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5

알라딘: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임건순

알라딘: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 상황을 읽고 변화를 만드는 힘과 지혜
임건순 (지은이)시대의창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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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100자평(1)리뷰(2)

책소개
“세勢를 아십니까?” 이 질문에 당신은 무엇이라고 답할까. 권세, 대세, 판세, 기세, 정세…. ‘세’가 쓰인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생각나면서도 명확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알듯하면서도 정리하여 말하기는 어려운 개념, 하지만 일상에서 분명히 자주 사용하는 개념 ‘세’. 이 책은 최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젊은 동양철학자로 왕성한 집필 활동 중인 저자 임건순이 ‘세’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동양 고전을 두루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 동아시아인의 삶과 세계관에 시사하는 바를 정리한 것이다.

‘세’는 기미와 잠재력을 포함한 조건과 상황이라는 외부 환경을 읽고 인간의 생명력과 정신력을 최대로 끌어내 주도권과 권위를 확보하는 행위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동양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손자병법》부터 불후의 미학 이론을 담고 있는 《구세》까지, 정치철학을 시작으로 풍수지리에 이르기까지, 문학‧서예‧그림과 《주역》 64괘를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상선약수上善若水’,‘상옥추제上屋抽梯’ 등 익숙한 고사성어에 대한 색다른 뜻풀이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동아시아의 철학과 미학의 본질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이자 재미있는 비급祕笈이다.

저자는 《한비자》, 《도덕경》, 《맹자》 등의 고전뿐 아니라 예술과 무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세’를 살핀다.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은 친절한 예시와 서술로 철학과 미학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정신세계 전반의 핵심을 개괄한다.


목차


프롤로그
_한 젊은 동쪽 현자의 노래

1장 세, 또 하나의 열쇠
1.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
2. 우리말 속의 세

2장 세의 본질
3. 조건과 상황
4. 기미와 잠재력
5. 병법, 세의 기원
6. 주도권
7. 생명력
8. 정신력
9. 권력과 권위

3장 세의 철학
10. 손자와 세1: 세가 전제하는 세계관
11. 손자와 세2: 외적인 형태와 꼴
12. 손자와 세3: 전략적 사고
13. 영웅과 현자
14. 승리의 제1원칙
15. 한비자와 세
16. 망세
17. 유가의 세
18. 세와 인
19. 노자와 세

4장 세의 미학
20. 풍수와 세1: 좋은 조건의 땅
21. 풍수와 세2: 산과 물과 혈과 용
22. 풍수와 세3: 모든 사물은 상이 있다
23. 세와 용
24. 그림과 세1: 쉬지 않고 계속 창조한다
25. 그림과 세2: 천지 만물의 생생한 기운
26. 서예와 세1: 자연과 음양
27. 서예와 세2: 불후의 미학 이론
28. 시와 세1: 천하의 명구
29. 시와 세2 : 줄이고 덜어내기
30. 시와 세3: 대구와 시안
31. 주역과 세 1: 괘사와 효사
32. 주역과 세2: 진실한 마음과 강한 의지
33. 주역과 세3: 늘 시작하고 변화한다

에필로그
_우리는 모두 용이다 그리고 하늘이다 297

미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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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6저는 ‘세勢’라는 개념을 명쾌하고 간명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세는 도道와 기氣, 인仁 그리고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같은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에 ‘접속’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개념입니다. 특히 병가兵家의 지혜를 익히고, 동양 미학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합니다. 이것이 ‘세’를 다루는 이 책의 목적입니다.
P. 49손자가 말했습니다. 승리는 세에서 구하는 것이지 인간에게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간의 영웅적 자질과 용기, 필승의 의지에서 승리를 구해선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조건과 상황에서 구하고 만들어내야 합니다. 영웅이 되려고 한다거나 영웅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장수는 냉철한 이성으로 조건과 상황을 읽는 현자를 가까이하거나 스스로 세를 잘 읽고 활용하는 전략가가 되어야 합니다. 접기
P. 73우리나라 동양철학 연구는 지나치게 유가 중심이다 보니 병가 연구가 몹시 부실했습니다. 그로 인해 동양학과 동양 미학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도 한계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학계에서 병가에 관한 연구가 늘어야 할 것입니다. 병가의 지혜에 더 많이 접근할수록 다른 동양학과 미학,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지평이 넓어질 것이니까요.
P. 78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비자에게는 거꾸로 ‘정치가 전쟁의 연장’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궁중 사회가 전쟁터라는 겁니다. 군주에게 신하들은 정말 무서운 적군이고요. 그럼 어찌해야겠습니까? 자신만의 우월한 조건을 만들고 자신만의 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P. 102~103기원전부터 병법서를 남긴 우리와 다르게 그들은 병법서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이론과 지혜보다는 영웅주의를 강조하게 되었지요.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것들, 모델화의 틀 안에 넣어 놓고 사고할 수 없었던 돌발 변수들을 영웅들의 기개와 헌신으로 돌파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웅서사시가 발달한 듯싶은데 우리 동양은 영웅서사시가 없습니다. 영웅과 영웅주의가 필요 없기 때문이지요.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변해가면서 전략 전술을 수정하면 그만인데 영웅이 필요할리가요. 우리는 세를 읽고 만들어갈 줄 아는 전략가만 있으면 됩니다. 《손자병법》부터가 영웅을 부정하고 전략가를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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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7년 12월 22일자 '교양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임건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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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란 책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동양철학자로서, 제자백가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좋아 세상 제일가는 제자백가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그 꿈을 현실화해가는 중이라 자부하는 젊은이다. 인문학은 ‘통찰력을 위한 무한열정이다’라고 정의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제자백가 철학, 동양사상을 말하고 저술하고 강연하는 게 아니라, 제자백가와 동양철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통찰의 근육을 가지도록 도우려 하고 있다.
제자백가 중 법가와 병가의 냉철함과 이성을 좋아하기에 법가와 병가의 지혜를 눈빛 초롱초롱한 ... 더보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하여>,<한국에서 법가 읽는 법> … 총 3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아시아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 세
“세勢를 아십니까?” 이 질문에 당신은 무엇이라고 답할까. 권세, 대세, 판세, 기세, 정세…. ‘세’가 쓰인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생각나면서도 명확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알듯하면서도 정리하여 말하기는 어려운 개념, 하지만 일상에서 분명히 자주 사용하는 개념 ‘세’. 이 책은 최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젊은 동양철학자로 왕성한 집필 활동 중인 저자 임건순이 ‘세’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동양 고전을 두루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 동아시아인의 삶과 세계관에 시사하는 바를 정리한 것이다.
‘세’는 기미와 잠재력을 포함한 조건과 상황이라는 외부 환경을 읽고 인간의 생명력과 정신력을 최대로 끌어내 주도권과 권위를 확보하는 행위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동양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손자병법》부터 불후의 미학 이론을 담고 있는 《구세》까지, 정치철학을 시작으로 풍수지리에 이르기까지, 문학‧서예‧그림과 《주역》 64괘를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상선약수上善若水’, ‘상옥추제上屋抽梯’ 등 익숙한 고사성어에 대한 색다른 뜻풀이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동아시아의 철학과 미학의 본질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이자 재미있는 비급祕笈이다. 저자는 《한비자》, 《도덕경》, 《맹자》 등의 고전뿐 아니라 예술과 무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세’를 살핀다.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은 친절한 예시와 서술로 철학과 미학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정신세계 전반의 핵심을 개괄한다.

손자, 한비자, 맹자, 노자…, 거장들이 천착한 화두
앞서 보았듯 ‘세’가 쓰인 단어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인간의 삶 속에서 그 개념을 자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자, 한비자, 맹자, 노자 등 동아시아 사상의 거두들은 ‘세’라는 개념에 천착해왔다. ‘세’에 대한 인식은 동아시아 철학의 근원이자 시초인 병가로부터 시작됐다. 《손자병법》에서는 “무한한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조응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외부 상황을 파악하고 만들어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최고의 경지, 이른바 선전자의 부전승을 추구하기 위해 ‘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를 적극 계승한 것이 법가였다. 《한비자》에서는 ‘전쟁의 연장인 정치’에서 생존하려면 법과 규칙을 통해 체계를 세워야 하며, 이를 통해 권세가 형성되면 평범한 능력의 사람도 나라를 통치할 수 있고 세상이 편안하다고 했다. 세를 장악할 때 비로소 국가를 건설하고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유가는 이러한 세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따르려 하지 않았다. 《맹자》에서는 세상에서 인정받는 세 가지로 세, 나이, 덕이 있지만, 세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호연지기를 기를 것을 당부했다. 흐름을 읽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주체성을 포기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것이니 중요하지만 잊어버려야 할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노자에게 있어서 ‘세’란, 《도덕경》이 추구하는 ‘도’가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였다. 그래서 노자는 하늘과 땅처럼 장구하게 생존을 추구하기 위한, 세를 얻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경구로 제시했다. 사회 속 생존의 방법, 인간과 세계의 관계, 올바른 국가와 정치의 모습, 주체성과 외부 환경의 조화를 성취하는 방법 등 동아시아 철학의 핵심 화두들이 모두 ‘세’를 살피는 속에서 이야기된다. ‘세’가 병가, 법가, 유가, 노자사상을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으로 진입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핵심 개념인 이유다.

변화의 철학, 생명의 미학
정신적인 측면을 포함한 인간과 세계의 조건과 상황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것을 ‘세’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라고 할 때, 핵심은 ‘변화’에 대한 인식이다. 동아시아에서 역사의 주역을 영웅이 아닌 전략가로 보고 ‘환호와 칭찬이 없는 승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조건의 변화를 지배하는 통찰력에 관심이 큰 동아시아인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에 대한 탐구는 곧 변화의 철학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변화에 대한 통찰과 철학은 아름다움과 편안함에 대한 인식, 동양 미학으로 곧바로 이어졌다. 동아시아인의 삶과 생명의 풍요로움에 대한 인식은 시‧서‧화의 예술을 통해 표현되었고 풍수지리‧ 《주역》점괘 등을 통해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반영됐다. 위대한 미학 이론서 《구세》에서 서예를 통해 언급했듯, 사태의 흐름을 끊지 않고 변화를 긍정하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개입을 걷어내고 함축을 통해 핵심을 짚는 것에서 이른바 ‘용’의 무쌍한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추구한 것이 동아시아의 미학이다. 최종적인 완성을 부정하고 늘 다시 시작하는 창조적 생명력이 곧 미학적 ‘아름다움’이며 철학적 ‘올바름’이다. 동아시아 특유의 철학과 미학을 통합한 세계관은 ‘세’에서 정확히 구현된다.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미학까지 공부하면서 이 개념에 천착한 까닭이다.

득세의 힘, 취세의 지혜로 만드는 주체적인 삶
조건을 살피고 이에 맞춰 자신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자칫 ‘단순한 명철보신明哲保身’으로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세를 얻고(得勢), 세를 취하는(取勢)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객관적인 상황을 정확히 타산하고, 이를 변화시켜 자신의 조건을 바꾸어 결국 자신의 삶과 운명을 바꾸는 것이 세를 지배하는 삶이다. 타산 없는 주관적 욕망과 패기 없는 현실 타협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득세, 취세를 통해 혁명적 변화를 만드는 주체적인 삶이 세의 본질을 이해한 이의 세계관이고 ‘진정한 명철보신’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여러 가지로 오해받아온 동아시아의 전통적 세계관과 지혜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언제나 건실한 임건순 선생의 책.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파블로네루다 2018-01-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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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세‘라는 개념을 활용해 다양한 고전과 예술 작품의 기반이 되는 동양 철학과 미학을 해설한다. 병가, 법가, 유가, 노자 철학부터 풍수, 서예, 그림, 시, 주역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소재를 잘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본 다음, 재미있었던 사람은 조금 더 심도 있는 동양 사상서를 더 보면 괜찮을 듯. 입문서로 적절하다.
ENergy flow 2017-12-22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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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현실주의 철학



오늘날 동양 고전을 읽는 것을 두고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흔히 조소한다. 그럴 법 한 것이, 동양 고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공자왈 맹자왈'과 같은 유교 사상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이런 사상들은 오늘날 급변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리가 있다. 동양 철학에서 대세였던 유가 철학은 사람의 모든 행동과 규범을 인의의 규범 아래에 고정하려고 애를 썼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이러한 인의에 종속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절대주의적인 태도는 급변하는 오늘날의 시세에 걸맞지 않은 부분도 많으며, 역사적으로도 동양 국가들의 근대화에 걸림돌이 돼서 근대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우리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동양 사상이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로 인식하기에 이르렀고, 서구의 영향이 커진 오늘날에는 이런 생각이 더욱더 심화됐다. 과연 동양 철학에는 급변하는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론적인 철학 이론이 없는 것일까?

책은 이러한 물음으로부터 고민한 저자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 줄기로 나눠졌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의 마음과 의지에 중점을 둔 유가 사상이라고 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인간의 의지와 결의보다는 주변의 상황과 가변 하는 시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는 병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외면했던 병가 철학의 중심인 '세'를 깊이 있게 고찰하고 있었고, 그러한 세가 동양의 문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심도 있게 논하고 있었다.

애초에 전쟁에서 발전한 병가 사상은 극도로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다. 감정만으로 싸움을 했다간 손해가 극심하며 잘못하면 국가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병가는 인간의 의지와 믿음을 믿기보다, 주변의 조건과 주변의 환경을 바탕에서 승리를 찾았다. 주어진 조건과 주어진 환경을 나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어 놓고 싸움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병가의 핵심 철학이고, 그 중심에 세가 있었다. 즉 병가의 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세를 얻어놓고 싸움을 걸어야 한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은 노오력만 하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유가의 철학과는 대조적이다.

병가에서 출발한 세라는 개념은 전쟁 철학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갈래로 퍼져 동양 문화의 한 축을 만들었다. 세라는 개념은 도가와 결합하여 황로학이라는 도가 중심의 정치학을 탄생시켰으며, 이러한 사상은 극현실적인 철학인 법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법가의 철학은 군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입장인데, 이들은 병가의 세라는 개념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세라는 개념은 철학을 넘어 동양의 풍수사상과, 그림, 그리고 시와 서예, 점술서까지 방대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세라는 개념은 동양을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고, 그런 세의 철학의 현실적인 관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덕목이다.

