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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5

[이종철 서평]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영성'보다 '샤먼'. - 내외신문

[이종철 서평]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 내외신문
[이종철 서평]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이종철 철학박사 승인 2022.04.02


1.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지금 막 다 읽었다. 출간되자 마자 화제에 올랐고, 일전에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리이다. 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라는 책을 읽고 강한 인상을 받은 터라 한 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침 이 책을 번역한 이신철 선생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동료이고, 그가 책까지 한 권 보내 주어서 그 기회를 앞당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책을 펼쳐 들고 중반 까지는 꼼꼼하게 읽었지만 뒤로 갈 수록 간략하게 스킵하다 보니까 대 여섯 시간만에 읽기는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은 다음 곰곰히 생각을 했다. 
  •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사상가들 뿐 아니라 어쩌면 한국인들이 쓴다 해도 거의 언급 조차 되지 않을 인물들까지 들춰내서 세밀하게 쓴 것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엄청난 연구와 독서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그 수준이나 성과 여부와 상관없이 조선의 사상사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그것을 학문적으로 표현해준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 다음으로 일본 학자가 이런 책을 쓰는 동안에 한국의 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자괴심 마저 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이 나왔을 때도 주로 호기심 많은 저널리스트들 만이 크고 작은 관심으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깊이 있는 서평을  써주었다. 정작 학문적으로 연관이 있는 학자들 중에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기이한 느낌마저 주기도 했다. 아마도 학자적 양심이나 부끄러움 때문이거나 혹은 그 마저도 없이 한국의 학자들이 이제 공부도 안하고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의심이 어느 정도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도대체 한국의 학자들 -특히 인문학자들-은 두더지 처럼 자기 구멍만 팔 줄 알지 다른 학자들과 소통이나 논쟁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오구라 기조 교수의 책에 대해서도 똑같이 침묵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 지난 30여년 동안 연구자들의 수가 엄청 늘어났고 그 수준도 많이 높아졌지만 그저 논문 기계들처럼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사냥하는 일에만 관심갖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다른 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도통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인문학자들의 현실이다. 만일 한국의 인문학계가 이런 학문적 무관심과 불통을 계속한다면 가뜩이나 인문학의 소외 현상을 넘어서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평을 쓰면서 이런 푸념식의 비판부터 하는 나 자신의 마음도 편치는 못하다. 내가 한국학이나 한국철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서평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렇다. 아무튼 이런 마음을 염두에 두면서 <조선 사상사>를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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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의 사상사 전체를 통람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의 분량을 많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단군신화에서 시작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부터 고려와 조선 그리고 조선말기 동학과 개화 사상, 식민지 시대의 사상과 북조선의 주체사상과 현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정치가들과 사상가들의 사상까지 기술하고 문학가들의 작품까지 빠짐없이 빼곡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앞서도 이야기를 했듯 저자의 엄청난 독서외에도 수많은 사상들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간단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필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오구라 기조 교수는 전작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보여주었듯 복잡한 현실과 사상을 단순화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다 보면 필자와 같은 문외한도 신라의 원효와 의상, 고려의 지눌의 돈오점수의 불교, 조선의 태극논쟁, 사단칠정 논쟁, 인심도심 논쟁, 인물성 동이 논쟁 등 수많은 사상의 갈래들을 어렴풋하나마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저자의 명쾌한 설명과 간결한 문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은 비록 상세한 내용을 담지 않았더라도 조선 사상사 전체에 대한 소묘를 잘 해냈다는 점에서 빼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권할 만하다는 생각을 적지 아니 했다. 

3. 필자는 이 책 전체를 작은 지면에서 다 다룰 수는 없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저자가 강조한 입장이나 시각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오구라 기조 교수는 이 책 모두에서 조선사상사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본과 비교해서 기술하고 있다
  • "일본 문화가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문화에 대해 브리콜라주(수선)적인 포섭 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 조선은 "외부로부터 도래한 사상이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변을 추진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고려 시대에 불교가 사회 변혁을 시도했고,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들어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공산주의라는 사상(주체사상)이 똑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그런 맥락에서 일본과 다르게 조선에서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의 크기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오구라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이라는 다섯가지 키워드"에 특별히 주목한다고 했다. 

조선(이때의 조선은 이성계가 개국한 특수한 의미의 조선이 아니라 단군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을 일컫는 보편적 의미를 띠고 있다) 사상사를 개관한다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사상사와 달리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런 현상은 현대에 와서도 남조선과 북조선간의 이데롤로기 대립,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진영논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이러한 투쟁은 대개는 중화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조선 사상의 독창성의 결여와 중국에 대한 종속성과 같은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와는 달리 순수성에 대한 반대 축에는 불순성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조선의 주자학이 지배하던 당시에도 양명학과 서학이 다른 사상으로 존재했고, 유불도 3교 내지 샤마니즘을 포함한 4교와 같은 혼연일체형의 '하이브리드 사상'이 조선사상을 특징지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보듯 외래 사상의 유입을 차단하는 '정보의 컨트롤'이 지배적이었다. 16세기 말에 서양의 사상과 문물이 대거 동아시아로 밀려 들어 왔을 때 일본에서는 가톨릭 다이묘가 나오거나 남만 사상이 유행했지만 조선의 지배층은 철저하게 이런 정보를 통제했다. 사상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이런 조치는 19세기 말 외래 사상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는 '위정척사' 운동이나 대원군의 쇄국 정책, 더 나아가서는 북조선이 주체사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사상의 유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데서도 잘 보여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전면적인 순수성의 추구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하이브리드성이 하나의 조선 속에 공존한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억지이거나 무리한 해석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아포리아(aporia)에 직면해서 오구라 교수의 해석의 장점이자 조선사상의 특별한 장점이 드러난다. 오구라 교수는 일견 상호 대립하는 순수성과 하이브리드성, 정보의 통제와 개방 간의 대립을 아우르고 넘어서는 정신의 현상조선에는 분명하게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영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신라의 원효의 화쟁사상에서부터 퇴계의 이기호발설, 그리고 19세기 조선말 경주 지방에서 등장한 최제우의 불여기연과 동학 사상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이것을 '영성의 네트워크'로 부르고, 이것이 "조선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까지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이런 주장을 특별히 뒷받침하기 위해 퇴계와 최제우의 사상적 연결을 경상도라는 특수한 유대까지 거론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오구라 교수는 이런 영성이 순수성을 둘러싼 유별난 투쟁사와 외래 사상 간의 다양성과 공존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특별한  지지대라고 보는 것이다. 

4. 그러면 마지막으로 오구라 교수의 이런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나의 생각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의 사상이 한 시대, 한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개벽한다는 입장부터 보자.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특별히 종교적 심성이 강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종교적 의식 때문에 신리와 고려에서는 불교가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사회를 이끌었고,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통치 이념을 제시했다. 
근대에 들어와서 새로 유입된 기독교가 유교를 대신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믿는 대표적인 종교가 되기도 했다. 
사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이토록 대표적인 종교가 된 현상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한국인들의 유별난 종교의식 말고는 달리 설명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의 지반 속에서 그것이 불교이든 유교이든 아니면 기독교이든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배적인 이념(이데올로기) 역할을 해왔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처럼 종교에 대한 귀속 의식이 없다고 하면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사상이나 종교에 의해 그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나올 수는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오구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조선은 외래 사상에 대해 일본이 자신들의 틀 속에서 수선하고 개량하는 태도 보다는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지배 사상으로 만들고, 그것의 동력이 다한다면 새로운 피를 수혈하듯 새로운 사상으로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태도를 반복한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오구라 교수의 일반화에 대해 한국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특별히 반박하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한 시대나 사회 안에서 대립적인 사상이나 종교 혹은 경향이 모순적으로 대립하면서도 그 사회를 파멸로 이끌지 않는 특별한 이유조선사상의 '영성'에서 찾는 오구라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사실 '영성'이란 표현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계산적인 이성의 합리성 틀 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이러한 영성은 다분히 종교적 측면이 담겨 있고,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감성과 이성을 넘어선 '정신'(Geist/sprit)의 측면에 가깝다

