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Grundtvig.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Grundtvig. Show all posts

2022/05/24

[N.F.S. Grundtvig: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Work - Allchin, A M | 9788771249491 | Amazon.com.au | Books

N.F.S. Grundtvig: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Work - Allchin, A M | 9788771249491 | Amazon.com.au | Books




N.F.S. Grundtvig: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Work 
Hardcover – 30 November 2015
by A M Allchin (Author)

Edition: 2nd First Printed in 1997 ed.

N.F.S. Grundtvig (1783-1872) was a prominent preacher, poet, scholar and politician, who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life of nineteenth-century Denmark. His sermons and hymns, and his educational and historical writings, gave birth to a national and spiritual awakening, which still strongly affects Danish life and thought today.

This book is an introduction to Grundtvig to the English speaking world. It begins with an overview of Grundtvig's long and varied life, concentrating on a number of critical moments in his intellectual and spiritual development. He was a man of irrepressible energy and a volcanic temperament, and his life was not without moments of high drama.

 The second part of the book looks at vital aspects of his presentation of the Christian faith, beginning from his vision of the Church as a living sacramental and historical reality. It centres on the deeply Trinitarian nature of his thinking: for him faith in God as Trinity has its outworking in the whole of daily life, social and political, as well as personal. 

The third section of the book follows Grundtvig's exposition of the faith through the festivals of the Christian year.

Grundtvig was a man firmly rooted in his own time and place. But his thoughts often have a prophetic ring to them.
They have still much to say 
  • about the underlying unity of the Christian tradition
  • about questions of national identity and 
  • national interdependence, and 
  • about the way in which we may come to a new understanding of the creation itself as made in God's image and likeness.


Product details
Publisher ‏ : ‎ Aarhus University Press; 2nd First Printed in 1997 ed. edition (30 November 2015)
Language ‏ : ‎ English
Hardcover ‏ : ‎ 338 pages
===
rated it it was amazing
This book provides much insight into the thinking of Grundtvig. He was much against the grain of his time in regards to the theology of the Enlightenment and Lutheran pietism.

There is some very deep knowledge of how God reveals himself as in his creation. This book an excellent Trinitarian exposition and gives a great understanding of how God is Love throughout the work and is shown by the examples from Grundtvig, hymns and poetry, sermons. 
Canon Allchin gives a theme of the Church Year to extrapolate the details of how the meanings apply. The is some profound details of the meanings Baptism, the Lord's Supper as well as the three Creeds.

There is some light throne on the subject of Anglo Saxon and Northern Folk Mythology and how God reveals himself there. The understanding of the East and West Churches is shown, one for Liturgy and one for Law.

Canon Allchin gives some comparisons between Wales and Denmark and some insight into Welsh understanding. There are comparisons between the Grundtvig and Welsh revivals.

There is connections to England and this book gives the English language reader some insight into the Church of Denmark.
====
Seller: booksXpress (Freehold NJ, U.S.A.)
Terms of Sale
  

Stock Image

US$ 28.59
Convert Currency
 (of 11)
 
   

   

US$ 17.50 
 
Subtotal:   

US$ 46.09
 
 
 

Terms and Conditions   
 
AbeBooks Home
Order Total: 
US$ 46.09 (A$ 65.02)

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佐々木正治による先行研究

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とフォルケホイスコーレに関する考察
https://cir.nii.ac.jp › crid


· Translate this page

論文・データをさがす · 大学図書館の本をさがす · 日本の博士論文をさがす ... 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とフォルケホイスコーレに関する考察 : 佐々木正治による先行 ...

==
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とフォルケホイスコーレに関する考察

―佐々木正治による先行研究に着目して―

石川 拓

A Study of the Grundtvig’s Educational thought and the Folk High School
-Focusing on the Research of Sasaki Masaharu-

ISHIKAWA Taku

==

그룬트비의 교육 사상과 포르케 호이스 코레에 관한 고찰 : 사사키 마사하루에 의한 선행 연구에 주목해

https://doi.org/10.18999/kyor.58.35
이름/파일라이센스액션
kyor_58_35.pdf kyor_58_35.pdf (622.9 kB)
 

아이템 타입 기요논문 / Departmental Bulletin Paper(1)
공개일 2015-06-30
제목 https://nagoya.repo.nii.ac.jp/record/20596/files/kyor_58_35.pdf.
제목 그룬트비의 교육 사상과 포르케 호이스 코레에 관한 고찰 : 사사키 마사하루에 의한 선행 연구에 주목해
기타 제목
기타 제목 A Study of the Grundtvig's Educational thought and the Folk High School : Focusing on the Research of Sasaki Masaharu
==

デンマーク国民大学成立史の研究 単行本 – 1999/3/15
佐々木 正治  (著)
--
内容
デンマークの成人教育及び国民大学の成立と発展について、創意者グルントヴィの思想を原典から研究・考察し、産業化・都市化の発展など変わり行く歴史の中での国民大学の思想や性格について検証する。

著者について
佐々木正治(ささき まさはる) 1936年広島県に生まれる。教育学博士、広島大学名誉教授。広島大学大学院教育学研究科教育行政学専攻博士課程単位取得退学後、広島大学助手、デンマーク政府奨学生としてコペンハーゲン大学に留学、広島大学教授を経て、現在、岡山大学教授。(著者略歴は刊行当時のものです)

出版社 ‏ : ‎ 風間書房 (1999/3/15)
==

시민사회에 뿌리내리는 얼터너티브 교육 1, 2

http://www.asahi-net.or.jp/~pv8m-smz/archieve/nagata_danmark.html


랜스그라우 프리스쿨
악기를 연주하기(랜스그라우 프리스쿨)
나가타 요시유키
(국제 얼터너티브 교육 연구회)

1. 소개

덴마크는 교육예산 비율(대GNP비)이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교육 열심'한 나라이다. 그런데 그 '열심'은 학력 경쟁이나 수험 지옥과 같은 가열한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개별 아이나 청소년의 마음의 안녕을 소중히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여유」의 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지만, 국민의 리터러시는 결코 낮지 않고, 오히려 유럽 제국 중에서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이다 (1). 그렇다고 해서, 이 배경에 철저한 효율적 교육·훈련의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대화가 중시된 자유롭고 비경쟁적인 교육 사회가 양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사회에 있어서의 얼터너티브 교육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 지원 메카니즘에 조준을 맞추면서 생각해 보고 싶다.

2. 덴마크 교육 시스템 및 그 배경

1) 민중사에서 태어난 교육 사회

덴마크에는 일본과 같은 취학의무는 없다.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좋다. 19세기 초에 교육에 있어서의 친권이 법령상에서 인정된 이래, 교육은 부모의 책임하에 행한다는 의식이 덴마크 국민에게 길러져 왔다(2). 말하자면 홈스쿨링이, 그리고 스스로 자신들의 학교를 만들 권리가 2세기 가까이에 걸쳐 「공인」되어 온 것이다.

덴마크에는 상향식의 교육운동을 시민뿐만 아니라 정부도 높이 평가하는 전통이 뿌리를 두고 있어, 단순한 관민의 2항 대립·길항의 구도로는 그릴 수 없는 관계성이 양자의 사이에 보여진다(3 ).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이래 민중교육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덴마크의 민중교육사를 말할 때 반드시 접해 두어야 하는 인물이 2명 있다. NFS 그룬트비(1783-1872)와 크리스틴 콜(1816-1870)이다. 그룬트비는 민중교육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인물로, 교육자이자, 목사이자, 시인이자, 정치가이자, 풀뿌리 운동가였다. 그는 빈곤으로 고통받는 농민의 삶을 생생한 것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생을 위한 학교'를 저술하고 자립과 대화를 중시한 교육운동을 펼쳤다(4). 그 사상은, 실천가로서의 콜에 계승되어, 암기나 훈련을 하지 않는 자유로운 초등학교, 프리스코레가 탄생해, 그 실천은 공교육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게다가 그룬트비나 콜의 사상·실천에 촉발되어 프리스콜레의 중등교육판인 에프터스콜레도 전국 각지에 창설되어 메인스트림과는 다른 '인가'된 얼터너티브한 스트림을 형성하고 있다. .

2) 헌법으로 보장된 부모의 권리

 앞서 언급했듯이 덴마크는 일본처럼 취학 의무가 아니라 이른바 교육 의무의 나라이다. 19세기 중반에 발포된 헌법에 있어서, 부모 자신이 아이를 교육할 권리가 주목받고 있어, 교육을 주는 것은 반드시 학교라고는 할 수 없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 민주헌법이 얼터너티브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헤아릴 수 있다. 헌법정신에 따라 제정된 학교교육법(국민학교법)의 제33조에서는 "(전략) 가정 학습을 받고 있는 아이는 국민학교에서의 교육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기되어, 홈스쿨이 공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5). 또, 얼터너티브교의 존재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독립학교법(정식명칭은 「프리스콜레 및 사립의 초등교육학교 등에 관한 법률」)에도 「부모들의 제권리」가 명기되어 있어 , 제9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립의 초중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내용에 맞는 교육을 학교(사립의 초등교육학교등)에서 실시하는 것을 포함해, 프리스콜레(6)의 전반적인 활동을 감사하는 것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부모들이 실시한다.부모회는 어떠한 방식으로 감사를 실시할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씨는 이 제9조가 덴마크의 교육을 좋은 의미로 특이한 것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7). 덴마크는 교육을 만드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부모이며 시민이며 지역사회라는 의식이 가장 강하게 뿌리내고 있는 사회의 하나이다.

 '부모들의 여러 권리'로서 덴마크의 부모에게는 교육선택의 권리가 보장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을 경우 3가지 옵션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공립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이다. 물론 공립이기 때문에 학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두 번째 선택은 기존의 "독립 학교"라고 불리는 사학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8). 이 경우, 학비는 공립교보다 걸리지만, 후술하는 바와 같이, 공비가 공립교의 7할 정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담감은 부모에게 없다. 세 번째 선택은 홈 스쿨입니다. 전통적으로 친권의식이 뿌리를 두고 있는 덴마크에서는 가정에서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공인되고 있다. 홈스쿨을 실천하고 있는 가정은 결코 많지는 않지만, 그 권리는 오랜 세월 지켜져 왔다. 위의 세 가지 옵션 외에도 네 번째 선택이 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후술하는 바와 같이 기본적인 조건이 갖추어지면 학교 운영자금으로서 교사의 급여 등에 맞는 공적 보조금을 얻을 수 있다. 그 때도 정부는 교원면허 취득이나 섬세한 커리큘럼에 관한 규정 등 교육내용에 관해서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 후술하는 전국 사학 협회의 에이브 포르스베르그 사무국장은, 덴마크 사회에서는 “기존의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얼터너티브를 선택하면 좋다.얼터너티브가 맞지 않으면, 스스로 얼터너티브를 만들면 좋다 언제라도 이러한 기회가 사회제도로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독립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은 취학연령아동·학생의 12%를 넘어, 최근 이 비율은 조금씩이지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표-1 참조). 한편 1990년대 10년간 공립학교 수는 감소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독립학교 수는 늘고 있다(표-2 참조). 이러한 경향에는 학생감소 등으로 폐교할 것 같은 공립교가 독립학교로 '전신'하는 경우도 영향을 받고 있다.

3) 「생을 위한 학교」: 국가 시스템 및 시장 시스템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자율

 덴마크는 시험 결과에 근거한 평가에 대한 신뢰감이 희박한 사회라고 한다. 실제로, 아이들이 시험에 쫓기는 것은 드물다. 사학 협회(레알스콜레 협회) 사무국장의 에이브 포르스베르그 씨에 따르면, “덴마크인에게 있어서 평등은 매우 중요한 열쇠 말입니다. 사람은 적고, 그런 테스트는 우선 실현될 수 없습니다.영국과 같은 학교 계층은 여기에는 없고, 덴마크인은 랭킹 따위 믿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독립학교 관계자는 대화나 인간성을 존중하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양적 지표를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을 차별화하는 시험에 대한 가치를 두지 않았다. 랭킹은 교육계가 아니라 산업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인간성과 평등을 존중하는 덴마크인에게는 어느 쪽이라든지 비하하는 기간과 같다.

 확실히 9 학년 또는 10 학년 말에 덴마크어와 영어와 독일어, 수학, 물리학의 표준 테스트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대부분의 학생이 수험하지만, 모두가 야후가 된다 라고 공부에 힘쓰는 것은 아니다. 전국적인 일제시험을 실시하기 위해서 많은 세금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의 결과가 아이들의 인생에서 사용되는 것은 드물기 때문에, 그 존재의 의의가 되고 싶다는 회의적 에 보는 부모나 교사는 적지 않다고 한다 (9).

 일본이라면 테스트를 받지 않으면 부모님이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덴마크에서는 시험제도의 도입에 의의를 가지는 부모는 대부분 독립학교를 선택한다. 시험을 실시하지 않는 초등교육수준의 독립학교(프리스콜레)는 적지 않고, 중등교육수준의 독립학교인 에프터스콜레에서도 일체의 시험을 부과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따라서 독립학교 출신자에게는 유치원에서 후기 중등교육을 수료할 때까지 한 번도 시험을 받지 않은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경쟁적인 테스트를 피하는 경향이 강한 배경에는 '생을 위한 학교'에 근거한 휴머니스틱한 교육을 표방하는 그룬트비와 콜의 영향이 전통적으로 있는 것 같다. 교육이 '생을 위해'에 있는 것은 그룬트비의 주장이었고, 코르도 그 사상을 계승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해왔다. “아이가 음식을 제대로 씹을지 어떨지를 확인하기 위해 억지로 아이의 입에 음식을 넣어 뱉게 하지 않는다”는 콜의 말은 독립학교에서 잘 알려져 있다. 덴마크 사회에서 내발적으로 길러 온 독자적인 휴머니즘이 경쟁 원리를 쉽게 받아들이는 국가 시스템이나 시장 시스템에 대해 독립학교가 상대적인 자율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요인 중 하나 라고 말하자.

3. 얼터너티브 교육의 다양성을 키우는 다원 네트워크

1) 얼터너티브 교육의 다양성

 덴마크의 초중학교는 1,671개교가 공립학교이며, 얼터너티브한 학교군으로서 독립학교가 452개교 있다(2000년). 약 12%의 취학연령 아동·학생이 얼터너티브 교육을 누리고 있다(표-1, 2 참조). 혼자서 얼터너티브 교육이라고 해도, 그 내용은 실로 다양하다. 그룬트비와 콜의 사상이나 실천의 흐름을 얻어, 1세기 반전부터의 「전통적인 얼터너티브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플리스 콜레나 그 중등 교육판으로 전 기숙제의 에프터스 콜레, 60년대 이후의 좌익 사상을 반영 한 릴레스콜레, 교과교육을 중시하는 중규모의 레알스콜레 등 외에 덴마크의 주류 종교인 개신교계의 학교, 카톨릭계의 학교, 국경 근처에 사는 독일인학교, 발돌프학교, 몬테소리학교, 이슬람계의 이민에 의한 학교, 학습장애나 핸디를 가진 아이를 대상으로 한 학교도 있다. 주요 학교군의 내역은 뒤의 그림-1에 나타낸 바와 같다. 1교당 평균 학생수도 학교군에 의해 특색이 있다. 레알스코레는 300명 정도인 반면, 릴레스콜레는 수십명 정도의 가정적인 소규모 학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옛날에는 평범한 공립 교육에 만족하지 않는 부모가 혁신적인 경우 릴레스 콜레에, 보수적이라면 레알 스코레에, 같은 경향이 분명했지만, 최근에는 얼터너티브 학교를 나누는 선이 모호해지고 있다 (10) .

2) 독립학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협회)

 각 얼터너티브 교군은 각각의 네트워크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네트워크의 산하에 참가하지 않는 학교는 모두 같다. 영국의 여름 힐 스쿨이나 태국의 아이 마을 학원과 같이, 단독으로 정부에 대치하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는 독립 학교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역사도 오래되었고, 프리스콜레의 협회는 1886년에(11), 에프터스콜레의 협회는 1908년에 설립되고 있다. 각 협회에 속하는 독립학교는 각각의 공통된 특징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자유학교협회는 소규모 학교에서 정치적으로는 좌익 개혁운동에서 태어난 소규모 학교 릴레스콜레의 지원·옹호조직이다. 또, 레알스코레를 정리하는 전국 사학 협회는 앞서 언급한 교과 교육을 중시하는 독립학교를 위한 협회이다. 한편, 최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프리스콜레 협회는 다른 협회만큼은 동질적이지 않고, 그룬트비=콜의 강한 영향하에 있는 학교군이나 종교적·민족적 소수파의 학교, 발돌프 학교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프리스콜레와 형제조직인 청소년을 위한 에프터스콜레와 성인을 위한 포르케 호이스콜레의 설립 기반으로 불리는 다음 '5개의 자유' 원칙이 공통되어 있다.

  1. 철학적 자유
  2. 교육적 자유(어떠한 교육 내용·수법의 학교에서도 설립하는 자유가 국민에 있다)
  3. 경제적 자유 (학교에는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자유가 있다)
  4. 고용의 자유(학교는 이사회를 가지고, 고용하는 직원의 자격이나 기능을 결정하는 자유는 이사회에 있다)
  5. 학생의 자유

 여기서 각 협회에 대해 상세하게 해설하는 종이 폭은 없지만, 일례로서 자유학교 협회를 간단히 소개해 둔다. 이 협회는 최근 최근까지 「릴레스 콜레(작은 학교) 협회」라고 불렸다. 릴레스 콜레는 전후 평화주의와 1960년 이후의 교육 개혁 운동에 의해 태어난 학교군이며, 교육 사상으로는 영국의 니일이나 미국의 듀이의 영향하에 있다. 정치사상적으로는 급진적인 좌익계의 흐름을 이끌어 '스몰 이즈 뷰티풀'을 표방한 얼터너티브 운동에서 '릴레(=스몰)'로 불려왔다. 1949년 첫 릴레스 콜레가 탄생하여 아기 붐의 도래를 거쳐 많은 릴레스 콜레가 설립되었다. 이 협회는 1980년대 덴마크가 경제 위기에 처했을 때 각 소규모 학교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예산을 확보하는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현재는 47개교가 이 협회에 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교군 중에서 '릴레'라고 관람하고 있는 학교는 절반 정도밖에 없고, 당초의 '스몰'이라는 표어보다 자유와 독립을 보다 강조하게 되었기 때문에 협회 쪽 ‘자유학교협회’로 개명했다.

 협회의 주된 설립 목적은 단독으로는 사회적 입장이 취약한 소규모 학교를 정리해, 「가능한 한 적은 구속과 가능한 한 많은 예산」(12)의 획득을 목적으로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었다 . 현재는, 이 목적 외, 홍보 활동이나, 정치적인 활동, 이사나 교장, 교원들의 연수, 직원과 교장이나 이사회와 교장, 직원끼리의 대립등의 문제가 일어났을 때의 조정도 실시한다 . 모든 이사를 대상으로 한 총회가 매년 1회, 교장을 대상으로 한 총회가 1회, 그 외, 특정 테마를 설정한 주말과 반나절의 컨퍼런스가 5회 있다. 게다가 협회에서는, 학교를 새롭게 창설하고 싶은 부모의 그룹의 상담에 든다.

