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3

일본의 동양 의학 오쓰카 야스오 2000 大塚恭男

일본의 동양 의학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3 | 오쓰카 야스오 | 알라딘


일본의 동양 의학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3
오쓰카 야스오 (지은이),이광준 (옮긴이)소화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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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제2장. 일본 동양 의학의 역사
제3장. 일본의 동양 의학과 중국의 의학
제4장. 동양의 신체관과 질병관
제5장. 본초의 역사
제6장. 한방의 진단법
제7장. 한방약
제8장. 소화기계 질환의 한방 치료
제9장. 산부인과 질환의 한방 지료
제10장. 노인성 질환의 한방 치료
제11장. 소아과 질환의 한방 치료
제12장. 통증의 한방 치료

- 후기-동양의학과 나
- 역자의 말
- 일본의 동양 의학을 떠받친 사람들
- 이 책에 나오는 주 생약
- 한방약의 처방(1일량 단위 g)
- 약력



저자 및 역자소개
오쓰카 야스오 (大塚 康生 )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30년생. 의학박사. 현재 기타자토연구소 부속 동양의학종합연구소 소장. 기타자토연구소 부소장.

최근작 : <일본의 동양 의학> … 총 13종 (모두보기)

이광준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동국대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석사,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심리학 박사. 전공은 카운슬링, 치료심리학, 선심리학.
백상창신경정신과 임상심리실장, 한림성심대학교 교수,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외국인 연구원(교수), 하나조노대학(花園大學) 국제선학연구소 연구원, 류코쿠대학(龍谷大學) 강사, 류코쿠대학 세계불교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불교대학원 대학교 석좌교수.
저서로 『반야심경 제대로 공부하기』, 『붓다의 법담학 연구』, 『한국적 치료심리학』, 『일본, 그 문화와 사회』, 『카운슬링과 심리치료』, 『정신분석 해... 더보기

최근작 : <반야경의 사상 개설>,<반야심경 제대로 공부하기>,<붓다의 법담학 연구> … 총 13종 (모두보기)


good introduction

일본 동양의학의 ‘개론서’다. 일본 내 유명 연구소의 책임자이고 임상을 직접 했던 저자가 기초부터 임상 실제에까지 간략하지만 요모조모 잘 지어낸 잘 가꿔진 보석 같다. 그리고 일본 동양의학의 서적과 인맥의 계보도 설명되어 있다. 그 동안 사람 이름만 가지고 보았던 책들의 일본 동양의학사에서의 자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독서 동안 자신의 전통의학을 자랑하려고 하는 의도 섞인 어투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 조차도 그가 자신의 전통 문화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 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도 많은 사상과 문화를 중국에서부터 받아들였지만 우리민족의 사람이 손수 만든 것이라면 아무리 중국과 똑같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으로 우리 민족의 수용 사상이 담긴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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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ngq 2001-08-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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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카 야스오의 저작에 관한 기본 정보와 요약 평론입니다.

<저자 정보 및 주요 저서>

<저자의 일본어 표기>
大塚恭男 (おおつか やすお, Otsuka Yasuo)

<다른 주요 저서 (한국어 번역 명칭)>

<동양의학 입문>  
국내도서 - 교보문고

<한방과 약 이야기>

<동서 생약고>

<동양의학의 세계>

<의학사 이야기>

<일본의 동양 의학 요약 및 평론>

<1. 도서 개요와 역사적 배경>
<일본의 동양 의학>은 일본 기타자토연구소 부속 동양의학종합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의사학자 오쓰카 야스오가 전통의학의 본질과 일본적 변용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작이다. 고대 중국에서 유입된 전통의학이 일본의 풍토와 역사적 조건 속에서 독자적인 체계인 <한방(漢方)>으로 정착하고, 근대 서양의학의 도입이라는 거센 격변 속에서도 살아남아 현대 의료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궤적을 짚는다. 저자는 동양의학을 비과학적인 신비주의의 영역으로 밀어 넣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다. 서양의학을 전공하고 의학사를 연구한 학자답게 비판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동양의학의 성립 원리와 임상적 가치를 분석한다.  
ウィキペディア

<2. 핵심 내용 요약: 수용, 실증화, 그리고 근대화의 극복>
책의 논의는 크게 세 가지 줄기로 나뉜다.

