민이 자유로움을 잃지 않으려면 먼저 계속 생각하는 백성(思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에의 뜻을 굳게 지키는 백성(志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뜻을 지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배 권력이 내놓는 가짜 정답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뜻과 생각으로 옳고 그름, 밝음과 어두음을 가리고 항상 밝음(哲)을 선호하는 백성(哲民)이 되어야 한다고 김태창 주간은 강조했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는 모두 뛰어난 지성을 가지면서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안정된 지위와 생활을 내던지고, 여러 가지 병이나 관헌의 탄압과 싸우고, 시민들과 함께 문학작품을 통해 사민(思民)·지민(志民)·철민(哲民)이 되고자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 주간은 영혼의 식민지화, 영토화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기계에 의한 식민지화라고 경계한다. 사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치되고 장래 없어지는 직업이 거론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 골드만삭스(The Goldman Sachs Group)는 이미 서기 2000년 당시 600명 있었던 금융투자가를 현재 2명까지 줄었다고 한다. 또 2016년 3월에는 이세돌 기사(棋士)와 AI의 알파고(AlphaGO)가 대전하고 4패 1승한 일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의 승리라는 문맥에서 거론될 경우가 많지만 김 주간은 오히려 이세돌이 거둔 1승에 주목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정보처리·분석능력이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인공지능이라도 감히 생각해낼 수 없는 묘수(妙手)를 인간은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유를 잃지 않으려면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철학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힘들더라도 정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 물을 줄 알아야 된다. 하지만 혼자서 그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벗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의 인생과 작품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줬다. <야규마코토(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 일본의 카이바라 에키켄 <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8

고령화 시대에 되살아나는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 일본의 카이바라 에키켄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고령화 시대에 되살아나는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 일본의 카이바라 에키켄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05.13 
동양포럼(68)-고령화 시대에 고령자를 생각한다
카이바라 에키켄 초상
야규 마코토(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카이바라 에키켄은 누구인가?

카이바라 에키켄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유학자·박물학자이다(전문의 의사가 아니었다). 이름은 아츠노부(篤信), 자는 시세이(子誠), 호는 쥬사이(柔齋)·손켄(損軒) 등이 있으나, 만년에 쓴 에키켄(益軒)이 가장 유명하다.

에키켄은 큐슈(九州) 후쿠오카번(福岡藩, 일명 쿠로다번黑田藩)의 서기였던 카이바라 칸사이(貝原寬齋)의 5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의학에도 밝았던 아버지로부터 의학을 배우고 둘째 형부터 글을 배웠다. 18세 때부터 후쿠오카번에 출사했으나, 어느 날 번주(藩主)인 쿠로다 타다유키(黑田忠之)의 노여움을 사서 면직되고, 7년 동안 낭인 생활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에 나가사키(長崎)·에도(江戶) 등지에 가서 의학과 주자학을 공부했다. 1656년에 새로운 번주 미츠유키(黑田光之)에게 사면을 받고, 다시 출사하게 됐다. 그는 의사·주자학자로 교토(京都)에서 35세 때까지 7년 동안 유학하면서,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한 후에 후쿠오카로 돌아와 주자학 강의, 조선통신사의 응접, 이웃 번과의 분쟁 해결, 쿠로다 가문의 계보인 ‘쿠로다 가보(黑田家譜)’ 편찬 등 교육, 외교, 역사편찬 등 다방면으로 확약했다. 한반도와 가까운 후쿠오카에서 오랫동안 문교전책에 관여한 관계도 있어서, 그의 장서에는 퇴계·율곡 등 조선유학의 책도 많이 들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1700년, 70세가 된 에키켄은 공직을 물러가고, 에도시대 일본의 대표적인 박물학서인 ‘대화본초(大和本草)’, 교육론인 ‘화속동자훈(和俗童子訓)’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1713년에 아내 도켄(東軒)이 돌아가자 대표작인 ‘양훈생(養生訓)’을 지었다. 그리고 이듬해 1714년 8월 27일에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보시다시피 에키켄은 전문 의사가 아니라,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자기 눈으로 확인한 사실만을 인정하는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 대도와 백성들의 삶에 이바지하는 것을 중히 여기고, 저작의 대부분을 한문이 아니라 대중들이 알기 쉬운 카나(かな)문자로 쓴 만큼, 이용후생적(利用厚生的)인 대도를 견지한 실학자였다.



●왜, 지금 양생인가?

일흔 살을 가리켜 고희(古稀)라고 한다.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항상 있지마는 사람이 70 살기가 옛날부터 드물구나.”(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는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한 구절에 유래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술빚 걱정은 몰라도 일흔 넘게 사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장수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느냐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의료복지 제도의 확충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양생(養生)’이라는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양생’은 ‘장자(莊子)’에도 양생주(養生主)편이 있는 만큼, 도가와 인연이 깊은 개념이었다. 그 양생주편에는 포정(庖丁; 요리사)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아주었는데, 포정이 칼질하는 솜씨에 감탄한 문혜군이 그 비결을 묻는 대목이 있다.

그 포정과 문혜군의 대화 속에 양생사상의 기본이념이 들어 있다. 즉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는 점,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도를 닦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잘 지키면 생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생사상의 이론과 실천방법은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 때에 걸쳐 크게 발달하고 체계화됐다. 그것은 동양의학과 도가적 수양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일찍이 몸이 허약했던 퇴계 이황(退溪李滉)이 ‘활인신방(活人神方)’의 수련법을 써서 건강을 유지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생의 사상과 실천은 한중일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양생사상은 동양의학과 도가사상 속에 매몰되고, 의료 전문가나 상당한 지식인 혹은 도인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17~18세기 초 일본의 유학자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은 ‘황제내경(黃帝內經)’과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그 외에 ‘난경(難經)’(周나라의 의사 편작扁鵲의 저술로 전해짐), ‘금궤요략(金櫃要略)’(후한 장중경張仲景 저), ‘갑을경(甲乙經)’(晉나라 황보밀皇甫謐 저), ‘천금방(千金方)’(唐나라 손사막孫思邈 저) 등 수많은 의학서·의술을 섭렵하고 스스로 시험·증험해보면서 유학과 어울려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한 것이다.

양생·장생은 전문 의사 이외에 도가에 의해 많이 연구돼 왔다. 그래서 전문적인 의사도 아닌 유학자인 에키켄이 양생을 문제로 삼은 배경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사회적 요인으로는 그가 살았을 때가 바로 에도시대의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서,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아주 번성한 시기였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자꾸 폭음폭식하고 미인을 쫓아다니면서 재미있게 살다가, 만년에 건강을 해치고 고생하거나 병들어서 일찍 죽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은 오늘날의 우리들과 꽤 비슷하다.

그래서 에키켄은 스스로 쌓아놓은 연구와 실천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양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다. “만사에 한때 마음에 즐거운 것은 반드시 뒤에 탈이 된다. 술과 음식을 마음대로 먹으면 즐겁겠지만, 언젠가 병이 나는 것과 같은 부류이다. 앞에 참으면 반드시 뒤의 즐겁게 된다. 뜸뜨고 뜨거움을 참으면 나중에 병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왜 양생하는가?

에키켄은 ‘양생훈(養生訓)’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몸은 부모가 근본이 되고, 천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지부모의 은혜를 입고 태어나 또 길러주신 내 몸이니, 자기의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천지가 하사(下賜)하시고 부모가 남겨주신 몸이라면, 삼가고 잘 키워서 해치고 상하지 않도록 해, 천수를 오래 보전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바로 천지부모를 섬기는 효도의 근본이다. 몸을 잃어서는 섬길 수 없다. 자기 몸 가운데 조그마한 피부, 머리털조차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 함부로 해치는 것은 불효인데, 하물며 큰 신명(身命)을 자기의 사사로운 것으로 여겨, 삼가지 않고 음식·색욕을 제멋대로 하며 원기(元氣)를 해치고 병을 얻어서, 타고난 수명을 짧게 하고 일찍 신명을 잃게 되는 것은, 천주부모에 대한 엄청난 불효이며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앞에서 보았듯이 자기 생명을 오래 보전하는 것을 중히 여기는 ‘양생’은 유가보다 오히려 도가적인 가치관이었다. 그런데 에키켄은 양생이 천지부모를 섬기는 ‘효도의 근본’이라고 규정하고, 윤리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효도의 근본으로서의 양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에키켄은 39세 나이로 상당히 늦게 결혼했다. 아내는 나이 17세인 아키즈키번(秋月藩)의 무사 에자키 히로미치(江崎廣道)의 딸 하츠였다. 하츠는 토켄(東軒)이라는 호도 가지는 정도로 서예에 능한 여성문인이었고, 남편의 학문·저술을 많이 도왔다. 에키켄은 딸과 같이 나이 차이가 있는 아내와 함께 자주 여행에 다녔고, 집에서는 함께 악기를 타고 시를 읊으며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둘 다 원래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의학과 건강법을 많이 연구하고 시험해 보기도 했다. 에키켄이 84세 때 토켄이 자기보다 먼저 죽자, 학문적인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아내를 잃은 그는, 오랫동안 둘이서 연구하고 시험해 온 성과를 세상 사람에게 널리 알려서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양생론’이라는 책이다. 이것은 에키켄 양생론의 집대성이자, 에키켄과 토켄 부부가 상부상조한 성과인 것이다.



●양생의 방법

(1) 하늘이 나에게 준 원기를 잘 보전하라

‘양생훈’에서 에키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생의 방법[術]은 우선 자기 몸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몸을 해치는 것이란, 내욕(內慾)과 외사(外邪)이다.” 내욕이란 음식, 호색, 수면, 말을 함부로 하는 욕심과, 기뻐함·화냄·근심·생각·슬픔·두려움·놀람의 일곱 감정(七情)을 말한다. 외사(外邪)는 하늘의 네 가지 기운(四氣)이니, 바람(風)·추위(寒)·더위(暑)·습기(濕)를 말한다.

“내욕을 참고 줄여서 외사를 경계하고 막음으로써 원기를 해치지 않으면 병이 나지 않고, 천수를 오래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듯이, 욕심과 감정을 절제하고, 순하지 않는 기운을 피하는 것으로, 원기 즉 사람이 타고난 생명의 기운을 지키는 것이 양생의 요체인 것이다. “뭇사람이 타고난 수명은 대부분 길다. 수명이 짧게 타고난 사람은 드물다” “사람의 목숨은 자기에게 있지 하늘에 있지 않다고 노자(老子)는 말했다. 사람의 목숨은 본디 하늘에서 받은 것이지만, 양생을 잘하면 길어지고 양생하지 않으면 짧아진다. 그렇다면 수명을 길게 하는 것도 짧게 하는 것도 자기 마음에 달려 있다. 몸이 씩씩하고 장수로 타고난 사람도, 양생의 술(術)이 없으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 허약해서 수명이 짧다고 보인 사람도 잘 보호하고 기르면 목숨이 길어진다. 이것은 모두 사람이 하는 짓이니 하늘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2) 약·침·뜸은 어쩔 수 없이 쓰는 하책이다

하지만 에키켄은 “무릇 약(藥)·침(鍼)·뜸(灸)은 어쩔 수 없이 쓰는 하책(下策)이다.” “사람의 몸을 보전하려면 양생의 도를 믿어야 하고, 침·뜸과 약의 힘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절대로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도 잘못 쓰거나 체질에 안 맞으면 도리어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차라리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이 양생의 도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가 권장하는 방법은 적당한 운동이다. “신체는 날마다 조금씩 힘써 움직여야 한다. 오래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매일 식사 후 반드시 마당을 수백 걸음 조용히 걸어라. 비가 내리면 실내를 빈번하게 천천히 걸어라. 이와 같이 아침저녁에 운동하면 침·뜸을 쓰지 않아도 음식·기혈(氣血)이 막기지 않고 병도 없다. 침·뜸이 없으면 심한 열병이 나서 몸이 아픈 것을 참아야 될 지경이 이르기보다, 차라리 이렇게 하면 병들지 않고 안락할 것이다.”

(3) ‘내적’과 ‘외적’에는 방비책을 달리하라

에키켄은 “대개 사람의 몸은 약하고 여려서 덧없는 것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기 쉬운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의 몸과 마음을 공격하는 적은 크게 두 가자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과식·호색·졸림 등의 욕구, 혹은 화냄, 슬픔, 근심 등의 감정으로 모두 안에서 공격해오는 ‘내적(內敵)’이다. 하나는 바람, 추위, 더워 등 바깥에서 몸을 상하는 외적(外敵)이다. 에키켄은 ‘내적’에 대해서는 마치 적과 접전하듯 단단히 이겨내야 하지만, ‘외적’에 대해서는 방위(防衛)하는 것과 같이 대책을 단단히 세워서 적이 다가오지 않도록 막되, 적과 오래 붙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내적에 대해서는 다기지고 씩씩하게 이겨내라. 외적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빨리 퇴각가라. 다기진 것은 안 좋다.”

에키켄은 ‘내적’과 ‘외적’의 구별을 세워서 서로 대해 다른 대응책을 써야 된다고 지적함으로써, 주로 유가적인 도덕수양의 개념으로 생각되던 지나친 욕심·감정을 극복하는 것과, 의학적인 관점에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강조된 바람·추위·더위 등을 막고 피하는 것을 ‘양생’의 개념으로 결부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는 사무라이사회의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쉬웠을 것이다.

(4) 줄(縮小)인 즐거움을 즐거워하라

에키켄은 “성인(聖人)께서 자주 즐거움을 말씀하셨다. (……) 즐거움은 사람이 타고난 천지의 생리(生理)이다. 즐거워하지 않고 천지의 도리에 어겨서는 안 된다. 항상 도로써 욕심을 억제하고, 즐거움을 잃지 말라. 즐거움을 잃지 않음은 양생의 근본이다.” 라고 강조했다. ‘즐거움’과 욕심을 억제하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서로 모순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말한 뜻은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안 좋다는 것이고 억제하다고 해도 완전한 금욕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을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양생의 요결(要訣)이 하나 있다. 요결이란 간요한 구전이다. 양생에 뜻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서 지켜야 된다. 그 요결은 ‘소(少)’의 한 글자이다. ‘소’란 만사에 모두 적게 하고 많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통틀어서 단적으로 말하면 욕(慾)을 줄이는 것이다. 욕이란 이목구체(耳目口體)을 만족시키는 탐욕하는 것을 말한다. 주식(酒食)을 좋아하고 호색을 좋아하는 등의 부류이다. 대개 많은 탐욕이 쌓이게 되면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게 된다. 탐욕을 줄이면 몸을 키우고 목숨을 길게 할 수 있다. (……) 한때에 기를 너무 많이 쓰고 마음을 너무 많이 쓰면 원기가 줄고 병이 나서 목숨이 짧아진다. 사물마다 (신경을) 많이 쓰고 널리 쓰지 말아야 한다. 덜 쓰고 좁게 쓰는 것이 좋다.” “양생의 술은 먼저 심법(心法)을 잘 삼가 지키지 않으면 행하기 어렵다. 마음을 고요하고 요란스럽지 않게 하고 분노를 참고 욕심을 줄이며 늘 즐거워해서 근심하지 말아야 된다. 이것이 양생의 술이자 마음을 지키는 도이다. 심법을 지키지 않으면 양생의 술이 행해지지 않다. 그러므로 마음을 키우고 몸을 키우는 공부는 둘이 아니다. 한 술이다.” 요컨대 평정한 마음을 지키고 욕심을 줄여서 항상 즐길 줄 아는 마음공부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양생의 술인 것이다.



●최한기와 에키켄—즐거운 늙음

그런데 필자에게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나라도 시대도 다르고 어떤 영향관계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에키켄이 최한기(崔漢綺)는 상통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에키켄은 (당시 동아시아의 학자가 대부분 그렇듯이) 주자학자였지만, 만년에 쓴 ‘대의록(大疑錄)’이라는 논저에서 정주(程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입장을 밝혔다. 이기이원론과 결별한 그는 도덕의 근거를 더 이상 초월적인 리(理)에게 구할 수 없었다. 대신 천지의 기운이 만물을 낳고 길러주는 ‘은(恩)’에 보답한다는 ‘효(孝)’를 논리를 윤리적 기반으로 삼았다.

앞에서 보다시피 에키켄은 양생을 천지부모에 대한 효도의 근본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최한기도 마찬가지였다. “무릇 효는 어버이를 섬김을 근본으로 삼고, 오륜(五倫)에 미치고 만사에 달하며, 과불급(過不及)의 한계와 절제는 천인운화(天人運化)에게 기준이 있다. 이것을 받들어 따라서(承順) 효도(孝道)를 베풀면, 가히 천하에 통할 수 있고 유명(幽明)의 틈이 거의 없어진다.” “운화(運化)를 받들어 따름은 (……) 효를 백가지 덕행(百行)의 으뜸으로 삼는다.” (‘기학氣學’) “효의 작고 일반적인 것은 어버이를 봉양함이요, 크고 귀한 것은 신기(神氣)를 섬김이다.”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 그리고 그 천지부모에서 받은 몸과 마음을 중요시한 점, 기존의 권위 있는 텍스트를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과 거짓을 가리는 실증을 중요시한 점에서도 둘은 서로 상통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젊어서부터 나이가 들면서 경험과 견식이 깊어진다고 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점이다.