때문에 그것은 경험적이고 가시적인 영역을 넘어서려는 인간 정신의 초월성, 상호 대립하고 모순하는 것들을 아우르고 넘어설 수 있는 신비와 형이상학적 사유에 가깝다. 때문에 이런 영성은 사상사적으로 볼 때 장점도 있는 반면에 단점도 적지 않다. 굳이 서양철학의 칸트를 끌어들여 설명한다면 그것은 경험적 직관이나 과학적인 범주를 넘어선 형이상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이성 비판을 통해 이성의 필연적 지식이 가능한 영역과 그것을 넘어선 영역을 구분하고, 과학으로 종교를 재단하려 한다든지 아니면 종교를 가지고 과학을 지배하려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성은 인간 정신의 초월이자 종교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영성을 과학의 세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어도, 그것은 끊임없이 이성과 감성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그 세계 안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고 그 세계 안으로 강력한 에네르기를 불어 넣을 수도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이나 종교적 부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영성 운동 같은 경우들이 그렇다.  어느 정도 신비주의의 영역에 맞닿아 있는 이런 영성이 조선사상사를 꿰뚫는 대립물의 화해와 통합의 정신에서 나타나서 끊임없이 사상의 활력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구라 교수가 영성을 강조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을 '영성'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익숙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영성'이란 말을 통해 오구라 교수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은 하지만 그것을 좀 더 한국인들의 의식 세계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면 어떨까라는 생각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불교나 유교 그리고 현대의 기독교는 한국인들에게는 외래 사상이라고 볼 수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의 무의식 세계 저변에는 동아시아의 오랜 샤만 전통이 깔려 있다.    한국인들의 무의식 속에서 이런 샤만니즘은 외래 사상을 끌어 들여 그 속에서 용해하는 거대한 용광로의 불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는 사먀니즘과의 친화성이 두드러져 나타나고, 엄격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에서도 왕실 깊숙한 세계나 기층민중의 세계에서 샤마니즘의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그것을 특별히 원효의 화쟁사상과 퇴계의 이발호발설, 그리고 최제우의 불연기연 사상에서 보듯 사상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초월적 정신의 수준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맡바탕에 흐르는 면면한 정신은 동아시아의 샤먼적 전통 (최치원이 말한 풍월도)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성'이란 표현보다 '샤먼'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상과 철학사 안으로 샤먼의 무의식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진저리를 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점도 모르지는 않다. 

오구라 기조 교수의 <조선사상사>를 주마간산 격으로 읽기는 했지만 느끼는 바는 컸다. 이렇게 생각거리를 많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가 크다.이 책을 기점으로 한국의 학자들도 사상사와 철학사의 기술에 적극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동안 서양 사상을 수입하고 중국 사상을 반복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제 나라의 사상사를 일본 학자의 저술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학문적 자존심도 걸려 있고 학자의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은선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ㅡ 이종철 서평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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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한국信연구소 오늘, 22.08.15(월) >
-8.15광복절에 오구라 기조 교수의 '조선사상사' 연구를 돌아보다-

어제 한국기독교협의회 한반도평화포럼 예배를 마치고 오늘은 다음주에 있는 한국양명학자 대회를 위한 글을 마무리하고자 앉아있는데, 77주년 8.15 광복절을 그냥 지나가기가 죄송해서 지난 6월에 있었던 한국헤겔학회에서의 오구라 기조 교수 책서평(이종철교수)에 대한 저의 토론문이 있어 여기 가져옵니다. 
한반도 포럼에서 만난 일본 거류민 교회 조영철 목사님과 박현숙 교수님과의 사진과 함께.

한국 헤겔학회 6월 월례 발표회, 22.06.18(토). 줌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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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교수님의 “오구라 기조 교수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조선사상사』 논평”을 읽고>

1.
먼저 이런 기회를 통해서 이종철 교수님은 물론 헤겔학회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헤겔학회야말로 일찍부터 ‘재세이화(在世理化)’, 리理(이성/정신)를 통해서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리매김하고, 규정짓고자 한 분에 대한 학회이니, 오늘 오구라 기조 교수가 그의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나 『조선사상사』를 가지고, 한국을 철저히 유교적 도덕 지향의 국가로 보면서 그 도덕 지향의 유교적 리理로 한국의 모든 것을 밝혀보려는 시도의 책을 다루는 것은 짐짓 마땅해 보입니다.
 
2.
그런데 사실 제가 맡은 역할의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저는 지금까지 동아시아 유교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대화를 학문적 주제로 삼아오면서 거기서 특히 유교 문명을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듯이 좁은 민족국가적 개념에서 중국 한족(漢族)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외래로부터 받아온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과거 고대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 더 근원적인 그룹에 의해서 기원을 새롭게 볼 수 있고, 그 전개와 확장에서도 단지 중국인에 의해서 정리된 것 이상으로 고대 한국인을 비롯한 동북아 민중들의 토착적 삶과 깊이 연결되어 전개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구라 교수도 이종철 교수님도 이러게 모두 제가 동의하지 않으면서 새롭게 보고자 하는 지금까지의 이해를 기본으로 하고서 논의를 펼치기 때문에 저의 입장은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나 저의 다름에 대한 논증은 오늘 짧은 논평이나 한 두 시간의 이야기로 언술 되기 어려우므로 일종의 벽 앞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3.
따라서 저의 논평은 어떤 잘 정리된 구조의 것이라기보다는 이종철 교수님이 쓰신 논평문의 페이지를 따라가면서 생각나는 질문, 논의, 비판점 등을 단편적으로 제기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먼저 첫 페이지에서 이 교수님은 오구라 교수가 한국을 유교적 ‘도덕 지향성’의 나라라고 보고 도덕을 명분으로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형세라고 한 것에 동의하시면서 “나는 한일 간의 징용공을 둘러싼 논쟁을 ‘근본주의 도덕과 극우 종족주의’의 싸움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라고 하셨는데, 그 내용을 우선 좀 더 알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 문장에서 받은 첫인상이 한일관계에 대해서 굉장히 ‘우익적인’ 견해를 밝히신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구라 교수의 두 책이 물론 이 교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한국 사람보다도 더 지대한 관심과 공부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꿰뚫고, 한국사상사 전체를 통사적으로 살펴본 것이라는 점에서 감사와 감탄을 불러온다는 것에 일면 동의합니다. 

그는 한국에서는 체육선수도 도덕적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고, 한국에서 경멸의 대상으로 사용하는 ‘놈’이 의미란 “자신보다도 도덕적으로 열등한 인간을 가리킨다”라고 하면서 일본인들과는 다른 한국인들의 도덕지향적 성격을 참으로 적나라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아직도 이 두 책을 읽으면 제일 거슬리는 것은, 그가 스스로 도덕 지향적이지 않다고 한 일본인이어서 그런지, 그럼에도 20세기의 한일병탄에 대해서까지 어떤 ‘불의’에 대한 감각도 없이, ‘사죄’의 마음도 없이 그냥 두 나라 사이의 일반적 관계의 일로 보는 것 같은 의혹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의혹이 들 때는 이러한 모든 그의 작업이 저에게는 또 하나의 왜곡과 침략으로 보이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가 이완용 등의 친일파도 “그 나름의 ‘리’가 있었다”라고 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면 “식민지 시대에 대한 시각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195쪽), 한국의 ‘민족주의’ 리를 지적하면서 그것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듯한 입장을 내보이고,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도 “한국의 병합에 반대했던 이토를 암살한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없지만”이라고 평하면서 이 시기에 왜 “강력한 친일 단체가 생겨났고, ... 한일합병을 주장했는가 ... 감정론이 아니라 냉정한 학문적 분석이 필요” 하다고 한 언술(『조선사상사』, 226-227쪽) 등을 말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이 교수님의 생각이 어떠신지 묻게 됩니다.
 