첫째는 중국 의학의 수용과 일본 고유의 <실증주의적 변용>이다. 7~8세기경 중국의 한·당 의학이 일본에 전래된 이래, 일본 의학계는 점차 음양오행설과 같은 거대 사변이나 형이상학적 이론 체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에도 시대에 이르러 요시마스 도도(吉益東洞)를 중심으로 한 고방파(古方派)는 <상한론> 등의 고대 문헌으로 회귀하며 형이상학적 공리공론을 배격했다. 그들은 오직 눈앞의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진찰을 통해 확인한 복부의 징후(복진)만을 기준으로 처방을 결정하는 극단적인 실증주의 체계를 구축했다. 저자는 바로 이 실증주의적 단순화가 중국 의학이나 한국의 한의학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일본 한방의 결정적 정체성이라고 강조한다.

둘째는 진단과 치료의 독자적 임상 체계다. 일본 한방의 핵심은 이른바 <방증상대(方證相對)>에 있다. 이는 질병의 복잡한 병인을 이론적으로 추론하기보다, 환자에게 나타난 구체적인 증상들의 총체(증)를 특정 약 처방(방)과 1대 1로 정밀하게 대응시키는 임상 방식이다. 여기에 서양의학의 해부학적 관점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복진법(腹診法)이 결합되어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셋째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폐지와 부활 과정이다. 메이지 정부는 서구화 정책의 일환으로 서양의사 면허제도를 단일화하여 전통의학을 제도권 밖으로 몰아냈다. 한방 의사 양성이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일본의 전통의학은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쇼와 시대에 이르러 서양의학의 한계를 절감한 서양의학 출신 의사들이 한방의 임상적 치료 효과를 재발견하면서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1970년대 한방 엑기스제(추출 과립제)가 국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되면서, 일본 한방은 '서양의학 면허를 가진 의사가 현대적 진단과 결합하여 투여하는 과학화된 치료 수단'으로 제도적 안착을 이루었다.

<3. 비평적 고찰: 실용의 승리와 이론의 탈색>
오쓰카 야스오의 이 저작은 전통의학을 현대적 언어로 명료하게 번역해 낸 탁월한 의사학적 보고서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전통의학의 장단점을 균형 있게 서술한 점이다. 저자는 동양의학의 본질을 인간을 소우주로 보고 신체의 전체적인 조화와 자연치유력을 이끌어내는 전인적(全人的) 의학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도 세균 감염, 급성 외상, 외과적 수술 등 급성 질환에는 서양의학이 절대적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반면 만성 질환, 원인 불명의 자율신경 실조, 고령화 사회의 퇴행성 질환 등 서양의학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영역에서 동양의학의 처방이 지닌 유효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러나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가 긍정적으로 묘사한 '일본 한방의 실증주의적 진화'는 양날의 검이다. 에도 시대 고방파의 개혁과 근대 엑기스 제제화는 의학의 문턱을 낮추고 재현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이론을 과도하게 쳐낸 결과, 병리 기전에 대한 깊이 있는 인체 철학이 결여되고 단순한 '증상-처방 매핑(대증요법적 접근)'으로 축소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상의학처럼 독창적인 인체 생리 체계를 세운 한국의 한의학이나, 거대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중의와 서의의 결합을 도모한 중국의 중의학에 비해, 일본 한방은 지나치게 경험주의와 실용주의에 경도되어 의학적 철학이 빈약해졌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 국가의 전통 학문이 근대화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스스로를 변혁하고 체제에 적응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통의 맹목적 보존이 아니라 철저한 임상적 실효성을 무기로 현대 의료 시스템 안으로 파고든 일본 한방의 역사는, 21세기 다원화된 의료 환경 속에서 전통의학이 나아갈 현실적인 길을 묻는 데 매우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국내도서 - 교보문고

오쓰카 야스오의 저작 및 일본 한방의학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방향입니다:

  • 일본 한방과 한국 한의학의 체계적 차이 비교하기

  • 에도 시대 고방파와 요시마스 도도의 의학 사상 분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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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카 야스오, <일본의 동양 의학> — 1,000단어 요약·평론

먼저 서지사항 하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한국어판 <일본의 동양 의학>(오쓰카 야스오 지음, 이광준 옮김, 소화, 2000)은 일본에서 처음부터 <日本の東洋医学>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 아니다. 원저는 오쓰카 야스오가 1996년 이와나미서점의 이와나미신서로 출간한 <東洋医学>(동양의학)이다. 한국어판에서 일본적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의 동양 의학>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원서는 12장, 본문 213쪽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저자: 大塚恭男은 누구인가

