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9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펜앤드마이크
23 August 2016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김일성의 주체농법은 농업 생산량 감소를 막아 보자는 바보들의 대증요법이다. 면적당 소출이 떨어진 만큼 면적을 늘려 총생산량을 회복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농지는 산비탈로까지 밀려 올라갔다. 비가 오면 토사가 흘러내리는 환경 재앙은 주체농법의 명징한 결과다.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계화, 농자재와 비료 등 농업의 공업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김일성뿐만은 아니었다.

마이너스 금리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도 비슷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일본은 대체로 2011년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금리를 내렸고 2014년부터는 역금리로 돌아서 지금은 스웨덴 -1.25%, 스위스 -0.75%, 유로존 -0.40%, 일본 -0.1% 등이 역금리다. 대부분은 중앙은행 예치금에 대해서만 마이너스를 적용하고 일반 대출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지만 덴마크에서는 일반 대출에도 적용하고 있다. 현금 보관비용과 마이너스 이자를 합친 한도 내라면 일반 대출에도 역금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농법과 비슷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저축률은 세계 최고인 20.1%까지 치솟아 버렸다. 제로 수준이던 스웨덴 저축률도 16.5%까지 급등했다. 덴마크도 8.1%로 뛰었다. 저축률이 줄곧 하강해 온 일본도 2.1%로 반전했다. 소비를 늘리자고 도입한 아이디어였지만 결과는 저축의 증가였다. 저축자들은 줄어든 이자수익만큼 오히려 예금총액을 늘리고 있다. 소비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승수적으로 줄고 있다. 케인스가 말한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적 상황이지만 은퇴자도 청년들도 끝내 저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축자들은 투기상품을 찾거나 저축 총량을 늘려 장래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이 고령화 시대에 마이너스 금리는 노후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다. 더구나 은행 다니느라 닳게 될 구두축 비용도 아깝기 때문에 돈은 빠른 속도로 퇴장한다. 화폐 유통속도는 떨어지고 돈을 풀수록 시중 현찰이 사라진다. 바보만 모르는 미스터리다.

‘돈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반감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근대 신용화폐가 도입되면서 극에 달했다. 이자수익에 세금을 매기거나 감가상각 제도를 통해 ‘돈의 불멸성을 파괴하고, 자가증식을 차단하자’는 주장의 현대적 선구는 1916년 실비오 게젤의 《자연적 경제질서》다. 우리는 오늘날 케인스 《일반이론》 23장에서 그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한때는 헨리 조지 이상의 열광적 추종자가 있었다고 한다. 화폐 이자율이 실물자본의 성장 한계라고 주장한 게젤은 이자율을 제거하면 경제 성장이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돈 벌어봤자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거나 “장사 잘 해봤자 임대료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의 바로 그 화폐 수익을 제로 혹은 그 이하로 만들어야 실물 경제가 성장한다는 대증요법이다. 게젤은 적정 마이너스 금리를 연 5.2%로 제시하기도 했다.

케인스는 게젤이 유동성 선호라는 개념을 몰랐다고 비판하면서도 장차 마르크스보다는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뿔싸. 케인스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케인스는 저축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저축을 결정하고, 다시 소비가 투자를 결정한다면서 자본의 희소가치를 제거할 때까지 이자율을 끌어내리자고 주장했다. 그렇게 소비를 자극하면 완전고용과 부의 평등한 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낮은 이자율 이론은 결국은 자신이 되살려냈던 게젤의 결론 즉, 마이너스 금리로까지 미끄러져 갔다.

케인스는 이자생활자의 안락사, 투자자의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이자생활자는 안락사했는지 모르지만 실물경제의 활기도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그들이 없애고자 했던 투기 거품만이 산처럼 솟아 올라 보통 생활인의 미래까지 저당잡히기에 이르렀다. 진정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화폐도 이자도 부도 아닌 것 같다. 케인스와 함께 태어난 거시경제학이야말로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06 [주체농업에 대한 ‘자아비판’, 실리중심의 과학영농으로 이어져



주체농업에 대한 ‘자아비판’, 실리중심의 과학영농으로 이어져

NK테크브리핑
2006-07-12

북한에‘과학영농’의 바람이 불고있다. 가장 특징적인 점은 김일성이 그토록 강조했던 ‘주체농법’의 틀 내에서 여러 기술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박호철 립석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을 과신한 나머지 변화된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농사를 짓는 경향이 있었다”며 기존 주체농법에 대한 반성을 한 바 있다. 
북한 농업 관계자의 이 같은 비판은 일원적 중앙지도관리체계 중심의 농업에서 실제 생산량 확대를 위한 실리적이고 탄력적인 변화 조치로 이어진다.

최근 조선신보 보도에서는 북한의‘과학영농’의 실상을 좀 더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북한이‘과학영농’의 슬로건을 내세운 것은 저조한 농업 생산량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로 보인다.

현재 북한은 평안남도 문덕군 립석협동농장을 국가적인 과학농사 시범단위로 지정하고 있다. 농업과학원에서 파견된 10여명의 과학자들은 이 농장에서 다양한 신농법을 실시하여 실제 생산 도입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으며 문제 발생시 필요한 대책을 직접 세우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대표적인 ‘과학영농’에는

  • 못자리에 모를 길러 모내기하는 대신 물을 댄 논에 직접 싹을 틔운 볍씨를 뿌리는 ‘수직파’,
  • 비닐온상을 이용한 ‘벼영양냉상모’, 
  • 포기 사이의 간격을 균일하게 해 모를 심는 ‘균형소식재배’ 

등이 있다.

먼저 북한에서 직파식(直播式) 영농방법은 90년대 들어 옥수수 농사에서 서서히 장려되기는 하였으나 벼농사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2005)부터 벼농사에서도 수직파가 도입되기 시작하더니 올해에는 더욱 확대,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05년 3월 열린 ‘전국 농업부문 과학기술 현상모집 및 기술강습’에서는 수직파 농법의 소개와 이에 관한 교육이 이어졌다. 이어 북한은 올해 5월부터 평남북도 철산군 대계도의 간척지 2천여 정보에 수직파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배경에는 볍씨를 10-15㎜까지 싹을 틔웠을 경우 못자리에서 키운 모를 심었을 때와 사실상 소출이 같다는 농업과학원 작물재배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파법은 따로 모내기 공정이 없기 때문에 인력과 영농자재를 훨씬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수직파 영농법이 보급되면서 자강도 강계농림대학에서는 ‘전파식 논벼 수직파 기계’를 개발해 김매기 작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둘째, 봄철기온이 낮은 북한의 기후사정과 이때의 벼 생육기간이 짧다는 요인 때문에 농업과학원에서는‘벼영양냉상모’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왔다. 냉상모는 활착이 빠르고 조기모내기가 가능하여 이른 봄철의 날씨에도 견딜 수 있다. 일단 파종한 벼는 비닐피복을 하고 밤에는 모판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거적 등을 씌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비닐온상을 이용한 방법도 실시하고 있다.

셋째, 밀식(密植)재배를 소식(疎植)재배로 바꾸고 옥수수만을 단일적으로 심는 방법에서 벗어났다. 대표적인 주체농법으로서 밀식재배는 단위면적당 포기수를 늘리고 농지의 모든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한 농업방법이었다. 그러한 이 농법이 오히려 생산량 소출과 지력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이에 북한은 포기와 포기 사이의 간격을 일정정도 벌리고 옥수수의 경우에는 옥수수 양옆에 여러 가지 키 작은 작물을 심어 결과적으로 토지이용율을 높이는 방법 등을 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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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농업 기술적 측면에서의 변화는 과거 획일적으로 추진된 주체농업의 한계와 문제점을 반증한다.
본래 주체농법은 1970년대 초에 김일성이 한랭전선에 따른 이상기후를 극복하고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적기적작(適地適作), 적지적작(適期適作)의 보장과 밀식재배 등을 주요 농법으로 하여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 위주의 작목 선택을 강요하거나 집약농법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여 농업생산의 감소를 초래하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따라서 북한은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고자 밀식농법의 완화, 재배작물의 다양화, 개인소유의 확대, 감자 생산량 증산, 이모작, 초식가축에 대한 강조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과학영농을 뒷받침할 조직을 각급 기관에 구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곡산군 협동농장에서는 최신 과학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과학농사도입소조’를 조직하였다. 여기에는 협동농장의 경영위원장이 책임자가 되고 기사장과 도(道) 농업과학분원 실장이 부책임자로 구성된다. 이들은 새로운 영농기술 도입 일정을 확보하고 그 집행 상황을 10일마다 소조에 통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북한 농업과학원 과학지도처장이 조선신보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과학농사집중단위’를 조직해 농사에 필요한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등 ‘생육예보’를 10일 단위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은‘과학영농’의 추진체로서 농업정보과학기술을 개발, 보급하는데 관심을 돌리고 있다. 최근 북한의 농업동향은 현대적 기술과 설비, 농약과 비료, 가축질병예방, 농자재의 부족 등에 대처하고 친환경적인 영농방식 등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농업정보 과학기술을 생산에 직접 도입한 영농공정집행대장을 실시하고 있고 토지 생산성 종합평가, 농업생태지역 구분, 성장 예측, 품종 배치, 파종, 모내기, 비배관리, 수확고 예측 등에 연구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남한 및 중국, 호주, 러시아 등과 농업과학부문의 교류 강화를 통해 각종 비료와 농기계, 농업 기술 등을 전해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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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바로보기] 북한의 농업 실태와 선교적 접근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현재 북한의 모습의 중요한 변화 시점 중 하나를 꼽자면 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기근을 들 수 있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이 시기 동안 약 300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 속에 죽어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고난의 행군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농업 생산량 부족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정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의 회복 및 생산량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했고, 어느 정도 식량 생산 증가에 성공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필요량을 아직 채우지 못해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도 심한 가뭄으로 수확량 감소가 우려되고 있으며, 이전 대기근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올해 식량 부족분이 상당하지 않겠는가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북한 농업 문제는 일반 주민들의 생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 관심 있는 성도라면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북한 주민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 글에서는 북한의 농업 실태에 대한 개략적인 사실들을 살펴보고 선교적 관점에서 접근법에 대해 고민해 보도록 한다.

북한의 농업 실태와 식량난
북한의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중요하다. 세계 식량 기구 (FAO)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전체 인구의 40% 가량이 농가에 거주하고 경제활동 인구의 23%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국가다.1) 하지만 북한의 농업 생산 효율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의 곡물 생산은 200만톤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그 후 증산을 통해 2010년대 들어서 북한의 곡물 생산은 약 500만톤 규모까지 증가하였지만 아직 국내 식량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양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를 바탕으로 북한의 식량 최소 필요량을 계산했을 때, 세계 보건기구 (WHO)기준 (2,100 Kcal)으로는 약 660여만톤이 필요하며 식량농업기구(FAO)의 최소 기준 (1,640Kcal)의 필요량은 약 540여만 톤이다. 북한의 식량생산은 위 두 기준에 적게는 수십만 톤 에서 많게는 백만 톤 이상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낮은 이유로는 먼저 농업 물자 부족 및 관계 시설 정비 미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식량농업기구(FAO) 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370만톤의 비료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량은 20만톤 규모에 머무르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어든 2000년대 후반에는 전체 비료 수급량이 40만톤 규모에 불과했으며, 2010년대 들어서 70만톤 규모로 증가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 이 외에 트랙터나 기타 농기구를 운용할 연료 부족으로 농업 생산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으며, 관계 시설도 부족하다. 북한은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유기질 비료 생산에 힘을 쏟고 인분 등을 활용하여 부족한 비료를 보충하고, 관계 시설 건설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 있으나 아직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북한의 농업 생산 저하 및 대기근은 공산주의식 경제 시스템에 따른 집단 농장 체제와 국가 주도의 획일적 농업 정책의 문제가 크다. 북한은 80년대까지는 각종 개간 및 물자 동원 등을 통해 식량 증산을 지속하여 식량 부족을 해소해왔다. 하지만 식량 생산은 증가하였지만, 그 배경에 토양과 기후 등을 고려하지 않은 단일 작물 재배, 과도한 화학비료 사용, 무리한 개간 등 토양 황폐화와 생산량의 감소 징후가 존재하였으며, 이러한 약점들이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화학 비료와 연료 공급의 감소, 그리고 95년도의 큰 홍수로 인한 토양 유실 등으로 인해 대기근의 형태로 불거지고 말았다.

