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수 is with 박은미 and Eung Gyo Kim.
[개벽통문24-08] 1. 오늘부터, 신동엽학회(회장 김응교)에서 월1회씩 4회에 걸쳐 진행되는 <동학사상과 천도교>(백세명 저, 1956년 刊) 강독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책은 <금강>의 시인 신동엽이 '동학의 역사와 사상'을 공부하는 데 결정적인 안내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입니다. 본래 '신동엽 열독 자료 목록'에 없었던 것을 김응교 회장이 유족들로부터 이 책(신동엽 친필 서명)을 기증받으면서, 새롭게 자료 목록에 추가된 것이어서 더욱 뜻깊은 책입니다.
2.
백세명 선생은 1898년생(교회자료에는 1899)으로, 1917년 천도교에 입교한 이래 고향(의주)에서 천도교청년회(청년당, 청우당) 활동을 시작하고, 이후 중앙에서도 청년당 활동을 하며, 신인간지 등에 많은 천도교 관련 교리 논설들을 게재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천도교를 기반으로 한 '한글보급운동'에 앞장서 초기 인물이기도 합니다.(이에 대해서는 정식 논문을 준비중입니다.) 해방 이후에는 '북조선종리원' 창설 주역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청우당을 통한 정치활동을 하다가, 6.25 이후 월남하여 남한의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중요 교직을 거쳐 '상주선도사'(천도교 교령 자문기관)을 역임하였습니다. 1970년 환원. 문학평론가 백철이 그의 동생입니다.
3.
오늘은 서문(공진항 - 1956~1960까지 천도교 교령 역임)과 저자 서(序), 그리고 제1장 1. 천도교의 창도(수운~해월), 2. 천도교 선포(의암)까지를 강독하였습니다. 국한문 혼용인 원문을 백아인, 박은미 두 분 선생님이 한글로 탈초하여 강독하였습니다.
4.
수삼년 전에 신동엽의 <금강>을 일독한 바로는 신동엽의 동학 이해는(동학혁명사뿐 아니라, 동학사상 전반) 매우 깊은 수준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학술적인 기본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시인의 통찰력과 영성적 상상력'이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저의 지론입니다만 ^^). 이러한 경향은 김지하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지하 선생은 꽤 깊이 있고 폭넓게 동학공부를 하였습니다만, 텍스트를 통한 공부만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심오하고 고상한 동학 이해와 '동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장면에서는 여지 없는 신기(神氣)를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필자의 지론^^) 그것이 시인의 시인으로서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백세명 선생의 이 책은 신동엽의 동학 이해와 (신동엽의) 동학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입구를 안내하는 책이었다는 점에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5.
전반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오늘 읽은 책의 대목 중 저의 최근 관심 주제에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메모해 둡니다.(책의 원문->한글번역/박은미 번역을 필자가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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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 <안심가>에서는 “4월이라 초5일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하여 정신 수습 못할러라 (중략) 공중에서 웨는 소리 물구물공(勿懼勿恐) 하였어라. 호천금궐(昊天金闕 : 높은 하늘나라 하늘임금의 궁궐) 상제(上帝)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라고 하였는데, 옛날 같으면 몰라도 과학시대인 오늘에 있어서는 이것을 한 개의 허탄(虛誕: 허망한)한 소리로 돌릴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이며 심리학적으로 이것을 고안(考案)하게 되면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것은 최수운이 각도(覺道) 경로(徑路)에 있어서 직관 작용에 의하여 심리상태와 생리상태가 온통 비상한 경애(境涯: 경지, 상태) 에 들어갔느니 만큼 이것은 무슨 객관적으로 존재한 하느님과의 문답이라기보다도 최수운 자신의 의식계에 내재한 하느님과의 문답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최수운’과 ‘낡은 최수운’과의 문답인 것이니 얼른 보면 자문자답(自問自答)같이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나 단순한 자문자답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최수운의 인격향상과정에 있어서 너무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느니 만큼 최수운의 새로운 새로운 의식계와 낡은 의식계는 완전히 대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논학문>에서 하느님과의 문답 광경을 형용하여 설명하되 “밖으로는 영기(靈氣: 신령한 기운)를 접함이 있고 안으로는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았는데 보이지 않고 들었는데 들리지 않는지라(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고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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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동학 창도"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수운 최제우가 상제(上帝)와 문답(問答)을 주고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운의 '신비체험' '종교체험'의 핵심은 바로 '수운'과 '한울님' 사이에 문답을 통해서 수운이 '주문'과 '영부'를 받은 사건입니다. 그 결실로 '동학창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백세명은 이것이 '낡은 수운'과 '새로운 수운' 사이에 있었던 일종의 '자문자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동학(천도교)에서 '신비주의'의 색채를 제거하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일찍이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하는 1905년 이래 시작되어 1920, 30년대에 천도교청년당이 왕성하게 신문화운동을 전개하던 시절에 최고도에 이른 동학(천도교) 이해 방식입니다. 이것은 천도교를 religion으로서의 종교 일반과 구분되게 하려는 시도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신문화운동기)에 천도교(청년들)는 동학의 종교화, 즉 천도교 선포 이념을 구현하는 과제와, 천도교의 비(非)종교, 탈(脫)종교, 초(超)종교성을 논증하는 과제의,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그러나 모순이 아니라, 종교진화론적인 견지에 서 있었던), 과제를 실행해 왔습니다.
백세명 또한 이러한 경향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6.
오늘 발표 모두에 김응교 신동엽 학회 회장은 본인의 '신동엽 연구 논문 - 신동엽이 고구려와 동학을 접한 경로에 대한 연구'를 간략히 소개하였는바, 신동엽은 이미 대학 학부시절부터 '신화'든 '종교'든 비합리적인 요소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다는 대목이 눈에 띄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신동엽은 백세명의 이 책, 이 대목을 유념하며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7.
여타 공부모임에 비하여, 참가자들의 참여 열의와 적극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회장님(김응교) 이하 학회 참여자들의 최근 공부 이력만을 대략 설명 들었는데, 그 견고함이 놀랄 정도였습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공부모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