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5

유기농 생산조직과 대안적 공동체의 형성 - 충북 괴산 ‘솔뫼농장’






유기농 생산조직과

대안적 공동체의 형성

- 충북 괴산 ‘솔뫼농장’을 중심으로




  학 교: 가톨릭대학교
  학 과: 사회학과

이 름: 이지원, 임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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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 서론
  1. 문제제기
  2. 연구방법

. 예비적 고찰
한국의 유기농업의 역사와 현황

. 솔뫼농장의 형성과 변화
  1. 솔뫼농장 형성 배경
   1) 농업환경의 변화
   2) 농업정책의 변화

  2. 솔뫼농장 형성의 역사
   1) 1: (1994-1996)
   2) 2: (1997-2000)
   3) 3: (2000-현재)

. 솔뫼농장의 특징
  1. 솔뫼농장 구성원들의 특징 및 현황

  2. 솔뫼농장의 공동체적 속성
   1) 구조적인 측면
   2) 정서적 측면

  3. 유통의 변화

  4. 솔뫼농장의 개방성

. 맺음말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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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1. 문제제기

  지난 수 십년 동안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자연자원에 대한 지나친 남용이 이루어지면서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게 진행되었고, 1960년대 이래 계속되어온 증산중심 농업정책에 따른 고투입 농법은 토양의 산성화, 하천오염 등 환경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보전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대되었고, WTO 협상에 대한 대응 방법의 일환으로 고품질 농산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가 활발해지면서 환경친화적인 농업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기존농법과 다른 형태의 농법인 대안적농업방법의 하나로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이제까지의 유기농업은 정부로부터 식량증산 위주의 정책 때문에 외면당하고, 농민운동단체들로부터도 뜻은 좋으나 생산자, 소비자 모두 일부 계층에 제한되기 때문에 농업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러던 것이 수입개방에 대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으로서 정부나 농민운동단체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유기농업이 대안적 농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환경 친화적인 농업 기술과 자연과 인간, 도시 - 농촌, 생산 - 소비의 유기적 결합을 매개로 사회체계의 변화에 대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유기농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유기적 관계를 바탕으로 땅을 살리고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관계의 실현을 도모하는 활동이다(송명규, 2000). 따라서 유기농업 생산자들은 농업을 통한 경제적 이익의 충족과 생명중심의 가체체계의 확립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상만으로 새로운 체계의 구성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유기농업은 생산농가들의 경제적 이해와 생태적 가치 실현 사이의 갈등 등 유기농업의 생산, 소비, 유통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제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생산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변화한다. 또한 최근 증가추세에 있는 유기농 생산조직이 새로운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유기농업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유기농업이 전체 농업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급속한 도시화 · 산업화로 인해 동계나 동제, 두레로 대표되는 농촌의 마을 공동체적 성격은 무너져 가고 있다. 나아가 농촌 공동체의 위기는 공동체적 조직의 소멸이나 공동체적 문화의 소멸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인구의 급감도 불러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농업 생산조직의 형성은 그 지역의 농촌공동체를 되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는 충북 괴산 솔뫼농장을 중심으로 유기농 생산조직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그 특징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첫째, 유기농 생산조직은 어떤 요인에 의해 형성되는가? 솔뫼농장은 어떠한 배경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것은 조직의 구성과 체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유기농 생산조직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솔뫼농장의 변화과정은 어떤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으며, 솔뫼농장이 결성될 당시와 현재는 어떻게 변화, 발전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또한 솔뫼농장 11년 동안 유지·존속 되면서 지역사회 또는 외부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은 최근 도시-농촌의 연대를 통해서 지역사회 발전이나 농업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에 미약하나마 힘을 실어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연구방법

  이 연구는 현장방문과 조사를 통해서 실시하였다. 현장조사는 2005 5월 두 차례 방문을 통해서 회원에 대한 인터뷰, 내부 자료 수집을 진행했다. 자료수집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솔뫼농장의 변화과정에서 중요한 1998년 이전의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서 회원들에 대한 인터뷰와 함께 솔뫼농장에 관련한 기사 등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조직구성과 활동 및 사업에 대한 자료는 솔뫼농장의 회의록 및 정기총회 자료를 기본으로 하였고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문서로 보관된 내부자료는 원본 그대로 활용하고자 노력하였다. 


. 예비적 고찰

한국의 유기농업의 역사와 현황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1976년 기독교단체인 정농회가 발족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농회는 1976년 농약에 의한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 전 농토가 화학적 오염으로부터 벗어나 자연환경 및 생태계의 질서를 보전하는 생명농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며 그 본보기로 유기농업을 솔선 실천한다. 정농회의 첫 유기농업은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풀무원에서부터 실행된다. 그 후 풀무원을 거쳐 간 회원들이 기술과 관념의 계보를 형성하면서 우리나라 유기농업에서 인맥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각자 여러 지역에서 별개의 생산자단체나 유통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도 정농회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매년 1월 중순에 정기연수회와 총회를 열어 회원 상호간의 유대 및 설립목적과 취지에 따른 교육을 받고 있다. 1990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회와 협력하여 경실련정농생활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정농회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안전한 유통을 위해 경실련이 소비자규합 및 유통 업무를 맡고 있다.

정농회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조직이 한국유기농업환경연구회이다. 1978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정농회와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효율적인 기술의 개발을 목표로 개별 농민들에게 기술을 보급하나,
정농회에 비해 생태 관념이나 대안적 사회체계를 활성화하는 데는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 단체는 관념보다는 기술, 경제에 역점을 둔다.

1980년대 말에는 유기농업 단체들이 대폭 늘어난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이 전반적으로 활성화하기 시작하는 때이고, 삶의 질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진 때이다. 이때 생겨난 단체들 중 유기농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것은 한 살림(1986), 광주의 광록회(1987)등 이고, 그밖에는 생활협동조합중앙회, 한국가톨릭농민회, 여성민우회 등이 관련 활동을 벌인다. 이외에도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지방마다 작은 단체들이 생겨난다.

유기농산물이 친환경적이고, 식품의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농민들이 기술적, 경제적 난점을 인내하면서 재배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각자 나름의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부분 유기농업을 하는 데에는 생태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으로써의 유기농업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기농업은 개인의 힘으로는 정보 얻기도 쉽지 않고, 농사를 어려우며, 무엇보다 유기농업에 대해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고, 신념을 굳힐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기농업을 실행하는 단체들이 정농회, 한마음, 두레마을처럼 상당수 종교단체이거나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기농업이 신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정서적인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농민운동을 하거나 문화운동을 하던 엘리트들, 교수 등의 지식인들이 상당수 유기농업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기농업 관련 활동이 경제 외에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수행되고 잇고 지식인, 종교인 등 개인적인 이익추구보다는 사회의 일반 이익과 지적 사항들에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계층이 유기농업에 접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유기농업의 유통형태는 일반농사물이 일반시장 형태를 띠고 있는 것과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하거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유기농업 단체 혹은 전문유통업체가 개입되는 형태를 취한다. 중간에 유기농업 단체나 전문유통업체가 개입을 하더라도 일반농산물을 취급하는 것과는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거의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직거래로 간주한다. 이렇게 직거래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유기농산물이 화학농업 처리를 하지 않은 것임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직거래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생산물에 대한 신뢰를 소비자에게 전달함으로써 판매를 지속적으로 하여 가계에 안정성을 가져다주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유기농업 생산과 유통 부문에 있어서 주목되는 현상은 생산과 유통을 단순히 경제적 거래로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대부분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창출해 가는 활동으로 간주한다.


. 솔뫼농장의 형성과 변화

  1. 솔뫼농장 형성 배경

  1) 농업환경의 변화

농업생산조직의 형성과 변화에 있어서 농산물 가격, 소비자들의 기호의 변화 등 농업외부 환경의 변화는 생산농가의 조직 구성 방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솔뫼농장이 형성될 당시의 농업 외부적 요인을 보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과 WTO 농산물 협상의 가속화이다. 1980년대부터 부분적으로 실시되던 한국정부의 농산물 시장 개방 정책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자유무역 시장 논리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완전개방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농산물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은 농산물 가격의 하락을 가져왔고 소농 중심적 농업구조를 가진 농업의 해체위기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쌀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농산물 시장의 완전개방에 대한 위기의식은 농민들만이 아니라 전 국민적인 저항으로 이어지고 종교단체나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농산물기키기 국민운동’, ‘우리쌀지키기 운동본부’등 전국적인 국민운동[1]의 형태를 띤 범국민적인 저항운동의 성격을 띠고 나타났다. 농산물 시장개방, 특히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운동은 환경보존에 대한 중요성과 전통문화의 유지계승이라는 관점 등 농업이 갖는 경제외적 기능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일부 얻어낼 수 있었다.

