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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8

김원기 성추행범과 그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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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22ti JuSlypo hmnsalrddt teoare1dlf2hd:uis4f7 ·




제가 제일 열받은 게 뭔지 간단하게 말을 하자면요, "잘못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기분으로 놔두면 안 되겠냐."는 심정이 드는 그 내면의 구조랄까 기제입니다. 

사람은 일단 감정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 다음에 논리를 가져다 끼워맞추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위의 심정이 작동한다는 건, 애초에 성추행을 포함하는 성폭력에 대해서 구체적 공감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무슨 근거와 논리를 찾아 덧붙이건 간에) 이 분들에게는 처음부터 박원순의 성추행이라는 게 전혀 실질적인 무게감을 갖지 않았다는 거죠. 그걸 스스로 모르면 알라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 여전히 모르는 분들이 왜 이렇게 기세등등해요 이 씨발넘들아.
 
역사적인 영웅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이순신이어도 좋고 김좌진이어도 좋고. 전쟁 중에 무고한 백성들이 끼어 있는 작은 마을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한 십여 명이 죽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별 느낌 없죠? 인종청소가 벌어지는 내전 지역에서 일가족이 끌려나와 모두 목이 잘려 죽는 일이 벌어졌다고 들어도, 대부분 별 느낌 없을 겁니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들에겐 그 사건이 (혹은 그 사건을 설명하는 언어가) 구체적인 공포, 절망, 분노의 감정을 전혀 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어요. (경험이 아니라면)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구체적인 공감과 함께 작동하는 실질적인 인류애를 증대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성폭력 사건들은 그렇게 먼 이야기일 수가 없어요. 그건 그럴 수 있지 하고 양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무슨 알렉산더가 술에 만취해서 충동적으로 죄 없는 부하의 목을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 들으며 "영웅이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런 정복자가 어디 있냐." 이렇게 대꾸하듯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앞에 (페미니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양) 단서를 붙이고 알리바이를 늘어놓아도, 솔직히 자기는 알잖아요. 처음에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자기 안에서 일어난 감정적 반응이 그렇게 작동했다는 걸. 그런데 왜 사기를 쳐요 이 씨발새끼들아.
충분히 괴로워하고 참담하게 느꼈다는 게 전혀 티가 나지 않는데, 남들이 좋아요 눌러주니까 신나서 2절, 3절, 뇌절하고 있는 페북 명사들, 그런 이유에서 너네들 진짜 쓰레기거든요. 너네 안에는 삶이 지옥이 된 사람들의 고통도 없고, 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 끔찍한 파렴치함에 대한 죄책감도 없어요. 그건 그냥 공허한 단어들로만 존재하고, '내 친구 박원순' 하나만 있죠. 그러니 그만 닥쳐요. 진짜.
PS
구체적 공감이 전혀 작동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위해 몇 자 추가함.
새끼발가락 찧었을 때를 상상해 보세요. 생생하죠? 길에서 어떤 인간이 갑자기 뛰어오더니 구둣발로 새끼발가락을 콱 찍고는 그냥 도망갔어요. 뛰어가서 잡았더니 그냥 장난 친 거고 그렇게 아프고 불쾌할 지 몰랐다, 그러면서 건성으로 실실 웃으며 미안미안, 이러고 그냥 가려고 해요. 굉장히 짜증나겠죠? 여전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발가락이 아파 죽겠는데 말예요.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사과 받았으면 됐지, 뭘 난리냐. 이제 그만 해라." 이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 사람, 당신만 모르지 이 동네에서는 좋은 일 많이 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며 씨발씨발 거리는 당신에게 "아픈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심한 욕을 해서 모욕하는 건 지나치지 않냐."고 훈계질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솔직히 발 일부러 밟는 건 못 봤고, 당신이 욕하는 건 봤다. 발가락 좀 보여 봐라." 이러는 인간까지 나오질 않나, 뭐 그런 상황이 됩니다.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더 말도 못하고 그냥 미친 놈한테 걸린 게 운이 나빴던 거라고 그냥 절뚝거리며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저기, 발 찧었다고 상욕을 해대던 그 인간이네"하고 쑥덕쑥덕 거립니다. "유세 떠나?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쩔뚝거려?"하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리구요. 미치고 환장하겠죠?
이 말도 안되는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고통스럽고 억울해서 절망적이기까지 한 게 성폭력 사건입니다. 그러니 자기 발가락의 고통에 대해 보이는 태도보다는 더 진지하라고요. 이렇게까지 말해도 못 알아먹으면 넌 사람 새끼가 아냐.

70Insu Bae, 希修 and 6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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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22ti JuSlypo hmnsalrddt teoare0dlf8hd:uis0f3 ·



남의 독해력을 조롱하는 분의 글을 봤는데, 누구나 자기 지적 능력에 만족하며 사는 경향이 있다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기준 정도는 있는 게 아닐까?
"불심검문에 걸려 연쇄살인의 종료와 함께 인생도 끝난 사람"이라고 해보자. '만약 ~이 아니었다면(if not)'의 논리를 가지고 생각하면, 불심검문에 걸린 게 이 사람 인생 종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거 웃기는 이야기. 불심검문이 문제였네, 그렇게 말하고 나면 애초에 연쇄살인은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처럼 들리니까.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죽인 놈이라서 인생이 망한 거지, 보통 사람들은 불심검문 걸려도 아무 일 없다.
그래서 '미투에 걸려 인생 조지는 남자들'이라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는 거다(표현보다, 그런 표현이 튀어나오는 마인드의 문제겠지만). 안 걸리는 게 핵심은 아니잖아? 미투 할 여자 안 할 여자 잘 고르는 법이 중요해? 뭐 이렇게 말하면 읽는 쪽의 독해력을 문제 삼겠지만, 진짜 문제는 글도 사고력도 엉망인 쓰는 쪽에 있을 거다. 미투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이 문제인 것처럼.
학교 교육 이전에 당연히 상식처럼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얘기를 쓰고 있으니 아침부터 기운이 빠지긴 하는데, 보통 그 상식이 없는 사람은 명랑하고 신나게 잘 살더라고. 그러니 나도 기운내서 하루를 시작해야지. 말 되는 소리를 할 수 없으면 좀 닥쳐요들.

33Insu Bae, 希修 and 31 others

< 성추행범과 그의 친구들 >

자신의 부하직원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성추행한 자들이 조사가 개시되면 조사처리담당자에게 제출하는 전형적 자료 유형이 있다.
교수-성추행범은 온갖 자료를 모으고 모아서 제출한다. 지난 수년간 (때로는 10년치)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목록, 학생들로부터 받은 감사 편지 혹은 문자메시지,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다. 그가 이런 자료를 제출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째, 나는 이렇게 훌륭한 교수/연구자다. 이렇게 훌륭한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둘째, 나는 이렇게 훌륭한 교수/연구자다. 그 어마어마한 업적을 보라. 성추행은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다.
 
대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면 첫 번째, 증거가 드러나면 두 번째 메시지로 갈아탄다.
직장 내 성추행범 역시 마찬가지다. 조사가 개시되면 가해자는 자신이 얼마나 조직에 필요한 인재인지, 그리고 부하직원이 얼마나 자신을 따르는지 보여주고자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제출한다. 그 과정에서 그런 자료를 제출하도록 부하직원들을 종용, 협박하기도 하지만, 때로 부하직원들은 스스로 알아서 그런 자료를 만들어 바친다. 가해자를 위해서 탄원서를 돌리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사건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유포하고, 조사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하거나 진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평소에 그다지 ‘모시기 경쟁’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직원들조차 ‘이때다’ 싶어서 가해자에게 열혈 충성을 다한다.
가해자의 ‘우월적 지위’가 대단할수록, ‘집권 기간’이 길수록, 가해자 측근들의 2차 가해 양상은 더 광범위하게, 장기간, 더 지독하게 계속된다. 그런 광경을 지켜본 한 피해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이 ‘너무너무 징그러웠다’고. 어떤 피해자는 그런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을 목격했는데, 그 범죄 현장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심경’이라고.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서 상황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정의로운 시민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폭력의 행위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폭력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음 두 가지 위치성 스펙트럼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가해자의 편에서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객관성을 핑계로 가해자와 같은 기득권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 세 가지 글들은 지금까지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글들 중 대표적인 문제적 발화들이다. 할 말은 많지만 이 글들의 문제점 및 해악에 대해서 간단히 짚고자 한다.
1. 1) 한겨레신문에 실린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의 “40년 친구 박원순을 기억한다”
2) 페이스북에 게시된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의 “100조원” 발언
2. 페이스북에 게시된 강남순 교수의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열광적 ‘순결주의’와 테러리즘”과 이 글에 대한 아무개 교수의 “교수님, 감사합니다” 발언

