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0

알라딘: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은이),조성기 (옮긴이)김영사2007-12-14초판출간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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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심리학자 칼융의 사상과 생애의 정수를 담았다고 할 수 있는 자서전.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이던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대담을 해서 모아진 글들을 다시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보아서 만들어졌다.




무의식의 깊숙한 밑바닥에 놓여 있는 자기(self)가 집단무의식을 담지한 원형의 세계라면, 보다 표면적인 자아(ego)는 의식과 분별의 세계이다. 이성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아의 세계가 전부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중심은 아니다.




원형의 세계, 곧 자기는 끊임없이 자아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려 한다. 그 매체는 바로 꿈의 상징들. 꿈은 나를 넘어선 세계와 나의 세계가 연결되는 지대,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되는 지대, 문명화된 세계의 손상된 삶이 온전히 회복되는 지대인 것이다.




융은 이 책 전편에 걸쳐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의 꿈과 환상을 분석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는 신호들을 포착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법학과 신학을 전공한 소설가 조성기 씨가 번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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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 서문-자서전 문학의 백미 6

일생을 사로잡은 꿈-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23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38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55
너는 누구냐? 68
자연과 사원 86
두 인격의 어머니 95
악의 기원 111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123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139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146

아름다운 시간들-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163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177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191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203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221
꿈의 분석 248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259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275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291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315
필레몬과의 대화 329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344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365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383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401
카르마 415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427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441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453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487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504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513
융합의 신비 519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531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543
단일성과 무한성 559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577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600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618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623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628

편집자의 말-A. 야페 631
카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 개념 및 용어 646
찾아보기 654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1875년에 내가 태어나고 여섯 달이 지났을 때, 나의 부모는 투르가우주(州) 보덴호숫가의 케스빌에서 라인폭포 상류에 위치한 라우펜성의 목사관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유년시절의 영원성이 번개와도 같이 내게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이 ‘영원성’이 의미하는 바는 곧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분명해졌다. 나 자신과의 불화와 거대한 세계 속에서의 불확실성은 나로 하여금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조치를 하게 했다. - p.48 중에서


드디어 나는 악과 그 세계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괴테는 나에게 예언자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가 메피스토텔레스를 단순한 놀이나 요술로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지나치게 신학적이요, 너무 경박하고 무책임한 일로 보였다. 괴테도 악을 해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간교한 주장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 p.118 중에서 접기


우선 나에게 인상깊었던 것은 아니마의 부정적 측면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 있는 것이 느껴지는 그녀 앞에서 나는 좀 주눅이 들었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다르게 맺으려고 시도하여 내 환상의 기록을 그녀를 향한 나의 편지라고 간주했다. 이를테면 나의 의식과는 다른 관점을 취하는 나 자신의 어떤 부분에게 편지를 보내는 셈이었다. 그런데 나는 뜻밖의 특이한 회답을 받았다. 나 자신이 마치 한 여성적인 혼에 의해 분석을 받는 환자처럼 여겨졌다! - p.304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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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3년 4월 19일


저자 및 역자소개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지은이)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 분야의 확장에 힘쓰다가 서로 견해가 맞지 않아 결별하고 분석 심리학을 개척했다.
저서로는 『원형과 무의식』『무의식의 심리학』『아이온』『융합의 신비』 등이 있다.
최근작 : <BTS가 주목한 융의 재발견>,<환상 분석>,<심리 유형> … 총 146종 (모두보기)



조성기 (옮긴이)



195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1985년 『라하트 하헤렙』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1991년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야훼의 밤』, 『슬픈 듯이 조금 빠르게』, 『바바의 나라』, 『우리 시대의 사랑』, 『욕망의 오감도』, 『너에게 닿고 싶다』, 『굴원의 노래』, 소설집 『왕과 개』,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 『종희의 아름다운 시절』,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 등이 있다.


최근작 :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고교생 필독 소설선 2>,<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십일조는 누구의 것인가> … 총 128종 (모두보기)




Editor Blog


2008년 내맘대로 좋은 책 연말 스페셜! l 2008-12-23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칼 구스타프 융 지음 / 김영사마침내 <융 기본 저작집>이 완간되고 두툼한 평전인 <융 - 분석심리학의 창시자>까지 나와 반가운 한 해. 두 권 모두 꼽기에 손색 없지만 굳이 재출간 된 자서전을 고른 이유는 그 중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닥 멋진 이유는 아닐지몰라도 굳이 그런 이유를 찾을 필요가...