둘째, 1987년 6월 시민대투쟁 이후 정치투쟁 중심의 시민운동이 생활상의 실천운동인 주민운동으로 성격을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여성단체나 소비자단체가 생활협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고 이것은 무공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의 증대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사회운동가들이나 사회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생활협동조합이 활발히 건설되기 시작하였다.[2]

농업 외부적 환경의 이러한 변화에 따라 종교적 일치성을 갖는 유기농업생산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톨릭농민회 소속 회원이나 기독교농민회 소속 회원들의 유기농업생산으로의 전환과 도시와 가까운 지역에서 사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유기농업 생산농가들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오미란, 2004).





2) 농업정책의 변화



솔뫼농장이 조직될 당시 농업을 둘러싼 조건은 개방과 그에 따른 농업위기, 위기에 대응하는 농어촌구조개선 정책으로 농업과 농민들이 혼란스럽던 시기이다. 정부의 농업정책은 개방화에 대비한 농업경쟁력 확보의 일환으로 농업의 전문화, 규모화, 기계화를 꾀한다는 목표 하에 농업구조조정의 일환인 ‘농어촌 발전종합대책’으로 가시화 되었다. ‘농어촌 발전종합대책’은 농민에게 경영과 조직방식의 협업화[3]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1990-1996년 6년 동안 농업영농 법인 3487개소와 위탁영농회사 4906개소가 조직되는 등 협업화는 급증한다.

영농조합법인은 협동 경영적 요소가 강하며 솔뫼농장의 경우에도 이 시기에 영농조합법인으로 출발한다. 오미란(2004)에 따르면 이 시기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대응은 이중적이었는데, 정부의 정책에 대해 대규모 투쟁과 대립을 지속하면서도 정책자금의 활용에 있어서는 의존·활용이라는 대응을 보였다. 즉 정부의 농업정책에 일면 강하게 저항하면서도 농업경영과 농가생계유지를 위해서는 정부정책에 협력과 활용을 통해 일정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1994년 이후 정부는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친환경 농업, 고품질 농업, 규모화 영농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농업구조조정정책을 전개 하였다. 솔뫼농장 또한 설립 초기에 정부의 중·소농 고품질 농산물 생산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원금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그동안 식량자급, 식량증산 정책에 따라 외면해왔던 정부가 유기농업(친환경농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유기농업에 대한 정부 정책은 다음 두 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유기농업 생산의 확대를 위한 지원이다. 유기농업 생산 확대에 관한 지원은 유기농업 단지화, 가족농 단지 조성, 지역특화 사업, 친환경 농업지구 조성, 친환경 농업 시범마을 등 유기농업 생산구조를 만들기 위한 생산조직의 개편에 관한 지원이다.

둘째, 유기농업의 제도화이다. 1993년 농산물품질인증제가 실시된 이후 1994년에는 농림부내에 친환경 농업과를 신설하여 환경농업정책 개발, 유기농업 육성 등의 지원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유기농업 정책이 제도화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공포되면서 1998년 11월 친환경농업 원년 선포를 통해 친환경농업은 농업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2. 솔뫼농장 형성의 역사



1) 제 1기: (1994-1996)



농장이 출범한 처음 시기인 제 1기는 무농약 농사를 짓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안정된 생산 기반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솔뫼농장은 무농약 농업을 하는 몇몇 농민들끼리의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영농조합법인으로, 또한 공동부지 마련 이후 솔뫼농장의 기초를 다지게 된 것이다. 솔뫼농장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일대와 경남 상주시 화북면 지역에서 생명농업(당시에는 무농약 농업)을 개별적으로 실천하던 6명이 모여 1994년 3월 5일 창립하였다. 초창기는 생명농업을 하면서 지역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하였다.

솔뫼농장이 틀을 잡게 된 것은 1996년부터였다. 솔뫼농장은 1995년 12월 28일 영농조합법인 설립[4]을 승인 받고, 이평리 179, 180-1번지 두 필지 약 2300평 정도의 공동 부지를 매입하게 된다. 이 시기 솔뫼농장은 영농조합법인 설립이 승인 이후 공동체성을 공고히 하고, 단체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게 된다. 그 일환이 공동농장과 시범농장의 마련이다. 회원들의 출자금으로 매입한 토지 중 공동농장은 회원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곳으로, 시범농장은 소비자들이 유기농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여러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다. 2005년 현재까지 시범농장은 소비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만, 공동농장의 경우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다. 처음시작 때 수박농사가 실패하고 연이어 다음해에도 수확에 실패했다. 솔뫼농장은 토지 구입과정에서 빚을 지게 되었는데 결국 공동농장으로 이용하던 토지를 처분하는 것으로 빚을 해결하게 된다.

또한 공동농장, 시범농장을 포함하여 회관,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는 공동부지를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예산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의 어려움은 솔뫼농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정일우 신부님이 부산교구로부터 조립식 건물 32평 1동과 7백만 원의 성금을 모금해옴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가로부터 중·소농 고품질 농산물 생산 지원사업을 통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5]

솔뫼농장의 제 1기에서 주목 할 점은 솔뫼농장의 새로운 시도들 뿐 아니라, 솔뫼농장의 시도들을 다방면에서 도와주는 협조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솔뫼농장 설립 초기의 농산물 유통과정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초기의 생산물 판매는 정일우 신부를 통해 가톨릭교회와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 유통에 관련해서는 4장에서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다.

유기농업을 하는 공동체의 경우 친목모임의 형식을 벗어나 영농법인을 설립하여 조직의 틀을 세우려고 할 때 크게 대두되는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솔뫼농장의 경우 영농법인 설립과 공동부지 매입을 위하여 회원 당 이백 만원의 출자금을 내었다. 이것은 중·소농 중심인 회원농가의 살림을 생각할 때 큰 경제적인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보여 진다.





2) 제 2기: (1997-2000)

2기는 기반을 갖추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드러났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개선하고 치유하여 올바른 유기농 생산자로서의 정신적 자세를 갖추는 데 역점을 두고 활동을 했던 시기였다. 구체적으로 의사결정 구조가 민주적으로 변모하였으며, 조직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내부 규약이 개정되었으며, 유통과정에 있어서는 한살림과의 연계를 통해 대외적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생산성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또한 생명농업이 무농약인지, 저농약은 안 되는지, 벌레가 많은 과수의 경우도 무농약을 적용해야하는 것인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입장에 대해 혼란을 겪고, 구성원들끼리 의견을 합쳐나가는 시기였다.

1998년은 1997년의 사건으로 과거 집행부가 대표와 총무만이 있던 형태에서 벗어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집행부 산하 부서가 생겼다. 또한 98년부터 여성들도 똑같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진 회원으로 인정되었으며, 임원 역시 남성과 여성의 비례를 맞춰서 뽑게 되었다.

직무
인원
성별
산하 부서 및 하는 일
대표이사
1
무관
농장 전반적으로 관장
총무
1
무관
유통부/회계부/시설관리부
이사
2
영농부/농기계부/취사부/
교육홍보부

2
감사
1


1

Text Box: 표 1>조직 형태




하지만 감사와 유통부장이 동일인물이고, 총무와 이사들도 각 산하 부서의 장을 맡는 경우도 있었다. 솔뫼농장의 경우 인원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이 직책을 맡고 있으며, 겹치기도 했던 것이다. 인원이 적고, 집행부가 새로 틀 잡는 첫 해이기 때문에 조직이 이름으로만 분화되었을 뿐 유기적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부와의 연계도 강화되었는데, 청주 가톨릭농민회와 오리넣기 행사를 개최하고, 이평리 179번지 공동 땅에 오리 농법 실시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뫼농장의 수입에 안정성을 보장하고, 소비자 연계운동을 활성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서울 한살림과의 관계가 본격화되었다.

1999년에 이루어진 내부 규약 개정은 이시기의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조직의 정관 등을 모방하여 만든 조항들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항으로 바꾸었다. 이는 유기농 공동체를 설립하고 경영하면서 축적되어 온 경험을 구체적인 조항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조직을 좀 더 튼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특히 회원의 자격이 생명농업을 1년 이상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지은 것은 1998년부터 재기되어 온 판매와 품질관리에 대한 농장 차원에서의 방침과 규제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건 내부적으로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농산물 출하문제라던가 농사짓는 품질 문제 같은 것들이었지. 그래서 우리 농장 회원들이 기본적으로 이런 정도는 해야 되지 않나 하는 것들을 회원들의 서약서에 담아낸거지. 서약서 같은 경우는 그 내용이 공동체적으로 살고, 지향하고 더불어 사는 거 지향하고, 농사에 있어서 유기농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그런 내용들이야.[6]






