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6] 지구근대성 시대의 종교 연구 조규훈*

 6] 지구근대성 시대의 종교 연구 조규훈*

12)

요약문   현대 세계의 연계성과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되면서 종교들 간의 조우와 얽힘의 기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속가능하지 못한 당대의 발전 방식은 지구 환경을 점점 더 불가역적으로 교란하고 있으 며, 이에 인류문명과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의 공적 기여가 새롭게 요청되고 있다. 이 발표는 현대 지구화의 맥락에서 종교적 다양성과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지구종교학’을 모색한다. 필자는 먼저 아시아의 공간에서 제기되는 지구학의 조건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는 아시아는 20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전통들과 문화유산의 지속 가운데, 탈식민화의 과정과 민족근대화의 복합적 결과들을 동시에 목도 해왔다. 이러한 아시아의 물질적·문화적 조건은 상이한 지구근대성의 양상을 보여주면서,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지구학을 요청한다. 둘째, 아시아의 지구학의 관점 에서 지구종교학의 개요를 살펴본다. 근대 종교학은 출발부터 지구종교학의 형태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 학문 분야로서 지구학은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지만, 근대 종교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막스 뮐러 (F. Max Mül ler, 1823-1900) 이후 종교학의 발전은 지구화의 역사적 전개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 지구적·지역적 교류 와 의존성의 증가에 따라 심화되는 종교문화적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다루도록 인도하는 새로운 개념틀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필자는 지구종교학을 지구적 차원의 상호연계성의 맥락 속에서 종교현상을 고찰하

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사회 구성주의적 접근’(social constructionist approach)을 넘어 ‘지구 상호작용적 접근’(global interactive approach)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지구종교학의 개념틀이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전형적인 사례들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서 현대 지구사회에서 종교의 문화적 위치와 대안적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차 례

Ⅰ. 머리말

Ⅱ. 아시아의 지구화와 지구학

Ⅱ. 지구종교학 : 지구종교의 개념틀

 

* 캐나다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

I. 머리말

종교학(the science of religion)의 등장과 발전은 사회의 변화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유럽에서의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의 등장, 서구 국민국가들의 식민지 확장과 제국주의의 전개 등 근대 세계의 변화는 세계의 종교들을 두루 파악해야 할 필요를 낳았고, 이는 근대 종교학의 형성으로 귀결되었 다. 현대의 지구적 대전환은 지난 2-3세기 동안 근대문명 모델로서 자부해오던 서구사회의 탈중심 화를 낳고 있으며, 이는 종교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학문적 도전을 낳고 있다. 근대적 종교연구의 발생이 서구사회와 학계에 빚진 바 있지만, 지구화된 현대의 맥락에서의 종교연구를 돕는 새로운 개념들과 이론들, 분석모델, 가설, 지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필요해졌다.

20세기 후반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고 교류하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활동과 과학기술의 고도화, 지구 생태환경의 위기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이 인류의 삶에 끼치는 근 본적인 변화에 대한 큰 관심을 불러 왔다. 21세기 들어서 지구적·초국가적인 현상의 여러 측면들 을 탐구하기 위한 학제간 연구의 분야로서 지구학(Global Studies)이 등장했다. 이러한 학문적·사회 적 변환 속에서, 지구적 관점에서 종교현상을 고찰하려는 지적 작업들도 크게 증가해왔다. 필자는 지구화의 맥락에서 종교의 다양한 차원들을 고찰하려는 연구를 지구종교학(Global Religious Studie s)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지구종교학은 국경과 지역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종교활동뿐만 아니라 지 역의 종교현상이나 심지어 개인의 일상적인 종교활동도 지구적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발표에서 필자는 먼저 아시아의 공간에서 제기되는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구학의 조건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는 아시아는 20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전통들과 문화유산의 지속 가 운데, 탈식민화의 과정과 민족근대화의 복합적 결과들을 동시에 목도 해왔다. 이러한 아시아의 물 질적·문화적 조건은 상이한 지구근대성의 양상을 보여주면서,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지구학을 요 청한다. 둘째, 아시아의 지구학의 자리에서 지구종교학의 개요를 살펴본다. 근대 종교학은 출발부 터 다분히 지구종교학의 형태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 학문 분야로서 지구학은 비교적 최근에 출 현했지만, 근대 종교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막스 뮐러 (F. Max Müller, 1823-1900) 이후 종교학의 발 전은 역사적 지구화의 전개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 하지만 지구적·지역적 교류와 의존성의 증가 에 따라 심화되는 종교문화적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다루도록 인도하는 새로운 개념틀이 필요한 상 황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지구종교학의 개념틀이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전형적인 사례 들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서 현대 지구사회에서 종교의 문화적 위치와 대안적 역할에 대해 살펴본 다.

