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은이),
정연희 (옮긴이)문학동네2020-11-16
원제 : Olive, Again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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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1,200원
편집장의 선택
"올리브 키터리지, 계속되는 이야기"
80대의 올리브는 쓴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고. 피상적인 말들과 속물적인 것들을 가장 싫어하고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로 맞받아치며 평생 이웃의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올리브. 그가 전하는 노년의 삶은 지혜와 통찰, 확신과 여유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실수와 후회는 반복된다. 여전히 타인을 쉽게 재단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여전히 선택의 순간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알지 못한다. 혼란스럽고 외롭고 죽음이 두렵다. 어떤 깨달음이 있다면,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것이다.
우리가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들. 소설은 작은 마을 크로스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실패하고 성공하고, 또 실패하고 성공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지리멸렬한 일상. 소설은 그 속에서 소중히 포착한 것을 내어놓는다. 일렁이는 빛의 명암과도 같은 찰나의 행복과 삶이 기꺼이 내미는 다정한 순간들. 사람들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라는 감탄사를 가만히 되뇌게 하는 순간들. "쇠락한 육신과 해진 마음에도 여전히 사랑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은", "하루의 마지막 금빛이 세상을 여는 것은", "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가,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들을. "그래도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중얼거리는 올리브를 바라보며, 무언가 마음 속에 따뜻한 것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소설 MD 권벼리 (2020.11.17)
시리즈이 책이 포함된 세트
[세트] 올리브 키터리지 + 다시, 올리브 세트 - 전2권
이 책의 원서/번역서
Olive, Again (Paperback) Paperback
책소개
올리브 키터리지가 돌아왔다. 2008년 출간되어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올리브 키터리지』를 통해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 괴팍하지만 매력 넘치는 여인이 11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좀더 나이를 먹고, 조금은 더 외로움에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지독하게 ‘올리브다운’ 모습으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인 『다시, 올리브』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 메인주의 작은 타운 크로스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풍경을 예리한 통찰과 절절한 아름다움을 담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물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삶을 놀랍도록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총 1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올리브가 칠십대 중반에서 팔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십여 년에 걸친 말년의 인생을 다룬다. 올리브의 비중은 장마다 다르고 때로는 스쳐가듯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작품 전체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리우며 일련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단단히 결속한다.
『다시, 올리브』에서 스트라우트가 그리는 노년의 삶은 결코 느긋하거나 여유롭지도, 지혜와 통찰로 충만하지도 않다. 나이든 육신은 사춘기에 막 들어선 청년의 몸만큼이나 낯설고 혼란스럽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빈자리에 수시로 엄습하는 외로움과 공포는 낡고 해진 마음속으로 여과 없이 스며든다. 그러나 등뒤에 드리운 죽음으로 인해 눈앞에 펼쳐진 삶의 풍경은 더 또렷하고 찬란해진다. 다음 계절을 약속하는 고요한 햇빛과 새로 움트는 꽃봉오리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띠고 선명히 다가온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외로움과 무지를 깨달을수록 우리는 타인을,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의 바탕에는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우리가 본질적으로 같은 혼란과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다소 씁쓸한 위안이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불가피한 비극을 통해 맺어진 그 뿌리 깊은 연대는 우리를 자기 연민이나 체념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를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목차
단속 _009
분만 _039
청소 _071
엄마 없는 아이 _111
도움 _151
햇빛 _191
산책 _225
발 관리 _237
망명자들 _272
시인 _312
마지막이 된 남북전쟁의 날 _346
심장 _380
친구 _422
감사의 말 _ 461
옮긴이의 말: 당신과 햇살 속에 함께 있는 것_ 463
책속에서
첫문장
6월의 어느 토요일 이른 오후, 잭 케니슨은 선글라스를 쓰고 스포츠카에 올라탄 뒤 차 지붕을 열고 어깨와 불룩하게 나온 배 위로 안전벨트를 했다.
P. 10 모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함께 있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을 얼마나 쉽게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가! 누구도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지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그저 배 나온 늙은이일 뿐 전혀 쳐다볼 만한 사람이 ... 더보기
P. 16 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에 놀라워하고, 지금껏 저지른 모든 실수에 대해 벅찬 후회를 느끼는 일흔네 살의 남자,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어 생각했다. 인간은 어떻게 정직한 인생을 살 수 있는가?
P. 17 늘 그런 식이었다. 그저 그뿐. 사람들은 뭔가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 알지 못하거나, 정말로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P. 87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
P. 188 “사람들은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간단다.” 버니가 말했다. “정말로 그래. 사람들이 뭘 끌어안고 사는지 보면 늘 놀라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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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굽어살핀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따뜻한 은빛 막이 내 몸과 세계를 감싸온다. 스트라우트는 너무 많이 알려져 있기에 사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삶을 드러낸다. 그녀는 미세한 일상의 관찰을 통해 미국을, 온 세계의 일들을 바라본다. 수백 겹의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포개지고 교차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이 『다시, 올리브』에 있다. 이 세계의 인물들은 각각의 이유로 몹시 애처로우면서도 거룩하다. 작가의 관찰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영적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격한다. 나는 그것이 예술가와 작품에 찾아오는 은총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은총, “우리보다 더 큰 뭔가”와 함께할 수 있었다. - 김보라 (영화 「벌새」 감독)
단 한 번도 바라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삶이라고 해도 그 속에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환하게 각인되어 있음을 이 소설은 상기시킨다. 휘청이고 넘어지고 흐느끼다가 다시금 일어서는 서로의 삶을 아프게 지켜보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전부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는 사실도.
이 소설은 삶을 완성하는 것이 다만 행복이나 기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워버리고 싶었던 수많은 실패와 상실의 순간들조차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귀중한 생의 일부라는 것을 이토록 감동적으로 일깨운다. - 김혜진 (소설가)
스트라우트는 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여인을 기어이 사랑하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가. - 제이디 스미스 (소설가)
스트라우트는 이 책에서 매우 다양한 나이대에 속한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경이로울 정도로 깊숙이 스며든다. 청년(그들의 혼란과 놀라움과 깨어나는 성적 욕망), 중년(질투와 고군분투와 타협), 그리고 노년(쇠락하는 육체, 사회로부터의 괴리, 뒤늦은 깨달음)…… 나는 오랫동안 경탄하는 마음으로 스트라우트의 모든 작품을 읽어왔지만, 『다시, 올리브』는 그 전부를 뛰어넘는 성취다. 일련의 이야기들이 끈질기게 그려내고 있는 적나라한 고통과 존엄과 위트와 용기가 우리를 굳건하고도 세심한 위로로 가득 채운다. - 워싱턴 포스트
스트라우트는 인간의 실존에 단순한 진실이란 없으며, 오로지 경이로운 동시에 고통스러운 복잡성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음, 그게 삶이죠.” 올리브는 말한다. “삶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름답게 쓰였고 연민으로 생동하며, 때로 거의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저민다. 모든 면에서 황홀한 작품. - 커커스 리뷰
스트라우트의 세계관은 솔직하고 때로는 우아한 삼인칭시점의 문장에서 드러난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고 나이듦이라는 고초를 겪으며 더욱 소외된다. 가족이란 감정의 지뢰밭이다. 죽음, 치매, 그 밖의 자연재해는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사랑은 값진 것이지만 찾기 어렵고, 우리가 그 존재를 미처 깨닫기 전에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스트라우트의 어두운 통찰 속에는 은총의 순간들에 대한 믿음이 스며 있다. 그 순간은 한줄기 빛으로,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혹은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찾아온다. - 시카고 트리뷴
여러 이야기들이 모여 단단히 결속된 하나의 소설을 이룬다. 속편이기도 하고 결정판이기도 한 이 작품은 유머와 연민과 노골적일 정도의 디테일을 담아 나이듦과 상실과 외로움, 그리고 사랑을 포착해낸다. 스트라우트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순간들에 주목하고, 그 속에서 그들이 가진 비범한 회복력을 드러내는 작가적 재능을 다시금 증명한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미국)
올리브라는 인물이 탁월한 캐릭터인 것은 끊임없이 툴툴거리는 성미 때문만이 아니라, 남들의 결점만큼이나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도 인정사정없이 솔직하기 때문이다. 올리브의 솔직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녀에게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고, 스트라우트의 글이 가진 강력한 힘은 이러한 꾸밈없는 대화에서, 인물들이 자신의 슬픔과 악함과 혼란을 모두 드러내는 대화에서 나온다. 장대하고 참혹한 삶의 혼란이 이 감동적인 책의 페이지 위로 쏟아져나온다. 스트라우트가그 혼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 혼란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 월 스트리트 저널
올리브라는 주인공에게 무궁무진한 매력과 저항할 수 없는 애정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녀가 불러일으키는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들 때문이다. 『다시, 올리브』는 전작보다 더 어둡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만큼 아름답다. 이 작품 자체만으로도 탁월한 성취다. 우리는 올리브가 자신만의 관점을 획득하고, 그러한 관점을 제공해주는 타인들 역시 그만큼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마법 같은 변화의 결과를 독자와 공유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독자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이끌어낸다. - 보스턴 글로브
전작인 『올리브 키터리지』만큼이나 탁월하다. 『다시, 올리브』는 사랑의 필수 조건인 공감력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상기시킨다. - NPR
혹시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탁월한 작품을 소설로 혹은 HBO 미니시리즈로 접한 뒤, 스트라우트의 퉁명스럽고 까칠한 주인공은 볼 만큼 보았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생각해보라. 그녀의 귀환은 정말로 깜짝 놀랄 사건이니까. - 피플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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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 2020년 11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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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20년 11월 20일자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지은이)
1956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메인주와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베이츠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일 년 동안 바에서 일하면서 글을 쓰고, 그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끊임없이 소설을 썼지만 원고는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 그녀는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잠시 법률회사에서 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돌아와 글쓰기에
매진한다.
