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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7

〈오대산 노송〉 < 출판 < 금강신문 2020

〈오대산 노송〉 < 출판 < 뉴스 < 기사본문 - 금강신문

〈오대산 노송〉
기자명 이강식 기자
입력 2020.03.26


월정사 현해 스님 삶·수행 회고록
현해 스님/민족사/19,500원


1958년 평창 월정사에서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60년이 넘게 전법교화와 수행에 매진한 구순을 바라보는 노승이 있다.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과 조계종 종회의원을 역임했고, 2007년 원로의원으로 추대된 현해 스님이다.

현해 스님이 자신의 삶과 수행의 발자취를 기록한 회고록 〈오대산 노송〉을 펴냈다. 책 제목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자신이 마치 구부러진 오대산의 병든 노송(老松)과 같다.’는 스님의 말에서 따왔다.

이 책은 △기독교 집안에서 피어난 법연(法緣)의 꽃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하다 △만행과 운수 행각의 길 △동국대 종비생 1기, 희망의 꽃을 품다 △나의 스승 나의 은사 △만학도, 현해탄을 건너다 △회향, 수행자로 사는 법 △낙엽귀근(落葉歸根), 돌아갈 자리를 생각하며 등 8장으로 이뤄져 있다.


‘기독교 집안에서 피어난 법연(法緣)의 꽃’은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로 △해방 이전 어려운 생활상과 가족 △학교 진학의 어려움과 공부에 대한 열망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청년기의 삶 등이 담겨 있다.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하다’에는 희찬 스님을 만나 출가자의 삶을 살게 된 이야기, ‘만행과 운수 행각의 길’에는 절도와 강도 사건 경험담과 인근 초등학교 교장과 빚은 마찰 등이 수록됐다.

‘동국대 종비생 1기, 희망의 꽃을 품다’에는 출가 후 제1기 종비생(宗費生)으로 동국대에 입학한 뒤 학업에 정진하는 모습, ‘나의 스승 나의 은사’에는 은사 희찬 스님을 비롯해 현해 스님 자신의 삶과 수행의 길잡이가 되었던 범룡·석주·청담·벽안 스님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만학도, 현해탄을 건너다’에는 일본 유학 생활 당시의 상황과 고민,
‘회향, 수행자로 사는 법’에는 10·27법난의 아픔 등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 수행자로서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 가르침 등을 수록했다. 끝으로 ‘낙엽귀근(落葉歸根), 돌아갈 자리를 생각하며’에서는 불교계의 원로로서 한국불교의 나아갈 바를 조언하고 있다.

한국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5-문수 신앙 < 연재 - 불교신문 2004

한국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5-문수 신앙 < 연재 < 기획연재 < 기사본문 - 불교신문

한국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5-문수 신앙   
연재
입력 2004.02.13 


화엄경 근거… ‘오대산에 진신상주’ 믿어
사진설명: 문수보살의 진신이 상주한다는 오대산 상원사. 문수신앙의 성지답게 수많은 설화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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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시대 화엄종의 선사인 무착스님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위해 문수보살의 영지(靈地)인 중국 오대산 금강굴에서 용맹정진 했다. 하루는 양식이 떨어져 마을로 가서 탁발을 하고 오다가 한 노인을 만나 법거량을 했는데 노인의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라는 공안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인은 간곳없고 허공에서 게송 한 구절이 들려왔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口裏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心裏無瞋是珍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無染無垢是眞常)

무착선사는 문수보살을 직접 뵙고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더욱 정진하여 마침내 앙산(仰山) 선사의 법을 받아 깨치고 대자유인이 되었다. 어느 해 겨울, 무착스님이 동지팥죽을 쑤는데 김이 나는 죽 속에서 문수보살의 모습이 거룩하고 장엄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무착스님은 팥죽 젓던 주걱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문수보살은 “내가 바로 자네가 그리도 만나고자 했던 문수라네 문수” 라고 말했다. 무착스님은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이다. 석가나 미륵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 맛을 보여주겠다” 하니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 유명한 문수동자게와 팥죽 주걱 맞은 문수보살에 얽힌 이야기다.


문수는 지혜상징… ‘부처님의 어머니’

조선 세조 때 문수동자 치료 설화 ‘유명’



문수보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처럼 스님들의 수행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무착선사 앞에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듯 문수보살은 자장율사 앞에 남루한 차림의 거사로 화현했는데 자장은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수보살에 얽힌 사연들은 관음이나 미타 지장 등 다른 대승의 보살들과는 내용이 약간 다르다. 이들이 주로 일반 서민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반면 
문수보살은 스님들의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문수신앙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지혜란 세속에서는 명석한 두뇌를 가리키지만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루는 혜안을 말한다. 

지혜와 행원은 불교의 두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측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우측에는 행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깨달음의 핵심적 내용인 지혜를 상징하다 보니 문수보살은 주로 수행자들의 공부를 경책하는 역할을 많이 맡는다.


자장율사가 우리나라 처음 소개

사진설명: 상원사 문수동자상.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인 문수는 산스크리트어로 만주슈리(Ma─ jushri)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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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는 뜻이다. 묘길상(妙吉祥)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 역시 지혜가 뛰어난 공덕을 지닌 보살이라는 의미다.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으며, 경권(經卷)을 들고있다.


