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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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도서] 조화로움 - 불안과 충동을 다스리는 여덟 가지 방법 
  • 스티브 테일러 (지은이), 윤서인 (옮긴이) | 불광출판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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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도서] 제2의 시간 - 당신의 삶을 지배하는 건 심리적 시간이다 
  • 스티브 테일러 (지은이), 정나리아 (옮긴이) | 용오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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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w edition of Steve Taylor's bestselling classic, in which the author provides an Afterword, including research developments that have occurred since th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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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Sept 2018 — Read Spiritual Science by Steve Taylor with a free trial. Read millions of eBooks and audiobooks on the web, iPad, iPhone and Andr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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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의 언어 프랜시스 S. 콜린스

알라딘: 신의 언어

신의 언어   
프랜시스 S. 콜린스 (지은이),이창신 (옮긴이)김영사2009-11-20
원제 : The Language of God: A Scientist Presents Evidence for Belief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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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100자평(8)리뷰(7)

 The Language of God: A Scientist Presents Evidence for Belief (Paperback) Paperback
[절판] The Language of God (Paperback, Large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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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93년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끌어 10년 만인 2003년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해독한 프랜시스 콜린스의 화제작. 이 책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시대에서 이 둘의 세계관을 냉정하고도 정직하게 통합하기 위한 경로를 탐색한다.

이 책은 과학자가 어떻게 초월적 신을 믿는가에서 시작하여, 과학과 종교가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종교와 과학의 갈등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하거나, 양 쪽 모두 부정하거나, 둘을 아예 분리하는 등 딜레마적 상황을 맞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저자는 엄격한 과학자가 되는 것과, 하느님을 믿는 것 사이에 상충되는 요소는 전혀 없다는 해법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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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사람들은 왜 마지막 순간에 차선을 바꾸는가

머리말

1장 과학과 신앙의 간극
1. 무신론에서 믿음을 갖기까지
불가지론에서 무신론으로 | 인간이기에 갖는 도덕법 | 과학자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
2. 세계관 전쟁 한가운데
신은 단지 욕구 충족을 위해 만들어진 희망사항이 아닌가? | 종
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그 모든 해악은 어찌하려는가? | 자애로
운 신이 왜 세상의 고통을 내버려둘까? | 이성적인 사람이 어떻
게 기적을 믿을 수 있는가?

2장 인간 존재에 관한 심오한 질문들
3. 우주의 기원
대폭발, 우주의 시작 | 대폭발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우
주먼지로 만들어진 인간 |‘인류 지향적 원칙’의 경이로움 | 과학
과 믿음 사이의 조화
4. 미생물, 그리고 인간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찾아 | 유기체 간의 유연관계를 보여주는
화석 | 진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 DNA를 향한 경외감
5. 신의 설계도 해독하기
유전질환 연구를 시작하다 | 중대한 프로젝트 앞에서 | 게놈을 처
음 해독했을 때의 희열 | 의학도 진화론을 피할 수 없다 | 결국
인류 진화의 의미는? | 진화, 이론인가 사실인가?

3장 과학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믿음
6. 창세기, 갈릴레오, 그리고 다윈
창세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 | 갈릴레오에게 배우는 교훈
7. 첫 번째 선택, 무신론과 불가지론
무신론을 말하다 | 불가지론을 말하다
8. 두 번째 선택, 창조론
절반의 선택 ‘젊은지구창조론’| 신은 위대한 사기꾼인가?
9. 세 번째 선택, 지적설계론
지적설계론이 대체 무엇이기에 | 지적설계론에 대한 과학적 반론
| 지적설계론에 대한 신학적 반론
10. 네 번째 선택, 바이오로고스
‘유신론적 진화’란 무엇인가? | 그렇다면 아담과 이브의 존재는?
11. 진리를 찾는 사람들
신의 존재에 대한 개인적 심증 | 자연 앞에, 그리고 신 앞에 무릎
꿇다 | 종교인을 향한 간곡한 부탁 | 과학자들을 향한 간곡한 부탁

부록
생명윤리학, 과학과 의학의 도덕적 실천
의학유전학 | 개인 맞춤형 의학 | 도덕법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윤리 |
포유동물이 최초로 복제되던 날 | 체세포핵치환, 윤리와 이익 사이에
서 | 의학을 넘어서 | 인간 개선 | 결론

저자와의 인터뷰
옮긴이의 말
후주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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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33 아가페, 즉 사심 없는 이타주의는 진화론자에게 가장 큰 과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환원주의자의 이성에는 적잖이 충격적인 사건이다. 개인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영원히 살아남을 목적으로 그런 일을 했다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사랑은 인간을 희생으로 이끌고, 그 희생은 별다른 이익도 없이 개인의 고통이나 부상 ... 더보기
P. 91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의 복잡함이 그것인데, 분별력 있는 관찰자라면 지적인 설계자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과학은 이제 이마저도 완전히 뒤집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다른 두 가지 주장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을 가진 사람은 과학을 부정하기보다는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생명의 복잡성 뒤에 숨은 정교함은 경외감을 느끼고 신을 믿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다윈이 나타나기 전까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끌었던 단순하고 직설적인 방법으로는 곤란하다.  접기
P. 111 과학적이고 영적인 증거를 모두 고민한 많은 사람은 창조적이고 인도적인 신의 손길이 여전히 작용한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생명의 본질에 관해 많은 것이 밝혀졌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환멸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생명이란 얼마나 경이롭고 정교한가! DNA의 디지털적인 정확함은 얼마나 명쾌한가! RNA를 단백질로 번역하는 리보솜에서, 유충이 나비로 변하는 탈바꿈과 짝을 유인하는 공작의 기막힌 깃털에 이르기까지, 생명체의 모든 요소가 지닌 미적 호소력과 예술적 장엄함은 또 어떠한가!  접기
P. 133 염기서열을 밝히던 나는 태아 헤모글로빈을 생성하는 여러 유전자 중 어느 한 유전자의 바로‘위쪽’지점에서 C 대신 G가 놓인 사실을 발견한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태아 프로그램이 성인 프로그램으로 바뀌는 까닭은 바로 이 글자 하나의 변이에 있었다. 나는 짜릿하면서도 동시에 몹시 지쳐버렸다. 인간 DNA 암호에서 바뀐 글자 하나를 찾는 데 무려 18개월이 걸리다니!  접기
성경의 신은 동시에 게놈의 신이다. 그 신은 예배당에서도, 실험실에서도 숭배될 수 있다. 신의 창조는 웅장하고 경이로우며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싸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불완전한 우리 인간만이 그러한 싸움을 시작한다. 그리고 오직 우리만이 그 싸움을 끝낼 수 있다.-213쪽 - 이로운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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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프랜시스 S. 콜린스 (Francis S. Collins) (지은이) 

세계적 권위를 지닌 유전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오랫동안 생명의 암호가 숨겨진 DNA를 연구해왔다. 예일 대학에서 생화학을 연구한 후, 미시간대학에서 의학유전학자로 활동하면서 낭포성섬유증, 신경섬유종증, 헌팅턴 병과 같은 불치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결함을 발견하는데 기여해 왔다. 93년, 세계 6개국 2천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하여, 10년 만인 2003년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31억 유전자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대학 시절에는 열렬한 무신론자였으나, 유전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은 후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뒤부터 종교적 신념의 진정한 힘을 주목하게 되었다. 접기
최근작 :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믿음 Belief>,<신의 언어> … 총 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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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신 (옮긴이) 

대학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번역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팩트풀니스》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생각에 관한 생각》 《마인드웨어》 《욕망하는 지도》 《하버드 교양 강의》 《기후대전》 《정의란 무엇인가》 《창조자들》 《목격》 등 4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작 : … 총 61종 (모두보기)
Editor Blog현장 MD가 뽑은 올해의 좋은 책 2009 l 2009-12-28
어느덧 시상식의 계절입니다. 연예대상, 가요대상, 연기대상 등 화려한 시상식은 차고 넘치는데, 왜 어디에도 책 관련 시상식은 없는 걸까요? 리영희 선생이 평생공로상을 받고, 카라가 축하 공연을 하는 '도서대상'을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일까요? 아쉬운 마음에 여기, 현장MD로 살았던 2009년의 기억을 남깁니다. 조금 편파적이고, 아이돌 그룹의 축하 공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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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DNA는 신의 설계도이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편견과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

인류 최초로 31억 개의 유전자 서열을 해독, 우리 몸의 지도를 완성한
세계적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의 화제작! 게놈 지도의 완성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콜린스 박사의 과학과, 신의 존재, 인간 본성에 관한 재미있고, 놀랍고, 설득력 있는 통찰

93년 세계 최초로 시도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10년 만인 2003년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전히 해독한 프랜시스 콜린스의 화제작!《신의 언어》는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시대, 과학적 세계관과 신앙적 세계관을 냉정하고도 지적으로 정직하게 통합하기 위한 경로를 탐색한다. 그는 진정한 과학자가 어떻게 초월적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믿음이 서로 모순되지 않게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정치한 구성과 논리로 풀어내고 있다. 무신론자에서 신앙인이 되기까지 자신의 여정에 독자를 이끌고, 현대 과학을 돌아보며 물리, 화학, 생물이 모두 신과 성경에 대한 믿음과 잘 들어맞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주론, 진화론, 인간 게놈이 함께 이야기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엄격한 과학자가 되는 것과, 하느님을 믿는 것 사이에 상충되는 요소는 전혀 없다는 해법을 내놓는다.


인류 최초로 31억 개의 유전자 서열을 해독, 우리 몸의 지도를 완성한
세계적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의 화제작!
생명의 암호가 작동하는 완벽하고 정교한 질서 속에서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한 신의 언어를 발견했다!”

게놈 지도의 완성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콜린스 박사의 과학과, 신의 존재, 인간 본성에 관한 재미있고, 놀랍고, 설득력 있는 통찰

불가지론자에서 무신론자로, 다시 신의 존재를 믿게 된
세계 최고 유전학자가 본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프랜시스 S. 콜린스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유전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오랫동안 생명의 암호가 숨겨진 DNA를 연구해왔다. 예일대학에서 생화학을 연구한 후, 미시간대학에서 의학유전학자로 활동하면서 낭포성섬유증, 신경섬유종증, 헌팅턴병과 같은 불치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결함을 발견하는 데 기여해왔다. 93년, 세계 6개국 2천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하여, 10년 만인 2003년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31억 개의 유전자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대학 시절에는 열렬한 무신론자였으나, 유전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은 후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뒤부터 종교적 신념의 진정한 힘을 주목하게 되었다. 최첨단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인 동시에 하느님과 성경을 믿는 독실한 신앙인인 그는 신이 우리 인간을 돌보고 인간의 삶에, 드물게는 기적의 형태로 간여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콜린스는 모든 생명체가 공통된 조상에서 내려왔다는 증거를 직접 발견하기도 했지만, 많은 다윈주의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유물론적, 무신론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이 책은 신을 믿으면서 과학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을 괴롭히는 딜레마를 해결할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는다. 신에 대한 믿음과 과학에 대한 믿음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하나의 세계관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가 믿는 신은 기도를 들을 수 있는 신이며 우리 영혼을 보살피는 신이다. 그가 발전시킨 생물학은 그런 신과 얼마든지 조화가 가능하다. 콜린스가 보기에 과학은 성경과 대립하지 않는다. 대립은커녕 성경의 토대가 된다.
저자는 여러 해 동안 자신의 견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생명의 암호를 밝히는 유전자를 매진해 왔으며, 이성과 믿음을 한데 섞은 이 역작을 내놓았다.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세세히 소개한 《신의 언어》는 신을 옹호하는 이야기이며 과학을 옹호하는 이야기다. 그는 무신론에서 젊은지구창조론에 이르기까지, 불가지론과 지적설계론을 포함한 과학과 종교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본다. 그는 신앙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주장과, 과학의 진실을 터무니없이 거부하는 종교인의 주장들을 반박한다. 그는 진정한 과학자가 어떻게 초월적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믿음이 서로 모순되지 않게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정치한 구성과 논리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무신론자에서 신앙인이 되기까지 자신의 여정에 독자를 이끌고, 현대 과학을 돌아보며 물리, 화학, 생물이 모두 신과 성경에 대한 믿음과 잘 들어맞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신이 없다는 과학의 주장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서로의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또는 이해할 마음조차 없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신앙에 회의를 품는 비종교인들에게 잘못된 ‘사람’을 보지 말고 참된 ‘하느님’을 보라고 말한다. 그는 종교로 인해 저질러진 해악을 설명하는 데 물이 담긴 녹슨 그릇의 비유를 든다. 또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과학에 거부감을 느끼는 종교인들에게는 과학을 하느님에 대한 ‘도전’으로 보지 말고 하느님의 놀라운 창조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예일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때만 해도 과학자라면 무신론자여야 한다고 믿었지만, 인간의 유전자를 연구하면서, 생명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보게 될수록 자연의 법칙은 과학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 비밀이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을 동원해도 풀리지 않아서가 아닌, 오히려 과학적 법칙에 따라 극도로 정교하고 완벽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를 설명하려면 ‘자연스럽다’거나 ‘우연’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과학자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되는 경우도 대개 이 때문이며 반대로,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에 더욱 신을 믿지 않기도 한다.
저자는 과학계에서 이제까지 발견한, 그리고 유전자 연구를 통해 직접 알아낸 사실들을 열거하며, 독자들에게 과학과 신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한번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가령 인간은 탁월한 지적 능력으로 우주의 대폭발을 알아냈지만, 그것에 얽힌 신비를 풀다보면 단순히 ‘거듭된 우연’으로만 해석하기에는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어지는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우주의 대폭발에서 ‘종교적 암시’를 읽었고 ‘초자연적 존재’를 상상했다. 생명체의 미세한 유전자를 연구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구성하는 31억 개의 글자 중 한 글자의 위치가 바뀌거나, 한 글자만 틀려도, 치명적인 불치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은, 병에 걸리지 않는 정상인의 유전자 지도가 얼마나 완벽하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체계인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는 “하느님이 생명을 창조할 때 사용한 DNA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며,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으로 설명되는 다윈의 진화론은 신의 놀라운 설계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여기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법’이다. 저자에게 도덕법은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케 하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오스카 쉰들러와 테레사 수녀는 이러한 도덕법을 삶속에서 실천한 인물들로 그들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타적 사랑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것은 진화론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지구상의 생물 중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과학과 종교의 조화로운 공존이 과연 가능할까?

