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사상의 핵심은 극심한 사회적 위기의식 속에서 상호간의 불간섭주의와 개개인의 생명의 존엄과 온전함을 추구한 그의 경물중생輕物重生(삶을 중시)에 있습니다. 중생重生은 양주의 사상입니다.Apr 18, 2013
맹자孟子가 그토록 비난한 양주楊朱는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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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kwangwoo 작성일 : 2013년 0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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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구의 연구 체계를 기반으로 문헌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동양철학의 특성 상, 양주의 철학은 생명주의로 해석되기도 하고 개인주의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노자와 장자를 잇는 도가의 역사적 교량 정도로 간주되는데, 서양에서 동양철학을 연구한 권위자인 앤거스 그레이엄 같은 경우는 양주의 사상을 아예 '양가(楊家, Yangism)'로 따로 분류해 양주 사상의 카테고리 안에 도가를 집어넣기도 한다.
2. 사상[편집]
하루는 양주가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앞에 논객 한 명이 양주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다. "만약 선생께서 저에게 털 한가닥을 뽑아줘 제가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선생께선 저에게 털 한가닥을 뽑아 주시겠습니까?" 이에 양주는 "어떻게 털 한가닥으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절했다. 그러자 논객은 끈질기게 "만약에 털 하나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럼 털 하나를 뽑아 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양주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에 양주의 제자가 양주의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그 논객을 만났다. 논객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면서 당신의 스승은 나와의 설전에 할 말이 없어서 도망쳤다며 비웃었다. 그러자 제자는 논객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께서는 단지 말장난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괜찮다면 내가 스승님을 대신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만약에 당신의 털 하나를 뽑아 주면 내가 금 백냥을 주겠다고 하면 뽑아 주시겠습니까?" 논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제자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당신의 팔 하나를 주면 내가 금 천냥을 주겠다고 하면 팔을 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논객은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
2.1. 반(反) 대의주의적 해석[편집]
즉, 지배층은 '너희들이 털 하나를 뽑아준다면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라고 백성들을 속여서 자신들의 사익을 챙긴다. 그렇기 때문에 양주는 이런 식의 논법에는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양주가 살았던 전국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포함한 어떤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다만 이런 이론이 '천하를 위해서 털 하나를 뽑으라고 해도 싫다'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인 것처럼 왜곡되어 잘못 전달되었을 뿐이다.[3] 그러니 사실상 양주의 철학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반(反)대의주의' 혹은 '반(反)명분주의'라 할 수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라' 라는 식으로 대의명분이란 허울을 통해 백성을 꾀어내는 통치집단에 반대하는 사상인 것이다. 대의라는 것은 거진 다 통치자, 지배계급의 이득을 돌려 말하는거지, 모든 이를 위한 뜻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피지배집단, 약자집단인 백성이 그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성들이 목숨걸고 싸워 천하통일하면 백성들이 황제되나? 절대 아니다. 그나라 왕이 황제되고 그 아들이 그 다음 황제된다. 몸만 축난 백성은 대대손손 몸만 계속 축나고 개뿔 얻는 것도 없다.
때문에 양주의 주장을 단순히 극단적인 이기주의라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당대는 부국강병의 미명하에 개개인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양주는 이런 풍조를 비판하며 인간이 남(국가)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거나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를 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나아가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의 실례에 비춰 보자면 "천하 대의를 위한 전쟁 그딴 거 너라는 개인을 도외시하고 실상은 지배층들의 잇속을 챙겨줄 뿐이니 그런 건 개나 주고 그 시간에 네 터럭 하나나 더 챙기라"[4]는 말과 같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고 양주의 사상이 이기주의라는 것은 그의 사상에 대한 몰이해와 후대 권력층의 사상적 탄압 및 왜곡으로부터 비롯된 경향이 크다. 즉, 양주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혹은 공동체주의에 대한 개인 혹은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당대 사회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일 뿐이다. 장자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2.2. 위아주의적 해석[편집]
위아주의 이야기는 《열자列子》 〈양주楊朱〉 편에 나오는 일화인데, 쓸데없는 논란을 피하고자 한국 한문학계의 권위자로 여겨지는 김학주 교수의 번역을 그대로 옮기겠다.