문학잡지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던 스트라우트는 1998년 첫 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을 발표하며 작품... 더보기
수상 : 2009년 퓰리처상
최근작 : <오, 윌리엄!>,<올리브 키터리지 + 다시, 올리브 세트 (리커버 특별판) - 전2권>,<다시, 올리브> … 총 166종 (모두보기)
정연희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다시, 올리브』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무엇이든 가능하다』 『버지스 형제』 『에이미와 이저벨』 『사라진 반쪽』 『디어 라이프』 『착한 여자의 사랑』 『소녀와 여자들의 삶』 『운명과 분노』 『플로리다』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그 겨울의 일주일』 『비와 별이 내리는 밤』 『커먼웰스』 『헬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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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아름답고 강렬한 후속작
김보라 감독, 김혜진 소설가 추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오프라 북클럽 추천 도서
#올리브키터리지후속작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신작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 #오프라북클럽추천
#삶과죽음 #노년 #고독 #사랑 #이해 #용서 #관용 #감동
타임 · 보그 · 워싱턴 포스트 · 시카고 트리뷴 · 가디언 · 커커스 리뷰 · 퍼블리셔스 위클리 · 베니티 페어 ·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 에스콰이어 · 이브닝 스탠더드 · NPR · 뉴욕공립도서관 선정 올해의 책(2019)
올리브 키터리지가 돌아왔다. 2008년 출간되어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올리브 키터리지』를 통해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 괴팍하지만 매력 넘치는 여인이 11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좀더 나이를 먹고, 조금은 더 외로움에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지독하게 ‘올리브다운’ 모습으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인 『다시, 올리브』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 메인주의 작은 타운 크로스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풍경을 예리한 통찰과 절절한 아름다움을 담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물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삶을 놀랍도록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총 1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올리브가 칠십대 중반에서 팔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십여 년에 걸친 말년의 인생을 다룬다. 올리브의 비중은 장마다 다르고 때로는 스쳐가듯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작품 전체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리우며 일련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단단히 결속한다.
올리브의 귀환은 사실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있던 작가의 눈앞에 불현듯 나이든 올리브가 차를 몰고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스트라우트는 깨달았다. “오 이런, 올리브가 돌아왔구나.” 일단 올리브가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마땅히 그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 이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며 직설적인, 그러나 결국에는 우리가 공감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올리브의 두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_본문 335∼336쪽
『다시, 올리브』에서 스트라우트가 그리는 노년의 삶은 결코 느긋하거나 여유롭지도, 지혜와 통찰로 충만하지도 않다. 나이든 육신은 사춘기에 막 들어선 청년의 몸만큼이나 낯설고 혼란스럽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빈자리에 수시로 엄습하는 외로움과 공포는 낡고 해진 마음속으로 여과 없이 스며든다. 그러나 등뒤에 드리운 죽음으로 인해 눈앞에 펼쳐진 삶의 풍경은 더 또렷하고 찬란해진다. 다음 계절을 약속하는 고요한 햇빛과 새로 움트는 꽃봉오리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띠고 선명히 다가온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외로움과 무지를 깨달을수록 우리는 타인을,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의 바탕에는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우리가 본질적으로 같은 혼란과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다소 씁쓸한 위안이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불가피한 비극을 통해 맺어진 그 뿌리 깊은 연대는 우리를 자기 연민이나 체념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를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쇠락한 육신과 해진 마음에도 여전히 사랑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은.
홀로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새벽에도,
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은.
메인주의 해안 타운 크로스비에는 여전히 다양한 문제를 겪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뭘 끌어안고 사는지 보면 늘 놀라게 돼.”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나이든 변호사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중에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성적인 욕망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소녀가 있고, 오래전 각기 다른 인생을 선택함으로써 이제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생긴 형제를 바라보며 슬픔에 잠긴 남자가 있고, 자신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방식을 택한 딸로 인해 갈등하는 아버지가 있고,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음과 삶의 기로에 놓인 여성도 있다. 그들의 삶은 제각기 다른 지점에서, 다른 이유로 고통스럽다. 은퇴한 수학 교사이자, 고집스럽고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로 평생 이웃들의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그녀, 올리브 키터리지도 예외는 아니다.
첫번째 남편 헨리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제 노년에 깊숙이 접어든 올리브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계절은 늘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속에서 그녀의 시간은 끝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음을 올리브는 점점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러나 누가 노년의 삶을 고요하다고 했던가. 올리브의 인생에는 계속해서 크고 작은 파도가 들이치며 그녀를 사정없이 흔들어놓는다. 올리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두번째 결혼을 하고, 베이비샤워에 갔다가 얼떨결에 차 뒷좌석에서 아이를 받고, 죽음의 위기를 넘긴 후에야 소원했던 아들과 가까스로 화해를 하고, 팔십이 넘은 나이에 노인 복지 아파트에서 새 친구를 사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십 년을 ‘올리브’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해 놀라울 만큼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로움이여. 오, 외로움이여!
그것이 올리브를 괴롭혔다.
평생 그런 감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그녀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 마치 그녀 밑에?평생 동안?큰 바퀴 네 개를 달고 살아왔는데, 그것을 당연히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이제 네 개 전부가 흔들흔들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군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지 못했다.” _본문 414쪽
올리브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노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자, 대체로 고통스러운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주는 것은 언제나 그녀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이다. 올리브는 인생관도, 정치적 신념도 다른 잭 케니슨이라는 남자와 부부가 되면서 첫번째 남편의 빈자리와 자신의 깊은 외로움을 인식하게 된다. 아들을 윽박지르는, 그녀와 너무나 닮은 며느리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어머니로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계관시인이 된 옛 제자와의 우연한 만남에서는,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던 근본적인 결핍과 허영을 적나라하게 들켜버린다. 그러나 올리브의 놀라운 점은 육체적인 쇠락과 정신적인 충격을 겪으면서도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내 성장해나간다는 것이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도 올리브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오해하고, 이해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그녀는 “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아마 그것은 비로소 그녀의 마음속에 타인이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스트라우트의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다시, 올리브』 역시 절묘한 순간에 우리의 삶에 나타나 모든 것을 흔들어놓는 타인들,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에 한마디 말이나 한 번의 손짓으로 우리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타인들과의 우연 같고 운명 같은 마주침에 주목한다. 더불어 스트라우트의 전작들을 즐겁게 읽어온 독자라면, 작가가 창조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과의 반갑고 놀라운 마주침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에 등장했던 인물들뿐 아니라 『버지스 형제』(2013)의 주인공이었던 세 남매, 그리고 무려 21년 전에 발표했던 스트라우트의 첫 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의 인물들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올리브와 이저벨이 어떻게 만나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이 선사하는 크고 감동적인 선물 중 하나다.
