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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h ·
새벽의 독서 산책
박석 지음 '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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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음악에 지대한 관심과 소질이 있었다. 그는 고대의 순임금이 만들었다는 소(韶)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음률에 석달 동안 고기맛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공자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은 물론 개인적인 취향도 있었겠지만 음악의 정치적 사회적 효용성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 음악 이론을 집대성한 ⌈예기⌉의 ⌊악기⌋편에서는 예(禮)와 악(樂)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악(樂)이란 동화하는 것이요,
- 예(禮)란 차별하는 것이다.
동화되는 즉 서로 친하게 되고, 차별하는 즉 서로 공경하게 된다.
악(樂)이 앞지르게 되면 넘쳐흐르게 되고, 예(禮)가 앞지르게 되면 소원하게 된다.
성정에 화합하고 용모를 가꾸는 것은 예악(禮樂)의 일이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조화로움이고
예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질서다.
조화로우므로 만물이 모두 화육되고 질서가 있으므로 만물이 모두 구별된다.‘
고대 중국에서 예의 본질은 사회계층과 신분에 놓인 질서의 확립이다.
그리고 그 질서란 차별적인 것이다.
이렇게 차별적인 질서가 확립될 때 사회는 안정된다.
그러나 차별성을 강조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소원해지고 사회는 삭막해진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악(樂)이 필요한 것이다. 악(樂)의 본질은 서로 동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가까워진다.
예란 천지의 질서이고 악이란 천지의 조화로움이라고 강조한다.
공자는 일찍이 순임금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름다움과 선함이 극진하다고 했다.
그러나 무왕이 만든 음악을 듣고는 아름다움은 극진하지만 선함은 극진하지 않다고 평했다.
미(美)와 선(善)이 하나가 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는 예가 우선이고 악은 예를 보조하는 수단이지만,
개인 수양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조금 다르다.
공자는 ‘논어’에서 “시에서 일으키고, 예에서 세우고, 악에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라는 말을 했다.
- 시를 통하여 도의적 감흥을 일으키고
- 예를 통하여 인류의 규범을 세우고
- 마지막으로 악을 통하여 인격도야를 완성한다는 뜻이다.
악은 예보다 한 차원 높은 것으로 유가적 수양의 마지막 단계에 필요한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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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 느낌
봉건군주제의 신분계급사회에서 발전한 고대 중국의 예와 악에 대한 사고의 한계에서 공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신분계급에 바탕을 둔 차별적인 질서(禮)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공자를 변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도 그런 생각을 오랫 동안 해왔었다. 그리고 60이 훌쩍 지나서 비로소 논어를 접했다.
그리고 논어 속에서 그 시대의 한계와 그 속에서도 보편적 이상을 추구하며 고뇌한 한 사람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었다.
예禮를 차별적 질서로 보지 않고, 신분계급제를 넘어서
인간이 추구해야할 본연(本然)의 아름다운 질서로 보려고 한 흔적들이 논어에는 많이 나온다.
나에게는 그런 면이 보여오다 보니까 아마도 유가(儒家) 일반의 해석과는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마 내 주관적 해석도 많을 것이다. 단지 인류의 선각자로서 그 원석(原石)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예(禮)보다 악(樂)을 상위로 본 것 또한 단지 수양의 최고 단계로서가 아니라, 차별적 질서 속에서 보편적 이상을 추구한 공자의 고뇌의 일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너무 공자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제 공자의 팬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는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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