이때에 개정 및 신설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목 적
1. 생명 농업의 실천을 통한 자연 살리기
2. 서로 돕고 위하는 공동체 생활
3. 소비자와의 연대 협력
회원의 자격
1. 회원 가입 신청 당시 생명 농업을 1년 이상 실천하고 있는 사람
2. 생명 농업 교육을 2회 이상 이수한 사람
3. 모든 농사는 무농약 이상으로 한다
4. 단 신입회원은 3년부터 모든 농사는 무농약 이상으로 한다
회원 가입
1. 갖추어야 할 서류: 입회원서, 서약서, 교육 확인서, 생명 농업 실천 계획
2. 총회에서 회원의 2/3이상 찬성으로 가입 승인
3. 총회의 승인 후 출자를 납입함으로써 회원 자격 부여
회원의 의무
1. 농장이 결정한 생산품의 품질 기준을 지킬 의무
2. 농장이 결정한 생산품의 가격을 지킬 의무
3.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생산품을 우선적으로 공급할 의무
4. 생명 농업 관련 교육을 년 1회 이상 이수할 의무
출하원칙
1. 출하할 생산물은 유기농산물 및 무농약 재배로 한다.
2. 회원은 년 초에, 재배할 생산물에 대한 생산 계획서를 제출한다.
3. 회원은 생산 계획서 상의 내용에 변동이 생겼을 때 지체 없이 분과에 통보한다.
4. 회원은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생산물을 우선적으로 출하한다.
5.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생산물은 농장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

Text Box: 표 2 > 솔뫼 농장 내부 규약(개정안)




위의 인터뷰 내용에서 보여 지듯이 농장 재정의 구조 바로잡기와 제대로 된 생산품 품질 및 출하관리를 위하여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나서 1999년부터는 유기농을 지키기 위해 가입절차에 조건이 생기고, 회원들은 서약서를 쓰게 되었으며, 생산품 품질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합리적으로 가격을 매겨 출하하기 위하여 품질관리 위원회와 가격 결정 위원회가 생겼다. 품질관리 위원회는 생명 농업 재배 기준을 확립하고, 생산물에 대한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하며, 유기농 농업을 하지 않은 위반자가 생기면 제재 조치를 시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이전부터 불거져 나온 유기농업에 대한 생산자의 신뢰성 문제가 개인의 도덕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생긴 것으로 보고, 애초에 회원을 뽑을 때부터 생명 농업을 1년 이상 실천해 왔고, 생명 농업 교육을 2회 이상 이수했으며, 신입회원의 경우 3년부터 모든 농사는 무농약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들었다. 또한 조직 내의 감시체계를 확고히 하고,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상설 기구를 만들었다.

총회자료에 의하면 대부분의 부서가 당시에 신설되었고, 특히 품질관리 위원회는 그 필요성에 비해 틀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제대로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8년부터 시작된 한 살림과의 연계로 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품질관리 위원회의 필요성을 더욱 중요해졌으며, 위원회의 활동은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의 생산자에 대한 신뢰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당시에 유정란이 유통과정에서 상해서 소비자에게 항의가 들어왔는데, 이것을 생산자가 품질관리 위원회에 바로 알리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소비자에게 사과를 함으로써 해결했던 문제였고, 전체에게도 미안해서 말하기가 어려웠던 것을 위원회에 알림으로써 책임감도 강해지고,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토양 관리 면에서 화학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했으니 줄이거나,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종자를 선택하는 일 등을 품질관리 위원회에서 하였다.

또한 공동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일 품목에 대한 평균 가격 결재를 시행하고, 공동체 기금 활용을 통한 재해 보상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농장 소풍을 농장 회원 및 가톨릭 농민회 회원들과 같이 가고, 농장 회원 전원이 농장 연수를 가기도 했다. 98년 교육 홍보부가 생긴 후로 농장 소풍이나 농장 연수, 농장 단합대회 등 여러 가지 친목모임과 행사가 생겼다.

위에서 약술한 대로 농장 공동기금을 위해 만들었던 공동농장은 자금난의 해결책으로써 매각하게 되었다. 이에 공동기금의 확보를 위해 생산자들은 가구의 농산물 출하한 금액의 5%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 5%중 1%는 생산자 기금으로 1%는 한 살림에서 출자금으로 제하고 실질적으로 농장의 제정이 되는 것은 출하액의 3%이다. 이러한 공동기금에 의해 솔뫼농장은 재정적으로 안정성을 보장받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공동체성을 위한 모임과 행사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3) 제 3기: (2000년-현재)



회원들 간의 상호 신뢰 회복과 상부상조, 적극적 참여를 통한 마을 공동체적인 솔뫼농장의 모습을 만들어 가자는 목표 아래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외부 활동을 확장시키며, 생산과 유통의 안정성을 한층 더 모색하는 시기이다.

2000년 이후부터는 솔뫼농장의 생산이나 구조가 안정화되었고, 구성원들의 표현에 의하면 ‘자의든 타의든 내외로 규모가 커졌다.’ 이 과정에서 이제까지는 솔뫼농장의 내부에만 신경을 써왔다면 점차적으로 외부와의 연계와 유기농업의 기술과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농활 오던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솔멩이 공부방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흙살림 연구소에서 벼, 고추, 토마토 등 주요 품목에 대하여 품질인증 실시하여, 신뢰성을 한층 높였다.

이 시기에 특히 주목할 점은 솔뫼농장이 2003년부터 ‘솔뫼 농장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간 솔뫼농장이 유기농업을 지키는 데에 급급한 것에서 벗어나 향후 5년간의 비젼을 세운 것으로 보여 진다.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지역 전체와 함께 하는 일을 확장하고, 농민을 위한 저리 장기 신용 대출 문제를 해결하고, 회원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을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등의 조직의 합리적 운영과 농업문제의 직접적 해결 등이다. ‘솔뫼 농장 중장기 발전 계획’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솔뫼농장 가공사업[7]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추진이유는 한살림등 소비단체의 요구가 첫 번째이다. 최근의 웰빙 바람으로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에 농산물 뿐 아니라 가공품까지 유기농업으로 만들어진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추진이유는 회원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품목의 확대이다. 그 동안 솔뫼농장의 주 생산물은 쌀, 고추, 토마토, 유정란 등 몇 가지 품목에만 치우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하는 적은 품목들이 그 해 가격이 폭락하거나, 흉작을 하면 가계에 손실이 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잡곡, 야채, 산채 등 회원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어서 가공·원료화 할 수 있는 품목을 재배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불안정성을 줄여나가고자 한다. 세 번째는 지역에서 유기농업 생산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이고, 네 번째는 중, 장기적으로는 가공사업을 통해 번 돈을 회원복지 및 올바른 지역 일에 되돌리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봐 솔뫼농장의 가공사업은 회원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유기농업을 알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 공동체 전체에 이득을 줄 목적을 가지고 있다. 솔뫼농장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궁극적으로 솔뫼농장의 회원 수를 늘림으로써 세를 확장하고, 규모를 크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 유기농업 기술을 전해주고,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들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가 각 지역에 널리 퍼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적 측면과 가공사업 계획은 잘 부합한다.

실제로 솔뫼농장은 지역의 환경 현안인 채석장 개발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에 참가하는 등 여러 가지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열리는 추수감사절에서 나온 수익은 북한동포 돕기나 세계 기아 돕기에 성금으로 내고 있다.








. 솔뫼농장의 특징

  1. 솔뫼농장 구성원들의 현황 및 특성

번호
이름
성별
주소
생년
농사경력
생명농경력
가입년도
주작목
1
권영매
청천면
1967
11
11
1994
오미자
2
김관식
청천면
1961
7
7
1998
호박, , 오미자
3
황창교
화북면
1963


1994
토마토,
4
김성열
청천면
1960
9
9
1995
유정란,
5
김순귀
청천면
1960
20
18
1994
고추, 토마토
6
김용달
청천면
1964
4
4
2003
천연염색,
7
김의열
청천면
1966
11
11
1994
, 오미자, 호박
8
함창용
청천면
1955
20
5
2002
, 감자
9
김용옥
화북면
1957
27
10
1994
토마토,
10
김철규
화북면
1958
26
11
1994
유정란,
11
누룩
청천면

9
9
1999
고추,
12
민경기
화북면
1963
19
15
1994
유정란,
13
배숙희
청천면
1941
7
7
1999
고추,
14
백승권
청천면
1966
6
3
2002
느타리, , 호박
15
안선경
청천면

6
3
2002
느타리, , 호박
16
이형근
화북면
1958
30
10
1994
, 고추
17
정천복
청천면
1958
25
15
1994
고추, 토마토, 수박

Text Box: 표 3> 2004년 솔뫼농장 구성원 현황

   


<표3>에서 보여 지듯이 솔뫼농장은 12가구, 18명[8]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 중 귀농자의 비율은 절반을 넘는 수준이며 여성들의 회원가입도 점차 늘어 2005년 정지총회 때에는 남성회원들의 배우자 모두가 회원으로 가입할 예정이다. 앞서 말 한대로 솔뫼농장 초기에는 여성들의 회원가입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98년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이후에 여성들의 회원참여가 활발해졌다. 40대와 50대 초반이 대부분인 연령구성은 여타의 농촌지역에 비해 비교적 젊은 인력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농장 설립 초기에 주축이 되었던 회원들은 거의 모두가 아직도 솔뫼농장에 남아있으며 이들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0여년을 보내는 동안 다소간의 회원 가입과 탈퇴들이 있었지만 조직의 운영이나 방향에 타격을 줄 정도의 회원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솔뫼농장의 기본적인 특성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구분
특징
가치관
  생태주의적 가치관
종교성
  비종교적
생활형태
  가구별. 개별 생활
공동체속성
  농촌 공동체
  유기농생산자 중심의 공동체
지도력
  과거에는 한 개인의 카리스마가 강했으나,
  현재는 집단적 성격이 강함.
유통
  공동출하, 무점포
  (주로 한살림과 가톨릭농민회에 출하)
정부지원
  받은 적 있음
외부성
  개방적
소유형태
  개별 소유를 기본으로
   농장의 건물과 물품은 공동소유
주요생산품
  유정란, 찰벼, 고추, 토마토 등 등.
외부공급물품
  생산물
회원관리
  지속적
의사결정방식
  합의제

Text Box: 표 4> 솔뫼농장의 특성



  2. 솔뫼농장의 공동체적 속성

  1) 구조적인 측면

  

공동체는 하나의 정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형태적으로는 종교적 집단, 소수 집단, 동일 직종의 구성원들, 그리고 특정조직 등을 공동체라 지칭하는 경우도 있으며, 정신적 또는 심리적 연대를 이루고 있는 각종 단체들도 자칭/타칭 공동체로 취급되어 왔다. 또한 지리적으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마을, 읍, 도시 등을 이루고 있는 사회적이며 지역적인 조직체를 공동체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김성균, 2002).