농업육성정책으로 강력하게 추진한 주체농법도 기근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주체농법은 간단하게 말하면 삼림이나 불모지를 농지로 개간하는 외연적 농지 확장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직파법이 아닌 모종 (영양단지)을 사용하여 파종을 하는 농법이다. 주체농법은 일시적으로는 경작지 확대 효과로 인해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듯 했지만, 외연적 농지 확장은 산사태와 홍수 피해를 막아주던 나무와 식물들을 제거하는 식이 되어 오히려 홍수 피해를 크게 만들었으며, 재배 면적에 맞는 충분한 영농 자재 보급이 어려워 그 성과 마저 제한적이었다. 또한 모종 위주의 경작은 물 공급이 충분하고 관계 수로 시설이 좋을 경우에는 효과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일손에 비해 비효율적인 방식이 된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이러한 농업 부분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농업 부분의 생산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대부분 농업과 관련된 조치는 기존의 통제를 완화하고 자율성을 증대시키는 조치였다. 하지만 북한의 체제 성격상 농업 정책의 효과는 미비했고 많은 한계점을 노출하였다.

북한은 2012년 6월 28일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농업 분야의 개혁조치를 담은 속칭 ‘6.28 방침’을 내부적으로 발표했다. 그 핵심 내용은 농업분야에서 협동농장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분조 작업반 수를 현행 20명 수준에서 4~6명으로 줄여서 가족농 형태로 개혁하고, 종자·비료·농기계는 국가가 선 제공하며 생산물에 대해서는 국가에 시장가격으로 70%를 수매하고 30%를 분조가 소유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2014년에는 협동농장에 분조 대신 가족단위의 자율경영제를 도입하고 생산물을 국가 40%, 개인이 60% 비율로 분배하는 5.30조치를 내부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 경제 관리체계의 방침은 농업 부문에서 생산 증대와 함께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먼저 작업분조의 최소화로 가족제 영농에 가까운 운영 방식으로의 전환이 되고, 농민의 생산의욕을 고취시켜 전반적으로 농업생산량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고, 농민들도 농산물을 시장에 출하하여 일상 소비품을 구입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발표 내용과 실제 시행간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이 종자, 비료, 농기계 등 필요한 물자를 선지급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국가수매를 진행하는 데도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북 NGO 및 국제단체 활동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북한은 닫힌 문을 열고 외부세계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많은 남한 및 국제 NGO들이, 또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90년대 중반 이후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2007년 4천 3백억원 규모까지 증가하였으나, 이후 급감하여 2014년에는 195억원 규모로 축소되었다.4) 남한의 NGO들은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원활한 대북 지원의 길이 대부분 막힌 상태이다. 또한 오랫동안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활동은 해 오셨던 임현수 목사님이 억류당하는 등 대북 지원 활동에 악재가 겹치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유럽의 일부 국가의 NGO들과 유엔 세계 식량 계획 (WFP), 식량농업기구(FAO), 국제적십자사 등 몇몇 국제기구만이 상주하며 인도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식량 지원 외에도 농업 및 축산 분야의 기술 지원 및 품종 개량, 병해충 방지 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관들의 지원 활동도 2000년대 초에 비해 상당 수준 축소되었으며, 주로 활동하는 지역 또한 북한 서부 평야 지대 또는 대도시 인근으로 한정됨으로써 실질적인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인도적 지원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지원된 물품에 대한 모니터링이다. 지금까지의 지원시스템으로는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과 물자가 일반 주민들의 생활을 돕는데 쓰이기 보다는 군사적 용도와 정권의 이익을 위해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모니터링 문제로 EU 및 국제사회도 북한과 갈등을 빚었고 EU의 경우 2008년 잠정적 대북 지원 중단을 결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11년 북한은 EU 등이 제기한 모니터링 조건에 동의하여 과거에는 모니터링을 위해 7일전 사전 통보를 요구하였던 것을 48시간으로 줄였다. 또한 WFP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장조사가 허용된 시, 군에 도착한 직후 임의로 방문 지역 및 기관, 가구를 선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5) 물론 안보적인 이유 등을 들어 접근이 불허된 지역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허용되고, 식량 분배 과정에 지원단체 참여 및 불시 점검 허용 등의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보장 되어야 모니터링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한의 단체들에 대해서는 모니터링 개선 조치가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북한 측의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농업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
북한의 식량난은 많은 기독 NGO들과 선교사들에게 북한 주민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나온 이들을 선교사님과 현지 교인들이 돕고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다. 또한 각종 인도적 지원 활동이 활성화되어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식량 지원 및 농업 기술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중국경지역의 경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고, 대북 인도적 지원의 길은 거의 막히는 등 북한에 대한 문이 전에 비해 좁아지고 있다. 최근 임현수 목사님의 억류 사건도 기독 대북 지원 사업의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성도들 내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오히려 북한 정권을 돕게 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움 가운데 생활하는 북한 주민을 생각할 때 지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오용 및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혜를 발휘하는 가운데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제공될 수 있도록 국제 기구와의 협력 및 농촌 개발 지원 등 다양한 지원 협력 방법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통일 이후를 생각할 때는 북한의 농촌 지역에 대한 사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전 인구의 40% 가량이 농업과 연관되어 있는 북한이기에 통일 이후에 농촌지역 사역은 굉장히 비중이 크고 중요한 사역이다. 특히 농촌지역은 도시에 비해 공동체적 특성이 높기 때문에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었을 때 마을 전체가 복음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의 집단 경작 체제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 효과를 배제한다 하더라도 북한 농촌 지역은 통일 이후 남한 교회의 더 많은 도움과 섬김으로 다가가야 할 지역이다. 대부분의 북한 농촌지역은 낙후된 의료, 보건 환경에 고통 받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 농촌지역은 도시에 비해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이로 인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농업 기술 전수 및 의료 서비스 제공 등 그분들의 필요를 채우면서 한 마을에 복음이 전파된다면 많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필요에 비해 현재 한국 교회를 보면 북한의 농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선교를 준비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선 교회들도 통일을 내다보며 큰 그림 속에 이를 준비하는 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선교나 농촌 선교 모두 일선 교회 사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을 이해하고 또 농업에 전문성을 가진, 농촌의 사회적 특징을 잘 알고 사역할 수 있는 전문 사역자들이 준비되고 양성되어야 하며 교회들이 이러한 북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이에 맞는 준비를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재 지원사업들이 맞닥뜨린 딜레마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통일을 준비하고 북한 농촌지역을 섬기는 일에 믿는 이들의 기도와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각주

1) FAO 통계 (2011)

2) 에드워드 리드,2014, “남북한의 농업 발전 비교”, 아산리포트:북한의 경제발전과정과 향후 방향.
3) 현대경제연구원, 2014, “북한 농업 개혁이 북한 GDP에 미치는 영향”, 현안과 과제 14-36호.

4) 통일부 통계 (2014)
5) UN. 2011. “Overview of Needs and Assistance: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15 모퉁이돌 선교회 ::: 기도 - [기도] 주체농법에도 없는 비닐하우스농법을 지원받는 북한의 우스운 꼴 (4/28/2015)



모퉁이돌 선교회 ::: 기도 - [기도] 주체농법에도 없는 비닐하우스농법을 지원받는 북한의 우스운 꼴 (4/28/2015)






옆 사진은 28일 에이스경암의 대북지원 차량이 임진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복합비료, 온실 건설자재, 영농기자재 등 농업협력물자 컨테이너 22대 분량이 황해북도 사리원시로 향하였다. 이는 지난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비롯된 5·24 제재 조치 이후 이번이 5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졌다.

김일성에 의해 시작된 북한의 주체농법에는 비닐하우스농법이 없다. 그런데 에이스경암을 통해 북한에 지원되는 농자재물자는 비닐하우스설치에 필요한 재료들이다.

“제가 1996년 농촌지원에 나가서 온 벌판을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사계절 농산물을 생산하고 농법을 다양화하고 다각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누군가 고발해서 불려갔습니다. ‘김일성주체농법에는 비닐하우스농법이 없다. 정치장교가 그런 말을 하면되는가?’라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북한의 정치장교를 지냈던 심주일목사의 고백이다. 기막힌 것은 김일성의 주체농법에는 비닐하우스농법이 없음에도 지금은 북한의 대부분지역에서 비닐하우스농법의 필요가 절실하다. 그러나 자재가 넉넉하지 못해 비닐하우스농사를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이제 황폐화된 북한에 굶주린 주민들을 위한 양질의 농산물이 생산될 수 있도록 기도가 필요하고, 이것이 북한당국자들이 아닌 북한주민들에게 직접 공급될 수 있는 공급체계가 갖춰질 수 있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이사야 60장 7절에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말씀하신 주님, 5년 만에 민간차원에서 대북지원이 이뤄지는 상황을 아뢰며 간구합니다. 북한이 남한에서 지원되는 농자재가 위대한 수령을 섬기는 도구임을 자랑하는 악행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막아주시옵소서. 그들 스스로 비닐하우스농법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전국적으로 비닐하우스농법을 실시하고 있는 북한에 더 이상 거짓과 속임수로 북한주민들을 우롱하지 않게 하시고, 5년 만에 실시되는 대북지원이 오롯이 북한주민들의 어려운 먹 거리를 해결하는 곳에만 사용될 수 있도록 긍휼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북한의 자랑 주체농법, 식량난의 근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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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자랑 주체농법, 식량난의 근원이 되다
통일 미래 길잡이/북한 전망대 2013.03.20 07:00

북한에는 주체농법(主體農法)으로 불리는 특이한 농사법이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체사상(主體思想)을 기저에 두고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우리식’ 농법으로 자급자족하자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이 주체농법을 두고 김일성이 고안해 낸 최고의 농법이라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신문 논평이나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주체-’가 접두사로서 쓰이는 말은 주체의학, 주체공업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체가 붙은 말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모두 김일성이 전문가 행세를 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는 대외 무역에 관심이 없거나,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해방 이후 광공업 산업에 비해 뒤쳐져 있는 농업을 발전시켜 식량 자급을 이루는 것이 국가적인 목표였습니다. 더욱이 김해평야와 호남 지역의 넓은 평야가 있는 남쪽과 달리 북부지방은 전통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점점 줄어들면서 북한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이 고안했다는 주체농법을 대대적으로 전파하고 장려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천고의 비법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주체 농법이란 것의 실상은 사실 별로 특별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식량이 부족하면 산림이나 불모지를 농지로 바꿔 생산량을 늘리면 된다는 단순한 이론이 주체농법의 간결한 설명이지요. 그래도 말로 들으면 그럴듯한 이 주체농법이 어떻게 북한에 오늘날과 같은 기근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 된 것일까요? 지금부터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리한 경작 방법







아시다시피 북한 지역은 평야보다 산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입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작지를 넓히자는 주체 농법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위의 사진과 같이 산에서도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 가지 실수를 하고 맙니다.