책을 읽으며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어려운 개념을 평이한 설명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내공이 돋보였으며, 무엇보다도 철학에 국한된 세의 개념을 예술과 문학, 그리고 풍수와 점술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설명하는 해박한 응용력이 돋보였다. 동양학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하여 색다른 견해를 만날 수 있겠으며, 동양학을 처음 보는 초보자들이라도 친절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글솜씨 때문에 어려운 관념들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책에서 설명하는 '세'의 철학적인 부분은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세의 철학을 예술과 문학, 그리고 풍수와 점술에 적용하는 부분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었다. 실제로 나는 예술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그림과 서예가 가지고 있는 작품 고유의 '세'를 해석하는 저자의 설명이 크게 와닿았고, 동양 예술을 어떻게 관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풍수와 점술에 대해 그 안에 내재된 '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그래서 예술인들도 이 책을 통하여 동양 예술을 관통하는 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보다는 현실이다. 의지는 없이 살 수 있어도, 밥을 못 먹고는 살아가지 못한다. 의지와 투지는 밥이 최소한으로 충족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주변의 상황을 보고 맞추는 현실주의적 '세'의 철학이 마음의 의지로 대표되는 '인의'의 철학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를 중점으로 하는 철학의 맹점은 바로 인간성의 부정이다. 병가를 비롯하여 세를 중심으로 다루는 철학들은 인간성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해버린다. 인간이 일을 이루는 데에는 이랬다저랬다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의 마음보다는 주변의 환경과 객관적인 상황에서 요지를 찾는다. 그러나 주변의 환경과 객관적인 상황을 아무리 좋게 조성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때에는 결국 '인간의 노력'이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의 상황적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세'를 유리하게 조성함과 동시에, 나의 의지와 마음도 굳건해야 한다. 주변의 조건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포기하지 않는 의지. 이 둘을 쌍두마차로 내어 달린다면 하고자 하는 일에서 결실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세를 믿고 세를 타고 세를 의지하되, 사람을 믿고 사람을 바탕으로 하며, 나 자신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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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군 2018-03-19 공감(3) 댓글(0)

임건순 - 나무위키 -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임건순 - 나무위키

임건순

최근 수정 시각: 2022-02-08 18:07:59




분류
대한민국의 철학자
1981년 출생
보령시 출신 인물
서울시립대학교 출신

1. 개요2. 생애3. 사상4. 저서5. 출처

1. 개요[편집]

임건순(1981~ )은 법가, 유가 분야를 주로 다루는 동양철학자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 서울특별시 종로구 거주. 현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제3의길 집필진.

2. 생애[편집]

생애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다 집안이 가난하여 등록금이 싸고 장학금이 많은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했다.[1] 본래는 행정학과 전공이었으나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으며 박사학위는 받지 못했다. 임건순 본인은 이를 두고 "나는 지적 불법체류자"라고 칭했다.

2010년대 중반 무엇인가를 계기로 운동권에서 돌아섰고 지금은 격렬한 운동권 비난론자가 되었다.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3. 사상[편집]

임건순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인문학은 중산층만을 위한 배부른 학문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정치적으로는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보수진보도 없다고 주장한다. 보수 세력은 게으르고 안일하게 행동하며 과거에만 머무른 채 진보하지 않는 배부른 돼지이며, 진보 세력은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선민의식이 몸에 밴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라고 비판한다. 문재인 정권 이후로는 조선일보, 월간조선에 칼럼을 연재하고 펜앤드마이크등의 매체에서 정규재과 함께 말을 나누는 등, 속마음이야 어떻든 일단 담론장에서는 확실히 보수 쪽 논객으로 기능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중국에 나라를 팔아먹고 중국 공산당 귀족 계층으로의 편입을 계획하는 집단이라고 믿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 특히 비판적으로 접근하는데, 소위 '386' 기득권, 현 정권이 페미니즘 세력과 연합하여 나라를 분열의 장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네들 이득만 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가열차게 비판하였으며, "진보의 민낯을 보여주어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출처

4. 저서[편집]

《야구오패》
《생각이 많으면 진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임건순 “우리나라 지도자, 오기의 리더십 배워야”복장에 주목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손자병법》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 노자》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대학, 중용》
《도덕경》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한국에서 법가 읽는 법》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하여》

5. 출처[편집]

신동아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사회공헌저널 <보편복지라는 위선과 야만의 탈 -임건순>

[1] 고등학교는 대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한국은 조선시대로 귀환 중… 집권 386은 철들지 않은 꼰대”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자기들이 정의로우니 권력 누려야 한다고 믿는 집권 386은 孟子 영향받은 조선 사대부의 亡靈”
⊙ “중국인은 孫子의 자식들… 손자 및 손자의 영향받은 老子 이해하면 중국인 속이 보일 것”
⊙ “韓非子는 개인의 이기심 긍정했던 애덤 스미스와 유사”
⊙ “386이라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左派·右派 경쟁을 할 수 있을 것”
⊙ “右派는 더 이상 기득권 세력 아니다… 말과 글에 투자해야”
⊙ 諸子百家 해설서 등 11권의 책 펴내… 이번 달부터 서로 비슷한 문제의식 가졌던 동서양 사상가들을 살펴보는 ‘동서양 사상 크로스’ 연재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저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생각이 많으면 진다:우리가 몰랐던 류현진 이야기》 《야구오패: 한국 야구를 지배한 감독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책 제목만 봐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중국 고전을 만만치 않게 섭렵했음이 느껴진다. 손자(孫子)나 노자(老子)를 제외하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비교적 생소한, 중국사상사의 비주류(非主流)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손자병법》이 ‘동양의 첫 번째 철학’, 《노자》는 제왕학(帝王學)이자 병법(兵法)이라니 이 또한 생경하다.



임건순 작가의 諸子百家 관련 저작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이가 백발이 허연 70대 한학자(漢學者)나 ‘꼰대’ 모습이 완연한 50~60대 대학교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 책의 저자는 임건순(任建淳), 38세 젊은이다. 지금까지 펴낸 11권의 책을 제외하면 세속적 의미에서 내놓을 만한 이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시각으로 제자백가를 재해석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아직 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나름 열광하는 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임 작가가 페이스북에서 토해내는 현실, 특히 386세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눈길을 끈다. 지난 5월 28일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자.


‘386의 생각은 다 옳은가?’

〈시사인에서 20대 남자들에 대한 기사를 읽어봤는데 이런 질문들 던지고 싶다.

1. 젊은이들이 386을 무조건 정치적으로 지지해줘야 하는가?

2. 젊은이들이 386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들이 주입하는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해야 하는가?

3. 젊은 샐럽과 지식인들도 386의 세계관에서 허우적대며 그들이 궁금한 것, 혹은 원하는 것들 대신 해결해주고 그래야 하나?? 이것도 넓은 의미에선 부역행위 아닌가?

386과 다른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 보수고 수구고 일베고 괴물이란다. 특히 ×××라는디 그놈의 20대 ×××론은 언제까지 계속 우려먹을 것인지.

아니 386의 생각이 다 옳은가. 386과 다른 생각하면 악마여?? 그저 젊은 애들은 운동권 출신 진보를 자임하는 자들에게 표 주는 기계로 살아야 하나. 그리고 젊은 샐럽, 그래 젊은이들 중에 사회적 스피커와 마이크를 쥔 자들도 386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논해야 하나. 니들도 386이냐? 참 여러 가지 이건 아닌데 생각이 드는 기사였다. 기사에 깔려 있는 전제들이 영….

젊은이들이 386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386 지지하기만 하고 386의 가치관을 자기 신조로 삼아 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고, 맑고 밝고 명랑한 시상이 만들어질 것인디 나만 그걸 몰랐나 봐. 그냥 몇 마디 말로 통치면 되는 거 아녀. ‘야 이 ×××들아, 왜 민주당과 문재인 지지 안 해. 당장 생각 고쳐먹고 다음 총선, 대선 때 또 민주당 사람들 찍어!!’ 이러문 되는 거 아녀. 그저 386과 다른 생각한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닥치고 문제라고 놓고 보는 시각 자체가 구역질 나.〉


‘知的 불법체류자’

고향인 충남 바닷가의 느긋한 사투리를 섞어 쓰면서 애써 칼날을 감추고는 있지만, 386세대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월간조선》은 7월호부터 원석(原石) 같은 젊은 동양철학자이자 작가 임원순의 글을 연재한다. ‘동서양 사상(思想) 크로스’는 세상사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제자백가 사상가와 15~18세기 유럽 철학자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기획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임건순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 1981년생이면 한문은 고사하고 한자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세대일 텐데 어떻게 한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까.

“외할아버지가 한학을 하셨습니다. 직접 배운 건 아니지만, 덕분에 어려서부터 한문에 대한 공포감이 없었죠. 그것도 일종의 ‘문화적 자본’이겠죠.”

― 행정학과 출신인데 어떻게 제자백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학부에서 교수님들이 ‘늘 행정학은 사회과학이다, 경제학이나 정치학 같은 인근 학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제자백가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종합 사회과학입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 가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것보다,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튼튼하게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에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 한문 공부는 언제 본격적으로 했습니까.

“2008년부터 1년 동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했습니다. 1년 동안 무조건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를 다 외워야 합니다. 무식하지만 가장 빠른 지름길은 역시 원문(原文)을 달달 외우는 것이에요.”

임건순 작가는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知的) 불법체류자’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유학도 갔다 와야 하고 제도권에서 박사학위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요. 대학에서 특강 외에는 강의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 시민권・영주권이 없으니 불법체류자죠.”

―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노력은 해보았습니까.

“굳이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영주권・시민권을 얻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허락하지 않은 것도 있고요.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걸 굳이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상황에서 뭐라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원망할 것도 없고….”

―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를 나왔는데, 공무원시험 봐서 직장 잡고 가정 꾸려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는 생각은 안 해보았습니까.

“어려서부터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주 단호한 대답이었다.


원추각막

― 와, 정말요? 대단하네요.

“초・중・고교 때 선생님들이 ‘건순이 쟤는 조직형 인재가 아니라 장인(匠人)형 인재다. 그냥 내버려둬라’ 하면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저를 차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도 선생님들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새 책을 낼 때마다 그때 선생님들의 성함을 꼭 적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 그때 선생님들은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신 걸까요.

“‘늘 혼자서 책을 읽고 있고, 엉뚱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더라. 얘는 자기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창의력이라는 것은 시험을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꾼다거나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마련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쟤는 저럴 수 있어’ 하면서 묵인하고 배려해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싶어요.”

―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막이 망막을 뚫고 나오는 건데, 그래서 시력이 좀 안 좋습니다.”

―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눈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지장은 없습니까.

“지장이 있기는 하죠.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면도 있어요. 눈이 잘 안 보이다 보니 공부할 때 소리 내서 읽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암기가 잘됩니다. 글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되니, 글을 쓸 때도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처럼, 독자가 술술 읽을 수 있게 쓰게 되더군요. 노트 한 권 쓸 것을 소리 내어 거듭해서 읽고 외우다 보면, 머릿속에서 내가 스스로 재평가하고 의미부여를 하면서 머리에 저장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저술가로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국주의와 제국질서

― 제자백가 얘기를 좀 하기로 하죠.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인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온갖 사상이 만개(滿開)한 후로 한 번도 그토록 다채로운 사상을 꽃피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15세기 이후 다양한 철학사상을 꽃피우면서 이를 바탕으로 근대로 진입하지요.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제자백가 사상을 꽃피우던 춘추전국 시대는 유럽의 15~18세기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 나라로 쪼개져서 서로 경쟁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15~18세기 유럽의 경쟁은 제국주의(帝國主義)를 낳은 반면, 기원전 중국의 경쟁은 제국질서를 낳았습니다. 제국주의는 경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지만, 제국질서는 경쟁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상적인 활력뿐만 아니라 군사혁명(군사 전략・전술・기술상의 변혁)이나 기술적인 혁명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제국주의와 제국질서라… 흥미로운 얘기네요.

“제국질서 아래서는 상인(商人)들의 지위가 높아질 수 없었죠. 여러 나라가 경쟁해야 상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발언권도 올라가거든요. 군주들이 상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니까….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秦)나라, 한(漢)나라 같은 거대제국이 생기면서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커다란 진보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한비자, 개인의 이기심과 인센티브 강조”



한비자(왼쪽)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결과적 평등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 제자백가 중 누구에게 가장 관심이 갑니까.

“지금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한비자(韓非子)가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과도한 공공(公共)부문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한다고 하지만 규제가 너무 많고 관치(官治)의 영역이 비대합니다. 그래서 한비자가 필요합니다. 한비자는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애덤 스미스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 한비자 하면 흔히 ‘법(法)’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국가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려던 국가주의자로 인식합니다. 그런 한비자가 ‘자생적(自生的) 질서’를 강조한 프리드먼이나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와 통한다니, 뜻밖이네요.

“애덤 스미스와 한비자는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이기심(利己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었죠. ‘각자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가지고 잘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런 상태에서 사회적 분업(分業)이 돌아가야 한다’ ‘나라는 개인들의 사적(私的) 욕망을 발현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줘야 하고, 그래야 국력도 강해진다’ 등.

법가(法家)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말했는데, 강병 이전에 부국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살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개개인의 욕망, 돈을 벌려는 마음, 잘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억누르면 안 된다고 한비자는 말합니다.”

― 재미있네요.

“또 한비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지지는 것처럼 하라’는 노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작은 생선을 지질 때에는 약한 불로 하고 함부로 뒤집으면 안 되는 것처럼, 법령들을 자주 바꾸거나 덫을 놓는 규제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 혹시 ‘평등’에 대해서도 한비자가 얘기했나요.

“한비자는 결과의 평등을 철저하게 부인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더 부지런을 떤 사람, 자기 능력을 발휘한 사람, 더 많은 리스크를 짊어진 사람들이 사치하고, 방탕하고,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것이 당연하다’ ‘결과의 평등을 내세우면 인센티브 체계가 무너져서 국력이 약해진다’고 봤습니다. 경제학적 통찰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마오쩌둥, “노자는 兵家의 書”

― 제자백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정서적 공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묵자(墨子)입니다. 묵자는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을 잘 이해한 것 같아요. 서구(西歐)에서는 묵자를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자로 보는 것 같더군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고학(苦學)을 했고, 지금도 가난한 학인(學人)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 묵자가 사회민주주의자라니,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보니 사회민주주의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봐요. 구성원들의 정신적 건강함, 사회적・공적(公的) 신뢰가 있어야만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묵자가 개인과 계약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데에 눈길이 갑니다.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이 계약에 바탕을 둔 사고(思考)입니다. 묵자에 대한 책을 하나 쓰기는 했지만, 기회가 되면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묵자를 책으로 다시 써보고 싶습니다.”

