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ビハーラ僧は、来ないで! | セクシーバディのためのダンシングD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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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라 승려는 오지 마!
2012-11-27

테마:비하라
계속해서 병원과 복지시설에서 활동

비하라 스님의 화제입니다.

상당히, 용기가 있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땀)



요 전날 말기 암 환자를 방문했던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인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거나,

사교 사령을 말하거나하는 것이 능숙합니다.


노인은 특히 보씨에게 경의를 가지고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오는 사람에게는

"잘 와주었다. 보씨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와줘."

라고 말합니다.

비록, 사실은 스님의 방문이 싫어도, 어른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말대로 받고, 그 스님은,
말기암 환자에게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여행 준비에 들어갈 때,
가족분으로부터, 「오는 것은 삼가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해졌다고 합니다.


그 스님은 지금까지 그 노인과 관계가 쌓여 왔습니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가족이 종교를 싫어해 오지 말라고 말하기 때문에,

본인은, 이미 말기이기 때문에, 만나러 가는 편이 좋은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정말 오지 마세요! ! !

사교 사령으로, 노인은 「와 주어서 좋았다」라고 말하고 있었으므로,

보 씨가 돌아온 후에는 느긋하게 잠들었다고 합니다.

말기 암 쪽이, 없는 체력을 휘두르고, 아빠에게 실례가 없도록 하면,

필사적으로 된 노인이 계셨습니다.
본인의 성격으로부터 하면, 스님에게 직접,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이 본인의 딱딱한 표정을 살펴보고,
본인 대신에, "이제 오는 것은 삼가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노인은 매우 매너가 제대로되어 있습니다.
그 노인과 좋은 관계가 쌓여 있다는 것은
그냥 승려의 추억입니다.


어떤 비하라 연수에 참가했을 때,
스님의 모습을 하고 병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죽거나 살아가는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 속에 들어가는데,

복장이 어떠한지 고민하는 시점에서

상대의 느낌을 모르고,

상대는 옷차림을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감염증 대책 때문에 병원 직원조차도

환자 1명과 접할 때마다 갈아입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소독액에 담그지 못한 스님의 옷을 입고 가는 시점에서,

의료 현장에 들어갈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잠깐 말했다.

매우 실례했습니다.


의료나 복지의 현장에서는, 인손 부족입니다.
스님 앞에 직원을 늘려 주었으면 하는 것이 현장의 비명입니다.


개호 시설에서 법화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던 스님이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성가신가요?









법화가 행해지는 장소에, 노인을 데리고 가는 것은,

개호 직원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회장으로 데려갑니다.

안에서는, 침대 그대로라든지.

또한, 법화 시간은 직원이 깨끗합니다.


개호 직원의 협력이 있어,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왔기 때문에 법화가 생겼다고 위로부터 시선.


개호 시설에서의 법화에, 무엇인가 의미는 있습니까

노인은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법화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편안한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서도,
법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사나 간호사, 개호 직원이 할 수 없는 영적 케어를 하고 있으면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의료 및 복지 직원은 전문입니다.
스님이 없어도, 제대로 환자님이나 이용자님의 케어는 할 수 있습니다.

환자와 의료 스탭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말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나쁘지만, 우리는 그리 무능하지 않습니다!
핥는 것도 좋은 가감으로 해주세요!
라고 또 말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스님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직업은, 「무직」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스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빠의 모습은 하지 않고, 병원이나 개호 시설을 방문해도,

Bo-san은 Bo-san이 아닙니까?



살거나 죽을까 싸우는 사람은 옷차림을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진실을 파악하고 싶다.


현장을 보면, 의료나 복지의 현장에 스님이 필요한지 어떤지를
논의할 여유도 없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인적 부족이므로, 개호 직원으로서도, 청소의 자원봉사로서도

일해 주신 분이, 아직 좋은 것이 아닐까요.




생각했을 때, 어쩌면 인간의 생각은 옳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승려는 사람을 돕는 힘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병원에 옷을 입고 가고 싶다.
이것은 당신의 제멋대로입니다.


상근의 비하라 승려가 있는 병원에서, 직원에게 앙케이트가 취해졌다고 합니다.
결과가 비하라 승려에게 전해질 정도로 알기 때문에,
아무리 익명이라도 본심은 쓸 수 없습니다.