명멸하는 삶의 불꽃이 비추는,
처절하고 찬란한 생의 마지막 순간들
팔십이 넘은 나이에 노인 복지 아파트에서 살게 된 올리브는 자신의 인생을 기록해 글로 남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을 더듬으며 삶을 돌아본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이 말하는 나이듦이란 노련함이나 충만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며, 자신이 평생 끌어안고 살아온 수많은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행위에 가깝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올리브』가 건네는 위로는 ‘그럼에도 결국 삶은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지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찬란히 빛나는 순간들도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 정말로 눈앞에 다가왔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서서히 스며드는 그 저녁에,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래도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중얼거리는 올리브처럼 말이다. 마침내 삶의 혼란과 화해를 이루고 한평생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는 올리브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무척이나 다행하고 감동적인 일이지만,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독자로서는 못내 마음이 아프고 먹먹해진다. 하지만 아마도 올리브는, 우리의 아쉬움과 슬픔에는 아랑곳없이,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머리 위로 한 손을 휙 던지며 뚜벅뚜벅 마지막 걸음을 옮길 것이다.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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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앞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대고 있는 것인가?
오늘로서 올 해 마지막 날이로군요.
오늘로서 새해 첫 날이로군요.
오늘은 둘째 날....
오늘 못 올리면 또 세째 날...
오늘은 반드시 올려야 한다!는 각오로 저녁까지 페이퍼를 마무리 하였건만,
그동안 밥 먹던 시간에 잠깐 로그아웃이 되었던 것인가?
로그인도 하지 않은 채, 신나게 글을 썼던 것이다.
뾰로롱~ 날아가버린 아까운 시간들!ㅜㅜ
내가 이래서 컴으로 접속해서 글을 쓰지 않건만,
일목요연하게 책 한 권씩 올려 글을 쓰려면 컴으로 접속할 수밖에 없는데,
부글부글~
떡국 끓여 먹고, 심기일전,
다시 앉았다.
올 해 책 아니 작년에 책을 129 권을 읽었다.
(놀라지 마세요. 130 권은 못 채웠고, 그리고 저보다 더 많은 책을 읽은 자들이 알라딘에 수두룩 하잖아요?)
암튼, 내가 읽은 책 권수에 놀라 잘못 세었나? 다시 세어 봐도 129권!
원인이 뭘까? 분석해 보니 후반기에 시집을 좀 읽었더니 권 수를 가득 채움.^^
(여러분 읽은 책 권 수 채우시려면 시집을 읽으세요^^)
책은 제법 읽은 것 같은데 막상 막 좋았었던 책을 추스리니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닥 없어 보여 의문이었다가, 막상 순위 정하려고 보니 책 제목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결정을 잘 못하는 나로선 남들처럼 쿨하게 딱 세 권! 딱 다섯 권! 딱 한 권!
이렇게 정하기가 넘 어렵더라는~
그래서 가장 좋았던 책 고르라는 제목의 서술형은 답하기가 참 곤란하던데...
암튼 분야별로 그냥 느낌이 좋았던 책들 위주로 올려 보련다.
우선 허구헌날 읽는 책은 소설 아니면 에세이 종류다 보니 소설 분야부터 찾아보았는데 22년도에는 외국 소설을 많이 읽었더라. 한국 소설은 달랑 다섯 권 정도 읽었다. 소설도 한국 소설 위주로 읽는 사람인데 22 년도에는 다미여 덕분에 외국 소설, 그것도 영미 소설 분야 집계수가 엄청나게 올라 50 권이 넘었다. 이걸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외국 소설을 잘 못 읽는, 아니 안 읽는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그래서 누적된 영미소설은 52 권!!!!
자랑스럽네!!!
암튼, 각설하고 외국 소설 중 1 위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올리브> 요 두 권이다.
며칠 전 독서괭님 서재에서도 올리브 키터리지 책을 꼽으신 걸 보고 혼자 씨익~.
작년 1월 중 완독 했었는데 읽고 너무 좋아서 독후 활동?도 하면서 혼자 놀았던 흔적들이 보여 사진을 올려본다. 그때는 리뷰를 쓰게 된다면 같이 올려보려고 사진을 찍어 뒀었는데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너무 좋은데 이 좋은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뭐 그런 심정이었달까?
중년의 올리브와 가족, 그리고 올리브 이웃들의 솔직하면서, 현실적인 서로의 관계에 대해 면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어쩌면 곧 우리에게 다가올, 또는 지금 현재 닥친 우리네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쓴 무척 공감가는 소설이었다. 올리브 덕분에 줄곧 노년의 건강한 올리브가 되고 싶어 걷기 싫어도 열심히 걷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올리브 그린 색을 좋아한다. 나는 주로 녹차색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올리브 그린이란 색으로 통하는 것 같다. 현재 책 표지는 리커버가 된 책이 있지만, 나는 옛날 <올리브 키터리지> 책 표지가 좋다. <다시, 올리브> 책의 표지는 별로여도 <올리브 키터리지>책이 너무 좋아 저 색이 정확히 어떤 색인지 찾아보려고 할일없이 저런 짓도 했었던....
올리브 그린 색일 것이라 단정했던 나였건만, 막상 색연필을 비교해보니 마린 그린색 988 번 같기도 하다.
옷장에 있는 올리브 그린색이라 칭하는 쉐타랑 조끼랑 양말을 들고 나와 비교를 해봤지만, 똑같은 색이 없는 듯하다.
아, 올리브 당신은 어떤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당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계시군요?
신디가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장엄했다. 한낮의 빛이 끝을 향하면서 입 벌린 모습을 한 태양이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노란색을 쏟아냈고, 그 빛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리 비쳤다.
그리고 그 다음 일어난 일은 이것이다-
신디는 이 일을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했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올리브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그녀는 경외감이 깃든 목소리로 한번 더 말했다. "2월의 저 햇빛 좀 봐."
(<다시, 올리브> 햇빛 중 224 쪽)
작년 2 월에 <다시, 올리브>를 읽었었다. 햇빛이란 단편을 읽고 나니, 그 날의 햇빛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사진은 2 월 한낮의 햇빛은 아니고, 2 월 오후께 햇빛이었던 것같다.
자연의 풍경을 면밀히 살펴보고 느끼는 작가였기에 소설은 더욱 다정하게 파고드는 것 같다. 쓸쓸한 노년의 삶에 귀를 기울여 읽다 보면, 저 자리에 앉아, 2 월의 햇빛을 해바라기 한 느낌이다. 뜨겁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따뜻한 기온이 온종일 감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만세!
이제 사다놓은 윌리엄 시리즈 읽으러 가야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만세!
<다락방 미친 여자들>을 읽으면서 정말 정신없는 늦가을과 겨울을 보냈던 것같다.
관련된 소설과 시집을 읽으면서 처음엔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가 뒤늦게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격으로 벼락치기 공부 하듯 지난 달까지 완독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초조해 하면서 책을 읽었었다. 실로 시험치는 듯한 학생같은 심정은 정말 오랜만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메리 셸리, 이디스 워튼, 조지 엘리엇등 19세기 고전 소설을 읽으면서 빨리 읽지 못해 초조할 때는 나는 왜 이런 소설들도 그동안 읽지 못해 이 고생인 것인가? 자책 반, 이 나이에 이런 소설을 다시 읽어, 로맨스 감정을 살짝 느껴 보기도 한 감동 반을 얹어 독서 경험은 잊지 못할 듯 싶다. 사실 감동에 앞서 절반은 얄미운 인물들 욕하기 바빴지만...욕 하면서 더욱 그 인물은 잊지 못할 듯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소설은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와 샬럿 브론테의 <교수>와 <빌레뜨> 였는데 샬럿의 책을 한 권 꼽으라면 <빌레뜨>가 최근에 읽어서인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실 빌레뜨 2 권은 시간에 쫓겨 후다닥 읽어버려 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재독을 할 생각이다. 언제가 될지는 기약이 없다만....^^;;;
김숨 작가의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국내 소설을 워낙 적게 읽어서 선택하기 쉬웠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읽히는 책은 아니다.
