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2

알라딘: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알라딘: 중세의 가을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은이),이종인 (옮긴이)연암서가2012-08-15
원제 : Herfsttij der Middeleeuwen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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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본격화되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6세기경부터 중세의 유럽은 서서히 기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11세기경 이민족들의 지속적인 이동과 침입이 끝나고 이슬람 세력의 팽창이 주춤해져 유럽은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이후 13세기까지 부흥기를 맞이한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전성기를 지나 노쇠해지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단계인 14, 15세기를 '가을'이라고 규정했다. 전성기를 지나 쇠락해가는 시대라는 의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라는 의미로 '가을'인 것이다. 중세는 '대조'의 시대다. 빈자와 부자, 도시와 시골, 빛과 어둠과 같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들이 공존했고, 중세는 그 두 극단을 오가면서 역사를 만들어갔다.

역사에 있어서 암흑기라고 잘못 알려진 중세는 그 나름의 소박한 삶의 양식과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환상 등을 통하여 이미 그 속에 화려한 인본주의의 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가을에 열매를 맺듯, 자연스레 르네상스와 근대라는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하위징아는 거시적 접근 이외에도 기사도 정신과 성대한 입성식, 기마 시합, 종교적 신비주의와 금욕적 경건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목차


옮긴이의 말
네덜란드어 판 서문
독일어 번역본 서문
영역본 서문

제1장 중세인의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
양극단의 선명한 대비 | 처형의 행렬 | 순회 설교자들의 위력 | 눈물과 분노의 의식 | 중세 생활의 동화적 요소 | 군주들의 드라마 같은 삶 | 유혈 복수의 모티프 | 파당의 발생 | 중세인의 잔인한 정의감 | 자비와 용서의 결핍 | 죄악의 뿌리인 오만과 탐욕 | 중세인 마티외의 인생 전변

제2장 더 아름다운 삶에 대한 갈망
휴머니스트들: 자신의 시대를 칭송한 첫 번째 집단 | 데샹과 메쉬노의 우울한 시들 | 종교적 구원이 없는 멜랑콜리 |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세 가지 길 | 세 가지 길이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 | 귀족의 생활과 이상의 형식 | 꿈을 연출하는 귀족 생활 | 인생의 형식과 고상한 게임 | 사회적 관계의 형식화 | 형식의 위반은 용납되지 않는다 | 표준화된 형식의 필요성 | 사망 소식의 전달 방식 |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삶 | 미뇽주의

제3장 영웅적인 꿈
기사 계급과 부르주아 | 중세 사회와 제3계급 | 평민들의 고통 | 미덕과 평등의 두 사상 | 중세의 두 기둥: 기사와 학자 | 다양한 연대기 작가들 | 르네상스인의 명예 의식 | 기사도와 명예의식 | 아홉 명의 남녀 영웅들 | 기사들의 모범, 부시코 원수 | 장 르 뷔에이와 『르 주방셀』 | 기사도의 금욕 요소와 에로스 | 로맨스는 남성적 상상력의 결과물 | 중세 후기의 문화생활은 사회적 놀이 | 토너먼트의 에로틱한 요소 | 15세기의 파 다르므 | 기사단의 발생과 기원 | 황금양털 기사단과 기타 기사단 | 기사 서약과 놀이 요소 | 갈루아와 갈루아즈 | 잔인한 에롱(왜가리)의 맹세 | 유명한 페장(꿩)의 맹세 | 확산되는 고상한 생활의 형식 | 기사도와 십자군 운동 | 군주들의 1대 1 결투 | 사법적 결투 | 기사도와 현실의 괴리 | 전쟁을 미화하는 기회들 | 문학, 축제, 놀이의 영역으로 후퇴한 기사도 | 귀족-군인 생활의 재정적 측면 | 생활 형식과 실제 생활의 부조화 | 단순한 생활의 찬양 | 프랑스 휴머니스트들의 궁정 생활 비난

제4장 사랑의 형식들
에로틱 문화의 바이블, 『장미 이야기』 | 문학, 패션, 예의범절 | 결혼의 에로틱한 메타포 | 에로스의 형식 | 『장미 이야기』의 두 저자, 기욤 드 로리스와 장 드 묑 | 기독교에 저항하는 성적 모티프 | 『장미 이야기』에 대한 찬반양론 | 사랑의 궁정 | 사랑의 형식과 실제 생활 | 『진정한 사건의 책』: 황혼과 아침의 사랑 | 『라 투르 랑드리 기사의 책』 | 사랑의 놀이 요소 | 궁정 축제의 전원적 요소 | 여자들의 반격

제5장 죽음의 이미지
죽음의 세 가지 주제 | 먼지와 벌레 | 부패와 부패 방지 | 당스 마카브르 | 최후의 네 가지 것 | 파리의 이노상 공동묘지 | 죽음의 순기능에 대한 외면

제6장 성스러운 것의 구체화
이미지에 대한 지나친 의존 | 피에르 다이이의 개혁 주장 | 하느님과의 황당한 친밀성 | 성과 속의 혼재 | 성스러움과 에로스의 위험한 접촉 | 사교의 장소가 된 교회 | 성스러움과 욕설의 결합 | 종교를 거부하는 사람들 | 성인 숭배와 교회의 입장 | 중세의 요셉 숭배 | 성인들의 특화된 기능 | 하느님을 대신하는 성인들

제7장 경건한 퍼스낼리티
종교적 긴장의 강약 | 경건함과 죄악의 대비 | 과시욕과 신앙심 | 변함없는 종교적 낭만주의 | 샤를 드 블루아의 신앙심 | 어린 성자 피에르 드 뤽상부르 | 루이 11세의 성물 수집벽 | 카르투지오회 수도사 드니

제8장 종교적 흥분과 판타지
2원적 형태의 종교적 정서 | 각국의 데보티오 모데르나 | 일반 대중의 과장되고 위험한 신앙심 | 처녀성의 양면적 특성 |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적 표현 | 술취함과 배고픔의 비유 | 종교적 판타지의 부작용

제9장 상징주의의 쇠퇴
흐릿한 거울의 비유 | 상징과 상징되는 것 | 실재론과 유명론 | 상징주의의 기능 | 상징의 도식화 | 상징과 알레고리 | 알레고리의 진부한 의인화 | 심리 게임이 되어 버린 상징

제10장 상상력에 대한 불신
사물과 생각을 결합시키는 습관 | 개념과 맥락의 분리 | 지옥의 상상과 실천 | 죄악은 실체를 가지고 있다 | 상상력에 대한 불신 | 하느님에 대한 신비적 체험 | 하느님의 본질은 어둠 | 전례와 상상의 관계 |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아마 네스키리

제11장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사고방식
삶 속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 | 무외공 장의 루이 도를레앙 암살 | 속담의 기능과 도덕성 | 결의론과 놀이 | 형식주의와 경제적 이해 | 후기 중세인의 경박성 | 연대기 작가들의 독특한 부정확성 | 놀이와 진지함의 혼재 | 중세인의 미신을 바라보는 태도 | 마녀 사냥: 마법과 이단의 혼동 | 15세기에 이미 시작된 마녀 허구론

제12장 생활 속의 예술: 반에이크의 예술을 중심으로
그림과 문학의 차이 | 중세의 미술은 응용 미술 | 일상생활과 연결된 그림 |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혼재 | 축제의 기능 | 축제와 화가들의 역할 | 슬뤼테르의 예술 | 군주들의 입성 행렬 | 반에이크의 그림 <아르놀피니의 결혼> | 궁정 생활과 데보티오 모데르나 | 위대한 그림의 후원자들 | 15세기 그림의 특징 | 반에이크 형제의 자연주의 | 르네상스의 미술 사상 | 중세의 음악 사상 | 빛과 아름다움 | 의상의 색깔들

