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4
동양포럼(52) / 그리운 한국인 (1) - 고운 최치원 < 창사특집 < 지난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창사 26주년 특집> 동양포럼(52) / 그리운 한국인 (1) - 고운 최치원
기자명 박장미 기자
입력 2017.10.11
한국인의 인문정신을 접화군생으로 개신한 신라의 석학
김용환 충북대 교수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동양포럼 운영위원회는 그리운 한국인의 첫 번째 순서로 신라 말의 대석학 고운 최치원(857~?) 선생을 선정했다. 그의 사상과 삶을 그리고 기리는 좌담회를 지난 4월 21일 동양일보 회의실에서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김용환 충북대 교수가 참석했다. <편집자>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오늘은 그리운 한국인 시리즈의 첫 번째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세계를 다니면서 공공하는 철학대화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제기되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세계 여러 곳을 다니시는데,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한국인의 철학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가장 특징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처했어요. 늘 마음속에 허전한 느낌이 남았고, 철학적 빈곤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자신은 개인적으로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한국인의 철학의 원초적인 모습은 접화군생적 영성의 철학이고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라면 고운 최치원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해왔는데 마침 최영성 교수께서 보내 주신 ‘고운 최치원의 철학사상’(도서출판 문시헌, 2012)을 열심히 읽었고, 많은 시사를 받았습니다. 최치원은 당시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당(唐)나라에 가서 최고의 문물을 접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함몰되지 않고 자기의 사상과 철학을 더 심화 발전시켰습니다. 그것이 학문하는 자세에서 세계화의 참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라시대에도 그랬지만 우리가 21세기 오늘을 살면서 참다운 사상, 철학, 예술, 문화를 가꿔갈 때 안팎을 두루 살펴 밖에서 얻은 자극으로 안을 깊이하고, 안에서 나타나는 자의식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것을 계속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좋은 형태로 나타난 것이 최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풍류도를 다시 한 번 우리가 한국사상의 원점으로 재부각 시켜서 이 시대에 갖는 의미와 미래에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최치원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과 내일에 그 뜻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최영성 교수님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신라 말의 대석학 고운 최치원(857~?) 선생은 당대 최고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최인연·최승우(崔承祐)와 함께 ‘일대 삼최(一代三崔)’로 일컬어집니다. 당대 최고 지성인의 한 사람이었지만, 골품제에 얽매여, 중국 유학을 통해 온축한 경륜과 포부를 펴지 못한 채 시대의 불우(不遇)를 한탄하며 은거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학문할 수 있는 개방적인 풍토와 자율을 중시하는 육두품 집안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남다른 학구적 노력을 기울여 학자로서 대성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상사·정치사·문학사 등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사상적 경향을 살펴볼 때, 그는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유자(儒者)로 자처하면서도 불교 및 도가사상에 정통하였으며 그 밖의 여러 사상을 한 몸에 체득하였던 천재적인 사상가입니다. 그는 원효와 함께 한국사상사의 서장(序章)을 장식하는 거봉(巨峯)입니다. 그를 문장가로 일컫는 것은 표피만 보는 단순한 평가입니다. 그는 철학자, 더 나아가 사상가-사상 운동가였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나말 여초’라는 역사적 전환기의 정치적·사상적 변화를 대변한 시대정신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6년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국제적 감각을 갖추었던 대표적인 중국통이기도 했습니다. 근자에 와서는 한국과 중국의 친선(親善), 우의(友誼)를 다지는 차원에서 그에 대한 연구가 중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신라 하대에서 중요한 사상적 동향의 하나로 동인의식의 대두(擡頭)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지식인계층 내부의 의식세계가 투영된 이 동인의식을 크게 부각시키고 고양한 학자는 곧 최치원입니다. ‘우리의 것’을 찾으려는 ‘우리 의식’은 바로 최치원 동인의식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의 철학사상은 바로 이 동인의식이 핵심이 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동인의식’은 최치원 사상에 있어 결정(結晶)의 하나라 할 만한 것으로서, 그의 철학사상의 전체적인 구조와 맥락을 짐작하게 하는 관건이기도 합니다. 동인의식은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 민족의 정신적·사상적 밑뿌리를 캐고자 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특히 그가 말한 ‘현묘한 풍류도(風流道)’를 지닌 우수한 문화민족으로서의 강한 자부심과 긍지가 동인의식으로 표출되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귀국한 뒤 그에게 있어서는 거의 모든 면(특히 사상·종교면)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여기서 최치원 사상의 핵심과 통일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난랑비 서(鸞郞碑序)’에서 화랑의 주요 행동 강령-실천 덕목을 예로 들어 풍류의 실체를 증언했습니다.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 여덟 글자는 최치원이 해석한 풍류의 실체입니다. 앞의 것이 체(體: logos)라면 뒤의 것은 용(用: praxis)입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입니다. 