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이찬수 - 시민강좌 '사나운[暴] 힘[力]' 다섯 가지를 해부하는 강의

(14) 이찬수 - #남북평화재단 시민강좌 '사나운[暴] 힘[力]' 다섯 가지를 해부하는 강의가 열립니다. 생태폭력 /... | Facebook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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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평화재단 시민강좌
'사나운[暴] 힘[力]' 다섯 가지를 해부하는 강의가 열립니다.
생태폭력 / 국가폭력 / 긍정성의 폭력 / 일상적 폭력 / 젠더폭력...
저는 '긍정성의 폭력'을 강의합니다.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폭력은 물론, 생활 속에서의 은밀하면서 강력한 폭력의 실상을 다룹니다.
<#폭력개념연구>(모시는사람들, 2024.09)를 미리 읽으시면 단박에 이해가 될듯요...^^

Bo-hyuk Suh
시의적절한 프로그램이네요. 최고의 평화강좌가 되겠네요.
이선중
감사합니다
이선중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신청을 어디서하나요
Author
이찬수
이선중 포스터에 있는 큐알코드로 들어가면 될것 같습니다
Author
이찬수
이선중 직접 문의전화해보셔도 되겠구요

2024/10/12

Philo Kalia - 사상으로 읽는 동학 네 번째 강의 #조성환 교수

Philo Kalia - 사상으로 읽는 동학 네 번째 강의 
#조성환 교수(원광대)는 녹두 전봉준을 사상가로 조명하려고... | Facebook

사상으로 읽는 동학 네 번째 강의



#조성환 교수(원광대)는 녹두 전봉준을 사상가로 조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른바 전봉준의 “공생사상”

역사학자들이 전봉준을 주로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맥락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그가 사상가는 아니지만 그의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닌데, 따라서 사상적 차원에서 읽는 참신한 시도였다. 큰 주제가 사상으로 읽는 동학이다.

#조성환은 공생사상 이전에 수운, 해월의 ‘개벽’에서 녹두의 ‘혁명’으로 바뀌게 된 전환의 동기로 輔國安民의 安民에서 학민(虐民) 그리고 원민(冤民)을 예로 들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학민과 원민이 죽 있어 왔지만 동학의 포접이 형성되고 그 원민의 숫자가 결합되어 무르익는 순간, 녹두가 선봉이 되어 기포(起包)가 이루어지고 백성을 학대하고 가렴주구하는 관에 대한 봉기,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전쟁(전투)으로 이어진 것이다.
“매일 멸망할 것이라고 노래하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나 어디 남아 있겠나” 하며 기일이 오기만 기다리더라.“(사발통문에서) 기일이 와서 기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신하라는 자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할 생각하지 않고 다만 녹봉과 지위를 도둑질하며, 전하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하고 뜻만 맞추면서 충성을 간하는 말을 요사스러운 말이라 하고, 정직한 자를 비도(匪徒)라고 한다. 안으로는 나랏일을 도울[輔國]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을 학대하는 관리가 많아, 백성들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변하였다.“(무장포고문에서)

”심문: 다시 기포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진술: 그 후에 들으니 일본이 개화라 칭하고 처음부터 민간에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또 격문도 없이 군사를 이끌고 우리 도성에 들어가 야반에 왕궁을 습격하여 임금을 놀라게 하였다 하기로 초야의 사족과 백성들이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으로 비분강개하여 의병을 규합하여 일본인과 전투하여 이런 사실을 우선 일차 따져 묻고자 함이었습니다.“(전봉준 공초에서)
동학 ‘혁명’이란 말은 천도교의 <개벽>(1920. 6)지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고,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이 국내에 소개된 1920년대 초가 아닌가 추정했다.
전봉준의 사상을 오늘의 관점에서 현재화하기 위해 ‘공생’ 사상, 혹은 ‘평화’ 사상, 혹은 ‘생명’ 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혁명가로서 ‘혁명’ 사상으로 남겨두고, 그 우물에서 계속 ‘혁명’ 사상을 퍼 올렸으면 좋겠다.
독일의 농민 혁명가 토마스 뮌처도 루터의 개혁과 함께 보조를 맞추다가 1524년에 이르러 농민 혁명가로 변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 노선과 결별하게 된다.
나는 대학원 시절 ‘과격한 종교 개혁가’(radical reformers) 세미나에서 뮌처의 설교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지금 역사적 윤곽과 루터와의 대략적인 차이 외에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에른스트 블로흐가 뮌처를 “혁명의 신학자”로 언급한 책(1921년)을 보고, 적지 않게 고무된 적이 있었다.
토마스 뮌처와 녹두 전봉준의 가슴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언어와 생각의 개념은 다르게 표현되었겠지만, 학민(虐民)으로부터 원민(冤民)의 분통한 가슴을 깊숙이 듣고 떨리고 공감하여 분출한 농민해방의 꿈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도 가슴에 담아 두고 싶은 혁명가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사발통문, 전봉준의 공초(供招), 오하기문 등의 자료를 통해서 본 전봉준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치밀하고 현실적이고 평화적이다. 혁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 속에 혁명의 꿈이 갇힌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평화’도 좋고 ‘공생’도 좋지만, 전봉준만큼은 ‘혁명’ 사상이 언급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마하트마 간디, 체 게바라,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넬슨 만델라, 안토니오 그람시,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녹두 전봉준.
종로 1가 네거리에 세워진 전봉준의 동상을 보라
굵은 농민의 손가락, 근력의 어깨, 하늘을 향한 가슴, 무엇보다 부라린 눈, 눈빛!
거기 그때는 혁명의 눈빛이다.
평화나 공생은 후손들의 몫이다.













