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16] 【지구평화학】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

 16] 【지구평화학】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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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코로나19, 환경 재난, 대규모의 전쟁 등으로 인해 지구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는 상태가 되었

다. 모든 것은 인간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전쟁은 인간 자신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과학, 자본, 이념 등이 총동원되어 자기 파괴로 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아마도 세계대전이 원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인간 간의 증오에 의한 전쟁을 막는 일이다. 물론 환경재난 등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지구 붕괴의 위기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이 지구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그 럼에도 지구평화학이 시급한 것은 자기 파괴를 스스럼 없이 자행하는 몰인격적 무분별 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존적 인간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 무시간적으로 발생한다. 지구평화학은 모든 위기를 막는 지구적 차원의 지혜를 발산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구평화학은 현대문명에 필 수적이다. 그리고 그것의 구조는 종교평화학이다. 즉, 폭력이 극대화되는 세계의 아노미 상태를 자기반성을 거친 종교평화학으로 새롭게 길을 놓아야 한다. 코로나19의 고통의 세계화에 대한 긴급한 진단과 처방을 위 해 도덕과 윤리를 소환하는 시점에서 동시에 또한 지구평화학이 요청된다. 이를 위한 종교평화학 구축을 통 해 세계의 분쟁만이 아니라 이성과 이성의 과잉으로 초래된 이 문명에 대해 새로운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기존의 인문학적 종교연구, 사회과학적 평화연구를 융합하는 것이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평 화인문학을 개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결국 종교의 ‘오래된 새길’에서 모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 아와 우주가 합일되는 영성을 창구로 하여, 사회와 지구, 나아가 우주로 향하는 열린 인식을 종교 그 자체 의 본질을 기반으로 현실 사회에 대응 가능한 종교평화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지구평화학, 평화인문학의 기반 구축에는 종교평화학이 가장 핵심적 토대가 될 것이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지구위기와 종교의 복귀

Ⅲ. 종교평화론에 대한 담론

Ⅳ. 지구평화를 향한 종교평화론

Ⅴ.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Ⅰ. 머리말

지구의 미래는 있는가? 지구 온난화, 코로나19 팬데믹, 끊임없는 전쟁 등 지구는 질서보다도 무 질서가 증가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욕망에 의해 뒷받침된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지구의 한계를 더 욱 명확히 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정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 개개인이 결정하고, 실천해 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세계는 공동의 의지로 이 난국을 해결해 나가지 않는 한 결코 누가 구원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현실적 삶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폭력과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

상 무기의 발달로 인해 한 순간에 지구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익과 감정에 위배되면 상대를 절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야만적 본능은 인간만이 발현되며, 전쟁은 그 과 정이다. 전쟁만큼 인간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일은 없을 것이다. 21세기는 과학과 자본에 힘입어 본 격적인 대량살상이 이루어졌다. 

1, 2차 세계대전은 물론, 중국 내전, 6·25전쟁, 남북베트남 전쟁,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미국과 이라크 전쟁 등 이 외에 수없는 국지전은 손으로 헤아리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1~2억명이 20세 기 전쟁에서 죽었다고 한다. 강인철은 1999년도의 세계 분쟁 45건이 무력충돌 가운데 24건이 종교 분쟁으로 53.3%에 이른다고 한다. ) 이 외에도 언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종교분쟁이 아닌 전쟁에 도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쟁과 종교는 유사 이래 서로 불가분 의 관계로 그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8 세계 군비 지출 동향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국가의 군비 지출액이 1조 8220억 달러(2,122조)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전세계 1인당 군사비 지출은 평균 239달러에 해당한다. ) 이는 더욱 늘고 있다. 첨단무기는 갈수록 살상성능이 강화된다. 국가와 자본은 결탁하여 전쟁마저도 외주화 하는 일이 일어난다. ) 이처럼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지구는 과 연 희망이 있는 것일까. 이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해야할 논리를 제공해야할 학문마저도 자본의 의 지에 눌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에게는 희망을 걸 수 있을까. 필자를 비롯한 종교인, 학자들은 2015년부터 ‘종교폭력-평화-국가’의 관계를 중심 테마로 하여 토론하는 레페스(REligion and PEace Studies, 종교평 화연구)포럼을 개최해왔다. 그 목표는 ‘종교평화론 구축’이다. 그 토론의 성과를 묶어 종교 안 에서 종교를 넘어: 불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2017),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2020)를 출판하 고 종교평화론 담론(가제)을 금년 4월에 출판할 예정이다. 세 번째 공저는 한일 간에 종교인, 학 자들이 양국을 오가며 토론한 내용이다. 금년에는 ‘아시아 종교평화학회(Asian Association For Rel igion and Peace)’를 출범시킬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본 연구도 이 선상에 놓여 있다. 지구적 평화의 희망을 결국 다시 종교로부터 찾고자 하는 열망인 것이다. 

Ⅱ. 지구위기와 종교의 복귀

후기마르크스주의적 문학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에서 계몽주의 이래 

신의 죽음을 기획했던 이성은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신의 임시 대리역할을 했던 모든 지적 현상 이 담당했던 사회적 역할은 종교가 짊어졌던 이념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종교는 세속화의 길을 통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무의 미해진 포스트모던사회에서 ‘전능한 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 하여, 자아의 증 폭과 폭주로 무질서해진 현대에 다시금 종교를 소환시키고 있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으로 서의 종교는 여지없이 비판하지만, 종교가 연마해온 실천적 삶, 존재의 혁명을 추종하는 종교의 

‘실천적’가치를 재조명하면서 현대문화에 대한 해독제를 종교에서 발견하고 있다. )  이에 “종교적 믿음이 사회 질서의 실존을 위한 일련의 근거를 제공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진다

면, 종교적 믿음은 정치의 비판자로서 진정한 목적을 자유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6)라고 보며 종교를 현실로 이끌어 내고 있다. 인간의 주체성에 담긴 오만은 신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예 들 들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했을 때, 미국은 자신들의 동맹들과 함께 1991년 1월 이 라크를 공격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전 세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TV연설에서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개시한다”고 했다. 신은 이 전쟁에 개입하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 도 그는 신의 대리자임을 내세워 전쟁에 개입했던 것이다. 

이후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등 주권을 가진 국가에 무력으로 침입하여 수많은 백성을 살상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나 테러를 일삼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에 일차적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 상황을 분석해보면, 이 러한 국가 간 분쟁이나 테러리스트를 키운 세력은 미국이기도 하다. 현실의 한 면만을 가지고, 힘 센 나라가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며, 전쟁을 전쟁으로 막으려고 하는 악순환을 세계는 눈뜨고 바 라보아야만 한다. 전쟁은 무의미하다. 역사 이래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실 제 희생자들은 전쟁터의 힘없는 군인들, 노약자, 여성, 어린이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이유도 모른채 화염 속에 던져야 했다. 

여기에 새삼스럽게 통계를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군대는 인간을 죽이 기 위한 조직이다. 어떤 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국가와 전통에 속해 교육을 받고, 적을 인정 하고 유사시 전쟁터에 나간다. 과연 개인의 의지는 있는 것인가. 국가와 자본은 전쟁을 수행하는 양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과 무기를 제공하는 한, 군대는 존속한다. 지구의 현실적 위기는 갈등 과 분열, 폭력과 전쟁이다. 

종교는 여전히 삶의 유용한 요소다. 정진홍은 종교란 “존재론적 차원에 이르는 모든 물음을 수 용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해답을 수렴하면서, 바로 그 존재론적 차원으로부터 표상화 되는 물음과 해답의 상징체계이다” )라고 한다. 과거처럼 종교의 사회적 지배나 역할이 줄어든 현 재에도 종교는 다양한 형태로 삶에 침투해 있다. 정진홍이 말하는 존재론에 대한 물음에 답을 얻 고자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개인적 종교를 갖는다. 테리 이글턴 또한 “종교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강력하고 끈질기며 보편적인 상징형식이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와 개별적 일 상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연결시켜주었던 상징형식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라고 하며 종교의 복원 을 주장한다. 종교는 상징을 상징으로 해석하지 않고 사실로 해석하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과 갈등 이 초래되었다 )고 한다.  과거에 집착된 종교를 역사로 보지 않고, 내적 초월의 세계와 일상의 삶 을 잇는 가교로 보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위기의 시대에 종교가 다

시 복원된다고 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종교적 차원에서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물음을 종교는 지속적으로 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한계상황이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집단적 차 원,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종교는 이 세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구축하는 데에도 기여해 왔다. 윤리나 도덕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인류가 현재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질서의 원천을 종교로부터 다시 얻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계를 통합하 고, 새로운 가치를 주조해냄으로써 불투명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종교가 소 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Ⅲ. 종교평화론에 대한 담론

세계의 많은 지성들은 종교와 평화의 관계에 대한 언설을 내놓고 있다. 특히 평화학의 창시자 

요한 갈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에서 전쟁과 같은 폭력을 직접적 폭력, 전쟁이 없는 상태 의 간접적 폭력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본다. 전자가 없는 상태가 소극적 평화, 후자가 없는 상태가 적극적 평화이다. 그리고 이 폭력들의 이면에는 문화적 폭력이 존재한다. 이는 “모든 상징적인 것 으로 종교와 사상, 언어와 예술, 과학과 법, 대중 매체와 교육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 다. ) 그 중에서도 종교는 문화적 폭력의 제1순위에 놓여 있다. 

요한 갈퉁은 종교는 초월적 목표에 초점을 두는 강한 측면과 대중의 기본적 욕구 충족과 같은 현세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부드러운 측면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이 각각 문화적 폭력과 문화적 평화에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종교의 강한 측면, 즉 형이상학적 세계나 이를 담보로 한 권력적 측면이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갈퉁 은 종교의 생명 중시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간디 사상 속의 생명의 통합(unity-of-life)과 수단과 목적의 통합(unity-of-means-and-ends)

의 원칙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 원칙들은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라는 것과 수단과 목적을 소중히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소중히 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교훈을 수용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 갈퉁은 서양의 종교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이처럼 동양 종교들의 가르침 속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찾아낸다. 이병욱은 문화적 폭력에 대한 처방으로써 불교의 공(空)사상은 모든 이데올로기 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불교에 대한 집착마저 벗어 날 때 진리의 눈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집착하지 않는 유 연함과 개방성이 열리는 것이다”  )고 한다. 수행의 관점에서 평화와 관련한 동양종교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울리히 벡의 언설 또한 이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그는 “종교란 수백 년 동안 거대한 초국적 장벽 쌓기 또는 허물기를 전문적으로 수행한 건설재벌이다”라고 하며, “종교는 서로에 대항하거나 서로 힘을 합쳐 종족, 민족, 아니 대륙을 넘어 장벽을 헐거나 세운다” )라고 비판한 다. 종교적 보편주의들 간의 충돌은 폭력을 양산한다. 이에 민족, 종교, 폭력의 상관성이 19세를 관 통하는 특징이었고, 20세기에는 세계대전을 통해 그 정점에 도달했다. 따라서 현재의 글로벌 위험 사회에서는 “평화가 진리를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류의 존속이 결정된다”며, “종 교는 세계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극한사회에 이른 인류는 신자유주의의 통로를 종교의 보편적 가치로 재포장해야 한다. 폭력이 

극대화되는 세계의 아노미 상태의 타개를 위해 약자나 소수자 문제 등에 종교적-세속적 경계를 넘 어선 협동을 통한 일상적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그 유용성을 찾는다. ) 종교가 지닌 내적 연대, 나 아가 열린 종교의 외적 연대로까지 확장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 종교의 문제는 자기중심적 선교, 포교로 인해 갈등을 일으킨다. 밖으로도 배타적 분열을 일 으키는 한편, 안으로도 분리되어 진보와 보수, 전통과 혁신 등의 파벌로 나뉜다. 당연히 폭력이 배 태될 수밖에 없다. 밖으로는 정의의 전쟁론인 성전(聖戰)을 일으키며, 안으로는 권력을 향한 교단주 의가 횡행한다. 여전히 강한 뿌리가 남아 있긴 하지만, 종교의 권력화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질적 으로 해체되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다.

해방신학은 남미에서 1960년대 말부터 정치적 억압과 경제 수탈에 대항해 신학이 사회에 참여하

여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개진되었다. 60년대 전반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사회구조를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정, 위르겐 몰트만 등 신학자 들이 나치 독일과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하고 나온 기독교 복음의 사회적 책임 주장, 마르크스주의 적인 경제사상 등이 배경이 되었다. 해방신학에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정치, 경제적인 폭력에 대 항하는 평화의 논리로써 대화, 비폭력, 중재 등의 평화적 수단이 들어 있다. ) 여전히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앞에 해방신학은 더욱 요구된다. 

참여불교 ) 또한 20세기에 일어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불교계를 말한다. 불법승 삼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개입한다. 스리랑카 내전에서 불교계의 중재 와 화해의 역할, 일본 내 현대적 재가불교 단체들의 세계평화운동, 원불교와 정토회를 비롯한 한국 현대불교의 평화운동은 등은 매우 적극적이다. 오늘날 해방신학과 참여불교는 종교의 무정부적 차 원의 지평을 기반으로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폭력적 상황과 그 하부 구조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갈등의 사회구조를 뛰어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Ⅳ. 지구평화를 향한 종교평화론

지구평화를 위한 종교평화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떤 측면에서 종교는 지구적 차원의 갈등구조

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종교가 가진 다양한 가치는 지구를 실제로 통합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종교를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종교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에 성 공할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레페스포럼은 이처럼 거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다. 이러한 담

론이 가능한 것은 한국사회가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이다. 독점적 종교가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류 미래에 희망을 선사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노마드(nomad) 사회에서 지구 내에 영향력을 가진 종교들과 한반도 자생 종교들이 때로는 연합하여 사회문제 해결을 시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고무적이다. 최근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환경연대 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한반도가 고통 받는 곳에서는 종교의 일상적인 연대가 일어난다. 그렇다 면 타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떠한 측면인가? 종교의 심층적 차 원의 세계로부터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차원, 나아가 세계적 차원으로까지 종교평화론은 확장 가 능할까?

필자는 무엇보다도 종교가 가진 최초의 속성, 예를 들어 세계의 근원과 소통하는 통찰적 예지로

써 인류가 형제·자매라고 하는 하나의 가족, 또는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가르침은 그 어떤 혁명보다도 근원적이며 보편적이다고 판단한다. 현재 평화는 이러 한 종교적 세계관이 실질적으로 투영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다. 이는 종교가 지구적 차원에서 근본적 평화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이 아니다. 종교가 가진 인간적 연대는 그렇 다면 지구적 평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첫째, 정의의 전쟁론에 대한 대응을 위한 종교평화론이다. 

종교에서의 정당한 전쟁론은 동서 양 세계에서 진행되었다. 불교는 정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 은 불가피할 경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 ) 그것은 불의와 악에 대항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그러 나 근본적으로 석존이 직접 부여한 불살생계에 의해 살상이 동반되는 전쟁은 허용되지 않는다. 석 존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가톨릭에서는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불가피한 정당한 전쟁론이 주장되었다. 이러한 논리 또한 ‘나를 박해하는 자를 사랑하라’는 예 수의 언설에 비추어 본다면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성전론이 가장 횡행하는 지역은 이슬람권이다. 지하드는 신앙의 원리를 위한 투쟁이었지

만, 이슬람 원리주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하드 또한 이슬람 신자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경우에 전쟁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성전 혹은 정당한 전쟁론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역사를 통해 전쟁은 보복을 위한 악순환이 되고 있으며, 실제 큰 피해자는 전쟁 당 사자보다도 대부분 약자들이다. 역사적으로 정당한 전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는 종 교 근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념에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집착, 종교교단주의의 내적 구조화, 경전의 몰역사적이고 폐쇄적인 해석 등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종교평화론의 역 할이 있을 것이다.   둘째, 적극적 평화구현을 위한 감폭력의 종교평화론이다.

이는 종교평화론자 이찬수의 문제 제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평화와 평화들에서 요한 갈퉁 의 ‘적극적 평화’는 이상적 질서의 기독교적 표현인 ‘하느님 나라’, 유학에서 말하는 ‘대동 (大同)’, 한국 신종교들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개벽(開闢) 사상의 구조와도 비슷하다고 한다. ) 하느님 나라나 개벽은 적극적 평화에 대한 종교적인 표현 혹은 번역들이라고 본다. 개벽의 구체적 내용을 적극적 평화라고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는 종교 연구는 평화 연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평화학에서의 평화는 종교적 이상과 상통한다고 한다. 

이찬수는 평화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 이루어지며, 과정으로서의 평화 역시 평화라는 목적에서 

온다는 평화학의 기본 구상은 종교적 혹은 신학적 구조와 상응한다고 본다. 또한 종교적 혹은 신 학적 언어를 세속화 시대에 어울리도록 변형시키면 평화학이 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평화학은 ‘세속화한 시대의 신학’, 혹은 종교적 세계관의 ‘세속적 변용’이라는 사실을 밝힘고자 하는 것이다. ‘평화는 종교의 본질이고 이상’이라는 근원적 사실을 주장한다. ) 그는 평화학과 종교적 이상 모두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평화 개념을 중심으로 평화학과 종교가 결국은 평화를 지향하고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평화는 폭력 줄이기, 즉 감폭력(減暴力)의 과정’이라는 지론을 통해 종교평화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셋째, 보편윤리 제정에 종교평화론의 역할이다.

세계종교자평화회의(WCRP)는 1970년 함께 사는 세계를 위해 행동해야할 내용을 7개 항으로 정 리했다. 공동의 인간성, 공동의 안전, 상호의존성, 공동의 미래, 공동의 삶, 포괄적 교육, 희망과 헌 신이다. 이 내용은 세계보편윤리를 확립하는 기초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유네스코 철학· 윤리국에서는 보편윤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997년 파리에서 ‘보편윤리를 위한 개념적, 철 학적 기초’를, 1999년 한국에서 ‘보편윤리와 아시아 가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러 한 논의는 지구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급한 과제이다. 또한 지구 전체의 헌법 제정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보편윤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모두에 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립해야 된다. 특히 다양한 문화, 국가, 민족, 종교들의 특수한 가치 를 넘어서 이들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보편윤 리는 전체의 공동 이익과 함께 개인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경우에 그 당위성이 성립한다. 이를 위 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포용하는 초월적인 가치에 서 있는 종교성에 기반 할 필 요가 있다. 따라서 종교적 가치에 기반한 지구 차원의 평화를 위한 논의가 요구된다. 

넷째, 평화인문학, 녹색평화학과 종교평화론과의 관계 정립이다.

최근 서울대학교 평화인문학단에서는 평화인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지금

까지 사회학의 영역이었던 평화학을 인문학의 영역으로까지 깊숙이 끌어들인 것이다. 홍정호 또한 「한반도 평화인문학의 기초 과제로서의 종교평화학 형성 방안 연구」 )에서 기독교의 신학(선교)적 차원에서 한반도를 필드로 종교평화학을 시도하고 있다. 평화인문학에서는 지구의 실질적 평화구 축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근원적이며 다차원적인 대응과 치유, 평화형성을 지향 하는 실천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 차원과 구별되는 삶의 종합적 차원을 고려해야 한

다.” )고 한다. 사실 이러한 차원은 이미 일상의 종교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조, 제도 이 전에 삶에 깊이 침윤된 종교를 근간으로 평화학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아가 종교평화론의 구체적인 모습인 녹색평화론적 관점이다. 녹색평화는 환경과 평화, 생태적

인 것과 평화의 관계를 설정하고, 탐구해 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환경과 사회의 공존과 화해를 지향하는 것이 동원된다. 이렇게 될 때, 평화론의 실질적인 개방인 동시에 지구 내 모든 존재의 공존이 가능하게 된다. 녹색평화는 생태적 질서에 기초한다.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관계성’의 영역이 바로 녹색평화의 지향점이자 목표이다. 타자를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타자가 곧 나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녹색평화론의 궁극인 종교평화론의 세계인 셈이다. 종교의 이상이 곧 전 지구적 차원의 모든 존재의 이상이자 현실이 되는 것이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시도되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던 종교평화론은 지구가 한계상황에 이른 지금에야 비 로소 조명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종교 자체의 집단적 속성이나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경원시되고, 논의의 무용함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종교 스스로도 진화하여 자신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 지구적 차원의 평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오고 있 다. 이 점을 박충구는 기독교윤리사 시리즈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해방신학이나 퀘이커의 평화주의 등을 통해 그들이 고난 속에 걸어온 평화노선을 보여주고 있

다.23) 이슬람의 영성주의, 불교의 수행담론 등은 이에 못지않은 일상의 평화를 지향하며, 사회와 지구적 차원의 평화 구축을 위한 이론과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탈종교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를 미처 평가하지 않았을 뿐이다.

