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4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 : 네이버 블로그 2011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 : 네이버 블로그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

새오늘
2012. 5. 18. 
 
다산학 18호(2011.6) | 35~79
정순우 _|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Ⅰ_. 서론
Ⅱ_. 리理를 궁구하면 성인聖人이 될까_?
Ⅲ_. 다산의 교육론에서 드러나는 ‘성인聖人’의 의미와 역할
Ⅳ_. 상제上帝와 성인, 신독愼獨의 공부론
Ⅴ_. 결어


Ⅰ. 서론
유자들이 꿈꾸는 교육의 목표는 ‘성인聖人’에 있다_. 16세기 조선사회
는 퇴계와 율곡을 거치면서 이러한 목표가 가능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고무되어 있었다_. 율곡은 “배우는 사람은 성인되기를 목표로 삼고서 한
터럭만큼도 스스로 포기하거나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지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_. 퇴계와 율곡이 제시한 궁리와 거경의 공부론은
평범한 학인들에게 성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
다_. 그들은 도문학과 존덕성의 공부를 통해 리理를 체인하면서 언젠가
는 성인의 문턱으로 진입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_. 퇴율의 문도들은 성인
이라는 상달上達의 세계는 쇄소응대와 같은 소소한 일상생활에서의 하
학 공부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_.
그러나 임란을 경과하면서, 소수의 학자들은 주자학적 공부론을 통
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기존의 신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_. 이들의
각성은 양명이 경험했던 용장의 깨우침처럼 극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변화의 바람은 명백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_. 소학류의 하학공부를 통하
여 상달의 세계에 이른다는 성리학적 기획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지루
하여 활기 없는 유자들만 양산하였다_. 그들은 사소한 삶의 이치_[理_]를
깨우쳐 종국에는 세계에 대한 근원적 이해가 가능하리라는 낙관론이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감득하기 시작하였다_. ‘성인’이라는 외부적
준거가 삶의 구석구석을 통어하고 인간의 소소한 욕망을 금제하는 것
을 회의하게 되었다_. 성리학의 세례를 받은 수많은 선비들이 명멸하고,
사후 그들은 서원 향사의 영광을 누렸지만 성인의 문정에 들어간 인물
은 거의 없었다_. 17세기 이후 등장하는 탈주자학적 해석, 육경고학에 대
한 새로운 관심 등은 성리학적 공부론이 지닌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학문적 노력이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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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성리학의 공부로는 성인을 성취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_. 그는
그 이유를 우선, 천을 리理라 하고, 인을 만물을 살리는 리라 하고, 중
용의 용庸을 평상平常이라고 하는 세 가지 점으로 지적한다_.1) 그의 이러
한 주장은 사실상 기존의 성리학의 공부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선언
한 것이다_.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다산의 사유에서는 성리학에서 주변
부에 머물러 있던 상제 개념이 가장 중핵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다는 것이다_. 그는 도처에서 성인과 상제가 그의 선의지를 확인시켜 주
는 주요한 동인임을 밝히고 있다_. 이제 우리는 그의 교육론에서 상제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밝혀 보아야 할 때이다_. 우리는 곧잘
리동설理動說에 근거한 퇴계의 ‘상제上帝’개념과, 신독愼獨에 기초한 다
산의 종교적 상제론 사이에서 강한 사상적 연대성을 발견하고자 하나,
이는 다산의 고유한 사상적 특질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할 수 있으리라
본다_. 본고에서는 이 점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_.
Ⅱ. 리理를 궁구하면 성인聖人이 될까?
성리학자들은 궁리를 통해 성인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_. 그들은 인간의 행위나 인간관계의 질서, 혹은 주
위에 편만한 사물들의 이치를 하나하나 철저하게 궁구하여 그 극처에
도달하게 되면 활연관통에 이루고, 마음의 지혜_[心知_]를 밝힐 수 있다고
믿었다_. 주자가 격물格物에서의 ‘격’을 ‘이르다_[至_]’라고 풀이한 것은 단순
히 우리의 인식작용이 외부 사물에 ‘이르다’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외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_[窮_], 마침내는 그 사물의 존재 이유와
본질까지도 완전하게 이해하는 활연관통의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의
1_) 󰡔心經密驗󰡕_(󰡔與書󰡕 2集, 2券, 40_)_. “今人欲聖不能者 厥有三端 一認天爲理 一認仁爲生物之理
一認庸爲平常 若愼獨以事天 强恕以求仁 又能恒久而不息 斯聖人矣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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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한다_. 유학의 격물론은 외부사물에 대한 단순한 인식론적 관심에 한
정되는 것이 아니다_. 주자가 격물에서의 ‘물物을 단순히 외부사물이 아
닌 인간의 구체적인 행위와 활동을 포괄하는 ‘사事’의 의미까지 확장하
자, 그 앎의 최종 단계인 활연관통의 상태에서는 마침내 완인完人인 성
인聖人에 도달하게 된다_.
그들은 리理를 매개로 하여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의 두 차원
을 하나의 통일된 의미 체계 속에 함께 담을 수 있었다_. 세계에 대한 객
관적인 지식이 증가하는 것과 마음의 수양을 통해 덕성을 함양하는 것
은 동일한 리의 작용이다_. 그들에 따르면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조화와
생성의 원리를 담고 있다_. 이 선험적 원리를 깊이 이해할 때 비로소 천
명을 이해할 수 있고, 그 결과 덕성을 충분히 기를 수 있고 마침내는 성
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_. 객관적 지식과 덕德의 결합이 본체론적인 차
원에서 가능한 것이다_.
성리학에 있어 무릇 ‘배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 거대한 계기적 순환의
흐름을 해석자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개입과 해석행위를 통하여 마음
으로부터 환히 깨우치는 것이다_. 쉽게 말해, 인간과 우주의 미묘한 관
련성을 스스로 체인하는 것이 배움의 요체라는 것이다_. 학습의 과정은
현실의 나_[我_]와 우주적 대아大我로서의 ‘성인’과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실존적인 고민을 경험하는 기간이다_.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외부세계와 접하게 되면 자연스레 활동성을
지니게 되고, 마음이 이미 본체의 상태를 벗어난 이발已發의 상태가 된
다는 것이다_. 마음이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기뻐하고 분노하고,
혹은 사랑하고 혹은 미워하면서 자칫 마음의 균형 상태를 잊어버리고
외물에 대한 참다운 인식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_. 따라서 사람의 마
음은 언제나 본래적이고 선천적으로 주어진 마음의 리에 의해 통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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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야 한다_. 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가장 요구되는 것이 궁리窮理의 공
부가 선행해야 한다_. 궁리의 공부 이후에는 자신의 다양한 행위가 과연
리에 부합하는지를 부단히 살피는 성찰省察의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_.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공부의 초점은 언제나 마음으로 모아진
다_. 성리학에서 말하는 마음은 리기理氣의 결합물로서 바깥세상과 부
단한 관련을 맺으면서 서로 교호하고 감응하는 가운데 끊임없는 변화
를 되풀이한다_. 그런데 이들은 마음이 이미 바깥 외물外物과 접한 때의
상태의 이발보다는, 아직 마음이 외물과 접촉하지 아니한 상태, 마음의
고요한 본체를 의미하는 미발未發의 상태를 더욱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
한다_. 물론 미발시의 공부뿐만 아니라 이발시의 공부도 중요시하고, 동
과 정 어느 순간에도 천리에 맞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_. 그러나 마음
공부의 최종 목적은 개인의 사욕과 사정私情이 개입된 인심人心의 세계
로부터 하늘에서 품부 받은 온전한 본성을 회복한 도심道心의 세계로
옮겨 가는 것이다_. 사욕을 걷어 내고 마음속에 내재한 도덕적 본체, 즉
리를 찾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은 곧 마음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에 불
과하다_.2)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성리학적 이해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
작한다_. 그들은 거경과 궁리를 통해 소이연과 소당연의 리를 찾는 작업
으로 과연 성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한다_.
그들의 새로운 해석 작업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졌다_. 리기론 체계
에 대한 재해석 작업을 시도하기도 하고, 소학을 근간으로 하는 하학
공부의 맹점을 추궁하기도 하였다_.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하학과 상달 사
이의 연결점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과연 소소한 일상 세계에서의 궁리
공부가 범인들을 성인의 세계로 인도하는지 검토하기 시작하였다_. 우리
2_) 졸저, 󰡔공부의 발견󰡕, 현암사, 200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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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제 몇몇 인물들을 통하여 성리학적 공부론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
을 살펴보고, 다산은 과연 어떠한 사상적 계보를 잇고 있는지 살펴보도
록 하자_.
1. 육경고학을 통한 성인의 재해석 : 한강寒岡의 경우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강 정구_(1543_~1620_)는 근기남인의 연원을 이룬
사람이다_. 그의 사상은 미수 허목, 성호 이익을 거쳐 다산으로 이어지
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_. 그의 학문은 성리학에 매몰되지 않았다_. 박
학을 넘어 잡학에 가까웠다_. 문인들이 평하는 것처럼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_.”3) 의학, 천문, 지리, 역사서뿐 아니라 잡학으로 분류되던 복서卜
筮, 풍수, 서법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_. 그의 사유는 이미 변화되기 시
작한 17세기 사회적인 움직임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_. 한강의 학문은
리기론의 형이상학적 논의보다는 예학이나 심성론, 혹은 현실적인 학
문에 더 많은 중심을 두었다_.
그러면 한강은 성인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잡고 있었을까_? 한강도 배
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인’을 지향하는 데 있음을 자주 말하고 있다_.
성인이란 스승으로 섬길 만하고 또 배워서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
고서 손수 공자의 화상을 모사하여 수시로 가까이 받들어 모시면서 존
경하고 사랑하여 예를 차렸다_.4) 그는 자기 초월의 의지가 매우 강렬하
였다_. 이에 관한 다양한 예화들이 있다_. 제자인 동호 이서에 따르면, “선
생은 어릴 적에 선성의 유상을 그림으로 그려 중당中堂에 걸어 두고 매
일 새벽에 일어나면 먼저 사당에 참배한 뒤에 물러나 선성의 화상을 향
해 절을 하였으며, 배례를 마치면 화상을 말아 상자 속에 보관하였다_.
3_) 󰡔寒岡全書󰡕, 「學問」. “先生志學以來 勤敂刻苦 於書無所不讀 於行無所不力 於事無所不習 於藝
無所不求_.”
4_) 󰡔한강언행록󰡕, 권4, 「實記」.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41
병이 나거나 문밖을 출입하는 경우가 아니면 단 하루도 그러한 일과를
폐한 적이 없었다_.”5)
그는 성인에 이르는 길을 퇴계의 심학적인 공부법에 의지하였다_. 그
는 󰡔심경발휘心經發揮󰡕를 저술하면서 배움과 성인의 관계에 대한 학문
적인 접근을 시도한다_. 󰡔심경발휘󰡕는 당시 퇴계학파의 가장 중요한 교재
인 정민정程敏政의 󰡔심경부주心經附註󰡕를 전면적으로 고쳐 쓴 책이다_.
통서에 말하기를 성인은 가히 배움의 대상입니까_? 배워서 될 수 있다_. 요
점이 있습니까_? 있다_. 청해 듣고자 합니다_. 한 가지로 함이다_. 한 가지로 요
점을 삼는다는 것은 무욕을 말한다_. 욕심이 없으면 고요할 때에는 마음이
비게 되고 움직일 때에는 곧게 된다_. 고요할 때 비운 상태가 되면 마음이 밝
게 되고, 밝으면 통하게 된다_. 움직일 때 곧으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면 넓
게 된다_. _(마음이_) 밝고 통하고 공평하고 넓게 되면 거의 가깝게 된다_.6)
한강은 성인의 길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궁리窮理 공부와 양기養氣 공
부라는 두 길을 함께 수행할 것을 주문한다_. 퇴계가 본연지성의 회복을