문수보살이 타고 있는 사자는 짐승중에 가장 지혜롭다고 한다. 산 전체가 문수도량인 강원도 평창 오대산 중대를 사자암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혜의 말씀’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음(法音)이나 선종 조사들의 법문을 사자후(獅子吼)라고 한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앉는 좌석을 사자좌(獅子座)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토속적인 산악 신앙과 결합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를 포함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諸佛之母=毘盧遮那)며 모든 보살의 스승으로 불린다. 이는 지혜(반야바라밀)가 부처님을 이루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선종에서 제7불(佛) 즉 석가모니의 조사라고 하는데 이는 조사선의 법통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현세에는 석가불의 좌보처로 석가모니부처님을 도와 중생을 제도하고 미래에는 보현여래(普現如來)가 되어 문수정토인 보현불국정토를 주재하는 분으로 신앙되고 있다. 

문수신앙을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경전이 〈화엄경〉이다.

〈화엄경〉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동북방의 청량산에 문수보살이 계시면서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한다.” 이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이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중국 산시성(山西省) 청량산(淸凉山, 일명 五臺山)으로 알려져 있다.

오대산은 보현보살이 상주한다는 아미산(峨眉山),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영산으로 꼽힌다.

사진설명: 문수동자상을 모신 상원사 청량선원.신라 오대신앙은 중국에서 연유했다.

이 땅에 문수신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신라의 자장율사다.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화현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 가사, 발우 등을 얻으면서부터 강원도 오대산은 진성(眞聖)이 거주하는 곳으로 믿게 됐다.

문수보살이 오대산에 머문다는 믿음은 7, 8세기에 이르면 오류성중(五類聖衆)이라 하여 오만보살신앙으로 발전된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 효명 두 태자는 오대산에서 수행하며 오대의 각 대마다 거주하는 오만보살에게 일일이 참배하였다고 한다.

동대 만월산(滿月山) 관음암에는 일만의 관음보살, 남대 기린산(麒麟山) 지장암에는 일만의 지장보살, 서대 장령산(長嶺山) 미타암에는 일만의 대세지보살, 북대 상왕산(相王山) 나한당에는 오백 나한, 중대 지로산(地爐山) 진여원에는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며 설법한다는 것이다.

문수신앙이 오대산 자체가 문수정토라는 오대산 신앙으로 발전한 것은 화엄이 밀교와 융합한 것으로 보인다.

문명대 교수는 “오대산 문수신앙은 구산선문 중 하나인 명주 굴산파의 창건주 범일 국사의 제자 낭공대사가 오대산에 머물면서 본격적으로 성행했다. 그는 당나라 유학때 오대산 대화엄사에서 징관의 새로운 화엄 밀교적 문수신앙 즉 문수정토신앙을 배웠고 이를 우리의 오대산에서 실천했다. 그 결과가 월정사를 중창하고 중대 등 오대신앙을 크게 진작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오대산 문수신앙은 조선 세조 때 다시 크게 일어난다. 문수의 감응을 받아 병이 완쾌된 세조는 중대 상원사를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현재 국보로 지정된 문수동자상을 조성하는 등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이외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어 한국에서 문수신앙이 풍미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말 오대산 문수신앙 본격화

사진설명: 북한산 문수사의 동굴법당.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문수신앙은 거의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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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문수신앙이 타력보다 자력신앙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병조 교수는 “문수신앙은 기복적 측면보다 이지적 현학적인 면이 강하다.
관음이나 미타 신앙에 비해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엔 약하다. 지금 보이는 문수신앙도 대부분 영험과 구복적이다”고 말했다. 법인스님(대흥사 수련원장)도 “문수보살의 가피력에는 관세음보살이나 미타불처럼 사지에서 구해주는 내용이 없다.

중생들의 보편적 염원이 없는 것이다. 반면 수행자의 지혜를 강조한다. 문수보살과 관련된 설화의 대부분이 스님의 수행과 관련된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문수신앙은 기복성이 강한 한국불교계가 앞으로 권장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병조 교수는 “문수신앙이 처음에 들어왔을 때 강조했던, 허망한 현실에 대한 깨우침, 이율배반적 현실에 대한 이해가 현재 한국불교계가 새롭게 조명해야할 신앙적 내용”이라고 말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문수도량으로는 오대산 외에 삼각산 문수암, 김포 문수암, 옥천 문수사, 서산 문수사, 고성 문수암, 울산 문수암, 김제 문수사, 익산 문수사, 고창 문수사, 춘천 청평사 등이 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에 부처님의 좌측에 봉안하고 대적광전에서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앉는다. 특별히 문수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문수보살상만을 모신 문수전을 따로 두기도 한다.