 개칭한 이후, 회칙도 변경해, 협회의 멤버가 되는데, 협회의 이사회가 심의에 걸려, 멤버가 될 수 있는 학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덴마크 국내에서 네오나치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종교 단체가 학교를 만들기 위해 협회에 참가를 신청해 왔지만, 양쪽 모두 협회는 신청을 수리하지 않았다. 전자에 대해서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하는 협회의 교육 이념에 반하는 사상이라고의 판단으로부터, 후자에 대해서는, 원래 정치색이 강한 협회이며, 종교계의 학교와는 일선을 획한다고 하는 생각으로부터 이다. 이사회는 일년에 6회 있어 이사장과 사무국장이 일동으로 만난다. 사무국비는 각 학교가 학생 1인당 연간 250크로네(약 3,800엔)를 모아 맞는다.

 자유학교협회 등의 네트워크 그룹에는 이들을 연계시켜 예산 등의 협상을 정부와 행하는 부조직으로서 독립학교 심의회가 있어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그림-1 참조). 레알스콜레의 협회(전국 사학 협회) 사무국장 에이브 포르스베르그는 “덴마크가 쌓아온 문화의 하나는 ‘협회(어소시에이션)의 문화’입니다”라고 한다. 어느 거리에도 축구 등의 스포츠 협회가 있어, 흥미 관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옆의 연대감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다. 이러한 연대의식은 학교 만들기에도 뿌리를 내리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독립학교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자유학교협회뿐만 아니라 각 협회의 사무직원은 결코 많지 않다. 가장 큰 조직인 프리스콜레협회에서도 3명의 컨설턴트와 3명의 사무직원 총 6명의 조직이다. 이와 같은 소수의 직원으로, 새로운 학교 설립에 관한 문의에의 응대, 설립·운영 관련의 법률에 관한 조언이나 행정상의 문제 해결, 시 당국이나 교육성과의 연락·교섭, 교장이나 직원간의 면모의 중재, 교원이나 교장을 대표하는 조합적 역할, 세미나 개최, 인터넷이나 전화로의 홍보 등의 임무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체교섭은 한사람 한사람의 교원의 삶에 관련된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독립학교라고 해도 일정한 취업조건이 부과된다. 예를 들어, 모든 독립학교 교사의 취업 최저 시간은 연간 1,924시간(매주 24시간)이다.

 3) 부모의 참여와 자유로운 학교 만들기

 아마도 덴마크는 자신의 교육을 부모 자신이 생각하고 창생하자는 의식이 세계적으로 보아도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부모들이 모여 독자적인 학교 만들기를 실현한 예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풀뿌리의 움직임을 정부가 지원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덴마크의 얼터너티브 교육의 주요 특징이다.

 교육부의 담당관은 덴마크에서는 프라이빗한 학교가 창설될 때 갓 허가받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다만, 지역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창설된다는 것을 시 당국에 대해 보고해야 할 뿐이다. 다만, 보조금이 필요하다면 수업을 시작하고 싶은 해의 2월 1일까지 등록신청을 해야 한다. 독립학교 창설의 여러 조건은 다음 절에서 설명하지만, 신청비로 30,000크로네(약 45만엔)를 마련하고, 8월 개교까지 정부에 맡겨야 한다. 개교한 새벽에는 이 자금은 돌아온다. 매년 몇 가지 신청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슬람교도의 이민이 늘고 있으며, 그(녀)들도 이미 20개 정도의 독립학교를 설립하고, 다른 학교와 같은 조건으로 덴마크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다. 덧붙여서 프리스콜레 협회에는, 2000년도는 11건의 신규 학교 설립의 상담이 있어, 모두 실현했다고 한다. 2001년도에 대해서는 3개의 부모의 그룹으로부터 설립의 상담을 받고 있다(2001년 9월 현재).

 독립학교법 제1조에서 언급한 대로 공립학교와 같은 정도의 교육을 받는다면 독립학교에서 어떠한 커리큘럼을 짜려고 자유롭다. 아이를 가정에서 교육하든, 독립학교에서 교육하든, 공립학교처럼 초등교육 단계부터 덴마크어와 영어의 읽고 쓰기와 산수는 가르쳐야 하지만, 그 외는 당사자 맡기는 것이다. 교원 면허는 필수 인가 조건이 아니다. 교원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교사에 대해서도, 공적 보조로부터 급여를 낼 수 있다. 경향으로 대규모 학교에는 면허 소지자의 교사가 많아 지방의 소규모 학교에는 적다. 에프터스콜레 사무국장에 따르면 에프터스콜레에서는 약 85%의 교사가 교원면허를 취득하고 있으며 나머지 15%는 비상근 예술가나 기술자, 장인 등이 많다. 그 중에는 교원 면허 취득을 위한 특별한 훈련보다 얼터너티브한 트레이닝으로 교사가 된 것을 자랑하는 교사도 많다고 한다. 교과서도 무엇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회나 교사들이 교재를 선택해, 각각에 궁리를 집중한 독자적인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시험도 부과해도 부과하지 않아도 자유롭다. 필자가 방문한 프리스 콜레도 에프터스 콜레도 시험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전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의 보상으로서 상응의 리스크도 수반하고,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지 말아서는 안 된다. 독립학교는 건물과 토지와 규정의 아이수라는 조건만 갖추면 스타트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항상 학생 수를 유지하고 경영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각 학교의 보조금 총액은 1, 학생수, 2, 학생의 연령, 3, 교사의 연령, 3개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운영비는 공립학교의 7할은 제공되지만 원칙적으로 토지나 건물은 설치자 모두가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재산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나 특별 대출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프리스코레 등의 설립 단체 중에는 공립학교로부터의 전환조도 적지 않고, 그 경우는 공립의 건물도 토지 원래 존재하지만, 모든 독립 학교가 그렇지는 않다. 부모들이 여가를 사용하여 수제 교실을 만드는 독립학교도 결코 드물지 않다.

 이러한 자전의 학교 만들기가 지극히 자연스럽고, 지역의 교육을 인격으로 하는 부모는 적다고 한다. 독립학교를 방문하면 부모의 모습을 실로 잘 볼 수 있다. 그(女)들은 환영에 와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에 관계해, 행사에 관계해, 자원봉사·워크에 참가하고 있다. 그 중에는 교사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부모도 있다. 주말에는 풀뿌리나 교사의 페인트 칠 등도 부모 자신이 실시한다. 그릴·런치 등의 주말 기획에서는 아버지도 맹활약이다. 이런 기획뿐만 아니라 일상의 교육에 대해서도 그 방침 만들기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부모에게는 자신들의 학교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즉, 권리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학교 만들기에 다양한 형태로 커밋하고 있는 것이다.





<그 2에 이어>

시민사회에 뿌리내리는 얼터너티브 교육 2


시민사회에 뿌리내리는 얼터너티브 교육 2
민중사 중에서 길러진 지원 메카니즘
Scum Efter School 학생들
Scum Efter School 학생들

4. 자유를 살리는 시스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덴마크 사회는 비교적 자유도가 높은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그것은 얼터너티브 교육의 발전에 순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이하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자유를 플러스의 방향으로 살리는 텐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보조금이고, 보조금을 얻는 감사이고 학교 평가 체계이다.

1) 보조금

 독립학교의 예산의 7할은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이며, 3할은 부모로부터의 수업료 등에 의한다. 보조금을 받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비영리 단체임
  • 학교 이외의 인물이나 조직에 지배되는 조직이 아닌 독립 조직으로서 이익이 학교 자체에 적용되는 것
  • 건물과 토지가 혼잡한 것(분교를 가지지 않는 것)
  • 최소 5명의 이사회를 가진 것
  • 이사는 무료로 일한다.
  • 교육 활동에 책임이 있는 교사의 머리가 있는 것
  • 국가와 독립학교의 노동단체 사이에는 취업조건에 대하여 일정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든 교사가 이 취업조건에 관한 규정에 따른다.
  • 최저 28명의 학생이 있는 것(1년째에 12명, 2년째에 20명, 3년째에 28명이 되면 좋다)

출처) Henrik Koeber. The Danish Independent Schools and the State Subsidies to the Schools (EFFE: The European Forum for Freedom in Education 2000 회의 배포 자료). 2000.

 보조금을 받더라도 수업료 등 일부는 부모가 부담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방문한 파보르그 시 교외에 있는 엥가베 프리스콜레에서는 월액으로 585크로네(약 7,800엔)를 어느 부모도 지불하고 있다. 이 프리스콜레의 학교 예산 내역은 정부로부터 71%, 부모로부터 17%, 그 외(기부나 바자 등으로부터의 수입)가 12%였다. 지출의 분은, 교사의 급여가 56%, 탁아소의 운영비가 11%, 교재비가 10%, 건물의 관리·유지비가 10%, 사무비가 2%, 그 외가 11%였다 . 학교에 따라 수업료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지방은 싸고 도시는 높다. 지방에 따라서는 400크로네의 곳도 있고, 도시에서는 그 2배의 곳도 있다. 또, 탁아소를 가지는 독립학교에서는, 탁아소에 대한 시로부터의 보조금은 없기 때문에, 별도 800크로네 정도 지불하는 학교도 있다. 보조금의 계산 방법은 택시 미터 시스템이라는 독자적인 방법이 도입되었습니다. 이것은 공립교와의 균형을 맞춘 독자적인 산정법이다 (13).

2) 독립학교의 교육평가 및 경영감사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학교 만들기가 일상 감각으로 행해지고 있는 덴마크에서는, 학교의 평가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창설시에는 아동·학생수 등 이외에 인가되기 위한 어려운 장애물은 없지만,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 그만한 감사가 들어간다. 다만, 감사라고 해도 미국의 차터 스쿨과 같은 미세하게 들어가는 감사는 아니다. 즉, 모든 독립학교에는 부모의 모임이 있어, 그(녀)들이 감사역을 외부로부터 선택해, 몇 페이지의 보고를 해에 1번 실시해 주는 것이다. 이 감사역에는 부모가 선택하는 한 원칙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림-2와 같은 직업의 인물이 선택되고 있다.

그림-2 감사원의 직업

감사원 직업

출처) Dansk Friskoleforening Arsberetning 2000. 2001.

 적당한 인물이 주위에 발견되지 않는 경우는 시(지방자치단체)에게 감사를 대행하도록 의뢰할 수 있고, 실제로 시에 의뢰하는 학교는 20% 가까이 있다. 선정된 인물은 연간 며칠부터 10일 정도 학교를 방문해, 최소한의 과목이 행해지고 있는지, 경영적으로 안정하고 있는지, 규정의 통학일(연간 200일)이 지켜져 하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 평가한다. 이러한 방문 후 보고서를 만들고 교육부나 시 당국이 아니라 매년 열리는 부모총회(식사나 합창도 겸하고 토의는 4~5시간에 이른다) 및 이사회에 보고한다. 그 보고서는 겨우 몇 페이지의 것으로, 그다지 전문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프리스코레의 감사 보고서 예에 대해서는 자료 1을 참조).

 덴마크에서는 오랜 세월 이러한 친밀성이라고 할 수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 왔지만, 최근, 전문적으로 하도록 정부로부터의 활동이 보인다. 확실히 선택된 감사 위원에게도, 어떤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지 모두 눈 검토가 붙지 않는다는 당황도 있어, 정치가 중에는 교육 수준을 저하시키지 않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하여 2001년 감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처음 만들어졌다(14).

 감사 결과,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을 경우, 개선의 요청을 감사역은 학교에 실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시 당국에 통보하게 되어 있다. 추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교육부가 특별 감사를 수행 할 수 있습니다. 시 당국이 액션을 일으키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지만, 최근에는 이민의 학교에 대해서 행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교육성에 의한 감사 수준에 이르는 경우는 독립학교법이 제정된 1992년 이래 10건밖에 없다. 그중 5건은 결과가 나오고 있어 바이링갈 스쿨(덴마크어를 모어로 하지 않는 이민의 학교) 1교만 폐교가 되었지만, 4교는 개선되어 존속하고 있다. 나머지 5건은 심의 중이다. 요컨대, 최근 10년 정도로 감사의 결과, 폐교가 된 것은 1교만으로, 예외중의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즉 매년 경영상의 문제로 부서지는 학교는 몇 학교 존재하지만, 교육 내용이 문제로 폐교가 되는 학교는 전무와 같다. 또, 에프터스 코레의 경우도, 지난 10년간에 3교가 폐쇄되었지만, 모두 경영난의 끝에 폐교한 류이다(그중 2교는 페로 제도등의 참지 때문에 학생감으로 폐쇄 에 몰린 케이스이며, 다른 1교는 경영 곤란교 때문에 인근의 에프터스 코레에 학생이 흐르고 폐교한 케이스이다).

 그러나 현장의 감각으로서는, 「교육 만들기에 관한 자유도는 아직 높지만, 최근, 정부로부터의 요청, 특히 기숙제의 독립 학교에 대한 요청이 보다 어려운 내용이 되고 있다」라고 오스테즈·프리스 코레/에프 타스콜레 교장은 말했다. 특히 최근, 토빈드 스쿨(15)이 경리상의 문제로 재판이 된 이래 감사도 어려워지고 경영적으로 재검토를 요구되는 학교는 상당히 있다고 한다. 독립학교법 제21조제2항에는 “이 법 또는 교육상이 정한 제규칙에 따르지 않는 학교에 대하여 교육상은 보조금을 보류 또는 실효시킬 수 있으며 보조금 산정의 기본 조건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보조금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라 2000년도까지 지난 5년간 보조금을 중단한 독립학교는 7개교였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에도 5 개의 독립 학교가 검토를 요구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폐교를 강요당할 수도있다.

 정계에는, 독립학교에는 상응하는 세금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에, 경영면에서의 평가 뿐만이 아니라 독립 학교법에서 구해지고 있는 교육의 질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주장이나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교육 만들기를 독립학교를 포함해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1999년에는 전국교육평가연구소가 설립되어 덴마크 국내 모든 학교의 교육의 질을 유지·향상한다는 목적으로 독립학교의 평가도 본 연구소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학교 협회가 강하게 반대한 끝에 의무화는 회피되었다. 현재도 독립학교 평가 방법을 둘러싸고 독립학교 심의회와 정부가 협상 중이다.

3) 이사회와 교장

 독립학교의 한가지 특징은 학교이사회이다. 이사회는 통례, 부모를 중심으로 5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모든 이사가 부모일 수도 있고, 지역 주민을 넣을 수도 있다. 회의에는, 부모 외에 교장이나 부교장, 교사나 학생의 대표도 참가하지만, 교장이나 교사에게는 투표권은 없다. 이는 교장이나 교사의 고용과 파면도 이사회가 하는 민감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자유학교협회에서는 현재 교사도 투표권을 가진 이사에 넣도록 토의하고 있다. 이사회는 통례, 매월 개최되어 교육내용이나 재정 등에 대해 몇 시간 논의한다.

 위와 같은 최고의 의사결정 조직으로서의 이사회와 피고용자로서의 교장이라는 쌍방의 자리매김을 생각하면, 교장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라는 포착 방법도 있겠지만, 실정은 결코 아니. 필자가 방문한 프리스 콜레도 에프터스 콜레도 릴레스 콜레 모두 뛰어난 리더십이 발휘된 공동체였다. 일례이지만, 코펜하겐 교외의 가장 부유한 지역사회에 있는 홀숀 릴레스콜레의 예를 들고 싶다. 이 학교는 1970년에, 이 지역의 공립교가 대규모이므로, 보다 작은 클래스에서의 학습을 부모들이 원해, 옛 포르케 호이스 콜레의 건물을 개조해 설립했다. 그러나 동교의 현교장 비욘 고트 한소 씨가 착임할 때까지, 동교에서는 교사와 교장, 교사끼리, 교사와 학생은 서로 교제해, 연소아가 매우 안심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에 없었다고 한다. 거기서 이사회가 논의해, 공립교의 교장을 맡고, 경영 수완에 뛰어난 한서씨를 채용했다. 그 때 한수씨는 고용 조건을 내고 킬케골과 그의 실존주의 사상의 흐름을 흘리는 게슈탈트 심리학자인 월터 켐플러의 개인주의와 연대를 중시하는 사상에 기초한 학교로 한다면 착임해도 좋다. 의 조건을 나타냈다. 이사회도 부모회도 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래 한소씨의 리더십 아래 학교 개혁이 진행되어 현재는 안심하고 배울 수 있는 공동체로서 변모를 이루고 있다.

4) 교육부와 독립학교의 관계

 홀숀 릴레 스콜레의 한수 교장의 “국가는 우리를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는 말은 많은 독립학교장 관계자들의 감각을 대표할 것이다. 교육성의 얼터너티브 교육에 대한 태도에 대해 독립학교 직원이나 교장에게 물어봤지만 예외없이 쾌적한 인상을 받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또 인터뷰를 한 4곳의 독립학교협회 사무국장도 전원 교육성에 대해 같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유학교협회의 호가드 사무국장은 “교육성은 언제나 열려 있고 협력적이며 친절하며 우리를 지원하려고 합니다. 라고 한다. 교육성 홈페이지의 독립학교에 관한 해설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독립학교의 등록에 관해서는 공적재정지원에 관한 상세한 규칙이 준비되어 있지만, 교육내용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결정이 부과되고 있을 뿐이다. 를 요구해도 좋고, 교육부는 필요에 따라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16).

 독립학교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교육성과는 협력관계에 있어도 예산을 획득할 때 교환이 있는 재무성과는 적대관계를 느낀다는 견해도 보였다. 그 때 교육부는 자신들의 백업을 해준다고 한다. 많은 나라에서 얼터너티브 교육 실천자와 정부 담당관이 대립관계에 있는 현황과는 큰 차이이다.

 다만, 독립학교와 시(지방자치단체)와는 섬세한 현실적인 문제로 대립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필자가 방문한 프리스콜레에서는, 시의 수영 풀은 공립학교의 아이는 무료인데, 독립학교의 아이는 지불을 요구되고, 시영의 스쿨버스의 이용은 공립학교가 우선되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그 때마다 협상하고 있다.