강조하는 데 반해, 이이는 기의 본연, 즉 ‘호연지기’를 강조한다는 점에
서 한강은 두 계열의 공부론을 종합한 것으로 평가된다_.7) 그가 작성한
「양호첩養浩帖」과 「독서첩讀書帖」은 한강이 교육은 궁리窮理 공부와 양
기養氣 공부라는 두 길이 함께 가야 할 것임을 새삼 확인하는 글이다_.
한강은 호연지기가 사라진 상태를 마음에 장애가 생긴 상태로 이해한
다_. 그의 생각은 기본적으로는 맹자의 호연지기에 근거하고 있으나, 그
의 주된 관심은 의義의 배양에 있다_. 그에 따르면 “기를 양성하지 못했
5_) 󰡔한강언행록󰡕 제1권, 「類編」.
6_) 󰡔心經發揮󰡕, 「周子養心說章」_. “通書曰聖可學乎 曰可 有要乎 曰有 請問焉 曰一爲 要一者無欲
也 無欲則靜虛動直 靜虛則明 明則通 動直則公 公則博 明通公博 庶乎矣_.”
7_) 최영성, 「한강 정구의 학문방법과 유학사적 위치」, 󰡔한국철학논집󰡕 제5집, 1996, 105쪽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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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때는 기는 기대로 따로 있고 의는 의대로 따로 있다가 호연지기를 양
성하게 되면 기와 의가 합치하게 된다_.”8)는 것이다_. 한강은 그가 강조하
는 양기가 도가류의 양기와 차별이 있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반드시
일상의 일 속에서 행사되어야 함_[必有事焉_]을 강조한다_. 그의 「독서첩」
은 경 공부에 관한 송대 리학자들의 학설을 모아 놓은 것이다_. 이것은
그의 공부가 원시유학의 양기와 송대 리학자들의 경론을 통합하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하고 있었음을 알려 주는 대목이다_.
그는 명백하게 당시의 리학 공부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인식하
고 있었다_. 그는 심학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이론적이고 원리적인 해석
의 틀을 벗어나, 주체적 해석 속에서 덕을 내면화할 때 실현될 수 있다
고 믿었다_. 그는 성인의 경전은, 체인體認, 체찰體察, 체험體驗, 체행體行
의 주체적 해석 과정이 가장 중요함을 역설하였다_. 그는 고인들이 앵무
새를 꾸짖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한 구절 한 구절을 몸과 마음에 푹 젖
어들게 할 것을 요구하였다_.9) 그가 󰡔사서󰡕, 󰡔심경󰡕, 󰡔근사록󰡕, 󰡔주자대전󰡕
등의 이론서를 접하기 전에 우선 소학을 이해할 것을 극력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_. 그는 “󰡔소학󰡕을 배우지 않고 단정치 못하면 장차 재주꾼
에 불과할 것”이라고 단언한다_.10)
한강은 성인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였다_. 노장학에 대한 연
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_. 그는 노장류의 탈사회적인 사
상을 비판하면서, 지식인은 모름지기 이윤과 주공처럼 권력을 잡고 나
라를 도우며 마음을 세우고 도를 행하는 것을 소임으로 삼아야 한다고
8_) 최영성, 앞의 논문_.
9_) 󰡔寒岡全書󰡕, 「言行錄」_. 讀書_. “讀聖賢經典 其法有四 一曰體認 二曰體察 三曰體驗 四曰體行 苟
不用此四法 基義亦無以通曉 況吾心身有何益焉 古人鸚鵡之譏 可不懼哉_.”
10_) 󰡔寒岡全書󰡕, 「敎人」_. “爲學急務 當先致力於小學 然後四書 心經 近思錄 朱子大全 等書 可以次
第理會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43
주장한다_.11)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에 담긴 그의 예설과 예학
도 고학古學적 요소를 함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_. 송대 도학의 예
설과 예경을 통한 의례의 원형을 확인하는 양면적인 작업이 동시에 이
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_.12) 고학과 성리학을 통합하여 새로
운 세계를 열어 가고자 하는 기획이 한강의 공부론에서는 드러나며, 그
것이 그의 성인관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 왔다_.
2. 성리학적 성인론에 대한 지양과 극복 : 서계西溪의 경우
서계가 생장한 시기도 대내외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_. 그의 유년 시
절은 정묘호란_(1625_)과 병자호란_(1636_)이라는 엄청난 국가적 위기의 사이
에 놓여 있었다_.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조선은 명과 청의 양 왕조 사이
에서 국가적 정체성을 두고 이념적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다_. 이어진 효
종대_(1649_~1659_)에는 우암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론세력들이 이른바
‘북벌北伐’이라는 명분론으로 지식인 사회를 압도하고 있었다_. 이 시기의
사상사는 예학이 학문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_. 주자학적 성리철학을
현실 사회의 구체적인 삶에 접목하고자 한 예학은 차츰 행위의 조밀한
준칙으로 등장하였고, 교육도 예학과 결합하여 ‘예교禮敎’라는 형태로
작동하기 시작하였다_. 예학은 차츰 정치권력을 움직이는 담론으로 작
동하기 시작하고 급기에 17세기 후반에는 정치지형을 뒤흔드는 두 차례
의 예송논쟁으로 발전하였다_.
서계의 경우에는 예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_. 당
시 성리학자들이 예를 ‘인사人事의 의칙儀則’, 혹은 ‘천리天理의 절문節文’
이라고 하여 불변적이고 절대적인 규범이라고 생각하였던 반면에, 예란
11_) 󰡔寒岡續集󰡕, 권1, 「問牛喘」_.
12_) 금장태, 「한강 정구의 예학사상」, 󰡔유교사상연구󰡕, 1992, 228쪽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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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고 이해하였다_.13) 그는 당시의 예송 논쟁도
각 당파가 각기 상대적인 정당성을 지닌 채 무익한 논변만을 일방적으
로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_. 그는 지식의 분절적 해석보다는, 당대
의 지식체계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개혁하기를 원했다_. 그 작
업이 곧 육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_. 그는 육경이 포함하고 있는 뜻과
생각의 풍부함은 다양한 철학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무궁무진한 고
전의 바다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_. 그러나 진한秦漢 이래 유학자들
의 경전 해석은 파편화되거나 이단적인 해석으로 치우치거나 혹은 기존
의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등, 후대를 위한 진정한 경학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_.14) 우회적으로 당시의 성리학적 해석에 대한 불
만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_.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새로운 경학 해
석을 위한 텍스트 분석에 노장철학까지도 함께 포괄하여 논의의 장에
올려놓는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다_.
그의 이러한 시도는 지성사의 흐름뿐만 아니라, 교육사의 맥락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_. 단일한 해석만이 허락되는 정전正典화
된 육경을 고학古學 본래의 생명력 있는 텍스트로 되살리고, 노장의 텍
스트들도 고학의 정신 속에서 재해석해 보고자 한 것은 교육의 전체적인
범주를 한 단계 확장시키는 작업이다_. 그는 노장 철학이 지닌 긍정적인
요소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_. 유학
과 노장학이 함께할 공분모가 있다고 보았다_. 성인의 대법을 밝혀줄 취
할 만한 내용이 노장철학에 함유되어 있다고 여긴 것이다_.15)
13_) 윤사순, 「서계 유학의 일반적 특성」, 󰡔서계 박세당 연구󰡕,집문당, 2006, 26쪽_.
14_) 󰡔思辨錄󰡕, 「序」.
15_) 󰡔西溪集󰡕, 卷之七, 書 七首, 「答尹子仁書」. “蓋謂古人之著書也_. 莫不勤渠用力_. 欲後人明其意_.
如老莊之說_. 雖舛聖人大法_. 又不至都無可採_. 乃爲說者所亂_. 使其意不明_. 旣不得其所以舛於
聖法者_. 又倂與其可採而泯之_. 在二子則醇疵俱掩_. 在後人則去取皆迷_. 有足悼嘆_. 所以不揆淺
陋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45
그는 특히 장자에 대하여 상당한 호의를 가졌다_. 그는 “성性을 안 것
으로 말하면 역시 장자만한 이가 없을 정도이다_.”라고 하였다_. 그는 장자
의 공부론을 󰡔중용󰡕의 솔성과 󰡔맹자󰡕의 성선의 뜻에 깊이 부합하니, 순
자와 양웅이 미칠 바가 아니라고 높이 평가한다_. 또한 “노자는 패술覇
術의 으뜸이고 장자는 왕도의 나머지”이며, “노자는 사私이고 장자는 공
公이다_.”16) 하여 인간 본성에 대한 장자의 통찰을 높이 산다_. 그는 노자
에 대한 유학적 해석에서도 적극적이다_. 그는 “노자의 이른바 무無란 공
허하다는 뜻이 아니라 겸허하다는 뜻이며, 이른바 무위란 일을 일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조급하고 어지럽게 함부로 작위하지 말라는 뜻이
다_.” 하여 노자와 유학의 본지가 함께 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_.17)
그의 이런 태도는 기존의 교조적인 성인聖人론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
낸다_. 당시의 교육론에서는 성인으로 향하는 노정이 매우 경직되게 제
한되어 있었다_. 공부의 바른길이 도통론에 근거해 이미 획정되어 있었
다_. 도통론에 근거해 원시유학은 주자학을 근간으로 한 송명리학으로
계승되고 그것이 퇴계와 율곡을 두 정점으로 하는 조선 성리학의 계보
도로 전승되었다_. 학문의 계보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곧 이단의 길
이다_. 이런 도통론에 근거해 볼 때 노장학은 참다운 성학聖學을 가장 심
각하게 왜곡하는 주범이었다_. 그러나 서계는 이 제한을 풀어 버리고,
노장학도 새롭게 해석하면 성인의 길로 나아가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음
을 지적한다_. 그는 󰡔노자󰡕, 󰡔장자󰡕에서 유학의 근간인 ‘수기’와 ‘치인’에
해당하는 것을 두루 지적할 뿐만 아니라, 도•덕•유명有名•무명無名 및
제물론齊物論 등을 자신이 소유한 성리학의 식견으로 풀이하는 데 열
16_) 󰡔西溪集󰡕, 권21, 부록, 「연보」_. “隨其成心而師之 誰獨且無師者_.”
17_) 󰡔西溪集󰡕, 권21, 부록, 「연보」_.
46_ 다산학 18호
중한다_.18)
그의 이러한 개방적인 사유는 조선의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 속에도
유지된다_. 그는 특히 김시습을 존모하였다_. 그가 김시습을 서원에 배향
하고자 할 때, 평생의 지우인 남구만조차도 김시습이 승복을 입은 방외
인이요, “머리털을 자르고 몸에 문신한 일민逸民”19)일 뿐임을 들어 강력
한 반대의 의견을 피력하였다_. 그러나 그는, “청한 자야말로 이른바 백
이의 마음을 가지고 우중의 행동을 한 분이 아니겠는가”라고 김시습의
행적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_.20) 그의 이러한 인물평은 종래의 갇힌 도통
론적 사유 속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_.
그의 사유의 변화 폭은 생각보다 넓다_. 특히 기존의 연구에서 주목
되는 점은 서계의 사유 속에서 ‘천天’에 대한 재해석의 의지가 읽혀진다
는 점이다_. 그는 당시의 성리학적인 리법천理法天관에 대해 회의하는 기
미가 있다_. 정주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천天’에 대한 리의 의미 첨가를
부정하고, 정주에 의하여 퇴색된 상제천을 복권시키는 기회를 제공한
다_.21) 그는 이와 함께 주자의 공부론인 격물설格物說과 함양공부의 근
간인 미발설未發說에 대하여 그 맹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다_. 그는 나날이 마주하는 사물을 개별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한
실천해 가는 분수지分殊知의 과정이 중요하지, 이것을 통관하는 원리를
탐색하는 것은 격물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_. 즉 그는 공부의 방법인
격물치지란, “일사일물一事一物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지, 결코 만물의
리를 궁구하고자 일심一心의 지知를 다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_.”22)라고
18_) 윤사순, 앞의 논문, 31쪽_.
19_) 󰡔藥川集󰡕, 권30, 書_.
20_) 󰡔서계집󰡕, 권8, 雜著, 「梅月堂影堂_(勸緣文_)」_.
21_) 위의 책_.
22_) 󰡔思辨錄󰡕, 大學, 「傳六章」_. “似指一物一事而言 恐非謂窮萬物之理而盡一心之知者也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47
말한다_.
서계는 이 세계를 이해하고, 앎을 획득해 가는 과정에서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을 놓고 주자학과는 이미 구별되는 길을 가고 있다_. 그는 주
자의 격물치지 보망장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_. 그는 격치장에 대해,
“전문이 결락되었기 때문에 격치의 설에 대해 고증을 할 수 없다”23)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_. 이 말은 사실상 주자의 격치설을 신뢰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성리학적 인식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_. 그는 성의장誠意章을 중심으로 격물설을 읽을 것을 제
안하고 있다_.24)
그에 따르면, 성의誠意의 공부 내용도 ‘자기를 속이지 마라’, ‘혼자서
있을 때를 삼가라’처럼 그 뜻이 일상의 비근한 것을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데, 하물며 그전 단계인 격물설이 공부의 가장 깊은 단계인 진성진
물盡性盡物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이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라는
것이다_. 즉 격물치지를 이루어 물격物格의 상태에 다다른 사람이 다시
비근한 차원의 마음공부를 하도록 구성된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
이다_. 격물을 통해 이미 공부의 가장 높은 단계에 다다른 사람이 다시
공부의 첫 출발지로 되돌아와 성의_-정심_-수신_-제가_-치국_-평천하의
공부의 확장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는 것이다_.25)
