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 법정의 산중 편지
법정 (지은이),박성직 (엮은이)책읽는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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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전쟁이 끝났다.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했고, 누군가는 서서히 미쳐 갔고, 누군가는 밀항을 꿈꾸었고,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참상을 목격한 대학교 3학년생 박재철은 몇 날 며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회답 없는 질문을 던지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날아온 한 통의 편지. "불쌍한 우리 어머님의 아들 노릇을 네가 대신 해 다오." 그리고 그는 승려 법정이 되었다.
이 책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 법정 스님이 사촌동생 박성직에게 보내온 50여 편의 편지로 엮었다. 홀어머니를 비롯한 피붙이들과의 인연을 끊어 버린 매정함을 스스로 질책하던 청년 박재철. 그가 위대한 자연과 진리에 의탁하며 승려 법정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내면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그의 편지들은 구도의 길을 떠난 이가 마주한 고뇌와 깨달음의 흔적이었다.
목차
오늘의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 1955년 ~ 1956년
그 방이 그립다|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그동안은 죄인이다|이곳에서의 모든 일이 기쁘기만 하다|나 대신 네가 아들 노릇 해 다오|세상이 모르는 곳|가을이 온다|반복되는 일상 속의 위대함을 보아라|중은 세상천지가 집이지|당분간 편지하지 말아라|벗과 책은 가려서 맺어라
언제고 만날 날이 있으리라 : 1957년 ~ 1958년
머지않아 이곳을 떠나|세상일이라는 게 다 한바탕 꿈|네 글에서 내 방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너만 읽어 보아라|가을이 멀어져 간다|번민하고 사색하여라|문학이 스승이다|고통은 완성을 위한 시련|바다에게 안부 전해 다오|술은 먹지 말아라|맹목적인 신앙은 미신보다 더한 것|빈 가지가 허공 중에 외롭다|울지 마라, 울지를 마라
전 우주가 우리의 학교 아니겠느냐 : 1959년 ~ 1960년
고통 바다에서 헤매는 내 이웃을 건지리라|인생학교|책을 보낸다|단단히 공부하리라|내가 나를 키워 나가야 한다|우리는 얼마나 여물었는지|사실 부끄러운 일이다|자꾸만 널 괴롭히는구나|동해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암자를 꿈꾸어 본다|우리의 봄은 우리가 마련하는 것|살아 있음의 의미
과거는 지워져 가지만 나는 나대로 살아가고 있다 : 1961년 ~ 1964년
산승의 거처를 알리지 말아라|읽고 생각하고 쓰는 동안 나는 살아 있다|그저 성실하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만이|사실 나는 옛집의 주소조차 잊어버렸다|문득 네 얼굴이 떠오르는 가을날|벗은 우리 인격의 얼굴|기다리마|세월이 만들어 놓은 여백|고향을 다녀와서|세상과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겠지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 _1970년의 편지
책속에서
첫문장
무더운 여름철에 고생하였으리라. 내 책들도 잘 있는지 모르겠다.
출가란 살던 집에서 몸만 떠나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새롭게 시작하고 익히면서 거듭거듭 태어남으로써 새로운 삶을 이룰 때 ‘집착과 갈등의 집‘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 23쪽 - sunny
죽는다는 건, 죽는다는 건 이 지상을 유지하던 하나의 의식이 꺼져 버리는 것. 촛불처럼 꺼져 버리는 것. 아! 이것은 해결이 아니다. 다만 중단일 뿐.
울지 마라. 울지를 마라, 몇 백 전 상하고 다치면서 괴롭고 절망하고 울부짖는 동안에 인간은 자란다. 자라면서 모든 것을 얻고 또 잃어버리고 그러는 동안에 인생을 알게 된다.
울지 마라. 행복은 사금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리지만 불행은 두고두고 네 마음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어 주는 귀한 열쇠가 되리라. 부디 불행에 굽히지 말고 살아라. 접기
내 책들 잘 있다니 마음 놓인다. 벽에 붙은 그림들에게도 안부 전해 주라...... - 하늘가매
저자 및 역자소개
법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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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전라남도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삶과 죽음에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효봉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고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며, 불교계 언론과 유력한 신문에서 ... 더보기
최근작 : <생애 단 한 번>,<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법정 스님의 말과 글> … 총 124종 (모두보기)
박성직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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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사촌동생으로, 어린 시절 한집에서 같은 방을 쓰며 친형제처럼 자랐다. ‘나 대신 네가 아들 노릇 해 달라’는 스님의 부탁을 받들어 결혼한 뒤에도 법정 스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법정 스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줄곧 제사를 지내왔다. 1986년 불일암에서 부부가 함께 법정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계를 받았다.
최근작 :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마음하는 아우야!>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어 버렸다.”
집안의 대들보였던 한 청년의 출가
아버지를 일찍 여읜 박재철은 작은아버지 댁에서 공부하며 자랐다. 해방이 되었지만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버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전쟁통에 시골 살림은 힘들었으며, 삶은 삭막하고 피폐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어른스러웠던 박재철을 대학까지 보냈다. 어려운 시기에 친자식도 아닌 그를 대학 공부까지 시킨 것을 보면 작은아버지에게 박재철은 조카가 아니라 ‘큰아들’이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박재철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와 끝없이 쏟아지는 물음에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그러던 중 그는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연히 집을 떠났다. 집안의 대들보가 되어 주리라 믿었던 가족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박재철과 한집에서 같은 방을 쓰며 자라 온 사촌동생 박성직은 오랫동안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형이 떠난 방에는 그가 남기고 간 책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형은 오지 않았다. 대신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편지에 자세한 내막은 담겨 있지 않았지만 중학생 머리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자라 온 사촌형 박재철이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얼마간의 수도를 쌓은 뒤에 다시 세상에 나아갈 것이다.”