종교평화론은 지구의 마지막 남은 평화론이 될 것이다. 양육강식을 강요하는 인간의 무지와 무

명의 한계를 근본으로부터 파헤치고, 현실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통한 연대가 가능하다면 종교평화론은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교의를 넘어서 종교다원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종래 논의되었던 것처럼 종교 자신의 입장에서 개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다원주의가 하나의 기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종교신다원주의’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두 번째는 국제정치에 있어 종교의 역할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미얀마 군대의 

쿠데타로 비폭력 저항에 가담한 민중들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UN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강 대국 중심의 논리는 지구의 평화는 물론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한 민중살상을 막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택적 개입에만 신경 쓰고 있다. 종교 개개의 힘은 약하지만, 인권이나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연대는 언제든 가능하다. 실질적인 정치의 힘을 종교적 연대 를 통해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필자는‘생명평화 종교연대’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지구의 한 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종교권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연합(UR, U nited Religions) )창설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다. 특히 종교는 이미 국경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실질 적인 평화적 조직이자 집단이다. 인류가 이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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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구윤리학】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 허남진*

 15] 【지구윤리학】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 허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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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본 연구는 지구위험시대의 새로운 지구윤리(earth ethic)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목표가 

있다. 지금의 지구위험시대는 우리의 경제 체제뿐만 아니라 세계관에 의해 초래됐다. 펜데믹, 기후위기를 통 해서 인간은 지금까지 인간의 번영이 지구를 황폐화[지구학살]시키면서 이룩한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기 존의 윤리체계는 인간중심적이다. 인간의 경우는 개인의 권리나 이익면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 이상으로 여겨졌으며, 또 개인을 그렇게 대우하는 사회야말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간주돼왔다. 인류세로 지칭되 는 지구위험시대에 인간이 자연을 조종하고, 억압하는 행위를 전통전인 윤리 개념을 기준으로 비윤리적인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위험 문제는 인간중심주의로 가득 찬 인문주의 적 윤리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윤리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자살, 살인 등과 같은 문제 들은 기존 윤리적 전통으로 풀어낼 수 있지만, 지구의 생명체계가 멸종되는 생명살해와 지구살해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태적 죄’교리 신설을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 다. 이러한 이유에서 레오 폴드는 윤리의 확장을 생태학적 진화의 과정으로 보았고, 토마스 베리 역시 인간 의 윤리학을 생태학적 의무의 파생물로 보고, 포괄적인 공동체의 복리 안에서 인간의 복리를 실현하는 것을 윤리학의 규범으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지구행성 전체의 맥락에서의 윤리, 즉 인간과 인간이 아닌 지구를 포함한 다른 구성원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지구윤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인간과 지구가 공생할 수 있도록 인간과 지구를 통합적 공동체[지구공동체]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구윤리가 마련되어야만 지구를 생존력과 자생력 있는 행성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윤리는 진화한다.

Ⅲ. 새로운 윤리의 요청

Ⅳ.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와 지구윤리

Ⅴ. 지구윤리로서 지구헌장

Ⅵ.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Ⅰ. 머리말

본 발표는 지구위험시대에 새로운 지구윤리(earth ethic)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 목적이 있

다. 지금의 지구위험시대는 우리의 경제 체제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의해 초래됐다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펜데믹, 기후위기를 통해서 인간은 지금까지 인간중심의 번영이 지구를 학살시키면서 이룩한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기존 서양을 중심으로 한 윤리체계는 인간중심적이 었다. 이러한 윤리체계에서 인간 개인의 권리 그리고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 이상적으로 여겼으며, 또 개인을 그렇게 대우하는 사회야말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간주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이 자연을 억압하는 지구를 약탈하는 행위를 인문주의적 윤리 개념을 기준으로는 비윤리적인 것으 로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윤리의 진화가 요청된다. 

인류가 지구 시스템을 교란하게 된 시대가 바로 인류세(Anthropocene)이다. 인류가 지구를 약탈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구시스템의 교란은 지구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며, 지구가 위험에 놓인 지구위험시대의 도래를 재촉했다. 인류세는 인간과 지구의 어긋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 운 윤리를 요청한다. 

이제 지구위험시대를 대응할 수 있는 윤리로 진화/전환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적 위 험 문제는 인간중심주의로 가득 찬 인문주의적 윤리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윤 리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본 발표문의 문제의식 출발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본 발표의 주제는 ‘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이다. 여기서 ‘지구윤리(earth ethi c)’는 지구, 인간, 만물을 포괄하는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의 윤리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사 상 용어로 표현하자면, 만물동포의 윤리이다. 지구윤리를 인간이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지켜 야 할 도리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Ⅱ. 윤리는 진화한다

레오폴드가 윤리를 생태학적 진화의 결과로 보았듯이, 윤리를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것으로 보

았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있는 존 캅 주니어(John B. Cobb Jr.)는 ‘새로운 문명을 위한 다섯 가지 토대’ 중 하나를 관습도덕에 대한 ‘반문화적 도덕’에서 찾고 있다. ) 이들의 공통된 관점은 도덕진화론 혹은 윤리진화론에 있

다. 피터 싱어는 “도덕은 진화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2008년 UN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 선언」을 인류의 도덕적 진화의 사례로 보고 있다.2) 피터 싱어에 따르면 윤리는 진화발전하며 발전 과 더불어 도덕적 고려의 대상 역시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오늘날 도덕적 고려의 대상 이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도 윤리의 진화의 결과인 것이다.3) 

 존 갑 주니어의 ‘반문화적 도덕’은 한국 개벽사상가 이돈화의 ‘반항도덕’논의와 상통한다. 이돈화는 ‘반항도덕’을 “기성의 윤리 혹은 정치체제[政制] 안에서 그 결합을 알아가지고 감정과 의지로써 그 부자연에 대하여 반항함”으로 정의한다. 이돈화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반항은 자연 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되었고, 자연과학은 반항에서 탄생했다. 자연의 이용은 자연에 대한 반항이 며, 반항이 없는 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반항은 인류와 인류 간에서도 전개되 었다. 신시대에 필요한 도덕은 구시대에서 금하는 법으로, 새로운 도덕도 반드시 반항에서 나오는 것이다.4) 인간중심주의적 윤리에 결함이 있다면, 새로운 차원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면, 기존 윤 리에 대한 반항이 제기되어야 한다. 

인류세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윤리 체계는 수천 년 동안 운영되는 지구 전체의 체계인 홀로세(H olocene)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인류가 윤리적 담론을 고안하고 이를 사회생활과 조직행위에 통 합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지구위험시대에 지구는 우리에게 새로운 윤리를 요구한다. 기 존 환경 윤리에는 인간중심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다시 말해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은 주변을 뜻한다. 여기서 주변은 ‘자연’을 의미하며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경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주의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클라우스 미하엘 마이어 아비히(Klaus Michal Meyer-Abich)는 ‘동료세계’의 윤리를 제안한다. 그는 환경(Umwelt)이라는 용어는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과의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동료세계(Mitwelt)’로 대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그들 둘러싼 자연의 동료세계인 동물, 식물, 땅, 물, 공기는 진화의 역사에서 친척이기 때문 이다.5)

이렇듯 자연은 인간의 환경으로만 인지되었고,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관념이 강했다. 일찍이 

김지하가 ‘환경’이라는 용어의 폐기를 주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지하는 생명계과 무 생명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생태 또는 생태학의 근본적 한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에게 생 명은 자기 조직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생활형식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의미하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6) 이제 윤리의 지평이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새로

 

2) 피터싱어, 더 나은 세상: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박세연 옮김,  서울: 예문아카이 브, 2019, 24-27쪽.

3) 김성한, 「도덕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과 싱어의 입장」, 인문과학연구 54,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2017, 

91-92쪽.

4) 이돈화, 「개벽 방식과 삼대개벽」, 신인철학, 일신사, 1963. 

5) Klaus Michal Meyer-Abich, Wege zum Frieden mit der Natur: Praktische Naturphilosophie für die Umweltpolitik(München: Carl Hanser Verlag1984),  p. 99.(몰트만, 희망의 윤리, 대한기독교서회, 2017, 

266-267에서 재인용)

운  윤리정립을 위해서 인간은 지구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전지구적 차원 즉 인간과 인간 이 아닌 다른 구성요소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Ⅲ. 새로운 윤리의 요청

1992년 ‘의식 있는 과학자 연합(Th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인류에 대한 경고(War ning to Humanity)」라는 글을 통해, 더 이상 지구가 파괴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 있 다. 그들은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구의 제한된 능력을 인정해야 하며, 지구에 대한 새로운 태 도전환을 위한 새로운 윤리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다. )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도 지구약탈, 지구학살(geocide)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인간의 윤리학 을 생태학적 의무의 파생물로 보고, 포괄적 공동체의 복리 안에서 인간의 복리를 실현하는 것이 윤리학의 규범으로 자리잡아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더불어 지구행성 전체맥락에서의 윤리, 즉 인 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구성원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지구윤리’의 필요성을 강 조한 바 있다. 

이들이 새로운 지구윤리를 제창하는 이유는 지금의 지구위험은 새로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 지구적 위험 문제를 인문주의적 윤리학으로는 비판할 수도 없으며,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살, 살인 등과 같은 문제들은 기존 윤리적 전통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해도, 지구의 생명체계가 멸종되는 생명살해와 지구약탈 그리고 지구살해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기반 한 것 이었다.  ) 이처럼 지구의 주요한 생명체계들이 지구 안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임계점에 직면 에서 전통적 윤리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기와 땅, 물이 오염되 고, 살림이 대규모로 파괴되는 현상과 그러한 일을 벌이는 행위를 ‘생태학살(ecocide)’로 보고, 이 같은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를 ‘생태적 죄(ecological sin)’로 규정한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적 죄’는 경(敬)을 우주의  관계도덕으로 보는 천도교의 ‘불경물(不敬物)의 죄’, 원불교의 천지은(天地恩)에 대한 ‘배은’과도 상통한다.9)

종교갈등, 전쟁, 빈곤 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은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는 문제의식에서 더 넓은 공동체를 포괄하는 세계 윤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한스 큉(Hans Kün g)과 피터 싱어(Peter Singer)를 중심으로 세계윤리(Global Ethic)가 제안되었다. ) 하지만 현재의 펜 데믹, 기후변화 등은 지구위험시대를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다.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험에 처하고 있다. 지금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 다시 말해 지 구공동체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지구위험시대가 도래했

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는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이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적 지평에 근거해야 한다.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인간중심주의와 존재들의 상대적 자율성의 부인, 지구의 지배, 지구 자원의 약탈, 우주의 영성적 깊이에 대한 무시 등 잘못된 윤리적 전제들과 깊은 영성적 공백 위에서 지구와 우리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윤리 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인간적 이익만아 아니라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의 연대와 경외를 추구하는 책임의 원리와 연민(compassion)의 원리를 제시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를 착취하지 않고 존중 하고 존경하듯, 지구와의 인격적인 관계만이 우리가 지구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11) 

이렇듯 인류세로 지칭되는 지구위험시대에 지구-인간-만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태도 의 전환과 새로운 지구윤리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지구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태도전환을 위 한 새로운 윤리의 정립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류는 지구위험시대를 맞이 하여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과 함께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을 지녀야만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윤리는 ‘지구와 인간, 그리고 비인간 존재들까지도 포함하는 지구공동체 구성원들과 화해를 모색하는 지구윤리’로서,  ‘지구와 인간 그리고 만물의 공생[상 생]윤리’라 할 수 있다. 

발표자는 그 새로운 윤리를 지구와 인간 그리고 만물을 포괄하는 지구공동체의 윤리 즉 지구윤 리로 지칭하고자 한다. 이후에 자세히 논하겠지만, ‘지구공동체’에는 인간을 넘어서는 만물과 자 연의 영역까지도 포함된다.

Ⅳ. 지구공동체와 지구윤리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비인간 타자들과의 책임 있는 관계 맺기로 나아가야하며, 인간 중심적 세계화(worlding)가 야기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종들이 서로 얽혀 함께 만들어 가는 다른 세계화를 제기한다. 특히 해러웨이는 고통, 동정과 연민, 책임과 의무를 주체/타자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로, 그리고 상호 연결된 삶의 문제로 옮겨야 한다고 본다.12) 

 

11) 베르나르도 보프, 생태공명: 지구의 울부짖음,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 황종렬 옮김, 대전가톨릭대 출판부, 254-256쪽.

12) 도나 해러에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해러웨이는, 윤리적 책임은 윤리적 명령에 따르는 의무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응답하 기에 있고, 응답하기는 존중이며 ‘더불어 되기(becoming with) ’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고 지적 한다.13) 해러웨이의 세계화(worlding)는 인간과 비인간 세계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넘어서 물질이 정동의 방법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14) 이러한 의미에서 해러웨이가 사 용하는 ‘다른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반지구화 (anti-globalization)가 아닌,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 들이 보다 평화로운 ‘ 다른 지구화(other-globalization)’를 의미한다.15)

해러웨이의 다른 세계화 논의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지구화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글로벌화(globalization)라는 용어에는 글로벌화될 수 있는 것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로컬에서 글로벌로의 관점 전환은 관점 늘리기, 더욱 많은 변수를 사용하기, 더 많 은 수의 사물, 문화 현상, 생명체, 인간을 고려하기를 의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글로벌화 플 러스(globalization-plus)와 글로벌화-마이너스(globalization-minus)로 구분하면서 지금의 지구화는 이 런 수적 증가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의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해러웨이의 ‘다른 세계화’와 라 투르의 ‘지구화’에 대한 비판은 지구공동체의 논의로 귀결된다. 

20세기 서양에서도 지구와 자연에 대한 윤리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산업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지구와 자연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연을 식민지화하고 약탈한 결과이다. 최근에는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흐름들을 알도 레오폴드의 ‘대지공동체’, 토마스 베리의 ‘지구공동체’ 그리고 반다나 시바와 김대중의 ‘지구민주주의’ 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레오폴드의 ‘대지공동체’와 ‘대지윤리’

지구공동체 개념은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알도 레오폴드((A. Leopold)는 그의 저서 모래 군의 열두 달에서 시작된다. 그는 서문에서 오늘날 대지(land)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대지(land)를 우리가 소유한 상품으로 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용하고 있다. 대지를 우 리가 속한 공동체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사랑(love)과 존중(respect)으로써 이용하게 될 것이다. (중략) 대지가 공동체라는 것은 생태학의 개념이지만 대지가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한다는 것은 윤 리의 확장이다.16)

레오폴드는 자본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이 대지를 상품화하여 남용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에 

 

13) 김애령, 「‘다른 세계화’의 가능성: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 읽기」, 코기토 92, 2020, 7-35쪽.

14) 브뤼노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기, 박범순 옮김, 이음, 2021, 32쪽. 

15) Haraway,D.J.,Staying with the Trouble:Making Kin in the Chthulucene (Experimental Futures:Duke University Press, 2016), p. 3 ; 김애령, 앞의 논문, 28쪽.

16) A. 레오폴드, 모래 군의 열두 달, 송명규 옮김, 도서출판 따님, 18쪽.

대한 대안으로 ‘대지공동체(Land Community)’개념과 ‘대지윤리(Land Ethic)를 제창한다. 여기에 서 ‘공동체’란 “긴밀한 상호의존 체계 하에 있는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지는 집합체”를 말한

다. 대지가 공동체인 이유는, 대지는 단지 물리적인 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흙, 식물, 동물의 회로를 통해 흐르는 에너지가 솟아나는 샘이고, 대지 위의 모든 존재는 대지 피라미드의 연결망[생 명의 연결망] 속에서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대지공동체 안에는 지 구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 즉 동물, 식물, 토양, 물 등이 포함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지공동 체’ 개념은 ‘지구공동체’와 상통한다. 

한편 레오폴드는 대지공동체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지윤리’를 도출해 낸다. 원래 서양 

전통에서 ‘대지’는 윤리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윤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관계 에만 한정되었다. 주지한 바와 같이, 서양의 전통적 윤리체계는 인간중심적이다. 그래서 인간 이외 의 동물이나 식물에는 아무런 도덕적 지위나 권리도 부여해오지 않았다. 레오폴드에게 호모사피엔 스는 대지의 관리자, 정복자가 아니라 대지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같이 평범한 구성원이자 시 민(citizens)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간을 대지공동체로 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인간중심적 윤리체계의 반항을 의미한다. 서구의 인간중심적 자연관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윤리적 패러다임의 전환에 이른 것이다.18)

이처럼 레오폴드의 윤리 체계에서는 동물이나 식물, 게다가 흙이나 물까지도 공동체에 포함된다. 테일러가 인간, 동물, 식물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모든 생명체를 대하 는 태도는 ‘존중’(respect)으로 바뀐다고 주장했듯이, 대지공동체 틀에서는 윤리적 배려의 직접적 대상이 인간 존재에서 자연의 모든 존재에로 확대하게 된다. ) 

레오폴드는 윤리를 상호의존적인 개인 혹은 집단이 협동의 방식을 발전시키는 성향에서 비롯되 는 것으로 보고, 윤리의 확장을 생태학적 진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여기서 협동의 방식은 ‘공생’ 이다. 최초의 윤리는 개인 간의 관계로 시작되었고, 이후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포함되었다. 하지 만 인간과 대지 및 그 위에 살아가는 동식물과의 관계를 다루는 윤리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윤리 가 대지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은 생태학적 필요성이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레오폴드는 진정으로 대지의 모든 존재를 윤리적 관점에서 파악할 것을 강조한다. 레오폴드의 대지윤리는, 인간소외나 전체주의 등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대지공동체들과의 공생을 위한 ‘생태적 전환’의 요구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대지공동체 개념과 대지윤리는 지구윤리의 요소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나는 대지(land)에 대한 우리의 윤리관계가 그것에 대한 사랑(love)과 존중(respect) 그리고 존경

(admiration) 또한  그것의 가치에 대한 높은 평가 없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가  말하는 가치란 단순한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다. 즉, 철학적 의미의 가치이다.20)

위의 구절은 대지로 윤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대지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 바탕이 되어 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은 대지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 가능한가? 레오 폴드는 대지에 대한 생태학적 이해에서 찾고 있다. ) 이를 토마스 베리는 ‘생태학’ 대신 지구의 생명에 대한 이해력이라는 의미로 ‘지구 가독력(Earth literacy)’ 용어를 제시한다. 지구가 교육자 라는 것이다. ‘지구 가독력’은 미래 지구 공동체에서 인간이 통합적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인 도하는 학문 영역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 

이러한 인식은 한국 개벽사상에서도 발견된다. 이돈화는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며, 사람은 이러한 

생명의 원천을 회고(回顧)할 때에 경물(敬物)의 진의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이돈 화는 자연의 도덕을 이질적 기화와 동질적 기화로 논하면서 이것이 자연계의 도덕률이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덕[天道天德]이라 했다. 생태학 혹은 지구 가독력을 통해 윤리의 대상을 인간에서 만 물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 

2. 토마스 베리의 ‘지구공동체’와 ‘지구윤리’ 토마스 베리는 학문적 정체성은 문화사에 있었지만, 지구에 대한 공경심으로 인해 자신을 "지구 학자(geologian)”라고 지칭했다. 토마스 베리의 출발점은 지구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이것을 바 탕으로 뒤틀린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다. 그는 ‘지구생명시스템’이라는 인식을 바 탕으로 인간이 지구와 자연 세계에 대해 친밀하게 대할 것을 요구한다. ) “우주를 객체들의 집합 이 아닌 주체들의 친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베리에 의하면, 지구 전체를 착취해야 할 객체 가 아니라 사귀어야 할 주체로의 인식, ‘친밀한 관계(수평적 관계)’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적 존 재들 사이를 철저히 분리하는 정신적 고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그는, 레오폴드의 대지공동체 개념과 유사하게, 인간과 만물은 지구의 구성원들이고, 그것을 포 함하는 단 하나의 통합된 지구공동체가 있을 뿐이며, 지구공동체 안에서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역 할, 존엄성, 자생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26) 인간이 지구 공동체의 참여 구성원으로써 지구와 교제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생태대의 기획이다.