환자도, 직원도, 병원의 경영 모체와 같은 종교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차별이 있다고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보씨의 모습으로, 걷지 마라!


환자도 신세를지고 있다는 틈이 있고,
잘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개종을 제기하거나,

립 서비스를 하거나.


환자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

환자에게 전화하면 옷을 입고 승려로 환자를

방문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옷을 입은 스님이 상근이라는 것은,

환자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곤란한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 앞에서는, 누가 개호 직원으로, 누가 스님인가라는 구별도 중요하지 않고,

모두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 좋지 않아?

그렇게 복장이나 직업을 고집하지 말고.







해외에서도입니다만, 일본에서도, 원래, 의료나 복지라고 하는 것은,

사원과 교회에서 열렸다는 역사가 있으며,

비하라 활동이라는 것은 근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병원, 유치원, 학교, 개호 시설 등을 종교 법인이 경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조차, 병원이나 개호 시설에서, 종교라든가, 승려라든지, 의식하는 것은 아니고,

의식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거부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승려의 역할은 병원에도 개호시설에도 없고 절에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곤란했을 때, 언제나 갈 수 있는 절이 있는, 

병원에 부르면 언제든지 오는 승려가 있는데,

그 존재를 알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며,

이미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승려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안심을 제공하는 것이 절의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멋지게 해도 내용은 없다,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보주는 보주, 그래서, 좋지 않아?









승려도 병원이나 시설에서는 특별하지 않고 모두와 함께.

모두와 같다.











다양한 비하라의 형태가 있다, 보다는,

모양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오케이.

아무도 정답.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합니다.













나에게 비하라 활동은 교리 실천을 위한 활동의 ​​일부라는 인식이다.

포교 활동이 아닙니다.







법화는 하지 않아도 될까요?

옷도 필요 없어?













교리에 감동하는 것은 매우 꽤.

감동하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리에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면 좋을까요?













종교는 '나만 혼자를 위한' 것.

당신의 진실은? 뭐라고?













의료나 복지의 현장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논하는 시간이 있으면,

일찍 오세요!

함께 땀을 흘리자!













병원에 스님이 필요하다고 사회에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스님 여러분도 자신을 필요로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범주도 절에서 혼자서 녹슬어요.

절이 필요 없다고 말해, 녹슬고, 필요하다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자매라면, 자신의 존재, 자신의 필요성은 스스로 생각해라!

병원에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해라!















병원에서의 활동을 보고하고 있는 스님이,

스님을 받아들이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스스로 승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승려의 일은 장례식뿐만 아니라,

장례식 불교라고 불리지만, 경은 장례식 때만 읽는 것이 아니라,

경도도 승려도,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옷을 입고 활동을 계속하면 언젠가 알 수 있을까?













그럼 사회의 이해가 부족할 뿐이라고 말하는 거야?

즉, 당신이 옳고, 사회의 사람이 잘못,

편견이다, 라고도 말하고 싶습니까?













확실히 말해, 스님을 받아들이는 병원이 늘어난다는 발언이,

위에서 시선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옳다, 모두는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모두는 알 것이다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나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원래, 나도, 스님 여러분과 같은, 「범부」입니다.


인간에게는 무엇이 맞는지 잘못되어 있는지는 모르고,
비록 알았더라도,
잘못한 것만 해 버리는 것이 「나」입니다.


스님 여러분도 같은 목적을 향해 걷는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꽤 지나친 발언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동료로서의 발언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무례했습니다!







합장
===
ビハーラ僧は、来ないで!
2012-11-27

テーマ:ビハーラ
引き続き、病院や福祉施設で活動する

ビハーラ僧の話題です。

結構、勇気がいる発言をしております・・・。(汗)







先日は、末期がんの患者さんを訪問していた僧侶の方の話を聞いたのですが、

お年寄りは、他人の気持ちを考えたり、

社交辞令を言ったりするのが上手です。







年寄りは、特に坊さんに対して敬意を持っている人がいるので、

来る人には、

「よく来てくれた。坊さんと話ができて良かった。また来てくれ。」

と言います。

例え、本当は僧侶の訪問が嫌でも、大人ですから、

そういう態度は見せません。







それを、言葉のままに受けて、その僧侶は、

末期がん患者のもとへ通っていたそうです。

ところがある日、いよいよ旅立ちの準備に入るという時に、

ご家族の方から、「来るのは、遠慮して欲しい」と言われたそうです。









その僧侶は、今までそのお年寄りと、関係が築けてきたと

思っていたのです。

家族が宗教を嫌がって来るなと言っているだけだから、

本人は、もう末期だから、会いに行った方が良いか悩んでいたようです。







いやいや、そうじゃなくて、

本当に、来ないでください!!!