2008년 1월 내맘대로 좋은 책 l 2008-01-18


올해 초반까지, 알라딘 편집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내맘대로 좋은 책이 잠시 연재를 중단(?)한 사이, 신입 편집직원 두 분이 오셨습니다. (누구일까요, 찾아보세요^^;) 편집장님도 바뀌었구요. 여러분들도 모두 별고 없으셨길 바라며, 새로 꾸린 편집팀에서 2008년 내맘대로 좋은 책 첫번째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만원 지하철도 무섭지 않았습니다."건...




출판사 소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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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생각코딩, 머리를 잘 쓰는 사람들의 비밀>등 총 1,177종
대표분야 : 요리만화 1위 (브랜드 지수 355,389점), 사회/역사/철학 1위 (브랜드 지수 672,461점), 과학 2위 (브랜드 지수 393,25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융의 사상과 생애를 완성하는 최후의 자서전!
그의 사상세계로 들어가는 흥미진진한 입문서!

이 자서전은 가히 융의 사상과 생애의 정수를 담았다고 할 만하다.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이던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대담을 한 결과 엮은 글을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보았다. 무의식의 깊숙한 밑바닥에 놓여 있는 자기(self)가 집단무의식을 담지한 원형의 세계라면, 보다 표면적인 자아(ego)는 의식과 분별의 세계이다. 이성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아의 세계가 전부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중심은 아니다. 원형의 세계, 곧 자기는 끊임없이 자아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려 한다. 그 매체는 바로 꿈의 상징들. 꿈은 나를 넘어선 세계와 나의 세계가 연결되는 지대,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되는 지대, 문명화된 세계의 손상된 삶이 온전히 회복되는 지대인 것이다. 융은 이 책 전편에 걸쳐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의 꿈과 환상을 분석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는 신호들을 포착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한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 자서전에는 자신의 사상과 분석심리학을 형성해가는 융의 삶의 궤적이 감동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융은 유년시절에 이미,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는 밝은 대낮세상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동시에 무섭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피할 길 없는 어둠의 세계를 예감한다. 대수(代數)를 아주 자명한 것으로 큰소리치는 수학선생에게서 불안을 느낀 학창시절에는 성서와 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서 괴테의 <파우스트>와 칸트와 쇼펜하우어와 자연과학에서 답을 찾고자 했으며, 대학시절에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궁핍해졌으나 니체를 읽고 마침내 정신의학의 길로 들어선다. 마술사와 같은 명의(名醫)로 명성을 얻어 수많은 환자들의 꿈과 환상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정신의학의 길을 개척한 과정,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신화와 환상을 통한 인간 마음의 진실에의 접근, 정신의 불멸과 맞닿은 ‘신의 문제’와 정신의 사멸과 맞닿은 ‘죽음의 문제’에 대한 탐색, 연금술의 발견 등,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이룩한 한 위대한 인간의 가장 충실한 자기실현의 역사가 오롯이 드러난다.

융의 자서전은 이전에도 몇 차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나, 심리학의 기초를 이루는 의학과 자연과학뿐 아니라 역사와 신화는 물론 신학과 연금술을 넘나드는 카를 융의 생애와 사상을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어실력뿐 아니라 인문 전 분야에 대한 소양, 정확한 한글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 능력, 카를 융처럼 신에 대한 갈등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번역에 둘도 없는 적임자인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는 카를 융 자서전 번역의 결정판을 내놓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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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제가 변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책 중 아마 자서전도 그 중 한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싶네요. 프로이드에 대한 중요 저작들은 대충 다 들여다 본 것 같은데 융은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원형’이니 ‘집단의식’이란 개념자체가 제겐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렸거든요. 오쇼는 어느 책에서 프로이드나 융이나 전부 정신병자들이라고 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쇼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겁니다. 만일 오쇼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융에 대한 평가는 아마 크게 바뀌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책을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만 영성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도 꽤 도움이 되는 책일 것입니다. 제가 예전엔 무시하곤 했던 그의 특징들 때문인데요, 그는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신비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첫 장에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라고 선언합니다. 곧이어 “엄밀히 말해 나의 생애에 이야기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적 체험들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융의 용어로 말하자면 내적 체험이란 결국 ‘제2의 인격’을 뜻합니다. “밖으로 나가지 마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대개의 자서전은 자신이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떠벌리는데 반해 융은 자신의 내적 세계, 즉 ‘제2의 인격’을 통해 삶의 의미를 포착하고자 합니다.