첫째, ,조희연 교육감의 글, 김동춘 교수의 “100조원” 발언과 관련하여,
정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가해자에 대한 애도는 ‘사적’으로, 철저한 진상규명은 ‘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민의 세금으로 공식적 애도 행사를 치른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우월적 지위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이 얼마나 사소하게 취급될 수 있고, 쉽게 침묵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공식적 발화행위라는 점에서 그렇다.
조희연 교육감의 경우, 그 해악은 더욱 심각하다. 교육현장은 무엇보다도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그는 학교의 안전과 교육환경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공직자다. 그는 학교현장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교육자가 학생을 성희롱했을 때, ‘엄정한 처리’를 통해 학생의 학습권 및 학습환경을 지켜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있는 교육감이 어마어마한 지위를 이용해서 오랫동안 성희롱을 자행한 ‘친구’의 업적을 기리며 공식적 애도를 했다. 그것은 어떤 메시지인가? 학교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교장, 교감, 교사가 성희롱을 하면 그들의 편에 설 수 있다는 메시지다. 시민으로서 나는 교육환경에 대한 보호책임 있는 교육감 조희연과 박 아무개씨의 40년 친구 개인 조희연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사는 그 글에 지면을 할당함으로써 이 거대한 폭력에 가담했고, 폭력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론사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둘째, 강남순 교수의 글과 관련하여,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페미니즘 책을 여러 권 낸 분이다. 그 글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무지에 의한 폭력’, 젠더 무감성(gender blindness), 성인지 감수성의 결핍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센서는 ‘주류 집단에 속하는 성인 남성의 언어와 경험에서 벗어나 여성 및 소수자의 경험과 관점을 존중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작동한다.
강남순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할 시점에서, 저 높고 높은 곳에서 한 수 가르치는 태도를 견지하며, 공식적 애도를 문제삼는 사람들을 싸잡아 ‘테러리스트’로 매도했다. 그의 글은 피해자의 목소리, 경험이 전혀 들리지 않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 위치, 즉 ‘무지’의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젠더 폭력은 이와 같은 무지에 의해서 발생한다.
‘주류 기득권이 아니라 소수자의 경험과 관점을 존중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국민-국가의 시민, 지구 시민(global citizenship), 그리고 우주적 시민(cosmopolitan citizenship), 어느 층위에서 설정하건,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인간다움의 덕목 중의 기본이다. 그 글에서 나타난 태도는 강남순 교수가 평소 여러 저서에서 언급한 코스모폴리터니즘의 가치를 스스로 배반한 행위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상황에 따라 우선적으로 강조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민주주의 가치가 있다. 어떤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성희롱을 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정황이 드러났다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다. 그리고 사회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은 2018년 대법원 판결문에서 언급된 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의 ‘동료 시민’으로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객관성으로 포장된 폭력의 언어를 쏟아낼 것이 아니라, ‘증거를 내 놓으라’고 피해자를 겁박하면서 가해자 편에 설 것이 아니라, 사건이 정의롭게 해결됨으로써 피해자의 노동권 및 노동환경이 정상화되는지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성희롱 가해자’의 편, ‘가해자’와 같은 기득권이 아니라, 피해자가 서 있는 소수자의 자리, 그 자리로 이동하거나 그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인 ‘정의’는 그런 시민들로 이뤄진 사회에서 가능하다.



김원기

21t SpJoduuliheanys tosaSt ctrfrh13:eS3dhn7d ·

아래 글의 연장선상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도 어렵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미 (가부장적) 세상은 (남성) 가해자 중심으로 성폭력 사건을 보고 있다는 걸 아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 사회에서 피해자의 고발/고소는 진위를 따져야 하는, 사물화된 진술-증거의 더미로 환원되고, 가해자의 사정은 (그 엿같은) '인지상정'에 의해서 이미 충분히 헤아려지는 '사람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추문과 처벌에 의해 가해자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사람이 사람의 일을 헤아리고 공감함'의 태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피해자의 '증언-증거'에 대해서는 법정의 판사와 같은 태도로 유보적 거리두기를 하는 게, 이 남성 중심 사회의 디폴트 루트. 이게 박원순 성추행 사건에 적용되고 있는 거다. 아주 극적으로. 역겹게.
피해자 중심주의란, 쉽게 생각해 사람이 사람을 온전하게 대하는 태도를, 피해자에게 제대로 적용하는 거다. 당연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법관의 태도 같은 건 버리고 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해보겠다는 태도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당신의 자리가 팔짱끼고 '흐음?'하는 태도로 따지는 심문관의 자리가 아니란 걸 명심해라). 그와 함께 이 고발/고소가 진실이라면 그로 인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가해자를 추상적인 범죄 행위 그 자체, 아니면 적어도 익명의 X로 환원시켜 유보적 거리두기를 해보라. 그러면 사건을 보는 시각이 전면적으로 달라지는 걸 경험하게 될 거다.




15Insu Bae, 希修 and 13 others



김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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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22ti JuSlypo hmnsalrddt teoare1dlf2hd:uis4f7 · 

제가 제일 열받은 게 뭔지 간단하게 말을 하자면요, "잘못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기분으로 놔두면 안 되겠냐."는 심정이 드는 그 내면의 구조랄까 기제입니다. 사람은 일단 감정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 다음에 논리를 가져다 끼워맞추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위의 심정이 작동한다는 건, 애초에 성추행을 포함하는 성폭력에 대해서 구체적 공감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무슨 근거와 논리를 찾아 덧붙이건 간에) 이 분들에게는 처음부터 박원순의 성추행이라는 게 전혀 실질적인 무게감을 갖지 않았다는 거죠. 그걸 스스로 모르면 알라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 여전히 모르는 분들이 왜 이렇게 기세등등해요 이 씨발넘들아. 

역사적인 영웅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이순신이어도 좋고 김좌진이어도 좋고. 전쟁 중에 무고한 백성들이 끼어 있는 작은 마을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한 십여 명이 죽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별 느낌 없죠? 인종청소가 벌어지는 내전 지역에서 일가족이 끌려나와 모두 목이 잘려 죽는 일이 벌어졌다고 들어도, 대부분 별 느낌 없을 겁니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들에겐 그 사건이 (혹은 그 사건을 설명하는 언어가) 구체적인 공포, 절망, 분노의 감정을 전혀 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어요. (경험이 아니라면)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구체적인 공감과 함께 작동하는 실질적인 인류애를 증대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성폭력 사건들은 그렇게 먼 이야기일 수가 없어요. 그건 그럴 수 있지 하고 양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무슨 알렉산더가 술에 만취해서 충동적으로 죄 없는 부하의 목을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 들으며 "영웅이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런 정복자가 어디 있냐." 이렇게 대꾸하듯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앞에 (페미니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양) 단서를 붙이고 알리바이를 늘어놓아도, 솔직히 자기는 알잖아요. 처음에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자기 안에서 일어난 감정적 반응이 그렇게 작동했다는 걸. 그런데 왜 사기를 쳐요 이 씨발새끼들아. 

충분히 괴로워하고 참담하게 느꼈다는 게 전혀 티가 나지 않는데, 남들이 좋아요 눌러주니까 신나서 2절, 3절, 뇌절하고 있는 페북 명사들, 그런 이유에서 너네들 진짜 쓰레기거든요. 너네 안에는 삶이 지옥이 된 사람들의 고통도 없고, 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 끔찍한 파렴치함에 대한 죄책감도 없어요. 그건 그냥 공허한 단어들로만 존재하고, '내 친구 박원순' 하나만 있죠. 그러니 그만 닥쳐요. 진짜.

PS

구체적 공감이 전혀 작동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위해 몇 자 추가함. 

새끼발가락 찧었을 때를 상상해 보세요. 생생하죠? 길에서 어떤 인간이 갑자기 뛰어오더니 구둣발로 새끼발가락을 콱 찍고는 그냥 도망갔어요. 뛰어가서 잡았더니 그냥 장난 친 거고 그렇게 아프고 불쾌할 지 몰랐다, 그러면서 건성으로 실실 웃으며 미안미안, 이러고 그냥 가려고 해요. 굉장히 짜증나겠죠? 여전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발가락이 아파 죽겠는데 말예요.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사과 받았으면 됐지, 뭘 난리냐. 이제 그만 해라." 이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 사람, 당신만 모르지 이 동네에서는 좋은 일 많이 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며 씨발씨발 거리는 당신에게 "아픈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심한 욕을 해서 모욕하는 건 지나치지 않냐."고 훈계질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솔직히 발 일부러 밟는 건 못 봤고, 당신이 욕하는 건 봤다. 발가락 좀 보여 봐라." 이러는 인간까지 나오질 않나, 뭐 그런 상황이 됩니다.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더 말도 못하고 그냥 미친 놈한테 걸린 게 운이 나빴던 거라고 그냥 절뚝거리며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저기, 발 찧었다고 상욕을 해대던 그 인간이네"하고 쑥덕쑥덕 거립니다. "유세 떠나?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쩔뚝거려?"하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리구요. 미치고 환장하겠죠? 

이 말도 안되는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고통스럽고 억울해서 절망적이기까지 한 게 성폭력 사건입니다. 그러니 자기 발가락의 고통에 대해 보이는 태도보다는 더 진지하라고요. 이렇게까지 말해도 못 알아먹으면 넌 사람 새끼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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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22ti JuSlypo hmnsalrddt teoare0dlf8hd:uis0f3 · 

남의 독해력을 조롱하는 분의 글을 봤는데, 누구나 자기 지적 능력에 만족하며 사는 경향이 있다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기준 정도는 있는 게 아닐까? 