이 책은 “현대 과학에 대한 이해가 신에 대한 믿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은 저자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은 후 10년간 수많은 갈등을 극복하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 만한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 과정이기도 하다. 과학 선진국인 미국에서, 전 국민의 3분의 2가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판단을 유보했다. 저자는 모든 생명과학의 토대가 되는 진화론을 하느님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일부 종교인들의 태도는 제 무덤을 파는 몰상식한 행태라고 지적한다. 또한 창조론, 지적설계론도 어설픈 근거로 유신론을 옹호하는 바람에 무신론자들의 비판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과학을 부정하든 과학을 적극 이용하든, 이들 모두가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과학과 종교 간의 불필요한 불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랜 시간의 통찰과 경험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다음 여섯 가지의 전제를 제시한다.
1. 우주는 약 140억 년 전에 무에서 창조되었다.
2. 확률적으로 대단히 희박해보이지만, 우주의 여러 특성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적합하게 짜여졌다.
3. 지구상에 처음 생명이 탄생하게 된 경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단 생명이 탄생한 뒤로는 대단히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와 자연선택으로 생물학적 다양성과 복잡성이 생겨났다.
4. 일단 진화가 시작되고부터는 특별한 초자연적 존재가 개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5. 인간도 이 과정의 일부이며, 유인원과 조상을 공유한다.
6. 그러나 진화론적 설명을 뛰어넘어 정신적 본성을 지향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성이다. 도덕법(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이 존재하고 역사를 통틀어 모든 인간 사회에서 신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그 예가 된다.

이 여섯 가지 전제를 인정한다면, 얼마든지 있을 법하고 지적으로 만족스러우며 논리적으로 일관된 통합체가 탄생한다. 이런 견해는 과학이 자연계에 관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모든 사실과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다. 또 세계의 주요 일신교들과도 양립 가능하다. 물론 유신론적 진화라는 관점 역시 다른 어떤 논리적 주장과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 신을 믿으려면 항상 신앙이라는 도약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종합적 견해는 신앙을 가진 수많은 과학자에게 만족스럽고 일관되고 영양가 있는 관점을 제공하며, 이로써 과학적 세계관과 영적 세계관이 우리 안에서 즐겁게 공존한다. 이 관점은 신앙을 가진 과학자들을 지적으로 충만하고 정신적으로 생기 있게 만들며, 신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신의 창조물이 지닌 놀라운 신비를 벗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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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정말 잘 쓴 책이다. 저명한 과학자 프랜시스 콜린스는 그가 왜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들, 그러면서 영적 세계에 끌리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_데즈먼드 투투 주교

“명쾌한 과학적 설명과 개인적 사색이 어우러진 콜린스의 이야기에는 지적, 영적 솔직함이 녹아있다.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과학적 지식과 화해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사람, 현대 과학이 종교적 신념의 심장부를 강타한다고 걱정하는 사람,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다룬 수준 높은 토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기 바란다.” _윌리엄 D. 필립스, 199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문화 전쟁으로 얼룩진 오늘날의 세계에서 과학자가 신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기는 참으로 드문 일이다. 하물며 그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과학과 영성을 결합한 명쾌하고 호소력 있는 증언은 과거 전례가 없다. 『신의 언어』는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의, 진실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책꽂이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 할 책이다.
_로버트 H. 슐러 박사, 크리스탈교회 설립 목사

“지난 10여 년간 나는 성실한 가족 구성원이자 사람들을 사로잡는 재치를 지닌 재능 있는 음악가 프랜시스를 존경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 책이 주장하는, 지적 진실을 담고 있고 영적 세계에 기반을 둔 신과 과학의 화해는 우리가 고민하는 심오한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깨우친 바가 크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가 분명하다.” _나오미 주드, 가수

『신의 언어』는 세계적인 과학자의 호소력 있는 신앙고백이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독자들에게 믿음과 이성을 아우르는 지식의 통합을 요구한다. 그가 증명해 보이듯 믿음은 과학적 이성의 적이 아니라 완벽한 보완물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총감독인 그가 들려주는 호소력 있는 개인적인 증언은 어떤 이에게는 놀라움을, 어떤 이에게는 기쁨을 줄 것이다.
_케네스 밀러, 브라운대학 교수,『다윈의 신을 찾아서』의 저자

시기적절하고 예리하다. 콜린스는 진화론을 이해하면 믿음에 방해가 되기는커녕 우주가 더없이 독창적이고 오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_폴 데이비스제,『5의 기적 : 생명의 기원』의 저자

호전적 무신론에서 창조자를 향한 절대적 믿음을 지닌 영적 세계관으로 옮겨가기까지 자신의 감동적인 여정을 공개한 탁월한 책이다. 내면에서 과학과 신앙이 어떻게 화해하게 되었는가를 더없이 간결하고도 명료한 언어로 설명했다. 한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다. _아맨드 니콜라이,『루이스 VS 프로이트』의 저자

프랜시스 콜린스는 세상에는 변증론의 여지가 있음을 증명한다. 그는 신이 단지 존재할 뿐 아니라 활발히 활동한다는 세계관의 과학적 정당성을 대단히 읽기 쉬운 글로 설명한다.
_토니 캄폴로, 이스턴대학 교수,『내 마음을 고백하며』의 저자

프랜시스 콜린스는 신과 과학의 공존 가능성을 아주 특별한 개인적 증언으로 이야기한다. DNA가 신의 설계도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그의 개인적 믿음은 가슴에 와 닿는다.
_뉴트 깅그리치, 정치인

세계 최고의 유전학자가 과학에 대한 열정과 개인적 신앙 이야기를 풀어놓은 뛰어난 책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슴에 와 닿을 이야기다.
_알리스터 맥그래스,『도킨스의 신』의 저자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과학과 신앙의 대립이 가져오는 혼란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진실을 추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신앙과 과학이 서로 공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 손에 쥐어진 연필’인 그는 대립의 전장에서 이해와 화해를 써내려간다. _더글러스 코, 종교지도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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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분포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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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가 진화는 사실임을 알려줬다면 콜린스는 진화론이 무신론이 아님을 일깨워줬다. 나와 신학에선 입장차가 있는듯하나 매우 훌륭한 저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교회에서 할 수 없는건 슬프다.  구매
황회장 2013-01-04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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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에서 유신론적 진화를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한 유전학자의 담담하고 진솔한 신앙고백  구매
ferrone 2019-09-06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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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적 진화론자인 저자의 생각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책을 읽을 수있었다.  구매
거북이 2015-06-2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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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시각 그리고 신앙의 풍부함  구매
aratumdei 2017-02-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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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정서적 공감이 아닌 인지적 공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책임  구매
ㅅ 2011-01-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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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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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과 젊은지구창조론자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신의 언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마 성경 등과 같은 종교 경전일 것이다. 혹은 경전이 아니더라도 방언등과 같은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책 제목만 보면 이게 종교관련 책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랜시스 S 콜린스의 <신의 언어>는 이런 종류의 것과는 다르다. 그가 말하는 신의 언어는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 우리의 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어쩌면 우리의 정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 바로 유전자와 게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과학적으로 엄청난 일을 해냈으니, 바로 인간 게놈을 밝혀낸 일이다. 인간의 몸을 설계하고 있는 인간의 설계도를 밝혀냈다는 것 만큼 대단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이런 게놈프로젝트를 전두지휘한 인물인 콜린스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

보통 과학자와 종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리차드 도킨스이다. 철저한 무신론자이자 종교는 바이러스라고 주장하는 인물인 이 양반은, 어찌보면 현대인들의 머리속에 고정관념으로 박혀있는 사실, 과학=무신론을 제일 잘 대변해 주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콜린스는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철저한 기독교인이다. 그것도 무려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돌아서는 꽤 보기드문 경우를 가진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근 27년간을 무신론자로 살다가 유신론자로 개종한 경우인데, 그 이유도 지금까지 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무신론자로 있는 것이 과학자로서 바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서 찾아보니 신은 존재하더라~~ 라는, 실로 과학자스러운 방법으로 종교인이 된 경우이다.

여기서 잠깐 다시 보통 사람의 고정관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과학자이면서 종교인, 그것도 기독교인이라면 젊은지구 창조론자가 아닐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매일 보는 기독교 과학자라고는 어디서 허튼 수작을 하고 다니는 양반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콜린스의 입장과는 틀리다. 그가 창조론자라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는 진화론을 인정하는 창조론자, 즉 유신론적 창조론을 믿고 있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 광활한 정보가 넘쳐난다는 인터넷에서 지금까지 만나본 유신론적 진화론자라고는 딱 2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외의 사람들은 철저한 무신론적 진화론자이거나, 혹은 철저한 젊은지구창조설자이거나 둘 중 한명이었다. 그런데 뛰어난 과학자가 스스로 유신론적 진화론자라고 책을 쓰다니...


책의 내용은 자신의 자서전과 비슷하다고 할까, 아니면 기존의 과학서적에 종교적인 관점의 성찰이라고 해야할까... 여기서 밝히는 과학적 내용은, 자신의 게놈프로젝트가 어찌어찌 시작되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으며, 유전자란 뭐고 dna란 무엇이라는 등의, 어찌보면 많이 볼수 있었던 내용이다.(내가 이렇게 간단하게 쓰는 이유는 그 부분이 기억나지 않아서 그런거는 결코 아니다... 정말로.)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이라면, 우선 무신론=과학이라는 공식을 타파하면서 동시에 창조론자들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는지 종교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지적설계론을 창조론과 별개로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인 부분이다(물론 지적설계론이 왜 과학과는 거리가 먼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만약 자신도 종교인인데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관련 과학자들만 보기에 괴롭다면, 콜린스의 저서 <신의 언어>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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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2010-04-11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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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언어를 읽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어?"

"하나님이 만드셨지~"

"에이, 그건 교회에서 하는 소리고, 실제는 어떻게 만들어졌어?"

"......"

  몇년 전,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그 아빠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진화론을 배우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은 과학과 거리가 먼 옛날 이야기 취급을 받습니다. 화가 나는 일이지요. 그런데, 솔직히 아니라고 소리높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학적 증거라는 것을 들고나오는 사람들에게 성경말씀을 들이대봐야 웃음거리만 되지요. 