 베리는 여기에서 할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지구공동체 논의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인간의 책임의식과 윤리적 판단은 미시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거시적 차원의 윤리학을 제안한다. 여기서 토마스 베리의 지구중심주의적 시각이 드러난다. 베리는 “생태대는 지구가 일차 적이며 인간은 부차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라는 점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인간의 모든 활동은 지구중심적 관점, 직역하자면 ‘지구살림’에 따라 재조정되어야 한다. )  그래서 베리의 최대 관 심사는 지구의 건강에 있다. 인간이 거주하는 지구의 안녕이 곧 인간의 안녕을 실현하는 데 필수 적이며, 산업문명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 베리의 지구중심주의는 지구의 안 녕, 즉 인간과 지구의 공생이 가능하도록 지구를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관점에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다른 동물들이 먹이사슬의 균형 속에서 생존해야만 우리 인간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의 생명체계에 호혜적인 지원을 하지 않으면 지구도 인간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 공동체, 국가의 행동까지 포함하는 지구적 차원의 윤리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구중심적 시간에서 베리는 인간의 윤리학을 생태학적 의무의 파생물로 보고, 포괄적인 공동체의 복리 안에 서 인간의 복리를 실현하는 것을 윤리학의 규범으로 삼을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지구행성 전체의 맥락에서의 윤리, 즉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른 구성원들 사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지 구윤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그가 제시한 생태대는 “인간 공동체가 보다 큰 지구공동체 안에서 상호-증진하는 방식으로 현 존”하는 지질학적 시대를 말한다. 인간의 행복과 지구의 건강이 동시에 구현되는 시기라는 점에 서 그가 제창하고 있는 윤리는 지구와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지구윤리인 것이다.

3. 반다나 시바와 김대중의 지구민주주의

지구공동체 논의는 과학자이자 ‘에코 페미니즘’의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로 이 어진다. 반다나 쉬바는 우리는 지구 공동체의 일원이며, 지구시민으로의 전환을 요청하면서 지구민 주주의(Earth Democracy)를 제창한다.  ) 지구민주주의의 모토는 지구의 모든 존재가 주체이며, 시 민이고, 권리들을 갖고 있으며, 존경과 경외를 받을 자격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31)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지구민주주의는  “Vasudhaiva Kutumkam(바수다 이바 꾸뚬깜, earth family)”라는 인도의 토착사상, 모든 종(species)과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resp ect) 그리고 만물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 여기서 지구가족(earth family)이라 는 것은 지구에 의존하는 모든 존재의 공동체 즉 지구공동체를 의미한다.33) 지구민주의의 사상적 토대는 모든 생명이 “지구의 시민”, “지구의 자녀”라는 인식에 기초한 내재적 가치와 만물의 생태적 상호의존성으로서, 모든 생명이 지구의 구성원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식량, 물, 건강, 교육, 직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인식에 있다.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었던 김대중은  For eign Affairs에 기고한 「문화는 숙명인가?」에서 ‘지구민주주의’(global democracy)개념을 제창하 였다.

지구 민주주의는 우리가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 자연을 존중해 주는 것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인 식할 것이며, 후세대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동식물에 파괴 의 위기를 가져다주었고 환경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하늘과 땅과 그 안 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참다운 형제애로 감싼다는 의미의 지구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반다나 시바가 인도의 토착사상에 근거한 지구민주주의를 제창했다면, 김대중은 한국의 토착사 상인 동학사상에 바탕 한 지구민주주의를 제안했다. 인간 이외의 존재들까지 주체로 인식하는 지 구공동체의 차원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34) 반다나 시바와 김대중의 지구민주주의는 인간과 국가중심의 민주주의에서 비인간적 존재들까지 포괄하는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지구정치(earth politics)’으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Ⅴ. 지구윤리로서 지구헌장

지구공동체와 지구윤리는 2,000년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지구헌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싱어가 「 세계인권선언」을 윤리의 진화로 보았듯이, 「지구헌장」은 지구위험시대를 대응하기 위해 진화된 윤 리로 볼 수 있다.

「지구헌장」 최종안은 16개 주 원칙과 61개 보조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크게 생태적 온전성, 사회 및 경제 정의, 민주주의와 비폭력 그리고 평화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헌장」은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의 생명력을 지키고, 지속가능한 지구공동체 건설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구헌 장」 최종안 이전에 작성된 초안은 총 18개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구는 우리의 집이며 지상 모 든 것의 집이다. 지구는 그 자체로 살아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따름이다. 인간은 훌륭한 삶의 형태와 문화를 가진 지구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지구의 아름다움 앞에서 겸손하며 생명성의 가치 를 공유하고 우리자체의 근원을 공유한다”라고 선언했다. 「지구헌장」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포 괄하는 ‘지구공동체’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정식화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지구윤리’로서의 의 미가 강하다. 

 

34) 조성환·허남진, 「지구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종교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개벽종교를 중심으로」,  신종교연구 43, 2020, 113-114쪽.

1. 지구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자. 지구와 모든 생명체 그리고 인간 존재는 내적인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용한 가치를 갖고 있는가의 유무에 관계없이 이를 존중해야 한다. 

2. 지구를 보살피고, 지구 생태계의 다양성과 통일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고 회복시키자. 

7. 비폭력을 옹호하고,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이웃과, 다른 형태의 생명과, 지구와 조화롭 고 균형 잡힌 관계를 맺을 때만 달성될 수 있다.

9. 원주민이 ‘어머니 지구’를 보살피고 지키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하고 있음을 재확인한다.

15. 만물을 공감으로 대하고, 모든 생명체를 폭력과 자의적인 절멸로부터 보호한다.

18. 지구공동체를 지키는 일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임을 지고 있다.

위의 인용구절은 「지구헌장」초안의 내용이다. ‘어머지 지구’, ‘지구공동체’, ‘지구와 조 화’등의 문구는 「지구헌장」이 러브록의 가이아론, 토착사상 그리고 레오폴드와 베리의 영향이 강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5) 특히 ‘만물을 공감으로 대하고’라는 문구는 해월의 경물사상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이제 전지구적 차원에서 지구윤리로서 경물사상이 주창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36)  

Ⅵ. 맺음말

또 하나의 지구는 없다! 지구는 단 한번 주어진 선물이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펜데믹과 기후위기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지구 등 어긋난 관계의 결과이다. 이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지속가능한 지구공동체 건설을 위한 지구윤리의 정립과 실천이 요구된다.

 

35) Ibid, pp. 176-203.

36) 해월 최시형이 시천주의 구체적인 실천 덕목으로 제시한 십무천(十毋天)  역시 지구윤리로서 충분히 의 의가 있다. 십무천은 모두 10개로 구성되어 있는 지구윤리로 재해석될 수 있다. 동학에 따르면 인간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이 고귀한 하늘님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경인뿐만 아니라 경물까지 강조하고 있 기 때문이다. 십무천은 사람, 천지만물을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존재로 모시고 섬기라는 행동강령이다. 박 맹수, 「동아시아 고유한 생명 사상」,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 동학농민혁명과 제국 일본,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1,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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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지구교육학】세계시민에서 지구시민으로-지구위험시대에 따른 교육의 방향전환- 이우진*

 14] 【지구교육학】세계시민에서 지구시민으로-지구위험시대에 따른 교육의 방향전환- 이우진*

49)

요약문   세계시민교육은 현존하는 지구촌의 문제들을 더 이상 단일국가 시민성에 기초한 근대적 시민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아래 주창된 교육이다. 이 세계시민교육은 ‘세계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과 책임감’ 즉 ‘세계시민주의’을 양성을 목표로 하며, 그 이념은 세계주의(Cosmopolitanism)나 세 계시민성(Cosmopolitan citizenship)의 관념에 바탕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주의나 세계시민성의 이념에는 그것 을 주창했던 스토아학파(Stoics)나 칸트(Kant), 페인(Paine) 등과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입장에서 볼 수 있듯, 서구유럽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사유에 기반하고 있다는 그 한계점에 대해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

다. 세계시민성의 이상은 비서구 세계를 서구의 문명 세계로 인도하는 유럽인들의 역사적 사명의 확장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국의 확장을 정당화하는 스토아학파의 세계시민주의가 이후 칸트(Kant), 페인(Paine) 등과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입장에 의해 보완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유럽식 민족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분파주의적 이념(sectarian ideology)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으로, 세계시민주의는 인간중심주의에 함몰 하여 비인간적 존재들을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는 약점이 있다. 인간과 만물이 하나 의 공동체를 지향해야하 는 이 지구위험시대에 있어서 명백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제 교육은 서구유럽중심적 이고 인간중심적인 세계시민주의를 넘어 인간과 만물이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구시민주의를 향해야 할 것이다. 인간을 넘어 다른 존재들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의무를 다하는 지구시민주의의 교육이 이루어 질 때, 인간 자신의 생존도 보장될 수 있음을 유념하면서 말이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고귀하지만 결함이 있는 세계시민교육

Ⅲ. 지구시민교육

Ⅳ. 맺음말

 

* 공주교육대학교 교수

Ⅰ. 머리말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Covid-19)의 세계적 대유형과 이상기후는 진정 ‘나비효과(Butt erfly Effect)’를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사건들이었다. ‘나비효과’는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 (Edward Lorenz)가 1972년에 개최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예측가능성: 브라질에서 벌어진 나비의 날개짓 한 번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키는가?”라는 글에서 기원된 용어이다. 그는 이 발표에 서 다음의 두 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1. 만약 나비의 날개짓 한 번이 토네이도의 생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또한 그 이전과 이후의 날개짓도 토네이도의 발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백만 마리의 나비들의 날개 짓은 물론이고,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수많은 생명체들이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보다 강한 활동들 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2. 만약 나비의 날개짓 한 번이 토네이도 생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똑같이 토네이도 예 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1)

물론 로렌츠는 ‘나비효과’라는 용어를 통해 기상변화의 측면에서 카오스이론에 대해 이야기하 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용어는 지구생태계(ecological system)의 특성을 고스란히 설명해주 고 있다. 즉, ‘지구라는 거대 체계에서 모든 존재들은 비록 표면화되지는 않더라도 차후 엄청난 결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을만큼 긴밀한 상호연결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로렌츠는 첫 번 째 가설에서 ‘나비의 날개짓이라는 미세한 활동도 토네이도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인데, 그보다 강한 인간의 활동들은 지구에 토네이도에 비할 수 없는 더 엄청난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음’을 논의하고 있다. 

그의 이 첫 번째 가설은 곧장 “더 이상 홀로세(Holocene, 現世)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 우리 는 더 이상 홀로세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에 살고 있다”2)는 파 울 크루첸(Paul J. Crutzen)의 단언을 떠올리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인류세는 ‘인간을 의미하는 A nthropos’와 ‘새로움의 의미하는 Cene’이라는 두 그리스의 결합어로, 인류의 활동이 지구 환경 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새로운 지질시대’를 의미한다. 이전까지 각 지질시 대를 구분하게 만든 근원적 동력은 자연이었으나, 인류세라는 지질시대는 인류가 지질학적 흔적의 주 창조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인류세를 맞이하여 인간은 지구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주 동력이 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자기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1) Edward N.Lorenz, The Essenc of Chaos(EBook edition), the Taylor & Francis e-Library, 2005, p.179. (*강조는 인용자가 표시, 이하 동일)

2) Christian Schwägerl,  The anthropocene:the human era and how it shapes our planet, Synergetic Press, 2014, p.9.

 

현재의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은 그러한 인류세의 전형적인 사태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제 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지적했듯이, 과거에는 각자의 확동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던 바 이러스가 인간의 활동으로 생태계의 각 영역이 붕괴됨에 따라 기존의 경계를 넘어 인간 자신을 위 협하게 된 것이었다. 바로 코로나 19는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 zoonosis)으로 천연두, 인플 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에이즈와 마찬가지로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확대된 바이러스 질병이다. ) 여기서 다이아몬드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19보다 기후변화가 더욱 심각한 문제라면서, 환경 파괴가 심각해질수록 코로나와 같은 질병의 확산에 더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고 대기질, 가뭄과 홍수, 농업 등과 같은 여러 부분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 다시 말해, 코로나19 사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례적인 사건인 블랙스완(Black Swan)이 아니라, 인류세 있어서 자주 접하게 될 뉴노멀(new normal)이요, 앞으로 맞이하게 될 더 커다란 기후위기의 리허설(rehearsal)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인류세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의 실마리는 ‘나비효과’

의 두 번째 가설에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뻔한 말이겠지만, ‘나비의 날개짓이 그 원인이지만 똑같이 예방이 도움이 될 수 있듯이’, 인류세의 사태는 인간 자신에게서 그 예방을 찾아야만 한 다. 다이아몬드의 조언처럼 “코로나 19로 전 세계인 한 배에 탔으며, 같이 살든 같이 죽든 한 몸 이며, 지구적 차원의 협력”5)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위험 앞에서 그가 요 청하는 ‘지구적 차원의 협력’은,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지적한 것처럼 당위적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인류의 실존적 상황’이다. 벡은 ‘근대성의 사회 체계가 위험을 생산했음에도 그 위험성을 계산하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산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세계시민주의에 의존하는 상황이 도래한다’고 주장하였다. ) 그의 말대로 인류는 전 지구적 위험이 닥쳐서야 비로 소 반사적으로 성찰하여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에 의존하여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시민성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교육 또한 ‘세계시민교육(global citizenship Education)’으로의 전환(pivot)을 요청하게 되었다.

유네스코는 세계시민교육을 “학습자들이 보다 정의롭고 평화적이며 포용적이고 안전하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든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 기능, 가치관, 태도를 길러주고자 하는 교육 패러다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세계시민교육은 학습자에게 세계시 민성(global citizenship)을 길러주는 교육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이와 같은 세계시민교육 의 가치와 이상은 분명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세계시민교육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위험의 시대에 명확한 한계를 지니 고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이 글의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이다. 세계시민교육은 사실상 세계시 민주의와 세계시민성에 바탕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교육은 세계시민주의와 세계시민성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이 지구위험시대’에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2장에서는 그러한 세계시민주의와 세계시민성의 속성과 한계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다음 3장에서는 지 구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인류 자신의 종말을 향해가는 지구위험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시민교육의 

대안으로서 ‘지구시민교육(Earth/Planetary citizenship Education)’을 제안하고자 한다. 3장에서 살 펴보겠지만, 지구시민교육이란 ‘지구인(earthling)으로서의 책임과 역량을 길러주고자 하는 생태학 적 시민교육 패러다임’을 말한다. 마지막 4장 결론에서는 앞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고 남은 문 제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Ⅱ. 고귀하지만 결함이 있는 세계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이 교육의 주요담론으로서 부각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2012년 9 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세계교육우선구상(Global Education First Initiative)’ 선

언과 함께 이루어졌다. ‘교육이 우선’이라는 세계교육우선구상은 ‘모든 어린이의 취학, 교육의 질 제고’와 더불어 ‘세계시민성 함양’을 3대 목표로 하고 있었다. 더불어 세계교육우선구상은 ‘세계시민성 함양’을 ‘사회에 환원하는 공통체 의식과 적극적인 소속감을 기르는 것’이자 ‘남녀 불평등, 따돌림, 폭력, 외국인 혐오, 착취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차별이 학교에서 사라지도 록 하는 것’으로서 규정하였다. ) 이와 같은 세계시민성의 함양은  2015년 5월에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의 핵심주제로 선정되고, 같은 해 9월 유엔 세계정상회의 에서 채택한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가운데 하나로 선정됨에 따 라, 세계시민교육이 주요한 교육담론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바로 세계시민교육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이 이루어지는 미래사회를 모색하기 위해, 학습자에게 ‘세계시민성’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 는 교육이다. 유네스코는 이 세계시민교육이 ‘맥락과 지역 및 공동체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방식 으로 적용될 수 있겠지만, 세계시민성의 함양을 위해서 학습자들에게 다음의 5가지 공통 역량들을 길러내야 할 것’을 요청하였다. 

○ 다면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개인의 문화,, 종교, 인종 및 기타의 차이를 초월하는 ‘집단적 정 체성’의 잠재력에 기초하는 태도

○ 세계적 문제와 정의, 평등, 존엄, 존중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깊은 지식

○ 서로 다른 차원과 관점 및 각도에서 문제를 인지하는 다중접근방식을 채택하여 사고하는 것을 비롯하여, 비판적, 체계적,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인지적 기능

○ 서로 다른 배경, 출신, 문화 및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상호하기 위한 공감과 갈등 해결과 같은 사회적 의사소통 기능과 태도를 포함하는 비인지적 기능

○ 세계적 과제에 대한 세계적 해결 방안을 찾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자 협력하고 책임감 있게 행 동하는 행동 역량9)

여기에서 보다시피, 세계시민교육은 학습자에게 국민국가의 시민의식에서 벗어나 ‘인류공동 체’에 속해있다는 소속감과 책임감을 길러주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 한 기능과 역량을 발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시민’의 의미를 배타적이고 편협한 ‘국민 국가수준의 정체성’을 벗어나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세 계시민교육이 키워야 할 역량으로서 ‘지구상에 있는 비인간존재들과의 공존’을 명시적으로 말하 지 않는다. 바로 세계시민교육은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 근본적으로 바탕하고 있다. 예컨대, 세계시민에서 요청하는 ‘정의, 평등, 존엄, 존중과 같은 보편적 가치’도 인간의 관계증진을 위한 가치인 것이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증진을 위한 가치는 아니다. 그 점에서 세계시 민교육은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지구위험시대에 분명한 한계를 내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 지구 위험시대는 세계시민교육이 토대하고 있는 ‘인간중심주의가 파생시킨 생태적 위험시대’이기 때 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나 존재들을 인간의 번영을 위한 도구적 가치에 불 과하다’는 그 불미스러운 ‘서구유럽의 사유방식’에서 지금의 지구위험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 다.  

세계시민교육이 서구 유럽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일 수 없는 것은 ‘그 교육이 세계시민주의’

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철저히 인간중심주의적이며, 전형적으로 존엄성의 핵심을 도덕적 추론능력과 선택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두고” 있다고 평가 한다.10) 물론 그녀는 “세계시민주의 전통이 수많은 현대의 윤리적 주장이 다가가고 있는 결론들 에 보다 깊이 있고 원칙에 입각한 명분을 제공”한다는 우수성을 지님을 인정한다.11) 하지만 그녀 는 세계시민주의 전통이라는 자신의 저서 부제목을 ‘고귀하지만 결함있는 이상’이라고 할 만 큼, 세계시민주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녀는 세계시민주의의 가장 심각한 잘못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9) UNESCO(2014), Ibid., 9 

10) 마사 C. 누스바움(2020), 강동혁 옮김, 세계시민주의 전통: 고귀하지만 결함 있는 이상, 뿌리와 이파리, 

297쪽.

11) 마사 C. 누스바움(2020), 281쪽.