 얼터너티브 교육에 있어서 자유가 중요한 것은, 관민 쌍방의 공통 인식인 것 같다. 교육부의 독립학교 담당관인 트래블그씨는 이런 것이다. “영국의 독립학교는 자유를 얻거나 보조금을 얻는지에 대한 두 자택일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여름 힐은 보조금을 버리고 자유를 선택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재정적인 감사로 걸렸던 독립학교는 과거에 10건 정도 있었지만, 교육적인 내용으로 문제가 된 학교는 전혀 같지 않기 때문에 독립학교의 질 높이와 그에 대한 정부의 신뢰 학위의 높이가 방증됩니다. 섬세한 일로 독립학교와 시 당국이 하는 것은 있어도 중앙 정부의 독립학교에 대한 태도는 매우 협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5) 유연한 조직 운동체

 그룬트비와 콜의 영향하에 시작된 덴마크의 민중교육운동이지만, 그들은 지금도 운동체로서 확산을 보이고, 대체 교육 전체로서는 결코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수를 늘리고 있다(표-1 ). 이 배경에는 친권과 자유라는 기본적인 '심'은 계속 유지하면서도 바꿀 수 있는 곳은 적극적으로 바꾸어 가겠다는 창의 궁리가 있는 운동 정신이 지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프터 스콜레는 지난 1세기 반의 역사 속에서 '얼터너티브 속의 얼터너티브'를 계속 만들어 왔다. 한때는 그룬트비와 콜의 교육 사상에 근거한 에프터 스코레가 대부분이었지만, 1950년대에는 종교적인 경건주의를 중시한 YMCA나 YWCA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학교가 설립되어 노동 운동 이나 정치적인 좌익운동이 융성했던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서는 ​​진보적인 슬로건을 간판에 내거는 학교가 늘어나, 80년대와 90년대는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를 위한 학교도 각지에 창설 현재는 개인의 흥미 관심을 중시하는 현대적 기호를 반영하여 스포츠와 음악, 드라마, 자연환경 등을 테마로 한 다양한 학교가 늘고 있다. 현재는 그룬트비와 코르식의 학교는 36%, 종교적인 학교는 22%, 음악이나 드라마 등의 예술이나 체육계의 학교는 15%, 학습 장애나 학습 곤란한 아이를 위한 학교는 14% 라고 다변화하고 있고, 2001년도 9월 단계에서 이미 4개 학교가 설립되어 총체수는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마다의 니즈를 선점하는 특성에도 앞서 '5개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정신은 보편적인 원리로서 항상 숨쉬고 있는 것은 강조될 수 있다.

6. 미래의 과제

1)어디까지 자유가 허락되는지
앞서 언급했듯이, 독립학교의 지원협회에 따라서는, 시민그룹으로부터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때문에 협회에 소속하고 싶다고 하는 리퀘스트가 왔을 경우, 회원으로서 인정할지 어떨지의 결정을 내리지 않아서 안 된다. 각 협회의 사무국장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있어 때때로 다음과 같은 화제가 되었다. 만약 네오나치 그룹이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신설교 만들기를 위한 신청을 해오면 어떻게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프리스콜레 협회의 올레 미켈슨은 이렇게 대답한다. 「네오나치이지만, 『5개의 자유』를 근거로 하고 있는 한, 협회로서 우리는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나치도 소수파인 한, 설립의 허가를 거절하는 이유는 정부에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설립 후 현실에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에프터스 콜레 협회 사무국장의 엘스 홀런드 씨는 "원칙적으로 교육성은 비록 나치라고 해도 그(여)다름한 가치관을 존중하고 소수파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에프터스 콜레나 포르케 호이스 콜레의 경우, 기본적인 가치관으로서 「생을 위한」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연대, 생을 위한 엔라이트먼트"라는 교육 목표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이나 목표와 나치의 사상이 맞지 않는 경우는, 협회에의 신청은 각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교육부 에프터스콜레 담당관인 요른 호이어 페델슨은 “설립 후 사회에 폭력적인 해를 끼칠 때 정부는 어떠한 처치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네오나치 그룹이 학교 설립을 신청해 와도, 그(녀)들이 마이너리티인 한, 정부로서 그 설립을 거절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명언한다. 페델슨 씨에 의하면, 「비록 나치즘적 사상을 가진 집단이 학교를 만드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해도, 정부는 처음부터 폐쇄시키려고 하지 않고, 마이너리티 옹호의 기본에 준거해, 학교 만들기를 허가하기 때문에 "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관찰 기간을 거쳐 위험 여부를 판단하고 위험한 경우에는 보조금을 정지하는 등의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한다.

 IPC의 교사이자 두 아이를 엘시노아의 릴레 스콜레에 통과시키는 요른 보이 닐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덴마크에서는 어떠한 사상의 소유자에 대해서도 사상적인 문제로 학교 설립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단체의 활동이 폭력에 호소하는 성질인지 아닌지 입니다.”

 에프터스콜레의 해설서에는 「에프터스콜레의 자유」라고 제목을 붙인 다음과 같은 일문이 있다. “커리큘럼과 이데올로기의 자유 : (전략) 학교가 정치적 또는 종교적, 교육적 주의에 따라 자신의 커리큘럼을 결정하더라도 국가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다음과 같은 커리큘럼, 학교를 인가할 것입니다.즉, 학생을 국가 전복으로 향하게 하는 목표가 명기된 커리큘럼, 자의대로 성서를 강독하는 커리큘럼, 교실에서의 티칭이 숍이나 필드 에서의 작업을 대신하는 학교, 커리큘럼에 하나의 과목 밖에 두지 않고 학생과 교사가 그 때 그 자리에서 학습 테마를 결정하는 학교 등이다.」(17)

 컬트 집단의 교육에 관여하여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일본 사회에서는 위에 소개한 발언이나 해설문은 위험한 표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네오나치를 인증한다는 것 자체가 나치즘에서 가장 멀거나 나치즘을 다시 낳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소수파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하면 너무 아이러니컬일까 . 관민 쌍방의 전문가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몇 번이나 덴마크의 교육 관계자의 <감성>, 환언하면, 적년의 민중 운동으로 길러진 <소국의 지혜>라고도 칭해야 할 정신 문화에 접한 생각 했다.


2) 최근의 사회 변화

 시민의 학교 만들기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어느 쪽인가 하면 컨트롤보다 서포트라고 하는 인식이 시민 측에도 정부 측에도 정착하고 있다. 물론 건전한 경영과 기초 학력 유지에 대해서는 퀄리티 체크의 일단을 정부가 담당하지만, 그것이 시민의 창의 궁리를 저해하도록 기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시민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이지만 흔들리고 있다. 에프터스콜레 사무국장 엘스 홀런드는 "최근 정부는 교육 만들기를 시민에게 맡기지 않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는 덴마크 사회의 이민 문제가 있다. 덴마크 이민자의 대부분은 터키와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의 이슬람 국가와 구 유고슬라비아의 사람들이다. 이민 인구는 전국민의 약 6%를 차지하고 특별한 정책을 잡지 않는 한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1994년에는 약 6%였던 취학연령의 이민아이 인구는 6년 후에는 전취학아동·학생의 10% 가까이를 차지하는 기세로 증가의 일단을 따랐다(18). 이들은 정주지에서 자신들의 학교를 만들고, 플리스콜레 협회 산하에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학교의 교육 내용은 덴마크어나 영어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고, 덴마크의 역사도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사태를 근거로 정치인으로부터 덴마크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교육수준을 습득하기 위한 표준이 불가결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성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이슬람계 소수민족 교육을 담당하는 직원을 임명하고 교육내용 등에 대해 토론하고 필요하다면 개선을 요구하게 되었다. 2001년 9월, 교육부는 프리스콜레 등의 독립학교를 대상으로 교육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교육상의 이름으로 배포했다. 1세기 반의 민중교육사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며, 향후의 동향이 주목된다.

7. 무스비로 돌아가서 : 소수파라는 뜻

 덴마크의 교육 시스템을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로 하는 견해는 적지 않다. 특히 얼터너티브 교육 관계자는 파타나리즘에 견인되지 않고 발전해 온 동국의 교육 시스템을 칭양하는 경향에 있는 것 같다. 필자와의 회견에서, 미국의 얼터너티브 교육 자원 센터 사무국장은 덴마크의 교육 시스템을 「믿을 수 없지만 기능하고 있다」라고 표현해, 한국의 홈 스쿨 연구자는 덴마크를 교육의 유토피아라고 하는 의미로 「에듀 토피아」라고 칭하고 있었다.

 확실히 덴마크 교육에서 배우는 곳은 적지 않다. '생을 위한 학교' 교육이나 삶에서의 대화의 중시, 연대의 문화 등 유니버설한 정신성을 덴마크의 교육에서 읽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다. 또, 부모의 학교 참가, 지역 주민을 말려들어의 학교 만들기, 독자적인 학교 평가법, 정부에 의한 얼터너티브 교육의 적극적 지원 등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배우는 곳은 적지 않다. 더욱 강조해야 할 점은, 교육법으로 해도, 교육 시스템으로 해도, 상당히 큰 프레임의 프레임이며, 그 내실을 결정하고 있는 것은, 개별의 부모나 학생, 그 외의 학교 운영자들의 상식이고 양식이라는 것이다. 커리큘럼에 대해서도 일본의 학습지도 요령과 같은 규정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덴마크어, 영어, 산수(수학)등의 기초과목의 습득은 요구되고 있지만, 그 이외는 당사자 맡김이다. 덴마크에서는 이러한 세부 사항에 걸치는 규정을 하지 않는 메커니즘이 시민의 양식과 판단력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얼터너티브 교육 지원 협회 사무국장들이 덴마크의 '명문화하지 않는 문화'에 대해 말할 때 이러한 메커니즘에 의해 길러져 온 스스로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의 교육시스템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경우 얼터너티브 교육뿐만 아니라 전체상을 봐야 한다는 게 현지조사를 마친 인상이다. 덴마크에서는 국가 시스템 하에서도 매우 어려운 것을 매우 쉽게 실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일견, 누구라도 완전히 자유롭게 학교를 만들 수 있는 제도로 생각되는 것이며, 어쨌든 그것은 잘못은 아니지만, 얼터너티브한 교육을 제도로서 확립시키고 있는 것은, 공립학교와의 미묘한 길항관계로 또는 관과 백성과의 체크 앤 밸런스이거나 한다. 택시미터라고 하는 독자적인 이론에 준거한 보조금 평정법을 취해도, 독립학교 시스템과 공립학교 시스템과의 매우 미묘한 관계 위에 성립되고 있는 것이 지적되어 좋다. 이러한 섬세한 주름을 보지 않으면 덴마크의 얼터너티브 교육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것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덴마크의 얼터너티브 교육과 공교육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덴마크의 공립학교와 독립학교는 쌍방 모두 상대를 통하여 보지 않는 존재를 확인하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독립학교가 낳는 쇄신적 실천이 '알람 효과'를 주고 공교육도 개혁되어 왔다는 경위가 있다. 홀숀 릴레 스콜레의 한수 교장은 “여기서 실험적인 시도를 교사가 하고 싶다고 상담하러 오면 곧 '해보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는 그러한 자유가 허용되지 않고, 교사들의 선진적인 시도나 자주성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그러니까 독립학교에서 선진적인 프로젝트가 태어나 공립학교에도 퍼져가는 일이 자주 있다 입니다”라고 독립 학교의 교육 시스템 전체에서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엥가베 프리스콜레의 한센 교장도 공립학교와 독립학교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덴마크에서는 공립교와 독립학교는 서로 자극을 주고 좋은 관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독립학교에서 실험적인 실천이 태어나 그것이 공립교에도 파급해 갔습니다 」. 실제, 현재는 공립학교에서도 보급된 팀 티칭이나 프로젝트 베이스드 워크, 또는 유치원의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와의 협동(교과가 아니고 생활을 보다 중시하는 유치원 교사가 초등학교의 실내 환경 등을 개선한다 효과) 등은 모두 독립학교에서 발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얼터너티브 교육이 소수파라는 것의 의의에 대해 접해, 억지로 하고 싶다. 필자는 프리스콜레 협회 사무국을 방문해 사무국 직원의 오레 미켈슨씨와 이야기했을 때, 얼터너티브 교육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를 주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올레 미켈슨

프리스콜레 협회 사무국 오레 미켈슨

 미켈슨은 소수파로서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얼터너티브 교육이 소수파라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 중요한 것입니다.덴마크의 얼터너티브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는 1할 정도입니다만, 그 1할인 것의 의의는 특별히 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밸런스입니다.」이러한 미켈슨씨의 <감성>은 다음과 같은 힌트를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즉, 얼터너티브 교육에 대해 말할 때 자녀의 자주성이나 주체성, 권리 등 우리는 어쨌든 교육의 질에 주의를 환기하고 그들을 보편적인 가치로 보급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교육 시스템 전체적으로 양적인 균형이라는 시점은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보다 많은 놀이와 모험, 경우에 따라서는 기발함이나 좋은 가감함까지도 허용되는 시스템의 구축, 환언하면, 사회 시스템 중에서 1할 정도의 <투명간>을 열어 두는 것을 소중히 하는 것 같은 문화를 양성해 나간다는 인식이야말로 교육 개혁에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미켈슨 씨의 말은 다음 사에키 씨의 말을 상기시켜 주었다. 즉, 「미지성을, 무리하게 의도적으로 도입해 둔다」 것, 「제도안에, 그 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반증하는 요인을 소중히 보호해, 기르고, 어느 시점에서는 철저 개혁을 실시한다」 라는 시점의 중요성이다 (19). 덴마크의 얼터너티브 교육 관계자가 「자유」나 「아이 중심」등의 신교육 운동의 표어보다, 「소수파」 또는 「소수파의 권리」를 표방하는 것이 많은 것도, 시스템 개혁이라는 테마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최종 보고서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싶다.

<주>
(1) OECD-CERI. 2001. p.49. 확실히 최근에 실시된 OECD 학생의 학습 도달도 조사(PISA)의 분석 결과와 같이, 교육비의 지출 대신에 학생의 실적은 결코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데이터도 있다(OECD. 2001. p.91.). 그러나 국제비교조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준으로는, 나중에 접할 휴머니스틱한 교육 혹은 「민중의 사회적 자각」(시미즈만 1993, p.62.)에 근거하는 교육<성과>는 반드시 계측된다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2) 관련 법령에 대해서는, 사사키 마사하루 「덴마크 국민대학 성립사의 연구」, pp.40-50.를 참조.

(3) 덴마크 정부가 만든 교육 브로셔를 보면 풀뿌리의 움직임에 상당한 평가를 두고 그러한 문화를 자부하는 것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예 : Royal Danish Ministry of Foreign Affairs. The Danish Folkehojskole. ). 또 후술하는 바와 같이, 교육성 직원에의 인터뷰에서도 시민 운동을 지원하려고 하는 의식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4)자세한 것은, 시미즈만 「생을 위한 학교:덴마크에서 태어난 프리스쿨 「포르케 호이스 코레」의 세계」, 1993, 신평론을 참조.

(5) 공립학교에 관한 「국민학교법」에 대해서는, 지바 타다오 감수 「덴마크 국민학교법」을 참조. 또한 얼터너티브 교육 관련 독립학교법에 대해서는 본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현재 방역 중이다.

(6) 덴마크에서 전국적으로 설립된 초등교육 수준의 얼터너티브 교육교. 공적 조성을 받고 있지만, 커리큘럼이나 교수법, 교과서 등에 대한 요청은 매우 적다.

(7) 2001년 9월 10일, 교육부에서의 인터뷰.

(8) 덴마크 교육부의 Henrik Koeber의 논고에 따라 공비가 상당한 비율로 투입되고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도 사립학교가 아닌 독립학교라고 부르기로 한다. (The Danish Independent Schools and the State Subsidies to the Schools. EFFE (The European Forum for Freedom in Education)의 2000년 회의에서 제출된 논문)

(9) 로스킬데시 교외의 오스테드 에프터스콜레에서의 인터뷰. 2001년 9월 13일.

(10) 「전국 사학 연맹」 사무국장 에이브 포르스베르그 씨와의 인터뷰. 2001년 9월 10일.

(11) 첫 프리스콜레가 설립된 것은 1852년이다.

(12) 자유학교 협회 사무국장에의 인터뷰. 2001년 9월 10일.

(13) 자세한 내용은 Henrik Koeber. The Danish Independent Schools and the State Subsidies to the Schools를 참조하십시오.

(14) Undervisningsmin. Bekendtgorelse af lov om Friskoler og Private Grundskoler mv, Lovbekendtgorelse Nr. 529 af 6. juni 2001. 참조.

(15) 1960년대의 카운터 문화 운동 시대에 태어난 얼터너티브 학교이다. 국내외에서의 매우 라디칼한 실천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는 국내에서도 10개 이상이 되어, 카리브해역 등의 도상국에서도 호텔이나 텔레비전국을 경영해 나갈 때까지 성장했다. 세금이 교육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의혹이 있었고 1996년 인가가 취소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가로부터의 교육의 자유'의 침해가 아닌가로서 국민적인 논의를 일으켰다.

(16) http://www.uvm.dk/eng/

(17) Efterskolerne. Meet the Danish Efterskole. Kobenhavn. 1992. p.8.

(18) http://www.uvm.dk/eng/publications/factsheets/fact9.htm

(19) 사에키 씨의 「미지의 것의 제도적 도입」론, 혹은 「윤리적 태도로서의 미지성」, 「미지성에 대한 신뢰의 윤리성」에 대해서는, 「키메 방법」의 논리:사회 적 결정 이론에 대한 초청 '(도쿄 대학 출판회, 1980, pp. 299-310)을 참조한다.

<사사>
얼터너티브 교육에 대해 연구할 때, 어쨌든 개개의 실천의 퀄리티에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었던 우리의 연구 프로젝트에 있어서, 「무스비로 돌아가서」로 접한 것처럼, 「제도의 질적 측면'과 '윤리적 태도'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여기에는 덴마크의 현지 조사에서 미켈슨씨를 비롯한 정책 담당자의 <감성>에 접한 것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또, 2001년 11월에 태국의 아이 마을 학원에서 개최된 제3회 국제 얼터너티브 교육 세미나로 향할 때의 버스 중, 당 연구회의 연구 분담자인 요시다 아츠히코씨와 교제한, 문득한 대화 위의 <깨달음>에 대해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켈슨씨와 요시다씨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싶다.

<참고 문헌>
사사키 마사하루 "덴마크 국민 대학 성립사 연구"카자마 서방, 1999.

시미즈 만 「생을위한 학교 : 덴마크에서 태어난 프리 스쿨 "포르케 호이스 코레"의 세계"신평론, 1993

치바 타다오 감독, 덴마크 국민 학교법

『유네스코편 세계교육백서 1999』(World Education Report 1998. UNESCO Publishing, 1998.)[일본유네스코협회연맹감역, 도쿄서적], 1999.

OECD. Knowledge and Skills for Life: First Results from PISA 2000. OECD, 2001.

OECD-CERI. Education Policy Analysis. OECD, 2001.