이렇게 공동체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다. 공동체라는 말은 사용상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공동체 속성에 따라서 몇 차원으로 분류를 할 필요성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솔뫼농장의 공동체적 속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유기농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물적 토대에 기반 한 분류이다. 특히 유기농공동체의 경우는 농사를 경제적 토대로 하기 때문에 구성원들 상호간의 토지공동소유 여부와 공동 노동의 양에 따라 공동체성의 수준을 나눌 수 있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형태에 기반 한 분류이다. 솔뫼농장은 계획공동체로써 특히 생태적 계획공동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유기농공동체의 물적 토대에 의한 분류는 한경호(2001)에 따르면, 첫 번째로,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 토지의 사적 소유권은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계획과 생각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특정한 과제에 한해서 함께 연대하는 형태가 있다. 물론 이 경우도 농법은 생명농법을 전제로 한다. 생산 및 유통은 개인적으로, 생태적 생활과제는 공동적으로 수행하는 형태이다.

두 번째로, 토지의 사적소유권은 인정하고 생산은 개인적으로, 유통은 공동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유통은 작목반이나 생활협동조합, 농협 등의 조직을 통해 공동적으로 한다. 협동적 노동, 즉 품앗이가 일정정도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아직 전적인 공동생산은 아니다. 부분적인 협동의 단계이다. 이 형태가 농촌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진일보하면서도 현실적인 방법이다.

세 번째로, 토지의 사적소유권은 인정하고 생산, 유통, 분배까지 공동으로 하는 경우이다. 토지, 자본, 기술, 노동 등의 생산요소들을 개인별로 차등을 두어 나중에 분배에 반영한다.

네 번째로, 토지의 공동적 소유 및 생산, 유통, 분배 등 전 과정을 공동적으로 수행하는 형태이다. 이 형태의 공동체는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하여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생산, 유통, 분배의 전 과정을 공동적으로 실천해야 가능하다.

한국은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의 경우도 현재 충북 증평의 증평영농조합법인(구, 증평 새마을협업농장) 정도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텐데, 그 곳은 애초부터 토지가 개인소유가 아닌 상황 속에서 노동의 협동화를 기초로 하여 생산과 유통, 그리고 분배를 공동적으로 수행해 왔다.

솔뫼농장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보여 진다. 즉, 생산은 개인적으로, 유통은 공동으로 하고 있다. <표2>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솔뫼농장은 가족농 중심으로 각 개인이 각자 생산을 하고 있지만, 유통은 솔뫼 유기농업 영농조합 설립 이후 솔뫼농장이라는 공동명의로 출하되고 있다. 초기에는 유통의 활로가 개척되지 않아서 출하는 솔뫼농장의 이름으로 했지만, 실질적인 판매는 개별적으로 했다. 하지만 유통이 안정화된 현재는 공동으로 한살림이나 가톨릭농민회 등의 유통조직에 판매를 하고 있다. 토지의 소유권 역시 사적 소유권을 기본으로 하고, 농장 소유의 공동 땅과 건물을 공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그 현황은 아래와 같다.

 
  
공동 토지
 이평리 180-1번지 약 2300평 가량
공동 건물
 소비자의 집, 사무실, 작업장, 창고, 퇴비장, 황토방
공동 농기구
 냉장창고, 발효기, 트랙터, 관리기, 2.5톤 보냉탑차, 1톤 냉동탑차

Text Box: 표 5 > 솔뫼농장의 공동소유물




특히 공동 농기구의 경우 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농가는 대부분 각자 농기구를 사용하므로 실제적으로는 무용지물이다. 심지어 현장조사를 위해 솔뫼농장에 내려갔을 때, 마을 아저씨께 공동으로 사용하는 트럭에 대해서 묻자 안 그래도 요즘 잘 안 보인다고 말씀하셨을 만큼 실제 농사에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공동농기구를 사용하면서 사적 소유가 아니어서 발생하는 관리 소홀에 대한 반성과 해결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공동체성이 공고해 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솔뫼농장은 계획공동체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계획공동체는 정주 공간이 있든 없든, 어떤 공동의 목적이나 이념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를 뜻한다. 계획공동체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체가 있으며,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의도나 계획이 있다. 계획공동체는 자연발생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김성균, 2002). 이러한 현대적 계획공동체 운동은 지역운동, 협동조합운동, 소(규모)공동체 운동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9]

소공동체운동은 공동체 운동의 보편적인 형태로서 개인적 이해관계의 탈피, 자율적인 인간적 자각 등을 주요 사항으로 다루고 있으며, 강한 의식성을 기반으로 단위 지역 내에서 자급자족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공동체운동은 종교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생태적인 가치에 근거한 소규모공동체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솔뫼농장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여진다. 솔뫼농장의 전체 구성원 18명(<표1>에서 ‘누룩’이라는 것은 신부님 2명이 속해있는 단체명을 지칭한다.) 중에서 성직자는 3명(누룩, 배숙희)이나 되지만 솔뫼농장은 종교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생태적인 가치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나는 종교랑 전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농장에서 종교 얘기를 해 본적도 없고, 신부 수녀라고 해서 더 배려해주고 고려해주고 이런 것도 없고 다 똑같이 신부님이기 때문에 수녀님이라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농사꾼이기 때문에 신부와 수녀 이전에 농부니까 우리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거고.[10]

 그거는 뭐 종교를 떠나서 그건 모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없고, 지금 모 인제. 판매 면에 있어서는 천주교 쪽으로다가 정신부님이 신경을 많이 쓰셨지. 천주교에 농장식구들이 토요일마다 새벽에 가서 수요일마다 인천 가서 일요일마다 가서 팔고, 모 부산까지 가고 다 다녔지. 가톨릭으로 많이 나가서 종교적인 이유라기 보다는, 정신부님이 신경을 많이 써줬고. 그때까지만 해도 농민회, 가톨릭농민회라는 조직이 유기농의 틀의 붐을 일으키는 시절이었거든 그거랑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11]




위의 인터뷰에서 보여지 듯 두레마을로 대표되는 다른 생태공동체가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것에 비해 솔뫼농장은 종교성보다는 생태주의라는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솔뫼농장에 성직자들의 존재, 특히 정일우 신부님이라는 존재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영향력이 유통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는 것에도 있지만, 구성원들이 신부님들이 계셔서 솔뫼농장이 처음에 가졌던 목표의식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들을 하는 것으로 보아 성직자들이 정신적으로 지지를 해주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솔뫼농장의 구성원들은 대개 이론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유기농업을 시작했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생태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약 많이 쳤지. 농약 중독이 되서.. 제초제고 모고 엄청나게 썼지. 인제 내가 농약 중독 되고서 팔 다리가 마비되고 나서 그때부터 이게 아니다. 그땐 모 유기농이라고 안하고 약 안치고 농사 짓겠다 정도지.[12]

도시 살 때부터 한살림 회원 소비자회원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인식을 갖게 되었지. 유기농을 해야겠다는 큰 계기가 있거나 그런거는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도시에서 접하면서 환경문제나 여러 가지 건강 뭐 이런 거 생각하면서 당연히 농약은 안 치겠고 된거지.[13]



