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0

1902 “농업 팔아 먹고사는 농기관부터 줄여라” - 한국농정신문



“농업 팔아 먹고사는 농기관부터 줄여라” - 한국농정신문



“농업 팔아 먹고사는 농기관부터 줄여라”

원재정 기자
승인 2019.02.15 20:42

[새해 농담(農談)]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설이 지났으니 더 늦기 전에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새해 덕담도 듣고 싶고 올해 많은 변화가 있을 농업계 얘기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농업계의 올곧은 큰 어른,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81)을 지난 8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팔자 눈썹으로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 들어서는 김성훈 장관은 “집에서 ‘방콕’ 생활이 몇 개월째인지 모르겠다”며 인사를 건넨다. 농업경제학자이자 농민을 사랑한 노학자는 대한민국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면서 지난 ‘이명박근혜’ 10년동안 더욱 쇠잔해진 3농이 문재인정부서도 홀대받고 있다며 노기를 숨기지 않았다. 김성훈 장관과의 대담을 기록한다.

대담 심증식 편집국장 정리·사진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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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유독 액운이 많았어. 7남매 중 막내가 가장 먼저 유명을 달리하더니 큰형, 둘째 누님까지 이별했네. 불과 5개월 사이 혈육을 떠나보내니 버티기 힘들어서 절필하다시피 살았지. ‘화불단행’이라고, 화는 절대 혼자 오지 않더군. 지난해 말에 서울 양재동에서 친환경농업비전선포식을 참석한 날 아내가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발목을 다쳐 완전한 방콕생활이 몇 개월째인지 몰라.”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그림자내조를 해오던 아내의 부상에 장거리 이동을 못하니 팔순의 김성훈 장관은 답답할 법도 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젊은이 못지않은 행보는 농업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이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지난 8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과거를 또렷이 기억해 들려주면서 쇠락한 농업이 살길은 ‘도농연대'와 ‘친환경농업' 그리고 ‘농지투기 근절’이라고 강조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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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대상 신라 장보고를 되살리다

김성훈 장관은 ‘유기농 전도사’ ‘반GMO 운동가’로 대표 된다. 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농업계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장보고 연구자’이기도 하다.

“과거에 장보고는 구전으로 내려올 뿐 실제 인물로 부각된 적이 없었지. 내가 장보고에 관심을 둔 것은 1966년 미국서 유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 기말고사를 보고서로 대신하는데 자기 나라 주요 수출품의 수출마케팅 사례를 제출하라는 거야. 호놀룰루 총영사관에 가서 당시 우리나라 수출품 관련 조사를 해봤더니, 가발이나 성인용품이 전부라더군.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에드윈 라이샤워(Edwin Oldfather Reischauer) 교수가 쓴 ‘엔닌의 당 여행기’ 논문을 읽었는데 내용의 3분의 1이 신라사람들의 무역활약상이야. 특히 장보고라는 걸출한 인물이 무역상의 대표로 나오고. 지도교수한테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했지. 현재의 수출품 마케팅은 보잘 것 없으니 8~9세기 장보고가 일본·중국·당나라 등에 도자기를 수출한 사례를 쓰면 어떻겠냐고.”

장보고 레포트 제출을 계기로 김성훈 장관은 1970년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자비를 들여 전남 등지를 비롯해 중국의 신라인 거주지를 다 돌았다. 역사서적 속의 기록을 실제 확인하고 연구보고서를 쓰는가 하면 1982년 중앙대 중국연구센터장 자격으로 제1회 장보고 국제학술회의까지 열었다.

“국제학술회의를 열 때 문화체육부(당시) 문화정책과장이 참석했는데,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었나봐. 이듬해 문체부가 매월 역사 속 인물을 기념해 달마다 명칭을 달았는데 3월이 ‘장보고의 달’이 되더라구.” 설화 속에나 존재하던 인물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현대인의 귀감으로 끌어낸 성과였다. 장보고가 살아 있다면 김성훈 장관에게 큰 절을 할 만한 일이다. 현재도 ‘장보고글로벌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마음을 쏟고 있다.

라디오 통해 확인한 ‘농림부’ 장관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도 ‘장보고’로 연결되니 세상은 변수의 연속이다.

“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씨가 보좌관을 통해 만나자는 연락을 하더라고. 그 유명한 정치인이 왜 나를 보자고 했을까, 궁금증을 안고 일산 자택으로 갔지. 그때 조찬 겸 7시에 갔는데 장보고가 어떤 분이냐고 묻더라고. 거의 3시간가량 독대를 했지.”

목포가 고향이라는 것 외에 김대중·김성훈은 연이 없었지만, 장보고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후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던 때는 서울 마포에서 대통령선거 캠프를 꾸릴 즈음이었다.