"불심검문에 걸려 연쇄살인의 종료와 함께 인생도 끝난 사람"이라고 해보자. '만약 ~이 아니었다면(if not)'의 논리를 가지고 생각하면, 불심검문에 걸린 게 이 사람 인생 종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거 웃기는 이야기. 불심검문이 문제였네, 그렇게 말하고 나면 애초에 연쇄살인은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처럼 들리니까.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죽인 놈이라서 인생이 망한 거지, 보통 사람들은 불심검문 걸려도 아무 일 없다. 

그래서 '미투에 걸려 인생 조지는 남자들'이라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는 거다(표현보다, 그런 표현이 튀어나오는 마인드의 문제겠지만). 안 걸리는 게 핵심은 아니잖아? 미투 할 여자 안 할 여자 잘 고르는 법이 중요해? 뭐 이렇게 말하면 읽는 쪽의 독해력을 문제 삼겠지만, 진짜 문제는 글도 사고력도 엉망인 쓰는 쪽에 있을 거다. 미투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이 문제인 것처럼. 

학교 교육 이전에 당연히 상식처럼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얘기를 쓰고 있으니 아침부터 기운이 빠지긴 하는데, 보통 그 상식이 없는 사람은 명랑하고 신나게 잘 살더라고. 그러니 나도 기운내서 하루를 시작해야지. 말 되는 소리를 할 수 없으면 좀 닥쳐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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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22ti JuSlypo hmnsalrddt teoare0dlf4hd:uis0f8 · 

Soohyeon Kwon

21ti JuSlypo hmnsalrddt teoare1dlf6hd:uis2f8 · 

< 성추행범과 그의 친구들 >

자신의 부하직원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성추행한 자들이 조사가 개시되면 조사처리담당자에게 제출하는 전형적 자료 유형이 있다. 

교수-성추행범은 온갖 자료를 모으고 모아서 제출한다. 지난 수년간 (때로는 10년치)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목록, 학생들로부터 받은 감사 편지 혹은 문자메시지,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다. 그가 이런 자료를 제출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첫째, 나는 이렇게 훌륭한 교수/연구자다. 이렇게 훌륭한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둘째, 나는 이렇게 훌륭한 교수/연구자다. 그 어마어마한 업적을 보라. 성추행은 사소한 ‘실수’에 불과하다. 

대개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면 첫 번째, 증거가 드러나면 두 번째 메시지로 갈아탄다. 

직장 내 성추행범 역시 마찬가지다. 조사가 개시되면 가해자는 자신이 얼마나 조직에 필요한 인재인지, 그리고 부하직원이 얼마나 자신을 따르는지 보여주고자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제출한다. 그 과정에서 그런 자료를 제출하도록 부하직원들을 종용, 협박하기도 하지만, 때로 부하직원들은 스스로 알아서 그런 자료를 만들어 바친다. 가해자를 위해서 탄원서를 돌리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사건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유포하고, 조사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하거나 진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평소에 그다지 ‘모시기 경쟁’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직원들조차 ‘이때다’ 싶어서 가해자에게 열혈 충성을 다한다. 

가해자의 ‘우월적 지위’가 대단할수록, ‘집권 기간’이 길수록, 가해자 측근들의 2차 가해 양상은 더 광범위하게, 장기간, 더 지독하게 계속된다. 그런 광경을 지켜본 한 피해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이 ‘너무너무 징그러웠다’고. 어떤 피해자는 그런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을 목격했는데, 그 범죄 현장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심경’이라고.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서 상황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정의로운 시민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폭력의 행위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폭력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음 두 가지 위치성 스펙트럼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가해자의 편에서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객관성을 핑계로 가해자와 같은 기득권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 세 가지 글들은 지금까지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글들 중 대표적인 문제적 발화들이다. 할 말은 많지만 이 글들의 문제점 및 해악에 대해서 간단히 짚고자 한다. 

1. 1) 한겨레신문에 실린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의 “40년 친구 박원순을 기억한다”

2) 페이스북에 게시된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의 “100조원” 발언

2. 페이스북에 게시된 강남순 교수의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열광적 ‘순결주의’와 테러리즘”과 이 글에 대한 아무개 교수의 “교수님, 감사합니다” 발언

첫째, ,조희연 교육감의 글, 김동춘 교수의 “100조원” 발언과 관련하여,  

정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가해자에 대한 애도는 ‘사적’으로, 철저한 진상규명은 ‘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민의 세금으로 공식적 애도 행사를 치른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우월적 지위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이 얼마나 사소하게 취급될 수 있고, 쉽게 침묵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공식적 발화행위라는 점에서 그렇다.  

조희연 교육감의 경우, 그 해악은 더욱 심각하다. 교육현장은 무엇보다도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그는 학교의 안전과 교육환경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공직자다. 그는 학교현장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교육자가 학생을 성희롱했을 때, ‘엄정한 처리’를 통해 학생의 학습권 및 학습환경을 지켜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있는 교육감이 어마어마한 지위를 이용해서 오랫동안 성희롱을 자행한 ‘친구’의 업적을 기리며 공식적 애도를 했다. 그것은 어떤 메시지인가? 학교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교장, 교감, 교사가 성희롱을 하면 그들의 편에 설 수 있다는 메시지다. 시민으로서 나는 교육환경에 대한 보호책임 있는 교육감 조희연과 박 아무개씨의 40년 친구 개인 조희연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사는 그 글에 지면을 할당함으로써 이 거대한 폭력에 가담했고, 폭력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론사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둘째, 강남순 교수의 글과 관련하여,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페미니즘 책을 여러 권 낸 분이다. 그 글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무지에 의한 폭력’, 젠더 무감성(gender blindness), 성인지 감수성의 결핍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센서는 ‘주류 집단에 속하는 성인 남성의 언어와 경험에서 벗어나 여성 및 소수자의 경험과 관점을 존중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작동한다. 

강남순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할 시점에서, 저 높고 높은 곳에서 한 수 가르치는 태도를 견지하며, 공식적 애도를 문제삼는 사람들을 싸잡아 ‘테러리스트’로 매도했다. 그의 글은 피해자의 목소리, 경험이 전혀 들리지 않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 위치, 즉 ‘무지’의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젠더 폭력은 이와 같은 무지에 의해서 발생한다.  

‘주류 기득권이 아니라 소수자의 경험과 관점을 존중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국민-국가의 시민, 지구 시민(global citizenship), 그리고 우주적 시민(cosmopolitan citizenship), 어느 층위에서 설정하건,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인간다움의 덕목 중의 기본이다. 그 글에서 나타난 태도는 강남순 교수가 평소 여러 저서에서 언급한 코스모폴리터니즘의 가치를 스스로 배반한 행위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상황에 따라 우선적으로 강조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민주주의 가치가 있다. 어떤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성희롱을 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정황이 드러났다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의’다. 그리고 사회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은 2018년 대법원 판결문에서 언급된 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의 ‘동료 시민’으로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객관성으로 포장된 폭력의 언어를 쏟아낼 것이 아니라, ‘증거를 내 놓으라’고 피해자를 겁박하면서 가해자 편에 설 것이 아니라, 사건이 정의롭게 해결됨으로써 피해자의 노동권 및 노동환경이 정상화되는지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성희롱 가해자’의 편, ‘가해자’와 같은 기득권이 아니라, 피해자가 서 있는 소수자의 자리, 그 자리로 이동하거나 그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인 ‘정의’는 그런 시민들로 이뤄진 사회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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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21t SpJoduuliheanys tosaSt ctrfrh13:eS3dhn7d · 

아래 글의 연장선상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도 어렵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미 (가부장적) 세상은 (남성) 가해자 중심으로 성폭력 사건을 보고 있다는 걸 아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 사회에서 피해자의 고발/고소는 진위를 따져야 하는, 사물화된 진술-증거의 더미로 환원되고, 가해자의 사정은 (그 엿같은) '인지상정'에 의해서 이미 충분히 헤아려지는 '사람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추문과 처벌에 의해 가해자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사람이 사람의 일을 헤아리고 공감함'의 태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피해자의 '증언-증거'에 대해서는 법정의 판사와 같은 태도로 유보적 거리두기를 하는 게, 이 남성 중심 사회의 디폴트 루트. 이게 박원순 성추행 사건에 적용되고 있는 거다. 아주 극적으로. 역겹게. 

피해자 중심주의란, 쉽게 생각해 사람이 사람을 온전하게 대하는 태도를, 피해자에게 제대로 적용하는 거다. 당연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법관의 태도 같은 건 버리고 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해보겠다는 태도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당신의 자리가 팔짱끼고 '흐음?'하는 태도로 따지는 심문관의 자리가 아니란 걸 명심해라). 그와 함께 이 고발/고소가 진실이라면 그로 인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가해자를 추상적인 범죄 행위 그 자체, 아니면 적어도 익명의 X로 환원시켜 유보적 거리두기를 해보라. 그러면 사건을 보는 시각이 전면적으로 달라지는 걸 경험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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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o1tc9i uSucpoJmglulyg acnti s07hso:f0hreed2 · 

Daisy Jo

o1tc8i uSucpoJmglulyg acnti s11hso:f2hreed0 · 

*사소한 성희롱이 있었음

-내가 오해한 것인가 자기 검열함

*반복 되어서 주위에 넌지시 언급함

-너가 오해한것이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함

*더욱 반복 되어서 윗선에 보고함

- 너가 오해한 것이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함22

*참을 만큼 참았다 님 고소

-여지껏 왜 말 안했냐 너도 즐긴거 아니냐 꼬우면 관뒀어야지

-서로 좋아서 해놓고 수틀리니까 고소 여자 종특이다

이래서 여자랑 일 못함

-증거 내놔라 못믿겠다 무고지?