이 교수님은 두 번째 페이지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천주교 박해, 대원군의 쇄국 정치, 오늘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모두 오구라 교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입장에서 “봉건적인 성리학적 이념의 다른 모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뒤에서 스스로 “필자와 같은 문외한도”라는 말을 쓰실 정도로 한국사나 사상사, 유교사에 대해서 그렇게 탐구를 안 하셨다면, 어떤 근거로 그와 같은 일면적인 판단을 하시는지, 혹시 그것이야말로 오구라 교수도 많은 부분, 그리고 그 이전에 특히 일제강점 치하에서 식민주의 사가들에 의한 한국사 왜곡과 가치절하 기도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4.
이 교수님은 두 책에 대한 논평에서 제가 이전에 오구라 교수가 한국을 하나의 리 철학의 나라, 그것도 리를 ‘상승’과 성취에의 열망으로만 본 것에 대해 비판한 것을 일면 적실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당시 저는 그와 같은 비판을 하면서 오구라 교수가 지적하는 대로, 한국인들이 진정 강한 ‘도덕(理)’ 지향성의 사람이라면, 거기에는 단지 ‘상승’의 방향만이 아니라 ‘자기희생’, ‘비움’, ‘겸비’나 ‘인내’, ‘고통’ 등의 ‘하강’ 이야기가 있는데, 그가 그것은 돌아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에서의 도덕 지향은 그것이 “도덕의 최고형태는, 도덕이 권력 및 부와 삼위일체가 된 상태라고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21쪽). 그러나 저는 그와 같은 오구라 교수의 규정이 진정 한국적 리 추구의 진면목, 즉 리와 기를 어떻게든 함께 하나로 이루어내고, 그래서 그것이 더 높은 리가 되도록 하는 의미의 ‘리기묘합(理氣妙合)’의 특성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그 리의 추구는 하강, 자기 비움, 겸비나 인내의 그것이 되어야 함을 보지 못한 것이고, 그것은 그가 한국인들의 리 추구가 단지 ‘도덕’이나 ‘철학’만이 아니라 ‘종교’이고 ‘영성’이며, ‘뜻’의 추구인 것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인선,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한나 아렌트와의 대화 속에서, 2018』, 「책을 내며」). 저는 그런 의미의 리 추구야말로 한국 사고의 진정한 고유성이라고 보면서, 그것을 또 다른 언어로 한국 유교의 ‘종교성(religiosity)’ 내지는 ‘영성(spirituality)’이라고 명했습니다. 오구라 교수가 보지 못한 것은 리 지향의 내용이나 방향성이고, 그것은 리 지향을 단지 하나의 ‘활동이나 운동(movement)’으로만 보는 것이지, 그것이 선하고, 좋고, 아름다운 내용을 가진 ‘행위(action)’라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최근에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렌트가 그녀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쓸 때 독일 나치의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movement)의 법’을 비판한 것이 생각났고, 오구라 교수도 한국인의 삶을 바로 그런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게 절하시키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이 교수님은 그다음 책 『조선사상사』의 논평에서 오구라 교수가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조선사상사를 통찰하는 것에 주목하고, 특히 거기서 저자가 ‘영성’이라는 관점을 가져온 것에 여러 생각을 밝힙니다. 이 교수님도 지적했듯이 사실 순수성과 하이브리드성의 서로 상반되는 것을 동시에 가져와서 그것을 조선사상사의 특징으로 본 것은 “일종의 억지이거나 무리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오구라 교수가 그 전 단계에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한국 사상의 리기지묘적 특성을 나름으로 다시 파악한 것의 표현일 수 있다고 여깁니다. 

앞 책에서의 리 일원적 사고를 리기불이적(不二的) 사고로 수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일본과의 비교에서 한국 사상을 외부로부터 도래한 것이 기존의 것을 전면적으로 개변하고 부정하는 순수성의 추구 차원에 더 집중하여 보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축소지향적 일본이라는 말도 있지만, 오늘 지구상의 나라 중에서 한국만큼 지구라는 생명체에서 인류가 가꾼 제 종교들이 다양하게 현시적으로 역동하고 살아 역할 하는 곳이 없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사상은 항상 다시 근원의 순수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높은 하이브리드성을 지닌, 즉 지극히 이기묘합적이고, 그 리기묘합의 종교성과 영성이 궁극적으로 ‘생명’을 위한 것으로 표현되는 곳이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전세계를 휘감고 있는 K-문화 한류의 바람이 그 한 증거라고 여기고, 여기서 저는 한국 사상의 종교성과 여성적 통합성, 실천성을 주장합니다(이은선, “한류와 유교 전통 그리고 한국 여성의 살림영성”,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2016』, 55-84쪽).
 
6.
다시 반복하면 저는 오구라 교수가 리의 추구를 단지 ‘철학’이나 ‘도덕’, ‘상승’이나 성취의 차원에서만 보는 것을 넘어서 한국 사상의 흐름 속에 내재하는 ‘종교성’과 ‘영성’, ‘뜻’의 차원을 보고자 합니다. 그것을 유교 성리학적 언어로는 ‘리기묘합’의 추구로 표현할 수 있지만 여러 다양한 이름으로 언술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의 언어로 仙, 道, 易이나 空, 또는 이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종교 전통이 된 기독교의 인격적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신앙 등으로 표현되면서 어떻게든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그것을 넘어서는, 또는 변화시키는 이상의 초월과 뜻이 있으며, 그러한 궁극 내지는 근원의 심연과 현상의 불이성(不二性)을 놓지 않으려는 추구로 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탈형이상학의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 세상의 심연성과 궁극성, 초월성(life, 理)을 다원성(plurality, 氣) 속에서 마련하고자 하는 고투에서 “聖(거룩)의 평범성의 확대”라는 말로도 표현했고, “차이의 어두운 심연(the dark background of difference)”이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이렇게 성(聖, the sacred)과 속(俗, the profane)을 어떻게든 함께 연결하려는 추구가 한국사의 전개 속에서 비록 겉모습의 종교 형태는 다르지만, 특히 한국 여성들의 종교적 삶과 영적 추구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되어왔다고 보았습니다(이은선,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한국 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2009』).

이 교수님도 지적하신 샤머니즘(무교)을 포함해서 불교, 유교, 동학, 기독교, 오늘날의 탈종교적인 페미니즘의 추구도 그러한 시각에서 탐색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래서 이 교수님이 “일본 학자가 이런 책을 쓰는 동안에 한국의 학자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자괴심마저 들기도 한다” 등의 언어에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한국 사상의 고유성을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시는 분들이 교수님이 지적하시는 “학자적 양심이나 부끄러움”, “학문적 무관심과 불통” 등의 질책을 들으면 과연 그렇게 말하는 분이 우리들의 연구를 인지했고, 살펴보았나 되묻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구라 교수의 이 책들은 원래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 너무도 얕은 지식과 여전히 혐오적인 생각하는 일본 대중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역수입되어 번역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학자들이 보기에 일천한 측면이 많이 있고,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이 책의 저자조차도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마음을 잘 모르고, 여전히 오늘 남한과 북한이 분단으로 동시에 겪고 있는 이 고통이 그들로 인한 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오구라 교수의 단어 선택이나 틈틈이 드러나는 뉘앙스조차도 거슬리는 것이 많습니다.
 
7.
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오늘 탈종교와 탈 형이상학의 시대에 다시 ‘도덕’을 말하고, ‘철학’을 말하며, ‘영성’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고맙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일본인에 의한 것이라면 앞에서 지적한 여러 한계와 왜곡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도 감사하고 감탄합니다.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오구라 교수가 저의 앞선 시기부터의 한국 여성종교사 탐구와 한국사상사 관점도 알아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가 의도적으로 외면했거나 ‘영성’ 개념과 관련해서 저작권 운운할 정도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의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가 ‘일본적 영성’을 말했다고 하면서 거기서 ‘조선적 영성’이라는 표현을 얻었다고 합니다(『조선사상사』, 20쪽). 아무튼, 이런 교수님의 비판과 지적, 오구라 기조 교수의 두 책을 계기로 저와 같은 학자가 더욱 분발해서 한국사상사의 맥을 살피는 작업을 더 정교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면 그 또한 좋은 성과와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이종철 교수님의 노고와 열정, 애정 어린 비판을 잘 경청하여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3You, Sunghwan Jo and 21 others



Jong Cheol Lee

이은선 교수님, 훌륭한 논평 감사했습니다.



Reply
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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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5

알라딘: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알라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지은이)소나무2022-01-27
252쪽

책소개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목차
서문 _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I. 도학에서 천학으로
1.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2. 동방의 제천의례 논쟁
3. ‘천학’이라는 범주
4. 이 책의 구성

II. 조선의 하늘철학
1. 한국인의 하늘사랑
하늘축제
하늘경험
‘하’의 탄생
역사 속의 하느님
2. 조선정치와 하늘철학
경건함으로 다스려라
하늘님을 대하듯 하라
하늘을 참되게 대하라
3. 퇴계의 하늘철학
성인에 대한 믿음
하늘에 대한 효도
리(理)와의 감응
다카하시 스스무 학설 비판
4. 퇴계 이후의 하늘철학
윤휴의 사천유학(事天儒學)
다산의 상제유학(上帝儒學)
실심(實心)과 천학
5. 동학에서 ‘천교’로의 전환
천교(天敎)의 등장
천도(天道)의 탄생
천도와 천교
천인(天人)과 시민(侍民)
하늘의 개별화와 일상화