출처:국제 얼터너티브 교육 연구회 「얼터너티브한 교육 실천과 행정의 본연의 자세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중간 보고 사례집)」(2001년 12월)








덴마크와 일본의 인간교육(I) 이케다·헤닝센 대담이 시사하는 것

덴마크와 일본의 인간교육(I)


J-STAGE 톱
/
태성학원대학 기요
/
15권 (2013)
/
서지

덴마크와 일본의 인간교육(I)
이케다·헤닝센 대담이 시사하는 것

테라다 치사
저자 정보
키워드 : 대화 , 사제론 , 평생 학습
연구 보고서, 기술 보고서 오픈 액세스


2013년 15권 p. 179-190
DOI https://doi.org/10.20689/taiseikiyou.15.0_179


상세
PDF 다운로드 (533K)
메타데이터 다운로드RIS 형식

(EndNote, Reference Manager, ProCite, RefWorks와 호환 가능)
BIB TEX 형식

(BibDesk, LaTeX와 호환 가능)
텍스트
메타데이터 다운로드 방법발행기관 연락처

기사 개요
공유하다



초록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에 있다고 생각한 것은, 덴마크에서는 니콜라이 프레데릭 세브린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마키구치 토모사부로(1871-1944) 이다. (1) 최근, 행해지고 있는 각종의 행복도 조사에서는 어느 조사에서도 덴마크는 항상 상위를 차지하고, 일본은 하위에 위치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을 생각할 때, 그의 나라의 교육이념을 재인식하고 크게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부제에 내거진 「이케다」란 창가대학・학원 창립자, 이케다 다이사쿠(1928~)를 말한다. 소설 「인간혁명」의 저자이기도 하고 널리 세계의 교육자와 대담을 거듭해, 2012년도로 세계의 교육 학술 기관으로부터 315를 넘는 명예 학술 칭호가 주어지고 있다. 또 「헤닝센」이란 Hans Henningsen(1928~)을 말한다. 그룬트비 연구의 제일인자로서 유명하며, 덴마크 교원육성대학협회 이사장(1993~2003) 등을 근무한 교육자이며 목사이기도 하다. 1994년에는 덴마크 왕실에서 '국가 나이트 십자 훈장'의 칭호를 받았다. (2)이 두 사람이 대담집 "내일을 만드는 "교육 성업"-덴마크와 일본 우정의 이야기-"(2009 조출판사)를 엮고 있으며, 본고는 그에 따라 그룬트비의 교육 이념이 일본의 교육에 미친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마키구치의 교육이념이 이케다에 의해 새로운 인간교육론으로 전개되고 있는 배경을 찾아보려고 생각했다.





저자 관련 정보


인용 문헌 (1)

Haruhisa TERADA. Human Education of Denmark and Japan(Ⅷ). TAISEI GAKUIN UNIVERSITY BULLETIN. 2021, Vol.23, No.0, p.69.

© 2013 태성학원대학

 

 

 

デンマークと日本の人間教育(

池田・ヘニングセン対談が示唆するもの

 

 "Human education" of Denmark and Japan

Learn to the talk of Ikeda and Henningsen

 

寺 田 治 史

aruhisa TERADA


 

 

<要 約> 教育の目的は人間の幸福にあると考えたのは,デンマ-クではニコライ・フレデリック・セブリン・グルントヴィ(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であり,わが国においては牧口常三郎(1871-1944)である。1近年,行われている各種の幸福度調査ではいずれの調査でもデンマ-クは常に上位を占め,わが国は下位に位置する。今後,我が国の教育を考える時,彼の国の教育理念を再認識し,大いに学ぶことがあるように思える。

副題に掲げた「池田」とは創価大学・学園創立者,池田大作(1928~)のことである。小説「人間革命」の著者でもあり広く世界の教育者と対談を重ね,2012年度で世界の教育学術機関から315 を越える名誉学術称号が贈られている。   また「ヘニングセン」とは Hans Henningsen (1928)のことである。グルントヴィ研究の第一人者として著名であり,デンマ-ク教員育成大学協会理事長(19932003)などを勤めた教育者であり,牧師でもある。1994 年にはデンマ-ク王室より「国家ナイト十字勲章」の称号を贈られている。2

この両者が対談集「明日をつくる教育の聖業” ―デンマ-クと日本 友情の語らい」(2009 潮出版社)を編んでおり,本稿は,それに因んで,グルントヴィの教育理念が日本の教育に及ぼしてきた歴史を振り返りつつ,牧口の教育理念が池田によって新たな人間教育論へと展開されてい

る背景を探ってみようと考えた。

 

<キ-ワ-ド> 対話,師弟論,生涯学習

 

1. はじめに

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は「生の教育」,牧口のそれは「創価教育」と呼ばれているが,本稿では共に「人間教育」の名で括っておく。他に「全人教育」3,「ホリスティック教育」4などの類似概念もあるが,いずれも知と情と意を統合して育てる教育理念として捉え,「人間教育」の名で呼称する。

アスコ-校(以下アスコ-校)でのヘニングセンの我々に対する講義の第一声は常に,グルントヴィの言葉「先ず人間であれ」で始まり宗教について自らは語らない。

池田もまた常々「教育が私の人生最後の事業」と教育を最重要視している。ともに人間教育を標榜する同志的な関係にあることを感じさせる。国際経済の世界のみならず国際教育の世界にもグロ-バル化とフラット化の大波が押し寄せる今日,個々人の人生とは何か,幸福とは何か,教育はどうあるべきか等,縦横に語り合う両巨人に学ぶことは多い。

今日に至るまでグルントヴィと国民高等学校について,憧憬の眼を持って我が国に紹介またはその教育理念を取り入れ,国内に国民高等学校を設立した例は尐なくない。

その殆どがキリスト者としての宗教的信念と

教育的熱意からのものであったと言える。

グルントヴィもその弟子クリステン・コル(Christen Kold 1816-1870)も敬虔なるキリスト者であり,ヘニングセンもまた牧師であるが,そのヘニングセンが対談者として仏法者池田を選んだのは何故か。

それは両者とも教育の目的を「人間の幸福」に置いており,宗教の目的も同じだが,その後ろに存在すると言う認識に立っている。5

また,2000 年以後,池田が創立した創価大学や関西創価学園生たちが毎夏,海外研修としてアスコ-校を訪れており,ヘニングセンは,その「学びの姿」を目の当たりにして創価教育に興味を持

ったからだという。

筆者もまた,2002.2005.2010年に,研究目的でアスコ-に滞在しており,その様子を目の当たりにして同じ想いを抱いている。

2010 年にアスコ-校を訪れ,ヘニングセンとの語らいの中で氏から投げかけられた質問は,これからの教育について経済主義と(人間)教育主義のいずれを選ぶのかと言うものであった。

デンマ-クは,今日に至るまでグルントヴィとコルに始まる教育改革,国民高等学校運動によって,教育・福祉立国の道を切り拓いてきた。

言わば,「人間教育主義」の歴史を刻んできた。

一方,我が国は明治の学制改革以来,「富国強兵」,「殖産興業」の名のもとに経済重視の道を歩んできたと言える。

我が国の教育が全て間違っていたとは思わないが,昨今の不登校,いじめ,学級崩壊,ニ-ト,引きこもり,尐年犯罪の増加など「教育の危機」と叫ばれる今日,小手先の対症療法で改善できるような状況ではない。言わば,経済至上主義の道を歩み続けた結果である。

しかしこの時のヘニングセンの問いは,両国の過去の歴史を比べたのではなくて,2008 年に米国発のリ-マンショックを共に経験しており,国家経済が危機に瀕した時にどのように対処するのかという観点に立ったものであった。

それは教育を手段とするのか目的とするのかという問いでもあった。

池田は,早くからそのことを指摘して「社会のための教育」から「教育のための社会」へのパラダイムの転換を提唱して来た。6)(7

因みに,池田の「教育のための社会」のパラダイムについての知見は,コロンビア大学の宗教学者ロバ-ト・サ-マン(Robert A. F. Thurman 1941~)から得ており,サ-マンの「教育が人間生命の目的であると私は見ている」という言葉を紹介している。

なお,サ-マンのこの考えは,インドが生んだ人類最初の教師と言われる釈尊(釈迦)の教えに学んだものであると言う。8

デンマ-クの国民高等学校運動は,言わば人間教育主義の提唱であり,グルントヴィとコルが約 170年前に歩み始めた教育改革の道でもあった。本稿では,内村鑑三(1861-1930)や松前重義(19011991)ら,デンマ-ク教育を我が国に紹介し導入してきた先覚者の知見と功績を概観した上で,さらに一歩進めて,グロ-バルな視点から,「教育のための社会」構築のために対話する池田,ヘニングセン両氏の語らいの深淵を探ってみたい。

先ず両国の教育に関する歴史的関係を概観しておく。

 

Ⅰ. 系 譜

1)岩倉使節団(1871-1873

日本とデンマークとの関係は1867年,江戸幕府による修好通商航海条約締結に始まる。

1871年,岩倉使節団(岩倉具視1825-1883)は太平洋を渡りアメリカを訪問,8ヶ月の滞在の後大西洋を渡り,ヨーロッパも訪問している。訪問国は,イギリス(4ヶ月)・フランス(2ヶ月)・ベルギー・オランダ・ドイツ(3 週間)・ロシア(2 週間)・デンマーク(5日間)他,スウェーデン・イタリア・オーストリア・スイスの12カ国に上る。1873年4月19日にはデンマーク国王クリスチャン9世に謁見し,王宮,諸機関,施設を見学している。9

この使節団の目的は主として米英二ヶ国との不平等条約解消の交渉のためであったが果たせず,英国を後にしてからは訪問の目的が親善視察に変わっていったとされる。後の富国強兵,殖産興業への足がかりになったのである。

したがってデンマ-クに於いて1844年に最初のフォルケフォイスコーレ(以下,「国民高等学校」と称す)がロデインに開校されていたことも,グルントヴィやその弟子コルの存在も知らなかったと思われる。因みにアスコ-国民高等学校は既に1865年に開校していた。したがってこの使節団は1872年の学制発布とは無関係であり,わが国の教育制度はフランスをモデルにしたとされる。10

 

2)矢作栄蔵の欧州留学(1902-1907

デンマ-クの国民高等学校と創始者グルントヴィおよび後継者コルを最初にわが国に紹介したのは矢作栄蔵(1870-1933)である。

矢作は当時,東京帝国大学助教授・法学士の肩書きを持ち農政学研究のため,1902 年にヨーロッパに留学の旅に出て1907年に帰国している。その間にデンマ-クを訪れており,帰国後「産業組合」誌32.33号に「丁抹の生産組合」を寄稿し,国を復興させたグルントヴィの功績を讃えている。なお,ここでは国民高等学校を「特殊国民補修学校」,グルントヴィを「グルントヴィク」,コルを「コ-ルド」と記述している。

また,この時期,農政学研究の立場からデンマ-クを取り上げた人物に,佐藤寛次(1879-1967)をはじめ,数名の研究者がいたことが,宇野 豪

2003)によって紹介されている。11 3)ホルマン著 那須 浩訳「國民高等学校と農民文明」(1913

次に,教育研究の立場からデンマ-クを紹介したのはドイツの農政学者ホルマンであり,その著書を日本語に翻訳したのが農学者,那須 浩(1888-1984)である。この本で初めて,アスコ

-校が写真入りで掲載されている。

隣国であり,争いの絶えなかったドイツの農学者ホルマンがグルントヴィの教育事業を「この事業の成績益々顕著なる程,この学校の未来も亦愈々大であろう。是の如き学校は単に北欧の天地のみに止まる事無く,軈ては全世界に普及すべき運命を有する」と讃え,国民高等学校が当時,北欧にしかなく独特のものであることから,ありふれた学校観念で見ても分からないので,グルントヴィその人の思想に学ぶ必要がある(趣意)と述べている。

また,グルントヴィを国民の未来の発展を洞観できる史的眼光創造的思想広大深遠なる感情を兼ね備えた「丁抹の国民的天才」であると絶賛したのである。

一方,訳者那須は「解題」において,当時,北欧文明の一大勢力となりつつある国民高等学校の起源,沿革,組織と根本精神を明らかにし,詩人グルントヴィと哲人コルの生涯を説き,この独特の教育によって生まれた農民文明にについて論じたものであると本書を説明している。

矢作がホルマンを読み,那須に翻訳を依頼したところから,隣国ドイツの農学者ホルマンのグルントヴィ観と国民高等学校の存在が我が国に紹介されるところとなり,やがて牧口から弟子の戸田城聖へ,戸田から弟子の池田へとその教育理念

が伝播されたのである。

 

4)野田義夫 「丁抹国民高等学校の研究」(1930)本の目次を見ると「2.グルントウイッヒ(筆者注:グルントヴィ)と国民高等学校」,「3.の三,国民高等学校の殊勲者コ-ルド(同:コル)」の表題が見られる。最後の「8,所感」には「丁抹の国民高等学校は創唱者グルントウイッヒ並に....

彼の一体心身とも称すべきコ-ルドの人格を具

...体化したものであり,学校の内部には此の両人の

..熱血が今日も宛ながら横溢していることは上来屡々詳述した通りであるから,私が国民高等学校に就いて感心した事は同時にグルントウイッヒとコ-ルドに感じた事になり,国民高等学校の長所と認め且つ功績と賞賛する所はやがて両人の長所功績と見ねばならぬ」(一部現代表記に変換)。  ここで注目したい言葉は,グルントヴィとコルの関係を「一体心身」と述べ,「両人の熱血」云々と表記していることである。

 話は前後するが,宇野によると,前述の矢作と那須も師弟関係にあり,矢作がドイツの農政学者であるホルマンの著作を紹介して那須に翻訳を担当させたのである。12ここにも両氏の「一体心身」と「熱血」が感じ取れるのである。

 グルントヴィとコル,矢作と那須,内村と松前,後で述べる牧口と戸田,戸田と池田の間に国民高等学校すなわち人間教育の理念は全て師弟における「一体心身」と「熱血」によって継承されてきたことに着目しておきたい。

 また,牧口と那須は当時「郷土会」の研究仲間であり,那須が訳した「国民高等学校と農民文明」を読んでいた事は想像に難くない。13

 その牧口が著した「創価教育学体系巻」の「諸言」において,出版の功績をコルに擬えて弟子,戸田を讃えたのである。因みに牧口と戸田の関係を池田は「師弟不二」なる言葉で讃え続けている。

 

5)内村鑑三「デンマルク国の話」(1911

 次に上げられるのは講演集「後世への最大遺物・デンマルク国の話」を著した内村鑑三である。「後世への最大遺物」は1897年に講演し,「デンマルク国の話」は1911年に講演したと記されている。「デンマルク国の話」の初出は,『聖書之研

究』第136号(1911年)である。

その内容は,1864 年,デンマ-クは肥沃な土地であるシュレスウイッヒ-ホルスタイン地域がドイツ・オ-ストリアとの戦争に敗れ割譲を余儀なくされた。そのためデンマ-ク国民は塗炭の苦しみを味わったという。

その時に「外に失いしところのものを内において取り返すを得べし」という有名な言葉を発する人物がいた。この本ではグルントヴィではなく,エンリコ・ダルガス(1828-1894)という軍人(工兵士官)の言葉として紹介されている。

つまり,奪われた土地を取り返す戦ではなく,残されたユトランド半島の荒野を開拓する道を選んだのである。これによって,デンマ-クが復興したことが紹介されている。

因みに内村はデンマ-クに行っておらず,グルントヴィの名も国民高等学校のこともこの時は知らなかったと思われる。 後述する平林の話を

聞いて知ったようである。

 

6)平林広人の留学(19241927

 平林広人(1886-1986)は教会の牧師からデンマ-クのことを聞き1924年から3年間,アスコ-やヴァレキレ国民高等学校に留学している。

帰国後デンマ-ク研究家として活躍し,晩年は東海大学の北欧文学科の講師にもなった人物である。14

興農学園の初代校長となった平林広人は,内村の依頼を受け,昭和5年(1930年)1月に内村の集会で講演をしている。内村はその模様を次のように日記に留めている。

「昭和5112日 本年第一の研究会である。何しろ壇上に現はる々事が出来た。伊豆久連興農学園々長平林広人が来て丁抹国農聖人グルントビーの信仰に就いて話して呉れた。強く一同を感動せしめた。『活ける言葉とは人の全身全性格を通うして働く所の言葉である』と云ふのであった。まことに其通りである。我等研究会々員は今日まで余りに多く言葉を言葉として受けこれを我等の衷に働かしめなかった。平林君はグルントビーが丁抹を救うた途に依り日本を救はねばならぬと云うた」と。

ここに「活ける言葉」,「グルントビ-」の記述があり国民高等学校のことは平林によって知らされたことが窺える。また,ダルガスが語ったとされる「外に失いしもの・・・」と言う言葉自体,筆者もグルントヴィの言葉として見付ける事はできていないが,内村自身が「グルントビーが丁抹を救うた途に依り日本を救はねばならぬ・・・」と書いているところから,精神的支柱はグルントヴィにあると認めていたことが分かる。

なお,内村はこの時,既に病の身であり,その後328日に亡くなっている。15

 

7)松前重義のアスコ-校訪問(1934

内村に師事した松前について,彼が創立した東海大学(1942 年開設)のホ-ムペ-ジには「松前は,内村の思想と人類の救済を説く情熱的な訴えに深く感銘しました。また,そのなかで松前は,プロシアとの戦争に敗れ,疲弊した国を教育によって再興させた近代デンマークの歩みを知ります。とくに,その精神的支柱となった N.F.S.グルントヴィ(17831872)が提唱する国民高等学校の姿を知り,そこに教育の理想の姿を見出します」と記されている。  

しかし彼が直接,内村からグルントヴィや国民高等学校のことを聞いたのではなく,先に述べた平林の講演を聴いたのがその始めである。

そのことについて難波は次のように書いている。 「デンマ-クのホイスコ-レ教育(筆者注国民高等学校教育)による国家建設によって平和で豊かな民主主義社会を形成した歴史に強く感銘した松前は平林が校長を務める静岡県田方郡西浦村九連の興農学園を度々訪し,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やホイスコ-レについて研究を始めるようになった」と。16

その後,松前自身がデンマ-クを訪れる機会があり,アスコ-校にも滞在している。

帰国後,彼が著した「デンマ-クの文化を探る」(1962)の序には「デンマ-クに学ぶべきものは先ず其の歴史である。特に国民高等学校の創始にあり,其の精神にあり,其の信仰にある。国家の礎は教育にあり精神にあり信仰にあることを事実の前に証明したるはデンマ-クである。」と国民高等学校を讃嘆している。

なお,同ホ-ムペ-ジでは松前に影響を与えた人物として,新渡戸稲造(18621933)を挙げ,「(新渡戸は)思想家,農業経済学者,教育家です。札幌農学校卒業後,アメリカ・ドイツ留学ののち,京大教授,一高校長などを歴任し,キリスト教信者として国際親善に尽くし,国際連盟事務局次長もつとめました」と紹介している。

教育家でもある新渡戸は牧口とも親交のあった人物であり,創価教育学体系の「序文」に「我が国将来の教育と創価教育学」と題する一文を載せて,牧口の創価教育学に期待を寄せていた。

なお,同序文には新渡戸の他にも社会学者の田辺寿利(18941962),民俗学者の柳田國男(18751962)からも一文が寄せられている。17

 

8)牧口常三郎 「創価教育学体系」(1932)さて,次に取り上げるべき人物が牧口である。彼が1932年に著した大著,創価教育学体系第 1巻「緒言」にグルントヴィとコルの名が登場する。松前のデンマ-ク訪問の2年前の発刊である。

