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2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 혁명 Power vs. Force』 [정영부]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 혁명 Power vs. Force』 : 네이버 블로그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 혁명 Power vs.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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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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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 혁명 Power vs. Force

 

(**) 책소개를 읽고

신체운동학고등입자물리학비선형동역학정신치료협회근육반응시험 등 전문분야의 전문가라는 점을 내세운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제하의 마케팅이 좀 얄팍하지만 대중의 얄팍함에 비추어 볼 때 그럴 수 있다고 본다그들의 말마따나 객관적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온 영적 진실에 과학적이라는 포장을 씌웠기 때문이다그런데 포장지가 너무 후지다호킨스 박사는 우리의 몸이 해로운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즉각 약해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근육테스트법'이라는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우리 몸은 생명을 지지하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그렇지 않은 것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전제하에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하였다나아가서 이 이론을 사회문제해결제품 개발과학 연구의학산업 등 가장 일상적인 실용적 질문들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하여 너무 나갔다는 감이 있다그러나 어쨌든

-사람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위력 덕분에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아무런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한 힘에 지배당한다는 것과

-인간의식에 발전단계가 있고

-근세에 들어 인류의식의 역사적 진화가 대단하다

는 등의 논의는 주목할 만 하다. (191024)

 

(**) 책을 읽고

 

 

 

 

 

 

위력에서 벗어나 힘을 따르라!

 

의식 지도의 창시자 데이비드 호킨스의 첫 저서의식 혁명이 책은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 나를 만나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등 저자의 저작들의 출발이 된 것으로 신체운동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다수십 년에 걸친 연구와 통찰의 열매에 고등입자물리학과 비선형동역학 분야의 혁명적 발견을 제시하는 등 영적 진실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명하고 있다이와 함께 저자는 정치경제문화예술스포츠건강 분야를 아우르는 실제 삶에서 위력과 힘이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지 자세히 보여주며 위력과 힘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참된 힘은 생명을 지지하고 영적인 것과 연결되는 반면위력은 곧 약함을 나타내고 죽음과 연결된다는 것을 강조하며힘과 위력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숨어 있는 결정자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데이비드 호킨스

영적으로 진화한 의식 상태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의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한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저자이며 강사.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한 전문가이자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가이며 강사이다그는 영적으로 진화한 의식 상태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의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연구하였다작가의 연구는 영적 앎의 상태에 대해이해 가능하며 명료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독특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1952년부터 정신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미국 정신치료협회의 종신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의 초기 3부작에서는 보통의 에고 상태에서 에고의 소멸에 이르기까지에 관해 묘사하고 있으며호모 스피리투스는 완결편에 해당한다이 책은 21세기 영적 신인류 '호모 스피리투스'의 비전과 전망인류의 의식 수준이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지금 에고의 해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또한 호모 스프리투스의 특성인 '내재와 초월을 넘어 신성의 빛으로 가득한 깨달음의 나무한한 나'에 이르는 영적 진리문답을 담고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스승으로 불리는 호킨스 박사의 평생에 걸친 작업의 전체적 목적은 의식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인간 경험을 재맥락화하고생명과 존재의 토대이자 계속적 근원인 내재적 신성의 표현들로서의 마음과 영양자에 대한 이해를 통합시키는 것이다그리하여 진화한 영적 신인류인 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의 탄생과 전망에 대한 감동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영적 교사로서 헌신하고 있다호킨스 박사의 모든 저서의 서두와 말미를 장식하는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Gloria in Excelsis! Deo!”이라는 진술은 그 봉헌을 나타낸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의식혁명은 인간의 잠재의식을 연구한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이 책은 저자가 1965년 1월부터 1994년 6월까지의 연구결과를 모아 엮은 것으로 근육반응시험을 통한 내면의 잠재 의식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재력에 대한 개념과 수치화잠재력정치나 스포츠 혹은 예술과 건강과의 관계 등에서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편집자의 말

서문

서론

 

1부 도구

1장 지식의 임계적 발전

2장 역사와 방법론

3장 테스트 결과와 해석

4장 인간 의식의 수준들

5장 의식 수준의 사회적 분포

6장 연구의 새로운 지평

7장 일상적 임계점 분석

8장 힘의 근원

 

2부 힘 대 위력

9장 인간 태도에서 힘의 패턴

10장 정치에서의 힘

11장 시장에서의 힘

12장 힘과 스포츠

13장 사회적 힘과 인간 영

14장 예술 속의 힘

15장 천재와 창조성

16장 성공에서 살아남기

17장 신체적 건강과 힘

18장 건강과 질병 과정

 

3부 의미

19장 의식의 데이터베이스

20장 의식의 진화

21장 순수의식 연구

22장 영적 투쟁

23장 진실의 탐구

24장 결론

 

4부 부록

부록 장별 진실 수준 측정

부록 근육테스트에 관하여

부록 용어 해설

부록 주석

부록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의식 지도'의 창시자 데이비드 호킨스의 첫 저작을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만나다

 

마더 테레사가 상찬한 세계적인 영적 스승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대표작이자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등 이후 저작들의 출발이 된 첫 저서이기도 한 [의식 혁명](원제: Power vs. Force, 초판 1995, 개정판 2002)이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수많은 영적 진실이 설명의 부족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오해받아 온 것을 관찰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를 제시했다. '신체운동학kinesiology'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의식 혁명]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출발점으로써 그 가치를인정받고 있다.

 

호킨스 박사는 이 책을 시작으로

 

-[나의 눈The Eye of I](2001)

-[호모 스피리투스I: Reality and Subjectivity](2003) => 이상이 초기 3부작

-[진실 대 거짓Truth vs. Falshood](2005)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Discovery of the Presence of God](2006)

-[의식 수준을 넘어서Inscending the Levels of Consciousness](2006)

-2009년 최신간이자 화제작인 [치유와 회복Healing and Recovery]

 

등의 저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판미동에서는 [의식 혁명] [호모 스피리투스]와 함께 호킨스 박사의 '초기 3부작'으로 불리는 [나의 눈]과 2009년 최신간이자 화제작인 [치유와 회복Healing and Recovery]을 2012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적 진실을 측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의식 지도

 

우리 삶이 고통에 잠겨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왜 우리는 늘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우리가 종교를 찾고 영성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구분하는 객관적 잣대가 없었고 영적 진실은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왔다호킨스 박사의 연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시당해 온 영적 진실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명했기 때문이다.

 

호킨스 박사는 우리의 몸이 해로운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즉각 약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이후 '근육테스트법'으로 발전한 이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우리 몸은 생명을 지지하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그렇지 않은 것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호킨스 박사는 20년에 걸쳐모든 연령대와 성격 유형을 망라하는 각계각층의 피험자 수천 명에 대한 수백만 건의 테스트를 진행했다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영적 진실의 과학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을 알린 의식 지도였다.