이것은 그가 주자의 활연관통豁然貫通설의 비현실성을 비판한 것이
다_. 활연관통의 상태란 사실상 상달上達 공부의 마지막 귀결처이자 도
23_) 󰡔思辨錄󰡕, 大學, 「經一章」_. “今傳文缺落 其所以格致之說者 固已無所可考矣_.”
24_)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졸고, 「서계 박세당 공부론의 양명학적 연구」_(󰡔서계 박세당 연구󰡕,
집문당, 2006_) 참조_.
25_) 󰡔思辨錄󰡕, 大學, 「經一章」_. “其誠意之說, 曰毋自欺, 曰愼其獨, 言毋欺也則以惡惡臭好好色爲
證, 言愼獨也則以小人閒居爲不善見君子而厭然揜之則人如見其肺肝爲證, 此之爲義不已坦易
切近乎, 此又豈是指曉理無不到知無不盡以上人語耶, 且只此便可謂之盡性盡物乎, 若由此而
致其功, 雖盡性盡物, 可也, 若以此爲已到盡性盡物之地, 則誠恐不可_.”
48_ 다산학 18호
의 세계에 다다른 상태인데, 󰡔대학󰡕은 어디까지나 초학자의 입문서임
을 감안할 때, 물격설物格說에서 이 상태를 거론하는 것은 논리상 무리
가 따른다는 것이다_.26) 서계의 이러한 비판은 활연관통의 경지가 보통
의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따라서 그러한 것을 논
하기보다는 명백하고 필요 불가결한 일상적 지식부터 더욱 확실히 구하
는 데 치중해야 한다는 것이다_. 또한 주자학의 공부법에 따라 만물의
리를 일일이 추적하는 방식으로는 성인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이 애
초에 논리적으로 허약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_. 그는 사실상 격물
格物과 치지致知의 상태가 이원화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_.27)
격물과 치지는 사실상 한 가지라고 하는 그의 주장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_. 주자는 격물을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기를 지극히 하여 그 극처極
處에 나아가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_[窮至事物之理物理 欲其極處無不到_]’이
라 하고, 지지知至는 ‘나의 마음의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_[吾
心之所知無不盡_]’이라고 하였다_. 이때 비로소 사물은 그 전존재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물격物格의 순간이 찾아온다_. 그리고 지식의 정도가
이 경지에 다다라야 비로소 ‘의意’가 실實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_.28) 그
러나 서계가 볼 때, 이러한 기존의 공부론으로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_. 개별적인 사물과 현상에
내재한 법칙성을 찾는 것에 매몰되어 학문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유
희로 전락하게 되었다_. 리학의 말폐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_. 17세기 이
후 주자학의 공부론에 대한 회의가 점차 깊어지면서 유자들은 상달에
관한 성리학적 해석에 강한 의구심을 지니게 되었다_. 그 요체는 상달에
26_) 앞의 책_.
27_) 위의 책_. “蓋言欲使吾之知, 能至乎是事之所當而處之無不盡則, 其要唯在乎尋索是物之則而得
其正也, 不言欲致知先格物, 而曰致知在格物者, 格物, 所以致知, 其事一故也_.”
28_) 󰡔大學章句大全󰡕 , 「經一章」_(朱子註_)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49
관한 성리학의 무실성無實性에 있었다_. 이성적으로는 이 세계의 근원적
인 진실을 통투通透한 것으로 보이나, 현실적인 실천성과 효용성은 전
혀 없는 허학虛學으로 전락한 것이다_. 이 부분은 서계의 공부론의 성격
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_.
서계에게 있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앎들이 바로 치지致知의 상태
로 인식되는 것이다_. 이것은 격물格物과 물격物格을 사실상 동일한 층위
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성리학의 공부론을 근저에서부터 문제시하는 것
이다_. 이러한 그의 태도는 명백하게 지와 행의 간격을 허물고, 실천 지
향적인 공부를 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_. 그는 격물의 격格을
법칙_[則_], 올바름_[正_]의 의미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_.29) 서계는 격물은 ‘사
물의 올바른 법칙성을 구하여 그 바름을 얻은 것_[求物之則而得其正_]’이
며, 지지知至는 ‘나의 지식이 사事의 의심할 바 없이 당연한 점에까지 이
른 것_[吾之知至乎事之所當而可以無所疑_]’이라 규정한다_.30) 그에 따르면 주자
와 같이 외부의 객관대상으로서의 물物과 행위와 운동의 개념인 사事
를 동일한 원리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_. 또한 격格을 지至로, 즉 인식 주
체의 리理가 객체로서의 물에 내재한 리와 조응하는 것으로 해석해서
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_. 서계가 외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사물의 법
칙성_[物則_]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주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_. 그러나 그는
결코 사물의 근저에 놓여 있는 리를 찾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양자의
사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_. 서계의 격물에서는 각각의 개체성이 결코
보편성 속에 매몰되지 않는다_. 서계는 격물공부를 통해 외물에 대한 명
확하고 확실한 지식을 찾고자 할 뿐, 각각의 사물들이 공유한 내적원리
29_) 격물의 격을 정正으로 해석하는 방식은 외견상으로는 양명의 발상과 유사하다_. 이에 관한 자
세한 논의는 졸고, 「서계 박세당 공부론의 양명학적 연구」_(󰡔서계 박세당 연구󰡕,집문당, 2006_)
참조_.
30_) 󰡔中庸思辨錄󰡕, 「經一章」(註_)_.
50_ 다산학 18호
까지를 문제시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_.
그러면 서계는 과연 어떠한 구도에서 주자 공부론의 근간을 이루는
격물설을 폐기하고자 하였는가_? 아마 그는 격물설에 근거한 궁리 공부
로서는 앎의 궁극적인 상태인 활연관통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은 논
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파악하고, 새로운 공부법의 대안을 모색한 것
으로 보인다_. 그는 내 마음에 내재한 리가 아니라, 마음의 밝은 빛_[心之
所明_], 즉 영명성을 회복하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겠다는 의지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_. 그가 선험적인 리를 폐기하고, 격물의 주자학적 해석을
부정하며, 활연관통설의 허구성을 지적함으로써 상달처에서 획득되는
리理의 무실성을 극복하는 태도는 다산이 지향하는 공부론의 세계와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다_.
3. 공안학의 수용과 성인관의 변화 : 연암淵巖의 경우
지금까지 공안학의 수용이 조선 후기 교육에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
는지를 알려 주는 연구는 부재한 실정이다_.31) 그러나 원굉도 형제에 대
한 이해는 이미 허균에서도 보이고 있고, 농암 김창협은 앞서 말한 박세
당의 경우에도 양명좌파의 사유가 묻어나고 있다고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_. 농암이 보기에 박세당도 임정종욕任情從欲 하는 패륜적
사상을 잉태하고 있고32) 그것은 천리天理를 멸하는 무서운 사상적 파국
을 가져온다고 본 것이다_.
공안학의 수용은 인간이 지닌 원초적 욕망을 일정 정도 긍정한다는
점에서 교육에 미친 영형력이 엄청나게 크다_. 양명학과 공안학의 수용
은 삶의 외부적인 준거와 타율적인 준칙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종래의
31_) 공안파의 수용에 관해서는 강명관,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소명출판, 2007, 참조_.
32_) 金昌協, 󰡔農巖集󰡕 1, 「答任德函」.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51
주자학적인 규범성을 상당 부분 허물 수밖에 없다_. 또한 교조적으로 정
전正典화 되었던 텍스트와, 외부적으로 강한 준거기준으로 작동하던 성
인론도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_. 이탁오의 󰡔동심설童心設󰡕
을 염두에 두었다고 평가받는 이용휴李用休의 「환아잠」에서는 “모든 성
인_[千聖_]은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말한다_.33) 성인이 교조적인 권위로 군
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일시적으로 스쳐 가는 허상일 뿐이라는 것
이다_. 이와 같은 발상에서는 당연히 일률적으로 제시해 오던 중세적 교
육의 목표나 가치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_.
이 시기의 또 다른 기인, 이언진李彦瑱은 대 놓고 “전성前聖이 가던 길
을 가지 않아야 비로소 후대에 참 성인인 되리”34)라고 갈파한다_. 전대
의 교육에 대한 통절한 비판이자 야유다_. 그는 왕양명의 만인성인설_[萬
街人都是聖人_]을 차용하여 모든 사람들은 이미 성인의 자질을 함유한
양지良知, 양능良能의 천부적 품성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_. 그
의 다음과 같은 시는 그가 주자학적 공부론에서 멀리 이탈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_.
길거리 가득한 사람 모두 성인이어니 萬街路皆聖人
다만 기한飢寒에 몰려 괴로울 뿐 但驅使飢寒苦
양지와 양능이 있으니 有良知有良能
맹씨孟氏가 취한 것 나도 취하리라 孟氏取吾亦取35)
전대의 텍스트를 무조건적으로 맹신하고, 기존의 교설을 무비판적으
로 수용하던 조선 교육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음을 볼 수 있다_. 따라
33_) 강명관, 앞의 책, 283쪽 재인용_.
34_) 이언진, 󰡔松穆館集󰡕, 「衕衚居室」_.
35_) 강명관, 위의 책_.
52_ 다산학 18호
가야 할 권위의 상징으로서의 성인이 아니라, 개개인의 본질 속에 갖추
어진 가능태로서의 성인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_. 양명학 혹은 공안
학의 전통이 조선 교육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는가의 문제는
앞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_. 다만 본고에서는
공안학의 또 다른 해석을 실현한 연암 박지원을 통하여 그 성인관의 변
화를 가늠해 보도록 하자_.
연암은 “진실로 문장의 이치를 터득하면 집안 식구끼리의 일상적인
이야기도 학교 교과 과정에 끼일 수도 있고, 아이들 노래와 속담도 「이
아」에 들 수가 있다_.”36)고 주장한다_.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생활 그 자
체가 교육의 대상이라는 것이다_. 천진한 아이들의 노랫가락과 여항에서
떠도는 속담도 교재가 될 수 있다는 발언은 조선의 교육사에서 주목할
만하다_. 그는 “문장이란 고문古文과 금문今文이 없다_. 오로지 스스로 자
기 자신의 문장을 쓰면 그만이다_. 눈과 귀가 듣는 바를 잘 드러내어서
그 형태며 그 소리를 곡진하게 그려내고 그 내용이며 그 상황을 남김 없
이 모두 따져서 드러나지 못함이 없다면 문장을 짓는 법도는 극진한 것
이다_.”37)라고 말한다_. 문장은 이 세계에 대한 자기 진술이라 할 때, 연암
이 “오로지 스스로 자기의 문장을 쓸 것”을 주문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도 의미심장하다_.
그는 인습과 격식을 배격한다_. 그에 따르면, “천지는 비록 오래된 것
이나 끊임없이 무한한 창조력_[生生之理_]을 보여 주고, 해와 달은 비록 오
래 되었으나 그 빛을 발함은 날로 새로운 것”38)이다_. 그는 “만물 중에
생을 누리는 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_. 그러니 그 “천명을
36_) 󰡔과정록󰡕, 권4_. “苟得其理 則家人常談 猶列學官 童謳里諺 亦屬爾雅_.”
37_) 위의 책_. “先君之論文章也 常以爲文無古無今 不必模楷韓歐 步趣馬班 矜壯自大 低視今人也
惟自爲吾文而已 擧耳目之所睹聞 而無不能曲盡其形聲 學九其情狀 則文之道 極矣_.”
38_) 󰡔연암집󰡕, 권1, 「楚亭集序」_. “天地雖久 不斷生生 日月雖久 光輝日新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53
즐거이 여기고 그 천명을 순순히 따르면 물과 내가 같지 않은 것이 없으
니, 이것이 바로 하늘이 명한 성”이라고 본다_.39) 생명 현상 그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득의의 생명 철학을 드러낸다_. 그는 “참다운 리理란
보존된 씨와 같고, 씨를 일러 인仁이라 자子라 하는 건 바로 ‘생생지리生
生之理’이기 때문”40)이라고 하여, 자연의 무한한 창조적 힘을 찾는 것이
곧 참다운 리를 구명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_.
그럼 연암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자연의 생생지리를 확인하는가_? 연
암은 성리학의 공부론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방법을 이해방식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_. 성리학에서는 도의 체인은 오랜 거경과 궁리 공부가 선
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_. 끊임없는 마음의 수양을 통해서만 비로소 객
관세계의 진정한 본질을 대면할 수 있고, 성인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
다_. 연암의 발언에서는 성리학의 공부론에 비견되는 체계적인 논의가
나타나지 않지만, ‘명심冥心’에 관한 논의는 주목을 요한다_.41) 그의 말을
들어 보자_.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도다_. 명심冥心한 자는 귀와 눈이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혀져서 병이 되는 것
이다_. 이제 내 마부가 발을 말굽에 밟혀서 뒤차에 실리었으므로, 나는 드
디어 혼자 고삐를 늦추어 강에 띄우고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 번 떨어지면 곧 강이다_. _(그러나_)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
39_) 󰡔연암집󰡕 제2권, 「答任亨五論原道書」_. “萬物同在氣化之中 何莫非天命 夫性者 從心從生 心之
具而生之族也 無氣則命絶矣 性安從生 非生則性息矣 善安所係也 苟究天命之本然 則奚獨性
善 氣亦善也 奚獨氣善 萬物之含生者莫不善也 樂其天而順其命 物與我無不同也 是則天命之
性也_.”
40_) 󰡔연암집󰡕 제2권, 「麈公塔銘」_.