  어느날, 창조과학회라는 곳이 나타났습니다.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모여서 성경말씀이 과학적으로도 완벽하게 맞다고 주장하면서 지구의 역사는 6000년 정도이고, 방사선 동위원소니 하는 것도 오류투성이이며, 진화를 입증할 수 있는 화석의 연결고리는 없다고 주장했지요. 책을 쓰고 교회를 다니며 강연을 하고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단체로 관람을 가고 (특히 학생들을 보냈지요.) 설교에서도 많은 목사님들이 창조과학회에서 한 이야기를 인용해서 성경도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면서 목소리를 높이셨지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창조과학회의 주장들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더 많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주장이 명확하고 과학적 증거가 확실한데 왜 아직도 진화론이 대세인 것일까요? 정말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사탄의 속임수에 놀아난 것일까요?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모두 창조과학회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구과학자나 생물학자 중에는 크리스천이 없다는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확실히 믿지만,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창조를 믿으면서도 지구의 나이는 수십억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창세기의 천지창조에서 말하는 '하루'가 지금의 하루와는 길이가 다르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진화를 이용하셔서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의견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의견을 펼치는 책입니다.

  2003년, 10여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31억개의 유전자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라고 불린 이 프로젝트를 맡아서 지휘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프랜시스 S. 콜린스박사입니다. 그리고 그는 독실한 크리스쳔 과학자입니다. 그런데 진화를 거의 다 인정하는 크리스천입니다! (창조과학회의 의견만 옳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시기에는 가짜 크리스쳔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과 신앙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따라가면서 현재 나타나 있는 의견들을 요약하고 반박합니다. 간단하게 분류해보자면 - 1. 무신론  2. 창조론  3. 지적설계론  4. 바이오로고스(유신론적 진화론) 입니다. 저자는 진화론이 바로 무신론으로 연결될 수는 없으며 따지고 보면 무신론이 가장 불합리한 주장이라고 외치고, 창조론은 과학적 증거들을 너무 무시한다고 공박합니다. 지적설계론에 대해서는 몇가지 반론을 제기하지요. 저자는 결국 유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하는 것인데요, (용어 자체가 신기하지 않습니까? 유신론이면서 진화론을 인정한다구요!)  저자가 지지하는, 지구 및 생물 탄생에 관한 유신론적 진화론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1. 우주는 약 140억년 전 무에서 창조되었다.

 2. 우주의 여러 특성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정확하게 조율되어 있다.

 3. 지구에 처음 생명이 나타난 메카니즘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생명이 탄생한 후에는 대단히 오랜 세월을 걸쳐 진화와 자연선택으로 생물학적 다양성과 복잡성이 생겨났다.

 4. 일단 진화가 시작되고부터는 초자연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

 5. 인간도 이 과정의 일부이며, 유인원과 조상을 공유한다.

 6. 그러나 진화론적 설명을 뛰어넘어 영적 본성을 지향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성이다. 도덕법(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이 존재하고 역사를 통틀어 모든 인간 사회에서 신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그 예가 된다.

  어휴.. 너무 쇼킹하지요? 기독교인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니요! 결과적으로 이 진화론적 유신론은 창조론과 무신론 양쪽에서 얻어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꽤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요.

  그럼, 저자는 어쩌다가 크리스천이 된 것일까요? 모태신앙으로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지울 수 없어서 과학에 억지로 하나님을 붙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는 대학생때까지는 오히려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그의 논리에 굴복합니다. 그 논리란 도덕법이었습니다. 즉, 모든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 마음 속에는 이상하게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 비슷한 감각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진화론이나 문화적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결국 아마도 우주의 밖에 있는 신이 우리 내부에 심어놓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접하고서 저자는 신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덕법으로 추정해 보건대 그 신은 신성하고 정의로운 분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런 생각이 들자 이제 그의 내면에서 두가지 감정이 싸우게 됩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편안함과, 신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절망감이었지요. 그리고 이제 '죄인'이라는 말이 자신에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방황하며 성경, 특히 복음서를 계속 읽어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결국 어느날 아침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저자는 신앙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주장과, 과학의 진실을 터무니없이 거부하는 종교인의 주장을 모두 반박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믿음이 서로 모순되지 않게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그리고 마침내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진화(?)하는 영적 여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주 탄생이나 생물진화에 대해 저자의 의견이 절대적인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실 우주니 생명이니 하는 영역은 너무도 방대하고 심오해서 아직도 밝히지 못한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계속해서 연구하고 입증하는 것이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과학과 신앙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냥 과학과 신앙을 아예 분리시켜서 생각하거나, 과학을 부정하고 신앙만 인정하면서 살았거든요. (사실,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몇년 전에 어떤 전도사님에게 비슷한 책을 추천했다가 '쓰레기같은 책'이라며 펄펄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있거든요.)

 

  책 말미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며 영적 세계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권유하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새로운 사실을 잘 이해도 못하면서 과학적 관점을 공격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리고는 과학과 영적 세계 사이의 전쟁에 휴전을 선포하고 위대한 진리를 지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두루 만족스럽게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을 찾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이제 조금 더 편안하게 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과 신앙을 굳이 배타적으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과학적 세계관과 영적 세계관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대답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서로를 보완하는 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두 개의 세계관을 통합하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사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으며, 과학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밝히는 작업이니까요.

 

   이제는 중학생이 되었을 그 아이의 아빠에게 이 책을 권해야겠습니다. 아이와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보라구요. 설마, 또 '쓰레기책'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겠지요? ^^

capduck 2014-08-12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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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메세지는 우리의 몸 그 자체이다..


신의 언어 [THE LANGUAGE OF GOD, Francis Collins 2007]

인류 최초로 31억개의 유전자[DNA]서열을 해독, 우리 몸의 지도[게놈: Genome]를 완성한 세계적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의 화제작!
철저한 무신론자 과학도가 인간의 DNA를 연구하며 얻게 되는 신[神]의 존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의 흥미로운 과정.
이 책이 출간된 후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무신론자 Richard Dawkins는 "프랜시스 콜린스와 같은 모범적 사례를 볼때, 종교와 과학의 공존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찬조출연 :내 친구 E.T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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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2012-03-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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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신의 언어 새창으로 보기 구매
[신의 언어](프랜시스 S. 콜린스, 김영사)

내가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고등학생 때였다. 그전까지 성경을 신화로 이해했다.-파울러의 [신앙의 발달단계]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이들이 처음 신앙을 받아들일 때는 신화, 이야기로 이해한다. 그냥 이야기에서 신앙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성경을 이야기로만 가르치는 교회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중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새벽나라] QT집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청소년 QT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릴 때 아빠가 [예수님이 좋아요]라는 초등학생용 QT책을 종종 사주셨는데, QT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QT책을 그저 읽기만 했던 터였다. 그렇게 친구를 통해 [새벽나라]를 알았고, 직접 구매해서 읽었다. [새벽나라]에는 창조과학회에서 다룰 만한 내용을 다룬 꼭지가 있었다. 욥기에 나오는 큰 하마가 공룡이라는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때부터 성경을 신화로 이해하는 단계를 벗어난 것 같다. 그 꼭지를 읽으려고 [새벽나라]를 구매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야후에 있었던 ‘창조론과 진화론‘ 게시판에서 활동했다. 고등학생 때까지의 성경지식과 과학지식으로 진화론 옹호론자들에게 반박(?)했다. 내가 알던 지식의 깊이가 얕아서 제대로 반박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도 다음 카페에서 ‘창조론과 진화론‘ 토론(?)을 잠깐 했다. 이번에는 곧 시들해졌다. 깨달은 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대학생 때 ESF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실존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give&take‘의 하나님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서평에서 내 신앙의 여정(?)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의 독서모임 때문이다. 독서모임에서 진화론과 성경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진화론과 성경이 충돌하는 지점 때문에 교회를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회를 떠나기로 이미 마음을 먹은 상태에서, 이유만 그렇게 댄 것뿐일 것이다. 자신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다른 예로, 신유의 은사로 병고침을 받아 믿은 사람은 그 문제로 다시 신앙을 버릴 수도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질병‘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마치 로렌스 크랩을 보는 듯하다. 크랩이 신앙과 상담을 조화시키기 위해 애썼던 것처렁, 콜린스도 신앙과 과학을 조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바이오로고스라는 말을 써가며. 그리고 글쓴이는 유전학으로 신의 존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가 궁금하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지금껏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인간은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나는 ESF에서 [길]을 공부하며 그 방법들을 배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적설계론, 글쓴이가 서술하고 있는 인간에게 도덕법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방법 등 다양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신이 있다고 증명하는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었고,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어려운 내용을 사용해가면서까지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었는지 글쓴이의 의도가 궁금할 뿐이다. 170-171쪽에서 굴드의 서평을 인용하며, 유명한 과학자 중에서 반은 신을 믿고, 반은 안 믿는다고 적었는데, 유명한 과학자를 언급한 것은 인간 이성에 호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보다 인간 이성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철저하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만 서술한다. 내가 보기에는 편협한 하나님이다. 신앙과 과학을 섞으려는 시도를 하며 성경을 과학과 같은 급으로 생각했다. 성경이 세상의 학문과 섞일 수 있는 학문의 일종인지 묻고 싶다. 인간 이성 수준이 그렇게 높은 걸까. 성경과 과학을 같은 선상에 두고 보는 것은, 성경을 과학책으로 읽으려는 시도 아닐까?
또, 이 책은 일반은총의 영역만을 다룬다. 즉,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여부에만 관심이 있다. 신이 존재한다는 증명은 개신교가 아니라도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범신론적인 분위기도 자아낸다. 현 시대는 신의 존재를 믿기만 해도 믿음이 있다고 여긴다. 신의 존재를 믿는 것에서 믿음이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상 넘어가지 못한다면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일까? 그렇게 따지면, 다른 신을 믿어도 똑같지 않나? 그래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류의 책은 독이 든 성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과 신앙이 대치되는 부분이 있다. 또, 심리학과 신앙이 대치되는 부분도 있다. 우리가 접하는 학문 중에 신앙과 대치되지 않는 학문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그런 점에서, 과학이 유난히 신앙과 부딪히는 것처럼 말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 이성과 신앙은 부딪히게 되어 있다. 믿음은, 그 이성을 뛰어넘는 일이다. 물론, 맹목적인 믿음은 배격한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유난히 동성애에 과격하게 반응한다.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려면 모든 죄에 민감해져야 하지 않을까? 성 문제가 있는 목회자의 뉴스를 쉬쉬하고, 우리가 평소에 저지르는 수많은 죄들은 회개하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면서, 동성애가 제일 큰 죄인 양 반응하는 게 참 이상하다. 마찬가지로, 진화론만 신앙과 대치되는 것인 양, 과학만 신앙과 대치되는 것인 양, 부분만 보는 시각이 아쉽다. 모든 학문(세계)을 대하는 기독교인의 자세가 어떠해야하는지 관점이 정리되어 있다면, 굳이 진화론에만, 동성애에만 국한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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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an 2021-10-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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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관의 유쾌한 공존.

프랜시스 S. 콜린스 저, '신의 언어'를 읽고.

군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던 나는 그 해 제대를 했다. 2000년도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었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진 놀라운 해였다. 세계적으로 10년이 넘게 투자된 Human Genome Project가 완성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그 해엔 네 종류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전체 약 30억 개 길이의 인간 유전체 서열이 모두 밝혀졌음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고 공개되었다. 우리 몸의 설계도 초안이라 할 수 있는 DNA로 이루어진 유전자 지도가 드디어 처음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 유명해진 제임스 왓슨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Human Genome Project를 끝까지 이끌었던 책임자로서 2000년 6월 백악관에서 열렸던 이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성을 축하하며 선포하는 감격적인 자리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옆에 서있던 사람의 이름은 프랜시스 S. 콜린스였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이다.

이 책은 전문 과학도서도 아니고 신학도서도 아니며 자서전도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진솔한 목소리가 곳곳에 잘 침투되어있어 이 모두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책이다.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어 Human Genome Project를 이끈 과학자로서,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를 거쳐 나와 같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고 살아내며 유신론적 진화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과학과 신앙 사이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커다란 간극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질문하고 답을 해온 선배로서의 프랜시스 콜린스를 우린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의 논리정연하면서도 진정성이 여과없이 드러난 필체는 덤이다.

생물학자인 나에게 그의 목소리는 이 분야를 앞서간 그 어느 누구의 목소리보다도 호소력이 있었다. 진지하게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 모두를 포함해서,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그의 진솔한 내러티브는 분명 하나의 빛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어두웠던 부분을 밝혀줄 것이다.