'위안부' 고 김복동 할머님의 증언집을 작가가 소설로 만든 책이지만 한 편의 아름다운 시집처럼 읽힌다. 슬픔이 극대화 될까 두려웠는데 절제미가 압축되어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한 책 읽기' 프로젝트에 이 책이 선택되었고, 연말에는 작가를 초대하여 북 콘서트를 하는데 김숨 작가님이 우리 동네에?? 얼른 신청하여 달려가 보았더니 수수한 차림의 김숨 작가님을 뵙고 책에 싸인도 받아왔었다. 이러저러 김복동 할머님과의 에피소드를 풀어 주셨는데 메모를 한가득 적어왔건만, 다미여 책을 읽느라 제대로 된 에피소드를 적진 못하고 간단하게 기록만 올려 조금 아쉬웠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
부커상 엔터내셔널 후보로 선정된 책이라고 하여 유명해 얼른 사서 읽었던 책이다.
한여름엔 스릴러물을 찾아 읽는 관행이 있어 올 여름엔 이 책을 선택해서 읽었었는데,
좀 오싹한 단편들이 몇 개 눈에 띄었었다.
올 해는 토끼의 해, 나의 해!
저주 토끼는 얼른 행운의 토끼로 바뀌길!!!!
있어서 안 되는 것은 실제로 있을 수 없다! 바이닝거는 유대인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었다. 가정부는 가수의 관심을 절대 받지 못하는 무명의 인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가수의 눈에 가정부는 이름 없는, 가난한 처녀일 뿐이었다. 그래서 탈출구는 죽음뿐이었다. 있을 수 없는 것은 실제로도 있어서는 안 되니까. 혐오스러운 유대인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유대인이 아닐 수 있는 현실의 길은 죽음이었다. 가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수의 눈길 한번 받을 수 없는 인생을 사느니,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부정의 길이 곧 자살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길이 아니다. 그 어디로도 이끌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바이닝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하던 불쌍한 처녀가 죽었다고 가수의 품 안에 안길 수야 없지 않은가. 결국 자유죽음은 ‘무의미‘하다. 이 말은 모든 경우에 남김없이 적용될까? - P61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희미하긴 한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는 화자가 어린 아이다. 늘 같은 시간에 공원을 걷는 좀머씨를 이야기하는 어린 화자. 이 화자는 피아노학원에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데, 어느날 선생님이 코를 판 손으로 건반을 누르는 바람에 코딱지가 피아노에 묻어있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자신이 다음에 쳐야할 건반이 바로 그 건반이 아닌가. 저 건반을 누르기 싫다, 그렇다면 코딱지가 손에 묻게 된다. 그 건반을 치길 망설이노라니 선생님은 자꾸만 윽박지른다. 얼른 치라고, 치라고! 하는수없이 이 소년은 그 건반을 치고 학원이 끝나는 길에 너무 치욕스러워 죽고자 나무를 타고 오른다. 죽자, 죽어야 된다, 선생님의 코딱지라니, 수치스럽다, 치욕스럽다, 죽어야 한다! 아마 그 올랐던 나무 위에서 또다시 걷는 좀머씨를 소년은 봤던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소년은 죽으러 올라갔으나 죽지 않고 살아 내려온다. 내가 왜 코딱지 때문에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 왜 코딱지 때문에 죽어야 해?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코딱지 때문에 죽고자 했다면 그 코딱지는 내가 생각하는 코딱지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코딱지에 대한 치욕과 수치의 정도가 달랐던 것일테다. 야 코딱지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고? 말도 안돼, 살아! 그러나 그 사람은 코딱지를 건드린 자기 자신을 도저히 이 세상에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다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장 아메리의 책 《자유죽음》에서 가져온 인용문 61페이지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유대인인데 유대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가수의 관심이 없는 삶이라면 내게 그 삶은 의미가 없다. 유대인이라는 것은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고 내가 뜯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존재이며 정체성이니까. 가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삶을 가치없다고 말하는 것은 가정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인데, 그러나 가정부에게 그것은 너무나 크다. 자신의 삶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장 아메리의 책에 이런 사례는 실제 인물과 소설속 인물들을 포함하여 몇 가지 더 나오는데, 시험 성적이 안좋아서 죽기를 결정하는 소년이 나오고, 소위라는 명예를 잃게 되는게 너무 치욕스러워 죽기를 결심하는 인물이 나온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사실은 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살다 보면 그 일은 그렇게 큰 게 아니고 다른 더 큰 기쁨이 찾아올 수도 있고 미래는 예측불허 이므로 살다보면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었구나 깨달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런데 그들에게도 정말 그럴까? 이미 내 앞에 닥친 이 어떤 것이 나에게 너무 큰데, 이것은 내 삶을 더이상 유지하지 않고 싶을 정도로 만들었는데, 그런데 견뎌내야 할까? 이런 내가 이런 삶이 싫어서 나는 없음을 택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존중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죽음 일 것이었다.
나는 장 아메리가 말하는 자유죽음의 의미를 알겠고, 그것이 자신을 살해하는 자살과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자신의 치욕 자신의 수치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없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도 알겠다. 리뷰에 썼던 것처럼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것이 많은데, 그건 '나 자신을 학대로 밀어넣음으로써 나 자신의 주체를 확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였다. 샐리 루니의 소설 《노멀 피플》에서 메리앤이 자신을 때려달라고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말했던 일이 그렇다. 아빠와 오빠가 어린시절부터 나에게 가했던 폭력은 내 통제 밖의 일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 맞닥뜨린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나랑 섹스하는 남자에게 '나를 때려줘'라고 말하는 일은 내가 시킨, 내가 정한,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때리는 일을 통제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서 내가 나의 주인임을 자각하고자 하는 일을, 그전보다 나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 이런 일들을 듣거나 읽거나 보게 되는 것은 그저 고통이기만 했다면 이제는 거기에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너의 존재에 주체성을 부여하는구나, 라는 인식이 스며들게 된것이다.
강간판타지 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아주 오래 그리고 늘 생각해왔다. 강간당했던 그 폭력의 시간은 고통이었고 통제할 수 없는 갑자기 일어난 사고였다면, 그러나 내가 지금 섹스하면서 강간을 당하는 설정을 만든다는 것은 그 통제할 수 없었던 시간을 벗어나 자신의 통제 안에 그것을 두려 함이겠구나, 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학살 속에서 견디어 냈으면서도 종국엔 죽음을 선택했던 사람들에게도 나치의 학살은 내 통제 밖의 일이었지만, 그러나 내 생명을 끝내는 것을 나는 내가 통제하겠다, 는것. 그 지점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거다. 그러나,
이해했다고 해서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거'가 없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 아메리의 책을 읽고 이 지점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책을 읽고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것을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러나 메리앤이 선택한 것, 강간 피해자들과 전쟁의 피해자들, 역사적으로 학대의 생존자들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자유죽음' 보다는 자살에 가까운 게 아닌가. 그러니까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에 그 일이 없없다면, 그들이 선택하지 않았을 일이라는 거다. 메리앤에게 아빠와 오빠의 폭력이 없었다면, 메리앤이 굳이 주체성을 가져오기 위해 섹스중인 남자에게 '나를 때려줘'라고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성폭력 생존자에게 성폭력이 없었다면, 굳이 섹스중인 상대에게 '나는 강간판타지가 있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전쟁이나 민족학살이 없었다면, 그들이 내 죽음을 내가 선택한다고 죽음에 이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결국 내 죽음을 선택했으므로 이것은 자유죽음인가? 하면 나는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다. 그 죽음이 그들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존중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의 죽음 자체에 대해 존중을 보낼 수 있을 지언정, 그러나 그것이 자유죽음인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데에는 순전히 자기가 결정했던 일들만이 채워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좀머씨의 소년과 그리고 가수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가정부와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코딱지를 눌렀던 나, 가수를 좋아하는 나, 시험을 망친 나, 좋아하는 여자가 나를 좋아하지 않음 같은 것들은 설사 본인에게 엄청난 치욕이었을지언정 그것이 누가 나에게 해를 입힌 것은 아니다. (아 코딱지는 좀 다르겠다) 그러나, 폭력은, 강간은, 학대와 학살은 다르다. 그것은 누군가 나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힌 것이고 그것은 내 통제 밖의 일이었으며, 그것이 '나의' 치욕이 되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피해자가, 생존자가 그것을 치욕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아빠가 나를 때린게 치욕스러워, 강간범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게 치욕스러워, 나는 이 삶을 끝내고 싶다, 는 그것이 내가 결정해야 하는 나의 수치가 아니라는 거다. 그 수치는 그들의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가해자의 것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폭행을 가한 폭행자의 것이 되어야 하고 강간을 한 강간범의 것이 되어야 한다. 학대와 학살을 일삼은 가해자들이야 말로 수치와 치욕을 느껴야 했는데, 그런데 피해자와 생존자가 그것을 느끼고 이런 삶을 버틸 수 없다, 고 죽어버리는 것은 그것은 자신을 살해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든 약을 먹었든, 그것을 '행한' 것은 나일지언정, 나를 그렇게 행하게 만든 것은 '나의 수치'가 아니라는 거다. 그것을 행하게 만든 것은 '가해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그것이 자유죽음이 아니라 자살, 자신을 죽인것이 되지 않나. 그러나 여기에서의 자신을 죽인것이, 정말 '나 자신'인가? 이것은 자살인가? 그래서 나는 자살과 자유죽음은 그 사이에 아주 먼 거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자살은 자유죽음이 아니고 자유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다시, 올리브》에는 공부를 잘하고 인기도 많았던 여학생이 대학에 들어가서 자살하게 된 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알고보니 어린 시절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것. 결국 집으로부터 멀어졌지만 그녀는 끝내 자신에게 죽음을 내린다. 이것은 자유죽음일까? 한 여성의 삶이 중간에 끝나버려 없음이 되는 것,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 것, 그러나 그 죽음을 그녀에게 행한 것이 그 자신이기 때문에, 이것은 자유죽음인가? 장 아메리도 자유죽음을 자살과 구분한다. 처음부터 그걸 다르다고 언급하고 시작한다. 자유죽음은 자살과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나 역시 동의한다. 이것은 이렇게나 다르니까.