“유명한 교수들도 많이 있는데, 나를 농업경제 담당으로 초대한 거야. 3김 시대 다른 후보들도 인연으로 치면 김대중보다 더 가깝고 그쪽 캠프서도 나를 초청했지만, 장보고에 대한 호의로 나도 멤버로 활동했고. 사실 그때는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

캐나다 대학에 교환교수로 갔다가 대통령 당선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나보고 장관을 하라고 하는 거야. 얼떨결에 ‘네’ 했는데 11시에 발표할 거라고 하더군. 라디오에서 김대중정부 첫 내각 발표를 하는데 농림부 장관이 나라고 확인하게 됐지.” 1998년 3월 3일, 장관 임명장을 받았다.

기관장 인사 오면 ‘돈봉투’도 놓고 가

“나는 장관하면서 돈 10원을 받아서 챙긴 적이 없어. 취임하고 나니까 산하기관장들이 인사하러 오는데, 현안 브리핑을 핑계로 오는 게 일반적이야. 인사할 사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브리핑용 10분씩만 주거든. 급하게 브리핑하면서 묵직한 노란봉투를 서랍 안에 가만히 넣어두더란 말이지. 꺼내보니 글쎄 돈이 들어있는 거라. 비서들하고 인사하는 기관장을 얼른 불러서 돌려줬지. 장관비서실장이 봉투를 돌려준다는 건 해고한다는 뜻인 거냐고 묻더군. 기관장들 얼굴이 흑색이 돼서 나갔다고.”


설명을 들어보니 당시 관례가 장관한테 처음 인사할 때 ‘인사차’ 지참한 것이 돈이었다.

“나는 교수출신이라 돈이 필요 없다, 임기와는 절대 관련 없다, 대신 업무과제를 잘 하면 임기는 보장하겠다, 일일이 설명하면서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 더 놀라운 것은 산하기관장 뿐 아니라 농림부 간부들도 그런 관행이 있었다는 거지. 관료사회가 그만큼 썩어있었던 거야.”

이후 ‘김성훈은 돈을 모른다’는 소문이 쫙 돌았다. 김포매립지 사건은 김성훈 장관의 청렴과 원칙주의를 부각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장관이 막 되자마자 동아그룹의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건이 터졌어. 농업용지로 허가받은 김포매립지를 동아측에서 상업용지로 전용하겠다는 계획이었고, 청와대 일부와 관련 부처도 모두 긍정적이었는데 나만 반대했어. 김포매립지가 농사에 부적합하다는 언론보도, 탄원서 등에도 불구하고 농업용지로 신청했으면 농지로 써야 한다는 게 내 원칙이었지. 팔자를 고쳐 줄테니 사인해달라는 회유도 받았어. 1조원 될까 말까한 김포매립지가 용도변경 해서 상업용지가 되면 12조 가치가 된다는 게 그때의 계산이었으니까, 세월이 흐른 뒤에 당시 동아그룹 회장 측근이었던 사람한테 한번 물어봤어. 몇 억대인거냐, 했더니 역시 교수 출신 장관은 할 수 없다면서 언론에 뿌린 것만 200억원이다, 는 말을 해주더라구. 최소한 그 이상일거라는 거겠지.”

‘이건 진짜 리얼스토리’라는 김성훈 장관은 사인해 주고 댓가를 받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돈에 얽힌 일화에 농협중앙회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김성훈 장관은 “농민은 줄고 농촌은 사라지는데 농기관만 번성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면서 그 예산을 줄여 농민기본소득 재원으로 쓰면 된다고 말했다. 원재정 기자



농민 떠난 자리, 투기자본이 차지

농지용으로 매립한 땅을 상업용지로 변경하려는 기업의 ‘욕심’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던 대쪽 같은 성품은 ‘땅을 가지고 치는 장난’을 지극히 혐오하기 때문이다.

“농업에 희망이 없어지니까 전국 논밭과 그 안에 생명들이 무참히 사라지고 있어 큰일이야.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토지의 투기 문제지. 이 모든 게 나라가 망해가는 징조야. 지난해 신문에 칼럼을 쓰려고 전국의 농지소유 형태를 보니 1947년 농지개혁 때보다 임차농이 더 많아졌어. 농지를 도시사람들이 갖고 있으니 일어나는 현상이지. 지난 설에 고향에 내려가면서 압해도 암태도 자흥도 등 목포 인근 섬들이 연결된 7.2km ‘천사대교’를 가봤는데 다리가 생기고 교통이 편해지니 농민들은 속속 섬을 떠나고 그 자리를 도시의 투기자본들이 차지하고 있는 탈농현장이 벌어지고 있더란 말야.”
촛불정부라는 별칭이 무색하게도 문재인정부는 농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3년차에 접어들었고, 김성훈 장관은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농촌에 마을이 사라지고, 농민이 사라지고, 농지는 도시사람 투기대상이 되고 있잖아. 이렇게 농지가 농민 손 떠나서 농업이 어떻게 살아남겠어. 이것을 발전·개발·성장이라고 미화하는 놈들이 아주 많아. 명색이 학자라고 떠벌리는 경제학자, 농경제학자 같은 교수들, 언론까지 모두 한통속으로 돌아가잖아. 농민들은 농지를 뺏기고 도시서민들은 임차료에 숨이 막히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지. 문재인 대통령도 땅 투기 막지 못하면서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우를 범하고 있어 문제야.”