 

인간의 의식 수준을 총망라하다

_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인간 의식 수준

 

이 책의 1부에는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단계별 특성을 담고 있다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측정치로 표현하여그것을 다시 17단계로 나누었다가장 낮은 수준인 수치심(의식 수준 20)으로부터 인간 의식의 정점인 깨달음(700~1,000)까지의 17단계를 중 호킨스 박사는 특히 용기에 해당하는 200 수준을 눈여겨보았다. 200은 생명에 대한 긍정적 영향력과 부정적 영향력을 구별해 주는 임계선으로온전성 및 용기와 결합된 수준을 나타낸다이 수준을 기준으로 그 이하의 모든 태도생각느낌단체실체역사적 인물은 사람을 약하게 한다그 이상으로 측정되는 것은 피험자를 강하게 한다결과만 두고 보자면 200 이하의 수준은 모두 부정적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그렇게 단편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박사는 우리가 흔히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슬픔(의식 수준 70)이나 분노(의식 수준 150)와 같은 수준을 색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가령아무런 의지도동기부여도 없는 절망만 가득한 무감정보다는 슬픔을 드러냄으로써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슬픔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분노에 대해서 역시 역사적으로 사회적 불의와 불공평함에서 발생한 분노로 사회변화가 가능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에너지 수준 20: 수치심

수치심의 수준은 위험하리만큼 죽음에 가깝다죽음은 수치심으로 인해 의식적 자살로서 선택될 수도 있고혹은 삶을 연장하기 위한 조처의 불이행으로 보다 미묘하게 결정될 수도 있다.

 

에너지 수준 50: 무감정(=무기력)

이 수준의 특징은 가난절망희망 없음이다세계와 미래는 황량해 보이고 비애가 삶의 주제다무감정은 무력함의 상태다모든 면에서 결핍되어 있는 무감정의 희생자들은 자원뿐 아니라 이용 가능한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결여되어 있다.

 

에너지 수준 75: 슬픔

이것은 비애상실낙담의 수준이다. (...) 비록 슬픔은 삶의 무덤이지만그래도 이것은 무감정에 비하면 많은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그래서 정신적 외상을 입은 무감정 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가 좋아지리라는 것을 안다일단 울기 시작하면그는 다시 먹을 것이다.

 

에너지 수준 100: 두려움

두려움은 인격의 성장을 제한하고 억압으로 인도한다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억눌린 자는 도움 없이는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그래서 두려워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두려움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나게 해 줄두려움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강한 지도자를 구한다.

 

에너지 수준 150: 분노

비록 분노는 살인과 전쟁으로 인도할 수도 있지만하나의 에너지 수준으로서의 분노는 그 밑에 있는 것들에 비해 죽음에서 훨씬 멀어져 있다분노는 건설적 행위에도 혹은 파괴적 행위에도 이를 수 있다. (...) 분노는 좌절된 욕구에서 비롯되므로분노의 바탕에는 그 밑의 에너지 장이 있다.

 

에너지 수준 175: 자부심(=자존심)

자부심의 그늘은 오만함과 부정이다이런 특징은 성장을 가로막는다자부심 안에서는 중독에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한데왜냐하면 자부심은 감정상의 문제나 성격 결함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부정의 문제 전체가 자부심의 문제다그래서 자부심은 진짜 힘의 획득을 가로막는 육중한 장애물인데진짜 힘은 진정한 위상과 위신으로 자부심을 대체한다.

 

에너지 수준 200: 용기

200 수준에서 처음으로 힘이 나타난다. (...) 용기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는 그리고 삶의 변화와 도전에 대치하려는 자발성을 의미한다. (...) 이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만큼의 에너지를 세상에 돌려준다.

 

의식 지도상에는 우리가 흔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부분이 200 이하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그 한 예가 자부심(의식 수준 175)인데호킨스 박사는 방어적이고 오만한 자부심으로 인해 인간은 상처를 받기 쉽다고 했으며 그것이 변질되어 나타난 극단적 민족주의를 예로 들었다. 200 이상의 중립자발성수용사랑기쁨평화에 이르는 수준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이다이들 수준을 특징으로 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의식 성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 상태를 생명 자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자 한다주로 우리가 영적 스승으로 일컫는 이들이 이들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며깨달음의 단계에 해당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크리슈나붓다처럼 신과 연결된 지고의 존재들이다.

이처럼 인간 연구의 미답 영역이 갖는 범위와 그 지형을 묘사한 의식 지도에 따르면지금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잠재적 지식 분야들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다또한 가장 앞선 이론적 탐구에 적용할 수 있는 만큼이나 사회문제제품 개발과학 연구의학산업 등 가장 일상적인 실용적 질문들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호킨스 박사가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위력은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참된 힘과 위력

 

의식 수준 200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구분해 주는 임계점이라는 점 외에중요한 의의가 있다용기를 나타내는 바로 이 수준은 힘이 부여되는 지점으로우리는 힘으로 인해 삶의 기회에 대응할 수 있고 그러한 기회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위력 덕분에 살아간다고 생각한다실제로는 자신이 아무런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한 힘에 지배당하지만 힘은 노력이 필요 없는 까닭에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오해로 인해 사람들은 의식의 도약을 이루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위력과 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호킨스 박사는 의식 지도를 통해 위력force과 참된 힘power을 구별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다.

이 책의 2부에서 호킨스 박사는 정치경제문화예술스포츠건강 분야를 아우르는 실제 우리 삶에서 위력과 힘이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힘을 발휘할 때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상태로 도약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위력이 작용했을 때는 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위력과 힘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우리 삶에 작용하는 위력과 힘의 영향력을 살펴보면 우리가 왜 위력에서 벗어나 힘을 따라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위력에서 벗어나 힘을 따르라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숨은 결정자힘과 위력

 

호킨스 박사가 예로 든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은 어떨까호킨스 박사는 간디가 대영제국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이긴 것은 그의 위치가 훨씬 더 큰 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간디가 바란 것은 평화(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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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중에서

 

 

인간의 의식 수준 17단계

 

https://blog.naver.com/leoncw/220836274874

 