저자의 일본어 이름은 <大塚恭男(おおつか・やすお, Ōtsuka Yasuo, 1930–2009)>이다. 한국어로는 보통 <오쓰카 야스오>라고 표기한다. 1930년 고치현에서 태어나 1955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병원 내과에서 근무했으며, 대학원에서는 약리학을 연구했다. 1962~1966년 서독과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했고 요코하마시립대 강사를 거쳐 1975년 기타사토연구소 동양의학종합연구소에 들어갔다. 1986년 제3대 소장이 되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일본 근현대 한방 부흥의 중심인물 <大塚敬節(오쓰카 게이세쓰, 1900–1980)>의 장남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한방을 전수받은 전통의학자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도쿄대에서 현대의학과 약리학을 배우고 유럽 의학도 경험했다. 따라서 그의 평생 과제는 <한방인가 서양의학인가>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의학적 인식체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결할 것인가”였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점이 바로 <일본의 동양 의학>의 성격을 결정한다.


2. 책의 출발점: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무엇이 다른가

첫 장에서 오쓰카는 동양의학을 서양의학의 덜 발달한 전단계로 취급하지 않는다. 두 의학은 인간의 몸과 질병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서양 근대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특정하고, 장기·조직·세포·병원체·생화학적 기전으로 질병을 분석하는 데 탁월하다. 반면 한방은 “무슨 병인가?”에 앞서 “이 환자의 몸 전체가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묻는다.

그래서 한방에서 핵심적인 것은 <証(しょう, 쇼)>이다. 흔히 한국어로 <증>이라고 번역하지만 단순한 증상(symptom)이 아니다. 환자의 체질, 현재의 신체 상태, 증상의 조합, 냉·열, 허·실 등을 종합한 하나의 임상적 패턴이다.

이 때문에 똑같이 위가 아프다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처방을 하지 않고, 반대로 서양의학적으로 서로 다른 병명이라도 동일한 <証>을 나타내면 같은 처방을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다. 원서 목차도 

  •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 <일본에서의 동양의학의 역사>, 
  • <일본의 동양의학과 중국의학>, 
  • <동양의 신체관과 질병관>, 
  • <본초의 역사>, 
  • <한방의 진단법>, 
  • <한방약>을 설명한 뒤 

소화기·산부인과·노인·소아·통증 치료의 실제로 진행된다.


3. 중국의학과 일본 한방은 동일하지 않다

이 책에서 특히 가치 있는 부분은 일본의 한방을 단순히 <중국의학의 일본판>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의학은 일본에서 수백 년 동안 선택되고 변형되었다. 특히 에도시대의 <古方派(고방파)>가 중요하다. 고방파는 송·명 시대에 발전한 복잡한 이론을 의심하고 장중경의 <傷寒論>과 <金匱要略> 같은 고전으로 돌아가 실제 환자의 증후와 처방의 대응관계를 중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吉益東洞(요시마스 도도)>이다.

오쓰카가 보기에 이 과정에서 일본 한방은 중국의학과 다른 독특한 경험주의적 성격을 갖게 된다. 이것은 일본 사상사에서 종종 나타나는 흥미로운 현상이기도 하다. 외부 문명을 그대로 보존하기보다 수입한 뒤 대폭 단순화하고 실용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책 제목을 한국어판에서 <일본의 동양 의학>이라고 한 것은 내용상 상당히 적절하다. 이 책은 사실상 <동양의학 일반론>인 동시에 <중국의학이 어떻게 일본의 漢方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4. 몸을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보는 의학

오쓰카가 설명하는 동양의학의 신체관은 현대 독자가 가장 철학적으로 읽을 만한 부분이다.

음양(陰陽), 허실(虚実), 한열(寒熱), 기혈수(気・血・水) 같은 개념은 해부학적 실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균형의 양상을 표현하는 언어다.

예를 들어 <虚>는 어느 특정 장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신체의 대응능력이 약화된 상태를 나타낸다. <実>은 단순히 건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병리적 반응이 강하게 나타나는 상태를 가리킬 수 있다.

이러한 사고법의 장점은 환자를 지나치게 병명으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검사 결과가 정상이면 “이상 없음”이라고 판정하기 쉬운 증상도 한방의사는 수면, 식욕, 배변, 추위와 더위에 대한 반응, 발한, 갈증, 복부 상태 등을 종합하여 하나의 패턴으로 읽는다.