그가 이끈 프로젝트가 역사상 처음으로 밝혀낸 것은 인간의 모든 염색체의 뼈대가 되는 DNA의 염기서열이다. 그는 이를 감히 ‘신의 언어’라고 표현한다.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관여하여 어렵사리 밝혀낸 그 암호와도 같은 염기서열은 분명 현대과학과 지성이 일궈낸 쾌거일진데, 그 프로젝트 리더가 자신의 입으로 그 암호를 ‘과학의 언어’가 아닌, 종교적 색채가 단박에 드러나는 ‘신의 언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린 과학과 신앙에 대한 그의 입장을 잘 알 수 있다. 제목만 곰곰히 씹어봐도 우린 그 안에서 과학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잡음없이 공존하며 더욱 풍성하게 서로를 강화시키고 성숙시키며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그렇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생물학적 진화를 정의할 때 필수요소인 DNA 변화를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진화를 엄연한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는 동시에 그 진화의 정교한 메커니즘이 다름 아닌 신의 창조방법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그렇다. ‘유신론적 진화’라는 말이 주는 불완전한 뉘앙스 때문에 책에서 ‘바이오로고스’라 칭하자고 제안까지 하는 그의 관점을, 나도 한 명의 과학자이자 기독교인으로서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받아들인다.

엄연한 과학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만 하면 알러지 반응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여기거나, 진화나 과학을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거나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말해주고 싶다. 과학과 신앙은 충분히 함께 갈 수 있으며, 그 유쾌한 공존이야말로 원래의 자리이며 하나님의 섭리일지도 모른다고.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662?category=751509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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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고도를 기다리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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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를 기다리며 > . 

神이 존재한다거나 인간이 신의 일부라는 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만 '증거'라고 생각될 뿐이다. 
윤회가 '사실'이라는 '근거' 역시 윤회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근거'로 보이지 않듯이. 
다시 말해, '틀림없는 사실/진리라고 나로서는 믿어지는 내용'이라고 해서 그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사실'/'진리'라고 주장해 봐야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정도는 이해, 인정할 수 있어야, 최소한! 그 정도의 메타인지는 갖춘 사람이라야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소통이 가능한 합리적인 사람인 것이다. 

자신이 결백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떤 정치인의 '범죄' ('오류' 정도도 아니고)가 줄줄이 입증되어도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이나 희망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해당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유죄 사실을 일단 인정해야 그 후 형량이 과하네 어쩌네 하는 주장도 유의미해질 수 있는 것이고. 
 . 'Science(과학)'라는 단어의 어원이 라틴어 'scientia(지식)'라 하고, 아는 것을 안다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라고 공자는 얘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믿음'과 '사실'도 구분하지 못 해 자신의 믿음이 사실인양 전제하거나 자신이 뭘 믿고 있는지조차 인지 못 하는 사람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과학자'일 수 없는 것이겠다 

- 스스로 아무리 "나는 과학적인 사람!"이라고 천진하게 선언/주장/소망한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우열에 대한 논의가 가끔 보이는데, 훈련은 훈련으로서만 의의를 가질 뿐 그 어떤 전공의 그 어떤 학위나 직업도 그 사람의 과학성/합리성을 보장하지는 못 함을 페북이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증명한다.
 '믿음'과 '사실'의 구분조차 이렇게 어려운 것이 인간의 수준이니 더이상 뭘 바라겠나 싶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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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 매일신문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문화부 jebo@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1-07-21 

이순자

이글은 내가 62세에서 65세까지 겪은 취업 분투기다.

퇴근 시간이 가까운 취업창구는 한산했다. 담당자에게 이력서를 내밀자 이력서를 훑던 담당자 입꼬리에 묘한 비틀림이 스쳤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만면에 미소 짓고 대응하지만 내 눈엔 보인다.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무언의 압박.

"이력서에 있는 자격증 중 가능한 직종이면 좋고요."

"재능이 많군요. 자격증도 많고 그런데……"

자격증 시대지만 자격증의 우선 조건은 나이다.

"나이가 너무 많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거나요."

환갑을 넘은 취업지망생에게 자격증은 장식품일 뿐이라는 걸 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원이 뜸 들이는 동안 재빨리 내가 할 수 있는 업종의 경력을 나열한다.

"사실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전공이 문창과라 도서관에서 독서 지도나 글쓰기 수업도 가능하고요. 옛날에 어린이집을 몇 년 해서 아이 돌봄이나 방과 후 도우미도 할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 이십 년 이상해서 환자 돌보는 것도 가능하고 미술 문학 음악 상담 치료 쪽으로 1급 자격증 다 있어서 상담 치료도 가능합니다. 솔직히."

솔직히. 라고 말해놓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화려한 자격증을 열거해놓고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뭐하고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냐고 문책당할 것만 같다. 그동안 뭘 했을까? 먹고사는 걱정 없어 병원으로 복지관으로 봉사만 하고 다닌 게 잘못일까? 혼자가 되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내 탓이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요 몇 년 나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자격증이 책장 한 면을 도배할 만큼 준비했다. 어쩌면 현실을 직면하기 겁나 자격증에 몰두했는지도 모르겠다. 직원도 당황스러웠던지 험한 일 하실 분 같지 않으시네, 곱게 나이 드셨네. 라며 위로랍시고 몇 마디 거든다. 직원이 이력서를 들고 이렇게 많은 능력이 사장된다는 게 안타깝다고 애석한 표정을 짓는다. 연기 굿이다. 나도 안다. 너도나도 구직활동에 나선 초로의 구직자들의 아직은 대접받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걸. 그걸 적당히 다루는 방법도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다. 잔뜩 근심 어린 표정으로 혹시 청소나 단순 작업 같은 일도 하실 수 있겠냐고 공손하게 묻는다.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재고 따지고 할 여유도 없다. 이력서 용지를 주며 이력이나 경력이 화려하면 채용이 어려우니 다시 작성하라는 시청직원의 말에 얼른 순응한다. 어디까지 잘라야 하지? 두 장 빼꼭한 이력서를 내려다보다 이력서를 구겨버렸다. 롤러고스터다. 중졸 한 줄로 마감한 이력서를 받아 든 직원이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구인회사를 훑다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회사 위치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1)

물어물어 찾아간 P산업은 아현동 재래시장을 지나 몇 개의 골목을 돌아 막다른 골목 구석진 곳에 창고를 임대한 가건물이었다. 타이탄 트럭만 한 드럼 세탁기 네 대의 우렁찬 소리가 골목 어귀까지 들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수건 뭉치들 사이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검은 손이 재빨리 접히고 있었다. 사장은 가져간 이력서는 보지도 않고 나이부터 물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으세요?"

"아 네, 지금 당장이라도……"

"그럼 내일 아침 9시 출근하세요."

골목을 몇 개 돌아 굴레방다리를 지나자 바로 찻길이 나왔다. 갈 때는 멋모르고 물어물어 갔는데 나오다 보니 젊은 시절 직장동료가 살던 동네여서 길이 낯익었다.

첫 출근이라고 일찍 서둘렀는데도 아가씨들 앞에는 벌써 정리된 수건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도대체 몇 시에 출근한 건가? 외국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의 현주소다. 괜히 특별대접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수건 더미를 밀고 앉았다. 사장은 개어놓은 수건을 묶느라 정신이 없다. 바닥에 앉아 무한정 쏟아내는 수건을 접는 단순노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어깨가 아프다. 얼마 전 연골이 찢어진 무릎이 아파 수건 두 장을 말아 무릎에 고였다. 사장이 지나다 보고 웃는다. 이국의 아가씨들은 손을 재게 놀리며 저들끼리 뭐라 솰라대고, 나는 죽어라 속력을 내는데도 따라잡지 못한다. 종종 아가씨들이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바로 작업 시작이다.

저녁 6시가 되자

"일은 할 만하세요? 내일도 9시까지 오세요."

사장은 대답할 새도 없이 휙 가버렸다. 외국 노동자들은 퇴근할 기미가 없다. 나는 수건 더미 속에 처박힌 신발을 꺼내 들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에 삐진다.

"얼른 퇴근 하세요?"

"다들 퇴근 안하는데?"

맹하게 묻자, 외국 노동자들은 야근이라며 그냥 가라고 한다. 외국 노동자들은 어려 보였다. 잘해야 스물 남짓 되어 보인다. 오지랖 넓은 나는 타국에서 고생하는 어린 그들을 생각하며 밤새 잠을 설쳤다.



사흘째 되던 날, 등과 목 근육에 경련이 일어났다. 자주 일어나 목운동과 허리 들리기 운동을 했다. 사장이 물끄러미 쳐다보다 '빨리하세요.' 한마디 툭 던진다. 외출했던 사장은 퇴근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옆의 아가씨가 손으로 천천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말은 안 통했지만, 엄마뻘도 더 되는 내가 애쓰는 게 안쓰러운 모양이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뭔가 표현을 하고 싶어도 영어도 아닌 그들의 언어로 소통은 불가능했다. 아가씨들은 일하면서도 옆 사람과 무언가 계속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다. 타국에서 외로울텐데 다행이다. 일에만 열중해도 나는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아가씨들이 퇴근하라고 손짓한다. 딱해 보였던 모양이다. 사장이 없어 망설이다 아가씨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섰다.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린다. 굴레방다리 안에서 할머니가 호박잎을 팔고 있다. 노점상 할머니에게서 호박잎을 산다. 밥해 먹을 힘도 없는데 그저 할머니가 우중에 장사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다. 매사 이 모양이다. 이런 성격, 이것도 성격장애의 일종 아닐까? 지금 누가 누구를 배려 하나 싶다. 저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밤새 앓았다. 파스를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도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다. 첫 취업은 닷새 만에 끝났다.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나는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힘에 부쳐서 못하겠습니다. 그동안 일한 임금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xx은행 계좌번호 xxx-xxxx-xxxx-xxx 아무개'

나는 딱 하루, 한 시간에 몇 번씩 핸드폰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포기했다. 사장한테서는 영영 아무런 답도 오지 않았다. 일주일 이상 일하지 않으면 임금 지급 의무가 없다. 근로기준법을 잘 준수하는 사장을 원망하는 짓은 부질없는 짓이다. 파스와 버스비만 날렸다. 나 말고 다 외국인 근로자인데 나를 채용한 이유가 무얼까?

학력과 경력을 없애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을 버리니 취업은 쉬웠다. 역시 일자리센터 직원의 충고는 적중해서 한방에 백화점 청소부 자리를 얻었다. 나는 주문을 외웠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해야 한다. 나의 다짐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2)

첫날 지하 식품부.

아침 조회시간. 고객에 대한 친절 교육과 인사복창을 한 다음, 그날 일터와 청소에 필요한 용품을 배당받아 둘씩 짝을 지어준다. 짝꿍은 나보다 5살 아래였지만 손자가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오랜 경력을 쌓은 그녀의 일머리는 경이로웠다. 자그마하니 땅땅한 몸매를 어찌나 재게 놀리는지 미처 따라잡지 못해 대걸레를 질질 끄는 나에게 대걸레를 질질 끌면 cc tv에 찍힌다고 질겁했다. 걸레는 항상 앞으로, 알았지요? 그녀는 '항상 앞으로'를 대 여섯 번이나 복창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cctv에 찍힐까 봐 엔간히 겁이 나는 모양이다. '한 손은 대걸레 위를 꼭 잡고, 다른 한 손은 중간지점을 잡아 돌려가며 마포 질을 해야 깔끔하게 된다고요.' 설명은 쉬워도 막상 하려면 어려웠다. 신입 교육 잘못시키면 자기가 문책당하니 잘하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짝꿍 아줌마 수다가 시작됐다.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와중에 무심한 척 내 신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요 몇 년 혼자 조용히 살던 버릇이 들어있던 나는 죽을 맛이다. 육체를 놀리는 일보다 이야기를 듣는 일이 더 힘들었다.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여 장단을 맞추는 일, 감탄사를 섞는 일, 적당한 질문을 준비하는 일이 시를 쓸 때보다 더 골똘하게 한다. 그래도 열심히 분위기를 맞춘다. 결혼하고 삼십 오 년간 매일 하던 청소가 손에 익지 않아 짝꿍 아줌마 잔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정신이 혼미했다. 짝꿍 아줌마는 내 실수를 즐기는 것 같다. 청소전문가의 긍지려나. 변기 뚜껑에 입이 닿도록 코를 박고 변기 몸통을 닦고, 뚜껑을 닦고, 변기 속을 닦으면서 이 일로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중얼거린다.

때로는 중얼거림이 약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혼자 묻고 답하면서 청소 아줌마들의 신입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청소 아줌마들이 모였다. 계단 밑 공간에 라면상자를 깔고 둘러앉아 왁자지껄 수다가 시작되었다. 신입은 김밥과 사과로 내일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고 짝꿍이 귀뜸한다.