'깨평기사이포자중용의 파워를 선택하라시간을 시작하기에 앞서의식수준 표를 빈칸으로 주고 각 단계에 들어갈 단어들을 참가자들 스스로 맞춰보도록 합니다그 러고 나서 의식수준 표를 공개하는데함께 정답을 맞춰보면서 많은 분들이 놀랍니다평소에 높은 의식으로 생각해 왔던 단어들이 생각보다 낮은 의식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또 별로 높을 것이라고 생가지 않았던 의식들이 높은 수준에 위치해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설명했듯이인간의 의식수준은 총 17단계로 나뉠 수 있습니다이는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운동 역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수백만 번의 임상실험을 거친 결과 수치로 밝혀낸 과학적이고도 구체적인 의식도표입니다각 단계의 의식수준은 그 수치에 상응하는 밝기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운동역학에 대한 부분은 뒤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의식수준의 각 단계의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지금쯤 눈치가 빠르신 분은 이미 '"깨평기사이포자중용'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셨을 겁니다깨달음평화기쁨사랑 등 파워의 에니지를 발생시키는 긍정적 의식수준의 첫 글자를 딴 것입니다생활 속에서 항상 파워를 선택하라는 의미로 기억하기 쉽도록 만든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의식 수준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갔다한다."는 말처럼 우리의 의식수준은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그러나 그 중에서 도 그 사람이 주로 머무는 의식수준이 있습니다여기서 의식수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주로 머무는 의식의 홈베이스를 말하는 것입니다바로 이 의식수준에 따라 유니넷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나의 의식 수준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지금까지 나는 주로 어떤 의식수준을 쓰면서 살아왔는지 돌아보면서 각 단계를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에너지 수준 20 룩스 수치심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수치심의 수준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자살을 할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는 식의 자세입니다이런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성폭생을 당함으로써 수치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나심하게 모욕을 당해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거나 체면을 잃었을 때의 기억들을 갖고 있습니다.

 

수치심은 노이로제와 질병을 낳습니다수치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수줍어하고 위축되어 있으며 내성적이어서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이들은 굴욕적인 감정을 느끼며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수치심을 준 대상을 제거하고자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정신병적인 범죄나 엽기적인 살인 등 잔인한 방법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수치심에 사로잡힌 어린이들은 동물을 학대하고 자기들끼리도 잔인하게 굴곤합니다이들은 융통성 없는 완벽주의나 과격한 도덕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다른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수치심을 타인에게 전가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수많은 외침을 당해 왔습니다때로는 외세에 굴복하여 임금이 직접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이처럼 민족이 수치심에 노출되면 전체 국민의 의식수준이 낮아지게 됩니다.

 

 

에너지 수준 30 룩스 죄의식

 

죄의식은 자기연민이나 자기학대피해의식 등에서 생깁니다무의식적인 죄의식은 심인성 질병이나 잦은 사고자살 등을 유발하기 쉽습니다죄의식에 가득 찬 사람들은 종교나 사상단체의 선동자들에 의해 조종당하기 쉽습니다. '죄와 구원'을 파는 일부 종교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죄의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경향이 짙습니다.

 

자학증상이 심해지면 공공연한 동물학살로 잔인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의식은 분노를 일으키고살상은 이러한 분노의 표현이 됩니다요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왕따현상은 그 집단의 죄의식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학교 교육에서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마치 죄인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용서를 받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좀더 심한 체벌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상위권에 드는 몇몇 아이를 제외하고는 열등감과 죄의식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입니다이러한 죄의식은 술과 담배폭력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만들어 청소년 범죄를 낳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수준 50 룩스 무기력

 

무기력은 빈곤절망자포자기로 이어집니다아무런 비전이나 희망도 없는 상태로세상과 미래가 황폐해 보입니다심각한 의욕 상실로 인해 외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상황을 타개하려 하지 않습니다부랑자나 노약자들버림받은 아이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자극에도 무감각하며주어진 음식을 삼킬 만한 에너지조차 없는 상태입니다나이든 노인들의 체념상태이기도 하고만성 질병이나 심한 병으로 고생하며 절망하는 환자들의 수준이기도 합니다이 수준은 현실을 마주할 용기조차 갖기 힘든 희망의 포기상태입니다.

 

기업문화가 무기력상태에 빠져 있으면경기가 안 좋아지거나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쉽게 절망하여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너지 수준 75 룩스 슬픔

 

이 상태는 슬픔상실낙담의 수준입니다낙담하여 풀이 죽은 상태로우리는 때때로 이런 경험을하게 됩니다직장을 잃거나 친구가 가족을 잃거나 도박 등으로 건강이나 돈을 잃었을 경우 우리는 이런 감정 상태에 빠집니다.

비탄에 빠진 사람은 만사를 슬픔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이들의 눈에는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도 슬퍼 보이고세상살이도 슬퍼 보입니다잃은 것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으며상실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야말로 슬픔의 가장 큰 폐해입니다하나를 잃어 버려도 마치 전부를 잃어버린 양 상실감을 일반화시키고더 나아가 시각한 우울증과 죽음을 불러오기도 합니다이런 사람은 패배의식에 젖거나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이들은 실패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슬픔은 인생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반면 '무기력'한 상태보다는 한결 많은 에너지를 보여줍니다충격 받은 무기력증 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그것은 회복의 조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일단 울기 시작하면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음식을 먹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죽음의 에너지에서 벗어나 삶의 의욕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너지 수준 100 룩스 두려움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생존본능이기도 한 두려움은 때로 활동이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건강한 반응인 것입니다적에 대한 두려움늙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거절과 배신에 대한 두려움 등은 어느 단계까지는 인간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동기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공포를 기반으로 해서 유지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독재자가 국민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고시장을 독점하려는 언론이나 광고업체들도 불안감을 조성하여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포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이며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공포심은 인간의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습니다일단 공포에 사로잡히면 세상이 온통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공포는 편집증적인 성격으로 진전되며 전염성이 강해 일시에 사회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두려움은 개인의 성장을 제한하고 억압상태를 초래합니다공포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뚫고 일어서야 하겠지만공포심에 휩싸인 사람들에게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절실히 바랍니다두려움을 극복한 것으로 보이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희망하며그 지도자가 자신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기대합니다.

 

 

에너지 수준 125 룩스 욕망

 

욕망의 수준에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발견됩니다특히 경제적인 욕망은 인간행위에 광범위한 동기를 부여해줍니다광고업자들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육감적인 유혹을 합니다욕망은 목표달성과 보상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더높은 직위에 오르고더 큰 권력을 쥐도록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다그칩니다그러나 욕망에 집착하다 보면 인생 자체보다도 욕망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망이란 채우고 채워도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채우고 나면 또 다른 것을 갈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대부분의 백만장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욕망은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에게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도록 만듭니다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취로 가는 출발선 위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바로 이런 이유로 욕망은 더 높은 의식상태로 도약할 수 있는 도약대의 역할을 합니다.

 

 

에너지 수준 150 룩스 분노

 

분노는 파괴적일 수도 있고 건설적일 수도 있습니다분노가 살인이나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불합리한 제도나 관습인간관계들을 개선하는 동력이 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쉽사리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들은 분노를 유발하고그것이 사회구조 전반에 걸친 대변혁을 가져오는 사회운동으로 발전됩니다그러나 분노는 대개 복수심에 근거하고 있기에 흔희 폭발적이고 위험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대개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사소한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고소송을 일삼고폭력을 휘두릅니다분노의 의식에 있는 사람은 분노를 일으킨 대상을 미워하고 공격하게 됩니다.