에키켄은 “인생 50세에 이르지 않으면, 혈기(血氣)가 안정되지 않고 지혜도 열리지 않으며, 옛것과 지금 것을 잘 모르고 세상의 변화에 익숙하지 않고 행하는 데에도 뉘우치는 것이 많다. 인생의 도리도 즐거움도 아직 모른다. 50이 되지 않고 죽는 것을 요(夭; 젊어서 죽음)이라 한다. 역시 불행단명(不幸短命)이라고 해야 한다. 오래 살면 즐거움도 많고 얻는 것도 많다. 날마다 몰랐던 일을 알게 되고, 달마다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학문이 장족의 진보를 이루는 것과 지식에 밝게 통달하는 것도, 오래 살지 않으면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양생의 술을 행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수명을 유지하고, 50세를 넘어서 되도록 더욱 오래 살아서, 60세 이상의 수역(壽域)에 이르러야 될 것이다. (……) 하지만 기질이 거칠고 욕심을 제멋대로 하고 참치 않고 삼가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최한기도 역시 50~60세 이후에는 견문도 계왕개래(繼往開來)의 학문과 실무 경험도 쌓여서 승순(承順)의 도가 점차 넓고 원대해지고, 70세 이후에는 몸이 운화에 승순하면 바야흐로 강장지도(康莊之道)를 열게 된다고 말했다.

한일의 옛날 석학이 둘 다 나이가 많을수록 공부와 경험이 축적돼서 도가 밝아지게 됐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은 무언가 고령화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희망의 빛으로 비추어주는 것 같다.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한국의 혜강 최한기 < 동양포럼 < 동양일보 2018

고령화 시대에 되살아나는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한국의 혜강 최한기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고령화 시대에 되살아나는 기와 양생의 철학 한·일 비교-한국의 혜강 최한기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05.13 

동양포럼(68)-고령화 시대에 고령자를 생각한다
최한기 초상
야규 마코토(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최한기는 누구인가?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19세기 한국의 특이한 유학자·실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개성(開城)에서 태어났으나, 10대 중반 무렵부터 평생 서울에서 살았다. 23살 때 생원시에 합격한 후 출사의 뜻을 버리고, 저술과 독서에 전념하면서 재야 지식인으로 평생을 보냈다. 만년에 맏아들 최병대(崔柄大)가 시종지신(侍從之臣)이 됐기 때문에, 최한기가 이른 살이 됐을 때 시종의 아버지에 대한 은전(恩典)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및 오위장(五衛將)의 벼슬을 받았다. 또,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行 龍驤衛副護軍)을 받았다. 1877년에 향년 75세 나이로 서거했으나, 사후 15년이 지난 1892 년에 조정에서 학업이 평가받아 도헌 겸 좨주(都憲 兼 祭酒)로 추증됐다.

최한기는 평생 동안 천문·지리·수학·의학·농학·수리·정치·사회·경제·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기철학(氣哲學)으로 아우르는 많은 저술들을 남겼다. 오늘날 그는 19세기 조선에서 ‘기학(氣學)’을 제창한 독창적인 사상가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가 사상가로 평가받게 된 것은 독립 이후의 일이었다.

생전에 그의 사상은 동시대 사람들한테 이해되지 않았다.

양명학자이자 저명한 문장가로 당쟁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그 폐해를 비판한 ‘당의통략(黨議通略)’의 저술도 있는 영재 이건창(寧齋 李建昌)조차 최한기의 약전(略傳)인 ‘혜강최공전(惠岡崔公傳)’를 쓰면서 “공(公; 최한기)의 책을 보니 오로지 기(氣)를 미루어 이(理)를 헤아리는 것만 말하고 있어서, 대개 선유(先儒)가 밝히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 최한기의 학문이 기존의 어느 학문의 틀에도 들어가지 않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최한기는 사상가라기보다 애서가 혹은 저술가로 알려져 있었다. 최한기와 친했던 실학자 오주 이규경(五洲 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권19 ‘중원신출기서변증설(中原新出奇書辨證說)’에서, 당시 중국에서 새롭게 간행되고 조선에 수입된 대표적인 책들을 열거하면서 그 중에서 ‘해국도지(海國圖志)’, ‘완씨전서(阮氏全書)’, ‘수산각총서(壽山閣叢書)’ 등이 영의정 조인영(趙寅永)과 최한기 집에 있고, ‘영환지략(瀛圜志畧)’ 등의 책은 최한기 집에만 있다고 기록했다.

이것은 최한기가 풍양조씨(豊壤趙氏) 세도정치를 주도한 권신이자 문인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조인영의 그것을 능가하는 장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최한기가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의 지도 제작·간행을 도와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한기는 스스로 귀한 책을 모을 뿐만 아니라 남의 출판을 도와주기도 했다.

이건창에 의하면, 최한기 집안은 원래 부유해서 그가 좋은 책이 있다고 들으면 값이 비싸더라도 아낌없이 사들이고, 오래 읽은 책은 헐값으로 팔았다. 그 때문에 온 나라의 책상인이 앞을 다투어 책을 팔기 위해 찾아오고, 북경]에서 새롭게 출간되고 조선에 들어온 책으로 혜강이 읽지 않는 것이 없는 정도였다고 한다.

“책을 사는 돈이 너무 많지 들지 않소?”라고 어떤 사람이 쓴 소리를 하자, 최한기는 “만약 이 책 속의 사람이 같은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천리(千里)길도 마다하지 않고 나는 반드시 만나러 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무런 고생도 안하고 앉은 채 그것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책을 사는 돈이 든다고 해도 식량을 마련해서 먼 길을 떠나는 만큼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일축해 버렸다.

그 때문에 집안 형편이 점점 어려워지고 마침내 저택을 남에게 넘겨주고 도성 밖으로 이사하게 됐다. 1866년 최한기 64세 때에 지은 ‘신기천험(身機踐驗)’ 이후, 그는 ‘명남루(明南樓)’의 호를 계속 쓰고 있다. 이 ‘명남루’가 바로 최한기가 가장 만년의 살던 집의 호로, ‘남쪽을 밝히다[明南]’에서 보아 도성 외각 남쪽의 어딘가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이건창에 의하면, “향리로 돌아가서 농사라도 지으면 어떤가?”라고 어떤 사람이 최한기에게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나도 바라는 바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바람이 있다. 내 견문을 넓히고 내 앎과 생각을 활짝 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서울보다 편한 곳이 없다. 그런데 어찌 굶기가 두려워서 시골에 가서 살아야 되겠는가?”

만약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통신판매가 있었더라면 최한기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그 사람의 권고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어느 시골로 이사했을지도 모른다. 해튼 이와 같이 그를 둘러싸는 환경은 변화했지만, 서적에 대한 욕구와 왕성한 지식욕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식을 줄 몰랐다.



●신미양요 때 자문을 받다

‘혜강최공전’에 의하면, 영의정 조인영, 좌의정 홍석주(洪奭周) 등이 최한기에게 출사를 권유했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사상을 동시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그는 재야학자로서 조정의 고관대작들부터 주목받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아들 최병대의 잡기(雜記)를 모은 ‘최병대난필수록’ 중에 ‘오월십망일 강화진무사 정기원 여가대인서(五月十望日 江華鎭撫使 鄭岐源與大人家書)’가 실려 있다. 이것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존 로저스(John Rodgers)가 이끄는 미국 아시아함대와 대치(對峙)하던 강화진무사(江華鎭撫使) 정기원(鄭岐源)이 최한기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정기원은 조속히 적을 격퇴시키지 못해 송구스러울 뿐만 아니라, 여름의 습한 날씨 속에서 노영(露營)이 장기화되면서 질병에 걸리는 사졸(士卒)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고초를 들어놓고 있다. 그리고 최한기의 고명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고, 이미 대원군께 아뢰어 허락도 받았으니, 부디 강화도의 군영까지 발걸음해 주어서, 평소 간직하고 있는 경륜지책(經綸之策)을 피력해주면 고맙다는 내용이다.

사실 그 당시 최한기의 나이 69세였고 아무리 나라의 위기라 하더라도, 또 흥선대원군의 허락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군영까지 나와서 참모 노릇을 해 달라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최한기의 답장인 ‘가대인답정기원서(家大人答鄭岐源書)’도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병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10여 년 동안 바깥에도 안 나가고 집안의 잡다한 일들은 자손들에게 듣고 있는 형편인데다가, 나이도 벌써 69세가 됐다. 그러니까 결코 내수외양(內修外攘)의 의리가 싫어서 평소와 같이 집에 앉아 있으려는 것은 아니다. 여쭙고 싶은 기밀이나 의문이 있으면 내가 아는 대로 대답할 것이고, 쓸 만한 계책이 있으면 반드시 성력(誠力)을 다해 상세히 알릴 것이다. 이 뜻을 대원군[雲峴宮]께 잘 전해드리기 바란다. 내가 서울에 있어야 정신 차리고 꾀와 생각을 얻어서 군국대사(軍國大事)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진영 사이를 분주해 봤자 기력과 정신을 쇠진하고 꾀도 안 나오고 공사(公私) 모두에게 무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최한기는 집에 있으면서 수시로 정기원의 자문에 응하게 됐다.

‘혜강최공전’은 두 사람 사이에서 논의된 이야기의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정기원이 최한기에게 급히 사자를 보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을 논의했다.

“어느 날 오랑캐들이 갑자기 모래를 배에 싣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무슨 작정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최한기가 말했다.

“틀림없어, 그들은 식수가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옹기에 모래를 담고 바닷물을 붓고 짠물을 걸러서 맑은 물을 얻으려 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너무 깊이 들어갔으니 맑은 물을 구할 방도가 없어서 장차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과연 며칠 후 오랑캐는 도망쳐 버렸다.

요컨대 최한기는 미군이 모래를 배에 싣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들이 물 부족에 빠져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것 때문에 장차 퇴각할 것이라고까지 예측한 것이다.

사실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출항하고 강화도에 이른 미국해군 아시아함대는 일본에서의 선례에 따라 조선의 개국도 쉽게 이루어질 거라고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장기전의 준비가 부족했던 데다가 조선군의 결사적인 공격 때문에 육지에서 충분한 땔감과 물을 얻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미군은 강화해협에서 고립하다가 조선에 대해 아무런 외교적 성과도 얻지 못한 물러가게 된 것이다.

혹은 그들을 바다 위에서 고립시키고 스스로 퇴각하게 하는 것까지 최한기가 세운 전략일 수도 있다.

원래 실학자로서의 최한기는 열렬한 개국통상논자(開國通商論者)였고, 조선 정부의 천주교 탄압에도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래서 서양 천주교의 형이상학 및 신앙의 비합리성에 대해서 거듭 반대했지만, 서양학의 유용성은 인정하고 좋은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나 병인양요, 그리고 이번의 신미양요 때에도 서양 열강들은 하나같이 군함과 우세한 무기를 과시하면서 무례하게 다가오고, 개국과 신교 자유를 요구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협하고, 적지 않는 군민(軍民)을 살상했다. 그 때문에 배외(排外) 감정이 조야에 확산됐다.

세계의 바다를 두루 노니는 상려(商旅)가 최근에 밝혀진 바의 끝머리[支流餘緖]를 빌려와서 백성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화포(火砲)를 바다 위에서 마구 쏘기도 하고, 교술(敎術)을 어리석은 백성을 전하기도 한다. 이래서는 교통이 비로소 열렸어도 머지않아 그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민심의 동요가 원근(遠近)에 퍼지고 있는 것이 다섯 번째 불행이다.(「明南樓隨錄」)

최한기가 보기에 서양의 군함이나 화포 같은 당시의 최첨단 과학기술도 광대한 우주만물의 ‘천지운화(天地運化)’에서 보면, 그 끝머리를 군사에 응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가지고 백성을 위협하고 해를 끼치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서양 각국과의 접속과 교섭이 평화롭고 대등하고 호혜적인 방식이 아니라, 열강의 군사력을 앞세운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가슴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언제나 문달을 구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맏아들 최병대는 문과에 급제하고 고종의 시종지신(侍從之臣)이 됐다. 최한기의 정치사상에 있어서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 수시로 조언하고 선도(善導)하는 강관(講官)·언관(言官)은 가장 중요시되는 직책이었다. 아들이 바로 그러한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최병대가 시종이 됐기 때문에, 시종의 아버지에 대한 관례에 따라 최한기가 70세가 된 1872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가 내려졌다. 최병대가 아버지의 묘소를 위해 지은 「여현산소묘지명(礪峴山所墓誌銘)」에 따르면 이때 실직(實職)도 함께 주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최한기 본인은 “조정의 은전(恩典)에서 노인을 우대하는 관례로는 시종 아버지에 대한 추은(推恩)이 으뜸가는 것이다. 이미 최고의 명예를 받았는데, 어찌 벼슬의 유무 따위를 생각하겠는가? 그런 것은 굳이 원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래도 결국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와 이듬해 봄에 다시 오위장(五衛將)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그는 “또한 숙사(肅謝)하지 않았다(又不肅謝)”고 한다. ‘묘지명’은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언제나 문달(聞達)을 구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숙사란 새로운 벼슬에 임명되어 처음으로 출근할 때, 먼저 대궐에 들어가서 임금에게 숙배(肅拜)하고 사은(謝恩)의 뜻을 표하는 인사이다. 하지만 최한기는 결국 그것을 안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74년 최한기 72세 때에는 다시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이 주어졌다. 수직은 관원이 80세, 평민은 90세가 되면 주어지는 원칙이었으나, 72세의 최한기에게 그것이 주어진 것을 보면 조정의 최한기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볼 수 있다. 신미양요 때 그가 정기원의 자문에 응한 일에 대한 포상의 뜻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최한기는 나라에서 벼슬을 주든 포상을 주든 하나도 개의치 않았다.



●‘큰 운화(運化)에 승순(承順)하라’

말년의 최한기는 인생을 어떻게 보았을까?

그가 1868년 무렵에 쓴 ‘승순사무(承順事務)’라는 초고가 남아 있다.

그는 이 우주 전체가 필경 한 덩어리의 신기(神氣)이며, 그것은 항상 쉬지 않고 운동하고 변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것을 ‘운화(運化)’라고 말한다. ‘승순(承順)’이라는 말은 사전을 보면 윗사람의 명을 잘 좇는 것이라고 나오는데, 최한기는 거기에 기의 운화(運化)─우주자연과 인간사의 조리· 법칙을 잘 헤아리고 따르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인생에 10세마다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10세 이전에는 한 몸에 지닌 맑은 기운을 승순한다. 하지만 이때는 천지와 사람과 사물의 변화를 잘 모르고 있다. 20세 이전에는 되면 바야흐로 혈기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30세쯤 되면 마음이 바쁘게 움직이고 천지만물의 현상과 부회시켜 귀신(鬼神)·방술(方術)·화복(禍福)·길흉(吉凶) 등에 물들게 된다. 40세쯤 되면 인생 경험의 절반을 넘게 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도 평상시의 승순하기에 따라서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50세 이후에는 견문도 쌓이고 계왕개래(繼往開來)의 학문과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일의 경험도 많아진다. 사람이 나를 따르면 기뻐하고, 남이 다른 사람을 잘 따라도 기뻐하고, 나아가서는 사람이 마땅히 따르지 말아야 하는 일에 안 따라도 기뻐한다.

60세 이후, 승순의 도가 점차 넓고 원대해지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정치와 가르침[政敎]은 모두 절의(節義)에 따라 베풀고, 나라의 전쟁을 화해시킨다면 천지와 사람과 사물의 운화와 경험이 어긋나지 않게 되고, 운화의 가르침이 넓어지고 해를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70세 이후는 몸이 운화에 승순하면 바야흐로 후세에 강장지도(康莊之道)─편안하고 왕성한 도─를 열게 된다.

대체적으로 최한기의 ‘승순’사상에서는 경험을 중요시하는 만큼 그것이 많아지는 고령 세대의 역할과 행실이 중요하게 된다. 유년기에는 아직 세상만사 만물의 이치를 모르고, 소년기에는 혈기가 넘치고, 중년기에는 자칫하면 미신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조심해야 된다.

하지만 50세 이후에는 옛것을 계승하고 장래세대를 깨우쳐 주는 학문과 사회적 경험도 나름대로 쌓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승순의 도를 넓힌 고령자는 스스로 절의를 지키고 전쟁을 화해시켜 평화를 실현시키고, 나아가서는 후세에 편안하고 왕성한 도를 열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 것이다.



●기준과 양생

최한기는 고희(古稀)를 넘어서 75세까지 살게 됐는데, 특별히 ‘양생’에 대한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서 몸 관리를 잘 했으리라 짐작되는 대목이 있다.

‘인정(人政)’ 권25 용인문(用人門) 6 ‘유준무준(有準無準)’이 바로 그것이다.

