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농업을 실천하는 사람들 | 희망제작소
생명의 농업을 실천하는 사람들 2009.02.05. 조회수1,613
‘해피시니어’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은퇴자들이 인생의 후반부를 NPO(비영리기구 : Non-Profit Organization) 또는 NGO(비정부기구 : Non-Government Organization)에 참여해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NPO·NGO에게는 은퇴자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연결해주는 희망제작소의 대표적인 대안 프로젝트입니다. 본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는 ‘해피리포터’는 NPO,NGO들을 직접 발굴 취재해 은퇴자를 비롯한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먹거리의 위기,
사회 전반의 위기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중국발 멜라민 파동은 몇 달이 지나도록 그칠 줄 모른다. 우리나라도 멜라민 파동을 호되게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해 크게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국내 식품유통관리 시스템의 부실한 관리 실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몇 년, 아니 불과 몇 달 전만 되돌아봐도 이번 멜라민 파동이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님이 분명해진다. 쥐머리 새우깡, 톱밥 고춧가루, 납이 든 꽃게 등 아찔했던 먹거리 파동 사례는 수없이 많다.
과연 이러한 사고들을 단순히 ‘후진국’ 중국의 잘못, 어느 한 기업의 실수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좀더 큰 시야를 갖고 이 사고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멜라민 파동은 빙산의 일각이다. 오늘날 전세계에 일반화된 식품산업 시스템이 야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분별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 더욱 심해진 환경오염, 눈에 띄게 늘어난 암, 심혈관질환, 당뇨병, 비만 등의 질병, 농경지 확보를 위해 자행되는 열대우림의 파괴, 수익성 높은 상품작물만을 재배해 굶주림에 시달리는 후진국 농민들. 예민한 ‘더듬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먹거리 문제들이 단순히 먹거리 위기만이 아닌 삶과 사회 전반의 위기로 다가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닐까?
생명의 농업을 위해 모인 사람들
여기, 누구보다도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30여 년 이상 건강하고 정직한 먹거리, 나아가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땀 흘려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진리를 생명의 농업으로 실천하기 위해 모인 ‘정농회(正農會)’사람들이다. 정농회는 1976년에 첫걸음을 내딛은 농민들의 모임이다. 정농회는 일본 기독교 농민단체 애농회(愛農會)를 이끌던 고다니 준이치(小各純一)선생에게 큰 영향을 받아 창설됐다고 한다. 정농회 회원들은 지금은 고인이 된 고다니 선생을 여전히 정성스레 추모하며 아끼고 있는데 정농회 고문 원경선 씨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고다니 준이치(小谷純一) 선생이 1975년 한차례 유기농 강연을 한 뒤 전국에서 선생을 다시 만나 볼 수 없느냐는 성화가 들끓었다. 그래서 6개월 만에 고다니 선생의 두 번째 방한을 추진하게 됐다. 고다니 선생은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고 이듬해인 1976년 1월 다시 방한해, 마찬가지로 부천 풀무농장에서 또다시 강연회를 열었다.
두 번째 방문 강연 때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농민 40~50명이 강연장을 빼곡히 메워 성황리에 강연이 진행됐다. 강연이 끝나고도 참석자들은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곤 누구랄 것 없이 “우리도 일본의 애농회와 같은 유기농 단체를 만들자!”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즉석에서 유기농 단체 ‘정농회(正農會)’가 설립됐다” 그렇게 연수회를 마친 농부들은 고다니 선생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강권으로 정농회를 창립한다”고 선언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정관으로 삼아 이 땅에 생명농업을 일으킬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비로소 우리나라에 유기농법을 실천할 최초의 자발적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정농회 강령
一 우리는 농업이 인류생활의 근본임을 확신하고 하나님이 생육 번성케 하시는 일에 순응하기 위하여 바른 농사에 정진한다.
一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확신하고 정농으로써 이웃 사랑하는 실천을 철저히 한다.
一 우리는 농사의 참사명을 자각하고 정농정신으로 모든 노고를 기쁘게 받는다.
一 우리는 농촌의 근본적인 개선이 청년들에 대한 정농교육에 있음을 확신하고 이를 위해 자신이 모범이 된다.
一 우리는 동지적 단결을 확고히 하여 사랑과 협동의 이상농촌 건설에 매진함으로써 인류사회의 초석이 된다.
