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범 "우암 송시열은 우리시대 멘토"
기자명임연희 기자
입력 2014.07.11 1
업적·자취 모은 일대기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 출간
동춘당 송준길 연구,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 등 동춘당과 우암 선생에 대한 연구서를 다수 발간한 한기범 교수(한남대)가 지난 2010년 문화재청이 보물 209호 '회덕 동춘당'의 명칭을 '대전 동춘당'으로 바꾸려한 적이 있다. 문화재 명칭에 대한 통일된 기준을 만든다며 회덕 동춘당은 대전 동춘당으로, 수덕사 대웅전은 예산 수덕사 대웅전으로, 마곡사 대웅보전은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등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문화재 명칭 앞에 현재 지명을 붙임으로써 문화재의 위치나 소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했지만 지역 학자들과 대덕구 주민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고려 태조 때부터 1000년 이상 사용해온 회덕(懷德)이라는 지명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문화재 명칭 앞에 현재 지명을 붙임으로써 문화재의 위치나 소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했지만 지역 학자들과 대덕구 주민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고려 태조 때부터 1000년 이상 사용해온 회덕(懷德)이라는 지명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지역 학자와 주민, 문화재 모임, 시민단체들은 주민 의견조사를 실시하는 등 여론을 모아 문화재청에 '대전회덕동춘당'으로 해달라고 재심을 청구해 결국 회덕 동춘당을 지켜냈다.
동춘당이 소재한 대덕구 주민들이 이처럼 회덕이란 지명과 동춘당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은 '대덕학' 강좌 때문인데 주민들에게 회덕의 역사, 동춘당과 우암 선생의 사상을 가르친 사람이 한남대 사학과 한기범 교수다.
한 교수는 “대덕의 지명적 연원은 회덕(懷德)인데 마음에 덕을 품는다는 뜻의 회덕은 군자의 고장이자 선비의 고장"이라며 "군자는 덕을 품고 소인은 자기 자신(흙)만을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는 말처럼 회덕은 1000여년의 역사적 숨결이 살아있는 대전의 발원지이자 뿌리"라며 회덕의 역사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런 이유로 회덕은 학문은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동춘당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 같은 대학자를 배출한 예학과 선비의 고장”이라고 했다.
생거지와 유배지 따라가며 삶과 업적, 자취 담은 우암 일대기
그동안 동춘당 송준길 연구,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 등 동춘당과 우암 선생에 대한 연구서를 다수 발간한 한 교수가 이번에는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를 펴냈다.
이 책은 우암의 생거지와 적거지(유배지)를 차례로 따라가며 그 곳에 담긴 우암의 삶과 업적, 자취를 꼼꼼히 모은 우암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한 교수가 낸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에 이은 새로운 버전의 '우암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암의 생거지로는 ▲옥천 구룡촌 ▲회덕 송촌 ▲영동 황간 ▲진잠 성전 ▲회덕 소제 ▲공주 원기 ▲여산 황산 ▲수원 만의 ▲서울 송동 ▲괴산 청천 ▲회덕 남간이 소개되고 있다.
또 적거지로는 ▲함경도 덕원 ▲경상도 장기 ▲경상도 거제 ▲제주 유배길(논산~강진) ▲전북 정읍(후명)이 꼽힌다.
책을 쓴 계기에 대해 한 교수는 "선비가 그리워지는 세상"이라며 "우암의 생거지와 적거지를 따라 그 행적과 자취를 돌아다보면 우암은 가정과 향당, 조정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실천한 참 선비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암에 대한 후대인들의 평가는 긍정 부정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암의 진면목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어떤 인물을 바로 보려면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물연구에서 평전(評傳)이 중시된다"고 설명했다.
큰 눈으로 보면 우암이 추구한 세상은 의리가 존중되고 예의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문명(文明)의 세상이었다. 그것은 당시의 주류 조선 지식인들이 추구하던 이상 세계였으며, 앞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 역시 종국적으로는 인간의 가치와 도리가 중시되고 예의가 존중되는‘문명의 세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우암 직(直, 곧 정직)으로 무장해 올곧은 선비 길 걸은 ‘대로(大老)’
동춘당이 소재한 대덕구 주민들이 이처럼 회덕이란 지명과 동춘당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은 '대덕학' 강좌 때문인데 주민들에게 회덕의 역사, 동춘당과 우암 선생의 사상을 가르친 사람이 한남대 사학과 한기범 교수다.