All reactions:29임덕수, 강주영 and 27 others

2024/10/10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신간 '화'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신간 '화'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신간 '화'
이세원2024. 9. 5. 11:21
요약보기음성으로 듣기번역 설정글씨크기 조절하기인쇄하기
"집이 불타고 있으면 방화범 쫓기 전에 불을 먼저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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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재결합을 거부한 옛 연인을 살해한 남성, 층간 소음으로 다투다 위층 거주자를 흉기로 해친 50대….

치솟는 화나 좌절감을 다스리지 못하고 분풀이한 것으로 보이는 강력 사건 소식이 이어지는 시대가 됐다.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일상에서 수시로 성을 내거나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재앙을 겪기도 한다.

최근 새로 번역·출간된 '화'(운주사)에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화를 다스리고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마음의 불꽃을 식히는 지혜'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며 평화운동가인 베트남 출신 틱낫한(1926∼2022) 스님은 "진정한 행복은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얘기한다.

많은 사람이 돈, 권력, 높은 지위가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다 얻고도 불행하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고 스님은 지적한다. 결국 분노, 절망감, 좌절 등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인간관계에서는 특히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만약 어떤 사람의 말이 화로 가득 차 있으면 이는 그가 큰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며 "자비로운 경청과 사랑의 말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당부한다. 화를 내는 사람을 가엽게 여기고 그가 하는 얘기를 존중하는 태도로 듣기만 해도 상대방이 느끼는 고통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듣는 목적은 상대가 자신을 표현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뿐이다. 제대로 경청하기 위해서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호흡 수행을 하라며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화가 날 때는 수백개의 근육이 긴장해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은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 바로 미소 짓기를 해보라고 권한다. 타인의 행동 때문에 화가 치솟을 때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맞대응하는 것을 경계하고 대신 스스로를 돌아보며 화를 다스려야 한다고 알기 쉬운 비유로 깨달음을 전한다.


"당신의 집에 불이 났다고 해봅시다. 가장 급한 일은 집에 들어가 불을 끄는 것이지, 방화범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쫓아가는 일이 아닙니다. (중략) 화가 났을 때 상대를 계속 상대하거나 말다툼하거나 벌주려고 하면, 모든 것이 활활 타는데 방화범을 쫓아가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화'는 틱낫한 스님이 2001년 출간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이듬해 처음 번역돼 소개됐으며 이번에 원서의 의미를 되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새로 옮겼다고 출판사는 전했다.

허우성·허주형 옮김. 252쪽.

틱낫한 인터빙 - 현대불교

틱낫한 스님의 14가지 현대 계율 < BOOKS < 문화 < 기사본문 - 현대불교


틱낫한 스님의 14가지 현대 계율
 박재완 기자
입력 2024.09.13


틱낫한 인터빙

틱낫한의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 소개
팔정도 정념(正念) ‘마음챙김’으로 현대화
초기불교 10개 계율 14가지로 재구성해
“개인의 내적 성장이 곧 사회변화의 씨앗”
틱낫한 인터빙 / 허우성·허주형 옮김 / 불광출판사 / 1만8천원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1926~2022)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 중에서 팔정도의 하나인 정념(正念)을 ‘마음챙김’으로 현대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수행 공동체를 설립·운영하면서 세계 불교계와 다른 영적 전통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신간 〈틱낫한 인터빙〉은 틱낫한 스님의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각 수행법의 의미와 그에 대한 해설 등 구체적인 실천법을 모두 담았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풀럼빌리지에서 사용하는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을 받는 절차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의 기원은 초기불교 경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10개의 계율이다. 이것들의 목표는 인간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십악(十惡)을 버리는 것이다. 십악은 탐욕, 화냄, 삿된 견해, 거짓말, 양설, 욕설, 과장, 살생, 절도, 사음이다.