제13장 이미지와 말: 그림과 글의 비교
중세와 르네상스는 거울 이미지 | 중세 후기의 화가와 시인 | 15세기의 실패한 문학 | 반에이크의 <성모 마리아>와 <수태고지> | 15세기 문학의 무제한적 꾸미기 | 디테일이 우수한 15세기 미술 | 무제한적 꾸미기의 구체적 효과 | 15세기 산문의 대가 샤틀랭 | 선량공과 대담공의 부자 갈등 | 대화 처리가 뛰어난 프루아사르 | 문학과 미술의 자연 묘사 | 새로운 것이 없는 15세기 문학 | 사상의 결핍을 가려 주는 수사학 | 서정시의 형식을 확립한 마쇼 | 풍자와 조롱에 강한 15세기 문학 | 문학의 브뢰헬적 요소 | 문학 속의 아이러니 | 우울증이 스며든 에로티시즘 | 누드의 문제 | 정적인 하모니와 동적인 하모니 | 서로 구속하는 이미지와 아이디어 | 몰리네의 진부한 말장난

제14장 새로운 형식의 등장: 중세와 르네상스의 비교
르네상스와 중세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 소수의 라틴어 학자로 시작된 휴머니즘 |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 프랑스 휴머니즘과 이탈리아 휴머니즘 | 고전주의의 외피 아래에 깃든 중세의 정신 | 문학적 이교도주의 | 중세의 생활에서 들려오는 르네상스의 소리

주석
참고문헌
용어·인명 풀이
작품 해설 | 중세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요한 하위징아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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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세상이 지금보다 5백 년 더 젊었을 때, 모든 사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한 윤곽을 갖고 있었다.



P. 37 세상이 지금보다 5백 년 더 젊었을 때, 모든 사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한 윤곽을 갖고 있었다. 즐거움과 슬픔, 행운과 불행, 이런 것들의 상호간 거리는 우리 현대인들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먼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경험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새겨지는 슬픔과 즐거움처럼 직접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성격을 띠었다. 모든 사건과 모든 행위는 특정한 표현을 가진 형식으로 정의되었고 엄격하고 변함없는 생활양식을 엄숙하게 준수했다. 인간 생활의 큰 사건들인 탄생, 결혼, 죽음은 교회의 성사 덕분에 신성한 신비의 광휘를 그 주위에 두르고 있었다. 이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건들, 가령 여행, 노동, 순례 등도 다수의 축복, 의식, 격언, 규약 등을 동반했다. 접기
P. 39 중세에는 여름과 겨울의 대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했던 것처럼, 빛과 어둠, 정적과 소음의 차이도 아주 확연했다. 현대의 도시는 그와 같은 순수한 어둠과 진정한 정적을 더 이상 알지 못하며, 단 하나의 자그마한 불빛이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외로운 고함소리의 위력을 알지 못한다. 이런 지속적인 대비로부터, 그리고 모든 현상이 중세인의 마음에 새겨놓는 다채로운 형식들로부터, 중세인들의 일상생활은 치열한 충동과 열정적인 암시를 받았다. 그런 치열함과 열정은 거친 광란, 갑작스러운 잔인함, 부드러운 정서 등의 동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드러나는데, 중세 도시의 생활도 그런 격렬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어떤 한 소리는 언제나 바쁜 도시 생활의 시끄러운 소음을 제압했다. 방울들의 딸랑거리는 소리가 아무리 요란해도 그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결코 혼동되지 않았다. 그것은 잠시 동안 모든 것을 질서정연한 세계로 들어 올렸는데, 바로 교회의 종소리였다. 종소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상하면서 선량한 정령精靈의 역할을 했고, 그 친숙한 목소리로 슬픔 혹은 즐거움, 평온 혹은 불안, 집회 혹은 격려 따위를 선언했다. 중세의 사람들은 그 종을 ‘뚱뚱한 자클린(la grosse Jacqueline)’ 혹은 ‘롤랑의 종(la cloche Rolland)’ 등의 친숙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 종소리를 마치 이웃사람처럼 인식했다. 모든 사람이 그 종의 어조를 알아차렸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곧 바로 그 의미를 이해했다. 종소리가 아무리 남용되어도 사람들은 그 소리에 무심해지는 법이 없었다. 접기
P. 48 중세의 일상생활은 불타오르는 열정과 어린애 같은 상상력에 거의 무한정한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의 중세 전공 역사가들은 연대기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오로지 공식 문서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역사가들은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가끔 위험한 오류에 빠진다. 공식 문서는 중세와 근대를 구분해 주는 저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공식 문서는 중세의 저 열정적인 애수를 망각하게 만든다. 다양한 색깔로 중세의 생활에 스며들어간 여러 가지 열정들 중에서, 공식 문서는 대체로 보아 탐욕과 호전성이라는 두 가지 열정만 기록했다. 중세의 법정 문서에 나오는 저 믿을 수 없는 폭력과 완고함(탐욕과 호전성의 뿌리)를 의아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는 많은 열정들이 고루 침투해 있었다. 이런 열정의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이런 갈등들을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중세라는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이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실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아무리 피상적이고 또 사건들에 대한 보고에 오류가 많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연대기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접기
P. 50 국가의 행정 기구나 국가 예산 등은 실제에 있어서 아주 복잡한 형식들을 취하지만, 정치는 아주 간단한 형식을 취한다. 특히 일반 민중의 마음속에서 정치는 불변하는 간결한 몇 개의 인물 유형으로 구체화된다. 일반 민중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정치적 틀은 민요나 기사도 로망스에 나오는 그런 틀이다. 따라서 어떤 시대의 왕들은 몇 개의 유형으로 압축되고, 그 유형은 대체로 보아 민요나 모험 이야기의 모티프와 일치한다. 가령 고상하고 정의로운 왕, 간신에 의해 배신당한 왕, 가족의 명예를 위해 복수하는 왕, 역경 속에서도 지지자들의 지원을 받는 왕 등으로 압축되는 것이다. 중세 후기 국가들의 백성들은 엄청난 부담을 담당했으나 조세 행정에는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얼마 안 되는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품었고, 그 돈이 국가의 복지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국가 행정에 대한 이런 의심은 다시 이런 간단한 인식으로 굳어졌다. 왕은 탐욕스럽고 간교한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또 왕국의 과시적 낭비로 국가 재정이 허약해졌다. 이러한 정치적 문제는 일반 대중의 눈으로 볼 때 동화 속의 전형적인 사건들과 비슷한 것이었다. 접기
P. 59 모험과 열정의 분위기가 군주들의 생활을 둘러쌌다. 그러나 오로지 일반 대중의 상상력만이 사태를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보아 현대인들은 중세인의 무절제한 열정과 변덕스러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중세사에 대하여 가장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공식 문서만 참고하는 이들은 18세기의 장관長官 정치나 대사 교환의 정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중세사의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즉 중세의 군주와 민중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 엄청난 열정의 투박한 색깔은 없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정치에도 열정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하지만 폭동이나 내전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런 열정은 엄청난 견제와 장애를 만나서 유야무야되어 버린다. 현대인의 열정은 공동체 생활의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정된 채널 속으로 유도되어 사라져 버린다. 15세기에는, 급격한 정서적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었고, 그런 표출 방식은 종종 실용과 타산의 얇은 외피를 박살내 버렸다. 만약 군주의 경우처럼 감정과 권력이 서로 손잡고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그 효과는 두 배로 증폭된다. 연대기 작가 샤틀랭은 다소 과장된 방식으로 이런 점을 과감하게 노출시켰다. 그는 말한다. 군주들이 빈번히 서로 교전 상태에 빠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군주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관하는 일은 고상하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그들의 본성은 증오나 선망 같은 많은 열정에 의해 좌우된다. 그들은 통치 행위에 대하여 더 없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이런 열정들이 자리 잡는 것이다.” 이것은 부르크하르트가 말한 ‘통치의 슬픔(das pathos der Herrschaft)’과 아주 근접하는 말이 아닌가? 접기
P. 66 자신의 파당, 주군, 이해관계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추구하는 열정은 부분적으로 아주 냉정한 정의감의 표현이었다. 중세인들은 그런 정의감을 마땅하고 옳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행위가 궁극적 보복을 정당화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정의감은 4분의 3 정도는 이교도적인 것이었고 복수의 모티프에 좌우되는 것이었다. 교회는 겸손, 평화, 화해를 강조함으로써 사법처리의 칼날을 부드럽게 하려 했지만, 현실에 만연한 정의감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복수의 모티프에 죄악의 증오가 추가되어, 그 정의감은 더욱 엄중한 것이 되었다. 잘 동요되는 마음을 가졌던 중세인들은 적들이 하는 짓은 모두 죄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정의감은 점점 강화되어 양극단의 사이에서 극단적 긴장을 조성했다. 한 극단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야만적 정의였고, 다른 한 극단은 죄악에 대한 종교적 혐오감이었다. 그리하여 가혹하게 처벌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은 점점 더 긴급해졌고 중요해졌다. 접기
P. 68 중세에는 현대인들이 정의의 문제를 다룰 때면 늘 발휘하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마음가짐이 결여되어 있었다. 가령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인지에 대한 통찰, 개인의 범죄에 대하여 사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의식, 죄수에게 처벌의 고통보다는 재활의 구원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 등은 아예 없었다. 아니면 좀 더 좋은 쪽으로 이렇게 말해볼 수 있으리라. 이런 것들에 대하여 막연한 인식이 결핍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말로 표현되지 않다가 자비와 용서의 순간적 충동(양심적 죄책감과는 무관한)으로 표출되었다. 그런 충동은 정의의 집행이라는 잔인한 만족감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 현대인은 양심의 가책을 다소 느끼면서 망설이는 자세로 경감된 정의를 집행하는 반면, 중세인들은 잔인한 형벌과 자비라는 양극단의 두 조치만 알고 있었다. 자비를 베푸는 데 있어서, 중세인들은 ‘죄수가 어떤 특정 사유로 자비를 받을 만한가’라는 정상 참작의 질문을 별로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는 그 어떤 범죄, 심지어 중죄도 완전 사면을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사면 쪽으로 저울추를 기울게 하는 것은 순수한 자비심이 아니었다. 중세인들은 고관 친척들의 개입으로 죄수가 ‘특별 사면장’을 받았다는 얘기를 아주 태연스럽게 했고, 우리 현대인은 그런 태연함을 놀랍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면장은 저명한 범법자에게는 거의 해당되지 않았고, 고위 변호인들을 동원하지 못하는 가난한 평민들에게 해당되었다. 접기
P. 73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 지옥 같은 공포와 어린애 같은 농담 사이에서, 잔인한 가혹함과 감상적인 동정 사이에서,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비틀거리며 갔다. 그들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 같았다. 모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부유함과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 이런 두 양극단 사이에서 그들은 살았다. 접기
P. 74 오만과 탐욕은 구시대와 신시대를 대표하는 죄악으로 나란히 놓였다. 오만은 부와 물자가 별로 잘 유통되지 않던 봉건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시대의 죄악이었다. 부는 권력의 느낌이 별로 결부되어 있지 않았고 대체로 개인적인 것이었다. 권력은 그 자신을 널리 드러내려면 다수의 추종 수행원들, 값비싼 장식물들, 권세 있는 자들의 늠름한 등장 등 위풍당당한 전시물을 수반해야 되었다. 남들보다 신분이 월등한 존재라는 느낌을 널리 떨치려면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형식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가령 충성과 동맹을 보여 주는 무릎 꿇기 의식, 근엄한 존경심의 표시와 장엄하고 화려한 각종 의식 등을 연출해야 되었고 이런 것들은 권력자의 우월한 신분을 가시적이면서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접기
P. 81 오만과 탐욕은 구시대와 신시대를 대표하는 죄악으로 나란히 놓였다. 오만은 부와 물자가 별로 잘 유통되지 않던 봉건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시대의 죄악이었다. 부는 권력의 느낌이 별로 결부되어 있지 않았고 대체로 개인적인 것이었다. 권력은 그 자신을 널리 드러내려면 다수의 추종 수행원들, 값비싼 장식물들, 권세 있는 자들의 늠름한 등장 등 위풍당당한 전시물을 수반해야 되었다. 남들보다 신분이 월등한 존재라는 느낌을 널리 떨치려면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형식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가령 충성과 동맹을 보여 주는 무릎 꿇기 의식, 근엄한 존경심의 표시와 장엄하고 화려한 각종 의식 등을 연출해야 되었고 이런 것들은 권력자의 우월한 신분을 가시적이면서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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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하위징아의 투철한 통찰은 학자들에게만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 인간의 관심사들을 폭넓게 추적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에 대하여 평소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또 이해하게 해준다. - 멜리사 베네츠
-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20세기 역사학 고전이고, 그것도 가장 위대하고 매혹적인 저서들 중 하나이다. 중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고,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 프랜시스 해스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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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는 낙관주의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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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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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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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12월 17일 네덜란드의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서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부친은 흐로닝언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언 대학 네덜란드 어문학과에 입학한 하위징아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히브리 어, 아랍 어, 산스크리스트 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언어학으로 기울어 라이프치히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호모 루덴스』에도 나타나듯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조예는 그가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1897년에 학위를 받은 뒤에는 생계를 위해 하를렘 고등학교에 역사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 뒤 흐로닝언 대학에서 고대 인도 문화사와 종교사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고, 점차 연구 중심을 역사학에서 서구 중세사에 두게 되었다. 1905년에는 은사이며 역사학자인 P. J. 블로크의 도움으로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 교수가 되었다. 1915년에는 레이던 대학의 일반 역사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40년 그 대학이 독일군의 점령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나치를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2년 석방되어 가족의 면허조차 금지된 데스테흐의 작은 시골집에서 1945년 2월 1일에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하를렘의 기원들』(1905),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1914), 『중세의 가을』(1919), 『에라스뮈스와 종교 개혁의 시대』(1924), 『얀 베트의 생애와 저작』(1927), 『호모 루덴스』(1938)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호모 루덴스>,<중세의 가을>,<문화사의 과제> … 총 16종 (모두보기)