41_) ‘冥心’에 관해서는 이미 임형택 교수와 박희병 교수에 의해 문학적으로 깊이 거론되었다_. 이
개념이 과연 노장적인가 등의 문제를 포함하여 철학적으로 논의를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
다_. 임형택, 앞의 논문, 28쪽; 박희병, 󰡔한국의 생태사상󰡕, 돌베개 1999_.
54_ 다산학 18호
을 삼으며,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性情을 삼아, 이제 내 마음은 한 번
떨어질 것을 결정하니, 내 귓속에 강물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
너는데도 걱정이 없어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하고 기거起居하는 것 같았다_.
……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늘,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지나는데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
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_.42)
명심冥心의 공부론은 감각기관에 근거해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
나 불안정한 것인지 말해 준다_. 소리와 빛 같은 외물은 객관세계에 대
한 참다운 이해를 방해한다는 것이다_. ‘명심’의 상태가 오히려 성리학적
인 인식론의 한계를 돌파하여 객관세계의 실체적 진실에 곧바로 나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_. 연암이 아이들의 교육에 임하는 자세도 유사하
다_. 그는 창애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_.
마을 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더니 읽는 데 싫증을 내었습니다_. 그래
서 꾸짖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_. “하늘을 보니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
이란 글자는 왜 푸르지 않습니까_? 이 때문에 글을 읽기 싫어요_.”43)
문자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_. 내 마음과
하늘이 직접적으로 대면할 때, 하늘은 푸른 모습을 드러낸다_. 연암은 성
리학적 해석체계를 걷어내고, 그 대신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통로를 통하
여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였다_. 연암의 일생이 언제나 ‘천진天眞’
42_) 󰡔열하일기󰡕, 「山莊雜記」, ‘一夜九渡河記’_.
43_) 󰡔연암집󰡕, 권5, 「答蒼厓」_.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曰 視天蒼蒼 千字不碧 是以厭耳
此兒聰明 餒煞蒼崖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55
의 상태를 보여 주었다44)는 평가도 이러한 삶의 성찰이 가져온 곳으로 보
인다_.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노력보다는 자연성 그대로를 승인하고 즐기는
그의 생명철학에서 성리학의 공부론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_.
Ⅲ. 다산의 교육론에서 드러나는 ‘성인聖人’의 의미와 역할
다산의 문집에서 ‘성인’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이
다_. ‘성인’은 그의 교육관에서도 궁극적인 목표요 이상이다_. 그러나 그
의 성인론은 당대 성리학자들의 견해와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다_. 앞
질러 말하자면 성리학자들의 성인론과 공부론이 추상성과 관념성 속에
서 비실체적인 일종의 이념형으로 기능하였다면, 다산이 생각하는 성
인은 구체적인 역사성을 지닌, 욕망과 분노까지도 함께하는 능위적인
인물이었다_. 다산은 오학론五學論에서, 성리학자들과는 끝내 같이 손잡
고 요순堯舜과 주공周公•공자孔子와 같은 성인의 문하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_. 그는 성리학자들이 공리학이나 형명刑名학은 이단
으로 몰고,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공소한 학문만을 하고 있음을 비판
한다_. 그는 주자학에서 성인을 성취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천을 리라
하고 둘째, 인을 만물을 살리는 리라 하고 셋째, 중용의 용庸을 평상平
常이라고 하는 세 가지 점을 들었다_. 이에 대해서 성인이 될 수 있는 방
법은 첫째, 신독으로 하여 하늘을 섬기고 둘째, 서恕에 힘써서 인을 구
하며 셋째, 항구하여 중단됨이 없음을 제시하였다_.45)
다산은 우선 성인이란 인격과 덕성을 완성한 자라는 점을 명확히 하
였다_. 그는 성리학에서 천을 리로 해석함으로써 천의 선악에 대한 주재
44_) 󰡔과정록󰡕, 권3_.
45_) 󰡔心經密驗󰡕_(󰡔與全󰡕 2集, 2卷, 40_)_. “今人欲聖而不能者 厥有三端 一認天爲理 一認仁爲生物之
理 一認庸爲平常 若愼獨以事天 强恕以求仁 又能恒久而不息 斯聖人矣_.”
56_ 다산학 18호
적 권능이 사라졌음을 지적한다_. 다산에 따르면, 리는 “사랑도 없고, 미
움도 없는, 즐거움도 없고 분노도 없는, 이름과 예도 들어 있지 않은 텅
비고 막막한 것”46)이다_. 그는 리의 무실성無實性을 들어 성리학의 공부
론을 공격한다_. 다산은, “리를 가지고 만물을 꿰뚫는다지만, 자기 행실
의 선악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음”47)을 말한다_. 하늘을 실체 없는 리로
추상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선악을 감독할 인격천이 사라졌다는 것이다_.
그는 신독을 통한 사천事天의 공부론을 주장한다_. 상제가 주관하는
하늘, 그 하늘을 종교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복귀시키고자 하였다_. 그에
게 성인은 추상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_. 성인이란,
“어렵고 고된 일은 남보다 먼저하고, 소득이 되는 어려운 일은 남보다
뒤에 하는 서恕”48)를 실천하는 인물일 뿐이다_. 그는 심학화한 경의 공
부를 통해서는 성인에 이르는 길이 없다고 보았다_. 리의 체인을 전제로
한 도문학과 존덕성 공부로는 인仁의 본질에 가까이할 수 없고, 성인됨
의 길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_.
다산은 주자 공부론의 근간을 이루는 격물치지론을 근본적으로 부
인한다_. 그는 주자가 격물론을 통하여 궁리窮理의 인식론적 근거를 마
련했던 것을 근본적으로 허물어 버린다_. 그는 주자의 소위 대학 8조목
설을 부인하고 이를 격치格致 6조로 불러야 할 것을 제안한다_. 그는 대
학의 8조목에서 격물과 치지를 제외시키고, 격치를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6조의 선후관계와 본말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
명한다_. 그는 격물에서 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활연관통의 상태도 또한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_. 그는 공자 같은 성인이라도 경험하지 않았다면,
46_) 󰡔孟子要義󰡕_(󰡔與全󰡕 2集, 6卷_)_. “夫理字何物 理無愛憎 理無喜怒 空空漠漠_.”
47_) 󰡔論語古今註󰡕_(󰡔與全󰡕 2集, 13卷_)_. “以一理貫萬物 於自己善惡 毫無所涉_.”
48_) 󰡔論語古今註󰡕, 「雍也」_(󰡔與全󰡕 2集, 9卷_)_. “艱苦之事先於人 得利之事後於人 則恕也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57
“도의 지극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모르는 대목이 있다”고 보았다_.49) 격
물은 ‘헤아리고 재는 것_[量度_]’이라고 말한다_. 따라서 격물이란 “물에 본
말이 있음을 헤아리고 재는 것”이며, 치지란 일에 관해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지극히 아는 것”50) 이상이 아닌 것이다_. 예를 들자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일의 본말과 선후를 명백하게 아는 것이 격치의 요체이
며, 제가의 선후와 본말을 이해하는 행위가 격치의 근본이라는 것이다_.
다산은 성인의 본질을 미발 심체의 명경지수에 두고자 하는 성리학
자들의 이해태도를 거부한다_. 그는 성인도 역시 두려움과 같은 칠정이
있고, 욕망이 있는 인간임을 강조한다_.51) 그는 공자가 광匡의 창끝 앞에
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형병의 말을 단호하게 부정한다_. 또한 성인
도 뉘우침과 욕심이 있는 인간임을 확인한다_. 그는 “만약 성인이라고
해서 뉘우침이 없다면 성인이라는 자들은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니니,
무엇 때문에 흠모할 것인가_.”라고 반문한다_. 그에 따르면, 뉘우침이 마
음을 길러주는_[養心_] 것은 마치 분뇨糞尿가 곡식의 싹을 키워주는 것과
같다_. 그는 여기에서 성인을 교육의 영역으로 바짝 끌어들인다_.
후세에 성인을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추존해서 신이하고 황홀한
사람으로 여기기만 하고 그가 성취한 것이 어떤 일인지는 까마득하게 알아
보지는 못한다_. 그리고 성인은 본래 높고 신성한 존재라서 나에게는 그렇
게 될 분수가 아예 없으니 성인을 흠모한들 무엇하겠는가 하고 여긴다_. 이
것이 성인이 나오지 않는 까닭이며, 도가 마침내 어두워진 까닭이니, 아_!
슬픈 일이다_.52)
49_) 󰡔論語古今註󰡕_(󰡔與全󰡕 2集, 10卷_)_. “特道體至大 造端乎夫婦 而及其至也 雖聖人亦有所不知焉_.”
50_) 󰡔大學公議󰡕_(󰡔與全󰡕 2集, 1卷_)_. “格量度也 極知其所先後則致知也 度物之本末則格物也_.”
51_) 󰡔다산시문집󰡕, 권13, 記, 「每心齋記」_.
52_) 󰡔論語古今註󰡕, 「爲政 第二」_(󰡔與全󰡕 2集, 7卷_)_.
58_ 다산학 18호
다산은 성인은 지고의 존재이고, 내가 도저히 도달하지 못할 존재라
는 사실을 부정한다_. 성인은 멀리 추상 속에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교
육을 통해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대상임을 재차 환기시킨다_. 성인 자
신도 본바탕은 많은 약점과 단점을 지닌 인간일 뿐이다_. 기예에 있어서
는 “아무리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천 명이나 만 명의 사람이 함께 의논
한 것을 당해낼 수 없고,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그 아
름다운 덕德을 모조리 갖출 수는 없는 것”53)이다_.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산은 순임금이 성인이 된 까닭은 그의 효심에서 비롯되었지, 선기옥
형과 같은 기물을 잘 만드는 것에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_.54)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그가 어리석거나 노둔
한가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순과 같은 효우孝友를 행하는
가에 달렸다_.55) 그렇지 않고 만약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만이 성인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둔한 사람은 스스로 자포자기하게 되고, 마침내
성인을 하늘처럼 치부하여 스스로 한계를 짓고 상승의 의지를 갖추지
않는 화근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_.56)
다산은 성인을 인간과 격절하여 멀리 천상 속에 머물거나, 관념 속
에서 찾을 수 있는 가상의 인물로 상정하는 것에 격렬하게 반대하였다_.
그는 성인의 모형을 조선 후기의 모순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출할 수 있
는 구체성 속에서 구하고자 하였다_. 그는 성인의 뜻은 당시의 피폐한 백
53_) 󰡔다산시문집󰡕 권11, 論, 「技藝論」_.
54_) 󰡔詩經講義󰡕 권3, 「大雅」_(󰡔與全󰡕 2集, 19卷_). “臣嘗以爲舜之孝友, 人皆有可以爲之理_. 舜之璿璣
玉衡, 凡人不能造_. 然有巧曆焉, 能作璿璣玉衡, 不可以此謂可以爲舜_. 有孝子焉”
55_) 󰡔論語古今註󰡕, 「陽貨」_(󰡔與全󰡕 2集, 15卷_)_. “今使天下之人_. 人人皆孝友如舜_. 則雖至鈍甚濁之
氣質_. 未可曰行不得而力不足_. 特自畫而不肯爲耳_. 則孟子謂人皆可以爲堯舜_. 豈一毫過情之言
哉_.”
56_) 󰡔孟子要義󰡕, 「告子 第六」_(󰡔與全󰡕 2集, 6卷_). “上智生而善, 下愚生而惡, 此其說有足以毒天下而
禍萬世, 不但爲洪水猛獸而已_. 生而聰慧者, 將自傲自聖, 不懼其陷於罪惡_. 生而魯鈍者, 將自
暴自棄, 不思其勉於遷改_. 今之學者, 以聖爲天, 決意自畫, 皆此說禍之也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59
성의 삶을 구제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_. 그는 말하기를, “적당한
사람을 얻어서 전지를 맡겨, 그가 힘을 다해서 농사하면 곡식 소출이
많아질 것이다_. 곡식 소출이 많아지면 백성의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백성의 먹을 것이 풍족하면, 피폐한 자, 병자, 쇠약한 자, 어린이, 공인,
장사꾼, 우자虞者, 형자衡者, 목자牧者, 포자圃者, 빈자_(嬪者 : 織婦_)들도
모두 그중에서 먹을 것을 얻게 된다_. 이것이 바로 성인聖人의 뜻이다_.”라
고 갈파한다_.57)
다산은 성인의 표준을 조선적인 현실에서 구하고자 하였다_. 그는 연
경에 사행을 가는 친구가 이를 뽐내자 성인의 학문은 이미 우리나라에
와 있음을 주장한다_. 그는, “이른바 ‘중국’이란 무엇을 두고 일컫는 것인
가_. 요堯•순舜•우禹•탕湯의 정치가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고, 공자•안
자顔子•자사子思•맹자의 학문이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는데 오늘날 중
국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_. 성인의 정치와 성인의 학문 같
은 것은 동국이 이미 얻어서 옮겨왔는데, 다시 멀리에서 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_.”58) 라고 반문한다_. 그는, “성인聖人의 법은, 중국이면서도
오랑캐와 같은 행동을 하면 오랑캐로 대우하고, 오랑캐이면서도 중국
과 같은 행동을 하면 중국으로 대우한다_.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은 도리
와 정치의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지 지역의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
다_.”59)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_.
그럼 그의 이러한 성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그의 구체적인 교육활
동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었을까_? 앞서 언급한 대로, 다산은