한 교수는 “대덕의 지명적 연원은 회덕(懷德)인데 마음에 덕을 품는다는 뜻의 회덕은 군자의 고장이자 선비의 고장"이라며 "군자는 덕을 품고 소인은 자기 자신(흙)만을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는 말처럼 회덕은 1000여년의 역사적 숨결이 살아있는 대전의 발원지이자 뿌리"라며 회덕의 역사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런 이유로 회덕은 학문은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동춘당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 같은 대학자를 배출한 예학과 선비의 고장”이라고 했다.
생거지와 유배지 따라가며 삶과 업적, 자취 담은 우암 일대기
그동안 동춘당 송준길 연구,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 등 동춘당과 우암 선생에 대한 연구서를 다수 발간한 한 교수가 이번에는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를 펴냈다.
이 책은 우암의 생거지와 적거지(유배지)를 차례로 따라가며 그 곳에 담긴 우암의 삶과 업적, 자취를 꼼꼼히 모은 우암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한 교수가 낸 '우암 송시열의 학문과 사상'에 이은 새로운 버전의 '우암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암의 생거지로는 ▲옥천 구룡촌 ▲회덕 송촌 ▲영동 황간 ▲진잠 성전 ▲회덕 소제 ▲공주 원기 ▲여산 황산 ▲수원 만의 ▲서울 송동 ▲괴산 청천 ▲회덕 남간이 소개되고 있다.
또 적거지로는 ▲함경도 덕원 ▲경상도 장기 ▲경상도 거제 ▲제주 유배길(논산~강진) ▲전북 정읍(후명)이 꼽힌다.
책을 쓴 계기에 대해 한 교수는 "선비가 그리워지는 세상"이라며 "우암의 생거지와 적거지를 따라 그 행적과 자취를 돌아다보면 우암은 가정과 향당, 조정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실천한 참 선비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암에 대한 후대인들의 평가는 긍정 부정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암의 진면목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어떤 인물을 바로 보려면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물연구에서 평전(評傳)이 중시된다"고 설명했다.
큰 눈으로 보면 우암이 추구한 세상은 의리가 존중되고 예의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문명(文明)의 세상이었다. 그것은 당시의 주류 조선 지식인들이 추구하던 이상 세계였으며, 앞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 역시 종국적으로는 인간의 가치와 도리가 중시되고 예의가 존중되는‘문명의 세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우암 직(直, 곧 정직)으로 무장해 올곧은 선비 길 걸은 ‘대로(大老)’
한남대 한기범 교수.한 교수는 "우암이 오늘의 우리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지적 자산은 결코 적지 않다"면서 "우암은 직(直, 곧 정직)의 정신으로 무장해 올곧은 선비의 길을 걸었고, 학자로서 송자(宋子)에 이르렀고, 학덕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었으며, 한 시대 산림(山林)의 종장이었고, 북벌(北伐). 예치(禮治)를 국가대의로 내걸고 시대를 이끌어 간 ‘대로(大老 : 나라의 큰 어른)’였다"고 소개했다.
한 교수는 현재 우리사회를 '위기'로 규정했는데 "내적으로는 심각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사회기강과 질서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고, 외적으로는 일본의 재무장과 북한의 핵무장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우리가 이러한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 ‘안전 대한민국’, ‘문명 대한민국’, ‘복지 대한민국’, ‘통일 대한민국’을 시대적 과제로 내세운다면, 큰 선비 우암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시사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한다"면서 "전통과 현대의 접맥이라는 차원에서 이 책에 실린 우암의 행적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했다.
한기범 교수
한 교수는 현재 우리사회를 '위기'로 규정했는데 "내적으로는 심각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사회기강과 질서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고, 외적으로는 일본의 재무장과 북한의 핵무장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우리가 이러한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 ‘안전 대한민국’, ‘문명 대한민국’, ‘복지 대한민국’, ‘통일 대한민국’을 시대적 과제로 내세운다면, 큰 선비 우암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시사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한다"면서 "전통과 현대의 접맥이라는 차원에서 이 책에 실린 우암의 행적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했다.