そこには「丁抹の国勢を挽回したと謂われる,国民高等学校が今日の隆盛は,主唱者グルントウィッヒの功績よりは,尐壮気鋭の後継者コールトのそれに帰せられているのを思い起こすとき・・・」とあり,創価教育学体系発刊に尽力した戸田のことを,後継の弟子コルになぞらえて讃えていたのである。

当時,北欧学の大家と目され国民高等学校の存在も知っていた牧口だが,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に踏み込まず,独自の創価教育学を提唱したのは何故か,大いに興味を引く問題であるがこれについても次稿以下で触れてみたい。18

いずれにしてもグルントヴィの教育理念と牧口のそれとは根本において共鳴していると思われる。それは幸福なる生活,人生をテ-マとしている故である。

また,グルントヴィを育んだ思想的基盤がキリスト教(ルタ-派)であるのに対して,牧口は日蓮仏法を奉じており,後に創価教育学会(現創価学会)の初代会長となっている。

これまで述べたデンマ-ク教育の紹介者の殆どが,大なり小なりキリスト教信仰を基盤とした国民高等学校を語ってきたが,牧口,戸田,池田はキリスト者でなく仏法者である。

キリスト教の「愛」の精神を根底に置き「先ず人間であれ」と叫ぶグルントヴィ,仏法の「慈悲」を根底に「教育の目的は子どもの幸せ」と唱える牧口,真に民主主義教育を目指す両者の精神は深いところで響きあっ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

 

Ⅱ. 民衆教育と民衆宗教

1) ヘニングセンと池田の共通性

国民高等学校やグルントヴィとコルの功績を紹介し,その教育理念をわが国に取り入れた先覚者は多い。

しかし,現地のグルントヴィ教育の実践者であり研究者でもある人物との対談集を編んだのは池田が初めてであろう。

ヘニングセンはキリスト者としてグルントヴィの孫弟子と言ってもよく,池田は仏法者として牧口の孫弟子,戸田の直弟子である。しかも両者とも教育を最重要視して携わってきた経歴を持っている。

グルントヴィは民衆を無智化して統制する当時の教会権威主義と真っ向から戦い,民衆のための宗教,民衆のための教育を訴えた。

その教育理念を受け継ぎ国民高等学校運動として実践したのがコルである。

ヘニングセンは,グルントヴィと縁の深いアスコ-校の元校長であり,グルントヴィ研究の第一人者である。今なお教壇に立って対話し,多くの教育者,学生から慕われている。 

一方,池田は「僧が上,信者は下」と反民主的権威主義に陥った日蓮正宗宗門から時代錯誤の破門に会った(1991)。しかしこのことはグルントヴィが当時,牧師職を解かれた(1825)のと同じく,民衆のための宗教指導者としての立場を明確にしたのである。 以後 SGI(創価学会インタ-ナショナル)名誉会長として民衆のための宗教,民衆のための教育に専念することになる。 

また教育に関しては牧口・戸田の遺志を受け継いで国内外に「創価」の名を冠した幼,小,中,高の学校園を創立してきた。1992 年にはアメリカ創価大学も創立している。また折々にそれらの学校園や海外の諸大学から招かれて,青尐年たちと対話交流を結んで来ている。

筆者は池田を人生の師と仰ぐ教育者の一人として,及ばずながらも,両者の教育対談を読み解いてみようと考えた。

 

2)橋渡し役は神尾政明(1943~)

ヘニングセン・池田対談の接点を作った人物がいる。デンマ-ク在住の前デンマ-クSGI理事長の神尾政明である。

神尾は「これからの人間は世界を見ておく必要がある」と考え,1965 年7月に日本を発った。 21 歳の時である。めぐり巡ってたどり着いたところがデンマ-クであった。 

本人の弁によれば,ヒッピー同様の状態で日本を去り,彷徨ううちに生活資金が底をついた。そこがデンマ-クのヴァイエン市であった。 

ところがその地の人々は皆,優しく親切で極東の国,日本から来た若者を受け入れてくれた。

農場の仕事をするうちにデンマ-クの生活になじみ,そこに住み着いた。その場所がたまたまアスコ-校の近くにあったことも幸いして,入学できたのである。

デンマ-クの国民高等学校は18歳以上であれば誰でも無試験で入学する事が出来,しかも寄宿生活をする事が出来る。アスコ-校の費用は当時,年間約36万円,80%を国が補助を出し,残り約7万円(3500r)が自費であったという。

因みに現在は年間 50万円ほど(30 万Kr)必要で国からの援助率も減っている。その為か,かつて 100 校以上あった国民高等学校は現在は減尐傾向にある。

神尾はこの時の2年間の寄宿生活で,アスコ-校での学生生活を経験し,グルントヴィやコルの教育思想も学んだのである。アスコ-校で学ぶうちに,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と牧口,戸田の創価教育思想の類似性に気付き,さらに深くグルントヴィ思想を学ぶために,1969 年にコペンハ-ゲン大学にも籍を置いた。ラテン語が必須科目でありこれも学んでいる。

因みにグルントヴィはデンマ-ク語による教育を重視しており,当時,民衆から遊離した学術言語としてのラテン語による教育には否定的であった。19

やがて日本からやってきた道子(19432007)を旅案内したのがきっかけで1978年に結婚,デンマ-クで生活を共にした。なお二人は既に日本にいる時からの知り合いだったという。 

アスコ-校での 2 年目に寮で同室したのがヤン・モラ-であった。彼は神尾の勧めもあってデンマ-クSGIに入会し,現在は神尾の後を受け,同会の理事長を務めている。神尾自身は1998年から2002年までデンマ-クSGIの理事長を務めてきた。

神尾とモラ-および池田との関係は,小説「新・人間革命第21巻」のSGIの章に詳しく記述されている。20

国民高等学校は卒業しても何の資格も出さないし,それを目的としていない。そのため神尾は 1981 年に社会教育主事の資格を取り,麻薬中毒青年の更生センターや青尐年社会復帰施設でカンセラ-として働きながら,観光案内の仕事にも従事してきたという。 

このようにアスコ-校の優良生とも言える神尾は,当時ドイツ語と哲学の教員であったヘニングセンとその時に親交を結んだという。

なお,当時の校長はクヌッド・ハンセン(Knud Hansen)であり,ヘニングセンが師と仰ぐ人物でもある。やがてヘニングセンが14年間に亘って同校の校長を務めている(8093年)。

また2000年には,神尾が時の校長(1998-2006)ドックバイラ-とヘニングセンを伴って来日し,池田と会わせている。

この時,両氏はアスコ-校では初めての「アスコ-教育貢献賞」を池田に贈り,創価大学は両氏に創価大学名誉教授称号を贈っている。

2001 年にはヴァイエン市住民評議会が池田の教育貢献を讃え,アスコ-校敷地内にある古代池を「イケダ・ダム」と命名し,2002 年からはヴァイエン市が中心となって市民行事としての「イケダダム・フェスティバル」が毎年8月24日を中心に開催されている。 

筆者は2002年,その第1回フェスティバルに図らずも参加できた。また,その前年から創大生,創価学園生の有志によるアスコ-校への短期語学研修が始まった。

そのメンバ-達はアスコ-校で学んだ対話教育(生の教育)の感動を忘れがたく創価大学内に研究サークル「アスコ-研究会」(現在クラブに認定)を立ち上げた。 2012年の総会では,部員数が卒業生を含め 300 名を超えたと報告されている。メンバ-の中には,デンマ-クの大学や国民高等学校に留学した者,デンマ-クに移住して結婚した者,日本で教員となった者など,グルントヴィと池田の人間教育の実践者として活躍している者が多いと言う。

これは特筆すべきことと筆者は考えている。

何故ならば,前掲「系譜」で紹介したように,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に感銘を受けた先覚者たちによって創られた国民高等学校は日本にもいくつか存在する。しかしそれらは先覚者たちによって持ち込まれた国民高等学校であった。

それに対してアスコ-研究会は,学生たち自身が直接アスコ-校で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を学び感動し,母校の創立者である池田の教育精神との共通性を再認識し,自分たちの手で結成した研究会であるところにより深い意義がある。

このことはアスコ-研修を斡旋した神尾にとっても予想外の展開となったようである。

神尾はまた,デンマ-クSGI理事長の時,「アスコ-池田平和研究会」を立ち上げ,機関紙「AIS」(ASKOV IKEDA STUDIEK

REDSの略 2004 )を創刊している。

このように前デンマ-ク SGI 理事長としてまたアスコ-校の卒業生として,ヘニングセンらとともに人間教育と反戦・反核運動にも取り組んでいる。

さらに元アスコ-校長ドックバイラ-を議長とする「北欧ヨ-ロッパアカデミ-」の創設(2004 年)にも加わり,またデンマ-ク・パグウオッシュの議長ジヨン・エ-ベリ博士とも親交を結び,デンマ-クSGIと協働して,反戦・反核運動の先頭に立って今もなお,コペンハ-ゲンを中心にした活動を展開している。

また,2006 年には北欧ヨ-ロッパアカデミ-書記長のボスゴ-を,2008 年にはヘニングセンを,2011 年には現任のアスコ-校長コプレゴ-一行を広島に案内して,原爆資料館を見学し広島市長との懇談を実現している。

なお,いずれの機会にも筆者は同席している。

これらの事業は殆どが神尾と彼を支えた道子が歩んできた功績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

このように,神尾自身もデンマ-クの人間教育を学び身に着けて,師と仰ぐ池田の教育平和思想を後継に引き継ごうとしているのである。

 

Ⅲ. 対談の内容

 対談の内容は多岐に亘っているが本稿では,キ-ワ-ドとして上げた「対話」,「師弟論」,「生涯学習」に関する事柄に絞って分析と考察を試みる。  論考の前に,グルントヴィの「生の教育」も牧口の「創価教育」もある種の独創的な教育理念であり,且つ言語も異なるため,言葉の概念の摺りあわせをしておく必要がある。

 先ず「対話」について,ヘニングセンは「ダイアログ:dialogue」と表現して,「『コミュニケ-ション:communication』ではない」と否定する。

「ノンバ-バルを含むか」と言う筆者の質問にも「ノン」と答え,あくまでも言葉で語り合う「対話」を意味している。

一方,「啓発:enlightenment」についてはグルントヴィの思想に「フォルケオプリュスニング」folkeopplysning)と言う言葉があり,これは「民衆による啓発」と訳され,対話による「相互作用: interaction」で「啓発(folkeopplysning)」が生まれると説明される。

このことに関して池田は「先生(ヘニングセン)....は『対話』こそ『生命啓発の基盤』と言われました。さあ,語り合いましょう!」(本文p11)と応じる。池田は「フォルケオプリュスニング」を「生命啓発」という,より深い次元の言葉で捉えており,ここに両者の対話の概念が共有され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詳しくは次稿にて考察したい。  次に「師弟論」について,池田は「師グルントヴィと弟子コル」のところでイギリスの歴史家カ-ライルがドイツのゲ-テを心の師と仰いでいた例を引き,「一流の人物には,必ずといってよいほど,深い啓発を受けた師と仰ぐ存在がいるものです」と語り,グルントヴィとコルの関係もそうであると述べている。

これに対してヘニングセンは,「その通りです」と応じて,グルントヴィから受けた啓発によってコルが「蘇生」した逸話を語っている(p200)。

本稿で「師弟論」をキ-ワ-ドに上げた理由は,教育における「師弟論」は徒弟論や単に教師と生徒の関係でなく,「人は人によってしか教育されない」という言葉の通り人間関係を築く上で最重要のものと考えるからである。

 次に「生涯学習」については,グルントヴィのフォルケオプリュスニングが,「民衆による自己啓発」,「民衆成人教育」とも訳されており,その思想が広がった北欧諸国全体が生涯学習の先進国と見なされている。21

 デンマ-クの国民高等学校はその先駆的学校として広く認められており,「EU生涯学習政策」のテ-マも「グルントヴィ計画」と名づけられた。 

吉田によると「グルントヴィ計画は2000 年より正式にソクラテス計画(第二期)の成人教育部門として独立し,2007 年以降の生涯学習プログラムのもとでも再編・強化されている。その名称はデンマークの国民高等学校の産みの親として知られる民衆教育運動家ニコライ.F.S.グルントヴィに由来し,EU 加盟した北欧諸国の成人教育思想の影響がうかがえる」と紹介している。22  一方,池田は,アーノルド・トインビ-(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の「人間の能力は『多種多様であり,その能力は,すべて社会的に価値があるものです。各個人がもつ独自の能力というものは,すべて発揮し,育成すべきです』という言葉を紹介し,創価大学においては生涯学習の一環として通信教育に力を注いできたことを明かす(p105)。

超高齢化時代に入ったわが国においても「生涯学習」の発展は喫緊の重要課題である。

 

1生の啓発の教育

 池田は冒頭から「憧れの教育大国デンマ-ク」と語り,それに対してヘニングセンは池田との対談を待ち望んでいたと応じている。

 さらに国民高等学校と SGI は深い共通性を持っていると語り,その基盤となる創価の教育思想について関心をいだいてきたと述べている。  日本人である筆者が不思議に思うのは,国民高等学校はデンマ-クに於ける私立の「学校」であるがSGIは「創価学会インタ-ナショナル」という宗教法人である。その異種と思える機関である SGIから「もっと学びたい」と言うヘニングセンの言葉から考えると,ヘニングセン自身が SGI を教育機関の一つと見ているのか,それともグルントヴィがそうであったように宗教者,詩人,思想家などの顔を持つ池田への敬愛の念を表明し

たものと考えることができよう。

 

<対 話>

 さらにその後の頁では「私はキリスト教思想の立場,会長(池田)は仏教思想のお立場です」と述べ,「『平和教育』と『文明間の対話』『宗教間の対話』に貢献できるのであれば」と述べていることから見て,この本における対話は一国の教育問題ではなく人類的視野に立っての対談となることを両者は自覚している。

 逆に池田は宗教間の対話という観点からか,冒頭より仏典を提示する。「過去の因を知らんと欲せば其の現在の果を見よ未来の果を知らんと欲せばその現在の因を見よ」23 いわゆる因果論である。一般にも「教育は百年の計」という言葉があるが,デンマ-クの今日があるのは約 170 年前にグルントヴィとコルが始めた教育改革を「因」として今日の「果」があると池田は讃えているのである。

 因みに,この対談での池田の仏典(釈迦の経典や日蓮の論文,手紙)の引用は25回に及んでいる。池田がこれまで行ってきた数ある教育対談本の中でも最多の引用であろう。

これに対してヘニングセンも聖書等を引用して応答しているのが特徴と言える。

 これは,キリスト教(福音ルーテル派)が国教であり,グルントヴィもヘニングセンも牧師であったことから,仏教指導者でもある池田は互いの人間教育を語り合う基盤として宗教間の対話は、必然のことと考えた証しである。

しかもどの章に於ける対談でも両者の考えは共鳴し合い、相互啓発がなされていることも比類なき特徴である。

このことはまたデンマ-クと日本のみならず今後,他国の読者に対しても大きな啓発を与えるものと思われる。24

本文の「『対話』と『啓発』」(p20)の項では,国民高等学校では,成績もなく試験もしない理由についてヘニングセンは,試験をすれば特定分野の特別な関心をもった学生しか集まらない。したがって対話の場が狭められると語る。そして対話はわれわれが人間としてもっている共通の問題に取り組むためのものだと述べる。

さらに対話による「生の啓発」で自分を高めた人間が「民主主義の担い手」となって社会を良くしていくと説明する。なお「教育」という言葉については,どこか狭小的で自己本位的な意味が感じられるが,「啓発」という言葉にはさまざまな意味があり,「教育」よりもはるかに広い視野に立つと述べ,「啓発」には社会的な側面や普遍的な側面が含まれると語る。

それを受けて,池田は「教育の本質」について牧口の,「知識の伝授即詰め込み主義にあらずし

....て,啓発主義,学習指導主義である」の言葉を引用して,国民高等学校の理念と深く共鳴していると語り,さらに「対話」こそ,人間の証しであり教育の根本であると強調する。25

両者のこうしたやりとりを読むにつけ,近頃,巷間語られる「若者のコミュニケ-ション能力の欠如」という次元とは全く異なる哲学的対話がなされている。池田が国民高等学校のことを「まさに,ソクラテス的な『生きた対話と触発の広場』ですね」と評しているところにこの対談の深みと

重みが感じられる(p22)。

 

<師弟論>

 池田はまた,本文冒頭からグルントヴィについて語っている(p9)。その後,コルについても触れたのに対して,ヘニングセンは「国民高等学校が,デンマ-ク社会に根を張り,発展していく原動力となったのが,後継者のコルです」とむしろ弟子であるコルの功績を讃えている。

また「私たちは現在,デンマ-ク社会の発展に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グルントヴィとコルの思想を,世界的な規模で応用しようと考えております」(p15)と語り,齢82歳(当時)にしてなお弟子の道を歩もうとするヘニングセンの心意気が伝わってくるようである。

前述の野田義夫がグルントヴィとコルの関係を「一体心身」,「両人の熱血」と表現した師弟の気概が今日,ヘニングセンやアスコ-校に厳然と引き継がれていることを感じざるを得ない。

これを受けて池田は,先師牧口が創価教育学体系の「緒言」にグルントヴィとコルの間に師弟の営みがあったこと(後述)を恩師戸田から何度も聞かされており,欧州旅の第一歩はデンマ-クに決めていたことを明かす。

対談では,そのときの胸中を「貴国への敬愛とともに,恩師への報恩感謝の思い」があったからと述べている。つまり,教育改革への基盤は国民高等学校も SGI も師弟論がその中心軸にあるの

ではないかと筆者は見ている。

 

<生涯学習>  国民高等学校はデンマ-クではフォルケフォイスコ-レ(Folkehφj sole)と呼ばれており,「フォルケ」とは「民衆」と訳される。試験はなく 18 歳以上であれば年齢に制限なく誰でも入寮

(全寮制)して学ぶことができる。

また,科目の選択や学習期間も選択できるため,世界中から留学生を受け入れており世界に開かれた「生涯学習」の学び舎となっている。

デンマ-ク人のほとんどが一生に一度はこの国民高等学校と関わりを持つと言う。日本の学校制度にはない教育機関であり,話に聞いただけでは理解が容易でない制度である。

ここでの学習法は「対話」と「啓発」である。

勿論デンマ-クの生涯学習の場は,国民高等学校だけではない。

澤野によれば今日,デンマ-クには多種多様な成人教育の場があり,さながら「成人教育のジャングル」と表現されるほどである。所轄も教育省,労働省,文科省などに分かれるという。法律も 1991年にそれまでの「余暇活動法」が廃止され,新たに「民衆成人教育法」が制定されている。国民高等学校は教育省所轄の数ある中の一つに過ぎないが,こうした生涯学習の歴史と発展の基盤に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が影響を与えてきたのである。26 

 