아마  세계시민주의의 가장 심각한 잘못은 다른 종과 자연 환경에 대해 우리가 지고 있는 도덕적· 정치적 의무를 숙고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이 지구를 다른 감정이 있는 존재 들, 살아가며 번영할 자격이 있는 그런 존재들과 공유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12)

곧 세계시민주의는 ‘이성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인간’만을 존엄하고 가치롭게 여길 뿐, 그러한 

능력을 지니지 못한 ‘비인간 동물과 자연계에 대한 경멸적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녀가 주장하고 있듯이,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은 ‘짐승’에 대한 경멸적 대조를 통해 인간의 가치 를 옹호하여 왔던 것이다. ) 곧 ‘인간과 동물(자연계)의 대립적 인식’과 ‘인간우월주의’가 이 세계시민주의의 토대인 것이다. 그 점에서 ‘인류 전체를 넘어 자연계와의 공생과 공존 의식’이 요청하는 이 지구위험시대에, 과연 세계시민교육이 적절한 교육으로 자리할 수 있는지 의문을 지 니게 한다. 아니 세계시민교육은 ‘인간과 자연계와의 공생과 공존 의식’은 커녕 ‘인간 자신들 만의 공동체 의식’을 기르기에도 적절하지 못한 교육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시민주의는 그 기 원에서부터 제국주의적이고 분파주의적인 이념(sectarian ideology)으로서 자리해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계시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Cynicism)와 스토아학파(stoicism)에서 

찾는다. 주지하다시피 견유학파의 창시자인 디오게네스(Diogenes)자신을 ‘도시도 없고(a-polis), 집 도 없는(a-oikos) 우주의 시민(kosmopolites)’으로 선언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는 정부(politeia)는 특정 도시 국가에 국한되기보다는 ‘모든 이가 거주하는 세계(oikoumene)’ 또 는 ‘전체 우주(kosmos)’와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세계시민주의자들 은 모든 이들이 인종, 종교, 출신에 관계없이 단일한 형제 구성원으로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러 한 고대 그리스의 세계시민주의적 전통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키케로(Cicero) 등과 같은 로마의 스토아학파의 인물들에게 이어졌다. ) 

로마의 스토아학파는 ‘사람은 두 개의 공화국, 즉 폴리스(polis)와 코스모폴리스(cosmopolis)의 시 민으로 태어나는데, 이 둘 가운데 충성심의 갈등이 발생할 때 도시국가로서의 폴리스보다는 세계 도시국가인 코스모폴리스에 대한 시민의 의무가 언제나 앞선다’고 보았다. ) 하지만 로마의 스토 아학파는 폴리스의 시민과 코스모폴리스의 시민은 동일한 일을 한다면서, 하지만 시민들에게 자신 이 속한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세계시민성을 합일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보편적 이성을 지닌 인 간이라면 인종, 종교, 출신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다’고 주장하였다. 바로 시민권을 이성을 가 진 온 인류로 확장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아학파가 강조한 세계시민주의의 입장은 그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로마 제일주의의 이념’ 앞에서 변질되었다.16) 곧 세계시민주의는 ‘강 력한   세계도시국가로서의 로마 제국에 대한 충성’과 ‘그 제국의 세계적 확장’에 비호하는 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변질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마에 대한 의무를 명시적 으로 인정한 키케로나 세네카(Seneca)의 이론과 저작은 로마인들에게 로마제국과 코스모폴리스 자 체를 동일시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로마시대의 스토아학파의 논의는 로마제국의 패권주 의를 강화시킨 이념적 기반으로 작동하였던 것이었다.17)

이후 세계시민주의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같은 계몽주 의 사상가들에게 다시 주목받게 된다. 그들은 모두 국가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보편적 공동체’ 를 구상하였다. ) 먼저, 스미스는 ‘세계사회(World Society)’라는 보편적 공동체의 이상을 표출하 였다. 그는 특히 ‘시장(market)’이라는 장치를 통해 국가와 국경에 무관하게 개인들 사이의 상호 의존성을 강화시킴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동시에 발전시키고자 했다. 이후 프리드리히 헤겔 (Friedrich Hegel)은 스미스의 ‘시장을 시민사회로 재해석하게 된다. 곧 스미스의 시장이론은 헤겔 을 거쳐 ‘개인의 보편성을 근거로 형성된 세계사회(World Society)’라는 보편적 시민 공동체를 기획에서 출현한 것이었다. ) 

다음으로, 칸트는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라는 ‘세계적인 보편적 공동체’를 구상하 였다. 이 ‘국제사회’는 개인들의 연합체인 스미스의 세계사회와 달리 단일한 주권국가를 구성으 로 한다. 특히 칸트는 ‘국제사회’는 인간들 사이에 자연적으로 조성되는 전쟁상태 바로 그 자체 를 통해 인간을 평화로운 법적 상태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한다고 주장하였다. ) 지속적 인 전쟁으로 인한 피로와 무기력으로 인해 개별 국가들로 하여 어쩔 수 없이 세계시민적 법체제를 만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곧 ‘국가들 사이의 합법적인 대외 관계’를 마련하는 ‘국제법의 제 정’을 통해 ‘국제사회’를 구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영구적인 평화상태를 수립’할 수 있다 고 전망한 것이었다. ) 실제로 20세기에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 s)’과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수립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칸트와 스미스의 ‘세계적인 보편적 공동체’는 현대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 다. 하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유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합법 적인 대외 관계’를 보장하는 조직이기보다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흔들리는 경우’가 허다하 다. 또 현대판 ‘세계사회’인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경우 국가들간의 상호의존성을 강화시킴 으로써 각 국가와 전 세계의 이익을 동시에 발전시키기 보다는,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저발전지역 의 희생과 배제만을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꿈꾸었던 ‘세계적인 보편적 공동체’의 현실판은 이토록 강대국 중심 주의의 조직으로 자리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때문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 만 ‘세계적인 보편적 공동체’라는 칸트와 스미스의 이상 자체가 ‘서구 패권주의에 경도된 세계 시민주의’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더 적절한 답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세계시민주의에는 식민지 국가들을 문명화한다는 사명감이 반영되어있으며, 제국주의적 팽창 의도를 은폐하는 이데 올로기로서 알게 모르게 작동되어왔다. ) 구체적으로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기반한 ‘세계적인 보편적 공동체(국제사회)’의 이상은, ‘식민지 국가들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유럽중심적 사명 감이 흠뻑 담겨져 있다. 곧 그의 세계시민주의적 계몽사상은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이자 분파 주의적 이데올로기’인 것이었다. ) 

이러한 면모는 칸트의 「영구평화론」(1795)과 이에 앞서 작성한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 (1784)라는 글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 두 글에서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과 함께 ‘유 럽인과 비유럽인의 인종주의적 구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간의 최고의 완전성은 백인종에 게서 발견되며, 황인종인 인도인들은 보다 적은 능력을 소유하고, 흑인들은 훨씬 못미쳐,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가장 지체되어있다”는 식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편 견은 문명화된 유럽 백인이 비유럽지역의 야만인(유색인종)을 계몽(문명화)해야 한다는 이념을 내 포하고 있었다. 바로 계몽이라는 미명아래 식민지배를 추구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 칸트는 또한 “유럽인들에 의해 인식되지 않은 민족의 역사는 미지의 영역”이라면서 유럽중심적인 사유에 함몰되어 있었으며, 유럽중심주의적인 진보사관을 설 파하고자 중국의 후진성을 강조하였다. 바로 서구유럽 중심으로 설정한 보편사적인 위계질서의 그 첨단에 유럽인을 놓고 말단에 비유럽인을 위치시켰던 것이다.  )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세계시민주의는 서구(유럽)중심적인 기준을 보편성의 토대로 설정함으로

써 지역적 특수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또한 앞에서 세계시민주의는 ‘인간과 동물(자연계)의 대립적 인식’과 ‘인간우월주의’라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 한 점에서 이러한 세계시민주의에 기반한 세계시민교육은 ‘인류 전체를 넘어 자연계와의 공생과 공존 의식’을 길러 이 지구위험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교육으로 자리하기 어렵다. 그렇 다면 어떠한 교육을 말해야 하는가? 이 글은 세계시민교육이 아닌 지구시민교육(Earth/Planetary cit izenship Education)을 요청하고자 한다.

Ⅲ. 지구시민교육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지구위기의 시대에 있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민교육이 요청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교육이 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롤스톤(Holmes Rolst on)은 이전의 교육이 ‘국가적/국제적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라면, 지금의 교육은 ‘생태적 역 량을 지닌 지구인(earthling)을 길러내는 교육’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 였다. 

교육받은 사람의 특징으로 오늘날 점점 더 ‘교육받은 시민’ 이상이 되기를 요청한다. 좋은 ‘시 민’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국제적인’ 시민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 면 두 용어 모두 충분한 ‘자연(nature)’과 충분한 ‘지구성(earthiness)’을 지니지 않고 있기 때 문이다. ‘시민’은 단지 절반의 진실일 뿐이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대지(landscapes)의 ‘주 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인(earthling)이다. 지구는 우리의 거주지이다. 이 점에서 생태적 역 량이 없다면 시민적 역량도 없는 것이다.27)

지구적 환경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현 지구위기의 시대에는 생태적 역량이 시민적 역량의 첫 번

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곧 지금의 교육은 학습자를 세계시민이 아닌 지구시민으로 길러내야 한다. 인간과의 관계증진을 넘어서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증진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시민을 양 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돕슨(Andrew Dobson)은 전통적 형태의 시민성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 다. 그는 시민성의 개념을 확장하여 전통적인 ‘자유주의 시민성(liberal citizenship)’과 ‘시민공화 주의 시민성(civic republican citizenship)’과는 다른 새로운 ‘후기 세계시민주의 시민성(post-cosm opolitan citizenship)’을 요청한다. 이 세 시민성의 특징은 다음의 표와 같다.

 

27) Holmes Rolston(1996), “Earth Ethics: A Challenge to Liberal Education”, J. Baird Callicott and Fernando 

José R. da Rocha, eds., Earth Summit Ethics: Toward a Reconstructive Postmodern Philosophy of 

Environmental Educati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p.186

<세 가지 시민성 형식>28)

1. 자유주의 시민성 2. 시민 공화주의  시민성 3. 후기 세계시민주의  시민성

권리/권리부여 (계약적) 의무/책임 (계약적) 의무/책임 (비계약적)

공적 영역 공적 영역 공적 및 사적 영역

덕성 중립 남성적 덕성 여성적 덕성

영토성 (차별적) 영토성 (차별적) 비영토성 (비-차별적)

돕슨은 ‘세계시민주의의 시민성(cosmopolitan citizenship)’과 ‘후기세계주의의 시민성’은 여 러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얇은(thin)’ 공동체와 ‘역사

적 의무(historical obligation)’라는 ‘두꺼운(thick)’ 공동체간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시민주의가 국가, 국제, 지구, 세계 등을 은유적 정치공간으로 삼는다면 후기 세계시민주의 시 민성은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라는 실재적 개념을 정치공간으로 삼는 차이라고 규정한 다.29) 돕슨은 후기 세계시민주의의 시민성의 한 예로서 생태시민성(Ecological Citizenship)을 제시한 다. 

첫째 생태시민성은 비영토성을 갖는다. 이는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와 같은 환경문제들이 국가

단위를 벗어난 전세계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결국 이러한 비영토성은 나의 행동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을 하게한다. 여기서의 비영토성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적용된다.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 이다. 돕슨은 이러한 비영토성을 지닌 생태시민성의 특징을 생태 발자국개념을 끌어와 설명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자연자원과 서비스에 대한 인류의 수요를 추산한 것으로, 자연자원과 서비스 의 공급을 추산한 생태용량과 함께, 우리 인류가 지속가능한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 다. 곧 개개인마다 시·공간적으로 서로 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 발자국은 시민 개 개인의 일상적 삶을 통해서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이방인이나 환경에 대해 가해지는 영향이라 고 할 수 있고 시민 개개인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때 인간과 비-인간의 자연환경 사이의 대사적(metabolistic)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즉, 생태 발자국은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발시킨다. 생태시민의 공간은 자연환경과 개개인들이나 집단 활동의 대사적이거나 물질 적 관계를 통하여 생산되는 것으로 국민국가나 EU와 같은 초국가적 기구의 경계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태시민의 활동 공간의 범위는 이미 결정된 크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생태시민성은 지구시민(Earth citizen)으로서 권리보다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여기서의 

책임과 의무는 비계약적이고 비호혜적이다. 즉 계약에 따라 타인과 공평하게 주고 받는 것이 아니

 

28) Andrew Dobson(2003), Citizenship and the Environment, Oxford University Press, p.39.

29) Andrew Dobson(2003), p.99

며 보상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 책임과 의무의 범위 역시 비영토적이며 따라 서 그 대상은 공동체의 구성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공간에 있는 모든 존재 현세대 뿐 아 니라 미래 세대도 포함한다.

셋째, 생태시민성은 덕성에 기반한다. 즉 생태시민이 다른 공간과 시간에 있는 생명에 대한 책임 과 의무를 갖는 것은 내부적 동기인 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첫 번째 덕성은 정의

다. 이는 생태적 자리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의미를 담는다. 두 번째는 동정 배려 연민이다. 이는 정의를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째, 생태시민성은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을 중요시한다. 사적 영역에서의 행동이 공

적 영역에 연결되면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정에서 재활용을 하고 소비를 줄이며 정원에 퇴비를 주는 등의 모든 사적 ‘녹색행동’은 동시에 공적인 행동이 된다. 따라서 생태시민 성은 일상의 삶이 생태적이 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Ⅳ. 맺음말

우리는 생태계를 넘어서서, 한 단계 더, 지구적 수준(the global level)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환경 윤리는 우리가 지구윤리를 가질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미래 세대들, 동물, 식물, 종, 생태계는 여 전히 친숙하지 않은 윤리적 영역이며, 지구를 위한 윤리(ethic for Earth) 그 자체는 가장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모두가 건강한 환경을 원하기에, 아마도 윤리는 우리의 첫 번째 초점인 인간에 머물 러 있을 수 있다. 건강한 지구 환경은 건강한 인간에게 필수적이다. 이것은 그들의 권리이다. 곧장 우리는 인간의 복지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환경 보건에 관심이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삶의 비전은 우리 영토의 변명이 아니라 거대한 자원으로서 지구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삶의 비전은 우리 영토의 방어가 아 니라 거대한 재산 자원으로서 지구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공동체에서 가치를 지닌 거주지로서의 지구이다.

 


 


13] 【지구수양학】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

 13] 【지구수양학】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


요약문   

인류세에 대한 논의를 기점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와 기후 온난화 문제, 소외와 혐오 등 지구적 차원의 위험현상들은 그간의 인간중심주의를 지양하며, 전 지구적 존 재들의 상생과 조화를 추구하는 지구인문학적 사유를 필요로 한다. 그 중 지구수양학은 개인의 마음을 닦는 행위와 지구적 연대를 통합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사상 및 방법론을 다루는 학문이다. 한국 신종교 사상들은 한국인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온 종교적 심성, 즉 만물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들은 담론 제시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마음바탕을 수양하는 일에 있어서도 개인의 인격성장만이 아닌 전 지구적 존재 와 덕을 나누는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구인문학적인 수양학, 즉 ‘지구수양학’으로서의 특성을 보인 다.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됨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더해졌고, 탈종교 현상과 아울러 종교 본연의 역할에 대 한 회의와 반성이 일어난다. 이러한 급변의 시대에 종교는, 하비 콕스가 강조했듯, 교리적 지식이나 도덕주 의를 중심에 두지 않고 유기체적으로 모든 생명의 연대성을 강조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 여 한국의 신종교 사상들에 담긴 지구수양학으로서의 사상, 그리고 이들 사상을 반영한 지구적 수양법, 즉 개인의 완성과 아울러 지구공동체의 연대를 함께 추구해가는 방식을 탐색하고자 한다.

===

차 례

Ⅰ. 머리말 

Ⅱ 지구위험시대의 수양학

Ⅲ.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

Ⅳ.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Ⅰ. 머리말

종교학자 류병덕은 “한국인의 종교혼은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 보지 않고 생명의 근원, 무한 생 성력, 고맙기만 한 자연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1) 이 연구는 한국의 동학과 천도교, 그리고 원불교가 제시한 지구중심적 사유와 실천법에 주목하여, ‘은(恩)적 네트워크’ 기반의 ‘공경과 불 공의 윤리’, 나아가 수양법을 종교적 이념에 국한시키지 않고 지구위험시대를 극복할 실천적·보 편적 담론으로 사회화하기 위한 시론적 연구이다.

동양의 수양학은 마음을 닦는 일과 존재의 근원적인 진리에 관심을 두었으며, 이 관심을 바탕으로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인의 마음 닦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 본연의 생명성이나 당시 사회문제들을 함께 궁구함으로써 개인 의 단독적 진화가 아닌 주변과의 공진화(共進化)를 실천하려 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지금 시대의 수양학, 즉 지구위험을 극복하려는 수양학으로서 ‘지구수양학’은 그 명맥을 이어 인간중심주의 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바탕으로 개인의 심성 도야와 지구적 공경을 함께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제시했던 지구수양학적 특성에 주목한다. 이들 종교의 공공성 은 외세의 침입과 불안정한 시국, 신분차별로 고통 받던 근대 한국에 요청되던 ‘민중적 공공성’ 이었다. 근대에 필요했던 이 공공성은 지금의 지구위험시대에 이르러 ‘지구적 공공성’으로 새롭 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지구적 공공성은 전 지구적 존재들로 구성되는 ‘은(恩)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발현된다. 은 (恩)적 네트워크는 인간과 비인간, 사사물물 등 모든 존재들이 긴밀한 은(恩)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전제한다. 은(恩)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들 종교는 ‘지구에 대한 공경과 불공의 윤리’를 제시 한다. 그리고 수양방법들은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해체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들 수양법이 지구 수양학의 방법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개인의 심성을 도야하는 과정이 지구 구성원들에 대한 공경 및 불공과 통합적으로 실천되기 때문이다. 이 통합적 실천으로 물질과 정신, 인간과 비인간, 땅과 하늘, 문명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원화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지구수양학, 즉 은(恩)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공경과 불 공의 윤리, 수양 방법론에 대해 논의한다. 지구수양학은 곧 개인의 심성 도야와 지구적 공경·불공 을 통합적으로 실천하는데 필요한 윤리와 방법론, 나아가 지구공동체를 위한 수양학의 사회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실질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지구위험시대에 유의미한 연구가 될 것이 다.

1) 류병덕, 근·현대 한국 종교사상 연구, 서울: 마당기획, 2000, 18쪽.

Ⅱ. 지구위험시대의 수양학

1. 시대에의 응답 최근 들어 지구를 향한 시선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에콰도르는 신헌법에 ‘자연권’ 을 명시했고, 2010년에 볼리비아는 ‘어머니 지구법’을 채택했다. 이밖에도 2017년 왕거누이강(Wanganui)에 법인격을 부여한 뉴질랜드의 움직임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2020년에 지구 를 위한 법학이 출간되는 등, 인간중심적이던 법적주체를 지구중심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일 어나고 있다. 그밖에 의학 및 생태 분야에서도 ‘원 헬스(One Health)’, 즉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의 긴밀한 상호의존성에 주목하는 접근방식이 등장했다. 원 헬스는 ‘인간-동물-환경을 아우르는 건강(health)은 하나(one)’라는 믿음 아래 인간 중심의 건강 관점에서 탈피하여 동물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 잡힌 건강과 안녕(well-being) 확보를 목적한다. ) 이러한 변화들은 신종 감염병 과 기후문제 등 전 지구에 닥친 위험들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지구의 권리, 인간과 지구의 관계성에 주안점을 두는 이 시도들은 지구인문학적 사유에서 비롯 된다고 볼 수 있다. 지구인문학은 그간의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지구’를 사유의 중심에 두 고자 하는 인문학을 말한다. 지구인문학적 관점을 지닌 대표적 지구신학자로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지구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땅·생물·인간이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구인문학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던 관점을 해체함으로써 그간의 위계적 사고로 인한 타자화와 폭력을 지양한 다.4)

지구인문학으로서 지구수양학에 대한 선행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이 연구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근대 한국 신종교 사상의 지구인문학적 요소에 대한 논의는 2020년부터 있어왔다. 지구인문학 연구들은 이들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인간관과 우주론을 지구 구성원의 상호 의존관계나 지구중심주의에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은 어디까지나 지구인문학 이라는 상위 범주를 구축하는 논의이기 때문에, 수양학적 관점으로 이들 종교에 접근하거나 지구 수양학적 윤리와 방법론을 세부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한편 근대 한국 신종교의 생태담론에 관련해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들은 이들 종교에 담긴 생태

적 요소가 이원론적 사유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추구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담론을 담은 사상적 특이성을 다루고 있어도 실제 수양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경우는 미미하 다. 또한 근대 한국 신종교 사상을 수양학적 측면에서 논의해온 결과물은 다수가 있다. 그러나 지 구위험에 대한 인식 아래 직접적인 실천을 요하는 수양학적 논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보편적 방법론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시도는 과제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지구 위험시대에 적용하기 위한 수양학으로서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한다.  

