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7

森三樹三郎 [老子・荘子> — 무위자연에서 만물제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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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類の知的遺産〈5〉老子・荘子 (1978年) by 森 三樹三郎 ---- 1,000 단어 요약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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森三樹三郎 <老子・荘子> — 무위자연에서 만물제동까지

모리 미키사부로(森三樹三郎, 1909–1986)의 <老子・荘子>(1978)는 단순히 <노자>와 <장자>의 내용을 소개하는 입문서가 아니다. 그는 두 사상을 하나의 ‘노장사상’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각각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를 밝힌 뒤, 그것이 도교·불교·선(禪)·정토교에까지 어떻게 변형되어 이어지는지를 추적한다. 1978년 고단샤의 <人類の知的遺産> 제5권으로 처음 출판되었고, 뒤에 1994년 고단샤 학술문고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① 노자와 장자의 사상, ② 두 인물의 생애와 전국시대라는 역사적 배경, ③ <노자>와 <장자>라는 문헌의 성립·구성·주석과 원문 해설, ④ 한대 이후 도교·불교와 만나면서 전개된 노장사상의 역사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 책의 진짜 주제는 ‘노자와 장자가 무엇을 말했는가’에 그치지 않고 ‘노장사상이 동아시아 문명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1. 노자 ― 인위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물러서라

모리가 파악하는 노자의 출발점은 자연주의이다. 여기서 ‘자연(自然)’은 오늘날 말하는 산·강·숲 같은 자연환경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自ら然り)’이다. 누군가가 밖에서 명령하거나 조작하지 않아도 존재가 자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상태이다.

노자가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 자연스러움을 파괴하는 인간의 ‘인위(人為)’이다. 지식, 도덕, 제도, 명예, 욕망이 지나치게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하게 된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귀하고 천한지, 누가 성공했고 실패했는지를 나누는 순간 삶은 본래의 단순성을 잃는다.

그래서 노자는 ‘무위(無為)’를 말한다.

그러나 무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과 계획을 세계에 강제로 관철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백성을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는 통치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의지를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삶이다.

이 점에서 노자의 정치철학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문명의 발전을 반드시 선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는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욕망의 확대가 불평등과 전쟁과 경쟁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공동체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까지 제시한다.

모리는 이러한 노자의 태도를 단순한 현실도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전국시대의 극심한 정치적 경쟁과 전쟁에 대한 문명비판이었다.

여기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인간은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통제할수록 정말 더 행복해지는가?

노자의 대답은 대체로 ‘아니다’이다.
2. ‘도(道)’와 ‘무(無)’ ― 존재를 낳지만 소유하지 않는 근원

노자의 사상은 생활철학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형이상학으로 깊어진다.

세계의 근원을 노자는 ‘도(道)’라고 부른다. 도는 특정한 신이 아니다. 만물을 낳고 움직이게 하지만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근원이다.

도는 어떤 명확한 존재라기보다 ‘무(無)’에 가깝다.

그러나 무는 단순한 허무가 아니다. 컵이 쓸모 있는 것은 그 안이 비어 있기 때문이고, 방이 쓸모 있는 것은 빈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없음이 있음의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모리는 이 ‘무’를 노장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으로 본다. 그는 다른 저서에서도 중국의 노장사상을 ‘무의 사상’이라는 계보 속에서 해석하였다.

이 때문에 노자의 이상적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경쟁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경쟁에서 자유롭다.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낮음이 높음을 떠받치며,
비움이 충만함을 가능하게 한다.

노자는 세계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세계가 스스로 움직이는 방식에 참여하라고 말한다.
3. 장자 ― 노자보다 훨씬 더 멀리 간 사상가

모리의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장자를 단순히 ‘노자의 후계자’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자에게는 아직 정치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남아 있다.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회를 안정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반면 장자의 관심은 훨씬 더 철저하게 인간의 정신적 자유로 이동한다.

그 중심 개념이 ‘만물제동(萬物齊同)’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
이것은 아름답고 저것은 추하다.
나는 성공했고 그는 실패했다.
삶은 좋고 죽음은 나쁘다.