-뭐야 증거가 왜 이렇게 많아 님 계획했지 꽃뱀이지 누가 보냈어?

-뭐야 이깟게 왜 성희롱 라떼는 말이야~

-뭐야 이깟게 왜 성희롱 사회생활이란게~

*증거가 불충분 하거나 경미하다 판단되어 무혐의

-돈 노렸군 역시 꽃뱀이네

*사과와 합의로 고소 취하

-돈 노렸군 역시 꽃뱀이네

*혐의 인정되어서 유죄 받음

-불륜이면서 남자 인생 망치네 역시 꽃뱀이네

-아내가 젤 불쌍하다 저년도 가해자다

-요즘 법원은 여자 말만 믿네 이래서 여자랑 일 못함

*수사중 피의자 사망

-공소권 없음 사건 종결

-한 인생 망치니 만족스러우세요? 이 가해자 살인자!

-문제 안생기게 여자랑 일 하지 말자!

촘촘한 그물같음 대체 어디로 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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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o1tc9i uSucpoJmglulyg acnti s00hso:f1hreed7 · 

'메갈당'이라는 표현을 비하적인 어조로 사용한 분을 친삭했는데, 그분의 의도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이지 '메갈당'이라는 말 자체가 왜 비하적 표현이 되는지 동의하기 어렵긴 하다. 메갈리아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세계관 최고의 대의인데. 메갈 원년의 벅찬 감동을 생각하면, 지치다가도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낍니다만.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우리 항복하기로 했다'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이제 조선이 해방되는 거냐며 기뻐하던 조선인 생도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충성심 강하던 일본인 생도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가 망했는데 기뻐하는 배신자를 우국충정의 울분으로 처단한 일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이 일본인 생도가 '백번 양보해서 해방을 예감하고 기뻐하는 식민지인의 심정이야 이해한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나대는 꼴 보니 욱하고 올라오는 게 있었다, 뭐 그런 얘기가 되겠죠. 너네가 식민지인으로 해방을 바란 건 알겠는데 오늘 같은 날 그렇게 선을 넘으면 짜증나지. 

성평등의 문제에 대해 공감한다는 적지 않은 남성들이 딱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나 싶을 때가 있어요. 뭐 이해는 가는데, 그렇게 과할 필요는 없지 않냐면서 눈살 찌푸리다가 결국 욱 해서 너네가 바라는 게 뭐냐, 남자가 죽으면 되는 거냐 으름장을 놓는 단계를 거쳐 결국 다시 전쟁을 선포하는 지경까지 간달까. 본색을 드러내고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뭐 겉으로 보기엔 할 만큼 했는데 지나친 태도에 신물나서 이렇게 됐으니 다 너네 탓이다 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정형화된 루트를 타는 거겠죠. 

박원순 씨의 공과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겠지만,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효과는 정확히 바로 이런 분들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 일을 했다는 데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도리를 명분으로 '과도한 것들에 대한 반감'을 핑계 삼아, 그동안 못마땅했거나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속시원하게 쌓인 분과 원한을 터뜨릴 수 있게 만들었으니. 뭐 인문 먹물들은 여기서 흐상티망 뭐 이런 단어를 떠올리시기도 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거고.

근데 말이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부당함과 폭력과 공포의 현실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과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말하기 전에는 들어 쳐먹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항의와 분노의 지나침에 대해 엄살 피우는 건 파렴치하지 않습니까.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심정과 상황을 헤아려 알아서 삼가라고 하는 것만큼 역겨운 폭력이 어디 있나요. 

물론 여기까지가면 이분들은 애초에 '피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게 되겠죠. '좇도 아닌 일 때문에 억울하게 가셔야만 했던 우리 시장님 애도 좀 하려는데 여기에 분위기 깨며 고인을 부관참시하고 메갈당의 정략만 따지는 젊은 페미년들' 때문에 울분을 터뜨리는 꼰대 수컷들은 정직해집시다. 자꾸 인권 감수성 있는 척, 진보에 대해 고민하는 척, 여성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척 하려다 보니 헷갈리잖아요. 수십 년 전 성장기의 가치관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병영국가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제의 문화를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하고 있는 보수 반동의 정화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몰락하는 제국과 함께 산화하세요. 텐노반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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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ut1h8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07:d34 · 

인문학이 어려운 건, 기존에 쌓여있는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보태는 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매번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다보면 지겨워서라도 '그 다음'에 대해 궁리하게 되어 있다. 

'일본식 표현을 정비한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인지 지적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근대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 조어에 감사하자는 정도로 그치면 그냥 일반인들의 한심한 생각을 가볍게 조롱하는 먹물의 한심한 작태를 되풀이하는 것 아닌가 싶다. 다들 아는 뻔한 이야기를 그렇게 되풀이해봤자 남는 것도 없고. 오히려 그렇게 논란을 만들고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 번역어들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서 언어생활에 더 많은 충격량을 전달하는 게 더 생산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시적 허용을 통해 기존의 언어적 관습을 (일회적으로) 해체하기도 하지만,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고 그 내적 논리를 비틀어 지속적인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한자 조어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 보이기는 한다. 아무래도 한자 조어의 변화는 학술과 언론 등 좀 더 제도적인 담론의 영역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얄팍한 행정적 발상을 조롱하는 영양가 없는 일보다는 일본 근대가 전해준 번역어의 유산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번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게 더 남는 게 많을 거 같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는 자유(自由), '스스로 말미암음'이라는 이 기괴한 조어가 사실 'liberty'와 'freedom'의 서로 다른 의미 영역을 적절하게 포섭하지 못함으로써 뉘앙스의 결여로 인한 오역 아닌 오역, 오해 아닌 오해를 만들어내는 것도 늘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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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ut1h7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20:d30 · 

"도대체 왜 사람들은 피해 여성들의 아픔에 둔감하냐고 골 백번 외쳐도 그 소리에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서가 아니고 이미 충분히 피해 여성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지만 단지 우선 순위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단순한 사실을 인지 못하고 있으니 정의당의 미래가 어두워 보이는 것이다."

우연히 본 어떤 글. 

이런 게 탁월한 수사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현실감각을 교정시켜 자기도 모르게 '그, 그런가?'하고 수긍하게 만드는 힘. 그렇지만 '충분히 피해 여성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지 '우선 순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두 의원들에게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겠지.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거 맞고, 그건 빼박캔트 참트루다. 그런 사람들이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정의당의 미래가 어두웠던 거지. 

<내가 그거 모르는 바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인간치고 진짜로 그걸 제대로 아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안다면 말하는 방법과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런 태도를 갖추고 말하는 인간은 <내가 그거 모르는 바는 아닌데>라고 말을 꺼내지 않거든. 정말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지금은 입 좀 다물고 있으라'는 식으로 말 못한다니까? <너 죽을 정도로 아픈 건 알겠는데 지금은 비명 좀 참아줄래?>라고 말하면서 <나도 아프다는 게 뭔지 모르는 바 아니거든>이라고 덧붙이는 인간이라면, 어디서 공감이니 동참이니 "우.선.순.위."니 그런 단어를 쓰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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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ut1h7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20:d09 · 

영화의 주인공도 이병헌(김선우 역)이고, 감정이입되는 것도 이병헌인데, 이 장면을 보다 보면 이기영(삼선교 오무성  역)에게 백만 번 동의하게 된다. 스스로 쓰면서도 구차할 가정과 비교, 단서, 조건, 억측 그런 거 다 빼고 간단한 네 마디면 최악의 뻘짓은 피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쓰지 말아야 할 글들과 누르지 말아야 할 좋아요가 이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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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하라니까 꼭 이런다. 잘못했음 딱 네마디라고. 다들 언어장애야? https://t.co/jNGux5kL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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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16ig mgtSJnulayrhpc onSatctnageso r2e2:a53gd · 

음, 가끔 페친 정리를 할 때가 있는데요

1. 어쩌다 납득이 안 되는 글(하지만 좋아요도 많고 공유도 많이 되는 글)을 봤는데, 거기에 동의를 표한 공통 페친을 발견하는 경우 

2. 그런데 공통 페친을 살펴 보니 그 아이디가 익숙하지 않을 때 (글을 평소에 쓰지 않으시는데 제 글에 반응한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

3. 종종 내밀한 이야기를 친공으로 쓰는 사람이다보니 그런 분들을 별 생각 없이 친삭합니다. 

쥐뿔도 아닌 새끼가 지가 뭐라고 먼저 친삭 따위를 하는 것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어 불쾌하시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꾸벅.

