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박 석 교수의 ‘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를 읽어 왔다.
이제 9장 건축, 10장 발산의 서양문화, 수렴의 동양문화를 남겨두고, 다른 책을 보려고 한다.
한 책만 오래 보다보니 약간은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고, 하나를 끝내야 다른 것을 시작하게 되는 독서 습관도 좀 바꿔볼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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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볼 책은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백낙청의 원불교 공부’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는 책이다.
나는 백낙청 교수의 현실인식과 정치적 판단에 대해 견해가 다른 면이 많다.
총론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각론에 가면 많이 달라지는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래서 솔직히 책에 선 듯 손이 안가는 면이 있다.
이것도 내가 극복해야할 독서 습관 같아서 당분간 이 책을 보려고 한다.
독후감은 지금처럼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전체를 다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내 입장을 내려놓고 읽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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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 교수의 책을 일단 좀 쉬면서, 여러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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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도덕경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코드로 동서양의 고금 문명사를 회통해서 읽고 있다.
물론 이런 시도가 갖는 위험성은 있다.(저자도 후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하나의 코드로 문명사를 일관해서 읽을 수는 없다.
그것은 또 다른 교조(敎條)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위험을 자각하면서 읽는다면 전체를 대관(大觀)하는 감각을 익힐 수가 있고, 각박하고 혼돈스러운 현실을 좀 더 여유있게 바라보게 하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실과 인식에 대해서 나선형 순환으로 보이는 여러 관점의 코드들이 있다.
대교약졸의 코드로 보면
졸(拙)Ⅰ→ 교(巧) → 졸(拙) Ⅱ로 순환한다.
자연과 인간, 인간 상호 간의 관계의 변천으로 보면
무분절(無分節)Ⅰ(원시적 무분절)→ 분절(分節 문명)→ 무분절 Ⅱ(새로운 문명, 또는 超文明)로 순환한다.
인간의 인식의 깊이에서 보면
분절Ⅰ(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
무분절(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
분절Ⅱ(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로 순환한다.
분절Ⅱ의 인식은 무분절을 통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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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문명전환이라는 절박한 인류사적 요구 앞에 서 있다.
그 핵심은 생활양식의 변혁이다.
축약하면 ‘단순소박한 삶’이다.
이것 역시 원시적 단순소박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을 통과하며 그것을 소화한 단순소박Ⅱ가 될 것이다.
그 이행의 동력이 자발적 자유욕구이어야 하는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생태 전체주의의 어두움이나 최악의 경우 여섯 번 째 대멸종의 주인공이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의 자각이 보편화되고, 자발적 자유욕구에 의해 삶의 양식이 단순소박Ⅱ로 바뀌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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