<まとめ>

人間教育とは何か,昨年3月まで35年間小学校教員を務め,現在大学教員を務める筆者にとっては,今後も追及していくべき,常に「古くて新しい」課題である。

我が国で6334制の学校時代を過ごし,小学校教員をしながら夜間大学院で学位を取得するというリカレント教育も経験するうちに,デンマ-クの教育と出会ったのである。

1998 年に大学院の研修旅行として初めてデンマ-クを訪れた時の印象は今なお忘れ難いものがある。コペンハ-ゲンでもオ-デンセの街でも行きかう人々は皆フレンドリ-で親切であった。日本人は外国の人には親切だと言うが,デンマ-ク人は外国の人だから親切なのではなく誰に対しても親切なことが,デンマ-クを訪れるごとに分かってきたのである。

しかも,大人だけではない。子どもたちは,好奇心も手伝ってか,より以上にフレンドリ-で親切であった。

デンマ-クはよく「童話の国」「お伽の国」「子どもの天国」などと言われるが,全くその通りであるという実感を重ねてきた。

翻って,我が国の子どもたちはどうであろうかと振り返ってみると,テストと宿題と学習塾に追われるか,競争主義の部活など,ストレス一杯の日々を過ごしている姿が思い浮かぶのである。

本来持っている子どもらしさは万国共通ではあるが,「社会のために」適応を余儀なくされる子ども達の姿を見るにつけ「教育のための社会」へのパラダイム転換の必要性を痛感する。

その点で学習塾もなく,今ほどの受験地獄を知らない団塊の世代である筆者から見てもデンマ

-クの子どもたちと社会が羨ましく思える。

彼の国との違いはどこから生じているのかと調べる内に,アンデルセンでもなくキルケゴ-ルでもなく,それまで耳にしたことのないグルントヴィという人物を知ることになった。

国民高等学校の創案者である。しかし,これを実現して行ったのは,弟子のコルであることも知った。言わば師弟による共同作業で実現してきたのである。

師弟の関係で改革を実現した例は,我が国にも無いわけではない。例えば筆者が憧れた吉田松陰の松下村塾,緒方洪庵の適塾などがそれである。

ただし,いずれの改革も教育改革に焦点を当てたものではなかった。

我が国において教育に焦点を当てて改革を試み,実行した師弟がいるのかどうかと考えるうちに思い当ったのが,牧口であり戸田であり,池田であった。27

しかも「子どもの幸せ」,「民衆のための教育」,「対話主義」など,その教育哲学はグルントヴィやコルの思想と重なっていることに驚いたのである。

グルントヴィの教育思想を堅持してデンマ-クでも名門と言われるのがアスコ-校である。

本文「系譜」で挙げた先覚者たちがこぞって賛嘆し憧れた国民高等学校である。

 筆者は幸運にも神尾を通じて元校長ヘニングセンと語り合える間柄となった。

 そのヘニングセンが池田と対談集を編むと聞いたとき,「これで日本の教育も尐しは変わるであろう」と大いに期待したところである。

 ところが現実は然に非ずで,現職教員(当時)の立場で教育現場を見渡すと出版後も,いじめや不登校も学級崩壊も減ることなく,むしろ深刻化している。加えて教師バッシングも横行しており,子どもも教師も萎縮する社会に変貌しつつある。

益々,混迷の度を深めているというのが偽らざる実感である。

 筆者が,本論文を書くに至った動機はここにある。 つまり,書物は出版されても読者がいなければ無意味である。読者がいても理解できなければ無意味である。理解できても実践されなければ無意味である。

 まさに書物だけの学習でなく,「対話と啓発」の「生きた学習」に繋げなくては両人に申し訳ないという思いが募ったのである。

 対談者双方を知り,アスコ-を訪れた者として後継の人のために書き置くことが私に与えられた使命であろうと意を決したのである。

 対象とした書物は会話文で構成された対談集であるため,論文のように系統だったものでなく,多岐多様に話が展開されている。

そのため,論文としてまとめるには困難もあるが,筆者なりのキ-ワ-ドを設けることで,筆者なりに両者の対話の深淵に若干なりとも迫り得たのではないかと考えている。

 デンマ-クや国民高等学校に関心を持つ人だけでなく,保護者や教育関係者など子どもの幸せを願うすべての人々に対して,何らかの示唆を与えられるなら幸いである。



<引用文献・注>

(1)   牧口常三郎(1932)「創価教育学体系」聖教文庫 聖教新聞社pp149-157

(2)   ハンス・ヘニングセン 池田大作(2009)「明日をつくる教育の聖業”―デンマ-クと日本 友情の語らい」潮出版社.

(3)   小原國芳(1969 年)『全人教育論』玉川大学

出版部

(4)   日本ホリスティック教育協会編(2005)『ホリスティック教育入門』せせらぎ出版

(5)   池田大作 ミハイル・ズグロフスキ-

2011)年「平和の朝へ教育の大光」第三文明社pp95-103.

(6)   池田大作(2003年)「『教育の世紀』へ」第三文明社 pp165-205.

(7)   ヴィクトル・A・サド-ヴニチィ 池田大作(2004年)「学は光-文明と教育の未来を語る」潮出版社 pp103-119.

(8)   池田大作 バラティ・ムカジ-(2013年)「 灯台1月号 新たな文明の詩を-タゴ-ルと世界市民を語る-」第三文明社 p62.

(9)   国立国会図書館蔵(1994 年)『岩倉使節団文書』(マイクロフィルム版)ゆまに書房.

(10) 田中 彰(2003年)「明治維新と西洋文明岩倉使節団は何を見たか」岩波新書p56-58

(11) 宇野 豪(2003年)『国民高等学校運動の研究

- 一つの近代農村青年教育運動史-』 渓水社

(12) 宇野 豪(2003年)前傾書.

(13) 池田大作(2003年)『第三文明 私の人生記録デンマ-クの民衆大学と教育交流』第三文明社 pp52-63.

(14) 清水 満(1996)「改訂新版 生のための学校デンマ-クで生まれたフリ-スク-ル『フォルケフォイスコ-レの世界』新評論 p

187.

(15) 小山哲司 日本グルントヴィ教会ホ-ムペ-ジより『水戸無教会』178

(16) ステイ-ブン・ボ-リッシュ著 難波克彰監修 福井信子監訳 (2011年)「生者の国デンマ-クに学ぶ全員参加の社会」新評論pⅰ. 

(17) 牧口常三郎(1932年)前掲書

(18) 牧口常三郎(1932年)前掲書 

19N.F.Sグルントヴィ著 小池直人訳(2011年)

「生の啓蒙」風媒社 pp2021.

(20) 池田大作(2010年)「新・人間革命第21巻」聖教新聞社 pp54-60

(21) 澤野由紀子(2004)『北欧における生涯学習政策の展開』 国立教育政策研究所生涯学習政策研究部 p1.

 

(22) 吉田正純(2009年) 『EU 生涯学習政策 とアクティブ・シティズンシップ-成人教育グルントヴィ計画を中心に-』京都大学生涯教育・図書館情報学研究 第8号 p1.

(23) 堀 日享編(1952年)「日蓮大聖人御書全集」創価学会

(24) 2012年末現在,デンマ-ク語訳本と中国語訳本が出版されている。

(25) 牧口常三郎 解題=熊谷一乗 校訂・脚注=熊谷一乗・木全力夫 (1983年)「牧口常三郎全集6」第三文明社    

(26) 澤野由紀子(2004) 前傾書 pp3-5.

(27) 聖教新聞 20001130日付け「デンマ

-クの桂冠詩人から池田SGI会長に贈詩」 アスコ-校の校庭には,同年1118 日にデンマ-クの世界桂冠詩人故エスタ

-・グレ-ス博士の手で牧口,戸田,池田の 「三代会長の木」が植樹された。後日,池田に贈られた長編詩には「あなたの木を植えよう 生命の象徴の木を デンマ-クとあなたとの 不二なる絆の証しとして」

の一文がある。

 

<参考文献>

・ヒルティ著 高橋三郎訳(1959年)「人間教育」 ヒルティ著作集 第10巻 株式会社白水社

N.F.Sグルントヴィ著 小池直人訳(2010 年)「世界における人間」風媒社 

・年譜編纂委員会(1993年)「年譜 牧口常三郎 戸田城聖」第三文明社

・オーヴェ・コ-スゴ-著 川崎一彦監訳 高倉尚子訳(1999 年)「光を求めてデンマ-ク成人教育500年の歴史」東海大学出版会

・大谷英一 (1948 年)「平和の国デンマ-ク」アテネ文庫20 弘文堂

・東海大学文学部北欧学科編(2010年)「北欧学のすすめ」東海大学出版会

・寺田治史・白石大介(1999年)「デンマークにおける教育事情-『生の教育』の実態を垣間見る-」 武庫川女子大学臨床教育学研究科研究誌第5号 武庫川女子大学大学院臨

床教育学研究科,pp.185-197

・寺田治史(2011年)『デンマ-ク最近の教育事情人間教育の伝統と未来』 太成学院大学紀要第13pp273-283.

・梅根 悟監修(1976年)「世界教育史体系 14 北欧教育史」株式会社講談社


===



덴마크와 일본의 인간교육( Ⅰ )
ー 이케다·헤닝센 대담이 시사하는 것 ―

 

 "Human education" of Denmark and Japan (  )

Learn to the talk of Ikeda and Henningsen 

 

데라 다지 사

aruhisa TERADA


 

 

<요약>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에 있다고 생각한 것은, 덴마크에서는 니콜라이 프레데릭 세브린 그룬트비( 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 )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마키구치 토조로 ( 1871 ) -1944 ). ) 최근, 행해지고 있는 각종의 행복도 조사에서는 어느 조사에서도 덴마크는 항상 상위를 차지하고, 일본은 하위에 위치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을 생각할 때 그의 나라의 교육이념을 재인식하고 크게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부제에 내거진 「이케다」란 창가대학·학원 창립자, 이케다 다이사쿠( 1928 ~)를 말한다. 소설 「인간혁명」의 저자이기도 하고 널리 세계의 교육자와 대담을 거듭해, 2012 년도에 세계의 교육 학술 기관으로부터 315 를 넘는 명예 학술 칭호가 주어지고 있다. 또한 "Henningsen"은 Hans Henningsen (1928 입니다. 그룬트비 연구의 제일인자로서 유명하며, 덴마크 교원육성대학협회 이사장( 1993 2003 ) 등을 근무한 교육자이자 목사이기도 하다. 1994 년에는 덴마크 왕실에서 '국가 나이트 십자 훈장'의 칭호를 받았다. )  

이 양자가 대담집 “내일을 만드는 “ 교육의 성업 ” ― 덴마크와 일본 우정의 말투 ― 」( 2009 조출판사)를 짜고 있어, 본고는, 그것에 근거해, 그룬트비의 교육 이념이 일본 교육에 미치는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마키구치의 교육 철학이 이케다에 의해 새로운 인간 교육론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배경을 찾아 보려고 생각했다.

 

<키-와-드> 대화, 사제론, 평생 학습

 

1. 소개

그룬트비의 교육 사상은 「생의 교육」, 목구의 그것은 「창가 교육」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본고에서는 함께 「인간 교육」의 이름으로 묶어 둔다. 그 밖에 「전인교육」) , 「홀리스틱교육」) 등의 유사한 개념도 있지만, 모두 지와 정과 의를 통합하여 기르는 교육이념으로 파악하고, 「인간교육」의 이름 로 호칭한다.

아스코-교(이하 아스코-교)에서의 헤닝센의 우리에 대한 강의의 첫 목소리는 항상 그룬트비의 말 '먼저 인간이든'으로 시작되어 종교에 대해 스스로는 말하지 않는다.

이케다 역시 항상 “교육이 내 인생 마지막 사업”이라고 교육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함께 인간교육을 표방하는 동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을 느끼게 한다. 국제경제의 세계뿐만 아니라 국제교육의 세계에도 글로벌화와 플랫화의 큰 파도가 밀려오는 오늘, 개개인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등, 종횡으로 서로 이야기하는 두 거인에게 배우는 것은 많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룬트비와 국민고등학교에 대해 동경의 눈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소개 또는 그 교육이념을 도입하여 국내에 국민고등학교를 설립한 예는 부족하다.

그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종교적 신념과

교육적 열의로부터의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룬트비도 그 제자 크리스틴 콜( Christen Kold 1816-1870 )도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며, 헤닝슨도 목사이지만, 그 헤닝센이 대담자로서 “ 불법자 ” 이케다를 선택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양자 모두 교육의 목적을 「인간의 행복」에 두고 있어, 종교의 목적도 마찬가지이지만, 뒤에 존재한다고 하는 인식에 서 있다. )

또한 2000 년 이후, 이케다가 창립한 창가대학과 간사이창가학원생들이 매 여름 해외연수로서 아스코교를 방문하고 있으며, 헤닝센은 그 '배우는 모습'을 목격하여 창가교육에 관심 가지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도 또한 2002 년 .2005 년 .2010 년에 연구 목적으로 아스코에 체재하고 있고, 그 모습을 눈에 띄고 같은 생각을 안고 있다.

2010 년에 아스코-교를 방문해 헤닝센과의 말 속에서 씨가 던진 질문은 앞으로의 교육에 대해 경제주의와(인간)교육주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덴마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룬트비와 콜로 시작하는 교육개혁, 국민고등학교운동에 의해 교육·복지입국의 길을 열어왔다.

말하자면 “인간교육주의”의 역사를 새겨 왔다.

한편, 일본은 메이지의 학제 개혁 이래 '부국 강병', '식산 흥업'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중시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모두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요즘 부등교, 왕따, 학급 붕괴, 니트, 끌어당김, 범년 범죄의 증가 등 「교육의 위기」라고 외치는 오늘날, 소수의 대증 요법 에서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말하자면 경제지상주의의 길을 계속 걸어온 결과이다.

그러나 이때의 헤닝센의 질문은 양국의 과거의 역사를 비교한 것이 아니고, 2008 년에 미국발의 리만 쇼크를 함께 경험하고 있어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관점에 섰다.

그것은 교육을 수단으로 할 것인지 목적으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케다는 일찍부터 이를 지적하고 “사회를 위한 교육”에서 “교육을 위한 사회”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창해 왔다. ) ( )

덧붙여서 이케다의 「교육을 위한 사회」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견은, 콜롬비아 대학의 종교학자 로바트 사만( Robert AF Thurman 1941 ~)로부터 얻어지고, 사만의 「교육이 인간 생명의 목적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라는 말을 소개하고 있다.

덧붙여 사만의 이 생각은, 인도가 낳은 “ 인류 최초의 교사 ” 라고 말해지는 석존(석가)의 가르침에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운동은 말하자면 인간교육주의의 제창이었고, 그룬트비와 콜이 약 170 년 전에 걸기 시작한 교육개혁의 길이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우치무라 감조( 1861-1930 와 마쓰마에 시게요시 1901-1991 ) 등 덴마크 교육을 우리나라에 소개해 도입해 온 선각자의 지견과 공적을 개관한 후 한 단계 더 나아가 세계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위한 사회' 구축을 위해 대화하는 이케다, 헤닝센 양씨의 말의 심연을 찾아보고 싶다.

우선 양국의 교육에 관한 역사적 관계를 개관해 둔다.

 

Ⅰ. 계보

1 ) 이와쿠라 사절단 ( 1871-1873 )

일본과 덴마크와의 관계는 1867 년 에도 막부 에 의한 수호통 상항해 조약 체결에 시작된다.

1871 년 이와쿠라 사절단(이와쿠라구시 1825-1883 )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방문, 8개월 체류 후 대서양을 건너 유럽도 방문하고 있다. 방문국은 영국( 개월)·프랑스( 개월)·벨기에·네덜란드·독일( 주간)·러시아( 주간)·덴마크(5일간) 외, 스웨덴·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위스의 12 개국에 올라간다. 1873 년 4월 19 일에는 덴마크 국왕 그리스도인 세에 속견하여 왕궁, 여러 기관, 시설을 견학하고 있다. )

이 사절단의 목적은 주로 미영 2개국과의 불평등 조약 해소의 협상을 위한 것이었지만 과연 하지 않고, 영국을 뒤로 하고 나서는 방문의 목적이 친선 시찰로 바뀌어 갔다고 한다. 후의 부국 강병, 식산 흥업에의 발판이 되었다.

따라서 덴마크에 있어서 1844 년에 최초의 포르케 포이스 코레(이하, 「국민고등학교」라고 한다)가 로데인에 개교되고 있던 것도, 그룬트비나 그 제자 콜의 존재도 몰랐다고 생각된다. 덧붙여서 아스코-국민고등학교는 이미 1865 년에 개교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사절단은 1872 년의 학제발포와는 무관하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프랑스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10 )

 

) 야작 영장의 유럽유학( 1902-1907 )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와 창시자 그룬트비 및 후계자 콜을 최초로 우리나라에 소개한 것은 야작영장( 1870-1933 )이다.

야작은 당시 도쿄 제국대학 조교수 법학사의 직함을 들고 농정학 연구를 위해 1902 년 유럽으로 유학 여행을 떠나 1907 년에 귀국하고 있다. 그동안 덴마크를 방문하고 있으며, 귀국 후 '산업조합' 잡지 32.33 호에 '정말의 생산조합'을 기고하고 나라를 부흥시킨 그룬트비의 공적을 칭찬하고 있다. 덧붙여 여기에서는 국민고등학교를 「특수국민보수학교」, 그룬트비를 「그룬트비크」, 코르를 「코르드」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이 시기, 농정학 연구의 입장에서 덴마크를 거론한 인물에, 사토 히로지( 1879-1967 )를 비롯해, 수명의 연구자가 있었던 것이, 우노 호

2003 )에 의해 소개되었습니다. 11 ) 3 ) 호르만의 나스 히로역 「국민고등학교와 농민문명」(1913 

다음으로 교육연구의 입장에서 덴마크를 소개한 것은 독일의 농정학자 호르만이며, 그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농학자 나스히로( 1888-1984 )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Asco

-교가 사진들이로 게재되고 있다.

이웃 나라이며,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독일의 농학자 호르만이 그룬트비의 교육 사업을 천지에만 멈추는 일 없이, 보는 것은 전세계에 보급해야 할 운명을 가진다.” 그래서 그룬트비 그 사람의 사상에 배울 필요가 있다(취의)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룬트비를 국민의 미래의 발전을 동관할 수 있는 사적 안광 과 창조적 사상 광대 심원한 감정 을 겸비한 '정말의 국민적 천재'라고 절찬한 것이다.

한편, 역자 나스는 「해제」에 있어서, 당시, 북유럽 문명의 일대 세력이 되고 있는 국민 고등학교의 기원, 연혁, 조직과 근본 정신을 밝히고, 시인 글룬트비와 철인 콜의 생애를 설명해, 이 독특한 교육에 의해 태어난 농민 문명에 대해 논한 것이라고 본서를 설명하고 있다.

야작이 호르만을 읽고 나스에게 번역을 의뢰한 곳에서, 이웃 나라 독일의 농학자 호르만의 그룬트비관과 국민 고등학교의 존재가 우리 나라에 소개되는 곳이 되어, 곧 목구로부터 제자의 도다성 성에, 도다로부터 제자의 이케다로의 교육 이념

가 전파된 것이다.