― 노자를 문명비판론적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주의자로, 노자의 《도덕경》을 병법서로 해석했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도덕경》은 ‘어떻게 하면 왕의 권력을 길고 안정되게 가져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를 고민한, 군주를 위한 통치술입니다. 중국이나 구미(歐美)에서도 그렇게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희(朱熹・주자)는 ‘제자백가 중에 노자가 가장 독하다’고 했고, 마오쩌둥(毛澤東)은 ‘《도덕경》은 병가(兵家)의 서(書)’라고 했습니다.”

― 어떤 점 때문에 《도덕경》을 병법서로 보는 건지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죠.

“노자의 유명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죠? 손자는 ‘병법의 극치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이 흐르는 것이 지형을 따라서 늘 변하듯이 군대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죠. 노자는 그걸 시적(詩的)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노자를 손자와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대목이 무척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손자와 노자를 같이 이해하는 논문이 꽤 많이 있어요.”


“한국인은 殺身成仁, 중국인은 明哲保身”



《손자병법》과 고구려에 대해 강의하는 임건순 작가. 사진=유튜브 캡처
임건순 작가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자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자식들’입니다.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는 공맹만 가지고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손자의 자식’들입니다. 손자와 그의 영향을 받은 노자를 이해해야 중국인들의 속이 보일 것입니다.”

― 우리 한국인들이 ‘공맹의 자식들’이라….

“한국인들은 명분(名分)과 당위(當爲)를 중시하지만 중국인들은 철저히 실리(實利) 위주죠. 우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강조하지만, 중국인들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강조합니다. 그런 중국인들의 의식의 연원은 손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명청대(明淸代)에 만들어진 후흑학(厚黑學), 36계의 뿌리도 손자에게 있는 것 같고요.”

― 서양 정치학과 철학은 어떻게 공부하게 됐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백가 시대의 중국과 15~18세기 유럽의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상황이 비슷하면 사람들이 비슷한 사고(思考)를 하지 않을까’ 해서 서양 사상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묵자와 토머스 홉스’ ‘한비자와 니콜로마키아벨리, 애덤 스미스’ ‘공자와 에드먼드 버크’ ‘순자(荀子)와 데이비드 흄’이 비슷하더군요. 서양의 철학・정치학을 공부하는 것이 제자백가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월간조선》에 연재할 ‘동서양 사상 크로스’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고전(古典)은 질문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책들이 고전입니다. 고전은 뭔가 원점(原點)에서 사회와 인간,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자극을 주거나, 원점에서 검토해보려고 안간힘 쓸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 속의 동서양 사상가들이 던진 질문을 가지고 오늘의 한국 사회를 한번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朝鮮化’



사대부의 특권을 주장한 孟子.
―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 돌아가는 얘기를 좀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즘 페이스북을 보면 ‘조선(朝鮮)으로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더군요.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386운동권들은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들과 똑같은 사고를 갖고 있어요. 저는 이들이 조선시대의 망령(亡靈)들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옳다, 정의롭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이런저런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리스크와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옳다, 우리가 과거에 정의를 위해 투쟁했다’고 하는 당위(當爲)만 가지고서 도덕을 얘기합니다. 자기들의 정치권력, 기득권(旣得權)을 정당화하고, 그 기득권을 쭉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조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서 기업과 상인, 과학기술자, 의사 같은 전문가 집단을 공격하고 있죠. 자기들은 사대부, 위 집단들은 상민(常民)이나 중인(中人)으로 생각하는 거죠.”

― 그런 조선적인 모습은 역시 ‘맹자-성리학’적인 건가요.

“(한숨을 쉬며) 유교(儒敎)는 공자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공자도 아니고 맹자의 나라 같아요. 맹자가 처음으로 지식인 계급, 사대부 계급의 특권과 독재, 정치권력의 독과점(獨寡占) 같은 것들을 주장했거든요. 《논어》를 보면 ‘군자는 이래야 한다, 이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군자의 의무와 자격, 책무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반면 《맹자》를 읽다 보면 ‘군자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누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금 집권세력은 누리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고, 어떤 책임과 의무를 지고 공적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근대는 小人과 謀利輩의 사회”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군자(君子)라고 믿는 사람들, 군자라는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사회는 근대사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근대사회는 ‘나도 소인(小人)이고 너도 소인이다’ ‘너도 모리배(謀利輩)고 나도 모리배다’라는 걸 다 인정하면서, 소인과 모리배들이 적당히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사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주의고 시장경제겠죠. 군자라는 자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건 이런 근대에 대한 부정입니다.”

― 과거에 ‘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말이 있다가 근래에는 ‘산업화→민주화→조선화(朝鮮化)’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와 통하는 말이군요.

“제가 386 기득권 세력들을 비판하는 것도 단순히 ‘좌파를 때려잡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근대적 합리성을 가진 사회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작업도 단순히 그들이 나쁘다,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걸 넘어서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더 나은 청사진을 제자백가와 15~18세기 유럽 고전에서 찾아보고자는 것입니다.”

임 작가는 “조선화로 넘어가면서 리스크(위험)를 짊어지는 것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박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저는 우리가 사대부의 나라가 아니라 상인과 무사(武士)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또다시 군인들이 정치하거나 기업인들이 정치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전선(前線)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국종 교수가 외상(外傷)센터 지원 얘기하잖아요? 그건 돈을 지원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리스크를 짊어지고 전선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이나 전쟁에서 이긴 사람들, 살벌한 경쟁투쟁에서 끊임없이 자기들의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구의 힘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부족한 게 많지요.

“우리도 지방자치 선거할 때 공천 헌금하는 지역토호들을 내세울 게 아니라, 미국처럼 군인이나 경찰 생활하다가 장애를 입은 이들을 공천하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을 왜 패럴림픽에만 내보냅니까? 그들이 당장은 서툴러도 공동체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래야 시민사회가 건강해지고 정신이 건전해질 것입니다.”


“우파가 공짜 바라는 건 자기 부정”

현 집권 386세대를 이렇게 혹독하게 비판하는 임건순 작가가 4년 전 쓴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에서는 한국 보수세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묻자 “한국 보수는 너무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상이 변해가면 ‘과거에 내가 이런 공(功)이 있다’는 것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변해야 합니다. 반공(反共)이니 산업화 같은 것을 넘어서 ‘우리가 어떤 철학과 가치(價値)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국가주의와 결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가치와 철학, 상징자산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수세력에게는 그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 상징자산이란?

“딱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나 이미지 같은 걸 말하는 거죠. 지금으로 치면….”

― 좌파의 노무현(盧武鉉) 같은 존재를 말하나요.

“그렇죠. 우파에게 새로운 상징자산이 있나요? 그 사람들은 박정희(朴正熙)나 이승만(李承晩) 가지고 계속될 줄 알았나 봐요. 그게 아닌데…. 기존 상징자산이 기능을 못 하면 다른 걸 찾아봐야 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과연 어떤 철학, 가치,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공짜를 좋아했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데….”

임 작가는 “우파는 공부를 아예 안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을 갖고 다녔어요. 우리나라의 보수정치인 중에 애덤 스미스적 가치, 철학에 기초한 사람이 있나요?”

― 없죠. 그 부분은 공감합니다.

“좌파는 몰라도 우파는 공짜를 바라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밖에 안 됩니다. 사람 키우려는 생각도 없는 것 같고요.”

― 그래요. 책을 내도 ‘책 하나 보내줘’ 하지 ‘내가 사 볼게’ 하는 사람이 없지요.

“기업가나 자본가라는 사람들은 ‘정권이 못살게 군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세련된 가치와 레토릭으로 자기들을 변호하고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지원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소외된 사상가・철학자・작가들을 찾아서 조금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들에게 ‘우리도 지금 이렇게 변하고 있고, 변할 테니까,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세련된 말과 글, 언어들을 생산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건 일종의 거래입니다. 날로 먹을 수는 없어요.”

― 우리나라 기업은 그런 것에 장기적 투자를 하기보다는 좌파 시민단체, 좌파정권에게 살살 때려달라고 뇌물 주면서 5년 견뎌낼 생각만 했죠. 좌파 시민단체들에게 ‘삥’ 뜯겨 건물이나 지어주고….

“자기의 말과 글, 언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당당하게 자기 권리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말과 글, 자기 철학이 있으면 삥 뜯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386, 심각한 피터팬증후군”



2003년 8월 남북경협 지속 발전에 관한 기자회견을 한 386세대 정치인들.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중국 제자백가 사상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 비해, 기성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은 표현이나 방식이 표피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을 막으면서 빠르게 국가 건설을 해야 했고, 그런 과정에서 무리도 있었겠죠. 그런 것은 나이가 들면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삶의 모순과 복잡성이 보이고,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이승만은 독재자이기도 하지만 평생 독립운동을 한 ‘건국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일본은 침략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두 가지 측면을 다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저도 옛날에는 그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런 걸 인정해야 하고 양쪽 다 껴안고 가야 합니다.”

― 페이스북 등에 386에 대해 비판한 글을 쓴 걸 보면, 그들을 거의 증오하는 것 같더군요. 왜 그렇게 386세대를 미워합니까.

“386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아직도 젊은이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철들지 않았다는 걸 너무 공개적으로, 또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요.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 사람들은 ‘꼰대’들입니다. 그런데 꼰대가 되기 전에 한 번은 철이 들어야 하거든요. 어르신들 말씀대로 어렸을 때는 아이다운 모습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계마다 해야 할 일과 모습이 있는 겁니다. 나이 먹어서 꼰대가 되는 건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철도 안 든 꼰대는 곤란합니다.”

― 저도 아직 대학 시절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대학 다니는 자식을 둔 놈들이 자기가 아직도 대학생인 줄 안다’고 꼬집곤 합니다.

“심각한 피터팬증후군입니다. 대학 다니는 아들,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딸을 둔 사람들이 자기가 아직도 20대 청년인 줄 알고 있어요.”

임 작가는 “한국 사회는 386이라는 악성 종양,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좌파・우파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논개처럼 산업화 세력을 껴안고 절벽으로 떨어져 버린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386세대를 껴안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좌파는 50대의 기득권・탐욕・이기심이, 우파는 70대의 노추(老醜)가 문제입니다. 그들이 물러나줘야 합니다.”


“이제는 좌파가 기득권 세력”

― 문재인 정부가 ‘적폐(積弊)청산’한다고 하잖아요.

“자기들이 적폐예요.”

― 대학 시절 운동권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 그리고 제 눈에 비친 운동권 모습이 너무 위선적이었어요. 지금도 그들이 하는 걸 보면 말과 행동이 너무 모순되는 게 많아요.”


― 어떤 걸 두고 하는 말입니까.

“386세대 교수들을 보면 대학원생들에게 함부로 하면서도 신문에 쓰는 칼럼에서는 자신을 아주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지요. 최순실 사건 때, 박근혜 정권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자기들끼리는 엄청 밀어주고 끌어주고…, 민노총이 너무 막 나간다 싶은데도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그들을 옹호하고 눈감아주고….”

― 임 작가는 이념적으로 어느 쪽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진보인 것 같아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자기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못사는 사람들을 정치가 챙겨야 한다’ ‘과학적 사고, 합리적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진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인식의 지체(遲滯)’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 무슨 얘기입니까.

“이미 대한민국에서 기득권 세력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파라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전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들이 아직도 여당이고 기득권자인 줄 알고 있어요.

좌파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차명(借名)・가명(假名) 등기하지 말고 실명(實名)으로 하고, 비판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들이 아직도 비판하고 저항하는 입장인 줄 알면서 자유한국당이나 재벌들을 욕하는데, 기득권은 이미 그들에게 완전히 넘어갔어요. 사실 그런 흐름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중에도 계속되고 있었죠. 탄핵은 그걸 추인(追認)한 것에 불과합니다. 운 좋게 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말과 글, 이런저런 조직들을 저들이 갖고 있는 한, 우파는 대통령만 명목상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저들의 수중에 있게 될 것입니다.”

― 우파가 왜 권력을 빼앗기게 됐다고 봅니까.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안보 우산’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지다 보니 그때부터 배가 부르고 안심하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영구분단 선언하자”

―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과거에는 현실로서의 북한은 우리의 적(敵)이지만, 당위로서의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같이 통일을 위한 동반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만 포기! 차라리 영구분단을 선언해버리면 좋겠어요. 통일부는 ‘평화청(平和廳)’으로 이름 바꾸어서 외교부 산하로 넣어버리고….”

― 영구분단이라니…. 국민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가 설득력 없어요. 젊은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기성세대야 통일되는 걸 보고 샴페인 터뜨리고 얼마 후에 무덤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쟤들(북한주민들) 먹여 살리느라고 거지꼴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통일비용보다 분단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적대적 분단, 돈 많이 드는 분단만 있느냐’고…. 한 나라였다가 갈라선 벨기에-네덜란드처럼 그냥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요.”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얘기가 돌아왔다.

“《월간조선》이 기회가 되면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일을 좀 해주었으면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低評價)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이행, 북방정책 등의 업적이 많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올랐고, 소득분배도 고른 편이었으며, ‘중산층의 꿈’이 생겼습니다. 아마 87년 체제 이후 최고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실제보다 과대평가된 면이 많다고 봅니다.”

― 요즘 흔히 갖고 있는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인격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통해 누가 국민의 삶을 개선해주었는가’ 하는 측면에서 정치인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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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조선으로의 퇴보를 멈춰라”

  •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 ● 11권의 동양철학 저서 펴내고 대중 강연…“젊은 도올 보는 듯”
    ● 상위 10%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조선스러운’ 대한민국
    ● “노무현은 과대평가, 노태우는 과소평가”
    ● “열 명에게 욕먹더라도, 한 명에게 자극되는 글 쓰고파”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인문·사회학 분야가 천대받는 세태의 방증이다. 문(文)·사(史)·철(哲)로 대표되는 순수 인문학 처지는 더 어렵다.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임건순(37). 동양철학자 겸 저술가. 대중 강연도 한다. 어렵고 딱딱한 동양철학을 쉽게 녹이고 풀어내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시대의창),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세(勢),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등 그간 출간한 동양철학 분야 책만 11권. 집필 중이거나 집필 예정인 책도 10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책들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며 중쇄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척박한 인문·사회 출판계의 떠오르는 별’로 평가받는다. 