오쓰카의 다른 책 <漢方と薬のはなし>를 소개하는 일본 도서관 자료가 한방의 목표를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을 고친다”는 말로 압축하는 것도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5. 진단의 중심: 환자를 직접 만지고 관찰한다

책은 맥진(脈診), 설진(舌診), 복진(腹診)을 비롯한 한방 특유의 진찰법을 설명한다.

특히 일본 한방에서 <복진>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복부를 직접 눌러 긴장, 압통, 저항 등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처방 선택과 연결한다.

여기에서도 서양의학과의 대비가 나타난다. 근대의학이 검사기계와 수치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면 전통 한방은 의사의 감각과 환자의 이야기, 그리고 반복된 임상경험에 크게 의존한다.

오쓰카는 이를 단순히 과거의 비과학적 유물로 버리려 하지 않는다. 동시에 신비주의적으로 절대화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약리학 배경을 이용해 전통적 경험을 현대 의학의 연구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最新の漢方薬理―漢方薬の科学的な検証と展望> 같은 책을 공동 편집한 것도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6. 한방약은 ‘약초 하나’가 아니라 처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할 것은 한방을 “자연산 약초를 먹는 치료”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갈근탕(葛根湯), 안중산(安中散) 등의 처방은 여러 생약을 특정한 비율로 조합한 하나의 체계다. 오쓰카에게 중요한 것은 개별 약물의 화학성분만이 아니라 <어떤 환자의 어떤 証에 어떤 方을 대응시킬 것인가>이다.

그래서 <方証相対>, 즉 처방(方)과 증(証)의 대응이라는 일본 한방의 사고가 중요해진다. 오쓰카는 이미 1973년 <東洋医学をさぐる>와 1983년 <東洋医学入門> 등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었다.

책 후반부의 소화기질환·산부인과질환·노인성질환·소아질환·통증 치료는 바로 이러한 원리가 실제 임상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평론

7.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 ‘전통 대 과학’이라는 싸움을 피한다

나는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을 <양자택일을 거부한다>는 데서 찾는다.

오쓰카는 “서양의학은 기계론이고 동양의학은 전인적이므로 동양의학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방을 미신이나 민간요법으로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 자신이 현대의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의사였기 때문에 두 체계의 장점과 한계를 비교할 수 있었다.

이 태도는 오늘날의 일본 의료를 어느 정도 예견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한방의사라는 별도의 국가 자격이 사라졌고, 오늘날 한방약을 처방하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현대 서양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이다. 현대 일본에서 한방은 별개의 의료체계라기보다 현대의학 내부에 통합되는 형태로 발전했다. 2000년대 이후 의과대학 교육에도 한방이 다시 본격적으로 들어왔고, 최근 조사에서도 일본 의과대학의 상당수가 한방을 교육한다.

오쓰카가 걸었던 길이 바로 이 일본적 통합모델의 선구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8. 그러나 오늘 읽을 때에는 ‘치료효과’와 ‘의학철학’을 구별해야 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1996년에 쓰인 이 책을 2026년에 그대로 임상 지침서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특히 어떤 한방 처방이 특정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전통적 경험과 현대적 임상시험으로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주장이다.

실제로 일본 한방계도 2000년대 들어 무작위대조시험과 근거중심의학(EBM)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왔으며, 일본동양의학회도 한방치료의 임상근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대 연구자들도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 자체가 현대적 임상근거를 대신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부분은 “어떤 약이 어떤 병을 고친다”는 개별 치료정보라기보다 <인간의 몸과 질병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의학철학이다.


9. 한의학을 아는 한국 독자에게 특히 흥미로운 점

한국 독자에게는 또 하나의 독특한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교육기관·면허·전문직으로 분리되어 있다. 중국에서도 중의학이 독립된 전문 교육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한방이 서양의학과 제도적으로 경쟁하는 별도 의료직역이 아니라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자원의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단순히 “일본에도 한의학이 있다”가 아니라,

<중국의학 → 일본 漢方 → 메이지기의 서양의학 독점 → 20세기 한방 부흥 → 현대의학 내부로의 재통합>이라는 매우 특이한 역사적 궤적이 보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의학서를 넘어 일본 근대사와 일본 사상사의 책이 된다.