최치원 선생이 풍류를 ‘현묘지도’라 한 것은 논리로 접근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신비적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인식에는 경험론, 합리론, 직관론 세 가지가 있는데, 신비주의는 직관론과 통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천도설교(天道設敎)’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현묘지도’라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학들이 고유의 사상과 종교를 범칭(汎稱)하여 ‘고신도(古神道)’라 일컬었던 이면에 이런 내력이 있습니다. ‘신도’ 이외에 적절한 명칭을 얻기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고유사상을 비롯한 우리의 민족문화를 재발견하고 이를 선양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드높였습니다. 문화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선진문화를 수용해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 또한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풍류도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전통을 보편적 가치기준과 개념을 가지고 해석 설명하여, 당시 국제무대인 당나라에게까지 선양하려 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탐색하여 우리의 것을 ‘세계의 것’으로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고유사상인 ‘풍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가치를 부각시키면서도, 풍류를 당시의 보편적 가치 기준으로 해석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려 했던 것은 단적인 예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사적 흐름과의 관련선상에서 이해하고, 또 보편적 가치기준과 개념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측면에서의 국제화·세계화에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문화의 보편적 성격에만 함몰돼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망각하거나 외면한 것이 결코 아니었음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최치원 선생은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서 “대저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없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교를 하고 유교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고 했습니다. 즉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인·인도인·신라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출신에 따라 진리와 거리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국경을 넘어선 인간의 보편성, 진리의 보편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진리를 향해 중국이나 인도로 향하는 신라인의 향학열과 진취성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위에서 ‘사람은 출신국에 따라 차이가 없다(人無異國)’는 선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의 보편성과 인간 본질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당시 독존적(獨尊的) 경향이 유난히 강했던 당나라에 대해 ‘인무이국’의 논리를 가지고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치원 선생의 ‘주체의식’과 ‘문명의식’은, 신속화·정보화·세계화의 이 시대에, 동서 문명의 보편성 추구와 세계화 지향을 시대적 과제로 하는 현대인들에게 국제화와 주체의식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기도록 합니다. 넓게 열린 마음으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가장 ‘민족적’이고 ‘원형적’으로 잘 살려서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국제화요, 세계화라고 할 때, ‘뿌리 있는 국제인’이 되기를 염원했던 최치원의 주체적인 사고와 열린 자세는 현대인들에게 어느 것이 바람직한 국제화요 세계화인지 일깨우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최치원 철학사상의 핵심인 ‘인간 주체’의 문제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화적 보편성 및 독자성의 문제는 천여 년 뒤인 오늘에서도 여전히 추구해야 할 화두로 남아 있습니다. 최치원은 그저 과거 완료형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시대를 고민하는 지성인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의 철학사상 역시 단순히 역사상의 정신적 유산으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연면히 생동한다고 하겠습니다.”
▷김용환 충북대 교수 “고운 선생을 세계화시대에 맞춰서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세계 시민성에 관심이 있는데 그런 각도에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흔히 한국이 낳은 학자 중에 세계 시민성에 버금가는 이론의 토대는 19세기 해강 최한기 선생이 조민유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생의 세계 시민과 더불어 평화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세계 시민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사상적 관점에서 보면 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동인의식은 독특성, 개별성, 독자성, 동문의식은 보편성, 세계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둘이 아우러지는 의식구조를 최치원 선생이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동인의식이라고 할 때 ‘동’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경주 최씨의 시조인데 그가 말씀하신 동인의식이 25대손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학으로 이어진단 말이죠. 동인의식은 주체의식이면서 밝은 광명을 지양하는 의식이고 동시에 그의 영향력은 서학까지 포함하는, 동학적 가치관에도 연결된다고 볼 때 동인 의식에 관해 좀 더 논의해 보는 게 어떨까요. 두 번째는 ‘난랑비 서’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난랑’이라는 것은 장자에 나오는 봉황새처럼 한 화랑이 꿈을 펼치면 천하를 포용하고 날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대단한 기회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난랑에 담겨 있는 의도가 과연 신라의 화랑에 국한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삼신에 대한 제사를 지냈던 우리의 원초적 뿌리가 삼랑과 연결된 게 아닐까요. 유불선 또는 도교가 이 땅에 외래종교로 들어왔지만 그 토대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것입니다. 그럼 그 토대의 심연을 우리가 어디까지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풍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 중 제 마음에 드는 풀이는 ‘풍’을 풍월에 비유한 것입니다. 