“기준(準)도 없이 사람을 쓰는 자는 혹 쓰지 말아야 될 사람을 쓸 만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고, 혹 쓸 만한 사람을 쓰지 말아야 될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며, 오직 마음과 뜻[心志]이 내키는 대로 일정한 근거가 없으니, 누가 그를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 특히 사람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일에 기준이 없는 자는 호생(好生)을 알면서도 양생(養生)의 도(道)를 모르고,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알면서도 죽지 않는 법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음식이 정도를 지나치면 속히 질병이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고 기름진 음식 입에 넣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정(情)을 다해 욕(欲)을 제멋대로 부리다가 죽고, 손해를 보는 것을 알면서도 욕심나는 바를 삼가고 가슴속에 담아둘 줄 모르는 것, 이것은 이른바 안다는 것이 준적(準的)이 없는 앎이고, 이른바 모른다는 것이 준직이 없는 모름인 것이다. 이것을 미루어 사람의 준적이 있고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준적에는 크고 작음, 허와 실이 있다. 크고 내실이 있는 것은 천인운화(天人運化)이고, 작고 허망한 것은 헛된 마음의 추측(推測)이다.”

그는 사람을 쓰는 일은 물론, 모든 일에 타당한 기준(준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양생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좋아할 줄 알면서도, 생명을 키우는 도를 모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달고 기름진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정욕을 제멋대로 하다가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정욕을 가슴속에 담아둘 줄 모르는 사람―예컨대 요즘 세계를 흔들리고 있는 #Me Too 운동에서 고발당한 아무개 같은 사람이라든가―은 모두 기준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앎(知)와 행함(行)이 분리된 사람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최한기는 왕양명(王陽明)과 달리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외치지 않았다. 그는 ‘천인운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어떤 권위자가 정해 놓은 외부적·고정적인 기준도 아니고, 왕양명이 말한 양지(良知)나 심즉리(心卽理)처럼 내부적·주관적인 것도 아니다. 외부와 내부, 고정과 유동 사이에서 주관과 객관을 아우르는 기준이라고나 할까. 최한기는 바로 그러한 기준을 따라 평생을 살았음이 틀림없고, 양생에도 유의했을 것이다.



●“아들아, 네가 말로써 죄를 얻었으니 영광스럽구나!”

일본 군함이 강화도를 침범한 운양호사건 후 1876년 1월에 일본의 군함 5척이 다시 찾아와 조선에게 개국을 요구했다. 조선 측이 그것에 응하지 않자, 일본 군함은 서해 앞바다에 계속 정박하고 조선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그저 시간만이 지나가던 바로 그때, 최병대는 상소를 올렸다. 그것은 인심이 동요하는 바로 지금 내수외양(內修外攘)의 정사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고종도 즉시 현직 대신과 당상관을 소집해 대응책을 강구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나 최병대는 그때 이미 언관(言官)을 사직한 뒤였다. 전직 언관이 상소를 올리는 것은 조정의 법도와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영의정 이하응(李昰應)에게 탄핵을 당하고 익산군(益山郡)으로 유배됐다.

그때 최한기는 아들을 배웅하면서 난색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네가 능히 말로써 죄를 얻을 수 있었으니 가히 영광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화복 따위는 근심해야 할 일이 아니다.”(「惠岡崔公傳」)

최한기는 왜 조정의 법도를 어기고 상소를 올린 아들을 칭찬했을까?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최병대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사소한 법도에 구애되지 않고, 상소를 올려 말로써 그것을 타파하려 했다. 최한기는 그것을 해낸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다.

최한기 만년의 삶과 생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결과가 좋고 나쁨에 개의치 않고, 늘 바른 길을 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 사회에 공헌하면서 살고, 다음 세대도 그렇게 살게끔 깨우쳐주며, 장차 밝은 세상을 열게 이끌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고령세대의 몫이라고 그는 주장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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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미 pjm8929@dynews.co.kr

오구라 기조의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오오하시 켄지·< 동양일보 2021

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2.21 

글 오오하시 켄지·
야규 마코토

[동양일보 동양포럼 기자]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와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서평을 동양포럼에 보내왔다. <편집자>
오호하시 켄지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鈴鹿醫療科學大學 강사)

약간 옛날의 이야기가 되는데 세계적으로 큰 화두를 던진 새뮤얼 P. 헌팅턴 <문명의 충돌>(1996년)은 세계의 주요 문명들을 여덟 개로—서구· 이슬람· 라틴아메리카· 힌두· 러시아정교회· 아프리카· 중화· 일본─ 분류했다. 세계 8대 문명 중 하나로 ‘일본문명’이 손꼽힌 것으로, 위대한 일본문명이 드디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줄 알고 기뻐한 덜렁이 보수파 논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본문명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일본문화는 “고도로 배타적”이며, 여기에는 타국과 공유될 만한 보편적인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없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그것을 전달해주어서 공통된 문화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없는 특수적이고 배타적인 ‘고립문명’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대문명으로서의 ‘대륙문명’과 비교하면서 일본문명을 ‘군도문명(群島文明)’으로 형용하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이 책은 일본의 ‘고립문명’을 상대화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에서 일본문명의 본질과 가치 해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한국철학· 사상의 전문가이자 비교문명학회 회원으로도 폭넓게 활약하고 있다. 일본 비교문명학의 선구자인 야마모토 신(山本新, 1913-80)은 1960-70년대에 발표한 논문집 <주변문명론(周邊文明論)>(刀水書房, 1985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근대 서양적 ‘대문명’ 대 비서양적 ‘주변문명’이라는 것이 비교문명학의 기본적인 틀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와 같이 ‘대문명’을 우월적인 것으로 보고 ‘주변문명’을 일방적・ 일원적으로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된다. ‘근대 서양-비서양’=‘중심-주변’이라는 서양 중심주의의 개념 틀로 문명을 고찰하는 ‘수직적인 축’ 이외에 서양 이외의 주변문명들끼리 비교하는 ‘수평적인 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대륙의 문명’과 ‘군도(群島)의 문명’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한다. 한편으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의 서양문명에 흠뻑 빠진 일본과 한국이라는 ‘주변문명’ 즉 일본-한국이라는 ‘수평적인 축’에서 일본문명을 비춰보고 고찰한다. 이와 같은 고찰에 있어서 현대 일본에서는 저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20세기 최대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문명을 집합심성적인 것으로도 생각했다. 그것은 일련의 사회· 경제를 큰 변화 없이 계속 살아가며 때때로 파란만장한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고 했다.(<문명의 문법Ⅰ 세계사 강의(文明の文法Ⅰ 世界史講義)> 1987년). 표층의 사회적 변동과는 별도로 그 중심을 관통하는 부동· 불변한 것으로 문명에는 당연히 정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을 살펴보자. 저자는 일본의 문명· 문화· 사상의 본질이 ‘애니미즘’적인 생명관, 정신성에 있다고 본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일본의 독특한 ‘미적 생명’=‘제3의 생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눠진다.

제1의 생명: 생물학적· 육체적 생명=개별적· 객관적· 상대적· 물질적 생명.

제2의 생명: 영적 생명=보편적· 절대적· 종교(정신)적· 비물질적· 집단적 생명

제3의 생명: 미적 생명=간주관적· 우발적· <사이>적 생명, ‘지금· 여기’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

제1의 생명은 그렇다 쳐도, 제2의 생명인 ‘영적 생명’이라는 말에 약간 위화감을 느끼지만,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외국의 연구자에게 흔히 보이는 일이다. 조치대학(上智大學)에서 '죽음의 철학'을 강의하고 일본 생사학의 제1인자로 2020년 9월에 서거한 아르폰스 데켄(Alfons Deeken)도 일본에는 ‘삶의 미적 측면’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세계가 ‘유용가치와 도구가치’를 ‘생명가치와 유기체적 가치’의 상위에 두는 ‘공리주의적 문명의 에토스’로 뒤덮여버린 것을 데켄은 몹시 개탄했다. 한편 아시아가 가지는 고유한 에토스, 특히 일본에서 뚜렷한 ‘미의 에토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고도로 발달한 일본의 미적 에토스는 서양문화에서는 대부분 잠자고 있는 인간의 풍요로운 잠재적인 능력을 구미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인간성의 가치를 찾아서(人間性の価値を求めて)> 아우치 마사히로(阿內正弘) 옮김, 春秋社, 1995년).

데켄이 말한 것은 감각적· 예술적인 ‘미’=미적 감수성인데, 저자는 한국어로 우주적· 보편적인 미를 나타내는 영적이고 생명적인 ‘아름답다’와의 대비로,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중기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서 사용된 ‘오카시(をかし)’와 ‘아와레(あはれ)’, 혹은 ‘유현(幽玄)’ ‘와비(わび)’ ‘사비(さび)’ ‘이키(いき)’ 등을 미적 생명적인 <제3의 생명>을 언어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을 셋으로 나누는 것은 저자의 특유한 세계관에 의한 것이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이 ‘제3의 생명’인데, 이것은 “사람들과의 ‘사이’나 사람과 사물과의 ‘사이’에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명’”을 가리킨다.

미국과 중국 등 대문명 ‘대륙문명’에 대표되는 군사적 힘 같은 ‘제1의 생명’이나, 보편적 이념의 힘 같은 ‘제2의 생명’은 타자를 압도하고 지배하에 두려는 경향을 면치 못한다. 이에 대해 자기와 타자(사람· 사물)와의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을 핵으로 하는 일본적인 ‘군도문명’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월(包越; 포섭하고 뛰어넘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편협한 내셔널리스트’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세계를 ‘대륙문명’형으로부터 일본적인 ‘군도문명’형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문명을 일본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논자는 학자· 연구자의 테두리에 박히지 않는, 시대 구제의 뜻을 가진 사상가로서의 저자의 뜨거운 정열을 본다.

한편 ‘제3의 생명’을 ‘영원의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으로 단정하고 강조하는 그러한 ‘지금· 여기’ 개념은 도겐(道元) 스님이 말하는 ‘이금(而今)’, ‘전후제단(前後際斷)’과 같은 선종(禪宗)의 핵심으로 절대현재에 사는 동양적인 깨달음의 도달점이지만, 반면에 모종의 찰나적,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함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제3의 생명’의 참뜻이 마지막 장에서 언급한 공공철학의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제창하는 ‘사이의 철학’과─김 주간의 정확한 표현에 따르면 ‘사이로부터의 철학’─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철학은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를 잇고 맺고 뛰어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머니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 지배 아래, 격차사회에 따른 분단과 이질적인 타인에 대한 불관용이 만연하는 현대 세계에서, 군도적(群島的)인 ‘제3의 생명적’, ‘사이적’ 문명을 일본이 앞장서서 세계에 제창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면서, ‘공창(共創)하는 동아시아로’라고 호소한 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신형코로나바이로스로 가로막히고 먹구름이 드리우는 나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사는 세계 사람들, 거대한 재앙에 신음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한 가닥의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 같다.

번역: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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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규 마코토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오구라는 이 책의 벽두에서 비교문화의 방법론을 심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보통 ‘대륙’과 대비되는 것은 ‘해양’이다. 하지만 대륙·해양의 분류는 안보 또는 국제정치상에서 주권국가의 세력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오구라가 말하는 ‘군도(群島, archipelago)’는 바로 바다 위의 섬들에게 인간이 살고 문화나 문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태를 나타낸다. 즉 대륙·군도라는 구분은 문명론적 시각에 의한 것이라고 오구라는 주장한다. 이와 같이 오구라는 나름대로의 문명론을 전개함에 앞서서 그 방법론을 꼼꼼히 살피고, 기존의 비교문명론이 범한 오류들에─문화 내셔널리즘, 문화 본질주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에의 의존, ‘인간’이라는 근본에 대한 자각의 결여 등─ 대해 경계한다. 이와 같이 철저한 방법론적 반성과 ‘제2의 생명’ 및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은 오구라 문명론을 독보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유성종(劉成鍾),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두 분 선생님이 먼전 논평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먼저 그것을 살펴보고 나서 필자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유성종은 이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압축해서 요점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고 포월(包越)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또 오구라가 논어도 새로운─‘제3의 생명’이라는─각도에서 다시 읽은 것처럼, 미래도 도덕도 어디 있는 것을 찾거나 누구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어야 하며, 귀납적으로 ‘사이’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는 ‘공(共)’, 곧 모두 함께 만들자는 세계관이 ‘공창(共創)’이다,라는 메시지를 도출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 유성종은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현하(懸河)의 웅변을 듣고 강력한 어조와 정곡을 찌른 정론에 감복하여 자리를 뜰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공감으로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리고 오구라 선생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갈구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 곧 공복(共福)을 향한 지남(指南)이고 빛(光明)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오구라의 논고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오오하시 켄지에 의하면 이 책의 제목에 있는 ‘군도의 문명/ 대륙의 문명’이라는 틀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하면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 발의 글러벌리즘에 흠뻑 빠진 ‘주변문명’으로서의 일본과 한국의 비교・ 고찰이라는 ‘수평적인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일본에서 이와 같은 고찰에서 저자와 견줄 만한 사람은 없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오구라가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봄과 동시에, ‘제3의 생명’이라는 생명론적인 축을 도입한 데에도 독자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오오하시는 오구라가 강조한 ‘제3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인데, 이것은 중세 일본의 대표적인 선승인 도겐(道元, 1200-1253)이 말한 ‘이금(而今)’ ‘선후제단(先後際斷)’과 같은 선(禪)의 핵심이자 절대현제에 사는 동양적 깨달음의 도달점과도 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공허한 현실주의로 타락하거나 모종의 찰나적(刹那的),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오하시는 그것은 기우(杞憂), 즉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군도의 문명이─구체적으로는 일본문명─ ‘제3의 생명’에 기초한다고 주장한 오구라의 참뜻은 마지막 장에서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결코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 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제3의 생명에 기초하면서 타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 ‘사이’를 잇고 맺고 넘어서고 다른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과 더불어 밝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제1의 생명(물질적・ 육체적・ 생물학적인 생명)이나 제2의 생명(영적・ 보편적・ 영생적인 생명)과 다른, 덧없고 순간적이고 사람과 사람 또는 사물 사이에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에서 ‘문화’와 ‘문명’을 다시 읽으려고 한 오구라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다만 이것은 중화문명・ 서양문명과 같이 제2의 생명에 입각한 이른바 ‘보편문명’의 시각에서 비하된 제3의 생명을 복권시키고 다시 빛을 바라게 했을 뿐, 만약에 제3의 생명(과 거기에 바탕을 둔 군도문명)이 고급하고 제1, 제2의 생명(그리고 대륙의 문명)은 저급하다고 착각한다면 그것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다.

오구라는 불교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일본적 영성’론에 의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년)의 도읍지인 헤이안쿄(平安京)에 살던 귀족들은 섬세한 ‘제3의 생명’의 기미에는 민감하게 정신을 집중시켰으나, 그 ‘생명’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음은 있어도, 그 시대의 일본인들은 아직 ‘대지(大地)’를 모르고 ‘영성’을 몰랐다. 그런데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년)에 오면 헤아안쿄에서 멀리 떨어진 동국(東國)에 살던 무사, 농부, 승려들이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영성’과─오구라에 의하면 ‘제2의 생명’─ 만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 안에서도 제2와 제3(그리고 당연히 제1)의 생명은 서로 상관연동하면서 삶의 영위와 역사와 문화와 문명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제1, 2, 3의 생명’을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으나 그것이 지리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제2와 제3의 생명의 비율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군도의 문명에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제3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오구라의 생명론적 문명론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과 문명・ 문화의 개별성의 양쪽을 아우르는 것이다. 만약 이 점을 간과한다면 오구라의 주장을 ‘제3의 생명’ ‘애니미즘’지상주의를 내세우면서 군도문명=일본문명이 주도권을 잡고 지금 미국이나 중국이라는 대륙=해양문명이 좌지우지하는 세계를 바꿔보자는 신종의 문화적 패권주의의 주장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논자가 보기에 ‘제2의 생명’과 ‘제3의 생명’은 원래 그 원천이 다르다. 저자가 밝혔듯이 덧없이 살다 죽는 한계(제1의 생명)를 가진 인간이 영원하고 보편적인 ‘하나(1)’라는 관념을 극도로 추구한 결과 도달하게 된 것이 ‘제2의 생명’이다. 이에 대해 ‘제3의 생명’은 개별성, 순간성, 감각성을 지닌 것이고, 또한 어린 아이가 철들기 전에 많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를 잘 살펴보면 그들은 이미 나날을 그렇게 살고 있다. 어른에는 생명이 없어 보이는 물건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주고 다루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 아이가 아끼는 인형과 말하고 역을 떠나는 열차에게 손을 흔드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바로 그때 그(녀)와 인형이나 열차 사이에는 ‘제3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도 ‘다오야메부리(たおやめぶり)’ 즉 “덧없고 아녀자(兒女子)같은 것”이며 여성적이고 유약하고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것이 인정(人情)의 본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라고 말했다. 노리나가에 의하면 무사적인 “올곧고 씩씩한” 마음가짐은 오히려 ‘가라고코로(漢意)’ 즉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꾸며진 정신이라는 것이다. (유약함이 곧 일본의 원래 정신이라는 노리나가의 주장은 무사사회 일본에서는 아주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은 오구라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민주주의 등의 정치, 새로운 복지와 교육, 리얼리즘도 설계주의도 아닌 외교 방식 등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저자가 ‘아니미즘’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에 의해 변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구라 생명론과 문명론이 장차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일영성개신정담(韓日靈性開新鼎談)(1) 김태창·기타지마 기신·야마모토 쿄시

 한일영성개신정담(韓日靈性開新鼎談)(1)

대담 : 김태창·기타지마 기신·야마모토 쿄시 / 번역 : 야규 마코토 / 정리 : 조성환

by소걸음Feb 03. 2018


[개벽신문] 제70호(2017년 12월호)
https://brunch.co.kr/@sichunju/183

[해제]

여기에 실린 ‘한일 영성 새밝힘 정담’은 지난 2017년 2월 20일에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과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學) 명예교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이 세 명이 일본의 교토(京都) 시내에 있는 카페 <우에시마 커피>에서 나눈 영성(靈性)에 관한 철학 대화를 보완한 것이다. 당시의 대화 내용은 [미래공창신문] 제34호(2017년 7월 15일호)에 <동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성을 말한다>로 게재되었고, 그 후에 이 세 명이 2017년 8월 3-7일에 꽃동네영성원에서 개최된 국제영성포럼(동양일보 후원)에 참가한 성과를 바탕으로 가필·수정한 원고가 기타지마 기신 명예교수가 편집하는 사상철학잡지 [리라

līlā(遊)』 제10호(2017년 12월 간행 예정)에 게재될 예정이다. 이 글은 이 수정된 원고를 야규 마코토 박사가 한국어로 번역하고 조성환 박사가 약간의 표현과 오타를 수정한 것이다.