종합 평가

<일본의 동양 의학>은 한방 처방전을 배우기 위한 실용서로 읽는 것보다 <일본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의학을 어떻게 일본화했고, 근대 서양의학과 어떻게 다시 결합시켰는가>를 설명하는 지성사적 입문서로 읽을 때 훨씬 가치가 크다.

오쓰카 야스오의 위치도 흥미롭다. 아버지 오쓰카 게이세쓰는 메이지 이후 거의 사라질 뻔했던 일본 한방을 되살린 <부흥 세대>에 속했다. 아들 야스오는 그 유산을 현대 약리학·임상의학·의학사와 연결시킨 <통합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부자를 간단히 대비하면,

<大塚敬節 — 한방을 살려낸 사람>
→ <大塚恭男 — 살아난 한방을 현대의학과 대화시킨 사람>

이라는 구도가 선명해진다.

이 책의 진정한 주제는 사실 한방약 자체보다 <두 종류의 합리성이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질병을 객관적 대상으로 분석하는 근대의학과, 병든 인간 전체의 상태와 관계를 읽으려는 전통의학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폐기하지 않고 접점을 찾는다.

이 때문에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

다만 오늘날에는 한방의 <철학적·임상적 관찰법의 가치>와 <개별 치료법의 과학적 효과>를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 전자는 이 책이 여전히 매우 강한 부분이고, 후자는 1996년 이후 축적된 임상연구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오쓰카 야스오의 다른 주요 저서

일본어 제목연도성격
<東洋医学をさぐる>1973편저. 한방·침구·생약·의학철학을 여러 연구자가 논한 초기 종합서.
<東洋医学入門>1983본격적인 동양의학 입문서. 일본 한방의 역사와 논리, 생약·처방 등을 폭넓게 다룬다.
<最新の漢方薬理―漢方薬の科学的な検証と展望>1988공동 편집. 한방약을 현대 약리학적으로 검증하려는 작업.
<新・漢方処方マニュアル>1991공동 기획·편집. 임상 처방 중심의 전문서.
<東西生薬考>1993동서양에서 사용된 73종의 생약을 역사·문화·약효의 관점에서 비교한 독특한 저서.
<漢方と薬のはなし>1994자신의 임상경험과 약물·한방의 역사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
<東洋医学>1996이와나미신서. 바로 한국어판 <일본의 동양 의학>의 원저.
<東洋医学の世界―大塚恭男論文集>1998828쪽에 달하는 논문집으로 그의 연구 전체를 살펴보기에 가장 중요한 자료.
<臨床医の漢方治療指針>1999 개정판장곡천미인·丁宗鉄과 공동 편집한 임상의용 한방 지침서.

이 가운데 <일본의 동양 의학> 다음으로 한 권만 더 읽는다면 나는 <東西生薬考>(1993)를 권하고 싶다. 단순한 한방 치료서가 아니라 <동양과 서양은 식물과 약을 어떻게 서로 다르게 이해해 왔는가>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오쓰카의 관심이 단순한 임상 한방을 넘어 <의학사·문화사·비교문명사>에까지 미쳤다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책이다. 출판사 소개에서도 동서양에서 빈번히 사용된 생약에 얽힌 설화·풍습과 약효를 비교하고 73종의 생약을 다룬 책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세진님이 지금까지 읽어오신 <동아시아 사상의 수용과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음에는 <중국 중의학–한국 한의학–일본 한방>을 비교해 보는 것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같은 중국 고전의학에서 출발했는데 왜 한국은 <별도의 한의사 제도>, 일본은 <서양의사가 한방을 처방하는 통합형>, 중국은 <중의사와 서의가 병존하는 체제>가 되었는지를 비교하면, 의학뿐 아니라 세 나라의 근대화 방식의 차이까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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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塚恭男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大塚恭男
 1996年頃
生誕1930年1月29日
高知県高知市
死没2009年3月8日
東京都新宿区
居住日本の旗 日本
国籍日本の旗 日本
研究分野東洋医学漢方医学医史学薬史学
研究機関北里研究所東洋医学総合研究所、修琴堂大塚医院
出身校東京大学医学部医学科
博士課程指導教員熊谷洋、酒井文徳
主な業績漢方医学の国際化、東西比較薬史学の研究、
主な受賞歴チェコ科学アカデミープルキンエ賞
プロジェクト:人物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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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塚 恭男(おおつか やすお、1930年昭和5年)1月29日2009年平成21年)3月8日))は、日本の医師医史学[1]。学位は医学博士東京大学)。大塚敬節の長男。北里研究所東洋医学総合研究所第3代所長を務め、医史学、特に東西の薬史学に秀でた業績を残した[2]