2. 지구수양학의 방향성 수양(修養)은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다. ) 동양의 학문은 사물의 이치에 대한 탐구 못지않게 실천의 문제를 중시  )해왔고, 그래서 이성 중심의 서구에서와 달리 수양은 주된 과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수양은 인간에게 실재하는 ‘경 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은 사유 이전에 실재하는 경험이란 것을 일회적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니, 이것이 바로 수양이다.  ) 

수양에 대한 논의를 주로 많이 다루어 온 유학에서는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고 마음을 닦는 것을 수양의 기본으로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학이 개인의 인격 수양만을 주장하진 않았다. 군자의 과업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은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통합을 강조했다는 장점을 가 진다. 개인적 수양과 사회적 실천을 함께 추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수신제가치국 평천하’의 사상은 사실 유학적 전유물이 아니며, 중국 제자백가의 학설 중에도 ‘수신’과 ‘치 국’, ‘평천하’ 중 하나라도 부정한 경우는 없었다. 

노자의 수양론도 도덕허무주의가 아닌 현실사회를 최종 지향점으로 하며, 무욕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여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 그리고 노자철학을 이은 장자 또한 허정(虛靜)의 수양을 통한 무위(無爲)의 통치론을 제시, 개인의 자유를 위한 수양론을 사회적·정치적으로 구성 하였다.10)

불교의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위로는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라는 뜻이며, 존 재 간의 연결 관계에 주목하는 연기론은 사회 갈등은 물론 생태적 공공성을 살릴 수 있는 개념이

다. 이런 이념적 기반을 바탕으로 불교에서도 수양은 사회적, 대중적 성격을 병행해 왔다. 근대기 우리나라 불교잡지들을 검토한 결과 1919년 3.1운동 전후로 불교계의 혁신과 개혁운동을 지향하는 대중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불교교화를 위한 대중의 수양론이 등장했었다는 연구 보고 )도 있다. 어쨌든 동양의 수양학이 근본적으로 수양의 주 대상으로 삼은 것은 마음이며, 이에 따라 수양인

은 수심(修心)을 하고자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 존재론이나 인식론에 중점을 둔 서구적 사유법 과 달리 동양의 수양학은 마음을 닦는 일과 존재의 근원적인 도달점에 관심을 두었으며, 이 관심 을 바탕으로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개인의 마음 닦는 일에 멈추지 않고, 인간의 삶 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 본연의 생명성이나 당시 사회문제들을 함께 궁구함으로써 개인의 단독적 진화가 아닌 주변과의 공진화(共進化)를 실천하려 했다.

개인 내적인 완성과 더불어 사회 참여를 지향했던 학문으로서 수양학은 정치·경제·인간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제시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 수양학을 혁신적으로 계 승한 근대한국 신종교들은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부딪히는 가운데 민중의 주체성을 보존할 수 있 는 수양학을 제시해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의 위험이라는 새로운 테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동양의 수양학의 명맥을 이어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버전의 수양학으로서 그 역할 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근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와 과학문명의 발달 속에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지구적 위험, 그리고 차별과 소외, 혐오 등이 발생해왔다. 이러한 지구위험의 주된 요인인 ‘인류세’에 대한 논의와 성찰이 활발해짐에 따라 요즘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지구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지구인문학으로서의 수양학, 즉 지구수양학은 개 인의 내적 완성과 더불어 지구적 연대를 지향하게 된다. 이때 지구적 연대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 과 사물을 포괄하는 전 지구적 존재들 간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간 동양의 수양학이 개인의 완성 과 더불어 사회적 실천을 병행해 왔다면, 지구의 위험을 기점으로 출발하는 이 지구수양학은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바탕으로 개인적 심성 도야를 통한 내적 완성 및 지구적 연대를 함께 추구한다. 

지구수양학은 전 지구적 존재들이 지구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긴밀한 상호의존관계에 있으

며, 따라서 수양을 통한 개인의 완성도 단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지구공동체의 조화로운 운용과 더불어 진행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본 연구에서 다루려는 두 종교 외에도 근대한국 의 신종교 사상은 이와 같은 지구수양학적 윤리와 방법론을 담지하고 있다. 동학·천도교에서 ‘천지부모는 일체’라 하여 지구가 곧 모든 존재들의 부모이자 포태임을 강조했던 점, 정역이 ‘十五一言’과 ‘十一一言’을 통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던 점, 대종교의 ‘삼일(三一)사상’, 그 중에서도 ‘사물사상’에서 사물이 내재한 신성을 드러냈던 점, 원불교의 삼동윤리 등은 지구수양학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신종교를 단순히 민족, 민중 운동의 틀 안에 매몰시킬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

적 종교심성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 종교운동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 종교적 이념이라는 틀 내에서가 아닌, 근대에 등장한 한국의 자생적 담론으로서 ‘지구위험에 대응하는 한국 發 윤리와 방법론’으로 조명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종교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신영성운동14)에서 도  인간과 자연의 친화를 강조하며 비인간 존재들과의 연대를 언급하고 있다. ) 한국의 신영성운 동 단체들의 경우 기수련을 통한 명상과 함께 타자, 나아가 전 지구를 배려하고 연대하고자 한다 는 점에서 지구인문학적 사유에 근접해 있다. 그럼에도 일부 신영성운동을 가리켜 ‘인류의 보편 적인 가치나 윤리 덕목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이 개인의 육체적·정신적인 건강과 안녕, 그리고 심리적 평화만을 강조’ )한다는 비판은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비판을 받는 것은 신영성운동의 핵심이자 실천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수련 체계가 개인의 내적 자아완성에 방점을 찍음으로 인해 지구공동체를 향한 이타적 사랑의 강조는 단지 ‘도덕적 강령’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세션스(Sessions)는 신영성운동이 근본 생태론과 정반대라 고 지적한다. 신영성운동가들은 인간을 지구 진화 과정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 이는 비인간 존재와의 연대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인간의 위치를 위계 중심적으로 설정함으로 인해, 결국 ‘인간중심적인 지구중심주의’라는 오류 로 환원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구화시대의 위험에 관련하여 지구적 차원의 바이러스나 환경문제, 소외와 차별, 혐오문제,  인

간중심주의나 자본주의로 인한 양극화 현상 등이 존재한다.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아닌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 존재’로 인간을 위계화 하는 방법으로는 지금의 패턴을 벗어나 전 지구 적 존재들의 연대를 이룰 수 있을지는 재고해 볼 문제다. 지금의 지구위험시대에 필요한 수양학은 개인의 심성도야, 그리고 이러한 이원론적 사유의 해체를 함께 실천하는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

Ⅲ. 지구수양학의 윤리와 방법론

1. ‘은(恩)적 네트워크’ 기반 공경의 윤리

 

 1) 은(恩)적 네트워크 동학의 교조 수운은 1860년 음력 4월 5일에 도를 이루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포덕문(布德文)」

을 냈다. 「포덕문」에는 그의 득도 과정과 함께 ‘잘못되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고 도탄에서 헤매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우려가 담겨 있다. 그가 구도에 몰입했던 것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득도 후 제시한 21자 주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과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는 누구나 이 주문으로 천인합일을 이룰 수 있게끔 하는 대중적 수련법이다. 수양의 출 발점은 백성과 함께 하는 데 있었다.

원불교 수양학의 특징도 시대상황과 맞물려 나타난다. 대산은 마음공부를 가리켜 ‘마음공부로 도덕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는 근본을 삼아야’ )한다고 하여, 개인의 내적 수양력이 외부로 확 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렇듯 원불교의 수양학이 대사회적 성격을 띠는 이유는, 「물질이 개벽되 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표어에서도 알 수 있듯 외세의 침략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도탄에 빠진 창생, 개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신개벽’이라는 변혁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 이다. 

동학·천도교, 그리고 원불교의 공공성은 ‘개벽(開闢)’이라는 기치 아래 ‘민중 스스로의 공공 성’ )으로 발동되었으며, 이에 따라 각 수양법도 민중적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다. 동학과 천도교 에서 매일매일, 매 끼니 매 순간을 모두 의례의 연속이라고 보아 이를 역행하는 제천의례를 중시 하지 않는다거나 ), 원불교 ‘무시선법(無時禪法)’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마치를 든 공장(工匠)도 선을 할 수 있다’22)고 하여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 점을 보면 확인되 는 부분이다.

이러한 공공성은 당시 시대상에 요청되던 사회적 공공성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동학·천도교, 원불교 모두 ‘지구’라는 공동체의 공공성을 지향한다. ‘시천주’는 인간뿐 아니 라 모든 존재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뜻하고, ‘일원상의 진리’에서도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라 하여 사사물물에 전부 일원의 진리가 갊아 있음을 의미한다. 전 지구적 존재 모두가 곧 진리의 실상이라 본다는 점에서 공공성의 영역을 사회를 확장한 지구로 설정할 수 있고, 따라 서 민중적 공공성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으로 확대하여 실천할 필요가 있다.

베리가 말한 지구공동체는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가이아 가설’을 전제한다. 지구는, 그리고 지구의 존재들은 인간을 위한 도구적 존재가 아니며 각자의 권리를 가진다. 반면 인간은 그간 지구를 약탈해 왔다는 게 그의 견해다. 마찬가지로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도 인간이 자 연과 사회를 이원화함으로 인해 부주의하게 하이브리드를 양산해왔고, 이로부터 지구의 손상이 발 생했다고 본다. 베리와 라투르의 이 견해들을 통해 지구적 공공성의 발현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유기체로서의 지구와 개별 구성원으로서의 전 지구적 존재들이 일방적 ‘약탈’이 아닌 ‘상 호작용’을 해나갈 때,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이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전 지구적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에 대해서는 현대 서구 이론가들도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 다. 특히 라투르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통해 인간과 사물이 어 떻게 동맹을 맺을 수 있는지 밝힌다. 그에게 ANT는 ‘이질적 존재자들의 연합의 전개를 묘사하는 방법’ ), 즉 인간과 비인간을 막론한 ‘행위소’들이 하이브리드 공간인 연결망에서 서로 ‘관 계’를 형성한다는 관계론이다. ANT 이론은 모든 존재들이 이 연결망에서 서로에 의해 규정된다 고 보기 때문에 자연과 사회 중 특정한 무언가가 우선시 될 수 없게 된다. 라투르와 같은 신유물 론자의 견해는 인간이나 비인간 내지는 사물이 지니는 상호의존성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의 이 연관성은 일찍이 동학의 2대 교주 해월의 사상에서 다뤄진 바 

있다. 그는 ‘천지부모는 일체’, ‘천지는 만물의 아버지요 어머니’ )라고 말하여, 지구는 곧 모 든 존재들의 부모와 같은 ‘포태’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천지가 아니면 나를 화생함이 없고 부 모가 아니면 나를 양육함이 없을 것이니, 천지부모가 복육하는 은혜가 어찌 조금인들 사이가 있겠 는가.’ )라고 하여, 지구와 개별 존재간의 관계를 ‘은혜’로 표현한다. 

소태산의 ‘사은(四恩)’에서도 이 관계성을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의 네 가지 은혜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늘의 공기, 땅의 바탕, 일월의 밝음, 풍운우로의 혜택, 금수초목 등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도 나에게는 은혜로운 존재이며, 이들과 주체의 관계를 가리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 또한 정산이 언급했던 ‘삼동윤리’의 ‘동기연계(同氣連契)’ 강령에서는 인류뿐 아니라 금수 곤충까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이니 대동화합해야 함을 주장한다. 전 지구적 존재들 간의 긴밀한 상호의존성, 나아가 ‘은혜로운 관계’라고 설명되 고 있는 이 관계성, 집약하여 표현하건대 ‘은(恩)적 네트워크’는 지구수양학이 추구하는 윤리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동학·천도교, 그리고 원불교가 지구의 ‘은(恩)적 네트워크’에 중심을 두었다면, 라투르와 같은 이론가들은 –비유적으로 표현하건대- ‘연합 네트워크’에 중심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은(恩)적 네트워크 중심의 관점은 이 지구를 모든 존재를 키워주는 부모 같은 존재임을, 그리고 전 지구적 존재들 각자가 서로를 먹이고 받쳐주는 형제 같은 존재임을 전제하는 데 반해, 연합 네트워크 중 심의 관점은 각 존재들이 부모나 형제가 아닌 ‘행위자’로 작용한다고 본다. 지구 구성원 간의 관계 구조를 사유하는 데 있어 어떤 부분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라 여겨진다.

2) 공경과 불공의 윤리 수운이 여종을 수양딸과 며느리로 삼았던 일화, 그리고 해월이 베 짜는 며느리를 한울님이라 이 름 했던, 또는 소태산이 어느 노부부에게 불효하는 며느리를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주도록 권유했 던 일화가 있다. 이 일화들은 공경 또는 불공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해월의 ‘삼경(三敬)’ 사상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세 가지를 말한다. 삼경사상은 그의 ‘우주적 연 대성에 대한 공감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타자의 개체적 존재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본질적 화(和)의 관계를 정립한다. ) 해월신사법설에는 공경의 윤리에 대한 언급이 상당수 보인다. 해월 은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어린아 이 같이 하라’거나, ‘물건을 공경하면 덕이 만방에 미친다.’고 말한다. 특히 「내수도문」에서는 밥을 하거나 방아를 찧을 때, 식사하거나 다른 집을 왕래하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할 때 공경의 윤 리를 실천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원불교의 경우 곳곳에 위치한 모든 존재를 부처로 정의하고 일마다 불공할 것을 권장하는 소태 산의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 사상을 기반으로 ‘불공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 다. 정전 「불공하는 법」에서는 ‘우주 만유는 곧 법신불의 응화신(應化身)이니, 당하는 곳마다 부 처님(處處佛像)이요, 일일이 불공 법(事事佛供)’이라고 하여, 전 지구적 존재들이 전부 법신불이라 는 궁극적 실재의 응화신이므로 등상불이 아닌 각 실재에 사실적인 불공을 할 것을 강조한다.

동학·천도교의 공경과 원불교의 불공은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까지 그 대상으로 삼고 있 다는 점에서 ‘지구에 대한 공경과 불공의 윤리’를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토마 스 베리 외에 래리 라스무쎈(Larry L. Rasmussen)도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을, 마찬가지로 신 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윤리로 책임과 연민 )을 제 시한 바 있다. 이로부터 한국의 신종교뿐 아니라 신학에 있어서도 지구중심주의적 공경의 윤리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구의 모든 존재들을 공경하거나 불공하는 건 타자를 ‘한울님’, ‘부처님’으로 여길 때 그 

극치를 이룬다. 천도교 사상가인 이돈화는 ‘한울은 범신관적(汎神觀的)이며 만유신관(萬有神觀)으 로 해석’ )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김용준은 이돈화의 이 견해를 가리켜 ‘범신론적 일신관’으로 정의했다. 수운이 신비체험 때 신과 대화한 것은 일신론의 근거이고, 이돈화는 ‘물물천사사천(物物天事事天)’등의 구절은 범신론의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는 ‘반대일치’의 원 리를 써서 일신론과 범신론을 조화하고 통합하려 했다고 본다. ) 궁극적 실재를 초월적인 존재로 만, 또는 내재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며, 초월성과 내재성을 모두 담지한 존재로 보고 있다. 원불교 신앙의 대상인 ‘법신불 사은’에 대해 노권용은 ‘범재불론적 내지 범재은론적 성격’

을 띤다는 의견이다. 그는 ‘법신불’이 절대유일의 총상 또는 총덕이며 ‘사은’은 그 구체적 별 상 또는 별덕이라고 해석한다.  ) 전체를 총괄하는 유일무이의 궁극적 실재인 ‘법신불’, 그리고 이 법신불의 개별적인 나타남으로서 ‘사은’은 하나로 통합되는 동시에 구분될 수도 있는 ‘일이 이(一而二)’의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견해다. 이찬수도 유사한 견해를 보인다. 그는 정산의 ‘동기 연계’에서 ‘동기성(同氣性)’이 범재신론의 기초가 된다고 설명한다. ‘동기’ 자체가 만유를 살 리고 포섭하는 선행적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은사상도 범재신론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 다.33)

이와 같이 동학·천도교, 원불교는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공경 또는 불공의 대상을 내 앞에 현현하는 존재로 설정할 수 있다. 개별 존재 각각이 궁극적 실재인 동시에 전 지구적 존재들을 품어 안는 법신불에, 한울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이들 사상이 범신 (불)론적 관점에 국한되었다면, 법신불이나 한울과 동일한 위격의 궁극적 실재가 수 없이 많이 등 장했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개별 신들을 숭배하는 샤머니즘적 신앙 체계를 갖추게 될지언정,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한 기운으로 연결된 형제, 즉 상호의존적 관계의 존재들로 인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사사물물을 공경과 불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개별자들을 각각 한울님, 부처님으로 봄과 동시에 서로간의 긴밀한 연결 관계도 함께 고려함을 의미한다. 이는 주체가 ‘자신이 곧 부처’라는 진리 아래 단독적으로 자신의 인격 완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 완 성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 ‘은(恩)적 네트워크’에서라 야 완성을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학·천도교, 원불교의 지구수양학이 개인의 완성만을 추구 하지 않고 전 지구적 연대를 함께 지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자기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동학과 천도교의 수양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수심정기(守心正氣), 즉 마음을 잘 보존하여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 이는 마음과 기운을 함께 다루고자 함으로, 수심(守心), 즉 마음을 보존하는 것과 정기(正氣), 즉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이 밀접하다는 걸 의미한다. 수심정기를 지향한다는 것 은 ‘마음과 기운’을 지닌 자라면 누구나 수양을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지식의 유무 나 계급의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수심정기를 추구할 수 있다. 성리학의 수양법이 ‘독서행위 에 기초한 학습행위’로 변질되고, 이에 고급관료가 되기 위한 교과과정으로 고착화된 것에 대한 수운의 대응이 이렇게 수심정기 수양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 

원불교의 수양도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을 지향한다. 원불교 개교표어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물질과 정신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의지를 그대로 반 영한 수양법들을 제시한다. 원불교 표어, 즉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 (無時禪) 무처선(無處禪)’, ‘동정일여(動靜一如)’, ‘영육쌍전(靈肉雙全)’, ‘불법시생활(佛法是生活) 생활시불법(生活是佛法)’은 심성의 도야를 통해 실제 삶을 바르게 운용하고, 삶을 바르게 운용 하는 일이 곧 심성 도야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남성, 고용인, 부유층, 지식인들만이 아 닌 여성, 피고용인, 지식이 적은 사람도 수양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위해 ‘일상수행의 요 법’과 ‘일기법’을 비롯한 생활 속 수양법들이 존재한다.

동학·천도교, 원불교의 수양은 이와 같이 민중 누구나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개벽종교로서의 경향 자체가 모든 존재들의 평등성을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하거 니와, 정신적 영역뿐 아니라 물질적·신체적 부분을 함께 가꾸어 간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식의 물 질과 정신 이원론을 지양하고 있다고도 해석 가능하다. 

원불교는 창립 초기에 방언공사 외에도 작농과 양잠, 축산, 원예 등 산업과 더불어 황무지를 개 간하거나 과원을 경영했는데, 이러한 과정들을 단지 종교 산업만이 아닌 영육쌍전, 이사병행(理事並行), 동정일여(動靜一如)의 수양으로 보았다. 소태산은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 세계가 열리게 하며, 동(動)과 정(靜)이 골라 맞아서 공부와 사업이 병진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 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구분을 지양함으로써 도학과 과학, 이치와 일, 동과 정을 구분하는 것을 반 대한 것이자,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 수련을 쌓는 생활과정이 세간을 떠난 데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을 지양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심성을 도야하게 하는 대중적 수양을 추구한 것은 곧 ‘개인적 심성 도야와 공경·불공의 통합’ 이라고 정리된다. 