둘째 날, 1층

신입의 첫째 임무, 되도록 빨리 전 층을 돌며 백화점 구조를 익혀야 한다. 1층 엘리베이터가 가동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엘리베이터 문과 주변 벽을 닦는다. 엘리베이터 앞 휴지통도 손자국 하나 없이 닦고 액자나 팻말도 먼지 한 톨 없이 닦는다.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자 안쪽 문과 벽, 엘리베이터 짬 새를 손닿는 곳까지 닦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전에 순식간에 해치워야 하는 게 포인트다. 특히 층 표시는 지문이 많이 묻으므로 신경 써서 닦아야 한다고 짝꿍이 일러준다. 넓은 홀 마포 질은 청소 아저씨들이 청소차를 몰고 다닌다. 청소차가 신기해 돌아다보다 넘어질 뻔했다.

밖으로 난 대형유리창과 쇠창살은 양손을 동시에 휘둘러 닦는다. 어설픈 나는 자꾸 한쪽 걸레를 떨어트린다. 유리를 닦은 걸레로 홀 중간에 있는 소파를 닦다가 짝꿍에게 혼이 났다. 딴엔 시간을 절약한답시고 그랬는데 유리 닦던 걸레로 소파를 닦으면 유리에 먼지 앉는다고 성질을 부렸다. 백번 맞는 말이다. 청소도 요령이 있다. 백화점 청소는 집 청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청결을 요구했다. 고객들이 잠시 앉아 쉬는 소파를 걸레로 닦고, 건물 주변에 떨어진 것이 없나 확인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밥과 음료수와 사과를 사 들고 가 아줌마들이 있는 계단 밑 공간에 라면상자를 펼쳐 자리를 만들었다. 수다 삼매경이 한창일 때, 반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품부 채소류 냉장고 밑에 물이 떨어졌으니 어서 가보라는 불호령. 총 근무시간은 열 시간, 점심 시간과 쉬는 시간 합쳐 두 시간의 휴식시간이 있지만, 쉬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고로 눈치껏, 요령껏 몸을 쉬어야 한다. 매장을 한 바퀴 돌면서 마포 질을 하고 나면 숨이 차고 숨 쉴 때마다 명치와 가슴이 쪼개지듯 아프다. 지병인 심장병 탓이다.

요령껏 움직여야 하지만 요령이란 일이 몸에 익숙해져야만 가능하다. 더구나 나는 고관절과 퇴행성 관절염 골다공증을 합친 부실한 몸이다. 처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나는 몸만 힘들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뜰히 살림만 하던 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겪는 노동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집안일치곤 다른 집보다 4대가 사는 대가족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말이다.



셋째 날, 2층.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다.

"그렇게 약해 빠져서 이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게요."

여기저기 파스를 붙인 나를 보고 짝꿍은 못마땅한지 쫓아다니며 투덜거린다. 내가 부족한 만큼 자신의 일이 늘어나니 왜 안 그렇겠나 싶다. 그렇기는 해도 나보다 어린 그녀에게 종일 핀잔을 듣다 보니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했다. 화를 낼 일이 아니라 미안해할 일인 줄 알면서도 화가 났다. 힘에 부치니 입이 마르고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엔 오래 다녀야 한다고 최면을 걸어보지만. 점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고부터 현저히 체력이 떨어진다 했더니 세 시 반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잘 버티나 싶었는데 설마 오늘이 또 마지막 출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퇴근 시간에 반장이 내일은 쉬라고 한다. 그녀는 오랜 경험으로 신입은 사흘쯤엔 몸살이 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하루 푹 쉬고 영양 섭취하고 모레 보자는 반장 손을 덥석 잡고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정말 고마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구나 3, 4일에 한 번씩 쉰다고 했다. 나만 견디기 힘든 건 아닌 것 같아 위로가 됐다. 퇴근길에 소고기를 사 구워 먹었다. 몸이 견디려면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반장 말이 아니라도 견뎌내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넷째 날, 지하 슈퍼

하루 쉬고 났는데도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반장이 처음이라 몸이 적응하기 힘들 거라면서 지하 식품부로 구역을 정해줬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뜻으로 느껴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맥이 풀렸다. 식품부는 다른 매장보다 마포 질을 자주 해야 해서 체력이 달렸다. 한 시간 일하고 배가 고파 두유 두 개를 사서 짝꿍과 화장실로 들어가 얼른 마시고 나왔다. cctv에 찍힐까 노심초사했다. 마포 질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지만 워낙에 힘을 쓰지 못하는 나는 걸레에 끌려다니다 딱 걸렸다. 걸레에 끌려다니면 자국이 다 나는데 청소를 하는 건지 더럽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반장이 호통을 쳤다. 손발이 벌벌 떨리도록 해도 내겐 힘에 겨웠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 몸이 따라주지를 않아서"

"그렇게나 힘이 없는데 이런 일을 한다고 나섰어요?"

"그러게요."

반장도 어이가 없는지 등을 툭툭 두드리고 일단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십 분에 열 번도 더 시계를 쳐다보며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락커룸에 가자 반장이 다가왔다.

"어때요? 계속 할 수 있겠어요?"

"……"

"그동안 애쓰셨어요. 일이 힘들어서 하시기 힘들 거에요. 원래 하시던 분들도 그 나이엔 그만두세요. 괜히 병원 신세 지지 말고 쉬세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일주일 후 통장 확인하시고, 사무실 가서 퇴직순서 밟으시고, 근무 기간 짧아 퇴직금 없는 거 아시죠?"

"……"

반장의 말은 다 옳다. 내 입으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통장엔 정확히 사흘 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왔다. 휴무 날 임금까지 쳐서 들어온 금액을 한참 쳐다보다 세탁공장 사장이 떠올라 입맛이 썼다.



(3)

낯익은 전화번호가 떴다.

"건물청소 하실 수 있겠어요? 신규 입점하는데 매장 청소는 아니고 화장실과 사무실만 하면 되니까 백화점보다 쉬울 거여요."

벌써 백화점 그만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일자리센터였다. 요즘은 일자리 구해 주는 것도 실적인가보다. 그동안 육체노동으로 얼굴이 반쪽 된 나는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네 이력서랑 주민등록등본 사진 두 장 가져가면 되지요."

얼마 전 G마트가 망했다는 소문과 함께 L마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보다.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라 차비는 안 들겠다 싶어 기뻤다. 맥도날드를 통한 임시로 드나드는 문으로 들어서자 건물 안은 분진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다시 4층으로 내려오니 임시 사무실이 보였다. 건물 안에 들어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가슴이 조이고 아팠다. 남자 직원이 청소도구는 창고에서 알아서 갖다 쓰고 구역은 사무실 1층 현장직원용 남자 화장실과 화장실 옆 비상계단 1층부터 8층까지, 그리고 지하 2층부터 B 7층까지 주차장이란다.

"저 혼자 그걸 다 해요?"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다.

"할 거 없어요. 슬슬 쓰레기 보이면 줍고 화장실 물기 없게 닦고 계단 마포질 하시면 돼요."

남자 화장실 드나들며 화장지 채우고, 휴지통 비우고, 짬 짬이 8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포 질을 하는 일은 백화점일 보다 몇 배 힘들었다. 공사로 인한 분진으로 청소는 하나 마나였다. 싸 온 주먹밥을 사무실 귀퉁이에서 먼지와 함께 먹으며 눈물이 났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사 중인 지하 주차장은 어둡고 더러웠다. 나무토막, 시멘트 덩어리. 광고지, 껌, 과자 부스러기, 가래침까지. 혀를 빼 입술을 축이면 먼지가 씹혔다. 물 마실 곳조차 없었다. 1층 맥도날드 매장을 기웃거리다 GS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문 앞에서 한 병을 단숨에 다 마셨다. 지하 5층부터는 캄캄했다. 시멘트 작업만 끝낸 캄캄하고 넓은 공간은 으스스했다. 왠지 무서워 가끔 뒤를 돌아다보며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공사 중이라 엘리베이터도 운행하지 않았다.

지하 7층에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4층 사무실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직원에게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용역회사에 전화를 걸어 세 사람이 해도 못 할 일을 어떻게 한 사람에게 시킬 수 있냐고 항의하자 대충하지 그랬냐며 오히려 면박이다.



좀 쉬어야지 하는데 문자가 왔다. 일자리센터다. 이제 스토커 수준이다.

"병원 청소 해 보실래요?"

문자를 무시했다. 어째 기분이 묘하다. 일자리센터 직원이 자신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뺑뺑이 돌리는 느낌이다. 뉴스에 나오는 취업률이 진짜일지 의심스럽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을 한 달에 몇 군데씩 돌리면 취업률은 가파르게 오를 것이다. 세탁공장 사장이 떠올랐다. 며칠씩 일하고 그만두는 노인취업자를 쓰면 노 임금으로 일 시키고 절세도 되고 꿩 먹고 알 먹기 아닐까. 능력치대로 취업을 시켜야지 이렇게 무작위로 취업을 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탁상공론이거나 짜고 치는 고스톱,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이제 청소라면 신물이 났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어린이집 주방 선생님 구함' 광고가 보였다. 쉬어야지 했던 마음을 접고 전화를 걸고, 이력서를 챙기고, 사진을 챙기면서 이게 몇 번째지? 이번만은 좀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방 일에 '선생님은 무슨'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어린이집은 우리 집 길 건너 아파트 1층이었다.



(4)

원장은 나이가 좀 많으시지만 깔끔하실 것 같다며 한 달에 삼십 만원인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맙소사 한 달에 삼십이라니 아무리 세 시간 일이라 하더라도 주말까지 치면 시급 사천 원도 안된다. 주방 담당을 채용하는 일은 어린이집 개원 시 필수 항목이어서 할 수 없이 쓴다며 자기가 해도 충분하단다. 잠시 고민하다 노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나를 설득 시켰다. 어린이집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바로 아기들 간식 차려주고 간식 접시 설거지 후 점심준비에 들어간다. 11시 반, 밥 안칠 시간 전에 반찬 네 가지를 찌고 볶고 끓이고 정신이 없다. 손이 기계처럼 움직여도 시간이 부족했다. 사흘은 좀 힘들었지만, 평소 하던 부엌일이라 그런지 금방 적응됐다.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말끝에 문창과 출신인 걸 알게 된 원장은 시간 되실 때 아기들 이야기 할머니 수업 좀 하시면 좋겠다고 한다. 봉사로 하시면 보람 있지 않겠냐는 말에 어이없어 원장을 빤히 쳐다봤다. 저임금에 공짜로 아이들 수업까지 시키려 든다. 이럴 땐 그냥 무시가 답이다.

아이들 식단은 매주 주말 계획표와 나간다. 인쇄물을 보고 웃음이 났다. 골고루 영양밥에 반찬도 다채로웠다. 실상은 원장이 퇴근하며 들른 마트에서 그날, 그날 떨이로 재료를 산다. 식단 안내장 맨 밑에 메뉴는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별표까지 쳐서 집어넣은 문구가 함정이다. 보혐 계약서가 생각났다. 원장이랑 선생님들이 내가 해 주는 반찬이 맛있다고 하니 어쨌든 열심히 했다. 이제 나한테 딱 맞는 일을 찾았는데 문제는 보수가 최소 생활비가 안 된다는 것. 놀면 어쩌겠는가.

아기들을 보니 힐링이 되었다. 내 손주들 먹이던 생각이 나 일이 즐거웠다. 금요일 아기들 소방서 현장학습 가는 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이들이 먹을 걸 생각하며 초밥을 일일이 하트 모양으로 쌌다. 원장은 같이 가자 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쉬워했다. 가면 아이들 밥 먹이는 뒷바라지는 물론 아이들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급료는 코딱지만큼 주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부려먹으려는 원장의 속셈이 얄미웠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 만드느라 잠도 못 잤는데 굳이 현장학습까지 따라가 수발들 일은 없겠다. 나도 이제 세상인심에 조금씩 눈이 뜨이는 모양이다. 어쩐지 그게 또 서러웠다. 내가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아서.

일주일이 지나고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냉장고에 씻어놓은 지 오래되어 누런 쌀을 꺼내 밥을 하라는 원장과 의견이 부딪혔다. 손가락으로 쌀을 비비니 식혜 밥처럼 끈적거리면서 뭉개진다. 이 쌀은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쌀이다. 몇 번을 씻어도 이상한 냄새가 나서 밥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원장은 괜찮다고 자꾸 그 쌀로 밥을 하라고 요구했다. 괜찮다고 우기는 원장을 이길 수 없어 밥을 안쳐놓고 심란했다. 커피색 밥이 되었다.