틱낫한 스님은 이 시대의 고통을 잘 다룰 수 있도록 10개의 계율을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틱낫한 스님의 핵심 가르침인 ‘상호존재’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 만물의 연결성을 강조한 이 수행법은 단순한 명상 기법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 종합적인 삶의 방식을 알려주는 지침이자 현대인을 위한 계율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종교이다. 하지만 불교 탄생 이후 2천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붓다의 가르침과 수행법은 현대인들에게 다소 어려운 공부일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스님이 창안한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은 일반인들이 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와 구체적인 설명으로 만든 수행법이다.

‘마음챙김’은 ‘매 순간 알아차리기’,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면서 설거지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을 내거나 짜증을 내기기보다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설거지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걷기, 앉기, 먹기와 같은 일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스님의 ‘마음챙김’은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마음의 개방, 견해에 대한 무집착, 사상의 자유, 고통의 자각, 자비롭고 건강한 생활, 화 돌보기,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게 머물기, 진정한 공동체와 소통, 진실하고 사랑스럽게 말하기, 공동체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바른 생업, 생명 존중, 관대함 기르기, 진정한 사랑이라는 단계를 거치도록 설계했다.

매 순간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의 고통과 대면할 수 있다.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 중에는 원인조차 모르는 것들이 많다. 그 이유는 괴로움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천변만화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바로 보려면 자신의 마음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마음챙김 수행이 몸에 배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고 비로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지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불교에 관심이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많은 고민을 안고 사는 현대인 모두에게 필요한 대안과 의미 있는 통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을 통해 개인의 내적 성장이 곧 사회변화의 씨앗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하나의 명상 기법을 넘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천명인 것이다. 고통받는 인류에게 실천적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 수행법을 실천한 많은 사람들은 “이 수행법이 개인의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사회적 국제적 차원의 평화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수행법이 어렵지 않아 지속적인 실천이 가능하며, 이로써 장기적인 성장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윤리적인 마음챙김 생활을 통해 평화와 고요함을 기르며, 궁극적으로 사회를 탐욕과 소비주의에서 사려깊고 자비로운 행동이 가치 있는 사회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이 곧 사회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4가지 마음챙김 수행법’은 개인의 내적 성장과 사회변화, 그리고 이를 통한 공동체의식 강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세상을 더욱 이롭게 만들기 위한 것으로, 자신과 세상을 치유하는 데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박재완 기자 

2024/10/08

Philo Kalia - “일본적 영성(1)” 스즈키 다이세츠

Philo Kalia - *‘한국사상-기독교’ 독서회 ▸10월 7일(月, 118회) 10.00~12.00시
주제:... | Facebook



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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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기독교’ 독서회
▸10월 7일(月, 118회) 10.00~12.00시
주제: “일본적 영성(1)”_스즈키 다이세츠, 『일본적 영성』(19~152쪽)
+ZOOM(ID: 380-389-5679); 충무로 사랑방(퇴계로 30길 29, 407호. 한국영성예술협회)