산을 농사짓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베어야 하고 토질 개량과 같은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비가 왔을 때 흙이 쓸려가 산사태가 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 위의 왼쪽 그림과 같이 계단식으로 짓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논을 계단식으로 하지 말고 위의 오른쪽과 같이 그냥 경사면에 작물을 심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분명 계단식 농법보다 더 많은 작물을 심을 수 있기는 했지만 우기 때 안전을 장담할 수 없고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게다가 비가 온 뒤 산사태가 일어나 가파른 비탈을 따라 아래로 쓸려간 막대한 양의 토사는 아래 평야 지역에서 멀쩡하게 잘 짓고 있던 농사마저 망쳐버리게 되어 북한의 기근 발생에 큰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모종의 저주



북한에는 관개 수로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경제 상황이 괜찮았던 70년대에는 양수기나 양호한 관수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경제난을 겪으면서 도난, 파손 등으로 제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이렇게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모내기처럼 모종을 심는 것보다는 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법이 유리하지만, 김일성의 주체 농법에 따르면 옥수수를 비롯한 모든 밭농사를 모종으로 심을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한창 주체사상을 전국에 전파하고 있던 7~80년대까지는 양호한 관개 수로 시설에 힘입어 모종으로 심는 것도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지금의 북한 상황을 보면 식량난을 조금이나마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모종을 포기하고 직파법을 택하는 것이지만 북한의 농민들은 아직까지도 우직하게 주체농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수령의 그림자







물론 이것은 북한의 농민들이 어리석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상황이 좋아질지를 모른다기보다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주체농법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에서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거의 신과 동급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이 세계 10대 종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로 북한은 강력한 수령 중심사회인데요, 만약에 어떤 농민이 주체농법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그는 김일성의 가르침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고, 당장 인민재판에 넘겨져 정치범이 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이제 북한의 세 번째 지도자인 김정은이 등장했지만, 외모부터 행동까지 김일성을 따라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는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당분간 주체농법에 대한 북한의 믿음이 쉽사리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루빨리 북한이 비효율적인 농업 전략을 수정하여 대기근을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건희 2013.03.25 13:04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통일미래리더 캠프를 통해서 북한이 농사짓는 광경을 봤는데, 우리의 옛 사진을 보는 거 같았습니다. 하루 빨리 과학적인 경작방법이 도입되서,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이 마음껏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출처: http://unikoreablog.tistory.com/3267 ['통일 미래의 꿈' 네이버 블로그로 이전하였습니다.]

12 [北 가뭄피해도 人災…주체농법이 피해 키워 : 탈북자동지회 최근뉴스



北 가뭄피해도 人災…주체농법이 피해 키워 : 탈북자동지회 최근뉴스

北 가뭄피해도 人災…주체농법이 피해 키워
데일리NK 2012-05-29

북한이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평양 이남 지역에서 농작물 피해가 크게 발생했다고 지난 주말부터 조선중앙통신 등 주요 매체들이 전하고 있다. 평소 '알곡생산 전투'와 '자랑찬 성과'를 내세웠던 북한이 농작물 피해 상황을 보도한 것은 그만큼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에서는 가뭄이 지속될수록 밭작물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시기 모내기를 해야 하는 논에 담수(湛水)를 하지만, 비탈진 능선에 조성된 밭에는 물 공급이 쉽지 않다. 북한은 가뭄에 대비해 1970년 중반 무렵부터 관수(灌水) 체계를 갖췄지만, 이를 위한 양수기나 수관(철관)이 용도가 변경되거나 파손 및 절도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작동이 멈춘 상태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농업기반시설 파괴로 인해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지만 더 큰 문제는 북한의 농업정책에서 찾고 있다. 북한의 주체농법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다. 주체농법은 주체사상에 근거해 식량자급을 목표로 하는 영농법으로 옥수수를 비롯한 모든 밭농사에서 '영양단지'(모종)로 심을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직파(直播·종자를 땅에 직접 뿌리는 방법)할 경우 정치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주체농법을 지시한 김일성에 대한 불경죄(不敬罪)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영양단지는 초기 발육을 위해 영양공급을 보장하는 방식이지만, 지금처럼 가뭄이 지속될 경우 오히려 생육을 방해하는 독(毒)이 된다. 직파의 경우 그마나 땅 속에 남은 수분을 흡수할 수 있지만, 건조한 상태로 과밀 상태인 영양단지는 오히려 작물의 수분 흡수를 방해한다. 황해도 지역은 5, 6월에 옥수수를 밭에 옮겨 심는데 지금 이 시기에 가뭄이 들면 영양단지의 피해가 커지게 된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가뭄이 짧게 끝나면 상관 없지만 장기화되면 영양단지의 문제점이 커진다"면서 "영양단지에서 밭에 옮겨 심을 때 모종이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가뭄 피해는 더욱 커진다"며 주체농법의 취약성을 설명했다.

가뭄이 지속되면 영양단지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 현상이 발생한다. 직파의 경우 싹 트는 시기가 며칠 늦어지는 정도지만 말라 죽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협동농장은 김일성의 교시에 따른 영양단지를 고집할 수밖에 없지만, 산을 개간해 만든 개인 소토지의 경우는 직파 방식으로 밭작물을 심고 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개인 소토지는 피해가 덜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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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뭄 대처는 말 그대로 육탄전이다.//

북한에서 봄 가뭄은 거의 매년마다 겪는 일이기 때문에 농촌지원 총동원 기간, 낮에는 모내기에 집중하고, 저녁 이후인 밤과 새벽 시간에는 옥수수 밭에 물을 대는 일을 한다. 낮에 물을 주면 바로 증발해 버릴 수 있어 밤과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강가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데, 주민들은 바케스(양동이), 학생들은 빵깡(10~20리터 비닐용기)을 이용한다. //

주민들은 밭작물 물공급을 농촌지원 총동원 기간 가장 힘든 작업으로 여긴다. 그런데 자기 일처럼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니 지원에 나선 학생들이나 노동자들도 물을 줬다는 흔적만 남길정도만 일을 한다. 때문에 가뭄 극복이 말에 그칠 공산이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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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이 50년 만의 가뭄이라며 이번 피해를 마치 자연재해인 것처럼 선전한다. 벌써부터 올해 농사 실패 책임에서 비껴가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국에서 '주체농업'을 추진한 결과다.

한 탈북자는 "김일성이 죽어 이를 바꿀 수도 없으니 난감하다"면서 "김정은은 또 김일성 흉내 내는데 바빠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죽은 자가 산 사람을 잡아 먹는 상황이 농업 현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영양단지를 이용한 옥수수 모종 생육 방법=먼저 밭갈이를 한 다음 포전(밭)에 강냉이 영양단지 자리를 반듯하게 만든다. 퇴비, 부식토, 객토, 소토재 등을 채로 치고 질소 비료를 한데 섞어 물을 부어 섞는다. 두 개짜리 영양 단지 기계로 찍어서 차례로 놓고 그 안에 강냉이 씨를 한 알씩 넣고 구멍을 부식토로 덮는다. 그 다음 물을 뿌리고 비닐을 덮는다.

영양단지를 조성하면 도난 방지를 위해 경비를 서야 한다. 강냉이가 싹이 트면 비닐을 낮에는 열어 주고 밤에는 덮는다. 모종이 자라면 밭갈이 한 이랑에 구덩이를 파고 영양 단지를 한 개씩 놓는다. 비료가 있으면 뿌려주고 물을 준다. 그리고 하나씩 복토한다.

최송민 기자

북한 농업살리기, 포전담당제보다 자율성 보장 우선해야 - DailyNK

북한 농업살리기, 포전담당제보다 자율성 보장 우선해야 - DailyNK

북한 농업살리기, 포전담당제보다 자율성 보장 우선해야

북한 농업근로자들이 온실남새(채소)와 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사진 = 연합
가물(가뭄)과 고열 피해로 올해 북한 농사 작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내년 식량 걱정을 하고 있을 북한 농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주민들은 먹을 걱정 추위 걱정을 하는 상황인데도 당국은 각종 건설 동원과 물자 납부에만 열을 올린다.
20세기 후반 두 번의 혁명이 북한 농촌을 휩쓸었다. 1946년 첫 번째 혁명은 토지개혁이었다. 이때부터 북한에서 지주와, 부농, 중농이 자취를 감추었다.
1950년대 말 농업 전체를 집단화하면서 농민들은 ‘농장 노동자’로 전락했다. 이 두 번째 혁명으로 북한 농민들은 주인의식이 없어졌다. 수백만의 자작농이 사라지고 약 3000개의  협동농장이 생겨났다. 농업 생산에서 집단 책임의 협동농장이 자리 잡으면서 농민의 자율성도 사라졌다.
사회주의 제도의 안정기 동안에는 국가계획위원회가 낮은 상대가격으로 농산물을 확보하기 위해 의무수매제도를 도입했고, 군 농장경영위원회를 조직하고 기업적 지도제도체계를 활용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국가의 성장은 산업투자를 위한 자원을 국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북한은 자원 동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농산물, 특히 곡물을 정부가 정한 낮은 가격으로 국가에 의무적으로 수매하게 하는 방식을 썼다. 농민에게 일종의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초반에 곡물과 축산물 등에 대한 의무적 수매체계가 전국적으로 확립되었다. 국정가격으로 정해진 양을 수매로 내놔야 한다. 북한의 농업조직(협동농장)이 농업 잉여를 농촌으로부터 국가에 원만히 이전하는 과정이었다.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은 협동농장체계를 작업반 책임제, 분조관리제, 포전담당제로 조직해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북한은 이런 조직화를 통해 농업생산과 공출량을 계획하고, 적은 비용으로 생산량을 극대화 시키고자 했다.
농업협동화의 기본 목적은 농업생산의 증가였다. 하지만 실패했다. 농장 집단화는 농민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도록 만들었지만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개별 농민이 수행하는 작업이 분리돼 있어 매시간 감시하기도 어렵고, 30-100명 단위의 작업 단위 일 공정을 톱니바퀴처럼 순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농장 지배인 입에서만 가능했다.
협동농장은 농업생산과 소득 증대의 기능은 미약하고 정치사상교육과, 정책전달, 이주통제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농민들은 보통 국가의 곡물 생산계획 수행을 무조건 따르도록 강요됐다. “쌀은 곧 사회주의이다” 라는 슬로건이 북한 농촌을 지배했다.
북한은 농업생산 개선을 위해 국가적 투자를 통해 토지를 정리하고, 관계시설을 개량했다. 농기계를 도입하고 비료와 농약 공급량도 늘였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1970년대부터 해마다 전국의 노동자, 군인, 학생, 가두여성 등이 총동원돼 농번기 전투에 투입됐다. 농민들에게 국가자금으로 살림집을 지어주고 상점과, 병원 등 서비스를 확대하였다. 그러나 생산량 효과는 쥐꼬리 만큼도 없었다. 결국 1990년대 중반 대참사로 이어졌다.
협동농장을 통한 획일적 집단화는 역설적으로 농업생산의 지역적 차이를 키웠다. 서해안 지역은 전체 곡물수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비료, 농기계, 전력과 같은 국가의 투자에서 우선권 부여되어 있다. 이 지역은 정부의 각종 지원과 대책을 우선적으로 부여받지만 다른 지역은 소외된 채 곡물 자족을 위한 분투만 강요받고 있다.
현재 북한 농업생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장들의 자율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에서 농업개혁이 일부 이뤄지고, 농업과 축산의 병진, 스마트농법 등을 도입하여 소득증대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990년대 식량난 이후 협동농장의 획일적인 시스템은 약화되고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필요한 비료나 농자재를 시장에서 미리 꿔다가 쓰는 용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장 활용을 극대화 해야 한다.
북한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가족도급제 방식의 ‘포전담당제’를 실시하는 것도 환영하지만 국영농장에서 도입한 경영자율성을 보장하는 조치도 시행해야 제대로 된 개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야 북한 당국이 강조해온 주체농법의 ‘적기적작, 적지적작’의 원칙을 지킬 수 있다. 농업생산 및 농가소득의 증가 해법은 오히려 매우 단순하다.

