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2

알라딘: 발원 1,2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2015

알라딘: 발원 1


발원 1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은이)민음사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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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원효, 요석, 김선우, 사람의 마음 "
시인, 에세이스트, 소설가. 다양한 얼굴을 지닌 '소설가' 김선우의 네번째 장편소설. 귀족으로 태어나 화랑이 되었다가 출가한 고승. 설총, 요석공주, 해골물 같은 키워드가 함께 드문드문 떠오르는 '원효'의 삶을 맵시있는 문장으로 복원해냈다.

세속에서 원효는 무수히 많은 모순을 목격했다. 은 두 냥에 노비로 팔려가는 아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죽어 가는 말의 눈동자. "부처께서 신라에 오신다면" 원효는 그렇게 신라 저잣거리에서 도를 행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요석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랑한 한 여성의 은은한 열기가 김선우의 문장으로 살아난다.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는 부처의 마음, 서로의 존재를 사랑으로 구원하는 사람의 마음이 은은한 울림을 전한다.


- 소설 MD 김효선 (2015.06.09)




책소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그리고 통찰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 김선우의 네 번째 장편소설. 원효와 요석의 사랑 그리고 당시 신라의 사회상과 원효의 사상을 공중제비를 도는 주령구처럼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원효의 일대기는 후대의 필요에 따라 각색되거나 축소, 과장되었고 이 또한 그 수가 많지 않다. 때문에 원효의 삶은 우리에게 피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김선우는 시인 특유의 유려한 문장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로 역사 속 인물 원효를 우리 곁에 인간 원효로 탈바꿈시킨다. 또한 원효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요석 공주 또한 주변부 인물이 아닌, 운명에 맞서는 당당한 여성으로 그려 낸다.

작가의 손끝에서 원효와 요석은 오랜 전쟁과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하는 '부처의 마음'과 존재와 존재로서 서로를 사랑으로 구원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지닌 입체적 인물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선덕여왕과 김춘추, 의상 등의 실존 인물과 작가에 의해 탄생한 여러 인물이 서라벌을 배경으로 작가의 문장에 걸음을 맞춘다. 그들의 걸음은 간혹 비장하고도 경쾌한 춤과 같아서, 책장을 넘기는 박자를 가볍게 한다.


목차 1

635년 서라벌
1부 빛바랜 화랑의 꿈
2부 아미타림, 그리고 요석
3부 첨성대의 애달픈 넋들
===
목차 2
4부 선덕여왕과 혜공의 죽음
5부 의상을 떠나 다시 아비규환으로
6부 보현랑, 그 애절한 사랑
7부 발원, 지지 않을 꽃을 위하여

660년 압량주

===

책속에서


P. 138-139 “말해 보라. 왜 하필 서라벌이냐?”
휘몰아치는 노인의 기세에 주저하던 그가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흐읏! 희한하게 한 번 웃은 노인은 다그치기를 멈추고 삿갓을 다시 눌러쓰더니 삼태기를 추어올리며 휙 몸을 돌렸다.
“흥, 꼴값 좀 하겠구나.” 접기
P. 206 백스무날의 낮과 밤. 그동안 원효의 내면에 일었다 사라진 것들이 공기 속에 스미어 모든 생명의 찰나를 구성하는 물질들로 화한 것 같았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기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스민 어떤 강력한 물질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지난 밤, 그는 하산의 때가 왔음을 그저 알아차렸다.
서라벌에 와 네 해. 귀족과 화랑, 전쟁, 아미타의 벗들, 출가, 사찰, 승려, 왕의 알현까지 가장 높은 이들과 가장 천한 이들을 두루 겪었다. 많은 인과들이 한꺼번에 출현하여 원효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네 해가 지났다. 그 모든 인연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지 확언할 수는 없었으나, 이제 원효는 새로이 펼쳐질 길을 성심을 다해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느꼈다. 접기
P. 207 원효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나는 부처로 살겠다!”
산을 내려오너라. 흉내 내지 말라. 너는 스스로 온 자, 배움의 장소가 산속에 따로 필요한 자가 아니다. 만나는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자, 그것이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다.
P. 267 혼돈에 가득 찬 물음들 저 너머에 육신을 벗어 놓고 저세상으로 간 소녀의 얼굴이 자주 보였다. 단아, 너는 지금 괜찮은 것이냐. 나도 너처럼 육신을 그만 벗고 싶구나. 단아, 너와 내가 가져야 하는 힘이란 무엇이냐. 힘없는 백성 속에서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어떤 힘을 가져야 참으로 힘인 것이냐. 단이를 부르며 원효는 울었다. 육체가 흘릴 수 있는 눈물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으므로 산산이 찢긴 몸을 붙들고 한 줄기 마음이 울고 또 울었다. 접기
˝날이 밝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니라. 이 새벽을 나는 견디지 못하겠으나, 너는 반드시 견뎌 내겨라.˝(19쪽) - n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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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책속에서