일본적 영성, 스즈키 다이세츠가 탐구하고 분석하여 형성해 나가는, 지극한 정성과 섬세한 감각을 통해 접근하여 밝히는 일본적 영성, 이에 비추어 그간 생각했던 ‘한국적 영성’의 결을 다듬고 보듬어 보자.
이것이 영성이다.
정신과 물질의 안쪽에 자리한 뭔가를 봐야한다. 이 둘이 대치하는 한 모순, 투쟁, 상극, 상쇄 등의 일은 면할 수 없다. 뭔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 채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하나면서 그대로 두 가지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영성이다(24).
물질에 혜택을 입고 정치적 권력에 가까이 가는 귀족들로 다져진 문화재 안에서는 종교는 태어나지 않고, 영성은 솟아나지 않는다.(49)
인간은 대지의 앞바다에서 자연과 인간의 교섭을 경험한다.
진정한 사랑은 개인적인 것 속에 나도, 타인도 수용할 곳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종교가 있다. 영성의 생활이란 것이 있다. 종교 의식은 태양만으로 깨어날 수 없고, 대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지를 통한다는 것은 대지와 인간과의 감응이 있는 곳을 통한다는 의미이다. ... 대지의 영혼이란 영혼의 생명이라는 것이다(53, 57)
생각 자체가 대지가 되는 것이다. 대지 자체가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에 대비의 빛이 번뜩이는 것이 대비의 극락이다. 그것이 없는 곳이 지옥필정이다. 진종신앙의 극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일본인의 종교 신앙적 자각이 있다.(67)
처음부터 일본 민족 사이에는 일본적 영성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영성이 우연히 불교적인 것을 조우하여 스스로 그 본래 갖추고 있던 바탕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족 영성의 주체성을 인식해 둘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73)
보통은 밖에서 옮겨 심었고, 그것이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잇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옮겨 심엇다는 인연을 빌려 은밀히 그 땅에 있던 종묘 혹은 영성이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밖에서 왔다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안에 있던 것이 주체가 된다는 생각이 사실의 진상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79)
사상도 행위이고 생활이다. 그런 점에서 구체성을 지녔지만, 그 사상이 대지와의 연결을 떠나 풍선처럼 되면 사람에 대한 힘을 상실한다. 여기에 活句와 死句가 있다. 불교는 인도에서 사구가 되었다.(83)
영성은 개인적 자기에서 살아 있는 것이고, 게다가 개인적 자기를 통해서 또한 그 자신이 개인을 초월한 ‘한 사람’임을 분명히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110)
일본 불교는 일본화된 불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일본적 영성의 표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114)
영성적 직관이 현전하려면 더러움이 단순한 더러움이 아니라 지옥행 결정의 죄업이 되어야 한다.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이 시커멓게 되어 하늘도 땅도 그 먹구름으로 덮여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어야 한다.(129)
대지와 친하다는 것은 대지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135)
삶은 원환이다. 중심이 없는 혹은 어디서나 중심인 원환이다.(137)
영성적 자각을 대인적 어휘로 나타내면 ‘믿음’이다. 모순이기에 믿음이 성립된다. 모순이 없는 것에 ‘믿음’은 없는 것이다. (146, 148)
가톨릭교의 승단도 무심 또는 무아를 말하지만 불교와 크게 그 주체를 달리하고 있다.(149)







All reactions:65You, 이찬수, Myung-kwon Lee and 62 others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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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 영성 
박연주,김윤석 (옮긴이),김승철 (감수)동연출판사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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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전자책 11,340원




책소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일본의 선불교 학자 스즈키 다이세츠가 그의 불교 연구에 기초해서 집필한 일본문화론이다. 스즈키는 동양의 선불교를 서양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선(禪: 禅)이 한국식 발음인 ‘선’이나 중국식 발음인 ‘찬’이 아니라 일본식 발음인 ‘젠’(Zen)으로 서구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게 된 데에는 스즈키의 활동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인 학자에 의해 쓰인 책이기에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본적 영성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정토계 사상과 선이 가장 순수한 일본적 영성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적 영성의 감정적·정서적 측면에서 현현한 것이 정토계적 경험이며, 지성적 측면으로 출두한 것이 일본적 생활의 선이다. 그러나 불교의 영향으로 일본 민족에게 진정한 종교의식이 당도해 그 표현이 불교적 형태를 취했어도 그것은 역사적 우연이며, 일본적 영성 그 자체의 진정한 몸체는 이 우연한 것을 관통하여 그 아래에서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제언한다.

저자는 자신의 불교적 사상을 ‘영성’이라는 개념으로 수렴시키면서 선적 자각과 정토 신앙을 일본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묘사한다. 당시 일본의 불교인들은 불가사의하게도 불교의 근본적 의미에만 집중하여 스스로의 사명에 세계성을 지니는 것에 무관심했다. 그들은 군국주의의 유행에 따라 보조를 맞추어 권력층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썼고, 자신에게 부과된 역할에 민중성·세계성을 불어넣는 것을 잊고 말았다.

불교에 포함된 철학적·종교적인 요소, 영성적 자각이라고 할 것들을 일본적 종교의식의 가운데서 일깨우는 데 소홀히 했다고 스즈키는 진단한다. 저자는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불교는 ‘일본적’인 것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일본적으로 영성적인 것은 후퇴하게 되었다고 다소 신랄한 비판을 펼쳐 나간다.


The Pilgrim's Progress (2019) (Korean) | Full Movie | John Rhys-Davies |...


