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꽃 - 도법 스님 1966~, 끝나지 않는 생명의 순례
김왕근 (지은이)불광출판사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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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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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생명평화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도법 스님. 열일곱 출가 이후, 간디와의 만남, 화엄경 탐독, 종단개혁,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창립, 생명평화 탁발순례, ‘붓다로 살자’ 운동, 평화의 꽃길, 기쁨의 세월호까지, 지난 50여 년 동안 스님은 이 땅에 무엇을 싹 틔우려고 한 것일까?
3년 동안의 질문과 답변, 그리고 함께한 공부와 일들. 이 축적 속에서 저자가 본 도법 스님은, 『화엄경』이라는 무변(無邊)한 세계에서 찾은 길 위에 ‘생명평화’라는 꽃을 피우고자 늘 깨어 있었다. 이 책은 이상을 꿈꾸는 현실주의자, 도법 스님의 삶 마디마디에 망울져 있는 뜻을 추적하며, 신념을 꽃피우며 살아간다는 것을 성찰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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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감사 말
프롤로그
1부 길 찾기
1. 출생, 출가 그리고 화두(話頭)
2. 성철, 지월: 도법과 스승들
3. 간디와 화엄경: 책에서 길을 찾다
2부 혁명
4. 혁명을 향한 성찰: 화엄학림과 선우도량
5. 종단개혁, 종단사태, 백인 대중공사: 종단 내 민주주의를 이끌다
3부 진리
6. 인드라망생명공동체
7. 생명평화결사운동과 탁발순례
8. 생명평화무늬: 불교 세계관의 시각화
9. “붓다로 살자”: 불교 실천론의 요약
4부 실천
10. 21세기 아쇼카선언: 종교 간 벽 허물기
11. 민중총궐기와 ‘평화의 꽃길’: 불교와 민주주의가 만나다
12. 기쁨의 세월호: ‘깨달음의 사회화’를 위한 분투
5부 공부
13. 붓다의 공부방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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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왕근 (지은이)
신문기자, 논술강사, 토론코치 등의 직업을 거쳤다. 언어로 소통하는 일을 평생 했기 때문에 스스로 ‘소통전문가’를 자처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 갈등을 겪었고 “왜 소통 전문가인 내가 소통을 못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2013년 여름, 도법 스님과 인연을 맺은 후 불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 향상되는 경험을 했다. 소통 중에는 논리의 소통 이외에 정서의 소통이 중요함을 깨달았고, 이를 위해 불교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모든 사람이 붓다의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회’가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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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길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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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상을 꿈꾸는 현실주의자, 도법 스님의 삶과 뜻
“생명은 자기 몸의 아픈 곳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불교도 세상의 아픈 곳을 보듬어야 한다.” - 도법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생명평화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도법 스님. 열일곱 출가 이후, 간디와의 만남, 화엄경 탐독, 종단개혁,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창립, 생명평화 탁발순례, ‘붓다로 살자’ 운동, 평화의 꽃길, 기쁨의 세월호까지, 지난 50여 년 동안 스님은 이 땅에 무엇을 싹 틔우려고 한 것일까?
3년 동안의 질문과 답변, 그리고 함께한 공부와 일들. 이 축적 속에서 저자가 본 도법 스님은, 『화엄경』이라는 무변(無邊)한 세계에서 찾은 길 위에 ‘생명평화’라는 꽃을 피우고자 늘 깨어 있었다. 이 책은 이상을 꿈꾸는 현실주의자, 도법 스님의 삶 마디마디에 망울져 있는 뜻을 추적하며, 신념을 꽃피우며 살아간다는 것을 성찰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길을 나서다
만으로 열일곱이던 1966년, 도법은 김제 금산사로 출가한다. 2년 뒤인 196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도법, 출가자는 세속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평소처럼 생활하던 그를 한 사미승이 불러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데, 니가 아무리 중이지만 어머니 아들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
이 말에 ‘어머니’가 아닌 ‘삶과 죽음’ 문제가 가슴에 사무친 도법은 죽음을 경험해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한밤중 다리 위에 선 그는, 장마로 물이 불어난 하천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아, 여기서 뛰어내려서 죽으면 삶이 끝나니까,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고 마는 것이구나.”