이종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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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 권의 책을 옮겼으며, 최근에는 인문 및 경제 분야의 고전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리비우스 로마사 세트(전4권)』, 『국부론』, 『월든·시민 불복종』, 『모비 딕』, 『걸리버여행기』,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등이 있다. 집필한 책으로는 번역 입문 강의서 『번역은 글쓰기다』와 고전 읽기의 참맛을 소개하는 『살면서 마주한 고전』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문학을 위해 죽다>,<살면서 마주한 고전>,<로마제국 쇠망사> … 총 462종 (모두보기)
요한 하위징아(지은이)의 말
우리가 과거에 대해서 눈길을 돌리는 것은 주로 새로운 것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후대에 와서 찬란하게 빛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활 형식이 어떤 경로로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보아 후대의 시대를 밝혀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에서만 과거를 살펴본다. 그리하여 근대 문화의 새싹들에 대한 근원을 찾아내려는 목적 아래 중세 시대가 철저하게 연구되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연구되었는지 ‘중세의 지성사는 곧 르네상스의 이정표이며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라는 견해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 경직되고 죽어 버린 시대로 여겨졌던 중세의 도처에서, 우리는 미래의 완성품들을 가리키는 새싹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새롭게 발전하는 생활양식을 탐구하다 보면, 역사나 자연이나 죽음과 탄생의 영원한 순환 과정이라는 사실을 손쉽게 잊어버린다. 낡은 사상의 형식들은 죽어 버리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토양 위에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와 꽃피기 시작하는 것이다.저자 서문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20세기 역사학 고전이고, 그것도 가장 위대하고 매혹적인 저서들 중 하나이다. 중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고,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프랜시스 해스켈_뉴욕 타임스 북 리뷰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중세의 가을』, 전문번역가 이종인의 문장으로 새롭게 피어나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본격화되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6세기경부터 중세의 유럽은 서서히 기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11세기경 이민족들의 지속적인 이동과 침입이 끝나고 이슬람 세력의 팽창이 주춤해져 유럽은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이후 13세기까지 부흥기를 맞이한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전성기를 지나 노쇠해지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단계인 14, 15세기를 ‘가을’이라고 규정했다. 전성기를 지나 쇠락해가는 시대라는 의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라는 의미로 ‘가을’인 것이다. 중세는 ‘대조’의 시대다. 빈자와 부자, 도시와 시골, 빛과 어둠과 같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들이 공존했고, 중세는 그 두 극단을 오가면서 역사를 만들어갔다.
역사에 있어서 암흑기라고 잘못 알려진 중세는 그 나름의 소박한 삶의 양식과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환상 등을 통하여 이미 그 속에 화려한 인본주의의 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가을에 열매를 맺듯, 자연스레 르네상스와 근대라는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하위징아는 거시적 접근 이외에도 기사도 정신과 성대한 입성식, 기마 시합, 종교적 신비주의와 금욕적 경건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가 과거에 대해서 눈길을 돌리는 것은 주로 새로운 것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후대에 와서 찬란하게 빛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활 형식이 어떤 경로로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보아 후대의 시대를 밝혀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에서만 과거를 살펴본다. 그리하여 근대 문화의 새싹들에 대한 근원을 찾아내려는 목적 아래 중세 시대가 철저하게 연구되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연구되었는지 ‘중세의 지성사는 곧 르네상스의 이정표이며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라는 견해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 경직되고 죽어 버린 시대로 여겨졌던 중세의 도처에서, 우리는 미래의 완성품들을 가리키는 새싹들을 보고 있지 않은가? 새롭게 발전하는 생활양식을 탐구하다 보면, 역사나 자연이나 죽음과 탄생의 영원한 순환 과정이라는 사실을 손쉽게 잊어버린다. 낡은 사상의 형식들은 죽어 버리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토양 위에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와 꽃피기 시작하는 것이다.”-저자 서문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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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문제인지 원문의 문제인지 가독성이 대단히 떨어진다. 원인이 전자이든 후자이든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으나 지적 활로의 다양성에 대한 표준적 제시와 양식화 사이의 사고적 귀결은 우울함이 내재된 반우울적 가치로부터의 수립적 욕망의 이상의 결여이다.
구르밐 2017-10-31 공감 (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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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인들은.. 혹시 조울증??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 간 사람들의 이야기. 하위징아는 르네상스를 근대의 시작이나 중세 이후가 아닌 중세의 가을로 보며 저물어가는 황혼을 그리고 있다.
꼬마요정 2014-11-25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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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중세의 가을}과 비교하면서 읽으려고 구매했는데, 이종인 선생님의 물흐르는 듯한 매끄러운 번역... 정말로 놀랍습니다. 가히 대가의 경지
밭고랑 2014-04-0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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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이 쓴 유럽의 중세이야기라는 점에서 참신함이 있었고 그 저자가 바로 하위징아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믿고 읽게 되는 책입니다.
파란별 2014-04-2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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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사흘째, 계속, 꿈 속에서 중세의 `아우라`가 출몰한다.
무이 2013-09-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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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중세의 가을 : 중세 후기와 부르고뉴를 넘어서...