김정은 서울방문으로 남북 농업협력에도 봄 오길 | 아시아엔



김정은 서울방문으로 남북 농업협력에도 봄 오길 | 아시아엔
김정은 서울방문으로 남북 농업협력에도 봄 오길
作者: 편집국 on December 5, 2018.
类别: 1. 칼럼, 1. 한반도
标签: 남북농업협력, 농업, 북한





[아시아엔=백정민 통일농수산사업단 사무총장]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후속 조치로 본격적인 남북교류협력이 각 분야에서 봇물 터지듯 이루어졌다. 농업분야도 지자체와 NGO 등 다양한 채널로 남북교류사업이 시도되었다. 그중 2000년 7월 출범한 (사)통일농업포럼을 중심으로 남북농업협력을 보다 더 진전시키려는 논의 결과 2002년 북고성 남새농장(온실)의 영농자재 지원이 시작됐다. 이어 2003년 11월 금강산 삼일포지역의 협동농장 개발사업을 북측과 합의하면서 남북농업협력이 본격화했다.

정부(통일부) 또한 당시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 등 남북교류협력에서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시적이고 수혜적인 식량 및 비료 지원의 틀을 벗어나 북한 스스로 자립적 인 생산기반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에 따라 ‘반민반관’ 성격의 (사)통일농수산사업단을 2005년 발족해 본격적인 남북공동 영농사업이 시작됐다.

이는 향후 대규모 남북농업 협력 모델을 제시하는 시범사업으로 재원은 정부가, 시행은 민간이 하는 농업협력사업의 첫 모델이었다. 이를 통해 북측의 이른바 ‘주체농법’과 남측의 ‘과학영농’의 장점을 찾아내 당시 벼 생산량이 2톤/ha에 못 미치는 북측 농법이 남측의 영농기술과 농자재 투입으로 5톤까지 증가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금천리협동농장 개발사업으로 확장된 데 이어 금강산 지역의 삼일포, 금천리 등 10여개 협동농장 1200ha에서 공동영농사업이 진행됐다.

당시 수도작(水稻作)은 물론 시설채소단지, 양돈장, 농기계수리소, 미생물배양공장 등 시범사업이 여럿 이뤄졌다. 이후 금강산 지역의 3개년 사업을 종료하고 개성 지역 송도리협동농장 개발사업으로 확대해 동부축과 서부축의 영농시범사업을 진행하였다.

물론 사업의 진행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령 처음 북측 인사들과 영농방식에 대해 논의하면 “우리는 ‘주체농법’이라는 위대한 영농기술이 있으니 비료나 농약 등 농자재만 지원해주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즉 기술 문제가 아니고 투입 자재가 부족해 생산성이 낮다는 얘기였다. 이에 우리는 “남측의 영농기술과 북측의 ‘주체농법’을 비교해보자”고 설득해 공동영농사업과 시범사업을 합의·시행했다. 그 결과가 나올 즈음에는 금강산지역 개울에서 직접 잡은 미꾸리탕을 대접받을 정도의 성과를 이뤄냈다.

또 북측 토양상태 분석 결과 유기물 함량과 기초 N.P.K는 물론 미량요소의 함량이 우리 토양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파악돼 퇴비 투입의 필요가 제기됐다. 하지만 남측의 축분 퇴비를 북한으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북측 세관과 검역소 반대로 반려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북측 당국이 “돼지똥이 국경을 넘은 예가 없다”고 반대한 것이다. 이에 우리 측은 여러 근거를 들며 북측 세관과 검역소를 설득하여 퇴비를 보낼 수 있었다. 그후 북측 세관 당국도 우리의 노력을 이해하고 감사해 하면서 영농자재 반입에 협조적이 되었다.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때로는 싸우면서, 때로는 웃으면서 당시 함께 했던 북측 인사들과 농장의 기사장(협동농장 기술책임자), 농장원들의 얼굴이 엊그제 본 것처럼 눈에 선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도보다리 산책


최근 ‘상상 그 이상’의 변화가 남북관계에 일어나고 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러한 정세 변화는 기존의 남북협력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조치들이 남북한, 미국, 중국 등 한반도 주변에서 나올 전망이다. 이를 토대로 남북의 경제교류와 협력이 급진전될 것이며, 이 가운데 농업교류협력이 선두에 설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북한 식량사정이 최근 수년간 개선됐다고는 하나 경제개발의 선행조건인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 북한당국으로서는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농업인구가 전체의 32% 정도인 북한 현실에서 경제특구 중심의 개발로 농민들이 산업현장의 노동력으로 투입될 것이며, 이로 인해 농업 노동력 감소로 생산성 저하와 이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기에 그렇다.

필자는 이를 위해 경제특구 배후에 남북농업특구를 지정하거나 남북한 공동으로 북한의 협동농장 개발사업 등으로 농업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프로그램을 동시에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즉 경제 개발은 농업개발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4·27 판문점선언 이후 첫번째 당국간 남북협력사업으로 거론되고 있는 북한 산림복원 또한 농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계에 의하면 북한 전체산림의 약 30% 정도가 황폐화되었다고 한다. 연료부족으로 인한 무분별한 벌목과 식량부족에 따른 화전 및 다락논의 개간 등이 주요 원인이다. 북한의 산림복원이 지속적으로 성공하려면 선제적 혹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바로 ‘에너지’와 ‘식량’인 것이다.

산림과 식량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임농복합개발 형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협동농장별로 주변 산림복원 때 접근성이 좋은 입지의 산에는 유실수를 비롯한 경제림을 조성하고 협동농장의 관리 책임 아래 두는 방식이다. 한국의 지자체가 북한의 협동농장과 연계하여 ‘임농복합협동농장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봄이 왔다. 긴 기다림이었지만 남북영농에도 봄은 다시 찾아왔다. 이제 남북 농민이 함께 일구어 놓았던 통일농업 현장으로 달려갈 기대에 부푼다. ‘한반도 공동식량계획’, ‘한반도 농업지도’를 완성할 날이 당겨지길 학수고대한다.

북한 주체농법의 철학과 현실



북한 주체농법의 철학과 현실

제목 북한 주체농법의 철학과 현실
구분 연구보고서저자 남성욱
발간기관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발간일 2001-04-01
원문링크 http://www.nktech.net/inform/research/research_v.jsp?record_no=1560

이 글은 1995년 이후 계속된 흉작으로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그 원인 중의 하나가 주체농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체농법의 내용과 철학을 살펴보고 현실과 어떠한 점이 괴리가 있는지, 그리고 북한이 최근 어떤 요소를 보완하여 주체농법을 추진하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필자는 주체농업이 구체적으로 세 가지 기본철학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적인 농사를 강조하는 순수한 농법에 관한 협의의 주체농법과 농사이외에 사상과 기술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포함하는 광의의 주체농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1990년대 들어 대두한 주체농법의 문제점을 항목별로 살펴보고 북한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방향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향후 주체농법이 각종 농자재를 충분히 공급하고 각 지역에 맞게 즉 농민에게 작물선택권을 돌려주어 본래의 적지적작 원칙을 고수한다면 주체농법의 장점이 나타나 식량 증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주체농법을 창조하시여​



주체농법을 창조하시여​






정평군 봉대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63(1974). 6. 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생산에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하여 주체62(1973)년부터 농업부문사업을 직접 지도하시면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가장 우월한 주체농법을 창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1973년부터 농사를 직접 틀어쥐고 지도하면서 늘 협동농장들에 나가 농민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다른 나라의 선진영농방법도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그 과정에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농법을 창조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 농업의 자연조건에 대한 세밀한 실태료해사업에 기초하여 과학농사의 새시대를 열어놓으시였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록색혁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여 우리 나라 기후풍토에 맞는 우량종자를 만들어내는데 큰 힘을 넣으시였다.

※ 종자를 개량하며 우리 나라 자연기후조건에 맞는 새 품종을 육종하는 문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농업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시종일관 견지하여오신 중요한 방침의 하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전후 우리 나라에서 강냉이재배면적이 빨리 늘어남에 따라 강냉이종자를 개량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이 사업을 첫걸음부터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업과학자들이 교조주의에 사로잡혀 낡은 육종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 나라 재래품종가운데서 비교적 수확이 높은 종자들을 골라내는데 머무르고있을 때 1대잡종을 만드는것이 강냉이수확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라는것을 밝혀주시였으며 우리 나라의 자연기후적조건에 맞게 키가 작으면서도 일찍 여물고 소출이 높은 종자를 만들데 대한 새로운 육종방향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2월에도 농업과학자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강냉이육종사업에 대한 연구정형을 료해하게 되시였다.

※ 이때 그들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키가 작고 올되는 종자는 키가 크고 늦되는 종자에 비하여 수확이 떨어지는것이 하나의 생물학적《법칙》처럼 되여있다는것을 보고드리면서 키가 작고 올되면서도 소출이 높은 강냉이종자를 만들자면 새로운 법칙에 따르는 육종수법을 찾아내야겠는데 그것이 해결되지 않아 고충을 겪고있다고 솔직히 말씀올리였다.


그들의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물론 자연계의 법칙은 사람들이 발견하고 리용할수는 있으나 그것을 창조하거나 개조할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어떤 방법으로 강냉이육종사업을 해왔는가고 물으시였다.


※ 그때까지 그들은 이삭이 큰 하나의 개체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사업을 진행하고있었다.

그에 대한 보고를 주의깊이 듣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나의 개체를 대상으로 연구할것이 아니라 무리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해보라고 하시면서 큰것 하나보다 작은것 여러개가 힘있는것이라고 하시면서 하나의 개체를 놓고볼 때에는 이삭이 작을수 있다, 그렇지만 키가 크고 이삭이 큰 강냉이를 드물게 심는것보다 키가 낮고 올되는 종자를 만들어 배게 심은것이 수강냉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수확이 훨씬 높아질것이 아닌가고, 그러니 강냉이는 개체만을 대상하기보다 무리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하는것이 좋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업과학자들이 몇해동안을 고심하면서 풀지 못하여 안타까이 모대기고있던 어려운 문제를 이처럼 한순간에 명철하게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적산온도가 낮아지고 농작물의 생육기일이 줄어드는 조건에서 강냉이뿐아니라 벼를 비롯한 다른 농작물에서도 올되고 소출이 높은 품종을 만들어내도록 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올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올품종은 수확이 적게 난다고 하는 일부 사람들의 그릇된 주장을 일깨워주시면서 올벼라도 모를 제철에 내고 비배관리를 잘하면 높은 수확을 낼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사에서는 농민들이 선생이라고 하시며 농촌에 자주 나가시여 농민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도 나누시고 그들의 농사경험도 들으시였다. 이와 함께 몸소 온 나라 방방곡곡의 포전들을 끊임없이 돌아보시면서 그리고 저택정원의 시험포전에서 손수 재배시험하시는 농작물들도 체계적으로 관찰하시면서 급격한 기후변동에 따르는 새 품종들의 생장과정을 깊이 연구하시였다. 한편 세계농업발전의 추세와 다른 나라의 선진적인 영농방법에 대해서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으며 한해에도 여러차례씩 농업과학원의 시험포전과 채종농장들을 찾으시여 농업과학자들의 연구사업을 세심히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듯 주체적인 육종원리와 연구방법론을 가르쳐주시고 농업과학자들의 연구사업을 보살펴주신 결과 록색혁명에서는 련이어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여 논벼와 강냉이, 콩, 남새, 담배 등 여러가지 농작물의 새로운 품종들이 나오게 되였다.







새로운 다수확품종의 벼종자연구사업에 힘을 넣는 농업과학원 연구사들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록색혁명의 성과를 공고발전시키시면서 그에 기초하여 영농방법을 개선하며 농사일의 모든 공정을 높은 과학기술적토대우에 올려세우시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상기후의 영향이 심하게 미칠수록 적지적작의 원칙을 더욱 철저히 지켜 품종배치를 잘하도록 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주체65(1976)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또다시 농작물의 품종배치계획을 보아주시였다.

