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인류 종교의 미래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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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인류 종교의 미래

기자명 이은선 한국信연구소 대표
승인 2022.12.15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 22




지난 1년간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라는 제목 아래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진행해왔고, 이제 22회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오래전 서구 기독교 신학의 한복판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만난 동아시아 한국 유교의 보화들과 대화하면서 나름으로 이 대화가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 

지난 글들에서 본인은 동아시아 유교 기원과 전개에서 한국 유교가 단지 수동적이었거나 외래로부터 전해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토대로서 역할을 했고, 특히 매우 고유하게 조선적 유교로 전개되어 왔음을 말했다. 또한, 유교 문명은 토착 지역의 오랜 무교(巫敎)나 도교(道敎)적 토양에서 함께 성장하면서 인도 문명으로부터 전해진 불교와 깊게 대화하며 신유교(新儒敎, Neo-Confucianism)로 전개된 것을 살폈다. 조선 유교는 특히 이 신유교의 확장이고, 그러므로 이 신유교와 더불어 서양 문명의 두 토대인 유대 히브리 정신과 그리스·로마 정신 위에서 성장한 서학(천주교)이나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대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종교 전통과 대화하는 것이 됨을 본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21세기 세계정세를 보면 미국과 중국이라고 하는 세계 두 헤게모니 사이의 각축이 치열하고, 그 둘의 관계 맺음에 따라서 인류 전체의 미래가 크게 좌우될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한반도 땅에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이상의 모든 종교 전통들이 여전히 활발히 역동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도 이 땅에서의 유교와 기독교, 그중에서도 이제까지 본 연재가 주로 초기 서학(천주교)과의 만남에 집중했다면, 마무리로 현대 개신교와의 만남을 잠깐이라도 살펴보는 것이 인류 종교의 미래를 그리는 일에서 무익하지 않으리라 본다. 

1884년경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알렌과 스크랜턴 등의 서양 선교사들 입국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개신교는 유교와의 만남에서 주로 전격적인 개종(改宗)을 주장했다. 거기서 기독교 신앙은 주체가 되고 유교는 그 신앙의 보완자가 되어 최초의 개신교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정동감리교회 초대목사 탁사 최병헌(濯斯 崔炳憲, 1858-1927)의 『만종일련(萬宗一臠, 1922)』도 그랬지만,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번역해 냈고, 칼 바르트를 사사한 후 단군 이야기를 기독교 삼위일체 이야기와 견주기도 한 해천 윤성범(海天 尹聖範, 1916-1980)의 ‘誠의 신학’도 유사했다. 이어서 본인이 한국의 한 토착화 신학자로 보고자 하는 원초(原草) 박순경(1923-2020)의 ‘(민족)통일신학’도 히브리 유대 민족의 창세기 연원을 동이족 창세기에서 찾기도 하지만 마침내는 그 모든 역사가 히브리 기독교의 ‘하나님’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2014; 이은선,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한국적 信學의 관점에서, 한민족통일신학연구소 엮음, 『원초 박순경의 삶과 통일신학 톺아보기』, 2022).



이런 가운데 일련의 개신교 사상가들은 훨씬 더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한국 유교 전통을 내면화하면서 나름의 고유한 신학과 종교의식을 펼쳤다. 요사이 더욱 찾아지고 있는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는 유불도 삼도(三道)뿐 아니라 대종교 『삼일신고(三一神誥)』나 『천부경(天符經)』 등의 언어를 깊이 체화해서 지금까지 어느 개신교 신학자도 넘지 못한 전통기독교 기독론의 배타주의를 나름으로 넘어섰다. 그는 유교 『중용(中庸)』의 중(中) 개념이나 『대학(大學)』의 민(民)을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지시하는 언어로 해석해서 그 그리스도성이 단지 2천 년 전 유대인 청년 예수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된 하늘적 ‘씨앗’과 ‘바탈’로 보았다(이정배, 『유영모의 귀일(歸一)신학』, 2020). 다석의 제자로서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스승보다 훨씬 더 탈종교적이고 보편의 언어로써 이 세상의 현실과 정치, 역사 속에서의 하늘 영(靈)의 활동과 ‘씨알’의 역동적 활동을 강조했다. 본인이 그래서 참된 한 “仁의 사도”라고 파악한 그는 염재신재(念在神在, 생각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스승 유영모처럼 온 우주의 “영화(靈化)”를 말하며, 씨알의 핵심을 사유하는 일(思,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보았다. 본인은 여기서 깊은 맹자적 전승을 보고, 또한 그가 민족 개조에서의 정치와 종교의 합작과 “혁명의 명(命)은 곧 하늘의 말씀이다”라면서 그 명을 공자의 천명(天命)과도 연결하는 일 등이 유교 맹자적 의(義) 의식과 잘 연결되는 것을 본다(이은선, “인(仁)의 사도 함석헌의 삶과 사상”,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2016).