이 모든 사상의 기반은 다음과 같다. 즉, 귀족은 기사도의 이상을 실천함으로써 이 세상을 지탱하고 정화할 의무가 있다. 귀족의 진실한 생활과 귀족의 진실한 미덕은 사악한 시대에 대한 치유책이다. 교회와 왕국의 안녕과 평온, 정의의 힘은 귀족에게 달려 있다... 하느님의 의지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것이 주어졌다. 그것은 신성한 법과 인간의 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 두 기둥은 기사단과 학자들이다. _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p139




선(善)과 악(惡), 성(聖)과 속(俗), 교회와 왕정, 성직자와 귀족, 천상의 법과 지상의 법에 의해 유지되는 중세(中世)라는 이분법(二分法)의 시대. 그 중에서도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14~15세기 부르고뉴 공국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중세 문명의 시기를 조망한다.





몰아 감각은 커다른 위험을 가져온다. 이것은 기독교의 신비가들뿐만 아니라 인도의 신비주의자들이 도달한 결론이었다. 그 위험의 구체적 내용은 이러하다. 완벽하게 신을 명상하고 관조하고 사랑하는 온전한 영혼은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 신에 몰입하면, 자신의 의지는 더 이상 없고, 남은 것은 오로지 신의 의지뿐이다. 그리하여 몰아 상태에서 육욕에 사로잡히더라도 그 육욕은 죄가 되지 않는다. _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p375




저자는 <중세의 가을>에서 예술 작품을 통해 그들의 내면 세계를 들춰낸다. 철학이 신학의 시녀였던 것처럼, 감성은 이성에 의해 제한되었다. 지나친 정념과 표현은 죄악으로 간주되는 시기였기에 인간의 감성(感性)은 신앙의 엑스터시를 표현하는 경우에 한해 허용되었고 이러한 제한과 억눌림은 하위징아가 중세를 모순과 갈등의 시기로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가 된다.





삶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태도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있다면, 중세와 르네상스의 간극보다는 르네상스와 근대의 간극이 더 깊고 크다고 보아야 한다. 대체로 보아 예술과 인생이 서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하나의 방향 전환이 발생한다. 그 지점에서, 예술은 더 이상 인생의 즐거움을 이루는 고상한 것으로서 인생의 한 가운데 있지 않고, 인생 바깥에 초연히 위치하여 멀리서 감상하는 어떤 것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예술을 교육과 휴식의 순간에만 바라보며 높이 숭앙하는 어떤 것으로 취급한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과 세상을 구분하는 저 오래된 2원론이, 예술과 인생의 구분이라는 또 다른 형식으로 등장했다. _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p95




그렇지만, 하위징아에게 중세는 모순과 갈등의 시기로 그치지 않는다. 억눌림과 제약이 심할수록 마치 페스트를 피해 교외로 나가 젊은 남녀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두운 현실을 피하듯, 중세의 어두움에는 빛의 씨앗도 함께 있음을 <중세의 가을>은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중세의 가을>의 전체 구조는 이분법이다. 그렇지만, 그 이분법마저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하나의 기둥이 되는데, 이렇게 본다면 동시에 탈(脫)이분법이기도 하다. 중세 뿐 아니라 책의 구조마저 모순적으로 보여지는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안전, 한적, 독립은 인생을 즐겁게 하는 좋은 것들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궁정 생활을 피하여 자연 속에서 노동과 절제의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생활이라는 이상의 부정적 측면이다. 긍정적 측면은 단순함과 노동의 향유라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안락함이다. _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p220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중세의 가을>에서 하위징아는 백년전쟁 전후로 부흥했던 부르고뉴 공국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시대를 규정한다. 지리적으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강성했지만 불과 백여년 존속했던 부르고뉴공국.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사이에 있는 가을처럼, 부르고뉴의 지리와 역사 자체가 가을이 아닐까. 네덜란드어 판 서문은 이 시기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14세기와 15세기라는 중세 후기를 조망하고 있지만 그 시대를 르네상스의 안내자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마지막 시기, 세 사상의 마지막 단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나무로 친다면 이 시대는 열매가 농익어서 완전히 만개하고, 또 땅에 막 떨어지려는 그런 시대이다. 과거의 주도적 형식들이 화려하게 개발되어 사상의 핵심을 제압하고, 또 예전의 타당했던 사상들을 경직시켜 고사시키던 그런 시대이다. 중세 후기를 하나의 독립된 시대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_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p24, 네덜란드어 판 서문