성인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신독으로 하여 하늘을 섬기고, 강서強恕로
57_) 󰡔經世遺表󰡕, 권6, 「地官修制」, 田制 4_.
58_) 󰡔다산시문집󰡕, 권13, 「序」_.
59_) 󰡔다산시문집󰡕, 권12, 「論」_. 拓跋魏論_.
60_ 다산학 18호
써 인을 구하면서, 또 오래토록 쉬지 않고 중中의 자세를 취하는 세 가
지 태도를 지적하였다_. 그의 이러한 지론은 다산가의 가학 속에서도 꾸
준하게 드러난다_. 그가 자제들과 문족들에게 가장 빈번하게 강조한 덕목
이 효제孝弟의 정신이다_. 그는 자손들에게 효제는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
라는 사실을 강조한다_. 효제는 인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인덕을 확장하
고 교육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대상이다_. 그는 사람들이 평소에 측은, 박
애 등의 감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인을 행하는지 모른다고 비판한다_.60) 그 이유는
사람들이 인이란 실천을 통해 비로소 획득되는 가치덕목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마음의 이치라고 파악하는 것에서 기인된다는 것이다_.
다산은 “인의예지는 행사行事로 얻어진 이름이지 심에 있는 이치라
고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61) 단언한다_. 그는 자손들에게 인의예지란 생
활 속에서 사람으로서의 할 바를 다 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임을 알
려준다_. 다산은 “인仁이란 두 사람이 서로 함께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_.
부모와 자식은 두 사람이니 어버이를 효성스럽게 섬기는 것이 인仁이
고, 백성을 자애롭게 다스리는 것이 인이니, 목민관과 백성은 두 사람이
기 때문이라는 것이다_.62) 그는 어린 선비들에게 주는 글에서 “친친親親
은 인이요, 존존尊尊은 의義이며, 장장長長은 예禮요, 현현賢賢은 지智이
다_.”63)라고 하여, 인의예지도 인간관계 가운데에서 형성되는 덕목임을
60_) 󰡔茶山詩文集, 書󰡕, 「答李汝弘」. “至於仁字, 並其平日之所識認, 亦確然以爲在內之理, 而孝於
親, 忠於君, 篤於友, 慈於民, 凡人與人之相與者, 別自爲德, 不似爲人_. 其平居想念, 惟惻隱博
愛等數句, 往來心上, 冲融葱譪, 恍惚髣髴, 若見有愛人生物之象, 而實不知如何八頭, 可以居
仁, 如何下手, 可以行仁_.”
61_) 󰡔茶山詩文集, 書󰡕, 「答李汝弘」_. “智者 謂能辨別黑白 可云有知耳 老子曰 知其白守其黑 知其
白者 智也 由是觀之 仁義禮智 皆以行事得名 不可曰在心之理_.”
62_) 󰡔論語古今註󰡕, 「學而第一」_(󰡔與全󰡕 2集, 7卷_). “仁者, 二人相與也_. 事親孝爲仁, 父與子二人也
事兄悌爲仁, 兄與弟二人也 事君忠爲仁, 君與臣二人也 牧民慈爲仁 牧與民二人也_.”
63_) 󰡔茶山詩文集󰡕 권12 _(箴_), 敬己齋箴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61
알려준다_. 인의예지는 본래 행사行事 이후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_.64)
다산이 보는 참다운 성인은 질質, 즉 덕행만을 근본으로 삼는 도학자
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_. 그가 기다리는 성인은 문文, 즉 예악으로써 꾸
밀 수 있는 인물이다_. 그는, 주나라 이후, 그 “문文이 멸망하였기 때문
에 덕교, 예악, 전장, 법도가 다시 흥성할 수 없어, 임금은 임금답지 못
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고, 아비는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
답지 못하고, 교체郊締는 교체답지 못하고, 조종祖宗의 종통은 조종답
지 못하게 되어, 질서가 무너지고 도리가 어두워져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된 것”65)이라고 하였다_. 문이 망하면 질 또한 망하는 것이다_. 그에 따르
면, “옛날에는 그 문을 이루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그 질에 힘써야 하
나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아, 그 질을 돌이키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그
문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_.66)
그는 질만 있고 문이 없는 자는 야인野人이 됨을 면하지 못하고, 질만
있고 문이 없는 나라는 인이仁夷가 됨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다_. 그의 시대에는 아학雅學만 아니라 속학俗學도 함께 공부할 것을 요
구한다_.67) 그는 자식들에게 비록 폐족의 신세가 되었으나, 서울에 의탁
해 살 자리를 정하여 문화文華의 안목眼目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당부한
다_.68) 그는 전대의 성리학자들이 질만을 숭상하여 국가가 쇠락하고, 교
육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_. 그가 교육의 개혁
을 법제와 전장의 개선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인식의 소산
이었다_. 그는 명백하게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에 적합한 성인상聖人
64_) 󰡔孟子要義󰡕, 「盡心」_(󰡔與全󰡕 2集, 6卷_)_. “仁義禮智, 本以行事得名_.”
65_) 󰡔論語古今註󰡕, 「雍也 下」_(󰡔與全󰡕 2集, 9卷_)_.
66_) 󰡔論語古今註󰡕, 「雍也 下」_(󰡔與全󰡕 2集, 9卷_)_.
67_) 󰡔다산시문집󰡕, 권20, 「上仲氏」_.
68_) 󰡔다산시문집󰡕, 권18, 「家誡」_.
62_ 다산학 18호
像을 유교적 전통 속에서 새롭게 창출하고자 하였다_. 우리는 전대의 성
리학에서의 성인이 심학적 모형이라고 한다면, 다산의 성인관은 행사行
事적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_.
Ⅳ. 상제上帝와 성인, 신독愼獨의 공부론
다산은 둔세잠遯世箴에서 그가 경복하고 따르는 두 대상을 거론하고
있다_. 성인과 천天이다_. 여기서 천은 자연천_[蒼蒼有形之天_]이 아니라, 영
靈이 깃든 인격적인 천_[靈明主宰之天_]을 의미하는 것이 명백하다_. 즉 상
제가 주재하는 천이다_. 성인과 상제는 다산의 삶을 이끄는 두 가지 근
원적인 힘이며, 교육의 내용과 목표를 결정하는 두 기둥이다_.
천 년 위의 사람과 벗하려면 尙友千載
오직 앞서 가신 성인뿐이다 曰惟前聖
오직 성인만을 믿으며 惟聖是信
오직 하늘만을 공경하라 惟天是敬
다산이 공경하는 상제의 의미는 원시유가에서의 상제와 어떤 차이점
을 지니고 있을까_? 또한 그가 말하는 상제는 퇴계를 비롯한 성리학자
들의 상제관과는 어떻게 구별되는가_?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선 다산의
상제론을 잠시 일별할 필요성이 있다_. 다산에 따르면 상제는 다른 신들
과는 구별되는 유일무이한 신이다_. 그는, “호천상제는 유일무이한 것인
데, 정현 등이 오제五帝의 사설을 끌어들여”69)상제에 대한 해석에 혼란
을 불러왔다고 보았다_.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영靈은 모두 상제의
69_) 󰡔春秋考徵󰡕 1_(󰡔與全󰡕 2集, 27卷_)_. “鏞案昊天上帝_. 唯一無二_. 鄭玄襲亡秦五帝之邪說_. 信緯書感
生之妖言_. 乃以啓蟄之郊_. 歸之於蒼帝_. 別剏冬至之祭_. 以祀上帝_. 而自立祝號曰天皇大帝_. 不
亦悖乎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63
신좌臣佐들일 뿐이다_. 천신天神도 상제의 명을 받아 위쪽을 관장하고
다스리는 존재일 뿐이다_.70) 다산에 따르면 상제는 “하늘•땅•귀신•사람
의 바깥에서 하늘•땅•사람•만물의 등속을 ‘조화造化’하고 재제宰制하
고 안양安養하는 존재이다_.71) 이렇게 __________인격적 유일신인 상제를 인간은 리
가 아닌 영성靈性을 통해 서로 만나야 한다고 보았다_.
그는 아동들에게 생활 속에서 항상 상제의 현존을 느낄 것을 당부하
면서 주자의 경재잠敬齋箴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_.
하늘의 보심이 심히도 가까우니 天監孔邇
희롱과 권태를 부리지 말고 無然戲怠
급하게 벌을 내리지는 않지마는 郵不降罰
그래도 너그럽게 네 허물을 고쳐야지 尙饒汝改
옥루는 깊은 곳이나 밝고도 삼엄하니 屋漏昭森
아무도 보지 않는다 말하지 말고 毋曰弗睹
벌벌 떨며 두려워하기를 栗栗瞿瞿
직접 그 노여움을 받는 듯이 할지어다 如承厥怒72)
그는 이 잠의 발문에서, 몸을 공경하는 요점은 처음에는 주일_[主_]에
있고 마지막의 하늘을 공경하는 실상은 신독愼獨에 있다는 사실을 강
조하면서, 사실상 주자의 경 공부법과 커다란 차이가 없음을 이야기한
다_. 그러나 다산의 상제론을 눈여겨보면, 기존의 여러 상제론과는 구별
되는 전혀 새로운 형식을 보여 준다_. 그는 조선조에 널리 퍼져 있던 정
현鄭玄류의 감응설이나 도가류의 상제론, 혹은 기화우주관이나 성리학
70_) 졸고, 「다산에 있어서의 천과 상제」, 다산학 9호, 다산학술문화재단, 2006, 23쪽_.
71_) 󰡔春秋考徵󰡕 4_(󰡔與全󰡕 2集, 36卷_)_.“上帝者何_. 是於天地神人之外_. 造化天地神人萬物之類_. 而宰
制安養之者也_.”
72_) 󰡔다산시문집󰡕, 권12 _(箴_), 敬己齋箴 竝引_.
64_ 다산학 18호
에서의 상제론 등을 거부한다_. 우선 그의 신독의 공부론과 주자의 경
공부론에서 나타나는 ‘상제’의 의미는 매우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우리
는 최립崔岦_(1539_~1612_)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_.
예컨대 “위대한 상제께서 아래 백성들에게 치우침이 없이 명을 내려 주
셨다_[惟皇上帝 降衷于下民_]_.”라는 글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상제上帝라
는 것은 바로 주재자主宰者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할 것이다_. 그렇다면 하
늘이 주재하는 것이 이 리 외에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겠는가_. 또 “하늘
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_.” 하였고, “도道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
다_.”고 하였는데, 이것도 모두 ‘천’을 가지고 ‘리’의 주재로 삼은 것이니, 그
렇다면 리즉천理則天이요, 천즉리天則理라고 할 수 있다_. …… 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으니, 진정 공간空間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면 어디에
나 이 ‘리’가 깃들어 있다고 할 것이다_. 따라서 우리의 마음속에서만 이 ‘리’
를 얻어 어둡게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육신의 밖이나 방구석 어디이고
간에 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_. 전현前賢이 뜻을 독실하게 지
니고서 “혼자 걸을 때에도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고, 혼자 잘 때에
도 이부자리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_[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_]_.”고 한 것도 바
로 이 때문이라고 하겠다_. 이를 닦아 나가는 길은 바로 네 가지 절목節目을
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니, 제생은 부디 노력하도록 하라_.73)
원시유가에서 상제가 인격신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면, 성리학에서
의 상제는 선험적 원리로서의 리일 뿐이다_. 그런데 이 리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해의 대상이기에 파악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가진다_. 리
73_) 󰡔簡易文集󰡕, 卷一, 評, 評諸生說理書李純馨柳筕箮. “如曰惟皇上帝_. 降衷于下民_. 上帝者_. 主宰
之名_. 天之主宰_. 非理而何_. 曰天命之謂性_. 曰道之大原出於天_. 復皆以天主理_. 然則理卽天也_.
天卽理也_(中略_)理盈於天地之間_. 苟虛處則皆是_. 非獨我腔子裏得之以爲不昧者_. 雖我軀殼之
外_. 房闥之內_. 無不在也_. 前修刻志以獨行不愧影_. 獨寢不愧衾者_. 爲是故也 修乎此則出乎此四
達耳矣_. 勉乎哉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65
는 천지간 어디에나 있고, 우리 육신의 밖이나 방구석 어디에나 존재하
나 외경과 두려움의 감성적 대상으로 삼기에는 비실체적이다_. 아무런
운동성도 없고, 능동성도 없는 리인 상제에 대해 두려움과 외경감을 느
낀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당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_. 최립은 리인 상
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존양存養•성찰省察•치지致知•역행力行의 네 가
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_. 그러나 상제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접근
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 때문에 최립 자신도 제자들에게
“스스로 직접 몸으로 체득하여 깨닫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을 당부한
다_. 후일 순암도 상제와 태극은 사실상 동일한 것이며, 리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_.74) 순암의 상제론은 서학의 상제론에 대한 대항논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앞서의 성리학자들의 견해와는 구별된다_. 그러
나 그는 상제를 인격신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산의 태도와 구별된다_.
반면 성호 이익의 경우 상제에 대한 인식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남을
볼 수 있다_. 그는 우선 천과 상제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상제를 인격적
인 존재로 다시 자리매김한다_. 그는, 후직과 문왕의 사례를 분석하면
서, “하늘은 자연에 속하므로 교외에서 제사를 지내고, 상제는 인격적
_[帝以人_]인 존재이므로 사당에서 제사 지낸다”고 하여 상제의 인격신적
인 의미를 드러낸다_. 또한 천과 상제의 관계에 대해 “하늘은 배나 수레
와 같으며 상제는 배를 저으며 수레를 끄는 주재자과 같은 존재이다_.”75)
라고 상제의 주재자로서의 권능을 승인한다_. 한 걸음 나아가서 그는 상
제를 충신忠信과 독경篤敬과 같은 도덕적 행위에 대한 주재적 권능까지
부여한다_. 즉, “충신과 독경이란, 성性 가운데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74_) 󰡔順庵先生文集󰡕, 第 28卷, 「順庵先生行狀」.
75_) 󰡔성호사설󰡕, 권1, 「天地門」, 配天配帝_.
66_ 다산학 18호
것이다_. 성은 하늘에서 나오고 하늘의 주재主宰는 상제上帝가 된다_.”는