 

Ⅱ. 아시아의 지구화와 지구학

지구화란 무엇인가? 지구화란 세계가 하나의 생활의 장소로 바뀌는 것 ) 또는 국가나 문명의 경

계를 가로질러 지구적 차원의 상호연계성이 강화되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 )을 가리킨다. 지구화는 

보편성(universality)과 특수성(particularity)의 공존과 길항, 모방과 상호침투가 다양한 형태로 펼쳐 지는 현상이다. 지구화는 한 편에서는 지배력을 가지거나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제도, 범주, 기구, 표준, 모델, 언어, 문화, 통화 등의 세계적 차원의 확장을 뜻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지역의 문화나 권력 관계, 정체성, 특징 등이 지구적 차원의 흐름과 상호 연결되고 이를 반영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움직임과도 관계된다. 지구지방화(Glocalization)이나 지방지구화(Locablization) 같은 신조어들은 바 로 이러한 ‘지구-지역 연계’를 보다 면밀하게 개념화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지구화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지구사(global history) )는 점점 더 지구화되는 현대

사회가 지구의 과거와 사뭇 비슷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TGIF(Twitter, Google, Internet, Facebook) 같은 정보통신기술(ICTs)의 발달과 디지털 문화, 대륙을 

넘나드는 초장거리 이동의 대중화, 고도화된 초국적 금융과 기업의 등장으로 오늘의 지구인식(glob al consciousness/imaginaries)은 불과 몇 십 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증가했다. 정보와 소통과 관련 된 기술의 발전과 초국가적 이동을 위한 장거리 운송수단의 광범위한 활용은 사람들이 국경과 문 명의 경계를 넘어 손쉽게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소통방식을 고안하고 더욱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그러나 정보-소통-이동 기술의 발전이 낳은 새로운 장치들과 도구들, 플랫폼 등을 활용한 지구적 소통과 상호작용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형성해온 문화와 관습, 지역에서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와 분리되지 않는다. 아시아의 사회들과 지역들, 국가들 안에서 또는 경계를 넘어서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해온 물질적·문화적 유산은 현대의 지구-지역 역학에 상당 부분 영 향을 미치거나 경로의존적 관성을 갖는다. 

정치, 경제, 문화, 환경, 기술, 종교 등 지구화의 측면들을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지구학(Global St

udies)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근대성의 기원을 서구에 두는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로부터의 분리이다. 그간 유럽이 보편적이 합리적이라면 아시아는 특수하고 비합리적이라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아시아는 폄하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주의나 옥시덴탈리즘, 배타적 지역주의에 대한 옹 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구화에 대한 자민족중심적 접근은 서구의 근대화가 만들어낸 국민국가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의 기반이었다는 점에서 유럽중심주의라는 동전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 다. 냉전 이후 아시아에 대한 지역연구는 지난 약 2-3백 년 간 사회구성의 기본틀이 되어온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다중적인 정체성을 띠면서 지역을 넘나드는 소통으로 이루어졌던 아시아의 초 국가적 상호작용 또는 인터아시아적 연계망에 주목해왔다5). 특히 아시아의 바다는 문명사의 관점 에서 볼 때 지구화의 요람이자 출발점이었다. 일찍이 15세기 이전부터 아시아의 해상교역은 동서 간 장거리 해상 루트를 형성하면서 발전하였다. 페르시아의 상인들, 아랍 상인들, 중국 상인들이 아덴(Aden)에서부터 남중국의 광둥(廣東)까지 연결된 교역망을 활용하였다.6) 강력한 국경에 따라 지역이 영토로 나뉘어지는 근대의 공간이 형성되면서 인도양을 가로질러 동서양을 연결했던 무슬 림 에큐메네(ecumene)나 실크로드를 따라 존재했던 초지역적 상업문화 네트워크가 상당부분 해체 되었다. 그러나 전근대 인터아시아의 세계와 비슷하게 글로벌 냉전 이후 다양한 세력들이 이념보 다는 필요에 따라 관계 맺고 경쟁하는 다극화된 국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현대 아시아에서 지구화로 인한 초국가적 상호의존과 이에 따라 다양하게 확산되는 지구적 상상(global imaginaries) 은 과거의 문화적 각인과 느슨하게나마 남아있는 오래된 초지역적 네트워크와 중첩되어서 증가하 고 있다. 