“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에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

그는 분명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의 도움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그러한 앎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가 인도를 여행했을 당시, 만약 그가 원했다면 그는 유명한 인도의 여러 성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내가 성자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진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나에게 도둑질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하고, 나의 내면이 말하는 것이거나 본성이 내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살아야한다.”

다소 고지식해 보이는 선언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자와 같다”라고 말할만큼 자신에게 철저해지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깨친 의식으로 그가 깨우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 꿈을 통해서 였습니다. 꿈속에서 어떤 요기(Yogi: 요가 수행자)한 사람이 제단 앞 바닥에 연꽃 자세로 앉아 있길래 가까이 가서 얼굴을 보았더니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고 하죠. 그가 잠에서 깨어나 깨달은 건 ‘아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고, 그가 깨어난다면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마치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일화를 통해, 그는 우리의 무의식적 존재가 참다운 것이고 우리의 의식 세계는 일종의 환상이거나 가상적 현실이라고 여기게 되는데, 그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사유는 힌두교의 ’마야‘와 별반 다른 내용이 아닙니다. 결국 그는 그의 ‘자기인식’이란 것이 고대 기독교의 ‘신(神)인식’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는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

우리가 만일 본질적인 것, 혹은 무한한 것을 받아들인다면 융의 입장에선 온갖 대극을 이루는 이원론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 ”(고린도 전서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따옴표 속에 넣은 것은 그 말이 단지 열망, 선호, 총애, 소원등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고 개체보다 우월한 전체, 하나인 것,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


자신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던 융이 도달한 곳은 결국 신을 인식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사랑을 통해서 이를 수 있는 것이겠죠?






융의 가장 유명한 일화는 신에 관한 물음일 겁니다. ‘신을 믿습니까?’란 질문에 “아뇨,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알뿐입니다.”라고 답했다죠. 언제쯤 저는 신을 믿음으로서가 아니라 ‘지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런지요?


시이소오 2016-10-06 공감 (44) 댓글 (3)



자서전은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최적화된 책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이 설명하는 나란 주제가 자서전의 처음과 끝을 채워넣는다. 하여 자서전은 자기고백체의 문장을 구사한다. 용기 있는 저자라면 치부를 드러내놓기도 할 것이다. 이 솔직함이 자서전을 다시 펴보게 한다. 일생 살아온 자신을 설명하자니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자서전은 대부분 그랬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조성기 옮김, 김영사 펴냄 2007년)을 읽고나선 그 생각을 바꿨다. 자서전은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이후에 읽어야 제대로 독해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서평 덕분이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정여울은 융의 자서전을 1천자의 감상으로 요리해 냈다. 짧고 알차게 쓰기란 항상 어렵다. 그 서평을 통해 프로이트 보다는 덜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융에 대해 신비한 관점을 갖게 됐다. 서평 한 편의 위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막상 융의 자서전을 독파하며 보낸 20일은 쉽지 않은 하루하루 였다. 융의 자서전을 섭렵하고서야 비로소 그가 왜 프로이트 만큼의 대중성을 얻지 못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의 심리 이론들은 한마디로 난해하다. 그 난해함은 융의 이론서보다 한층 자서전에서 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독서를 중단할 수 없는 묘한 `끌림'을 계속 발산했다. 소설가 조성기의 무난한 번역도 한 몫했다.

이 끌림은 역설적으로 그의 `난해함'에서 발원한다. 자서전으로 일생을 전념한 융의 사상과 이론을 정리할 순 없다. 하여,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나처럼 융 사상의 입문서로 자서전 읽기를 택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융은 죽기 4년 전인 1957년 구술을 통해 자서전 집필을 시도했다. 구술이란 방법을 택한 것은 그가 여든을 넘은 나이로 병약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서전의 상당 부분을 그는 직접 서술하기도 했다. 어떤 장들은 도저히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고, 진중한 자기고백체의 문장으로 다듬을 필요을 느꼈다. 융 말년의 최후, 최고의 저술이기도 한 자서전은 그럼에도, 사후 출판될 태생적 운명을 갖고 출발했다. 융이 사후 출판을 강력 요구했기 때문이다.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 11쪽, <기억 꿈 사상>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목사인 아버지 아래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났지만, 융은 아버지와 같은 맹목적 믿음을 거부했다. 어느 순간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꺼리게 된다. 커 가면서 그는 아버지의 신앙이 어떤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융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버렸지만, 자신의 생각아래서 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신앙은 고통스런 사유와 행동을 통해 다시 인간안에서 새롭게 획득된다고 믿었다. 그는 심령현상, 기적, 우연성을 가장한 초현실의 사건이 우리 세계에서 이성과 양립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융의 묘비명에는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고 적혀 있다.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생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 나는 그분을 믿는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 "