III. 한국사상의 풍토와 한국인의 영성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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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조성환 (지은이)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은 ‘근대성’이다. 그것도 서구적 근대성이 아닌 비서구적 근대성이다. 동학과 개벽... 더보기
최근작 :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동학의 재해석과 신문명의 모색>,<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 총 1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철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책은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일반적으로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전부 중국철학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의 불교와 조선시대의 유교는 전부 중국에서 수용된 것이다. 퇴계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표현도 전부 중국의 주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치부해버리고 말면 ‘사상사’를 서술할 수 없게 된다. … 똑같은 개념을 써도 함의가 같을 수는 없다. 유학의 천(天)과 동학의 천(天)이 같을 수 없고, 주자의 리(理)와 퇴계의 리(理)가 동일할 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한국사상사’ 서술의 관건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사상사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기도 하다.” (13쪽)

“우리는 주자나 양명이 아닌 퇴계나 다산이 딛고 서 있는 사상적 풍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사상사’의 본령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 힌트는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난 동학이 제공한다. 동학은 주자학이라는 중국적 사유가 그 시효를 다한 상태에서 드러난 한국적 사유의 표출이다. … 그래서 우리가 “한국사상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먼저 ‘유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사상은 “중국의 영향이 전부”이고 “유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상 한국사상의 특징은 포착하기 어렵고, 따라서 한국사상사의 서술은 점점 어려워진다.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조선유학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조선유학의 특징도 잡아내기 어렵고 동학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놓치게 된다.” (215~216쪽)

우리에게 ‘하늘’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접근하는 하나의 단서로서 필자가 주목한 사상은 ‘동학’이다. 동학은 조선성리학이 그 효력을 다해갈 무렵인 조선말기에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주체적인 사상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자신의 사상을 유도(儒道)나 불도(佛道)와 대비하여 ‘천도(天道)’라 명명하고,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한국)의 세계관(道)은 생명과 평등 그리고 존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우주적 생명력인 ‘하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동등하게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이 자신의 사상체계를 ‘하늘’을 중심으로 전개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탈아입구로 대변되는 서구화와 더불어 사상언어로서의 하늘 관념은 사어(死語)가 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철학 역시 선진시대 이래로 ‘천(天)’에서 ‘도(道)’로(제자백가), ‘도(道)’에서 다시 ‘리(理)’로(신유학), 그리고 ‘리(理)’에서 다시 ‘기(氣)’로(청대실학), 그 진행이 점점 ‘하늘’의 초월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렇게 보면 동학의 탄생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는 하나의 ‘사상사적 역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에 대해 과연 어떠한 사상사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의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는 처음에 제기했던 중국철학과는 다른 한국적인 철학이 과연 무엇인지, 그런 것이 있기나 하는지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이 두 가지 물음, 즉 동학의 탄생에 대한 사상사적 설명, 그리고 한국철학의 특징 찾기를 위해 필자는 ‘하늘철학’을 제시한다.

“고대 한반도인들은 황제나 임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였다. 그것도 개별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개인적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거행하였다. 이 책에서는 “하늘을 그리다”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에서 ‘그리다’는 ‘그리워하다[思]’와 ‘그리다[描]’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였다.” (12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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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폐쇄·자기소외’ 한국학을 넘어서

이우진

승인 2022.04.15 


서평_『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 소나무 | 252쪽


퇴계 전후 사상가들의 천관을 통시적으로 추적
조선전기 정치사상이 독자적 경치의 형태로 발현

우리의 한국학은 아직도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것은 외세의 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고 다시 전쟁과 분단을 겪어야 했던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주도권을 움켜쥐지 못한 채 타자들에 의해 강요된 한국의 근·현대사는 어느새 우리 내면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는 한국학을 ‘자기폐쇄’와 ‘자기소외’라는 상반된 두 방향으로 치닫게 했다.




‘자기폐쇄’는 역사적 경험에 의해 심어진 ‘식민-후진국’과 ‘주변부-종속’이라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역사의 위대성을 찬양하려는 노력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위대한 역사가 언젠가 다시 재현되리라는 나르시스적 입장이다. 역사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객관적 사실이나 과거의 위대성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느냐는 반성적 물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우리가 모멸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자의 인정이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우리만의 정신적 승리를 위한 ‘자기폐쇄의 한국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폐쇄의 한국학은 우리가 지니고 싶은 믿음과 신념일 뿐,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높지 않기에 그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소외’이다. 자기소외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정신적 식민지배로 구축된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나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자신의 인질범이나 가해자들에게 오히려 애착이나 온정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막강한 타자에게 장기간 납치당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인 그들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피해자인 우리는 어느새 우리 자신에 대한 독자적인 의견과 해석을 내놓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의 틀을 무시하고 타자의 틀에 맞추어 우리의 역사와 철학을 해석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는 사실은 역으로 자기소외의 한국학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기껏해야 타자의 틀이나 해석에 대한 비판에 머물 뿐 그것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철학은 중국철학 연장선 아니다

이번에 나온 조성환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폐쇄’와 ‘자기소외’의 한국학을 넘어서고자 하는 야심찬 도전이다. 서두에서 “한국사상사의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기존의 한국학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저자인 조성환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서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더불어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사상사 서술의 시각이 중국이나 일본학계가 만들어놓은 기존의 틀이나 문제의식에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에 의해 구축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는 ‘한국학의 자기소외적 방향’에 의해 한국철학의 독자적 개성을 찾기보다는,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중국철학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거나 해석하기에 급급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철학의 독자성을 질문하거나 고민하거나 논의하는 일은 어쩌면 ‘자기폐쇄의 한국학’에 함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기껏해야 몇몇 한국사상가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데 머물렀을 뿐, 한국의 사상사 전반을 통해 우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다시 말해, 개별 연구에 치우쳐 한국사상사에 대한 큰 시각을 제시하는 데 소홀하였다. 아프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한국사상사 전반을 독자적인 해석틀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묶어내는 일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대담한 가설을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치밀한 고증과 세심한 분석을 수행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많은 한국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이러한 ‘용기’와 ‘노력’이 담긴 한국사상사를 목말라했다. 조성환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 갈증을 해소해주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의 대담한 가설은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여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철학[天學]’ 혹은 ‘하늘-물음’에 대한 논의는 한반도에서도 뿌리 깊었고, 중국 유교의 전래를 통해 더 심화되고 강화되었으며, 인내천(人乃天)을 종지로 하는 동학의 출현에서 보듯이 근대에서조차 건재하였다는 가설이다. 여기에는 종래 ‘경천사상(敬天思想)’이나 ‘하늘철학’을 중국철학의 전유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날선 비판이 담겨있다.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한·중 비교철학을 채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종래에 당연시되어왔던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에 대한 입장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바는 외래문화의 수용과정에서 ‘수용자의 주체적인 역할’이다.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 그것을 수용하는 지역의 풍토와 수용하는 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모종의 변용이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놀랍게도 저자는 자신의 과감한 가설을 검증하는 대상으로서 조선사상사를 택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조선은 주자학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었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저자는 조선사상사가 중국철학(주자학)의 엄청난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할지라도, 이른바 중국적인(주자학적인) 것이 아닌 한국만의 독자적 특징을 내보인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독자성은 ‘하늘을 섬기고 하늘과 교감해 온 전통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문학적 배경’ 즉 ‘하늘철학’이다. 다시 말해, 조선사상사에는 한국의 인문학적 풍토에서 기인한 하늘철학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증명해내는 길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조선의 유학자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개념이나 표현이 중국문헌에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상의 유사성을 넘어 그 의미상의 차이를 드러내야하기 때문이다. 곧 한국철학과 중국철학, 이 양자에 대한 나름의 명확한 이해뿐만 아니라 치밀한 고증과 세심한 분석을 수행할 때에만이 각각의 개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대개의 조선사상사가 ‘용기’만으로 가득 찬 가설로 머물거나 성과 없는 ‘노력’으로 그치곤 한다. 이 점에서 저자의 ‘용기’와 ‘노력’이 온전히 결합된 이 책의 가치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주자학·천주학·자생학과 하늘섬김

책의 부제가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이지만, 이 책은 조선사상사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그 중심에는 ‘퇴계-다산-동학’의 문헌들을 통해 하늘에 대한 공경[畏天]과 섬김[事天]의 태도가 두드러진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지만 말이다. 더불어 하늘철학의 표출방식에 있어 퇴계는 주자학의 언설로, 다산에서는 천주학의 수용으로, 동학에서는 자생학이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 책 안으로 들어가 보면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이 한국인의 하늘철학(하늘섬김)이 성리학의 경(敬)개념과 결부되어 독자적인 경치(敬治)의 형태로 발현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에서 나타난 하늘에 대한 공경과 섬김의 태도가 이후의 퇴계-다산-동학이라는 조선사상사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책은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퇴계 전후의 사상가들에서 보이는 천관(天觀)을 통시적으로 추적하는 방법을 취하면서, 퇴계학파와 주자학에서의 천관을 비교·고찰한 뒤 그 차이가 한국에서 동학을 탄생시켰다고 역설하고 있다.