21세기 아시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문명의 모습은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일방적인 모방도 아니 고, 지역의 과거의 기원들과 상관없이 형성되는 오로지 현대적인 지구적 전환의 결과물도 아니다. 지금 아시아의 지구화는 아시아의 여러 문명권에서 원시적 형태로 나타났던 고유한 근대성의 맹아 들, 식민지 시기에 축적된 국가주의적 근대화의 잔재, 현대의 지구적 조우와 의존성 등이 서로 간 에 상호작용하여 형성되는 지구근대성(global modernity)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늘의 지구화된 한 국사회는 원시 근대성, 식민지 근대화, 탈식민의 결과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지구근대성의 좋은 사 례를 이룬다. 조선조 유교문화의 유산과 윤리규칙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의 뒤틀린 식민 지 개발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류가 보여주는 것처럼 현대의 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아시 아 및 세계 곳곳과 소통하거나 타국의 사람들과 거의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현상들이 동시에 함께 엉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아시아의 맥락에서 나타나는 지구화란 아시아 지역의 역사 와 문화의 경로, 현대의 지구적 연결망이 상호작용하여 나타나는 지구지방화(glocalization)의 모습 을 띤다.7)

2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등 아시아의 여러지역 의 탈식민화 과정 가운데 나타난 개발 프로젝트들은 국민국가 간의 상호고립을 지향하기보다는 초

 

5) Abu-Lughod, Janet.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Duara, Prasenjit. “Area Studies Scholarship of Asia”, Matthias Middel ed., The Routledge Handbook of Transregional Studies. London: Routledge, 2018, pp. 41.

6) 주경철, 대항해 시대: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8, 6-26쪽. 

7) 조규훈, 「현대·서구 중심적 지구화를 넘어서: 아시아의 종교전통들과 다중적 지구화들」, 종교연구 제

79집 2호, 2019, 51-55쪽.

국경적 교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남아시아지역협력 연합(SAARC),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 아시아태평양협력체(APEC) 등 아시아의 지역협의 체들은 아시아의 번영을 위해 개방적이고 느슨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고 연결되어 있다. 실크로 드나 무슬림 상인들의 사례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등 역사적으로 아시아는 교역이나 종교를 매개로 연결된 네트워크 지역이었다. 네트워크 모델은 영토적 균질성에 대한 상상을 전제로 하는 지역주 의 모델과는 다르다. 지금 중국이 진행하는 초지역적 교통인프라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B elt and Road Initiative)는 고대에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했던 비단길이나 해상교역로와 매우 유사한 경로를 보여준다. 아시아의 지역들을 초국가적으로 연결하고 의존하게 만들어 지역의 평화 와 번영을 담보하려는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 국가들의 노력은 아시아의 지역들을 점점 더 연결 하며 지구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근대의 주권이나 발전의 개념들에 대한 변화를 요청한다. 

요컨데 아시아 지역들을 가로지르며 통합시키는 현대의 지구적 전환에 있어서 종교 네트워크나 

문화적 각인들은 선도적 역할을 하거나 변수, 심지어는 주요한 주체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시 아의 지구근대성이 보여주는 초국가적인 상호의존성의 형태는 지구화된 세계의 미래가 지구 과거 의 사회들이 연결되어 있던 방식들과 유사하거나 연계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지구화에 대한 세밀한(nuanced) 이해를 위해서는 전통, 사상, 문화, 종교, 전근대의 초지역적 소통의 방식들 등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III. 지구종교학 : 지구종교의 개념틀

1. 20세기의 종교연구 방법론을 넘어서기 근대 흄볼트적 철학의 목표는 교육과 연구를 통합하고 인문주의적이고 개인적인 가치들을 진작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가치들은 대체로 국가의 이익에 부응하도록 고안된 의제들에 의해서 구성 된 것이었다. 이러한 교육 개념이 국민국가들에 수용되면서, 인문사회과학의 목표는 개인과 공동체 의 안전을 보장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명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현 대화’에 두어져 있었다.8) 이러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종교연