출가 그리고 승려의 길
박재철은 불자(佛子)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을까? 이 책의 엮은이 박성직이 들려준 의미심장한 일화가 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어떻게 인연이 닿아 박재철이 승복을 입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그 회색 옷을 입고는 몸과 마음에 딱 맞는 자리를 찾은 것처럼 무척이나 만족해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부처를 접하지는 못했으나 그는 태생적으로 승려의 길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박재철로부터 편지가 오기 시작한 것은 1955년으로, 그가 사미계를 받고 불제자의 길을 걷기 한 해 전이었다. 가족 중에는 유일하게 박성직에게만 편지를 보내오면서 그는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가족들이 묻거든 멀리 일본 같은 데로 떠났다고, 차라리 죽은 것으로 생각하라고 편지에 적었다. 그러면서도 일일이 가족들의 안부를 챙겼다. 이즈음 보내온 그의 편지에는 피붙이의 정을 끊어 내려는 독한 마음과 새록새록 가슴에 차오르는 그리움이 교차한다.
그런데 청년 박재철이 보내온 편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그렇다고 일생 동안을 중노릇 할 것은 아니다. 얼마간의 수도를 쌓은 뒤엔 다시 세상에 나아가 살 것이다. 그동안만은 죄인이다. _ 1956년 3월 21일자 편지, 「그동안은 죄인이다」에서
이 글귀를 통해 두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짓누르는 고뇌로부터 벗어나고 끝없이 떠오르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출가라는 방법을 택했지만, 당시 박재철에게 출가란 하산을 염두에 둔 일종의 수련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고여덟 살 아래의 어린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러한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또 있다.
영원히 이렇게 떠나 있다면 너무도 아득한 일이지만 얼마간의 이러한 생활이니까 오히려 아름다운 마음들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내가 다시 너희들이 있는 집에 찾아들 땐 ‘그 전의 형님’이 아닐 것이다. 내 못돼먹은 성질도 많이 가셔졌을 테니까. _ 1956년 9월 6일자 편지, 「가을이 온다」에서
이 편지를 썼을 때 처음으로 ‘법정’이라는 불명(佛名)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미 사미계를 받았을 때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수도를 끝내고 고향 집으로 찾아갈 즈음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는 문구를 편지에 적어 넣었다. 이 글을 쓸 때의 마음을 알 길은 없으나, 이 글귀는 그가 ‘승려 법정’보다는 ‘청년 박재철’ 쪽에 가까웠던 때의 마지막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통 바다에서 헤매는 내 이웃을 건지리로다.”
승려 법정으로 다시 태어나다
이후 법정의 편지 내용은 사뭇 달라진다. 형제를 염려하고 가족을 걱정하던 것에 덧붙여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승려의 일상에서 건져 올린 깨우침을 전한다. 불가에 귀의한 수도승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한다. 그러한 그의 편지들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1959년 3월 10일의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밝힌다.
거짓 없이 너에게 말하마. 형아는 금생뿐이 아니고 세세생생(世世生生) 수도승이 되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리라. 하여, 고통 바다에서 헤매는 내 이웃을 건지리로다. _ 1959년 3월 10일자 편지, 「고통 바다에서 헤매는 내 이웃을 건지리라」에서
‘거짓 없이 말’한다는 뜻이 무엇일까.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앞선 편지글이 어린 동생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기 위해 가장한 것임을 고백하는 말일까. 아무튼 법정은 이 편지글에서 번민을 이겨 내기 위한 수도의 도장이었던 불가(佛家)가 비로소 자신의 온전한 집이 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가 이같이 마음을 굳히기까지는 고향과 가족을 등진 5년 동안 마주한 봄여름가을겨울이 도왔을 것이고, 산과 나무와 꽃과 풀과 물과 하늘과 새들이 부추겼을 것이며, 모범이 된 도반들이 길을 열어 주었을 것이다.
이후로도 박성직을 수신인으로 한 법정의 편지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중학생이었던 박성직은 군인이 되었고, 법정은 빼어난 도량으로 불가의 이곳저곳에서 필요로 하는 구참(연륜 깊은 승려를 불가에서 이르는 말)이 되어 갔다.
그러던 1964년 1월 14일, 법정은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에서 궁벽한 산중으로 들어가 수도할 뜻을 밝힌다. 처음 집을 나서던 그때처럼 절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또 한 번의 ‘출가’를 감행했던 것이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
_ 산중에서 보내온 법정의 마지막 편지
법정이 다시 편지를 보내온 것은 1970년의 일이다. 작은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늦은 전갈을 받고 난 뒤였다. ‘작은아버지’는 이 책의 엮은이 박성직의 아버지이자 법정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눈을 뜨게 해 준 은인이었다. 법정은 출가외인이라 불효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죄스러워하는 한편 사십구 일 동안 불전에서 명복을 빌겠다고 이른다.
박성직에게 보내온 법정의 편지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우리의 봄은 우리 몸소 마련하는 데서 오는 것일 게다.”