But he remembered where he was-right outside the main gorcery store here in town-when he found out that she had vinished Vassar and then killed herself. It was Trish Bibber who told him, a girl they had been in school with, and when Denny said, "Why?, " Trish had looked at the ground and then she said, "Denny, you guys were friendly, so I don't know if you knew. But there was sexual abuse in her house."
"What do you mean?" Dinny asked, and he asked because his mind was having trouble understanding this.
"Her father," said Trish. And she stood with him for a few momints while he took this in. She looked at tim kindly and said, "I'm sorry, Denny." He always remembered that too: Tisht's look of kindness as she told him this.
So that was the story of Dorie Paige. -p.144-145
하지만 그녀가 바사를 졸업하고 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했다-타운의 큰 식료품점 바로 앞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녔던 트리시 비버였다. 데니가 "왜 그랬대?" 하고 물었을 때 트리시는 땅을 내려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데니, 너희 둘이 친하게 지내서 혹 알았는지도 모르겠는데, 집에서 성적 학대가 있었대."
"무슨 뜻이야?" 데니가 물었다. 자신의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랬대." 트리시가 말했다. 그리고 데니가 그 말을 이해하는 동안, 잠시 그와 함께 서 있었다. 트리시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참 안됐어, 데니." 그는 그것 역시 늘 기억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할때 트리시가 보여준 다정한 얼굴.
도리 페이지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책 속에서
아침부터 이 긴 글을 꼭 써야했다. 혹여라도 수많은 어떤 여성들과 남성들의 자살이 자유죽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까봐, 그렇게 가해자들이 빠져나갈까봐. 너네 죽음을 너네가 선택한 거잖아, 라고 제삼자가 말하게 될까봐. 그렇게 그 사이에 있던 폭력과 학대를 못본 척 할까봐.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서. 이 생각이 내게 내내 있었다. 어떤 '살아야 해!'는 그것이 단지 내 기준에서의 삶이 더 나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어떤 '살아야 해!'는 그 수치가 네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당신의 것이라 생각해서 죽음으로 걸어가는 일을, 당신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 말하고 싶다. 그 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Mauritshuis 를 갔을 때 본 사진이 생각나 가져온다. Morad Bouchakour 의 작품 <Traces (part2)> 이다.
다락방 2022-08-22 공감 (24) 댓글 (15)
img
감정선을 참 섬세하게 다듬어 끌고가는 힘을 가졌다.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씨.
캐릭터들의 각각의 애티튜드는 그냥 생각하는 대로 나왔다기 보담 오랜 관찰과 고심을 통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편은 뭔가 압박과 부담스러운 기교가 느껴졌다면,
이번 속편에서는 물 흐르듯 힘을 뺀 전개가 편안하게 다가와 한층 무르익은 작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 덕분에 더이상 개인적인 소설 기피증을 들이대 불평을 하기는 좀 힘들어져 버린.
여전히 세상이 변해가는 얘기들을 잡다하게 끌어왔으나 좀 더 세련되게 에둘러 하고 싶은 얘기들을 했고,
작가 스스로가 60대에 진입한 탓인지 중심 인물인 올리브를 전편보다는 능숙하게 컨트롤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솔직히 죽음에 대한 얘기는 불편하다. 진짜로 혼자가 된다는 상상은 더 불편하다.
이 책을 30대나 그 이전에 읽었다면 아마 조금은 더 감상적인 기분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살짝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은 듯. - 주인공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허세 부려봤자 허세라는 걸 인정해야만 할 날이 올 것이라는 느낌이 슬슬 오는 것.
레오나르도다빈치 전기를 쓴 월터아이작슨씨가 주변에 호기심을 가지면 삶이 변한다는 그런 뉘앙스의 얘기를 했었는데,(금붕어라 뉘앙스 정도의 기억이 최선) 이 작가야말로 다채로움을 지닌 눈길로 주변을 바라보며 평생 호기심어린 삶을 살아가는가 싶어,
내심 부러워졌다.
갱지 2022-04-04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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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에이미와 이저벨》, 《버지스 형제》까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기존 작품들을 읽고 본다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안읽는다고 이 책이 재미없는 건 결코 아니지만!
당신과 내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 나이들어가고 죽는것까지, 이 책 한권에 인생이 있다. 구매
다락방 2020-11-26 공감 (35)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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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려는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지만, 곧 언제일지 모를 자신의 죽음의 두려움을 동시에 떠올리는 삶. 알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깊은 공감은 아닐 것이다. 어느정도 삶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고 나면 아직 나는 더 성장해야 할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 성장할 수 있게 해 줄 작가의 책들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구매
책읽는나무 2022-02-18 공감 (27)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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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은퇴 후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만 실제로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는 늙어감이 신체나 정신,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나이든 올리브와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구매
Blue 2020-11-27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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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물론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인종에 대해 의식할 필요없이 단지 인간으로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맛볼 자유를 누리는 백인들만이 등장하는 소설을 더이상 전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백인들만의 세계에서 인생의 고통은 불륜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혹은 성도착증이거나. 구매
초록비 2020-12-10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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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게 슬프고 비슷하게 질척인다. 우리는 모두 최악의 자신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다 좋았다. 구매
Yujin 2021-08-3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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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끌어안고 가야 할 나쁜 기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206p) 괴로워하는 신디 쿰스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기도 올리브의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잭과 결혼한 조금 더 나이든 올리브는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잘 알아본다. 그들을 찾아가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지나치며 “너 캘러헌 씨 딸이더구나.…… 좋은 분이었는데 돌아가셔서 유감이구나.”(84p)라고 하는 짧은 말로 케일리에게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따금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올리브는 전 남편 헨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괴롭다고 한다. 누구나 뒤를 돌아보면 다 후회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녀는 전보다 더 말이 많아지고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신디처럼 항암치료를 하며 회복될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과 외로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찾아가서 어떤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나도 죽는 게 죽을 만큼 무서워. 그건 사실이야.”(206p) 올리브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녀가 공감하고 위로하는 방법이다. 몸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본 노년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 …… 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207p)
올리브 키터리지는 큰 몸집으로 나타나 잊지 못할 위로를 남긴다. 삶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면서 그녀는 타인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워간다.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2월과 3월 그리고 여름과 가을의 햇볕의 차이를 아는 것이 바로 인생의 황혼이라는 생각이다.
「한낮의 빛이 끝을 향하면서 입 벌린 모습을 한 태양이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노란색을 쏟아냈고, 그 빛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리비쳤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했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올리브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그녀는 경외감이 깃든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했다. “2월의 저 햇빛 좀 봐.”」
(224p)
신디와의 대화, 그리고 신디가 잊지 못할 이 광경, 올리브가 자신이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외침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느꼈다.