 

) 노다 요시오 「정말 국민고등학교의 연구」( 1930 ) 책의 목차를 보면 「2. 그룬트위히(필자 주:그룬트비)와 국민고등학교」, 「3. 의 세, 국민고등학교의 특별훈 「자코르드(동:콜)」의 표제를 볼 수 있다. 마지막 「, 소감」에는 「정말의 국민고등학교는 창창자 그룬트위히 늘....

그의 일체 심신이라고도 칭할 코르드의 성격을

신체화 된 것이며 학교 내부에는 두 사람 모두

열혈이 오늘도 앞으로 가로질러 넘어가고 있는 것은 상래 범들 상술한 대로이기 때문에, 제가 국민고등학교에 가서 감탄한 것은 동시에 그룬트위히와 코르드에 느낀 것이 되어, 국민 고등학교의 장점으로 인정하고 공적과 칭찬하는 곳은 곧 양인의 장점공적으로 보아야 한다”(일부현 대표기로 변환).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말은, 그룬트비와 코르의 관계를 「일체 심신」이라고 말해, 「양인의 열혈」 운운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전후하지만, 우노에 의하면, 전술의 야작과 나스도 사제 관계에 있어, 야작이 독일의 농정 학자인 호르만의 저작을 소개해 나스에게 번역을 담당시킨 것이다. 12 ) 여기에도 양씨의 「일체 심신」과 「열혈」이 느껴진다.

 그룬트비와 콜, 야작과 나스, 우치무라와 마쓰마에, 나중에 말하는 마키구치와 토다, 도다와 이케다 사이에 국민고등학교 즉 인간교육의 철학은 모두 사제에 있어서의 「일체 심신」과 「열혈」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 일에 주목해 두고 싶다.

 또, 마키구치와 나스는 당시 「향토회」의 연구 동료이며, 나스가 번역한 「국민고등학교와 농민문명」을 읽고 있던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13 )

 그 마키구치가 저술한 「창가교육학체계 Ⅰ 권」의 「제언」에 있어서, 출판의 공적을 코르에 의지해 제자, 토다를 찬양한 것이다. 덧붙여 마키구치와 토다의 관계를 이케다는 「사제 후지」라는 말로 계속 칭찬하고 있다.

 

) 우치무라 감조 “덴마르크 나라의 이야기”( 1911 )

 다음으로 올리는 것은 강연집 '후세에의 최대 유물·덴마르크 나라의 이야기'를 저술한 우치무라 감삼이다. 「후세에의 최대 유물」은 1897 년에 강연하고, 「덴마크국의 이야기」는 1911 년에 강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덴마크 나라의 이야기의 첫 번째 출처는

규』 제 136 호( 1911 년)이다.

그 내용은 1864 년, 덴마크는 비옥한 토지인 슈레스위히-홀스타인 지역이 독일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패해 할양을 강요받았다. 그 때문에 덴마크 국민은 도탄의 고통을 맛보았다고 한다.

그 때 "밖에 잃어버린 곳을 내에서 되찾을 수 있어"라는 유명한 말을 발하는 인물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룬트비가 아니라 엔리코 다르가스( 1828-1894 )라는 군인(공병사관)의 말로 소개되고 있다.

즉, 빼앗긴 토지를 되찾는 전투가 아니라, 남겨진 유틀랜드 반도의 광야를 개척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에 의해, 덴마크가 부흥한 것이 소개되고 있다.

덧붙여서 우치무라는 덴마크에 가지 않았고, 그룬트비의 이름도 국민고등학교도 이때는 몰랐다고 생각된다. 후술하는 히라바야시의 이야기

듣고 알게 된 것 같다.

 

) 히라바야시 광인의 유학( 1924 1927 )

 히라바야시 히로토( 1886-1986 )는 교회 목사로부터 덴마크를 듣고 1924 년부터 년간 아스코나 발레키레 국민고등학교에 유학하고 있다.

귀국 후 덴마크 연구가로 활약하고 만년은 도카이 대학의 북유럽 문학과 강사가 된 인물이다. 14 )

흥농학원의 초대교장이 된 히라바야시 히로토는 우치무라의 의뢰를 받아 쇼와 년( 1930 년) 월에 우치무라의 집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우치무라는 그 모양을 다음과 같이 일기에 담고 있다.

「쇼와 년 월 12 일 올해 제1의 연구회이다. 오히려 단상에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믿음에 취해 이야기해 삼켜졌다. 강하게 일동을 감동하게 했다.『활동하는 말이란 사람의 전신 전성격을 지나서 일하는 곳의 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참으로 그대로이다. 우리 연구원들은 오늘까지 너무 많은 말을 말로 받아 이것을 우리의 충실하게 일할 수 없었다. 」라고.

여기에 「활동하는 말」, 「그룬트비 」의 기술이 있어 국민고등학교의 일은 히라바야시에 의해 알려진 것을 엿볼 수 있다. 또, 다르가스가 말했다고 하는 「밖에 잃어버린 것… 일본을 구해야 한다…

덧붙여 우치무라는 이때 이미 병의 몸이며, 그 후 월 28 일에 사망하고 있다. 15 )

 

) 마츠마에 시게요시의 아스코-교 방문( 1934 )

우치무라에 사사한 마쓰마에에 대해 그가 창립한 도카이대학( 1942 년 개설)의 홈페이지에는 “마쓰마에는 우치무라의 사상과 인류의 구제를 전하는 열정적인 호소에 깊이 감명했습니다. 그중에서 마츠마에는 프러시아 와 의 전쟁에 패하고 피폐한 나라를 교육 에 의해 재흥 시킨 근대 덴마크의 행보를 알게 됩니다 국민고등학교의 모습을 알고 거기에 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을 찾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그가 직접 우치무라에서 그룬트비나 국민고등학교를 들은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히라바야시의 강연을 들은 것이 그 시작이다.

그것에 대해 난바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덴마크의 호이스코레 교육(필자 주국민 고등학교 교육)에 의한 국가 건설에 의해 평화로 풍부한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한 역사에 강하게 감명한 마쓰마에는 히라바야시가 교장을 맡는 시즈오카현 다가타군 니시우라무라구 연의 흥농학원을 자주 방문해, 그룬트비의 교육 사상이나 호이스코레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16 )

그 후, 마쓰마에 자신이 덴마크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아스코 학교에도 체재하고 있다.

귀국 후, 그가 저술한 “덴마크의 문화를 탐구”( 1962 )의 서론에는 “덴마크에 배워야 할 것은 우선 그 역사입니다.특히 국민 고등학교의 창시에 있어, 그 정신에 있고 그 믿음에 있다. 국가의 초석은 교육에 있고 정신에 있고 믿음에 있음을 사실 앞에 증명하는 것은 덴마크이다. .

덧붙여 동 홈페이지에서는 마쓰마에에 영향을 준 인물로서, 신도토 이나조( 1862 1933 )를 들고, 「(신도토는) 사상가, 농업 경제학자, 교육가입니다.삿포로 농학교 졸업 후, 미국・독일유학 후, 교대교수, 일고교장 등을 역임하고, 그리스도교신자로서 국제친선에 다해 국제연맹사무국 차장도 맡았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교육가이기도 한 신도토는 목구와도 친교가 있던 인물이며, 창가교육학체계의 「서문」에 「우리나라 장래의 교육과 창가교육학」이라는 제목의 일문을 얹고, 목구의 창가교육학에 기대를 전해지고 있었다.

덧붙여 동서문에는 신도도 외에도 사회학자의 타나베 수리( 1894 1962 ), 민속학자의 야나기 쿠니오( 1875 1962 )로부터도 일문이 전해지고 있다. 17 )

 

) 마키구치 토모사부로 「창가교육학체계」( 1932 ) 그런 다음, 다음에 다루어야 할 인물이 마키구치이다. 그가 1932 년에 저술한 대저, 창가교육학체계 제 권 「서언」에 그룬트비와 코르의 이름이 등장한다. 마쓰마에의 덴마크 방문 년 전의 발간이다.

거기에는 “정말의 국세를 만회했다고 우려되는, 국민고등학교가 오늘의 융성은, 주창자 그룬트위히의 공적보다는, 화장기예의 후계자 코르트의 그것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생각해낼 때・・・」라고 있어, 창가 교육학 체계 발간에 진력한 도다를, 후계의 제자 콜에 비추어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북유럽학의 주택으로 목격되어 국민고등학교의 존재도 알고 있던 목구치이지만, 그룬트비의 교육사상에 착수하지 않고, 독자적인 창가교육학을 제창한 것은 어째서인지, 큰 관심을 끄는 문제이지만 이것 에 대해서도 다음고 이하로 접해 보고 싶다. 18 )

어쨌든 그룬트비의 교육 이념과 목구의 그것이 근본적으로 공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행복한 삶, 인생을 테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룬트비를 키운 사상적 기반이 기독교(루타파)인 것에 대해, 목구는 일련불법을 봉사하고 있어, 후에 창가 교육 학회(현 창가 학회)의 초대 회장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덴마크 교육의 소개자의 대부분이, 꽤 작아서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국민고등학교를 말해 왔지만, 마키구치, 도다, 이케다는 그리스도자가 아니라 불법자이다.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을 근저에 두고 '먼저 인간이든'이라고 외치는 그룬트비, 불법의 '자비'를 근저로 '교육의 목적은 아이의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목구, 진정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목표로 한다 양자의 정신은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 것처럼 보인다.

 

Ⅱ. 민중교육과 민중종교

1) 헤닝센과 이케다의 공통성

국민고등학교나 그룬트비와 콜의 공적을 소개하고, 그 교육이념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선각자는 많다.

그러나, 현지의 그룬트비 교육의 실천자이자 연구자이기도 한 인물과의 대담집을 짠 것은 이케다가 처음일 것이다.

헤닝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룬트비의 손제자라고 할 수 있고, 이케다는 불법자로서 목구의 손제자, 도다의 직제자이다. 게다가 양자 모두 교육을 가장 중요시하고 종사해 온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룬트비는 민중을 무지화하고 통제하는 당시의 교회 권위주의와 맞서 싸워 민중을 위한 종교, 민중을 위한 교육을 호소했다.

그 교육이념을 계승해 국민고등학교 운동으로 실천한 것이 콜이다.

헤닝센은 그룬트비와 인연이 깊은 아스코교의 전 교장이며, 그룬트비 연구의 제일인자이다. 지금도 교단에 서서 대화하고, 많은 교육자, 학생들로부터 모욕받고 있다. 

한편 이케다는 “승려가 위, 신자는 아래”라고 반민주적 권위주의에 빠진 니치렌 마사무네 종문에서 시대착오의 “ 파문 ” 을 만났다( 1991 ). 그러나 이것은 그룬트비가 당시 목사직을 풀렸다( 1825 )와 마찬가지로 민중을 위한 종교 지도자로서의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후 SGI (창가학회 인터내셔널) 명예회장으로서 민중을 위한 종교, 민중을 위한 교육에 전념하게 된다. 

또 교육에 관해서는 마키구치·도다의 유지를 계승해 국내외에 「창가」의 이름을 딴 소, 중, 고의 학교원을 창립해 왔다. 1992 년에는 미국 창가대학도 창립하고 있다. 또한 때때로 그 학교원이나 해외의 여러 대학에서 초청되어 청남년들과 대화 교류를 맺어 왔다.

필자는 이케다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미치지 못하면서도 양자의 교육 대담을 읽어 보기로 생각했다.

 

) 다리 역은 카미오 마사아키( 1943 ~)

헤닝센·이케다 대담의 접점을 만든 인물이 있다. 덴마크 거주 전 덴마크 SGI 이사장의 카미오 마사아키이다.

카미오는 “앞으로의 인간은 세계를 봐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1965 년 7월에 일본을 떠났다. 21 살 때이다. 순회하고 도착한 곳이 덴마크였다. 

본인의 밸브에 따르면, 히피와 같은 상태로 일본을 떠나 방황하면서 생활자금이 바닥을 붙였다. 그곳이 덴마크의 바이엔시였다. 

그런데 그 땅의 사람들은 모두 부드럽게 친절하고 극동의 나라, 일본에서 온 젊은이를 받아들여주었다.

농장 일을 하는 동안 덴마크 생활에 익숙해져 거기에 살았다. 그 장소가 우연히 아스코-교 근처에 있었던 것도 다행히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는 18 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고, 게다가 기숙 생활을 할 수 있다. 아스코-교의 비용은 당시 연간 약 36 만엔, 80 %를 나라가 보조를 내고 나머지 약 만엔( 3500Kr ) 이 자비 였다고 한다.

덧붙여 현재는 연간 50 만엔 정도( 30 만K ) 필요로 나라로부터의 원조율도 줄어들고 있다. 그 때문인지 한때 100 개 이상의 학교가 있었던 국민고등학교는 현재는 감도 경향이 있다.

카미오는 이때의 년간의 기숙 생활로, 아스코-교에서의 학생 생활을 경험해, 글룬트비나 코르의 교육 사상도 배운 것이다. 아스코-교에서 배우는 동안, 그룬트비의 교육사상과 목구, 토다의 창가교육사상의 유사성을 깨달았고, 한층 더 깊이 그룬트비 사상을 배우기 위해 1969 년에 코펜하겐 대학에도 적을 두었다. 라틴어가 필수 과목이며 이것도 배우고 있다.

덧붙여서 그룬트비는 덴마크어에 의한 교육을 중시하고 있어 당시 민중으로부터 유리한 학술언어로서의 라틴어에 의한 교육에는 부정적이었다. 19 )

이윽고 일본에서 온 도코( 1943 2007 )를 여행안내한 것이 계기로 1978 년에 결혼, 덴마크에서 생활을 함께 했다. 덧붙여 두 사람은 이미 일본에 있을 때부터의 지인이었다고 한다. 

아스코교에서 년째에 기숙사에서 동실한 것이 양모라였다. 그는 카미오의 권고도 있어 덴마크 SGI 에 입회했고, 현재는 카미오를 받고 동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카미오 자신은 1998 년부터 2002 년까지 덴마크 SGI 의 이사장을 맡아 왔다.

카미오와 모라와 이케다의 관계는 소설 '신·인간혁명 제 21 권'의 SGI 장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20 )

국민고등학교는 졸업해도 아무런 자격도 내지 못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가미는 1981 년에 사회교육주사의 자격을 받아 마약중독청년의 갱생센터나 청남년 사회복귀시설에서 칸셀라로 일하면서 관광안내 업무에도 종사해 왔다고 한다. 

이렇게 아스코-교의 우량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카미오는 당시 독일어와 철학의 교원이었던 헤닝센과 그때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교장은 쿠누드 한센( Knud Hansen )이며, 헤닝센이 스스로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윽고 헤닝센이 14 년간에 걸쳐 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80 93 년).

또 2000 년에는, 카미오가 때의 교장( 1998-2006 ) 도크바이라-와 헤닝센을 수반해 일본에 오고, 이케다와 만나고 있다.

이때 양씨는 아스코교에서 처음인 '아스코-교육공헌상'을 이케다에게 주었고, 창가대학은 양씨에게 창가대학 명예교수 칭호를 주고 있다.

2001 년에는 바이엔시 주민 평의회가 이케다의 교육 공헌을 칭찬해, 아스코-교 부지 내에 있는 고대 연못을 「이케다 댐」이라고 명명해, 2002 년부터는 바이엔 시가 중심이 되어 시민 행사로서 '이케다담 페스티벌'이 매년 8월 24 일을 중심으로 개최되고 있다. 

필자는 2002 년 그 제 회 페스티벌에 가리지 않고도 참가할 수 있었다. 또 그 전년부터 창대생, 창가학원생의 유지에 의한 아스코교에의 단기어학연수가 시작되었다.

그 멤버들은 아스코교에서 배운 대화교육(생교육)의 감동을 잊지 못할 창가대학 내에 연구서클 '아스코-연구회'(현재 클럽에 인정)를 시작했다. 2012 년 총회에서는, 부원수가 졸업생을 포함 해 300 명을 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회원 중에는 덴마크 대학이나 국민고등학교에 유학한 사람, 덴마크에 이주하여 결혼한 사람, 일본에서 교원이 된 사람 등, 그룬트비와 이케다의 인간교육 실천자 로 활약하고 있는 자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특필해야 할 일과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앞서 '계보'에서 소개한 것처럼 그룬트비의 교육사상에 감명을 받은 선각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고등학교는 일본에도 몇 가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선각자들에 의해 반입된 국민고등학교였다.

그에 대해 아스코-연구회는 학생들 자신이 직접 아스코-교에서 그룬트비의 교육 사상을 배우고 감동하고, 모교의 창립자인 이케다의 교육 정신과의 공통성을 재인식하고, 자신들의 손 에서 결성한 연구회인 곳에 더 깊은 의의가 있다.

이것은 아스코 연수를 알선한 카미오에게도 예상외의 전개가 된 것 같다.

카미오는 또한 덴마크 SGI 이사장 때 '아스코-이케다 평화 연구회'를 시작, 기관지 'AIS'(ASKOV IK DA STUDEK

REDS의 약 2004 )를 창간했다.

이와 같이 전 덴마크 SGI 이사장으로서 또 아스코교의 졸업생으로서 헤닝센 등과 함께 인간교육과 반전·반핵운동에도 임하고 있다.

또한 전 아스코 - 교장 도크 바이라 -를 의장으로하는 "북유럽 유럽 - 아카데미 -"의 창설 ( 2004 년)에도 합류하고, 또한 덴마크 퍼그 우슈의 의장 지영 에베리 박사와도 친교를 맺고, 덴마 -쿠 SGI 와 협동해 반전·반핵운동의 선두에 서서 지금도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2006 년에는 북유럽 유럽 아카데미 서기장의 보스고를, 2008 년에는 헤닝센을, 2011 년에는 현임의 아스코 교장 코프레고 일행을 히로시마로 안내하여 원폭자료관을 견학 히로시마 시장과의 간담을 실현하고 있다.

덧붙여 어느 기회에도 필자는 동석하고 있다.

이들 사업은 대부분 카미오와 그를 지지한 도자가 걸어온 공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카미오 자신도 덴마크의 인간교육을 배우고 착용하고, 스승과 바라보는 이케다의 교육평화사상 을 후계에 계승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Ⅲ. 대담 내용

 대담의 내용은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본고에서는 키워드로 올린 '대화', '사제론', '생애 학습'에 관한 일에 짜서 분석과 고찰을 시도한다. 논고 전에, 그룬트비의 “생의 교육”도 목구의 “창가 교육”도 어떤 종류의 독창적인 교육 철학이며, 또한 언어도 다르기 때문에, 단어의 개념을 접해 둘 필요가 있다 .  

 우선 '대화'에 대해 헤닝센은 '다이얼로그: dialogue '라고 표현하고,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이 아니다'라고 부정한다.

'논바발을 포함할까'라고 하는 필자의 질문에도 '논'이라고 대답하고 어디까지나 말로 이야기하는 ' 대화 '를 의미하고 있다.