The Pilgrim's Progress (2019) (Korean) | Full Movie | John Rhys-Davies | Ben Price | Kristyn G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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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 The Pilgrim's Progress in Korean Full Movie on Vision Video 

A man named Pilgrim discovers a book, and the more he reads it, the more he is convicted of sin and judgment and a burden begins to develop on his back. Obsessed with discovering the truth and escapingInge vanden Eijnde his town, the City of Destruction, Pilgrim ventures outside the forbidden borders and begins his journey to find a Celestial City ruled by a good and noble King, meeting friends and foes along the way.  THE PILGRIM'S PROGRESS was written over 340 years ago by John Bunyan when he was in prison. The story of Pilgrim's Progress has been smuggled to the underground church during communism, banned for a time in China, and has sold more copies than any other book other than the Bible. The journey of this remarkable work continues as Revelation Media brings the story to a new generation using state-of-the-art CGI animation.

Director: Robert Fernandez
Starring: John Rhys-Davies, Ben Price, Kristyn Getty, David Thorpe, Andrew Wyncott 
Executive Producer Steve Cleary

The Pilgrim’s Progress is a  RevelationMedia Film. Visit www.Pilgrims.movie for more info.

2024/10/07

손민석 - 왜 자꾸 선생님들이 나이 드셔서 불교나 이런 것에 관심 갖는지 진짜 희한하다. 철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은... | Facebook

손민석 - 왜 자꾸 선생님들이 나이 드셔서 불교나 이런 것에 관심 갖는지 진짜 희한하다. 철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은... | Facebook

손민석
 · 
왜 자꾸 선생님들이 나이 드셔서 불교나 이런 것에 관심 갖는지 진짜 희한하다. 철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사회과학 전공하는 분들까지 그러시니 나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어디 불경 외고 있을까봐 걱정되네.. 왜 그러는거지, 대체..
인생의 허망함을 해소 못해서 그런가. 그거 원래 안되는거 아닌가..