것이다_. 비유한다면 신하가 임금의 명을 받아 일을 행할 때, 생각마다
임금을 잊지 않아야만 행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_.76)
그러나 성호는 상제가 주재하는 이 세계가 어떻게 착한 사람은 고통
을 받고, 악한 사람이 오히려 더 복록을 받는 전도된 역사가 되풀이되
는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_. 상제와 성인 간에 일어나는 역할의 불안
정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_.77) 그는 상제는, 비록 주재의 권능은 있
으나 생성生成하기를 좋아하는 이치가 있을 뿐_[好生之理_], 실제적인 복
선화음福善禍淫의 일은 그를 보좌하는 성인들의 몫이라는 것이다_. 그는
우선, “하늘이 늙어서 신령스럽지 않다”는 것은 자못 우물 속의 개구리
와 같은 편협된 소견일 뿐이라고 일갈한다_. 그는 성인이라도 그 수數가
낮고 높음이 있어서 이들이 “상제의 좌우에 올라 하늘과 함께 복을 짓
기도 하고 위엄을 짓기도 하여 인간 세계를 경동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야 하나, 후세 사람으로선 상제의 좌우에 오르고 내리는 이가 없게 된
것이 혼란한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_.
다산은 상제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경계하였
다_. 그는 조선조에서 나타나는 정현鄭玄이나 왕필王弼 류의 과도한 정치
적 해석이나 도가적 해석을 거부하였다_. 조선조에서는 상제와 왕권의
밀접한 관련성을 강조하는 논설들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_. 예를 들
어 보자_.
가_. 신이 듣건대, 하늘과 사람이 서로 관계하는 것이 매우 경외롭다고
하였습니다_. 그것은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실책을 범하면, 천변天變이 위에
76_) 󰡔성호사설󰡕, 권14, 「人事門」, 心體_.
77_) 󰡔성호사설󰡕, 권27, 「經史門」, 神理在上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67
서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_. …… 하늘에 계시는 선왕의 혼령이 어찌 상
제의 좌우에 오르내리면서 그 원통함을 호소하여 재앙을 내리지 않겠습니
까_. 천둥이 진동하는 것은 상제의 노기怒氣이며, 태묘太廟의 나무에 벼락을
때린 것은 선왕의 성낸 모습입니다_. 상제와 선왕이 전하에게 경고하여 훌
륭한 임금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 귀에다 대고 들려주고 직접 대면하여 일
러 준 것처럼 할 뿐만이 아닙니다_. 만약 서둘러 고쳐서 상제와 선왕의 노
여움을 풀어 드리지 않는다면 재이災異는 없을 때가 없고 나라도 나라답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_.78) _(동계 정온_)
나_. 신은 상제上帝의 마음이 우리에게서 어떠한 일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에 이러한 괴이의 형상을 나타낸 것인지 알 수 없고, 또한 오늘날 재이災異
가 어떠한 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_. 그러나 신은 옛 서
적書籍을 살펴보건대, 이러한 재이가 임금의 도가 강하지 못했거나, 간사
한 소인이 조정에 있거나, 후비后妃의 친척이 권병權柄을 독단하거나, 큰 병
난이 일어나려고 할 때에 발생하였는데, 신은 이 몇 가지 일들이 오늘날에
꼭 일어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_.79) _(백호 윤휴_)
다_. 근래에 국운이 불행하여 저주詛呪가 안에서 일어나고 역절逆節이 밖
에서 싹텄습니다_. 그러나 다행히도 상제上帝께서 보우하시어 원흉은 주륙
되고 위협에 못 이겨 추종한 자는 사면을 받는 등, 음기陰氣는 걷히고 양기
陽氣가 신장되어 지극한 인仁이 흘러 퍼지게 되었으므로 국내의 민생들이
모두 성덕聖德을 칭송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전하께서 전화위복을 하신
78_) 󰡔桐溪先生文集󰡕, 卷三 _<求言疏_> 庚午_. “臣聞天人相與之際_. 甚可畏也_. 人事失於下_. 則天變應
於上_(中略_)先王在天之靈_. 豈不陟降於上帝之左右_. 訴其冤而降之災乎_. 夫雷震者_. 上帝之怒氣
也_. 震太廟之木者_. 先王之怒色也_. 帝與先王所以示警於殿下_. 以爲玉成之地者_. 不啻若耳提而
面命矣_. 若不急急改圖_. 求以解夫帝與先王之譴怒_. 則災異無時無而國不得爲國矣_.”
79_) 󰡔白湖全書󰡕, 권10, 「疏箚」 謝衣帶辭月廩因陳所懷疏_.
68_ 다산학 18호
거룩한 때라 하겠습니다_.80) _(우암 송시열_)
이 인용문에서는 모두 송대의 동중서董仲舒 등에 의해 확립된 천견론
天譴論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_. 천인상관天人相關의 사상에 근거
해 ‘천재天災’는 ‘인사人事’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 천견론의 요체이다_.81)
정치의 영역에서 임금은 하늘을 본받거나_[法天_] 형상象天하여 그 뜻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_. 물론, 조선의 국왕이 과연 천
제天帝의 대한 교사례의 설행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조선사회
에서 예민한 국가적 사안이었다_. 그 문제를 둘러싸고 선초에는 지속적
인 논쟁이 제기되었고, 세조 이후 이러한 천제 의식은 사실상 소멸되었
다_. 성종조에도 가뭄에 대우제大雩祭 행사를 치르면서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 그쳤고,82) 차츰 상제는 도교의 제사 대상으로 정착되고 있
었다_. 조선에서 천天의 의미는, 황제권과의 마찰 때문에, 독자적인 해석
을 거치치 못하고 왕실 내부의 안녕을 비는 도교적인 기복의 대상으로
한정되고 있었다_.83) 앞의 예시문에서도 모두 천변天變•재이災異•역절逆
節 등의 국가적 혼란 상태가 왕과 상제 사이의 불통이나 불화에 기인된
것으로 보고, 상제의 보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_. 이들 인물들
은 당시의 불안정한 사회상황이나 정치 상황이 모두 상제와 왕권과의
불화나 불통에서 기인된 것으로 해석하면서 왕권에 대한 견제를 시도
하고 있다_.84) 그러나 다산은 우주인간 동형론의 모태가 되는 이러한 ‘기
80_) 󰡔宋子大全󰡕, 卷七, 疏, 壬辰二月_. “比者_. 國運不幸_. 詛呪起於內_. 逆節萌於外_. 幸而上帝臨佑_.
元惡就戮_. 而脅從在宥_. 陰慘陽舒_. 至仁流布_. 宇內含生_. 咸頌聖德_. 此誠殿下因禍膺福之盛時
也_.”
81_) 小島毅_(신현승 역_), 󰡔송학의 형성과 전개󰡕, 논형, 2004, 23_~38쪽_.
82_) 󰡔朝鮮王朝實錄󰡕, 成宗 卷143, 13年 7月 17日 _(甲申_)_.
83_) 졸고, 앞의 논문_.
84_) 다만 윤휴의 경우, “상제上帝가 항상 위에서 보고 계시고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
기 때문에 첫 번째도 상제요 두 번째도 상제였으며, 일 하나만 해도 상제가 명하신 것으로 알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69
화우주관’적인 천관을 거부한다_. 그는 아무런 영靈도 없고 정情도 없는
물리적인 하늘은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_. 아무런 감정도 없고
아무런 영혼도 없이 다만 기로 인해 생성된 덩어리들일 따름인 천지나
일월성신이나 산천초목은 인간이 경배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_. 그는 자
연현상의 변화를 인간의 도덕률과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를 거부한다_.
다산이 상제에 관한 기존의 다양한 학설들을 논파해 가면서 끝까지
확보하고자 한 것은 초월적인 영명성을 지닌 종교적 대상으로서의 ‘천’
이었다_. 다산은 그 작업을 교사례에 대한 치밀한 경학 해석을 통하여,
천제天祭 의식을 둘러싸고 과도하게 표출되었던 기왕의 정치적인 해석
이나 심학적 해석의 폐해를 걷어내고자 하였다_.85) 다산은 인간이 감독
자로서의 상제와 상호 교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려워하고
삼가는 ‘신독愼獨’의 수양공부가 요청된다고 보았다_. 언제나 삼가고 두
려워하는 정감 속에서 그는 영명한 상제의 현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다_.86) 천이 만물의 조화자로서의 권능을 회복하게 위해서는, 인간은 언
제나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초월적 영성靈性을 섬기
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보았다_.87) 그는, “계신공구하면서 상제를 소사
하면 인仁을 행할 수 있지만 태극을 헛되이 높여 이를 천으로 여기면 인
을 행할 수 없다_. 사천으로 돌아갈 뿐이다_.”88)라고 갈파한다_. 리를 매개
았고 불선을 하려다가도 상제가 금하는 것이라 여겨 하지 않았다_.”라고 하여 도덕성에 관한
상제의 감독자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_.
85_) 졸고, 앞의 논문_.
86_) 󰡔中庸自箴󰡕_(󰡔與全󰡕 2集, 3卷_)_. “夜行山林者_. 不期懼而自懼_. 知其有虎豹也_. 君子處暗室之中_.
戰戰栗栗_. 不敢爲惡_. 知其有上帝臨女也_. 今以命性道敎_. 悉歸之於一理_. 則理本無知_. 亦無威
能_. 何所戒而愼之_. 何所恐而懼之乎_.”
87_) 󰡔心經密驗󰡕_(󰡔與全󰡕 2集, 2卷_)_. “今人欲聖而不能者 厥有三端 一認天爲理 一認仁爲生物之理 一
認庸爲平常 若愼獨以事天 强恕以求仁 又能恒久而不息 斯聖人矣_.”
88_) 󰡔詩文集󰡕, 권16, 「自撰墓誌銘_(集中本_)」_. “戒愼恐懼 昭事上帝 則可以爲仁 虛尊太極 以理爲天
則不可以爲仁 歸事天而已_.”
70_ 다산학 18호
로 한 천과 인간의 교섭은 추상화의 위험성을 면치 못할 것임을 경계한
것이다_.
그러면 다산의 신독의 공부론이 지닌 교육사적 의미는 어디에서 찾
을 수 있을까_? 우선 ‘상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덕의 존재근원을 새롭
게 확인받을 수 있는 이론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_. 그는
앞에서 본 바대로, “상제를 소사하면 인을 행할 수 있지만 태극을 헛되
이 높여 이를 천으로 여기면 인을 행할 수 없다”고 하여 인간과 우주간
의 새로운 상관적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_. 또한 그의 “신독으로 하
늘을 섬기고 힘껏 서恕를 행하여 인을 구하면서 또한 오래토록 쉬지 않
는다면 이것이 성인이다”라는 언명은 명백하게 조선조 교육에 새로운
테제를 제공하였다_. 즉 가장 이상적인 교육이란 상제를 향한 신독의 공
부를 통하여, 즉 상제와 인간이 리가 아닌 영성靈性을 통해 서로 만나
서 그 힘으로 타자를 향한 사랑의 실현을 지속적으로 발현하는 삶의
과정이라는 사실이다_.
그러나 다산의 이러한 신독의 공부론에는 몇 가지 논리적 딜레마가
있다_. 우선 신독의 주체인 개별 인간의 도덕적 의지가 그렇게 확고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_. 다산은 성인에게도 이목구비와 육신의 기본 욕구
가 있고, 악으로 흐르기 쉬운 인욕도 있다고 보았다_. 이러한 불안정한
인간에게 가장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공부법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 성
리학의 공부론이다_. 그러나 다산의 ‘신독’ 개념에는 성리학에서의 수행
법과 공부론에서와 같은 정교한 논리체계가 결여되어 있다_. 또한 그의
‘신독’의 공부론은 필연적으로 그의 경세론과 결합하여야 한다_. 즉 신
독의 대상으로서의 상제와 국가를 경영하는 군왕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패러다임이 요청된다_. 다산은 종래 천견론 등으로 결합
되어 있던 상제와 군왕과의 연결고리를 해체하는 것에는 성공하였으나,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71
그 두 축을 연결하는 그의 독자적인 논리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계점이 있다_.
Ⅴ. 결어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다산 사상의 특질을 구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사상적 연원이나 모태를 확인하는 것에 상당한 공력을 들여왔다_. 그
결과 학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_. 멀리
원시 고학에서부터, 가까이에서는 근기 남인의 서학까지 다양한 층위
에서 그 해답을 내놓고 있다_. 그러나 본고에서 성인론과 상제론을 중심
으로 살펴본 바로는 그의 공부론은 한강과 순암과 같은 남인계열 보다
는 오히려 소론인 서계의 입장과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_. 단적으
로 말해, 그의 교육론은 학통이나 당색과 같은 단선적인 구도에서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_. 이는 다산 자신이 당시에 확보할 수 있는 모든 학문적
정보들, 예컨대 서학이나 청대의 고증학, 혹은 일본의 고학, 양명학이나
불교학 등을 종합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있기에 성리학에 매몰된 학설
속에서 그의 사상적 연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밖
에 없다_.
이에 본고에서는 그가 정주학적 세계를 이탈하면서 과연 어떠한 새
로운 전망과 교육적 구상을 지니고 있었을까를 살펴보고자 하였다_. 그
가 구상한 새로운 교육적 목표와 이념의 빛깔이 어떤 것이었나를 그의
성인론과 상제론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였다_. 이에 성리학에서의 성인
은 심학적 존재라고 한다면, 다산의 성인관은 행사行事적 모형에 가깝
다는 사실과, 인격적 유일신인 상제를 인간은 리가 아닌 영성靈性을 통
해 서로 만나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알 수 있었다_. 그의 이러한 ‘행사적
72_ 다산학 18호
모형’이 󰡔경세유표󰡕에서 보이는 교육개혁론의 디딤돌이 되었고, 󰡔아학
편󰡕 등과 같은 저술 작업의 이론적 토대로 기능하였음은 명백하다_. 그
러나 그가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효제孝悌’의 윤리는 당대 성리학
자들의 ‘효제’ 담론과 과연 어떤 질적인 차이를 드러내는지 명확하지 않
다_. 이러한 점이 그의 교육론이 지닌 불안정한 ‘근대성’의 한 징표가 아
닌가 한다_.
_(논문투고일 2011년 4월 12일, 심사확정일 4월 19일, 게재확정일 4월 19일_)
다산 교육론의 두 과녁 ; 성인聖人과 상제上帝_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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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한국에서의 하늘을 묻다 < K스피릿 2203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한국에서의 하늘을 묻다 < 문화 < 기사본문 - K스피릿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한국에서의 하늘을 묻다
K스피릿
입력 2022.03.02 
기자명정유철 기자