구를 위해서는 방법론적 민족주의(methodological nationalism)와 인식론적 지역주의(epistemological provincialism)를 지양해야 한다. 일국사회의 단위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분석의 기본틀로 삼기보다 는, 지구비교적 관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종교현상을 ‘내부’와 ‘외부’, ‘식민지’와 ‘종주국’, ‘동양’과 ‘서양’의 접촉과 교류가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만들어낸 우연적인 결 과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근대 서구와 동아시아 지역이 상당부분 공유하는 세속주의

 

8) Duara, Prasenjit (두아라 프라센짓), 「인류세에서 아시아 연구의 의제」, 아시아리뷰 제4집 1호, 2016, 

15-23쪽.

적 관점에서 다른 지역의 종교문화를 이해하려 하는 인식론적 국지성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다 른 문명권의 종교적 또는 세속적 역학을 최대한 통시적 관점에서 이해하면서, 다른 지역민들의 문 화 변동의 관점에서 자신이 속한 종교문화의 현실에 낯설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법론 적·인식론적 관점에서 ‘종교’ 또는 불교, 유교, 개신교, 천주교, 힌두교, 이슬람 같은 ‘종교 들’을 고정되고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대신 종교를 공간과 시간의 맥락에서 인간적 흐름들의 교차가 형성하는 공간, 또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경계를 가로질러 구성되는 고유한 소통의 양식으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9)

17, 18세기 유럽의 탈교회화 과정에서 계몽주의의 지적전통과 세속사회의 출현, 뒤이은 서구 국 민국가들의 식민주의적 확장에 따른 비서구 종교전통들의 ‘발견’은 근대 종교학 출현의 배경이 되었다. “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He who knows one, knows none.)”고 했던 막스 뮐러 이후 근대 종교학은 특정한 신앙이나 신학의 울타리를 넘어 비교의 관점에서 종교전통, 종교 현상, 종교사상, 종교집단, 종교의 역할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추구해 왔다. 이를 통해 다양한 종교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기술할 수 있는 이론과 방법, 용어와 개념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 다. 종교학의 초창기에는 종교의 기원과 진화에 집중했다가, 점차 그것이 종교의 본질과 구조에 대 한 관심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종교의 의미나 기능에 대한 학문적 고찰로 옮겨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종교현상의 다중성과 복합성 자체가 주요한 주제로 부각하여,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방법론을 활용하여 이를 이해하려는 학문적 시도가 증가했다. 198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나 아브라 함계 종교가 예증하는 ‘신앙’, ‘조직’, ‘기원’, ‘경전’, ‘신학’ 등과 같은 일련의 장치들 을 종교를 구성하는 암묵적 기준으로 삼아 종교를 정의하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접근이 종교학 내에 여전히 만연하다는 비판도 나타났다.10) 현대 종교학은 ‘제도중심적’ 종교연구를 넘어서 종 교현상의 일상성과 물질성에 집중하거나, ‘주류종교’ 보다는 ‘신종교’ 또는 ‘새롭게 나타나 는 영적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탈식민이론이나 성(gender) 정치학의 관점에서 종교가 구성되 고 작동하는 미시적 역학이나 ‘문화정치’를 고찰하거나, 심지어 “종교란 연구자 상상의 산물” 이라는 관점에서 종교학자들이나 종교전문가들의 저술들의 바탕이되는 의식구조, 종교문화적 배경, 지정학적 지향 등도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11)

20세기,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를 풍미한 대표적 사회과학적 종교이론은 ‘세속화론’(seculariz

ation thesis)과 ‘종교시장론’(market theory of religion)이었다. 전근대와 다른 근대사회의 세속적 전환에 따라 등장한 세속화론은 유럽사회가 탈주술화(disenchantment)를 겪으며 제기된 것이었다 면, 종교경제론은 자본주의 경제론 또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가 만연한 미국에서 교단화된 종 교들(denominational religions)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종교시장’에 대한 관찰로부터 비롯되

 

9) 조규훈, 「종교와 지구화: 근대 종교체계의 형성, 탈구, 확장」, 종교연구 제79집 1호, 2019, 13-15쪽.

