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1

동양포럼(58) /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소감문2 < 가타오카 류 - 동양일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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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58) / 동양포럼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소감문2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8.01.14 

청주와 안동과 센다이의 사이에서 생각한다
성스런 동경’에 의한 이어짐

가타오카 류(片岡龍) 일본 토호쿠대(東北大) 교수

‘연애’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최근에 거의 사어(死語)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어떨까? 여기에서 말하는 연애란 단순히 이성과의 연애뿐만 아니라, 좀 더 막연하게 뭔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 그리움, 사모를 말한다.

괴테가 노래한 ‘성스러운 동경’(서동시집)이라고까지 하면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이 시에 나오는 “머나먼 여정도 힘들다 하지 않고/뭔가에 홀린 듯이 날아와서/마침내 빛을 갈망하여/나비여, 그대는 불처럼 타올랐다”라는 구절은 역시 ‘연애’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이런 ‘연애’가 사어가 된 세계, 이런 ‘연애’조차도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할인되는 세계, 인간은 이런 세계에서 정말로 살아갈 수 있을까?

2017년 8월에 청주와 안동에서 개최된 일련의 동양포럼에 참가한지 5개월이 지났다. 저 눈부셨던 여름의 빛은 아련해지고, 생명감에 충만한 신록은 빨강과 노랑으로 물든 후에 지금은 푸석한 낙엽이 됐다.

태평양연안의 도시에서 쓸쓸한 겨울의 풍경을 창밖으로 내다보면서 여름의 한반도를 생각한다. 이 생각도 ‘연애’이다. 센다이, 청주, 안동.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스러운 동경’에 의해 이어져 있다. 그런 세계가 공창(共創)되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아직 겨울의 추위에 닫혀 있지만 -.

일본의 동북지방에 있는 센다이(仙台)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동승한 사람은 카네비시 키요시(1975~) 교수와 오오사와 시노부(大澤史伸·1966~) 교수. 카네비시 교수는 ‘영성의 재난학’이라는 책으로 단숨에 일본사회의 주목을 받은 신진 사회학자이고, 오오사와 교수는 사회복지학이 전공으로,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두 명 다 센다이의 유서 깊은 그리스도교대학(東北學院大學)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카네비시 교수는 주로 이론 쪽을, 오오사와 교수는 주로 실천 쪽을 맡은 공저도 간행하였다.

센다이는 2011년 3월 11일,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에 의한 대재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보이는 건 온통 건물 잔해의 황야뿐. 세상의 끝을 보는듯한 광경을 눈앞에 두니 기존의 모든 언어가 허위로 느껴졌다. 청주행 비행기를 함께 탄 세 사람은, 그 때는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이 근원적인 경험이 이후의 세 사람의 연구 활동의 근저에 있게 된다.

2016년 9월에 ‘동일본대지진과 세월호사건 이후의 사람들의 연대’를 테마로 한 센다이포럼에서 세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 때 기조강연자로 초대한 분이 동양포럼의 김태창 주간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올 여름에 청주에 가게 된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 공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북청주의 숙소에 도착한 때는 이미 날이 바뀌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택시로 ‘꽃동네영성원’으로 향했다. 심산(深山)에서 뿜어나오는 생기가 차안에까지 흘러들어 온다. 이 산의 청정한 고지대에 영성원이 있었다. 거대한 여름 구름이 주위에 떠다니는 것이 마치 천상세계에 온듯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공공하는 영성’을 둘러싼 논의가 3일 동안 진지하게 오갔다.