임건순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양철학 외길을 걷는 독행자(獨行者)다. 석·박사 학위는 없다. 대학 및 연구소 등 제도권에 적(籍)을 두지 않았다. 학술·연구단체와 인연도 없다. 혈혈단신 ‘임건순’이란 이름 석 자로 승부를 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걷지만 행보는 거침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임건순 책의 애독자인 손상범 영남대 교수(국제통상학부)는 “임건순의 말과 글에서 ‘젊은 시절’ 도올 김용옥을 연상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 불법체류자’라 정의하는 임건순은 한국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보 중”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를 만났다.

‘혈혈단신 임건순’

다수가 기피하는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대학은 행정학과로 입학했습니다만, 정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은 사실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와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입니다. 정치사상이자 종합사회과학인 거죠. 관중(管仲)이나 한비자(韓非子)는 경제학으로 접근해도 좋습니다. 그들의 경제학적 통찰은 기가 막히죠.” 



제자백가 사상이 가지는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자백가를 다른 표현으로 선진(先秦·진나라 이전) 철학이라 합니다. 통일제국 진(秦) 이전과 이후 철학 양상은 사뭇 달라요. 선진 철학이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하다면, 후진(後秦) 철학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합니다. 통일제국 성립이라는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아 학문적 자유도 줄고, 수성(守成) 시대에 맞춰 개인의 수신(修身)에 중점을 두게 됐기 때문이죠. 형이상학 내지는 관념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열국(列國)이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던 시대의 ‘백화제방(百花齊放)’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가 제자백가의 ‘역동성’과 ‘재기발랄’의 매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사유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제자백가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저술과 강연으로 이들 사상을 대중화함으로써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그만의 ‘운동’인 것이다. ‘묵자’ 상동(尙同)편 상(上)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마다 의로움(義)을 달리하였다.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두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의로움이 있었다. 사람의 수가 더욱 많아지면 의로움 역시 많아지는데….

임건순은 이 구절에 대해 “여러 사람이 등장해 ‘내 이야기 좀 들어보라’며 떠들어댄 당대 상황을 보여준다”며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해 서로 힘을 겨룬 것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좋은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공자(孔子)·맹자(孟子)가 아닌 묵자(墨子) 등 이른바 비(非)주류 사상가 연구에 주력합니다. 

“균형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제자백가는 ‘백화제방’이란 표현처럼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활짝 핀 아름다운 꽃들이에요. 수많은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한두 송이(공자·맹자) 꽃만 바라보고 마나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은 순탄치 않다. 각막이 원뿔 모양으로 튀어나온, ‘원추각막’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가난도 따랐다. 원하던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학 대신, 학비가 저렴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시립대학에 진학했다. 고학(苦學)은 필연. 사회로 나온 후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초 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으로 수년을 버티기도 했다. 오늘날도 이른바 ‘도시빈민’ 신세다. 

“제 고향은 충남 보령군,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시골입니다. 한마디로 전 ‘촌놈’이죠. 집안 형편도 어려웠어요. 본디 양반 가문도 아닌 것 같고요. 그렇다 보니 학문적 관심도 성리학(性理學)에서 자연 묵가(墨家)와 양명학(陽明學)으로 옮겨갔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열정적으로 구세(救世)하려던 묵자,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다른 일에 종사하지만 그 도(道)는 같다’는 이업동도(異業同道)를 주창한 양명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유학파가 인문학 망친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최근에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법가(法家)다. 올해 ‘법가’ 관련 책을 출간할 계획이고, 최근 이랜드그룹 후원으로 10강에 걸쳐 ‘한비자’를 강의하기도 했다. 법가에 천착하는 것 또한 그의 처지와 무관치 않다. 

“제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데다 가난해서인지 성격이 거칠고 강한 편입니다. 영춘권(詠春拳)을 비롯해 무술도 좋아합니다. 평등 원리가 강하고 기득권·중간 착취계급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법가 사상에 끌립니다. ‘근대국가’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전근대’ 조선으로 귀환했다고 봅니다. 상위 10%의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사회로 변해버렸으니까요.” 

임건순은 사회주의 용어로 ‘사회경제적 위치·계급적 좌표’가 학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한국 동양철학계가 외면해온 분야를 파고들게 된 셈이다. 

“우선 저 자신이 서 있는 사회·경제적 위치를 자각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제 좌표를 정확하게 인지해야죠. 그다음 저와 문제의식이 일치하는 사상가와 텍스트를 찾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것이 ‘인문학적 사유’ 혹은 ‘인문학을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처한 환경과 이를 바탕으로 생긴 문제의식 때문에 비주류가 되었다는 그는 한국 학계 풍토를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 대학에서 손자(孫子)나 오기(吳起)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 석·박사 학위를 받기 힘들죠. 아마 안 줄 겁니다. 묵가, 병가, 법가 등을 공부한 저 같은 사람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일 거예요(웃음).” 

한국 사회 ‘인문학 열풍’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이라 보나요. 

“한국 사회 인문학은 ‘중산층 특화 교양’입니다. 쉽게 말해 여유 있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라고 할까요? 배부른 사람들 구미에 맞춘 위로와 위안을 진정한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인문학이란? 

“춘풍(春風)이 아니라 추상(秋霜) 같아야죠.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당장의 진실 혹은 진리는 비참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팩폭(팩트 폭행)’이죠.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극이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인에게 존경받기보다는 적을 만들더라도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싸우고 싶어요.” 

그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인문학 위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 인문학과와 거기 교수들의 위기죠. 학령인구 감소로 인문학 전공 위주로 진행되는 학과 통·폐합 때문에 전임교수 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언제 인문학이 제대로 연구·교육된 적이 있습니까?” 

인문학 전공 학생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무늬만 인문학 전공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텍스트를 해독해 자신의 말과 글로 풀어내는 ‘내공’ 있는 인문학 전공자가 몇이나 있습니까?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하는 학생을 얼마나 보셨나요? A4용지 한두 장 분량이라도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대학원생의 민낯이죠.” 

원인이 뭘까요. 

“해외 유학파가 교수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적 문제,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기 위한 노력과 시스템의 부재, 모국어를 천시하는 풍토 등이 한데 뒤섞였기 때문이에요.” 

박상익 우석대 교수도 ‘신동아’ 3월호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학파들은 외국 이론·사상 ‘운반책’ 노릇이나 하고 있습니다. 로컬(local)에 기반한 상상력은 제로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나 번역서를 출간하는 데 게으릅니다. 명색이 선생이라면서 ‘아웃소싱’할 게 따로 있지, 학문 후속 세대를 제대로 양성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유학이나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해법으로 ‘제국(帝國) 연구’를 제시한다. 

“한국은 여러 이유로 인문학이 뿌리내리기 힘든 환경입니다. 한국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쌓는 데 필요한 외국 고전과 명저가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겐 제국 경험이 없습니다. 

저는 제국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국의 야만성, 침략성이 아니라, 제국 운영의 메커니즘, 제국 창업자·수성자들의 철학과 수사(修辭), 제국이 성립하기 위한 물적·사상적 토대 등을 연구해 대중과 공유해야 합니다.”

‘배부른 돼지’와 ‘위선자’

그는 제국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선량한 피해자 의식’을 깨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만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다. 

“수학과 과학도 인문학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의 핵심은 개념입니다. 이는 수학·과학과 일맥상통합니다.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훈련법을 수학·과학에서 차용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수학·과학 분야에서 먼저 쉬운 한국어로 개념과 현상을 가르치면, 이 분야 전공자 중에서 장차 철학자로 대성할 인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철학자로서 진단하는 한국 사회 보수 및 진보의 문제점은? 

“보수는 배부른 돼지고, 진보는 위선자죠. 한국 사회에 진정한 보수 및 진보 세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보수 세력은 너무 배가 불러 사상적으로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인재를 키우는 데도 소홀했습니다. 왜냐? 진보와의 경쟁에서 지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요. 사상적으로 권위주의를 탈피, 자유주의·시장주의로 진화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반면 진보는 시쳇말로 ‘내로남불’이 심합니다. 위선과 허위의식도 강하고요. 도덕적 우월감에 기반한 선민의식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만 옳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오만과 독선도···.” 

진보의 대표적 위선은 뭐라고 봅니까. 

“자신들도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면서, 이를 애써 부정하거나 아닌 척하는 거죠. 조선시대 양반과 닮았습니다. 지배층이자,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 있는 집단이란 점에서요. 절대 다수인 서민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들을 위하는 척하죠. 자신은 절대 선, 상대방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며 명분과 도덕 투쟁을 벌이는 모습도 매우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 세력을 ‘위정척사적 사대부’라고 정의합니다.” 

임건순은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행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빠져 있던 ‘한심한’ 나라다. 주 원인은 지배 이념인 성리학에 있다. 명분에 집착하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고착화해 백성 차별을 당연시했다. 역동성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을 닫고 살며 대외 환경 변화에 무지했다. 

“대한민국의 영어 국호는 ‘Korea’이지 ‘Chosun’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회 진보를 하자면서 왜 자꾸 조선시대로 돌아가려 합니까? 일례로 교사와 공무원이 최고 직업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잖아요. 다들 공무원 되려는 세상이 되면 실험실 불은 꺼집니다. 사업가는 사업을 접습니다. 안정적인 것을 찾을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고려(Korea) DNA’도 있습니다.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고구려와 고려의 진취성과 역동성, 개방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샌님의 나라가 아니라 ‘무사·상인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사·상인의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성리학이 명분인 이(理)에 집착한다면 양명학은 현실인 기(氣) 또한 중시합니다. 성리학만 공부하면 양명학이 만든 직업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양명학은 직업에 차이를 두었을 뿐,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조선이나 오늘날의 한국이 성리학만 편식한다는 겁니다. 같은 유교권인 중국이나 일본은 그러지 않습니다. 일본 장인정신의 뿌리는 양명학에 있습니다. 중국인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려면 ‘손자병법’, 병법서 혹은 제왕학서로서의 ‘노자’를 읽어야 합니다. 

호방한 양명학은 무인·상인들에게 어울립니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합니다. 의병을 일으키고,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도 잘 맞습니다. 광복 후 한국 발전에는 무인(군부)과 상인(사업가)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이들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죠.”

‘고려 DNA’ 살려야

임건순은 이승만 초대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를 ‘고려 DNA’가 잘 반영된 시기라고 평했다. 무인과 상인을 중심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저평가된 대표적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노태우는 ‘시계(視界) 제로’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이끈 훌륭한 파일럿이었습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며 ‘연착륙’에 성공했어요. 민주시민사회 건설에도 큰 공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노태우 정부 때 노동자 임금도 인상되고, 내수 시장도 확장됐습니다. 소득 분배도 고른 편이었죠. 이 속에서 ‘중산층 꿈’이 생겼습니다. 대외적으로 북방 정책을 추진한 것도 획기적인 일입니다. 노태우는 군인 출신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 최후 때문에 과대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참여정부 시절 불공평이 심화됐고, 세종시 등이 비효율과 자원 낭비를 불러왔습니다. ‘화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국민 편 가르기를 통한 득표 전략을 추구한 점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노태우는 보수·진보 진영 양쪽에서 인기가 없는 인물입니다. 

“역사학자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에 노태우 재평가가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군부독재의 연장선상에서 노태우를 평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노태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반민주·독재 옹호’로 낙인찍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겠죠. ‘노태우’ 이름 석 자만 나오면 공격부터 해대는 보수 및 진보 진영의 정치권도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태우는 과(過)보다는 공(功)이 훨씬 더 큰 인물입니다. 언젠가는 재평가해야 하며, 재평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동아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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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맹자孟子의 마음공부 –인간의 자존감 회복의 길–박승현***

 맹자孟子의 마음공부

–인간의 자존감 회복의 길–* **

박승현***

  **본 논문은 2010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연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0-361-A00008)

 ** 본 논문은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가 “유교의 마음공부”란 주제로 주최한 학술대회 (2015년 8월11일)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주 요 어

중국철학, 유가철학 맹자, 마음공부, 성선, 본심, 자존감, 인의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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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문

맹자의 마음공부의 궁극적 목적은 이상적 인간의 실현, 즉 인격완성에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덕가치 실현의 근거가 된다. 그것은 인간이 육체생명의 한계에 머물지 않고 도덕이라는 무한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성분이 인간의 내면에 있음 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맹자는 그러한 본성의 확보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이 해하는 것은 이상주의의 관점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도덕은 바로 이상 주의에 근거할 때 비로소 진실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고자와 같이 인 간의 본성을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자연적 성질, 즉 본능으로 이해하는 곳에서는 진정한 도덕을 말할 수가 없다. 이러한 본성의 규정은 단순히 종류를 구별하는 유적인 구별이며, 이러한 규정 속에는 인간이 다른 동물 보다 존엄하다는 것을 구분해 낼 수 없다. 고자가 현세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 인간의 생물학적 차원에서 인간의 본성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출 발하고 있다면, 맹자는 인간을 보다 이상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인간이 동 물보다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지점, 즉 가치적 관점에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남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 논리, 즉 도덕을 실현할 때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 을 위해서는 우선 자기 긍정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자존감의 회복이 우선된다. 본심 회복의 마음공부는 자기긍정, 즉 자존감의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먹고 살기도 어렵다고들 하는 이 복잡한 시대에 우리는 왜 다시 맹자의 마음공부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는가? 논자는 우리가 철학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철학적 물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2500년 전에 제기된 맹자의 철학적 물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아 재 해석 되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현재 우리의 문제 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공허한 이론의 나열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 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문제로 삼아야 하는가? 현 실에 놓여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많이 있겠지만, 논자가 우선 주 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떨어져버린 인간의 ‘자존감’에 대한 문제

다. 자존감은 자존심 혹은 자부심과는 구별된다. 자존심과 자부심은 항상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감정이다. 치열한 경쟁사회 에 살다보니 남보다 우위에 서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의 뇌리에 항상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좀 나으면 우쭐하는 우월감이 생기고,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열등감이 생겨서 위축된다. ) 

반면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람은 우월감이나 열등감과는 거리가 멀다.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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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대로 자신을 온전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남보다 낫다고 우쭐대지도 않고, 남보다 못하다고 위축되지도 않는다. ) 자존감의 상실은 곧 바로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는 ‘생명 경시’ 현상과도 연관이 있 을 것이다. 조그만 문제에 부닥치기라도 하면, 그 문제에 직면해서 해결 의 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극단적 선택을 쉽게 해버리게 된다.  )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상대적 빈곤감’과 삶의 책임감의 상실은 바로 자신 을 진정으로 존중할 줄 아는 ‘자존감’의 상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존감의 회복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삶 의 공허감을 극복하는 문제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할 것이다.4) 주지하다시피 현재 우리의 교육은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나 기술을 획득하기 위한 지적인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삶이란 것이 오직 높은 직위나 권력을 얻 는 사회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을 ‘행복한 삶’으로 인식 하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 그래서 학교 교육의 방향도 생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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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에서 승리하는 삶의 방법과 도구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6)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존심과 자부심에 대한 강조는 있을 지언정,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자존감’에 대한 교육의 중시 는 찾아볼 수가 없다.7) 

그렇다고 인간들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노력이 중요하 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모든 사 고와 활동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의 가치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로 작동되는 동 물의 차원에만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분명 생물학적차원에서 동물 의 한 종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동물적 삶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동물의 차원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살기로 한다는 것은 

바로 ‘생존’을 넘어 남과 더불어 사는 ‘공존’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지점 일 것이다. 공존을 고민하는 그 지점에 ‘도덕’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도덕이 자발적인 의지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하고 인간 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8) 

 

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적 만족이 곧 행복한 삶을 담보해줄 수 있는 것인 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별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6) 학교 교육에서 ‘국어’ ‘영어’ ‘수학’만을 중시하고, ‘음악’ ‘미술’ ‘체육’ 등의 과목 을 경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른바 ‘국영수’는 인간 들이 밥 빌어먹고 살기 위한 도구를 획득하는데 유리한 과목이라고 한다면, 삶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악’ ‘미술’ ‘체육’ 등이 필요함에도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지나쳐버린다.