풍월은 결국 배달입니다. 배달민족이 걸어갈 길. 한민족이 걸어갈 배달의 도로서 풍류도를 얘기했을 때 유불선 그리고 조망이라고 하는 포괄적 토월의 관점에서 환국의 환인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깊이 있게 보면 어떤 이야기가 깊이 있게 전개될 것인가 궁금합니다. 또한 선생께서 독특한 자극을 주셨습니다. 한국인의 윤리를 설명할 때 늘 세 가지 포인트를 둡니다. 하나는 합리주의, 정감주의, 영명성입니다. 합리성은 꼭 필요합니다. 의사소통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대개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정감성을 살려낼 지가 고민입니다. 이것은 감성의 상통인데 여기에 대한 독특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을 고운 선생이 한 포함삼교에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영명성은 감성과 이성 중심의 교육에서 한 차원 높은 것이고 다루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영명성을 다루는 교과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21세기 미래에서 이것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포함삼교에서 어떠한 힌트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세 번째는 최치원 선생은 인간존엄 사상에 놀랍게 눈을 뜨신 분입니다. 사람은 출신국에 따라 차이가 없다고 하셨지요. 환국을 강조하는 것과 인존을 강조하는 것이 진감성사비문에 고운 선생이 강조한 내용과 맥을 같이 하는데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궁금합니다. 이 둘의 연결이 잘된다면 놀라운 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선생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최 교수 “김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하나가 그대로 모두 논문거리입니다. 미리 좀 말씀드리면 낙랑비 서문은 현재 전하는 것이 76자밖에 안 되거든요. 좀 더 많이 남았다면 좋았겠지만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있죠. 최치원 선생은 동녘-동(東)자를 자주 쓰면서 이 글자만으로 한 편의 철학적인 글을 씁니다. 동은 역시 광명이고, 동은 생명의 시작이다. 방위로 따지면 어질-인 자이고, 모든 변화의 꼭지점이 바로 동이다. 거기서 동은 변화를 나타내 ‘접화군생’의 ‘화’자가 바로 이어지거든요. 최치원 선생은 그냥 생화라 쓰지 않고 나아서 변화하고 변화해서 새로운 생이 되는 생화의 논리를 펴는데 거기에 주목하지 않으면 화자가 안 보입니다. 홍익인간까지 다 하나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을 보면 최치원이 가진 동의 개념과 확연히 다릅니다. 최치원 선생의 동자에 담긴 철학을 3분의 1만 받아 들였어도 동학의 굉장히 큰 종교적 체계가 정립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자기 조상인 최치원은 큰 틀에서 제시했는데 아주 미미한 부분만 받아들인 것입니다. 최제우 선생이 자기 호까지도 ‘할아버지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라면 나는 물 위에 비친 수운 아니냐’ 하고 지었다는데, 최치원의 사상 체계에 비하면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난랑비 서를 말씀하신 것에 동감합니다. 화랑은 576년에 제도화됐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된 것이죠. 신라에 와서 국가적으로 제도화된 것뿐입니다. 신라의 교육기관이 왜 이렇게 늦게 세워졌느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는 것입니다. 신라는 이미 대학이 성립되기 이전에 화랑도라는 인재 선발제도가 있어 굳이 국립대를 만들 필요성을 못 느낀 것입니다. 그 문제는 앞으로 학계서 검증될 문제입니다. 난랑비 서를 쓸 당시는 최치원 선생이 당대 최고 문장가니 영문왕의 능에 세워 놓는 비문이라면 보다 잘 써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많이 퍼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분위기들을 반영해서 거기에 담은 것이죠. 단순하게 난랑만 애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삼랑은 삼신이고. 중국이 음과 양으로 나눠보려 한다면 한국은 삼원사상으로 얘기할 수 있고, 우리는 특히 삼원을 중시했고. 환국·천국·인국, 인간 중심, 군주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뭐든 많이 갖춰야 할 것이라고 하니 인간 중심주의의 극치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풍류에 대해서 주로 풍월도라고 하는 것이 그냥 붙은 것이 아닙니다. 풍월이라고 해서 좀 더 개념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풍류에 대해서는 바람-풍(風)자. 바람과 물을 갖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고 들으면 그럴 듯하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제가 최치원 선생 풍류를 연구하다 보니 개념부터 봐야 되겠더라고요. 최치원 선생의 문장 특징이 다 근거를 들이댑니다. 이미 중국에서 풍류라는 말을 썼고, 하나의 사상 체계로서의 풍류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가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다 보니 한 명이 떨어져 나와 유교를 만들고 해서 도교를 만들고 해서 나눠지게 됐다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저는 틀림없이 거기서 따다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개념으로 바람과 물, 그 중에서 정감성 부분만 빼서 풍류라고 한 것은 한 측면으로 고착화시키는 폐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술 먹고 시 읽고 노래 잘하는 것만 남아 있어 아쉬운 점이 있는데 풍월도라는 명칭도 적지 않게 작동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해석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고 풍류란 말은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원래 있었던 말인데 끌어다 최치원 선생이 명명한 말에 가깝습니다. 최치원 선생의 사상체계는 천부경에서 얘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흡사한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부경에 대해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그런 사상체계가 내려왔고 문자화된 것이 19세기지 그런 사상이 없었다고 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리고 합리성, 정감성, 영명성에 관해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한 가지만 질문 드리겠습니다. 고운 선생의 ‘동인의식’이란 혹시 서융(西戎)과 대칭된 것, 중국에서 옛날에 멸시했던 동이(東夷)는 현재 중국 동쪽의 고로로 발달한 동이(東夷)문화 아니었습니까? 그 당시 그들은 동이 서융이라고 했잖아요? 공자가 그리워한 주(周)나라는 서융에서 나온 나라이고, 요순(堯舜)은 동이라는 거 아닙니까? 맹자에서조차 순임금은 동이라고 하는데, 고운 선생의 이 동서의 동인, 서인은 동이와 서융과 연관해서 쓴 것이 아닐까요?”