꽃동네시설 견학을 포함한 포럼의 전체 모습은 ‘동양일보’ 2017년 11월 12일자에 실린 조성환의 ‘다시 개벽을 찾아 나선 열흘간의 공공여행-공공영성·외천활리·탈식민지 포럼에 다녀와서’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나 나름대로 깨달은 점만을 말하면 ‘영성’을 반드시 종교적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영성을 종교가 독점에 온 것이 오히려 영성을 소원하게 하거나 역으로 물신화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영성은 우리에게 보다 가까이 있는 우리 삶에 필요한 그 무엇이다. 또한 우리의 삶이 각자가 다른 이상, 영성도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성이 있어서, “이것은 A, 이것은 B”라고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영성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지진을 경험한 카네비시·오오사와 교수의 생각과도 상통한다. 카네비시 교수는 생과 사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행방불명자(사자)와 유가족(생자)을 어어주는 것을 영성이라고 보았고, 오오사와 교수는 그러한 이분법적 가치고정화(서열화)에 동반되는 차별과 편견이 사회복지의 실천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오오사와 교수는 ‘사랑’이나 ‘영성’이라는 말조차 고정화로 이어지기 쉽다는 입장이다. 꽃동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되고 있는, 강자도 약자도 없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풍요로운 연대, 그것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모든 언어는 가치 고정화(서열화)를 낳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실천도 그때, 그 장소에 한정된 덧없는 현상으로 지나가 버린다. 위험은 있지만 현장의 실천이 파급되기 위해서는 모종의 이론화도 필수불가결하다. 카네비시 교수와의 이인삼각(二人三脚)의 활동 자체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성에 개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김태창 주간이 일본적 영성을 습합적 영성, 중국적 영성을 동화적 영성, 한적 영성을 ‘접화군생’이라고 분석한 점이 흥미로웠다. ‘습합’이란, ‘신불습합(神佛習合)’과 같이 일본이 외래의 고도의 문명을 수입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에 근거하고 있다. ‘동화’가 모든 것을 중국문명 속으로 흡수하는 것에 대해서, ‘습합’은 일본적 핵심을 남기면서 외래의 고도의 문명을 도구화하여 최대한 이용한다. ‘화혼양(한)재’(和魂洋(漢)才)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지 모른다.

그에 반해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접’은 양자의 중심이 진실하게 ‘접(接)’한다고 하는 직접성을 의미하고, 그것에 의해 삶의 방향으로의 변‘화(化)’가 생기며, 그것이 파급되어 다수의 타자(群)의 ‘삶(生)’이 활성화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확실히 한국에서의 불교·유교·그리스도교 등의 수용 방식에는 그런 특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심과 중심이 진실하게 접한다”, 이 말은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말이 가치고정화(서열화)되기 쉬운 것도 그 말이 “중심과 중심이 진실하게 접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영성’을 하나의 정의에 수렴시키고 고정화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영성’이라는 말을 공통화제로 삼아서 각자 개성있는 영성체험을 바탕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대화한 것이다.

그런 대화중에서 역시 나의 혼을 강하게 요동치게 한 것은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영미 선생이 소개한 정지용의 ‘향수’였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포럼이 끝난 후에, 이번 포럼에 참가한 최다울 학생과 함께 김영미 선생의 안내로 옥천에 있는 정지용 생가에 다녀왔는데,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풍경과 너무도 흡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향수’는 나에게 쓰나미로 모든 것이 휩쓸려가기 이전의 토호쿠(東北)의 해안가 마을의 정경을 떠올리게 하였다.

꽃동네에서 직접 인천공항으로 향한 카네비시 교수, 오오사와 교수는 무사히 센다이에 돌아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창동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이미 김태창 주간과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이 기다리고 계셨다.

버스 안에서는 ‘동양일보’ 8월 7일자에 실린 유성종 운영위원장의 ‘조명희 선생의 아호, 포석(抱石)의 뜻’을 둘러싸고, 포석이라는 호의 함의, 그리고 포석과 마찬가지로 ‘석(石)’ 자가 호에 들어 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본명은 킨노스케金之助)의 호의 의미 등이 화제가 되었다.