잭과의 결혼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것”(212p) 이라고 말한 것처럼, 잭의 죽음과 홀로됨, 심장마비, 실버타운 메이플트리 입주도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계절이 바뀌고 그때마다 빛이 달라지듯 삶이 변화해가는 것이다. 여전히 올리브는 사람들의 눈에 띄고, 탐조등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낸다. 점점 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탐사하듯 대화를 이끌어간다. 사람들은 그 대화 속에서 외로움 불안 상처를 드러내고, 위로를 받고,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는다.
그녀 스스로도 잭에게서 신디에게서 이저벨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잭은 올리브에게 “당신 기분 좋게 만드는 건 참 쉽구나”(244p) 라고 말한다. 그렇게 쉽게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는 반면 우리는 그 방법을 모를 때가 많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고백한 것처럼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459p)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459p)고 생각한다. 늦은 건 늦은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누구나 나쁜 기억 한 두 개쯤은 끌어안고 살아가니까. 헨리를 보내고 잭과 결혼한 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을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 때 올리브가 가장 올리브다울 때다. 작은 친절에도 기분 좋을 수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 올리브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져가고 노화를 겪으며 죽음에 가까이 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서툰 일이다. 거듭되는 상실 역시 반복된다고 해서 적응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누구의 간섭도 싫어했던 올리브가 수다스러워지는 순간을 보며 나이 들며 가장 두려운 것은 혹시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며 헨리를 외롭게 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기분 좋게 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이 그녀가 끓어안고 가야할 나쁜 기억일 테다.
나의 노년은 몇 월의 햇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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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05 공감(54) 댓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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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좋다 새창으로 보기
친구들과 『Olive, Again』을 같이 읽고 있다. 일주일에 한 챕터씩 읽기가 계획인데 미루는 성격이라 금요일 오후쯤 되어야 아! 올리브! 하고 책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숙제가 급한 초등학생처럼 바쁜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하지만, 소설 자체가 갖는 이야기의 힘 때문에 나도 모르게 휘리릭 빨려 들어간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58쪽)
이 구절이 좋았다. 올리브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잭의 전화를 받고 그의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영화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올리브의 생각이 그대로 표현되는 장면.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올리브의 생각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상황. 그런 순간이 좋다. 전능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상황과 생각, 계획과 예상 그 밖에서 마치 인형 같은 주인공을 내려다보는 순간.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이 책을 사야지! 하고 결심했다.
소설은 흔히 가볍고 쉬운 이야기라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역사의 격랑’, ‘이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화와 타협’ 같은 거대 담론을 주제로 삼지 않으면 더더욱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기억하는 예전 학교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고, 먼 도시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편과 사별 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이제 더는 혼자 살 수 없어 요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이 모든 과정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경험들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 이런 경험들은 모두 하찮게 여겨진다.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인간으로서의 불행과 행복은 이런 작은 순간에 맺혀 있는데도 말이다.
가까운 친구 중에 엄마를 집에 모시고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돌보거나 저녁을 챙겨드리는 친구들이 모두 넷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 너무 버거울 때, 그때 느끼는 무력감과 죄책감은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모든 일을 사랑과 도리, 효와 애정의 문제로만 설명한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 그 모든 무거운 짐을 껴안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딸, 며느리, 손녀는, 말 그대로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다. 불평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랑이 부족해서이고,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은 일이고, 효심이 부족해 생기는 마음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 이생을 살고 늙어가고, 그리고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소설이 좋았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우리는 결국 인간이고, 그래서 또는 그러므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숨기지 않고 말해줘서 좋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건 다른 인간의 관심과 애정, 따뜻한 음식과 다정한 손길이라는 걸 말해줘서 좋았다.
좋았던 또 하나의 구절은 바로 여기다.
잠시 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내에게 수잰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한 가지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수잰이 그를 어떻게 도와주었는지는 그만의 비밀로 남겨둘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혼자 간직하는 숱한 비밀을 생각해보면, 그런 정도의 비밀은 전혀 나쁠 게 없다고, 그는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189쪽)
만나자마자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해결책을 찾는다기보다는 고민의 ‘토로’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그냥 들으면 된다. 고민을 넘어 쉽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헉! 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져도 차분히 그 이야기를 듣는다. (단발머리의 고민 상담소 : 비밀 보장) 내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비밀이라 내게 말하는 것일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경우의 수는 없다. 마주 앉아 가만히 비밀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웬만큼 비밀을 털어놓은 후 어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제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저요? 저, 뭐요? 제 고민이요? 아니, 제 비밀이요? 그니까? 네? 작은 거밖에 없어요. 제 고민은 다 자잘하고. 아… 제 비밀이요?
비밀이라.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온 세상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도 무척 많은데. 하지만 내게도 한두 개의 비밀은 있다. 그 사실 자체가 비밀은 아니지만, 지난한 과정과 구구절절한 사연이 비밀인 비밀. 난 누구에게도 그 비밀을, 비밀들을 말하지 않았다. 글로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면,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면, 94세쯤에 비밀과 비밀들에 대해 쓰고 싶다. 내가 내렸던 바보 같은 결정과 그로 인한 파장,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과 그래야만 했던 결정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후회에 대해 쓰고 싶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소리쳤던 수많은 밤과 밤처럼 어두웠던 낮과 눈물의 기도들과 내 기도의 응답에 대해 쓰고 싶다. 94세쯤에 그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면. 하지만 그전에는 말하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쓰고 싶지 않다. 내 비밀은, 내게는 이렇게나 크다.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버니가 수잰을 위로해줄 때, 앞으로 그녀가 간직하게 될 비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밀의 책임은 네가 지고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할 때, 좋았다. 수잰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한 버니의 말을 들으며 내가 안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비밀도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버니가 허락해 주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좋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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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03 공감(37) 댓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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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에 평범한 인생, 죽음도 없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6월 어느 토요일 이른 오후, 한남자가 위스키를 사러 가기위해 스포츠카에 올라 탄다..
메인 주 크로스비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올리브 키터리지와 마주 치는 니 차라리 한 시간 걸리는 포틀랜드로 갈 것이다.
그 여자, 남편과 사별한 키 크고 덩치 큰 이상한 여자
포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우고 물가를 따라 걸었다.
6월중순 하늘은 푸르고 갈매기는 부두 위를 날아다녔다.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잭 케니슨,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배짱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누볐다.
박사학위를 두개나 가진 잭 케니슨,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죽은 아내 벳시를 떠올렸고 동성애자인 딸에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큰소리로 울부짓고 싶었다.
전립선 수술 휴우증으로 패드를 차고 있는 것보다 더 불편한 감정이 작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갈매기를 올려다 보며 생각했다.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이제 잭은 이상할 정도로 솔직한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에게로 마음이 흘러 갔다.
몇 번 저녁을 먹으로 갔고 딱 한번 콘서트를 보러 갔다.
음, 그녀와 키스 하는 순간 따개비가 잔뜩 들러붙은 늙은 고래와 키스 하는 것 같았다.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랑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
만화경 속 여러 색깔 들이 교차하는 것처럼 그의 눈앞에 헤엄쳐 다니는 자신의 삶 지나간 삶과 현재의 삶을 생각 했다.
'당신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잭 케니슨.'
그래, 올리브 키터리지
잭은 종이를 꺼내 펜을 들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혹 당신이 전화해주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나를 보러 와 줄수 있다면 아주 기쁠 거에요.'
잭은 편지에 서명을 한뒤 봉투에 집어넣었다.
침을 묻혀 봉인하지 않은 채 보낼지 말지는 내일 아침에 결정 할 것이다.
손목에 죽은 남편 헨리의 시계를 차고 다니는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
6월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재킷을 입고 있다.
올리브는 눈 앞에 펼쳐진 만을 혼자서 바라보고 있다.
햇살은 물 위로 영롱한 빛을 튕겨냈고 작은 섬의 나무들은 차렷 자세로 서있다. 음식을 씹는 작은 소리가 들렸고 깊은 외로움이 그녀를 공격했다.
이 모든것이 잭 케니슨 때문이었다.
이번 봄에 몇 주 동안 만난 끔직 하게 늙고 돈 많고 허세 심한 남자.
그가 좋았다.
그의 옆에 누워 그의 가슴 팍에 머리를 대고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때면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멍청한 여자들보다 올리브를 더 좋아 하고 있다.