_ 청년 박재철에서 승려 법정으로 나아가는 길목의 편지들
1955년부터 1970년까지 법정이 엮은이에게 보내온 편지에는 청년 박재철이 승려 법정으로 거듭나는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또한 1976년에 출간된 역작 『무소유』의 글감이 된 사연들과 깨우침이 알알이 박혀 있다.
이 책은 2011년에 출간된 『마음하는 아우야』를 재출간한 것이다. 하지만 첫 판본과는 달리 출가 당시를 회상하는 법정의 소회를 담은 에세이와, 편지에 짧게 이름만 등장하는 이를 추억하며 쓴 에세이들을 덧붙여 내용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독자들은 법정의 편지와 이 책에 인용한 법정의 에세이를 함께 접하면서 편지에 담긴 사연과 의미를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승려 생활 초기에 법정이 견뎌야 했던 가장 큰 고행은 ‘끊어 버림’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끊고, 청춘을 끊고, 나아가 박재철을 끊어 버려야 했던 그 고통의 시간. 자신을 걱정할 동생에게 보내는 글이기에 의연함을 담았지만, 그의 편지에는 자신의 길을 택함으로써 오랜 고향을 등졌던 이의 설움이 묻어난다. ‘옛집의 주소조차 잊어버렸다’는 그의 서글픈 음성이 들려온다. 그는 그렇게 더 큰 사랑을 위해 가장 아끼는 것을 버려야 했던 것이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_ 법정이 오늘의 우리에 보낸 편지
법정이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에는 항상 당부가 빠지지 않는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술 마시지 말라고, 책과 친구는 가려서 접하라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순간을 건지라고, 고통의 시간이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거라고, 번민하고 사색하라고, 자연으로부터 배우라고…… 그리고 울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법정이 박성직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6년 뒤 『무소유』가 세상에 나온다. 앞서 밝혔듯, 『무소유』에는 법정이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를 원전(原典)으로 삼은 에세이가 더러 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법정이 써온 그동안의 에세이들은 수취인 불명의 편지가 아니었을까. 도량이 넓어지면서 피붙이와 남의 분별이 사라진 지점에서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온 것은 아니었을까. 수십 년 전 법정이 동생에게 보낸 이 편지들은 누군가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한 사람이 추억이라는 타임캡슐에 담아 오늘의 우리에게 보내온 것이기도 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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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책은 반복해서 또 읽고 또 읽게됩니다. 산중에서 보낸 편지라 하지만
인간미가 느껴지고 또한 편지를 통해 법정 스님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추스린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산중에 있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더 삶 속에 계셨다는 느낌을 받은 편지라 생각합니다.
광호 2018-08-28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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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법정 스님 8주기여서 그런지 책의 구절들이 더 깊이 마음에 들어옵니다..책을 읽고나니 젊을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참 한결같았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totns 2018-03-1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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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뒤쫓아 가기만 했던 삶이었는데 멈춰서서 제 마음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글자들이
한글자 한글자 저를 위로해 주었고,
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항상 마음만을 뒤쫓아 가던 저에게
마음의안정을 찾을 수 있엇고
법정 스님의 솔직한 마음을
똥싸개 2018-04-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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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사촌동생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책
이제 법정 스님의 새로운 글은 더 이상 만나볼 수 없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꾸준히
그가 남긴 글이나 그와 관련된 얘기들이 책으로 엮여져 나오고 있다.
성철 스님과의 문답을 다룬 '설전'이나 법정 스님과의 인연이 있던 사람이 찍은 불일암의 사진과
법정 스님의 기존 글들을 함께 실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등의 책을 읽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의 명성에 기댄 상업적인 목적의 일들로 치부할 수 있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
그의 책들이 절판되어 기존에 출간된 책들마저 만나기가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그래도 반가운
생각이 앞선다. 이번에는 법정 스님이 사촌 동생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책이 출간되었는데 왠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이나 지인과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이 연상되었다.
이 책에선 법정 스님이 출가한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사촌동생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들을 싣고 있는데
군데군데 법정 스님의 육필 편지까지 실려 있어 그의 흔적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전반적인 내용은 속세와의 인연을 떠나 승려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사촌 형으로서의 가족들에 대한
안부와 사촌동생에 대한 조언, 그리고 책을 보내달라는 부탁 등이 주를 이루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한 환경이 아닌 1950년대 이후인 점을 감안하면
편지가 가장 중요한 소통수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출가를 했지만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내진 못한 법정 스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는 법정 스님의 사촌 동생에게 하는 충고는 막 출가한 상태임에도 그가
앞으로 큰 승려가 될 재목임을 잘 보여주었다. 가족들을 두고 출가한 데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등이
편지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는데 무엇보다 그가 굉장한 독서가임을 여러 편지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승려로서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시에 명수필가로서의 재능도 곳곳에서 묻어 나왔는데
법정 스님과 사촌동생 두 사람 사이의 각별한 애정이 편지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법정 스님의 유일한 세상과의 연결통로였던 사촌동생과의 편지를 보면서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과 감동을 주는 스님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 책이었는데 더 이상 스님의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과거에서 보내온 편지는 소식이 끊겼던 친구로부터 받은
반가운 편지처럼 정겨움과 삶의 흔적이 가득 담긴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출가란 살던 집에서 몸만 떠나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새롭게 시작하고 익히면서 거듭거듭 태어남으로써 새로운 삶을 이룰 때 ‘집착과 갈등의 집‘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 23쪽
죽는다는 건, 죽는다는 건 이 지상을 유지하던 하나의 의식이 꺼져 버리는 것. 촛불처럼 꺼져 버리는 것. 아! 이것은 해결이 아니다. 다만 중단일 뿐.
