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

Namgok Lee 박석 ‘인도의 문화적 토양과 석가모니의 깨달음’이라는 장(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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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1 h  · 
생활의 리듬으로 새벽에 독서를 하고 내용을 발췌해서 기록해 본다.
속독(速讀)의 부족함을 메꾸기도 하고, 내 의견을 첨부하기도 할 겸.
박석 지음 “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를 계속 읽고 있다.

오늘은 ‘인도의 문화적 토양과 석가모니의 깨달음’이라는 장(章)에서 일부 발췌.
(* 인도와 석가모니를 빼고, ‘문화적 토양과 깨달음’이라고 하면 상당히 보편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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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화광동진의 관점에서 예수와 공자의 삶과 가르침과 명상을 살펴 보았는데 이 장에서 석가를 이야기하겠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석가의 삶과 가르침과 명상은 예수와 공자의 중간이다. 
앞에서 예수와 공자를 비교할 때 이미 짐작했겠지만 개인의 삶과 깨달음은 그가 속한 사회분위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중국은 기원전 11세기를 전후로 은나라에서 주나라로 넘어가면서 종교적 무속적 사회시스템에서 예(禮)와 악(樂)이 중심이 되는 사회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모든 것을 저 초월적인 하늘과 신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던 신본주의에서 인간 중심, 땅 중심의 인문주의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문주의의 방점을 방점을 찍은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기원전 5~6세기에 이르러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낡은 종교인 브라만교가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자 새로운 사상운동이 일어났다.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대부분 사상가들이 천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데 비해 인도의 사상가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존재의 근원적 고통을 해결하고 해탈에 이를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이는 사회문화적 코드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에 이미 예(禮) 시스템이 중요한 사회문화적 코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춘추전국 시대의 수많은 사상가들이 예(禮) 범주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사상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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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드에 반대한 사상가들도 이런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바탕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인도에서는 종교가 사회문화의 가장 중요한 코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상운동에서도 어떻게 하면 낡은 종교인 브라만교를 개혁하여 새로운 사회에 어울리는 종교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석가가 왕의 길을 포기하고 출가의 길을 걸었던 것은 당시 인도사회에서는 종교가 정치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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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문적 토양인도의 종교적 토양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의 하나. 

사회문화적 코드 또한 시대의 변천과 인지의 발달 그리고 사회의 진화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우열(愚劣)로 단순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물론 인도에서 불교는 토착적인 종교에게 밀렸지만, 인도의 사상 풍토에서 발전한 불교는 어떤 점에서 화광동진의 인문적 유교보다 존재에 대한 성찰의 깊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현대 즉 물질과 제도의 진화가 상당수준으로 진척된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제기되는 ‘관념계에 내재하는 근원적 부자유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단히 귀중한 정신적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면이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의 사회문화적 코드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 a] 중국의 유교를 비롯한 여러 사상들, 그리고
  • b]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와 중국을 통해 변화된 내용들, 
  • c] 근대 이후 서양의 기독교 문화를 
시대를 거쳐가면서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식민지 분단 동족상쟁의 전쟁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급속하게 이루어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하는 나라로 되었다.
지금 사회적으로는 극심한 양극화, 정신적으로는 극심한 문화지체 속에서
과도기적 혼돈을 겪고 있지만, 그것을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다면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을 일구는 대단히 좋은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혼돈과 쇠퇴의 길일 갈 것인가? 새로운 문명을 향한 창조의 길을 갈 것인가?
요즘의 혼돈 속에서 그 바탕의 힘을 살리는 노력이 이 시대 우리 공동체에 부여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