===
Seok Joon Kwon
물리학자들 중에도 굉장히 (정말로) 많습니다. 불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 등으로 빠져서 은퇴 후 아예 목사 안수 받는 분들도...
15h
Reply
Basara Bae
이런거 볼 때마다 돌아온 탕자 서사가 생각나네요 ㅎㅎ
15h
Reply
윤석찬
인간사에 대한 회한 때문이 아닐런지요... 학자가 아닌 인간 한 사람으로서 맞이할 수 밖에 없는 노년과 죽음에 대해 종교가 주는 위안이 분명 있으니까요. 아직은 너무 젊어서(?)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긴 합니다 ㅎㅎ..
15h
Reply
Edited
Laplume de Matante
거대 언어를 통해서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며 거기로부터 보편성을 느끼려는 (혹은 길어내려는) 호르몬적 본능 아닐가 싶기도... 은퇴하시고 주역이나 성경 읽기 시작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캐쥬얼 득도'하시더라고요.
15h
Reply
Edited
Ignoranti Quem
제가 존경하던 분들은 언어에... 나이 드니 좀 이해가 갑니다. 손선생님도 기다리시면 저절로 ㅎㅎ
15h
Reply
임태형
저도 불교에 관심이 정말로 많습니다. 가톨릭이지만요.
11h
Reply
Lee Dong Hun
예전에 민석님이 쓰셨던 글이었던가, 젊을때는 당연히 자원이 부족하고 사회로부터의 인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공격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게 또 취직하고 돈벌고 하면 어느 정도는 보수적으로 변하는 흐름이 있어서, 소위 90년대생이니 MZ세대니 하는 세대론으로 새로운 세대가 태어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중년 이후의 종교 귀의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꼭 민석님이 보시는 학계가 아니더라도, 제 주변도 기본적으로 노년에 가까워질 수록 종교에 대해서 관심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개인적인 계기들은 다 가지고 계시는데 (보통은 죽음 문제) 찬찬히 살펴보면 이것도 사람을 특정 시기에 종교에 빠지게 만드는 사회의 흐름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나이들면 어쩔수 없어~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안정성도 생겼고, 삶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드는 생애주기에 접어들면 집사볼까 차사볼까 하는 것 처럼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사실 제 얘기기도 한 게...원래 불교 신자였지만 20대 30대때는 엄청 저항감을 갖다가 중년에 들어서니 다시 천착하게 되더라고요. 왜 다시 찾게 됐을까? 생각을 해보니 인생사에 대해 나름 일관된 설명을 제공하는 편리함이 있고,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규율이 있고, 저 스스로 생각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보탬이 되는 방법론이 있다는 생각에 다시 빠져들게 되는 거 같습니다. 아마 보통 이 범주에서 빠져드는 게 아닌가 짐작을 해 봅니다.
물론 전문가들의 경우 자신의 발언권과 권위는 유지된 상태에서 지나치게 종교적 광신이나 비합리성에 빠지게 되면 세상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다가도 한 인간이라는 게 또 뭐 얼마나 강한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ㅠㅠㅋㅋ 오히려 이를 이겨내고 젊음의 적극성과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는 분들이 대단한 분들이고, 그래서 존경받을만한 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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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Lee Dong Hun 요즘 많이 느끼는 게 나이 70, 80에도 여전히 합리적인 지적 생활을 할 정도의 총기가 있다는 건 대단히 축복받을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종교나 이런 것에 빠지는 게 지적 능력의 쇠퇴 전조 현상이 아닌가 싶어서 좀 그렇게 보이는데 또 생각해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생애주기상의 어떤 필요로 인해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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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ong Hun
노년에 총기를 잃어버리고 이상한 소리 하는 분들 보면 참 열받고 안타깝고 그것이 악용되거나 하는 걸 보면 정말 화가 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람이란게 다 시기별로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으니 저 사람은 그냥 그 역할을 다 했구만...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결국 지적 능력이란 것도 물리적인 기반이라서, 나이들고 고중량 스쿼트랑 장거리 달리기 못하는 거랑 같은 이치 아닐까 싶더라고요. 해내시는 분들이 진짜 대단한 것 (...)
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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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Lee Dong Hun 그러게요. 근육은 미리 운동이라도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지적 능력이라는 건 참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래서 언어를 배우라고 하나봐요ㅎㅎ
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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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ryoul Shin
점점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면 종교도 찾게 되더라구요
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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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 
대한민국이 조로 사회라서 그렇습니다. 40대 초반만 되도 자기 손 움직이지 않고 입과 눈으로만 일하는것을 선호하죠. 그렇게 20년 살면 구체적인것은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아지면서 그럴싸한 고담준론에 혹하게됩니다.
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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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 Jeong-Woo
세상은 원래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란걸 깨닫고 깊은 현타가 온 후 주화입마에 빠지는거라고 봅니다
이론화, 체계화에 대한 강박이 심했던 사람일수록 그게 더 심하다고 봅니다
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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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필
영성이란 것은 본디 실용적인 것입니다. 원래는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었죠.
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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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감히 저도 한 말씀 드리면... 제 학문(? 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럽지만)의 한계니 뭐니 저는 이런 건 아니구요. 인간 관계랑 조직 내에서의 문제에 너무 지쳐서... 그냥 불교의 알듯 모를듯한 말들에 공감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구요. 전 그래요. 그냥 이 조직과 시스템 그리고 관계들이 너무 힘들고 지칩니다. 물론 배부른 소리인줄도 잘 알고 있습니닷! ㅎㅎㅎ ㅠ.ㅜ
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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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rion Chora
참호에 무신론자는 없다던 옛말이 있던데요, 죽음과 삶이 맞닿는 지점들을 갈수록 마주하게 되면서 접하는 실존주의적 고민들을 그런 방식으로 풀어내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어떤 진실을 탐구하거나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인간의 지적 능력과 영적 감각이 괴리되지는 않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사회과학의 사실상 창시자라고 볼 수 있는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종교의 문제에 골몰했던 이유도 거기에서 착안했다고 생각하고요. 지적하신... 그..…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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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훈
서울대 강성용 교수님 같은 분들을 보면 불교가 얼마나 철학적, 이론적으로 깊은 통찰을 줄 수 있는지 느껴지긴 합니다.

이찬수 - 길희성(1943~2023)이 타계하신지 벌써 1년

이찬수 - 길희성 교수님(1943.5.6~2023.9.8)이 타계하신지 벌써 1년 1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분의... | Facebook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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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님(1943.5.6~2023.9.8)이 타계하신지 벌써 1년 1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분의 종교학/불교학/신학/영적 휴머니즘 등 사상의 지도를 그려보는 학술세미나가 열립니다.
저도 한꼭지 참여합니다.
내게 학문이랄 것이 있다면 그 절반 이상은 길희성 교수님으로부터 왔지요.
세계 어디에도 그만한 인문학자 별로 없을 듯 합니다.

많은 분이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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