동학과 천도교의 주문 수련이 어떻게 해서 개인적 수양에 한정되지 않고 지구 구성원들을 향한 

공경의 실천과 통합이 가능한지는 다음의 견해로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주문 수련을 열심히 한 결과 내 안에 한울님을 확실히 모시게 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존재 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한울님처럼 모실 수 있는 것(事人如天)이다. 다른 사람을 한울 님처럼 모시면 그 사람 또한 감응하여 나를 한울님처럼 모시게 된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 이 모이고 기화(氣化)가 상통하므로, 하는 일도 원만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사람들에 게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에게도 실천하면 세상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된다.38)

원불교의 경우 지구공동체의 은혜에 주목하는 사은(四恩) 사상을 ‘일상수행의 요법’을 통해 직 접 실천하도록 한다. ‘일상수행의 요법’ 중 다섯 번째 조목인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

자.’는 사은에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도 이것이 곧 내 마음을 요란하게 하는 ‘경계(境界)’임을 알아차려 즉시 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환시키자는 실천법이다. 정산은 이러한 ‘일상수행의 요 법’을 가리켜 ‘자성 반조의 공부’로서 ‘천만 경계에 항시 자성의 계정혜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 즉 개인이 일상 속에서 원망할 일이 생길 때 본래 성품을 회복함으로써 원망심을 버리고 감사심을 얻는 수양법으로, 후일 대산이 설명했듯 ‘전 생령이 구원을 받는 방법, 세계 평 화의 근본, 온 인류가 서로 잘 사는 묘방’ ), 개인의 마음을 닦는 수양이 곧 ‘전 생령의 구원’ 과 통합되도록 하는 방법론이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지양하는 방식 아래 개인의 심성을 도야하는 수양, 그리고 지구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공경과 불공의 실천이 통합되는데, 이로부터 인간과 비인간, 땅과 하늘, 문명과 자연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는 관점 또한 수양을 통해 해체할 수 있게 된다.  해월의 ‘이 심치심(以心治心)’은 자신이 지닌 한울의 마음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면 ‘화가 바뀌어 복이 되고 재앙이 변하여 경사롭고 길하게’ ) 됨을 강조한다. 지극한 수양으로 한울을 모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면 실제로 복이 넘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복’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 게 된다. 

이는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각 그 목숨이 있으니, 물건을 공경

하면 덕이 만방에 미친다’고 한 해월의 설명과 연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수양으로 내게 한울의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 사사물물이 전부 시천주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날짐승이건 털벌레건 모 두 공경하게 되고, 이는 곧 지구적 공공성의 실천으로 이어져 그 ‘복’이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 다. 

이렇게 물질과 정신의 이원화를 지양할 뿐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이원론적 구분을 해체하게 

되는데, 지구수양학이 가지는 이러한 성격은 하나의 특이성이자 시사점을 지닌다. 바로 지구 구성 원들과 궁극적 실재 간의 수직적이던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환은 ‘지금껏 하등하다고 여겨진 생명체나 기계를 향한 성찰’ )에서 시작된 탈인간중심주의에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인 베넷(Jane Bennett)이 강조한 ‘정치생태학’ )은 비인간 존재들의 권리 에 주목하여 그들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시키고,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확립 하려 한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소중한 타자성’ ) 또한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화를 거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반려종이 될 수 있는 수평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이 수평적 관계의 대상을 한울 또는 법 신불까지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운에게 한울은 절대자이자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러면 서도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임을 깨달아 각자가 궁극적 실재를 모시고 있음을 밝혔 다.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인정했던 한편으로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을, 믿음보다는 깨달음이 강조 되는 방향으로 한울에 대한 함의가 더욱 풍부해졌고 깊어졌다. ) 해월의 ‘베 짜는 한울’ 이야기 는 이러한 수평적 관계를 반영하며, 궁극적 실재의 영역을 수직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태산은 진리의 실상인 ‘일원상의 진리’를 ‘제불 제성의 심인’이자 ‘일체 중생의 본 성’으로 믿는 것이 곧 신앙임을 말하여,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존재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 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어느 노부부에게 ‘그대들의 집에 있는 며느리가 곧 산 부처’라고 했던 소태산의 설득은 ‘하늘만 높이던 사상을 땅까지 숭배하게’ ) 한다는 대산의 설명과 더불어, 궁 극적 실재와 지구 구성원들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는 동시에 수평적으로 구축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지구수양학은 전 지구적 존재들의 수평적인 관계를 궁극적 실재와의 관계로까지 확장

한다. 그래서 탈인간중심주의가 그 동안 하등하다고 여겼던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전환했다면, 지구수양학은 이들 존재를 평등한 동시에 ‘공경과 불공을 받아 마땅한 존 재’로 정의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즉 비인간의 주체성과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는 탈인간중심주의 에 지구수양학이 공경과 불공이라는 실천성을 보완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과 비인간의 수평적 관 계를 인간·비인간·궁극적 실재의 수평적 관계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동학·천도교와 원불교가 지닌 지구수양학적 특성은 개인적인 수양이 지구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공경과 불공과 통합된다는 점이다. 개인의 심성을 도야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가 는 과정이 다른 존재를 향한 공경과 불공을 실천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는 동학·천도교와 원 불교가 인식하듯 지구 존재들 간의 관계가 ‘은(恩)적 네트워크’, 즉 긴밀한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공경과 불공을 실천함으로써 이 네트워크를 더욱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음을, 이로부터 연대를 실천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연대는 다른 존재와 함께 더불어 하는 것을 주된 요소로 삼는다. 강수택은 자유, 평등, 박애 같

은 관념들이 연대의 전제가 된다고 말한다. 즉 연대 자체가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수평적 관계에서 구성원들의 집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 그리고 김용해는 연대에 대해 인류를 위한 상호책임을 지는 것, 재난재해 같은 위험을 줄여나가는 예비적 상호보험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 전 지구적 존재들을 향한 공경과 불공, 이를 통한 ‘은(恩)적 네트워크’의 활성 화는 지구위험에 대비하는 상호보험, 수평적·집합적인 노력으로서 지구적 연대를 위한 하나의 실 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수양과 통합되는 공경과 불공’은 자유, 평등, 박애와 더불어 지구 위험시대 연대의 새로운 전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Ⅳ. 맺음말

이 연구는 지구위험시대에 대응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발한 지구인문학적 사유와 그 맥을 함께 

한다. 특히 자연을 도구화하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해체하고 비인간 존재들을 공경과 불공의 대상 으로 삼는 것이 결국 인간 스스로의 내적 도야와도 분리되지 않는 일임을 논의하고자 했다. 또한 그만큼 모든 존재가 빠짐없이 긴밀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단독으로 심성 을 도야하여 그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따라서 관계 속에서 타자를 위한 공경과 불 공을 실천하는 행위가 곧 자신의 심성을 도야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이 점은 지 구위험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구위험을 기점으로, 우리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개인의 수양과 지구적 윤리 실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동학·천도교, 원불교가 지닌 지구수양학적 요소들은 후일 서구적 사유에서 제시하지 않은 관점 들을 이미 담지하고 있었다. 이는 지구위험시대에 부응하는‘한국적 독창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

다. 금수초목과 공기를 비롯한 물질들에 이르는 비인간 존재들까지 주체적 존재, 긴밀한 관계성의 존재로 본다는 점은 서구에서 출발한 신유물론이나 포스트휴머니즘과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 만 이들 서구적 사조에서 중점을 두지 않는 윤리와 방법론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은(恩) 적 네트워크’, 공경과 불공의 윤리, 개인적 수양과 이 윤리 실천의 통합에 따른 한국적 독창성이

다. 이 독창성은 지구위험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수양을 실천할 수 있을 때 구현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적 이념의 울타리 내에서가 아닌 보편적, 대중적 성격의 윤리와 방법론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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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구살림학】인류세시대의 한국철학* -‘님’을 노래한 시인 이규보 - 조성환**

 12] 【지구살림학】인류세시대의 한국철학* -‘님’을 노래한 시인 이규보 - 조성환**

32)

요약문   오늘날 인류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지구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류세’의 시대

를 살고 있다. 19세기의 동학사상가 해월 최시형의 용어로 말하면 “천인상여(天人相與)”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것은 지구와 만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종래와 같이 인 간 이외의 존재들(non-human beings)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최시형은 이러한 태도의 전환을 “인심개벽”이 라고 하였다. 이것은 최근에 서양에서 대두되고 있는 ‘대지윤리(land ethics)’ 또는 ‘지구윤리’(Earth eth ics)와 상통한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은 ‘지구적 위험’이라는 공통의 문제상황에 직면하여 조금씩 그 시각 이 좁혀지고 있는 추세이다.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철학적 유사점에 주목하여,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인 류가 지구와 만물을 과연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한국철학사에 나타난 ‘응물론’의 흐름을 추적함으로써 고찰하고자 한다. 

차 례

Ⅰ. 머리말 : 인류세와 지구학

Ⅱ. 동아시아의 응물론(應物論) 전통

Ⅲ. 이규보의 인물상의(人物相衣) 사상

Ⅳ. ‘물론(物論)’에서 ‘님론’으로

Ⅰ. 머리말 : 인류세와 지구학

 

* 이 글은 지난 1년 동안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진행했던 <지구인문학연구회>에서 스터디한 내용과 원불교 사상연구원의 허남진 연구교수와의 대화에서 많은 계발을 받았음을 밝힌다. **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일부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현 시대는 ‘인류세’(anthropocene)오 분류된다고 한다. 인류세란 “인간

이 지구시스템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대”라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지구시스템에 따라 살던 인류가 그 힘이 점점 강성해짐에 따라 지구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이 변화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이다. 이상기후로 인해 고온이나 폭우는 물론이고 산불도 빈번해지고 있다고 한다. 불길도 거세져서 소방관들이 통제하지 못할 정도인데, 그 원인은 기후변화에 있다는 것이다. 산불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최근의 화재는 인류 세의 징후라는 것이다. ) ‘인류세’라는 말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이 다

른 생명체들을 약탈한 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자신의 일시적인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들을 대량으로 희생시킨 결과인 것이다. 마치 전통시대에 귀족이 노비의 노동력을 빌려서 호사를 누렸듯이 말이다. 이

러한 관계를 설명해 주는 개념이 ‘biopiracy’이다. ‘biopiracy’는 1993년에 팻 무니(Pat Mooney)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고, 이후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에 의해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이 개념은 약초나 씨앗과 같은 제3세계의 유전(genetic) 자원과 전통 지식을 지적 재산권이라는 이름 하에 아무런 허가도 받지 않고 ‘약탈’하는 행위를 말한다. ) 

그런데 무니나 시바가 말하는 biopiracy가 국가와 국가 간의 해적행위라고 한다면,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지구위기는 인간과 지구 사이의 해적행위이다. 인간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구의 자원을 ‘약 탈’(plunder)한 결과가 오늘의 기후위기이자 생물다양성의 감소이기 때문이다.3)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의 인류는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초의 학살이 제국주 의에 의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제노사이드였다면, 오늘날의 학살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제노 사이드인 셈이다. 이처럼 ‘지구학’은 문제의 원인과 진단을 ‘지구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학문을 말 한다.

지구학은 편의상 두세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자연과학적으로 연구하 는 ‘지구자연학’과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고 철학이나 종교학적으로 연구하는 ‘지구인문학’이 다. 이 외에도 지구정치학이나 지구경제학과 같은 분야를 ‘지구사회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

다. 이 글에서 말하는 지구인문학은 지구인문학과 지구사회학을 아우르는 방편적인 개념이다. 

서양의 지구인문학은, 철학과 종교 분야에 한정해서 말하면, 크게 두 가지 주제가 대두되고 있다. 하 나는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고 지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려는 작업으로, 토마스 베리의 지구 의 꿈이나 래리 라스무쎈의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신학자나 종교학자들에 의 해 논의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인간과 사물(동식물 포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작업으로, 제인 베넷의 신유물론이나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 등을 들 수 있다. 이 논의는 주로 철학이나 인류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래서 지구인문학은 지구와 사물, 전통적 개념으로 말하면 천지와 만물에 대한 인식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하려는 인문학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시도는 150여년 전에 이미 한국에서도 시작되고 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탄생한 개벽종교가 그것이다. 이들은 서구적 근대화가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지구적 차원에서 생명과 평화의 문제를 고민하였다. 특히 동학의 지도자 해월 최시형(1827~1898)은 천지와 만물에 대한 인식을 생태적 관점에서 새롭게 함으로써 훗날 ‘한살림 운동’이 탄생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양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구와 사물에 대한 인식과도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개벽종교와 지구인문학의 철학적 유사점에 대해서는 최근에 지구인문학연구회 멤버들을 중심으로 몇 

차례 논문으로 발표된 바가 있다. ) 그래서 이 글에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개벽종교 이전의 한국 사상에서의 사물인식, 그 중에서도 특히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9∼1241)의 물론 (物論)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의 개벽종교와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장차 한국사상 안에서, 더 넓게는 동아시아사상사 안에서 지구인문학적 요소를 발굴하여, 그것을 자원으로 삼아 “동아시아적 지구인문학”을 모색하는데 기초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여러 한국사상가들 중에서도 특히 이규보에 주목한 이유는, 박희병의 선구적인 연구에도 소개되어 있

듯이, 그의 물론(物論)이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서 인간과 만물의 동류성(同類性)을 주장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개벽종교는 물론이고, 지구인문학과도 상통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동 아시아사상사에서 ‘물론’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 는 것으로 본론을 시작하고자 한다.

 

Ⅱ. 동아시아의 응물론(應物論) 전통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의 사물에 관한 논의는, 서양과는 달리, 사물에 대한 인식보다는 ‘태도’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사물에 대한 태도는 장자(莊子)적인 개념을 빌리면 ‘응물(應物)’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응물’이란 말 그대로 “사물에 응한다”는 뜻으로, 비슷한 개념으 로는 접물(接物)이나 대물(對物) 등을 들 수 있다. 가령 동경대전의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에는 “心兮本虛(심혜본허), 應物無迹(응물무적)”이라는 표현이 보이고, 최시형의 해월신사법설에는 「대인 접물(待人接物)」이라는 제목의 챕터가 있다. 여기에서 “心兮本虛(심혜본허), 應物無迹(응물무적)”은 “마음은 본래 텅 비어 있어서 외물에 응해도 흔적이 없다”는 뜻으로, 그 사상적 기원은 장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장자는 “虛而待物(허이대물)=텅 빈 마음 상태에서 외물이 오기를 기다린다)이나 “應而不藏(응이부장)=외물에 반응할 뿐 담아두지는 않는다)는 응물론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사 마천은 “應物變化(응물변화)”, 즉 “외물에 응해서 변화한다”고 소개하였고(사기(史記)), 3세기의  장자 주석가 곽상은 “허심으로 응물한다”(虛心以應物)는 표현으로 정식화하였다. 이후 허심(虛心)과 응물(應物) 개념은 동아시아사상사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 최제우의 “심허-응물”도 이런 전통을 따르고 있다.6)

그런데 “외물에 대한 대응”은 ‘물(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가령 유

학에서는 그 대상이 군주냐 부모냐, 선생이나 친지냐에 따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 대응 방식의 차이를 행위규범으로 규정한 것이 ‘예(禮)’이다. 반면에 성리학의 경우에는, 흔히 “만물일체 의 인(仁)”이라고 알려져 있듯이, 만물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물론(物論)을 말하고 있다. 한편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이라는 챕터 이름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사물을 고르게 인식하는 논의”를 전개하였

다. “사물을 고르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래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장자는 사물에 대해서 “제물(齊物)이라는 인식론을 바탕으로 응물(應物)이라는 태도론”을 전개하였 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중기의 사상가 김시습은 「애물의(愛物義)」라는 제목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만물을 사랑하라

는 ‘애물(愛物)’의 태도를 강조하였고, 조선후기의 실학자 홍대용은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론적 차등을 부정하는 ‘인물균(人物均)’ 사상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조선말기의 기학자 최한기는, 야규 마코토의 연구에 의하면 ), 외물과의 ‘통(通)’을 중시하였다. 그래서 김시습이 애물(愛物)이라면, 홍대 용은 균물(均物), 최한기는 통물(通物)로, 각 사상가의 응물론을 거칠게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응물론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것은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여물론(與物論)’이다. 그 이유는 개벽 사상과 지구인문학과의 깊은 연관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박희병의 선구적인 연구에 힘입어, 이규보의 여물론(與物論)을 개벽학과 비교하는 형식으로 고찰해보고, 거기에 담긴 지구학적 의미를 생각 해 보고자 한다.  

Ⅲ. 이규보의 인물상의(人物相依) 사상

박희병은 1999년에 출간된 한국의 생태사상(돌베개)에서 이규보의 사상을 생태철학적 측면에서 고

찰하면서 그의 ‘물론(物論)’을 같이 논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이규보는 사물에 대해 두 가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만물인류(萬物一類)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여물(與物)의식이다. 여기에서 ‘만물 인류사상’이란 “만물을 일류(一類)로 보네”(萬物視一類, 「北山雜題」)라는 이규보의 시구에서 따온 표 현으로 ), 흔히 말하는 ‘만물일체사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박희병은 이것을 장자의 제물(齊物)사상의 영향으로 보는데, 다만 단순한 수용은 아니고 이규보가 나름대로 ‘자기화’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12 0쪽). 그 이유는 이규보의 만물일류사상은 장자의 제물사상에 ‘측은지심’과 ‘자비’가 결합된 형태 라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다 같이 살기 위해 하는 짓이니 어찌 너(=쥐)만 나무라겠니 - 「쥐를 놓아주다(放鼠)」 어찌 화롯불 없으리요만 (이를) 땅에 내려놓는 건 자비심 때문 - 「이를 잡다」 (파리가) 술에 빠져 죽으려 하니 맘이 아프네. 살려주는 은근한 이 마음 잊지 말아라. 

- 「술에 빠진 파리를 건져주다」

여기에는 이규보가 쥐, 이, 파리와 같은 미물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

데 박희병에 의하면 이것은 단순한 애물사상의 발로가 아니라, 만물일류사상이 가미된 애물사상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조선중기의 김시습의 애물사상보다는 중국의 장횡거나 왕양명에 더 가깝다고 평 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김시습의 애물사상이 인간중심적인 차등적 물관(物觀)을 견지하고 있는데 반해, 장횡거와 왕양명은 민포물여(民胞物與) )와 만물일체의 인(仁)과 같이 우주적 스케일을 갖고 있기 때문이 다. 아울러 이규보의 사상적 연원에 대해서는 장횡거나 왕양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 신의 사유를 전개하여 만물일류사상에 도달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121-122쪽).     

이러한 관점에서 박희병은 만물일류사상에서 우러나온 애물(愛物)의 태도를, 인간중심적인 애물(愛物) 과 비교하여, ‘여물(與物)’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여물’이란 비인간 존재까지도 이웃으로 생각한다 는 의미이다. 박희병이 들고 있는 이규보의 ‘여물’ 의식의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날아오는 한 쌍의 저 제비, 옛집을 잊지 않고 있었구나. 애써 나의 집 찾아 주니, 의당 친구로 대우하리(當以故人待). ) 

이 문장은 「옛 제비가 찾아오니(舊燕來)」라는 시의 첫머리인데, 여기에서 이규보는 옛 집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제비를 “친구로 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 이외의 존재까지도 ‘친구’의 범위에 넣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록 ‘여물’이라는 표현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동물까지도 친구로 대하고 있 다는 의미에서 박희병은 ‘여물’ 의식의 발로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규보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생물에 대해서도 여물(與物)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최시형이 최제우의 ‘하늘’의 범위를 인간에서 만물로 확장하여, “만물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한 것을 연상시킨다(萬物莫非侍天主). 이규보는 자신이 사용하 던 벼루를 향해 다음과 같이 명세하였다(123쪽).