社交辞令で、お年寄りは「来てくれて良かった」と言っていたので、

坊さんが帰った後は、ぐったり寝込んでいたそうです。

末期がんの方が、ない体力をふりしぼって、お坊様に失礼がないようにと、

必死になっていたお年寄り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







本人の性格からすると、僧侶の方に直接、もう来ないでと言えないので、

ご家族の方が、本人のぐったりした表情を察して、

本人の代わりに、「もう来るのは遠慮して欲しい」と

言われたそうです。







お年寄りは、とてもマナーがしっかりしておられます。

そのお年寄りの方と、良い関係が築けているというのは、

ただの僧侶の思い込みです。







とあるビハーラ研修に参加させていただいた時に、

僧侶の格好をして、病院に入って行きたいと言っていた人がいました。







死ぬか生きるかの戦いをしている人の中に入って行くのに、

服装がどうのこうのと悩んでいる時点で

相手の気持ちが分かっていない、

相手は、身なりを気にする余裕もない状態ということが理解できていない証拠だと

思います。







また、感染症対策のため、病院の職員でさえ、

患者さんお1人と接する毎に着替えていることもあるのに、

消毒液に漬けることができない僧侶の衣を着て行っている時点で、

医療現場に入る資格はないと思います。







あ、ちょっと言い過ぎました。

大変失礼いたしました。










医療や福祉の現場では、人手不足です。
僧侶の前に、職員を増やして欲しいというのが、現場の悲鳴です。







介護施設で法話をしたと自慢げに話していた僧侶がおりました。

何で迷惑か、分かりますか?













法話が行われる場所に、お年寄りを連れて行くのは、

介護職員です。

お一人お一人を、ベッドから車いすに移乗し、会場へお連れします。

中では、ベッドのままでとか。

また、法話の時間は、職員が付きっきりです。













介護職員の協力があって、「させていただいている」ということ、

お気付きになられますでしょうか?

でも、いかにも、自分が来たから法話ができたと上から目線。







介護施設でのご法話に、何か意味はありますか?







お年寄りは、僧侶のお話を、聞いてあげているんです。







法話があったからと、何にも変わりません。

死を受け入れるためにも、安らかな最期を迎えるためにも、

法話はいりません。













医者や看護師、介護職員ができないスピリチュアルケアをしていると

自信を持っているようですが、

医者に、患者の心が分からないとでも思っているのですか?







医療や福祉のスタッフは、プロです。

僧侶がいなくても、ちゃんと患者さまやご利用者さまのケアはできます。







患者と医療スタッフとをつなぐ橋として、って言ってた僧侶がいました。

悪いけど、私たちは、そんなに無能ではありません!

なめるのも、いい加減にしてください!













って、また言いすぎました。

謝ります。

すみませんでした。







僧侶は、職業ではなく、生き方だとお伺いしております。

でも職業は、「無職」と答えておられる僧侶を知っております。







だったら、お坊さんの格好はせずに、病院や介護施設を訪問しても、

坊さんは、坊さんじゃないんですか?













生きるか死ぬかと戦っている人は、身なりを気にする余裕はないです。

現場の声を聞いてください。

お年寄りとお話をして、真実を見極めていただきたい。









現場を見れば、医療や福祉の現場に僧侶が必要かどうかを

議論する余裕もないのは分か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人手不足なので、介護職員としてでも、掃除のボランティアとしてでも

働いていただいた方が、まだ良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考えたところで、所詮、人間の考えることは、正しいことはないのでしょう。

人間は無力だ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でしょうから、

僧侶には人を助ける力があるはずはないんです。













病院に、衣を着て行きたい。

これは、あなたの自分勝手な思いです。













常勤のビハーラ僧がいる病院で、職員にアンケートが取られたそうです。

結果が、ビハーラ僧に伝わることくらい分かるので、

いくら匿名でも、本音なんて書けないです。







患者さんも、職員も、病院の経営母体と同じ宗教ならいいのですが、

そうでなければ、

差別があるのではと不安に思ってしまいます。







坊さんの格好で、歩くな!







