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6

Namgok Lee ‘우사정(우리사회정의)’ 도대체 정의가 무엇입니까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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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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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사정(우리사회정의)’ 모임에 다녀왔다.
이 모임은 “요즘 모두 정의, 정의하는데 도대체 정의가 무엇입니까?”
“요즘처럼 주구장창 정의를 외치는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포악한가?”라는 물음을 가진 사람들이 작년 2월부터 시작한 모임이다.
나도 도법 스님과 조성택 교수와의 인연으로 이 모임에 참가하였다.

어제는 함돈균 교수의 발제가 있었고, 그에 대한 진지한 논의들이 있었다.
내가 공자의 말을 논어에서 자주 인용하다보니까 나를 ‘유학자’로 소개해서 그 소개는 빼달라고  했다.

나는 인문운동가로서 다만 공자의 시대를 넘어 들리는 지혜를 소개할 뿐, 유학을 비롯한 동양 고전들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60이 넘어 논어와 공자를 접하면서 크게 감동한 것에 불과하다.

어제도 ‘정의’와 관련하여 공자의 말을 소개했다.
<공자 말하기를, 
군자는 세상 모든 일에 옳다고 하는 것이 따로 없고 옳지 않다고 하는 것도 따로 없이, 
오직 의를 좇을 뿐이다.”                         (제4편 이인)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읽고 지나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정의’ 논의에 대해 정곡을 꿰뚫고 있는 말로 들린다.
첫째, ‘이것이 정의다’라고 단정함이 없이 출발한다.
둘째,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에 빠지지 않고 ‘오직 의(義)를 좇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둘의 사고방식의 중요함을 대부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현실을 보면 이 둘이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 드물다.

‘이것이 정의’라고 자기 생각을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이것이 정의’라고 단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이나 시세영합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단정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정의를 추구하는 ‘결합’을 2500년 전 공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지의 자각’이라는 인간 의식의 진화가 필요하다.
 <공자 말하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어오더라도, 텅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내어 끝까지 밝혀 가겠다.”                                                                    (제9편 자한)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


인간은 실체를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또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감각과 판단을 통해 실체를 인식할 뿐이라는 자각이다.
그래서 공자에게는 이른바 자기 생각과  다른 것을 이단(異端)이라고 공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극단(極端)과 단정(斷定)을 벗어나 실체에 접근하자는 것이다.
<공자 말하기를, “이단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 (제2편 위정)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그런데 이것을 ‘이단을 행하면 해로울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공자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유교(유학)가 국가 권력과 결합하여 사회의 정체를 가져온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지향해야할 목표의 하나가 '협치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 위한 인문적 토대를 위해 미미하나마 역할을 하는 것이 인문운동가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들이다.
어제를 돌아보며, 아침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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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재경
선생님.
감사합니다.
 · Reply · 2 y
김경일
정의란 이미 틀지워 진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사안이 생겼을 때
원래 없는 텅빈 양심에 의지하여 일의 형세를 두루 보고 판단한 생각같은 거 아닐까요?
정의를 실체화하면 꼭 이단논쟁이 일어남을 봅니다.
 · Reply · 2 y · Edited
박재명
김경일 고정된 것을 넘어서 오늘 지금 시대에 가장 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
 · Reply · 2 y · Edited
김경일
박재명 감사합니다
다만
범부는 텅빈 양심이 가려있어서 최적의 대안을 내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냈다해도 다시 그것에 갇힌다면
성인은 텅빈 양심에 바탕해서 사태를 파악하므로 최적의 방안을 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묶이지도 않는 것이 다른 듯 합니다
 · Reply · 2 y · Edited
박재명
김경일 최적의 길이라고 생각해도 살피고 논의하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것으로 봐도 될 듯합니다만...
 · Reply · 2 y · Edited
김경일
동감입니다
 · Reply · 2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