[신간] 조성환 지음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소나무 간)


우리의 하늘에 밝게 떠 있는 달은 한때 한국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태백이 놀던 달’이라고 했다. 우리가 달을 찾은 것은 윤극영의 창작동요 ‘반달’이 나온 후이다. 오래 전 한 아동문학가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럼 ‘하늘(天)’은 어떤가?

조성환 지음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소나무, 2022)은 한국의 ‘하늘’을 다룬다.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시론이다.

저자는 “종래의 한국사상사 서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서술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고 본다. 그 원인의 하나로 학자들의 시각이 중국이나 일본학계가 만들어놓은 기존의 틀이나 문제의식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이 컸기 때문으로, 또 하나로 한국학계 내부에 거시적 시각의 사상사 연구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들었다.

이런 원인들이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한국철학’이라는 범주가 ‘동양철학’ 또는 ‘중국철학’이라는 범주에 가려졌고, 그래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다고 본다. 중국의 ‘천(天)’과 한국의 ‘하늘’이 어떻게 다른지, 또는 중국철학의 ‘허심(虛心)과 한국철학의 ’실심(實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와 같이, 한중일 삼국 내의 비교사상 또는 비교철학적 작업은 소홀히 해왔다는 것이다. 이를 좀더 깊이 보면 이렇다.

조성환 지음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입각표지. [이미지=소나무 제공]

“일반적으로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전부 중국철학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의 불교와 조선시대의 유교는 전부 중국에서 수용된 것이다. 퇴계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표현도 전부 중국의 주자(朱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치부해버리고 말면 ‘사상사‘를 서술할 수 없게 된다. 사상사는 철학사나 종교사라는 학과적 경계의 밑바닥에까지 내려가는 작업을 요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개념을 써도 함의가 같을 수 없다. 유학(儒學)의 천(天)과 동학의 천(天)이 같을 수 없고, 주자의 리(理)와 퇴계의 리(理)가 동일할 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한국사상사’ 서술의 관건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사상사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을 비교하는 ‘한중비교철학’이라는 방법을 취하면 종래에 한국철학사나 중국철학사에서 당연시되어 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이 책에서 말하는 ‘하늘철학’이 그러한 예이다.

“종래에 경천사상 또는 하늘철학이라고 하면 중국철학의 전유물로 생각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한반도에서도 뿌리 깊었고, 중국 유교의 전래를 통해 더욱 심화되고 강화되었다. 심지어는 ‘성속(聖俗)의 분리’가 진행되었다고 하는 근대에서조차도 하늘은 건재하였다. 아니 오히려 부활된 느낌이다. 그것이 바로 인내천(人乃天)을 종지로 하는 동학·천도교의 출현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천(天) 개념이 사어화(死語化)되었다.”

이 현상을 저자는 원래 한반도에서는 하늘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고, 일본은 원래부터 천(天)의 관념이 희박했기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주장들을 ‘퇴계-다산-동학’의 문헌들을 통해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저자는 ‘‘퇴계-다산-동학’에서는 일관되게 하늘에 대한 외경[畏天]과 섬김[事天]의 태도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퇴계에서 주자학의 언설로, 다산에서는 천주학의 수용으로, 동학에서는 자생학의 형태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전통은 그 뿌리를 추적해가면 고대 한반도의 제천행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대 한반도인들은 황제나 임금이 아닌데도 ‘누구나’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였다. 그것도 개별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개인적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거행하였다. 이를 종교학자 정진홍은 ‘하늘-경험’이라 불렀다.