 

 

에너지 수준 175 룩스 자존심

 

자존심은 한 국가의 군대를 통솔할 만한 충분한 에너지 수준입니다다른 부정적인 의식상태에 비하면 상당히 긍정적인 에너지라 할 수 있습니다자존심은 삶의 행진을 계속할 수 있는 버팀목 구실을 합니다그래서 일반적으로 자존심은 좋은 덕목으로 평가받으며 사회적으로 권장되고 있습니다그러나 자존심은 의식수준의 분기점인 200룩스를 훨씬 밑도는 수준입니다자존심이 방어적이고 약점투성이인 것은자존심이란 외부조건에 의존해서 생기는 것이며 또 그 조건이 없이는 언제라도 낮은 수준의 의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자존심은 특히 비난에 약해 언제든 수치심의 상태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자존심은 분열과 파벌주의를 초래하며그 결과 큰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군대는 지금도 (관념적인애국심이라는 자존심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짓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종교전쟁정치적 테러리즘 등의 광적이고 무서운 역사는 자존심의 대가이고 사회 전체가 치러야 했던 벌이었습니다.

 

자존심에 가득 찬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숨기려 들며그 결과 오만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자존심은 진실한 성장과 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참된 내면의 힘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인 것입니다.

 

 

에너지 수준 200 룩스 용기

 

용기의 수준에서 내면의 참된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용기야말로 인생에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구분하여 주는 분기점입니다이 수준의 사람들은 탐구하고 성취하고 결단을 내리며삶을 자기 발전을 위한 도전의 장으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인생이 흥미롭고도전적이고자극적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용기는 새로운 것을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인생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줍니다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사람들은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두려움과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합니다.

 

용기는 우리들에게 자기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힘을 주며장애물이 나타나더라도 이를 하나의 자극제로 활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도록 도와줍니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자기가 흡수하여 소모하는 에너지만큼 세상에 그 에너지를 되돌려 보냅니다반면낮은 수준의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하여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 수준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을 얻게 됩니다바로 이 수준에서 비로소 생산성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 에너지 수준 250 룩스 중용

 

중용의 수준이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인 것은낮은 수준의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편파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편파적인 태도는 모든 사물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며흑백선악 등 양극단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습니다이에 따라 극단적인 대립을 초래하기 마련이고분령과 반목을 낳게 마련입니다동양무술에서는 유연하지 않은 동작은 큰 약점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구부릴 줄 모르는 완고함은 그만큼 부러지기가 쉽습니다유연성이나 융통성은 중립의 단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중립은 편파적 태도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는 갈증에서도 벗어나 있으며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타인에 대하여 심판자적인 태도를 갖지 않습니다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는 자세로 행위의 결과에 대해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고자기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좌절하거나 분노하는 일도 없습니다.

 

중립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실패했을 경우라도 자기신뢰를 잃지 않습니다그들은 온화하고정서가 안정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충동도 느끼지 않습니다중립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유를 아주 중시하므로그들을 규제하려는 일은 아주 어렵습니다.

 

 

11 에너지 수준 310 룩스 자발성

 

중립의 단계는 직장의 일이 적절하게 굴러가는 수준이지만자발성의 단계는 주어진 과제가 훌륭히 이루어지고 성공의 결실을 맺는 수준입니다이 수준의 사람들은 성장이 빠르고마치 향상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자발성이란 인생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기꺼이 참여하려는 마음입니다.

 

이들은 크게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진실로 친절하게 대합니다기업에서 친절과 서비스 교육을 많이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친절은 자발성 이상의 의식수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하려 하고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밑바닥 일이나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기꺼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합니다이 상태에서는 자존심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모자란 점을 인정하고남으로부터 배우고자 합니다. 어려움 앞에 굴복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시련을 통한 배움을 통해 자기스스로를 성장시키고자 합니다따라서 사회적 경제적 성공이 저절로 따릅니다.

 

 

12 에너 수준 350 룩스 포용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며 누군가를 원망하려는 태도를 보입니다그러나 포용의 상태에서는 자기 자신이 바로 삶의 원천이요창조자임을 자각하게 됩니다자신의 행복이나 불행의 근원이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진정한 주인 의식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책임감이야말로 이 단계의 특징으로인생의 여러 외적인 힘에 대응하면서도 조화롭게 살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당신 안에 답이 있습니다."라는 유답의 원리는 포용 이상의 의식수준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집니다.

 

포용은 무기력과는 다릅니다슬프고 기쁜 인생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세상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억지로 끌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오해나 왜곡 없이 사물을 바라볼 수 있기에 경험의 의미를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포용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문제의 해결에 정열을 쏟습니다어려운 과제나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괴로워하거나 곤혹스러워하지 않습니다눈앞의 목표보다는 항상 궁극적인 목표를 추구합니다대립되는 의견이나 갈등에도 극단주의를 택하지 않으며타인도 자신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평등의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저급한 수준의 사람들이 융통성 없이 경직된 사고에 쉽게 사로잡히는 반면포용의 단계에서는 문제해결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형태의 해답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13 에너지 수준 400 룩스 이성

 

이 상태에 이르면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지성과 이성이 삶의 전면에 떠오르게 됩니다광범위하고 복잡한 자료들을 처리하여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미묘한 관계와 점진적인 변화상징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잘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알게 됩니다이성은 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성의 상태에서는 교육과 지식을 중요시하고 성취의 가장 큰 도구로 이해와 정보를 활용합니다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위대한 지도자대법원 판사데카르트 등의 철학자들이 이 의식상태에 속합니다.

(**) 이렇게 되면 이건 아이큐를 말하는 듯한데지성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지성이라고 하고 그 지성은 에크하르트의 지성개념을 사용하여야 할 것.

 

그러나 이성은 개념과 이론에 탐닉하여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고세상사를 객관적인 관점과 주관적인 관점으로 나누어 파악하려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간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러기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이성만으로 진리에 다가가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모든 철학과 이론들이 저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역설적으로 더 높은 의식세계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요즘 기업에서 지식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그 자체에 매여 버리면 더 큰 직관과 지혜의 힘을 놓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14 에너지 수준 500 룩스 사랑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성적 유혹과 탐닉소유욕 등으로 대변되는 에로티시즘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육체적인 매력이나 소유욕지배욕에로틱한 욕망 등의 배후에는 분노와 의존성이 내포되어 있기 쉽습니다그러기에 이러한 사랑은 속절없이 무너지기가 쉽고한 순간에 질투와 증오로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감정은 흔히 말하는 '강력한 감정의 집중'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500룩스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변함이 없으며영속적인 사랑입니다진정한 사랑은 가슴의 순수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내적인 힘입니다외적인 조건에 좌우되지 않으며자신의 내부에서 근원을 찾기에 오르내림의 파동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고양시켜 주며그 동기의 순수성으로 인해 크나큰 성취를 이루게 해줍니다.