융과 프로이트의 만남과 결별은 20세기 정신분석학 발전 역사에서 큰 사건이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성적 트라우마로 돌린 프로이트는 당시 학계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꿈의 해석>을 읽고 융은 프로이트의 사상에 일부분 동조하게 된다. 융은 당대 정신의학계에서 나름의 입지를 갖고 있었지만, 프로이트를 지지하는 것이 알려지면 큰 타격을 입게 돼 있었다. 그럼에도, 융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 고 말하며 그와 교제를 시작했다. 드디어 1907년 2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프로이트를 찾아가 무려 13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융과 프로이트는 연구의 방향이 달랐다. "신비주의와 이성주의"간 교제는 7년간 이어가다 결별의 수순에 이르고 말았다.






이 자서전에서 융은 유년 시절부터의 꿈을 많은 부분 복원시켜 놓았다. 기억력 자체도 놀랍지만 융은 꿈의 분석과 복원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그 과정속에서 존재와 심리 세계의 의미를 추적한다. 융이 발전시킨 다양한 분석심리학의 개념들이 발견된 것도 자신의 꿈 속에서였다. 원시성과 태고의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고 신화와 민담의 세계에서도 발견되는 `원형', 인류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저장해 온 모든 잠재적 기억흔적인 `집단 무의식',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인 요소로 불리는 `아니무스' 등 이 모든 개념들은 이름없는 임상 환자들의 만남과 더불어 자신의 꿈의 분석과 추적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심지어 하나의 견해를 짜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 견해가 언제나 하나의 가설로 남고,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 535쪽

솔직히 융의 심리학 이론에 대한 예비지식 없이 이 방대한 자서전을 읽는 일은 모험이었다. 융은 이 자서전의 학문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하여, 사후에 출판되길 원했던 것이다. 모든 연구적 성과들과 그의 심리학 이론들은 깊이없이 다루어진다. 후일담이나 신변잡기적 감상, 무엇에도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서술하길 원했던 책이라 그런지 그의 사상 보다는 주로 삶과 경험에 치중한 자서전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오면서 융은 좀 더 친절하고 고백적이다. 융은 세계 대전을 경험한 유럽 사회와 사람들의 이성주의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비판적 이성이 신화적 관념과 사후의 삶에 대한 관념까지도 죽여버린 현실을 통탄한다. 그는 의식과 얕은 지식으로 세계와 인간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론 우리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무의식으로 표현되는 인간정신의 심연을 헤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여,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대지를 `비밀로 가득 찬 세계'라 표현한다. 이 세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된다고 말한다. 융은 오직 그런 태도를 사람들이 가질 때에야, 우리 세계와 삶은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보았다. 거기에 하나를 더 정직히 보탠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심령현상을 보고한다. 지인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환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놓는 것을 볼 때, 그의 심리학이 왜 비과학적이란 비난을 받았는지 독자는 깨닫게 될 터다.

이것에 대한 융의 답변은 분명하다. 존재와 우주, 그리고 세계가 과연 이성으로, 과학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심령현상을 경험했다. 그것은 예감이나 물리적 사건, 우연의 일치라는 모습으로 현실 세계에 등장한다. 신앙의 세계에 들어서면 이같은 심령현상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모습을 띄기도 한다.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고 융은 잘라 말한다. 융 심리학이 신비주의와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무의식 자체가 그런 성질을 이미 갖고 있다. 20세기 초반 프로이트와 융을 통해 무의식이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성주의로 대표되는 `의식'이 인간의 총체적 정신이라고 착각해 오지 않았던가?

융 심리학은 난해하고, 비과학적이란 비판은 합당할까? 융의 자서전은 정확히 그런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노학자가 정직히 고백하는 것처럼 "세계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고백 자체도 쉽지 않은 것이 권위를 중시하는 학자들의 습성이다. 하지만, 융은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우리 세계에 `비밀로 가득 찬'이란 수식어를 넣었다. 인간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얼마나 황폐한 타락과 일탈로 나아갔는지 살아있는 인간의 역사가 증거한다. 사람은 의식으로 살지만, 그것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 무의식이란 대해와 심해를 기억하라. 이 자서전은 인간 융이 내면을 향해 띄운 무의식의 탐사선이었다.