10) Asad, Talal. “The Construction of Religion as an Anthropological Category”, Melissa M. Wilcox. Religion in Today’s World: Global Issues, Sociological Perspectives. New York: Routledge, 2013, pp. 17-34.

11) Smith, Jonathan Z. Imagining Religion: From Babylon to Jonestow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pp. xi-xiii.

었다. 아직도 종교변동의 근대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고 있는 이 종교이론들은, 현대 의 종교적 다원상황에 직면하여 각각 ‘종교의 쇠퇴’와 ‘종교의 성장’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내 놓았다. 그러나 이것들이 창출된 경험적 토대가 서구세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국민국가에 기반한 일국사회를 종교현상에 대한 분석의 기본단위로 활용하였고, 세속적⋅합리적 민족근대화 의제에 부응하는 관점들에 인식론적으로 의존하는 문제를 노정했다는 점에서는 두 이론은 일치했다. 관찰 의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비서구사회를 보면, 훨씬 많은 인구가 종 교적 경외감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고 있으며, 그들의 다수가 ‘종교’를 어떤 효율성의 관점에 따 른 선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자신과 세계를 통합시키는 ‘삶의 양식’으로 여긴다.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세속문화가 재성화(re-sacralization)되고 공공영역에 종교의 개입이 일 상화된 ‘탈세속사회’(post-secular society)에 들어섰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새천년의 종교적으로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인문사회과학 일반을 가로지르는 종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대전환은 종교 에 대한 관찰과 분석의 범위를 서구나 특정 국가, 사회, 지역, 또는 특정한 종교문화권이 이끄는 것에 고정하기 보다는, 지구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종교문화적 상호작용으로 확장시키면 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세계는 세속화로 인한 ‘종교의 종언’보다는 광범위한 ‘종 교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으며, 현대 지구사회의 종교적 역동성은 경제적 합리성으로 환원시키기 에는 훨씬 더 복잡한 역사적 뿌리와 다원성을 보여준다. 종교연구자들은 현대 지구사회로 ‘초월 성’ 또는 ‘성스러움’이 새롭게 소환된 이유 그리고 그것의 탄력성과 중층성의 형태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또한 명료하게 기술하고 설명해야 하는 학문적·사회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2. 지구종교학의 이론적·방법론적 기초

20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을 풍미한 두 종교이론이 갖는 설명력의 한계는 21세기의 종교연구에 있어서 지구적 전망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오늘날 종교학은 지구화된 세계의 종교문화적 연결과 상호의존, 혼종성, 보편적인 것으로 상상되는 ‘종교’와 ‘세속’이라는 범주나 표준 또는 가치에 대한 지역적 전유와 재해석의 양상들, 그리고 종교적 재현들, 담론들, 실천들의 물질성과 일상성 또는 ‘탈종교화’ 등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복합적인 종교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다각적이면서도 엄격한 고찰을 통해 학문적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론틀을 제시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세계의 특정 지역이나 단위, 혹은 그것의 문화적 양식이나 역사적 결과에 일방적으 로 의존하는 방법과 이론으로 지구사회 곳곳의 종교문화를 이해하기보다는, 특정한 (지역의) 종교 변동도 세계적 규모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서 이해하도록 돕는 전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맥락에서 두드러지는 종교문화적 특징은 기존의 종교 개념이나 범주의 밖에 있거나 이를 통해서 파악하기 어려운 종교적 다양성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의 종교이론은 지구사회의 상호연결이 초래하는 미증유의 종교적 다양성을 총괄적으로 조망하면서 그것의 전체와 부분을 통 합적으로 설명하도록 요청받는다. 지구종교학은 ‘종교’의 형성과 변동을 지구화 과정의 주요한 측면으로서 이해하고, 경험적 연구를 통해 지역의 상황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지구종교’와 그 것의 관련문제들을 발견적(heuristic)으로 고찰함으로서 진화를 이루어 나가는 연구로서 정의될 수 있다. 브라이언 터너(Bryan Turner)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이해와 관련된 주요한 쟁점들은 모두 이러한 지구화의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장거리 운송수단의 대 중화, 대륙의 경계를 넘어가는 이주의 증가 등이 지구화 현상을 촉발시켰다고 흔히 주장된다. 어떤 면에서 종교전통이야 말로 지구화의 선구자였다. 지역과 인종, 문화적 경계를 넘는 ‘보편종교들’ 의 발생이야말로 종교의 지구성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구종교’(global religion)란 지구적 차원에서 관찰되는 종교적 다양성을 개념화하기 위한 용 어로 선택되었다. 새천년에 들어서 마크 주어겐스마이어(Mark Juergensmeyer) )는 지구화된 세계 의 종교현상을 총괄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지구종교’ (global religion)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 개념을 좀 더 체계화하여 활용할 수 있다. ‘지구종교’는 ‘종교와 지구화’ (religion and glob alization), ‘지구화의 종교적 차원’ (religious dimension of globalization), ‘종교적 지구화’ (relig ious globalization)등의 표현과도 대체 가능하다. 지구종교학은 역사적 기원과 맥락을 주요하게 고려 하지만, 모든 시대를 가로질러 적용되는 보편적 이론을 지향하기보다는 일차적으로 근대시대로 제 한된다. 