 

사랑은 유전자 속의 무한 잠재능력을 깨우는 뇌내 모르핀을 발생시킵니다이 상태에서는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고 핵심을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이성은 문제를 일일이 분석하여 따져 들어가는 경향이 있지만사랑은 전체를 바라보며 문제를 풀어갑니다.

 

사랑은 신분이나 입장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집니다사랑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있을 수 없기에너와 나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줍니다사랑은 삶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삶을 힘차게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이 수준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15 에너지 수준 540 룩스 기쁨

 

사랑에 조건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내면의 기쁨이 점차 차오르게 됩니다. 이는 외부조건의 변화에서 오는 상대적인 기쁨이 아니라존재하는 매 순간마다 솟구치는 항구적인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영적 치유(Healing)이 일어납니다계속 되는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고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게 됩니다창조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고세상 만물은 서로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이건 낮은 단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능력)

 

이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비로우며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때로 이들은 우리의 눈으로 볼 때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들을 일으키기도 합니다그러나 그것은 이 상태의 에너지 장의 발현이지 결코 어느 한 개인의 힘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어느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익을 위해 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이런 능력은 많이 하면 할수록 증폭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도 합니다.

 

 

사망선고를 받고도 다시 살아남 사람들은 그 경험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그들 대부분은 540~600룩스의 에너지 수준을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16 에너지 수준 600 룩스 평화

 

이 단계는 '초월' '자기실현'으로 표현됩니다진정한 평화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환희심은 모든 것이 하나라는 느낌에서 나옵니다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좋고 나쁨이 함께 합니다그러기에 어떤 특정한 관점이나 지각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진정한 한마음과 하나됨은 이 단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놀라운 영감과 계시를 체험하기도 하고생각이 끊어지면서 마음 속에 절대적인 침묵이 찾아오기도 합니다소위 불후의 대작이라고 불리는 예술작품들은 모두 이 상태에서 탄생합니다그러기에 그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평화와 감동을 얻게 됩니다.

 

이들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시간과 공간이 멈춘 가운데 마치 슬로모션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이들은 세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돌아가고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과 의미로 가득 찬 진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들은 대개 영적 지도자로 추대되거나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여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하기도 합니다강연을 통해서든이들이 보여주는 의식의 세계는 세기를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의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의식을 고양시켜 줍니다.

 

 

17 에너지 수준 700 ~ 1000 룩스 깨달음

 

깨달음의 상태는 영적 완성의 단계로서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세대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에너지 장을 형성합니다. 남과 분리된 ''라는 개체의식이 사라지고우주의식진아신성성통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인간의 몸을 입고 도달할 수 있는 의식의 최고봉인 것입니다.

 

육신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 속에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내 몸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내 몸에는 내 도 포함) 이 단계의 의식은 완전한 하나됨이며더 이상 시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이들에게서는 인류에게 보내는 축복의 에너지가 발산됩니다예수나 부처 등 세상에 알려진 성인들은 모두 이런 상태의 의식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출처:출처:http://www.brainrespiration.co.kr/ 뇌호흡 사이트에서 이종각의브레인~~

 


그래도 난다 — 일본 에즈원커뮤니티(as one community) 방문기 - 사람의 본성에 맞는 사회,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

그래도 난다 — 일본 에즈원커뮤니티(as one community) 방문기 - 사람의 본성에 맞는 사회,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



일본 에즈원커뮤니티(as one community) 방문기 - 사람의 본성에 맞는 사회,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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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다산 소식지 <몸살>에 실린~

사람의 본성에 맞는 사회,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

- 일본 as one community(에즈원 커뮤니티) 방문기


처음부터 관심이 있진 않았다. 1월17일부터 20일까지 3박4일 간 일본으로? 마을공동체 방문? 오 좋다, 재미있겠다, 정도로 생각했다. 전북 장수에 위치한 논실마을학교에서 공동체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분과 다산인권센터가 연이 닿아 운 좋게 나도 함께 하게 된 것인데, 그래서 그곳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야마기시즘’이나 ‘as one community(에즈원 커뮤니티)’나 그 밖의 마을공동체 등등에 대해 알지 못했다.(지금도 잘 아는 건 아니다 ^^;) 하지만 다녀온 이후, 내가 아는만큼, 그리고 내가 느낀만큼, 많은 사람들과 그곳에서의 기억을 나누고 싶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에즈원 커뮤니티를 방문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의 떨림은 그 당시와는 약간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2013년을 멋지게 시작하게 해준 근사한 경험이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규칙이 없는 사회,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는 회사



우리가 방문한 에즈원 커뮤니티는 일본 미에현 스즈카시에 있다. 나고야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이동한 후, 배에서 내린 곳에서부터 3~40분 정도 차로 더 들어가면 스즈카시에 도착할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모임공간이자 우리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연수소>에서 에즈원 커뮤니티의 대략적인 소개를 들었다. ‘야마기시 공동체’라는 마을 공동체를 처음부터 함께 한 몇몇 사람들이 야마기시 공동체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공동체-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그 곳을 나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시 모여 2001년부터 12년째 여러 가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곳이 에즈원 커뮤니티다. 존 레논이 부른 Imagine의 가사 중,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한다.

몇 가지 팜플렛을 보면서 설명을 들었는데, 대체로 이 에즈원 커뮤니티에 깔린 기본적인가치는 이런 것이다.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실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칙도 없고, 상하 관계가 없는 회사인 <에즈원 커뮤니티 컴퍼니>, <엄마손 도시락> 등을 만들어서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사업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연구하며 실천할 수 있는 <사이엔즈 연구소>도 만들어서 실제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하지 않는다”라니, 이 얼마나 꿈같은 혹은 너무나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사실 에즈원 커뮤니티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의심을 한보따리 안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 , ”분노가 없는 게 어떻게 가능해?“, ”고정관념이나 틀이 없어지는 게 자연스러운거야?“ 같은, 기존의 마을공동체를 겉으로 봤을 때 느낀 것들에 대한 의심 비슷한 것들이다. 과연? 정말? 하는. 지금도 모든 질문이 시원하게 풀린 것은 아니지만, 에즈원 커뮤니티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기운이 있었다. 사람을 옭아매는 규칙을 만들지 않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그 기운은 말로 전해지거나 결과물로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더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에즈원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 사람 한 사람” 그 다음은 “슬슬”이다. 조직/회사/사회(더 나아가 국가)를 위해 어떤 사람들의 존재가 묻히거나,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거나,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다 여겨지는 것. 그리고 그런 일이 당연스러운 것.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에즈원 커뮤니티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일, 한 사람 한 사람이 편안한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어떤 조직 또는 사회에서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사회. 그 사회를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살려주고, 자기를 자기답게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를 에즈원 커뮤니티에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슬슬”은 그 곳의 느긋함을 표현하는 듯 했다. 몇몇 분의 말버릇이기도 했는데 “슬슬 합시다.” “슬슬 갈까요?”라는 말과 몸짓은 그 곳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소한 발견



어쩌면 자꾸만 내 속에서 꼬리를 무는 질문과 의심들이 내 안의 ‘규칙성(?)’때문인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개인을 보면 규칙적이거나 반듯한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규칙이 없으면 불안하고 뭔가 질서가 있어야 될 것만 같은. 그것에서 비롯되는 고정관념과 규정. 내 마음 가는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껏 사는 삶을 상상하기엔 너무나 틀에 박힌 교육과 사회.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 중 하나.