나는 비록 키가 6척이나 되지만(吾雖六尺長) 사업이 너를 빌어 이루어진다(事業借汝遂). 벼루여! 나는 너와 함께 돌아가겠다(與汝同歸). 살아도 너로 말미암고 죽어도 너로 말미암겠다(生由是, 死由是) - 「소연명(小硯銘)」 

여기에서 ‘與汝(여녀)’는 ‘與物(여물)’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與(함께)’의 

범위가 생물에서 무생물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같은 ‘여물’ 이라고 해도 앞에 나온 파리나 쥐의 사례와는 유형이 다르다는 점이다. 물(物)에 대한 감정이 연민이나 자비보다는 ‘고마움’이나 ‘동지애’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희병은 이 구절에 대해 다 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글은 (…) 일촌밖에 안 되는 벼루라고 해서 6척의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 ‘나’는 물(物)인 벼루에 의지함으로써만 나를 실현할 수가 있다는 것, 그 고마움을 생각하면 ‘너’와 ‘나’ 두 존재 사이에 어떤 연대감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생사를 함께하고자 한다는 것, 이런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123쪽, 강조는 인용자의 것)

여기에서는 연민이나 자비보다는 의존, 감사, 연대의 정서가 느껴지고 있다. 그것은 나와 벼루가 서로 

의존관계에 있다는 자각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과 연대감이다. 이 경우에는 ‘여물’의 ‘與(여)’가 단 순한 ‘이웃’이나 ‘친구’의 의미를 넘어 ‘동지’나 ‘파트너’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즉 서로 협력 하고 연대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여(與)’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가 「續折足几銘(속절족궤명)」이다. 이 시는 다리가 부러진 책상을 고친 후에 쓴 글로, 

박희병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은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는 이규보의 생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124 쪽). 

  나의 고달픔을 부축해 준 자는 너요, 너가 절름발이 된 것을 고쳐준 자는 나다.   같이 병들어 서로 구제하니(同病相救), 어느 한쪽이 공(功)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사물에 대한 의존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과 사물의 상생관계

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병상구(同病相救)”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자신은 책상의 위로를 받았고, 책상은 자신에 의해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책상은 단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 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은혜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박희병도 이런 점에 주목하 여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규보는) 物我相救(물아상구)라고 요약할 수 있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 장자의 제물사상 에서 출발한 이규보가 장자를 자기화함으로써 존재의 근원적 연대성을 깊이 투시하는 데까지 이르 렀음을 잘 보여준다.”(124쪽)

여기에서 박희병은 이규보의 동병상구(同病相救)를 물아상구(物我相救)라고 바꿔 표현하면서, 이규보 가 “장자를 자기화”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자기화한 것일까? 여기에서 ‘자기화’ 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구체적으로 장자의 제물사상에 ‘무엇’이 추가되어 이규보적인 여물(與物) 사상이 되었다는 것일까? 앞서 소개한 생물들의 사례에서 자기화의 요소는, 박희병에 의하 면, 자비와 애물이다. 그런데 이곳의 무생물의 사례에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자비나 애물보다는 감 사나 연대의 감정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생물에 대한 감사와 연대의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인간과 사물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살려주는 상의(相依)와 상생(相生)의 관계

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달리 말하면 人物相依(인물상의)와 人物相生(인물상생) 관계에 대한 자각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장자의 제물사상이나 중국의 만물일체사상과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제물이나 만물일체는 ‘일체성’을 강조하지만, 상의나 상생은 ‘상호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렇 게 해석하면, 앞에서 살펴본 자비와 연민의 사례도 상호성의 측면에서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 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하늘이 낳은 물(物)을 도둑질하고(人盜天生物), 너는 사람이 도둑질한 걸 도둑질하누나(爾盜人所盜). 똑같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이니(均爲口腹謀), 어찌 너만 나무라겠니!(何獨於汝討) - 「쥐를 놓아주다(放鼠)」

  

여기에서 하늘과 사람 그리고 쥐는 각각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늘이 생성한 것을 사람이 훔치고, 사람이 훔친 것을 다시 쥐가 훔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 생성 하지 않으면 사람은 먹을 것이 없게 되고, 사람이 훔치지 않으면 쥐도 먹을 것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똑같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이다”는 말은 전후맥락상 단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의미하기보다는 상호연결성의 함축을 담고 있는 셈이다. “내가 살고 싶으니까 쥐도 살고 싶겠지”라고 하는 “살고 싶 은 욕망”에 대한 공감([均])이 “내가 하늘에 의존해 있듯이 쥐도 나에게 의존해 있다”는 의존관계에 대한 공감과 동시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기생하고 있듯이 쥐도 기생하고 있으 니까, 내가 하늘로부터 도둑질 하듯이 쥐도 나로부터 도둑질 하는 것이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규보가 쥐를 살려준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 즉 자기와 ‘동일한’ 의존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기 때문이 었다. 그 동일함과 공감을 나타낸 개념이 ‘균(均)’이다.  

Ⅳ. ‘물론(物論)’에서 ‘님론’으로 

이규보가 제비나 쥐와 같은 생물은 물론이고, 벼루나 책상과 같은 무생물에게까지 연민과 공감의 정 서를 느낀 것은 조선후기에 유씨부인(兪氏婦人)이 썼다고 하는 「조침문(弔針文)」을 연상시킨다. 가령 「 조침문」에서 바늘이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고 절찬하는 대목은 ) 이규보가 벼루에 대해서 “사업이너를 빌어이루어졌다”(「小硯銘」)고 평가한 구절과 상통한다. 장자적으로 말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에게 도 ‘덕(德)=탁월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유씨부인이 부러진 바늘에 대해서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라고 고백하는 대목은 이규보가 벼루에 대해서 “생사를 함께 하고자 한다”고 맹세했던 구절과 흡사하다. 마치 현대인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이나 벗으로 여기고 있듯이, 유씨부인이나 이규보는 바늘이나 벼 루를 ‘반려사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반려’의 범위를 생물에서 무생물로 확 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정서를 표현한 한국말이 ‘님’이라고 생각한다. ‘님’은 상대에 대한 그리움은 물론이

고 존경과 연민의 정서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동학사상가 해월 최시형이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도 ‘하늘님’이라고 한 것도 사물에게 ‘님’의 정서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하늘’을 노래한 시인 윤동 주가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한 것도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님’의 정서 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최시형 식으로 말하면 “하늘(=생명)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느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규보의 ‘물론(物論)’은 ‘님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소연명(小硯銘)」이나 「續折足几銘(속절족궤명)」는 “님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고, 유씨부인의 「조침문」은 “님을 그리워하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규보가 「소연명(小硯銘)」에서 “너를 빌어 사업을 이룬다”고 표현한 것은 최시형이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천인상여(天人相與)”, 즉 “하늘과 사람이 함께 한다”고 한 말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서 하늘은 만물 속에 들어 있는 생명력을 말한다. 최시형에 의하면, 사람은 만물 속의 하늘을 먹고 살 아가고, 하늘은 사람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생명력을 표현하는데, 그런 점에서 양자는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해월신사법설「천지부모」). 이것을 표현한 말이 ‘천인상여’이다. 이 표현을 빌리면, 이 규보가 생각한 인간과 사물의 관계는 “人物相與(인물상여)”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사물이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물(物)’을 ‘하늘님’으로 표현한 것이 최시형의 동학사상이

다. 따라서 이규보와 최시형은, 적어도 물론(物論)의 측면에서는, 서로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규보에게서도 ‘물(物)’을 ‘님’으로 대하는 태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규보가 인간은 사물에 의존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한 것은, 원

불교의 은(恩)사상과 상통한다. 원불교의 핵심교리 중의 하나는 사은(四恩)인데, 여기에서 ‘은(恩)’은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원불교에서는 그 은혜의 관계를 “천지·만물·동포·부모” 라는 네 가지로 범주화시켜서 사은(四恩)이라고 하였다. 

한편 최시형은 “천지가 부모이다”는 천지부모사상을 주창하였는데, 여기에서 ‘천지’는 넓게는 우

주 전체를, 좁게는 지구를 의미한다. 그래서 “천지가 부모이다”는 “지구를 부모와 같은 ‘님’으로 대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님이 부모님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물에 대한 이규보 의 인식과 태도는 훗날의 개벽종교와 유사한 점을 많이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사물 을 도구적으로 대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아마도 오늘날의 지구위기를 극복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만물을 님으로 대하라”는 이규보와 최시형의 ‘님론’을 실제 삶 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1] 【지구유학】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 - 통(通)과 균(均)을 중심으로 - 김봉곤*

 11] 【지구유학】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 - 통(通)과 균(均)을 중심으로 - 김봉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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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본고는 조선유학의 핵심주제였던 통(通)과 균(均)의 개념과 가치체계를 검토하여 오늘날과 같은 지구화와 민주주의 시대에 유학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검토해 본 것이다. 유학에서 통(通)은 천지나 인간, 만물과 같이 서로 다른 존재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仁)이며, 균(均)은 인간(人間) 이나 물질 상호간의 균평, 즉 의(義)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과 균은 천지와 인간, 만물간의 합일 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과 만물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화평한 질서로 유지하기 위한 가치체계로 기능해 왔 다. 공자나 맹자, 송대의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주자 모두 통과 균의 조화를 모색해왔다. 조선에서는 율 곡 이이가 이통기국(理通氣局)을 말하여 기국의 관점에서 사회개혁을 부르짖었고, 노사 기정진은 리통설을 주장하여 리통 속에서 분수의 완전한 실현을 촉구하였다. 조선조 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자유 와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로의 전환과 가치체계의 변화 속에서 1928년 충청도 홍성의 유교부식회(儒敎扶植會)에서는 유교가 전제주의와 계급주의를 타파하는 새로운 유교로 탈바꿈할 것을 선언하였고,  동시대에 원 불교에서는 일원상과 사은사요를 주장하여 통과 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우주적 질서와 사회관계를 주장하 였다. 이러한 전제주의와 계급주의를 타파하려고 하였던 유교부식회나 사은사요의 추구를 통해서 천지 만물 과 합일되고 공정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던 원불교의 정신은 오늘날과 같은 지구적 위기 속에서 유학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오늘날 지구위험시대를 맞이하여 유학이 민주주의 시대의 가치실현과 우주자연 만물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1) 탈중국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2)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 하는 세계시민적 유학으로 거듭나야 하며, 3) 인간와 자연의 공생을 도모해야 하며, 4) 생명, 평화를 고취하 는 유학으로 거듭나야 함을 역설하였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유학에서의 통과 균

Ⅲ. 조선유학에서의 통과 균

Ⅳ. 지구화 시대의 유학

Ⅴ. 맺음말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Ⅰ. 머리말 

지구는 미증유의 대재난을 겪고 있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이 진보하여 생활은 편리해지고 인간 의 수명은 늘어나게 되었으나,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생산력의 발전으로 수십 억 년 동안 유지, 보 존되어왔던 지구환경이 파괴되어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서 생활하기 대재난이 초래된 것이다. 국 가마다 공장을 세우고 도로를 개통하여 각종 생산품을 쏟아내고, 자동차가 폭증하여 도로를 가득 메꾸고 있어서, 이로 인한 대기오염과 환경파괴, 지구온난화와 같은 무서운 재난이 발행하여 오늘 날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파멸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삼림과 토지는 줄어들고, 이산화탄소 나 메탄가스 배출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극지방과 고산지대의 빙하지대가 녹아내리고 있고, 토양과 대기는 농약과 방사선 유해 물질 등으로 오염되어 있고, 대기는 유해물질이 섞인 미세먼지 가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각종 재난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인류가 멸종되고 모든 생명이 사라지는 현상이 올 것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다. 이에 인간과 인간,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해왔던 유학 역시 더 이상 기존의 유학체계에서는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 게 된 것이다. 

유학은 춘추전국시대에 공맹의 인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약육강식과 패도정치가 행해지는 속에 

인간 존재의 소중함과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주장해왔고, 중국 송대(宋代)에는 사대부의 인간이 천 지와 하나가 되는 우주적 질서를 모색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사회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계층이나 도농(都農)간의 조화로운 세상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유학이 들어온 이래 시대적 사명을 다해 왔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 시(國是)로 삼아서,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를 이끄는 지도이념으로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질 서를 모색해왔다. 율곡 이이는 이러한 유학의 지도이념을 이통기국으로 설정하여 기국의 관점에서 당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고 기정진의 경우 리통설을 제기하여 사회에서의 리통의 실현을 촉구 하였다. 

본고에서는 이처럼 통과 균을 통해 인간과 자연, 만물간의 조화와 균평한 질서를 추구해왔던 조 선 유학의 개념이 오늘날과 같은 지구위험시대에 어떻게 지구유학으로 발전해야 하는가를 그 가능 성과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Ⅱ. 유학에서의 통과 균 

유학은 춘추전국 시대에 마련된 공맹의 仁義와 성선설을 바탕으로 시대에 적합한 이념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왔는데, 그 핵심 사상은 통과 균이라고 할 수 있다. 통(通)은 천지나 인간, 만물과 같이 서로 다른 존재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仁)이며, 균(均)은 인간(人間)이나 물질 상호간의 균평, 즉 의(義)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과 균은 천지와 인간, 만물간의 합일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과 만물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화평한 질서로 유지하기 위한 가치체계로 기능해 왔다. 

역경(易經)에서는 자연 만물과 인간의 변화, 불변의 도리를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팔괘(八卦) 의 원리를 통해 64괘로 조합하고, 다시 계사전(繫辭傳) 문언전(文言傳) 등 10익(翼)을 통해 천지와 일월, 귀신과 사시(四時)와 하나가 되는 통(通)의 길을 제시하였다.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송대의 주염계(周濂溪) 역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지어 사람이 천지와  일체가 되는 것 과 성인(聖人)이 되는 길을 제시하였다. 태극도설에서는 무극-태극-음양-오행-만물로 전개되는 우주생성 속에서 이성, 선악, 오상 등으로 전개되는 인간의 도덕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통서에 서는 중용에서 말하는 성(誠)이 천도일 뿐만 아니라 인도의 근본임을 설파하여 궁극적으로 인도와 천도를 일치시키고 있다. 중용에서는 지극히 성실한 사람은 천도와 인도를 관통할 수 있다고 하였 기 때문이다.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誠)한 분이라야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다. 그 성(性)을 다하면 사람의 성(性) 을 다할 수 있고, 사람의 성(性)을 다하면 사물의 성(性)을 다할 수 있고, 사물의 성(性)을 다하면 천 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도우면 천지(天地)와 함께 나란히 설 수 있게 된다.1)

지극히 성실한 사람은 자신이나 타인, 만물의 성을 다할 수 있으므로,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

어서 천지와 함께 나란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의 질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인물은 북송의 장재(張載, 장횡거)라고 할 수 있다. 장

재는 「서명(西銘)」에서 천지와 인간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나의 이 조그만 몸은 그 가운데 뒤섞여  있다. 그러므로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나의 형체가 되었고, 천지를 이끄는 것은 나의 본성이 되었다. 백성은 나의 동포요, 사물은 나와 함께 사는 무리이다. 천자(天子)는 나의 부모의 종자요 대신(大臣) 은 종자의 가상(家相)이다. 나이 많은 이를 높이는 것은 천지의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이요, 외롭고 약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천지의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는 것이다. 성인은 천지와 덕 을 합한 사람이요, 현인은 빼어난 사람이다. 천하의 파리하고 병든 사람, 고아와 자식없는 노인, 홀 아비와 과부는 모두 내 형제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여 호소할 데 없는 자이다. 이에 하늘의 뜻을 지 킨다는 것은 자식의 공경이요, 즐거워 근심하지 않음은 효에 순수한 자이다. 인을 어기는 것을 패덕 (悖德)이라 이르고, 인을 해침을 賊이라고 한다. 악을 이루는 자는 부재(不才)요, 그 형체를 실현하 는(踐形) 자는 그 어버이를 닮은 자이다. 조화(造化)를 알면 하늘의 일을 잘 이어받고 신묘(神妙)함 을 궁구하면 하늘의 뜻을 잘 이어 받든다. 방구석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이 부모를 욕되게 하는 않

 

1)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中庸 22章 1節.  

는 것이요,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김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맛난 술 을 싫어한 것은 우(禹)가 어버이(崇伯子)를 돌보는 행동(顧養)이요, 영재를 기르는 것은 영고숙이 효 성스런 무리를 잇게 하는 것이다. 괴로워도 공경을 게을리 하지 않아 어버이를 기쁘게 한 것은 순 의 공적이요, 도망가지 아니하고 끓는 가마솥에서 죽을 것은 기다린 것은 신생의 공순함이다. 부귀 와 복택은 나의 삶을 두터이 할 것이요, 빈천과 우척(憂戚)은 너를 옥성(玉成)시킬 것이다. 주신 몸 을 받아 온전하게 돌아간 사람은 증삼이요, 용감하게 부모의뜻에 따르고 명령에 순종한 사람은 백 기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순종하여 섬기고 죽을 때는 편안히 돌아가리라. ) 

천지는 나의 부모로서 천지에 가득한 기운은 나의 몸이 되었고, 천지를 이끄는 이치는 나의 본 성이라는 우주관, 모든 사람은 나의 형제이며, 만물은 나와 동류라는 관점에서 유가적 윤리를 제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이(鄭頤, 정이천)은 “천하의 리(理)는 하나이다. 비록 사물이 천차만별이기 는 하지만, 모두 다 하나로써 그것을 統御하면 어긋나지 않는다.” )라고 하여 리일분수(理一分殊) 로서의 리통을 말하였다. 이후 남송의 주희(朱熹)는 정이천의 이일분수를 받아들여 「서명」을 다음 과 같이 풀이하였다. 

 

 (朱子)가 말하기를, “정자(程子)는 서명이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 무릇 건으로 아버지를 삼고 곤으로 어머니를 삼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이일(理一)’이다.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있어 혈맥을 지닌 무리는 각각 그 어버이를 어 버이로 하고 그 자식을 자식으로 하니, 분수가 어찌 다르지 않겠는가. 하나로 통합되었으면서도 만 가지로 다르니 천하가 한 집이고 중국이 한 사람과 같다 하더라도 겸애(兼愛)하는 폐단에 흐르지 않 고, 만 가지가 다른데도 하나로 관통하였으니 친근하고 소원(疎遠)한 정(情)이 다르고 귀하고 천한 등급이 다르다 하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는 사사로움에 국한되지 않으니, 이것이 서명의 대강의 뜻이 다. 어버이를 친근하게 여기는 두터운 정을 미루어서 무아(無我)의 공심[公]을 기르고, 어버이를 섬 기는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는 도를 밝힌 것을 보면, 어디를 가도 이른바 분수가 서 있고 ‘이일’ 을 유추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서명의 앞부분은 바둑판과 같고 뒷부분은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생명이 건곤을 부모로 삼지 않은 것이 없으니 리일(理一)이고, 사람과 만물이 각각의 부모

와 자식이 있으니 분수(分殊)이므로, 만 가지를 하나로 관통하면서도 겸애의 폐단에 흐르지 않고, 친소가 다르더라도 자기만을 위하는 사사로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계 이황 역시 주희의 뜻에 따라 정복심(程復心, 1279-1368)이 그린 서명도(西銘圖)를 취하여  성학십도(聖學十圖)가운데 제2도에 수록하였다. 이황은 정복심의 서명도가 상도(上圖)와 하도(下圖) 로 구분되는데, 상도는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밝힌 것이고, ) 하도는 어버이를 섬기는(事親) 성심으 로 하늘을 섬기는(事天) 도를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 ) 

이처럼 장재의 「서명」은 정이천과 주희에 의해서 이일분수(理一分殊)로 해석되었고, 우리나라에 서는 퇴계 이황이 수용함으로써 조선유학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일분수가 어떻게 현실 에서 실현되는가가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리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갖추고 있는 천덕이므로 논 란의 여지가 없지만, 천차만별인 분수가 어떻게 생겨나고 실현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후기 내내 논란이 일어났으므로 장을 바꾸어서 살펴보기로 한다.  

유학에서는 균(均)에 대해서도 중시하였는데, 일찍이 공자는 제자인 염구(冉求, 자는 자유(子有)) 가 노나라 계씨(季氏)의 신하가 되어 전유(顓臾) 땅을 치려하자, 다음과 같이 그 부당함을 설파하였 다.  