그런데 사실 이들 모두에게 먼저 큰 영향을 준 사상가는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鎬, 1878-1938)였다. 보통 개신교 사상가로 알려졌지만, 그 삶과 사상에서의 유교적 뿌리와 전개는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그의 흥사단(興士團) 운동이 그것인데, 유교 중용(中庸)과 성(誠)의 점진(漸進)의 덕을 민족 독립과 자주뿐 아니라 인류 공동체 미래를 위해서 참된 영적 생활 공동체 운동으로 펼치고자 한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의 ‘무교회’ 운동이 있다. 지난 편에 본 유교 개혁가 이병헌은 유교 종교화로서 공교회(孔敎會) 운동을 주창했지만, 김교신은 오히려 ‘무교회’ 신앙을 강조했다. 그는 신생 한국 개신교가 서구에서 만들어진 각종 교단과 교권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고서, 참 신앙이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교회에 속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성서를 읽고 해석하면서 민족적 현실에 참여하며 “날마다 한 걸음(日步)”씩 나가는 구도 정신으로 파악했다. 유교 남성들이 당연시해왔던 호(號)를 붙이는 일도 일종의 특권 의식으로 보아 거부했는데, 그와 함석헌, 송두용 등이 함께 창간한 월간지 『성서조선』은 대쪽 같은 선비 정신과 독립 기독교 신앙이 함께 일구어낸 뛰어난 열매라고 생각한다(김정환, 『金敎臣, 그 삶과 믿음과 소망』, 1994).

1974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으로 또 다른 한국 기독교의 독립 정신을 강조한 이신(李信, 1927-1981)은 무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갱신을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했다. “신앙마저 남의 나라의 종교적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그는 서구 교회로부터 온 교단과 교권의 분열을 넘어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을’ 주창했다(이신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358쪽 이하). 
또한, 특히 신앙의 영적 역동성과 전위성을 강조했는데, 히브리 신구약 중간기 묵시문학에 나타난 하나님 신앙의 시대 전복적 의식과 전적 새로움에 대한 간구가 시대와 민족, 문화 등의 차이를 넘어서 새롭게 지속적으로 영(靈)의 ‘동시성’으로서 역동하는 것에 대한 큰 믿음(信)을 가지고 있었다. 그 믿음과 신뢰를 그는 인간 인식 연구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는 ‘상상력(imagination)’과 ‘환상(fantasy)’으로도 이해했는데, 예수의 하나님 의식, 키르케고르나 본회퍼의 고독과 저항의식, 한반도 최제우의 민중의식, 20세기 미래 전위파 예술 운동 등에서도 유사하게 재현되는 것을 보는 정도로 그의 하나님 영(성령)의 역동성에 대한 감각은 포괄적이고도 포함적이었다. 그리하여 본인은 그러한 이신의 사유가 16세기 조선 신유교 성리학의 창조에서 전위적인 역할을 한 퇴계의 천명(天命)이나 리도(理到) 의식과도 잘 통한다고 보고 그 둘의 사유를 우리 시대를 위한 참된 신학(信學)의 의미로 해석하고자 했다(이은선 외, 『李信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2021, 129쪽 이하).

21세기 오늘은 지금까지 인류 문명이 소중히 가꾸어온 정신성(理)과 온갖 드러남의 다양성 속에 내재하는 초월적 인격성(命), 그리고 모두가 하나라는 지속하는 기반으로서의 공동체성(仁)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힘을 주어서 한 존재의 존엄이나 권리가 이미 그가 여기 지금 단순히 태어나 있다(natality/生理)라는 탄생성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사실 속에서만 찾는 일을 감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떤 종족이나 국가, 종교나 문화의 소속 여부에 따라 그것을 조건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오늘 우리는 이제 인류 보편 종교(religio catholica/眞敎)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고, 본인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이러한 보편 종교(common religion)의 이상이 어느 경우보다도 한국 (신)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에서 잘 찾아질 수 있다고 보는 바이다. 예를 들어 ‘易·中·仁’ 이나 ‘聖·性·誠’ 등의 언어 쌍과의 대화인데, 이 언어들은 전통 기독교의 신론(神論)과 구원론, 교회론(성령론)을 훨씬 더 보편적이고 탈종교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더욱 포괄적이고 세속적으로 말해보면, 이미 동학의 최제우 선생도 밝힌 바 있는 ‘誠·敬·信’의 세 언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보기에 아직 깊이 천착 되지 못한 무의식의 영역이나 여전히 큰 보편 속에 통합되지 못한 우리 삶에서의 성차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물음이 남아있다. 미래의 보다 생명 살림적인 한국적 보편종교(天地生物之理/心)로서의 한국 신학(信學)을 위해 씨름해야 하는 주제라고 여기며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끝)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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