개츠비 2014-03-05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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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나이가 들어가면 타협과 체념과 친해진다. 가장 비극적인 타협은 무의미와 하는 악수다. 내가 유한한 존재이고 나의 삶이 역사책의 주석 한 줄에도 끼이지 못하고 그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를 담담하게 읽어 낼 수도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악의 현존도 수긍하고 감내해야 한다.


감히 삶의 의미, 본질 따위를 논할 수 있는 오만은 예술작품과 종교들이 떠맡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전부인 마냥 오도방정을 떠는 드라마에 중독되고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자문하는 문학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착각일지라도 나의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그냥 어쩌다 뻗어나온 잔챙이 정도로 나와 나의 삶이 폄하되는 것을 맨정신으로 견딜 자신은 잘 서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마냥 취해 있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우리보다 질기다. 우리보다 세다. 우리가 죽고도 남는 것들은 쉼보르스크의 말처럼 박물관에 갈 것이다.


독특한 자서전이었다. 태어나 살고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집착하는 것 같은 외연적인 풍경은 희미한 자서전. 오히려 내면적인 의식의 흐름과 인식의 성숙에 초점이 맞추어져 독자를 아리송하고 난감하게 하는 약간은 불친절한 자서전이었다. 자신의 생애가 외적인 경험면에서 빈약하다,는 프롤로그에서의 그의 엄중한 경고를 명심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자서전이 출간되지 않는 조건으로 제자이자 비서에게 이 자서전의 내용을 구술하게 된다. 여든이 넘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 융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라고 말한다.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는 사실 좀 난감했다. 끊임없이 언급되는 꿈의 얘기, 연금술에 대한 천착, 신비주의적인 태도가 낯선 이물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이물감은 어느덧 하나의 감동과 경탄의 감정 속에 녹아 버렸다. 어쩌면 불편한 낯섦이 나의 무의식의 원형으로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 뚫어야 했던 투박한 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융 자신도 대부분의 사람과 자신과의 차이점을 '칸막이벽'들이 투명하여 그 뒤의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더욱더 큰 본질적인 것, 의미로운 것들과의 연결 속에서 자기를 응시하는 자아의 모습이 결국 융이 얘기하고자 하는 궁극의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의 기억들을 조각조각 이미지로 떠올리며 마치 꿈같다,고 느끼고 지금 집착하고 경험하는 것들이 순간 순간 무의미하다고 되새김질할 때 단편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실재이다. 그러니까 나는 안다. 지금의 것들이 언젠가는 다 무너지고 스러지고 마침내 '내'가 '나'라고 느끼는 이 절대적일 것만 같은 존재의 주체감마저 흩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이 허무의 지점에서 그 두껍고 무거운 철책을 더 밀고 나가 마침내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 역사들, 신화들의 거대한 원형의 흐름 속에 그 허무를 싣고 장려한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 것이 그의 위업이다. 결국 융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나는, 태어나 마땅했고 숨쉬고 꿈꾸고 사랑하며 어떤 더 큰 뿌리와 의미로 내달아 가도록 되어있는 숙명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얘기하는 숙명은 비극적이고 허무한 의미의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론적 진동과 닿아 있는 그것이다. 그의 유신론이 교화적인 것이 아닌 지점과도 겹친다.


다름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것을 홀로 안다고, 생각했던 그는 실로 고독했다.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했고 그럼에도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음에 때로 두려워하고 절망하기도 했다. 그의 절망은 아집이나 오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던 고백은 그의 노년에서도 유효했다. 그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이 너무나 큰 것이 때문에.


인생과 인간을 무한히 크고 의미있는 것으로 세우는 일이 이 시대에는 이단으로 취급받는다. 현세의 욕구충족과 악의 현신에 걸치적거리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수단화하고 기계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욕망에 비끄러 매는 것은 사실 삶과 존재의 의미를 흐리멍덩한 것으로 지워 버려야 가능한 일들이다. 생떼같은 젊은이들이 산재로 스러진 얼룩은 이미 우리가 터치하는 액정스크린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미와 다름 아니다.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매트릭스 안에 우리는 오늘도 갇혀 그 안을 자유의지로 활보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견딘다.