본 정담(鼎談)에서는 아프리카적 영성, 아시아적 영성, 러시아적 영성, 불교적 영성 그리고 일본적 영성 등 다양한 영성이 논의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적 영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타지마 교수에 의하면 ‘우분투’는 타자와의 관계성을 가리키는 말로, 투투 명예대주교는 우분투의 인간관을 “사람은 타자를 통해 인간이 된다.” “우리는 서로의 필요성을 알기 위해 서로 다른 것이다. 인간이란 의존관계에 있다.” 등으로 설명하면서 “우분투는 인간임의 본질이다”라고 설파했다. 이것은 서구근대를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나

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는 소위 ‘코기토(Cogito)’적 인간관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다. ‘우분투’ 혹은 그것과 공통된 개념은 아프리카 각지에 널리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아프리카의 토착 언어에 유래하지만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 혼혈인, 인도인 등에게도 흔히 알려지고 쓰이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아프리카 대륙은 영국·프랑스 등의 서구 열강에 의해 구석구석까지 식민지화되어 흑인들의 문화나 전통은 비문명적·야만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서구적 교육을 받은 흑인 지식층들도 서구 백인의 언어·문화를 높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적지 않게 내면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아프리카에서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프리카의 문학자·예술가·사상가들은 문학·춤·연극 등을 통해 민중들에게 주체의식을 각성할 것을 호소하였다.

남아프리카를 지배한 백인(영국계, 네덜란드계 보어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체제를 구축하고 소수파의 백인과 다수파의 흑인 및 기타 유색인종들을 격리·분리시키고 백인들이 사회의 모든 기득권을 독점했다. 백인들은 “너희들은 너희대로 살라. 우리들은 우리대로 산다”고 하면서 흑인들을 사회적·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내버려두고 그것에 대한 항의·저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탄압했다. 그것에 대해 反아파르트헤이트의 사상가·운동가들은 흑인의 토착적인 개념·사상으로서의 ‘우분투’를 재발견하고 그 개념을 갈고닦아서 대중들로 하여금 아프리카 흑인에게 독자적이고 떳떳한 철학이 있다는 것, 흑인이 결코 열등한 인간이 아니라는 주체의식을 깨우쳤다. 이윽고 그것은 백인과 혼혈인, 그리고 그 밖의 유색인종에게도 전파되어 사람들이 인종격리정책의 모순을 깨닫게 만들고, 마침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자체를 해체시키게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 변혁의 원동력이 된 ‘우분투’를 보면 한국의 동학(東學)이 외친 ‘시천주(侍天主)’와 ‘후천개벽(後天開闢)’이 떠오른다. 귀천(貴賤)의 차별을 사회질서의 기초로 하는 선천(先天) 5만년이 막을 내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한울님(天主)을 모시는 존귀한 존재로 서로 존중받는 후천시대가 개벽되었다는 수운 최제우의 메시지가, 이후에 조선왕조의 압정과 서구 및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동학혁명의 큰 물결을 일으킨 것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새삼스럽게 영성을 논하는 것은 고도화하고 복잡화된 현대과학기술문명과 국제자본주의에 의한 빈부격차의 문제, 편협한 국수주의·민족주의·배타주의 등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도리어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인간적 가치가 상실되는 이 시기에, ‘영성’이라는 시각에서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거기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여는 길을 되찾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기타지마 기신 선생님은 [남아프리카의 지도자, 종교와 정치를 말하다―자유의 정신, 희망을 열다]1를 <정천사(正泉寺) 국제종교문화연구소 연구총서 1>로 2012년에 감역·출판하셨습니다. 인종격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붕괴되고 나서 1994년에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 1918-2013)와 성공회의 중진(重鎭)인 데즈먼드 투투(Desmond M. Tutu, 1931- ) 대주교 등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철폐의 사상적 투사들 21명을 인터뷰한 기록입니다. 찰스 빌라 비센시오(Charles Villa Vicencio) 케이프타운대학 명예교수가 신생 남아프리카의 태동기(90년대 초기)에 그들을 실제로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귀중한 자료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김태창 선생님은 1990년부터 일본의 교토를 중심으로 세계적 규모의 ‘공공하는 철학대화 운동’을 26년 동안 꾸준히 계속하신 후에 지금은 충북 청주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지방간·세대간·남녀간 상생의 공공하는 인문학 대화활동을 2년째 전개하고 계십니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영성의 새밝힘을 다각도로 실행해 오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두 분 선생님은 작년에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조성환 박사의 추천으로 만나게 된 이후로 일본에서 여러 차례 ‘영성’에 관한 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 동안의 대화를 정리하고 한국·일본·러시아·아프리카에 관한 체험 학습을 연결지우면서 함께 공공하는 영성과 그것이 미래공창에 갖는 의의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우분투 - 아프리카 문학과 우분투 사상




김태창([동양일보] 동양포럼 주간) : 먼저 좋은 책을 보내주셔서 그동안 충분히 관심을 갖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책에는 아프리카 문학과 사상을 오늘날 일본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알리고 싶다는 기타지만 선생의 배려와 성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스님이신 기타지마 선생이 특히 아프리카 사상과 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기타지마 기신(욧카이치대학 명예교수) : 저는 정토진종 혼간지파(本願寺派) 승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생가는 400년 동안 세습된 지방이었고 양가인 정토진종 다카다파(高田派) 쇼센지(正泉寺)는 600여 년 동안 ‘문도(門徒)’라고 불리는 민중들과의 유대관계를 계속 유지해왔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러시아나 이슬람권의 이란을 공부하고 싶어서 아버지와 상의했습니다만 허락을 받지 못했고, 결국 한자문화권이 아닌 인도 쪽에서 불교를 다시 보려고 1963년에 오사카외국어대학(大阪外國語大學)의 인도어 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들어가 보니까 수업 내용은 고전어가 아니라 현대어뿐이었습니다. 힌디어를 위주로 해서 우르두어도 배웠는데 거기에는 상당한 비율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단어도 들어 있었습니다. 인도에는 상당히 다양한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파업과 시위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일회담과 기숙사 문제가 쟁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도를 중심으로 연구하려는 의욕이 안 생겼고 젊었던 저는 장차 세계가 사회주의가 되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익히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 믿고 러시아어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외대를 졸업하고 오사카시립대학(大阪市立大學) 문학부 문학과 철학전공으로 다시 학사 입학했을 때의 지도교수가 다나베 하지메(田邊元)2의 제자이면서 다나베 하지메 비판의 졸업논문을 썼고, 정치활동을 하다가 3년 동안 형무소로 들어간 모리 노부시게(森信成, 1914-1971) 선생이었습니다. 모리 선생님으로부터 마르크스에

게 큰 영향을 준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 철학을 읽는 방법을 꼼꼼히 배웠습니다.

저는 시립대의 학사입학시험을 영어와 러시아어로 쳤습니다. 그런 관계로 모리 선생님께서 “러시아어를 읽을 줄 아니까 읽어봐라”고 하면서 19세기 러시아문학과 정치철학 연구를 권유해 주셨습니다. 모리 선생님은 특히 19세기 중기 러시아의 체르니셉스키(Nikolai Gavrilovich Chernyshevskii)를 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러시아문학의 기본사상이나 행동원리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헌을 읽으면서 19세기 러시아의 사상과 문학이 지니는 힘, <백과전서> <생활의 교과서> 역할을 하는 문학의 힘에 매우 감동했습니다.

오사카시립대학 대학원 시절에 친구로부터 “아프리카 흑인문학은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영어로 쓰인 현대 아프리카문학도 읽었습니다. 거기에서 19세기 러시아문학의 재래를 보았습니다. 대학교의 교원이 되고 나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재로 아프리카문학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아프리카의 사상에 충격을 받고 그 문학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매력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식민지화(植民地化)되어서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도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점입니다. 작품을 읽으면 제가 용기를 얻고 자기를 돌이켜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자타의 관계성, 연대를 축으로 한 ‘우분투(ubuntu)’의 사상이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문학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아프리카의 공동체 안에 전통적으로 내재하고 저항문학 작품에 나타나 있는 사상이 ‘우분투’입니다. 인종차별의 철폐를 흑인 측으로부터 백인과 혼혈인들에게 호소하고 연대하는 사례가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많습니다. 아프리카에는 “함께 운동하는 문화적 전통”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아공의 인종격리정책은 엄청나게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문학작품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품게 해 줍니다.




김태창 : 아프리카 문학의 영어 번역판과 현지어의 원본 사이에는 독해상의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김태창




기타지마 기신 : 지적하신 대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는 민중의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와히리어는 체계화되어 있지만 그 외의 토착 언어가 문학에서 쓰이는 것은 별로 없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로 쓰여 왔습니다. 그런 문학들의 주류는 식민지주의 지배에 대한 저항을 그린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서양근대문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문학에는 점차 토착성이 기본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앞장서서 쓴 사람 중의 하나가 응구기 와 씨옹오(Ngũgĩ wa Thiong’o, 1938- )3라는 케냐 출신의 작가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영어로 썼는데, 작가 활동을 하는 가운데서 “문학은 민중을 떠나서는 안 된다. 민중의 말로 문화를 이어가자. 이것은 유럽에서 단테가 라틴어가 아니라 토착의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쓰고, 루터가 성경을 토착의 독일어로 옮긴 것과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식민지 지배는 정치·경제·문화가 일체가 된 지배였고,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문화 지배이다. 그 지배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토착적인 민족어에 의한 문학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입각해서, 1976년에 기쿠유어라는 민족어로 연극 작품 <좋을 때 결혼할거야(Ngaahika Mdeenda)>를 미셸 무고(Micere Githae Mugo, 1942- )와 공동으로 썼습니다. 이 작품은 케냐에 있어서 신식민지주의 지배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입니다.




야마모토 쿄시([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한반도에서 세종대왕이 지식인 계급 공용의 문어인 한문과 별도로 민중의 일상생활언어를 소중히 여겨서 한글을 창조하고 널리 보급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민족의 독립은 우선 언어적 독립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타지마 기신 : 기쿠유어로 쓰인 이 연극작품을 현지의 젊은이들이 상연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었던 ‘백수’나 심지어는 자살미수까지 한 젊은이가 연기를 하면서 힘을 내고, 리허설을 본 비평가가 “모두 프로가 연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연극 자체가 사회성을 지닌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토착문화이고 그 전통을 재현시킨 이 연극운동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케냐 정부는 구기를 체포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체제 전복의 기폭제가 되는 것을 우려한 권력자가 문학가의 활동의 싹을 잘라 버리려고 한 거군요.




기타지마 기신 : 영어 작품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지식층은 숫자도 많지 않고 케냐 정부로서는 무섭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다시 읽고 있는 응구기의 작품인 [악마를 책형(磔刑)시켜라](Devil on the Cross, 1982)는 기쿠유어로 쓰인 원작(Caitaani Mutharaba-ini, 1980)의 영어판입니다. 영어 내용이 알 수 없는 부분이나 가끔씩 나오는 아프리카 언어로 쓰인 노래의 뜻 등은 응구기와 친한 제 친구인 고돈 사이라스 므완기(Gordon C. Mwangi) 선생(시코쿠가쿠인대학四國學院大學 교수)에게 묻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것과 비슷한 작업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정유재란 때의 일본 수군과 조선 수군의 전투를 그린 영화 <명량(鳴梁)>에서 이순신이 아들에게 “이것(=큰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은 신의 은총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는 그 영어 자막의 의미를 이해가 잘 안 돼서 한국의 친구인 조성환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순신이 한 말은 서양 언어의 ‘신의 은총’과 의미가 전혀 다른 ‘천행(天幸)’으로 “민중과 신이 공동(共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김태창 : 결국 아프리카문학에 접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어 번역을 매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이군요. 아프리카문학 속에 살아 움직이는 핵심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분투’라고 강조하고 계시는데 선생께서는 그것이 어떤 사상이라고 생 각하고 계십니까?



아프리카에서의 우분투 - 우분투란 무엇인가




기타지마 기신 : ‘우분투’란 타자와의 관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은 홀로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쁜 사람도 포함해서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화되어 간다는 생각이 아프리카에는 있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자기중심주의(egocentrism)가 아니라 타자가 자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반적인 통행자가 아닌 ‘타자’와 하나의 단위(공동체)를 만들어서 생활합니다. 작은 단위들 사이에서 교류가 있듯이 외국의 단위들과도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통해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 시작은 ‘자(自)’가 아니라 ‘타(他)’입니다. ‘타’에 의해 발현되어 가는 자기는 실체가 아니라 과도기로서의 자기로, 항상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불교로 말하면 ‘공(空)의 공화(空化)’이며 ‘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과 연결됩니다.

이 상호관계성의 사상은 ‘적’이라 할지라도 ‘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의사소통을 통해 함께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비폭력’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야마모토 쿄시 :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은 비소(卑小)한 자기의 체험을 성역화(聖域化)시키지 않고 지금의 자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출발한다는 것이군요. 저희가 발행하고 있는 [미래공창신문]도 매호(每號) 낼 때마다 처음부터 출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공창(未來共創)”이란 세상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얏!” 하고 기합을 내면서 실제로 한 걸음을 밟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당연히 장애나 어려움이 수반됩니다. 뜻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진심과 진심이 서로 메아리치는 것을 에너지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진하는 길 위에서 공명(共鳴)·공진(共振)·공동(共働)할 수 있는 ‘타자’가 나타나면 ‘타자’와의 영(靈)과 혼(魂)과 심(心)과 상관연동해서 미래를 개신(開新)합니다. ‘타자’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하여 대화·공동·개신의 연쇄가 나선형으로 상승해 나가면 국내외의 (특히 동아시아의) 동지(同志)들과 더불어 공복세계(共福世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를 들면 그전까지의 위로부터 아래로 베푸는 성현문명(聖賢文明; 정치권력·종교적 권위에 의한 지배·명령)에서 아래(민중)로부터 일어나는 ‘활사개공(活私開公)’ 문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타자와 함께 하기”이기 때문에 한 개인에 의한 ‘창조’나 ‘독창’이 아니라 ‘공창’인 것입니다. ‘공창’의 ‘창(創)’은 ‘창발(創發)’의 준말입니다. 뜻을 가진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창출·창신(創新)하는 것, 즉 ‘개신(開新)’을 말합니다. 개신이라는 사태는 근원적인 우주생명력(영성靈性)과 개체생명력과의 공진(共振)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공창이란 자력(自力)·공력(共力)·타력(他力)이 상관연동하는 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겠지요. 정토진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성입니다. 이것을 ‘타력(他力)’이라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아미타불의 무한한 자애로움=타력에 의해 구제되는 것이지 자력작선(=자기 힘으로 선을 행함)은 털끝만큼도 관여되지 않는다는 것과 우분투와는 접점이 있습니까?