공동체 농업의 현대화 버전 ‘도농연대’

이야기를 청한 지 두 시간이나 지났다. 그동안 차 한 잔으로 간간히 목을 축이면서 농업문제 얘기를 쉼 없이 풀어놓던 김 장관은 주머니에서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꺼냈다. 손바닥에 펼쳐 보인 것은 유기농 검은콩 볶음, 해바라기씨, 잣 등 종류도 다양하다. 출출하다 싶으면 볶은 콩, 심심하면 생강편, 잣과 해바라기씨까지 우리 농산물 간식거리를 꼭 챙겨서 다니는 것도 인상적이다.
긴 시간 얘기를 하던 끝에 김 장관이 주머니에서 뒤적뒤적 꺼내서 보여준 것은 해바라기씨, 잣 등의 우리농산물 간식거리다.



“내가 GMO 문제를 계속 얘기하는 것은 먹거리로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이 병들지 말았으면 하는 거지. 내가 여든이 되도록 건강한 이유는 쿠바식 상자텃밭을 옥상에 두고 1년 3모작을 하기 때문이야. 겨울엔 보리싹을 가루 내 커피에 같이 먹으니 면역력이 아주 좋아져. 모자란 것은 한살림 가서 구입하고. 어린이와 여성들은 특히 GMO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해.”

GMO 반대에 목소리가 높아지는가 싶더니 생명중심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산성이나 이윤 보다 안전성 중심이 돼야 해. 그런데 농민들이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짓는 게 얼마나 힘들어. 그래서 정부가 부족한 소득을 메워 줘야 한다는 거지. 내가 <한국농정>에 우리나라 최초로 농가기본소득 주장을 했었던 이유가 그런 거야. 농민들 지출이 많은 교육비, 의료비는 국가가 책임져야 친환경농사가 확산될 수 있고. 대신 농지는 생산목적으로만 매매가 가능하도록 엄격히 관리해야지. 원래 농사라는 게 공동체 지향이 본성이거든. 과거엔 농민간 연대를 했다면 요즘은 도농연대가 농업회생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자본주의 하에서 한국의 소농이 살 길은 소비자와 연대하는 거야.”

김성훈 장관은 또 우리 농업이 더 망가지기 전에 남북한 농업협력이 현실화되길 바랐다. 한 번에 망하면 저항이 크지만 서서히 죽어가면 죽는지도 모른다. 농업·농촌·농민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더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할 참인데, 문 밖에서 연초 한 대에 불을 붙이면서 이 말은 꼭 써 달라 신신당부한다.

무의미한 농기관 예산, 농민수당 재원으로 써야

“농업·농민 팔아서 먹고 사는 기관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농민 수는 줄어들고 농촌마을은 사라지는데 기관만 번성하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농민들이 전체 인구의 60%일 때 있던 농업관련 기관들이 지금 농민인구가 전체의 4%에 불과한데 농지 투기화 조차 막지 못하는 직무유기에 국민들 세금만 축내고 있잖아. 제일먼저 농식품부부터 절반을 줄이고, 농촌진흥을 하지도 않는 농촌진흥청도 통폐합해야 해. 연구기능만 있지, 지도기능은 하지도 않잖아. 절반 이하가 아니라 4분의 3을 줄인대도 우리 농업·농촌에 어떤 영향도 없어. 그 돈 줄여서 농민들에게 기본소득 지원하면 추가 예산 확보하지 않아도 다 해결돼. 농협? 이건 완전 도둑놈 집단이 돼 버려서. 지역농협 조합장 월급이 천여만원이란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 농민들 연 소득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농업·농촌·농민은 죽어 가는데 자기들만 먹고 살아가는 일을 언제까지 두고 볼 순 없어. 제발, 농업 이름 팔아서 장사하지 말라고 써 줘.”

농업이 살길이라고 제시한 김성훈 장관의 마지막 주장은 사실 더 거친 표현이었지만 조금 다듬어 옮긴다. 농민인구가 대폭 줄어도 농업기관은 번성한 시대를 지켜보는 농업계 어른의 따가운 한마디로 새해 농담(農談)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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