안동의 포럼에 이어서 청주대학에서 개최된 포럼에서는 한국의 포석, 일본의 소세키와 중국의 루쉰을 다루었다. 루쉰(이것은 필명. 본명은 쪼우슈런周樹人)은 140개가 넘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석(石)’이 들어간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나중에 조사해보니 흥미로웠던 것은, 루쉰이 토호쿠대학의 전신인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유학했을 때의 경험으로부터 자신은 의학이 아니라 문학으로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뜻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애초에는 지질학을 공부하려고 일본으로 유학왔다는 사실이다. 루쉰이 센다이에 오기 전의 동경시대에 쓴 ‘중국지질학약론(中國地質略論)’(월간 ‘浙江潮’ 제8호, 1903년 11월)에서는, 자국의 과학이 뒤쳐져서 망국의 위기(외국이 광산자원을 노려 중국의 분할을 꾀하고 있는 것)가 초래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어떤 문명이든 ‘강석화’(=화석화) 되면 멸종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만년의 글에서도 “혁명은 끝이 없다. 만약에 이 세상에 진실로 ‘지선(止善)에 이르게’ 되는 일이 있다면, 인간세계는 곧바로 응고되고 말 것이다”(‘而已集’ 黃花節的雜感), “불만은 향상의 수레바퀴다. 자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류를 태우고, 사람의 도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 자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종족은 영원히 전진하면서 영원히 희망이 있다. 다른 사람을 탓할 뿐 반성할 줄 모르는 많은 종족은 반드시 화가 미친다(‘熱風’ 隨感錄六十一)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의 자신에 만족하여 반성할 줄 모른다고 한다면, 중국은 과거의 망념을 완전히 끊고 영원히 전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는 안동에서의 포럼에 참가하게 되었다. 회의장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고, 주최는 영남퇴계학연구소(후원은 동양포럼)이며, 테마는 ‘외천활리(畏天活理)의 인문학’이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지금까지도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과거가 현재에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과거가 화석화되어 현재에 남아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가 미래를 향해 현재를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영남퇴계학연구소의 이동건 이사장은 이퇴계의 제15대 후손으로, 대구의 삼화건업 회장이기도 하다. 이동건 이사장은 퇴계의 성학(聖學)을 ‘자기혁신’(Self-Innovation) 사상으로 재해석하였다. 이 ‘자기혁신’은 과거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천활리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에는 일부러 ‘영성’이라는 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 공자 이래의 유교의 전통을 존중하여, 안이하게 유교와 신비주의를 연결시키려는 논의로 흐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일 것이다. 나도 16세기 한반도와 이베리아반도를 공시성(共時性)이라는 관점에서 대조해 보는 모험을 시도했는데, 이광호 연세대 명예교수로부터 그 위험성을 지적받고, 발표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여 오해를 피하는 배려가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대항해시대에 예수회의 신대륙 등에 대한 포교가 얼마나 폭력적인 식민지지배와 맞물려 있었는지, 아울러 동시대의 한반도의 평화가 일본이나 중국의 군대에 의해 유린당한 역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생각은 결코 없었다. 다만 ‘영성’이라는 관점에 한정시키면, 퇴계의 ‘리발(理發)’과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동(靈動)’ 사이에는 불가사의한 공시적 유사성이 있고, 그것을 확인함으로써 다산 사상의 ‘종교성’을 반드시 그리스도교의 영향이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만한 ‘종교성’이 한반도에는 이미 있었다는 것으로, 그것이 그리스도교와 같은 ‘종교’와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 보다 중요하다. 인문학과 영성은 공존할 수 있다. 위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영성을 종교가 독점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강조하고 싶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해명해 둔다.

‘외천활리’라는 주제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것은 퇴계의 ‘리발(理發)·리동(理動)· 리도(理到)’의 문제이다. 로고스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 실로 인문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리’라는 말에서 영성적 요소를 읽어내려고 한 점,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젊은 학자와의 오랜 시간에 걸친 공개토론을 거친 결과이고, 더 나아가서 그 과정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는 점은 16세기 한반도의 놀랄만한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리’가 사리(死理)가 되어 영성을 잊으면 그것은 ‘하늘(天)’도 ‘두려워하지(畏)’ 않는 인간의 소행이 될 것이다. 원전사고에 의한 재해는 그것을 경고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외경을 넘어 공포가 되어 버리면, 비합리적인 힘(폭력·권력·금력)의 논리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만다.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외천활리의 인문학’의 의의가 아닐까?