아니, 올리브는 항상 남자가 좋았다. 아들을 다섯명 정도 낳고 싶었다.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에도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 남자와 기나긴 결혼생활은 마치 세월에 흔적으로 할퀴고 간 기나긴 돌담 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 이끼로 덮인 움푹 패여 버린 빈자리에 꽃이 피키는 커녕 휘몰아치는 얼음 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같다.
' 당신이 좋아요. 올리브'
올리브 키터리지는 잭에 죽은 아내가 사 놓은 새칫솔을 썼다.
잭과 올리브가 함께 산지 오년째
잭은 일흔 아홉. 올리브는 일흔 여덟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서로를 꼭 끌어 안고 잠을 잤다.
잭은 자신에 인생이 이런 여자와 이런 식으로 마지막 나날을 보내게 될 거 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따금씩 어둠 속에서 잭은 죽은 아내의 존재를 느꼈다.
올리브와 함께 사는 시간이 마치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느낌이였다.
도로에 그어진 흰색 선 말고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고 강을 따라 달리면서도 옆 좌석에 앉아 온갖 불평 불만 불안을 쉼 없이 지껄이는 이 여자 올리브가 자신에 아내라는 사실, 함께한 시간이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 한 날은 저물었다.
끝났다. 사라졌다.
찬란한 가을, 잎은 나무에 매달려 그 색깔이 연중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태양이 날마다 그 모든 것에 햇빛을 비춰주었다. 세상은 반짝 거렸고 노란색과 빨간색 오렌지색 연분홍색이 만으로 뻗은 길을 올리브는 차를 타고 지나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 앞문에서 숲이 보였다 .매일 아침 문을 열 때 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첫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현관 벽장에 잭의 코트와 스웨터가 그대로 있다.
첫 남편 헨리가 죽자마자 그가 입던 옷은 재빨리 없애버렸다.
요양원으로 들어 갔을 때는 그가 입고 신었던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옷장을 문을 열면 잭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 나온다.
잭이 잠을 자다 죽었을 때. 공포가 큰 바다처럼 덮쳐서 하루하루 겁에 질려 지냈다.
돌아와 돌아와 잭, 두사람이 함께한 8년에 세월,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기이하게도 올리브는 자신에 진짜 남편을 잭으로 생각하고 있다.
분명 헨리가 첫번째 남편이지만 잭은 진짜 남편이었다.
다시, 6월이 찾아왔다.
추도식이 열리는 날 기저귀 팬티를 입고 왔다,
올리브는 두 명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난 후 자신도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끝이 다가 왔다.
기저귀 팬티를 입은 채 의자 위에서 엉덩이를 조금 옮겨 앉았다.
헨리를 생각했다 젊은 날 그에 눈에 깃들어 있던 다정한 눈빛, 잭에 영리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들 크리스토퍼
생각해보면 그녀는 운이 좋았다
두남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스스로를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자기 자신 이었다는것을
다시 봄이 찾아 왔다.
올리브는 타자기에 이런저런 기억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올리브는 타자기를 치면서 행복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종이가 쌓여가는 것도 좋았다.
어떤 날은 자신이 쓴 것을 다시 읽었고 어떤 날은 읽지 않았다. 종이는 서서히 쌓여갔다.
헨리는 신을 믿었다.
올리브는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고 시선을 내려 장미 꽃을 바라보았다.
심은지 딱 한해 지났을 뿐인데도 그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피어난 꽃 뒤로 또 한 봉오리가 막 피어나고 있다. 새로 맺은 싱싱한 봉오리 모습
올리브는 뒤로 기대 앉아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래, 그날이 올 것이다.
안경을 쓰고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웠다.
자판을 톡톡 쳐서 한 문장을 타자 했다.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가지도 알지 못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하는지 모른채 스스로에 삶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조차 찾아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세상에 평범한 인생은 없다.
헨리 키터리지,잭 케니슨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에 인생 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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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1-18 공감(3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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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하게 늙은 오늘 아침에도 해는 떴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2008년에 발표한 <올리브 키터리지>의 오지랖 넓고 무뚝뚝하게 친절한 올리브 할머니는 2019년, 여태까지 생존해 있어서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로 하여금 올리브 할머니의 74세부터 84세까지 노년의 십년 동안을 독자에게 다시 보고하게 했다. 그동안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이 두 번 연임을 했고, 오렌지 껍질 색깔의 머리카락이 두드러지는 거구의 백인 대통령이 새로 집권을 했다. 전편 마지막쯤에서 올리브가 가슴에 머리를 뉘고 언젠가는 멈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던 두 개의 하버드 박사 타이틀 소유자이자, 재수없는 공화당 지지자이자, 배불뚝이에다가 매사 조롱조로 말하는 것이 습관이어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별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부자인 잭 케니슨과의 두 번째 결혼도, 올리브가 입방정을 떤 대로 드디어 심장이 멈춘 순간이 도래해 두 번째 과부가 되었다. 아들 크리스토퍼를 보자 하면, 각기 아비가 다른 큰아들과 큰딸을 데리고 들어온 며느리 앤이 올리브의 친손자 리틀 헨리에 이어 한 번 사산을 하고 딸을 낳았는데, 또다시 임신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며, 이번엔 욕조에서 출산할 계획이었지만, 이유는 모르겠고 단산을 하고 만다.
올리브 키터리지 여사는, 큰 키에 건장한 체구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했던 몸이 나이가 들면서 척추 사이도 좁아지고, 무릎도 뭐 그렇고 그런, 노화현상으로 인해 조금쯤 쪼그라들어가는 것을 스스로도 알았다. 인생이 뭐 다 그런 거지 별거 있나. 근육의 탄력이 없어져 많은 나이든 여성에게 요실금이 찾아와 삶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올리브 할머니는 조금 더 실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지만 사실은 그리 드물지 않은 질병인 변실금 증세가 있어 여든이 넘어서는 일회용 시니어 언더웨어인 디펜더를 착용해야 외출이 가능한 형편이 된다. 노인의 몸으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직접 차를 몰고 다니던 미용실 앞에서 하루는 고개를 푹 수그려 경적을 계속 울리기에 미장원 여사님이 냅다 달려가 봤더니, 졸지에 심장마비가 와서 심 정지, 죽음의 상태를 거쳐, 집중치료실 신세를 지기도 하고,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이 매우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헨리와 함께 지은 집은 벌써 팔았고, 이제 다시 잭 케니슨의 집도 팔아 실버타운인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입주해 노인들의 공동생활로 편입된다. 크리스토퍼만 신났겠지? 잭 케니슨의 집을 판 돈을 포함한 잭의 모든 동산과 부동산은 당연히 법적 배우자인 엄마가 갖고, 엄마 돌아가시면 그게 누구 거? 살아있는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겠어, 죽은 잭의 외동딸 캐시겠어. 이런 망할 생각은 하지 말자, 이거다. (나는 그런 복도 읎어요 글쎄.)
그런데 여기서 스트라우트는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에피소드가 좀 모자란다 싶었나보다. 그래서 그랬는지 올리브 할머니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도 책에 포함시켰다. 과부 엄마와 함께 사는 8학년 여자아이 케일리 캘러헌의 에피소드 <청소>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남편에게 이실직고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현직 검사 수잰의 이야기를 그린 <도움>은 올리브 이야기와 지극히 독립적이다. 완벽하게 한 작품으로 출간해도 좋은 단편소설이 될 <망명자들>은 2013년 출간한 장편소설 <버지스 형제>를 이어서 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에피소드 <친구>는 1998년 작 <에이미와 이저벨>의 뒷이야기가 상당부분 포함되었을 것이다. 역자 해설을 보고 짐작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올리브>가 품은 열세 가지 에피소드의 공통점은 무대가 메인주의 크로스비 타운에서 벌어진다는 점. 포틀랜드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가상의 공간으로, 스트라우트의 대학시절 룸메이트 엘런 크로스비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에피소드와 공간을 섞어 제목을 <크로스비의 올리브> 정도로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어디까지나 제목 짓는 건 작가의 권리니까 독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마땅하지 못하긴 하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이제 막 노년으로 행사하는 건장한 할머니의 따뜻한 좌충우돌, 그래서 젊은 시절의 찬란했던 사랑과, 불륜과, 열정과, 외로움을(하긴 열거하는 네 단어는 사실 같은 뜻의 말이긴 하지만) 추억하면서, 이제 노년에 이르러 그런 거 다 지나가는 거야, 달래기도 하고, 또는 지금 옆에 누워있는 원수 같은 배우자가 죽은 다음에 도사리고 있는 고독함이라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하면, <다시, 올리브>는 여든을 좌우한 나이에 이르러서 과거의 폭풍 같던 단어들이 이젠 더 이상 상처로 와 닿지 않은 지경에 도달한다. 원수 같은 배우자를 정말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매장하는 경험 끝에 실제로 다가온 외로움이란 지옥을 체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완전히 타인의 경지에 이른 친자식과의 교류는 여전히 모래뿌린 아교 위 같았지만 그래도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최후의 방법이 남아 있었으니, 부모가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다. 그리하여 자식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하지만, 아쉽게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밖에 없고, 부모의 가슴 속엔 저 먼 예전의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식에게 행했던 모진 일이 자식의 기억은 물론이고 부모의 심장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되살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식이란 부모의 심장의 바늘이라고 정의한다.