▷최 교수 “그런 게 나옵니다. 최치원 선생은 사람인(人)자를 많이 쓰는데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하나의 방향입니다. 인방(人方)이라는 방위를 얘기하는 것인데 인자는 어질-인(仁)자와 같은 것이죠. 발음도 같고. 인방이라는 것은 동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산둥반도부터 한반도까지 포함한 개념이 인방이 되고 나중에 동이(東夷)가 됩니다. 최치원 선생은 이미 동이라는 시대에 살아서인지 인방이라고 했어요. 그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유 위원장 “당나라에 유학하신 분이고 그쪽의 사실(史實)에 시대적으로 가까운 편이었기 때문에, 결국 동인이라는 말씀 속에는 적잖이 한민족의 테두리인 동이족과의 관계를 대칭적으로 쓰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최 교수 “최치원 선생이 뭐라고 하셨냐면 그 이면에는 너희들이 중원이고 동방이라고 무시하는데 쉽게 말하면 잘못된 생각이다. 선진문명은 동에서 나왔다. 순임금도 동이라고 나온 것인데 어떻게 중화문명을 얘기하느냐. 단순히 동쪽에 있다고 동이라면 말이 되느냐. 반박하는 데서 동자 개념이 나온 것입니다.”
▷김 교수 “제가 한 말씀 덧붙이겠습니다. 갑골문을 연구했던 분 중 유승국 선생이 광개토대왕 비문 원류를 찾다가 갑골문의 이(夷)-자는 오랑캐-이가 아니라 사람인이라는 것을 밝혔어요. 왜 그러면 동이는 동인인데 왜 오랑캐로 풀이하고 해석했는가? 아마도 중국이 한국적인 변방에 대해 갖던 가치 평가적 개념이 들어가 오랑캐라고 폄하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 주간 “여러분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새삼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첫째로 풍류(風流)에 관해서입니다. 최 교수께서는 최치원이 우리의 고유사상을 풍류라고 명명했지만, ‘風流’라는 말은 중국의 고서에 이미 나와 있고, 그것을 차용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헌학적으로 상고하면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는 약간 다릅니다. 그것은 저 자신이 한중일을 왕래하면서 한중일의 학자·전문가·학생·정치가·사업가·주부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보고 거기서 걸러진 것입니다. 특히 바람과 관계되는 철학대화를 나누었던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여러 해전의 일입니다만, 아마도 북경에 있는 인민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제는 공공하는 철학을 중국철학-특히 공맹유학-과 비교하는 철학대화였습니다. 한 대학원 학생-스스로 중철 전문의 박사과정 후기생이라고 말했습니다만-의 예리한 질문에서 진솔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자께서 아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데-그것이 공맹유학의 핵심인데-공공하는 철학을 중국에서 펼치려고 하시는 김 선생님은 물과 산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나와서, 저는 물과 산을 똑같이 좋아하지만, 바람을 더 좋아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지자-도 아니고, 어진 사람-인자-도 아닐 텐데 어떤 사람입니까? 라는 반문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찾는 사람-탐자(探者)-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학원생은 다시 묻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관적(靜觀的)이라는 게 공자의 말씀인데, 김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찾는 사람은 유희(遊戱)적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저의 의도는 중국인의 사상―그것이 공자의 것이라고 해도―과는 다른 한국인의 사상의 한 모습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토대학에서 있었던 공공하는 철학대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소위 ‘일본적 영성’에 과한 대화였는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은 대지에 뿌리를 내려야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과 비교해서 한국적 영성이라는 게 있느냐? 있다면 어떤 영성이냐고 해서 구태여 말을 해야 한다면 대지에 뿌리를 내려야 제 역할을 하는 대지적 영성이라기보다는 아니라 천공적 영성-하늘 높이 비상하는 데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라고 대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이렇습니다. ‘바람’이란 공기-기-숨(호흡)-혼과 영-생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것-그것이 다름 아닌 ‘목숨’이요 ‘이노찌(일본말로 생명인데, 호흡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중국어의 ‘싱밍(生命)’도 현대 중국인이 자각하고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저 자신의 개인적인 중국 체험에 의하면, ‘싱(生)’은 겉으로 나타나는 가시적인 생명현상이고, ‘밍(命)’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작용하는 천지생물지덕(天地生物之德=천지만물을 낳고 기르는 큰 힘)을 낳고 살리는 대덕(큰 힘)=우주적 근원적 생명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물이 가지는 힘이라는 것이-물론 일부이기는 합니다만-중국인 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노자의 상선(上善如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를 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한중일의 공공하는 철학대화의 두 토막 이야기를 말씀드리는가 하면, 여기서 중국의 풍수적 영성과 일본의 풍토적 영성과의 대비에서 한국인의 풍류적 영성을 상정(想定)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문제관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영성의 문제를 종교적 신학적 맥락에서 벗어나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탐구해보자는 뜻에서입니다. 둘째는 ‘포함삼교’에 관해서입니다. 물론 최치원이 살았던 시대에서는 유교·불교·도교라는 세 가지 외래종교-사상-과의 연관 속에서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시대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함삼교’라는 최치원의 네 글자가 갖는 의미는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즉응하면서도 그것들을 넘어서는 보다 보편적인 뜻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원대립적 상황을 합일(合一)적 사고로 해결하려는 중국사상이나, 이원대립 이전의 원초적 비대립-무(無)-로 환원시키려는 일본사상과는 달리 이원대립의 대립자 사이에서 함께·더불어·서로 끌어안고 넘어서려는(間越·包越·共越) 한사상의 삼차원 상관 연동적 매월(媒越) 또는 삼차원 횡단(橫斷)매개(媒介)적 개신(開新)을 차이화(差異化)시키려는 것입니다. 거대(巨大)한 중국대륙 국가와 강포(强暴)한 일본 섬나라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흡수·동화·통합되지 않으면서 나름대로의 개성-고유성·자립성·독자성-을 유지·발전·개방시키기 위해서는 ‘사이에서 함께·더불어·서로서로 보익보완하면서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열어갈-개신(開新)이 지상과제-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고요. 그리고 세 번째는 접화군생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글자의 뜻대로 ‘만나면 바뀌고 바뀌면 온갖 것이 다 살아난다’는 대단히 귀중한 알맹이가 담긴 사상입니다. 몸과 맘과 넋이 잘 어우러지는 만남을 통해서 타자와 자기가 진정으로 생명적 변화=생화를 겪게 되면 거기서 세상의 모든 일들과 것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개신개벽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경험·증험·효험의 과정을 통해서 체득한 바는 한국인의 영성은 접화군생적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적 영성이 일본 땅에서 모든 외래적인 것을 일본화시키는 습합(習合)적 영성과도 다르고, 모든 것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림으로써 어떤 차이나 이질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하면서도 그것은 한없이 높고 관대한 중화문명문화의 감화력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문덕감화(文德感化)적 영성과도 판이한 특징이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 자신의 체험·경험·증험·효험의 축적에서 나온 문제 제기적 가설에 불과합니다.”