도법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고 싶었다. 금산사에 가만있어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법은 은사스님께 말씀드리고 합천 해인사로 길을 나선다.
간디와 화엄경
당시 해인사는 한국 불교의 수도였다. 성철 스님(1912~1993)이 구축한 엄격한 수행 가풍 아래로 도(道)를 찾는 수많은 승려들이 운집했다. 도법 역시 문제 해결의 기대를 품고 해인사로 향했다. 하지만 성철 스님 가르침으론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이후 도법은 김천 수도암, 순천 송광사를 거쳐 다시 해인사를 돌며, 참선해서 도인 되겠다고 몸부림쳤다.
그렇게 보낸 10여 년의 끝인 1970년대 후반, 도법은 간디 자서전을 만난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비의 마음으로 불살생을 실천했으며 비폭력 불복종으로 인도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도 영국을 미워하지 않은 간디. 그는 힌두교도였지만, 도법에게는 “석가모니 붓다의 정신에 가장 충실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를 계기로 도법은 붓다의 삶과 불교경전을 ‘사회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도법은 『화엄경』도 만났다. 『화엄경』을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평등하게 연결되어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으며 ‘생활이 곧 도(道)’임을 깨달았다. “세계를 포용하는 크나큰 인간의 가슴, 생명을 향한 깊고 깊은 애정의 관심, 이웃-생명-세계를 가꾸기 위한 뜨거운 정열의 헌신이 우리들 인간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생각할 때 환희가 솟구침을 느낀다. 인생이란, 삶이란 정말 이래야 된다고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회 속에서, 생활 속에서 불교를 실천하겠다고 마음먹은 도법은 1990년, 도반들과 함께 불교의 풍토를 바꾸고자 ‘착한 벗들의 수행 공동체’인 ‘선우도량(善友道場)’ 결사운동을 시작한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불교의 현실은 올바른 수행의 부재로부터 그 원인을 찾는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기뻐하고, 나누는 실천행으로 새로운 승풍(僧風)을 바로 세워야 한다.”
불교 개혁에 나선 도법은 이후 94년 종단개혁, 98년 종단사태에서 ‘개혁의 아이콘’이 된다.
생명평화의 길을 걷다
도법의 이러한 성찰은 1998년 문을 연 ‘실상사 불교귀농학교’, 1999년 창립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모습으로 기어코 현실화된다. 이 둘을 통해 도법은 우리 사회가 “세계, 산천, 초목, 부처님, 보살, 중생, 이것과 저것, 시간과 공간, 유정과 무정 등 모두가 함께 어울려 출렁이는 생명의 큰 바다”가 되길 바라는 큰 꿈을 이루고자 했다.
드디어 2004년, 도법은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시작한다. 그해 3월 1일부터 2008년 12월 12일까지 장장 1,747일 동안 3만 리를 걷고 8만 명을 만난 이 순례를 통해, 상호의존의 세계관과 동체대비(同體大悲, 너와 내가 한 몸임을 자각하여 내는 큰 자비심)의 실천론을 축으로 하는 도법의 생명평화 사상은 완성된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때로는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지에 집합해서 생명평화백배서원 절명상 하고, 걷고, 점심 먹고, 그날 종점에서 절명상 하고, 저녁 먹고 대화하는” 일상을 반복하며 성찰하고 확인한 생명의 구체적 양상이 사상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전부터도 그래왔지만, 이후 도법의 모든 행보는 ‘너와 나를 함께 살리는’ 생명평화의 길 위에서 이뤄진다.
