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내가 좋다>
은하계 팔꿈치쯤에 있는 이 행성에 태어나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글을 쓰는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썼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그 질문이 던져졌다.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나는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내가 좋아.”
그것과 막상막하로 많이 받은 질문이 “왜 인도를 여행하는가?”이다. 이 질문 앞에는 한 단어가 늘어 ‘도대체’라는 단어가 중의적 의미로 붙는다(비정상적이라는). 도쿄나 파리에 오래 머물면 아무도 그렇게 묻지 않으며, 오히려 부러워한다. 인도인 친구들도 내가 자주 오는 이유가 궁금한 눈치다. 해마다 자기 집에 나타나 전망 좋은 방을 차지하고서 인도 가정식 음식이 세계 최고라는 둥, 이 알루 파라타(호떡처럼 두툼한 감자 부침개)는 어찌나 맛있는지 남녀가 먹다가 한 사람이 결혼해도 모를 정도라고 치켜세우니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도 이것이다.
“나는 인도를 여행할 때의 내가 좋다.”
“왜 힌디어 공부를 하는가?”를 묻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일본어나 불어를 독학한다면 언젠가 써먹을 것이라며 격려한다). 내 대답은, 내가 서툰 힌디어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의 인도인들 표정이 좋고, 힌디어 단어들을 발음하는 내 목소리가 나름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힌디어로 말할 때의 내가 좋다.
내가 즐겨 듣는, 카왈리(수피즘의 노래)의 왕으로 불리는 누스라트 파테 알리 칸은 지금의 파키스탄 영토인 펀자브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이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누스라트는 “나는 노래를 부를 때의 내가 좋다.”라며 카왈리의 길을 걸었고, 특유의 샤우팅 창법으로 전 세계에 수피의 노래를 알렸다.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카왈리 세계에서는 그를 뛰어넘는 가수가 나오지 않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원작으로 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누스라트가 부른 노래는 ‘신의 절규’라는 평을 받는다.
‘내 숨결의 꽃목걸이에 당신의 이름을 엮네.’라고 노래하는 누스라트처럼 노래 부르는 자신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림 그리는 자신이 좋아서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무중력으로 만들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여행하는 자신이 좋아서 더 멀리 더 오래 여행하는 사람은 영혼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이다. 그때 그는 세상과 멀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깊이 세상과 일체화되어 있다.
삶을 바꿔야 할 때는 "이렇게 사는 내가 싫어." 하고 내면에서 외칠 때이다. 그때 인간은 자신의 참 자아에 눈을 뜬다. 그 자아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 자아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 삶을 경험하는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다.
삶이 나를 통해 부르고 싶어 하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비록 목소리가 떨릴지라도 영혼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삶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하면, 나는 사람들이 시키는 일만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세상이 물을 때 내가 대답하지 못하면 세상이 나에게 어떤 것을 좋아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왜?”를 물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를 설명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자아가 진정으로 원할 때는 그 이유를 뛰어넘는다.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유일한 이유라면 이유이다. 자신의 삶을 산 사람은 마지막에 이해받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냥 좋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좋다. ‘도대체 왜’ 류시화의 글을 읽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잔가시 많은 선인장처럼 멀리하시라. 한번 박히면 계속 파고든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나는 류시화의 글을 읽고 있는 내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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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출판사 발행인의 쌍둥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