그의 자서전은 의외의 마침표를 가지고 온다. 뭉클했다. 위대한 노심리학자, 의사는 어리광처럼 덧붙인다.


내게는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한 바울의 조건문이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의 인식이며 신성 그 자체의 진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중략>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결국 사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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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10-19 공감(26) 댓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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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서 보낸 일생 











자서전은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최적화된 책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이 설명하는 나란 주제가 자서전의 처음과 끝을 채워넣는다. 하여 자서전은 자기고백체의 문장을 구사한다. 용기 있는 저자라면 치부를 드러내놓기도 할 것이다. 이 솔직함이 자서전을 다시 펴보게 한다. 일생 살아온 자신을 설명하자니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자서전은 대부분 그랬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조성기 옮김, 김영사 펴냄 2007년)을 읽고나선 그 생각을 바꿨다. 자서전은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이후에 읽어야 제대로 독해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서평 덕분이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정여울은 융의 자서전을 1천자의 감상으로 요리해 냈다. 짧고 알차게 쓰기란 항상 어렵다. 그 서평을 통해 프로이트 보다는 덜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융에 대해 신비한 관점을 갖게 됐다. 서평 한 편의 위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막상 융의 자서전을 독파하며 보낸 20일은 쉽지 않은 하루하루 였다. 융의 자서전을 섭렵하고서야 비로소 그가 왜 프로이트 만큼의 대중성을 얻지 못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의 심리 이론들은 한마디로 난해하다. 그 난해함은 융의 이론서보다 한층 자서전에서 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독서를 중단할 수 없는 묘한 `끌림'을 계속 발산했다. 소설가 조성기의 무난한 번역도 한 몫했다.

이 끌림은 역설적으로 그의 `난해함'에서 발원한다. 자서전으로 일생을 전념한 융의 사상과 이론을 정리할 순 없다. 하여,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나처럼 융 사상의 입문서로 자서전 읽기를 택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융은 죽기 4년 전인 1957년 구술을 통해 자서전 집필을 시도했다. 구술이란 방법을 택한 것은 그가 여든을 넘은 나이로 병약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서전의 상당 부분을 그는 직접 서술하기도 했다. 어떤 장들은 도저히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고, 진중한 자기고백체의 문장으로 다듬을 필요을 느꼈다. 융 말년의 최후, 최고의 저술이기도 한 자서전은 그럼에도, 사후 출판될 태생적 운명을 갖고 출발했다. 융이 사후 출판을 강력 요구했기 때문이다.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 11쪽, <기억 꿈 사상>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목사인 아버지 아래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났지만, 융은 아버지와 같은 맹목적 믿음을 거부했다. 어느 순간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꺼리게 된다. 커 가면서 그는 아버지의 신앙이 어떤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융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버렸지만, 자신의 생각아래서 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신앙은 고통스런 사유와 행동을 통해 다시 인간안에서 새롭게 획득된다고 믿었다. 그는 심령현상, 기적, 우연성을 가장한 초현실의 사건이 우리 세계에서 이성과 양립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융의 묘비명에는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고 적혀 있다.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생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 나는 그분을 믿는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 "

융과 프로이트의 만남과 결별은 20세기 정신분석학 발전 역사에서 큰 사건이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성적 트라우마로 돌린 프로이트는 당시 학계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꿈의 해석>을 읽고 융은 프로이트의 사상에 일부분 동조하게 된다. 융은 당대 정신의학계에서 나름의 입지를 갖고 있었지만, 프로이트를 지지하는 것이 알려지면 큰 타격을 입게 돼 있었다. 그럼에도, 융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 고 말하며 그와 교제를 시작했다. 드디어 1907년 2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프로이트를 찾아가 무려 13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융과 프로이트는 연구의 방향이 달랐다. "신비주의와 이성주의"간 교제는 7년간 이어가다 결별의 수순에 이르고 말았다.