이전 시대인 중세 전/중기와 이후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와 구분되는 별도의 시기 중세 후기. 독자들은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변화의 싹을 중세 후기라는 시대적 한계를 통해 발견한다. 그리고 부르고뉴라는 공간적 제약 안에서 또 다른 변화의 씨앗이 자리함을 짐작하게 된다. 만약 하위징아가 자신의 고국인 네덜란드를 무대로 중세의 역사를 썼다면, <중세의 가을>은 11월의 가을이 아닌 음력 8월의 한가위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중세의 가을>은 독립된 시대로서 중세 후기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중세 후기를 특징짓는 것은 이전/이후 시대와 구분되는 이분법의 모순이지만, 동시에 <중세의 가을>이 주제로 한 시간적, 공간적 한계는 오히려 이분법 구조를 넘어서 탈(脫)이분법적으로 시대를 전망케 하는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사악한 세계였다. 증오와 폭력의 불길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악은 강력하다. 악은 그 검은 날개로 이미 어두워진 대지를 덮는다. 곧 세계의 종말이 오리라고 기대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교회는 계속 허덕거렸으며, 설교자들과 시인들은 말세를 경고하고 탄식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_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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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4-09-15 공감(3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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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거리까지의 역사












"달의 거리까지의 역사"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정확히, 1년 전이었을 테다. 같은 책을 다른 판본으로 들고 있었다. 버스 간에 앉아 오전의 찬 공기를 폐부 깊이 빨아들이며 앞으로 펼쳐질 중세의 세밀화에 귀 기울일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가독성이 뚝뚝 떨어지는 오래된 판본의 이 책은 나에게 고산이 되기 시작했고, 가을에 맞추어 완독을 하겠다는 일념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리고 1년이 되어 나는 다시, 이번엔 새 판본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인데, 순전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 저간의 사정은 여기 밝히지 않겠다)






나에게 중세는 고대보다 멀게 느껴진다. 중세라는 어휘도 그렇고, 익숙하게 보거나 읽은 그 시절의 문화와 정치가 “끼여있는” 이질적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 대상화의 느낌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꿈 자리가 묘했다. 익히 썼던대로 “중세의 아우라가 거듭 출몰”하는 기현상이 내가 눈 감을 때마다 벌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부르고뉴 공국이며, 저자가 부각시키는 양 극단의 평화롭게(?) 공존하는 중세인들의 정신과 기사도적 이상의 민낯. 우주적 거리감을 주는, 영겁같은 무지막지한 우주 사이즈를 들이 밀 정도는 물론 아니고, 달 정도 되는 이질적 고향의 토질같은 것이 그 안엔 무궁무진했다.






하위징아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기본적을 틀은, 중세를 르네상스와 명확하게 구별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고, 중세에 이미 발아하기 시작한 사상이 지금 와서 ‘르네상스’라 부르는 시대에 눈에 띄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중세는 우리가 매도하고 극복해야 할 단순한 타자가 아닌 것이다. 시적 어조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렇게 중세의 가을, 그가 처음 영감을 받아 자주 응시하였던 “깊어가는 저녁 하늘”, “진홍색으로 침윤되었고, 납빛의 구름들 때문에 위협하는 듯이 보였으며, 구리같은 가짜 광채가 가득”한 하늘에 대한 역사서이다.









* 번역과 판형 등에 불만은 없지만, 출판사 측의 무성의로 오탈자와 띄어쓰기 오류가 남발하는 지경이다. 눈에 거슬릴 정도니, 책의 본새를 깎아먹는 주범이 돼 버린 것이 큰 아쉬움이다. 좋은 책을 내놓고도 칭찬받기는 글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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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 2013-09-21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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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14세기에서부터 15세기의 유럽 역사를 집대성한 책이다.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 나는 처음에 14-15세기 때 살았던 사람이 이 책을 직접 집필한 줄 알고 있어서 책을 보면서 놀랐다. 책에서 저자가 마치 예전 이야기를 하듯,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처럼 당신의 상황을 옛날인 것 처럼 이야기해서.. 결국 아니란 걸 알았고, 후대의 역사학자가 특별히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는 그 시대의 시대상을 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중세가 암흑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 했다. 기사도와 기독교 정신이 있었던 이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풍습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중세를 왜 암흑이라고 하는가. 중세엔 인간이 중심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중심이었고, 인간은 악마와 하느님 사이에서 하느님을 쫓아야 하는 노예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정치와 예술이 하느님을 칭송하는 데에 쓰였고, 전쟁이 일어나도 종교 때문이었고, 왕위 쟁탈전에서 승리하는 것도 교황이 손을 들어주는 쪽이었다. 르네상스라는 것은 신에서 인간으로 시선이 옮겨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치면 요즘처럼 현대의 개인주의는 르네상스의 꽃이라 할 만 하다. 개인주의라는 것도 그렇게 보면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의 흐름일 뿐.



이 책에는 중세의 문화를 대표하는 여러가지 흐름이 나와있다. 기사도 정신에서부터, 사랑에 대한 중세인들의 생각, 그리고 사회의 위계질서에 대한 것들, 그리고 종교적인 감흥과 환상 등 중세를 지배했던 정신의 흐름에 대해 나와있다. 신이 중심이 세계에서 인간의 개인적인 사랑이 칭송받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엄격한 규범이 존재했고, 사랑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처럼 양식화되어져 있었다. 개인의 감정은 묵살당하는 것이 이 시대의 법치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미학적인 조류가 있었다. 저자는 이 시대의 예술과 삶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목가적으로 살기를 바랬던 이 시대 사람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왕족과 교황의 이야기는 많은 책에서 역사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중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애환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특히 잘 다루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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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ca 2012-08-17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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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중세의 가을



[중세의 가을]은 공부에도, 독서에도 끝이 없음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된 책이다. 학창시절 별 흥미가 없었던 역사공부가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공부도 관심이 생겨서 올해부터 다시 인문학과 관련된 대학공부를 하고 있다. 일학기 교양과목으로 '세계사'를 배우면서 가장 관심이 갔던 시대가 바로 저자가 '가을'에 비유하면서 다루고 있는 '중세'다. 그저 암기할 양이 많고, 힘들다는 고정관념만을 가지고 있던 세계사를 과제물 리포터를 작성하기 위해 여러가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역사라는 것은 별 필요없는 공부가 아니라 반드시 알아야 할 과목임을 알게 되었다. 역사를 알고 깨닳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 인문학이나, 예술, 종교, 과학, 정치, 경제 등 인간의 모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의 발걸음을 떼지 않고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듯이 역사라는 과정이 없이 현대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중세는 근대를, 근대는 지금을 만들어가는 씨앗이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공감한다.



역사와 관련된 책은 주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연도표를 근거로 하듯이 집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 역시 그동안 그런 형식의 역사책에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하위징아'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이야기책을 읽듯이 흥미롭고, 쉽게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시대적 흐름을 중점적으로 기록되는 형식으로 굳어진 역사를 이렇게 각각의 주제별로 다루면서, 자신의 주관과 함께 수없이 많은 역사가와 역사서, 깊이 있는 역사 지식에 근거를 들고 있다. 이 책의 독서를 통해 저자인 '요한 하위징아'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만큼 내 얄팍한 지식수준도 알게 되었지만, 이런 기회에 '하위징아'를 만나게 된 것은 너무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그가 노벨상 후보로 올랐다는 것도, 이 책이 이미 1919년에 출간되어 세계적으로 꾸준히 많은 이들에게 읽히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도 생소했다. 또한 또 하나의 그의 저서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그의 생애 말년에 집필했다는 [호모 루덴스] 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모든 문화가 놀이에서 시작되었고, 놀이가 곧 삶의 형식이라는 작품에 대한 해석을 읽으면서 '하위징아'라는 작가에 대해, [호모 루덴스'라는 책에 대해, 또한 이 책 속에 나오는 그가 언급했던 많은 고전들에 대해, 방대한 인물에 대해 더 깊이 연계해서 파고들어보고 싶어졌다.