한기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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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
목차
책머리에
01 옥천 구룡촌
02 회덕 송촌
03 영동 황간
04 진잠 성전
05 회덕 소제
06 공주 원기
07 여산 황산
08 수원 만의
09 서울 송동
10 괴산 청천
11 회덕 남간
적거지
1차 적거지
01 함경도 덕원
02 경상도 장기
03 경상도 거제
2차 적거지
01 제주 유배길(논산-강진)
02 제주 유배
03 전북 정읍(후명)
부록
01 우암의 초장지와 이장지
02 우암의 원사(서원ㆍ사우)
책말미에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우암에 대한 후대인들의 평가는 긍정 부정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암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어떤 인물을 바로 보려면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인물연구에서 평전(評傳)이 중시되는 까닭이다. 이 책은 우암의 생거지와 적거지(유배지)를 차례로 따라가며 거기에 담긴 우암의 삶의 모습과 업적과 자취를 꼼꼼히 모은 우암의 일대기이다. 새로운 버전의 《우암 평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비가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우암의 생거지 적거지를 따라 그 행적과 자취를 돌아다보면 우암은 가정과 향당과 조정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실천한 참 선비였음을 곧 알 수가 있다. 큰 눈으로 보면 그가 추구한 세상은 의리가 존중되고 예의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문명(文明)의 세상이었다. 그것은 당시의 주류 조선 지식인들이 추구하던 이상 세계였으며, 또한 앞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 역시 종국적으로는 인간의 가치와 도리가 중시되고 예의가 존중되는 ‘문명의 세상’이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암 송시열이 오늘의 우리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지적 자산은 결코 적지 않다. 우암은 직(直, 곧 정직)으로 무장하여 올곧은 선비의 길을 걸었고, 학자로서 송자(宋子)에 이르렀고, 학덕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었으며, 한 시대의 산림(山林)의 종장이었고, 북벌(北伐)과 예치(禮治)를 국가대의로 내걸고 시대를 이끌어 ‘대로(大老 : 나라의 큰 어른)’로 추앙되었던 큰 인물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위기국면에 봉착하여 있다. 내적으로는 심각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사회기강과 질서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고, 또 외적으로는 일본의 재무장과 북한의 핵무장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시대적 제모순을 극복하고 ‘안전 대한민국’, ‘문명 대한민국’, ‘복지 대한민국’, ‘통일 대한민국’을 시대적 과제로 내세운다면, 큰 선비 우암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시사를 줄 수 있을까? 전통과 현대의 접맥이라는 차원에서 이 책에 실린 우암의 행적들과 함께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발행(출시)일자 2014년 05월 10일
쪽수 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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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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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yd*****|2014.07.12|신고/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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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 큰 선비의 삶을 따라가 보자.
조선후기사를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우암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효종과 함께 산당의 주역으로 북벌을 주도하였으며, 주자학의 대가이자 산림유현이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예송에서는 서인계의 예론을 이끌기도 하였다.
송시열은 2차 예송의 결과로 6년동안 귀양살이를 해야했고, 숙종의 원자정호 문제로 제주도로 2차 유배를 떠났다가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등 정치적인 부침도 많았지만, 송시열은 '直'으로서 선비의 삶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남긴 '인통함원 박부득이(忍痛含寃 迫不得已)' 즉 '아픔을 참고 원통함을 머금고 어찌할 수 없어서 한다'며 북벌의 뜻을 이어갈 것을 제자들에게 주문한 그의 유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시열은 사후에 복권되어 문묘에 종사되었고, 정조는 '양현전심록'편찬과 '송자대전'간행을 비롯하여 송시열을 효종의 묘정에 배향하는 등 다양한 추숭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렇다면 이렇듯 여러가지 업적과 뚜렷한 삶의 족적을 남긴 우암 송시열의 저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역사적 인물을 바라볼 때 중앙에서의 정치활동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우암 송시열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가계와 내력, 그리고 생활철학과 삶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기범 교수가 지은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는 그 역할을 가장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책이다. 송시열이 옥천 구룡천에서 태어나서 정읍에서 숙종의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보자.
거기에는 선비의 일상과 17세기 명청교체기를 살았던 치열한 고민과 실천의식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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