PS

전에는 종종 우울 삽화 기간에 전체 친삭 같은 걸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로 인해 정리된 인간관계들이 잘 복원되지 않는 것에 대해 그저 제 탓을 하게 될 뿐 다시 손을 내밀기는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잘못을 반복......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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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15ig mgtSJnulayrhpc onSatctnageso r0e0:a04gd · 

비유에는 더 적절한 비유로 답해야 하는 법. 

A 선수가 한 '비신사적 행위'는 누가 봐도 불필요한 고의적인 백태클로 상대방 인대를 끊는 것이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퇴장당한 후 바로 선수생활을 은퇴하면서 그 (부상으로 선수생활이 끝나 강제로 은퇴당한) 상대방에 대한 사과는 한 마디도 안 했어. 이 선수를 위대한 축구 선수의 반열에 올리고 공적으로 기려야 할까? 명예의 전당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게 스포츠 정신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그게 '과'에 대한 올바른 평가 아니겠어? 

제발 되먹지 않은 비유, 논리 그만 만들어 내, 이 씨벌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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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o1tc9i uSucpoJmglulyg acnti s07hso:f0hreed2 · 

Daisy Jo

o1tc8i uSucpoJmglulyg acnti s11hso:f2hreed0 · 

*사소한 성희롱이 있었음

-내가 오해한 것인가 자기 검열함

*반복 되어서 주위에 넌지시 언급함

-너가 오해한것이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함

*더욱 반복 되어서 윗선에 보고함

- 너가 오해한 것이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함22

*참을 만큼 참았다 님 고소

-여지껏 왜 말 안했냐 너도 즐긴거 아니냐 꼬우면 관뒀어야지

-서로 좋아서 해놓고 수틀리니까 고소 여자 종특이다

이래서 여자랑 일 못함

-증거 내놔라 못믿겠다 무고지?

-뭐야 증거가 왜 이렇게 많아 님 계획했지 꽃뱀이지 누가 보냈어?

-뭐야 이깟게 왜 성희롱 라떼는 말이야~

-뭐야 이깟게 왜 성희롱 사회생활이란게~

*증거가 불충분 하거나 경미하다 판단되어 무혐의

-돈 노렸군 역시 꽃뱀이네

*사과와 합의로 고소 취하

-돈 노렸군 역시 꽃뱀이네

*혐의 인정되어서 유죄 받음

-불륜이면서 남자 인생 망치네 역시 꽃뱀이네

-아내가 젤 불쌍하다 저년도 가해자다

-요즘 법원은 여자 말만 믿네 이래서 여자랑 일 못함

*수사중 피의자 사망

-공소권 없음 사건 종결

-한 인생 망치니 만족스러우세요? 이 가해자 살인자!

-문제 안생기게 여자랑 일 하지 말자!

촘촘한 그물같음 대체 어디로 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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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o1tc9i uSucpoJmglulyg acnti s00hso:f1hreed7 · 

'메갈당'이라는 표현을 비하적인 어조로 사용한 분을 친삭했는데, 그분의 의도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이지 '메갈당'이라는 말 자체가 왜 비하적 표현이 되는지 동의하기 어렵긴 하다. 메갈리아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세계관 최고의 대의인데. 메갈 원년의 벅찬 감동을 생각하면, 지치다가도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낍니다만.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우리 항복하기로 했다'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이제 조선이 해방되는 거냐며 기뻐하던 조선인 생도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충성심 강하던 일본인 생도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가 망했는데 기뻐하는 배신자를 우국충정의 울분으로 처단한 일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이 일본인 생도가 '백번 양보해서 해방을 예감하고 기뻐하는 식민지인의 심정이야 이해한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나대는 꼴 보니 욱하고 올라오는 게 있었다, 뭐 그런 얘기가 되겠죠. 너네가 식민지인으로 해방을 바란 건 알겠는데 오늘 같은 날 그렇게 선을 넘으면 짜증나지. 

성평등의 문제에 대해 공감한다는 적지 않은 남성들이 딱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나 싶을 때가 있어요. 뭐 이해는 가는데, 그렇게 과할 필요는 없지 않냐면서 눈살 찌푸리다가 결국 욱 해서 너네가 바라는 게 뭐냐, 남자가 죽으면 되는 거냐 으름장을 놓는 단계를 거쳐 결국 다시 전쟁을 선포하는 지경까지 간달까. 본색을 드러내고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뭐 겉으로 보기엔 할 만큼 했는데 지나친 태도에 신물나서 이렇게 됐으니 다 너네 탓이다 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정형화된 루트를 타는 거겠죠. 

박원순 씨의 공과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겠지만,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효과는 정확히 바로 이런 분들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 일을 했다는 데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도리를 명분으로 '과도한 것들에 대한 반감'을 핑계 삼아, 그동안 못마땅했거나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속시원하게 쌓인 분과 원한을 터뜨릴 수 있게 만들었으니. 뭐 인문 먹물들은 여기서 흐상티망 뭐 이런 단어를 떠올리시기도 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거고.

근데 말이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부당함과 폭력과 공포의 현실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과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말하기 전에는 들어 쳐먹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항의와 분노의 지나침에 대해 엄살 피우는 건 파렴치하지 않습니까.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심정과 상황을 헤아려 알아서 삼가라고 하는 것만큼 역겨운 폭력이 어디 있나요. 

물론 여기까지가면 이분들은 애초에 '피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게 되겠죠. '좇도 아닌 일 때문에 억울하게 가셔야만 했던 우리 시장님 애도 좀 하려는데 여기에 분위기 깨며 고인을 부관참시하고 메갈당의 정략만 따지는 젊은 페미년들' 때문에 울분을 터뜨리는 꼰대 수컷들은 정직해집시다. 자꾸 인권 감수성 있는 척, 진보에 대해 고민하는 척, 여성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척 하려다 보니 헷갈리잖아요. 수십 년 전 성장기의 가치관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병영국가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제의 문화를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하고 있는 보수 반동의 정화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몰락하는 제국과 함께 산화하세요. 텐노반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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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ut1h8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07:d34 · 

인문학이 어려운 건, 기존에 쌓여있는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보태는 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매번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다보면 지겨워서라도 '그 다음'에 대해 궁리하게 되어 있다. 

'일본식 표현을 정비한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인지 지적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근대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 조어에 감사하자는 정도로 그치면 그냥 일반인들의 한심한 생각을 가볍게 조롱하는 먹물의 한심한 작태를 되풀이하는 것 아닌가 싶다. 다들 아는 뻔한 이야기를 그렇게 되풀이해봤자 남는 것도 없고. 오히려 그렇게 논란을 만들고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 번역어들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서 언어생활에 더 많은 충격량을 전달하는 게 더 생산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시적 허용을 통해 기존의 언어적 관습을 (일회적으로) 해체하기도 하지만,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고 그 내적 논리를 비틀어 지속적인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한자 조어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 보이기는 한다. 아무래도 한자 조어의 변화는 학술과 언론 등 좀 더 제도적인 담론의 영역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얄팍한 행정적 발상을 조롱하는 영양가 없는 일보다는 일본 근대가 전해준 번역어의 유산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번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게 더 남는 게 많을 거 같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는 자유(自由), '스스로 말미암음'이라는 이 기괴한 조어가 사실 'liberty'와 'freedom'의 서로 다른 의미 영역을 적절하게 포섭하지 못함으로써 뉘앙스의 결여로 인한 오역 아닌 오역, 오해 아닌 오해를 만들어내는 것도 늘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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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ut1h7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20:d30 · 

"도대체 왜 사람들은 피해 여성들의 아픔에 둔감하냐고 골 백번 외쳐도 그 소리에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서가 아니고 이미 충분히 피해 여성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지만 단지 우선 순위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단순한 사실을 인지 못하고 있으니 정의당의 미래가 어두워 보이는 것이다."

우연히 본 어떤 글. 

이런 게 탁월한 수사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현실감각을 교정시켜 자기도 모르게 '그, 그런가?'하고 수긍하게 만드는 힘. 그렇지만 '충분히 피해 여성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지 '우선 순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두 의원들에게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겠지.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거 맞고, 그건 빼박캔트 참트루다. 그런 사람들이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정의당의 미래가 어두웠던 거지. 

<내가 그거 모르는 바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인간치고 진짜로 그걸 제대로 아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안다면 말하는 방법과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런 태도를 갖추고 말하는 인간은 <내가 그거 모르는 바는 아닌데>라고 말을 꺼내지 않거든. 정말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지금은 입 좀 다물고 있으라'는 식으로 말 못한다니까? <너 죽을 정도로 아픈 건 알겠는데 지금은 비명 좀 참아줄래?>라고 말하면서 <나도 아프다는 게 뭔지 모르는 바 아니거든>이라고 덧붙이는 인간이라면, 어디서 공감이니 동참이니 "우.선.순.위."니 그런 단어를 쓰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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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ut1h7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20:d09 · 

영화의 주인공도 이병헌(김선우 역)이고, 감정이입되는 것도 이병헌인데, 이 장면을 보다 보면 이기영(삼선교 오무성  역)에게 백만 번 동의하게 된다. 스스로 쓰면서도 구차할 가정과 비교, 단서, 조건, 억측 그런 거 다 빼고 간단한 네 마디면 최악의 뻘짓은 피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쓰지 말아야 할 글들과 누르지 말아야 할 좋아요가 이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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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하라니까 꼭 이런다. 잘못했음 딱 네마디라고. 다들 언어장애야? https://t.co/jNGux5kL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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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16ig mgtSJnulayrhpc onSatctnageso r2e2:a53gd · 

음, 가끔 페친 정리를 할 때가 있는데요

1. 어쩌다 납득이 안 되는 글(하지만 좋아요도 많고 공유도 많이 되는 글)을 봤는데, 거기에 동의를 표한 공통 페친을 발견하는 경우 

2. 그런데 공통 페친을 살펴 보니 그 아이디가 익숙하지 않을 때 (글을 평소에 쓰지 않으시는데 제 글에 반응한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

3. 종종 내밀한 이야기를 친공으로 쓰는 사람이다보니 그런 분들을 별 생각 없이 친삭합니다. 