울지 마라. 울지를 마라, 몇 백 전 상하고 다치면서 괴롭고 절망하고 울부짖는 동안에 인간은 자란다. 자라면서 모든 것을 얻고 또 잃어버리고 그러는 동안에 인생을 알게 된다.
울지 마라. 행복은 사금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리지만 불행은 두고두고 네 마음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어 주는 귀한 열쇠가 되리라. 부디 불행에 굽히지 말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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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8-03-25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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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법정 스님을 만났다.
법정 스님이 사촌동생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서 내놓은 책이다. 기간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이고, 편지는 50여 통에 이른다. 출가하면서 보낸 편지와 출가 중에 쓴 편지들이라 법정 스님의 초기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다. <무소유>란 희대의 작품을 낸 법정 스님이 초기에 얼마나 많은 독서에 욕심을 내었는지 알 수 있고, 속세의 인연을 단숨에 끊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의 편지 속에서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박성직이 쓴 답장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실 때 자신의 저작들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 글과 영향은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한 권씩 책으로 묶여 나오고 있다. 아니면 이 책처럼 편지 모음과 그의 글 인용 등으로 사용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편법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우리 시대에 남긴 영향력을 감안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 이 말도 다른 책에서 한 번은 쓴 적이 있다. 한때 그의 유언에 따라 절판될 것이란 이유 때문에 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되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계속 나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되면 또 누군가가 출간할 것이 분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이번 편지를 읽으면서 글들이 상당히 문학적이라고 느꼈다. 비유와 은유 등으로 표현된 문장들은 어떻게 그가 그렇게 뛰어난 수필들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학문과 문학 등에 대한 열정과 탐구열은 그가 요청한 책들에서 잘 드러난다. 사촌동생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면서 이런저런 책을 추천하는데 낯선 제목도 많이 보인다. 1950년대란 시대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관심이 생기는 책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가장 반가운 것은 스님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도반들에게 먹일 김을 잘 골라 보내달라는 요청이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요청하는 모습은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바로 거기에서 시작했기에 그의 글과 인품이 우리의 가슴으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끌렸던 문장은 책 제목이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흔히 마음에 따라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문장은 그 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내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우리가 흔히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할 때가 바로 이런 경우다. 이 이외에도 좋은 문장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보내는 시간 속에, 행동 속에 담긴 일상의 위대함을 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시대의 상황이나 한계가 조금씩 엿보이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잘 정제된 문장과 절제된 감정으로 이루어진 편지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법정 스님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다. 아니 그분이 생존해 계실 때 그 유명한 <무소유>를 들고 다니다 술 먹은 날 택시에 놓고 내렸다. 그 이후 몇 권의 산문집을 사고 얻었지만 쉽게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 당시는 이런 글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도 했다. 그러다 사후 원문이 아닌 이처럼 과거의 흔적들을 다룬 책들을 읽고 있는데 그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법정이란 법명보다 박재철이란 청년의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는 이 책은 한 명의 불자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무소유란 단어를 보고 들을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된 법정 스님이다. 동시에 너무 탐욕스러운 나의 삶들을 돌아보게 된다. 갑자기 예전에 쓴 편지들이 궁금해진다. 얼마나 조악했을지, 얼마나 솔직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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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01 2018-03-2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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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법정 스님하면 떠오르는것이 무소유의 삶이다. 평생을 말씀처럼 그렇게 한 평생을 사셨으니 이 시대의 큰 스승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으신게 아닌가 싶다. 그 때의 스님과의 짧은 만남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기에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한 해가 지났음에도 당최 실감이 나질 않는다. 시간이 지나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글이 고전이란 이름으로 세대를 거듭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을 울리는 감동과 영감을 준다면 법정스님의 글 또한 우리에게 그러하다. 스님의 맑고 마음을 담은 소박한 언어는 그분의 살아 온 생애 만큼이나 정갈하다. 다시 그분의 글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음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는데 법정스님의 친필 글을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란 제목의 책으로 다시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법정스님이 출가직후인 1955년부터 1970년까지 법정스님이 출가전 같은 방을 쓰며 친형제처럼 자랐던 여덟 살 아래 사촌 동생 박성직에게 보낸 서간을 묶은 것이다.출가란 버리고 떠남이라고 했다.묵은집, 집착의 집, 갈등의 집에서 떠났다고 해서 출가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출가 초기 법정스님은 비록 출가는 하였지만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법정 스님은 작은아버지 댁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 어려웠던 시절, 작은아버지는 총명했던 조카를 대학까지 보냈다. 출가하며 홀어머니를 비롯한 피붙이들과 인연을 끊어버린 법정 스님은 사촌 동생에게 "불쌍한 우리 어머님 아들 노릇을 네가 대신해다오"라고 당부하는 대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 책들도 잘 있는지?"라며 두고 온 책들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책을 소중히 여기셨으며 학문에 대한 열의 또한 크셨음을 알수 있다. 독서를 하더라도 함부로 말고 지은이와 책을 가려서 읽도록 세심하게 당부하시고, 학문을 전문으로 하는 기회는 학창시절뿐이라며 공부에 전념하길 당부하신다. 