한편, '계발 enlightenment '에 대해서는 글룬트비의 사상에 '포르케오프리스닝' folkeopplysning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민중에 의한 계발'로 번역되어 대화에 의한 '상호작용 interaction '에서 '계발 ( folkeopplysning ) '이 태어난 것으로 설명된다.

이에 관하여 이케다는 「선생님(헤닝센) ....은 『대화』야말로 『생명 계발의 기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야기합시다!」(본문 p 11 )에 응한다. 이케다는 「포르케오 프루스닝」을 「생명 계발」이라고 하는, 보다 깊은 차원의 말로 파악하고 있어, 여기에 양자의 ​​대화의 개념이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자세한 것은 다음고에서 고찰하고 싶다. 다음에 「사제론」에 대해, 이케다는 「사 그룬트비와 제자 콜」의 곳에서 영국의 역사가 카라일이 독일의 게-테를 “ 마음의 스승 ” 이라고 말하고 있던 예를 끌어, “일류의 인물 “그것은 반드시 말할 수 있을 만큼 깊은 계발을 받은 스승과 묻는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헤닝센은 “그대로입니다”라고 응하여, 그룬트비로부터 받은 계발에 의해 코르가 “소생”한 일화를 말하고 있다(p 200 ).

본고에서 「사제론」을 키워드로 올린 이유는, 교육에 있어서의 「사제론」은 도제론이나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아니고,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만 교육받는다」라는 말대로 인간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평생 학습」에 대해서는, 그룬트비의 포르케오프루스닝이, 「민중에 의한 자기 계발」, 「민중 성인 교육」이라고도 번역되어, 그 사상이 퍼진 북유럽 국가 전체가 평생 학습의 선진국과 간주됩니다. 21 )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는 그 선구적 학교로 널리 인정받았으며, ' EU 평생학습 정책'의 테마도 '그룬트비 계획'으로 명명되었다. 

요시다에 의하면 “그룬트비 계획은 2000 년부터 정식으로 소크라테스 계획(제2기)의 성인 교육 부문으로서 독립해, 2007 년 이후의 평생 학습 프로그램 아래에서도 재편·강화되고 있다.그 명칭은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가 낳은 부모로 알려진 민중교육운동가 니콜라이 .FS 그룬트비에서 유래해 EU 가맹한 북유럽 국가의 성인교육사상의 영향을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22 ) 한편, 이케다는, 아놀드 토인비( Arnold Joseph Toynbee 1889 1975 )의 “인간의 능력은 “다양하고, 그 능력은 모두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각 개인이 가진다 독자적인 능력이라는 것은 모두 발휘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말을 소개하고, 창가대학에서는 평생학습의 일환으로 통신교육에 힘을 쏟았다는 것을 밝힌다(p 105 ). 

초고령화 시대에 들어간 우리나라에서도 '평생 학습'의 발전은 긴급한 중요한 과제이다.

 

제 장 “ 생의 계발 ” 교육

 이케다 는 서두부터 「동경의 교육대국 덴마크 

 게다가 국민고등학교와 SGI 는 깊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그 기반이 되는 창가의 교육 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인인 필자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민고등학교는 덴마크에 있어서의 사립의 「학교」이지만 SGI 는 「창가학회 인터내셔널」이라고 하는 종교법인이다. 그 이종이라고 생각되는 기관인 SGI 로부터 「더 배우고 싶다」라고 하는 헤닝센의 말로부터 생각하면, 헤닝센 자신이 SGI 를 교육기관의 하나라고 보고 있는지, 아니면 그룬트비가 그랬던 것처럼 종교자, 시인, 사상가 등의 얼굴을 가진 이케다에 대한 경애의 생각을 표명 

생각할 수 있다.

 

<대화>

 게다가 그 후의 페이지에서는 「나는 기독교 사상의 입장, 회장(이케다)은 불교 사상의 입장입니다」라고 말해, 「『평화 교육』과『문명간의 대화』『종교간의 대화』에 공헌할 수 있다 그렇다면 … _

 반대로 이케다는 종교간의 대화라는 관점에서인지, 처음부터 불전을 제시한다. “과거의 원인을 모르고 싶으면 그의 현재의 과를 보라 미래의 과를 모르고 싶으면 그 현재의 인을 보라” 23 ) 이른바 인과론이다. 일반적으로도 「교육은 백년의 합계」라는 말이 있지만, 덴마크의 오늘이 있는 것은 약 170 년전에 그룬트비와 코르가 시작한 교육 개혁을 「인」으로서 오늘의 「과」가 있다고 이케다는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서, 이 대담에서의 이케다의 불전(석가의 경전이나 일련의 논문, 편지)의 인용은 25 회에 달하고 있다. 이케다가 지금까지 다녀온 수많은 교육대담본 중에서도 최다 인용일 것이다.

이에 대해 헤닝센도 성경 등을 인용하여 응답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복음 루터파)가 국교이며, 그룬트비도 헤닝센도 목사였기 때문에, 불교 지도자이기도 하는 이케다는 서로의 인간 교육을 토론하는 기반으로서 종교간의 대화는, 필연적인 것 라고 생각한 간증이다.

게다가 어느 장에 있어서의 대담에서도 양자의 생각은 공명해, 상호 계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비교할 수 없는 특징이다.

이것은 덴마크와 일본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나라의 독자들에게도 큰 계발을 줄 것으로 보인다. 24 )

본문의 「『대화』와『계발』」(p 20 )의 항에서는, 국민고등학교에서는, 성적도 없고 시험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헤닝센은, 시험을 하면 특정 분야의 특별한 관심을 가진 학생 밖에 모이지 않는다. 따라서 대화의 장이 좁혀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공통의 문제에 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대화에 의한 「생의 계발」로 자신을 높인 인간이 「민주주의의 담당자」가 되어 사회를 잘 해 나간다고 설명한다. 덧붙여 「교육」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딘가 협소적이고 자기 본위적인 의미가 느껴지지만, 「계발」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어, 「교육」보다 훨씬 넓은 시야에 서 있다고 말 , 「계발」에는 사회적인 측면이나 보편적인 측면이 포함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이케다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마키구치의 「지식의 전수 즉 채우기주의에 빠져

"계발주의, 학습지도주의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국민고등학교의 이념과 깊게 공명하고 있다고 말하고, 또한 "대화"야말로 인간의 증거이며 교육의 근본이라고 강조 한다. 25 )

양자의 이러한 상호 작용을 읽을 때, 요즘, 항간 말할 수 있는 「젊은이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이라고 하는 차원과는 완전히 다른 철학적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케다가 국민 고등학교를 「확실히, 소크라테스적인 「살아있는 대화와 촉발의 광장」이군요」라고 평가하고 있는 곳에 이 대담의 깊이와

가중치가 느껴진다 (p 22 ).

 

<사제론>

 이케다는 또한 본문의 시작 부분에서 글룬트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p ). 그 후, 코르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에 대해, 헤닝센은 “국민 고등학교가, 덴마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발전해 나가는 원동력이 된 것이, 후계자의 코르입니다”라고 오히려 제자로 어느 콜의 공적을 칭찬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현재 덴마크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그룬트비와 코르의 사상을 세계적인 규모로 응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p 15 )라고 말하고 나이 82 세 (당시) 제자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헤닝센의 마음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전술의 노다 요시오가 그룬트비와 코르의 관계를 「일체 심신」, 「양인의 열혈」이라고 표현한 사제의 기개가 오늘, 헤닝센이나 아스코-교에 엄연히 계승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

이에 따라 이케다는 “ 선사 ” 마키구치가 창가 교육학 체계의 “서언”에 그룬트비와 코르 사이에 사제의 행위가 있었던 것을(후술)을 “ 은사 ” 토다로부터 몇번이나 듣고 있어 , 유럽여행의 첫걸음은 덴마크에 정하고 있던 것을 밝힌다.

대담에서는, 그 때의 가슴속을 「귀국에의 경애와 함께, 은사에게의 보은 감사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교육 개혁의 기초는 국민 고등학교도 SGI 도 사제론이 그 중심축에 있는 것

아닐까 필자는 보고 있다.

 

<평생학습> 국민고등학교는 덴마크에서는 포르케 포이스코레( Folkeh φ j s ole )라고 불리며, '포르케'는 '민중'으로 번역된다. 시험이 없고 18 세 이상이면 연령에 제한없이 누구나 입숙 

(전 기숙제)하고 배울 수 있다.

또, 과목의 선택이나 학습 기간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유학생을 받아들이고 있어 세계에 열린 「평생 학습」의 학사가 되고 있다.

덴마크인의 대부분이 일생에 한번은 이 국민고등학교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학교 제도에는 없는 교육기관이며, 이야기에 듣는 것만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제도이다.

여기서의 학습법은 「대화」와 「계발」이다.

물론 덴마크의 평생 학습의 장소는 국민고등학교 뿐만이 아니다.

사와노에 의하면 오늘, 덴마크에는 다종다양한 성인교육의 장이 있어, 그러면서 「성인교육의 정글」이라고 표현될 정도이다. 소할도 교육성, 노동성, 문과성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법률도 1991 년에 지금까지의 「여가활동법」이 폐지되어 새롭게 「민중성인교육법」이 제정되고 있다. 국민고등학교는 교육성 소할의 몇몇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이러한 평생 학습의 역사와 발전의 기반에 그룬트비의 교육 사상이 영향을 준 것이다. 26 ) 

 

<정리>

인간교육이란 무엇인가, 작년 월까지 35 년간 초등학교 교원을 맡아 현재 대학교원을 맡고 있는 필자에게 있어서는, 앞으로도 추궁해 나가야 할, 항상 「옛날과 새로운」과제이다.

우리나라에서 · · · 제 학교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교원을 하면서 야간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한다는 리커런트 교육도 경험하면서 덴마크 교육을 만난 것이다.

1998 년에 대학원 연수 여행으로 처음으로 덴마크를 방문했을 때의 인상은 지금도 잊지 못할 것이 있다. 코펜하겐이나 오덴세의 거리에서도 가는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친절했다. 일본인은 외국인에게는 친절하다고 말하지만, 덴마크인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친절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친절한 것이 덴마크를 방문할 때마다 알아 온 것이다.

게다가 어른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돕거나 더 이상 친절하고 친절했습니다.

덴마크는 자주 '동화의 나라', '가노의 나라', '아이의 천국' 등이라 불리지만, 완전히 그대로라는 실감을 거듭해 왔다.

뒤집어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어떠할까 하고 되돌아보면, 테스트와 숙제와 학습학원에 쫓기는지, 경쟁주의의 부활 등, 스트레스 한 잔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본래 가지고 있는 아이들함은 만국 공통이지만, '사회를 위해' 적응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육을 위한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통감한다.

그 점에서 학습 학원도 없고, 지금까지의 수험 지옥을 모르는 단괴의 세대인 필자로부터 봐도 덴마

-쿠의 아이들과 사회가 부러워 보인다.

그의 나라와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고 있는지 알아내는 안데르센도 아니고 키르케고르도 아니고, 그때까지 들은 적이 없는 그룬트비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국민고등학교의 창안자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현해 간 것은 제자의 콜인 것도 알았다. 말하자면 사제가 공동작업으로 실현해 온 것이다.

사제의 관계로 개혁을 실현한 예는 우리나라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필자가 동경한 요시다 마츠네의 마쓰시타무라 학원, 오가타 홍암의 적숙 등이 그것이다.

다만, 어느 개혁도 교육 개혁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개혁을 시도하고, 실행한 사제가 있는지 여부를 생각하는 동안 생각했던 것이, 마키구치이고 토다이며, 이케다였다. 27 )

게다가 '아이들의 행복', '민중을 위한 교육', '대화주의' 등 그 교육철학은 그룬트비와 콜의 사상과 겹치는 것에 놀랐다.

그룬트비의 교육사상을 견지하고 덴마크에서도 명문이라 불리는 것이 아스코교이다.

본문 '계보'에서 꼽은 선각자들이 찬양하고 동경한 국민고등학교이다.

 필자는 행운으로도 카미오를 통해 전 교장 헤닝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이 되었다.

 그 헤닝센이 이케다와 대담집을 짠다고 들었을 때, “이것으로 일본의 교육도 밟는 것은 바뀔 것이다”라고 크게 기대한 곳이다.

 그런데 현실은 연히 없이 로 현직 교원(당시)의 입장에서 교육 현장을 바라보면 출판 후에도 왕따나 부등교도 학급 붕괴도 줄이지 않고 오히려 심각화하고 있다. 게다가 교사 배싱도 횡행하고 있어 아이도 교사도 위축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점점 혼미의 정도를 깊게 하고 있다는 것이 거짓의 실감이다.

 필자가 본 논문을 쓰게 된 동기는 여기에 있다. 즉, 책은 출판되어도 독자가 없으면 무의미하다. 독자가 있어도 이해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이해할 수 있어도 실천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바로 책만의 학습이 아니라 '대화와 계발'의 '살아있는 학습'에 연결하지 않으면 두 사람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이 모인 것이다.

 대담자 쌍방을 알고, 아스코를 방문한 자로서 후계인을 위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일 것이라는 뜻을 결정한 것이다.

 대상으로 한 책은 회화문으로 구성된 대담집이기 때문에 논문처럼 계통이었던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다양하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 때문에, 논문으로서 정리하는 것은 곤란도 있지만, 필자 나름의 키워드를 마련하는 것으로, 필자 나름대로 양자의 대화의 심연에 약간이라도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덴마크나 국민고등학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 뿐만 아니라, 보호자나 교육 관계자 등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떠한 시사를 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인용 문헌·주>

(1)   마키구치 토모사부로( 1932 ) 「창가교육학체계 Ⅰ」성교문고 성교신문사 pp149-157 .

(2)   한스 헤닝센 이케다 다이사쿠 ( 2009 ) "내일을 만드는 교육의 성업 "- 덴마크와 일본 우정의 이야기 "시오 출판사 .

(3)   오하라 쿠니요시( 1969 년) 「전인 교육론」타마가와 대학

출판부

(4)   일본 홀리스틱 교육 협회 

(5)   이케다 다이사쿠 미하일·즈그로프스키-

2011 ) 년 「평화의 아침에 교육의 대광」제 3 문명사 pp95-103.

(6)   이케다 다이사쿠 ( 2003 ) 「교육의 세기」에 제 3 문명사 pp165-205.

(7)   빅토르 A. 사드 - 브니치 이케다 다이사쿠 ( 2004 ) "학은 빛 - 문명과 교육의 미래를 말한다"시오 출판사 pp103-119.

(8)   이케다 다이사쿠 바라티 무카지 - ( 2013 년) "등대 월호 새로운 문명의 시를 - 타고르와 세계 시민을 말한다 -"제 3 문명사 p62.

(9)   국립 국회 도서관 창고( 1994 년) “이와쿠라 사절단 문서”(마이크로 필름판) 유마에 서방.

(10) 다나카 아키라( 2003 년) 「메이지 유신과 서양 문명 ― 이와쿠라 사절단은 무엇을 보았는가 ― 」 이와나미 신서 p56-58 .

(11) 우노 호( 2003 년) 『국민고등학교운동의 연구

하나의 근대농촌청년교육운동사 '계수사

(12) 우노 호 ( 2003 ) 전경서 .

(13) 이케다 다이사쿠 ( 2003 년) "제 3 문명 내 인생 기록 덴마크의 민중 대학과 교육 교류 " 제 3 문명사 pp52-63.

(14) 시미즈 미츠루 ( 1996 ) "개정 신판 생을 위한 학교 덴마크에서 태어난 프리스크-르"포르케 포이스코레의 세계 "신평론 p

187.

(15) 코야마 테츠지 일본 그룬트비 교회 홈페이지에서 “미토 무교회” 178 

(16) 스테이분 보리슈 난바 카츠히코 감수 후쿠이 노부코 감역 ( 2011 년) “생자의 나라 덴마크에 배우는 전원 참가의 사회 ” 신평론 p ⅰ. 

(17) 마키구치 토모사부로( 1932 년)

(18) 마키구치 토모사부로( 1932 년) 

19 ) NFS 그룬트비 저 고이케 나오토역 ( 2011 년)

원시 계몽 풍 매사 pp20-21 .

(20) 이케다 다이사쿠( 2010 년) “신·인간 혁명 제 21 권” 세이 교 신문사 pp54-60

(21) 사와노 유키코 (2004 년 '북유럽에서의 평생 학습 정책의 전개' 국립 교육 정책 연구소 평생 학습 정책 연구부 p1.

 

(22) 요시다 마사유키( 2009 년) ' EU 평생 학습 정책과 액티브 시티즌십-성인 교육 그룬트비 계획을 중심으로-' 교토 대학생 평생 교육·도서관 정보학 연구 제8호 p1.

(23) 호리 닛테이편( 1952 년)「니치렌 대성인 어전 전집」창가학회

(24) 2012 년 말 현재 덴마크어 번역본과 중국어 번역본이 출판되고 있다.

(25) 마키구치 토모사부로 해제=쿠마가야 이치카 교정·각주=구 마야 이치승·목전력 남편( 1983 년 )    

(26) 사와노 유키코 (2004 년 ) 전경 서 pp3-5.

(27) 성교신문 2000 년 11 월 30 일자 '덴마

- 쿠 의 계관 시인으로부터 이케다 SGI 회장 에게 선시

・・그레스 박사의 손으로 마키구치, 토다, 이케다의 「삼대 회장의 나무」가 식수되었다. 나중에 이케다에게 준 장편시에는 “당신의 나무를 심자 생명의 상징의 나무를 덴마크와 당신과의 후지가 되는 인연의 증거로”

의 문장이 있다.

 

<참고 문헌>


・힐티 저 타카하시 사부로역( 1959 년) 「인간교육」 힐티저작집 제 10 권 주식회사 백수사

NFS 그룬트비 저 코이케 나오토역( 2010 년)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풍매사  

・연보 편찬 위원회( 1993 년) 「연보 마키구치 죠사부로 도다성 세이」제3분명사

・오베·코스고 - 저가와사키 카즈히코 감역 다카쿠라 나오코 역 1999 년 )

・오타니 에이이치 ( 1948 년) “평화의 나라 덴마크” 아테네 문고 20

・도카이 대학 문학부 북유럽 학과편( 2010 년) 「북유럽학의 스스메」도카이 대학 출판회

・테라다 치지・시라이시 다이스케( 1999 년) 「덴마크에 있어서의 교육 사정 Ⅱ -『생의 교육』의 실태를 엿볼 수 있다―」 무고가와 여자 대학 임상 교육학 연구과 연구지 제5호 무고가와 여자 대학 대학원 임

바닥 교육학 연구과, pp.185-197 .

・데라타 지사( 2011 년) 『덴마크 최근의 교육 사정 ― 인간 교육의 전통과 미래 ― 』 태성 학원 대학 기요 제 13 권 pp273-283.

・우메네 고감수( 1976 년) “세계 교육 사체계 14 북유럽 교육사” 주식회사 코단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