원장은 그 밥을 14개월 된 자기 아이에게 보란 듯이 먹였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먹이라는 무언의 시위다. 선생님들이 불안하게 원장을 쳐다보다 식판을 들고 각자 담임 방으로 들어갔다. 8개월 영아부터 4살까지 아기들이다. 고등어는 신선도가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채소는 물렀다. 여기까지 인가보다. 굶어 죽어도 이렇게 아기들에게 부당한 일은 할 수 없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주방을 맡은 내 책임이기도 하다. 저 어린 아기들에게 이런 걸 먹이다니. 부모들이 알면 당장 잡혀갈 일이다. 집으로 오는 신호등 앞에서 문자를 보냈다.

'일 그만두겠습니다. 다른 사람 구하세요.'

원장은 이미 눈치챘는지 다른 말 없이 통장번호를 보내 달라고 했다. 교육청에 신고할까 말까 고민하다 그만둔다. 동네라 자주 볼 수밖에 없는데 껄끄러운 일이다. 마음이 불편했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라도 직언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선생님들도 직장을 계속 다니자니 쉽게 신고할 맘을 먹지 못하는 것 같다.



(5)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을 켰다. '아기 돌봄'을 입력하니 돌봄 무료 사이트가 나왔다. 신상정보와 함께 예전에 집에서 놀이방 했던 사진과 이야기를 올렸다. 일주일 후 11개월 된 여아와 집안일을 좀 해 줄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입주를 제시하며 보수는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나는 예민해서 남의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더니 아기 엄마가 저녁 시간에 면담을 요청했다. 예전에 어린이집운영 할 때 찍은 사진과 손주들 간식 조리 과정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나한테 신뢰감을 가지는 눈치다. 안방에서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머니 계시다는 말은 못 들어서 난감했다. 할머니를 도와줄 일은 없고 점심과 저녁만 드리면 된단다. 집에 어른이 계시면 여러 가지 할 일도 많지만, 어르신과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반갑지 않은 환경이다.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를 하게 됐다. 나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아기는 처음 보는 나를 보고도 낯을 가리지 않았다. 까다롭지 않은 아기여서 마음이 놓였다. 아기는 잘 따랐지만, 50펑이 넘는 집이라 첫날부터 청소와 집안일로 진을 뺐다. 이유식과 동화책을 읽어 주라는 아기 엄마의 요구는 들어줄 시간이 없다. 할머니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세끼 밥만 드셨다. 밥이나 반찬도 요구사항이 많았다. 할머니는 아기를 전혀 돌보지 않아 화장실 갈 때도 아기를 안고 가야 했다. 일하는 짬짬이 아기를 쳐다보며 마음이 아팠다. 하루 일해 본 나는 집안일과 아기 돌보는 일을 병행할 경우, 아기를 책임 있게 돌볼 자신이 없다. 아기 돌봄 비에서 청소 도우미 비용을 내가 지출하겠으니 청소 도우미를 쓰자고 제안했다. 아기 엄마는 집에 다른 사람 들이는 일이 신경 쓰이는지 난색을 지었다.

결국, 아기 엄마는 아기가 처음 보는 나를 잘 따르자 아기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것 같다며 청소는 자기네가 알아서 할 테니 아기만 잘 봐 달라고 사정했다. 이튿날부터 청소는 할머니가 하고 나는 아기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세끼 각기 다른 이유식을 정성껏 끓여 먹이니(지난번 이모님은 한꺼번에 많이 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일주일씩 먹였다고 한다) 금방 조리한 이유식이라선지 아이가 입맛을 다시며 잘 받아먹었다. 할머니는 아기가 이렇게 잘 먹는 거 처음 봤다고 좋아하셨다.

청소를 안 해도 할머니 점심과 저녁 준비, 세끼 이유식 준비, 빨래, 아기 목욕 등 바빴다. 가족들은 아기가 잘 먹으니 모두 좋아했다. 나도 아기가 잘 먹고 잘 노니 기뻤다. 나와 아기의 노는 소리가 거실 안을 가득 채웠다. 아기들은 몸으로 놀아줘야 좋아한다. 할머니는 청소하면서 아기와 뒹구는 내가 못마땅한지 툴툴거렸지만 못 들은 척 넘겼다. 아기는 할머니에게 잘 가지 않는다. 그동안 할머니와의 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손녀딸을 예뻐하기는 하지만 한 번도 안거나 업어주는 걸 본 적이 없다. 몸을 유난히 챙기셔서 각종 건강식품과 영양제가 싱크대 한 칸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아기가 칭얼댔다. 할머니는 전기를 아낀다고 거실 불을 껐다. 거실 등을 모두 켜자 다시 잘 논다. 아기가 있는 집은 밝아야 한다. 시력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성격에도 문제가 생긴다. 어른도 어두컴컴한 집에 있으면 우울증 걸린다. 아기들은 밝은 데서 밝게 키워야 밝은 성격으로 자란다. 냉장고를 다섯 대씩 켜면서 거실 불을 켜지 못하게 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냉장고엔 각종 곡식과 마른 건어물이 넘쳐났다. 집에서 밥 먹는 사람은 할머니와 아기뿐인데 냉장고 다섯대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기가 전날 잠을 못 자 아침부터 칭얼거렸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11시 반부터 낮잠을 잤다.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난 아기는 기분이 좋았다. 준비해둔 밤 이유식을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가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 목욕부터 시키자고 했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자 이유식 먹인 그릇 치우지 않았다고 할머니가 노발대발이다.

"아기 잘 때 뭐하고 주방이 이게 뭐요?"

이유식 먹인 아기 그릇과 수저 하나가 물에 담겨 있었다.

"아기 잘 때 다 치웠었는데 자고 나 먹인 그릇이에요. 금방 치울게요."

"저번 이모는 아기 잘 때 같이 자도 일 다 해 놓고 아기 일어나면 같이 뒹굴고 놀았는데 일을 도대체 하는 건가 마는 건가."

할머니는 청소 때문에 심기가 불편함을 이런 식으로 푸는 것 같았다.

"아기 잘 때 늘어 논 게 아니고 아기 일어나서 이유식 먹인 거라고요."

"뭘 잘했다고 말대꾸는, 어른이 말하면 네 다음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 것이지."

"그게 아니고 상황을 설명하는 거지요."

"상황? 이 상황을 보고 그런 말이 나와?"

"이유식 먹자마자 할머니께서 목욕시키자고 하셨잖아요."

"아기 잘 때는 뭐 했냐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거기서 맴돌고 있었다.

"할머니 제가 할머니와 지내는 게 힘들 것 같네요."

"뭐야 그만두겠다는 거야?"

"할머니 마음에 들게 할 수 없으니 저도 답답합니다."

"우리 집은 할 일 없어, 뭐 할 일 있어? 저번 이모는 맨 날 애기끼고 잠만 자더만."

그러니 아기가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냐고 하려다 말았다. 무슨 말이 먹히겠는가.

"저는 할머니하고 잘 지내고 싶은데 제가 능력 부족이라 아무래도 빨리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아기도 사람 자꾸 바뀌면 좋을 거 없고요. 저랑 정들기 전에 그만두는 게 좋겠네요."

할머니와 잘 지내지 못하리라던 내 우려는 정확하게 맞았다. 옛날 마음대로 식모 부리던 버릇이 몸에 배어있는 할머니와 나는 어차피 평행선일 뿐이다.

"이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네. 박카스 파는 것보단 이게 훨씬 떳떳하지"

"네? 박카스를 팔다니요."

"공원에 가면 얼굴 반반한 좀 젊은 5, 60대 할마시들이 할아버지에게 박카스 팔잖아."

"그게 무슨?"

"이런 눈치 없기는 자네처럼 얼굴 반반한 할마시들이 박카스 사세요, 하면 할아버지들이 오천원, 만원으로 몸도 산다잖아. 그것보다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어?"

"?……"

할머니는 딸에게 지청구 들을 생각에 아무 말이나 던졌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아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기 엄마가 달려오고 상황을 다 들은 아기 엄마가 당황하며 사과를 했다. 할머니가 같이 계시는 한, 똑같은 일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휘청거리며 아이 집을 나섰다. 할머니가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 잇자국과 함께 피가 베어 나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쇠망치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슈퍼에 들러 대용량 맥주 두 개를 샀다. 두통약을 꺼내 먹다 이쯤에서 생을 마감한들 아까운 생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파트는 정서향이어서 저녁놀이 지는 풍경이 일품이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하늘을 물들인 노을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와인 잔과 맥주병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풍경이 죽인다. 이 풍경 속에 죽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와인 잔을 치켜들자 맥주가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맥주에서 와인 맛이 날 것 같다. 베란다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오후 여섯 시 경이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자 자꾸 웃음이 나왔다.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살았던가. 밤새 싸우고도, 죽게 아플 때도, 남편의 바람으로 일주일 굶으면서도 식구들 밥은 악착같이 차렸다. 밥을 하는 일을 나는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을까? 35년 밥순이 마지막은 허망했다. 노을이 맥주잔 안에서 찰랑거렸다. 맥주를 마시며 부질없는 내 생에 자꾸 헛웃음이 났다. 미친 걸까? 미쳐가는 걸까? 이래도 저래도 좋다. 나를 여기서 끝낼 수 있어서 황홀하다. 약통에서 약을 꺼내 술 한 모금에 약 몇 알씩 털어 넣기 시작했다. 대용량 맥주 두 병에 소염제, 진통제, 두통약 안주는 술술 넘어갔다. 무엇이든 많이 먹으면 잠들지 않을까? 약이던, 술이던. 자 복잡한 인생이여 안녕! 약통 한구석에 있던 시신 기증서와 장기기증 증서를 식탁에 꺼내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먼지로도 남고 싶지 않다.'는 한 문장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날, 구차한 생 버리고 결단코 죽어버리겠다고 실행했던 그 일은 낌새를 알아챈 동창이 후배를 시켜 방해했다. 119와 경찰차가 오고 평소에 문을 잠그지 않고 살던 내가 겹겹이 문을 잠그고 실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불발로 끝났다. 베란다 창문을 잠그는 걸 깜빡해서다. 걸쇠를 채운 현관을 열 수 없자 119소방대원이 윗집 베란다를 통해 자일을 타고 우리 집 베란다로 진입했다. 동창이 그 일을 알아챈 것은 내가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부디 잘살라고 전화를 했단다. 난 기억에 없다. 이 동창은 시각장애인이어서 자기가 올 수 없으니 우리 동네 가까이 사는 친한 후배를 시켰다. 내가 많이 아픈 것 같으니 가보라고 했단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던 후배는 평소에 문을 잠그지 않던 현관문이 잠긴 걸 보고 느낌이 이상해 119를 불렀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경찰을 부르고 집에 들어온 후배가 나를 일으켜 앉히고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바짝 압박하자 술과 약들이 토해졌다. 이 후배는 간호사 출신이다. 몇 번의 토사로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자살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살면서 내 주변엔 사람이 참 많다. 먹이는 거 주는 거 좋아하고 얘기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다. 나는 어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려 했을까? 고생을 모르고 살아서? 라고 생각하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한 생각이 떠올라 억울했다. 각종 폭력을 세트로 휘두르는 남편은 사랑과 전쟁 드라마를 쓰라면 백 편도 쓸 수 있다. 아직은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치부여서 내어놓지 못한다. 내 아이들이 받을 상처 때문이다. 억울해도 함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짐을 쌌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언니가 비워둔 집에 임시로 살고 있었다. 나는 내게 베푼 언니에게 하마터면 큰 상처를 줄 뻔했다. 떠나는 게 옳다. 강화도로 가 무상거주자가 됐다. 강화도는 추웠다. 함께 사는 분들의 배려로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을 받으며 일단 생활비가 필요했다. 결혼한 아들에게 마지막 비상금을 털어주고 한 달에 오십 만 원씩 갚으라고 했다. 그걸로 생활비를 쓰고 교육을 마쳤다. 시골은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아 그럭저럭 견뎠다.

교육을 끝내고 실습을 한 요양병원은 김포에서 가장 큰 요양병원이었다. 2주일은 요양병원에서 2주일은 주간 보호 센터에서 실습을 했다. 호스피스 봉사를 장기간 한 덕에 실습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실습생보다 앞장서 일하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욕하는 날, 목욕실 앞에 어르신들 줄 세워놓고 목욕을 시키다 쓰러졌다. 뼈가 드러난 어르신들을 보면서 돌아가신 엄마의 뼈가 드러난 이마와 볼과 갈비뼈가 생각났다. 살이 없어 시퍼렇게 멍들었던 엉덩이도 생각났다. 그 모습에 내가 겹치면서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갑자기 목이 막히며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같이 교육받던 사람들은 그동안 열심히 앞장서서 일하던 내가 쓰러지자 어리둥절했다.