법정이라는 불명을 갖게된 이야기며 종교는 모두 한가지 목표를 지향하는 단지 방향만 다를 뿐이라는 종교를 바라보는 넓은 포용력은 젊은 시절부터 지녀오신 생각임을 알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이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항상 곁에 두고서 보시던 몇권의책을 나눔하셨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법정스님이 보낸 편지를 통해 문학을 사랑했던 스님의 책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법정스님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스님의 젊은 날 한 귀퉁이라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마음하는 아우' 라고 정감있게 우리의 마음을 보듬에 주고 토닥이며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같아 마냥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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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 2018-05-0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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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책읽는섬, 2018)
박재철, 그가 출가를 결심하고 홀연히 떠나 법정 스님이 되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고 끊어지겠는가? 법정은 사촌 동생 박성직에게 편지를 보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이 녹아있고, 사랑의 당부가 가득하다. 박성직은 1955년부터 1964년까지 법정으로부터 온 편지를 엮어 출판하였다. 이 서한집 중간 중간에 법정의 다른 책에 나오는 좋은 글들도 옮겨 실었다. 따뜻한 서한집이다. 샘처럼 맑은 법정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 갑자기 승려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날 때 그 마음의 각오가 어떠했겠는가? 참 자유인으로 살고, 자기답게 살려고 그는 버리고 떠난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등지고 떠날 때는 가족에 대한 의무도 저버리는 것이니 어찌 송구한 마음이 없었을까? 그래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는 부처의 말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구도자의 길을 걸으며 세상의 일이 한바탕 꿈과 같음을 절실히 느낀다. 출가생활이란 단순히 몸이 집을 떠난 것이 아니다. 매 순간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집착과 갈등의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법정은 ‘나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나답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붙잡았다. 그러기에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반복하는 일상에서 위대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여러 번 당부했다. 또한 자신이 읽을 책들을 보내달라고 여러 번 부탁한다. 그는 수도승이기보다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이고 싶다고 말했다. 법정은 불교의 철학적인 영역에 깊이 매료된 듯하다. 그는 번민하고 사색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우리는 승려가 되던 신부가 되던, 불교도가 되던 기독교인이 되던,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대로 살기를 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인간의 길이다.
이 책에 수록된 편지글들은 스님의 내밀한 감정, 가족에 대한 사랑, 삶의 고뇌와 번민, 진리 탐구와 해탈에 관한 열망,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자연풍광을 담은 사진들이 곳곳에 실려 있다. 마치 법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과 같다. 이런 자연 속에서라면 속세에서 부리던 거칠고 탁한 마음이 다 사라질 것 같다. 때로는 원고지에 때로는 우편엽서에 쓴 법정의 글씨가 정겹다. 억지로 짜낸 글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대로 적어 내려간 글들이라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사촌동생에게 술과 담배는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으라고 권면하는 대목에서는 법정의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마음 차분해지면서 동시에 따뜻해지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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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7joy 2018-03-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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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 법정의 산중 편지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사촌동생 박성직에게 보내온 편지를 통해 청년 박재철에서 승려인 법정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고통과 고뇌, 깨달음을 담은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법정 스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승려의 길을 선택함에 이전의 자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아는 법정 스님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은 스님이기 이전에 청년 박재철이였다. 그런 그가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행의 길이라 여기는 승려가 되기를 선택하였다.
부모에게 불효를 저질렀음에 가슴 아파하며 사촌동생에게
"불쌍한 우리 어머님의 아들 노릇을 네가 대신 해 다오."
라며 거듭 부탁하고 서신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말라 말하며 고향 소식을 묻기도 하고 학업과 책 읽기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좋은 책을 읽는 시간이 곧 휴식 시간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담소하며 차를 마시는 그런 경우와 같다.
- 「버리고 떠나기」- <나의 휴식 시간>에서
이 구절은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육아로 인해 따로 휴식이라는 개념이 없이 지내오는 동안 책을 읽고 있는 순간이 나의 휴식 시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동안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또 다른 삶을 사는 것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독서를 하더라도 함부로 말고 지은이와 책을 가려서 읽도록 하여라. 책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외국어 특히 영어를 열심히 하여라. 어름어름 넘어가지 말고 확실히 알고 지나가거라. 너무 급하게도 말고, 그렇다고 쉬지도 말고 꾸준히 하는데 진보가 있으리라.
- 47p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리고 이 편지가 씌여진 해가 1956년인데 그 오래 전에도 외국어 특히 영어를 열심히 하라 당부하는 스님의 모습이 살짝 낯설기도 하면서도 중생이였다면 앞서가는 지식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아플 때 약해진다. 내 몸 하나 추스리기 어려워 끙끙대고 있을 때 곁에 누군가가 정성스레 보살펴주면 그것만큼 눈물나는 일이 없다.
법정스님 또한 아플 때 수연 스님의 헌신적인 정성에 어린애처럼 울었던 적이 있으며 그때를 잊을 수 없다 하였다.
아우야!
항시 줄기찬 의욕을 지니고 모든 고난을 박차고 싱싱하게 즐겁게 살아가자. 편지로라도 좋으니까 무엇이든지 고민하고 있는 것, 혼자 생각으로는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나에게 거침없이 물어라. 중에겐 아무런 흉허물도 없으니까.....
- 79p
마음 기댈 곳없어 힘들어하는 아우를 향한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록 속세를 떠나 스님의 길을 택했음에도 마음 한 켠에는 오래도록 아우와 가족들을 걱정하고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기에 스님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아들이며, 형이였을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옴의 고통 또한 컸으리라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아우에게
"학교라는 게 꼭 무슨 형식에 사로잡힌 곳만이 아닐 게다. 보다 넓은 의미로라면 이 사회가, 나아가서 전 우주가 우리 학교가 아니겠느냐? 인생학교 말이다."