※ 그때 일군들은 달라진 기상기후조건을 고려한다고 하면서 해발고나 적산온도에 따라 크게 지역을 구분하는데 그치고 그 지역안에서는 품종들을 일률적으로 배치했다. 이러한 품종배치계획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이 내세운 방침대로 적지적작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위하여서는 작물배치계획을 매 포전별로 따져가며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품종은 실물을 보아야 더 잘 알수 있으니 포전으로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회의참가자들을 데리시고 몸소 농작물을 시험재배하시는 포전에까지 나가시여 여러가지 품종의 생물학적특성과 재배기술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면서 이상기후의 영향을 이겨낼수 있는 좋은 품종을 적지에 배치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지적작의 원칙과 함께 적기적작을 영농사업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으로 내세우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정한 생육기일이 보장되여야 자라고 열매를 맺는것이 식물성장의 법칙인것만큼 아무리 올되는 종자라도 이 자연법칙의 요구를 어겨서는 은을 낼수 없다고 보시고 벼랭상모와 강냉이영양단지모 같은 선진적인 방법을 받아들여 모를 빨리 키워 제철에 내도록 하시였다.







변덕스러운 이상기후현상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모든 농사일을 제철에 하는것은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기본작물인 벼농사의 적기를 옳게 정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손수 가꾸시는 시험포전에서 그리고 전국각지의 수많은 협동농장들을 지도하시면서 벼의 생육기일과 수확고도 알아보시고 센바람이 불거나 큰비가 오는 시기와 마지막 봄서리와 가을 첫서리가 내리는 날자들도 따져보시며 탐구를 계속하시였다. 이 과정에 벼정당수확고를 더 높일수 있는 중요한 예비는 모내기를 제철에 시작하여 짧은 기간에 끝내는데 있다는 결론을 짓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로부터 지대별특성에 맞게 모내기 시작날자와 마감날자를 과학적으로 정하시였으며 그 다음에는 모내기시작날자를 시점으로 하여 모가 자라야 할 나이에 맞게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는 방법으로 모판씨뿌리기날자도 정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모내기를 제철에 와닥닥 끝낼데 대하여서와 옹근 제나이를 먹은 다음에 모를 논판에 낼수 있게 모판씨뿌리기도 계단식으로 할데 대한 새로운 벼모기르기방법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업생산이 고도로 집약화되여감에 따라 여러가지 비료를 더 많이 공급하는것과 함께 농작물에 대한 과학적인 시비체계를 세우게 하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작물이 비료성분을 흡수하는 리치는 사람이 밥을 먹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리치와 마찬가지라고 하시면서 땅의 성질과 농작물이 자라는 특성에 따라 질소비료, 린비료, 카리비료, 여러가지 미량원소비료를 여러번에 나누어 구색에 맞게 쳐야 농작물이 비료성분을 다 빨아들이고 훌륭한 결실을 맺을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농작물의 생육단계별 비료치는 방법과 시기, 비료를 여러번 치는 간격 지어는 비료시비량과 알곡생산량의 비례에 대해서까지 과학적으로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밖에도 토양관리, 물관리를 비롯하여 모든 농사일을 우리 실정에 맞게 과학기술적으로 하기 위한 방도에 대해서도 상세히 가르치시였다.







사회주의협동벌에 보낼 비료



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록색혁명에서 새로운 성과들이 이룩되고 농사일의 모든 공정이 과학기술적으로 진행되며 특히 갖가지 비료의 공급량이 더욱 늘어남에 따라 오래전부터 구상하여오신 포기농사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는데로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포기농사방법은 경지면적이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에서 농업생산을 최대한으로 늘일수 있게 하였을뿐아니라 영농사업에서 우리 당의 기본방침인 집약농법을 새로운 높이에 올려세운 또하나의 독창적인 영농방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고심어린 탐구와 사색으로 우리 나라의 자연기후조건과 농작물의 생물학적특성, 우리 시대 농업발전의 추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농사일의 모든 공정을 포괄하는 선진적이며 과학적인 영농방법들을 하나하나 완성하시고 집대성하심으로써 그 어떤 불리한 자연기후조건도 극복하고 농업생산에서 언제나 높고 안전한 수확을 거둘수 있는 가장 우월한 농법인 주체농법을 창시하시였다.

주체농법은 우리 나라 기후풍토와 농작물의 생물학적특성, 매 포전의 구체적조건에 맞게 농사를 짓는 과학농법이며 현대과학기술에 기초하여 농업생산을 고도로 집약화하는 집약농법이다.

※ 위대한 주체농법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혹심한 이상기후의 영향하에서도 주체62(1973)년과 주체63(1974)년에 농업발전에서 획기적인 비약을 일으킨데 이어 주체64(1975)년에 또다시 전해보다 알곡을 70만t이상 더 생산하고 주체65(1976)년에는 800만t이상을 생산하는 기록을 창조하였다. 알곡생산에서뿐아니라 농촌경리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창조하신 주체농법의 우월성과 거대한 생활력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뚜렷이 확증되였다.

07 [[북 주체농법 성역인가, 비판 봉쇄말라 | 한국은?



북 주체농법 성역인가, 비판 봉쇄말라 | Redian
북 주체농법 성역인가, 비판 봉쇄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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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05일 10:21 오전



『삼국유사』2권에 등장하는 신라 48대 경문대왕, 토머스 불핀치가 엮은『그리스 로마신화』의 그리스 왕 미다스, 유고슬라비아의 폭군 왕은 모두 ‘당나귀 귀’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 이야기 속의 백성들은 한결같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진실을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받았던 것도 비슷하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가 아직도 버젓이

혹시라도 공개적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경우에는 왕들은 파리 잡듯이 백성들의 목을 자르는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동원하거나 길쭉하고 커다란 모자를 이용하여 당나귀 귀를 가릴 수 있었던 왕들도 백성들의 입소문만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담배를 피거나 마늘을 까먹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전환시대 새로운 시대를 말하자’는 기치를 내건 <2007 한국사회포럼>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한국사회포럼의 ‘식량주권대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식량주권과 식품안전」이라는 제목의 토론문을 제출하였다. 전농 측은 내 토론문 중에서 ‘고투입식 농업의 환경파괴 역기능’을 비판한 부분과 ‘고투입식 농업과 식량위기 : 북한의 사례’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였다.

토론문에 대한 일부 삭제 요구는 정부나 국회 주최의 토론회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한국사회포럼은 2001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세계사회포럼은 ‘열린 만남의 공간‘을 추구하며, 소수자의 의견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한국사회포럼의 지향도 세계사회포럼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농업, 하루빨리 고투입식 농업에서 벗어나야

먼저 고투입식 농업의 환경파괴 역기능이 과연 삭제되어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자.

현재 한국의 농업은 농약, 비료, 항생제, 살충제, 석유 등을 다량 투입하고 있어, 식품안전을 위협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은 1990년~2003년 동안 연평균 12.8㎏/ha의 농약을 사용했다. 한국의 농약 사용량은 전 세계 146개국 가운데 대만, 코스타리카, 콜롬비아에 이어 4위를 기록했으며, OECD 국가 중에서는 1위라는 부끄러운 성적을 받았다.

반면 미국은 2.3㎏/ha의 농약을 사용하여 OECD 국가 중에서 13위를 기록했다. 통계상으로 한국의 농업은 미국보다 5.6배나 많은 농약을 사용하고 있다. 화학비료 사용량(1990~2003)도 422kg/ha로 OECD 국가 중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4년 1년 동안 국내의 축ㆍ수산물 생산에 투입된 항생제 사용량은 1,500만 톤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축ㆍ수산물 1톤을 생산하기 위해 약 1kg의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의 항생제 사용량은 1톤 당 31g의 항생제를 사용하는 스웨덴보다 32배, 43.7g의 항생제를 사용하는 덴마크 보다 22.8배, 145.6g의 항생제를 투입하는 미국 보다 6.86배, 356g의 항생제가 들어가는 일본 보다 2.8배 더 많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생산성 증대만을 목표로 농약, 비료, 항생제 등을 많이 투입한 결과, 토양과 하천과 바다 등 환경을 파괴하고 식품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김주석 교시 따른 주체농업, 북 식량위기 주 원인 중 하나

다음으로 고투입식 농업이 대량 아사의 참극을 빚은 북한의 식량위기의 원인이었다는 부분을 살펴보자.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발생한 대규모 식량위기는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과 사회주의권의 몰락,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 비효율적인 집단농업 체제뿐만 아니라 고투입식 농업방식이 그 원인 중의 하나였다.

북한의 농업은 에너지(전기)와 석유 집약적인 구조였다. 북한은 농업 근대화의 기치 아래 수리화, 화학화, 전기화, 기계화 등을 추진하였다. 단위 면적당 화학비료 사용량을 비교해보면, 남한이 1990년에 415kg/ha를 투입했으며, 북한은 1990년에 무려 405kg/ha에 달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 방식의 무역으로 들여오던 석유공급이 중단되면서 화학비료 사용량이 급감하게 된다. 북한의 단위 면적당 화학비료 사용량은 1994년 157kg/ha, 1996년 45kg/ha로 급격히 감소했다.

한편 김일성 교시에 의한 주체농업도 북한의 식량위기를 촉발한 주요 원인 중의 하나였다. 북한 당국은 산비탈에 옥수수 재배를 위한 다락밭 개간과 밀식재배를 지시했다. 옥수수는 지력을 고갈시키는 대표적인 작물이며, 산비탈의 다락밭은 옥수수 재배, 화학비료의 사용, 밀식재배에 의해 자연재해에 취약한 상태로 변해갔다. 이러한 비판은 『굶주리는 세계』(프랜씨스 라페 외 지음, 허남혁 옮김, 창비)를 통하여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농 측에서 특히 문제를 삼은 것은 “김일성 교시에 의한 주체농업”이라는 표현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부분이 왜 토론문에서 삭제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한국사회포럼에서 북한과 김일성에 대한 비판이 금기와 성역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을 들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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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포럼의 원칙과 정신은 무엇인가?

한편 식량주권 대토론회 준비위원회가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과연 한국사회 포럼의 원칙과 정신에 적합한 방식이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식량주권 대토론회 2차 준비위원회 회의자료에 따르면 “소시모(소비자시민모임)에서는 송보경 교수를 통해 패널토론과 준비위 참가요청이 들어온 상황이나 ‘쇠고기 문제’와 관련한 상황으로 보류”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 소시모가 정부의 쇠고기 값의 국제적인 비교에 관한 용역을 받아 그 결과를 발표하여 논란을 빚은 사실 때문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재정 후원과 관련하여 “정재돈 농민연합 상임대표, 문경식 전농의장, 이영수 국장이 농림부 장관을 13일에 면담했다. (농림부는) 취지에 공감하면서 지원방안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과 함께 ‘토론회 제목 변경’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소시모의 토론 참가요청을 보류한 준비위원회가 어떻게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뿐이 아니다. 1차 준비위원회 회의 자료에는 한국사회포럼 식량주권국제토론회 예산이 최소 1,388만원~최대 1,848만원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 농어업 회생을 위한 의원모임에 후원 요청을 하면서 똑같은 예산안이 3,025만원으로 바뀌어 있다.

과연 전농을 제외한 식량주권 대토론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국가톨릭농민회,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낙농육우협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 4-H본부,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전국새농민회, 한국생협연합회, 학부모학생운영협의회, 경실련, 녹색연합, 전국여성연대(준),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등 다른 단체들도 모두 회의 자료와 다른 이러한 예산안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내용 예산안과 대외용 예산안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농림부나 농협에 재정 후원을 요청할 때는 어떤 예산안을 제시하였는지도 궁금하다.