유학을 전공하는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의 중심에 있는 퇴계철학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의 마지막 부분을 검토하여 퇴계의 경학(敬學)이 천학(天學)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는 논증이나 퇴계의 독창적인 리도설(理到說)을 천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부분은 대단히 흥미롭다. 특히 퇴계의 리도설이 논리적 틀로는 체용론(體用論)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본적론(本迹論)에 더 부합된다는 저자의 독법은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본(本)으로서의 리(理)는 우주론적으로는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고 심성론적으로는 도덕 감정이 발하는 근원이며, 적(迹)으로서의 리(理)는 수양론이나 공부론 상에서 내가 그것에 진지하게 다가가면[卽物窮理] 그런 나의 노력에 응답하는 형태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퇴계의 리도설을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합리적 윤리학’으로 설명하거나 ‘주자학에서 양명학적 접근’을 시도한 외국 학자들의 입장들에 대한 저자의 치밀한 비판도 실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독자에게 스포일러(Spoiler)가 되는 것 같아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저자에게 중요한 도전을 부탁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다루었던 ‘조선 전기 정치사상, 퇴계, 윤휴, 다산, 동학이 지닌 각각의 하늘철학’에 대해 치밀하게 설명하고 논증하라는 도전이다. 물론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사상사 전반을 다루려 했기 때문에 각각의 사상가들이 지닌 하늘 철학적 면모를 풍부하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상사의 독자성으로서 하늘철학을 통시적으로 부각시키려다 보니, 각각의 사상가에 대한 하늘철학적 분석이 소략하지 않았나 하다. 저자의 해석틀이 좀 더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업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가 ‘자기폐쇄와 자기소외의 한국학’을 넘어서고 있음을.







이우진
공주교육대 교수·교육철학
=

2022/03/25

알라딘: 조선사상사 - 단군신화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 오구라 기조

알라딘: 조선사상사

조선사상사 - 단군신화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 
오구라 기조
(지은이),이신철 (옮긴이)
길(도서출판)2022-03-21



368쪽

책소개

한국에 유학해 한국철학을 전공한 일본 학자에 쓰인 ‘조선(한국)사상사’이다. 기본 축은 사상사이지만 단군신화 시기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의 정치사와 문학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전체적인 사상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더욱이 비록 교양서를 표방했기에 입문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이렇게 통사의 형식으로 쓰인 우리 사상사가 없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번역자의 말대로 “‘조선(한국)사상사’가 우리의 사상사인 한에서 일종의 충격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5

제1장 조선사상사 총론
1. ‘조선’의 사상사라는 것 13
조선이란 13 / 조선의 호칭 14
2. 조선사상사의 특징 15
혁명인가 브리콜라주인가 15 /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 16 / 조선적 영성의 네트워크 20

제2장 신화 및 ‘고층’(古層)
1. 단군신화 23
‘단일민족’과 단군 23 / 『삼국유사』에서의 단군 25 / 단군신화의 사상적 성격 26 / 홍익인간: 단군신화의 요소 ① 27 / 곰: 단군신화의 요소 29 / 수직성과 남성 중심성: 단군신화의 요소 ③ 30 / 천부(天府): 신화로부터 위서(僞書)로 31 / 단군신화의 성격 32
2. 그 밖의 신화 및 전설 33
시조 전설과 난생 33 / 동물 혼인 34
3. ‘고층’ 또는 ‘기층’의 문제 35
‘고층’은 있는가 35 / ‘고층’의 언설: ‘풍류’를 둘러싸고 36 / ‘북’(北)의 우위 38 / 근대에서 ‘고층’의 발견, 창조 39

제3장 고구려, 백제, 신라
1. 삼국 시대 이전: 고조선, 한사군, 삼한 41
기자 조선 41 / 위씨 조선(위만 조선) 44 / 한사군 44 / 삼한: 마한, 진한, 변한 46
2. 고구려 47
고구려의 약사(略史) 47 / 고구려의 문화, 제천 의례 49 / 고구려의 불교 50 / 고구려의 유교, 도교, 풍수사상 51 / 고구려의 문학, 예능 52
3. 백제 53
백제의 약사 53 / 백제의 문화 55 / 백제의 불교 55 / 백제의 문학 56 / 백제의 예능 57
4. 신라의 약사(略史)와 문화 58
신라의 약사 58 / 통일 신라의 약사 60 / 신라의 문화 63
5. 신라의 불교 65
불교의 융성 65 / 원광과 ‘세속오계’ 68 / 원효 68 / ‘화쟁’과 ‘회통’ 70 / ‘이변비중’ 71 / 철학사에서 원효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74 / 의상 75 / 이(理)철학의 시원 77 / 화엄사상 78 / 불교의 변천, 선(禪)의 유입 79 / 아미타 신앙, 미륵 신앙 80
6. 신라의 불교 이외의 사상 82
화랑의 사상 82 / 최치원, 설총 85 / 풍수지리 86
7. 신라의 문학과 예능 87
향찰: 신라어의 표기 방법 87 / 신라의 예능 88

제4장 고려
1. 약사와 문화 91
약사 91 / 문화 94
2. 불교 97
고려 시대 불교의 특징 97 / 종파 98 / 균여 99 / 의천 100 / 지눌 102 / 지눌의 철학 104
3. 불교 이외의 사상과 문학 105
고려 시대의 유교와 풍수지리 사상 105 / 시가 107

제5장 조선 시대 1: 주자학(성리학)
1. 약사(略史) 109
조선 건국과 외적의 내습 109 / 후기로부터 말기로 111
2. 주자학(성리학)의 수용과 도입 113
고려, 조선 교대기의 사상 113 /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 113
3. 사림파의 대두와 사화 116
사대부의 분열: 사림파와 훈구파 116 / 절의 문제와 사육신, 생육신 118 / 사화 119 / 자치주의와 조광조 120 / 이언적과 태극 논쟁 121 / 성리학의 이(理) 123

4. 서경덕과 그 계통 127
화담 서경덕: 선천과 후천 127 / 기(氣)철학 129 / 서경덕의 계통 130
5. 이퇴계와 그 계통 131
퇴계 이황 131 / 사단칠정 논쟁 132 / 이발, 이동, 이도 136 / 이퇴계의 계통 139
6. 이율곡과 그 계통 140
율곡 이이 140 / ‘주리파’와 ‘주기파’ 141 / 이율곡의 견해 142 / 이율곡의 계통 144
7. 당쟁과 노론 패러다임 145
당파의 분립 145 / 예론 146 / 예론에 대한 해석 147 / 노론 패러다임과 조선형 중화사상 148 / 사람과 동물의 본성을 둘러싼 논쟁 149 / 인물성동이론의 의미 152


제6장 조선 시대 2: ‘실학’, 양명학, 유교 이외의 사상
1. 이른바 ‘실학’ 155
‘실학’이란 무엇인가 155 / ‘실학’의 분류 157 / ‘실학’과 영성 159 / 지봉 이수광과 반계 유형원 160 / 성호 이익 161 / 성호학파 163 / 청담 이중환과 다산 정약용 164 / 북학파 165 / 담헌 홍대용 166 / 연암 박지원 167 / 초정 박제가 169 / 추사 김정희와 혜강 최한기 172 / 그 밖의 ‘실학’자들 174
2. 양명학 175
조선의 양명학 175 / 누가 양명학자인가 177 / 양명학과 ‘실학’ 177
3. 불교 178
억압당한 불교 178 / 서산대사(휴정)와 사명당(유정) 181 / 백파선사(긍선) 183 / 초의 183
4. 도교 및 예언사상, 샤머니즘 184
수도의 선정과 예언사상 184 / 무조(巫祖) 전설 184 / 사람이 죽는 장면: 사머니즘의 관점에서 186

5. 그리스도교 188
천주교의 수용 188 / 천주교에 대한 탄압 190 /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유입 191
6. 훈민정음과 문학 192
세종과 집현전 192 / 훈민정음의 사상 192 / 「용비어천가」 194 / 소설 194 / 가사와 시조 196 / 파격 197 / 예능과 문학 198