라며 이 인생학교에서 성실한 학생이 되라 말한다.
'인생학교'
인생 자체가 고행이고 학교생활의 연장선상인걸까?
사회에 나와서 늘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 것을 보면 어쩌면 스님의 말처럼 우리는 또 하나의 학교인 '인생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속세와의 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던 스님은 1964년 1월 14일, 궁벽한 산중으로 들어가 수도를 하겠다던 편지 이후로 6년 동안 편지를 보내지 않다 1970년 11월 27일 편지에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늦게서야 받고는 법당에서 눈물을 흘렸으며, 겨울 안거가 지나야 출타를 할 수 있으므로 봄에 찾아볼까 한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의 산중편지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풍경 사진이 담겨 있으며, 스님 저서의 좋은 구절도 볼 수 있다.
종교를 떠나서 책과 인생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고요한 이 밤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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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푼의시간 2018-03-2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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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이 책을 엮은이인 저자는 법정스님의 사촌동생으로서 법정스님과 주고받은 편지란다. 고스란히 삶이 묻어나있는 내용들이라,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았다. 삶의 애환이 스미어있는 내용을 읽고 있으려니, <무소유>에 대한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법문에 들어 세상을 등진 사람은 고뇌가 없을 것 같지만, 법정스님은 세속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수양하는 속내가
왜인지 처절하게 느껴진다. 물론 법정스님은 힘들다거나 고뇌스럽다던가 그런 말씀은 하시지 않지만 왜인지 가슴이 아프게 와 닿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라 그럴까? 이만큼 어른이 되어서 가족, 부모, 자식을 둬보니 스님의 마음에 헤아려지는 것인가 보다. 예전에 무소유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법정스님이 사촌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는 왜인지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을까 할 정도로, 고향을 등진 사람의 말없는 가운데 눈물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슬픔과 서러움과 고통 속에 뼈를 깎는 스님의 한숨소리와 목탁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그래서 더 이 세상을 크게 껴안았는지도 모른다.
요즘 어젯밤 MB가 구속되었다. 뉴스로 그가 구치소로 가는 여정을 바라보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려서 시장 바닥에서 장사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는 MB, 가난했던 것이 한 이 되었던 것일까? 국민들에게, 밑에 부하들에게까지 사기를 치도록 했던, 희대의 대사기꾼을 바라보면서, 일개 대통령까지 하면서 무엇이 그렇게 그를 돈에 집착하게 만들었을까? 국가의 땅 절반이 이명박 땅이고 삼성 이재용보다 더 큰 부자라는 이명박, 그는 왜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에 집착했을까?
형제들, 가족들 다 범죄 집단이라는 그들, 그들이 좀 더 일찍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전 국민들이 고개를 흔들고 있다. 돈에 노예가 되어서 돈에 끌려 다닌 그 인생, 사실 제대로 인생에 대한 참 맛을 알고는 있을까? 그저 돈돈하다가 그 인생 끝이 난 것 아닌가 싶다.
한 문장 한 문자 고귀한 말씀들로 이뤄진 수필 같아서 빨리 일어서지 못하고 책상에 죽 앉아서 책을 읽는다. 구도자의 길을 가는 법정을 따라 사촌형제도 부부가 나란히 법정을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불교에 귀의했다는 것은 사실상 커다란 충격이다.
한 번 만남은 전생에서 억 만 겹 인연이 있어야 만난다는데, 사실 법정의 글을 이렇게 읽고 있는 우리들은 그와 어떠한 깊은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그의 말씀을 듣는가? 동생덕분에 귀한 말씀들을 접한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미니멀리즘 운동을 하시는 분이 지인 중에 한 분 계시는데, 그 분 말씀이 돈 없이 적게 쓰고 적게 먹고 작은 집에 살아도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단다. 최소한 생명 유지를 위해 경제적인 것을 필요로 하며, 그 나머지 시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며 산다고 한다. 돈에 얽매여서 남은 인생 행복이 뭔지도 모른 채 다 소비하고 싶지 않다던 지인의 말씀에 화들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야말로 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지 않나? 되돌아보니 아니다라 말할 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3월 말에 있다고 한다. 오늘이 3월 24일이니까 며칠 남지 않았다. 남북한 모두 마음속 깊이 욕심을 버리고, 다 내려놓은 상태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서 신뢰와 안전을 보장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 경제적 협력을 꾀할 수 있다. 그동안 휴정해왔던 휴전선의 의미는 점점 퇴색해갈 것이다. 남한이 작게 먹고 작게 쓰면서 북한 주민들을 돕는 일을 이웃집 돕듯 진심을 다해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마음의 주인이 되어 인생을 개척해 나가듯이, 남북한도 스스로 마음의 주인이 되어 평화통일을 이뤄냈으면 좋겠다. 서로 욕심들을 내려놓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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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민들레 2018-03-2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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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_법정 ˝법정스님이 전하는 마음의 편지˝
무소유 이전의 이야기
법정스님. '무소유', '오두막 편지'등의 산문집으로로 유명하며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전한 덕망높은 스님.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인용으로 접하게된 스님의 잠언들을 읽고 나의 마음과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의 호기심들은 미처 품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이 청년 박재철을 법정스님으로 이끌었는가? 가족과 사회를 등지고 구도의 길을 떠나가도록 만든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고향에 남은 가족들에게 그는 어떤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을까? 지혜가 깊어지기에 앞서 '배움의 과정'속에서의 깨달음들은, 어떤 언어로 표현되었을까?