‘식량주권’은 21세기 운동의 새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2007년 한국사회포럼에서 굳이 무리하게 농림부의 후원을 받으면서까지 많은 비용을 들여 쿠바, 베네수엘라, 말리, 일본, 네팔, 비아 깜페시나 등을 초청한 국제 토론회를 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약간의 의문이 든다.

지난 2004년 고려대에서 개최되었던 아시아 민중사회운동 회의에서도 ‘식량주권 국제토론회’를 벌인 적이 있고, 올 4월 29일에도 농수축산신문과 농정혁신포럼이 공동으로 ‘FTA시대 농정의 새 패러다임 – 식생활의 변화와 식량주권’이라는 토론회가 개최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국내 운동단체들이 모여서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에 대한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정의하는 내실 있는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많은 비용을 들여 거창하게 국제토론회를 하는 것보다는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이 농업, 농민, 생태, 환경, 식품안전 문제를 아우를 수 있는 21세기 한국사회의 진보의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Right’를 ‘권리’라고 번역해서 사용한 것은 1864년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청나라에 체류하던 윌리엄 마틴(William Martin)은 1864년, 헨리 휘턴(Henry Wheaton)의 『국제법원리(Element of International Law)』(London, Philadelphia, 1836)를 『만국공법(萬國公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 이 책에서 마팅는 ‘Right’를 ‘권리(權利, quanli’)’라고 번역했다.

마틴은 ‘특권(特權, tequan), 주권(主權, zhuquan)’ 같은 번역어들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sovereignty’가 ‘주권(主權, zhuquan)’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sovereignty(주권)’는 원래 라틴어 ‘superanus(우월)’에서 유래한 말로 프랑스어 ‘souverainet(최고권력)’라는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주권이라는 개념은 정치학이나 국제법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며, 주권의 소재를 둘러싸고도 인민주권과 국가주권 등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식량주권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필요

아울러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식량, 식품, 식료의 개념도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 게다가 식량주권과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식품에 관한 권리, 다시 말해 식량주권과 굶어죽지 않고 생존할 권리 사이의 관계도 어느 권리가 더 상위개념인지 불분명하다.

그 뿐만 아니라 식량주권과 식량안보 및 식품안전의 관계, 식량주권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전농이 주창하고자 하는 ‘국민농업’이나 ‘통일농업’이 진정으로 21세기 한국사회 운동의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토론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1996년부터 지난 10년간 농민의 길(Via Campesina),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식량과 발전 정책연구소(Food First/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 피앙(FIAN ; the FoodFirst Information and Action Network), 세계 식량주권 포럼(the Forum for Food Sovereignty), 세계사회포럼(WSF), 세계식량기구(FAO)를 중심으로 제기된 ‘식량주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한국 사회운동의 비판적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열린 공간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임금님이 당나귀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객관적이고 당연한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인 것 같다. 대안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2008년에는 한국사회포럼이 소수자의 의견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보다 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의 , 제 9강 식량난의 원인과 해결책



강의 , 제 9강 식량난의 원인과 해결책




강의, 제 9강 식량난의 원인과 해결책


제 9강 식량난의 원인과 해결책

조선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호철입니다.
오늘은 ‘식량난의 원인과 해결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조선에서 백성들이 한해 먹고살기 위해서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0만톤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요. 해주시 근교에 위치한 한 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 말에 따르면 올해는 작년보다 못해서 전체 수확량이 300만톤도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해마다 홍수가 나고 기상이 좋지 않아서 라고 말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식량사정은 좋지 않았고 92년부터는 평양시와 주요단위를 제외하고는 배급을 멈추었습니다. 경제봉쇄 때문이라고도 말하지만 미국은 94년부터 2008년까지 226만톤의 식량을 지원해주었죠. 그렇다면 왜 이러한 식량난이 장기간에 걸쳐 유독 조선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요? 조선의 논밭들이 원래부터 곡식을 생산하는데 맞지 않는 땅일까요? 아니면 조선에서만 항상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농사를 망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식량난의 원인은 첫째, 김씨세습독재의 무능 때문입니다. 농사의 기초도 모르면서 제가 제일 잘난것처럼 주체농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올해는 옥수수를 심어라, 여기에는 콩을 심어라 하면서 참견을 하는데 제대로 농사가 되겠습니까? 아무리 허망한 짓이라 해도 수령독재자의 말인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수령의 말을 따라서 밀식재배를 하고 다락밭을 개간했을 뿐인데 농사는 그야말로 엉망이 되었고, 자연환경은 피폐해질 대로 망가졌는데 어디가서 하소연을 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치밀하게 준비되고 계획된 것이 아니라 독재자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계획농정은 결국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더구나 중공업우선주의에 입각하여 경제가 불균형에 처하도록 만들어 놓고 농업은 뒤꼍에 밀려버린 탓에 식량난이 해마다 가중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협동농장의 폐해입니다. 집단농장식의 생산은 수십년간에 걸쳐 경험했지만 생산의욕을 저하시키고 생산능률이 떨어지는 비합리적인 조직방식과 생산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협동농장보다 한심한 조건에서도 개인들이 일궈내는 뙈기밭과 텃밭에서 단위 면적당 생산한 수확량이 몇 십배 높은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죠. 가족들이 총동원되어 논과 밭을 지키면서 온갖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바로 소유권 때문입니다. 협동농장이 철저하게 실패한 이유는 바로 소유권이 인민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고, 이러한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없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산과 들을 개간하면서 자연환경까지 파괴되어 농사의 생산성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셋째는 공급과 배분에서의 문제입니다.
농업부문에 투입되어야 할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와 농기계의 공급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니 당연히 생산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다가 배분에 있어서도 50%에 가까운 생산물을 군량미나 비축미로 거둬가고 나머지도 간부들에게 고이는 형편이다 보니 실제 생산한 수확량에서 인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농장원들이 한밤중에 곡식을 몰래 빼돌리지 못하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이지요. 또한 한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지원받는 식량은 고스란히 김씨세습독재의 권력유지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김씨세습독재는 전세계를 상대로 거지흉내를 내면서 식량을 구걸해왔는데도 그 많은 쌀들을 인민들에게 주지않고 인민들을 굶주림에 허덕이게 만들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이러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첫째, 협동농장을 해체하고 개인농으로 전환해서 생산량을 높이는 농업에서의 개혁입니다. 둘째는 농업기반시설을 개선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당장 백성들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식량이 자유롭게 유통되고 거래되어야 굶어죽는 백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씨세습독재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조선의 인민들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이다 미사일 개발이다 하며 쓸데없는 곳에 식량 판 돈을 낭비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쓰면서도 죽어가는 백성에게는 쌀 한톨 주지않는, 기름진 자신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온갖 산해진미와 고급한 사치제품들을 비행기로 날아 들이는 짓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는 없습니다. 조선의 유일한 주인이고 조선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김씨세습독재가 존재하는 한 만성적인 식량난은 결코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17 북한 '과학농사' 강조... 물자부족으로 근본적 한계



북한 '과학농사' 강조... 물자부족으로 근본적 한계




북한 '과학농사' 강조... 물자부족으로 근본적 한계
2017.4.4

김정우

지난 2012년 4월 북한 평양 외곽의 한 농장에 유엔의 지원으로 세워진 농업 설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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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과학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영농 방식을 통해 식량을 증산하겠다는 목적인데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노력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정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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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최근 사설을 통해 '과학농사' 열풍을 세차게 일으켜야 한다고 독려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매년 신년사를 통해 과학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올해 신년사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녹취: 김정은 2017년 신년사] "경제강국 건설의 주타격 전방인 농업건설에서 과학농사의 열풍을 일으키고 다수확 운동을 힘있게 벌여야 합니다."

한국의 북한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 연구원장은 북한의 과학농사는 선대부터 이어진 '주체농법'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과학농사라고 하는 게 말 그래로 과학에 입각해서 농사를 짓는다는 뜻인데요. 특히 김정은 정권 출범 뒤에 강조하는 키워드 중에 하나가 바로 과학입니다. 그래서 이건 농업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하는 게 김정은의 대표 정책방향 중에 하난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과거의 '주체농법'을 이야기할 적에 북한에서는 이걸 과학농사라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 김정일, 김일성대에는 주체농법을 이야기했다면 김정은은 이 주체농법을 다른 말로 과학농사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의 과학농사는 이전 주체농법과 다소 다른 점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권태진 원장의 설명입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어느 나라든지 과학농사를 강조하기는 하는데요. 북한이 특히 과학농사를 강조하는 것은 물자를 비롯해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효율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체농법을 이야기하지 않고 과학농사를 이야기하냐면 사실은 주체농법은 어떤 틀이 정해져 있어서 융통성이 없습니다. 과학농사라 하면 조금 더 주체농법에 비해서 좀더 융통성이 있는 계절의 바뀜이라든지 지역적인 차이라든지 또 그때의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따라서 조금 더 융통성있게 해석할 수 있는 그런 뜻으로 우리가 볼 수가 있고요."

이전에 있었던 비과학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투입 대비 산출량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이 이렇게 작물 증산에 과학적인 방법을 강조해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비료 같은 영농에 필요한 기본 물자가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과학농사가 모두 허사라고 지적했습니다.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을 일부라도 화학비료 생산공장에 돌렸으면 이른바 과학농사가 큰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 연구원장도 과학적 방법을 써서 농사를 짓는 데 기후나 토양 같은 생태조건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물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과학농사가 제대로 되려면 '물자', 즉 '인풋'이 없으면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물자가 없으면 부족한데요. 그래서 적절하게 물자 공급과 기술이 결합이 돼야지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있거든요."

권태진 원장은 또 북한이 사실 기술도 부족하지만, 비료 같은 기본 물자가 더 부족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면 물자 부족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은 과학농사를 통한 식량 증산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의 확고한 전망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북한 경제전문가인 스테판 해거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는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과학농사로 대변되는 농업개혁이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해거드 교수] “There are fundamental limits..."

과학농사나 포전제 등 농업개혁이 나라 경제의 성장을 이끌고 나갈 가능성이 작다는 것입니다.

해거드 교수는 물자와 기술이 부족하고 농업 인구의 비중이 낮은 등 북한 농업의 구조적인 문제 탓에 김정은 정권이 강조하는 과학농사가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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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원홍 전 국가보위상,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핵심 권력층 간 갈등 징후가 격화되고 있다는 석이 나왔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19일 '최근 북한 핵심권력층간 갈등 징후'라는 참고자료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먼저 최룡해는 지난해 11월 초 '혁명화' 처벌을 받고 2개월만에 당비서로 복귀한 뒤 극도로 '몸조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최룡해의 지반 확대를 꺼려 그를 근로단체를 총괄하는 직위에 머무르도록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룡해는 총정치국장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 황병서가 김정은에게 '무장집단의 반발'을 우려하는 보고를 함으로써 자신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유로 황병서에 대한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룡해는 총정치국장 경험으로 군부내 정치·군사·보위 부문 장성들을 잘 묶으면 '쿠데타'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김정은에게 황병서의 위험성을 각인시켜 퇴출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가 간부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최룡해는 당 조직지도부 검열위 등에 있는 자신의 측근들로 하여금 '보위성 검열'과 '당 생활지도'를 유도하다가 김원홍으로부터 원성을 사는 등 김원홍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잠복해 있으며, 김원홍 해임에 최룡해도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황병서는 김원홍이 보위성을 통해 군 관련사항에 개입하려고 한다는 정황을 알고 격분, 조경철 보위사령관에게 "김원홍이 군단장·사단장급 이상에 자기사람을 심으려고 하는지 24시간 철저히 감시하라"고 명령하는 등 김원홍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2년 국가보위부장에 오른 김원홍이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이던 황병서와 사전 협의도 없이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총정치국과 총참모부 작전국 간부 수십여명을 국가보위부로 소환한 것을 두고 내심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는 황병서와 김원홍과의 관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라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황병서는 김영철 통전부장이 정찰총국 5국에 이어 산하 무역회사인 청봉무역도 통전부로 이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네가 정찰총국에 있다가 통전부로 가면 정찰총국도 통전부로 옮겨야 하냐"며 비난하고 김정은에게 "김영철이 개인권력을 조장하고 있다"고 보고하는 등 김영철도 견제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황병서는 또 최룡해와도 김정은 체제의 당·군 핵심 참모로서 외견상 협력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으나, 과거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으로서 '2인자'로 군림하던 시절에 "최룡해가 군부 내에서 자신의 인맥을 구축하여 세력화할 조짐이 있다"는 보고를 김정은에게 함으로써 최룡해를 해임에 이르게 한 바 있어 갈등요인이 잠복해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김영철은 과거 정찰국장 재직시 김원홍의 아들 김철(청봉무역 사장)이 정찰총국 산하에서 외화벌이를 하도록 뒤를 봐주는 등 김원홍과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김영철이 정찰총국장 부임이후 외화벌이 조직 이관·흡수를 강행하고, 통전부장으로 부임 후 보위성의 대남 공작업무까지 넘보는 등 월권행태를 보인 것을 계기로 황병서·김원홍과의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김원홍이 김정은에게 김영철의 △ 불륜설 △ 김양건 비하 등 부적절한 언행을 수집·보고함으로써 김영철 '혁명화 교육'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김영철이 '혁명화' 조치 후 살아남게 되자 "김원홍·김영철 둘 중 하나는 조만간 죽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북한 고위층 내부에 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철은 최근 김원홍 해임 이후 김원홍과의 우호적 관계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김원홍과의 악연을 부각하는 한편, 총정치국장 황병서가 자신의 혁명화 교육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보고 황병서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VOA뉴스 김정우입니다.