인간의 개인적인 삶이 나 하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이어지듯이, 역사는 어떤 한 부분으로 딱 구분할 수 없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는 '르네상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히 다르게 시작된 근대의 한 부분이 아니라 중세 후기 문화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의 역사가, 지금의 인류가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중세라는 그의 주장은 책 속의 많은 주제를 담아낸 내용을 통해 중세의 중요성이 수없이 입증되고 있다.



'하위징아' 도, '중세의 가을'도 처음 접했지만, 처음 접한 책이 이 '연암서가'에서 집필한 책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더 의미가 있다. 이전에 몇 번 번역되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지만, 그가 처음에 집필했던 원본에서 빠진 부분이 많거나 다른 번역본을 보고 번역되어 원래의 내용과 많이 차이가 나는 문제점을 낳았기에 이 번에 다시 제대로 처음 저자가 출간한 내용과 가장 일치하도록 여러 부분에서 노력해서 출간된 책이다.



'중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대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이 책을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번역가인 '이종인' 님의 글이 그대로 본문의 내용을 읽으면서 공감이 갔다. 그는 읽기 쉬운 번역서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독자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것이 번역가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는데, 독서 후 내가 느낀 소감이 바로 그의 보람에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너무도 어렵우면서 만만치 않은 양의 내용을 번역가로 인해 아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 꼭 소장하고 싶거나, 아이들에게 언젠가 그 책을 소화할 수 있는 시가가 오면 반드시 권하고 싶어 리스트를 기록하고는 하는데, 이 책이야말로 소장하고 싶고,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은 일 순위에 드는 책이다. 나도 시간을 넉넉히 두고 조금 더 깊이 있게 다시 한 번 정독을 하고, 여러가지 책 속에 나오는 도판의 그림들도 찾아서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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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2012-08-2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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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Herfsttij Der Middeleeuwen

책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와 책 출간에 얽힌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가져보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버지의 메독(요즘으로 따지자면 에이즈)이 자신에게 유전되지 않을까 평생 두려워 하며 괴로워 했고, 조울증 기질이 있던 저자는 어쩌면 죽음에 대한 심리로 인해 천재성을 발휘 했을지도 모르겠다. 스티브 잡스도 그랬고,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죽음을 안고 사는 사람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커다란 경지에 도달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기전 저자의 삶을 이해 함으로써 책을 이해하게 되는 큰 밑그림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게 되었다. 1872년 네델란드에서 태어나 1,2차 세계 대전을 경험했으며 세계적인 학자이자 노벨 문학상 후보까지 올랐다가 1945년 세상을 떠났으며, 이 책은 47살에 출간했다.



책의 출간과 번역도 매우 이체롭다. 1919년 처음 출간되었을때 네델란드내에서는 역사책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받았으나, 오히려 독일에서 혁신적이라 평가를 받고 1923년 독일어 번역본이 나오면서 유럽전역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나,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으로 출간 된것, 이번에 읽게된 연암서가의 책은 1924년 영역본을 바탕으로, 1996년 미국에서 나온 영역본(네델란드어판 수정2판 완역)을 참고하여 번역 했다는 이력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중세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대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에 많이 노력했다는 역자의 말에서 역자의 노력을 느낄 수 있으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앞으로 일정 시간이 흐로고 나서 다시 읽을때 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싶다.



어렸을적 교과서에도 중세를 암흑기라 배웠으며,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표적 문인 페트라르카가 정의 했으며, 근대 초기 개신교 저술가들도 중세를 로마 카톨릭 교회했기 때문에 과소평가에 동참) 이 책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중세가 암흑기가 아닌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이며, 미술 양식을 비롯하여 나름의 문화와 예술, 아름다움을 가진 시대로 보는게 맞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것에 크게 공감한다.



1907년 강을 따라 산책하다가 석양이 짙어지는 가을 하늘을 보며 문득 중세의 후기가 저런 색깔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고 네델란드를 지배했던 부르고뉴 공국의 역사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을 떠올렸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저자의 조국인 네델란드를 지배했던 14세기와 15세기의 부르고뉴역사가 이책의 메인인데, 부르고뉴 공국을 이야기 하면서, 자연스레 프랑스를 이야기 하게 되고, 당시 백년전쟁을 했던 잉글랜드 등 부르고뉴를 폭넓게 이야기 하려다 보니 중세후기를 다루게 된 것 같다.
기존의 역사는 정치와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지만, 이와 달리 문화적,심리적 설명을 제시하려고 했던 저자의 역사관 덕분에 중세 후기에 대해 폭넓게 접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중세인의 심리를 대비,놀이,이야기 세가지 키워드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작품 해설도 쉽지 않은 이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던 것 같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당시 사람들이 처형을 좋아했다던지,봉건제 하에서 영주의 착취를 당했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 할지 모르겠으나, 당시나 지금의 사람 살아가는 것에 차이가 과연 있을까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각종 질병에 의한 고통 및 의료치료 등의 차이는 물론 크게 있겠지만...)



14세기와 15세기를 르네상스의 안내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마지막 시기 자체로 보는 것, 중세 정신의 마지막 전개, 꿈과 환상, 소망과 놀이, 상징과 이상을 중시한 독자적 문화를 가진 시기로 파악했다는 점이 크게 와 닿았다.



막연했던 중세시대를 이책을 통해 잘 알게 되었고, 실 생활, 미술, 그 당시 시대 상황 , 인간의 심리, 본성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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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강 2012-08-2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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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중세의 가을

14세기와 15세기의 역사를 부르고뉴 공국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중세 말기를 르네상스로 이행하는 시기, 즉 르네상스와 비교하여 이러이러하다라고 설명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그 자체를 하나의 독립적인 시기로 상정을 하고, 그 특징에 관하여 묘사한다. 역사해석의 중심에는 왕이나 정치가보다는 화가, 역사가, 신학자 등이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 중세인들의 심리상태도 중요한 요소이다.
도도도 2016-02-0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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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 의 저자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알려져 있다. 호모 루덴스는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아마 사람만이 유희를 안다고 해서 지어진 것 같다. 네덜란드 출신의 요한 하위징아는 1872년에 태어나 1945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20세기 인물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근대 인물인 줄 알았었다. 교과서에서 익힌 이름 같은데 나이 마흔이 되니 그것도 가물가물하다. 중세의 가을 역시 저명한 저술인데 이제야 호모 루덴스,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이 모두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것인 것 같다.





연암서가의 중세의 가을은 이전에 나왔던 번역본들 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일단 판본도 까다롭게 결정되었고 한권만 참고하는 것이 아닌 여러 나라의 판본으로 번역했으며 일반인이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을 좀 더 의역하고 나누어서 일반 대중들이 읽기 편하게 했고 원작에는 없는 소제목이 있어서 이 두껍고 웅장한 책을 거뜬히 며칠만에 다 읽게 했으니 말이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옮긴이의 말과 네덜란드어판 서문과 독일어판 서문도 함께 소개해 주고 있어서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읽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처음에는 뭐가 뭔지 알 것 같으면서 모를 것 같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책을 다 읽고 다시 옮긴이의 말을 읽으니 한번에 정리가 되는 게 아닌가! 요한 하위징아는 아주 많은 언어에 통달한 언어의 천재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중세의 시나 문학들이 더욱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 책은 주로 1300년대 중반부터 1400년대와 1500년대 초반까지의 프랑스와 부르고뉴 공국과 잉글랜드와 독일의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지만 주로 프랑스와 부르고뉴의 역사와 중세의 시와 문학 그리고 여러가지 유희들, 그리고 플랑드르 지역의 화가 얀 반 에이크에 대한 저술이 양적으로 많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면서 대담공 필립이니 무외공 장이니 선량공 필립이니 하는 왕들은 부르고뉴의 왕이었고 샤를 5세, 6세, 루이 11세 등의 왕들은 프랑스의 왕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합쳐져서 나오니 헷갈리기 일쑤였는데 옮긴이의 글을 읽고서 확실히 정리가 되었다.