애정어린 조언을 담은 마음의 편지
이 책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는 위 질문들에 대답이 되어줄 듯 하다. 이 책은 '편지'의 모음집이다. 속세를 떠나 막 배움의 여정을 시작한 1955년부터 1970년에 이르기까지, 사촌동생에게 전한 편지들을 모아 엮었다. 초기의 편지에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다. 자신의 거처를 밝히지 말라고 하면서도 고향에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청년 박재철'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과 삶과 자유에 관한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법정스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적어 내린다. 사촌동생에게 전하는 편지이기에 '애정하는 누군가'를 향한 '진심어린 조언'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법정스님의 삶에 호기심을 갖고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충고와 조언을 기대하는 분들께도, 의미있는 독서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렸던 키워드를 간추려보자면 '나', 그리고 '삶'이었다.
나 : 내가 나를 키워 나가야 한다.
87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 우주 주인은 항상 '나(자기)'라는 걸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무런 비판 정신도 없는 맹목적인 신앙은 인간 성장에 오히려 큰 해독을 끼칠 우려성이 없지도 않은 것이다. ... 불가에서는 '내가 곧 부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인간의 모양이 잘났다는 데서가 아니라 내가 닦아(수행해서) 깨치면 똑같은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다른 것이 아닌 나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생활의 주체는 항상 '나'다.
114 성직아! 하나부터 행하라. 네 주위에 있는 일부터 행으로 옮겨라. 우리 인격 수행에는 무엇보다도 '실행'이 기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형으로서 유산을-생활신조를 주고 싶다. "진실하라"는 것이다. 일체의 생활에 '진실'이면 통한다. 설사 눈앞에 손해 볼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이면 그만이다. 결코 거짓된 것과 비굴에 타협하지 말아라. 가령 연애에도 진실이 아니면 그건 죄악이다. 무슨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여라. 여기 비로소 인간 성장의 싹이 틀 것이다. 내가 나를 키워 나가야 한다.
117 어떤 위치에 있더러ㅏ도 사람으로서 성실을 다할 것이며 내가 나를 키워 가야 할 것이다. 먹고산다는 이 엄숙한 사실 앞에서 직업의 귀천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 수확의 계절에 우리들은 또 얼마나 여물었는지...
편지 내내 법정스님은, 사촌동생 성직에게 자신이 깨달은 지혜를 전한다. 보통의 형이 동생에게 그러하듯, 도움이 될만한 것은 하기를 권하고 해로울만한 것은 피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맹목적 신앙을 갖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시대상황, 앞서의 일제강점기까지 거친 후이기에 더더욱 '진리'와 '가치'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정해진 '진리'나 사회적 흐름에 따라서 사는것이 속편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주체로서의 '나'를 강조한다. 생활의 주체는 오로지 '나'이며 내가 나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혼란'스럽기로 치자면 지금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가치와 신념이 유행처럼 달라지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따라 살아가야 할까? 법정스님의 애정어린 조언을 따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아닐까?
삶 : 초연한 수도승보다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가 되고 싶다
132 지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하나의 무표정한 직업인이 된다는 것이다. 해서 나는 초연한 수도승이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인으로서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가 되고 싶을 뿐이다.
불교 중에서도 종교적인 면은 나를 질식케 하지만 철학의 영역만은 나를 언제까지고 젊게 하고 있지. 물론 사회인에겐 살아가는데 직업이 필요할밖에. 하지만 인간 본래의 양심이라든가 의지를 잃어버리고까지 거기에 얽매일 건 없을 줄 안다. ... 우린 생존만으론 살고 있는 보람이 없어. 줄기찬 생활이, 창조적인 생활이 있어야 해.
144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은 인생이 상품 거래와 같은 장사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얼마의 밑천을 들였기에 얼마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은, 정말 인간을 생명이 없는 상품으로 '오산'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저 성실하게-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내려 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는 생명의 존엄 앞에 문제가 되지 못한다.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155 나는 가끔 자신을 반성할 때가 있다. 직업인인 수도인은 되지 않겠노라고. 지금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만 개성을 잃어버린 무표정한 군인이 될까 싶다는 것이다. 물론 단체생활의 규율 같은 것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는 맑고 여유 있는 눈망울을 잃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법정스님이 전하는 조언은 종교적 지혜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보다 삶에 더욱 가깝게 맞닿아있다.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촌동생에게 전하는 조언이기에 그런면도 있겠지만, "초연한 수도승이기보다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이고 싶다"는 스님의 말이 담고 있는 가치관에 따른 면이 더 클 것이다. 개성을 잃어버린 무표정한 직업인,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푸른 하늘을 즐길 수, 맑고 여유 있는 눈망울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즉, '생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각자의 삶의 의미는 스스로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글쎄, '생기'를 잃어버린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싹틔우는 것이 바로 '생기'가 아닐까? 생존을 넘어 의미로, 의미를 넘어 생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거울을 꺼내들고 관찰한다. 나의 얼굴은 표정을 담고 있는지, 생기를 담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무슨 일을 하든 결코 무표정한 직업인으로 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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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홍 2018-03-2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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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 법정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러 종교를 생각하였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다. 각 종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행했던 사람,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주는 사람이 말이다.
불교계에 있어서 그런 마음의 울림을 주는 사람 중 하나가 단연코 법정스님일 것이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읽어 보았을테니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법정스님은 무소유 그 자체였다. 그리곤 특별한 의문을 가진 적도 없었다.