에즈원 커뮤니티에서의 일정은 고작 3박4일이었지만 꼭 일주일은 머물렀던 것 같았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면서 내 머릿속도 여러 가지 복잡다양한 생각들로 꽉 들어찼던 시간이어서 그랬을까? 처음부터 모든 개념과 단어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원래 그런 것은 없었던’것처럼. 그 생각의 흐름은 마치ㅡ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볼 때, 기준을 뒤집어보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때, 중심이 아닌 주변을 볼 때ㅡ인권이 시작되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는. 인권을 떠올렸던 그 때와 닮은 것이었다. 자꾸만 두근두근했다. 많은 생각을 곱씹을 때마다. 설렘일까, 깨달음일까, 두려움일까? 무엇이었을까?



해오던 거니까-해야 하니까, 보다는, 무엇이 나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어떤 사회를 무엇으로 만들어갈까? 라는 구체적 구상, 그리고 현실을 딛고 현실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발걸음이 역시나 필요한 일이다. 실감 나지 않고 또 여전히 의심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지만 조금씩 그 보따리를 열어가려는 마음을. 길을 다시 준비하고 걸어온 길을 단단히 하는 용기를. 그 동안 우리가 “완전히 잘해온 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고백을. 나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닌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깨달음을. 별로 대단할 게 없는 이야기이기에 위의 모든 것들은 ‘소소한 발견’이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소소한 발견들은 계속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소한 발견을 놓치지 않고, 다시 말하고, 듣고, 다시 생각해보고, 전달하고, 외치는 것.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목소리에 마음을 보태고, 삶을 덧붙이고, 반복하는 것이 결국 사회를 흔들고 기준을 뒤집는 작은 사건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사건과 시간들이 모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행복함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에즈원 커뮤니티 방문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은 이것이다. 에즈원 커뮤니티를 소개하는 팜플렛에서 발췌한 글을 전하며 방문기를 마친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다산인권센터나 저에게 연락하시면~ 한바탕 수다방을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ㅋ_ㅋ



“ 「그렇게 되면 좋겠네. 그렇지만 현실은 어렵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해왔지만, 여기에서는, 「그렇게 되면 좋겠다. 한번 시험 삼아 해 볼까!」라고 하는 기풍이 넘쳐나는 것처럼 느껴져. 그리 말해도, 결코 ‘완성된 것’은 아니고, 실패도 많고, 쌓거나 무너뜨리거나의 연속이지만, 우리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분위기가 재미있어. 지금의 세상, 집이나 토지를 아무리 남길 수 있다고 해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듯한 생각이 든다. 그런 “유적”의 귀찮음을 자손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몸의 인간이, 어떤 사람이라도 생기있게 살 수 있는 사회 기풍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만들어가는 과정 중의 커뮤니티이지만, 한 번 보러 와서 너의 눈으로 확인해 주지 않을래? 그럼 안녕. “


야마기시즘 실현지 ‘행복낙원촌’사람들 : 신동아 2001년 4월호

일체생활·무소유로 이상세계를 만든다 : 신동아 신동아 2001년 4월호



일체생활·무소유로 이상세계를 만든다

야마기시즘 실현지 ‘행복낙원촌’사람들곽대중 < 자유기고가 >
입력2005-04-21

이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 집 내 집 따로 없이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사는 마을, 담도 없고 문턱도 없는 집들, 맛있는 음식은 서로 나눠 먹고, 필요한 물건은 네 것 내 것 없이 마음껏 가져가는 마을, 동네 모든 어른이 내 부모고 고을의 모든 어린이가내 아들딸이 되는 마을, 밤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대소사를 의논하고, 기쁜 일은 마을 전체의 경사가 되고 슬픈 일은 서로 덜어 주는 사람들…. 아름다운 동화책에 등장하는 ‘마음 착한 난쟁이들의 마을’에나 그려질 법한 이런 이상세계를 직접 실천하며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 쪽으로 달리다 보면 발안 인터체인지를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 3리에는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조그만 농장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입구부터 약간 색다르다. ‘효의 고장’ ‘범죄 없는 고장’이라고 동네를 자랑하는 선전물은 시골 도로를 지나는 길에 드문드문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이곳은 ‘돈이 필요 없는 사이 좋은 마을’이라는 푯말을 마을 입구에 세워놓았다. 바로 이곳이 무소유, 무아집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며 살아가는 ‘야마기시즘 경향(京鄕) 실현지(實現地)’이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 겉모양은 여느 시골마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10여 동의 양계축사가 늘어서 있고, 그 옆에 커다란 생활집과 식당, 작업공간, 마을회관 등이 모여 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다른 마을 사람들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우리는 한 식구”

먼저 이곳 사람들은 공동생활을 한다. 물론 각 가정이 쓰는 방은 따로 있지만 한 지붕 밑에 11가구가 모여 산다. 그리고 식사도 함께 한다. 식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마을 가운데에 있는 식당에 모여 앉는다. 흡사 대학기숙사 같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대개 공산주의를 연상한다. 그러나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공동생산은 하되 공동분배는 하지 않는다. 공동소유도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단지 ‘무소유’라고 이야기한다. ‘공동생활’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일체생활’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식구들이 모여 사는 공동생활이 아니라, 모두 한 식구로 일체가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에게 몇 가구가 모여 사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한 식구”라고 대답한다.



이 ‘평범하지 않은’ 마을을 이해하려면 우선 야마기시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일본식 이름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야마기시즘이라는 표현은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을 준다. 일본의 한 종교집단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우선 야마기시즘은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종교에 의존하고 종교적 가치판단에 의지하는 삶을 멀리한다.

그럼 야마기시즘이란 도대체 뭘까. 야마기시즘은 ‘-ism’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야마기시주의, 즉 야마기시라는 사람이 제창한 일종의 사상적 지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상적 지향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체계나 이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야마기시즘은 ‘어설픈 이론화’를 경계한다.