患者さんも、お世話になっているという引け目があるし、

良くしてもらわないといけないという思いがあるので、

改宗を申し出たり、

リップサービスをしたり。













患者さんに、どれだけ気を遣わせているか。

患者さんに呼ばれたら、衣を着て、僧侶として、患者さんを

訪問されても良いと思いますが、

衣を着た僧侶が常勤というのは、

患者さんのストレスになっていることがあります。













困っている人が目の前にいるというのは、事実。

その人の前では、誰が介護職員で、誰が僧侶かという区別も重要ではなく、

みんなで一緒に生きていく仲間で良いんじゃない?

そんなに服装や職業にこだわらないで。







海外でもですが、日本でも、元々、医療や福祉というのは、

お寺や教会で行われてきたという歴史があり、

ビハーラ活動というのは、近代始まったものではなく、昔からあったものです。







病院、幼稚園、学校、介護施設などを宗教法人が経営していることが多いのです。







今さら、病院や介護施設で、宗教とか、僧侶とか、意識することではないし、

意識させようとするから、拒否されることもあるのではないかなと思います。









僧侶の役割は、病院にも介護施設にもなく、お寺にしかないのでは?

困った時に、いつも行けるお寺がある、 

病院に呼んだら、いつでも来てくれる僧侶がいる、

その存在を知っているかどうかの方が重要で、

すでにあることに、気付いてもらうための努力をしていく方が

僧侶がすべきことではないかと。











いつも、変わらないものが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ことが

安心で、

安心を提供するのがお寺の仕事な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どうせ格好つけても、中身はない、
分からないものは、分からない、坊主は坊主、それで、良いんじゃない?









僧侶も病院や施設では、特別でもなくて、みんなと一緒。

みんなと同じ。











いろんなビハーラの形がある、というよりは、

形がないものだから、

何でもオッケー。

どれも正解。

何にでもなれる、どこでもできる、何でもできるはず。













私にとって、ビハーラ活動は、教義の実践のための活動の一部だという認識です。

布教活動ではありません。







法話はしなくても良いでしょう?

衣もいらないでしょ?













教義に感動するのは、大いに結構。

感動したら、誰かに話したくなるという気持ちは分かります。

同じく教義に喜んでいる人と一緒に

喜べばい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宗教は、「私ただ一人のため」のもの。

あなたの真実は?ってとこかな?













医療や福祉の現場で宗教の必要性を論じる時間があったら、

早く来い!

一緒に汗を流しましょう!













病院に僧侶は必要だと社会に訴えたい気持ちは、

僧侶のみなさんも、自分を必要とされたいということ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坊主も、寺で1人で、さびしいんですよ。

寺がいらないと言われて、さびしいし、必要だとみんなに言いたいんだと思います。













坊主なら、自分の存在、自分の必要性は自分で考えろ!

病院に必要かどうか、自分で考えろ!















病院での活動を報告している僧侶の方が、

僧侶を受け入れてくれる病院が増えてきていると言っていましたが、

それは、自分で僧侶の必要性を強調したいだけだと思います。













僧侶の仕事は葬式だけではない、

葬式仏教と言われるが、お経は葬儀の時にだけ読むものではなく、

お経も僧侶も、縁起が悪いものではないから、

病院に衣を着て活動を続けると、いつか分かってもらえる?













じゃ、社会の理解が足りないだけと言っているの?

つまり、あなたが正しい、社会の人が間違っている、

偏見だ、とでも言いたいのでしょうか?













はっきり言って、僧侶を受け入れてくれる病院が増えるという発言が、

上から目線だと感じます。

自分が正しい、みんなは誤解している、だから、いつかみんなは分かるだろうと

言っているように聞こえます。













私も、自分が正しいとは思っていませんが。

そもそも、私も、僧侶のみなさんと同じ、「凡夫」です。













人間には、何が正しいか間違っているかは分からないし、

例え分かったとしても、

間違ったことばかりしてしまうのが「私」です。













僧侶のみなさんも、同じ目的に向かって歩む、仲間だと思っています。

かなり行き過ぎた発言もあ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

仲間としての発言だとご理解いただければと思います。







失礼いたしました!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