P. 57 여왕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요석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눈물을 흘리며 요석이 여왕 가까이로가 손을 잡았다. 여왕의 손은 이미 싸늘했다.
“그를…… 은애하느냐?”
여왕이 요석에게 물었다. 요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 눈물만 흘리며 여왕을 바라보았다.
“부질없다……. 모든 것이. 석아, 너는 궁을 떠나 살거라. 너는…… 사랑을 이루거라.”
그것은 여왕의 유언이나 다름없었다. 궁을 떠나 살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요석에게 대신 이루라고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접기
P. 138-139 꿈속의 원효가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토굴 밖으로 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더군요. 자유로운 새 같고 도약하려는 호랑이 같고 우듬지로 햇빛을 뿜어 올리는 장대한 나무 같은 기개였습니다.
“오, 마음이 두려움을 여의었구나. 마음이랄 것도 없구나.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님을 알겠다. 오오, 두려운 것이 없고 원하는 것도 없다. 마음이여, 내 다리를 붙들고 떼쓰지 마라. 나는 자유다!” 접기
P. 213 그 뜻은 광대하되 말의 집중력은 예리한 화살촉처럼 좌중을 꿰뚫으며 명사수의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담장 밖에 매달린 백성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인 채로 원효의 맑고 우렁찬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환호했고, 경내의 귀족들과 백고좌 법석에 앉은 승려들은 원효가 사용하는 언어의 정확하고도 고도로 수련된 표현에 전율했다.
P. 246 야유와 함께 돌이 두어 개 더 날아들었다. 설마 하던 백성들이 조금씩 깃발 아래로 모여들며 원효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 갔다. 더 많은 돌팔매가 원효와 요석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무리 가장자리로 물러나 발을 구르며 원효를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소수였다. 돌팔매가 점점 심해지고, 차마 원효를 비난할 수 없는 소수의 사람들은 비두골을 빠져나갔다. 국가의 대업인 성전에 반대해 온 원효의 파계행을 임금에게 고해 능지처참시켜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난폭해졌다. 요석을 안은 원효를 다시 휘소가 방어하며 돌팔매를 막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접기
P. 251 몸이 영혼과 다르지 않았다. 불일불이했다. 원효의 몸은 원효의 영혼이었다. 사랑해 주십시오. 다 가지겠습니다. 지난 세월과 앞으로의 세월까지 모두 이 밤에 가지겠습니다. 이 순간이 저의 영원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쳐 오듯 격렬히 원효에게 내달려 오는 요석을 껴안으며 원효는 온몸, 온 마음으로 요석에게 화답했다. 영혼이라 일컬을 수 있는 시공의 모든 인연들이 요석의 몸과 함께 새로워졌다. 처음 만나는 밤이었고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천수만 년 거듭 만나 온 밤이기도 했다. 길고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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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20년 전 대학원 시절부터 소망했던 나의 꿈, 언젠가 원효에 대한 근사한 소설을 쓰리라는 꿈을 이제 나는 접을 것이다. 이건 모두 김선우의 소설 『발원』 때문이다. 나는 그냥 『발원』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일까, 『발원』을 읽은 뒤 나는 그만 김선우 작가에게 설복당하고 말았다.
- 강신주 (철학자,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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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 2015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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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2015년 5월 30일자 '책의 향기/150자 서평'



저자 및 역자소개
김선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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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金宣佑) 시인은 1970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났다. 1996년 『창작과비평』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녹턴』,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 청소년소설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청소년시집 『댄스, 푸른푸른』 『아무것도 안 하는 날』, 산문집 『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부상당한 천사에게』 『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 등을 펴냈고, 그외 다수의 시해설서가 있다. 현대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고정희상, 발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접기

수상 : 2007년 천상병시문학상, 2004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 <[큰글자책] 김선우의 사물들>,<내 따스한 유령들>,<김선우의 사물들> … 총 6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 강신주(철학자)

  • 한 세상을 발원하고 한 여자를 사랑한 원효
  • 한 시대를 이겨내고 한 남자를 은애한 요석
  • 단아한 문장과 화려한 전개로 다시 태어나는 서라벌
  • 원효의 사상과 사랑을 오롯이 담은 독존적 소설

김선우 장편소설 『발원 - 요석 그리고 원효』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그리고 통찰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 김선우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발원』은 원효와 요석의 사랑 그리고 당시 신라의 사회상과 원효의 사상을 공중제비를 도는 주령구처럼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 특유의 유려하고 맵시 있는 문장은 소설의 읽는 맛을 더해 주며,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와 영화적 상상력은 당시 서라벌을 눈앞에 온전히 펼쳐 놓는다. 

왕이나 귀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원효, 그리고 요석. 소설을 읽은 독자는 원효와 요석이 나눈 1400년 전의 사랑을 통해 지금 우리 시대의 갈등과 번뇌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발원』은 작가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다른 여지가 없을 만큼 김선우가 써야 할 이야기였고, 오로지 김선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며, 김선우가 기어코 해낸 이야기인 것이다.