야마기시즘을 소개한 책자를 보아도 야마기시즘의 취지를 “자연과 인위, 즉 천(天) 지(地) 인(人)의 조화를 도모하여,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 찬,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인류에 가져오는 것”이라고만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야마기시즘이란 야마기시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제안하여 유례가 된 ‘행복일색(幸福一色)의 이상사회’를 지칭하는 다른 표현일 뿐, 야마기시라는 주창자를 숭배하는 의미도, 정연화된 사상체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야마기시즘 운동을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은 일본인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已代藏 ; 1901 ∼1961). 그는 청소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하나 되어 사이 좋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잠깐 사회주의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 가진 사람의 재산을 억지로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든지 모든 사람이 노동의 생산물을 똑같이 나누는 방식은 ‘악평등(惡平等)’이라 생각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독특한 양계법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야마기시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50년 9월의 태풍 ‘젠’ 때문이었다. 당시 태풍으로 들판의 벼가 다 쓰러졌는데 한쪽 논에서만 벼가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것을 한 농촌 보급원이 발견한 것이다. 신기해서 누구 논인지 알아보니 그곳이 바로 야마기시의 논이었고, 그의 농사법과 양계법이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농촌 보급원은 야마기시를 설득하여 농사법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하게 했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야마기시의 양계법에 공감하다가 점차 이러한 양계법을 낳은 독특한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이른바 ‘연찬회(硏鑽會)’다. 이 연찬회를 통해 사람들은 밤을 새워 이상사회와 인간성 회복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1956년 교토의 어느 절에 162명이 모여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약칭 특강)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특강(特講)은 매월 2회씩 개최돼 현재 전세계에 걸쳐 2000회를 넘었다. 1958년 7월 야마기시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일본 미에현 가스가야마(三重縣春日山)에서 일체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야마기시즘 실현지’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졌다. 현재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 스위스, 브라질,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8개국 50여 곳에 있다.

한국에서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가 시작된 것은 1966년. 1984년엔 실현지가 탄생했다.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에 자리잡고 있어 경기도의 경, 향남면의 향을 따 ‘경향(京鄕) 실현지’라고 부르며, 산안(山岸, 야마기시) 마을, 혹은 산안농장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행복한 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을의 촌장 노릇을 하는 사람은 윤성렬씨(58). 그는 아버지에게 야마기시즘에 관해 들은 후 이상사회의 뜻을 품고 한국에 실현지를 처음 가꾼 사람이다. 윤씨의 부친 윤세식씨(타계)가 1965년 일본 가스야마 세계중앙실현지에서 연수를 받은 것이 한국에 야마기시즘이 전파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당시 야마기시즘은 당국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일단 조사 대상이었습니다.특히 자꾸 모여서 이상사회 무소유 등을 이야기하니 이상하게 볼 만도 했습니다.”

윤씨의 전직은 교사다. 그는 젊은 시절 이상적인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84년 지금의 자리에 실현지를 마련했다. 야마기시즘을 더욱 깊이 알아보려면 그 실현지인 산안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말 그대로 이곳은 이상을 ‘실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산안마을의 주 수입원은 양계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닭을 키운다. 일반 양계장에 가면 역겨운 닭 냄새 때문에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이 마을의 양계장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닭들도 닭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수탉과 암탉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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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게 사료를 줄 때는 “사료 왔습니다”, 달걀을 가지러 갈 때는 “집란하러 왔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닭을 사람 대하듯 기르는 것이다. 아니, 기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닭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의 핵심은 닭들을 억지로 키우고 억지로 알을 낳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닭들이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크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암탉들이 ‘낳아 주시는’ 고급 유정란은 서울 경기 대구 전주 등 전국 각지로 직접 배달된다. 백화점이나 기타 소매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다들 맡은 일이 있다. 양계부, 공급부, 생활부, 학육부, 채소부 등에 속해 있는데, 이것을 직장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식당, 이·미용, 육아, 사진, 보건·위생, 세차, 소방 등 각자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세탁하는 사람도 따로 있어 그가 다른 사람의 속옷까지 다 처리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는 강제나 규율이 없다. ‘너는 무슨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빈둥빈둥 논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노는 사람은 없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을 안에서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 농장 안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생필품은 모두 공동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활비는 들지 않는다. 마을 한가운데는 조그만 창고가 하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품, 면도기, 학용품, 과자류 등이 가득 쌓여 있다. 군대 보급 창고를 연상케 하는데 이곳에는 열쇠가 채워져 있지 않다. 필요하면 누구든지 꺼내 쓰면 된다. 창고에 없는 물건이 필요하면 ‘연찬을 통해’ 결정해 사온다. 마치 우리가 어머니에게 옷 사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낭비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없느냐고 물으면, “여태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필요한 만큼 갖다 써라

특별히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각자 함양일(涵養日)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쉬고 싶을 때 쉰다. 무소유를 지향하지만 그래도 각자 돈이 필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성인들은 월 5만 원씩을 받는다. 젊은 부부들은 이 돈으로 함양일에 영화를 보러 가든지 외식을 하기도 한다. 돈이 남으면 저축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쯤 되면 묻는 사람이 부끄러워진다. ‘개인적으로 저축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하면 어쩌냐는 질문에도 “더 필요한 적이 없고, 만약 더 필요하면 달라고 해서 쓰면 된다”고 대답한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따로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마을은 무슨 특별한 정신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간혹 산안마을을 생태마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기순환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지향하지만 생태마을은 아니다. 도인(道人)들이 모여 뜻 모를 이야기만 나누면서 사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현재 산안마을에는 아이들 15명을 포함해 44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전직 교사, 사회운동가,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저 네 것 내 것 없이 살고 있을 뿐이다.

실현지에 거주하는 데 특별한 자격은 필요없다. 하지만 일단 야마기시즘 회원이 되기 위해선 무소유의 삶에 동의해야 한다. 그들은 이것을 참획(參獲)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서 거주하려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야마기시즘회에 내놓아야 한다. 이곳에서 살다가 간혹 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자신이 가져온 재산을 다시 내놓으라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산안마을 아이들에게는 동네 어른들이 모두 자기 부모나 같다. 아이들은 동네 아주머니를 부를 때 현주엄마, 유끼엄마 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현주’ ‘유끼’라는 이름은 그 아주머니의 아이 이름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해서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어른들도 서로 ‘서혜란씨’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부른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도 하나같이 자기 아이들처럼 대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이 이름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짓는다. 유아들은 마을 안에 있는 태양유치원에서 자란다. 결국 여기서는 모두가 엄마 아빠 삼촌 언니 동생이 되는 셈이다.

“더 좋은 곳 찾지 못했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명절에도 자기 가족을 찾아 고향집으로 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명절 때면 마을 사람들 모두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마을회관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생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주고 생일 떡을 나눠 먹는다. 그야말로 대가족이 아닐 수 없다.