7)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것이 황폐화되어가는 학생들의 ‘인성’을 학교 교육을 통하여 바로 잡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 속에 수립되었지만, 그 실효성을 의심하는 학자들이 많다. 인성교육 이 하나의 교과목으로 자리 잡고,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과정을 밟게 되면, 인성 교육도 단순한 지적인 훈련을 통한 입시과목으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많다. 인성 교육과목의 성적이 좋은 사람이 곧 좋은 인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과거 ‘국민윤리’ 교육처럼 국가가 인성교육의 방향을 주도함으로 인하여 인 성교육의 획일화라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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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실현은 객관 세계를 탐구하는 자연과학에서 지식을 추구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가치에 관한 일은 자연과학을 탐 구하는 지적인 탐구와 구별되어야 한다.9) 인간다움의 실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당위에 관한 일이며, 가치적 사 실이다. 가치적 사실은 실천을 통하여 실현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 다. 따라서 도덕실천은 바로 의지의 문제와 연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스 스로의 의지를 발현하여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실현함으로써 그 가치가 비로소 구체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10) 그 속에서 인간 의 존엄성을 확보될 수 있고, 그 존엄성의 바탕에는 바로 주체적 자아의 

 

8) kant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의무의 개념을 법칙에 대한 복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모든 의무를 이행하는 그 인격에 대해서는 일종의 숭고성과 존엄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서 그런가? ……그가 도덕적 법칙에 복종하고 있기만 한다면 그에게는 아무 숭고성 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법칙의 입법자로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법 칙에 종속되는 것이며 그러는 한 숭고성이 있다. 우리는 이상에서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행위의 동인은 공포도 기호도 아니며 다만 법칙에 대한 존경일 뿐이라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우리 자신의 의지가 그 준칙을 통해 가능한 보편적인 법칙의 조건아래에서 행위 하는 한, 이념 안에서 가능한 이 의지가 바로 본래적인 존경의 대상이다. 인간의 존엄은 비록 그가 바로 그 법칙에 동시에 복종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보편적 입법자일 수 있다는 이 능력에 있는 것이다.”

(도덕형이상학원론(이규호역), 박영사, 1988, 95쪽)   

9) ‘마땅히 무엇인가’(ought to be)와 ‘이것은 무엇인가’(What is it)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후자는 사실의 문제이지만, 전자는 가치의 문제이다. 객관적 사실의 문제 를 다루는 것은 지적인 작업이지만, ‘인간다움’의 실현은 가치의 영역이고, 인간 의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10) 여기서 마땅히 해야 한다는 당위도 사실적 의미와 도덕적 의미로 구분될 수 있 다. 겨울에는 마땅히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마 땅함은 사실적 의미의 마땅함이지만,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마땅히 한다는 것은 가치적 당위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도덕적 의미가 없지만, 후자의 도덕적 의미 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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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립이 우선시 된다. 주체적 자아의 확립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자존감 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존중감이 없는 곳에 인 간의 이상적 가치의 실현이란 있을 수 없다. 이상적 가치의 실현은 바로 의지의 발현이며, 그것은 바로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 한 자존감을 확보하고 높이려는 수양의 길이 바로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다.

맹자의 마음공부를 우리가 다시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주체성의 확립, 다시 말해 인간의 자존감의 확보에 관한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철학의 궁극적 관심은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최고로 드높일 것인가 하는 이른바 ‘삶의 책 임의식’에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 인생에는 추구하는 이상이 있고, 행 동에는 ‘마땅히 해야 함’이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 그 생명은 한 단계 위 로 도약할 수 있다. 이때 그 생명은 사실적 존재임과 동시에 가치의 존 재로 승화된다. 또한 인생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무기력한 삶이 아닌 진실감을 가진 삶을 실현할 수 있다. 우리의 생명은 결정된 것이지만, 도 리어 스스로 결정하고 주제할 수 있다. 인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결정된 사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주재하는 것은 가치 의 무한이기 때문에 인생의 장엄함을 드러낼 수 있다. 인생은 결정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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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속에서 당연의 무한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맹자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신뢰를 바탕으로 도덕적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도덕실천의 문제, 그리고 그러한 도덕실천을 통한 이상적 인간의 실현의 문제 등 이른바 도덕가치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에 더 중 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상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간으로서 참 다운 인간이 되는 길'(人之所以爲人)을 모색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하여 맹자는 시종일 관 본심의 회복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도덕실천의 원동력이 기 때문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론性善論의 함의를 밝히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맹자가 말하는 ‘성선性善’은 인간의 진실한 주체로부터 이끌어져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진실한 주체 의 확보가 마음공부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하여 맹자가 주장하는 마음공부는 바로 인간의 자존감의 회복 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의 확립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2. 價値의 근원으로서의 性善 

맹자를 말하게 되면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하는 '성선 설性善說'을 곧 바로 떠 올리게 되지만, 우리 주위에서 쉽게 목격되는 인 간들의 악행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선 듯 동 의하기 어려워지고, 그리하여 그의 주장의 진의眞義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도 보기 전에 그것을 쉽게 간과해 버리는 것 같다. 중국철학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 혹은 악하다고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내놓는 것은 바로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이다.12) 다시 말해 도덕실천의 가능근거를 밝히는 것은 바로 인간을 어떤 차원, 즉 현실 경험적 차원에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이상적 차원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밝히는 것 이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덕실천의 방법에 대한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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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에서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을 현상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적 사실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인간이 비록 동물의 한 종에 속하지만, 인류학적 관점 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생물학적 특성이란 측면에서 인간의 본성(人性)을 논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적 사실로서의 특성을 인정하지 만, 그것을 뛰어넘어 이상적 혹은 가치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파 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지점인 도덕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人性)을 논하는 것이다. 이것을 리기理氣의 개념으 로 나누어 보면, 기氣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의 문제를 논한 것이 고자 告子라고 한다면, 리理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의 문제를 논한 사람은 맹자孟子라고 할 수 있다.13)

리理의 관점에서 인성을 논한다는 것은 이상주의(idealism)를 말하며, 

이상주의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도덕을 말할 수 있다. 도덕은 우리의 가치적 생명을 어떻게 확보하고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인간을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서 말하는 생명유지에 관심을 두기 보 다는 도덕적 차원에서 가치적 생명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 고 있다.14) 맹자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도덕주체가 모든 사람

12) 牟宗三, 心體與性體(1), 臺灣, 正中書局, 1989, 4쪽 참조 

13) 牟宗三, 孟子講演錄 (1), 鵝湖月刊 347호, 7-8쪽 참조

14) 모종삼은 이상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들은 다 아래로 떨어 져 타락에 이르는 것을 불안해하는 본성이 있고, 아래로 죄에 떨어지는 것을 불 안해하는 것이 바로 도덕성이다. 죄에 대한 불안은 죄 가운데서 뛰쳐나오려는 염 원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러한 염원과 능력을 창조적 역량이라고 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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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면, 이를 근거로 덕성을 수양할 수 있도록 격려할 때 더욱 강한 실천적 효과 를 수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15)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을 시도하였다. 맹자와 인 간본성의 파악에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은 고자告子이다. 고자는 당시의 유행하던 인간의 본성을 생生(性者, 生也)으로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을 따라 인간의 성性을 "생지위성生之謂性"16)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여기서 말하는 생자生字는 인간이 출생하면서 가지고 있는 자연적 생명을 가리 키는 것이다. 고자의 의미를 현대적인 용어로 바꾸면 "한 개체가 존재할 때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본질本質을 성性이라고 한다."17)라고 정 의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적 본질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같은 성性이란 글자를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 자가 말하는 성性은 인간이 나면서 가지고 있는 개체적인 속성으로서 생 물학적인 특성, 즉 본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자는 식욕과 색욕 등과 같은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 론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적인 본능에 해당하는 특질을 모두 가지고 있 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생지위성生之謂性'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

 

있고, 이로부터 인간들의 창조성과 이상성을 이해할 수 있다. 생물학적 생명의 창조성은 단지 기계적(Mechanical)일 뿐이고, 오직 정신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에 서의 창조성이 비로소 진실한 창조성(Real creativity)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신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이상성(Ideality)을 대표한

다. 이상의 최후 근원은 반드시 이러한 창조성이다. 이러한 이상성이라야 비소로 

‘진정한 이상성’이라고 할 수 있다.”(牟宗三, 中國哲學的特質, 學生書局, 70쪽)  

15) 맹자가 일생동안 힘들여 노력한 작업은 바로 도덕실천의 가능 근거를 밝히는 것 이며, 또 이를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관한 방법론이다. (王邦雄, 曾昭旭, 楊祖漢,  

맹자철학 (황갑연 역), 서광사, 2005, 20쪽 참조)  

16) 告子上, "告子曰生之謂性" 

17) 生之謂性에 대한 해석은 모종삼 선생의 圓善論의 7쪽의 해석을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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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규정하는 것도 완전히 잘못된 견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다만 성性 을 본능의 측면에서 파악하게 되면 인간은 동물에 미치지 못하거나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본능은 결코 진귀하지 않으며, 맹목적이고 기계 적(Mechanical)이어서, 외부의 자극에 쉽게 이끌리고, 습심習心(habitual mind)으로 자동전환 되어져서 그 자신의 생명을 주재하고 장학할 수 없 다. ) 그것을 통해서는 도덕주체로의 인성人性을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맹자는 고자의 주장에 반대한 것이다. ) 그래서 맹자는 여 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가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자연적 본능을 구분하 려고 시도하게 된다.

맹자는 “입이 맛에 있어서와 눈이 색깔에 있어서와 귀가 음악에 있어 서와 코가 냄새에 있어서와 사지가 안일함에 있어서는 성性이지만 명命 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것을 성性이라고 하지 않는다. 인仁이 부자父子 간에 있어서와 의義가 군신君臣 간에 있어서와 예禮가 손님과 주인 간에 있어서와 지智가 현자에 있어서와 성인이 천도에 있어서는 명 命이나 본성本性에 있다. 군자는 이것을 명이라 하지 않는다." )라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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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소 리를 좋아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하고, 피로함을 싫어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다 우리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 五感의 본래 작용, 본능에 해당한다. 이러한 것은 앞에서 말하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자연적 본능에 해당한다. 맹자는 우리의 감각적 욕망을 성性이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연적 특성으로서의 생물학적 본능에 해당하는 성性과 구별되는 도덕적道德的 관점에서 성性 을 말하려는 것을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맹자는 ‘생지위성’ 즉 인간의 자연적 기질로부터 인간의 성性을 규정하는 것을 통해서는 도덕적 가치 측면에서 말하는 도덕성을 구분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는데, 이 존엄함이라 는 것은 단순히 자연적 기질 혹은 지능의 우월함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 니다. 인간이 도덕성을 지니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휘할 때만이 인간의 존엄성은 확보되는 것이다. 고자가 생지위성生之謂性에 근거한 성性의 구 별을 개체존재의 자연적 특징에 근거하여 종류를 분류하는 ‘류類적인 구 별’이라고 한다면, 맹자는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人之爲人)즉 인간의 존엄성의 확보차원에서 인간의 본성을 구별하는 가치적 구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22) 생지위성生之謂性에 근거하여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게 되면, 인간의 본성 자체가 선하다 악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고자가 말하 는 인성人性은 중성적中性的인 성격을 나타낸다.23) 선하고 악하게 되는 

 

之於賢者也, 聖人之於天道也, 命也, 有性焉, 君子不謂命也.”11111"

22) ‘류부동’에서 말하는 성性은 사실명제라고 한다면, 맹자가 도덕적 측면에서 창조 적 진기를 말하는 성은 가치적 의미의 성을 가리키는 것이다.(牟宗三, 中國哲學

的特質, 63쪽)

23) 고자가 "성유기유性猶杞柳"(재료적 의미) "성유단수性猶湍水"(중성적 의미) "식색 성야食色性也"(생물학적 본능)라고 정의하는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는 것에는 인 간의 내면에 도덕적 요소를 찾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선악은 외적인 환경에 의 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은 중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 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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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외적인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환경을 만 나면 좋은 인성이 발휘될 것이고, 나쁜 환경을 만나면 나쁜 인성으로 드 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이 악하게 되지 않고 선하게 되 기 위해서는 후천적으로 좋은 환경과 교육을 받아서 가능해진다. 만약 좋은 환경과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선한 행위가 가능하지 않다. 선은 선 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 교육에 의하여 가능하다는 것 이다. 따라서 고자가 도덕실천의 원리는 객관적 상황에 의하여 결정된다 고 주장하면서, ‘인仁은 내적內的인 것이고, 의義는 외적인 것’(인내의외 仁內義外)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 