주간 보호 센터에는 거의 치매 어르신들이 오신다. 경증 치매 어르신이라 소통도 가능하고 오락도 가능하다. 낯을 잘 가리고 남 앞에 서지 못하던 나를 벗어버리고 어르신들 앞에 서서 노래도 하고 춤도 췄다. 포장된 나를 하나씩 벗어버리고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뛰어놀았다. 이전의 나를 기억하면 견뎌낼 수 없을 것이므로 이전에 할 수 없던 것들을 용감하게 하기로 작심했다. 그래 인생 이모작이다. 이제부터 예전의 나는 없다.



실습

주간 보호 센터에서 만난 두 할머니가 있다. 김 할머니는 말씀이 없는 조용한 분이고 노 할머니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노래와 춤으로 흥을 발산하는 할머니다.

김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 치매가 시작되어 아들 집으로 오셨다고 한다. 종일 말 한마디 없는 할머니께 나는 주로 몸으로 대화한다. 어깨를 안는다거나 두드리거나 주무르거나 두 손을 마주 잡고 일어서서 흔든다. 일부러 바짝 앉아 무릎과 무릎을 끼우고 장난질을 치기도 한다. 몸짓언어가 익어가자 가끔 할머니가 수줍게 웃었다. 체조도, 그림 그리기도, 노래도, 따라 하지 않는 할머니 옆에서 나는 몸으로 장난질을 친다. 할머니 옆에서 혼자 춤추고 혼자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혼자 노래를 부른지 사흘 만에 할머니가 먼저 내 팔을 톡톡 쳤다. 모른척하자 팔을 잡아 흔들더니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까 입에 넣어 준다. 간식시간에 준 사탕이다. 이제 됐다. 걸쇠가 풀렸으니 천천히 다가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다음날 할머니가 배탈이 났다고 오시지 않았다. 이틀 후 오신 할머니는 많이 초췌해지셨다. 눈으로 나부터 찾았다. 나를 보고 벌쭉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먼저 손잡아주고 먼저 등 두드려주고 먼저 무릎을 치며 장난을 걸었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처음으로 스스로 그림도 그리고 노래는 따라부르지 않아도 손뼉도 치고 나와 손잡고 춤도 췄다. 점심시간에 밥에 생선을 발라 올려 나 보고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먼저 드시라 하니 도리질 치며 '내해여, 내해여' 단호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는 주간 보호 센타 cc가 됐다. 원장님과 면담으로 할머니 사정을 알게 됐다. 치매로 혼자 시골에 계시는 게 위혐해 아들 집에 오셨는데 냉담한 며느리와 지내며 우울증에 걸렸단다. 평생 나고 살던 곳 떠나 낯선 곳에 처음 오신 할머니는 치매보다 우울증이 더 깊었다. 종일 말 한마디 걸지 않는 며느리와 한집에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드셨을까. 말씀도 안하고, 식사도 안하고, 그동안 아무리 선생님들이 애를 써도 마음을 안 열더니 이 선생님보고 마음을 연 것 같다며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어차피 나는 실습 끝나면 떠나야 한다. 이제 마음 열었는데 걱정이라는 원장님 말씀대로 나도 걱정이 됐다. 실습 마지막 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그날 처음으로 할머니는 나에게 살아온 긴 이야기를 하셨다. 어렵게 마음을 연 할머니의 눈동자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실습이 끝나 내일부터 못 온다는 내 말에 두 손을 꼭 잡고 결국 눈물을 떨구셨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시 한 수 지어봤다.

제목 : 내해여, 내해여

평생 땅만 바라봐서 / 땅하고만 이야기 할 줄 안다는 어르신 / 여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여

/흙 한줌 없는 곳이 어데 사람 살데여 / 아들 따라 낯선 동네 와보니 / 겨울바람처럼 쌩한 며느리 밥 / 그냥 목구멍에 처넣으면 죽기야 하련 / 밥을 퍼 넣다 혼절 하셨다던데 / 밥 위, 얹어드린 생선 토막과 나를 한참 쳐다보다 / 일주일 만에 처음 입 여셨다 / 샥시도 묵으야지 수저를 내민다 / 눈물 한 방울 얹어 밀어 넣자 / 내해여, 내해여 / 한껏 신명 나셨다 / 무엇이 내해일까? / 아무것도 내해인 것이 없었던 서울살이 / 병원 밥은 아들 밥이니 / 내해인 걸까? /아님, 할머니 마음이 내해인 걸까?

*내해여-내 것이여 라는 전라도방언

지루박 노 할머니는 흥이 많아 늘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 메이커다. 노 할머니와 전 할머니가 할아버지 한 분과 삼각관계가 벌어졌다. 할아버지를 두고 두 할머니의 신경전이 주간 보호 센터 가십거리 되었다. 할아버지는 노 할머니보다 음전한 전 할머니를 더 좋아하셔서 몰래 가방 선물을 했다가 노 할머니한테 들켰다. 성격이 화통한 노 할머니는 할아버지 앞에서 한바탕 춤을 추며 자신의 매력을 발산했다. 다시 한번 기회 주는 거니 나한테 넘어오라고 검지를 까닥거리며 춤을 추어 모두를 배꼽 빠지게 웃겼다. 여기도 치열한 한 세상이다.

제목 : 지루박 할머니

허리가 예전 같지 않아 박자를 놓친다며 / 앉아서 들썩들썩 춤사위 펼치는 노 할머니 / 노인대학에서 갈고닦은 실력, 20여 년이라며 / 이어폰 꽂고 간들간들 앉은뱅이 춤추다가 / 그것도 힘겨운지 까딱까딱 졸다가 / 겨우 5분 쪽잠 자고 일어나 / 이어폰 다시 꽂고 춤 삼매경 / 오 분 전, 지루박 가락 타고 어디 가셨다 / 생의 박자 놓친 걸까 / 신나게 지루박 차차차 스텝 밟으며 / 아~싸 머리 위 열 손가락 / 엇박자로 어깨 추임새 넣으며 / 인생 뭐 별거 있냐며 / 뒤로 갔다, 앞으로 왔다 / 제대로 즐기는 살아있는 시간



(6)

실습을 끝내고 요양보호사가 됐다. 첫 출근 한 집에는 청각장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쉬는 꼴을 못 봤다. 할머니가 넘어져 허리 수술을 받고 요양 보호를 받게 됐는데도 쉬려고 집에 있으면 밭에 일거리 두고 논다고 역정을 냈다. 당뇨가 심한 할머니는 깡마른 몸으로 땡볕에서 종일 일을 한다. 반대로 멀쩡한 할아버지는 가끔 보일러나 경운기를 살피는 일 외엔 하는 일이 없다.

할아버지가 볼일 보러 읍내 나간 날, 할머니께 조심스레 지금 할머니 건강상태가 일할 상황이 아닌데 밭일은 할아버지가 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시집올 때 친정이 찢어지게 가난해 입하나 던다고 땅뙈기나 있는 영감한테 시집와 이날 이때까지 나는 종이오 종. 밥 먹여주는 조건으로 귀머거리 영감한테 시집와 평생 땅만 파고 있다우. 오 남매 낳아 애들 키우며 밤낮으로 밭으로 논으로 살다 보니 몸이 이 지경이 되었고만. 자식들도 지 애비가 날 우습게 여기니 어미를 지들 수족처럼 부리는 하인으로만 여기는 것 같소. 팔자가 그런 걸 어쩌겠소. 여적지 내가 한일 노임이나 받아 나도 한바탕 여행이나 댕기다가 죽고 싶고만."

할머니를 돌보러 갔는데 돌봐 드릴 새 없이 일하는 할머니. 밭일 할 수는 없어 할아버지 밥해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보호자 일은 하지 않는 게 요양 보호 원칙이었지만 아픈 몸 끌고 종일 밭일에 매인 할머니를 위해 부엌일이라도 덜어드리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이곳은 아직도 1900년대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과 인천에 사는 자녀분들은 어머니의 이런 생활을 알고 계실까? 딸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몸 상태로 밭일 하는 건 무리이니 아버님께 말씀드려 좀 쉬시게 해 드리자고 했다. 어머니를 바꾸라고 하더니 긴 통화가 이어졌다. 얼굴이 빨개진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었지만, 전화기 밖으로 따님의 목소리가 격양되어 대충 짐작이 갔다. 요양사에게 어머니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오히려 어머니께 잔소리를 늘어놓는 모양이었다. 공연히 할머니 심정만 더 상하게 해 드려 죄송했다.

평생 돈 한 푼 만져본 적 없다는 할머니. 파마하러 갈 때도 할아버지께 허락받고 미용실에 전화 걸어 비용을 물어보고 준단다. 그래도 당뇨 검사는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해 주는 할아버지 마음은 무엇일까. 할머니가 건강해야 일을 더 부려먹을 수 있다는 욕심이 아니길 빈다. 여기서 일을 끝내면 한시다. 한시에 이웃해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더 돌보게 됐다.



(7)

아흔 살 김 할머니는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가끔 쌍지팡이를 짚고 마당을 산책하며 2층을 올려다보는데 정면으로 보는 게 아니라 흘깃 옆 눈으로 본다. 2층에 가시고 싶으시냐고 물으면 화들짝 놀라 다리아파 못 올라간다고 한다. 종일 사위가 일하는 헛간을 바라보거나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강아지에게 느닷없이 욕을 하며 지팡이를 휘두른다.

2층에 사는 딸이 반찬을 해오면 할머니는 늘 '안 먹어 너나 처먹어.'라며 역정을 냈다. 휴가철에 서울 사는 자녀와 손자들이 왔다. 얼굴에 빛이 나며 마중 나간 할머니 걸음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해 2층 계단 앞에 딱 멈췄다. 계단 앞에 앉아 할머니가 나를 손짓했다. 안다시피 올라가 현관문을 열자 딸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할머니가 털썩 마루에 앉자 거실에 둘러 앉아있던 자녀들과 손녀들이 뜨악한 표정이다. 누구도 할머니를 반기거나 마주나오지 않았다.

황급히 내려오는데 죄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다음 날 할머니는 천상에 다녀온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어제 먹은 음식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딸은 나를 불러 어쩌려고 올라왔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자녀들이 다녀가고 며칠 후부터 할머니가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밥상을 뒤엎기 시작했고 파리채로 나를 때리기도 했다. 창살 없는 감옥이다. 주위의 시선 때문에 요양원은 못 보내고 함께 지내는 건 싫은 자식들. 요양보호사 일하면서 보니 자식들이 부모에 대한 예의가 없다. 부모를 홀대하는 자식들 저들은 평생 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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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한테서 쌍둥이 손녀들을 돌봐 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강화도를 정리하고 성남 아들 동네로 이사를 왔다. 오자마자 센터를 찾아 일거리부터 예약해 놓았다. 쌍둥이 손녀들은 어린이집에서 오후 4시에 오니 그동안 일을 할 수 있다.

93살인 권 할머니는 60살 미혼 아들과 살고 있다. 이른 아침 아들은 문을 잠그고 외출하고 내 퇴근 시간에 맞춰온다. 명절이 지나고 할머니 얼굴에 생기가 돈다. 자식들이 선물한 과일이며 과자 등을 내보이며 자랑할 때면 꼭 어린아이 같다. 나를 붙들고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어렸을 적 이야기로 신이 난다. 내가 활동하는 3시간 내내 혹시나 자식 이름 하나라도 잊을세라 칠 남매 이름을 외우고 또 외우는 할머니.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손가락을 접으며 똑같은 이름이 되풀이 호명한다. 명절이 멀어지면 할머니의 기억도 퇴색되어가고 콱 죽고 싶다며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 식사량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할머니는 아직 화장실 갈 때 혼자 가시는데 혹시라도 들여다보면 불같이 화를 냈다. 어느 날 팬티를 갈아입다 팬티에 배변 덩어리를 본 할머니는 곧 식사 거부와 함께 몸져누웠다. 배뇨 장애는 어르신들이 가장 난감하게 여기는 마지막 보루다. 밤에 팬티에 실례를 한다고 아들이 점점 어머니에게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함부로 대하는 아들은 어머니 몫으로 나오는 기초생활비가 필요해 어머니를 요양원에 입소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아들은 매일 교회로 출퇴근 한다. 어머니 식사는 씹지 못한다는 핑계로 늘 배추에 된장 풀어 끓인 것이 유일한 반찬이다. 덕분에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지만, 종일 똑같은 말씀에 맞장구를 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날, 할머니께 폭력을 쓰는 아들을 말리다 그 일로 나와 크게 다퉈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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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이 장애인 활동 보조인 교육을 권했다. 요양 보호 자격증이 있으면 2주 교육 후 활동이 가능한데 요양 보호보다 급료가 많다고 했다. 요양 보호 일을 잠시 쉬고 교육을 받았다.