사람 사는 동네에 특이한 이력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만, 산안마을에도 독특한 삶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많다. 경북대 농대 77학번인 황형섭씨(44)는 농민운동을 하려다 산안마을에 들어왔다. 대학에서 농촌문제연구소라는 서클 활동을 했던 황씨는 대학 동기들과 함께 각자 농촌 마을에 들어가 농민운동을 부흥시켜보려는 계획을 세우던 중 양계법을 배울 요량으로 야마기시즘회를 찾게 됐다.

“처음 특강에 참석했을 때는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특강에는 일본인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우선 야마기시즘이라는 말 자체가 거리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 어느 날은 세상을 저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현지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혹시 마을에서 나갈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황씨는 “지금도 매일 하고 있는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가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더 좋은 곳을 찾지 못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웃는다. 총각으로 들어왔던 황씨는 산안 마을에서 변정희씨(40)를 만나 딸 둘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야마기시즘의 특징 중 하나는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니 국경이나 인종 같은 것은 전혀 따지지 않으리라. 그래서 전세계에 있는 실현지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일본과 가까워 특히 왕래가 잦다. 양국의 실현지에 있는 청년들이 서로 찾아가 잠시 살다 오기도 하고, 결혼을 하여 아예 눌러 앉는 경우도 있다. 윤성렬씨는 이를 보고 “청년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흐뭇해한다.

나가오 유끼(28)는 1994년 산안마을에 어린이 낙원촌 학생 스태프로 참여했다가 유상용씨(38)를 만나 결혼했다.

“처음엔 한국이란 나라에 호기심이 있어 찾아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고 한국이 마음에 들어 다시 찾게 됐습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요.”

유끼는 이제 한국말을 굉장히 잘한다. 현재 산안마을에는 유끼 이외에도 5명의 일본인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일본 실현지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로 지금은 산안마을 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물론 한국의 청년이 일본의 실현지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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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씨(57)는 사회운동을 하다가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찾은 경우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그는 1970년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4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국불교사회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상사회를 모색하던 중 1994년 가족들과 함께 산안마을 식구가 됐다.

산안마을 사람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 하나가 ‘연찬(硏鑽)’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연찬을 통해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실현지의 삶을 ‘연찬하는 삶’이라고 이야기하고, 실현지에서 생활하는 의미를 ‘계속되는 연찬’에 두고 있다. 과연 연찬이 무엇이기에 그럴까. 연찬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도리를 깊이 연구함’이다. 야마기시즘에서 연찬이란 하나의 의문이나 주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과연 그럴까”를 생각하며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다.

그저 회의라고 해도 좋고 토론이라고 해도 좋지만,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도, 화를 내며 덤벼드는 일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원점에 되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산안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당히 차분해지고 때론 깜짝 놀라기도 한다. 먼저 이곳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화하는 태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또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제, 혹은 감정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문제들에 대해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2월3일 밤 8시. 야마기시즘회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실시하는 회원 연찬회에 참석했다. 연찬회 시간이 가까워 오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실현지에서 생활하는 사람 몇 명과 치과의사, 대학교수, 약사, 주부, 노동자 등 사회에서 생활하는 회원들이 모여 인사를 주고받으며 떠들썩하다. 오늘 연찬의 주제는 ‘진보의 길 - 타(他)를 침범하는 것의 천박함과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 벽에 붙은 연찬 주제를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침범하는 것이 왜 천박하고 어리석으며, 나아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진보의 길이라니, 도대체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마치 불교의 화두를 받은 기분이었다.



참석자들은 먼저 돌아가며 자신의 근황을 소개했다. 그 동안 특별했던 일, 재미있었던 일, 후회하는 일 등을 자연스럽게 털어놓는다. 가정생활, 자녀교육, 회사나 학교 이야기가 오가면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 연찬이 진행된다. 사회자가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발언권을 준다든지, 회의를 이끌고 있다는 분위기는 풍기지 않는다. 상대의 이야기에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이 경험한 다른 사례를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의 따뜻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이러한 연찬회는 특별한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찬을 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화를 내지 않고 사는 법

야마기시즘회에는 두 달에 한 번씩 실시하는 ‘특별강습연찬회’를 통해 입문할 수 있다. 특강 주제는 ‘화를 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사이좋게 즐겁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우리는 상대를 바꿀 수는 없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꿀 수는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붙들어 매는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 그 밑에 숨어 있는 본래의 자신을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야마기시즘 특강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입니다.”

야마기시즘에서 설명하는 특강의 의미다. 이신홍씨(31·김포공항 근무)는 최근 특강을 받았다. 꽉 짜인 회사 분위기에 답답해하던 이씨는 우연한 기회에 야마기시즘을 소개받았다.

“아는 분의 소개로 찾아가기는 했지만 처음 며칠간은 혹시 무슨 종교집단은 아닐까, 어디로 잡아가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5일쯤 지나자 아주 마음이 편해지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깨닫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이제 이신홍씨는 화내지 않고 살려고 애쓴다. 대학생 기자 교수 사회운동가 스님 목사 신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이 특강을 거쳐갔다. 2001년 2월 현재까지 195회의 특강을 통해 2000여 명의 사람들이 대안적 삶을 느끼고 돌아갔다.

‘사랑의 전화(대표 심철호)’ 사회조사연구소는 최근 한국인의 ‘행복도’에 대한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10세부터 50세 사이의 남녀 487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의 64.9%가 ‘행복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그런데 ‘행복하다’와 ‘행복하지 않다’의 이유를 뜯어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복의 원인을 ‘가정의 화목’(63.9%), ‘미래에 대한 희망’(15.8%)에서 찾았다. ‘경제적 여유로움’을 행복의 이유로 꼽은 사람은 5.1%에 불과했다. 반면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41.5%)을 가장 먼저 꼽았다.

불행한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불행의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들은 그 이유를 ‘경제적 여유로움’에서 찾을 법도 한데, 경제적 여유를 행복의 조건으로 꼽은 사람은 왜 5%에 불과할까? 우리는 여기서, 경제적 어려움은 불행을 느끼게 하는 요인은 될 수 있어도, 일정한 경제적 수준에 오르면 결코 돈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한번 들어 보세요”

또한 행복이란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영국 LSE 대학은 전세계 54개국 국민들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제일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도리어 가장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식사할 때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접시에 반찬을 놓아준다. “이거 맛있겠지요? 한번 들어 보세요” 하면서 말이다. 받는 사람은 또 상대방의 접시에 그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골라준다. 스스로 행복한 마을, 사이좋은 마을이라 자랑하는 산안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식사 때도 서로 아껴주고 나눠주는 삶을 자연스레 실천하면서 무소유와 무아집의 일체생활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내가 옳다고 강변하며 화내지 않는 삶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이상사회를 그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산안마을을 바라볼 때마다 고개를 드는 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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