이러한 고자의 주장에 반대하여 맹자는 ‘인의仁義는 내재內在한다’(인

의내재仁義內在)라고 주장한다. ) ‘인의仁義’가 내재한다는 것은 칸트의 용어를 빌리면 자율自律이라고 할 것이다. ‘자율’이라는 것은 의지의 자 율을 말하는 것이다. 자율은 스스로 행동의 원칙과 방향을 세운다는 것 인데, 우리의 의지가 주의의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어떤 외적인 요 인에 의하여 행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스스로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 칸트의 이러한 의지자유를 맹자의 용어 로 바꾸면 ‘인의내재仁義內在’라고 할 것이다. 인의내재를 결정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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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능력은 바로 우리의 ‘심성心性’에 있다. 맹자는 선한 본성(性善)에 따 라서 스스로 도덕적 의지를 결정(인내의외仁義內在)하게 된다는 것이

다.27) 

고자告子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표준인 ‘의義’가 객관적으로 존재

한다고 하는 ‘의외義外’를 주장하는 까닭은 인간의 내면에 도덕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자는 도덕적 행위의 기준은 객관 사실(대상)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인의 예지는 외부로부터 부여되어진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 본래 가지고 있 는 것이다”28)라고 말한다. 이것은 도덕법칙(인의仁義)이 도덕 주체성(성

性)에서 나오는 것이지 대상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맹자는 인의仁義가 내재內在인지 외재外在인지는 도덕주체성인 본성에서 나왔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가 ‘인의내재仁義內在’를 통하여 말하는 것은 도덕성이 ‘인의예지仁義禮智’ 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 럼 ‘재료적’ ‘중성적’ ‘생물학적 본능’으로 인성人性을 말하는 고자가 말 하는 자연적 본능의 차원에서 인성을 규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가치론적 입장에서 성선性善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가 가치론적 입장에서 성선을 말했다는 것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살펴보면, 바로 동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간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 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 되는 그 지점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한 것이다. ‘인간다움의 실현’은 바로 ‘나’ 아닌 다른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 는 것, 즉 ‘생존’을 넘어 ‘공존’을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존을 위 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강한 긍정, 그리고 책임의식과 아울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29) 삶에 대한 책임

27) 牟宗三, 先秦儒學大義 (1), 鵝湖月刊 383호, 2007, 7쪽 참조)

28) 孟子 告子上,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29) 증자가 말하는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의 실현을 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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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식이 바로 가치의식이고, 이것을 실현 시킬 원동력인 인간의 진정한 주체성을 인간의 참다운 본성이라고 하였

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내재적인 도덕의식이고, 인간이 인간으로 되는 참다운 본성이 소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 다른 짐승과 다를 수 있는 차별성을 육체적 생명의 욕구에 좌우되지 않고 자 율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주재하여 인의를 실천할 수 있는 곳에서 찾았다. 맹자는 “인간이 금수와 다른 것은 거의 드물다. 서인들은 이것을 버리 고, 군자는 이것을 보존한다. 순임금은 여러 사물의 이치에 밝으시고, 인 륜人倫에 특히 상세하였으니, 인의仁義(한 마음)에 말미암아 행한 것이지, 인의仁義(라는 외재하는 도덕규범)을 행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30)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름(이異)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개체사 물의 특징을 구별하는 류類적인 부동함이 아니라, 가치상의 부동함을 말 한다.31) 그가 이러한 인간과 금수의 구별을 통하여 건립하려는 인성 개 념은 존재사물의 본질을 분류하는 류類개념 즉 지식의 추론 과정을 통해 서 얻어진 지식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실천 적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생활실천 상에서  인간은 도덕심의 작용을 통하여 시비를 판단하고, 선악을 분별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진 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식색食色 등과 같은 생리적 욕망 이나 자연적 재질적인 특성으로서 본능은 짐승과 본질적인 차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맹자는 인간과 짐승 사이의 '미미한 차이'(기희幾希)는 바로 인간이 인의仁義함 즉 도덕성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달

 

임무로 삼으니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나 그만둘 것이니 멀지 아니한가?”(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유가 들의 공통된 삶의 책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다움의 실현(인仁의 실현) 이 인생의 최고의 목표이고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論語 泰伯 -7) 

30) 孟子 離婁下 , "人之所以異於禽獸者幾希, 庶民去之, 君子存之. 舜明於庶物, 察於人倫, 由仁義行, 非行仁義也" 31) 牟宗三, 孟子講演錄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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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상적 인간이라고 지칭되는 순舜 임금이 순임금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인의仁義한 도덕성을 자각하고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 이다. 순舜 임금이 여러 사물의 이치에 밝고, 인륜人倫에 대하여 살폈다 는 것도 바로 기희幾希한 그 지점, 바로 도덕적 본성인 인성人性으로부 터 도덕심이 발동되어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바로 “인의 仁義(한 마음으)로부터 행한 것(유인의행由仁義行)”이지 어떤 외적으로 존재하는 “인의仁義라는 외적인 도덕적 규범에 맞추어 실행하는 것이 아 님(비행인의非行仁義)”을 주장한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의 실현은 바로 ‘기희幾希한 그것’ 즉 인의仁義함을 존양확충存養擴充함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세의 일반적인 인간들은(이른바 小人) 그것 을 존양存養해야 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자연의 생명에 따라서 흘러 가게 되어 금수와 차이가 없게 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쉽게 불선한 행 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인의내재仁義內在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심성心性이고, 

그 심성이 바로 가치의 근원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인간 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고 있는 선한 본성(성선性善)에 근거하여 도덕적 실천을 할 때, 인간은 비로소 동물과의 구분점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확보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가치를 실 현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신의 인격완성의 길을 열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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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心善을 통한 性善을 논증 - 주체성의 확보

  

맹자는 성선性善이 가치실현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그 본성이 선하다

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맹자는 인성人性의 구체적인 내용을 심心을 통하여 설명하면서 사단지심四端之心을 제시한다. 성性 그 자체는 어떤 내용을 갖지 않은 객관적 원칙이기 때문에 성性이 구체적이고 진실 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바로 심心의 활동을 통하여 드러나야만 한다. 그래서 성性이 객관적 원칙이라면, 심心은 주관적(주체적)인 원칙이다.33) 심心은 주관적인(주체적인) 활동이고 동각動覺을 표시하는 것이다. '성性' 은 본체이므로 이러한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성性에서 활 동, 즉 각覺을 말하려면 반드시 심의 활동, 즉 심心의 각覺에서 말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성性은 객관적 형식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 고, 사단지심四端之心은 구체적 내용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34) 그래서 맹자는 "측은지심은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고, 수오지심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고, 공경지심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으며, 시비지심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고, 수오지심은 의이고, 공경지심은 예이고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밖으 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나에게 고유한 것이다."35)라고 말하 는 것이다. 본성의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사단지심四端之心, 현대적인 용 어로 말하면 도덕심道德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심의 발현을 통하여 선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선性善의 실현은 인간들이 근

33) 牟宗三, 心體與性體(1), 臺灣 正中書局,1989, 42쪽

34) 牟宗三, 맹자강연록 (6), 鵝湖月刊 353호, 3쪽

35) 孟子, 告子上 7孟子曰,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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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이 가진 이러한 선천적인 능력을 양능良能이라고 부르고, 이것에서 도덕적 선이 발현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명하 면 사단지심의 활동이 된다. 인간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마음의 발현이 바로 우리 의 본성의 발현을 의미한다. 사실 인의예지의 사단지심은 우리에게 본래 부터 갖추어진 것으로 일단 자각하기만 하면 육체생명의 제한을 받지 않 고 실현할 수 있으며, 이 도덕심이야말로 인간의 참모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만 하면 반드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도덕적 인 선은 이미 우리의 사람의 마음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선에 대한 자각 은 밖에 있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 고 자각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만일 스스로 선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사욕에 이끌려 도덕을 위배하게 될 것이고 도덕본심 역시 사욕에 가리어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다. ) 따 라서 선한 본성이 우리에게 내재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측은지심과 같은 우리의 본심의 활동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고, 이러한 불인지심不忍之心, 사단지심四端之心은 모두 심선心善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심선 心善을 통하여 성선性善을 증명한다. )  

그러나 우리가 비록 증명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맹자는 논

리적인 논증을 통하여 증명을 시도하지 않고, 다만 비유를 통한 유추의 방식인 유비적 논증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예로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 에 빠지는 상황을 비유로 들면서,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 면 누구나 다 달려가서 아이를 구해주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즉각적으 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출척측은지심怵惕惻隱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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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38) 다시 말해 '남의 고통을 참아 보지 못하는 마음' 즉'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누구에게나 다 일어난다는 것을 통하여 심선心善의 보편성을 증명한다. 이러한 본연의 마음이 그러한 순간에 직면해서 곧 바로 드러 나는 것은 사실은 양심良心 천리天理의 직접적인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 것은 지적으로 뛰어나거나 우둔한 것과 상관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필연 적으로 모두 동일하게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활 동은 다른 불순한 목적, 다시 말해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거나 향 당과 붕우들에게 어떤 명예를 위해서라거나 혹은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 의 소리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우리의 본심으로부터 자연 스럽게 발동되어져 나오는 것이다.39) 만약 다른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라 고 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도덕실천은 어떤 이익이나 명예, 감성적 호오好惡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전제조 건이나 목적에 의지 않는 오직 측은지심의 발로이고, 남의 고통의 차마 보지 못하는 우리의 도덕심(따뜻한 마음)40)의 발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이런 증명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도덕성이 인간에게 내

재되어 있음을 논리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논증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를 다루는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

다.41) 도덕적 영역에서 실천을 통하여 드러나고 그 실재성을 확보하는 

38) 출척측은지심怵惕惻隱之心’에서 ‘출척怵惕’은 깜작 놀라서 두려워하는 마음이고, ‘측은惻隱’은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39) 孟子, 公孫丑上 ,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

也.” 참조 

40) 논자는 공자가 말하는 ‘인심仁心’, 맹자가 말하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비유 적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 는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는 것이고, 밖으로 향할 때는 다른 사람과 외물에 대 한 배려와 존중의 원칙으로 드러나게 된다.

41) "應當 무엇인가"(ought to be)와 "무엇인가"(What is it)은 완전히 다른 층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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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다. 성선性善을 말하는 세계는 객관적 사실의 세계가 아니다. 이 것은 당위의 세계이다. 당위의 세계는 주체적 결단을 통하여 실천에 옮 길 때 객관적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仁이 멀리 있겠 는가? 내가 인仁을 실천하고자 하면 이 인仁은 이르게 된다"42)라고 말하 고, 또한 "인을 설천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위인 유기爲仁由己)"라고 말한다. 맹자는 “(내재하는 도덕성인) 인의仁義으로부 터 말미암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인의(라는 도덕규범)으로 말 미암겠는가?”라고 말한다. 이처럼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性善의 실재성은 주체적 수행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스스로 결단하고 실천할 때만이 도덕적 사실은 존재하게 된다. 

현세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되겠 지만 오직 생존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일반 적으로는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현실적 바람이다. 그렇지만 한번 밖에 없는 이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란 물음은 우리가 화두처럼 숙제로 남겨진 문제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의義롭게 살 것 인지, 아니면 적당히 현실 과 타협하고 불의不義를 눈감아주면서 물질적 만족만을 추구하면서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 항상 직면한다. 사욕에 이끌리는 자신을 극 복하고 의義로움을 객관적 존재하는 사실로 증명하는 것은 스스로 도덕 적인 결단하는 그 순간에 드러나게 된다. 맹자는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한 다’(사생취의舍生取義)고 말하고 있다.43) 경우에 따라서는 의義가 삶의 현실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작동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인간이 긴

전자는 가치의 문제이고, 후자는 사실의 문제이다. 牟宗三, 孟子講演錄 (4) 4쪽 참조  

42) 論語, 述而 ,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43) 孟子, 告子上 孟子曰, “魚, 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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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 생사의 간두竿頭에 섰을 때 가장 절실하고 확실하게 선한 본성의 실현을 보게 된다. 그 선택의 순간에 인간의 선한 본성을 증명할 수 있 는 것이다.  

4. 맹자의 마음공부 - ‘잃어버린 마음’의 회복

앞에서 심선心善을 통한 성선性善의 증명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성선 性善을 확인하려는 것은 도덕실천의 근거가 인간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 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덕성을 수양할 수 있도록 격 려할 때 더욱 강한 실천적 효과를 수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 간의 도덕의지(도덕주체)가 인간 본성이며 본성이 인격완성의 근거임을 깨달은 후에 반드시 위대한 성현의 길을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맹자는 이러한 인생의 이상을 “천하의 넓은 곳에 거처하고, 천하의 올바 른 위치에 서고, 천하의 위대한 도를 실천한다” 표현한다.44) 

그러나 우리가 위대한 성현의 길을 말하게 되면, 곧 바로 인간의 노력

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신의 경지처럼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45) 동양에서 말하는 성현聖賢은 인간의 도덕적 실현을 통하여 실현가능한 이상적 인 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성현을 실현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것’ 즉 인격완성을 의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완성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시시각각 자신의 감성적 욕구를 극복하면서 도덕심을 드러내야 한다.46) 공자가 인의 실현은 자신의 주체

44) 孟子 滕文公下-2 ,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45) 기독교에서 예수는 비록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인간의 노력을 통하 여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위에 있다. 피조물인 인간은 기도를 통하여 구원 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신의 지위에 도달할 수 없다. 인 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더라도 그는 신이기 때문이다. 