이 자서전에서 융은 유년 시절부터의 꿈을 많은 부분 복원시켜 놓았다. 기억력 자체도 놀랍지만 융은 꿈의 분석과 복원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그 과정속에서 존재와 심리 세계의 의미를 추적한다. 융이 발전시킨 다양한 분석심리학의 개념들이 발견된 것도 자신의 꿈 속에서였다. 원시성과 태고의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고 신화와 민담의 세계에서도 발견되는 `원형', 인류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저장해 온 모든 잠재적 기억흔적인 `집단 무의식',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인 요소로 불리는 `아니무스' 등 이 모든 개념들은 이름없는 임상 환자들의 만남과 더불어 자신의 꿈의 분석과 추적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심지어 하나의 견해를 짜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 견해가 언제나 하나의 가설로 남고,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 535쪽






솔직히 융의 심리학 이론에 대한 예비지식 없이 이 방대한 자서전을 읽는 일은 모험이었다. 융은 이 자서전의 학문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하여, 사후에 출판되길 원했던 것이다. 모든 연구적 성과들과 그의 심리학 이론들은 깊이없이 다루어진다. 후일담이나 신변잡기적 감상, 무엇에도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서술하길 원했던 책이라 그런지 그의 사상 보다는 주로 삶과 경험에 치중한 자서전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오면서 융은 좀 더 친절하고 고백적이다. 융은 세계 대전을 경험한 유럽 사회와 사람들의 이성주의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비판적 이성이 신화적 관념과 사후의 삶에 대한 관념까지도 죽여버린 현실을 통탄한다. 그는 의식과 얕은 지식으로 세계와 인간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론 우리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무의식으로 표현되는 인간정신의 심연을 헤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여,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대지를 `비밀로 가득 찬 세계'라 표현한다. 이 세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된다고 말한다. 융은 오직 그런 태도를 사람들이 가질 때에야, 우리 세계와 삶은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보았다. 거기에 하나를 더 정직히 보탠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심령현상을 보고한다. 지인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환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놓는 것을 볼 때, 그의 심리학이 왜 비과학적이란 비난을 받았는지 독자는 깨닫게 될 터다.

이것에 대한 융의 답변은 분명하다. 존재와 우주, 그리고 세계가 과연 이성으로, 과학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심령현상을 경험했다. 그것은 예감이나 물리적 사건, 우연의 일치라는 모습으로 현실 세계에 등장한다. 신앙의 세계에 들어서면 이같은 심령현상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모습을 띄기도 한다.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고 융은 잘라 말한다. 융 심리학이 신비주의와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무의식 자체가 그런 성질을 이미 갖고 있다. 20세기 초반 프로이트와 융을 통해 무의식이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성주의로 대표되는 `의식'이 인간의 총체적 정신이라고 착각해 오지 않았던가?

융 심리학은 난해하고, 비과학적이란 비판은 합당할까? 융의 자서전은 정확히 그런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노학자가 정직히 고백하는 것처럼 "세계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고백 자체도 쉽지 않은 것이 권위를 중시하는 학자들의 습성이다. 하지만, 융은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우리 세계에 `비밀로 가득 찬'이란 수식어를 넣었다. 인간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얼마나 황폐한 타락과 일탈로 나아갔는지 살아있는 인간의 역사가 증거한다. 사람은 의식으로 살지만, 그것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 무의식이란 대해와 심해를 기억하라. 이 자서전은 인간 융이 내면을 향해 띄운 무의식의 탐사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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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 2014-03-05 공감(7) 댓글(0)

 

[마이리뷰]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는 한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는 듯이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질투와 시기를 낳는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한한 것이 그 관계 속에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결정적인 것이다.

내가 극단적으로 제약을 당할 때 비로소 무한한 것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인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은 “나는 다만 그것에 불과하다!”는 체험 가운데 나타난다. 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아주 좁게 제약되어 있다는 의식만이 무의식의 무한성에 접속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성에서 나는 나를 유한하면서도 영원하며 이것이면서도 저것으로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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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man 2017-03-15 공감(7)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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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압니다" 




심리학의 거장이자 영혼의 의사였던 카를 융(1875-1961)의 자서전은 네댓 살 유년시절부터 시작한다. 그는 집 앞에 혼자 앉아 모래장난을 하다가 챙이 넓은 모자에 길고 검은 외투를 입은, 마치 여자 옷을 입은 남자 같은 형상이 걸어오는 것을 보는 순간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로 어쩔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예수회 수도사(Jesuit)다!”라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영어사전에서 ‘Jesuit’를 찾아보면 ‘예수회 수도사’와 더불어 ‘음험한 책략가, 음모가’라는 풀이가 나온다. 형용사형인 ‘Jesuitical’에는 ‘교활한, 음험한, 궤변적인’이란 뜻풀이가 나온다. 개신교 전통을 지닌 영어권에서의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스위스 출생이지만 개신교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난 융은 가톨릭의 이미지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뒤 며칠 동안이나 융은 소름끼치는 공포 때문에 수족을 꼼짝할 수 없었다. 물론 그는 나중에 그 검은 형상이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가톨릭 수도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습적 종교와의 결별

11세부터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융에게 신은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이었다. 신의 존재는 관념, 즉 생각해서 고안해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에게 신의 존재는 마치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했으며, 신은 적어도 그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이었다. 압도적인 체험을 한 융은 목사인 아버지의 설교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하는 말들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은 전혀 믿지 못하거나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진부하고 공허하게 들렸다. 그는 “아버지는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정말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의심도 생겼다.