저자는 “고대 한국의 하늘축제에서 보이는 공동체적 성격을 ‘하늘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하늘은 ‘동방’이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묶어주는 상징적인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고대 한국인들은 집단적으로 하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하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늘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건국신화에서는 하늘을 시조(始祖)의 고향으로 생각했고, 하늘과의 교감과 협동이 중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하늘사랑이 외래문화의 수용과 더불어 쇠퇴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왕권과 이념의 바탕으로서의 하늘의 모습이 두드러지고, 그 결과 팔관회에서는 비록 하늘-경험과 불교적인 것의 종합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된 것은 아니었고, 단지 비가 오기를 바라는 비정기적인 제천의례를 하는 정도였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에서는 지배층의 경우 한국인의 하늘 경험은 급격하게 쇠퇴한다.

이 하늘 경험이 동학으로 다시 나타났다. 동학은 자체 사상체계를 ‘하늘’을 중심으로 전개했다.

동학은 조선성리학이 그 효력을 다해갈 무렵인 조선말기에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주체적인 사상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자신의 사상을 유도(儒道)나 불도(佛道)와 대비하여 ‘천도(天道)’라 명명하고,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한국)의 세계관(道)은 생명과 평등 그리고 존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우주적 생명력인 ‘하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동등하게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늘 경험’을 “하늘을 그리다”로 명명하였다. 여기서 ‘그리다’는 ‘그리워하다(思)’와 ‘그리다(描)’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였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교(기독교, 천주교)의 성행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움의 대상은 ‘하늘님’이다. 그래서 저자는 “하늘에 대한 그리움은 자유를 상실한 일제강점기에 극에 달하였고, 그것이 종교적으로는 동학(하ᄂᆞᆯ) 천도교(한울), 대종교(한얼) 등으로 분출되었으며, 문학적으로는 소월이나 만해의 ‘님의 문학’으로 표현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의 기억속에 희미해진, 그러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고대 한국인들의 ‘하늘경험’을 하나씩 되살려 한국의 ‘하늘섬김전통’을 ‘천학(天學)’이라는 범주로 한국사상사를 기술하는 데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를 확인하며 중국과 한국의 천관(天觀)을 비교, 고찰하여 한국사상과 중국사상의 차이를 그러낸다.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한국에서의 하늘”이라는 시각으로 ‘하늘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하늘을 찾아주려고 한다.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왜 신앙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2

NO.1 경제포털 :: 매일경제

"왜 신앙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2

톨스토이의 작품을 섭렵한 지 얼마 안 돼서, 역시 러시아 출신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알게 됐다. 러시아 작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뛰어났던 이들은 역사상 같은 시기에 생존
했고 활동했다. 둘은 무릎을 쳐가며 상대방의 작품을 탐독하면서도 한 번도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다. 마치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서로의 관심을 끌고 때로는 강렬한 영향을 주면서 똑같은
도시들을 순회했지만, 그들의 공전 궤도는 결코 겹치는 법이 없었다. 아마 톨스토이와 도스
토예프스키가 모든 면에서 서로 상반되는 작가였기 때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톨스토이가 밝고 환한 소설들을 썼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관조적이고 내면적인 작품을 내놓
았다. 톨스토이가 자기 수양을 위해서 수도사적인 일과를 지켰던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애정 행각과 술과 도박으로 건강과 재산을 탕진하기를 되풀이했다. 톨스토이는 작업 일정을
지키는 게 몸에 밴 사람이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엄청난 속도로 소설을 써댔다. 톨스토이의 집에는 수천을 헤아리는 순례자들이 지혜를 구
하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언제나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가서 지식
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미숙아였다. 재산을 얼마나 형편없이 관리했던지, 가끔은
완성된 소설을 출판사에 보내고 싶어도 우편 요금을 치를 돈이 없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간질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라, 간혹 극심한 발작이 일어나면 그후로 며칠 동안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보내곤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삶 속에서는 허다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예술 분야에서만큼은 놀라운
위업을 이루었다. 그의 소설은 톨스토이에 필적하는 설득력을 갖춘 채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인 은혜와 용서를 전달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가 드러낸 처절한 실패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생애 초기에 실제로 부활을 경험했다. 그는 짜르 니콜라이 1세가 반역
단체로 규정한 조직에 소속되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니콜라이 1세는 구속된 청년들의
죄상이 대단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일단 말뿐인 이들 급진주의자들을 모의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판결을 기다리며 여덟 달째 감옥에 갇혀 있던 어느날,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
일행은 감옥에서 끌려나와 광장으로 가는 마차에 태워졌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지독
하게 추운 아침이었다. 광장에는 사형을 집행할 소총 분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집행관
들이 죄인들의 모자를 벗기고 옷도 하얀 색 수의로 갈아 입혔으며 손을 뒤로 돌려 단단히
결박했다. 그들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구경꾼들 앞에 일렬로 섰다. 때마침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신부가 성경 말씀을 낭독하고 십자가를 내밀어서 죄인들이 마지막
입맞춤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어서 먼저 사형이 집행될 죄수 세 명이 불려나가 기둥에
묶였다. 이윽고 "사격 준비!"라는 구령이 떨어지고 북소리가 우르르 울려퍼졌다. 병사들은
총을 어깨에 대고 방아쇠 당길 준비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마지막 순간, 전령이 미리
준비해둔 짜르의 조서를 들고 광장으로 바람처럼 달려들어왔다. 짜르가 자비를 베풀어서
형량을 사형에서 중노역 형으로 경감한다는 조서였다. 귀족 출신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칼을 들어 머리를 두드렸다. 수치스러움의 표시였다. 어떤 죄수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고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죽는 날까지 당시의 경험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의 깊은 구덩
이를 똑똑히 목격했으며, 그때부터 그에게 삶이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되었다. 감옥으로 돌아온 도스토예프스키는 생명을 다시 얻은 순수한 기쁨을 노래하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자신의 형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지금처럼 영적인 생명력이 풍성하고
건강하게 용솟음쳤던 적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인생은 변화될 것입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기념물로 간직하기 위해 수의를 잘
개켜 넣어두었다.

이제 도스토예프스키 앞에는 시베리아 이송을 포함한 여러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된 마차 여행을 견뎌내야 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로 곳곳에 동상을 입은 상태
였다. 시베리아에 도착하자, 죄수들을 마지막으로 분산 배치하기 전에 시베리아에서 며칠
동안 머물기로 결정한 호송 책임자는 그곳에 있는 여성 3명에게 도스토예프스키 일행을
면회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정치범들의 아내로서 남편 근처에
살겠다는 생각으로 시베리아로 이주한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은 새로 온 죄수를 반겨주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던 터여서 어떻게든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그들 가운데 독일 철학을 공부한 데다가 성경을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경건한 어느
부인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신약 성경을 쥐어주었다. 성경은 감옥에서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었다. 부인은 조그만 목소리로, 성경책을 찬찬히 뒤져보면 10루불짜리 지폐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소명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주셨다고 믿은 그는 유형 생활을 하는
동안 성경을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도스토예프스키의 딸(Aimee)은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는 그 소중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도
빼놓지 않고 연구했습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깊이 묵상했으며 상당 부분은 외우기까지
해서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작품을 쓰든지 성경 말씀이 깊이 스며들도록
했는데, 아마 이것이 아버지의 작품에 힘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중노동을 하면서 4년을 보냈으며 그 뒤로도 5년씩이나 유형생활을 했다.
그렇게 10년 형기를 마칠 즈음에 그는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이 되어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신앙은 시베리아에 처음 도착하던 날 그에게 신약 성경을 건네주었던
부인에게 써보낸 신앙 고백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 "저의 신앙 고백은 대단히 단순합니다.
그리스도보다 아름답고, 심오하며, 사랑이 넘치고, 정당하고, 용맹스럽고, 완전한 분은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가 증거를 들이대며 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나는 진리와 함께 있기보다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약 성경을 전해주었던 여인의 친절함과 아울러, 어느날 간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고 있을 때 쪼르르 달려와서 "불쌍한 아저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이 동전을 드릴 게요!"라고 외치던 어느 꼬마 계집아이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신약 성경과 수의처럼 그때 받은 동전도 기념물로 소중하게 간직했다. 도스토예프
스키는 삶이 주는 진정한 선물을 마음껏 향유했다.

"삶은 선물이다. 삶은 행복이다.
일분에 불과한 시간도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있다.
생명은 어디에나 있다.
생명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존재한다."

"나뭇잎 한 장, 빛 한 줄기까지 모두 사랑하라.
짐승들을 사랑하고, 초목들을 사랑하라.
모든 존재를 낱낱이 다 사랑하라.
모두를 사랑하노라면,
하나하나마다 하나님의 신비를 볼 수 있으리니."

차츰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을 가졌던 톨스토이는 쉽게 분노하고
상처를 입혔던 데 반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범사에 감사하고 원기
왕성하게 살았다는 사실이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촌에서 천박하고 야비한 인간 군상들
속에 섞여 살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을 성경속의 '돌아온 탕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희망... 감옥을 둘러싼 울타리 너머에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묘한 조바심과
열정으로 달뜨게 만드는' 이 희망이야말로 그의 목숨을 부지하게 만드는 진정한 힘이었다.


- <내 영혼의 스승들>(필립 얀시 저, 좋은씨앗)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수 이해 < 뉴스앤조이 2009.07.01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수 이해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수 이해

-정연복이 추천하는 시와 수필
기자명 정연복  승인 2009.07.01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수 이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예수쟁이들보다
     삶의 깊은 진리를 터득한 사람들의 말과 글이
     우리들에게 종교에 대하여 더 깊고 넓은 길을
     보여주는 예는 너무도 많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그는 한때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시베리아의 유형도시 옴스크에서
     4년간 유형생활을 하기도 했다.
     옴스크의 겨울은 영하 40도에서 50도까지 내려갔다.
     작은 새는 날아가다 떨어질 정도로 추웠다.
     그는 등판에 사격용 표시가 된 하얀 헝겊의 죄수복을 입고
     죽거나 형기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풀어주지 않는
     족쇄를 4년 내내 덜거덕거리며 차고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의 문학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세련되고 유능한 신학자가 도달한 것보다도
     훨씬 더 깊고 진실한 예수이해에 그가 도달하고 있음을!
     이것은 그가 성서를 철저히 연구했다거나
     남달리 신앙심이 두터운 데서 온 통찰력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당시의 보통 러시아인들이 지닌 정도의
     성서에 대한 이해와 예수에 대한 상식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가 당시의 어떤 종교가들보다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처절한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작인 [죄와 벌]에서
     무식하고 말도 못하는 창녀 소냐를 통해
     그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민중을 그림으로써,
     공산주의 이전 시대에서 예수를 가장 잘 이해한
     예수의 산 증인이 되었다.
     소냐의 아버지는 비참한 가난 속에서도
     옛날 일만 되씹으며 술주정을 하고,
     후처로 들어온 여자는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옛 생활을 유지하려는 도도하고 혹독한 여자로 등장한다.
     꼼짝없이 앉아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슬그머니 공창(公娼)에 등록하고
     몸 팔아 돈을 몇 푼씩 들고 들어오는 소냐.
     그런 생활 속에서도 한쪽 손엔 성경을 들고 있으면서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소냐.
     그리고 마침내 그 시대 지성인의 모델격인
     라스콜리니코프를 굴복시켰던 그녀.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소냐를 통해
     종교나 법의 척도로는 잴 수 없는
     하층민중 속의 예수의 현존을 말하고 있다.
     그가 이 소설에서 예수의 뜻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남보다 예수를 더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민중의 삶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인간, 특히 민중의 삶을 잘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남달리 잘 안다고 큰소리칠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아픔과 희망에 대해
     더 잘 알고 민감해지려고 애써야 하리라.   

     지성수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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