기타지마 기신 :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흔히 자력(自力) 구원의 선구자로 알려진 도겐(道元)4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생사장(生死章)>에서 생사를 떠난 ‘구원’은 저편에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이 점에서는 신란(親鸞)5도 도겐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종교적 구원, 인간적 성장은 ‘자’가 아니라 외부성(外部性)으로서의‘타’의 작동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우분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타’의 비분리성, 외부성으로서의 ‘타’(부처)에서 “자기중심주의가 너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나에게 맡겨라”라는 아미타불의 부름을 듣고 그것에 의해 자아에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타력의 가르침’은 우분투의 사상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아프리카 문학에는 ‘자력본원(自力本願)’ 같은 생각은 없습니까?




기타지마 기신 : 아프리카의 문학작품에 처음에는 데카르트 이래의 ‘자아’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작가들이 서양에 유학하거나 서양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격투하는 가운데 그런 ‘자력적 자아’는 모두 파괴되고 아프리카적인 사고방식으로 회귀하게 되었습니다.

“단편화된 아프리카를 하나로 만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응구기를 비롯해 여러 작가들이 말합니다. 다시 말해 상실·분단·소외된 상태로부터 인간을 되찾는 사상으로서 ‘우분투’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각국이 차례차례로 독립한 1960년대는 서양식의 발상과도 겹치는 리얼리즘 문학작품이 많이 나타나서 서양인도 일본 지식인도 그것을 읽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아프리카의 현실이 해결될까?”라는 의문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에 의해 지난날 백인이 흑인을 직접 지배하는 ‘식민지주의’는 끝났지만 경제적·문화적 자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실은 글로벌 지배의 신식민지주의로 이행했을 뿐이 아닌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 않은가? 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을 아프리카 토착사상·문화의 현대화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시도가 1970년대의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48년에 시작된 남아프리카 백인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표면상 “너희들(흑인)은 너희 생각대로 하라. 우리들(백인)은 우리 생각대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실은 다릅니다. 근본 전제에는 흑인과 백인의 평등성은 없습니다. 실제로는 “흑인은 백인과 따로 ‘원주민답게’ 살면 된다. 너희들은 백인으로 대표되는 문명인이 될 리 없으니까 우리들의 지도 아래 사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들 백인은 너희들과 다른 문명인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으로 ‘분리발전’의 미명 아래 흑인, 칼라드(혼혈인), 아시아인 억압을 강화했습니다.

당시 인구의 약 80%를 차지한 아프리카 흑인은 이에 대해 철저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열등한 인간이 아니다. 원래 아프리카에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 도와주면서 인간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온 체험이 있지 않은가?” 이러한 입장에서 흑인이 아프리카문화를 파헤치고 이론화시키는 과정에서 아프리카에는 상호관계성을 의미하는 ‘우분투’라는 대단한 사상·문화가 있다는 것이 의식화되었습니다. 이것이 흑인의 단결과 저항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인 스티브 비코(Steve Biko, 1946-1977, 30세로 고문사)는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백인들의 말처럼 ‘열등한 인간’이 아니다. 서양인과 팽팽하게 맞서 싸운 줄루인(Zulu)의 영웅 샤카(Shaka)6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상호관계성을 통해 인간이 되어간다고 하는 우분투 사상이 있다. 이것은 실은 기독교에 상통하고 있다. 이것을 축으로 한 연대투쟁이 필요하다.”

남아프리카의 흑인은 80%가 기독교인입니다. 스티브 비코는 1970년대에 토착문화의 현대화를 축으로 하여 해방운동과 기독교를 결부시켜 흑인들을 단결시켰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흑인의식운동’입니다. 그 기본사상은 백인 배제가 아닙니다. 먼저 흑인이 자립하고 주체화하자는 것입니다. 흑인을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무시한 백인의 지도하에서 연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니까 백인과 대등하고 평등하게 연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발전해서 80년대에는 ‘전인종(全人種) 평등주의’의 운동이념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백인도 흑인도 컬러드(혼혈인)도 가리지 않는 종교인·사회주의자·노동조합의 연대에 의한 무혈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김태창 : 제가 남아프리카에 갔던 1990년대에는 백인만이 분리해서 사는 스텔렌보슈(Stellenbosch)에 스텔렌보슈대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레토리아(Pretoria)에 있는 흑인 대학에서는 흑인 엘리트가 양성되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타지마 선생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너는 네 생각대로 해라. 나는 내 생각대로 한다”는 식의 공생사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에 있는 케이프타운대학에 가보니까 중국인도 인도인도 백인이나 흑인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 그랬군요.




김태창 : 2000년에 들어서면서 만델라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매개해줘서 제가 추진하던 교토포럼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국제회의의 주제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함께 연다”는 것으로 정하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참석한다는 약속도 받아냈습니다. 장래세대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고, 거기서 모든 인종이 공복(共福)의 세계를 실현한다는 주지의 가사를 제가 쓰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곡가가 작곡해서 대학의 합창단이 그것을 부른다는 합의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정치적 불상사 때문에 만델라 대통령이 퇴진하는 바람에 그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남아공의 국민과 만델라 대통령, 현재세대와 장래세대가 함께 열기를 바랐던 미래는 ‘무지개’(Rainbow) 공동체였습니다. 서로 다른 종족들이 함께 사는 공생사회(共生社會; symbiotic society)이기보다는 서로 개성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고 살리는 가운데서 서로가 행복해지는 상생사회(相生社會; convivial community)를 지향한다는 강력한 소망과 소신이 있었습니다.




야먀모토 교시 : 김태창 선생님도 아프리카와는 그전부터 깊은 인연이 있으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무언가 인상에 남는 일은 있으신지요?




김태창 : 예. 1980년대 초기의 일이니까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저도 한국정부와 UNDP(유엔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근교에서 농촌개발을 위한 국제봉사활동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다언어(多言語) 상황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불통(不通) 문제였습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모인 여러 종족들 앞에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즉석에서 여덟 개의 언어로 통역되었는데 과연 이렇게 해서 상호이해가 가능한지 의심스럽고 아주 불편하고 이상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서 우물을 파게 되었는데, 저는 우물을 잘 팔 수 있도록 “모두 함께 기도를 올립시다”라고 제안했습니다. 예배라는 딱딱한 형식은 취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루에 세 번,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신에게 기도를 올리면 어떨까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손을 들고 “왜 하루에 세 번 신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야 됩니까?”라는 뜻밖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통역에 의하면 그 부족에는 ‘기도’에 해당되는 어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키우는 동물이 인간에게 아양 떨 때 꼬리를 흔드는 비유를 들어서 ‘신에게 기도하다’라는 뜻을 표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언어 소통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마을 근처에 우물이 없어서 여성들이 매일 몇 킬로나 걸어서 물을 뜨러 가서, 물병을 머리에 이고서 나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질학자가 아니지만,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간절한 소원이 있었는데 “왠지 이곳을 파면 물이 나올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20미터 정도 파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물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감동했습니다.

그때 어느 아프리카 사람이 저에게 “선생님은 어느 우주에서 오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외계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와 제 우주가 다르다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일본 신화에 하늘에서 강림한 신이 야마토정권(大和政權)을 만들었다는 천손족(天孫族)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저를 자기들과 다른 우주에서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복수 우주설’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로 우리는 그 우주 안에서 서로 맺어져 있다고 말하지만 기실 우주는 여러 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 그랬군요. “당신은 어느 우주에서 왔습니까?”라는 말은 매우 아프리카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제 친구가 아프리카를 위해서 여러 가지 도와주었는데 고맙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그 친구가 “적어도 감사하다는 말만큼은 해 주시면 어떤가요?” 라고 조심조심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상대방 노인이 빙긋 웃으면서 “당신은 젊군요. 그렇다면 당신이 해준 일은 어떤 보답을 받기 위해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당신이 해준 일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떤 보답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백년 후, 천년 후에는 보답을 받게 될 것이오. 그게 세상 이치니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시오”라고 타일러 깨우쳐 주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아무래도 자기 안의 사고의 테두리에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투투 씨는 “하느님은 크리스챤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김태창 : 신이 크리스챤이라면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들의 신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원인이 되어 종교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지 않습니까? 일부 사람들이 신을 독점하는 것은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요? 




기타지마 기신 : 맞는 말씀입니다. 정토진종의 승려인 저는 타종교의 사람들, 나아가서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도 사귀고 교류해야만 풍요로워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종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기본 정신이자 공(空)·연기(緣起) 사상입니다. 제가 어딘가에 머물러 버리면 독선주의가 될 뿐이니까요.




야먀모토 교시 : ‘독선주의’라고 하면 현실의 종교 신자들이 갖는 일종의 선민의식에 대해 싫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종파가 최고의 가르침이다”라는 고정관념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공(空)’이라는 자기가 앉아 있는 대지에 뿌리를 내려 버리고 자기와 자기 주변의 나무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공의 대지화(大地化)’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방금 말씀하신 ‘공의 공화(空化)’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기는 순간 ‘오만’이라는 악마(魔)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깨달음(불법)과 오만(마성) 사이의 거리는 근소하면서도 무한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란이 ‘지옥일정(地獄一定)’이라고 말했듯이 아주 심각한 자기응시·자기비판·자기부정·자기반성이 모든 종교 신자들에게 늘 요구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종교나 국수주의에게 혼이 영토화 되어 버리면 간단하게는 혼이 자유로워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도쿄의 지하철 독가스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 신자가 악몽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피부 색깔(백색·흑색·황색)이나 민족에 의한 차별은 불화와 폭력의 원인이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주석

1. 원저의 제목은 Charles Villa-Vicencio, Spirit of freedom : South African leaders on religion and politic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6)이고, 일본어 번역서의 제목은 [南アフリカの指導者、宗教と政治を語る―自由の精神、希望をひらく](東京: 本の泉社, 2012)이다.

2. 다나베 하지메(田邊元, 1885-1962)는 일본의 철학자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와 더불어 교토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니시다의 제자였으나 뒤에 스승을 비판하고 ‘절대변증법’과 ‘종(種)의 입장’을 주장했다.

3. 응구기 와 씨옹오의 저작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응구기 와 씨옹오 저, 이석호 역, [정신의 탈식민지화], 아프리카, 2013. 원제는 Ngugi wa Thiong’o, Decolonising the mind: the politics of language in African literature, James Currey, 1986이다.

4. 도겐(道元, 1200-1253)은 일본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초기의 선승으로,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 조사(祖師)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창시자이다. 조동종은 ‘수증일여(修證一如)’에 입각하여 ‘지관타좌(只管打坐)’를 강조한다. 즉 오로지 좌선에만 집중하는 묵조선(黙照禪)을 강조하는 것이 조동종의 특징이다.

5. 신란(親鸞, 1173-1263)은 일본 가마쿠라 전기~중기의 승려로,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 조사(祖師)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창시자이다. 전수염불(專修念佛), 정토신앙을 강조한 정토종(淨土宗)의 창시자인 호넨(法然)을 스승으로 섬겼다. 뒤에 신란은 아미타불의 절대적인 원력(願力)에 매달려 구원

받는 절대타력의 신앙을 강조했다.

6. 샤카(Shaka, 1787-1816)는 줄루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본래 약소 부족이었던 줄루족의 왕이었는데 새로운 장비와 전략전술을 고안하고 주변 국가와 부족들을 병합·흡수하면서 남부 아프리카에 커다란 줄루왕국을건국했다.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共創) 2018 김태창, 야마모토 쿄시, 후카오 요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共創)

by소걸음,  Jan 18. 2018

1
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편집실 주 : 이 글은 2017년 8월 14~16일에 동양포럼 주최로 열린 한·중·일 철학·문학 대화를 위한 사전의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그해 3월 1일 오후 일본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에 있는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선생의 자택에서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의 사회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과 후카오 선생이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이라는 주제로 나눈 대화 내용을 미래공창신문 재외기자 겸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소 연구원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가 번역한 것이다.]

  •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
  • 김태창 : 동양포럼 주간
  •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 오사카대학 준교수

시간 : 2017년 3월 1일

장소 :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

2023/07/24

동양포럼 - 노년철학 국제회의 감상문, 오가와 하루히사, 동양일보 2018

동양포럼 - 노년철학 국제회의 감상문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 - 노년철학 국제회의 감상문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12.09

오가와 하루히사(일본 동경대 명예교수·동아시아실학연구회장)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3회 노년철학 대화 보고

(11.15~11.27 보은군 속리산 숲체험 휴양마을)

●노년기의 등장이 인간세(人間世)의 탄생

초고령화사회에 돌입하고 있는 가운데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늙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철학 대화가 지난 11월 15일~17일까지 보은 속리산 숲체험 휴양마을에서 개최되었다. 일곱 번 째의 한· 일 학술회의로 노인철학을 주제로 한 3번째의 철학대화이다. 발표자는 한극 측 6명, 일본 측 6명이었다. 첫날은 ‘노년의 자각: 자기인식과 점검’, 이틀째는 ‘노년의 빛과 그림자: 일상의 실상’, 사흘째는 ‘노년의 사회적 인식과 그 재구축’을 주제로 삼았는데, 다음 여섯 개의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하고 싶다. 이번에 처음으로 참가한 자로서의 중점적인 정리· 보고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먼저 이 철학대화의 취지가 주최하는 측의 김태창 주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노령문제는 일본이 선진국이다. 언제까지나 보호 세대, 간호 대상이 아니라 노인의 가치와 귀중함을 밝힐 필요가 있고, 한국과 일본이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청년세대, 장년세대, 노년세대가 서로 힘을 합쳐서라고 했다. 이하의 보고는 발표순이 아니라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노년의 현상과 그 대책

-일본의 경우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鈴鹿醫療科學大學 강사, 저널리스트) 씨는 현재 일본에서 간행된 노인 관련 도서를 16권 소개했다. <무연사회>, <노인표류사회>, <노후파단>, <끝난 사람>, <폭주노인>, <절망노인>, <고독사대국>, <훔치기 노인>, <죽지 못한 노인>, <탈출노인> 등. 모두 부정적인 노인의 실상을 주제로 한 것뿐이다. 오오하시씨는 “일본 노인의 가장 큰 문제는 고독이며 갈 곳이 없는 것이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서양근대의 수용에 있다고 하면서 서양근대의 특징을 두 가지 지적했다. 하나는 경제사회, 사회의 경제화이고 그것은 “보다 많이, 보다 많이” 만들라는 지향이다. 부채질의 에토스(부채질 문화)이다. 또 하나는 자아의 발견이고 높은 자아의 추구이다. 개인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고 타자와의 연계가 약해진다. 회사인간이었던 자가 퇴직해서 노인이 되자 고독해지고 갈 곳이 없게 된다. ‘부채질 문화’의 귀결이다. 이 상황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을 보니까 노인에게 일을 시키는 방향이다. 정년 연장과 평생 현역이라는 방향으로. 이것은 “노인이 활약할 장소를 다시 비즈니스의 세계로”라는 것으로 ‘젊은이부터 일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오오하시 씨는 강하게 비판하였다.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을 마친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눈이 깰 지적이다. 노동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한다면 수입은 줄어든다. 가난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는 쓰치다 다카시(槌田劭) 씨가 주창하는 ‘공생공빈(共生共貧)’이라는 삶의 방식이 있다. 철학이란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청년시대에는 강한 개체로서, 노년 시대에는 약한 개체로서 말이다. 오오하시씨는 헤겔이 1818년 베를린대학에 취임했을 때의 연설에서 말한 ‘인생의 일요일 ─철학의 일요일’을 소개했다. 다시 사는 시간, 배움의 시간·장소로써 노년기는 철학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면 젊은이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도 없게 된다. 노인이 철학을 향하게 되면 ‘부채질 문화’를 ‘가라앉히기 문화’로 바꿀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황진수씨(한성대 명예교수, 대한노인회 이사)에 의하면 한국사회는 급속히 늙어가고 있다. 일본 이상이라고 하였고 노인의 사고(四苦)로 가난, 병약, 고독, 역할 상실을 들었다. 특히 노인의 빈곤율은 OECD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다고 한다. 노인연금은 현재 65세부터이지만 20년을 걸쳐서 단계적으로 70세 이상으로 하자는 안이 나와 있다. 2016년 대학가 학생 시위에서 ‘연금 인상 찬성’의 구호가 나왔다고 한다. 황진수 씨는 대한노인회 이사를 다년간 맡고 있는 전문가로서 동양일보 10월 29일에 게재된 노인복지의 5가지 가제(1. 노인의 의식개혁과 사회봉사, 2. 소득보증, 3. 노인 건강을 위한 제도개혁, 4. 노인권익운동, 5. 장수노인전략) 중 2와 3은 돈이 들어갈 문제이지만 그밖에는 노인의 의식운동이나 사회 전체의 노인문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운동으로 중요하다. 1의 사회봉사로는 한국 국민의 사회봉사율은 15%, 그 중 노인은 5%이었다. 이 비율을 높이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미국 시민은 49%) 동아시아 시회는 아주 뒤떨어지고 있다. 황진수 씨는 유명한 고언인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난다. <주역> 곤괘坤卦)을 인용했는데 아주 좋은 고전의 인용이다. 노인권익운동은 “노인의 빈곤문제, 의료보장 등의 복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과 국가와 사회, 자녀세대에 봉사한다는 기본철학을 가지고 노인권익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국가, 사회, 젊은 세대에 봉사한다는 기본철학”의 내용이 노년의 존재가치와 그 사회공헌이라는 것이리라. 이번 회의에서 논의되고 밝혀진 것(후술)은 바로 그것이었다.