쥐뿔도 아닌 새끼가 지가 뭐라고 먼저 친삭 따위를 하는 것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어 불쾌하시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꾸벅.

PS

전에는 종종 우울 삽화 기간에 전체 친삭 같은 걸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로 인해 정리된 인간관계들이 잘 복원되지 않는 것에 대해 그저 제 탓을 하게 될 뿐 다시 손을 내밀기는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잘못을 반복......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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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15ig mgtSJnulayrhpc onSatctnageso r0e0:a04gd · 

비유에는 더 적절한 비유로 답해야 하는 법. 

A 선수가 한 '비신사적 행위'는 누가 봐도 불필요한 고의적인 백태클로 상대방 인대를 끊는 것이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퇴장당한 후 바로 선수생활을 은퇴하면서 그 (부상으로 선수생활이 끝나 강제로 은퇴당한) 상대방에 대한 사과는 한 마디도 안 했어. 이 선수를 위대한 축구 선수의 반열에 올리고 공적으로 기려야 할까? 명예의 전당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게 스포츠 정신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그게 '과'에 대한 올바른 평가 아니겠어? 

제발 되먹지 않은 비유, 논리 그만 만들어 내, 이 씨벌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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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t SpJoduuliheanys tosaSt ctrfrh13:eS3dhn7d
아래 글의 연장선상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도 어렵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미 (가부장적) 세상은 (남성) 가해자 중심으로 성폭력 사건을 보고 있다는 걸 아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 사회에서 피해자의 고발/고소는 진위를 따져야 하는, 사물화된 진술-증거의 더미로 환원되고, 가해자의 사정은 (그 엿같은) '인지상정'에 의해서 이미 충분히 헤아려지는 '사람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추문과 처벌에 의해 가해자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사람이 사람의 일을 헤아리고 공감함'의 태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피해자의 '증언-증거'에 대해서는 법정의 판사와 같은 태도로 유보적 거리두기를 하는 게, 이 남성 중심 사회의 디폴트 루트. 이게 박원순 성추행 사건에 적용되고 있는 거다. 아주 극적으로. 역겹게.
피해자 중심주의란, 쉽게 생각해 사람이 사람을 온전하게 대하는 태도를, 피해자에게 제대로 적용하는 거다. 당연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법관의 태도 같은 건 버리고 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해보겠다는 태도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당신의 자리가 팔짱끼고 '흐음?'하는 태도로 따지는 심문관의 자리가 아니란 걸 명심해라). 그와 함께 이 고발/고소가 진실이라면 그로 인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가해자를 추상적인 범죄 행위 그 자체, 아니면 적어도 익명의 X로 환원시켜 유보적 거리두기를 해보라. 그러면 사건을 보는 시각이 전면적으로 달라지는 걸 경험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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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은 굉장히 재미있는 대접을 받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 유명인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마치 TV 화면 속의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연예인인데, 길에서 마주친 고딩 두 명이 한 2미터 앞에서 "와, XXX네. 실물 보니 화면빨인데?"라고 큰 소리로 자기네끼리 말하는 걸 듣는다고 상상해 보라.
사소하지만, 이런 건 사람을 사물처럼 취급하는 일의 한 가지 사례이긴 하다. 연예인의 경우야 그냥 재밌는 에피소드가 되지만, 이런 언행이 조금만 더 발전되면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려면 반드시 신경써야 하는 것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박원순 성추행 사건에서, 어떤 사람들이 피해자에 대해 보이는 태도가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정치인이 투명하지 못한 정치자금, 자식 교육 문제(위장전입 등)로 흠결이 생기는 것과 성추행을 저지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의 문제로 누군가를 단죄할 때 그건 '순결주의'라는 프레임으로 사람의 생명을 끊는 게 될 수 없다. 특히 그 정치인이 진보라는 가치를 대의로 내세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건 피해자가 있는 범죄(범죄 수준이 아니더라도 심각하게 부도덕한 행위)고, 그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폭력이다. 그런데 그게 (진보) 정치인의 자기 부정과 파산을 의미하지 않으면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지? 그걸 흠결이라고 말하는 건,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그게 도대체 얼마나 죽을죄라고 우리가 그의 삶을 부정하는 거죠?"
"저는 그에 의해서 제 인격을 부정당한 피해자입니다."
"우리가 또 그런 사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평생을 인권과 진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지금 또 있긴 하나요?"
"그런 사람이 또 있다면 전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을 또 당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소중한 존재를, 도덕적 순결주의라는 프레임으로 버리고 죽인 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우리를 대변할 정치인들을 작은 실수에 대한 반대파의 트집잡기에 끌려 하나씩 내던져야 하나요?"
"그래서 저 같은 피해자가 또 나와도 된다는 건가요? 그런 식으로 성폭력에 관대한 사회에서 누가 피해자를 대변하는 거죠? 도대체 누굴 대변하기 위해 그런 정치인이 필요한 건가요? 그게 진보와 인권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건가요? 그리고 저의 고통은 그저 누군가의 작은 실수일 뿐인가요?"
이런 식으로 박원순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의 '작은 실수'에 대한 공격이 지나치다고 반성할 때, 그건 피해자의 고발은 전혀 듣지 않는 것이고, 그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피해자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정말 지나친 공격이다. 그리고 그 '순결강박에 대한 넌덜머리'는, 애초에 성폭력의 피해 자체를 부정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이 가부장적 지옥을 더 연장시키는 또 다른 폭력 그 자체이고.
그러니 제발 좀 닥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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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모든 적극적 소극적 행위들을 "2차 가해"라 부를 수 밖에 없는 건데 그 얘기 들으면 부들 부들. 자신의 기분은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4년간 애완동물 역할 강요받은 사람의 입장은 1도 상상을 못 하네요. 철학이고 사회과학이고 다 악세사리일 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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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저 학창시절에는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촌지드리는 게 당연했고 어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대놓고 노골적인 '암시'를 주시기도 했죠. 지금은 촌지가 사라진 것으로 아는데.. 그아름다운 '정'이 '도덕적 순수주의의 테러리즘' 때문에 사라진 게 참 안타깝네요. 체육계 폭력도 마찬가지구요. 맞고 때리고 하면서 정드는 건데 말이예요..
    놔~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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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t SpJoduuliheanys tosaSt ctrfrh12:eS3dhn1d



정민아님이 쓴 글은 사라지고 유튜브 링크만 공유되기에, 복붙.
------
#손정우_미국송환불허 판결이 내려주신 영감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관대한 나라
술에 취해서 처음이라서
나이가 적어서 나이가 많아서
학생이라서 직장인이라서
앞날이 창창해서 심신이 미약해서
너의 죄를 사하노라

죄를 용서받는 나라 관대한 나라
먼저 사귀자고 해서
접시에 고기를 덜어줘서
떡볶이를 얻어먹어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아서
여덟살이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해서
육십대 여성이라 수치심이 크지 않아서
그건 죄가 아니니라

죄가 아니라는 나라 관대한 나라
나는 누구에게 주는 뇌물도 아니고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도 아니고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도 아니지만
관대한 나라에선 그래도 되는 법
그 법으로 그 관대한 법으로
이렇게 관대한 나라에서
나는 오늘도 목숨걸고 살고있다
살고싶다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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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 ttJSlanSponSuslyumr agtu o1metc4:Srt49ed


예전의 군대에서 적당한 구타와 체벌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합의'로 보일 수도 있었다. 당시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부' 못.난. 놈들만 못 견디고 탈영을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내무반(생활관) 수류탄 투척을 하는 거지, 보통은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씨발씨발 거리면서 받아들였을 테니까. 내가 당할 때는 욕이 나오지만, 버티다 보면 내가 그 입장이 되어 후임병들에게 짜증내면서 "이러니 니들을 안 때리게 생겼냐"고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거고.
그렇다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군대에서 선임이 후임 좀 갈굴 수도 있지,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내 예전 후임병들 만나서 물어보니까 내가 진짜 심하게 때렸다고 하더라. 지금 기준이면 난 영창 가서 빨간줄 그어야 할 거다. 하지만 후임병들 중에 나 소원수리 한다고 한 놈 하나 없었고, 지금도 종종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잘 지낸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 정신일까. 당시 군사독재 병영국가의 병든 군대문화가 문제였던 거지, 그게 '나때는 말야'라고 말할 거리가 되겠냐는.
아무튼 전문가라는 건 다른 각도에서 보면 '특수한 환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특수한 환경'이란 건, 수십 년 전의 병영문화처럼, 그 내부에서는 별 일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병든 문화일 수도 있다(물론 소수의 문제제기가 있을 거고, 그게 대체로 묵살되면서 유지되는 것이겠지만). 그러니 전문가가 '자기 경험'과 '내 주변'을 토대로 뭔가 세상사의 보편적인 도리를 말하려고 하는데 이상한 뻘소리가 나오는 건, 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특수하고 꽤 이상한 조직 문화를 자랑하는 '병원'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나는 그보다 더 했지만 아무 문제 없었는데?"라고 말하는 의사의 뻘소리가 매우 많은 동의를 받았다는 게 좀 기가 막히다. 아니, 거기 권력관계가 진짜 이상한 곳 맞거든요? 아니라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가리키면서 다시 말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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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 ttJSlanSponSuslyumr agtu o1metc3:Srt49ed