이렇듯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와 만든 솔뫼농장은 애초에 이론적인 지향점이 없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생태적 계획공동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생태적 계획공동체는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을 도모하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책임을 근거로 한 생명윤리 및 토지윤리와, 상호의존적인 공생적 삶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의 새로운 질서 체계를 구축하고, 생태계의 생존 조건을 배려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특히 이들은 경제적으로 낭비를 줄이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인간 활동을 자제하며, 정치적으로 분권화된 의사결정,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위처럼 정의된 생태적 공동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유기농산물 생산 및 유통과 관련된 것들이다. 주로 유기농법, 자연농업, 순환농법 등의 형태로 농작물을 생산하여 도시 소비자에게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촌형 공동체와 이러한 농촌형 공동체로부터 먹거리를 공급받아 소비하는 도시형 생활공동체가 있다. 유기농산물 관련 계획공동체는 땅과 생명이 과학농업으로 인해 피폐화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유기농업 중심으로 농촌에서는 생산활동을 하고 도시에서는 주로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와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유기농업을 하면서 생태적 계획공동체로써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산자-소비자 연계로 이루어지는 유기농산물 관련 계획공동체들은 대체로 경제적 잉여 추구의 성격이 강하므로 자신들의 생태적 자각과 이상을 현실사회에 확산시키는 수단으로서는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유기농업 생산을 하는 생산자, 직거래나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유통 및 소비단체들은 대체로 유사한 이념을 지니고 있으며, 이 이념의 구현을 추구하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이상과 현실이 쉽게 일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4]

 '80년대 초부터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지. 유기농산물 생산에 뛰어든 계기는 처음부터 "대단한 환경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루과이 라운드니 쌀 시장 개방 등의 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유기농을 하면 생산적이다"라는 주위의 권유로 시작했지. . 그러다가 유기농산물 생산을 하면서 그는 점차 환경 문제에 눈을 뜨고 유기농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거든.[15]



위의 인터뷰처럼 처음부터 환경의식이 있어서 유기농업을 시작한 경우보다는 유기농업의 경제적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구성원들이 많았다. 솔뫼농장 내에서는 생태주의적인 가치관은 없이 최근 웰빙 바람에 힘입어 유기농이 돈이 된다고 생각해서 가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빨리 탈퇴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공동체를 지속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개인들 각자가 생태적인 가치관을 강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솔뫼농장은 구성원들끼리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규약을 세우고, 생활양식을 친환경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현장조사를 위해 솔뫼농장을 방문했을 때도 소위 유기농업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를 갈 때 자전거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설거지를 할 때 세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상에서의 친환경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9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에는 지리적 생태공동체와 기능적 생태공동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16] 그 배경은 생태위기의 극복이라는 거시적이고도 전지구적인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도 있고, 단지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한 목적을 지닌 것도 많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의 생태공동체가 설립 초기부터 뚜렷한 이념적 배경을 가지고 시작한 경우가 많지 않은 것에 비추어 봤을 때, 운영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집단과 개인의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농장식구들만나면 즐거워. 속사정도 털어놓을 수 있고,,
처음에는 퇴비 같은 거 정보 교환도 많이 되고 그랬는데, 지금은 농사자체보다도 생활에 관련한 것들도 바꿔나가고 있지. 세제안쓰기, 미원안먹기. 농장식구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그런거야. 유기농이 모든 생명을 다 살린다, 농약 화학비료 안쓰니까 땅살리지, 좋은 먹거리 먹으니까 생명살리지, 물오염안시켜서 물살리지.

처음부터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미원안먹기만 해도 5,6년 걸렸어. 쉬울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고. 끊어야 하는게 당연한데도 어려워. 비누도 한 살림에서 나온 비누로 쓰려고 해도, 마음은 있어도 몸이 써야 쓰는 거거든. 그런게 완전히 해소되는게 힘들어. 농장은 계속 그런걸 추구해 왔지.
유기농에만 국한된게 아니야. 서로 큰틀에서 공생하는 거지. 한 살림이나 생협이나 가톨릭 농민회 회원이 천만명 이천만명 된다면 환경은 오염될 수 가 없어. 우리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함부로 할 수가 없거든.[17]

  유기농 공동체가 안전한 먹거리 확보에 머무르거나,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생태위기의 극복이라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려면 개개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우선 시 되야 하지만, 서로를 지지해주는 집단의 역할 역시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생활 양식을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내 구성원들은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2) 정서적 측면
  

앞서 보았듯 솔뫼농장의 구조와 운영방식은 함께 살고 함께 먹는 일명 ‘밥상공동체’라 불리는 공동체의 모습과는 거리를 가진다. 그러나 농장회원들이 정서적으로 느끼는 공동체성은 실제 구조에 비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실재하는 구조에 비해 더 큰 정서적으로 더 큰 공동체성을 느끼는 것은 솔뫼농장의 가치지향적 성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솔뫼농장 회원들의 경우 경제적 이익보다는 자신의 농약중독, 생명의 가치 등의 이유로 유기농업을 선택했다. 이것은 다른 유기농 관련 조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정농회 초대 회장을 지낸 오재길 옹은 ‘유기농업을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한 농법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자체, 문명 자체를 바꾸는 거창한 사업이다’라고 말했다(장길섭, 1976, 재인용). 실상 유기농업은 기존농업에 비해 더 많은 노력(시간과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반면 보상이 불확실하고 많은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업을 선택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 새로운 사회관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삶의 철학이 전재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유기농산물이 각광받고 있음에도 유기농이 일반적인 생산방식이 되기 어려운 것도 그러한 이유가 클 것이라 생각된다. 유기농을 하며 힘든 과정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이 회원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기본적인 가치에서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실제적 구조가 미약하더라도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솔뫼농장은 전통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일종의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꼭 같이 농사를 짓는다는 건 아니더라도, 큰 틀에서의 공동체는 돼야 한다는 거지. 마을단위 공동체는 그전에도 다 형성 돼있었잖아. 이 공동체가 깨진 건 기계 때문이거든. 예전에는 품앗이 형태로 공동체가 있고, 그게 아니면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던 건데, 기계가 다 깨버린거야. 나는 공동체가 깨지면 안된다고 생각해. 다들 바르게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만 아는 개인주의 같은 게 다 있거든.[18]



위 인터뷰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솔뫼농장은 느슨한 의미의 마을공동체를 지향하지만 그것이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다. 그것이 마을 수준에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소단위의 마을공동체들이 여러 개 모인 연합 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큰 공동체’로 인식될 수도 있는 연합 체제는 솔뫼농장의 개방적 성격을 보여준다. 솔뫼농장의 개방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논의하기로 하겠다.

같은 가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 말고도, 솔뫼농장의 공동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요인이 있다. 바로 유기농업이 갖는 성격이 그것이다. 유기농업은 특성상 지력향상과 제초작업이 작업과정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내 논만이 아니라 인근 농민들의 논밭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지역의 집단화이다(오미란, 2004). 또한 제초작업이나 퇴비 활용, 유기농을 중단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유혹으로부터 유기농법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형성하고 함께 하는 것은 유기농업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솔뫼농장의 공동체성이 언제나 일률적으로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정서적으로 느끼는 ‘우리는 공동체다’라는 생각이 그대로였다 할지라도 솔뫼농장 회원들이 함께하는 부분들은 변화해 왔다. 먼저 농장차원의 행사나 소비자와의 만남, 농장의 새로운 사업 구상 등으로 회원들이 함께하는 활동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솔뫼농장 회원으로써 대외적인 활동을 벌이고 외부사람을 만날 일들이 늘어나면서 회원들은 ‘솔뫼농장 회원’이라는 정체성을 조금씩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농업과 관련된 일이긴 하지만 이것이 노동력을 투입하여 농사를 짓는 농사일 그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외부적인 부분에서 ‘솔뫼농장’이라는 공동체를 찾는 반면에, 농사일과 관련된 부분은 전보다 함께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굵직굵직한 것들은 다같이 도와주고 했었지. 누가 고추 심는다고 하면 다같이 가서 해주고.. 지금은 하우스를 세우는 일 같은 큰 틀에서는 그게 되는데, 인원이 많아서 그런건지 어쩐지 다같이 도와주는 건 잘 안되더라고. 이제는 거의 각자하지. 큰 일들은 도와주는데 한 2-3년 전부터 작은 일은 도와주는 게 없어졌어. 옛날에는 모두가 함께 하는 게 솔뫼농장의 자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골에서도 자꾸 공동체가 깨져가는 거지.[19]

  현실적으로 솔뫼농장 회원들의 토지는 각기 분산되어 있어 집단적 영농을 하는 것이 힘들다. 주위의 토지들은 관행농을 하는 토지도 많아, 그럴 경우 옆 토지 주인에게 회원들의 토지 가까이에는 농약을 치지 않도록 부탁해야 한다. 또한 위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회원들은 큰 농사일은 서로 돕지만, 일상적인 농사는 회원 각자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뫼농장은 비록 느슨한 형태일지라도 공동체이며 앞으로도 공동체를 지향할 것이라는 것이 솔뫼농장의 생각이다. 그만큼 유기농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나아가 농업[20]을 해나감에 있어서 공동체 의식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3. 유통의 변화



기존의 농업생간과 유통체계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격리, 도시와 농촌의 분리, 소극적 소비자로서의 대중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먹거리가 지니고 있는 몸, 건강, 생명 등의 의미는 전혀 반영하지 않고 단순한 시장경제의 경쟁논리와 상품성에 의존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대량생산-대량 소비적 농산물 식품 체계의 경직성과 규모의 경제가 초래하는 ‘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효율성과 낮은 가격을 근거로 한 마케팅이 건강과 농식품의 안전의 문제를 간과한다는 비판적 인식이 증대되었다(김철규, 2003). 이러한 비판은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고품질 식품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였고, 최근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웰빙의 트렌드화에 힘입어 소비자와 직접적 대면 판매에 의존하던 유기농산물은 기존의 대형 마트에서도 거래되는 등 보편화되고 있다. 또한 유기농산물 시장은 정부의 친환경 농업정책 실시 이후 다변화되고 있는데 초기 유기농산물 시장은 신뢰에 기초한 대면적 판매에서 생산자의 조직화와 더불어 소비자의 조직화를 통한 조직적 판매로 변화 과정을 거쳐서 최근에는 개별생산자와 직거래, 인터넷판매,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을 통한 상업적 판매방식과 농촌문화, 생태체험[21], 관광을 결합한 패키지 판매 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전문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상품에 대한 신뢰의 근거나 구매방식도 차츰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다(오미란, 2004).