조추용씨(꽃동네대학 교수)는 발표 논문을 도표와 함께 동양일보지(11월 9일호)에 게재했는데 수치(數値)가 매우 구체적이고 흥미롭다. 먼저 노인 여가문화의 중요한 관심사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제1단계는 젊은이, 장년과 같은 사회적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다. 제2단계는 인간관계에 관심이 옮김과 동시에 금전감각(수입, 저축) 위주가 된다. 제3단계는 자기 연령이나 신체적 변화(체력저하, 노화)를 알게 된다. 제4단계는 건강· 질명 문제(당뇨병 질환이나 사망, 지병)에 대한 관심. 제5단계는 인생관(인생의 종말, 종교)에 관심이 모아진다. 노인의 인생의 관심사의 변화(다섯 단계)는 노인문제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조추룡 씨는 이들 단계에 입각하면서 노인문화가 어떻게 구축되어야 될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먼저 말하고, 가장 약한 입장의 독거노인문제와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치매 문제에 한정해서 한국의 현재 상황을 제시하였다.



노인 중에서 가장 약한 대상은 노인부부세대와 독거노인세대라고 한다.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률 7.3%로 고령화사회로, 2017년 8월에 14.2%로 고령사회로 돌입했다. 2020년대에 초고령사회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65세 이상의 노인 가족을 유형별로 보면 1인 세대의 비중은 33.4%로 가장 많고, 다음은 노인부부 32.7%, 부부와 자녀 9.8%, 부모 한쪽과 자녀 5.5%의 순서이다.(고령자통계, 2017년) 독거노인의 성별 비율은 여성이 74%, 남성은 26%로 여성의 비율이 높다. 평균수명의 증가에 따라 70대 노인부부로 배우자가 죽고 독거노인이 될 경우가 많다. 전체 노인세대(주인이 65세 이상) 중 독거노인세대의 수는 1990년과 비교하면 2000년에는 급속히 늘어나고, 1990년의 20%부터 2016년 33.14%로 13.4%도 증가하고 있다. 자식(장남)이나 딸(장녀)이 결혼해서 재산분여(財産分與)를 하지 않는 한 독거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치매노인이다. ‘치매관리법’ 제2조 제1호에 의하면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 혹은 뇌혈관계 질환에 의해 기억력, 지남력, 판단력 및 수행능력 등의 기능이 저하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지장이 생기는 후천적, 다발성의 장애를 수방한다.” 2012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치매 유병률(有病率)은 6.18%로 54만명, 17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고, 202년에는 100만 명, 2041년에는 2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되어 있다. 2018년에는 치매노인이 약 75만 명, 경도인지장애노인은 166만명, 모두 합치면 32.7%로 세 명 중 한 명이 이에 해당된다. 치매노인 한 사람의 하루의 간호 시간은 6~9시간, 비용은 연간 2074만 원, 전체로 약 15조원, 2050년에는 약78조원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치매노인에 대한 국가의 정책은 2011년 8월에 치매관리법 공포, 2012년에는 약 78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치매노인에 대한 국가의 정책은 2011년 8월에 치매관리법이 공포되고 2012년 2월에 시행되었다. 5년마다 치매관리종합계획(1-2차) 발표, 현재 제3차 계획(2016-2020)이 시행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했다. 2019년부터 256개 시(市)·군(郡)·구(區)에 치매안심센터(직원 15-40명을 각각 배치)를 짓고 운영하고자 하고 있다고 한다. 직원은 모두 국가공무원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조추룡 씨의 이상의 발표에 대해 고멘테이터의 오오하시 켄지 씨는 일본에서는 여가는 노인에게 있어서 지옥이지 빛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치매가 된 시어머니와의 동거는 지옥상태가 되고 마침내 시설에 맡기게 되었다. 내가 사는 시골 동네에서도 매달 15만 엔은 걸린다. 한국의 경우고 치매노인을 시설에게 맡길 경우 가족의 부담을 얼마나 되는가라고 질문했다. 자기 부담을 각가지 비용을 합쳐서 100만원 정도가 아닐까라는 조추용씨의 대답이었다. 일본에서는 노인복지시절에서 간호사와 노인을 사이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젊은 간호사가 노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시설에서의 노인 간호는 월급에 대해 힘든 직장의 하나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는 노인복지의 일을 싫어한다고 말해진다. 지금 일본의 국회에서 정부가 심의도 제대로 안 한 채 밀어붙이고 있는 입국관리법 개정은 외국인 노동자를 더 많이 받아들이려 하고 있고, 치매노인을 돌보는 데에 외국인을 더 많이 쓰고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용도 들고 엄청난 노동문제이기도 하다.



2. 노인에 대한 경비와 인력 부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건강하고 자립된 삶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츠치다 다카시(槌田劭)씨의 ‘공생공빈’ 법의 실천

일본이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가고 한국도 금방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돈과 일손이 소요되는 사태가 더더욱 늘어난다. 노인과 젊은이들의 세대간 모순과 싸움은 갈수록 심각해진다. 이것에 대한 대책으로 맨 먼저 요구되는 것은 노인이 되도록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체력이 쇠약해지고 노화와 치매를 피할 수 없는 가운데서 말은 쉽지만, 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분이 일본에서 참여한, 올해 83세가 되는 쓰치다 다카시씨이다. 쓰치다씨는 교토대학 물리학의 조교수였다. 지금부터 50년 전의 대학분쟁 속에서 당신은 현실을 모른다고 심하게 비판을 받고 과학기술의 진보가 사람들을 정말로 행복하게 만들었는가를 반성하고 대학을 그만두고서, 유기농법을 중심으로 하는 가난하면서도 자립된 생활을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나는 쓰치다 선생과 만나게 된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어렸을 때 병약했다고 하는 쓰치다씨는 조그마한 편이지만 건강 그 자체였다. 쓰치다 선생이 이번에 준비한 개요의 후반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돼 동양일보에도 게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일보 11월 12일자 지난 9월 23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좌담화가 실려 있고 후반부에서 언급도 되어 있기 때문에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사진과 함께.

문명의 어려움・그 자각과 자기변혁

1973년부터 1회용 시대를 반성하고 협동조합식의 농업운동을 시작했다.

1974년부터 78년까지 시코쿠전력(四國電力) 이카타(伊方) 원전 중지재판에 원고(原告) 주민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가 1978년에 부조리한 판결이 나와서, 과학기술의 범죄성을 확인하고, 이듬해 과학자를 그만두고(교토대 사직) 자기 길을 살아가는 행복의 길에 들어섰다.

미래를 살아갈 가능성 (1) ─무엇보다 먼저 자기 건강에 자각적 책임을 진다

・ 불건강한 체질의 자각(변비/저체온/저혈압/냉증・ 자율신경실조)

・ 건강에의 노력(소식을 자비의 사상으로 실천/ 단식(斷食) 지원/ 체질의 격변/…)

쓰치다 씨는 소식이 자연의 이법과 맞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의 기본은 자연의 이치를 알면 알수록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되고, 무리하게 살고자 한다면 무리가 따라다니게 됩니다.”(앞과 같음 11월 12일 좌담회에서)

・ ‘심신일여(心身一如)’(마음도 몸도 부드럽게/ 조체법操體法/ 단전丹田호흡법/…)

・ ‘증상 즉 요법’(증상이 일어났을 때의 고통은 병과의 긴장・ 자연치유)

・ 자기 몸은 자기 책임으로/ 의사에게 맡기기・ 대증요법의 무책임

미래를 살아갈 가능성 (2) ─평화로운 삶, ‘공생공빈’에 안심안정을

・ 마음과 몸의 건강・ 급식의 건강(다양성의 존중에 의한 안정 균형을)

・ 하늘에서 주어진 ‘살아갈 힘’에 감사하기(환경에 적응하는 생물 신화의 역사가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갈 힘을(보여준다)/ 현존하는 생물은 생존・ 엘리트/ 씩씩한 생명력이 자연에게 주어지고 있다/ 자연을 신뢰하고 자연에게 수순隨順할 것/…)

・ 유기농업은 평화의 사상(안 보이는 지하에 공생의 풍요로움/ 농사의 즐거움을/…)

・ ‘인류멸망’을 두려워하지 말고…(멸망에의 길을 걷는 책임 자각/ 멸망 때 입회하지 못한 무책임/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마음가짐 자체에 지복(至福)이 있다고 믿고…유언반실행(有言半實行)・ 흐지부지함의 행복)

마지막의 ‘인류멸망’ 운운은 과학자로서, 생활자로서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깊은 통찰에 기초한 것이겠지만.

이상의 개요 후반부에서 읽어내고 싶은 것은 ‘공생공빈’의 사상이다. 가난함은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위 지적에서 배우고자 한다.

그럼 여기서 취향을 바꾸고 역사적 인물을 다룬 두 발표를 소개하고자 한다.



3. 노년의 미학─붓다와 송시열(宋時烈)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서

이번에 매우 나의 관심을 끈 발표는 죽음에 직면한 붓다의 모습을 다른 것이었다. 원혜영(동국대학교 강사) 씨의 발표이다. 80세가 된 붓다가 열반하기 전에 출가하기 전에 살았던 곳을 찾아다니는 긴 여행을 한 것을 나는 몰랐다. 250km, 2~3개월에 걸친 여행이었다고 한다. 도중에서 병에 걸리고 노화로 인해 다리나 허리 등이 아파지는 가운데, 여행 끝에 고향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감탄했다고 한다.

“아난다여!(내가 지금까지 여러 번 바라본) 베사리 두시가 아름답구나! 고요한 탑묘(塔墓)들도 웅장하구나! 여래가 원한다면 일 겁 일 겁(一劫一劫) 이상 여기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상 장면은 붓다가 생전에 머물렀던 곳을 다시 돌아보고, 자기 생이 끝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좀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말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 늙음과 죽음은 업보가 아니라 자연의 추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 붓다가 자기 죽음에 직면하면서 마음이 흔들린 것을 ’늙음의 미학‘으로 이름 짓고 마지막으로 다음 두 가지를 지적했다.

“그 흔들림에 의해 겸허함과 미련에 닿고 소중한 것에 대한 최대치가 무엇인가를 직관(直觀)한 것이 아니었을까.” 주어는 붓다이다. 인간 붓다가 80년의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를 직관했다고 원 교수는 이해한 것이다. 대단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늙음을 말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차이를 느끼자. 늙음을 말하고 있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늙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붓다가 늙음을 말하는 방식이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신선하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이것 또한 대단한 지적이다. 생각해 보자. 붓다의 그것을 늙음의 미학으로 그녀가 이름 지은 까닭이다.

또 하나의 발표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노년기를 다룬 김용환(충북대 교수)씨의 발표이다. 송시열은 병자호란에 의한 치욕적인 만주족에의 굴복을 체험하면서 효종을 도와 북벌을 실행하려 한 북벌사상의 중심인물이자, 노론파의 영수로 군림한 정치인이자 유학자이다. 한국사 중에서 성씨에 학자로서 ‘자(子)’자를 붙이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인물이자 <송자대전(宋子大全)>, <조선왕조실록>에서 무려 3000번도 거론될 정도로 사람 입에 이름이 많이 올렸던 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탄핵을 반복하고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며 오로지 주자학만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크게 평가가 갈라지는 인물이다. 김용환 씨는 송시열을 높이 평가하면서 노년철학회의의 취지에 비추어서 송시열이 노년기를 지낸 방식을 다루었다. 대개 노년기는 천리가 인욕에 지기일쑤이지만 송시열은 ‘생명 사랑─올곧은 생각─직(直)의 실천’이라는 3원적 사유로 인욕을 극복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송시열은 의(義)의 사상가로 말해지기만 김용환 씨는 직(直)의 사상가로 본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올곧음에 의해 키운다고 하는 <맹자>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제자가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어떤 것을 호연지기라고 이릅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기운이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센 것이므로 올곧음(直)으로써 키워서 해치지 아니한다면 바로 천지 사이에 퍼지게 될 것이다.”

송시열은 자주 하야하면서 향리에서 일관되게 곧게 살았다고 한다. 특히 사창(社倉)에 의거하면서 재야로 있을 때에는 중앙에서 내려질 녹봉을 사양했다고 한다. 향리에 있을 때에는 화양동(華陽洞)의 자연을 사랑하고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화양구곡(華陽九曲)으로 이름을 지었다. 거대한 바위(반석磐石)가 있고 하늘을 찌르듯 솟아나온 경관에서 송시열은 직의 기운을 키웠다고 한다. 네 명의 임금을 섬긴 그도 장희빈(張禧嬪)이 낳은 아들을 숙종(肅宗)이 세자로 종묘에 보고한 것에 대해 시기상조하다고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 것으로 숙종의 노여움을 사서, 제주도에 유배된 후 사약이 내려지고 83세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독배를 두 번이나 마지면서도 죽지 않았고 세 번째로 눈을 뜬 채 절명했다고 한다. 신심 단련의 성과라고 말해졌다. 김용환 씨는 송시열을 깊이 존경하고 노년철학의 모범으로서 그 ‘생명 사랑─올곧은 생각─직의 실천’이라는 3원 사유를 높이 평가한 것이지만, 평자로 지명된 나는 크게 당혹했다. 15일 당일에 그것을 알게 되고 아무런 준비도 못했던 것과 크게 평가가 갈라지는 인물이 다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면서 독자적인 유교해석을 학자들을 배격한 송시열에 대해 나는 존경심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는 코멘테이터로서는 부적격이었다. 주최자 측에 반성을 요구하고 싶다. 하지만 올곧음으로 일관한 송시열의 마지막은 늙음의 미학의 하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송시열 만년의 삶을 노년기의 삶의 모범으로 본 김용환씨의 의도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바이다.



4.노년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점─생물・ 동물학의 입장, 할머니를 모범으로 한 노인의 역할에서

생물・동물학에서 “생물학적으로는 노년기에 의미는 없다. 생식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놀라운 지적으로부터 시작하신 것은 시세이칸대학(至誠館大學) 학장을 마친 하라다 켄이치(原田憲一)씨다. 하라다씨는 지질학자로 암석에 대해 잘 안다. 이번 대회의 전날에 유성종 선생의 안내로 법주사를 견학했는데 큰 암벽의 석층(石層)이 겹치는 모양을 여러 차례 설명해 주었다. 발표에서는 화이트보드를 쓰면서 동물─식물─미생물의 상생상극 순환도, 천(天; 태양권)─지(地; 암석권)─수(水; 수태水態)의 생물태(生物態)를 둘러싼 농축작용과 확산작용, 환경정화와 자원생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설명했다.

생물계에서는 자기 죽음은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는 것으로 생물순환이 성립된다. 이것이 지구상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지구의 아름다움은 “다양성 속의 조화”이다. 4억 년 전에 식물이 탄생했다. 46억 년 전에 지구가 탄생했고 10억 년 전에 인간이 탄생했다. 그리고 인간의 노년기가 등장하면서 인간성이 탄생했다고 한다. 노년기의 등장에 의해 인간성의 탄생했다는 지적은 몇 번이나 반추(反芻)할 만하다. 노년철학의 근본명제라고 생각한다.

노년기는 생식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노년기는 인간만이 획득한 기억하는 기능에 의해 지혜의 축적과 전달이 이루어진다. 노인의 존재의의가 군거공동체(群居共同體) 속에서 인정되고 노인은 윗자리에 앉히게 된다. 그러나 산업화・ 공업화에 따른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농업만의 지식・ 지혜는 비중이 낮아지고 노인은 윗자리에서 끌어내려지게 되었다. 인간의 노년기의 의의와 가치는 인간의 생애를 총괄하는 철학과 인생을 마음껏 즐기는 예술에 있다. 인간은 예술동물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린이는 점토(粘土)를 받으면 무언가를 만들고자 한다. 막대기를 받으면 물건을 때린다. 그리고 춤을 춘다.

하라다 씨는 총괄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죽음으로 후세에 삶의 모범을 제시하고 동족을 구하고 있다. 생명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동족을 위해 죽는 생물이 되었다.”

-할머니를 모범으로 삼고

원광보건대학 교수인 김자옥 씨는 할머니부터 매우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할머니 젖에서 떼기 위해 어머니가 아주 고생했다. 그런데 김자옥 씨는 할머니를 모델로 했다고 여겨지는 네 가지 노년 규정을 제시하셨다. 자세한 내용은 동양일보 11월 9일호 게재의 논문을 보시기 바란다.

① 노년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 지혜이다.

② 노년은 한없이 자애로 가득 찬 사랑이다.

③ 노년은 자기 자비이다.

④ 노년은 사회적 활동이다.