그러나 장자가 보기에 이러한 구분은 대부분 특정한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큰 새 붕(鵬)에게 보이는 세계와 작은 새에게 보이는 세계가 다르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 나무에게도 유용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장자는 하나의 관점을 절대화하는 태도를 의심한다.

여기에서 유명한 ‘호접지몽(胡蝶之夢)’이 나온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깨어난 뒤 묻는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가, 아니면 지금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단순히 ‘세상은 꿈이다’라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현실과 자아의 경계 자체가 그렇게 확고한 것인가를 묻는 철학적 실험이다.
4. 죽음마저 상대화한다

장자의 철학이 가장 급진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구별은 삶과 죽음이다. 우리는 삶을 붙잡고 죽음을 부정한다.

그러나 장자는 삶과 죽음을 우주의 끊임없는 변화 과정으로 본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듯 삶과 죽음 또한 하나의 변화이다.

따라서 죽음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편협한 관점이라는 것이다.

모리는 이것을 ‘사생을 가지런히 한다(死生を斉しくす)’는 장자의 중요한 사상으로 정리한다.

노자가 ‘자연스럽게 살아라’라고 말했다면 장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삶과 죽음조차 자연의 변화라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장자의 사상은 처세술을 넘어 일종의 영적 해방철학이 된다.
5. 노자와 장자의 결정적 차이

모리의 설명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노자장자인간의 인위를 비판한다 모든 고정된 구별을 해체한다
무위자연 만물제동
정치에 관심이 크다 정신적 자유에 관심이 크다
이상적 통치를 모색한다 통치와 세속 가치 자체를 상대화한다
욕망을 줄인다 ‘나’의 관점까지 넘어선다
도에 따르는 삶 도 안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삶



일반적인 연구에서도 노자의 정치·통치적 관심과 장자의 정신적 자유·관점주의 사이의 차이가 중요하게 지적된다.

따라서 ‘노장사상’이라고 묶기는 하지만 둘은 똑같지 않다.

나는 이 차이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장점이라고 본다.

노자는 ‘좋은 사회’를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장자는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라고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6. 유교에 대한 노장의 비판

노장사상을 이해하려면 유교와의 긴장을 보아야 한다.

유교는 사람이 교육과 수양을 통해 인(仁)·의(義)·예(禮)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장 쪽에서는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착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사회는 이미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잃어버린 사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덕이 강조되는 이유는 오히려 도덕이 사라졌기 때문일 수 있다.

이 비판은 매우 날카롭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도 있다.

인위적인 제도와 도덕이 문제라고 해서 모든 제도와 도덕을 버릴 수 있는가?

억압받는 사람에게 ‘자연에 맡기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기존 질서를 정당화하는 철학이 될 수도 있다.

여기가 노장사상의 정치적 한계이다.

‘무위’가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 될 때에는 급진적이지만, 사회적 불의에 대한 실천까지 무위로 만들어버린다면 보수적인 순응주의가 될 수도 있다.
7. 노장에서 도교·불교·선으로

모리의 시야는 중국 고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한대의 황로사상, 신선사상과 도교, 위진 시대의 노장학, 불교의 중국적 수용, 선종과 정토교까지 추적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불교와 노장의 만남이다.

인도 불교의 ‘공(空)’과 중국 노장의 ‘무(無)’는 본래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던 노장적 언어를 통해 불교를 이해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불교 자체도 변했다.

모리는 이 흐름을 선불교뿐 아니라 정토교, 나아가 일본의 종교사까지 연결한다. 그의 다른 저서 <無為自然の思想>에서도 노장사상과 도교의 차이, 노장과 정토교, 친란(親鸞)의 ‘자연법이(自然法爾)’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특히 강조한다.
평론 ―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질문

이 책이 1978년에 쓰였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연구에서는 ‘노자 → 장자 → 도가’라는 하나의 선형적인 계보 자체를 좀 더 조심스럽게 본다. ‘도가(道家)’라는 분류가 후대 한대 지식인들의 분류였으며, 초기 노자와 장자의 사상적 관계도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다는 견해가 강해졌다.