제7장 조선 말기 및 대한제국
1. 약사 201
19세기란 201 / 약사 202
2. 위정척사사상 204
양이사상 204 / 화서 이항로 205 / 노사 기정진 207 / 흥선대원군 208 / 면암 최익현 208
3. 동학 210
수운 최제우 210 / 최제우의 말 213 / 주문 215 / 불연기연 217 / 동학의 의미 218 / 해월 최시형 219 / 최시형의 말 220 / 한국과 북조선에서의 동학 평가 222 / 갑오동학농민전쟁, 동학에서 천도교로 223

4. 개화사상, 애국계몽사상, 동양연대론 등 224
개화사상 224 / 독립협회와 애국계몽사상 225 / 동양연대론 225 / 친일파 및 친일 단체 227
5. 종교 227
불교 227 / 그리스도교 229 / 신흥종교 230

제8장 병합 식민지 시기
1. 약사와 문화 233
조슈(長州)의 역할 233 / 약사 235 /
병합 식민지의 성격 237 / 문화 239 / 인간관 241
2. 일본에 대한 저항, 독립사상 242
독립선언서 242 / 애국계몽사상 245 / 박은식 246 / 장지연 250 / 신채호와 안창호 251 / 민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 252 / 독립운동가와 민족개조론의 중요 인물 252
3. 친일사상 253
친일이라는 행위: 이완용 253 / 중국에 대한 눈길 254
4. 새로운 사조 255
손병희와 천도교, 이돈화 255 / 문화론 257 / 문일평과 최남선 258
5. 종교 261
일본의 종교 정책 261 / 일본에 의한 조선 불교에 대한 침투와 저항 262 / 한용운 263 / 불교 266 / 그리스도교 266 / 신흥종교 267
6. 문학 267
문학 267 / 몇 사람의 문학가 269


제9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 약사 275
북조선의 기원과 국가, 체계의 성격 275 / 북조선의 핵심 사상과 역사관 278 / 1940~80년대 279 / 1990~2010년대 281
2. 정치가, 사상가들 283
김일성 283 / 박헌영 284 / 허가이, 김두봉, 최창익, 박창옥 285 / 김정일 286 / 김정은 287
3. 주체사상 289
불멸의 주체사상과 그 맹아 289 / ‘주체’의 등장: 1955년의 연설 290 / 자주, 자립, 자위: 1960년대 291 / 헌법과 주체사상 292 /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293 / 주체사상의 내용 ①: 자주성 297 / 주체사상의 내용 ②: 창조성 296 / 주체사상의 내용 ③: 의식성 297 / 주체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301

4. 혁명사상 302
친일파 청산 302 / 한국전쟁의 기원 303 / 천리마 운동과 청산리 방법 305 / 고난의 행군과 선군사상 305 / 김일성, 김정일주의와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306

제10장 대한민국
1. 약사 309
대한민국의 기원 309 / 1945~80년대 310 / 1990~2010년대 313
2. 정치가들 314
이승만 314 / 김구 315 / 박정희 316 / 전두환, 노태우 317 / 김영삼 318 / 김대중 319 / 노무현 320 / 이명박 321 / 박근혜 322
3. 시대사상의 조류 322
민주, 민족, 민중 322 / 좌파사상 324 / 통일사상 325 / 선민사상 325 / 병합 식민지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326
4. 사상가들 330
유영모 330 / 함석헌 331 / 박종홍 332 / 김지하 324 / 이어령과 김용옥 337 / 지성인 338 / 현대의 철학과 사상 338 / 기라성 같은 사상가들 339

5. 종교 341
불교의 생명력 341 /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341 / 사회 속의 불교 343 / 그리스도교 345 / 사회 속의 그리스도교 346 / 샤머니즘 350
6. 문학 351
문학의 어려움 351 / 시 352 / 소설 353

후기 355
옮긴이의 말 359
참고문헌 365
찾아보기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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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22년 3월 25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오구라 기조 (小倉紀藏) (지은이)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 독일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이후 광고회사에 근무하다가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로 유학을 와서 8년 동안 한국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토 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제이앤씨, 2015), 『새로 읽는 논어』(교유서가, 2016),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사회』(모시는사람들, 2017)를 비롯해 『입문 주자학과 양명학』(2012), 『주자학화하는 일본 근대』(2012),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2020), 『한국의 행동원리』(2021)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조선사상사>,<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새로 읽는 논어> … 총 4종 (모두보기)

이신철 (옮긴이)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진리를 찾아서』(공저, 철학과현실사, 2000), 『논리학』(공저, 시대정신, 2010), 『철학의 시대』(공저, 해냄, 2013)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학문론 또는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피히테, 철학과현실사, 2005), 『객관적 관념론과 근거짓기』(비토리오 회슬레, 에코리브르, 2005), 『신화철학』(전2권, 공역, 프리드리히 셸링, 나남출판, 2009), 『그리스 철학과 신』(로이 케니스 해크, 도서출판 b, 2011), 『헤겔』(프레더릭 바이저, 도서출판 b, 2012), 『유대 국가』(테오도르 헤르츨, 도서출판 b, 2012), 『헤겔의 서문들』(헤겔, 도서출판 b, 2013),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하세가와 히로시, 도서출판 b, 2013), 『트랜스크리틱』(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 b, 2013),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비토리오 회슬레, 도서출판 b, 2014), 『헤겔과 그의 시대』(곤자 다케시, 도서출판 b, 2014), 『독일철학사: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비토리오 회슬레, 에코리브르, 2015), 『헤겔 이후: 독일 철학 1840~1900』(프레더릭 바이저, 도서출판 b, 2016), 『이성의 운명: 칸트에서 피히테까지의 독일 철학』(프레더릭 바이저, 도서출판 b, 2018), 『헤겔의 이성, 국가, 역사』(곤자 다케시, 도서출판 b, 2019), 『헤겔 『논리의 학』 입문』(한스 라데마커, 도서출판 b, 2019),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울리히 브란트 외, 에코리브르, 2020), 『미래 가능성: 무능력의 시대와 가능성의 지평』(프랑코 ‘비코’ 베라르디, 에코리브르, 2021), 『탈원전의 철학』(사토 요시유키 외, 도서출판 b, 2021) 등을 비롯해 방대한 분량의 ‘현대철학사전 시리즈’(전5권)로 『칸트사전』, 『헤겔사전』, 『맑스사전』, 『니체사전』, 『현상학사전』을 ‘도서출판 b’에서 펴냈다. 접기


최근작 : <철학의 시대>,<논리학>,<역사 속의 인간> … 총 3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아직까지 국내 학자에 의해 뚜렷한 성과가 없는 분야에서 외국 학자에 의해 쓰인 우리 사상사
이 책은 한국에 유학해 한국철학을 전공한 일본 학자에 쓰인 ‘조선(한국)사상사’이다. 기본 축은 사상사이지만 단군신화 시기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의 정치사와 문학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전체적인 사상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더욱이 비록 교양서를 표방했기에 입문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이렇게 통사의 형식으로 쓰인 우리 사상사가 없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번역자의 말대로 “‘조선(한국)사상사’가 우리의 사상사인 한에서 일종의 충격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오구라 기조는 이미 국내에 여러 책이 번역되어 잘 알려져 있기도 한데, 특히나 그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모시는사람들, 2017)에서 한국이 어째서 ‘도덕 지향적’인 유교적 사회인지를 한국인의 ‘이’(理) 지향성 ― 물론 그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이’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은 아닌바, ‘이’와 ‘기’의 상호 역동성 속에서 찾고 있기는 하다 ― 에 찾기도 한 바 있다.