교회는 융에게 점점 괴로운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뻔뻔스럽다고 할 정도로 큰소리로 신에 대한 설교를 했지만, 융은 아무도, 심지어 목사까지도 그 비밀을 모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정말로 신의 비밀을 아는 자라면 그 비밀에 대한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을 그토록 진부하고 감상적인 표현으로 더럽힐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더 이상 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적어도 융에게 그곳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느꼈다. 종교 문제에 관해 그는 누구와도 대화의 접촉점을 찾을 수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소외감과 불신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 그는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미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의 빛과 어둠은 비록 중압감을 주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이해될 수 있는 사실들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종교

김나지움 시절(10대 후반) 그는 아버지와 종교문제로 언쟁을 벌이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떤 특별한 문제가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서는 가장 명백한 체험이었던 신에 대한 체험을 아버지가 갖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융은 아버지가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신앙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융은 아버지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교회와 그 신학적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는가를 보았다. 융은 자신이 알고 있는 신학자들 중에 ‘어둠을 밝히는 빛’을 자기 눈으로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그 빛을 보았다면 ‘신학적인 종교’를 가르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융 부자가 처한 종교적 상황은 근대 유럽의 세속화의 한 예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유럽 사회는 중세의 ‘종교 문화’에서 근대의 ‘종교 신앙’으로 변화를 겪었다. 종교 문화가 타성적인 인습과 규범인 데 반해, 종교 신앙은 개개인의 숙고된 믿음이며, 내세와 신의 권능에 대한 긍정을 말한다. 종교 문화에서 종교 신앙으로의 이행은 ‘넓이’에서는 많은 부분을 잃었지만 그 대신 ‘깊이’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숙고된 개인적 신앙은 습관으로서의 종교에 비해 한층 높은 안정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수’는 줄어들지만, 대신 ‘정예화’를 수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화’는 ‘종교적 부흥’과 항상 양립이 가능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신앙심과 세속화는 반비례했다. 하나가 내려가면(세속화가 만연되면) 다른 하나는 올라간다(신앙심은 고양된다). 역사학자 헥스터는 그것을 ‘시소 이론(see-saw theory)’이라고 이름 지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1907년 2월 빈에서 융과 프로이트(1856-1939)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오후 1시에 만나 무려 13시간이나 그야말로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융은 프로이트를 일컬어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무척 총명하고 예리하며 어느 면에서나 괄목할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융은 프로이트가 이상할 정도로 성이론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융에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항상 비종교성을 강조해온 프로이트가 일종의 ‘교리’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잃어버린 ‘질투하는 신’ 대신 ‘성욕’이라고 하는 또 다른 강압적인 형상을 슬쩍 바꿔 넣은 셈이었다. ‘성적 리비도’가 ‘숨은 신’의 역할을 대신 맡은 것이다.

이러한 변신은 프로이트에게 이로운 점이 있었다. 성이론이라는 새로운 원리는 과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고, 모든 종교적인 부담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합리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두 대극, 즉 ‘야훼’와 ‘성욕’은 결국 동일한 것으로서 단지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프로이트는 잃어버린 신을 ‘위’에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찾았다. 융은 프로이트에게서 또 다른 교조주의를 발견한 것이다.

융은 프로이트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 책을 집필하면서 이것이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희생시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는 두 달 동안이나 글을 쓰지 못하고 갈등으로 괴로워했다.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숨겨야 할 것인가, 두 사람의 친교가 깨지는 모험을 할 것인가? 결국 그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예상대로 그것은 프로이트와의 친교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융의 친구들은 대부분 떠나갔다. 사람들은 그의 책을 ‘쓰레기’라고 대놓고 말했다. 늘 이런 식의 외로운 선택을 했던 그는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죽기 2년 전 융은 B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 시청자들은 융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만들어진 신>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무신론 근본주의자 리처드 도킨스는 융을 과연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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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 2008-08-10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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