그럼에도 모리의 책이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노장사상을 고대 중국의 낡은 철학으로 만들지 않는다.

노자와 장자의 질문을 현대의 인간에게 되돌려준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가?

왜 더 많이 소유해야 하는가?

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가?

왜 인간과 사물을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으로 구분하는가?

왜 나의 관점이 옳다고 확신하는가?

그리고 결국,

죽음까지 인간이 정복해야 할 ‘실패’로 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2,300년 전보다 오히려 오늘날 더 절실하게 들린다.

특히 나는 모리가 설명하는 노장사상의 핵심을 ‘아무것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통제를 내려놓으라’고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보면 무위자연은 수동성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가득 채우지 않음으로써 다른 존재가 존재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태도이다.

노자에서는 그것이 ‘물처럼 낮은 곳으로 가는 삶’으로 나타나고, 장자에서는 그것이 ‘나의 판단을 절대화하지 않는 자유’로 나타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장자는 노자보다 한 단계 더 급진적이다. 노자가 욕망과 권력을 비우라고 한다면, 장자는 그것들을 판단하고 있는 ‘나’ 자신까지 비우라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노자는 세상을 억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을 가르치고, 장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기준마저 놓아버리는 법을 가르친다.>

모리 미키사부로가 보여주는 노장사상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가치·언어·제도·욕망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근본적인 자기비판의 철학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老子・荘子>는 노자와 장자의 고전 해설서인 동시에, 현대문명을 밖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거리 두기의 철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세진님이 최근 다루신 오강남의 <심층종교>,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의 ‘무상·죽음의 종교학’과 연결해서 보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세 사람 모두 ‘자아와 인위의 해체’를 중시하지만, 모리의 노장 해석은 그 가운데서도 초월적 신이나 구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다음에는 <노장사상 ― 오강남의 심층종교 ― 야마오리의 무상·죽음>을 세 축으로 비교하면 좋은 연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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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미키사부로(森三樹三郎)의 분석을 토대로 노자의 정치철학과 장자의 실존적 자유 사이의 결정적 차이를 정리했습니다. 본문은 앞서와 같이 해라체 서술과 < > 표기를 엄격히 적용했다.

문제의식의 출발점: 체제 비판인가, 체제 탈출인가

모리 미키사부로가 파악한 노자와 장자의 가장 근본적인 분기점은 사유가 지향하는 <대상 세계>에 있다. 두 사상가 모두 춘추전국시대라는 극심한 전란과 인위적 지배 질서에 반발했으나, 그 혼란을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자리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1. 노자의 시선: 지배 질서 내부에 머무는 현실적 통치자>

노자의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군주(聖人)를 향한 고언이다.

  • 노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유가(儒家)적 예악과 법가(法家)적 형벌이 빚어낸 과잉 통치다. 인위적인 도덕과 제도가 오히려 도적과 혼란을 낳는다는 진단이다.

  • 그러나 노자는 국가나 권력 구조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치자가 욕망을 비우고 유약(柔弱)과 부쟁(不爭)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천하를 자연스럽게 안정시키는 <최선의 지배 방식>을 모색한다.

  • 모리는 이를 두고 노자가 여전히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즉 정치 공동체의 존속을 전제로 삼고 있다고 분석한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결국 무불위(無不爲), 즉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는 상태>라는 정치적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고도의 책략적 성격을 내포한다.

<2. 장자의 시선: 국가와 제도를 전면 거부하는 단독자>

반면 장자는 통치자나 국가 기구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

  • 장자에게 국가 권력, 관직, 예의범절은 영혼을 옥죄는 거대한 형틀(桎梏)에 불과하다. 초나라 왕이 재상 자리를 제안했을 때 흙탕물 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살겠다(曳尾塗中)고 거절한 일화는 장자의 태도를 상징한다.