来歴

1930年(昭和5年)1 月 29 日 高知県香美郡日章村田村に大塚敬節の長男として出生。父大塚敬節は漢方の勉学に駆り立てられて妻と生後間もない恭男を高知において上京し、湯本求真のもとで漢方の勉強をした。1年後の1931年(昭和6年)5月に大塚敬節が妻子を東京に呼び寄せ、牛込区船河原町に転居した。船河原町で育ち、地元の津久戸国民小学校に入学。2年後輩には大塚敬節と昭和漢方を築いた矢数道明の長男、矢数圭堂がいる。1942年(昭和17年)4月東京府立第一中学校入学。昭和22年4月武蔵高等学校入学。1948年(昭和23年)旧制武蔵高等学校一年終了時に中退し、旧制第一高等学校入学。1949年新制東京大学教養学部編入。1951年東京大学医学部医学科入学した[3]

1955年、東京大学医学部医学科卒業。1年間のインターンを経て第一内科に入局し、薬理学教室の大学院に入学した。中枢神経系の薬理作用について研究をした。脳波の研究で学位を取得し、1962年9月西ドイツのビーベラッハ(Biberach)にあるベーリンガーインゲルハイム社グループのカール・トーメ社(Karl Thomae)の研究所に留学した。1965年9月からはウイーン大学医学部薬理学教室でさらに半年間の研究をし、1966年3月に帰国した。

短歌を通じた交流

大塚恭男は幼い頃から和歌漢詩に親しんでいたが、特にアララギ派に傾倒していた。東京大学在学中に短歌俳句を通じて親交を深めたのが有馬朗人中西進である。文学部の中西進とともに東京大学短歌会を復活させたのがきっかけで、武蔵高等学校からの親友であった有馬朗人とともに、短歌・俳句の腕を磨き合った仲間で、生涯親交が途絶えなかった。

萬菫不殺

医史学・薬史学の研究業績は多々あるが、中でも特筆すべきは「萬菫不殺」であろう[4]サソリ毒とトリカブト毒がお互いに打ち消しあうということが1世紀の西洋で著されたガイウス・プリニウス・セクンドゥスの『博物誌』とペダニウス・ディオスコリデスの『ギリシャ本草』に記載されている。それとまったく同じ事実を紀元前239年の中国で成立したとみられる『呂氏春秋』に発見した。「夫草有莘。有藟。独食之。則殺人。合而食之。則益寿。萬菫不殺。」とある。莘という草と藟という草は人を殺すほどの猛毒だが、合わせて食べると寿命を延ばすというのである。同様に萬(サソリ)と菫(トリカブト)もともに猛毒だが、お互いの毒を打ち消し合うというのである。この発見はその後、トリカブト殺人事件の際、フグ毒とトリカブトを配合して作用時間を延ばした事件の解決にも役立った。

北里研究所

1972年、北里研究所東洋医学総合研究所が設立され、初代所長に大塚敬節が就任した。大塚恭男は非常勤として入所し、1976年に常勤となった。その後北里研究所部長、東洋医学総合研究所臨床研究部長、北里研究所社員、北里大学客員教授、東洋医学総合研究所基礎研究部長などを歴任し、1982年に東洋医学総合研究所副所長、1984年北里研究所理事、1986年には東洋医学総合研究所所長に就任した。1993年には北里研究所の副所長となった。

医史学研究

東洋医学総合研究所で力を入れたのは医史学研究である。矢数道明が所長の時代に医史学研究室ができ、それを発展させた[5]小曽戸洋真柳誠をはじめとして、日本の医史学を牽引する学者を育てた。江戸期の学者にできなかったこととして、東西の比較医学史を自分に課せられた命題と考えていた。

学会・社会的活動

学会関係では、日本東洋医学会理事、常任理事を務め、1982年には日本東洋医学会副会長、1987年には日本東洋医学会会長、同年には日本医史学会総会で会頭も務めた。1992年には第9回和漢医薬学会会頭を務めた。1994年には第4回国際アジア伝統医学退会会頭を務めた。日本学術会議においては、医学教育・医史学研究連絡委員会委員、精神医学研究連絡委員会委員、医薬研究連絡委員会委員を歴任している。[6]