■ 다시 살아난 원효, 다시 깨어난 서라벌

원효의 일대기는 후대의 필요에 따라 각색되거나 축소, 과장되었고 이 또한 그 수가 많지 않다. 때문에 원효의 삶은 우리에게 피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김선우는 시인 특유의 유려한 문장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로 역사 속 인물 원효를 우리 곁에 인간 원효로 탈바꿈시킨다. 또한 원효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요석 공주 또한 주변부 인물이 아닌, 운명에 맞서는 당당한 여성으로 그려 낸다.
작가의 손끝에서 원효와 요석은 오랜 전쟁과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하는 ‘부처의 마음’과 존재와 존재로서 서로를 사랑으로 구원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지닌 입체적 인물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선덕여왕과 김춘추, 의상 등의 실존 인물과 작가에 의해 탄생한 여러 인물이 서라벌을 배경으로 작가의 문장에 걸음을 맞춘다. 그들의 걸음은 간혹 비장하고도 경쾌한 춤과 같아서, 책장을 넘기는 박자를 가볍게 한다.
인물뿐만 아니라 공간 또한 『발원』의 세계관 안에서 다시 탄탄한 생명력을 얻는다. 황룡사와 분황사, 첨성대와 같은 실제 배경뿐만 아니라, 아미타림 등의 상상적 공간까지도 원효와 요석의 궤적에 의해 신라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왕경, 즉 서라벌로 다시 구성되고 일어선다. 『발원』을 읽는 것은 신라 시대를 살아 내는 것이며, 원효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 혼탁한 세상에 온몸으로 스미는 소설, 모두가 부처인 세계를 발원하다

이렇게 소설『발원』을 통해 살아난 원효와 요석 그리고 서라벌은 끝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진짜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백성의 고통은 정녕 멈출 수 있는가. 진실된 사랑을 이룰 수 있는가. 원효는 “막히고 갈라져 서로 대립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는 세계로, 한 몸처럼 세상과 만나는 세계로 돌아오”길 촉구한다. 우리는 부처이자 곧 중생이고,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하며, 당신의 사랑은 즉 나의 사랑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작품 해제에 이렇게 쓴다.

“왕이나 귀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불국토를 꿈꾸었던 원효, 사랑과 자비는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걸 내어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던 원효. 김선우 작가는 너무나 근사하게 매력적인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어느 육두품 출신 영민했던 소년이 어떻게 우리가 알던 바로 그 어여쁜 원효가 되어 가는지, 요석이 원효에게 어떤 인연의 여인네였는지, 진정한 자비는 국가와는 무관하게 중생들 마음 하나하나를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닌지,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때로는 섹시한 떨림을 주며, 때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정말로 근사하게 『발원』은 우리 마음에 수많은 색깔의 파문을 만들어 낸다.”

김선우의 『발원』은 원효와 요석 그리고 신라의 수많은 민초들을 비추는 유리창이자 지금 우리 시대의 오래된 청동거울이기도 하다. 『발원』을 통해 되돌아본 우리 모습 뒤로, 우리는 어떤 간절한 발원을 올릴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소설은 이미 당신에게 스며 들어간 후일 테다. 이렇듯 『발원』은 우리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의 삶을 통해 오래되고 동시에 새로운 호소를 독자에게 설파하는 참이다. 우리는 혼탁한 세상에 온몸으로 스미는 이 소설에 귀를 기울여 설복당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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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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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소설 가운데 단연 최고였습니다. 읽는 내내 사랑과 정치와 종교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에 넘쳐났습니다. 감동!!!
산딸나무 2015-06-0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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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불평등>에서 폭발하며 <불평등>은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함을 깨닫게 하는 보기 드문 <정치소설>이며 동시에 플라토닉한 사랑과 에로틱한 사랑을 신비할만큼 잘 버무림으로써 숨막히도록 재미있는 <연애소설>을 쓴 작가 김선우의 빠진 살 오천그램에 경배를!!!
arcetlyre 2015-06-1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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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과 분열의 시대에 화쟁이 희망이다. 원효의 말과 삶이 그 희망의 씨앗이었음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묵묵히 자신을 살을 녹여 글을 수놓은 작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mook 2015-06-1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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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흥미로웠다. 젊은작가들의 불교소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별 하나를 깎은 것은 순전히 강신주의 해제 탓이다.
아쿠링 2020-02-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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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부처님에게 다가가는 그 시초점.
모든욕망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오직하나 깨달음으로 가겠다는 그 시초의 서원은 인정되어지는 발원.
자신과 타인의 고통한가운데 수많은 마음의 나툼을 보게되는 원효의 발원
요석공주와의 사랑 야신과의 암투 등등이 가상적으로 쓰여졌다
아직 읽고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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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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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약하다. 작가의 역사 인식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구매
오 2015-08-0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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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전쟁이 뭔지 모르시네요~

어제 일본 아베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등을 행사하는 안보관련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는데요,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은 87세의 할머니 자이이 아사코씨가 이에 항의해서 아베 총리에게 보낸 손편지에 적힌 말입니다. 자이이 할머니는 70년전 고베 대공습 때 집이 두 차례나 불타고 남편이 부상에 시달리는 등 참혹한 '진짜 전쟁'을 체험한 세대입니다. 자이이 할머니는 "전쟁으로 희생된 시민들의 슬픔을 지위가 높은 분은 알 수 없는 건가,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이 줄어 들면서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며, '다리가 아파서 반대시위에 참여할 수 없어 대신 손편지를 보내 항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침 신동호의 '시선집중'을 듣는데, '말과 말' 코너에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며칠에 걸쳐 김선우의 '발원1, 2'을 읽었다.