내가 듣기로는, 나라를 소유하고 집안을 소유한 자는 백성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빈부가 고르 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백성이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백성이 편안하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고 한다. 대체로 균등하면 백성이 가난할 리 없고, 화목하면 백성이 적을 리 없으며, 편안하면 나라가 기울 리가 없다. 이와 같기 때문에 먼 데 사는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文德을 닦아서 귀의해 오 게 하고, 오게 했으면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 

집안이나 국가에서는 균(均) 즉 빈부가 고르지 못하고 가난한 것을 근심하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 심해야 하는데, 균등하면 백성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백성이 적어지지 않으며, 편안하면 나라 가 기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 역시 집안이나 국가에서 일차적으로 중시한 것은 균등한 분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자의 균(均)에 대한 강조에 이어 대학(大學)에서 백성들에게 재물을 균평하게 나누어

서 백성들을 모으는 인정(仁政)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덕이라는 것은 근본이고 재물이라는 것은 말단인데, 근본을 도외시하고 말단을 중시하게 되면 백성 들을 다투게 만들고 빼앗는 풍조를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임금의 창고에 재물이 모이 면 민심은 흩어지고 재물을 흩어 나누어 주면 민심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 

인정을 실천하는 덕이 근본이고, 토지와 같은 재물이 말단인데, 지도층이 말단인 재물을 축적하

면 민심이 흩어지고, 재물을 고루 나누어주면 민심이 모인다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러한 인정의 실현의 기초는 정전법에 있으며, 정전의 기초는 경계를 바르게 하는데 있다고 역설하였다.   

 등문공이 필전을 시켜 맹자에게 가서 정전법(井田法)을 묻게 하였는데,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자 네의 군주가 장차 인정(仁政)을 행하기 위해 신하 중에 자네를 선택하여 실무를 주관하게 하였으니, 자네는 반드시 힘써야 할 것이다. 무릇 인정(仁政)은 반드시 토지의 경계를 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 되는데, 경계를 정하는 것이 바르지 않으면 정전(井田)이 균등하지 않고 녹봉이 공평하지 않게 된 다. 그러므로 포악한 임금과 탐관오리들은 반드시 경계를 정하는 일을 태만히 하게 되어 있다. 경계 를 정하는 일이 바르게 되면 토지를 나누어주고 녹봉을 정하는 일은 가만히 앉아서도 정해질 수 있 는 것이다.” ) 

인정(仁政)의 기초는 토지의 경계(經界)를 고르게 하는데 있다는 것으로서, 경계를 바르게 하여야 

정전이 균등하고 관리들의 녹봉이 공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전은 사방 1리(里)가 1정(井)으로 1정 은 900묘다. 그 한가운데에 공전(公田)이 위치하고 여덟 집은 모두 사묘(私田) 100묘씩을 받는다. 이들이 공전을 공동 경작하는데, 공전의 일을 마친 뒤에 감히 사전의 일을 다스리도록 한다는 것 이다. ) 이러한 정전법은 농민들에게 고루 토지를 나누어주어서 균등한 생활을 보장하고,  중앙의 공전을 우선적으로 경작함으로써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가 주장한 정전은 진나라 상앙에 의해서 폐기가 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씨족 공동체(氏族共同體)가 해체되고, 철기와 우경(牛耕)의 보급으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증대, 그리고 대 규모 토지 개간 등으로 사적 소유에 대한 발전을 자극하여 정전제를 폐지하고 사적 소유제도로 바 뀌게 된 것이다.10) 이러한 사적 소유제도의 발전은 토지 소유에서 점차 불균등을 초래하여 부자는 들판 길을 연이었으나, 가난한 자는 송곳 세울 땅도 없을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되어갔다. ) 

이러한 토지 소유의 불균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한(漢) 대에는 동중서(董仲舒) 등에 의해서 대토 지 겸병을 제한하는 한전론(限田論)이 제기되기도 하였고, 신(新)을 건국한 왕망(王莽)에 의해서 정 전제를 본 딴 왕전제(王田制)가 시행되기도 하였다. 이후 북위에 이르러 15세에서 70세까지의 성인 에게 일정한 넓이의 토지를 지급하고, 70세가 되거나 사망하면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는 균전제(均田制)가 시행된 이후 균전제는 북제(北齊)⋅북주(北周)⋅수(隋)⋅당(唐)까지 약 300년간 시행된 토지 제도의 근간을 이루었다.  ) 

「서명(西銘)」을 지어 천하 백성이 나의 동포임을 강조한  「서명(西銘)」을 지은 장재(張載) 역시 정전(井田)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장재는 삼대의 정치에 뜻을 두어서, 시골에 땅을 사서 정전(井田) 을 구획하고자 하였다. 그는 맹자가 주장한 것처럼, 공전(公田)에서는 조세를 바치게 하고, 사전(私田)에서는 소득을 갖게 한 다음, 학교에서 교육을 시키고, 예속을 일어나게 하고, 상부상조하게 하 였던 것이다. ) 

 

Ⅲ. 조선유학에서의 통과 균

전술하였듯이 조선은 장재의 서명과 정이천, 주희로 이어지는 이일분수의 전통을 계승하였는데, 그 이일분수의 실현방식에 대해서는 율곡 이이가 이통기국(理通氣局)을 말함으로서 구체화되었다. 리는 기를 타고 유행하여 천태만상으로 고르지 않으나 그 본연의 묘리가 없는 데가 없으므로 리통 이라고 하며, )  만물은 기(氣)가 승강하여 천태만상의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본말과 선후가 있고 각각 국한되어 있으므로 기국(氣局)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즉 사물에 내재하는 이의 보편성과 차 별성을 각각 '이통'과 '기국'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서, 리의 본연은 만물에 보편적인 것이 나, 구체적 형체를 갖춘 기와 결합하여 차별적이고 개별적인 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이 의 이통기국의 견해는 ‘리통’으로서 선의 본체가 어디에나 존재하여 변함이 없음을 밝히고, ‘기국’으로서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불완전함은 기의 특성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 러한 기의 불완전함은 인간은 수양을 통해 기의 본연을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기질을 다스려 본연의 선을 확충하면 모두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16) 이이의 이통기국에 관한 논의는 통해 보민(保民), 이민(利民), 안민(安民)을 위한 구체적인 시책이 나 제도는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므로 자연히 시의에 맞는 갱장이 필요하게 되어 사회의 묵은 폐 단을 고치는 제도개혁을 주장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다만, 이러한 이이의 이통기국에 관한 견해 는 기국에 의해 성이 규정된 것으로 볼 것인지, 리일로서 성을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초래하게 되어, 기호지방에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이이의 이통기국에 의해서 촉발된 다양한 견해를 통합시키기 위해 제시된 것이 노사 기정진의 리통설(理通說)이다. 기정진이 말하는 리통(理通) 역시 만물에는 동정, 다과, 생사가 있으나, ) 리의 묘는 간격이나 피차, 다과, 생사가 없어서 동속에 정이 있고 정속에 동이 있으며, 일(一)속에 만(萬) 이 갖추어져 있고 만 속에 일이 갖추어져 있으며, 다과나 생사가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다. ) 이러한 논리는 기를 타고 일리, 만리가 생성되거나 기를 타고 리가 통한다고 하는 율곡의 이 통기국의 전통을 잇는 기존의 견해와 다르다. ) 기정진은 이러한 이통설의 논리를 발전시켜 태극 - 음양 - 오행 - 만물로 전개되는 리일분수가 리일을 말할 때에 이미 분(分)이 담겨져 있고, 분수 를 말할 때에 이미 일(一)이 있게 된다고 본다. ) 즉 분수 밖에 리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태극도 분수 가운데에 있게 되므로, 결국 리는 일(一)이 곧 만(萬)이니 다를수록 같아지고, 일이면 서 분이니 다를수록 같아지게 된다. ) 

이러한 리통(理通)에 대한 기정진의 견해는 태극과 천명(理)를 최고의 실재요, 궁극적인 원인으로 

보는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법상(Form)이나 스피노자의 제1원인, 라이프니쯔의 엔틸레히 (Entelechie)나 모나드(Monad)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 기정진이 주장한 리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 지만 움직이는 것으로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기를 격동시켜서 그것을 실현하도록 부리는 것이 다. 리는 일자이자 만수로서 모든 것의 추동력이 되는 것으로서, 결국 중용 1장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완벽하게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천과 리에 의한 통의 질서를 부르짖은 기정진의 주장은 분수의 리일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기국 자체도 리통의 질서에서 실현되므로, 하나의 통합 적인 국가질서 원리하에 훨씬 적합한 이론이다. 

이러한 조선유학에서의 리통에 대한 강조는 조선조 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가치체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4장에서 후술하는 바이 다.  

다음에는 조선에서 ‘균(均)’의 실현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 저 조선은 고려 말 토지제도의 문란을 망국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정도전은 고려말 극심한 토지 제도의 문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제도의 문란이 더욱 심해지게 되면서는, 세력가들이 서로 토지를 겸병하였으므로 한 사람이 경 작하는 토지에는 그 주인이 더러는 7~8명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고, 전조를 바칠 때에는 인마(人馬) 의 접대며, 청을 들어 강제로 사는 물건이며, 노자로 쓰이는 돈이며, 조운(漕運)에 드는 비용들이 또 한 조세의 수효보다 배, 또는 5배 이상이나 되었다. 상하가 서로 이익을 다투어 일어나서 힘을 겨루 어 빼앗으니, 화란이 이에 따라 일어나고 마침내는 나라가 망하고야 말았다.23)

이처럼, 고려 말 사전(私田)의 폐단이 극심하여 토지겸병이 만연하고, 조세수납의 부정이 극심하 게 되어, 결국 과전법을 실시하여 사전(私田)을 혁파하게 된다. 즉 1391년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 여 경내의 토지를 몰수하여 국가에 귀속시키고 인구를 헤아려서 토지를 나누어 주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농법의 개량으로 농업생산력이 증대하고, 토지 개간, 공신전 지급 등으로 사 적 소유가 늘어나면서, 토지매매가 허락되었다. 이에 따라 과전법 체제가 차츰 무너지고, 조선 후 기에는 토지매매가 일반화됨으로써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다. 백성들이 토지를 갖지 못하게 되면 생계유지도 어렵고, 유교적인 윤리마저 실현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이이는 “백성은 먹는 것에 의 존하고, 나라는 백성에 의존하므로 먹을 것이 없으면 백성이 없고,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것 이 필연의 이치24)“라고 하여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예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삶을 풍 족하게 하고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양민(養民)과 보민(保民)의 방책을 마련할 것을 역설하였 다.25)    

조선후기에는 조선 전기의 폐단이 더욱 극심해져갔고, 토지 소유의 불균등과 빈부 격차가 심화 됨에 따라 사회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토지제도 개혁이 등장하였다. 유형원의 균전제, 이익 의 한전제, 정약용의 여전제 역시 토지소유의 불균등과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위하여 제도 개혁을 주장한 것이다. 전술하였던 기정진 역시 가난한 지식인으로서 빈궁한 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웠는 데, 그는 이러한 빈궁한 원인이 국가의 정책과 경제운영에 있음을 직시하였다. 

저의 수십 식구의 생계수단이 농사에 달려 있는데 항상 5월에 새 곡식을 먹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농사를 지어도 그 속에 배고픔이 있다고 하는 성인의 말씀이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26)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봄이 되면 항상  배고픈 생활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기정진의 경우 자신 의 만성적인 빈궁 상태가 국가의 잘못된 정책이나 경제 운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 였다. 즉 사대부들이 예의염치를 잃고 이욕(利慾)을 추구하기 때문에, 토지소유의 분균형을 초래하 고, 조세제도가 문란하여 생활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중앙이나 지방관들이 중간에 조세를 가로채어 국가의 재정이 어려워지고, 백성들의 산업이 파산되어 자식을 팔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인륜 질서를 회복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기정진은 당의 조용조 체제를 본떠서 균전제를 실시하

 

23)“嗚呼 其弊有不勝言者 及其法壞之益甚 勢力之家 互相兼幷 一人所耕之田 其主或至於七八 而當輸租之時人馬之供億 求請抑買之物 行脚之錢 漕運之價 固亦不啻倍蓰於其租之數 上下交征 起而鬪力以爭奪之 而禍亂隨以興 卒至亡國而後已.”, 三峰集, 朝鮮經國典, 經理. 

24)“伏以民依於食 國依於民 無食則無民 無民則無國 此必然之理也.”, 栗谷全書卷4, 疏箚2, 「擬陳時弊疏」 

25) 이재석, 「율곡이이의 현실인식과  경세사상」, 동양문화연구33집, 영산대 동양문화연구원, 2020, 22-23 쪽. 

26) “鄙人年間數十口計活 寄在耒耜間 而常未免五月食新 耕也餒在其中 聖人眞不我欺也.”, 蘆沙集 卷5, 「答金濟宅」  

여 백성들이 토지를 갖고, 토지를 갖는 농민을 정병으로 만들어 국방을 튼튼히 하고, 환곡 대신 상 평창을 실시하여 조세부정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 

이처럼 조선시대는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해질 때마다 백성들도 고루 균등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균의 정치이념이 강조되었다. 백성들에게 항산(恒産)을 보장해주어야 인륜도덕과 같은 항심(恒心)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Ⅳ. 지구화 시대의 유학 

 조선조 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중시되고, 오늘날에는 민주주 의  실현과 극심한 환경파괴 속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새로운 유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조선은 동 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이후 신분평등의 시대가 왔다. 이어 한말에는 독립신문 등의 영향으로 미 국식 자유주의나 입헌군주제의 정치체제가 들어왔다, 또한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해 유교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전통적인 체제를 고수했던 유학자들은 위정척사운동으로 맞섰지만, 민중들의 정서에 맞지 않았고, 점차 유교는 시대적 조류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김창숙과 같은 개신유학자들이 중국중심의 사대주의적 유학을 폐기할 것을 제창하였으나, 대부분 의 경우 조선유학의 틀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유학은 여전히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봉건사회 의 계급질서나 과학이나 이성의 발달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학문사상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 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유학의 근본정신은 성선설의 바탕에서 통과 균을 통해 인간 뿐만 아니라 우주만물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해왔다. 이에 기후, 환경, 생태 환경의 파괴 로 인간생존 조건이 중대한 위기에 지구와 우주만물을 살리는 유학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으며, 충 분한 가능성이 있다. 

  조선조 말에는 신분제 폐지와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점차 차별이 아닌 평등하고 주체 적인 인간사회가 요구되었다. 사회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참여와 부의 성취, 문화적 향수에서 중시 되는 균(均)의 유학이념이  중시되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점차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는 유학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이 주목된다. 예컨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충청도 홍성의 유교부식 회(儒敎扶植會)에서는 유교가 전제주의와 계급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유교로 탈바꿈할 것을 선언 하였다. 이들은 율곡 이이가 말한 학교모범의 4대 강령 즉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爲天地立心), 생민을 위하여 도를 세우며(爲生民立道), 옛 성인을 계승하고 끊어진 학문을 잇는다(爲往聖繼絶學),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준다(爲萬歲開太平)‘을 계승하여 쇠퇴해가는 유교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새시대의 대동세계와 지구유학을 주장한 것이다. 원래 성선자체는 도덕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평등을 함축하고 있다. 다만 성선이 신분제 사회와 결합하면서 도덕적 평등을 긍정 하고 정치 사회적 불평등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에 오늘날은 더 이상 신분제 사회가 아니므로 유교부식회처럼  성선에 대해서 정치, 사회적 평등으로 확대해석하면  분명 인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거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28)

 또한 일제강점기에 태동한 원불교 역시 새로운 유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

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은 일원상과 사은사요를 주장하여 통과 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우주적 질서와 사회관계를 주장하였다. 일원상의 인격은 인간과 만물의 통질서 속에 의사소통과 공론의 형성을 가능하게 정신적 원리이며, 사은사요는 은혜와 생명력이 가득한 대자유의 세상과 인간평등, 지식평등, 교육평등, 생활평등의 대평등의 세상을 실현하는 시민적 덕성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 요의 실천은 보은하고 감사하는 사은을 떠날 수 없다.29) 즉 천지은은 공도 헌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이며, 부모은은 무자력자 보호법이며, 동포은은 자력을 양성하여야 자리이타가 가능하며, 법률은은 지자본위라야 민주주의 시대에 알맞게 실천할 수 있다. 지은보은(知恩報恩)의 감사 생활 속에 원만한 사회를 건설하는 개혁의식이 잠재해 있으며, 사요의 개혁의식 가운데에도 보은감사의 은에 대한 사상을 떠날 수 없다. 이를 유교적으로 말한다면  사은은 인(仁)이며, 사요는 의(義)이니, 인과 의가 쌍전해야 완전한 대도라고 할 수 있다.30)   

  결국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천지와 생민을 위해서 마음과 도를 세우고 전제주의와 계급주의 를 타파하려고 하였던 유교부식회나 사은사요의 추구를 통해서 천지 만물과 합일되고 공정한 가치 를 실현하고자 하였던 원불교의 정신은 오늘날과 같은 지구적 위기 속에서 유학을 어떻게 계승하 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환경 오염, 생태 파괴로 인간과 자연 모두 공멸의 위기 상황에서, 인간의 탐욕과 폭력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존재하고 함께 살리는 존재로 대우하는 유학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맹 이래 유학의 가치인 성선의 본연의 마음을 되찾아서, 통과 균의 질서를 중시해온 유학의 전통, 중 용과 장재의 「서명」에서 말한 천지와 인간이 일체가 되어 합일되는 우주적 공동체를 형성할 필요 가 있는 것이다. 지구를 구성하는 동물이나 식물, 자연물까지를 아울러 하나의 공생하는 질서, 통 의 이념과 균등한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천지와 합일되고 만물과 동반하는 지구 유학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8) 신정근, 「현대유학의 길, 탈중국화와 인권유학」, 동양철학40, 한국동양철학회, 2014, 424쪽.  

29) 김봉곤, 「원불교의 政敎同心과 시민적 덕성」,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84,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20, 52-59쪽. 

30) 李亨基, 方山文集, 153-154쪽. 

Ⅴ. 맺음말 

지금까지 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의 전환을 위한 시도로서 통과 균의 개념을 검토하였다. 통

은 천지, 자연만물, 인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균은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게를 추구하는 것이다. 공맹의 사상은 성선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충분히 시대 적 사명을 다할 수 있으나, 유학의 인간중심적인 관점과 자연에 대한 차별적 시작으로 여전히 넘 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 유학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신장의 동력으로 재평가 되

고 있고,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를 넘어설 수 있는 인권유학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 정치체제가 군주중심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었고, 경제, 사회제도의 변혁으로 인해 권 위주의적이고 불평등한 관계가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교육의 의무화와 한글전용 정책으로 국민의식이 일체감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오늘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는 유학 에서도 지구유학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지구유학이 성립하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함으로써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 탈중국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종래의 유학은 중화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유학은 민

족자결주의 이후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대등한 국가간의 관계 속에서 국가와 민족의 주체성을 실현하는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유학은 개인의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세계시민적 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

미 1860년대 출현한 동학이나 1920년대의 원불교 등에서 대중유학이 발전된 형태로 새로운 근대 종교가 태동하였다. 유학 역시 종래의 사농공상의 명분론이나 계급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자유와 평등, 공론을 중시하는 세계시민적 유학으로 거듭나야 함을 시대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다. 셋째,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도모해야 한다. 동물이나 식물, 기타 자연물도 지구 구성원이 며, 공생관계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똥은 식물의 자원이며, 식물에 배출하는 산소는 지구공기를 정 화한다.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유학에서는  대학에서는 자기를 척도로 삼아 남을 생각하고 살펴서 바른길로 향하는 혈구지도(絜矩之道)를 말 하고 있다. 이러한 혈구지도는 천하를 태평케하는 요소로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자연 물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도리가 될 것이다. 넷째, 생명, 평화를 고취하는 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날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만연으로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국가간의 대결로 평화를 헤치는 경우가 많다. 공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생명을 중시하는 인(仁)의 도리를 중시하였고, 맹자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고통이나 불행을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을 강 조하였다. 이러한 성선을 강조한 공맹의 도리는 생명, 평화를 고취하는 유학으로 충분히 거듭날 자 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안은 유학에서 중시해온 통과 균의 개념을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반 방면에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 본고는 일차적으로 그 러한 시도를 위한 시안으로 작성된 것이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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