솔뫼농장의 역사를 볼 때, 솔뫼농장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조직 내적 관계만이 아니라 조직 외부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부적인 요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유통이다. 유기농산물 시장이 열악했을 때는 생산자들 중에서도 유기농업에 대한 가치를 확고히 가지고 있는 성원들만이 유기농업이라는 생산방식을 선택한다. 이 시기의 소비자와의 관계는 상품의 교환이 아닌 유기농업, 생명존중이라는 가치를 매개로 상품판매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유기농업 시장이 확대되면 조직에 우호적인 구성원들이 유기농업 생산에 동참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기농 공동체가 목표로 삼는 생태적인 가치가 흐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솔뫼농장의 구성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유기농은 돈을 뛰어들면 안되는 건데, 자꾸 돈을 보고 뛰어드는 사람이 생긴 다는 거지. 돈 이라는 게 영물이라 돈으로 뭐든지 할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돈을 보고 띠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유기농의 이미지 자체가 흐려 질까봐 걱정되는 면도 있지.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평가 받는게  아니라 이름만 유기농이거나 로비를 해서 판매를 한다거나,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지.
지역의 울타리 속에서 서로 논의하고 공감대를 가져가면서 유기농공동체들이 늘어나는게 좋을 것 같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유기농을 시작한다고 하면 자칫 돈만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22]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소비자들의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수요, 그리고 정부의 친환경 농업정책에 의해 유기농업 소비시장이 경쟁적 시장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유기농산물 생산조직에서 유통의 영역이 비대해지게 되고, 생산자들 역시 이러한 유기농업 소비시장에 맞게 생산을 조절하거나 전환한다.

소비자들은 과거처럼 유기농산물에 대한 상품의 신뢰를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기보다는 친환경농산물 품질인증제를 통해 인증된 상품인 제도화, 규격화된 표준에 의존하게 되고 상품구매에 있어서도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직거래, 전문매장, 인터넷 구매 등 다양한 통로를 활용하고 있다.

솔뫼농장 역시 2001년부터 흙살림을 통해 유기농산물 품질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증을 해주는 쪽과 받는 쪽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는 농산물의 품질 경쟁력 제고와 소비자의 신뢰 확보, 환경보전이라는 3가지 목적 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다. 또한 소비자들의 불안 요인을 해소함으로써 유기농산물 시장의 확대를 가져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에 의해서도 유기농산물 유통의 경쟁적 시장질서는 강화되고, 생산자-소비자의 생명중심 가치체계의 공유라는 목표로 연결된 관계를 축소시킬 수 있다.

특히 유기농산물 생산의 특징인 소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생산의 불안정성과 농업이 기후나 토양에 의해 작황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의해서 때로 소비자와 갈등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비자와 갈등요인은 주로 상품의 품절이나 시장가격과의 차이, 자연재해에 의한 제품의 품질저하 등의 요인으로 인해 나타난다. 이는 유기농업의 사회관계의 목표인 생명 중심 가치체계의 공유보다는 소비자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식의 하나로 비싸지만 질 좋은 고품질상품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상품 구매동기가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오미란, 2004).

현행 유기농산물 유통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째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둘째는 생산자와 직거래를 매개하는 조직에 의한 판매, 셋째는 백화점 및 대형 할인점 슈퍼, 전문직판장을 통한 판매이다. 이 중에서 솔뫼농장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유통방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유기농산물의 경쟁적 시장질서에 포섭되어 대형매장에 출하를 하고 있지 않고, 주로 한살림을 통해 출하하고 있다.

한살림에 의한 판매는 솔뫼농장에 유통의 안정화를 가져와 개별 농가에게 유기농산물 생산에 대한 부담을 줄여줬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솔뫼농장은 처음에는 개별 판매 형식을 띄다가 1998년을 기점으로 한살림을 통해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유기농업의 경우 유통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어떤 경로를 통해 판매를 안정화시키는 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나는 뭐 2~3명하고 어울려서 집집이 하러 다니고, 내 개인적인 연고 따라서 팔기도 하고.. 시내 아파트 같은 데 나가서 노점도 하고.. 그러다가 한살림이라는 생협조직과의 연대를 많이 좋아졌다고 할까, 관계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활로 부분이 많이 해소가 되었지. 굳이 밖에 나가서 집판을 안하고 안 팔아도 팔 수 있을 만큼. 내가 농사지은 것을. 그 이전에는 막혀있었던 거고 그러니까 판매가 어려웠지 매 주 서울로 인천으로 팔러 다녔지. 그때는 진짜 농사만 했으면 판매는 진짜 누가 좀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많았지. 너무 힘들었으니까. 대량으로 농사를 지은 것을 소비할 만한 곳을 구하지 못했으니까.[23]

  위에서 보여 지듯이 한살림과 관련을 맺기 전에는 대부분 혼자서 또는 2~3명이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유기농업을 한다고 홍보를 하고, 아파트에 가서 노점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중간조직과 연계하지 않을 경우에, 소비자들은 유기농업에 대한 신뢰성을 갖을 수 없는 반면 가격은 상대적으로 관행농 생산물 보다 비싸므로 쉽사리 사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개인적인 연고를 판매처로 상정하거나, 아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통해 성당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우선 농사와 판매를 본인 스스로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너무 힘들고, 생산물이 얼마나 팔릴지 모르기 때문에 생산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이전에는 한살림으로 나갔는데 일부만 조금만 나갔던 건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량소비가 대량 출하가 가능해진거지. 가톨릭농민회에도 출하하고.
아무래도 안정적인 소비를 할 수 있으니까, 생산자가 원하는 힘 대로 할 수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판매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많이 심을 수가 없잖아. 직접 발로 뛰지 않아도 팔 수 있는 장이 생기는 거니까. 더 근본적으로 농사를 내 힘에 맞게 규모할 수 있다는 거. 아무래도 전체적인 소득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 한살림이 없으면 내가 호박을 1000평을 심을 수 있겠냐는 거야. 호박 1000 2000개를 어따 팔아. 직접 팔러 다니면 일주일에 한번씩 간다고 해도 한 달 내내 두 달 내내다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다해. 그걸 못하는 건데 한살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심을 수가 있는 거지. 그러니 당연히 소득은 높아진다고 봐야지. [24]

  한살림으로의 유통 경로 변화는 문화적인 면과 솔뫼농장의 공동체성을 공고히 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한살림은 단순히 경제적인 판매의 측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다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연대, 도농관계의 발전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한살림의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의식 수준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살림의 회원들은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업이 전체 생태계를 보존하고, 농업에 있어서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생산물만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직접 솔뫼농장에서 개최하는 소비자와의 행사에도 참여하고, 시범농장에서 농작물을 키우기도 한다.
이러한 한살림의 측면은 솔뫼농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들고, 신념이 없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유기농업을 심정적으로 지지해주고,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농촌에 대한 이해나 농민에 대한 생각이 많이 교육된 사람들이야 소비자라고 해서 단순히 물건 사주고 그런 개념이 아니라 농민들이 우리가 어거지처럼 한살림을 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전부터 했던 사람들은 진자 그 사람들이 좋아서 그렇게 교류하는 거야. 그런  소비자들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람들도 우리 농장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러지만 농장 회원들도 내가 볼 때는 많이 변했거든.[25]