[기획연재] 명소로 본 북녘사회4 청산협동농장 - 주체농법의 본보기 농장, 생활공동체적 성격의 집단적 경영시스템 특징 - 민족21 - 민족21 : 전자저널 논문 - DBpia

[기획연재] 명소로 본 북녘사회4 청산협동농장 - 주체농법의 본보기 농장, 생활공동체적 성격의 집단적 경영시스템 특징 - 민족21 - 민족21 : 전자저널 논문 - DBpia




[기획연재] 명소로 본 북녘사회4 청산협동농장 - 주체농법의 본보기 농장, 생활공동체적 성격의 집단적 경영시스템 특징
정창현민족21 2006년 7월호 (통권 제64호), 2006.7, 54-59 (6 pages)

NK조선 [북한알기 키워드]주체농법(主體農法)



NK조선

[북한알기 키워드]주체농법(主體農法)

닉네임 : nkchosun 2001-10-16 14:38:00 조회: 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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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창안했다는 북한식 영농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70년대 초 농업분야 학자·농민들과 농사경험을 폭넓게 교환하고, 시험농장을 조성해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가 하면 외국의 농업기술과 성과를 연구·분석해 북한 실정에 맞는 새로운 농사방법을 창안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주체농법을 만들어낸 것은 북한 농업위원회(현 농업성) 산하 농업과학원 학자들과 관련 종사자들이며 특히 김만금 전 농업위원장과 서관히 전 당중앙위원회 농업담당 비서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은 다만 여기에 본인의 의견과 외국의 경험 등을 보태 자신의 이름으로 제시한 것뿐이라고 한다.

주체농법은 당초 "과학적 영농법"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주체사상을 농업분야에 구현해 창시했다 하여 김정일의 지시로 주체농법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북한은 주체농법을 선전하면서 ▲포기농사 ▲적기적작(適期適作)·적지적작(適地適作) ▲과학적 영농방법의 세 가지 원칙을 내세운다.


포기농사는 작물의 간격을 최대한 조밀하게 배치함으로써 소출을 늘린다는 것으로 밀식재배(密植栽培)의 북한식 표현이다.

적기적작은 계절적 변화와 농작물의 생육에 따른 시기선택의 중요성을, 적지적작은 토양과 기후조건에 맞는 작물을 골라 심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둘 다 농사에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기본 원칙을 환기시킨 것으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과학적 영농방법은 북한의 기후와 풍토, 토양과 토질, 농작물의 생물학적 특성 등을 고려해 그에 맞게 생산기술과 공정, 생산방법 등을 과학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한랭전선의 영향을 막기 위해 올 종자를 심고, 벼 냉상모판(보온못자리)과 강냉이 영양단지(부식토)를 100% 활용한다는 것이다. 또 토양의 산성화를 방지하고 지력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와 유기질 거름을 적절히 배합하고, 흙깔이(客土)와 깊이갈이(深耕)를 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밀식재배의 경우 50년대 말 중국에서 실패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강냉이 영양단지도 일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적지 않은 폐해를 낳고 있다고 한다.

주체농법에 대해 학자들은 일단 이론적으로 큰 결함이 없고 최대한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흔적이 엿보이고 있으나 실제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환경과 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함으로써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한 농사 현장에서 비능률이 드러나도 주체농법이 김일성의 이름으로 제시됐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임의로 수정할 수 없는 체제의 경직성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통일 에세이]강인덕/北기근 부른 「주체농법」



[통일 에세이]강인덕/北기근 부른 「주체농법」

강인덕/北기근 부른 「주체농법」
입력 1997-10-20 20:15수정 2009-09-26 07:34


지금부터 25년전의 일이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72년 11월 나는 남북조절위원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서 개최되는 남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에 갔다. ▼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 판문점에서 북쪽으로 2,3㎞ 떨어진 곳에서 북측 헬기를 타고 1천피트 상공을 40여분 날아 평양에서 30여리 남쪽인 평안남도 중화군에 임시로 마련한 헬기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내가 어릴 때 자란 고향(평남 대동군 용연면)에서 지척에 위치한 곳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산천을 다시 밟으면서 나는 북받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눈앞에 보이는 야산은 온통 벌거숭이가 아닌가. 해방 직후 땔감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도 나무가 무성해 꿩과 산비둘기가 많기로 유명하던 이곳이 왜 이처럼 벌거숭이가 됐단 말인가.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를 마중나온 북측 대표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답변은 이른바 주체농법과 자연개조사업으로 계단식 밭을 만들어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간청하다시피 주체농법을 중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가을 추수 후 겨울 동안 눈비가 내려 땅이 얼었다가 봄에 해동이 되면 틀림없이 눈녹은 물이 토사와 함께 샛강을 메우고 큰 강의 하상을 높여 홍수를 막을 길이 없어지는 게 뻔한데 어쩌자고 이런 방법을 계속하느냐고 설교했다. 그러나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이었던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런 사정을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수령님의 위대한 농업정책이 결코 그런 후과를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후 20여년이 지난 요즘 북한에서는 수십만의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참담한 소식이 들려온다. ▼ 독재자 오만의 산물 ▼ 그래서 그때 그 생각만 하면 더욱 분노가 치솟는다. 북한이 무모하게 나무를 베어내지 않았더라면 홍수로 인한 농작물의 유실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결국 자연의 순리를 거역한 독재자의 오만함이 빚어낸 응당한 결과라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강인덕<극동문제연구소장>

윗동네 리얼스토리 | 그렇게 하면 수령이 뭐가 되니? 2018년 3월호 | 통일한국



윗동네 리얼스토리 | 그렇게 하면 수령이 뭐가 되니? 2018년 3월호 | 통일한국



윗동네 리얼스토리 | 그렇게 하면 수령이 뭐가 되니? 2018년 3월호

그렇게 하면 수령이 뭐가 되니?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황해북도 사리원에 위치한 미곡벌은 논 면적만 해도 300여 정보(약 300만㎡)가 넘어 산악이 많은 북한치고는 큰 벌방으로 이름이 났다. 땅이 기름져 노동당이 제시한 벼 수확량만 해도 1정보 당 10t 생산으로 전국 농장들의 본보기로 적극 추켜세우는 고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걸핏하면 김일성 때나 김정일 때 국가지도자가 곧잘 현지시찰을 나가는 고장이었다. 물론 이유는 김일성이 내세운 주체농법 본보기 농장으로 선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매해마다 정보 당 10t의 벼를 생산했다고 상부에 보고되었지만 실제로는 5t 정도의 수확밖에 거두지 못했다. 필자도 여러 번 이 농장에 다녀봤지만 산골의 농장과 달리 벌방이고 국가의 관심 속에 있어 그런지 농장원들은 이른 새벽에 벌로 나가고 별을 보며 집에 들어오고는 하는 것을 직접 봤다. 벼농사가 위주라서 쌀밥은 먹지만 그 고된 노동 때문에 농장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1984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농업대표단이 미곡벌을 참관했다. 벌의 정경과 농장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던 대표단 실무진들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정보 당 얼마를 생산하는지 동행한 관리위원장에게 물었다. 1정보 당 10t이라는 대답이 오자 그 농사 방법과 함께 단계별로 벼에 어떤 비료를 얼마씩 주는지를 묻고 나서 지금의 방법으로는 10t을 절대 생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관리위원장은 대번에 얼굴색을 바꾸며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당신들이 어떻게 위대한 수령님이 제시한 사회주의주체농법의 진수를 알겠냐며 오히려 핀잔했다.

“당신이 주체농법을 알아?”

그러자 그 실무자가 말하길, 농사를 짓는데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구조가 왜 필요하냐고 하자 관리위원장은 “필요하지. 당이 제시한 주체농법을 무조건 관철하겠다는 혁명적 투쟁정신이 있어야 수확량도 올라갈 것이 아닙니까!”라며 확신에 차 말했다.

실무진은 웃으며 토양 조건이라든가 기후, 주는 비료를 합쳐 분석해 보면 정보 당 최대 5t 이상은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위원장은 그 말에 속이 뜨끔했으나 짐짓 뻗대며 “당신은 왜 10t 생산현장에 와서 5t 소리를 하느냐?”라고 말하며 그렇게 나오려면 참관이고 뭐고 어서 가라고 화를 냈다.

사실 일본농업대표단은 미곡벌을 둘러보며 일본과 북한 양국의 공동합작지대를 정하려고 찾아온 터라 그렇게 화를 낸다고 해서 호락호락 물러갈 기색이 없었다. 실무진은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우리와 합작해 정보 당 10t을 생산하고 절반씩 나누는 것이죠. 일체 농사방법과 농기계 그리고 비료는 우리가 다 대고 노동력만 현지농장에서 담당하면 됩니다. 생산물은 절반씩 나누는데 설사 10t을 생산하지 못한다고 해도 정보 당 5t은 이 농장에 돌려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새벽같이 벌로 나가고 어두워서야 집에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8시간 노동이면 충분하니까요. 선진화된 일본의 농사법을 배우는 겸 말입니다”

관리위원장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해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일본의 농장포전이 정규화되고 기계화가 이룩되어 사람이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밤낮 포전에서 살다시피 해야 정보 당 5t 생산도 힘든 것을 감안해 그렇게만 되면 고된 노동에서 해방도 되고 쉽게 낟알도 생산할 수 있어 다음 날 중앙농업부에 제의서를 올렸다. 그의 생각으로는 일본농업대표단이 일개 농장관리위원장을 상대로 하여 그러한 제의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사전에 토의를 걸치고 현지답사를 내려왔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관리위원장에게 있어 인생 최대의 실수였고 다시 소생할 수 없는 나락에 굴러 떨어진 함정일 줄은 몰랐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일본농업대표단은 귀국했지만 관리위원장은 직위에서 해임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솔깃해서 올린 제의서, 돌아온 것은 ‘추방’

물론 관리위원장이 정치범관리소에 잡혀간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그 사람은 벌방에서 함경북도의 깊은 오지로 가족과 함께 추방되었다. 필자가 그 관리위원장을 만난 것은 중국 헤이룽장 성에 위치한 로야령의 깊은 산속 벌목장에서였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일 때 생계를 위해 탈북한 그를 만났던 당시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당시 이야기를 들은 필자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어떻게 관리위원장까지 한 사람이 그렇듯 정치적 문제에 민감하지 못했는지, 만약 일본농업대표단과의 합작이 이루어져 벼 생산이 선진화되어 일도 한결 쉬워졌다면 그때까지 북한 주민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농법이라 추켜세우던 김일성의 주체농법의 위상은 무엇이 되는지 눈치도 없었다는 말인가. 설사 농장원들이 24시간 포전에서 산다 해도 북한 정권으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을 일개 관리위원장이 제의서까지 올렸으니, 이거야말로 수령의 주체노선을 따르지 않는 얼간이 짓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농업, 시장경제 적극 도입…온라인시장 형성 - 농민신문



북한농업, 시장경제 적극 도입…온라인시장 형성 - 농민신문

북한농업, 시장경제 적극 도입…온라인시장 형성
입력 : 2018-08-01 00:00

북한 바로알기 (3)북한농업 시장화 실태

협동농장 자율권 확대 생산 주체 계획권 보장

장마당 400곳으로 늘어 도시선 인력시장도 운영

“시장 역할 더 강화할 듯”



북한경제라고 하면,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의 통제된 계획경제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북한경제는 최근 급격한 변화의 바람을 겪고 있다. 바로 ‘시장화’의 바람이다.