46) 공자가 인간다움의 최고 경지인 인仁의 실현을 극기克己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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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실천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47) 모든 도덕가치의 실 현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공자는 “인仁이 멀리 있겠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곧 인에 이를 것이다”48)라고 말하는 것이다. 네 가 하고자 하면 도덕적 사실은 그곳에서 곧 드러날 것이고, 너에게 그러 한 의지가 없으면 양심은 바로 숨어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에게 문제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의지를 발현 시켜 양심을 드러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도덕적 필연 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음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유가철학에서 언제가 강조하고 있는 수양공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도덕적 필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우리의 의지가 외물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고, 항상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여 우리의 선한 본성을 언 제나 드러나게 하여 도덕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마음을 유 지한다는 것은 바로 본심의 확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심이 있다는 것을 승인해야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드러나 게 하여야 한다. 본심을 잃게 되는 원인은 감성 욕망에 의한 은폐에 있

다. 마치 잡초가 마음을 꽉 막아버린 것과 같게 된다.49) 따라서 본심의 회복은 감성의 욕망으로부터 초월 여부에 달려 있다. 감성의 욕망을 초 월 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자신의 도덕본심이다.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양심을 자각하고 시시각각으로 성찰하여 자신의 본래 면

바로 그곳에 있다. 공자는 “자신을 이겨서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 論語 顔淵 )이라고 말한다. 극기란 자신의 부정적인 측 면을 제어하는 것이고, 복례라는 인간이 긍정적 측면에서 추구해할 인간의 이상 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인격완성의 길로 가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47) 論語 顔淵 , “인仁을 실현하는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지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 암겠는가(爲仁由己, 而由人乎哉)”

48) 論語 述而 , “子曰: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49) 孟子 盡心下 “今茅塞子之心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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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안으로 증명하고 순수한 적자지심赤子之心  )을 보존해야 한다.51) 그렇다면 어디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맹자가 제시하는 방법 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양심 스스로 양심의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다. 일단 양심의 존재를 자각하고, 본심이 스스로 작동하게 되면 쉽게 습관적 마음(습심習心 habitual mind)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습관적 행동이나 이기적 방향으로 자동 전환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단지 잃어버린 마음 을 회복할 따름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음’이라는 것은 우 리의 양심을 가리킨다. 우리의 양심을 스스로 성찰하고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양심의 회복만을 강조하고 다른 공부는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수양공부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양심의 자각이라는 기초가 먼저 확립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양심의 자각이 있게 되면, 인생의 방향이 바른 방향으로 나 아갈 수 있게 되고, 모든 활동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면 대부분 외물의 유혹에 

이끌려서 욕심과 사욕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양심의 자각 이 있게 되면 자신이 마주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게 되고, 그 진실감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본심이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내재하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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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하고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맹자가 잃어버린 본심을 회복 하는 것이 공부의 요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작에서 끝까지 양심의 자각은 모든 수양공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마음을 회복할 것인가? 그곳에 특별한 방법

이란 없다. 다만 본심本心이 주동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작용을 회복하는 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 근원으로 돌아가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 바로 모 든 잘못의 근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착각 때문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추구하면 얻게 되 고, 버리면 잃게 된다. 이는 추구하는 것이 (무엇을) 얻음에 도움이 되는 데, 나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53)라고 말한다. 스스로 어떤 것을 추구하고자 의욕을 발휘하여 노력하게 되면 반드시 얻 게 되지만, 스스로 포기하면 반드시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구 하려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도덕인 것이 다. 인의예지와 같은 자신의 도덕성이 본래 자신의 내면에 갖추어져 있 기 때문에 스스로 반성을 통하여 이것을 추구하게 되면 반드시 그것을 현실로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54) 다시 말해 자기 마음의 본래 모습 을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면 인의예지기 진정으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53) 孟子 盡心上3 “孟子曰 求則得之 舍則失之 是求有益於得也 求在我者也”

54) 맹자는 나의 안에 있는 것과 나의 밖에 있는 것을 구분한다. 나의 밖에 있는 것 (재외자在外者)은 부귀와 명예 등을 가리킨다. 부귀와 명예는 본래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우연적인 결과이고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른 사람이 준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회수해 갈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부귀 와 명예를 얻으려는 반드시 정당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만, 정당한 방법 과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반드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외적 인 환경에 영향을 받은 우연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추구하는 데 정당한 방법이 있고, 얻는 데 제한이 있을 수 있다.이는 추구하는 것이 얻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데, 나의 밖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 - 孟子 盡心上3 )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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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을 알고서, 모든 행동을 양심의 본성에 따라서 행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도덕적 행위인 것이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돌아보면 이러한 도덕적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는 것은 쉽지 않다. 맹자도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仁은 사람이 거 처하는 집이고, 의義는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이다. 그런데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마땅히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을 버리고서 따르지 않으니 얼마나 슬픈가?” )라고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갖추어진 마음의 진실함을 바로 보지 못한다. 때문에 스스로 마음의 본성에 따르기를 원치 않고, 또 올바른 인생의 대 로大路를 버리고, 간편한 편법을 추구하고 한다. 결국 그 자신을 공허하 고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뜨리게 된다. 이것은 스스로 인생의 비극을 자 초하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스스로 해치는 것이니 슬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맹자는 “무릇 도는 큰길과 같으니,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오직 스스로 도덕심을 자각하고, 그 도덕본성을 드러내면 곧 모 든 선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두가 지니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 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도덕적 본성을 특별한 사람에게만 갖추어져 있 는 것이 아니고, 도덕심과 본성은 모든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어떤 차별도 없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자각하느냐 하 지 못하느냐에 따라 범인凡人과 현인賢人으로 나누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는 “오로지 현자만이 이 마음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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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갖추고 있지만, 현자만이 이 마음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었다”58)라 고 말한다. 흔히들 도덕을 말하게 되면 골치아파하고, 남들에게 억지로 어떤 행동의 규범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쳐질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도덕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자각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 높임과 아울러 남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 도리를 실현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인간의 무한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도덕은 바로 외적인 규범이 아니라 본심의 자발적 표현이다. 눈앞에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 발적으로 선을 향하여 노력하고 실천하면 개인적인 자질의 차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어느 정도 날 수는 있겠지만, 모두 본심을 근본으로 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소유한 도덕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 라서 어떻게 본심을 자각하고, 보존하여 발휘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디서 마음공부를 시작할 것인가이다. 맹자의 말을 빌면, 대아와 소아, 대체와 소체, 천작과 인작, 의로움과 사사로운 이익 등과 같이 이해의 대립이 발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맹자는 “배양을 잘하고 못하는 것을 살펴보면 어찌 다른 것에 있겠는가?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하기에 달 려 있을 뿐이다. 사람의 몸에는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있고,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해쳐서도 안 되고, 천한 것으로써 귀 한 것을 해쳐서도 안 된다. 작은 것을 배양하면 소인이 되고 큰 것을 배 양하면 대인이 된다.”59) 여기서 대인이란 주지하다시피 온전한 인간상을 실현하려는 사람인 반면 소인은 정신적으로 건강치 못한 이기적, 자기중 심적 사유에 사로잡힌 인간형을 지칭하는 것이다. 만일 선악의 가치가 대립되어 있을 때, 의로움과 사사로운 이익을 분별하여 육체 생명인 소

58) 孟子 告子上10 “非獨賢者有是心也 人皆有之 賢者 能勿喪耳”

59) 孟子 告子上 “所以考其善不善者 豈有他哉 於己 取之而已矣 體有貴賤 有大小無以小害大 無以賤害貴 養其小者 爲小人 養其大者 爲大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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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부터 빠져 나와 도덕생명인 대아를 수립할 수 있다면 당당한 군자의 인격을 수립할 수 있다. 

일단 대아를 수립할 수 있으면 당당한 군자의 인격을 수립할 수 있다. 일단 대체가 건립되면 사사로운 욕망과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사설邪說 등은 우리의 본심을 오염시킬 수 없다. 우리의 본심의 작용을 근거로 사 악邪惡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고, 어두움을 비추어 모든 죄악으로 하여 금 숨을 곳이 없게 해야 한다.60)  따라서 우리가 외물의 유혹에 빠져 들 지 않고, 잘못된 행동의 원칙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진정으로 귀중한 것이 무엇이고, 천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자각적인 반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대인과 소인, 대체와 소체 로 구분이 나누어진다. 이러한 대소의 구분은 실제의 수량적 구분이 아 니라 가치 의미의 대소이다. 사람이 대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대체 의 명령을 따라 행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체란 본심을 가리 킨다. 본심의 명령에 따라서 실천하면 덕성을 성취할 수 있고, 존귀한 인 격을 세울 수 있다. 만일 본심이 결정한 방향에 따르지 않고, 사욕에 사 로 잡혀 함부로 행동하고, 이기적으로 해위한다면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소인의 경지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공자께서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게 되고, 나가고 

들어옴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 음을 말함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61)라고 말하면서, 도덕적 행위의 관 건은 바로 본심의 조존操存(잡아서 유지함)의 수양공부의 수행 여부에 달 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수양공부가 있다면 우리의 양심은 보존되고 발현되지만, 그러한 수양공부가 없으면 곧 바로 외물의 유혹이나 인간들 의 감각적 욕구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수양의 요점은 외물의 유혹이 이끌려 드러나지 않고, 자각

60) 王邦雄외, 맹자철학(황갑연역), 23쪽 참조

61) 告子上 ,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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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하는 심의 활동을 다시 한 번 회복시키는 것에 있다. 우리의 본 심이 주동적으로 깨어 있는 마음을 유지하고, 그것을 통해 항상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되 친해지지 아니하면 그 사랑함(인仁)을 반성하고, 사람을 다스리는데 다스 려지지 않으면, 그 지혜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사람을 예의로 대우하는데 응답하지 않으면 그 공경함을 반성하라. 실천을 하였는데도 (좋은 결과

를) 얻지 못하였다면 모두 자신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라! 자신을 바르게 하면 천하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62)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성취되지 않는다면 외적인 것 에서 그 원인을 찾지 말고 곧 바로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자신을 성찰 해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반구저기反求諸己’ 즉 돌이켜 자신에 구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에서 과거의 잘못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가를 반문해보는 것이다. 또 내 마음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 인지를 물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고귀함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같은 마음이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고귀한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각 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이 고귀하다고 하는 것은 사실 고귀한 것이 아 니다”63)라고 말한다. 봉록이나 관직을 획득하거나 잃는다는 것은 사회적 직위가 달라지는 문제이지만, 인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의 가치와 존엄성의 상실에 관련된 문제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역할 을 다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하려면, 우리는 후천적인 수양공 부를 통하여 본심을 항상 보존하고 있어야 하며, 시시각각 자신을 경각 시켜 본심의 각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시라도 본심의 각성을 잃

62) 孟子 離婁上 , “孟子曰 愛人不親 反其仁 治人不治 反其智 禮人不答 反其敬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其身正而天下歸之”

63) 孟子 告子上 “孟子曰 欲貴者 人之同心也 人人 有貴於己者 弗思耳. 人之所貴者 非良貴也 趙孟之所貴 趙孟 能賤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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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면 본심은 바로 사욕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게 되다. 본심을 경각하 면 드러나고, 놓으면 바로 숨어버린다. 본심의 자각(사思)을 인의예지라는 본심本心의 본질적 작용으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도덕본심이 '자각(사 思)'하는가 '자각하지 못하였는가(불사弗思)'에 따라서 본심이 활동성을 확 보할 수 있는 여부를 결정지을 뿐 아니라, 또한 인간들이 대인이 되고 소인이 되는지의 구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인이 되는 길도 바로 이러한 본심의 회복에 있다. 맹자는 본심에 따라 사는 삶은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속적인 행복과 상관없이 지금, 여 기, 이 땅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마땅히 지녀할 자존감과 존엄성에 어울 리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나가는 말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참 다운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무척 어렵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 보면 대부분 남들에게 비쳐진 자아를 상정할 때가 많다. 남들에게 의하 여 설정된 삶의 지표나 허상에 자신을 맞추기 위하여 부단히 자신을 학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물음의 방향을 바 꾸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물음을 제기하여야 한 다. 다시 말해 주체적인 물음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 은 나의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바로 인 간의 이상성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이상성 에 대한 물음이 없다. 단지 현재 주어지는 감각적 만족에 행복의 기존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라 기준도 자기로부터 설정된 것이 아니 라 광고나 상업적 수단에 의하여 소비를 촉진하기 위하여 강요된 행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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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아닌지를 반성해야 한다. 

외적인 유혹에 자신을 소모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을 한번 쯤 

멈출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 것이 바로 마음공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성을 잃어버린 자아 는 언제나 불안하다. 그것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의 비극성은 시작부터 끝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어진 시 간과 한계 속에 자신의 삶의 책임감을 절감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 야 할 일’을 자각하고 실천하게 되면, 그 인생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 다. 인간은 비록 유한하지만 스스로 삶을 주재하고 당연의 가치를 실현 시킬 때 인간의 가치는 무한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 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 이 바로 자존감인 것이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 빈곤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의 회 복은 바로 이러한 상대적 빈곤감에서 탈출을 의미한다. 그것은 진정한 주체적 자아의 확립을 의미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 는 것이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맹자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신뢰를 바탕으로 

도덕적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도덕실천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도덕실천 을 통한 이상적 인간의 실현의 문제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고 자가 인간을 파악하는 관점이 현세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 인간의 모습 에서 출발하고 있다면, 맹자는 인간을 보다 이상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인간이 동물보다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지점, 다시 말해 가치적 관점 에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고자와 맹자의 철학적 방향이 갈리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항상 도덕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 을 ‘사단지심四端之心’을 통하여 설명한다. 본성의 구체적 내용적 규정을 사단지심四端之心이라고 하고, 사단지심의 형식적 규정을 성性이라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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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을 통하여 설명한다. 맹자는 사단지심四端之心, 즉 본심은 바로 도덕심 (무한심)을 나타내고, 도덕생명의 본체가 된다. 이러한 무한심을 통해서 도덕적 창조성을 발휘될 수 있다. 인간은 이 도덕심에 의해서 어떤 외부 적 제약과도 관계없이 스스로 도덕적 선악을 판단하고 행위 방향을 결정 하고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완전한 인격 완전한 인간 즉 성인이 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극대화 한 것이다. 맹자가 긍정한 본성本性 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인 생명의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내용을 실현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본성의 성선은 자각심 을 통하여 실현된다. 본심의 자각활동이 없다면 본성의 선성은 드러나지 도 않고 드러날 수도 없다. 따라서 본성은 심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 니기 때문에 마땅히 맹자의 공부론은 자각심을 배양하는 양심養心으로부 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말미암아 본심의 자각 작용을 잃게 되었으며 그것으

로 인생이 타락하게 되는 과정을 가게 되는 것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본심이 스스로 자각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외물의 유혹에 쉽 게 빠져든 것이다. 수양의 요점은 외물에 혼매昏昧되어 드러나지 않은 본심을 다시 한 번 발현시키는 것에 있다. 이러한 본심의 발현은 강한 자기 긍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 도 바로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금 확 인하는 작업일 것이다.   

