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안연편에 사람들 입에 꽤 많이 오르내리는 문장이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 대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齊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
공자는 고대 중국의 신분계급제 사회에서 살았다. 그리고 신분계급제를 부정하거나 혁파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의 언설들이 신분계급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래서 나도 젊어서는 논어 한 번 읽어보지도 않고, 공자를 수구반동의 사상적 원조 쯤으로 치부했다.
나 스스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여러 경험들을 거쳐서 노년에 논어를 처음 접하면서 공자와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자기류(自己流)의 편견(偏見)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일견 신분계급제 사회를 변혁하려는 의지를 가지지 않고 그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조용한 내파(內破)를 시도했다.
대표적인 예(例)의 하나가 ‘군자(君子)’의 정의(定義)를 바꿔치기 한 것이다.
세습적인 신분이 아니라, 신분을 떠나 ‘인격(사람됨)’으로 군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도 ‘카스트 제도’와는 다른 말이다.
군주제와 가부장제라는 제도의 한계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제도의 한계 속에서나마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부응하는 가장 바람직한 역할의 조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답다’라는 것이 그 조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불평등한 신분제 사회에서 ‘~~답다’는 것은 지배계급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사회에서나 즉 불평등이나 차별이 공식적으로 철폐된 사회라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수히 많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부모 답다’ ‘자식 답다’ 라는 말에서 그 ‘~~ 답다’의 내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지만 실제로 그 ‘다움’은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세상과 역사의 진화가 아닌가한다.
아마도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말의 하나가 ‘남자 답다’ ‘여자 답다’ 같은 말일 것이다.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불평등이 바로 남녀 간의 불평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동안 이 불평등한 남성 우위의 제도와 관습에 붙어 있던 ‘다움’은 철저히 깨지는 것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현상마저 나는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보고 있다.
(사실 나 같은 노인 세대에게는 문화 충격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빛나게 서로 실현하는 진정한 ‘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움’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조금 다른 차원의 생각이 떠오른다.
직업이 가져다주는 일종의 체취 같은 것인데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고 그 속에 갇히는 습성 같은 것이다.
내가 오래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까, 직업에서 오는 공통점들이 때로는 사람을 규정하는 답답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학자, 종교인, 언론인, 정치인, 상인 들이 가지는 일종의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 같은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둘째 아들이 뒤늦게 학자(學者)의 길을 가고 있다.
10여년 사회운동을 하다가 석사과정을 거쳐 지금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5년 째인데 아들에게서 ‘학자 냄새’를 느낄 때가 있다.
가끔 농담 삼아 아들에게 하는 말이다.
‘학자의 길을 가는 것은 필요한 것 같지만, 그 속에 함몰되지는 말아라’
‘~~다움’이 스스로를 어떤 유형의 틀 속에 묶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때로는 '학자 같지 않은 학자' '종교인 같지 않은 종교인' '기자 같지 않은 기자'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 들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