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내가 60이 넘어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선배 한 분이 일본의 이와나미(岩波) 문고에서 출판한 ‘논어’를 보내주었다.
이 선배님은 내가 그 실사구시의 학풍(學風)을 존경하는 분이다.
80이 훌쩍 넘은 지금도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 분이다.
나는 사실 일본어 실력이 책을 쉽게 읽을 정도가 아니라서 처음 좀 보다가 읽는 것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집에 있는 책을 보고 관심을 보이기에 주었다.
그래서 저자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일본어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조기(早期)에 책 읽기를 중단한 것은 지금 기억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를 해설하는 것을 읽고서였던 같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되지만, 대충 ‘늙으면 기력이 쇠(衰)해져서 욕망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공자를 신격화해서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이 논어를 읽어보지 않았을 때부터 내 의식에는 없던 것이지만, 실사구시(實事求是)한다면서 그 반대의 극단(極端)을 보는 것 같아서 그 책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내가 일본어에 익숙하고 학자적 관심이었다면 아마 다 읽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논어를 통해서 ‘인간 공자’의 성숙과 승리를 주로 보았다.
역사를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하듯이 나는 고전(古典)은 ‘독자와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독자와의 대화’를 방해하는 단정적인 해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문(原文)’을 자기류(自己流)로 해석하는 것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팔자에 없던 ‘논어-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수정판에서는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의 저자가 되었는데, 원래 내가 생각하던 제목은 ‘논어를 연찬(硏鑽)하다’ 였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는 노년에 접어든 공자의 정신세계를 나름으로 표현한 것이다.
욕망에서 해방된 ‘무욕(無欲)의 사람’이 아니라, 일생의 탐구와 수행을 통해 ‘욕망의 질이 바뀐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다가왔다.
1차본능의 욕망으로부터 2차본능의 욕망으로 그 질(質)이 업그레이드된 인간의 한 모델로 나에게는 다가왔는데, 그것은 인간의 질적 진화를 보편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목표로 삼기에 다른 성현(聖賢)들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리 시대에 과거 소수의 선각자들이 제시한 ‘성스러움과 거룩함에 대한 욕구’가 그 동안 축적한 물적 제도적 바탕 위에서 보통 사람들의 욕망으로 보편화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물신의 지배와 각자도생의 삶이 온통 지배하는 절망적인 상황으로도 보이지만, 물극필반(物極必反)의 관점에서 사람의 의식과 제도 그리고 문명이 대변혁하는 전야(前夜)로 볼 수도 있다.
나는 그것에서 희망을 본다.
요즘 가끔 흉몽(凶夢)을 꾼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오는 꿈을 의식적으로 어쩌지 못한다.
그 무의식의 세계를 바꿀 수행을 하기에는 나는 늙었다.
다만 노년의 자각이라면 개인적인 길흉(吉凶)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꿈은 꾸어져도 그것이 마음의 평정심을 흔들지 못하는 상태로는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