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1

황대권 - 내가 먹는 풀을 보고 “별 걸 다 먹는다”고

황대권 - 별 것 엊그제 친애하는 페친 명옥님이 내가 먹는 풀을 보고 “별 걸 다 먹는다”고 댓글을 달았다. 도시... | Facebook


황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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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엊그제 친애하는 페친 명옥님이 내가 먹는 풀을 보고 “별 걸 다 먹는다”고 댓글을 달았다. 도시 사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그럴 것이다. 산골 오지에 마트는 없고 지천에 널린 게 풀인 내게는 마트의 물건이 오히려 별 것이다. 

하지만 마트가 있더라도 나는 할 수 있는 한 마트 이용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에 나가 어쩌다 이마트 같은 큰 가게에 들어가면 진열장에 산더미같이 쌓인 식품들이 내눈엔 모두 독극물로 보인다. 좀 심한 비유이겠으나 정말이지 먹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치도 들지 않는다. 

시골에 살면서 농부들이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매일 보아야 하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도시인들은 마트 매대에서 식품을 고를 때 되도록 실하고 매끈하며 가격도 싼 것에 먼저 손이 가는데, 그것이 모두 농약과 화학비료 세례를 받고 자란 것임을 모른다. 물론 들어서 알기야 하겠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먹더라도 기분좋게 먹고싶은 것이리라.

개중에는 정부기관의 농약잔류 검사를 받고 나온 것도 있지만, 어차피 잔류농약 기준이란 것도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오랜 세월 먹다 보면 농약중독을 피할 수 없다. 저선량 방사선 피폭도 같은 이치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다 오염된 세상에 혼자 고고한 척 하지 말라고 비아냥대는 사람이 있다. 어쩌겠는가, 외눈박이 세상에 두 눈 박힌 사람이 왕따 당하는 것을.

내가 추구하는 세상의 원형은 ‘수렵채취’ 세상이다. 인간이 농업을 발견하기 전에 살았던 방식이다. 지금은 수렵채취가 스포츠나 취미로 되어버렸지만 그 옛날에는 생존 그 자체였다. 현대인들이 억척같이 돈을 벌어서 ‘문명생활’하는 것이 삶의 목표하면, 나의 경우는 어떻게 하면 돈을 들이지 않고 풍요롭게 살 것인가가 삶의 목표이다. 내가 생산 또는 채취하지 못하는 식품은 유무상통을 통해 조달하고, 필요로 하는 물건은 남이 버린 것에서 취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소소한 물건의 일부는 다이소에서 해결한다. 사실 나는 물건과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창고엔 남이 버리고 간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주변엔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풀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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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뜬금없이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얼마전 일본 가미야마에 견학갔던 친구들이다. 남의 집에 처음 오는 분들은 예외 없이 손에 뭐라도 들고 오는 우리네 미풍양속이 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보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물건들을 들고 온다. 드링크, 과일, 빵, 휴지 뭐 이런 것들인데 내 소비목록에는 없는 것들이다. 나는 달걀 한 꾸러미나 조그만 된장 한 통이면 감지덕지 감사백배다. 이 친구들과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빵집 &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맛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먹방 문화가 한류의 중요한 테마가 된 시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맛이 좋은 것은 대부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맛을 좋게 만들려고 온갖 안 좋은 것들을 집어넣으니까. 그리고 우리 입맛이란 것도 알고 보면 식품회사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할까? 언젠가 TV에서 조미료를 넣지 않은 중국음식점을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전국을 뒤져 겨우 한 군데를 발견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손님들이 먹고 나서 맛이 없다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조미료를 안 넣어서 그렇다니까 맛 없으면 다 소용없다며 다시는 오지 않겠단다. 이쯤 되면 백약이 무효이다. 내가 제시한 방법은 이렇다. 손님이 들어오면 입구에 최면술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이전의 입맛을 기억하지 못하는 최면을 거는 것이다. 맛이란 것도 결국은 기억이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들리겠지만, 사실 현대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식품업자에 의해 집단적으로 최면에 걸린 것과 같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최면을 걸었지만, 나는 건강을 위해 최면을 걸자는 건대 뭐가 다를까.
내가 풀을 먹으면서 되도록 양념을 적게 하는 이유도 원시의 입맛을 회복하려는 의도이다. 나는 최고의 맛은 적절한 소금간이라고 본다. 이것저것 넣어서 없는 맛을 내기 보다 재료가 가진 원래의 맛에 적절한 소금간이 주어질 때가 가장 맛있다. 따라서 된장과 소금만 있으면 생존을 넘어 풍요로운 식문화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주변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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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omments
문주석
간장과 고추장도 쓰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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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
이인형
정말 소중한 글 담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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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
Lidwin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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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
홍하일
소금 맛이 최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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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h
Young-Sun Park
귀한말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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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
양재성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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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
Kyung Hee Kim
옳은말씀
이시대에 수렵생활 ㅎㅎ
가능하면 참 정말 좋은데 , 스스로 작게 나마 텃밭을 꾸려갈수있다는것에 그나마 위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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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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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hyun Shin
마케팅은 사기다. 소주에 조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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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
김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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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
정권화
실천은 못하고 살지만 공감백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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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
Myung Ok Lee
에고고 쌤 전 간 안하는 건 감자를 갈아 부칠 때 뿐이예요. 하지만 일단 양념은 최소한으로 쓰려고 해요. 간장, 된장 소금 등이요 그래도 액젓도 넣고 뭐 그래요 히. 근데 쌤 입장에선 독이 있는 식물 빼고 다 먹거리인 셈이죠? 그것도 경험이 있어야 기능하죠 ㅠ ㅠ #잡초는_없다? 여튼 좋은 글 고맙습니다. 글 모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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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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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선
저도 우리 집앞 들판에서 웬만한 먹거리들은 다 채취해서 먹는데요.
'들판마트'라고 부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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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덕
공감합니다. 저희가 농사 지어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