④에 대해서는 고독을 회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연수를 받음으로써 외국의 노인들이 공공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실을 목격하고 신선함을 느꼈다고 한다. 스포츠관람센터에서의 자석의 배치, 승차표 검사, 안전 확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것은 ③의 ‘자기 자비’ 규정이다. 그녀는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 자비는 스스로를 따뜻하게 돌보고 내가 고통 속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쿨함(Cool), 시크(Chic), 시니컬(Cynical)함을 멋으로 여기는 현 세태와 반대로 따뜻함과 배려를 바라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적용함으로써 심리적 안녕감에 도움이 되는 자기개념으로 연대감과 공감능력을 높여준다.” 고독감을 해방하고 타자와의 연대감을 높이는 것이 자기 자비의 개념이라고 한다. 자비의 마음을 자기에도 적용하고 모두들 안에 있다고 하는 감정을 말한 것 같다. 이것은 인간에는 누구나 필요한 것이지만, 고독하기 쉬운 노년기에는 특히 필요하다고 한다. 자기애가 아니라 자기를 자애로워하는 마음이다. 세 번째의 노년 규정은 시간을 걸어서 생각하고 맛볼 만한 규정이다. 그녀는 결론짓는다.

“아주 작고 사소한 행복이라도” 그대로 넘기지 말아야 된다. “이러한 가치들이 한데 어우러져야 자기 자신의 노년철학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노인에게 요구되는 것 : 노년의 역할

주오가쿠인대학(中央學園大學)의 미네 마이코(峯眞依子) 씨는 ‘늙음이 전 인류에게 이익이 될 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동앙일보 11월 9일자에 전문이 실려 있으므로 살펴주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첫 부분과 말미의 결론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는 첫 부분에서 사상가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의 생애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노인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고 적어도 돌봐주는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잉태한 여성에게 충분한 휴가와 급료를 주고 충분히 육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실현되면 역사는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안 읽었지만 내가 젊었을 때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아주 유명하고 젊은이들이 많이 읽었다.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사상가・ 평론가였다고 생각되는데 엄청 대단한 말이다. 노인과 임부(아이도 포함)를 경제적으로 안심시킬 수 있다면 역사는 그만이라고 한다. 요시모토 다카아키 씨가 말하는 역사가 그만할 경제는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물어보고 싶지만, 이 보고서 1에서 본 노인문제의 경제적 심각성을 생각할 때, 요시모토 씨의 이 제언은 현실성이 있다. 미네 씨는 첫 부분의 이 제언으로 되돌아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어찌됐든 마지막에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일이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움직이지 못한, 일을 하지 못한 경험을 통해 원래 하지 않아도 좋은 일을 고령자가 사회에 제시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젊은 사람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조금뿐이니 그런 쓸데없는 일은 안 해도 돼’라고 그들이 보여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인가. 늙음에는 인간이 사는 의미와 인생의 질을 높여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우리 인류 전체의 이익이다. 또한 늙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노인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는 것과 연결된다.”

미네씨는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한 가수로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요청에 따라 희의장에서도 노래를 피로해 주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5. 노년이야말로 철학할 때─인생 2모작과 그 실천

-인생 2모작

병을 무릅쓰고 참가하신 83세의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1966년에 하와이로 건너가 일본계 하와이인 3대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면서 1세의 일은 3세를 통해 2세가 배우는 관계를 보고하였다. 2세는 1세에 대한 반발성이 강하고 그것이 희박한 3세의 1세 이해를 통해 2세가 1세를 배운다고 한다.

강신표 씨는 그 뒤에 미국의 학자 William Sadler의 핫 에이지(Hot Age)론을 소개하였다. Sadler는 Third Age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은퇴한 이후 30년의 삶이 새롭게 발견되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Hot Age라는 이름을 짓고 그 시기 사람들이 다음 6R의 시간을 구가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①육체의 부활(Renewal)

②원기 회복(Revitalization)

③영적 재생(Regeneration)

④자아의 재발견(Rediscovering)

⑤회춘(Rejuvenation)

⑥인생의 방향 수정(Redirection)

Hot Age를 살고 있는 퇴직자들을 조사해서 알게 된 여섯 가지 공통점을 들어본다.

①자기가 바라는 진정한 생이란 무엇인가를 잘 파악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과 달리 그들은 주로 내면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있다.

②과거에는 가족, 친구, 자녀, 직장 등을 위해 살아왔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도 이기적이라는 지탄을 안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③그들은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과거에 하고 싶었던 일, 여가를 즐기는 일을 하고 있다.

④정신적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호기심, 웃음, 밝음(명랑성), 상상력을 발휘하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⑤가족, 친척 이외에 보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을 하면서 그것으로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다.

⑥그들은 누구나 죽어가는 것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죽음에 대해 준비가 잘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강신표 씨는 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오늘의 현실은 보통사람도 인생 2모작을 해야 할 때이다. 빨리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된다. 결국 모든 노년은 자기가 준비한 만큼 산다는 것이 현실이다. ‘부지런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갖게 된다.’─서양의 격언”

병을 무릅쓰고 참가하신 강신표 선생에게 감사를 드린다.



-노년철학의 엣센스

이제 노년철학 구축의 때이다. 노년의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포함해서, 빛과 그림자도 포함해서 노년철학은 구축될 필요가 있는데,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사장은 ‘초고령 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의미와 가치’라는 제목으로 10항목의 개요를 준비하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사전에 한국어로 반역되어 있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중에서 핵심으로 여겨지는 명제를 소개하고 싶다. 이것은 노년철학의 긍정적인 면의 기본원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지적이 한 가지 있으므로 그것은 핵심의 소개 뒤에 다루고자 한다.

①노인은 정신적으로는 영혼을 계속 갈고 닦아온 사람에게는 노숙기이고 수확기이고 제2의 탄생의 시기이다.

②노년기에는 사물의 진상이 여실히 보이게 된다. 순화된 영혼은 ‘참’에 가까워진다.

③노인은 그때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보은의 증거로 청장년, 젊은이 세대와 장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심경에 이른다. 전쟁의 비참함을 체험한 노년세대는 체험을 이야기하고, 배우고, 차세대에게 그것을 전달해야 된다.

④인생을 진지하게 살아온 노인은 도의, 올바름, 도리가 훤히 보인다. 모든 체험과 지식을 체계화시켜 하나의 철학을 구축하는 것은 노년세대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노년철학이다.

한 가지만 숙고하고 싶은 것은 다음의 지적이다. “젊었을 때부터 자기 자아를 살피고 반성하며 타자를 생각할 마음을 가져온 사람의 노년기는 자기 확대・ 자기실현의 자아가 아니라 우주력(宇宙力)에 호흡을 맞춘 자기수축・ 타자실현의 자기에로 180도 전환된다. 무조건 남을 공경하는 ‘경(敬)’의 체인자(體認者)가 된다.”

‘자기실현의 자아’부터 ‘타자실현의 자아’에의 대전환, 말은 쉬우나 실현은 용이하지 않다. 해야 되는 과제를 아직 못하고 있는 노년에게 ‘자기실현의 자아’는 버릴 수 없다. 다만 ‘타자실현의 자아’라는 규정은 신선하다. ‘우주력에 호흡을 맞춘 자기수축’이라는 규정도 눈이 끌린다. 나는 지금 일본의 농민철학자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 1895~1933)의 세계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의 <농민예술개론강요(農民藝術槪論綱要)>에는 다음과 같은 지적이 있다.

“자아의 의식은 개인에서 집단사회 우주에로 점차 진화한다.……바르고 강하게 산다는 것은 은하계(銀河系)를 자기 속에 의식하면서 그것에 응해가는 것이다.”

야마모토 씨가 말하는 대전환은 발상으로써 중요할 것이다. 다만 나는 공존할 수밖에 없고, 전환은 마이페이스로 서서히 진행시키고 싶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에 남을 공경하는 ‘경(敬)’도 목표이다.



6. 노년철학과 여성

이상 지금 노년철학대화에서 발표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발표에 언급했다. 마지막이지만 시종 코디네이터로서 총괄토론에서 발표한 김태창 선생의 발언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 김태창씨가 가장 솔직하게 말한 것은 두 여성의 일화와 여성의 영성의 깊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명은 시오자와 미도리(鹽澤みどり)라는 분. 김태창 주간은 2014년 가을에 나가노현(長野縣) 도가쿠시(戶隱) 옆에 있는 이이즈나고원(飯綱高原)의 생명의 숲 문화재단, 스이린(水輪)을 사흘 통안 방문하고 체류하였다. 거기에는 시오자와 미도리씨 부부와 39세 나이로 몸져누운 딸이 있었다. 39년전 부부에게 중도의 신체장애인의 딸이 태어났다. 부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가노현 산중의 이이즈나고원으로 옮겨 살고 들판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밭을 가는 생활을 시작했다. 살아가야 되기 때문에 산야를 개간하여 지금은 훌륭한 농장이 되어 있다고 한다. 딸은 몸져누운 채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러나 부부는 그 딸이 병상 속에서 사계적마다 자연의 변화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격려되면서 간신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노년철학 대화 뒤에 이 보고의 글을 쓰기 위해 야마모토 쿄시씨가 보내준 ‘생명의 숲 통신’ 2015년 1월 1일호에 의하면 딸(사오리早穗理)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이 달려 있었다. “출산시의 의료사고로 인해 전두엽 뇌손상이라는 최중도의 뇌장애를 당하게 되고, 39세의 오늘날도 스스로 걷거나 마시거나 말할 수 없고, 거의 몸져누운 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는 시설에 맡기지 않고 24시간체제로 자택 간호하면서, 재단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통신에 시오자와 미도리씨가 지은 시가 4편 개제되어 있었으므로 네 번째의 ‘사오리의 노래’에서 ‘봄의 사오리’ 부분만 소개하고자 한다.

“봄 따뜻하고 작은 새 울며/ 눈석임물 수면에 봄빛 비치며/ 잠에서 깬 새잎의 냄새/ 산뜻해/ 뺨 스치는 솔솔바람의 소리/ 민들레꽃 관을 싣고/ 가볍게 봄의 여신과 사오리가 논다/ 동근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무 엇을 말하고 있는지/ 가끔 부끄럽게 웃고 끄덕거리네.

봄의 하루/ 오브라트에 싸인/ 부드러운 햇살 속에서

이 사오리의 평안은/ 이 사오리의 미소는/ 운하 속의 소우주

이 사오리의 잠잔 얼굴은 이 사오리의 눈동자 속/ 운하 속의 소우주

이 사오리의 평안은/ 이 사오리의 미소는 운하 속의 소우주”

김태창 주간이 거론한 또 한 명의 여성은 세계적인 정신의학자인 에릭 에릭슨(1902~1994)의 딸이다. 그녀도 저명한 정신의학자이다. 에릭슨은 태어난 첫 아이가 신체 장애아였다. 그런 아이를 키우면서 미국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하고 부부는 그 아이를 시설로 보냈다. 사실상 그 아이를 버린 것이다.

나중에 딸도 그 사실을 알고 아버지를 위선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나의 생명을 버려놓고 다른 생명의 행복을 실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이다. 김태창 주간은 시오자와 미도리 씨나 에릭슨의 딸의 아버지 비판을 알고 여성의 영성이 남성의 영성보다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김태창 주간은 빛이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가 빛이 되는 것이 노년철학의 핵심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두 분 여성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남성은 creative, 그러나 여성은 generative이라고.

생명이 차세대를 낳는 귀중함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남성은 여성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을 그 두 사람을 통해 확실히 배웠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무용무책(無用無策)한 인간인가를 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0명 이상의 학자・ 연구자와 대화하고 공공철학운동을 20여 년 동안 계속해온 김태창 주간의 이와 같은 자기인식에 당목(瞠目)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일의 종합토론 자리에서 김태창 주간은 <옹동론(翁童論)>(총 4권, 가마타 토지鎌田東二 저)에서 “인간 중에서 가장 제대로 된 사람은 어린이와 노인이다”라는 지적을 소개하면서, 노인→죽음→어린이→노인 이라는 연쇄에 기초하면서, 노인과 어린이를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하셨다. 이 지적도 노년철학을 생각할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7. 두 가지 노래

이틀째 낮에 가수였던 미네 마이코(峯眞依子) 씨가 노래를 두 곡 불렀다. 이탈리아의 노래와 오키나와의 노래다.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이탈리아의 노래는 ‘넬라 판타지아(환상 속에서)’라는 제목으로 김태창 주간에 의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가사이다.(동양일보 2016년 11월 28일자에서)

“나는 환상 속에서 모든 것에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본다. 나는 저 떠 있는 그름처럼 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깊은 곳까지 인간 사랑으로 가득 찬 영혼을…. 나는 환상 속에서 밤조차도 어둡지 않는, 밝은 세상을 본다. 저 하늘에 뜨는 그름과 같이 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깊은 곳까지 인간 사랑으로 가득 찬 영혼을….”

또 하나는 오키나와의 민요이다. ‘The flower of Tensagu’라는 제목이다.

“어버이 말씀을 잘 명심해/…어버이 가르침은 끝이 없다/ 어버이는 북두성과 같다/ 정직한 자는 천대(千代)에 걸쳐 번영하다.…(그 뒤에 어버이의 가르침의 핵심이 이어진다)”

오키나와의 옛 노래는 어버이의 가르침의 소중함을 부른 것으로 결과적으로 이번 노년철학 대화와 어울린 것이었다. 김태창 주간은 지난 번(제2회) 때는 젊은 여성의 그림이었는데, 이번에는 노래가 금상첨화(錦上添花)해 주었다고 칭찬했다. 예술의 요소는 노년철학에서 뗄 수 없는 것이다.



8. 속리산 기슭의 자연─들국화와 감사의 말씀

마지막으로 회의장과 숙사를 둘러싼 들국화와 자연, 대화를 지탱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먼저 들국화이다. 시종 도와주셨던 최장로이신 유성종 동양포럼운영위원장은 들국화는 꽃은 작지만 향기가 짙다고 말하였다. 이렇게 많은 들국화에 쌓인 것은 나는 처음이었다. 이토 사치요(伊藤左千夫)의 <들국화의 무덤>이라는 소설이 있지만, 일본에서 이와 같이 들국화가 왕성하게 꽃비는 곳이 과연 있을까. 참가자의 한 사람인 김영미 시인이 “국화 향기처럼 노년철학이 널리 퍼지는 것을 기원합니다.” 라고 말했다.

목조의 숙사는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다. 식당에서의 식사도 속리산 기슭에서 채취된 산채가 위주로 이것도 자연이 가득 차 있었다. 바쁜 가운데 몇 번이나 찾아와 준 정상혁 보은군수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이름의 과자를 나눠 주었는데 찾아보니까, 중국 고전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5년의 고사에 유래하는 말이었다. 딸을 순사(殉死)에서 면해 주신 은인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었을 때, 그 아버지가 풀을 맺고 적장이 다리가 걸려 넘어지게 하고 잡히도록 하는 것으로 그 은혜에 보답했다는 고사이다. 결초(結草)란 말 그대로 풀을 맺는다는 의미이다. 또 군수가 대추를 많이 선물해 줬다. 대회 전날에 법주사 입구 매점에서 생대추를 사다 먹었는데, 생대추를 먹은 것도 처음이었다. 작은 사과와 같은 맛이었다. 들국화 이외에 또 하나 대추가 (속리산) 보은군의 상징이 됐다.

한일학술대화이기 때문에 통역진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원광대학교의 조성환씨와 야규 마코토씨, 동덕여자대학교 이선영씨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동양포럼 운영위원장으로 최장로인 유성종 선생에게는 거듭 감사말씀을 드리고 싶다. 발표・토론을 모두 참가・방청하시고 숙사와 회의장의 송영까지 모든 일에 배려해 주었다. 이번 회의는 아주 많은 결실이 있었다고 말씀해 주신 것도 반가웠다.



