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4

エーリヒ・フロム - Wikipedia

에리히 프롬 - Wikipedia


에리히 프롬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Erich Fromm (1974)
Erich Fromm
에리히프롬
탄생1900년 3월 23일 독일 제국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독일의 국기
사망1980년 3월 18일 (79세) 스위스 티치노 주 무랄토
스위스의 국기
국적독일의 국기 독일
직업사회심리학자
수상넬리 삭스 상 (1979)
템플릿 보기

에리히 제리히만 프롬 (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 월 18일 )은 독일 사회심리학 , 정신분석 , 철학 연구자이다. 유대계 . 마르크스주의 와 지크문트 프로이트 의 정신분석을 사회적 성격론으로 연결시켰다. 새로운 프로이트파 , 프로이트 좌파 로 여겨진다.

프롬 본인은 에릭 프롬 으로 발음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1] .

경력 편집 ]

에리히 프롬은 1900년 유대교 정통파의 부모 사이에 혼자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에서 태어났다. 프랑크푸르트 대학 에 입학하지만, 1년 만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으로 옮겨, 여기서 사회학 · 심리학 · 철학 을 배우고, 1922년에 알프레이트·베버 ( 맥스·베버 의 동생), 칼·야스퍼스 , 하인리히·리켈트 의 지도 아래 학위를 받으세요. 1926년에는 프리다 라이히만 과 결혼한다.

1931년 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정신 분석 연구소에서 강사가 되었다.

나치 가 정권을 장악한 뒤 스위스 제네바 로 옮겨 1934년 프랑크푸르트 학파 의 주요 멤버와 함께 미국 으로 이주한다. 우선 콜롬비아 대학 에서 가르친 후 버몬트주의 베니 톤 대학 영어판 ) 등에서 교편을 했다. 1949년에 멕시코 시티 로 옮겨, 1965년까지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 , 그 다음 1974년까지 멕시코 심리 분석 연구소( Instituto Mexicano de Psicoanálisis )에서 가르쳤다. 또한 병행하여 1957년부터 1961년까지 미시간 주립대학 ,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 대학 의 정신분석학 교수를 맡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멤버와는 공동연구로서 '권위적인 성격'을 발표했다.

1974년 스위스 티치노주 무랄토에 살고, 1980년 무랄토 집에서 사망. 80세의 생일을 눈앞에 앞둔 죽음이었다.

사상 편집 ]

프롬의 사상의 특징은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의 지견을 사회정세 전반에 적응한 곳에 있다. 프롬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의 도주』에서는 파시즘 의 심리학적 기원을 밝히고, 시위 사회가 취해야 할 처방전이 밝혀지고 있다. 

프롬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유기체로서의 성장과 자기 실현이 막힐 때 일종의 위기에 빠진다. 이 위기는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나 사디즘 이나 마조히즘 , 그리고 권위 에의 종속과 자기의 자유를 부정하는 권위주의 로 향하게 된다. 자신의 유기체로서의 생산성을 실현하는 생활이야말로, 그 위험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했다. 프롬은 바루프 데 스피노자 와 마찬가지로 "행복은 덕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즉 생산적인 생활과 인간의 행복과 성장을 바라는 인도주의적 윤리를 신봉할 때 사람은 행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프롬에 의하면 신경증 이나 권위주의나 사디즘·마조히즘은 인간성이 개화되지 않을 때 일어난다고 해, 이것을 윤리적인 파탄이라고 했다. 요출전 ]

모든 신경증의 핵심은 인간의 정상적인 성장과 마찬가지로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싸움에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대부분은이 싸움을 자기 포기로 끝내고 잘 적응하고 정상이라고 인정받으려고한다. 신경증적 인간은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지만, 의존성과 자유를 구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하려고 하는 시도로서 성공하지 못한 시도로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 관련 편집 ]

프롬은 '프로이트의 사명'(1959년)과 '프로이트를 넘어서'(1979년) 등의 저작으로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평생에 관한 기술[ 2] 과 그의 이론의 비판적 검토를 실시했다. 프롬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욕동 이론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경계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대전 이전에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동(drive)을 욕망(desire)과 억압(repression)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이라고 정의했지만, 대전 이후의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동을 에로스( 원시 의 욕동)과 타나토스 (죽음의 욕동)의 갈등으로 간주했다. 프롬은 이 두 이론 사이에 모순이 있음을 간과해 버린 프로이트와 그 이론의 지지자를 비난한 것이다.

또, 프롬은 프로이트의 이원론적인 사고도 비판하고 있다. 프롬에 의하면, 프로이트파는 인간의 의식을 이항 대립을 이용해 기술하고 있어, 그러므로 파악해 손상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프롬은 프로이트의 미소지니를 비판하고 있다 [3] .

비판해야 할 점을 비판한 후, 프롬은 프로이트의 실적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 프롬은 프로이트를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 칼 마르크스 와 늘어선 근대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

주요 저작 편집 ]