그동안 그녀의 작품들은 내게 들쭉날쭉해서,

시집<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같은 경우에는 무한감동을 받았다고 설레발을 쳤었지만,

수필이나 소설들은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신문이 공동으로 "세상에 두루 힘이 되는 이야기"라는 기획의도로 요청해,

연재되었던 것을 거듭 퇴고 해서 이 책이 되었다는데,

그동안 광고를 통해 몇 번 만났지만, 비껴갔었다.

그러다가 알라딘 서재 이웃의 페이퍼 글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시작하게 되었다.

 

읽으면서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다.

발원의 뜻이, '어떠한 일을 바라고 원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는 뜻 말고도,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다짐하는 맹세, 또는 부처나 보살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뜻하는 종교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는데,

내가 그녀가 여자 작가라는 선입견을 갖고 시작해서 그랬는지,

그녀가 요석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요석을 대등하게 내세운 이유를 잡아내지 못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이 책의 작중화자라고 생각하고 감정이입했던, 원효의 그것과 일치되지 않다보니,

글에서 느껴지는 임팩트가 약했다.

 

읽는 내내...뭔가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2권 말미에서 '강신주의 해제'를 만나면서 이유를 깨닫게 되었고,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충분히 채워지니,

하나의 좋은, 아니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종교와 정치는 전혀 다른 얘기인듯 보이지만,

어찌보면 같은 얘기이다.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종교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고도의 복선을 깔아,

개연성과 핍진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음은 물론,

작품 구성면에 있어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게 안배하였고,

등장인물에 있어서도, 대칭과 대조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균형과 조화를 맞추려 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일례로,

원효는 불교를 새로 빛나게 한다는 뜻의 법명이고,

당시 사람들은 새벽(始旦)이라는 뜻의 우리말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 원효와 대조를 이루기 위해서 그랬으리라 예상되는데,

원래 아름다울옥'요', 돌 '석'자를 쓴다고 문헌에 나와 있는 '요석(瑤石)'이

이야기 속에서 빛날 '요', 저녁 '석'자를 쓰는 '요석(曜夕)으로 바뀐다.

 

6두품의 원효를 처음 화랑에 뜻을 두었으나 끝내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캐릭터로 만든 것이나,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계율을 들어 전시에 앞장 서서 나라를 지키는 화랑과 대립 각을 세운 것은,

소설의 재미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와 종교는 모두 어떤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 일반 서민을 위한 것이라는 걸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장치쯤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여왕이,

"비두 벌판에서 내가 너를 구해 주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나는 계산이 분명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장면에선,

현실의 누군가가 오버랩 되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처음에 원효에게 관대하고 넉넉했으며 요석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시중을 들게 했던 여왕은,

나중에 원효를 전쟁에 승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요석을 이용하는데,

지독하게 정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이 있는데,

요석을 곁에 두고, 이용하기도 했던 그 여왕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첨성대와 황룡사ㆍ분황사를 만든 것은 선덕 여왕이고,

그런 선덕여왕과 진덕, 진성 여왕을 거쳐,

태종무열왕의 시대에 이르러 원효와 결혼했다더라 라고 알고 있었는데,

게다가 원효가 황룡사에 머물었던 건, 진덕여왕 2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언급이 없이,

누구라고 지칭되지 않은 한명의 여왕이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묘사되다가,

바로 요석의 아버지 태종무열왕으로 넘어가 버리니까 말이다.

 

책력과 천정에 대해서 언급되면서 첨성대가 거론되는데,

첨성대는 역법을 만들기 위한 운행관측의 측면보다는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성의 의미가 강했으리라 짐작되고,

또 하나 요석이 길쌈을 장려하는 등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인네로 묘사되는데,

길쌈으로 만든 게 광목이고 거기에 천연염료로 염색하는 것까지 나오는데,

우리나라에 문익점이 목화를 가지고 들어온 것은 고려말로 알고 있다.

소설이긴 하지만, 이런 세세한 것들이 자꾸 어긋나 버리면,

개연성을 잃게 되고 재미가 떨어진다.