이번 포럼에서는 퇴계의 ‘천’이나 ‘리’를 서양의 신화나 철학과의 비교를 통해 고찰하는 젊은 여성연구자들의 발표가 여럿 있었다는 점도 인상에 남았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신과 ‘시경’, ‘서경’, ‘논어’ 등에 나오는 고대 중국의 ‘천’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서 퇴계의 ‘천’을 고찰한 장영란 교수(한국외국어대), 스피노자나 플라톤의 우주론과의 비교를 통해서 퇴계의 ‘리’를 고찰한 이원진 박사(국민대)의 발표가 그것이다. 또한 퇴계의 “사단(四端)을 통한 리자도(理自到)”를 일상의 영성으로 파악하고, 그것이 사회를 성화시키는 사회적 영성, 공동체적 영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 황상희 박사(성균관대)의 발표는, 명시는 하고 있지 않지만 17세기 감리교운동의 사상 등과의 연관성이 의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안동포럼은 꽃동네포럼과 청주에서의 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 포럼의 일환이다. 언젠가는 퇴계의 영성을 사회복지나 근대문학 등에서의 영성과 연결시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과거의 학문전통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중심과 중심이 진실로 접하면 과거의 학문전통도 다시 그것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이다.

안동에서 청주로 돌아올 때 줄기차게 내렸던 비도 점차 맑게 개였다. 청주포럼의 테마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이다. 지금까지의 포럼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포럼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만의 대화섹션이 마련된 점이 특징적이다. 이퇴계는 아무래도 젊은 학생들의 대화소재로는 무거운 감이 있다. 젊은 감성들이 자유롭게 발상하기 쉬운 한중일을 대표하는 20세기 문학가를 테마로 선택한 것에서 미래공창을 바라는 포럼 주최자의 염원이 느껴진다.

포럼 내내 한쪽 벽에는 신진여성화가인 김선우씨가 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의 작품을 읽고 얻은 인상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세 사람의 문학의 개성, 즉 한중일의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에 대한 이미지가 멋지게 형상화되고 있다. 그래서 참가자는 이것을 보면서 대화하면 된다. 작품의 세세한 문헌적 고증 따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발제도 논문을 읽는 형식이 아니라 각자가 동양일보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기만 하면 된다.

포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태창 주간은, 그런 진행방식과 포럼취지를 설명하면서, 이 자리에서의 모든 발언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고, 포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개의치 않으며, 다만 미래를 함께 열기 위해 새로운 것을 함께 시작하는 데에 주안점이 있다는 결의를 피력했다. 그러자 회의장의 분위기가 단숨에 조여졌다.

그 긴장감은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와 같은, 처음으로 동경하던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와 같은, 처음으로 이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실제로 나는 포럼의 서두에서 조명희의 ‘낙동강’에서 영감을 얻은 김영미선생의 시를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가 밤새 일본어로 번역한 손글씨 원고(안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김태창 주간으로부터 건네받았다)를 낭독하는, 인생의 첫 경험을 했다.

센다이, 청주, 안동을 잇는 ‘성스러운 동경’, 이런 말을 첫머리에 쓴 것도 청주포럼에서의 긴장감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면이 다했기 때문에 청주포럼의 내용은 다른 분에게 맡기고자 한다. 꽃동네, 안동, 청주에서의 포럼을 관통하는 테마는 ‘영성’인데, 여기에서의 ‘영성’이란 괴이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이 불타는 것에 대한 자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과 열이 3.11 대지진 이후의 태평양 연안의 어두운 겨울밤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 번역:조성환(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