조선(한국)사상사의 가장 큰 특성은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 그 저류에는 영성(靈性)!
저자는 조선사상사의 특질을 무엇보다도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되풀이되어 전개되었다는 데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투쟁은 정치투쟁과 직결되어 전개되었는데, 이러한 양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선 시대의 성리학과 해방 후의 한국과 북한에서 전개된 이데올로기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투쟁은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靈性)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는데,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선사상사’의 움직임을 순수 지향성과 다른 다양한 사상들과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사상의 향연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요소들을 꿰뚫고 있는 것은 ‘영성’인데, 그가 보기에 이러한 영성은 “지성으로도 이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신의 현상” ― 그가 직접적으로 이 ‘영성’의 예로 드는 것은 원효와 화랑으로부터 이퇴계를 거쳐 최제우에 이르는 경주나 영남 지방에서의 “하늘과 사람은 같다”라는 영적 세계관인데, 이는 “조선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을 이룬다고 한다 ― 이라고 말함으로써 다분히 비논리적, 비합리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치명적 한계, 안병직과 이영훈 식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동조

이와 같이 나름 조선사상사를 핵심적인 키워드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지형도를 그려봄으로써 그 특질을 규명한 것은 비록 입문서 내지 교양서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논란의 여지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 특히 그는 일제 식민지 시기 ― 그는 이를 ‘병합 식민지’ 시기라고 칭한다 ― 에 대한 평가에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논란의 여지가 많다
  • 그는 교묘한 구분법 ― 이 책 237~39쪽 참조 ― 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탈과 폭력적 지배만을 했다고 하는 것처럼 역사를 그리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모독임과 동시에, 역사를 살아간 조선인에 대한 멸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 그러면서 그는 수탈과 폭력적 지배만을 했다면, 왜 이 시기에 친일적인 조선인이 그 정도로 많이 출현했는지가 설명될 수 없다고까지 한다. 
  •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인식은 “전후에 만들어진 허상”이라고까지 한다. 
  • 국내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하고 있는 안병직이나 이영훈의 논리 ― 이들의 논리와 한계를 326~28쪽에 걸쳐 “병합 식민지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 와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 물론 그는 이 시기의 독립운동과 그 사상적 조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 입장에서 이 시기를 조망함으로써 근본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 한국 현대 철학의 약동성을 일본 철학자들과 비교하다

끝으로 한국 현대 철학자들의 특장점을 일본 철학자들과 비교해 놓은 부분은, 비록 상세한 서술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특하게 보이는 지점이다. 즉 “김상봉은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공부했고, 이기상은 독일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공부했다. 일본의 철학 연구자는 칸트나 하이데거를 공부하더라도 현실 문제와 격렬하게 대결하는 실천자가 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 철학의 실천적 생명력이 강인함을 실감한다. 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 사후의 일본 철학은 한국의 현대 철학에 비하면 현실과 대결하는 힘이 너무 약하다.”이런 점에서 그가 조선사상사의 한 특질로 약동성과 정태성의 두 측면을 공히 봐야함을 강조한 것은 두 나라의 현대 철학을 비교해본 관점에서도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한국사상사 꿰뚫고 흐르는 ‘영성의 힘’ [오구라, 조선사상사]고명섭 2022

한국사상사 꿰뚫고 흐르는 ‘영성의 힘’:
한국사상사 꿰뚫고 흐르는 ‘영성의 힘’

고명섭 한겨레 기자 
2022.03.25. 
 제공: 한겨레

조선사상사: 단군신화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
오구라 기조 지음, 이신철 옮김 l 길 l 2만8000원

일본의 한국철학 연구자 오구라 기조(63) 교토대 교수가 쓴 <조선사상사
>는 외부인의 눈에 비친 한국사상사의 풍경을 조감할 수 있는 책이다. 도쿄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지은이는 1988년부터 서울대 대학원에서 8년 동안 한국철학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 > 는 한국사상사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조선’은 고조선부터 현대까지 한반도 전체 문명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전근대 사상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사상, 해방 뒤 남북의 사상,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 등장한다. 더구나 이 책은 사상사의 중심인 종교·철학 사상 말고도 신화·정치·문화 전반에 담긴 사상까지 탐사하는데, 이렇게 조선사상사 전체를 아우르는 책은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도 없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자부한다. 이 책은 한국사상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쓴 일종의 입문서다. 그래서 지은이는 학계의 정설을 중심으로 하여 객관적 사실을 서술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조선사상사를 보는 지은이의 독특한 관점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 관점이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볼 만한 것으로 만든다.

지은이의 관점이 가장 분명히 나타난 곳이 제1장 ‘조선사상사 총론’이다. 
  • 여기서 지은이는 조선사상사 전체를 아우르는 열쇳말로 ‘순수성’을 든다. 순수성이야말로 일본사상사나 중국사상사와 다른 조선사상사만의 특징을 이룬다. 
  • 이를테면 일본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상을 브리콜라주(짜깁기) 방식으로 포섭하는 양상이 강한 데 반해, 조선의 경우에는 외부에서 온 사상이 기존 체제를 전면적으로 변혁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려 말기 주자학의 도래나 20세기 서양 사상의 유입을 보면 그런 성격이 분명히 감지된다. 
  • 지은이는 이런 순수성 추구가 지정학적 안전보장 욕구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한다. 사상의 순수성을 지킴으로써 중국과 외세에 대항한다는 무의식적 사고가 사상사 바탕에 깔려 있다는 진단이다.

조선사상사의 두 번째 특징은 혼종성(하이브리드성)이다. 
  • 혼종성은 순수성이라는 기본 축에 맞서는 일종의 대항 축이다. 사상의 순수성을 지킨다고 해서 다른 사상이 모두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주자학이 지배적 사상일 때에도 서학이나 양명학이 대항 축으로 존재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이전에는 유·불·도 3교가 공존했다. ‘순수성 속의 불순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조선사상의 특징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 그런데 논의를 사상의 순수성으로 좁히면, 한국사상사에서 이 사상의 순수성은 일정한 사이클을 그린다. 다시 말해, 사상이 순수성 획득을 지향하여 격렬하게 운동할 때에는 사회 전체가 생명력으로 약동하고, 이어 그 사상이 지배적 지위를 획득하면 서서히 정보가 통제되고 사상의 부정적 성격이 강해진다. 마지막에 공동체 전체의 생명력이 소진하면 어느 순간 새로운 사상이 일어나 혁명적 변화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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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대목에서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이 ‘영성’이다. 
  • 영성이야말로 순수성의 사이클을 관류하는 조선사상사의 진정한 특징이다. 
  • “순수성을 획득하고자 운동하고 있을 때도,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도, 순수성이 퇴락해가는 과정에서도 조선의 사상은 두드러지게 영성을 띤다.” 

이 영성은 “지성으로도 이성으로도 감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신 현상”이기에 영성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 영성은 새로운 사상과 함께 거대하게 약동하며 정치사회적 변혁의 힘을 분출한다. 이때 영성은 기존의 모든 사상을 아우르는 어떤 회통의 정신을 가리킨다. 

‘영성의 눈’으로 서로 대립하는 사상의 차이를 넘어 전체를 꿰뚫어보고 통합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영성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 경우로 신라 원효의 불교 사상과 조선 퇴계의 성리학 사상 그리고 수운 최제우의 동학 사상을 거론한다.

원효의 사상은 지은이가 말하는 영성의 표본과도 같다. 원효는 <...>

에서 불교의 여러 종파의 다툼을 넘어서는 ‘화쟁’과 ‘회통’의 논리를 설파했다. 이 화쟁과 회통은 ‘유식’과 ‘중론’과 ‘화엄’을 포함한 모든 불교 학설을 아우르고 종합한다. “아마도 이런 종합성과 포월성이야말로 해동 불교의 최고의 영성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런 포월성은 퇴계의 성리학에서도 발견된다. 퇴계의 성리학은 ‘이기호발설’로 압축되는데, 핵심은 만물을 주재하는 원리인 ‘이’(理)가 ‘기’(氣)처럼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데 있다. 지은이는 퇴계가 ‘이’의 능동성을 강조함으로써 영성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이’가 ‘나’라는 주체를 덮침으로써 일종의 영성적인 힘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셈이다
바로 이 영성적인 ‘이’를 통해 퇴계는 ‘표면상 주자학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도가와 불교와 양명학을 포괄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나아가 지은이는 원효와 퇴계의 영성이 수운 최제우의 동학 사상에서 종합됐다고 본다. 수운의 아버지 최옥은 퇴계 학맥을 이은 경주의 선비였고 그 아버지를 통해 퇴계 사상이 수운으로 흘러들었다. 말하자면 수운은 ‘퇴계 좌파’였다. 또 원효의 회통 정신은 유교·불교·도교에 서학과 샤머니즘까지 아우르는 동학의 포용 정신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동학은 계급 질서를 깨부수고 제국주의의 침탈에 항거한다는 변혁의 방향성을 19세기 다른 어떤 동아시아 사상보다 선명하게 제시했다. 동학의 영성적 힘은 20세기 한국사상사의 저류가 됐다. 지은이는 동학의 영성이 분출한 사건으로 일제의 침략주의·강권주의에 맞서 조선 민중의 뜻을 표출한 1919년의 ‘3·1독립선언서’를 든다. “이 선언문은 감성과 지성과 이성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포월하는 영성으로 쓰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오늘날의 일본인도 이 ‘독립선언서’의 숭고한 정신을 영성 차원에서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이 영성이 21세기 오늘의 한국사상에까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2022/02/03

[신간] 조성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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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소나무 출판사

2022.01.26.