 

물론 소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가상의 설정이겠지만,

원효는 워낙 중요한 역사적인물이어서 정확한 연도를 알고 있는데,

소설 속 설정이라지만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되면,

알고 있는 그것에 억지로 꿰어맞추려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소설을 가지고 논리적 오류라고 억지를 쓰게 되고,

그 다음부턴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지고, 개연성도 떨어지는 듯 느껴지지만,

그건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내가 처음 저자 김선우가 요석에게 감정이입하여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이 책이 아쉽다고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원효를 스님인것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라,

요석을 사랑하고,

요석과 함께 삶을 살아간 인간 원효에게 초점이 맞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러다가 2권 마지막의 '강신주의 해제'와 '작가 후기'를 통하여,

저자가 이 작품을 통해 하려 했던 얘기가  "세상에 두루 힘이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실마리가 풀리면서 고개를 주억여가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니가 그려내려 했던 건 고승 원효나 깨달음을 얻은 큰 스님 원효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 사이로 뛰어들어,

울고 웃으며 같이 살아간 인간 원효를 그리려 했기 때문에,

요석의 일과 삶과 사랑이 맞물려야만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소 여성적인 문체이고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다시 얘기의 처음으로 옮아가,

종교와 정치는 닮은 구석이 있다고 했던 이유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냐, 너를 바꾸고 싶은게냐?"(1권,334쪽)

라며, 세찬 빗줄기가 되어 원효의 등짝을 후려쳤던 혜공의 목소리가 책을 읽고난 지금까지 각인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왕의 무덤 곁에 백성의 무덤이 있는 것이 이상할 바 없노라. 성군이라면 익히 배워야 할 인(仁)의 정치가 그것을 허한다.ㆍㆍㆍㆍㆍㆍ"(1권,316쪽)

라던 여왕의 의지와 속뜻이 읽혀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정치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시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몸소 겪지 않으면,

시민들의 슬픔을 지위가 높은 분은 알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가장 감동적이었으며, 내 자신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부분은,

그동안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던,

내 자신을 자극시킨다고 생각했던 깨우침이 아니라,

"흐응, 그렇지, 깨달음은 좋은거야.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빠져 있으면 깨달음이고 뭐고 다 귀신 밥이지. 흐응, 너도 알겠지? 젤로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응? 깨달아서 뭣에 쓰게?"(1권,342쪽)

라는 선문답 같은 한마디였는데, 이는,

부처를 사랑하는 것과 부처가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로 현현하고 종내는 서로 통하여 어우러질 것이라는ㆍㆍㆍㆍㆍㆍ(1권,345쪽)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값진 것이었다.

 

"집착의 대상을 모두 없애서 열반에 머물 수 있지만, 커다란 자비의 마음으로 인해 열반마저도 없애 머물지 않는다."

원효의 주저 『금강삼매경론』에 등장하는 말이다. 혼자서 열반에 들었다고 희희낙낙하는 사람이 어떻게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진흙탕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는 온몸에 진흙이 묻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옷을 깨끗이 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은 흙투성이의 사람을 만질 수도 없을 것이다.(2권, 281쪽)

강신주의 해제가 아니었으면, 요원했을 수도 있겠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정치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대상이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다는 깨달음ㆍㆍㆍㆍㆍㆍ.

사람만이 힘이고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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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17 공감(17)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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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발원 2

소설 뒤에 장황하게 적혀 있는 철학자 강신주의 해제를 보고 새삼 `아! 맞아. 이거 역사소설이었지!`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문학적 해석임을 잘 구별해 낼만큼 역사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나로서는 김선우 작가가 그려낸 세계속에 충실하게 몰입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게다가 불자가 아니기에 소설 곳곳에 드러나는 부처님 말씀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음에도 삶의 고단함을 토닥이는 마음밭에서 비롯된 것임을 충분히 느꼈기에 ˝나도 꽃!˝, ˝너도 꽃!˝ 그래서 우리 모두 각자가 존귀한 꽃이라는 말에 마음이 둥실 떠오르기도 했다. 2권은 시리고 아픈 장면이 많았다. 탐욕과의 대응이 극으로 치달아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건..생의 모든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겨지지 못하는 우리네 삶속에서 뭉근하게 피어난 꽃같은 소설. 어여쁘고 고맙다. 옮겨 적기 힘들만큼 밑줄을 많이 그었더랬다. 긴호흡으로 요며칠 빠져들었던 시공간에서 빠져나오며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작가의 말 마지막 부분의 일부를 적어본다.

원효, 요석, 보현, 혜공....오랫동안 함께 지낸 이들이 이제 세상속으로 간다. 우리들 속에서 나와 우리들 속으로 걸어가는 벗들이여. 아프고 아픈 지금 여기, 고단한 우리에게 힘을 주시라. 목숨의 환한 빛을 나누어 주시라. 대자대비,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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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개미 2015-12-22 공감(8)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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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曜夕), 빛나는 저녁 새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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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을 가끔 챙겨보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서 사실과 정보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사실과 정보를 얻으려면 역사책이나 논문을 보면 되니까. 하지만 소설은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구체적 상황들을 재현해내어 특정한 장소와 시간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과 정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흡입력 있는 줄거리와 현실성 있는 인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연성 있는 사건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야만 생겨나는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일반 소설처럼 역사 소설에서도 줄거리와 그 구성(플롯)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잘 갖춰지면 소설의 흡입력은 저절로 생기고, 재미도 뒤따르게 될 것이다.