정의(正義)를 새롭게 정의(定義)하다
2001년, 도법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부처님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바른 것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은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해야 할 대상에 화내지 않고 증오해야 할 대상을 미워하지 않고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냄)의 길을 가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등졌을 때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만일 당신과 나라는 인간 존재가 좌익, 우익, 친북, 친미 따위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이고 더 귀중한 존재임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어도 극단적인 좌우대립 동족상잔 남북분단의 비극이 벌어졌겠습니까? 그래도 오늘의 비극과 고통이 일어나겠습니까?”
언뜻 반대로 읽히는 이 두 발언은, 사실 근본 뜻에서 차이가 없다. 도법에게 정의(正義)란 “한 몸인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생명의 길”이므로, 그는 ‘선(善)’뿐만 아니라 ‘악(惡)’과도 ‘잘’ 공존하는 길을 모색한다. 도법은 악을 뿌리 뽑아 없애는 게 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본다. 선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악을 증오하지 않고, 악과 마주쳐 상처받지도 말고, 악에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자며 머리를 맞대는 것이 된다. 이런 행보를 밟기에 도법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출가 후 50여 년, 도법 스님 중간점검
도법은 누구보다 많은 존경과 많은 비판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생명평화를 위한 순례자” 도법은 존경을 받지만, “성격 급한 스님들이 적지 않은 불교계에서 대표적인 대화론자”인 도법은 비판을 받는다.
종교평화선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른 종교(기독교)에 무릎을 꿇는다고 비판을 받았고, 조계사에 들어온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을 경찰에 내주었다고 비판을 받았으며, 세월호의 슬픔을 세월호의 기쁨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해 또 비판을 받았다. 그가 무슨 문제이든 대화로 풀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약자의 편을 드는 대신 강자의 입장을 두둔하는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에, 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에 도법은 비판을 받는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비판일까? 비판을 하며 그와 거리를 두고 외면하는 대신, 비판을 하되 그와 함께하며 우리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책은 문제적 인간, 도법의 입장에서 그의 50여 년 승려의 삶을 돌아본다. 베트남 출신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은 말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참된 이해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이해하려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진정 도법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이 책이 그를 이해하고 (그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그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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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길과 꽃
자주 못 가지만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사를 드릴 때면 ‘예수라는 한 사내‘와 그의 삶을 생각한다. 그가 행한 기적이나 부활의 이야기보다 내게는, 처형당하기 전날 사람들을 모아놓고 벌인 만찬이나, 십자가에 매달린 채 하늘을 향해 왜 나를 버리셨느냐고 울부짖었다는 ‘인간‘ 예수의 이야기가 어쩐지 더 가슴에 와닿았다. 그의 삶과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을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도.
예수는 인간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책으로 기록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그가 한 이야기를 되새기고, 그가 했던 만찬을 재현하기로 했다. 내가 알기로는 이것이 성경이고 미사다. 미사에서 신부님이 포도주 잔을 높이 들고 ˝너희는 모두 이를 마셔라.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는 구절을 읊을 때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놓을 각오를 한 사내의 힘든 결심, 그 선한 마음을 떠올린다. 이렇게 산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생각한다. 이게 나에게 미사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읊고, 기억하고, 노래할 때 느껴지는 따뜻한 일체감은 내가 미사를 좋아하는 또하나의 이유다.
기독교와 불교는 다르다면 완전히 다른 종교지만 내게는 비슷하다. 한 인간이 그의 삶을 온통 바쳐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깨달은 것을 이야기했고, 직접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작년 봄부터 참가하고 있는 불한당(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모임)에서 도법스님께 들은 불교의 핵심은, 우리 안에 이미 붓다의 마음이 갖추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그대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르침은 이렇게 쉽고, 명확하고, 현실적인데, 삶은 여전히 어렵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피곤과 분노, 내 바램과는 달리 곁에 머물지 않고 떠나는 것들에 대한 슬픔, 미래에 대한 온갖 걱정과 불안, 그리고 삶이, 이 모든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긴 한가 하는 자괴감과 허망함 같은 것들이 삶을 짓누른다. 오죽하면 붓다도 깨달음을 얻은 후
˝내가 아무리 진리를 설해도 이기심에 가득 찬 중생들이 그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는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일일 뿐이지 않을까.˝라며 망설였을까(이 대목을 읽으며 반가워서 울 뻔했다. ˝나 이 심정 알아!˝하고).