  4. 솔뫼농장의 개방성

  1) 농활 및 지역 공부방 활동

  솔뫼농장은 1997년 농활 및 생산지 견학을 본격화 한 이후 이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실상 대학생과 함께 하는 농민 학생 연대 활동이나 기차길 옆 공부방 등의 단체에서 오는 캠프는 솔뫼농장에서 주관하는 행사라고는 볼 수 없다. 그들 자체가 각자에 알맞은 내용과 일정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뫼농장은 소비자의 집이라는 이름의 농장 건물을 이들에게 제공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많은 부분을 협력한다. 여기서 솔뫼농장이 외부에 대해 열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건이 되는 한 외부와의 교류를 확대하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든 이러한 외부활동을 통해 농장회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고 외부사람들은 솔뫼농장의 문화나 농촌 자체를 경험하는 장을 만날 수 있다.
  솔뫼농장의 개방성 중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솔멩이 공부방이다. 이것은 솔뫼농장으로 농활을 오던 대학생들이 농활 대신 지역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하게되면서 시작되었다. 2001 1월부터 여름, 겨울 방학에 각각 2~1달 정도로 진행된 솔멩이 공부방은 벌써 10회 째를 맞이하고 있다. 솔멩이 공부방은 솔뫼농장 회원과 그 가족에게만 국한된 것인 아니라 주변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그곳에서 지역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이용한 만들기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것들이다. 솔뫼농장은 솔멩이 공부방 기간동안 농장의 시설을 제공하며 1년에 두 번 각 50만원씩의 지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솔뫼농장의 솔멩이 공부방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도시화를 겪은 이후, 농촌에서 더 이상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아이들의 숫자가 감소함에 따라 초·중등학교도 폐교 혹은 분교가 된다. 이것은 다시 아이들의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농촌의 고령화, 자녀 교육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사실처럼 되어버렸다. 이에 비해 솔뫼농장은 그 구성원의 연령층도 비교적 젊으며 귀농한 회원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젊은 귀농자가 많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뫼농장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농촌의 이러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솔뫼농장의 회의록 곳곳에서는 공부방에 대한 논의들이 눈에 띈다. 물론 공부방의 구체적인 진행은 교사로 내려오는 대학생들이 준비하지만, 그에 대한 농장차원의 지원에 힘써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공부방같은 것도 우리(농장)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어차피 대를 이어가지 않을 거면 그냥 우리만 잘하면 돼. 남한테 빚이나 안 지고 그냥 살면 돼지. 근데 그건 아니라는 거야. 앞으로 후대를 위해서라도 존속이 되야 하는 거거든. 대를 이어줘서 아이들이 즐겁게 농사를 지을 토대를 만들어줘야지. 농사 아무도 안 지려고 하면 어떻 할꺼야.[26]

  인터뷰에서도 보여 지듯이 솔뫼농장의 지역 공부방에 대한 지원은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쓰노 유킨토(2003)는 전통적인 소농에 대해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농지를 만들고, 그 토지에서 열심히 작물을 재배해서 얻어내는 적은 잉여생산이 자손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농사법을 자손 대대로 이어온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즉 농사꾼의 전제로 자손 대대로라는 전제를 붙인 것이다. 이것은 위의 인터뷰 내용과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된다. 다만 쓰노의 자손이라는 개념이 직계자손과 가깝다면, 인터뷰 중의 자손은 좀 더 넓은 의미의 미래세대라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솔뫼농장은 여러 활동에 대한 개방성을 가짐으로써 자신들의 생각들을 현실화하고 있다. 





  2) 소비자와의 네트워크

  솔뫼농장이 1996년 공동부지를 매입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은 직후 했던 일 중 하나가 소비자의 집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솔뫼농장을 찾은 소비자들을 위해 쓰여지고, 앞서 보았듯 이 소비자의 집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농장회원들끼리 회의를 하거나 모임을 갖을 때에도 이곳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솔뫼농장은 한살림 도봉지구 소비자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한살림, 가톨릭 농민회 등의 회원과도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유통의 변화에서 본 것처럼 유기농업에 있어서 소비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소비가 담보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생산·판매 활동에 너무 많은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뫼농장의 소비자와의 네트워크는 유통이나 판매라는 경제적인 부분 이상의 것이 있어 보인다.
  소비자와의 네트워크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현장 방문공동 노동이다. 예컨대 소비자들이 솔뫼농장을 방문하고, 함께 모내기 등을 하는 경우 인 것이다.  사실 공동 모내기를 한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역할은 그지 크지 않다. 일이 미숙하기 때문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방문·공동노동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농장에 왜 소비자들을 모시고 오냐면,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자리에서 신뢰도를 갖자는 거거든. 마음에서 마음으로 와 닿는, 내가 먹는 걸 만들어 주는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농사를 짓는 지를 알아야지만이 되거든. 어떤 잘못된 상황이 생겼을 때라도 내가 봤을 때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여,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해줄 수 있잖아. 이런 인간관계,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면 유기농이고 농사고가 무슨 의미가 있어. 유기농 제품이 벌레를 좀 먹었다고 해도 가서 보니까 정말 열심히 농사짓더라 하면 먹어주거든. 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도 나눠보고, 어울려 놀기도 하고 이런게 되야지.[27]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김철규 회원은 현장 방문이 실질적인 노동력의 도움은 되지 않아도 소비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남게 하는 효과는 갖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국 유기농산물이라는 제품은 판매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와의 사회적 관계를 지속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특이 한 점은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유기농산물을 주는 것이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유기농산물을 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돈이 유기농 생산자에게 오고 유기농산물이 소비자에게 가는 것이 마치 어느 정도의 의무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김성균(2001)은 이와 관련해 화폐가 농민에게 전달되는 호혜적 의무의 상징으로 규정되는 것이며, 유기농업의 지속을 도모하게 하는 현실적 자원으로 규정되는 것이라 하였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대로 현장 방문을 통한 경험이 솔뫼농장에 대한 친밀도 높이게 된다 또한 현장에서 농사짓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유기농산물, 특히 솔뫼농장의 유기농산물을 조금 더 특별하게 느끼게 된다.

하룻밤 자고 올라가는거긴 하지만, 그래도 좋죠 뭐. 아파트에 살아서 땅보고 나무보고 할 일도 거의 없었는데, 아이들도 좋아하고. 사실 저희 가족은 이런 행사에 처음 와봤거든요. 애들이 잘 놀까 싶었는데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좋아하더라구요. 나중에 저희 식구들이 먹을 고추모종을 직접 심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그냥 먹을 땐 별로 생각 안했었는데, 아저씨들 너무 고생하길 것 같아요. 전 세시간 일하고도 허리가 쑤시던데.. [28]

  솔뫼농장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네트워크 구성에 있어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매년 가을에 열리는 추수감사제이다. 솔뫼농장은 2001년 가을부터 추수감사제를 열어 지금까지 총 4회를 열었다. 비록 농장의 추구감사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2001년이지만 추수감사제를 열고자 하는 논의는 1990년대 말부터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추수감사제가 열리면 소비자들은 솔뫼농장에서 모여 농장에서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함께 한다. 이 행사는 농업에 있어서의 특별한 의미도 가지며 일년에 한번 있는 것이기 때문에 농장회원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솔뫼농장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입·판매의 관계를 넘어 친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자주,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행사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한번이라도 솔뫼농장과 농장의 수확물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여했다는 느낌을 주게 만든다. 노력을 투여했다는 느낌은 위의 소비자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추수감사제에서의 노력은 추수감사제의 상징인 결실과 함께 하면서 더 큰 의미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단순히 구매자가 아니라 참여자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관식 회원 또한 소비자는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을 같이 한다.

한살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한살림은 그냥 유통단체가 아니야. 내가 팔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거든. 도시와 농촌의 생명을 살리자는, 일종의 생명사상에 기초해서 철학적인 운동에서 출발한 거기 때문에 당연히 도-농 교류 같은 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본으로, 기본적인 밑그림으로 들어가 있는 거지. 한살림은 주인이 소비자 중심, 생산자 중심도 아니고 생산자, 소비자, 실무자가 거의 동등한 상등관계.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뀌고 하면서 변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거의 그런 위치를 점하고 있고, 소비자들도 상당히 의식이 높다랄까 교육을 많이 받은..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거든.[29]
   2004년 추수감사제와 2005 5월 솔뫼농장에 현장방문을 온 도시 소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은 나들이같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한살림의 회원이라거나 솔뫼농장 농산물의 소비자이라는 점만으로도 그 일대 지역에 연고가 닿는 것으로 인식한 듯 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대개 자녀를 동반했고, 일요일 하루를 농촌에서 즐기면서 아이들에게 농촌 경험과 자연에 대한 경험을 시키고자 했다. 앞서 말한 공동모내기 같은 일들은 노동력의 투여라기보다는 새로운 체험의 기회이며, 추수감사제는 하루 여가가 된다. 이러한 체험들이 늘어나고 지속적으로 솔뫼농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은 농장 회원들과 좀더 신뢰감 있고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쌓아 갈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대로, 솔뫼농장과 소비자들의 네크워크는 그저 생산자와 생산물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30] 도시 소비자들도 나들이하듯 농촌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함께 교류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솔뫼농장이 지속적으로 소비자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려 노력하는 이유인 동시에 그 결과일 것이다.