우리가 맹자의 마음공부를 통하여 다시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존감의 회복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고 끊임없이 ‘상대적 빈곤감’을 조장하고 있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 서 소비를 촉진 시키지 위한 한 방법일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소 비’를 통한 자기만족이라는 허상 속에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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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참다운 나’를 확인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마음공부를 한 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차적인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착각 한 것이 바로 모든 잘못의 근원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잃어버린 애 완견을 찾고자 하는 그 애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본심’을 찾아 가야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자기 존중감이 있을 때 삶의 책임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를 스스로 다시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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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的心灵修炼

투 고 일 2015년 10월 26일

심 사 일 2015년 10월 29일

게재확정 2015년 11월 10일

- 寻找失去的自尊之路 -

朴勝顯 (圓光大學校)

本文以孟子 “性善论” 为切入点, 以人之自尊、尊嚴为中心, 论述孟子思想中的‘心灵’修炼的问题. 孟子系统地论述了人的本性, 明确提出了“性善”论的观点, 使人生价值能当下在各人生命之内生根, 由此而人格尊严、人类互信互助, 都有了不可动摇的基础. 告子提出「生之谓性」的著名論點。他认为,人生來的本性是一个体存在时所本具的种种特性。可是孟子反对告子生之谓性的说法,不满意对以现实的生理自然之性为性。孟子也知道人之自然欲望之为人所本有,但又认为那些并不能称为人性,可以知道孟子看人,并不是从现实的经验的观点看,而是理想的,从道德实践的观点来看人。孟子认为只有在能作道德实践处,才显示出人之所以为人的价值,若人而不行道德,则虽是人,在价值上也同于禽兽。

孟子认为既然人性本善,那么道德修养就只须切己自反,发明本心即可。所以,成仁之道关键在于个体自己的主观努力。只有意识到了自己所具有的善知良能,并有意识地去努力“求”之,才能够“得”之。而这种“得”并非获得了自己所没有的东西,它不过是将自己本身的“善端”开发光明出来了而已。可见,孟子所主张的道德追求是一种“内求”,而不是一种“外求”。所以他要求我们寻找自己失去的本心-四端之心。恢复本心的‘心灵’修炼就是自我肯定,恢复失去的自尊之感。

關鍵語 : 孟子, 性善, 心灵修炼,自尊之感, 仁義內在, 本心

박승현 e-mail: psh3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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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 성선설과 성악설

제240호 철학과의 만남 :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 성선설과 성악설

대순진리회 교무부 김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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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사상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良心)이고,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01고 하였다. 이를 보면 대순사상의 입장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도전님께서는 “완전한 도인이 되면 원래의 천성과 본성으로 돌아가 인간의 양심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욕심도 사심도 없으며 유리알 같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수도를 한다는 것은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02라고 하시며 본성을 회복하는 길이 곧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임을 말씀해 주셨다.
  여기서 인성, 양심, 천성과 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개념들이 어떤 맥락에서 쓰인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기존의 본성에 대한 논의들을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인가 아니면 악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철학적 사유가 시작된 이래 오래도록 회자 되어온 질문 중 하나이다.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는 문제가 철학사에서 왜 중요하게 다루어졌을까?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선설



  인간 본성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의 연원은 전국(戰國)시대를 살았던 맹자(孟子, 기원전 372?~기원전 289?)로 거슬러 올라간다. 맹자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기 위해 왜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그가 성선의 이유로 들었던 우물에 빠지는 아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서 측은(惻隱)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동네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명예를 구해서도 아니며, (잔인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서 그러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점을 살펴본다면 측은해 하는 마음[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사단(四端)을 가진 것은 마치 사지를 가지고 있음과 같다.03



  맹자는 인간이 느끼는 4가지 감정, 즉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서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인간 본성의 구체적인 내용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4덕(四德)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기는 측은한 마음이었다. 맹자는 이러한 선한 본성이 인간에게 누구나 내재해 있어서 선천적으로 선한 것을 판단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을 판단할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을 양지(良知)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양능(良能)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 성선의 본성을 확충하여 종국에는 누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선에 대한 생각이 맹자에 의해서 처음으로 창작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최초의 사상가이기 때문에 그의 성선론은 후대에도 끊임없이 거론된다.





성악설



  하지만 모든 사상가들이 성선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성선설과 대척점에선 인성론은 맹자보다 70여 년 뒤에 태어났던 순자(荀子, 기원전 298?~기원전 238?)에 의해서 정립되었다. 맹자와 순자는 구현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맹자의 이상이 성선을 토대로 한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에 있었다면 순자는 규율과 형식을 통한 예치(禮治)의 방도를 찾으려 했던 인물이다.04 이러한 차이는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시야에도 양보할 수 없는 견해차를 낳았다.

  하지만 순자의 성악설도 악만을 쫓아가는 본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본성을 쫓아가는 결과로서 악이 초래된다고 본 것이었다. 그가 말한 인간의 본성은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한 곳에 가고 싶고, 힘들면 쉬고 싶고,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는 싫어하는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05 그래서 본성대로만 쫓아가면 인간사에 반드시 분쟁이 발생하게 될 것이니 예법에 맞는 교육이 있어야 사람이 도리에 알맞게 다스려진다는 것이 순자의 주장이었다. 이것은 인간을 법으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명분으로 활용되어 후대에 이사(李斯, ?~기원전 208)나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80?~ 기원전 233?) 등의 법가 사상가에 계승되었다.
  순자가 말한 인간의 이기심은 분명히 인간의 모습에서 부정할 수 없는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일면 타당해 보이는 순자의 견해로 맹자의 주장이 온당하게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맹자가 바라본 본성 개념은 순자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순자가 이해한 인간의 본성은 생물적 본능과 가까운 것이었던 반면 맹자가 설명한 인간의 본성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속성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동물이나 여타 생물과 차별이 되는 인의(仁義)라는 사회 윤리적 속성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본성 개념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맹자의 성선설이 비판받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맹자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고자(告子, ?~?)가 인간의 본성을 식욕이나 성욕처럼 타고난 생리적 본능으로 이해하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던 것도 본성 개념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리해보면 맹자의 성선설의 입장에는 인간의 생물적 본능에 관한 내용이 빠져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고유한 속성은 무엇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이 숨어있는 것임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러한 성선설이 지닌 의미는 후대에 이어지고 재해석 되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본래의 목적을 환기하게 되었다.





후대에 이어진 성선설



  맹자의 성선설은 중국 철학사에서 오랜 기간 침묵해 오다가 오히려 불교사상 속에서 인성론의 토대로 받아들여지는 사건을 겪었다. 중국은 동한(東漢) 시기 말엽부터 인도 불교의 거대한 지류에 서서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정치적 혼란기인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에 대응하는 불교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갔는데, 불교도들은 이를 위해 중국 전통문화를 불교사상과 결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맹자의 성선설을 불교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인물이 남북조 시대의 불교 사상가 도생(道生, ?~434)이었다.
  도생은 현장(玄奘, 602?~664) 이전의 최대의 불교 번역가로 알려진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의 문하에서 4철(四哲)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핵심 사상은 인도 불교의 열반불성(涅槃佛性)사상과 성선설을 결합한 열반불성론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모두 선하다는 맹자의 이론 위에 사람마다 모두 열반에 필요한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불교적 관점을 융합한 것이었다.06 인간의 본성이 모두 선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요순처럼 될 수 있다는 맹자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중생들이 성불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 따라 그는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기에 또한 모두 열반에 들 수 있다.”07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을 통해 누구나 이상적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성선설의 본래 목적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맹자의 성선설이 후대 사상가에게 계승되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송명대(宋明代)에 들어서다. 주희(朱熹, 1130~1200)와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은 성선설의 논의를 각각 자신만의 방법으로 더욱 세밀하게 가다듬었다. 주희는 인간의 생물적 본능을 순수한 본성에 포함 시키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곧 천리(天理)와 같다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였고, 인간이 선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혼탁한 기질에 오염되어 본래의 성이 발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08 따라서 주희는 성을 천리와 같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에 의해서 오염된 기질지성(氣質之性)의 둘로 구분하고 인간이 선하지 못한 이유를 기질지성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본연지성이야 말로 하늘로부터 부여된 순진무구한 가치임을 내세웠다.
  이와는 다르게 왕양명은 맹자가 말한 양지와 양능의 개념에 주목하며 인간의 마음에는 하늘로부터 부여된 천부적인 선한 마음이 있다고 하였다. 그에 따라 인간에게 내재한 천리를 도덕적 판단 능력인 양지로 보았고 이것의 작용을 양심이라고 보았다.09 양명과 주희의 주장은 선한 가치를 마음으로부터 찾을 것인가 아니면 본성으로부터 찾을 것인가에 대한 차이를 갖지만 순선한 인간의 가치가 하늘의 천리로부터 부여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인간의 선한 마음이나 본성에 천리와 같은 형이상학적 근거를 찾게 됨으로써 인간은 누구나 선한 삶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처럼 도생과 주희, 왕양명으로 이어진 성선설의 논의는 인간이 도달해야 할 가능성을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찾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살펴본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를 보면 앞서 대순사상에서 언급된 인성과 양심, 천성과 같은 개념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성선의 관점에서 인성은 동물적인 본능이 아니라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속성과 같은 것이므로 인의예지와 같은 인륜 도덕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천성의 개념은 인륜 도덕의 선한 가치가 하늘로부터 부여된 것임을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천성이라고 할 때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본성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선한 본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양심은 바로 이러한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선한 본성이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에 따라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인 양심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우리가 지켜나가고 회복해야 할 것이 본성이라는 것을 밝혀주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깨끗하고 맑은 인간 본래의 성품을 회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완전한 도인으로 거듭나는 길이며, 수도의 목적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이어진 선한 본성이 내 안에 숨 쉬고 있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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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진리회요람』, p.19.
02 《대순회보》 12호, 「도전님 훈시」 (1989.3.17).
03 『맹자』, 「공손추(公孫丑)」上,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 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忧惕惻隱之心, 非所以內, 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 (전통문화 연구회의 성백효 번역을 참고하였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하였음.)
04 홍일립, 『인간 본성의 역사』 (서울: 에피파니, 2017), p.125 참조.
05 『순자』 「영욕(榮辱)」, “凡人有所一同, 飢而欲食, 寒而欲煖, 勞而欲息, 好利而惡害, 是人之所生而有也.”
06 황윈밍, 「도생의 열반불성론에 대하여」, 『동서사상』 7 (2009), p.289 참조.
07 『묘법연화경주소(妙法蓮花經注疏)』 「비유품(譬喩品)」, “一切衆生莫不是佛, 亦皆泥洹.”
08 진래, 『주희의 철학』, 이종란 외 옮김 (서울: 예문서원, 2013), p.230 참조.
09 정인재, 『양명학의 정신』 (서울: 세창, 2014), p.182 참조.

교회 성폭력 가해자 66%가 목사·리더 그룹…"성폭력에서 안전한 공간 없어, 성 불평등 교회 구조 개선해야" < 교계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교회 성폭력 가해자 66%가 목사·리더 그룹…"성폭력에서 안전한 공간 없어, 성 불평등 교회 구조 개선해야" < 교계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교회 성폭력 가해자 66%가 목사·리더 그룹…"성폭력에서 안전한 공간 없어, 성 불평등 교회 구조 개선해야"
기독교반성폭력센터 2021년 상담 통계 발표 "가해자 처벌 않고, 피해자에게 책임 돌리는 폐쇄적 분위기 여전"

기자명 나수진 기자
승인 2022.03.04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기독교반성폭력센터(기반센)가 지난해 접수한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건 중 가해자가 목사·리더 등인 경우가 6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반센이 2월 25일 발표한 '2021년 상담 통계'에 따르면, 교회 내 성폭력 45건 중 30건이 리더 그룹에서 발생했다.

가해자 중에는 담임목사가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부목사가 8명, 선교 단체 리더가 6명, 신학대학교 교수가 3명이었다. 교회 내 성폭력은 주로 리더 그룹과 일반 교인 사이에서 발생했다. 목회자(리더)와 교인 사이에 21건, 목회자(리더) 사이에 3건, 직장 내(교회·신학교 등 목회자·리더·직원과 직원 사이) 7건이 발생했고, 일반 교인이 성폭력을 가한 경우는 12건, 기타가 2건 있었다.

지난해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 접수된 교회 내 성폭력 사건 45건 중 66%가 담임목사 등 리더 그룹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 내 성폭력은 교단을 불문하고 발생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6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5건, 기독교대한감리회 4건, 한국기독교장로회 3건,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3건,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2건, 기타(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 호헌, 독립 교단) 4건으로 집계됐다. 교단 밖 성폭력은 선교 단체 5건, 학교(교단 신학교 제외) 2건 등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2018년부터 기반센에 접수된 사건 262건 중 남성 피해자는 4명이다). 피해 당시 연령은 20대인 경우가 22건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4건, 미상 3건, 미성년인 경우도 6건에 달했다. 특히 올해는 40대 이상 피해자가 10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1명)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피해 유형으로는 강간(11건)·성추행(15건)·불법 촬영 피해(3건) 등이 있었다.

교회 내 성폭력은 대부분 '이단'이 아닌 기성 교단 안에서 발생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반센 박신원 실장은 교회 내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성 불평등한 교회 문화'를 들었다. 그는 교회 권력이 여전히 남성·목사에게 집중되고 있다면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교회 내 성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실장은 2월 2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2018년 이후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성폭력이나 성적 권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반면, 한국교회는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성폭력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성폭력 문제를 회피해 온 것도 문제라고 했다. 교회 안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도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거나, 별다른 절차 없이 복귀하게 만드는 등 2차 가해도 여전하다고 했다.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교회의 폐쇄적인 분위기도 문제라고도 했다.

교회 공동체가 성평등을 실현하고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박 실장은 "성폭력 피해를 개인화하거나 본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공적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이때 교회 공동체는 피해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가 연대감을 누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이 해결된 이후에도 피해자가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계속 꾸려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 박신원 실장은 한국교회가 여전히 성폭력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단지 일부 목회자들의 일탈로 보지 말고,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직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신원 실장은 "여전히 교회 내 성폭력이 특수한 극소수의 일이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은 없다. 교회 내 성폭력은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실제 일상 속에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교회는 아직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만일 교회 안에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을 때는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문 기관 혹은 신뢰할 만한 지지자에게 피해 경험을 공유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