  • 장자의 관심은 오직 하나, <이미 훼손되고 구속된 개인이 어떻게 사회적 속박을 뚫고 본래의 자유로운 생명을 회복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해방에 집중된다.

  • 모리는 장자의 사유를 <체제 내적 개혁론>이 아니라 사회적 범주 자체를 증발시켜 버리는 <급진적 탈사회화>로 규정한다.

<도(道)>의 성격: 만물 생성의 원리 대 만물 평등의 체험

모리는 두 사상가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핵심 개념인 <도>의 용법과 감각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짚어낸다.

<1. 노자의 도: 생성적이고 기능적인 우주 원리>

  • 노자의 도는 만물을 낳고 기르는 근원적 어머니(玄牝)와 같다. 형상은 없으나 끊임없이 작용하며, 강한 것을 꺾고 약한 것을 일으켜 세우는 법칙성을 지닌다.

  • 따라서 노자의 도는 인간 사회가 모방해야 할 객관적이고 준엄한 자연법칙으로서 기능한다. 군주는 도의 이러한 성질(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덕)을 체득하여 정치에 적용해야 한다.

<2. 장자의 도: 인간 중심적 분별을 해체하는 주관적 해탈의 경지>

  • 장자에게 도는 외적 법칙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 나와 타자의 구분을 초월한 경지다.

  • <제물론(齊物論)>에서 전개되듯, 세상의 모든 시비(是非), 미추(美醜), 귀천(貴賤)은 인간의 편협한 언어와 잣대가 만든 환상에 불과하다. 똥과 오줌 속에도 도가 있다는 장자의 파격적 선언은 우열과 위계를 완전히 해체하는 절대적 평등의 시선이다.

  • 즉, 장자의 도는 사회 질서를 규율하는 준칙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우주 만물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신비적 자유를 뜻한다.

언어와 처세: 역설의 지혜 대 초월적 해학

<1. 노자의 언어와 삶: 현실을 꿰뚫는 노회한 잠언>

  • 노자의 문체는 짧고 압축적이며 경구적이다. <크게 바른 것은 굽은 것 같고, 큰 기교는 서툰 것 같다>는 식의 역설을 통해 세속적 가치관의 허구성을 찌른다.

  • 노자가 권하는 처세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몸을 보전하고 끝내 승리하는 지혜(明)다. 이는 현실의 위험을 노련하게 회피하고 생존을 도모하는 현실주의자의 처세술에 닿아 있다.

<2. 장자의 언어와 삶: 거대한 우화와 비웃음>

  • 장자는 짧은 잠언 대신 끝없이 솟구치는 상상력의 우화(寓話)를 동원한다. 구만 리를 날아오르는 거대한 붕새(鵬)의 비유는 지상에 얽매인 메추라기의 좁은 시야를 비웃는다.

  • 장자의 자유는 현실에서의 물리적 생존을 넘어선다. 삶과 죽음마저 사계절의 운행처럼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바라보는 안명(安命)의 경지에 서 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는 현실의 비극과 죽음의 공포마저 뛰어넘은 초탈의 극치를 보여준다.

요약적 대비

모리 미키사부로의 시각에서 두 사상가의 결정적 차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노자(老子)장자(莊子)
<지향점>무위자연에 바탕을 둔 정치적 안정과 평화세속적 인연과 권력을 전면 탈각한 실존적 해탈
<주요 주체>통치자(군주, 성인)고립된 단독자, 방외지사(方外之士)
<도의 성격>만물의 생성 원리이자 모범적 규범시비선악을 무화하는 절대적 자유의 지평
<처세관>유약과 부쟁을 통한 현실적 보신(保身)생사의 구분을 초월한 소요유(逍遙遊)
<궁극적 이상>소국과민(小國寡民)의 조화로운 공동체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서 노니는 정신적 비상

결국 모리 미키사부로는 노자가 혼란한 문명 사회를 치료하기 위해 <정치의 문법을 거꾸로 쓴 치료자>였다면, 장자는 문명이라는 무대 자체를 박차고 나가 영혼의 무한한 자유를 호흡하고자 했던 <영원한 자유인>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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