양주가 말했다. "백성자고(伯成子高)[5]는 자기 몸의 한 개의 터럭을 뽑아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하지 않고, 나라를 버리고 숨어 살면서 밭을 갈았다. 우(禹)[6]임금은 자기 한 몸을 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 자신의 몸을 지치고 깡마르게 만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자기 몸에서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해도 뽑아 주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자기 한 사람에게 바친다 하더라도 받지 않았다. 사람마다 자기 몸에서는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다." 금자(禽子)[7]가 양주에게 물었다. "선생님 몸에서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온 세상을 도울 수가 있다면 선생님은 그런 행동을 하시겠습니까?" 양자(楊子)[8]가 말했다. "세상은 본시부터 한 개의 터럭으로 도울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금자가 말했다. "가령 도울 수 있는 경우라면 하시겠습니까?" 양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자가 나와서 맹손양(孟孫陽)[9]에게 말하자 맹손양이 말했다. "선생은 우리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그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선생의 살갗을 손상시킴으로써 만금萬金을 얻을 수가 있다면 선생은 그 일을 하겠습니까?" "하지요." 맹손양이 말했다. "선생의 몸 한 마디를 끊음으로써 한 나라를 얻을 수가 있다면 선생은 그 일을 하겠습니까?" 금자는 한동안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맹손양이 말했다. "한 개의 터럭은 살갗보다 작은 것이며 살갗은 몸의 한 마디보다도 작은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 개의 터럭이 쌓여서 살갗을 이루고 살갗이 쌓여서 몸의 한 마디를 이루게 됩니다. 한 개의 터럭은 본시가 한 몸의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어찌 그것을 가벼이 여길 수 있겠습니까?" 금자가 말했다. "나는 선생에게 대답을 드리지 못하겠소. 그러나 선생의 말에 대해 노자(老子)나 관윤(關尹)[10]에게 가서 물어본다면 그 분들은 선생의 말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나의 말에 대해 우禹임금이나 묵자墨子에게 가서 물어본다면 그 분들은 나의 말이 옳다고 하실 것입니다." 맹손양은 그의 말을 듣고는 그의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다른 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
해당 기사에서 보이듯이, 양주와 그 제자는 이중톈의 해석처럼 반대의주의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몸이 킹왕짱 소중하니까 남을 위한답시고 쓸데없이 힘쓰지 말고 제 몸이나 챙길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중톈은 무슨 정부의 수탈이니, 명분 정치니 운운하지만, 이미 보이듯이 기사의 논지상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고, 비판의 대상을 찾는다면 경쟁 사상계인 '묵가'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핵심 논지와 더불어, 양주가 묵가에서 숭상하는 '노동자 왕' 우 임금을 악례로 든 것, 맹손양의 논적으로서 묵가의 대표자인 금활리가 출연하고 사실상 맹손양에게 패퇴한 것 등 정황을 살펴보면 해당 기사가 묵가에 대한 비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명확하다.
공리를 중시하는 묵가의 금활리는 털 한 올 정도라면 기꺼이 내어줄 만하다 여긴다. 살갗 또한 허용 범위 내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보신을 중시하는 양주학파는 이에 반대하여 '당신은 몸 한 마디, 즉 팔다리를 소중히 여겨 내주고 싶어하지 않는데, 이는 그것이 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몸의 일부인 살갗이나 털 한 올은 왜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식의 논조로 털 한 올이나 살갗, 팔다리나 모두 내 몸의 일부이므로 어느 것도 함부로 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금활리는 여기에 할 말을 잃고 만다. 그것이 이 기사의 전부이다: 위아주의 선언 겸 묵가적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
사족이지만, 이 기사의 연출을 보자면 양주학파의 논리는 사실 치밀하진 않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로 '오래된 권위'를 가장하여 찍어누르고, 보신의 영역을 치천하의 영역과 결부시킨 뒤에는 뚜렷한 전거도 없이 비약적 결론을 내린다. 또, 애초에 살갗은 털이 쌓여서 되는 것이 아니요, '한 터럭 = 극소한 것, 살갗 = 보다 큰 것, 몸 한 마디 = 더 큰 것' 식의 비유법으로 이해하여 쌓여서 된다 쳐도 (즉, '터럭이 쌓여 한 마디가 된다' = '극소한 것이 쌓여 큰 것이 된다.') 이미 쌓여서 된 것이므로 털 한 올에 견줄 정당한 대상이 아니며, 털 한 올은 뽑아내는 데 큰 고통이 없고 쉬이 재생되지만 팔다리는 그렇지가 않음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금활리가 묵가로서 문제 삼을 건덕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금활리는 아무 것도 반박하지 못하고 다만 '우리의 견해가 다르군요' 하며 순순히 물러나고 만다.