중세의 가을은 중세 후반기를 그리고 있어서 르네상스의 태동기와도 겹친다. 부르고뉴 공국은 서구의 책이나 역사를 보면 많이 나오지만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전무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네덜란드는 예전의 플랑드르 지역이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아주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플랑드르와 부르고뉴 지역은 남북으로 함께 존재하기도 하였고 잉글랜드와 프랑스와 부르고뉴 사이에 백년 전쟁도 일어났으며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잔 다르크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화가들의 초상화만 보고 부인감을 정했던 샤를 왕의 이야기나 부르고뉴 안의 아라스시의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며 중세 특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죽음의 춤의 '당스 마카브르'의 풍속과 메멘토 모리의 정신을 알게 된다. 굳이 인간의 몸이 흉하게 변하는 것들을 조각하고 그려서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하고 죽음의 황폐함과 인정사정없는 무자비함을 그리다 보니 자녀가 죽어서 애틋해 하는 그런 모습들도 중세의 기록에서는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중세인의 이러한 특징들은 현대인에게는 조금 낯설다.





라블레나 에라스무스, 보카치오등의 작가들의 작품들과 기사도를 보여주는 각종 시들, 그리고 에로틱한 이야기인 '장미 이야기'의 소개등은 중세에 대해 무지했던 나를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중세의 민중들은 오히려 축제나 놀이를 통해서 유희하는 인간들이었고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며 성스러움과 욕설이 결합한 사람들이었다. 중세의 상징주의 또한 특징인데 교황과 수도사들의 세계에서 님프며 그리스신화적인 내용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14세기 무렵의 알레고리들은 신화속 님프와 올림푸스 산의 모습과 경합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그림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의 화가 얀 반에이크의 중요도 역시 이 책의 예술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당시 플랑드르의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고 분석해 줌으로서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중세 후반기 즉 중세의 가을을 너무도 여실하게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제 작가가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장소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자료들을 모으고 조사하고 또 편집하고 엄청난 인내심과 노력 그리고 천재성으로 태어난 작품을 우리가 편히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동적이다. 이 책은 두고두고 몇 번은 읽어야 조금 더 이해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의 즐거움은 매우 컸다. 다 읽고 나서 정리가 안되고 금방 잊어버려서 그렇지. 그건 나이탓으로 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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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로포스 2012-08-3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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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중세'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었던 점들이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을 더듬어 본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중세의 지독했던 봉건제, 잔혹한 마녀사냥, 종교의 이름으로 모든 삶을 통제했던 시대, 흑사병이 창궐해서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시대, 바로 '암흑의 시대'로만 떠올랐고 가장 답답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나마 낭만적으로 생각되었던 부분들은 기사들과 그 기사들이 보호했던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연애사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중세'에 대해서 그동안 얼마나 얇게, 편견을 갖고 생각해왔는지를 새삼 '중세의 가을'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작가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을 전성기가 지나 쇠락해가는 시대라는 의미와 앞으로 다가올 르네상스를 품고 있는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라는 의미로 '가을'이라고 표현했다. 하위징아가 들려주는 '중세의 가을'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와 15세를 중심으로 지역은 프랑스와 부르고뉴,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중세를 알면 알수록 참으로 극단의 시대였음을 알게 된다. 강렬하다못해 장렬해 보이기까지하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빈자와 부자,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간의 경제적 대립, 왕족의 권력다툼은 극렬한 대비를 보이며 전개된다. 이러한 모든 극적인 역사적 중세 이야기들을 하위징아는 조근조근 설명해준다. 자신의 중세의 대한 역사관과 그동안 잘못 알려진 중세에 대한 편견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설명해준다. 읽다보며 하위징아의 깊은 중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도대체 나는 중세를 왜 그리도 편견을 갖고 바라보았을까, 그 시대 역시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현대보다 조금 더 극적인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을텐데, 왜 무조건 비참하기만 한 생활을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그들을 종교의 광적인 상태에서 잔혹함을 받아들이기만 한 사람들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는 우를 범했을까 싶다. 결국 난, 중세를 다룬 현대의 영화, 중세를 다룬 낭만적인 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사들과 아름다운 공주들만을 생각했고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중세의 다른 면들은 또 다른 세계처럼 분리해서 생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하위징아를 따라 중세의 읽다보면 그러한 편견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중세 봉건주의에서 평민들과 신흥계급 부르주아, 왕족들은 중세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두 극단을 오가며 삶을 이끌어왔던 것이다. 현실의 비참함을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모습에서, 신께 바치는 사랑으로 말이다.



하위징아는 말한다. 중세는 그 나름의 소박한 삶과 신께 바치는 열정과 왕권 다툼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인본주의를 품고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와 근대의 시대를 만들수 있었다고 말이다. 또한 강조해서 전한다. 진정한 역사를 파악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립시키기만 해서는 안 되고 미학, 윤리, 심리, 종교, 학문, 예술, 사회 등을 다양하게 파악하고 중세 인들의 삶을 이해해야만 온전한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면만 보게 되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계산적이고 냉철한 사람들이지만 그 속에서 소박한 삶을 이끌어가고 아름답지만 헛된 환상을 꿈꾸기도 하면서 꿈과 소망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이다. 작가 요한 하위징아를 통해서 중세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편협했던 시각에서 좀 더 확장된 시각으로 중세를,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힘'이 생겼다고 믿고 있다. 결국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이고 삶이니까 말이다. 아직은 엄청 부족한 지식으로 헤매고 있지만 꾸준히 공부를 한다면 건강한 역사관과 세계관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 찬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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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7177 2012-08-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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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세의 가을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었다)




중세의 가을은 참고문헌과 주석을 제외하고 630페이지에 이른다.

(주석들을 포함하면 78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단, 어느정도 중세와 유럽사회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중세의 가을은 책의 분량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글자와 글자의 간격도 빽빽한 편이라 페이지마다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게다가 작가는 마치 그 시대에 살아봤었던 것 처럼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책 내용 일부 인용).




궁정 주방은 일곱개의 거대한 아궁이를 갖춘 엄청난 곳이었다. 이 주방에는 당직 요리장이 아궁이와 조리대 중간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서 주방 안의 모든 활동을 감시한다. 그는 한 손에 커다란 나무주걱을 들고 있는데, 두가지 목적에 사용되었다. "하나는 조리대에서 만들어지는 수프와 소스를 맛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휘두르면서 주방의 일하는 소년들을 닦달하여 일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이고 또 필요시에는 그들의 영덩리을 때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 배경지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부재하기 때문에 나처럼 기본적인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책을 읽는다면, 다소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망각하는 상태)

특히 초반에는 책의 내용에 몰입하여 책의 내용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의 글자만 의식적으로 읽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독하듯이 읽었다.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면, 통독하는 것이 일독을 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통해 중세의 시대상황과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느끼는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세의 독특한 문화와 그러한 문화적 배경에 대하여 책에서는 섣불리 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사실을 자세하게 묘사함으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 당시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거나 고민 할 수 있게 인도한다.(물론 중간마다 요한 하위징아는 저자의 생각을 서술하거나 힌트를 주기는 한다)

개인적으로는 중세사람들의 명예와 열정 그리고 영성과 겸손에 대하여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허세와 잔인성에 대하여는 생각할 거리등을 제공해 주었던 것 같다.




