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8

불교언론-알기쉬운 불교교리-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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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불교교리-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이병욱 승인 2004.08.10


‘내가 옳다’는 어리석음이 성냄의 씨앗
요즘 나라사정이 지붕이 뻥 뚫린 집에 비가 세차게 들이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럴 때, 서로 잘 하자고 손잡고 만세 삼창을 불러도, 그거 가지고 과연 잘 될까 하는 의구심조차 일어나는 시점인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정치인이 서로에게 실망했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마치 가난에 쪼들리는 집안형편에다 믿음직한 자식마저 슬그머니 가출한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양보’와 ‘타협’을 먹고사는 ‘정치’라고 부르는 잡식성동물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군집하고 있는 ‘정치’라는 동물의 두 우두머리는 더 이상 ‘양보’와 ‘타협’을 주된 메뉴로 삼지 않겠다고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 짐승들이 자신의 ‘주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 아마도 이들은 한국에서는 멀지 않은 시기에 멸종될지도 모릅니다. 미래에는 외국 국회의사당에 살고 있는 이 ‘축생’을 수입하거나, 아니면 이 ‘네 발 달린 놈들’을 천연기념물로 보호하자고 캠페인을 벌리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불상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섭섭하다고 하는데 기인합니다. 섭섭하다는 것은 불쾌하다는 것을 부드럽게 표현한 말이고, 이는 결국 화가 난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안 해주니까, 나도 너에게 성을 낸다는 거죠. 이 때, 팔정도의 ‘정사유’의 ‘화를 내지 않음’이 불현듯 생각납니다.

그런데 화를 내지 말라는 가르침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 같습니다. 누구도 떠들 수 있는 내용일 겁니다. 이 한 세상 살면서 늘 웃으면서, 자애롭게 남에게 베풀면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그게 말같이 잘 안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실 간단한 것이 더 어려운 법입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단순의 극치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조절하기 힘든 감정의 험준한 바위가 나타나고, 때로는 분노의 계곡 물이 범람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움’이라는 낭떠러지 앞에서 로프에 매달려 올라가는 수고로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저 자신도 사실 남보다 화를 잘 내는 편에 속합니다.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내가 옳고 남이 나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저 스스로 느낀다면, 그 땐 속으로 삭이지 못하고, 겉으로·얼굴로·목소리로·몸짓으로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맹추’입니다. 그 때문에 늘 인심 잃고, 연신 허리 굽혀 싹싹 빌어야, 겨우 본전치기하는 일들이 저에게 가끔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빠져있나 하고, 곰곰이 곱씹어 보았더니, 그 원흉은 내가 옳다고 믿고 있는 데 있더군요. ‘성냄’이라는 더러운 잡초는 내가 옳다고 하는 어리석음의 씨앗에 기대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누군데 하는 생각이 깊이 잠복하고 있는 한, 아마도 화를 내는 것을 근본적으론 고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이것 저것 따지고, 이리 저리 머리 굴려보고,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아니면 덜 손해보는 길을 찾아서, 속에서는 분노의 화산이 폭발하고 평정심의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온유하고 화평한 듯이 처신하는 약삭빠름은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화를 내게 만드는 어리석음은 욕심의 비가 내려야 자라납니다. 욕심을 부리고, 그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은 자기 조절능력을 잃고, 흘러 넘치고 맙니다. 어리석음과 전면 승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어리석음에게 응원사격을 해 주는 욕심부터 다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바둑용어에 ‘맞보기’라는 말에서 어느 정도 단서를 잡았습니다. ‘맞보기’라는 건 동일하게 큰 자리가 두 개가 있다는 겁니다. 바둑을 두면, 실전심리는 이 자리도 두고 싶고 저 자리도 두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 가지고 남이 저 자리를 못 두게 하고, 나 혼자 다 둘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자세로 세상사에 임하면, 결국 화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방법은 인생의 ‘맞보기’를 알 수 있을 만큼, 길게 보고 크게 보는 안목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여유롭게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이라야 양보와 타협이라는 아름다운 동산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산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병욱/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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