▷최 교수 “최치원 선생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밝히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중심으로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사상의 특성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삼원화인데 이것이 양극화로 비춰지는 폐단을 구제해야 합니다. 이것을 식자들이 어떻게 풀어야할 지 책무가 막중하고 무겁습니다.”
▷김 교수 “고운 최치원 선생은 경주 최씨의 시조로서 879년 당나라의 황소(黃巢)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작성해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혼란기에 ‘시무책 10조’를 진성여왕에게 상소하고 수용되지 않자, 유랑하다가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치었습니다. 그는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삼교를 포함하며 만물을 응접하고 뭇 생명들과 화합하는 이치를 담은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한’의 풍류도가 ‘셋’의 삼교사상을 포함하기에, 풍류도는 폭이 넓고 깊어 현묘한 사상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는 자생적이며 원초적이고 본래적 한국의 고유한 정신세계가 고대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밝히고자 노력했습니다. 풍류도는 ‘고신도(古神道)’로서 한국의 자연종교이자 고대신교(古代神敎)입니다. ‘난랑비서’에서 선사(仙史)와 풍류도를 상관연동으로 결합시켜 신선도의 의미를 복원하려 했습니다. 풍류도는 살아있는 개체생명이 대자연의 우주생명과 호흡을 함께하며 변화하는 이치를 살려낸 생명작용의 도를 말합니다. 나라의 풍류도는 자생적 한국선도이며, 삼교융화의 포함삼교(包含三敎)로서 종합성과 통일성을 나타내기에, ‘한’의 멋과 맛의 모델로서 한국인의 정신사를 관통하는 ‘생생(生生)’의 생성작용으로 표상했습니다. 풍류도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의미를 통해 기원에 있어 단군의 홍익·이화라는 살림살이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전통사상입니다. ‘접화군생’은 생명생성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현묘지도입니다. 풍류정신이 드러나는 구체적 양상으로 충효, 무위자연과 선악교화로서 공공실천을 지향합니다. 한민족의 인식으로 신인으로서의 선(仙)이라는 기조에 지상의 인간세계를 낙토(樂土) 또는 승지(勝地)로 연동하여 동인의 의식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화랑의 풍류는 신라 이전 고조선부터 전해지던 신선전통문화를 계승했습니다. 풍류에는 광명숭배의 신앙이 배어있고, 천신과 조상신을 섬기던 토착신앙 전통을 이어주고 매개합니다. 또한 우주의 진기를 살펴서 천리에 통달하는 신선법술이 이루어지고, 나라를 지키고 공을 세우는 무도의 강건함이 함께 살아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외래문화를 수용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재세이화는 치화의 도리, 조화의 도리, 그리고 교화의 도리를 함께 포괄합니다. 밖에서 돌아와서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며,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가르침은 유교의 치화도리입니다. 무위의 일에 처하면서 말하지 않는 가운데 그 가르침을 행하고 순리에 따라 천지만물과 어울리는 가르침은 도가의 조화도리입니다. 그리고 악을 짓지 않고 선을 받들어 봉행하는 것은 중생을 건지려는 불교의 교화도리입니다. 고운 선생은 원리보다 실천행위의 차원에서 유·불·도의 도리의 삼교회통의 이치를 밝힘으로 ‘접화군생’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유·불·도에서 충효·무위·선행의 실천덕목을 서로 매개함으로 풍류도가 추구하는 접화군생의 공공생명 작용이 치화·조화·교화 도리의 삼원적 공공체계임을 입증하였습니다. 이렇게 뭇 생명을 치화하고 조화하며 교화하려면 행위주체의 공공성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화랑은 명산대천에서 심신을 단련하게 되고 학술과 기예를 함께 연마하였습니다. 유가의 치화도리를 함양하면서 수신으로 군자가 되고, 도가의 조화도리를 함양하면서 심신을 허정(虛靜)으로 비우고 정기(精氣)를 바로잡고, 천지만물과 회통하는 신선이 되며, 불가의 교화도리를 함양하면서 하화중생·상구보리를 공공으로 실천합니다. 그러므로 고운이 ‘풍류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다는 언표는 심신수련·심신연마를 통해 국가적으로 리더십을 갖춘 군자가 되고, 천지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진인이 되며, 반야의 지혜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길을 함께 닦는 묘리체득의 과정입니다. 삼보(三寶)의 덕목을 두루 겸한 최고의 화랑이 ‘국선(國仙)’이 됨으로 풍류도(風流徒)의 무리를 능소능대하게 이끌 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포함삼교 이치로써 접화군생의 인연을 맺고 치화·조화·교화의 공공실천으로 풍류기풍을 국가차원에서 조성하면서, 단군조선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홍익인간·재세이화(弘益人間·在世理化)의 치화·조화·교화의 도리를 ‘한’으로 계승하였습니다. 고운의 풍류도에 나타난 ‘한’의 현묘지도는 공공의 생명작용으로 수운의 동학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운은 유불선이 천도의 부분으로 유도윤리와 불도의 각성과 그리고 선도의 양기는 사람 성품의 자연스러운 품부(稟賦)이자 천도의 고유성으로 동학이 그 무극대원(無極大源)을 잡아 이루어진 것으로 말했습니다. 풍류도는 한국고대의 제천의식, 하느님을 모시는 신앙에 모태를 두고 있습니다. 단군풍류도를 신라화랑도가 계승하고 다시 동학시천주로 이어지는 가운데 영부(靈符)와 선약(仙藥)을 공유했습니다.”