/ 문수는 왜 동자상인가

화엄경소에 나오는 동자형서 근거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보듯 문수보살은 보통 동자형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문명대 교수는 이에 대해 710년 중국어로 번역된 불설문수사리법보장다라니경(佛說文殊師利法寶藏陀羅尼經)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이 경에는 동북방 대진나(大振那=神州)에 있는 오정산(五頂山)에 문수사리동자(文殊師利童子)가 유행하여 거주하면서 설법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경을 기초로 한 징관의 화엄경소에서는 문수는 머리에 5불관(五佛之冠)을 썼는데 정수리에는 5방으로 상투를 나누었다고 한 말에서 상투 동자형이 나왔다고 한다.



/ 문수보살의 십대원

중생제도 위해 세운 10가지 원력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신앙의 대상으로 숭상받는 것은 다른 불보살처럼 중생을 제도하기위한 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문수보살십대원(十大願)이라고 한다.


①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고 갖가지 방편으로 불도에 들게 한다.

② 문수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죽음을 주는 중생이라도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③ 문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깨끗한 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④ 문수를 속이거나 업신여기거나 삼보(三寶)를 비방하며 교만한 자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⑤ 문수를 천대하고 방해하며 구하지 않는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⑥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⑦ 모든 복덕을 부처님의 보리도에 회향하고 중생이 모두 복을 받게 하며, 모든 수행자에게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⑧ 육도(六途)의 중생과 함께 나서 중생을 교화하며 그들이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⑨ 삼보를 비방하고 악업을 일삼는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어 위없는 도를 구하게 한다.

⑩ 자비희사(慈悲喜捨)와 허공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보리를 깨닫고 정각을 이루게 한다.



바로잡습니다
2005호 나한신앙 편에서 불영사 나한전을 북한 성불사 응진전으로 바로잡습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006호/ 2월17일자]

오대산에서 기철학을 < 명경대 < 오피니언 강원도민일보 2010

오대산에서 기철학을 < 명경대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강원도민일보



오대산에서 기철학을
기자명 이광식
입력 2010.04.12






기생 황진이는 자신을 높이는 일을 좋아했다. ‘송도삼절(松都三絶)’이 그러하다. 30 년 면벽 수도한 지족선사를 파계시켜 놓고 황진이는 “나와 박연폭포와 서화담이 송도의 삼절이다”고 기염을 토한다. 이 말은 곧 화담 서경덕이 당대에 상당한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음을 드러낸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아버지 허엽이 계곡에 물이 빠진 뒤에 찾아가 보았더니 솥에는 이끼가 가득했으나 서화담은 태연히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한다.

화담 서경덕은 ‘기철학(氣哲學)’과 관련된 세 편의 글을 쓴다. 화담의 기철학은 스승도 없이 예의 지독한 가난과 절대 고독 속에서 터득한 것이기에 매우 독창적이다. 그 때까지 성리학은 ‘기(氣)’ 곧 ‘감각적 경험 세계’와 ‘이(理)’ 즉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라는 개념으로 이 세계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설명해 왔다. 주자도 그랬고, 화담 이후 이퇴계나 이율곡도 그랬듯이 성리학의 주류는 ‘이’를 중심에 놓고 사유한다.

하지만 화담은 ‘기’를 중심에 놓는다. 세상 모든 것이 ‘기’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만물이 이루어지기 전의 혼돈의 맑고 형체가 없는 태허(太虛)를 일컬어 만물이 이룩되기 전의 선천(先天)이라 한다. 선천의 이 맑고 비고 고요한 것이 기의 근원이다. 선천이 열리는 것이 이가 발휘된 때다.” 화담은 이렇게 기의 근원을 명쾌히 밝히고, 기에서 음양 두 개의 기가 나와 만물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기철학의 선배라 할 중국의 소강절이나 장횡거 등이 중국 철학사에서 이단시되었듯 화담도 후학들로부터 진정한 선비로서 존경받았지만, 그의 학문은 정상적으로 계승되지 못했다. 기철학은 김시습에게서 발견되고 최한기에서 일시 번성하다가 조선 말기 언더그라운드 철학자에게서 시대의 변혁과 함께 다시 분출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오대산 일대를 기 논의 및 수행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계획이 추진 중이다. 
불교적 기는 물론 풍수적 기, 요가적 기 등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철학적 기 얘기도 해야 한다 생각하여 
한국적 기철학의 태두인 화담 서경덕 선생의 기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본 것이다.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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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Kwak 저술2018 — 그동안 신라 오대산문수신앙 형성 시기와 구조 둘러싸고 많은 논의 ... 흥미로운 것은 오대산에서 행하는 예참 신앙 대상  의례 내용에도 두 . 록이 차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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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연구원, 오대산 국립공원과 기록유산 활용방안 모색
송고시간2021-09-07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율곡연구원은 오대산 관련 기록유산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오대산국립공원과 업무협약을 했다고 7일 밝혔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찾은 명산으로서 
  • 율곡 이이 선생의 '유청학산기'
  • 김창흡의 '오대산기' 등의 유산기(유람기)가 전해진다.

이들 유산기는 오대산의 옛 등산로 발굴의 기초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선인들의 산수 유람 문화를 복원하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율곡연구원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강원 도내 국학진흥사업 차원에서 이들 유산기와 관련 문화유적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정리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오대산을 자연과 인문이 융합된 힐링 공간으로 오대산을 새롭게 꾸며나가는 데 힘을 합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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