◆‘시장화’ 어디까지 왔나=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시장을 매개로 한 경제운영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율권을 확대하고, 분배에서도 경제적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등 시장경제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기업부문에서는 ‘사회주의 기업관리책임제’를 도입해 자체적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다. 농업부문에서는 ‘포전담당책임제’ 도입을 통해 농장 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물자를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협동농장의 자율권을 확대한 것이다. 또 중앙의 계획 지표를 축소하고 생산 주체의 자율 지표를 확대해 이들의 계획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북한의 시장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 전역에 있는 장마당 수는 2010년 200개 정도였으나 2017년에는 400개 이상으로 두배 넘게 늘어났다.

기능적으로도 다양화하고 있다. 소매시장·도매시장·금융시장·노동시장·부동산시장 등 분야별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온라인시장도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북·중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소규모 지역의 도매시장이 내륙까지 진출하면서 거점 도매시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도시지역에서는 일정 장소에 모여 임금을 흥정하는 새벽 인력시장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부문 현황은=협동농장 운영에서도 시장경제적 요소가 대거 도입됐다. 작업반과 작업분조의 틀에 가두었던 협동농장의 조직을 ‘분조관리제하의 포전담당책임제’로 개편했다. 과거 생산·분배의 최소단위는 15명 내외로 구성된 분조였으나 분조 안에 다시 5명 내외(2~3가족)로 구성된 포전담당책임조를 만든 것이다.

협동농장의 자율권이 확대돼 협동농장은 중앙에서 시달된 곡물 생산목표를 달성하면 수입이 높은 여러가지 작물을 별도로 재배해 시장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 또 중앙에서 배정하는 자금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자체 판단에 따라 민간으로부터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 물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농산물 유통규모는 북한시장 전체의 매대 면적에서 농산물 매대가 차지하는 비중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 북한시장에서 농산물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20%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물·가공식품·담배 등을 포함하면 비중은 20%를 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망은=북한의 새로운 경제 운영방식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1970년대말~1980년대초)와 비교하면 미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집단경영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경영조직을 채택하도록 했으나, 북한은 아직도 협동농장이라는 틀을 유지하는 등 시장화 수준이 더디다는 평가다.  

특히 협동농장의 활동은 계획경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농민의 경제적 활동이 크게 제약받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협동조합의 자율처분권이 확대됐다고는 하나 농자재는 여전히 국가공급체계의 틀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중국 개혁개방이 봇물 터지듯 일시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의 적용을 받는 지역이 점차 확대된 것처럼 북한도 이러한 방식을 밟아갈 것”으로 내다본다.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다른 나라 사례에 비춰볼 때 일단 확대된 시장은 과거로 돌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도 향후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시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규원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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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北, ‘주체농법’ 강요로 수확량 감소

[ 2015-09-23, 03:00 ]

北, ‘주체농법’ 강요로 수확량 감소

비료와 농약을 제때 공급해주지 않아 알곡 생산량 감소… “당국의 낡아빠진 주체농법만 아니었으면 소출이 더 높았을 것”


RFA(자유아시아방송)

앵커:북한의 올해 농사작황이 지난해에 못지않게 잘 된 것 같다고 현지소식통들이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올해 수확량을 더 높일 수 있었는데도 중앙에서 낡아빠진 ‘주체농법’을 고집해 작년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김지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농사작황을 놓고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정권의 농업정책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이야기했습니다. 작년 수준의 수확량이 예상되고 있긴 하지만 올해 작황으로 보아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은 수확량을 거둘 수 있었는데도 쓸모없는 ‘주체농법’을 강조해 수확량을 더 높일 수 없었다고 소식통들은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22일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백년 만의 가뭄이요, 큰물피해요, 중앙에서 자꾸 떠들고 있지만 올해 함경북도의 작황은 예년에 비해 잘된 편”이라며 “당국의 낡아빠진 주체농법만 아니었으면 소출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함경북도의 농민들은 ‘포전책임제’도 다 농사를 잘 짓자고 내온 것인데 기왕 농민들에게 땅을 맡겨주고는 중앙에서 왜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국의 농업정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북한당국은 협동농장들에 ‘주체농법’에 근거해 “국가에서 공급하는 비료와 농약만을 사용하라”고 거듭 지시하면서 실제로 필요한 비료와 농약을 제때 공급해주지 않아 심각한 비료와 농약부족 현상이 초래되었고 그 결과 알곡생산량이 감소하게 되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은 “세관에서 중국산 농약이나 비료의 수입을 막지는 않았지만 고액의 벌금을 부과해 외화벌이 기관들이 중국산 농약과 비료를 제때 수입하지 못했다”며 “이러한 사정으로 비료와 농약을 때 맞춰 주지 못해 농작물 소출이 예상보다 저하됐다”고 2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애초 농사에 필요한 비료와 농약을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던 북한이 갑자기 중국산 비료에 벌금까지 부과한 원인에 대해 소식통은 “아마도 당 창건 70돌 행사에 필요한 자금이 모자라니까 그런 고액의 세금을 매긴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정작 필요한 만큼의 비료를 생산해내지 못하면서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료와 농약에 40%의 벌금을 부과했다며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기업소, 2·8비날론공장에서 생산되는 비료는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량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북한산 비료의 효능은 중국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더욱이 살충제와 살초제 같은 농약은 북한에서 생산조차 못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과도한 벌금을 부과해 중국에서 비료와 농약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그는 언급했습니다.

소식통은 또 “가장 황당한 것은 병해충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담뱃대 줄기와 버드나무를 달인 물, 나무 재를 우린 물을 농약대용으로 사용하는 주체농법을 장려하면서 정작 효능이 뛰어난 중국산 농약의 사용은 막아 농작물의 병해충 피해가 심했다”고 소식통들은 강조했습니다.
  

[요즘 북한은] “주체농법으로 농업 발전”…현실은? > 남북의 창 > 정치 > 뉴스 | KBSNEWS



[요즘 북한은] “주체농법으로 농업 발전”…현실은? > 남북의 창 > 정치 > 뉴스 | KBSNEWS




[요즘 북한은] “주체농법으로 농업 발전”…현실은?입력 2016.12.17 (08:03)수정 2016.12.17 (08:32)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의 최근 소식을 알아보는 ‘요즘 북한은’입니다.

북한이 농민조직인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제8차 대회를 34년 만에 열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태양과 오곡백과’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회까지 열어 김 씨 일가 3대 덕택에 북한의 농업이 크게 발전했다고 선전했는데요.

실제 북한의 식량 사정은 어떨까요?

<리포트>

흥겨운 농악 가락에 맞춰 농악무가 펼쳐집니다.

‘결사옹위’ 같은 충성다짐 구호를 배경으로 현란한 상모돌리기와 소고춤, 풍물놀이가 선보여집니다.

34년 만에 제8차 대회를 연 조선 농업근로자 동맹 농악무도회 현장입니다.

<녹취> 홍명순(농근맹원) : “저도 농장에서 농악무를 추곤 했는데 이 대회에 참가해서 농악무를 보니 정말 가슴 뜨거워짐을 금할 수 없습니다.”

130만 명의 농근맹원 가운데 선발돼 평양에 집결한 북한 농민들.

김일성‧김정일 동상 참배를 시작으로 각종 궐기모임을 잇따라 열며 김정은을 향한 충성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김정은도 대회 참가자들 앞으로 서한을 보내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곡식과 채소가 넘쳐나는 나라로 만들자’고 주문했습니다.

또 평양에선 ‘태양과 오곡백과’라는 전시회가 열려 김 씨 일가 3대 덕택에 북한 농업이 크게 발전했다고 선전했는데요.

<녹취> 조선중앙TV :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영원불멸할 혁명 업적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었습니다.”

때맞춰 방영된 선전영화에서도 김일성이 개발했다는 이른바 주체 농법을, 김정일이 발전시켜 식량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북한 기록영화 :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는 우리 농업근로자들이 위대한 주체농법을 구현하여 농업 생산에서 일대의 전환을 가져오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9월에만 중국으로부터 만 6천 톤의 쌀을 수입하며 김정은 집권 이후 월 단위로는 가장 많은 쌀 수입량을 기록했습니다.

국제식량농업기구 FAO도 2년 연속 북한을 식량부족 국가로 지정했는데요.

북한 당국의 화려한 선전과 달리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는 김일성의 약속은 핵개발에 밀려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의 꼬마 한석봉…서체도 우상화 도구

<앵커 멘트>

최근 북한 TV가 서예가를 꿈꾸는 서예 꿈나무들의 활약상을 방영했는데요.

‘꼬마 한석봉’이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6살 어린이들의 붓글씨 솜씨는 무척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쓴 글귀는 김 씨 일가 3대에게 충성을 다짐하거나 우상화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는데요.

전통예술마저 세습 우상화 도구로 전락시킨 북한의 행태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습니다.

<리포트>

자신의 손보다 큰 붓을 쥔 어린이들이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붓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온 정신을 집중하는 어린이들.

붓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요.

<녹취> 박은경(교사) :“붓글을 잘 쓰자면 붓 끝에 힘과 율동감을 담는 것이 중요한데 이 어린이는 손목의 힘 조절을 잘 하는 것이 매우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6살인 어린이들이 또박 또박 쓴 글귀는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짐하거나 김 씨 일가를 우상화하는 내용입니다.

또 이렇게 쓴 붓글씨들을 작품집으로 만들어 김정은에게 전달한다고 하는데요.

<녹취> "(영의 어린이, 작품집에서 어떤 글을 썼습니까?) 바른 글씨체로 ‘백두광명성’과 ‘일심단결’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영재들을 찾아 조기교육을 시키는 북한은 서예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는데요.

대형 간판이나 영화 포스터에도 여전히 붓글씨가 많이 사용되고 있고, 서예가들은 북한 예술단체에 소속돼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김일성 생일 등 북한의 주요 기념일에는 전국서예축전을 개최할 정도로 서예를 주요 예술로 우대하고 있는데요.

박력 있게 쓴 반흘림 글씨인 청봉체, 역동성을 강조한 붉은기체 등 북한이 개발한 서체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녹취> 정은주(평양미술대학 학생) : “'조선속도' 이것을 힘 있고 기세차고 박력 있는 '붉은기체'로 형상화 했습니다.”

북한은 특히 김일성의 필체를 ‘태양 서체’로, 김정일의 필체를 ‘백두산 서체’라 부르며 서체까지 우상화 도구로 삼고 있는데요.

김정은은 3대 세습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정일의 필체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요즘 북한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