물론 대소경중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는 개개인에 달린 것이어서 금활리가 다만 저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길 수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 '사람마다 자기 몸에서는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다'라는 선언과 '선생님 몸에서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온 세상을 도울 수가 있다면 선생님은 그런 행동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경세학(經世學)의 담론이라서 금활리가 충분히 묵가의 논리로써 반박을 시도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물론 털 한 올로 어떻게 온 세상을 도울 수 있겠느냐마는, 여기서 '털 한 올'은 당연히 '아주 극소한 것'의 대변인 것이다. 양주학파는 그런 아주 극소한 것이라도 내 몸에 있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되고, 사람마다 이러한 생각을 견지하여 남에게 참견하지 말고 자기 몸이나 챙기는게 최고라고 주장한다. 묵가의 겸상애, 교상리 원리와 정면으로 대립이 되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금활리는 순순히 물러나고 마는 것이다.
또한 논지의 전개부터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금자'는 "터럭으로 세상을 도울 수 있다면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그 말을 받는 맹손양은 "선생의 몸 한 마디를 끊음으로써 한 나라를 얻을 수가 있다면 선생은 그 일을 하겠습니까?"라 받고 있다. 이를 현실의 예로 비유하면 금자는 "니가 한 시간 일하면 아프리카 아이들 10명의 끼니를 챙겨줄 수 있지. 그럼 할래?" 라는 질문을 한 것이고, 거기에 맹손양은 "니 팔 자르면 1억 준다. 할래?"라고 대꾸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자와 맹손양의 질문은 동등할 수 없다. 금자의 질문은 내 것을 써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이타주의 혹은 공리주의의 선상에 있다. 그러나 맹손양의 질문은 내 것을 써서 내가 이득을 얻는다는 이기주의의 선상에 있다. '터럭, 살갗'이라는 신체의 손해만 공통점으로 묶여 있을 뿐 맹손양의 발언은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이다. 이기적 유전자[11] 수준의 논지를 들어 이타주의를 비판한다면 몰라도 맹손양의 '한 개의 터럭은...(하략)' 발언에서 이미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중톈은 맹손양의 발언을 반 대의주의로 평가했는데, 이건 이중톈이 맹손양의 훈제 청어를 열심히 집어먹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금활리는 묵자에 이어 묵가의 거자(巨子)[12]가 된 자로서 묵가 사상과 그 논리학에 정통한 사람인데, 그런 그가 이렇게도 간단히 물러선다는 것은 아무래도 미심쩍은 일이다. 이 기사는 《열자》라는 책이 전반적으로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듯이, 아마도 도가 계열의 사상적 우월성을 주장하고자 후대에 만들어진 가탁물일 것이다. 《장자》에서 공자와 그 제자들이 도가의 학설에 승복하거나 스스로 도가의 학설을 주장하는 역할로서 굴욕적인 출연을 하듯이, 여기서는 양주를 높이기 위한 역할로서 금활리가 이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이후[편집]
양주는 연구 자체가 어렵다. 직접 남긴 저서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장자, 묵자, 맹자 등이 남긴 저서에서 같이 논쟁하면서 간간히 언급되는게 다라서 온전한 양주의 철학을 알기가 힘들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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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9, 2020 — [2] 맹자는 묵가의 사상을 '무부(無父)'라 칭하며 아비도 없는, 즉 가정 개념도 없는 몹쓸 사상이라 맹비난하였는데, 양주의 사상에 대해서도 '무군(無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