성경의 가르침을 정관으로 삼기로 한 정농회는 일본 애농회의 강령을 원용해 그들만의 강령 다섯 가지를 세상에 선포한다. 정농회의 강령을 간략히 정리하면 ‘바른 농사에 정진한다. 정농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한다. 정농정신으로 모든 노고를 달게 받는다. 청소년 정농교육을 위해 모범이 된다. 사랑과 협동의 이상농촌 건설에 매진한다’이다.
강령에는 ‘유기농’이라는 표현이 한 군데도 없지만 ‘정농’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유기농이란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탄생 배경과 강령을 통해 정농회가 ‘하나님의 뜻’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정농회가 말하는 하나님과 기독교적 정신의 갈래가 궁금해졌다. 10월23일 서울 송파구에 자리잡은 정농회 사무실에서 만난 진경환 사무국장에 따르면, 정농회에서 따르고 있는 하나님은 제도적 기독교의 닫힌 하나님이 아닌 열린 기독교의 ‘하나님적 정신’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농회 정신의 뿌리는 유영모,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에 닿아 있는데 함석헌 선생이 내세우던 ‘무교회주의’, 기독교의 유일신이 아닌 하나이자 한 나인 전체를 높여 부른 이름으로서의 ‘하나님’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농회가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 전체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 순응, 봉사 등의 가치들이기 때문에 정농회 회원가입 및 활동시 종교의 유무 여부, 종교의 갈래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차가운 시선
정농회 창립 당시 한국은 수출 중심의 개발독재가 한창이어서 녹색혁명이라 일컫어지는 생산력 증대가 최우선 과제였다. 이런 때에 유기농을 한다는 것은 국가 정책을 반대하는 ‘빨갱이’로 몰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유기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농회의 주장은 사람들의 냉대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정농회 고문 원경선 씨의 회상이다.
“당시 농촌사회에는 카톨릭농민회나 기독농민회 등 농민의 권리찾기 운동단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우리(정농회)도 유기농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참여적인 활동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권리찾기나 데모는 그 쪽에 맡겨두고 우리는 생명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 데모를 하려면 그쪽 단체에 가입하라”라고 큰 소리로 나무라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농민회 쪽에서 ‘정말 잘 한 일’이라며 도리어 감사의 말을 건네고 있다”
물론 정치적 권리찾기 운동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농회는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한 투쟁만으로는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유기농업 실천이야말로 농촌과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푸는 근본적 해결책이라 주장하며 실천해 왔다.
진경환 사무국장은 2003년 처음 제정된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대해서도 정농회는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육성법은 유기농업을 ‘고부가가치 상품’ 제조산업으로 보는 시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다품종생산에 큰 제약이 따르며 장기적으로는 농민의 자립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환경, 생명 보존의 철학을 바탕에 둔 유럽의 친환경법률과는 유기농업에 접근하는 기본 시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개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개개인의 바른 정신, 가치관을 세우는 게 먼저라는 것이 정농회의 입장이다. 정농 실현을 위한 노력들 어느덧 30여 년 이상을 정농(正農) 실천을 위해 묵묵히 땀흘려온 정농회. 그렇다면 정농회의 구체적인 활동들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정농회는 지금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정기연수회, 생명농업교실, 각 지회교육을 열어 회원 상호간의 유대를 다지고 정농정신을 고양시킬 교육을 해오고 있다.