 

김선우 소설 <발원>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그저 줄거리만 나열한 게 아니라 사건의 구성을 매우 치밀하고 적절하게 설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효가 화랑이 되기를 포기하고 출가하게 되는 계기라든지,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김춘추의 요청으로 원효를 신라에서 내보내려는) 의상을 떼어내기 위한 원효의 술책으로 서술한 부분이 그랬다. 

 

또 혜공이 죽는 장면에서는 매우 격한 감정을 느끼면서 살짝 눈물까지 나더라. 이 사건은 원효가 백제 병사를 구한 행동이 기화가 되어 발생한 것이어서 더욱 비극적이었다. 이런 설정은 역사적 사실의 반영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장치였고 그런 서사 속에서 독자는 안타깝고 북받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통제할 수 없는 우연, 그리고 훌륭한 인물의 숭고한 죽음을 통해 공포와 연민을 불러온다는 비극의 조건을 완전히 갖춘 드라마였다. 바로 이런 게 내가 역사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책을 읽으면서 인간과 역사, 종교와 사회에 관한 저자 나름의 철학과 소신들을 읽어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사상과 철학이 없이 줄거리만 있는 소설은 다 읽고 나면 맹탕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원효라는 대사상가의 촌철 대사를 읽는 즐거움이 컸다.  

 

(황룡사 백고좌법회의 원효 연설 중)

부처님께서는 단 한 명의 구제받지 못한 중생이 있으면 그를 위해 세상 한가운데 머문다 하셨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황룡사 불제자들의 상구보리는 귀족과 황금입니까? 이곳의 하화중생은 게으름과 배척입니까? 여래가 세상에 온 것은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 하더군요. 저기 장경각에 가득 쌓인 숱한 경전들에 말입니다! (1권,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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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시인으로 먼저 알려졌다. 시인이라면 문장 하나 낱말 하나 허투루 쓰지 않을 터. 이 책에서도 저자는 문장과 어휘에 공을 많이 들인 게 역력했다. 어설픈 문장으로는 서사가 아무리 교묘해도 독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못한다. 감정이입이란 건 결국 몰입에서 오는 것일 텐데, 잘은 모르지만 이 몰입은 사건과 동태 묘사의 리얼리티가 만들어내는 것 같다. 결국 이 리얼리티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좋은 문장일 것이다. <발원>은 문장을 읽는 즐거움도 큰 소설이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말고는 저자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지만 읽는 내내 김선우라는 시인을 문장 속에서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던데, 이 소설도 아주 좋은 페미니즘 관련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석이 원효라는 남성을 자극하고, 각성하게 하며, 자신의 신념을 적극적으로 지켜내면서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은 구중궁궐 안에서 원효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만 서술됐던 <삼국유사> 속 요석의 수동적 이미지와 전혀 다른 점이었다. 나는 <유사>의 저 얼척없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요석(瑤石)'이라는 이름만 겨우 알고 있었을 뿐, 그녀의 이념과 감정을 짐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요석을 아름다운 정신과 감정을 지닌 신라 여인 '요석(曜夕)' 으로 재해석하였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빛나는 저녁'으로서 '가장 어두운 새벽'인 원효(元曉)를 이끌어내는 존재로 탄생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페미니즘을 가장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원효와 요석의 로맨스이다. 특히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상황들은 매우 여성적인 시선으로 묘사된다. 원효의 성격과 행동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는 민감하고 치밀한 성격이지만 소설에서 묘사되듯 예민하거나 지나치게 신중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또 여인에게 순정적일 것 같지도 않다. 나로서는 원효가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남주인공들의 전형적인 성격으로 설정된 것이 살짝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살짝 나쁜 남자, 호방한 성격의 남자로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저자 특유의 여성주의적 시각 때문에 오히려 서사 속에 전개되는 로맨스가 어색하지 않은 면도 있는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문학을 영상으로 바꾸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원효와 요석의 동침 장면은 화면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 가치를 완전히 잃을 게 뻔하다. 그들의 섹스는 언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되었지만 이것이 만약 화면으로 변환된다면 그야말로 감각적이고 말초적 이미지로 바뀔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과 범주가 다른 표현이라는 말이다.

 

강신주는 해제에서 원효가 요석과 자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나는 원효가 자고 안자고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이미 사랑과 성욕으로부터 무애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김선우는 두 사람이 나눈 섹스를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하였다고 본다. 요석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아버지인 김춘추의 손아귀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원효는 자신의 존엄과 권위마저도 포기한 것이고, 이 결정적 시간을 저자는 두 사람의 절정의 장면으로 승화하였다.

나 역시 원효가 요석의 아픈 사랑을 흔쾌히, 어쩌면 아주 대범하게(어차피!!)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은밀한 비유와 개념적으로 수식된 문장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남자가 여자를 안을 때는 훨씬 직접적이고 말초적이다), 그 문장들은 역사 소설에서 보기 드문 매우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을 보자.