책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중세 후기의 잔인한 사법 처리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 변태적인 메스꺼움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법 집행으로부터 중세인들이 느꼈던 둔감하면서도 동물같은 만족감, 시골장터같은 떠들썩한 여흥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몸스시의 시민들은 도둑들의 우두머리를 거열하는(사지를 찢어죽이는) 광경을 보기 위해 그 우두머리의 몸값으로 엄청난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중략) 사람들은 반역죄로 체포된 고위 행정관들의 고문 받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희생자들은 어서 처형해 달라고 간원했지만, 당국은 처형을 가능한 한 연기했다. 구경꾼들이 그 희생자가 추가 보문을 당하는 광경을 구경하는 걸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 지옥 같은 공포와 어린애 같은 농담 사이에서, 잔인한 가혹함과 감상적인 동정사이에서,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비틀거리며 갔다. 그들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 같았다. 모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부유함과 증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 이런 두 양극단 사이에서 그들은 살았다.




책을 통해 중세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그들의 생각을 통하여 여러가지 측면에서 사유하게 되었다.

중세시대의 사회와 사상은 근대와 현대의 사상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한 차이들를 통하여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1) 인간은 사회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또한 2) 그 사회와 사상의 흐름을 통해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도 확인 할 수 있었다.

통독을 했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배경소양이 부족하여 숲을 보면서 독서 했다기 보다는 나무를 보면서 독서를 한 것 같다.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이해보다는 개별 사건에 치우쳐서 독서를 하게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향후에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시 한번 재독 해 보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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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우 2012-08-2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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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책이다.
yjh2932 2014-04-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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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ing Children Near Their Grandparents Has Scientific Benefits (Besides The Free Babysitting)

Raising Children Near Their Grandparents Has Scientific Benefits (Besides The Free Babysitting)

Raising Children Near Their Grandparents Has Scientific Benefits (Besides The Free Babysitting)

By: AuthorMichelle


When grandparents and grandchildren are able to live close together so that each can spend a great deal of time with the other, many fascinating bonds emerge! Not only that, but research shows that raising children near to their grandparents presents many scientific benefits, such that go beyond free, convenient babysitting for parents.

While it’s not always easy – or possible – for grandchildren to grow up near their grandparents, the relationship that develops here is well worth the effort. The extra love, attention, and guidance help raise strong adults. (1, 2)

5 Reasons Raising Children Near Their Grandparents Is Beneficial


While the research is quite extensive, here are five simple ways that raising children near their grandparents leads to beneficial outcomes.

#1. The children will have a built-in support system (in addition to their parents).

According to research gathered through the University of Oxford, children who are able to maintain close relationships with their grandparents tend to have fewer emotional and behavioral issues, allowing them to be better at handling traumatic life events in life, such as divorce, bullying, death, or substantial moves. Having a good relationship with grandparents helps allow the grandparents to offer a unique sense of security and support in such a way that parents might be unable to offer. This helps growing children navigat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2)

#2. By having an inter-generational identity, a child’s resilience is increased.

Understanding who they are, where they came from, and the history of their family (which can happen by knowing one’s grandparents well) can help a person be more resilient. The reason for this is tha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help one feel more in control of their life, even when uncontrollable events occur. Understanding their family and their history can help a person grow to understand they are part of something bigger than just themselves and their life. (2)


#3. Hav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grandparents help children grow up to be less ageist.


Everyone gets old. This is the way of life. The hope, however, is that our younger generations won’t discriminate against the old, and a way to ensure that this doesn’t happen is by building strong relationships between youth and the elderly – or, grandparents and grandchildren. According to a 2017 study, kids who develop close relationships with their grandparents are less likely to show bias towards older adults, and children who had a poor quality relationship with their grandparents were more likely to have ageist views. (4)

#4. A close relationship with grandparents helps prevent depression as an adult.

A 2014 Boston College study revealed that quality relationships between grandparents and grandchildren lower the rate of depression for both the elderly individuals and the grandchildren as they become adults. (5)

#5. Grandparents live longer when able to spend regular time with their grandchildren.

While children might tire out their parents, they bring a whole new sense of life to grandparents! Grandparents who are able to invest, pour out love and support, and develop a close relationship with grandchildren will – on average – add five years to their life. (6)

Did you grow up close to your grandparents? How do you feel you benefited?


References

[단독] 요양보호사 불렀더니 5060 남자가 왔다

[단독] 요양보호사 불렀더니 5060 남자가 왔다

[단독] 요양보호사 불렀더니 5060 남자가 왔다
장윤 기자2024. 10. 2. 
‘여자가 하는 일’은 옛말… 男 요양사 5년간 73% 늘어


울산시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에서 남성 요양보호사 30여 명이 ‘직무 역량 강화’ 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강의를 들은 한 남성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후에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추가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울산광역시

재작년에 다니던 회사를 정년 퇴직한 남성 이은선(62·경기 의정부)씨는 지난 8일부터 의정부의 한 요양보호사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20~30년은 더 살 텐데 정년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요양보호사인 처제의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엔 ‘남자가 무슨 요양보호사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목욕을 돕거나 때론 용변까지 처리해줘야 하는 요양보호사 일이 여성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 요양보호사가 요즘 늘고 있다”는 주변 권유에 이씨는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씨가 다니는 요양보호사학원의 남성 수강생 숫자는 전체의 20%다. 이씨는 “중풍이 심한 90대 장모, 함께 나이 들어갈 아내를 전문적으로 돌보기 위해서도 내가 자격증을 공부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A 요양보호사학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한 반 교육생 25명 중 남성은 2명 정도였지만 올해 들어 6~7명 정도까지 늘었다.

그래픽=이철원

5060남성들이 요양보호업계에 뛰어들고 있다. 은퇴한 5060남성들은 그간 자영업이나 건물 관리직(경비), 택배나 택시 운전 같은 분야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곤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현업 남성 요양보호사 수는 2020년 2만4538명에서 지난 8월 기준 4만2672명으로 73% 증가했다. 남성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 수도 2020년 17만7051명에서 지난 7월 기준 30만4724명으로 72% 증가했다.

남성 요양보호사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에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경기도에서 활동 중인 한 60대 남성 요양 보호사는 “자영업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창업 비용이 드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망하기 딱 좋다”고 했다. 일선 요양보호사 학원 수강료는 80만~90만원 수준이고, 향후 취업하면 국가가 전액 환급해준다. 320시간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합격률은 90%에 육박한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5060 남성도 적잖다. 은퇴자 허영선(63·경기 남양주)씨는 지난해 11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허씨는 “뇌졸중에 걸린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비용도 많이 들 뿐더러 남의 손에 부모님을 맡기기도 편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자격증 취득 이후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가족요양급여 제도를 통해 시급 1만1000원 하루 3시간, 한 달 27일에 대한 급여 90만원을 수령한다. 몸이 편찮은 가족을 집에서 돌보고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야간 근무가 잦은 경비 업무나 사고 위험이 적잖은 택시·건설·택배보다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도 5060 남성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일부 5060 남성은 노인 요양원 창업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다. 사업가 김모(66)씨는 “향후 요양 산업이 유망할 것으로 판단돼 내가 직접 이 업의 속성을 알아보기 위해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노인장기 요양 등급자는 올해 105만명에서 2050년 297만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일선 요양업계에선 5060 남성 요양보호사의 유입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요양병원장은 “남성 노인들은 여성 요양보호사가 목욕을 시켜주거나 용변을 처리하는 일을 불편하게 여기곤 한다”며 “비교적 근력이 좋은 남성 요양보호사가 현장에서 환영받고 있다”고 했다. 일선 남성 요양보호사들은 “여성 요양보호사보다 훨씬 쉽게 구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정 방문 요양을 받는 남성 노인들에게 성희롱·성추행 등을 당하는 여성 요양보호사 문제도 5060 남성 요양보호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다만 올해 8월 기준 66만8309명인 전체 요양보호사 중 남성은 아직 4만2672명(6.3%)에 불과한 실정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고령화로 요양보호업 수요가 늘고 국가 재정 지원도 증가할 전망”이라며 “요양보호사 처우가 과거보다 나아지면서 5060 남성들의 유입도 향후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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