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3

[김조년] 열린 맘으로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열린 맘으로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열린 맘으로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3.22 19:08  수정 2021.03.22 19: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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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맘에는 어떤 문이 있을까? 그 문은 쉽게 열 수 있을까? 한 번 닫으면 영원히 열리지 않고 닫혀 있는 문일까? 나는 내 맘 문을 때에 맞추어 잘 닫고 열까? 엉뚱한 때 열고 닫을까? 닫아야 할 때 열고, 열어야 할 때 닫을까?

사실 맘 문이라고 하지만, 한 번 닫힌 맘 문을 열기는 무척 어렵다. 또 열린 맘 문을 닫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맘 문도 꼭 닫혀만 있는 것도 없고, 늘 열려 있는 것도 없다.

맘 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집의 문도 어떤 때는 열고, 어떤 때는 닫는다. 사람이 나가고 들어올 때 열고 닫는다. 또 바람이나 공기를 받고 막을 때 또 열고 닫는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연세가 높은 증조할머니가 계셨다. 어리고 활발한 우리는 추운 겨울에도 펄럭거리며 문을 열고 닫으면서 들락날락했다. 때로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증조할머니는 ‘문 꼭닫고 살살 다녀라’ 하셨다. 어떤 때는,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날 때 어린 나는 따뜻한 이불을 덥고 오래도록 자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 또 할머니는 문을 활짝 열고 새바람이 들어오게 두라고 하셨다. 어떤 때는 그 바람이 차가우니 닫으라 하시더니, 어떤 때는 새바람이 들어오게 활짝 열어두라고 하셨다.

문은 언제 열고 닫는 것일까? 열린 그 문들은 얼마나 새바람을 불러 들였고, 닫힌 그 문들은 어떤 것들도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까?

시골에서는 밤이 되면 사립문을 닫았지만, 아침이 되면 언제나 활짝 열어 놓았다. 금줄이 쳐져 있지 않을 때는 언제나 누구나 쉽게 드나들었다. 사립문에 쳐져 있는 금줄, 그것은 참 신비롭고 놀라운 전통이었다. 모든 것이 다 통과되었지만, 외부 사람만은 들어가지 못하였다. 열려 있지만 닫힌 문이다. 물론 요사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집문은 옛날과 전혀 다르다. 단독주택이든, 다세대주택이든 모든 문은 꼭꼭 닫혀 있는 것이 보통이다. 닫혀 있을 뿐만 아니라 잠겨 있다. 항상 찍히는 사진기가 돌아간다. 이런 때는 열려 있어도 닫혀 있는 것과 같다. 서로가 믿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아주 놀라운 일이다. 언젠가는 모든 사람을 다 믿는다는 상징으로 문을 열어 두었겠지만, 오늘날은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뜻으로 문을 꼭꼭 닫고 잠근다. 이것은 맘 문이 그만큼 닫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맘 문이 닫히니 개인 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의 출입구와 집 문과 방문이 다 닫힌다. 답답한 시대다. 더욱 요사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문제로 모든 곳이 열린 듯 닫혀 있다. 나라와 나라를 오가는 문도 닫힌다. 그런데도 무사히 통과되는 것들도 많다. 문은 아무리 닫아도 열리고 또 아무리 열려고 하여도 닫힌 상태로 있기도 한다. 맘 문도 그러한 것일까?


 
문을 활짝 열어도, 시원하게 확 트인 넓은 들판이나 높은 산에 올라도, 또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가에 서 보아도 답답한 때가 많다. 어느 개인에게는 어려서부터 맺히고 쌓여서 풀리지 않는 어떤 응어리가 있어서 무엇을 해도 답답한 것을 풀 수가 없을 때가 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종족과 종족들 사이에 이루어진 긴 역사과정의 응어리들도 역시 풀리지 않고 꼭 막혀 있을 때가 참으로 많다. 그러할 때, 밖에서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일단 맘 문을 열고 보라고 한다.

사실 상당히 많은 것들에는 문을 닫아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들이 많다. 바람이 그렇고, 빛이 그러하며, 병균이 그러하고, 철새들이 그러하며, 맘이 그러하다. 문화의 흐름이 그러하고, 정신의 오고감이 그러하다.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요사이 내 맘에는 이른바 기축시대라고 하던 때 인류의 스승들이 말씀하셨던 것들이 암암리에 실현될 조짐들이 보인다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던 것들을 허물라는 말씀, 나라와 나라의 금이 거짓이라는 말씀,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순간과 영원이 한 점이라는 말씀, 깨달음의 거룩한 생활과 평범한 일상생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원수와 친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이런 것들이 지금은 생각이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다만 맘을 열고, 눈을 뜨고, 귀를 막지 않으면 보이는 현실이다.

내 맘을 닫게 하고, 눈을 감게 하고, 귀를 먹게 하는 것들은 확고한 진리인 듯이 보이고 배우고 믿어 왔던 이념들, 전통들, 규정들이다. 좋고 나쁘며, 예쁘고 미우며, 높고 낮으며, 빠르고 느리며, 아름답고 더러우며, 화려하고 지저분하다는 어떤 판단과 규정에 의하여 우리 눈을 뜨고 닫게 하고, 맘을 열고 닫게 하던 것들을 잠깐 옆으로 젖혀 두고 살펴본다면 상황은 전혀 달리지지 않을까? 열린 맘으로, 아니 맘을 조금 열고 보면 금방 새롭게 깨달아지는 세계가 아니던가? 맘을 조금 넓게 열고 보면, 우리는 한 세계, 한 역사, 한 하늘, 한 물, 한 바람, 한 빛 속에서 살고 있음을 금방 깨닫는다. 그렇게 보면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종교와 종교가, 정당과 정당이, 여와 야가, 예쁨과 미움이 한 가지를 향하여 함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열린 내 맘 속에서 이것들의 순수한 본질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될 일이 아닐까?

열린 맘으로 보면 허상과 실상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으니 허상에 매어 억울하게 살았던 맘 하나 같이 열면 어떨까? 열린 맘으로 보면 이것 속에 저것이, 저것 속에 이것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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