 

단애를 흠뻑 적신 불붙은 물의 시간, 서로의 몸속에서 목숨으로 태동하던 완벽한 합일이 수차례 거듭되며 벼랑이 무너지고 온몸의 뼈와 살이 공기처럼 흩어졌다. … 원효가 지나온 시간과 요석이 지나온 시간이 서로에게 스며들었고, 원효의 몸속에서 요석은 처음으로 자신의 나신을 보았다. 뭉클한 노을빛 구름들이 몸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다. 저녁노을과 새벽노을이 한 몸에서 피어올랐다. 아, 님이여. 나는 이대로 죽어도 좋겠습니다. 이런 말이 요석의 입속을 맴돌 때, 요석은 깨달았다. 나는 이제 살 수 있겠구나. 요석의 입술이 벌어지며 하아, 가쁜 숨이 흘러나왔다. 요석을 꽉 끌어안은 채 아끼고 아끼며 쓰다듬던 원효가 그 탄성을 들으며 안도했다. 원효의 가슴 위로 요석이 몸을 포갰다. (2권, 252)

 

이 문장들은 내게 요석의 벅찬 심정과 감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 결합의 시적 표현들은 저자가 작심하고 써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아무래도 이 소설에서 가장 압도적인 장면이며 모든 갈등과 슬픔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이만큼 원효와 요석의 동침을 도발적으로 묘사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읽은 지는 너무나 오래 됐지만 이광수가 쓴 <원효대사>에는 이 같은 ‘적나라한 베드신’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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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사랑하는 것은 고통의 하나임을 설파했다. 생로병사를 포함한 '팔고(八苦)' 가운데 하나가 애별리고(愛別離苦), 즉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이다. 사랑은 곧 고통이다. 그것이 고통인줄 알면서도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사랑조차도 고통의 시작이요 원인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그것을 몸소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원효는 김춘추와 그의 정치판에서 요석을 구해내기 위해 흔쾌히 자신을 고통 속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 고통조차 감내하고자 했을 거다.

석가모니를 유혹하던 마라의 딸들은 석가모니에 의해 ‘똥오줌으로 가득찬 가죽주머니’로 비하되었지만 요석은 다르다. 그녀는 깨달은 자를 유혹하려는 마녀가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이 아닌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 가슴이 아플 만큼 사랑해줄 수 있는 여인이 바로 요석이다. 빛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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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7-12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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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촛불이 되기를 발원하다

 어둠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곧 촛불 대신 어둠에 익숙해진다. 어둠을 온전히 걷어내려면 더 많은 빛이 필요하다. 자신을 태우며 빛을 발하는 수많은 촛불의 희생 말이다. 하나의 촛불이 다른 촛불을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버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신념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학습이나 세뇌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스스로 깨쳐야 만 가능한 일이다.

 

 삶의 진리를 깨우치는 게 쉽다면 신과 구도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이 아닌 어떤 이상을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산다는 건 고행이라는 말은 맞았다. 화랑이 되기 위해 서라벌에 온 원효가 화랑 대신 출가를 선택한 이유는 고통을 나누고 싶어서다. 왕이나 귀족, 진골, 성골을 위한 나라가 아닌 백성 모두를 위한 신라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촛불이 되는 혜공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라를 이끌 수 있는 강렬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진리,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말하는 진리, 고통이 소멸된 진리, 고통을 소멸시키는 길인 진리. 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님이 바로 중생이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부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죄 없이 죽어 간 저 소녀의 가슴 위에서 자고 깨어날 것이다. 거기가 내 감옥이 될 것이며 해탈문이 될 것이다.’ (1권, 254쪽)

 

 왕실을 위해 점점 화려해지는 황룡사를 보면서 과감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원효뿐이었다. 백제, 고구려와 싸움으로 지쳐가는 백성들의 절망을 원효는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런 원효를 김춘추를 비롯한 왕실에서 곱게 보지 않았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원효를 반역의 주동자로 몰아내고 싶었다. 의상에게 국사라는 거대를 제시해 함께 서라벌에서 당으로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려진 대로 해골물 일화로 원효는 백성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고통 속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킨 한 여자, 요석이 있다. 신라 전부를 다 가질 수 있는 김춘추의 딸 요석.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딸에게 정략결혼을 요구하는 아버지에 반기는 드는 요석. 원효라는 운명을 위해 전부를 내어주기로 작정했다.  

 

  “나는 말이다. 목숨을 바쳐도 좋을 만한 일을 하면서 살 거다. 사랑도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말이다.” (2권, 83쪽)

 

 병자와 약자를 돌보고 원효와 함께 새로운 신라를 만들고 싶었던 요석. 요석과 원효의 사랑은 신분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의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김선우가 재탄생시킨 원효의 일대기가 빛을 발하는 이유다. 단순히 요석과 원효의 사랑만 그려냈다면 김선우에 대한 애정이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선우는 달랐다. 1400년 전 원효를 현재로 불러와 법문을 들려주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문장 하나하나 아름답게 갈고닦아 성찰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나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고정된 나가 아닙니다. 나라는 실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환각을 벗어나면 우리 모두가 나입니다. 당신이 바로 나입니다. 남과 내가 둘이 아닙니다. 귀족과 평민이 둘이 아닙니다. 본래적 깨달음은 나에서 남을 보고 남에서 나를 봅니다.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나 자신과 내 가족과 가문을 소중히 여기듯 우리 모두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권, 163~164쪽)