얼마전 불한당의 김왕근님이 쓰신 도법스님 평전 ‘길과 꽃‘을 읽었다. 에필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석가모니를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것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다. 석가모니가 인간이어야 우리가 그를 본받을 수 있다. 석가모니를 인간으로 알고, 또한 우리 자신이 바로 ‘붓다‘임을 알고 살자는 것이 ˝붓다로 살자˝ 운동이다.‘
‘(절대자로서의) 신이 있는가, 나는 그의 존재를 믿는가‘라는 의문은 보류해두었다. 절대자라면 당연히 강인하고 옳게 살았겠지. 근데 나는 그냥 약한 인간일 뿐이지 않나. 지금 내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내 소원을 들어주고 기적을 일으켜줄 신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신의 온 삶으로 보여주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쉽지 않은 이 삶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게 해줄 나와 같은 ‘인간‘이다.
어려운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 후의 삶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너무 연약하고 잘 잊어버리니까. 기도를 하고 미사를 드리고 수행을 하는 것은 절대자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서도, 어떤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일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감각이나 탐욕, 분노에 붙들리지 않고 부처의 마음을 내고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도시락을 싸듯 그렇게 준비한 ‘마음‘을 가지고 또 하루하루 일상이라는 전쟁터로 나간다.
도법스님은 평생 이것을 해온 분이다. 도법스님이 쓰신 책이나 도법스님의 강연, 말씀을 옮겨적은 책들을 몇권쯤 읽었지만 정작 도법스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책은 처음이다. 열여섯에 출가해 간디와 화엄경을 만난 이야기, 안으로는 종단개혁과 대중공사, 밖으로는 실상사 불교귀농학교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최근의 한상균 위원장 관련 사태와 ‘평화의 꽃길‘까지, 도법스님은 시대의 가장 뜨거운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도법스님의 고민, 노력, 깨달음을 보며 ‘인간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고 또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덕분에 삶은 더 복잡해졌다(;ㅅ;). 이전에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굳이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나와 맞지 않는다 싶으면 무슨 일이든, 무슨 관계든 미련없이 발을 뺐다. 그런데 이제는 한번 더 마음을 내고, 한번 더 얘기해보자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최선이고 어디서 그만둬야하는지를 아직은 잘 모르겠어서 힘이 든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와중에 이전처럼 내가 자괴감을 느끼거나 피폐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 ˝위협적으로 들리는 험악한 말도 잘 들어보면 ˝내 삶을 도와달라˝는 간절한 요청일 때가 많다˝는 이 책의 한 구절을 되새긴다. 그 사람의 말과 더불어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나와 다르지 않은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슬픔, 절망, 혹은 탐욕이나 거짓을 바라보고, 그것을 바라보는 상대방을 바라본다. 우리는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더 나은 해결책을 낼 수도 있다. 애써 준비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도법스님은 ˝찻잔으로 물을 떠내면 호수는 찻잔 한 잔만큼 달라지고, 절을 하기 전이나 절을 한 다음이나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한 만큼 달라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적어도 상대방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달라진 내가 있고,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아는 만큼 상대방은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삶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게 하는 게 어디 예수나 석가모니, 도법스님 뿐일까. 내가 지켜보는, 나를 지켜봐주는 모든 인간이 나를 이끌어가는 ‘붓다‘이다.
그렇게 서로를 지켜봐주는 것이 사실은 우리 삶의 의미가 아닐까.
발췌 보기 : http://noyuna.tistory.com/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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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a 2017-05-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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