파시즘의 발흥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였다. 근대에서 발생한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권위주의와 나치즘을 만들어 냈는지를 정중하게 저술하고 있다.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및 권위주의를 인간의 자유 로부터의 「도주의 메카니즘」으로서 분석해, 현대에 있어서 진정한 시위를 유지하기 위한 제언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메카니즘」으로서 파괴성과 기계적 획일성도 지적하고 있다. 사고나 감정이나 의사나 욕구는 개인의 자발적인 것 유래가 아니라 사회나 타인에 의한 영향의 크기, 그리고 자신이 자기 자신에 의해 사고하고 느끼는 의사·욕구하는 어려움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무의식에 의한 심리학에 의해 사회적 상식을 깨고 개인이나 문화의 분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저에 이어 인간성을 파괴하는 권위주의와 인간성을 지키고 키우려는 인도주의에 관한 고찰이 진행된다. 인간은 인도주의적 윤리를 신봉하고 생산적으로 살 수 없을 때 권위주의적 이상에 도움을 구하려고 한다.
  • 1950년「정신분석과 종교」타니구치 타카유스케, 하야사카 타이지로역 창원사 1953
  • 1955년「정기의 사회」카토 마사아키 , 사세 타카오역 사회 사상 연구회 출판부 1958
  • 1956年『愛するということ』 The Art of Loving 『 사랑한다는 것 The Art of Loving 
  • 「프로이트의 사명」사지 모모 토 번역 미스즈 서방 1959
  • 「 인간 의 승리 를 요구해 외교 정책에 있어서의 허구와 현실
  • 1962 의혹  행동
  • 1963년 “혁명적 인간” 다니구치 타카유키 조역 도쿄 창원 신사 1965
  • 「악에 대해」스즈키 시게 요시역 기이쿠니야 서점 1965
  • 「사회주의・휴머니즘」시로즈카 등 감역 기이쿠니야 서점 1967
  • 1968년 '희망의 혁명 기술의 인간화를 목표로 해' 작다 케이치 , 사노 테츠로역 기이쿠니야 서점
  • 『휴머니즘의 재발견 신・인간・역사』이자카 요시아키 가와데 서방 1968 「유대교의 인간관」
  • 「프롬과의 대화」 리처드 에반스 마키야스 부역 미스즈 서방
  • 마르크스 의 인간관
  • 『정신분석의 위기 프로이트, 마르크스 및 사회심리학』 오카베 케이산역 도쿄 창원사 1974
  • 『파괴 인간성의 해부』 사쿠타 케이이치, 사노 테츠로역 기이쿠니야 서점 1975
  • 1976년『살다는 것』Haben oder Sein 사노 테츠로역 기이쿠니야 서점 1977.7
  • 『권위와 가족』야스다 이치로 역 청도사 1977.5
  • 『프로이트를 넘어』 사노 테츠로역 기이쿠니야 서점 1980.8
  • 『반항과 자유』 사노 테츠로역 기이쿠니야 서점 1983.2
  • 『인생과 사랑』 사노 테츠로, 사노 고로역 기노쿠니야 서점 1986.4
  • 「와이마르에서 히틀러로 제2차 대전 전 독일의 노동자와 화이트 칼라」 사노 테츠로, 사노 고로역 기이쿠니야 서점 1991.2
  • 『사랑과 성과 모권제』 라이너·훈크편 타키자와 카이난코 , 와타나베 헌정역
  • 『더 잘 사는 것』오고기 계고 감역 호리에 무네 마 사역 제3분명사 2000.2
  • 「듣는다고 하는 것 정신 분석에 관한 마지막 세미나 강의」호리에 무네  사역

공저 편집 ]

관련 서적 편집 ]

각주 편집 ]

  1.  「악에 대해」스즈키 시게요시역 기이쿠니야 서점, 1965년 209페이지
  2. ^ 프로이트의 자전적 작품 「미즈카라를 말한다」(1925년)나 어니스트 존스 의 「Sigmund Freud: Life and Work」(1953년-1957년)에 있어서의 기술
  3. ^ 프로이트의 미소지니적 경향은 20세기 초 빈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유래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 가부장제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프롬은 보고 있다.
  4.  Fromm, Erich. Beyond the Chains of Illusion: My Encounter with Marx & Freud. London: Sphere Books, 1980, p. 11

관련 항목 편집 ]

외부 링크 편집 ]

백승종 정치와 종교 에리히 프롬

 백승종

정치와 종교

에리히 프롬을 꺼내어 다시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재발견했습니다. <<사랑의 기술>>의 일절입니다. 

"권력에는 합리적 신앙이 없다. 권력에 대한 굴복, 또는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권력에 무조건 굴복하기 바쁘고, 누군가는 손 안에 들어온 권력을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거겠지요. 권력이야말로 삶을 빛나게 하는 무기라고 믿어서 그런 것일 테지요.

 "많은 사람에게는 권력이야말로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겠으나,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성취한 것 중에서 가장 불안정한 것이 권력임을 입증한다."

기막힌 통찰이군요. 과연 그렇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권세도 십 년을 못 간다”라고 하였습니다. 권력을 상징하는 권세 권(權)이란 글자는 본래 “임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상한 정치 권력과 달리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종교입니다. 권력 따위는 풀잎에 맺힌 이슬 정도로 보기도 하고, 정치 권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상극이어야 할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서로 부둥켜안고 야합할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어이없는 상황인데요. 에리히 프롬은 그 점을 뭐라고 했을까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과 권력은 상호 배척한다. ... (그러므로 종교가) 권력에 의지하거나 권력과 결탁할 때 부패하고 만다. ”

가변적이고 다분히 자의적인 현실 권력을 비판할 때 종교에 의미가 있습니다. 종교 기관 또는 종교인이 구질구질한 현실에 영합하여, 권력자를 미화하고 두둔하면 그런 종교야 말로 현실을 왜곡하고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회악이 되고 맙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저는 물론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관심은 권력자가 되는데 있지 않아요.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이 집권하여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일이 없도록 비판하는데 제 관심은 국한됩니다. 특히 독재자의 후예를 자처하는, 시대착오적인 무리가 함부로 요설을 늘어놓지 못하게 막는데 한정된 정치참여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정치 참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2022. 12. 27.) 해가 지나가도 역시 똑같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