개개인의 바른 정신과 가치관을 강조하는 정농회인만큼 교육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또한 해남·홍성·화천·장성 등 전국에 10개의 지회가 조직되어 있으며 1000여 명 이상의 회원들이 각 지역에서 유기농업 실천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1회 회보와 생명역동농법 농사력을 발행하고 있으며 연 6회의 소식지도 발행하고 있다. 1990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협력하여 경실련정농생활협동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정농회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안전한 유통을 위해 경실련이 책임지고 소비자규합 및 유통업무를 맡기로 하고 생협을 출범시켰다. 경실련정농생협은 현재 송파본점을 비롯해 6개의 점포를 개장했으며, 각 지회에서 농산물을 받아옴으로써 도농교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경실련정농생협은 수도권 일부지역을 위한 생협이고 10개의 지회에는 각 지회별로 지회와 지역이 결합한 독자적인 생협이 운영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부안 지회는 한울생협과, 장성 지회는 한마음공동체와 지역에서 연대를 이루고 있다. 즉 각 지회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지역별로 생명을 살리고 바른 먹을거리와 유기농업 정신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농민단체 애농회와 교류회를 갖기로 하고 매년 양국을 오가며 한·일 평화 교류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정농회와 애농회가 만들어가는 한·일 평화 교류는 고다니 선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평화운동을 바라는 마음에서 엎드려 고백한 그의 진심어린 사죄가 한·일 농민들의 가슴을 울렸다고 한다. 그 울림을 바탕으로 정농회의 한일 평화 교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은 1975년, 고다니 선생의 말이다. “나는 일본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내 깊은 성의로써 제언을 드립니다. 귀 정부가 내 마을 듣고 현재의 관행농법에서 유기농법으로 바꾸신다면, 지난 날 일본이 귀국에 대하여 범한 커다란 죄악을 몇 반분의 일이라도 용서를 받는 결과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직접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해한 범죄에 대해서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의 농민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농사법을 유기농법으로 바꿔주신다면 내가 걸머진 범죄의 대가에 대해 그 몇 만분의 일이라도 용서받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오염된 땅에서 나는 농산물이 우리 몸에 면역력을 길러주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기는 커녕, 각종 가공을 거치며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병까지 불러와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오늘날. 병들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가는 자연. 해가 더해갈수록 그러한 위험성이 점차 피부로 와닿는 시대이다. 그러한 만큼 이들이 소리없이 흘리고 있는 묵직하고 뜨거운 땀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더욱더 소중한 일이지 않을까? 이 땅에 처음으로 유기농업의 씨앗을 뿌린 정농회와 정농회 사람들. 한국 농업이 생명농업으로 하루 속히 바뀌어 모든 국민이 모든 농산물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생명력이 넘치는 농산물만이 생산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그들. 잘못된 시대의 흐름을 바로 잡고 정농인으로서 바른 농사, 바른 삶, 바른 먹을거리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는 그들. 그들이 소걸음으로 꿋꿋이 걸어 나가는 그 길에 발벗고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올리는 진솔한 기도에 우리의 작은 기도를 하나 얹어드리는 건 어떨까. 우리의 건강, 우리의 삶이 달린 문제이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먹거리의 위기,
사회 전반의 위기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중국발 멜라민 파동은 몇 달이 지나도록 그칠 줄 모른다. 우리나라도 멜라민 파동을 호되게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해 크게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국내 식품유통관리 시스템의 부실한 관리 실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몇 년, 아니 불과 몇 달 전만 되돌아봐도 이번 멜라민 파동이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님이 분명해진다. 쥐머리 새우깡, 톱밥 고춧가루, 납이 든 꽃게 등 아찔했던 먹거리 파동 사례는 수없이 많다.
과연 이러한 사고들을 단순히 ‘후진국’ 중국의 잘못, 어느 한 기업의 실수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좀더 큰 시야를 갖고 이 사고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멜라민 파동은 빙산의 일각이다. 오늘날 전세계에 일반화된 식품산업 시스템이 야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분별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 더욱 심해진 환경오염, 눈에 띄게 늘어난 암, 심혈관질환, 당뇨병, 비만 등의 질병, 농경지 확보를 위해 자행되는 열대우림의 파괴, 수익성 높은 상품작물만을 재배해 굶주림에 시달리는 후진국 농민들. 예민한 ‘더듬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먹거리 문제들이 단순히 먹거리 위기만이 아닌 삶과 사회 전반의 위기로 다가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닐까?
생명의 농업을 위해 모인 사람들
여기, 누구보다도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30여 년 이상 건강하고 정직한 먹거리, 나아가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땀 흘려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진리를 생명의 농업으로 실천하기 위해 모인 ‘정농회(正農會)’사람들이다. 정농회는 1976년에 첫걸음을 내딛은 농민들의 모임이다. 정농회는 일본 기독교 농민단체 애농회(愛農會)를 이끌던 고다니 준이치(小各純一)선생에게 큰 영향을 받아 창설됐다고 한다. 정농회 회원들은 지금은 고인이 된 고다니 선생을 여전히 정성스레 추모하며 아끼고 있는데 정농회 고문 원경선 씨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고다니 준이치(小谷純一) 선생이 1975년 한차례 유기농 강연을 한 뒤 전국에서 선생을 다시 만나 볼 수 없느냐는 성화가 들끓었다. 그래서 6개월 만에 고다니 선생의 두 번째 방한을 추진하게 됐다. 고다니 선생은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고 이듬해인 1976년 1월 다시 방한해, 마찬가지로 부천 풀무농장에서 또다시 강연회를 열었다.