. 맺음말


솔뫼농장이 언제나 농장의 지향성으로 내세우는 것은 ‘생명, 더불어 삶’ 등이다. 이것은 농장회원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소비자와의 관계, 지역의 관행농가와의 관계 또한 포함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솔뫼농장은 유기농업을 하는 몇몇 농민들의 친목모임의 형식으로 출발하여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10여년을 유지하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격어 왔다. 초기에는 농장 내부의 의사결정과 농산물 출하 및 품질 문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유기농업 자체가 노동력 투입 대비 생산성이 높지 않은 데다,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아 그 어려움은 더욱 깊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8년 집행부들의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의 설립을 통해 솔뫼농장은 조직의 문제를 그 조직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시정하고 개혁하려 노력했다. 이것은 솔뫼농장 회원들이 설립 초기부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려는 생각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함께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농장운영에 있어서의 난관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 뿐 아니라 솔뫼농장의 형성과 변화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농업 정책과 유기농산물 시장의 변화, 즉 유통의 변화이다. 농업 정책의 변화로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음으로써, 유기농 생산조직의 큰 어려움인 자금난을 다소나마 완화 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자금의 활용은 솔뫼농장이 새롭게 준비 중인 가공사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생산물의 소비를 확보하고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솔뫼농장의 가공사업은 충분히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이것은 농장 회원 이외의 농민들에게 유기농을 전파시킬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문제제기에서 밝혔듯 유기농 생산조직이 새로운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유기농업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솔뫼농장은 가공사업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유기농업의 확산까지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유통의 변화는 솔뫼농장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농산물을 내다팔 곳이 없으면 농업을 계속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솔뫼농장은 주로 한살림, 가톨릭 농민회을 통해 생산물들을 판매하는데,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솔뫼농장과 소비자들의 관계이다. 솔뫼농장은 소비자들과 단순히 농산물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관계에 머물기보다는 조금 더 깊은 신뢰와 유대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특히 소비자들의 현장방문, 공동 노동, 추수감사제 등은 솔뫼농장의 이러한 요구를 실현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솔뫼농장이 끊임없는 소비자들과 신뢰의 관계를 구축하고 지역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지원하고 새로 시작하는 다른 유기농 생산조직을 돕는 것은, 생명중심의 가치체계를 확산하고 농업의 지속성을 담보해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솔뫼농장이 추구하는 이러한 것들은 농산물을 살리고 농민과 도시민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황폐화된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뫼농장 내부에서도 농장 설립 초기에 비해서는 품앗이의 문화가 약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구성원들이 느끼는 정서적 공동체성은 아직도 확고하다. 솔뫼농장 회원들의 말처럼 각 지역에 알맞은 소단위 공동체가 생겨나고 이들이 연대할 수 있다면 이것은 미래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솔뫼농장과 같은 유기농 생산조직이 미래 농업의 대안으로 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단 유기농산물 시장이 무차별적인 시장경쟁 체제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오미란, 2004). 현재도 백화점이나 고급 매장에 유기농산물이 유행처럼 번지며 시장경쟁 체제로 흡수 되고 있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농촌역시 생명의 가치나 순환논리 없이 시장으로만 변질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유기농 생산조직 또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와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생산해야한다. 솔뫼농장의 경우도 주로 제배하는 쌀, 토마토, 호박, 유정란 등 몇몇 생산물에만 치우쳐 있다. 마지막으로 솔뫼농장을 비롯한 유기농 생산조직들의 과제는 소비자와의 네트워크, 여러 지역의 공동체 간에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네트워크는 농업이나 유통, 소비 등 일면적 측면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궁극적으로는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솔뫼농장은 일반적인 농가에 비해 가치지향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유기농업의 전파·계승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생태적 가치에 기반 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추구함으로써 한국의 농업, 나아가 사회 체제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하겠다.


《 참고문헌 》





구자인, 1996, “공동체 운동의 조류와 시사점” 한국도시연구소(엮),『도시서민의 삶과 주민운동』

김성균, 1994, “지역공동체 운동과 생태위기의 극복: 두레마을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성균, 2002, “생태공동체의 이론과 실천”『지역사회 개발연구』, 27호

김철규, 2003, “세계화와 한국의 농업문제”『농촌사회학회 2003 자료집』

박병상, 1999,『참여로 여는 생태 공동체』, 아르케

송명규, 2000, “생태마을 운동의 세계적 동향: 국내외 주요 생태마을을 중심으로”『지역사회개발연구』 제24집 2호

심운정, 2001, “유기농 문화공도체의 형성과 발전과정- 전남 장성 한마음공동체를 중심으로”, 목포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오미란, 2004, “유기농생산조직의 형성과 변화- 장성 한마음공동체를 중심으로” 전남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유정길, 1993, “생태적 지속 가능한 사회로서『계획공동체』의 모색”,『한국불교사회연구소』, 겨울호

조경만, 1999, “농촌-도시의 공동체적 유대와 갈등” 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현대사회과학연구』, 제9권

차명제, 2001, “생태공동체의 한국적 구성”『고려대학교 제 80회 사회학 콜로키움 발표문』

한경호, 2001, “친환경농업과 생태공동체”『생태마을 조성을 위한 토론회 발표문』, 횡성환경운동연합

료스케 하나후사, 1997,『새로운 세상을 여는 공동체 이야기』, 내일을 여는 책

쓰노 유킨토, 2003, 『소농,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녹색평론사

《 참고사이트 》

농림부 Text Box: http://www.maf.go.kr/
솔사모 Text Box: http://www.solsamo.net
솔뫼농장 Text Box: http://www.solmoefarm.com
생태공동체 운동센터 Text Box: http://www.commune.or.kr/comm/

《 표 목차 》

1> 솔뫼농장의 조직형태
2> 솔뫼농장 내부 규약 (개정안)
3> 2005년 솔뫼농장 구성원 현황
4> 솔뫼농장의 특성
5> 솔뫼농장의 공동 소유물







[1] 1990년 ‘우리쌀 지키기 국민운동 본부 결성’, 1991 ‘우리농산물 지키기 전국 국민운동 본부 결성’ 등 농업문제가 국민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시기이다.


[2] 유기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운동은 한사람(1986), 여성민우회(1987)를 출발로 하여 1990년대 초반 각 대도시 지역에서 소비자생활엽동조합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다(김용우, 2001, 재인용).


[3] 헙업의 형태는 작업의 협업, 경영의 협업, 생활의 협업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작업의 협업은 노동력을 중심으로 일정 작업과정만 협동으로 하고 개별경영은 그대로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 둘째 경영의 협업은 농업을 공동으로 경영하는 것, 셋째, 생활의 협업은 경영협업과 소비생활까지 공동으로 하는 것으로 구분된다(조성백·최민호, 1996).


[4] ※법인등록번호 : 154471 - 0000182

※사업자 등록번호 : 315 - 82 - 03749




[5] 이때 지원 받은 공동건물 및 기구들의 내역이 아래와 같다.

-건물 : 사무실, 작업장, 창고, 퇴비장 각 1동

-설비 : 냉장창고, 발효기 각 1대

-농기계 : 트랙터 55마력, 관리기 각1대

-차량 : 2.5톤 보냉탑차, 1톤 냉동탑차 각 1대


[6] 김관식 (44세)


[7] 가공사업 검토 중인 품목은, 각종 가루(미숫가루, 찹쌀가루, 선식, 생식, 엿기름), 조청류(찹쌀, 옥수수, 호박 등), 떡류(떡국떡, 떡볶이떡, 조랭이떡), 반찬류(각종 부각, 지고추 절임), 메주, 메주가루, 효소 및 발효음료류, 과자류(한과, 뻥튀기 등)이다.


[8] 표에서의 번호가 17번까지인 것은 2명의 신부가 함께 사는 공동체인 ‘누룩’을 하나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9] 구자인, “공동체 운동의 조류와 시사점” 한국도시연구소(엮), 『도시서민의 삶과 주민운동』, 발언, 1996, pp. 222-232


[10] 김관식 (44세)


[11] 김철규(48세)


[12] 깁철규 (48세)


[13] 김관식 (44세)


[14] 조경만, “농촌-도시의 공동체적 유대와 갈등” 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현대사회과학연구』, 제9권, 1999년, pp.128-129


[15] 정천복(49세)


[16] 지리적 생태공동체란 일정한 지리적 영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공동체로서, 적정한 인구규모, 다양한 생활요소가 갖추어진 주거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공동체를 의미한다.

기능적 생태공동체란 특정 이념과 가치의 추구를 위해 설립된 공동체로서, 구성원들이 일정 공간에 함께 거주하지는 않고 다만 생활의 일부 영역을 공동체 동지들과 함께 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17] 김철규(48세)


[18] 김철규(48세)


[19] 김철규(48세)


[20] 여기서의 농업은 농산물을 대량 생산하는 기업농업은 포함하지 않는다.


[21] 솔뫼농장 차원에서는 아니지만, 솔뫼농장의 한 회원은 ‘가족학교 바탕’이라는 생태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천연염색과 손두부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22] 김철규 (48세)


[23] 김관식 (44세)


[24] 김관식 (44세)


[25] 김관식 (44세)




[26] 김철규(48세)


[27] 김철규(48세)


[28] 2005년 5월 14일 솔뫼농장 소비자 현장방문. 여성 소비자 인터뷰(37세, 자영업).


[29] 김관식(44세)


[30] 이것은 작년 한 살림의 수도분과 가격결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소비자 대표가 단위당 1만원을 제시했음에도, 생산자 측에서 “요즘 경기가 어렵다”며 9천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