한국철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책은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일반적으로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전부 중국철학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의 불교와 조선시대의 유교는 전부 중국에서 수용된 것이다. 퇴계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표현도 전부 중국의 주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치부해버리고 말면 ‘사상사’를 서술할 수 없게 된다. … 똑같은 개념을 써도 함의가 같을 수는 없다. 유학의 천(天)과 동학의 천(天)이 같을 수 없고, 주자의 리(理)와 퇴계의 리(理)가 동일할 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한국사상사’ 서술의 관건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사상사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기도 하다.” (13쪽)

“우리는 주자나 양명이 아닌 퇴계나 다산이 딛고 서 있는 사상적 풍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사상사’의 본령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 힌트는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난 동학이 제공한다. 동학은 주자학이라는 중국적 사유가 그 시효를 다한 상태에서 드러난 한국적 사유의 표출이다. … 그래서 우리가 “한국사상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먼저 ‘유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사상은 “중국의 영향이 전부”이고 “유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상 한국사상의 특징은 포착하기 어렵고, 따라서 한국사상사의 서술은 점점 어려워진다.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조선유학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조선유학의 특징도 잡아내기 어렵고 동학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놓치게 된다.” (215~216쪽)

우리에게 ‘하늘’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접근하는 하나의 단서로서 필자가 주목한 사상은 ‘동학’이다. 동학은 조선성리학이 그 효력을 다해갈 무렵인 조선말기에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주체적인 사상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자신의 사상을 유도(儒道)나 불도(佛道)와 대비하여 ‘천도(天道)’라 명명하고,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한국)의 세계관(道)은 생명과 평등 그리고 존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우주적 생명력인 ‘하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동등하게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이 자신의 사상체계를 ‘하늘’을 중심으로 전개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탈아입구로 대변되는 서구화와 더불어 사상언어로서의 하늘 관념은 사어(死語)가 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철학 역시 선진시대 이래로 ‘천(天)’에서 ‘도(道)’로(제자백가), ‘도(道)’에서 다시 ‘리(理)’로(신유학), 그리고 ‘리(理)’에서 다시 ‘기(氣)’로(청대실학), 그 진행이 점점 ‘하늘’의 초월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렇게 보면 동학의 탄생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는 하나의 ‘사상사적 역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에 대해 과연 어떠한 사상사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의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는 처음에 제기했던 중국철학과는 다른 한국적인 철학이 과연 무엇인지, 그런 것이 있기나 하는지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이 두 가지 물음, 즉 동학의 탄생에 대한 사상사적 설명, 그리고 한국철학의 특징 찾기를 위해 필자는 ‘하늘철학’을 제시한다.


“고대 한반도인들은 황제나 임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였다. 그것도 개별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개인적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거행하였다. 이 책에서는 “하늘을 그리다”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에서 ‘그리다’는 ‘그리워하다[思]’와 ‘그리다[描]’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였다.” (12쪽)


차례



서문 _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I. 도학에서 천학으로
1.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2. 동방의 제천의례 논쟁
3. ‘천학’이라는 범주
4. 이 책의 구성

II. 조선의 하늘철학
1. 한국인의 하늘사랑
하늘축제
하늘경험
‘하’의 탄생
역사 속의 하느님
2. 조선정치와 하늘철학
경건함으로 다스려라
하늘님을 대하듯 하라
하늘을 참되게 대하라
3. 퇴계의 하늘철학
성인에 대한 믿음
하늘에 대한 효도
리(理)와의 감응
다카하시 스스무 학설 비판
4. 퇴계 이후의 하늘철학
윤휴의 사천유학(事天儒學)
다산의 상제유학(上帝儒學)
실심(實心)과 천학
5. 동학에서 ‘천교’로의 전환
천교(天敎)의 등장
천도(天道)의 탄생
천도와 천교
천인(天人)과 시민(侍民)
하늘의 개별화와 일상화

III. 한국사상의 풍토와 한국인의 영성

참고문헌
주석


저자 소개


조성환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은 ‘근대성’이다. 그것도 서구적 근대성이 아닌 비서구적 근대성이다. 동학과 개벽은 한국적 근대성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고, 지구인문학은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양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지구지역학’을 사용하고 있다. 동학이라는 한국학은 좁게는 지역학, 넓게는 지구학이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장차 개화학과 개벽학이 어우러진 한국 근대사상사를 재구성하고, 토착적 근대와 지구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총서를 기획할 계획이다.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저자 조성환

출판 소나무

발매 2022.01.25.

2022/01/30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저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YES24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조성환
| 소나무 | 2022년 01월 2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60 판매지수란? 베스트 한국철학 15위

정가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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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

김용옥 저

품목정보

출간일 2022년 01월 25일
카테고리 분류
국내도서 > 인문 > 한국철학 > 한국철학의 이해/한국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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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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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_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I. 도학에서 천학으로

1.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2. 동방의 제천의례 논쟁
3. ‘천학’이라는 범주
4. 이 책의 구성

II. 조선의 하늘철학

1. 한국인의 하늘사랑
하늘축제
하늘경험
‘하?’의 탄생
역사 속의 하느님
2. 조선정치와 하늘철학
경건함으로 다스려라
하늘님을 대하듯 하라
하늘을 참되게 대하라
3. 퇴계의 하늘철학
성인에 대한 믿음
하늘에 대한 효도
리(理)와의 감응
다카하시 스스무 학설 비판
4. 퇴계 이후의 하늘철학
윤휴의 사천유학(事天儒學)
다산의 상제유학(上帝儒學)
실심(實心)과 천학
5. 동학에서 ‘천교’로의 전환
천교(天敎)의 등장
천도(天道)의 탄생
천도와 천교
천인(天人)과 시민(侍民)
하늘의 개별화와 일상화

III. 한국사상의 풍토와 한국인의 영성

참고문헌
주석
접어보기

저자 소개 (1명)
저 : 조성환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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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한국철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책은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일반적으로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전부 중국철학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의 불교와 조선시대의 유교는 전부 중국에서 수용된 것이다. 퇴계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표현도 전부 중국의 주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치부해버리고 말면 ‘사상사’를 서술할 수 없게 된다. … 똑같은 개념을 써도 함의가 같을 수는 없다. 유학의 천(天)과 동학의 천(天)이 같을 수 없고, 주자의 리(理)와 퇴계의 리(理)가 동일할 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한국사상사’ 서술의 관건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사상사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기도 하다.” (13쪽)

“우리는 주자나 양명이 아닌 퇴계나 다산이 딛고 서 있는 사상적 풍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사상사’의 본령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 힌트는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난 동학이 제공한다. 동학은 주자학이라는 중국적 사유가 그 시효를 다한 상태에서 드러난 한국적 사유의 표출이다. … 그래서 우리가 “한국사상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먼저 ‘유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사상은 “중국의 영향이 전부”이고 “유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상 한국사상의 특징은 포착하기 어렵고, 따라서 한국사상사의 서술은 점점 어려워진다.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조선유학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조선유학의 특징도 잡아내기 어렵고 동학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놓치게 된다.” (215~216쪽)

우리에게 ‘하늘’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접근하는 하나의 단서로서 필자가 주목한 사상은 ‘동학’이다. 동학은 조선성리학이 그 효력을 다해갈 무렵인 조선말기에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주체적인 사상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자신의 사상을 유도(儒道)나 불도(佛道)와 대비하여 ‘천도(天道)’라 명명하고,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한국)의 세계관(道)은 생명과 평등 그리고 존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우주적 생명력인 ‘하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동등하게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이 자신의 사상체계를 ‘하늘’을 중심으로 전개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탈아입구로 대변되는 서구화와 더불어 사상언어로서의 하늘 관념은 사어(死語)가 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철학 역시 선진시대 이래로 ‘천(天)’에서 ‘도(道)’로(제자백가), ‘도(道)’에서 다시 ‘리(理)’로(신유학), 그리고 ‘리(理)’에서 다시 ‘기(氣)’로(청대실학), 그 진행이 점점 ‘하늘’의 초월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렇게 보면 동학의 탄생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는 하나의 ‘사상사적 역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에 대해 과연 어떠한 사상사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의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는 처음에 제기했던 중국철학과는 다른 한국적인 철학이 과연 무엇인지, 그런 것이 있기나 하는지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이 두 가지 물음, 즉 동학의 탄생에 대한 사상사적 설명, 그리고 한국철학의 특징 찾기를 위해 필자는 ‘하늘철학’을 제시한다.

“고대 한반도인들은 황제나 임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였다. 그것도 개별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개인적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거행하였다. 이 책에서는 “하늘을 그리다”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에서 ‘그리다’는 ‘그리워하다[思]’와 ‘그리다[描]’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였다.”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