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달라이라마, <한 원자 속의 우주>
달라이 라마를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물론 그와 데이비드 봄과의 관계 때문이다.
달라이라마는 1979년 영국여행을 하면서 데이비드봄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보는 즉시 친밀감을 느꼈다고 한다. 두 분의 우정은 1992년 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지속되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달라이라마는 1959년 스물넷의 나이에 인도 다람살라에 티벳 망명정부를 세운 이후 전 세계 석학들과 교유관계를 가지며 불교와 과학의 대화에 적극 참여했다.
이 책은 그 대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시절부터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훈련받은 티벳의 영적, 종교적 전통의 계승자가 최첨단 현대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여 자신의 사상체계에 통합시켜나간 기록이다.
달라이라마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단지 개인적 지적호기심 차원만의 것은 아니다. 그는 “내가 망명하기 전에도, 티베트의 정치적 비극의 원인들 중 하나가 현대화에 대해 문을 여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현대과학과 불교철학이 궤를 같이 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특히 불교철학중 ‘공(空)’사상에 대한 기존의 편벽된 이해를 딛고 신선한 관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에서부터 비롯된 ‘관찰자의 역할’이라는 주제는 양자역학의 기본문제들 중 하나이다. 전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이 원리는 관찰자가 전자의 운동량 알기를 선택하느냐, 위치 알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측정값이 달라진다고 해석된다(물론 반론도 있다). 즉, 관찰자가 관찰되는 실재성의 참여자 위상을 갖게 된다. 이는 ‘이중슬릿실험’ 등 물리학계의 단골메뉴로 재론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달라이라마는 마음과 물질의 관계에서 이 ‘관찰자의 역할’이라는 주제가 불교사상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고 한다.
불교철학에는 대립되는 양극단이 있는데, 그 한 극단은 불교실재론자들의 자리다. 그들은 물질적 세계가 나눠지지 않는 입자들로 이루어졌으며, 객관적 실재성이 관찰자의 마음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 반대 극단에는 속칭 유심론자들이 있는데 바깥세계의 어떠한 객관적 실재성도 거부하면서 이를 관찰자 마음의 외연으로 여긴다.(나는 사실 이 유심론이 불교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으니까.)
여기서 달라이라마는 티벳전통에서 가장 높은 존중을 받고 있는 견해를 소개하는데, 이에 따르면 바깥세계의 실재성이 부인되지는 않지만,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물질은 실재하지만, 관찰자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감지될 수 있다는 독립적인 실재성이란 개념은 용납될 수 없다(혹은 용수의 이제설에 따라 속제의 실재론과 진제의 비실재론으로 나누어 파악한다).
즉 실재성을 인정하되 실재성의 근본적 의존성(연기설)이 세상과 인간존재의 근저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공(空)사상이 등장한다. “물질과 사건은 불변적인 본질이나 내재적 실재성이나 고립을 뜻하는 절대적 존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공(空)”이다.
달라이라마에 있어 ‘공(空)사상’은 빅뱅우주론과 연결되어서도 재해석된다.
빅뱅이 전체 우주의 기원인가, 아니면 우리 특정 우주계의 시작을 지칭하는 것이냐는 현대 우주론과 불교의 공통문제인데, 철학원리상 하나의 한정된 시작, 절대적 시작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두가지 선택이 남아있다.
하나는 유신론(有神論)인데, 우주는 완전히 초월적이어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벗어난 지성적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주가 전혀 아무런 원인 없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교전통(아비달마 우주론이 아닌 칼라차크라 우주론)은 이 두 선택을 거부하고 우주의 영원한 순환을 이야기한다.
이 순환우주론을 따르면 세상은 다섯 원소로 이루어져있다. 공간을 받치는 요소 및 네가지 기본요소들인 地水火風이 그것이다.
이 때 우주는 성주괴공(이루어질成, 머무를住, 무너질 壞, 비어있을 空)의 단계를 거치며 진화하는데, 이를 떠받치는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주 섬세한 공간입자, 공(空)입자를 위한 매질로 되어있다고 한다.
이 공간요소인 공(空)입자가 우주의 사대원소(흙, 물, 불, 바람)의 진화와 붕괴의 바탕이며, 그로부터 네가지 원소들이 창조되고 다시 그 속에 흡수된다.
순환의 한 단계인 이 물질이 비어있는 공(空)의 기간에도 공(空)입자들이 존속하고, 이 입자들로부터 새 우주 속 모든 물질이 만들어진다. 형성이전의 어느 특정 우주라도 그 속 모든 물질 원소들이 공(空)입자라는 잠재성의 형태로 실재한다.
특정우주 속에서 진화하기에 알맞은 유정들의 업보적 특징이 무르익었을 때, 공(空)입자들은 서로 모이기 시작해서 물질로 현현하는데, 우주적 바람(風)을 시작으로 에너지(火) 그 다음에 흐르는 것(水), 단단한 것(地) 순서를 따른다는 것이다.
나는 모른다.
이 두개의 공(空)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지. 다만 실재의 궁극적 차원을 해명하는 논리로서 공(空)이 우주론과 존재론의 바탕에 있다는 것을 감지할 따름이다.
또한 이 공(空)이라는 것이 우주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암흑물질론’, 물질계가 양자적 진동에서 태어났다는 소위 ‘양자수프론’, 옛 신비가들이 말하는 존재의 거푸집이라는 ‘에테르론’과 뭐가 다르고 겹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데이비드 봄이 다큐멘터리 <Infinite Potential>에서 말한 바를 떠올릴 뿐이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보통 우리가 보는 대상은 저 별들이고 우주공간은 그 배경이라고 생각하지만, 밤하늘을 또 다르게도 볼 수 있습니다. 우주공간을 ‘충만한’ 공간으로 보고, 공간사이의 별들, 즉 물질은 광대한 바다의 작은 거품으로 보는 겁니다.”
아마도 데이비드 봄과 달라이라마는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같은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우주의 신비를 바라보며 이심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달라이라마는 불교적진리성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단지 양자이론과 신경생리학 등 현대과학의 성과가 불교전통적 사유와 어떻게 접목되는지 그 경계선상에 일어나는 문제의식과 접점에 접근하여 조심스럽게 드러낼 뿐이다.
달라이라마는 나의 지적 영적 질문에 대해 다 답해주지는 않지만 나의 모든 질문을 다 수용하여 펼쳐놓고 자신의 역량을 다해 응답해준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해답지가 아닌 문제집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