修琴堂大塚医院

1996年 北里研究所東洋医学総合研究所長、北里研究所副所長を辞して、北里研究所東洋医学総合研究所名誉所長となり、修琴堂大塚医院院長として、漢方の診療に専念した[7]。大塚恭男の診療は最晩年まで続いたが、2009年3月8日肺炎のため自宅にて死去。享年79歳。墓所は多磨霊園

著作

  • 大塚恭男訳著『医学史の旅《パリ》』(医歯薬出版)1972年
  • 大塚恭男編著『東洋医学をさぐる』(日本評論社)1973年
  • 大塚恭男共著『Asian Medical Systems: A Comparative Study』(カリフォルニア大学出版局) 1976年
  • 大塚恭男訳著『KANPO Geschichte, Theorie und Praxis der Chinesisch-Japanischen Traditionellen Medizin』 Tsumura Juntendo AG, 1976年
  • 大塚恭男共著『知の革命史 第6巻 医学思想と人間』(朝倉書店)1979年
  • 大塚恭男共著『和漢薬物学』(日本評論社)1982年
  • 大塚恭男著『東洋医学入門』(日本評論社)1983年
  • 大塚恭男共著『漢方の基礎と応用』(薬事新報社)1984年
  • 大塚恭男共編著『今日のアジア伝統医学』(Excerpta Medica)1985年
  • 大塚恭男編著『感染症の漢方治療』(メディカルトリビューン)1985年
  • 大塚恭男共訳著『臨床医学と薬用植物―世界の薬草と漢方』(エンタプライズ)1985年
  • 大塚恭男共著『現代のー漢方治療概説・症例・文献リスト』(東洋学術出版社)1985年
  • 大塚恭男共著『繁用漢方薬』(日本臨床)1986年
  • 大塚恭男共編著『プライマリ・ケアと東洋医学』(誠信書房)1986年
  • 大塚恭男共著『老いの発見 3 老いの思想』(岩波書店)1987年
  • 大塚恭男共編著『臨床薬物治療学体系20 和漢医薬学』(情報開発研究所)1987年
  • 大塚恭男共編著『東洋医学大事典』(講談社)1988年
  • 大塚恭男共編著『最新の漢方薬理』(Excerpta Medica)1989年
  • 大塚恭男共著『日本科学史の射程』(培風館)1989年
  • 大塚恭男共著『東洋医学入門』(読売新聞社)1990年
  • 大塚恭男共編著『新・漢方処方マニュアル』(思文閣出版)1991年
  • 大塚恭男共編著『内科診療と漢方』(医薬ジャーナル社)1992年
  • 大塚恭男共監修『中国本草図録』(中央公論社)1992年
  • 大塚恭男著『東西生薬考』(創元社)1993年
  • 大塚恭男編著『これだけは知っておきたい漢方治療』(日本放送出版協会)1993年
  • 大塚恭男著『漢方と薬のはなし』(思文閣出版)1994年
  • 大塚恭男共訳著『近代中国の伝統医学』(創元社)1994年
  • 大塚恭男共著『健康生活医学事典』(創元社)1994年
  • 大塚恭男著『医学史こぼれ話』(臨床情報センター)1995年
  • 大塚恭男共著・共監修『漢方医学の新知識』(日本評論社)1995年
  • 大塚恭男著『新書 東洋医学』(岩波書店)1996年
  • 大塚恭男著『東洋医学の世界』(北里研究所東洋医学総合研究所)1998年

脚注

  1.  大塚恭男の年譜は大塚が北里研究所を退任した際に出版された『大塚恭男論文集 東洋医学の世界』(北里研究所東洋医学総合研究所発行)ならびに2009年5月9日に開催された大塚恭男先生顕彰会の記録等をまとめた『大塚恭男先生顕彰記念文集』に詳しい。
  2.  その業績は1993年に創元社から出版された大塚恭男の著作『東西生薬考』にまとめられている。
  3.  有馬朗人「あすへの話題」『日本経済新聞』、2009年3月28日、夕刊
  4.  大塚恭男『東西生薬考』より
  5.  真柳 誠「大塚恭男先生を追慕する」『漢方の臨床』56巻、615-620頁、2009年
  6.  『大塚恭男論文集 東洋医学の世界』に詳しい。
  7.  日本経済新聞社編『私の履歴書:文化人19 大塚敬節』日本経済新聞社、1984年

外部リン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