'메갈'의 유래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명저 『이갈리아의 딸들』(+메르스 갤러리)이다. 왜 여전히 우리가 메갈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이갈리아' 식 다시 쓰기를 해보자.
<여성들이 고위직을 독차지하고 있는 세상, 당신은 젊은 남성으로 60대 여성 시장의 비서로 발탁되었다. 이 분은 나이가 무색하게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어서, 새벽 조깅으로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자주 장거리 달리기를 즐긴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젊은 남자가 옆에서 양기를 뿜어내야 달리기가 즐겁다'며 달리기를 할 때마다 당신을 불러 낸다는 것. 그리고 아침 달리기가 끝나면 속옷을 밖에 내던져 놓고 집무실 옆 샤워실에서 몸을 씻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당신은 그 '할머니 시장님'이 벗어놓은, 오물이 묻고 땀에 젖은 속옷을 챙겨 봉투에 넣어 집으로 보내야 한다. 그리고 서랍에서 새 속옷을 꺼내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필수. 근데 이 할머니 시장님은 운동으로 관리하는 몸에 자신이 있는 건지, 차마 OOTD로 인스타에 자랑할 수가 없어서인지, 새 속옷을 사면 그 착용샷을 찍어 DM으로 당신에게 수시로 보내곤 한다. "아직 나 괜찮지?"라며.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는데, 시장님이 특히 당신을 마음에 들어한다고 다른 (여성) 직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비서란 게 특별히 대단한 업무능력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시장님 기분 좋게 해드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고. 당신은 공무원이 아니라 기쁨조가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들고, 능력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나이와 외모 때문에 그 자리에 있다는 생각에 일하기가 싫어지곤 한다. 하지만 불편한 내색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 시장님의 노골적인 수작질은 계속되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다 그러고 사는 건데 왜 이 젊은 사내 새끼는 혼자 유난을 떠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기가 위의 남자 비서가 되면 즐겁게 일 잘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박원순을 옹호하며 피해자를 비난하면 되겠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사람 새끼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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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을 위한 상식의 수사학(메모)
1. '진정한' vs '진정하지 않은'을 대조시키는 건, 별 내용 없이 피상적인 이야기가 되기 쉽다. 지금 내 페친으로 있는 친구 녀석이 고교생을 위한 논술 교육용 글에서 쓴 내용을 빌려 오자면 (그냥 도용하고 싶은데, 이 글을 읽을 거라 어쩔 수 없이 밝힌다), '진정한 세계 평화'와 그냥 '세계 평화'는 사실 큰 차이가 없으니까. 좀 더 상세하게 파고 들자면, 이 대조는 '진정한' 쪽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것보다 '진정하지 않은' 쪽의 허위를 폭로하기 위한 수사적 장치이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굳이 '진정한'이라는 관형어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이라는 문구가 군더더기가 되어 공허해진다. 따라서 '진정한 XX'와 '거짓의/위험한/허위의/잘못된 XX'를 대조하느니, 그냥 후자에 대해서만 말하는 게 대체로 더 담백하고 좋은 말하기 방식이 된다. 물론 실제로 별 내용은 없지만 그럴 듯하게 보이려고 꾸미는 글이라면 '진정한'을 아낌없이 사용할 것.
2. '나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이라는 문구를 쓰기 전에는 적어도 5분 정도 손을 멈추고 자신의 전 생애를 돌아보는 게 좋다. 내가 정말로 그걸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비판하려는 쪽에서 나를 공격하며 '나도 댁의 이야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이라고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한 점의 티끌도 없다면, 방금 쓴 저 문구는 삭제하고 상대는 무얼 모르고 나는 무엇을 아는지 밝히면서 보다 더 명쾌하고 직접적으로 써본다. 어설프게 공감하는 척 비열한 수사를 사용하느니 적대와 결별의 지점을 정확히 밝히는 게 차라리 논의와 이해의 증진을 위해 더 효과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를 열받게 하거나 조롱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대로 쓸 것.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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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o0 dtJuglefsy aitSp g0c0u:oest1ns0ordecudf


"무엇보다 오래도록 자본주의적 사회동력에 비판적이었던 좌파 지식인이 '너무나 자본주의적'으로 한 인간의 가치를 상품화하여 말한다는 것이 놀랍다."
이 말이 너무나 통렬해서, 이 문장 하나 때문에 공유를 합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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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may contain: 1 person, text that says "김동춘 7월 박원순시장을 보내고나서, 며칠동안의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나는 박원순 같은 사람은 당장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 제고와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근절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만, 사람이 죽음으로써 우리 입은 피해, 사회적 약자들이 앞으로 입을 피해는 도저히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때문에 역사는 하루아침에 쉽게 없습니다. 된 이후의 모릅니다만, 기억으로는 성적인 농담도 모르던 그가 성폭력 가해자가 된 사실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가해와 피해의 논쟁은 이제 멈추고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다립시다. 서울시에서 박시장 가까이 계셨던 분들은 계획했으나 이루지 못한 일들, 지금 추진 중인 일 중단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없는 뜻을 이어나갈지 어떻게 좋겠습니다."
1o9 dtJuglefsy aitSp g2c2u:oest1ns6ordecudf
김동춘의 말, 그리고 박원순의 업적과 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의 김동춘 교수가 '박원순의 가치'에 대해 100조원 운운하며 박원순을 두둔하는 포스팅을 뒤늦게 보았다. 무엇보다 오래도록 자본주의적 사회동력에 비판적이었던 좌파 지식인이 '너무나 자본주의적'으로 한 인간의 가치를 상품화하여 말한다는 것이 놀랍다. 그는 정치인이 되기 이전의 박원순을 떠올리며 '박원순이 그랬을리 없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김동춘 스스로가 박원순이 변한 만큼 변한 것 같다.
물론 박원순이 오래도록 한국사회에 주요한 공헌을 해왔고, 그의 노력으로 인하여 많은 가치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끝은 썩 좋지 않았다. 여전히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밝혀져야 할 사실관계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나는 여러가지 정황에 근거해서 그의 성범죄를 기정 사실로 판단하고 있다. 만약 나의 이 판단에 조금 더 사실성이 더해진다면, 그렇다면 그의 성범죄와 그가 쌓아왔던 업적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사실 간단하다. 박원순의 범죄행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판하고, 비슷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동시에 박원순이 오래도록 노력해서 빛을 발하게 만들었던 소중한 가치들은 우리들 스스로가 계속해서 잘 지키고 잘 키워나가면 된다. 이때에 굳이 박원순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 필요는 당연히 없다.
希修 and 1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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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1tc9i uSucpoJmglulyg acnti s07hso:f0hreed2
o1tc8i uSucpoJmglulyg acnti s11hso:f2hreed0



*사소한 성희롱이 있었음
-내가 오해한 것인가 자기 검열함
*반복 되어서 주위에 넌지시 언급함
-너가 오해한것이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함
*더욱 반복 되어서 윗선에 보고함
- 너가 오해한 것이다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함22
*참을 만큼 참았다 님 고소
-여지껏 왜 말 안했냐 너도 즐긴거 아니냐 꼬우면 관뒀어야지
-서로 좋아서 해놓고 수틀리니까 고소 여자 종특이다
이래서 여자랑 일 못함
-증거 내놔라 못믿겠다 무고지?
-뭐야 증거가 왜 이렇게 많아 님 계획했지 꽃뱀이지 누가 보냈어?
-뭐야 이깟게 왜 성희롱 라떼는 말이야~
-뭐야 이깟게 왜 성희롱 사회생활이란게~
*증거가 불충분 하거나 경미하다 판단되어 무혐의
-돈 노렸군 역시 꽃뱀이네
*사과와 합의로 고소 취하
-돈 노렸군 역시 꽃뱀이네
*혐의 인정되어서 유죄 받음
-불륜이면서 남자 인생 망치네 역시 꽃뱀이네
-아내가 젤 불쌍하다 저년도 가해자다
-요즘 법원은 여자 말만 믿네 이래서 여자랑 일 못함
*수사중 피의자 사망
-공소권 없음 사건 종결
-한 인생 망치니 만족스러우세요? 이 가해자 살인자!
-문제 안생기게 여자랑 일 하지 말자!
촘촘한 그물같음 대체 어디로 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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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1tc9i uSucpoJmglulyg acnti s00hso:f1hreed7