▷김 주간 “앞서 유성종 위원장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최 교수의 응답에 관련되는 저 자신의 개인적인 가설적 견해를 말씀드릴 필요를 느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동(東)은 언제나 개신(開新=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열음)의 방향이요 영역이요 지역입니다. 그리고 동은 기본적으로 새벽의 때와 아침의 때로 나뉩니다. 저에게 있어서 한국은 새벽의 나라이고, 일본은 아침의 나라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중국은 대낮의 나라이고 유럽과 그 너머에 있는 미국은 저녁과 밤의 나라입니다. 새벽은 칠흑 같은 한밤중과 산뜻한 아침 사이의 아주 짧고도 아주 긴 순간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생각할 때,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고, 밤은 하루의 끝남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새벽은 시작입니까? 끝남입니까? 새벽은 하루의 끝남과 새날의 시작 사이에서 양쪽을 함께 안고 넘어서서 하루의 차원을 갱신하는 찰나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아침이 새 생명의 탄생이고, 대낮이 성장이고, 저녁이 성숙이고, 밤이 사망이라면, 새벽은 또다른 새 생명의 태잉(胎孕)와 태동(胎動)와 태교(胎敎)를 각성케 하는 시기(時機)입니다. 한사상은 접화군생의 영성이 타자와 함께 새 생명·새 사상·새 철학·새 문화를 잉태하고, 그 태동과 태교를 착실하게 이행함으로써, 타자와 자기의 상생과 상화와 공복이 실현되는 새로운 인간사회 건설의 토대구축에 이바지하는 미래공창의 인문학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제가 약 20년에 걸쳐서 전 지구적 시각으로 공공하는 철학대화활동을 해온 솔직한 감회를 말씀드린다면, 유럽대륙의 철학에는 합리적 관념론이 두드러지고, 영국인의 철학에서는 감성적 경험론이 우세한 데 비해서, 미국인의 철학에서는 의지적 실험적 행위론이 현저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어떨까요? 물론 상대적인 이야기입니다마는 중국인의 철학은 합리적 설명이 장황하게 전개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본인의 철학은 감성적 무상관(無常觀)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生)의 약동보다는 사(死)의 체념이 미화되는 경향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한국인의 철학에서는 생의 약동을 찬미하는 영성적 각성이 중시되는 것 같습니다. 이성과 감성의 이원 대립을 그 사이에서 함께 끌어안고 넘어서는 간월적·포월적·공월적 영성철학이 아직 태동기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면 어떨까라는 것이 솔직한 소견입니다. 이번에 고운 최치원 선생을 여러분과 함께 그리고 기릴 수 있어서,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박장미>
2023/08/25
K스피릿 기사목록 -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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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9
종교간 대화 제 2주 김용환 이명권 김종도
[이찬수] [3:02 PM] File: 그리스도의몸과보신불(이찬수230717).hwp
[이찬수] [3:03 PM] 7시 모임에서 발제할 글 보냅니다.
[이찬수] [3:04 PM] 5시30분까지 '한국의집'으로 가면 되나요?
[심광섭] [3:09 PM] 네, 건너편 식당인데 1시간 후에 공지하겠습니다
[심광섭] [4:05 PM] 고녀석
서울 중구 퇴계로36길 9 1층 지하층 고녀석
[심광섭] [4:06 PM] 한국의집 건너편 식당입니다.
[심광섭] [4:31 PM] https://us02web.zoom.us/j/3803895679
[심광섭] [4:32 PM] 오늘 저녁 7.00시에 첫 모임을 엽니다.