가까운 센터에 등록하자마자 바로 연결이 되어 정신장애 2급인 여자분을 돌보게 되었다. 이분은 말이 없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그저 웃거나 고개를 젓는다. 만난 지 일 년 다되어 가도록 우리의 대화는 내가 "비둘기가 많이 모였네." 하면 "비둘기", 산에 올라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 소리에 "새소리 참 맑지요." 하면 "새" 먼저 말을 거는 유일한 단어는 가끔 용변 볼 때 "화장실" 정도다. 아침 9시에 정신병원 데려다주고 오후 세 시에 데리러 간다. 세시부터 여섯 시까지 사회생활 적응 활동으로 나와 함께 움직인다. 우리가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보건소, 지하철역 지하상가, 우체국. 중앙시장. 세이브 존, 이마트, 동네 뒷산, 세 시간 동안 이곳들을 돌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용자는 의사 표현을 전혀 하지 않아 표정으로 뭔가 불편함을 알아채서 대처해야 한다. 항상 무표정이어서 특히 몸이 아플 때 난감하다. 아픔을 못 느끼는 건지 참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지 않아 곤란한 일을 몇 번 겪었다. 돌아다니는 것도 지겨울 즈음 이용자분에게 그림 그리기를 시켜보니 그림을 썩 잘 그렸다. 며칠 신나서 그리더니 갑자기 그림 그리기를 멈췄다. 강요하지 않고 같이 책도 읽어보고 뜨개질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몇 번은 열심히 하는데 세 번 이상 시키면 그대로 멈춤이었다. 영화도 보러 가고 요리도 같이 해 보고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하루를 보내도록 노력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왠지 녹녹지 않다. 내 학력을 묻더니 선생님이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평생 데리고 산 나만큼 잘 알겠냐는 말은 물론 수긍한다. 그러나 이용자를 위해 의논 차 꺼낸 말끝마다 '해 보시던지' 흥흥 콧방귀에 비웃음이다. 느낌이 이상해 출근 시간을 정확히 하자며 보호자 분이 원하는 시간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일찍 가서 혼나고, 어제는 늦게 가서 혼나는 날들. 나의 출근 시간은 항상 비슷하다. 8시 20분에서 30분 사이. 그러나 출근하면 어김없이 퉁을 놓는다. "왜 이렇게 일찍 와!" 또는 "늦게 오면 어떻게 해" 출근 시간 일정하지 않았냐고 항의했다가는 대문 앞에서 삼십 분 설교를 들어야 한다. 왜 화를 내는지 이유도 모르고 당하는 나는 죽을 맛이다.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니 나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노릇. 감기 걸려도 내 탓! 생니가 빠져도 내 탓! 하혈해도 내 탓! 살찐 것도 내 탓! 매일 매일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어 저녁이면 녹초가 됐다. 더구나 퇴근 시간을 멋대로 조정해 난감하게 한다. 근무 할당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을 채워야 급료를 받을 수 있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 어떤 때는 몸이 불편하다고 보름씩 출근을 못하게 하니 내 월급은 반 토막이 났다. 그렇다고 그분과 계약이 되어 있어 다른 분 일도 할 수 없다. 센터에서 정해준 시간을 가짜로 체크해 시간을 채우란다. 체크카드를 가지고 다니며 내 맘대로 체크하는 것은 불법이다. 걸리면 그동안 타 먹은 급료 다 토해내고 자격증 반납이다. 그게 아니라도 선뜻 내키지 않는 행동이다. 당신은 입에 지퍼 채울테니 일 안하고 돈 버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다 그렇게 했다며 바보 취급이다. 단호하게 그건 불법이라 할 수 없다고 하자 배가 부른 게라고 눈을 흘겼다. 이런 일 하는 주제에 잘난 척이라도 하는 거냐고 비웃는 어르신도 내가 보기엔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였다, 두 달 실랑이 끝에 센터에 보고하고 일을 그만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제일 오래 했다고 한다. 먼저 하셨던 선생님이 나를 보면 걱정스런 얼굴을 하셨던 이유를 알겠다. 어쨌든 그 이용자 때문에 일 년 동안 먹고 산 것은 사실이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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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호흡기 환자인데 급해서 그러니 잠깐 고정인원 배치할 때까지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과장님이 특별히 부탁하는 이유는 나는 남자환자는 맡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잠시만 맡기로 하고 보호자를 만났다. 수더분한 보호자는 첫 만남부터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오랜 투병 생활로 예민한 환자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보호자의 후덕한 인상으로 거절하기 힘들었다.

호흡기 환자라 침대 옆에 복잡한 산소 호흡기가 있다. 기계를 다뤄보지 않은 나는 겁이 났다. 이용자가 작동 방법을 아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유사시에 이용자가 혼절하거나 하면 응급처치를 내가 해야 한다. 기계 다루는 방법을 숙지해야 했다. 그런데 기계에 손만 대면 이용자는 예민해졌다. 일반 산소 호흡기와 달리 복잡했다. 산소 호흡기 옆에 식염수를 채워 넣는 기계가 있는데 수압에 예민하게 작동한다. 늘 수압을 체크하고 식염수가 줄어들면 채워 넣어야 한다.

아침에 출근해 이용자 거처를 청소하고 점심준비를 했다. 보호자가 점심때 먹을 밑반찬을 칸이 있는 사각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감사한 일이다. 나는 찌개나 국만 끓이면 되었다. 점심을 안치는데 이용자분이 밥물을 보잔다. 밥물 계량법을 설명하기 시작하더니 같은 말을 계속하다가 가만히 듣기만 하는 나를 보고 역정을 냈다. 밥물 교육을 삼십 분이나 받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반찬 할 때도 마찬가지다. 총각 때 자취를 오래 해서 음식을 잘한다는 이용자분의 이상한 조리법은 맞출 수가 없다.

이 이용자분의 눈은 종일 내 동선을 따라 다닌다. 세평 남짓 공간에서 이용자의 눈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묘연했다. 정면으로 바라보면 좋으련만 자꾸 곁눈질로 바라보니 더 이상하다.

족욕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발을 담그자 각질이 둥둥 떴다. 준비해 간 일회용 장갑을 끼고 때수건으로 발바닥이며 발을 문지르니 때가 둥둥 떠다녔다. 물을 세 번이나 갈았는데도 여전히 둥둥 뜨는 이물질들. 바가지로 물을 끼얹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마무리했다. 용품을 정리하며 개운하냐고 묻자 손을 내밀었다.

"왜 그러세요? 화장실 가실래요?"

손을 잡으니 일어날 생각은 없어 보이고 내 손을 조물락 거린다. 소름이 끼쳤다.

"거기는 내 발 닦아주며 어떤 느낌이 들어? 난 아무 느낌이 없어."

"내가 남자로 느껴져? 뭐가 느껴 지냐구? "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이거 성추행이에요. 이러시면 앞으로 케어 못 받으시니 조심하세요."

과장님과 면담을 요청했다. 이건 아무래도 성추행 전초전이다. 과장님은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니냐고 했다. 그 후로 발을 닦아 주는 일을 그만두고 그냥 수건에 따뜻한 물 묻혀서 닦아줬다. 최대한 신체 접촉을 피하고 싶어서다. 제 복을 찬 셈이다. 이용자의 시선이 나를 감옥에 가뒀다. 센터에서는 장기 근무자를 구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그 말은 이 이용자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이용자가 응급실을 두 번 다녀오고 점점 호흡이 나빠졌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기 화창했다. 이용자의 호흡이 이상 증상을 보이며 기계의 눈금이 정상보다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달려가 이용자를 안아 침대에 눕히려는 순간 내 허리를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경련 증상인 줄 알고 마주 안고 괜찮냐고 물어보다 기겁을 했다. 이용자의 손이 내 허리에서 엉덩이 쪽으로 내려오며 쓰다듬는 느낌에 소름이 쫙 돋았다. 손길을 뿌리치고 물러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만족한 미소가 드러나는 이용자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입술이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용자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혼란 속에 이용자 손을 잡으니 자꾸 앞으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앞으로 가니 아까처럼 또 허리를 끌어안는다. 잠시 생각을 해봤다. 분명히 기계에 이상 증상이 표시됐는데 도대체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흡에 이상이 와 힘들었을 텐데 이용자의 행동은 자살행위다. 이용자는 숨쉬기 힘들면서도 가까이 가면 또 허리를 더듬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던 것 같다.

"무슨 짓이에요? 이거 성추행이에요. 제 돌봄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용자가 손을 저으며 가라는 시늉을 했다. 얼굴이 백지장 같은 이용자를 두고 나와도 괜찮을지 갈등하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아 부들부들 떨며 센터로 향했다. 남자 이용자를 기피하는 이유는 거의 성추행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선생님들은 차라리 의식이 없는 분이 아니면 남자 이용자는 기피목록 1위다.

내가 돌봄 했던 이용자분들 중 좋은 분들도 많다. 때로는 고구마 한 개, 옥수수 한 개, 또는 알사탕 하나로 고마움을 전하던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열악한 환경은 너그러움보다 짜증을 유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숨이 깔딱거리면서도 성추행하는 이용자를 만나면 분노가 치민다.



요양 보호와 장애인 돌봄을 하면서 만난 이용자와 보호자 생활 수준은 대체로 낮았다. 대개 저소득층으로 기초생활 수급자가 태반이다. 또한, 교육수준도 낮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욕구가 뒤엉켜 있어 피해의식도 많다. 정상적인 소통이 힘든 부분이 많아 대화할 때 항상 조심스럽다. 그 반면 자신의 현재 위치가 사람을 부리는 위치라는 걸 지나치게 인식해 요양보호사와 장애인 돌봄 인을 하대하는 경향이 있다. 요양 보호법은 가족이 가족을 보살피면 요양 보호 자격증이 있어도 보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요양보호사를 쓴다. 그래서 보호자들은 없는 살림에 요양보호사가 받는 보수가 배가 아픈 것이다. 이용자가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하면 가족들은 우리가 이용자로 인해 벌어먹는데 뭐가 고맙냐고 화를 냈다. 어느 순간부터 이용자도 심심하면 그 이야기를 곶감 빼먹듯 한다. 그분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어쩐지 슬프다. 물론 그렇지 않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는 분도 있다. 요양보호법은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법이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임금은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부린다는 계급의식이 있다. 그래서 뜬금없는 갑질을 한다. 그런데 이 갑질이 왠지 짠하다. 물론 요양보호사나 장애인 돌봄인의 학력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학력 제한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 일을 위한 교육과 시험을 통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6개월의 교육과 실습은 하루 8시간씩 강행되고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



에필로그

내 나이 예순아홉, 내년이면 일흔이 된다. 늘그막에 먹고 살기 위해 학력과 이력을 속인 내 인생은 아이러니다. 결혼과 함께 시어른들 모시고 남매 낳아 기르며 한 번도 나 자신의 삶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 벌을 60대 초반에 톡톡히 치렀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온갖 일, 다 겪으며 그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명절이면 백 명의 손님을 치렀고, 시동생 결혼식 음식도 시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집에서 삼백 명 손님을 혼자 치렀다. 심지어 시 외삼촌 상을 당했을 때도. 그 집 딸과 며느리는 방안에 앉아 울기만 해 그 많은 손님 수발을 혼자 하느라 상 나던 날 쓰러졌다. 그때는 관혼상제를 다 집에서 했다. 하다못해 친척들 돌 백일 약혼식 결혼식까지. 시댁은 물론 시할머니 친정 시어머니 친정 일까지 불려 다녔다. 그곳의 내 역할이 내 한평생이었고 그 일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황혼 이혼으로 이 모든 역할이 해제됐다. 내가 지은 건물을 버리고 이혼을 택했던 이유는 오직 남편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대학생 남매를 데리고 나온 나는 이미 내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 들었다. 어쩌면 나를 찾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생 하고 싶던 문학 공부를 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나의 늦은 공부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보다 호구지책이 먼저였다. 취업 분투기가 나온 배경이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러니가 어렵다고 고백한 적 있다. 그러나 나의 삶이 아이러니다. 육십을 넘기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나의 직업 분투기는 치열했다.



일흔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이른이다. 이른(일흔) 前 나의 분투기가 이른(일흔) 後 내 삶의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경험이 글이 되었다. 기초 수급자가 되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기초생활이 해결되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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