●처음 참가한 자로서의 감상

나는 77세이지만 자기를 노인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늙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보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양하고자 했다. 전화로 의뢰자인 야마모토 쿄시 미래공창신문 사장에게 말씀드리자 김태창 선생이 올해 봄 죽음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하였고 그 경험에서 노년철학을 구상하였다고 하였기에, 마지막 작별 인사의 뜻으로 참가해야 된다고 다시 생각하고 발표 원고를 써서 제출했다. 자기를 억지고 노인으로 만들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네 가지고 정리해서 썼다. 지금 죽을 수 없는 사정(세대로서의 과제 의식을 포함해서), 신변정리, 지금에야 알게 된 것, ‘보본반시’의 마음의 네 가지이다. 자세한 내용은 동양일보 10월 29일자에 게재되어 있으므로 살펴보시기 바란다. 당연한 일이 위주가 된 발표이지만 주목할 점이 두세 가지 있었다. 나는 우리 세대의 과제책임으로 지금 일본국헌법 제9조의 전쟁포기 조항을 지키는 과제와 북조선의 무시무시한 강제수용소를 없애는 과제를 들었다. 코멘테이터의 선생에서 인권은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북한 쪽의 주장도 있지 않을까라는 반론을 받았다. 그것에 대해 나는 인권이란 생명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다. 북조선은 인권을 국권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그릇된 견해, 말도 안 되는 견해라고 반론했다. 끝난 후 여성 참가자가 인권에 대한 말씀이 아주 인상 깊었다고 하여 나는 기뻤다. 내가 50년 가까이 연구해 온 에도시대(江戶時代)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 미우라 바이엔(三浦梅園)은 하루에 세 번(아침・ 낮・ 저녁) 성묘했다. ‘보본반시’(<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편)의 정신으로 미우라 바이엔은 ‘감시사본(感始思本)’으로 바꿔 말했는데 김태창 선생은 “‘본’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천지자연, 조국, 신세를 진 사람들, 평화”라고 대답했다. ‘보본반시’(감시사본)은 노년철학의 한 요소로 놓아도 좋다고 말해 주었다. 사흘간의 노년철학 대화에 참가하면서 나는 다양한 것을 배웠다. 불교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붓다의 마지막 여행 이야기는 각별히 내 관심을 끌었다. 이틀째에 야마모토씨가 이번 대화의 보고문을 1만6000자(400자 원고지 40장)로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한국말도 약간 할 줄 알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어서 승낙했다. 귀국 후 1주일간, 내 필기메모를 정리하고 동양일보에 게재된 한국 측의 글도 정독해서 이 보고와 같은 구성으로 정리해서 1만6000자를 채울 노력을 했다. 솔직히 말해 힘든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이 아니라 하지만 노인이라는 자각에 도달했다. 대회 주최자, 참가자 전원에 감사를 드린다. 만나보니까 김태창 선생은 정정하고 건강하였다. 억지로 노인으로 만들어진 나였지만 지금은 상당히 노인으로서의 자각이 일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년기의 등장에 의해 인간성이 탄생했다”는 말로 이 보고를 마치기로 한다.

2023/06/26

알라딘: 인류세의 철학 -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 | 지구인문학총서 2 시노하라 마사타케 (지은이),조성환

알라딘: 인류세의 철학
인류세의 철학 -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  | 지구인문학총서 2
시노하라 마사타케 (지은이),조성환,이우진,야규 마코토,허남진 (옮긴이)모시는사람들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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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272쪽
152*225mm
354g
ISBN : 979116629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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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철학 -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
지구인문학의 시선 - 갈래와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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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구인문학총서 2권. 인류가 새롭게 맞이한 인류세에 즈음하여 한나 아렌트가 제기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철학적 물음을 재조명한다. 아렌트의 견해에 인류세를 인간사와 자연사의 얽힘으로 이해한 차크라바르티의 견해를 더하고, 퀑탱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이나 티모시 모튼의 객체지향철학 등이 제기한 ‘사물’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경유하여,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체험과 연결시키면서 재구성하고 있다.

인류세란 “산업혁명 이래의 인간의 활동으로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붕괴되고, 그로 인해 인간의 조건이 위협받는 시대”이다. 이에 즈음하여 근대문명이 구축해 온 인공세계는 자연세계 위에 놓인 것이며, 자연 세계는 연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 책은 인류세에 즈음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수용하며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인간이 붕괴의 길로 추락할 것인가, 성찰을 바탕으로 자연세계와 화해하고 붕괴 이후의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지향할 것인가를 묻는다.


목차


한국어판 저자 서문
프롤로그 『인류세의 철학』은 어떻게 탄생했나?
해제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론

제1장 인간과 자연의 관계
· 인공물과 자연 · 인공물로서의 경계
· 인간의 세계·경계·자연과의 만남 · 인간의 세계와 그 붕괴
· 인간세계의 한계로서의 경계 · ‘아우라의 붕괴’에서의 양의성(兩義性)
· 자연 이해의 어려움 · 세계의 사물성
· 상호연관의 펼쳐짐

제2장 인간세계의 이탈
· 인간이 아닌 것의 세계 · 인류세
·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 · 인간의 조건의 사물성
· 이탈하는 인간세계 · 인간세계를 교란시키는 자연

제3장 인간세계의 취약함
· 인간세계의 과학기술화 · 지구로부터의 인간 이탈
· 인간의 조건의 붕괴 · 환경 위기와 인간 소멸
· 무용해지는 기분과 인공세계의 구축 · 생태적 현실로

제4장 생태적 세계
· 데이터로 본 현실의 충격 · 데이터가 제시하는 현실의 역설
· 마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 유체적(流體的) 사고에 대한 비판
· 인간은 자연 속에 살아 있다 · 인간적인 것과 생태적인 것의 사이
· 취약성의 현실성

제5장 사물의 세계와 시적 언어의 가능성
· 사물과의 상호교섭 · 과학기술화 과정에서의 주체성 상실
· 시적으로 말하기 · 사물의 응시
· 정신의 극복 · 사물이 만나고 모이는 장소
· 과대 도시화와 공업화의 결말

제6장 생태적 공존
· 현전(現前)의 공간과 그곳으로부터의 제거
· 인간 아닌 것의 힘들과의 접촉 · 인간의 유한성
· 혼돈공간의 발생 · 확산에서의 연관
· 파편과 함께 있다는 것 · 빛과 어둠의 경계
· 분리되지 않지만 구별된다

결론
접기


책속에서


P. 42아렌트는 근대 이후의 인간 생활의 문제를 ‘인간의 조건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버린 문제’로 생각하고자 하였다. 『인간의 조건』 제2판(1998)에 실린 서문에서 마거릿 캐노번(Margaret Canovan, 1939~2018)은 아렌트가 인간의 영역인 공적 세계에 대한 고찰을 지구라는 행성, 즉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렌트는 1957년의 인공위성 발사를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파악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지구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즉 “지구에서 하늘로 달아나고, 핵기술과 같은 실험을 통해서 인간 존재는 자연의 한계에 도전해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4 아렌트는 인간의 영역이 지구에서 이탈하여, 그 자체로 자족하게 되는 징조를 인공위성 발사에서 감지했다. 접기
P. 90인간 생활의 조건이 취약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인간 생활의 조건이 인간적인 의도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의 인공 공간만으로는 완결되지 못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지탱해 주는 자연과 만나는 곳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모튼이 “사물에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라고 주장했던 것은 인공과 자연이 은밀하게 만나는 곳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인간 생활에서는 사물의 기묘함을 대체로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세계에 사는 데 익숙해지게 됨에 따라, 그 이외의 세계, 즉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세계는 아렌트가 말하는 ‘세계 아닌 것’으로 지각되고, 거기에서 감각이 닫히고 사고도 멈추기 때문이다. 접기
P. 127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사태를 둘러싼 사유를 펼쳐나가는 일을 야스퍼스의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한 의식”에 관한 검토에서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기술화가 인간 생활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현실은 전문적으로 분화된 개별 지식의 테두리에 머물러서는 사유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인간이 지구로부... 더보기
P. 153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사물성(事物性)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사물을 두 가지 상태로 구분하였다. 하나는 인간적 세계의 구성 요소가 된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바깥으로 내몰려 서로 무관한 것들이 퇴적되어 있는 상태이다. 인간 존재를 조건 지우는 상태에 있는 사물은, 인간 생활이 영위되는 인간적 세계의 영역 안에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지각되고, 인간 생활을 현실에서 뒷받침하는 것으로 감지되며 인식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인간적 세계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물은 명확히 ‘세계 아닌 것’(non-world)으로 불리고 있다. ‘세계 아닌 것’이란 인간 생활과 무관하고 인간 생활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인간 생활로부터 방치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접기
P. 182오노의 시는 공업화된 장소를 사물성에서 포착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균질 공간의 확장과 그 확장에 대한 대항이라는 관념적 도식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모튼의 표현을 빌리면, 오노의 시는 “인간이 구축한 장소보다 훨씬 더 거대한 장소에 우리가 있음을 발견한” 시로 읽을 수 있다. 거대한 장소에 있을 때 인간은 바람과 연기를 느끼며, 풀과 광물의 현실성을 느낀다. 이 드넓은 펼쳐짐 속에 들어감으로써, 인간이 문화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장소가 협소하고 제한적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환영이나 정신으로 가득 찬 번화가와는 다른 ‘갈대밭’이라고 하는 변경의 정적 속에 몸을 두는 것이 요청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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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시노하라 마사타케 (篠原 雅武)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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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京都大学) 총합인간학부(総合人間学部) 졸업. 교토대학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박사. 현재 교토대학대학원 총합생존학관(思修館) 특정 준교수. 저서로『공공공간의 정치이론(公共空間の政治理論)』(人文書院, 2007), 『공간을 위하여(空間のために)』(2011), 『전-생활론(全-生活論)』(2012), 『살아진 뉴타운(生きられたニュータウン)』(2015),『복수성의 에콜로지(複数性のエコロジー)』(2016), 『‘인간 이후’의 철학(‘人間以後’の哲&... 더보기

최근작 : <인류세의 철학> … 총 16종 (모두보기)

조성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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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조교수.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학교와 와세다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원광대학교에서 역사와 종교를 공부했다. 20대에는 집합론과 대수학에 빠졌고, 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 철학을 공부했다.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사상과 개벽파를 연구했다. 최근에는 1990년대에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이병한과 함께 사단법인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칼럼 〈개벽파선언〉을 연재했고, 2022년에는 단독으로 〈K-사상사〉를 연재했다.
지은 책으... 더보기

최근작 : <K-사상사>,<동북아, 니체를 만나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 총 19종 (모두보기)

이우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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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왕양명 공부론의 교육학적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Korean Edcuation : Thought, System and Content』 등이 있고, 역서로는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야누시 코르차크 : 정의를 위한 교육』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신유학의 아동교육(1~2)」, 「Changes in the image of the ideal teacher in Korea」 등이 있다.

최근작 : <하와일록>,<독도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일제강점기, 저항과 계몽의 교육사상가들> … 총 6종 (모두보기)

야규 마코토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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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大阪) 출생. 강원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졸업. 일본 KYOTO FORUM 특임연구원, 중국 西安外國語大學 및 延安大學 일어전가(日語專家)를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저서로 <崔漢綺氣學硏究>(경인문화사, 2008), <東アジアの共通善─和・通・仁の現代的再創造をめざして─>(岡山大学出版會, 2017, 공저), <지구인문학의 시선>(모시는사람들, 2022, 공저), 역서로 <일본의 대학 이야기>... 더보기

최근작 : <한국과 일본, 철학으로 잇다>,<공공철학 이야기>,<최한기 기학 연구> … 총 6종 (모두보기)

허남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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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현재 기후위기 시대 인문학을 모색하기 위해 지구인문학, 인류세 철학 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는 『개벽의 사상사』(공저), 『지구적 전환 2021 -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개벽의 사상사>,<한국 종교교단 연구 XIII>,<한국의 신종교 성지> … 총 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아시아 최초의 ‘인류세 철학서’
붕괴 이후의 인간의 조건을 사물철학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한다
죽어갈 것인가, 살아볼 것인가?

이 책은 2018년에 교토대학의 시노하라 마사타케(篠原雅武, 1975~ ) 교수가 쓴 『人新世の哲学: 思弁的実在論以後の ‘人間の条件’』(東京: 人文書院, 2018.01)을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서 〈人新世(인신세)〉는 anthropocene의 일본어 번역으로, 한국에서는 ‘인류세’로 번역되고 있다. 〈思弁的実在論(사변적 실재론)〉은 speculative realism의 번역어로, 최신 철학의 한 흐름이다. 〈人間の条件(인간의 조건)〉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유래하는 개념이다.
‘인류세’는 2000년에 네델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Jozef Crutzen)이 사용하여 널리 알려진 개념이고, ‘사변적 실재론’은 프랑스의 철학자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가 2006년에 쓴 『유한성 이후(Apres la finitude)』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인간의 조건’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1958년에 쓴 저서 제목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을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철학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한다”가 된다.
‘인류세 철학’은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서양에서도 인류세를 ‘철학적’ 관점에서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인류세 철학”이라는 제목의 책이 처음 나온 것이 2016년이기 때문이다. 이 해에 덴마크의 철학자 Sverre Raffnsøe가 쓴 『인류세의 철학(Philosophy of the Anthropocene): 인간적 전환(The Human Turn)』(Hampshire: Palgrave Macmillan)이 출판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8년에 ‘마침내’ 비서구권에서도 “인류세의 철학”을 제목으로 한 단행본이 간행된 것이다.
저자인 시노하라 마사타케는 일본에서는 인류세 철학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 국내에도 번역되어 유명해진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斎藤幸平)와 『현대사상』에서 대담을 나눴고(「ポスト資本主義と人新世(포스트 자본주의와 인류세)」, 『現代思想』, 2020년 1월호),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philosophy)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티모시 모튼(Timothy Morton, 1968~)과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자신의 책 『複数性のエコロジー(복수성의 생태학)』(2016)에 수록하였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제기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철학적 물음을 ‘인류세’ 시대에 다시 생각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는 이미 시카고대학의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가 2009년에 「역사의 기후 : 네 가지 테제」라는 논문에서 제기한 바 있다. 차크라바르티는 인류세의 의미를 인간사와 자연사의 얽힘으로 이해하였다. 저자는 여기에다 퀑탱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이나 티모시 모튼의 객체지향철학 등이 제기한 ‘사물’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추가하고, 그것을 고베지진이나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체험과 연결시켜, ‘일본인’의 관점에서 인류세 철학을 재구성하고 있다.
‘인류세의 철학’이라는 논리와 개념이 함의하는, 그리고 이로부터 출발하는 사유의 지평은 긴박하고도 광범위한 문제를 포괄한다. 저자는 인간의 조건 문제를 특히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우발적(?) 자연재해와 그로 말미암은 쓰나미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진 세계상이라는 지엽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그 이전 반세기나 한 세기로 소급하고(1958년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출간), 또 그 이후로는 티모시 모튼,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등과의 만남을 포함하여 미래로 ‘열린 구조’를 갖고 있으며, 생물 대멸종을 포함하여 인간의 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년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폭염, 폭우, 가뭄, 초대형 산불 등의 재난이 일상적이며 연례적인 사태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북극 해빙이나 북구 만년빙하의 급속한 해동, 그리고 시베리아 영구동토의 해빙으로 말미암은 재난과 재앙도 인류 역사와 사회변화의 상수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탄소중립 일정표 문제나 플라스틱을 포함한 각종 쓰레기의 유출 등등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인간 조건의 문제가 범세계적이며 전 지구적인 현재진행형의 과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러한 자연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비롯한 사물 세계의 인간 세계로의 진격과 혼섭(混涉) 또한 인류세 시대에 인간의 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되고 있다.
다시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면 인류세란, 차크라바르티의 개념 정의를 참조할 때 “산업혁명 이래의 인간의 활동으로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붕괴되고, 그로 인해 인간의 조건이 위협받는 시대”로 요약될 수 있다(『인류세의 철학』 2장 1절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 여기서 ‘인간의 조건’은 인간 자신을 제외한 인간 활동의 산물(인공물)과 동식물이나 광물, 나아가 바다나 대기와 같은 자연물과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행성 지구’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인류세’란 바로 이러한 ‘행성 지구’ 이하의 인간의 조건이 격변하고 급변하는 와중에 구온난화 사태의 경우에서 보듯이 인간의 생활은 물론 생존과 생명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 시대를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타고, 녹아내리고, 멸종하고, 숨 막혀 죽어 가는 이 인류세의 실제상황 시대에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유와 의미와 여지는 무엇인가. 이제야말로 인간이 이 자연 세계, 인간의 조건의 주인이 아니라 일개 거주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은 결코 인공 세계(문명)만으로 생존하고 생활해 나갈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인간이 자연(동물~바이러스)에 너무 깊숙이 침입하는 바람에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은 바로 이러한 인류세라는 거대 구조의 손바닥 위에서 펼쳐진 파노라마의 도입부였던 것이다.
인류세 시대에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인공의 세계만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자연이야말로 광범위하고 근원적인 인간의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그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닐뿐더러, 그로부터의 해방이란 것도 원천적으로 환상, 환몽,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근대 이후로 건설된 인간의 인공세계는 자연세계 위에 겹쳐지고 포개지듯이 성립하였고, 따라서 대단히 연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자연재해나 기후변동으로 인해 쉽게 붕괴될 위험이 있다. 인류세의 철학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류세는 인간세계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고, 쉽게 붕괴될 수 있으며, 이러한 불안정 상황이 지속되는 시대를 말한다. 근대라는 안정된 시스템이 ‘붕괴’되는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을 절망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를 사물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기회로 삼아 성찰하고 자연세계와의 화해와 만남,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추구할 것인가?

한마디로 “죽어갈 것인가, 살아볼 것인가?”를 묻는 것이 바로 ‘인류세의 철학’이다.

■ 지구인문학총서
기후변화, 인류세, 팬데믹과 같은 지구위기 문제들을 한국사상과 비서구적 관점에서 사유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총서에서는 인간과 유럽 중심의 근대 인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와 만물까지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시켜, 인간과 지구가 공생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들을 모색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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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개념을 철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이다. 티모시 모튼이나 차크라바르티와 같이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인류세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기쉽게 전달하고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성찰하게 해주는 책이다.  구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