'메갈당'이라는 표현을 비하적인 어조로 사용한 분을 친삭했는데, 그분의 의도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이지 '메갈당'이라는 말 자체가 왜 비하적 표현이 되는지 동의하기 어렵긴 하다. 메갈리아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세계관 최고의 대의인데. 메갈 원년의 벅찬 감동을 생각하면, 지치다가도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낍니다만.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우리 항복하기로 했다'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이제 조선이 해방되는 거냐며 기뻐하던 조선인 생도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충성심 강하던 일본인 생도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가 망했는데 기뻐하는 배신자를 우국충정의 울분으로 처단한 일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이 일본인 생도가 '백번 양보해서 해방을 예감하고 기뻐하는 식민지인의 심정이야 이해한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나대는 꼴 보니 욱하고 올라오는 게 있었다, 뭐 그런 얘기가 되겠죠. 너네가 식민지인으로 해방을 바란 건 알겠는데 오늘 같은 날 그렇게 선을 넘으면 짜증나지.
성평등의 문제에 대해 공감한다는 적지 않은 남성들이 딱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나 싶을 때가 있어요. 뭐 이해는 가는데, 그렇게 과할 필요는 없지 않냐면서 눈살 찌푸리다가 결국 욱 해서 너네가 바라는 게 뭐냐, 남자가 죽으면 되는 거냐 으름장을 놓는 단계를 거쳐 결국 다시 전쟁을 선포하는 지경까지 간달까. 본색을 드러내고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뭐 겉으로 보기엔 할 만큼 했는데 지나친 태도에 신물나서 이렇게 됐으니 다 너네 탓이다 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정형화된 루트를 타는 거겠죠.
박원순 씨의 공과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겠지만,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효과는 정확히 바로 이런 분들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 일을 했다는 데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도리를 명분으로 '과도한 것들에 대한 반감'을 핑계 삼아, 그동안 못마땅했거나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속시원하게 쌓인 분과 원한을 터뜨릴 수 있게 만들었으니. 뭐 인문 먹물들은 여기서 흐상티망 뭐 이런 단어를 떠올리시기도 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거고.
근데 말이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부당함과 폭력과 공포의 현실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과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말하기 전에는 들어 쳐먹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항의와 분노의 지나침에 대해 엄살 피우는 건 파렴치하지 않습니까.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심정과 상황을 헤아려 알아서 삼가라고 하는 것만큼 역겨운 폭력이 어디 있나요.
물론 여기까지가면 이분들은 애초에 '피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게 되겠죠. '좇도 아닌 일 때문에 억울하게 가셔야만 했던 우리 시장님 애도 좀 하려는데 여기에 분위기 깨며 고인을 부관참시하고 메갈당의 정략만 따지는 젊은 페미년들' 때문에 울분을 터뜨리는 꼰대 수컷들은 정직해집시다. 자꾸 인권 감수성 있는 척, 진보에 대해 고민하는 척, 여성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척 하려다 보니 헷갈리잖아요. 수십 년 전 성장기의 가치관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병영국가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제의 문화를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하고 있는 보수 반동의 정화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몰락하는 제국과 함께 산화하세요. 텐노반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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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1h8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07:d34



인문학이 어려운 건, 기존에 쌓여있는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보태는 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도 매번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다보면 지겨워서라도 '그 다음'에 대해 궁리하게 되어 있다.
'일본식 표현을 정비한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인지 지적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근대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 조어에 감사하자는 정도로 그치면 그냥 일반인들의 한심한 생각을 가볍게 조롱하는 먹물의 한심한 작태를 되풀이하는 것 아닌가 싶다. 다들 아는 뻔한 이야기를 그렇게 되풀이해봤자 남는 것도 없고. 오히려 그렇게 논란을 만들고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 번역어들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서 언어생활에 더 많은 충격량을 전달하는 게 더 생산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시적 허용을 통해 기존의 언어적 관습을 (일회적으로) 해체하기도 하지만,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고 그 내적 논리를 비틀어 지속적인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한자 조어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 보이기는 한다. 아무래도 한자 조어의 변화는 학술과 언론 등 좀 더 제도적인 담론의 영역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얄팍한 행정적 발상을 조롱하는 영양가 없는 일보다는 일본 근대가 전해준 번역어의 유산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번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게 더 남는 게 많을 거 같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는 자유(自由), '스스로 말미암음'이라는 이 기괴한 조어가 사실 'liberty'와 'freedom'의 서로 다른 의미 영역을 적절하게 포섭하지 못함으로써 뉘앙스의 결여로 인한 오역 아닌 오역, 오해 아닌 오해를 만들어내는 것도 늘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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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1h7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20:d30



"도대체 왜 사람들은 피해 여성들의 아픔에 둔감하냐고 골 백번 외쳐도 그 소리에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서가 아니고 이미 충분히 피해 여성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지만 단지 우선 순위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단순한 사실을 인지 못하고 있으니 정의당의 미래가 어두워 보이는 것이다."
우연히 본 어떤 글.
이런 게 탁월한 수사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현실감각을 교정시켜 자기도 모르게 '그, 그런가?'하고 수긍하게 만드는 힘. 그렇지만 '충분히 피해 여성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지 '우선 순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두 의원들에게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겠지.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거 맞고, 그건 빼박캔트 참트루다. 그런 사람들이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정의당의 미래가 어두웠던 거지.
<내가 그거 모르는 바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인간치고 진짜로 그걸 제대로 아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안다면 말하는 방법과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런 태도를 갖추고 말하는 인간은 <내가 그거 모르는 바는 아닌데>라고 말을 꺼내지 않거든. 정말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지금은 입 좀 다물고 있으라'는 식으로 말 못한다니까? <너 죽을 정도로 아픈 건 알겠는데 지금은 비명 좀 참아줄래?>라고 말하면서 <나도 아프다는 게 뭔지 모르는 바 아니거든>이라고 덧붙이는 인간이라면, 어디서 공감이니 동참이니 "우.선.순.위."니 그런 단어를 쓰면 안 되지.
希修 and 4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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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1h7Ss Jpulyomaetnmn rffastl dhoirce20:d09


영화의 주인공도 이병헌(김선우 역)이고, 감정이입되는 것도 이병헌인데, 이 장면을 보다 보면 이기영(삼선교 오무성 역)에게 백만 번 동의하게 된다. 스스로 쓰면서도 구차할 가정과 비교, 단서, 조건, 억측 그런 거 다 빼고 간단한 네 마디면 최악의 뻘짓은 피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쓰지 말아야 할 글들과 누르지 말아야 할 좋아요가 이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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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하라니까 꼭 이런다. 잘못했음 딱 네마디라고. 다들 언어장애야? https://t.co/jNGux5kL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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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ig mgtSJnulayrhpc onSatctnageso r2e2:a53gd


음, 가끔 페친 정리를 할 때가 있는데요
1. 어쩌다 납득이 안 되는 글(하지만 좋아요도 많고 공유도 많이 되는 글)을 봤는데, 거기에 동의를 표한 공통 페친을 발견하는 경우
2. 그런데 공통 페친을 살펴 보니 그 아이디가 익숙하지 않을 때 (글을 평소에 쓰지 않으시는데 제 글에 반응한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
3. 종종 내밀한 이야기를 친공으로 쓰는 사람이다보니 그런 분들을 별 생각 없이 친삭합니다.
쥐뿔도 아닌 새끼가 지가 뭐라고 먼저 친삭 따위를 하는 것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어 불쾌하시다면 죄송할 따름입니다. 꾸벅.
PS
전에는 종종 우울 삽화 기간에 전체 친삭 같은 걸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로 인해 정리된 인간관계들이 잘 복원되지 않는 것에 대해 그저 제 탓을 하게 될 뿐 다시 손을 내밀기는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잘못을 반복......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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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ig mgtSJnulayrhpc onSatctnageso r0e0:a04gd


비유에는 더 적절한 비유로 답해야 하는 법.
A 선수가 한 '비신사적 행위'는 누가 봐도 불필요한 고의적인 백태클로 상대방 인대를 끊는 것이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퇴장당한 후 바로 선수생활을 은퇴하면서 그 (부상으로 선수생활이 끝나 강제로 은퇴당한) 상대방에 대한 사과는 한 마디도 안 했어. 이 선수를 위대한 축구 선수의 반열에 올리고 공적으로 기려야 할까? 명예의 전당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게 스포츠 정신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그게 '과'에 대한 올바른 평가 아니겠어?
제발 되먹지 않은 비유, 논리 그만 만들어 내, 이 씨벌놈들아.
Image may contain: 1 person, text that says "김계동 9시간· 공/과 연계가 바람직한가?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최근 공과 과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 축구경기에 대입해서 생각해 봤다. .선수가 예선전, 준결승, 결승전 전반까지 계속 골을 넣어서 우승 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런데 결승전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비신 사적 행위를 해서 퇴장을 당했다. 퇴장당했다고 그 전에 넣은 골 들이 무효가 되는가?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 하는 것 이 아닐까?"
Insu Bae, 希修 and 3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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