삼십여 년 전에는 학생들을 질리게 만들었던 위풍당당했던 올리브 키터리지는 과거의 학생 앞에서 이제 스스로 질려, 노인이 젊은이를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훨씬 상세하고 정확하게 젊은이가 노인을 해석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질리게’ 인식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늙어버린 올리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심장마비, 사실은 심근경색이었겠지만, 심 정지 경험을 통해 죽음 이후의 상태가 생각한 것보다 그리 나쁘지 않으며, 다시 살아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나쁘지 않으며, 노화에 이르러 인간이 약해지고, 추레해지고, 보잘 것 없어진다는 것, 심지어 변실금으로 인해 악취를 풍기는 일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물론 아직 진짜 노년에 이르지 못한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선의에 입각해 묘사를 해서 그렇겠지만 이 조마조마한 늙음의 상태, 언제 죽음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지극히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 역시 허튼 죽음의 침상이 아니라 지팡이를 짚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권유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겠지. (독후감을 다 쓰고 보니 역자 정연희도 역자해설을 이 장면으로 끝내고 있다.)
물론 미국의 부르주아 노인 이야기다. 이 가운데서도 바다가 면한 아름다운 가상의 도시 크로스비 타운의 돈 많은 늙은 과부. 노르웨이 관광을 위해 아낌없이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할 수 있는 재력이라면, 세상 어디서도 주변에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는 한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이가 서른 살이 되자 부엌에서 총으로 자신을 쏘아 자살에 성공한 아버지를 둔 전직 중학교 수학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는 인생의 거의 모든 시기를 크로스비 타운의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간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다시, 올리브>는 처음부터, 아니 앞부분에서 예일을 나와 하버드에서 최연소 테뉴어를 역임한데다 돈도 무척 많은 부르주아 잭 캐니슨과 결혼을 해서인지, 아니면 나이 들어 운동능력이 현저히 떨어서인지, 전작과 비교해 보통의 사람들과 그리 많은 교류를 갖지는 않는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는 바람에 고향에 들른 옛 제자, 미국의 계관시인이란 영광을 딴 앤드리아 르리외와, 실버타운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입주한 후 친하게 지내게 되는 ‘바지 입은 쥐 면상’ 이저벨 정도가 스스럼없이 올리브와 대화한다. 이게 전작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래도 죽음에 임박한 노인들이 자주 선택하는 형식. 삶의 달관, 초월, 안식. 이딴 것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늙음과 죽음과 죽음의 공포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 같은 실제적 모습에 집중하는 편이, 나는 훨씬, 훨씬,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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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문트 2021-11-30 공감(36)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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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p.335,336)
올리브가 돌아왔다. 2008년 발표하여 이듬해 퓰리처 상을 받은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이 11년만에 나온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메인 주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중년의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작소설이다. 학교 수학교사인 중년의 올리브가 약사인 남편 헨리와 함께 외아들 크리스토퍼를 키우는 것을 시작으로 아들의 결혼과 이혼, 애 둘 딸린 여자와의 재혼을 멀리서 지켜보며 부모로서 외로움을 느낄 무렵, 한없이 자상했던 남편 헨리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결국엔 사별하기까지의 20여 년의 시간을 13편의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
속편 <다시, 올리브>도 역시 1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편 <올리브 키터리지>가 남편인 헨리의 이야기 ('약국')로 시작했듯이, <다시, 올리브>도 두 번째 남편이 될 잭 케니슨의 이야기('단속')로 시작된다.
어느 덧 70대 중반이 된 올리브. 전편에서 남편 헨리가 죽고 뉴욕에 사는 아들 크리스토퍼와는 여전히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런 올리브에게 아내를 잃고 역시 외로움에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잭 케니슨이 다가오고 두 사람은 재혼을 한다. 다음은 잭 케니슨이 올리브에게 청혼하는 장면인데, 좋게 말해 올리브가 얼마나 자기 색깔이 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맙소사, 올리브, 당신은 정말 까다로운 여자예요. 더럽게 까다로운 여자. 젠장, 그런데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괜찮으면 올리브, 나하고 있을 땐 조금만 덜 올리브가 되면 좋겠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땐 조금 더 올리브가 된다는 걸 의미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시인' 中 (p.336)]
<다시, 올리브>에는 올리브를 중심으로 전편에서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늙어감과 죽음'이다.
올리브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제자에게 자신도 죽음이 무섭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 - '햇빛' 中 (p.207)]
또한 82살의 올리브는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제자에겐 나이를 먹으면 어떤 기분인지 말한다.
["나이가 들면 투명인간이 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자유를 주지.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말이야. 거기에 뭔가 자유를 주는 측면이 있지" -'시인' 中 (p.324,325)]
늙으면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올리브의 말은 삶을 초월한 노인의 말 같으면서도 쓸쓸하게 들린다. 더이상 내가 아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할 기력마저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슬퍼하기엔 남은 생이 너무 짧은 것일까? 아마도 처음엔 올리브도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에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8년 간 결혼 생활을 한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정말로 혼자가 된 올리브는 이런 현실을 슬퍼하기 보다는 노년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올리브는 두 번째 남편 잭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헨리 생각을 한다. 헨리가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첫 번째 남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헨리는 영영 알 수가 없으니 괴롭고 힘들다.
"내가 별로 잘해주지 못했다는 거야. 그게 지금 마음 아픈 거고. 정말로 마음이 아파. 요즘 이따금-드물게,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이따금-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헨리가 내게도 그런 모습을 전혀 못 봤다고 생각하면 정말 괴로워." -'햇빛' 中 (p.205)
올리브의 이 고백이 나는 정말 너무나 슬펐다. 올리브가 헨리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던가. HBO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면 올리브가 얼마나 집안 분위기를 자기 맘대로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아, 그 숨막히는 식사 장면!) 또한 헨리에게 말과 행동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근데 그런 올리브가 지금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제자 문병을 가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올리브 성격 상 대화 상대도 없고 전 남편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을 잭에게 말 할 수도 없으니 아픈 옛 제자를 주기적으로 찾아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후회의 연속이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 또 다시 후회하고 슬퍼하고 뉘우치고 또 다시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올리브를 비롯한 <다시, 올리브>속 인물들은 모두 이런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삶의 상처와 결핍을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방황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에서 크게 엇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들이 인간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인생에 있어서 값지고 소중한 것들은 그 존재를 깨닫기 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어쩌면 모든 인간이 지닌 슬픔의 근원이 아닌가도 싶다.
잭도 떠나고 심장마비를 일으켜 극적으로 살아난 올리브는 노인 거주 단지로 거처를 옮긴다. 올리브는 이제 끝이 다가왔음을 안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자신의 삶을 거쳐갔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헨리의 다정한 눈빛, 잭의 영리한 미소, '심장의 바늘'인 아들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와의 관계는 늘 삐그덕거렸으나 헨리와 잭, 두 남자의 사랑을 받은 올리브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여자였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지난 삶을 글로 남기려는 올리브는 다음과 같이 타자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친구 이저벨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p.460)
올리브는 자기가 누구였는지 깨닫고 세상을 떠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지난 삶을 되돌아 보고 기록하면서 조금씩 후회하고 성찰하며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가지 않을까?
곧 2월이 올텐데 아마도 올리브의 이 말이 귓가에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2월의 저 햇빛 좀 봐."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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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1-03 공감(30)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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