두 번째 방문 강연 때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농민 40~50명이 강연장을 빼곡히 메워 성황리에 강연이 진행됐다. 강연이 끝나고도 참석자들은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곤 누구랄 것 없이 “우리도 일본의 애농회와 같은 유기농 단체를 만들자!”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즉석에서 유기농 단체 ‘정농회(正農會)’가 설립됐다” 그렇게 연수회를 마친 농부들은 고다니 선생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강권으로 정농회를 창립한다”고 선언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정관으로 삼아 이 땅에 생명농업을 일으킬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비로소 우리나라에 유기농법을 실천할 최초의 자발적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정농회 강령
一 우리는 농업이 인류생활의 근본임을 확신하고 하나님이 생육 번성케 하시는 일에 순응하기 위하여 바른 농사에 정진한다.
一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확신하고 정농으로써 이웃 사랑하는 실천을 철저히 한다.
一 우리는 농사의 참사명을 자각하고 정농정신으로 모든 노고를 기쁘게 받는다.
一 우리는 농촌의 근본적인 개선이 청년들에 대한 정농교육에 있음을 확신하고 이를 위해 자신이 모범이 된다.
一 우리는 동지적 단결을 확고히 하여 사랑과 협동의 이상농촌 건설에 매진함으로써 인류사회의 초석이 된다.
성경의 가르침을 정관으로 삼기로 한 정농회는 일본 애농회의 강령을 원용해 그들만의 강령 다섯 가지를 세상에 선포한다. 정농회의 강령을 간략히 정리하면 ‘바른 농사에 정진한다. 정농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한다. 정농정신으로 모든 노고를 달게 받는다. 청소년 정농교육을 위해 모범이 된다. 사랑과 협동의 이상농촌 건설에 매진한다’이다.
강령에는 ‘유기농’이라는 표현이 한 군데도 없지만 ‘정농’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유기농이란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탄생 배경과 강령을 통해 정농회가 ‘하나님의 뜻’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정농회가 말하는 하나님과 기독교적 정신의 갈래가 궁금해졌다. 10월23일 서울 송파구에 자리잡은 정농회 사무실에서 만난 진경환 사무국장에 따르면, 정농회에서 따르고 있는 하나님은 제도적 기독교의 닫힌 하나님이 아닌 열린 기독교의 ‘하나님적 정신’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농회 정신의 뿌리는 유영모,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에 닿아 있는데 함석헌 선생이 내세우던 ‘무교회주의’, 기독교의 유일신이 아닌 하나이자 한 나인 전체를 높여 부른 이름으로서의 ‘하나님’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농회가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 전체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 순응, 봉사 등의 가치들이기 때문에 정농회 회원가입 및 활동시 종교의 유무 여부, 종교의 갈래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차가운 시선
정농회 창립 당시 한국은 수출 중심의 개발독재가 한창이어서 녹색혁명이라 일컫어지는 생산력 증대가 최우선 과제였다. 이런 때에 유기농을 한다는 것은 국가 정책을 반대하는 ‘빨갱이’로 몰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유기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농회의 주장은 사람들의 냉대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정농회 고문 원경선 씨의 회상이다.
“당시 농촌사회에는 카톨릭농민회나 기독농민회 등 농민의 권리찾기 운동단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우리(정농회)도 유기농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참여적인 활동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권리찾기나 데모는 그 쪽에 맡겨두고 우리는 생명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 데모를 하려면 그쪽 단체에 가입하라”라고 큰 소리로 나무라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농민회 쪽에서 ‘정말 잘 한 일’이라며 도리어 감사의 말을 건네고 있다”
물론 정치적 권리찾기 운동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농회는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한 투쟁만으로는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유기농업 실천이야말로 농촌과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푸는 근본적 해결책이라 주장하며 실천해 왔다.