[金泰昌] [4:51 PM]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찬수] [4:58 PM] 김태창선생님께서 김용환, 김연숙, 강민창 선생님을 단톡방에 불러주셔야할것 같습니다 이 세분 전화번호를 아는 분이 선생님 말고는 없는것 같아서요
[金泰昌] [5:03 PM] 예. 그래서 심광섭목사님이 올려주신 카톡방을 3분 모두에게 각각 보내드리고
확인도 했습니다. 그외에도 몇몇분이 다음번에는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도
해왔습니다. 종교간대화에 관심가진 분이 많은 것같습니다.
이찬수 invited 허우성.
[이찬수] [7:07 PM] https://us02web.zoom.us/j/3803895679
[이찬수] [7:08 PM] 오늘 7시~10시 현장과 줌으로 시작합니다
[허우성] [7:09 PM] 네 오늘은 참석하기 어렵습니다.
[박혁순] [7:12 PM] Photo
[이찬수] [11:42 PM] 다음 모임에서 귀한 제안 해주시길 바라옵니다~
Tuesday, 18 July 2023
[허우성] [7:42 AM] 다음 모임은 언제 인지요?
[金泰昌] [8:08 AM] 당분간 매주 월요일 밤에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주최측의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
습니다. 기왕에 시작
했으니까 매주 정기적으로 계속해야
동력이 붙을테니까요.
[金泰昌] [9:57 AM] 준비가 되어있는 분부러 모시면 되니까요. 그 동안 여러 다른 모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분들 중에는 충분이 문제의식을 갖고 심사숙고하신 분들이 계시니까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계속하다보면 생각이 정리되어
문제제기하실 분이 많이 생기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심광섭 invited ㆍ.
[심광섭] [10:11 AM] 김연숙 교수님 초대합니다 ^^
이명권 invited 정지훈.
[이명권] [10:46 AM] 정지훈 감독님을 초대합니다
[이명권] [10:46 AM] Photo
[이명권] [10:46 AM] 어제 촬영을 맡아주신분(가운데)입니다.
심광섭 invited 김용환교수.
[심광섭] [4:59 PM] 김용환 교수님을 초대합니다
심광섭 invited 오동일(吴东日).
[심광섭] [5:00 PM] 오동일 교수님을 초대합니다
[김용환교수] [5:37 PM] Photo
[김용환교수] [5:40 PM] 네, 반갑습니다. 유투브 "명상시 치유힐링" 가운데 최후만찬 올려봅니다. 애용바랍 니다. 유익한 대화 이어지기 기대합니다.
[김용환교수] [5:40 PM] https://youtu.be/9JyvDWaOKe8
[김용환교수] [5:42 PM] https://youtu.be/6205CY3X7kw
[金泰昌] [5:42 PM] 한사람이라도 김교수님의 하시는 일이
이해 수용되기를 바랍니다.
[김용환교수] [5:50 PM] 네, 덕분에 심광섭목사님과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늘비움, 땅나눔, 사람비춤 이 삼재회통하여 기쁨충만하기 바랍니다.
[金泰昌] [5:51 PM] 잘 되었습니다.
[이명권] [5:51 PM] 환영하오며, 좋은 가르침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용환교수] [5:55 PM] 어제 발표유익했읍니다. 얼마 전 서강대 종교학과 김재영교수님 지도학생 박사 논문 심사하고자 방문했읍니다. 오래전 일이지요?
[이명권] [6:14 PM] 선생님과의 귀한 인연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찬수] [6:16 PM] 이찬수입니다. 교수님 오랜만에 뵙게 되니 더 반갑습니다.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김용환교수] [6:18 PM] Photo
[김용환교수] [6:21 PM] 네, 감사합니다. 큰 보직을 맡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종교대화방에서 만나 반갑습니다 😁 오송지하도 참사사건으로 14명이나 생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시는 길마다 등불 밝히기를 기원합니다 🙏
[심광섭] [8:00 PM] This message was deleted.
[심광섭] [8:01 PM] <공지> (1) 다음 모임은 7월 31일에 엽니다. 발표는 박맹수 교수님(원불교 혹은 동학), 김용환 교수님(불교), 책임 토론은 강민창 목사님, 박충량 박사님께 부탁드립니다. 사정이 생기면 곧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모임을 매주 1회하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격주에 1회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박맹수] [8:02 PM] 박맹수는
7월중으로는 무리입니다
현재 조금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심광섭] [10:03 PM] 잘 해결되길 바라옵고
8월 중 발표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동일(吴东日)] [10:13 PM] 초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Wednesday, 19 July 2023
심광섭 invited 강민창 Francis (제주).
[심광섭] [1:24 PM] 강민창 목사님 초대합니다
Friday, 21 July 2023
[이명권] [12:21 PM] File: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대화.pptx
[이명권] [12:22 PM] 지난번 1회 모임에서 줌으로 올렸던 자료를 공유합니다
[ㆍ] [3:29 PM] 카톡에 초대해 주시고 훌륭한 자료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Wednesday, 26 July 2023
[이명권] [1:43 PM] 7월 31일 월요일 저녁
종교대화 심포지움? 혹은 토크쇼 형식에 고려대 김종도교수님과 이슬람과의 대화를 자유 토론 형식으로 하기로 동의해 주셨습니다. 김종도 교수님은 현재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상 소식 알려드립니다.
[심광섭] [1:53 PM] 7월 31일은 김용환 교수님, 불교인데요.