 

 역사적 사건과 실제의 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논픽션으로만 어떤 재미와 감동을 안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황룡사와 분황사, 첨성대와 같은 역사적 공간과 비담, 김유신, 의상, 선덕여왕, 김춘추란 인물의 등장만으로 <발원>을 역사 소설과 불교 소설이라 선을 그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감히 철학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김선우는 원효와 요석과 불교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당신이라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각각의 당신이 내가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김선우는 이 소설을 통해 모두가 촛불이 되기를 발원한다. 그리하여 1400 년 전 원효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촛불이 발을 맞추어 걸어가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함께 밥을 먹고 단잠에 빠지는 세상을 소망하는 것이다. 촛불이 사라진 시대 소설로 촛불을 만드는 김선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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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5-07-15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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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이것은 소설이다.

 

원효와 요석이 사랑을 했는지, 원효가 요석이란 여인을 구원한 것인지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발원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인 원효이든, 스님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던 소성거사로 불린 원효이든, 원효라는 인간 그자체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삶의 순간순간, 원효는 가르침을 얻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원효가 최근 궁구하는 바는 불경을 읽고 쓰는 일과 참선 수행에 쓰는 시간 외에도 하루의 절반은 반드시 백성의 삶 속에 있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부처의 말씀은 경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중생 속에서 삶의 방편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깨달음의 삶을 살며 동시에 중생들도 깨달음의 삶을 살도록 돕는 두 바퀴 법륜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스승 혜공은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여기는 신라입니다. 당나라 장안의 어느 학파가 인가해 준 불교가 아니라 이 땅에는 지금 이 땅의 백성들이 원하는 불교가 필요한 거요!”

 

“내가 궁금한 것은 중국의 현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는가 하는 겁니다. 진리가 삶 속에 구현되는 방식 말이오 … ”

 

온갖 차별 현상이 오직 관념의 조작일 뿐이다. … 이 모든 것이 내 관념이 조작한 것이다. 보라. 부끄럽구나. 해골물은 더럽고 바가지 물은 깨끗하다는 것은 내 관념의 장난일 뿐이지 않은가. … 마음 바깥에 법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디로 가서 따로 법을 구하겠는가!

 

“나는 이제야 내 앞의 찰간을 넘어뜨렸소.”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그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변화해야 합니다!”

 

 

 원효는 누구보다도 민중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변화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민중에게 존경받고 사랑을 받은 스님이었다.

 

 

 그런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 있다.

 

“나는 말이다. 목숨을 바쳐도 좋을 만한 일을 하면서 살 거다. 사랑도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라 진골 귀족 가문의 여식으로 태어난 요석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었고,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권력을 위한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효를 지키기 위해, 아미타림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요석에게 원효는 다가갈수 없었다.

 

 김춘추가 요석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원효는 그동안 자신이 애써 외면했던 요석을, 사랑하는 그녀를 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라!

 

슬프고 괴로운 일을 당했을 때 충분히 슬퍼하고 괴로워한 후, 빠져나오면 됩니다.

문제는 슬픔과 괴로움 그 자체에 끌려가며 자신 속에 번뇌를 쌓을 때 생깁니다. 슬펀한 후 슬픔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슬픔에 사로잡혀 자신을 감옥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 화살에 맞는 겁니다.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이 맞아도 나의 내부로부터 쏘아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아야 합니다.”

 

  이 편지는 요석의 마음에도 변화를 주었지만, 누군가 이 편지를 읽었다면, 힘이 들고 외로운 누군가가 이 편지를 받게 되었다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깨우침과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후 원효는 요석을 구하기 위해 김춘추와 대면하게 되고, 김춘추의 앞에서 금강삼매경을 강연하는 장면은 정말 영화의 한장면 같았고, 너무 멋있어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왕인 김춘추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모든 권력은 백성에게 있다고 말하는 원효와 권력을 가져야하는 김춘추와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것이고, 김춘추는 원효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춘추는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원효와 요석, 둘 다를 떠나게 한다.

 

 그리고 그 후의 원효와 요석의 일상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중생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며 살아가고 있다.

 

 <발원> 속의 요석과 원효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사랑했고, 왕경지애라는 사랑노래를 사랑했고, 자루 없는 도끼(권력이 없는 백성들을 뜻한다)들을 사랑했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정말로 강하다는 것을,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원효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발원>, 이 책은 단순한 원효와 요석의 사랑 얘기 아니었다. 원효의 위대한 가르침이며, 누군가를 구원하는 얘기이고, 누군가가 구원받을 수 있는 얘기였다. 원효는 누구보다 중생들을 사랑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스님, 아니 평범하지만 위대한 불교인이었다.  

 

… 부디 소승의 청을 들어주시길 간청하나이다. 저는 일개 승려요, 원효 그는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 의상이 김춘추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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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ayjin 2015-07-18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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