진경환 사무국장은 2003년 처음 제정된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대해서도 정농회는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육성법은 유기농업을 ‘고부가가치 상품’ 제조산업으로 보는 시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다품종생산에 큰 제약이 따르며 장기적으로는 농민의 자립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환경, 생명 보존의 철학을 바탕에 둔 유럽의 친환경법률과는 유기농업에 접근하는 기본 시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개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개개인의 바른 정신, 가치관을 세우는 게 먼저라는 것이 정농회의 입장이다. 정농 실현을 위한 노력들 어느덧 30여 년 이상을 정농(正農) 실천을 위해 묵묵히 땀흘려온 정농회. 그렇다면 정농회의 구체적인 활동들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정농회는 지금까지 매년 정기적으로 정기연수회, 생명농업교실, 각 지회교육을 열어 회원 상호간의 유대를 다지고 정농정신을 고양시킬 교육을 해오고 있다.
개개인의 바른 정신과 가치관을 강조하는 정농회인만큼 교육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또한 해남·홍성·화천·장성 등 전국에 10개의 지회가 조직되어 있으며 1000여 명 이상의 회원들이 각 지역에서 유기농업 실천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1회 회보와 생명역동농법 농사력을 발행하고 있으며 연 6회의 소식지도 발행하고 있다. 1990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협력하여 경실련정농생활협동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정농회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안전한 유통을 위해 경실련이 책임지고 소비자규합 및 유통업무를 맡기로 하고 생협을 출범시켰다. 경실련정농생협은 현재 송파본점을 비롯해 6개의 점포를 개장했으며, 각 지회에서 농산물을 받아옴으로써 도농교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경실련정농생협은 수도권 일부지역을 위한 생협이고 10개의 지회에는 각 지회별로 지회와 지역이 결합한 독자적인 생협이 운영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부안 지회는 한울생협과, 장성 지회는 한마음공동체와 지역에서 연대를 이루고 있다. 즉 각 지회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지역별로 생명을 살리고 바른 먹을거리와 유기농업 정신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농민단체 애농회와 교류회를 갖기로 하고 매년 양국을 오가며 한·일 평화 교류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정농회와 애농회가 만들어가는 한·일 평화 교류는 고다니 선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평화운동을 바라는 마음에서 엎드려 고백한 그의 진심어린 사죄가 한·일 농민들의 가슴을 울렸다고 한다. 그 울림을 바탕으로 정농회의 한일 평화 교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은 1975년, 고다니 선생의 말이다. “나는 일본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내 깊은 성의로써 제언을 드립니다. 귀 정부가 내 마을 듣고 현재의 관행농법에서 유기농법으로 바꾸신다면, 지난 날 일본이 귀국에 대하여 범한 커다란 죄악을 몇 반분의 일이라도 용서를 받는 결과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직접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해한 범죄에 대해서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의 농민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농사법을 유기농법으로 바꿔주신다면 내가 걸머진 범죄의 대가에 대해 그 몇 만분의 일이라도 용서받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오염된 땅에서 나는 농산물이 우리 몸에 면역력을 길러주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기는 커녕, 각종 가공을 거치며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병까지 불러와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오늘날. 병들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가는 자연. 해가 더해갈수록 그러한 위험성이 점차 피부로 와닿는 시대이다. 그러한 만큼 이들이 소리없이 흘리고 있는 묵직하고 뜨거운 땀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더욱더 소중한 일이지 않을까? 이 땅에 처음으로 유기농업의 씨앗을 뿌린 정농회와 정농회 사람들. 한국 농업이 생명농업으로 하루 속히 바뀌어 모든 국민이 모든 농산물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생명력이 넘치는 농산물만이 생산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그들. 잘못된 시대의 흐름을 바로 잡고 정농인으로서 바른 농사, 바른 삶, 바른 먹을거리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는 그들. 그들이 소걸음으로 꿋꿋이 걸어 나가는 그 길에 발벗고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올리는 진솔한 기도에 우리의 작은 기도를 하나 얹어드리는 건 어떨까. 우리의 건강, 우리의 삶이 달린 문제이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정농회(正農會) ☞ 전 화 : 02-404-6247 ☞ 팩 스 : 02-404-6248 ☞ 주 소 :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137-5 한흥빌딩 1층 ☞ 누리집 : www.jungnong.com / cafe.daum.net/jeongnong [사진 : 정농회 제공] 해피리포터 이대암(blurrytie@hanmail.net) 사람은 승리가 약속되어 있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불의가 넘쳐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해 묻고, 허위가 뒤덮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기 위해 싸운다. ☞ 더 많은 해피리포트 보러가기
원문보기: http://www.makehope.org/?p=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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