가령 어떻게 승려가 되었는지 이런 게 말이다. 승려가 되기까지의 어려움 같은 것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원래 그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청년이 우리가 알고 있는 법정스님이 되기까지의 산중에서 쓴 편지이다. 어릴적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 댁에서 자라며 공부해 대학생이 된 청년 박재철은 갑자기 가족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을 나가 승려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곤 함께 방을 쓰며 친형제같이 지낸 사촌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 편지의 내용이 바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이다.
편지의 시작은 자신이 생활하던 방을 그리워하고, 가족의 안위를 물어보며, 함께 생활했기에 더 큰 충격을 받았을 자신을 따르던 어린 동생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투성이다. 정식으로 승려가 된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본래 이름인 박재철이라는 이름과 함께였을 때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당부와 그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더불어 처음 출가를 했을 때처럼 절연한 의지도 보여 진다. 법정이라는 불계의 이름을 받은 후에도 한참은 박재철과 법정의 중간의 사람으로 보인다. 가장 아꼈던 동생에게 남겨진 다른 가족의 안부를 물으면서 또 동생이 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마음 쓰는 것은 분명히 박재철의 삶이었을 것이다.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법정스님의 모습을 보이는 동안은 자신의 거처를 부모님께도 알리지 말길 바라며 가족과 속세를 끊어내려는 것을 알 수 있다.
승려들은 자신의 원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것인가 생각 한 적이 없었다.
내 가족과 그 주변을 모조리 끊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이다.
편지는 자그만치 15년이나 계속된다.
편지를 받은 사촌동생은 중학생에서 군인이 되고, 어엿한 성인이 되어있다.
처음 편지를 받았을 적부터 법정스님은 매번 당부를 빠트리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라, 책을 많이 읽어라, 술 마시지 마라. 등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당부는 사색하고, 번민하며, 자연을 배우고,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 같은 것으로 바뀌어 간다.
속세의 모습은 지우고 진정한 승려가 되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당부 가득한 편지들도 작은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끊기고 만다.
자신을 친아들만큼 키워주고 아껴준 작은 아버지의 마지막이 법정스님이 정말로 모든 인연을 끊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 정말 감사한 분이었기에 승려가 된 후에도 붙잡고 있던 단 하나의 인연이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법정스님의 모습이 되었으리라..
“우리들이 보모형제를 팽개치고 산중에 들어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수도하고 있는 뜻은 그 나고 죽는 바다에서 뛰어내리려는 더없이 큰 욕심 때문이란다. 형아는 금생뿐이 아니고 세세생생 수도승이 되어 생사해탈의 무상도를 이루리라. 하여, 고통 바다에서 헤매는 내 이웃을 건지리로다.” -p.102,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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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부르 2018-03-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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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기에 앞서 한 사람으로써의 법정의 모습을 읽으며
대부분이 성직에게로란 이름으로 시작한다.그 성직이란 분도 6.25때 대학생이었으니지금 나이로는 거의 90 전후의 나이가 되었을텐데그 젊은 날 받았던 편지의 주인공도 노년이 되었지만그 편지를 남긴 법정스님은 이미 오래전 타계했다.그래도 이렇게 소중한 자료들이 남아있어후세의 나같은 사람에게까지 인연이 닿아이렇게 읽혀지고 있음이 새삼 감사하고 뭉클한 면이 있다.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개인적인 사연이 조금 있었다... + 더보기
칸타타 2018-03-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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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재철에서 승려 법정으로

종교를 떠나, 우리나라의 큰 어른으로 계시던 법정스님.
죽비소리처럼 단호하고 핵심을 찌르는 언어와 행동으로 사셨던 그분이
아직 '청년 박재철'이었을 때 썼던 편지들이 묶여 책으로 나왔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말처럼 쉽지 않은 마음 다스리기.
요즘처럼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마음도 걍팍해질때
법정스님이라면 어찌하셨을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하였다.
허투른 인연을 경계하고, 수도에 매진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말빚을 지기 싫다고, 본인이 쓴 책들도 사후출판을 하지 않기를 바랐던 그 분이
대학교 3학년에 출가를 결심하고 홀연히 길을 나선 청년이었을때부터
사촌동생 박성직씨에게 편지를 쓰며
가족에 대한 정과 인연, 일상의 깨달음까지 꾹꾹 담아 보낸 모습이 무척 정겨웠다.

'출가'와 동시에 고고히 혼자만의 수도에 빠진 것이라면
오히려 이 책에 마음을 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법정스님이 쓰셨다고?" 라고 할 만한 인간으로서의 섬세한 감정이
마음을 터놓고 가족을 부탁할 수 있는 사촌에게는 허락하시는 것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
위로와 웃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소유를 말씀하시게 될 분이 보고싶을 때 꺼내보고픈 사진을 (없으면 말고)를 달아가며
요청하는 마음은 어떠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면 죽음을 생각해보라는 말씀을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곰곰히 곱씹어 보았다.

'겨울'을 버티고 기다려 맞는 '봄'이 아닌, 우리가 마련하여 스스로 만드는 '봄'!
이런 마음이 있다면 힘들 때라도 내 '봄'을 지으려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세상에 나와 맺어진 인연에 대해 몸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사랑과 연민, 그리움과 염려, 깨달음의 나눔을 하고, 경계할 것을 알려주고 격려하는 것이
종교인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법정스님의 말씀을 머리와 마음에 담아둘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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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an 2018-03-1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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