그리고 8월 14일은 윤세형 박사께서 유학과 교육 신청이 들어와서 조정이 필요하네요
[이명권] [2:06 PM] 제1회때 처럼
기독교와 불교
기독교와 이슬람
이렇게 2파트로 하는것이 아닌지요?
저는 김태창 교수님의 제의에 따라 이슬람을 섭외했더랍니다만 ㅎ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시면
다시 조정해 봐야 할듯 합니다.
[심광섭] [2:32 PM] 서로 다른 두 주제로 발제 토론이 피상적이 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한 주제만 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조정 시간이 촉박하다면 이번에도 처음처럼 두 주제로 하도록하지요
[심광섭] [2:32 PM] 발표 주제를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명권] [2:48 PM] 네 잘 알겠습니다.
발표 주제는 따로 정한것은 없는데,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화>라는 주제로, 자유토론 형식으로 약 1시간 정도 2사람이 상호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 했으면 합니다만.
ㅡ상호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ㅡ
대화의 현대적 의의와 필요성을 곁들여서요 ㅎ 어떠신지요?
[金泰昌] [2:54 PM] 두 사람이 상호 질의응답하시면 구체적으로 두분이 누구이시고 다른 참가자는
듣기만 하는건가요?
[이명권] [3:22 PM] 기본적으로는 저 이명권(기독교)과 김종도교수(이슬람학자)의 자유로운 질의 응답 형직이지만
기본적으로 30분정도 진행 한 후에, 줌을 포함한 참가자가 질의 혹은 코멘트 하는 시간으로 30분 정도 진행해서 1시간 정도 소요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Thursday, 27 July 2023
[金泰昌] [6:11 AM] 김용환교수, 이명권교수, 김종도교수, 세분의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와 불교와 이스람교라는 세계3대종교에 대한 기초적인 비교적 이해와 인식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31일의 종교대화
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자신이 과문한 탓이라면 하교해주시기를 앙망하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 심광섭목사님과 3분교수님께 감사합니다.
강민창 Francis (제주) left.
[金泰昌] [1:19 PM] 김종도교수님은 한번도 뵈온 적이 없어서 처음 듣게 되는 말씀에 기대가 크고요 김용환교수님은 직접 인도에 가셔서 예수가 수도여행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을 답사하시고 연구하신바를 책
[金泰昌] [1:31 PM] 으로 내신 저서도 있으시고 불교신자로서 불도의 연구와 실천을 오랫동안 쌓아오시고 최근에는 명상시를 통해서 불시를 통한 치유활동에 최선을 다 하시는 분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듣게 되어 기쁩니다. 또 이명궈선생님은 탁월한 종교학연구실천자로 불교를 중심으로 기독교와 이스람교의 상호
이해와 인식개신을 통해서 종교평화구축에 이바지하려는 뜻이 강하심을 저서나 강연을 통해서 실감해 왔습니다. 저 자신은 세분의 귀한 말씀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게 되어 많이 기대되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떠신지 궁금하군요.
[ㆍ] [7:18 PM] 말씀듣고 보니, 더욱 기대되는 발표입니다^^.
Friday, 28 July 2023
[김용환교수] [2:35 PM] Photo
[김용환교수] [2:35 PM] 기대에 부응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내주 월요 발표자료를 사전에 올립니다.(굿)
[김용환교수] [2:36 PM] File: 종교대화-불교와 기독교 대화(김용환)-2.pptx
[김용환교수] [2:36 PM] https://youtu.be/U4h9RO3eKMM
Saturday, 29 July 2023
[金泰昌] [5:32 AM] 기왕이면 김용환교수님의 불교관련저서도 대표적인 것만이라도 올려 주시면
처음으로 김교수님을 뵙게 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것같은데요.
[김용환교수] [10:43 AM] 12 photos
[김용환교수] [10:45 AM] 네, 불교관련 활동으로 가까이 보이는 자료 올렸읍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굿)
[이명권] [12:48 PM] 김종도 교수님과 진행될
7월 31일 종교 대화 모임에서
발표하실 내용에 대해 제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지를 드려서 응답해 주시는 방식으로
동의를 구했습니다.
1. 이슬람의 탄생 배경은 무엇인가요?2. 이슬람이 급성장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3. 이슬람이 주장하는 핵심 가치와 신앙에는 무엇이 있나요?
4. 오늘 날 세계 속에서 이슬람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5. 한국에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는 갈등이 심한편인데 해결 방안이 있을까요?
6. 이슬람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7. 종교 간의 대화나 혹은 기타 방면에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상의 질의응답을 통해 30여분간 진행하고 나머지 30분은 줌을 포한한 참석자들 중에서 질문과 코멘트 혹은 토론 형식으로 진행 하면 어떨까 하고 김종도 교수님께 동의를 구했습니다. 기타 좋은 의견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종도 교수님을 이 방으...
[金泰昌] [1:04 PM] 김종도교수님의 대표적인 저서를 소개해주시면 참고가 되겠는데요.
이명권 invited musakim.
[이명권] [1:09 PM] 김종도 교수님을 초대합니다.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소장님으로서 이번 종교대화에서 이슬람 관련 대화를 나누시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환영합니다.
[심광섭] [1:17 PM] 김종도 교수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