‘지구종교’는 지구화가 초래하는 미증유의 종교적 복합성 전체를 조망하고 설명하는 이론적 전망으로서 제안된다. ‘지구종교’는 기본적으로 ‘종교-탈종교-탈세속’의 동시성으로 나타나며, 다양한 지역적·문화적 상황에서 각각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상호관계하고 때로는 상호의존하거나 중첩되면서 다양하게 맥락화된다. ‘지구종교’의 형성을 이러한 근대 종교체계의 등장과 그것으로부터의 탈구, 그리고 다른 사회영역들로의 종교의 확산이라는 삼중적 과정으로 구 분되지만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조망할 때, 현대의 종교적 다양성 또는 복합성과 그것의 변동 에 대하여 보다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국경과 문화적·지역적 경계를 넘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종교현상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일국 사회나 특정 지역, 어떤 영토화된 공간 내부의 종교적 역학에 대한 분석에 집중하는 ‘사회구성주 의적 접근’(social constructionist approach) 넘어, 지구적 차원의 상호연계성의 맥락 속에서 종교현 상을 고찰하는 ‘지구상호작용적 접근’(global interactive approach)이 필요하다. 지구화의 맥락에 서 주요한 종교적 쟁점이나 과정, 종교집단과 개인들, 실천들과 담론들을 고찰하고 해석하기 위하 여, ‘지구상호작용적 접근’은 종교/문화적 역사들 그리고 대화적이며 또는 순환적인 조우들 사이 의 상호작용을 주요하게 포착하고자 한다. 지구상호작용적 접근의 관점에서 지구화된 지역의 상황 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종교현상의 다양한 측면들과 행위자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종교’-‘탈종 교’-‘탈세속’라는 지구종교의 삼중적 측면들과 그것들 간의 상호작용을 주요하게 살핀다.

 

지구종교를 형성하는 각 측면의 특징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종교 (religion). 역사적 지구화의 흐름은 ‘세속’을 종교적 규범과 제도들로부터 분리하는 방식

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는 ‘종교’(religion)라고 불리는 구별된 영역 또는 체계의 지구적 구성을 돕는다. 근대 지구화의 결과인 세속성 )의 등장 가운데 사회로부터의 ‘종교’의 분화가 제도화되 고 ‘종교들’, 특히 이른바 ‘세계종교’들이 ‘종교’의 주요한 구성물로서 나타났다.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한 쌍의 원칙을 통해 ‘종교’ 범주는 지구적인 차원에서 제도화된 것 으로 나타난다. 

탈종교 (post-religion). 현대 지구화의 진전은 국민국가 질서와 결탁된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

는 개인적이고, 물질적이며, 감각적이며, 일상적이고, 선택지향적인 ‘영성적 전환’을 추동한다. 이러한 ‘종교’의 해체 또는 문화적 탈구 현상에 집중하는 종교학자들은 ‘물질종교’, ‘생활종 교’, ‘종교 이후의 종교’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화의 진전에 따라 선진산업사회를 중심으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형성된 국민국가의 제도와 병행하지 않는 

‘대안적 종교성’, ‘탈종교’(post-religion), ‘영적혁명’(spiritual revolution) 또는 종교문화적 혁 신 현상에 대한 보고가 증가해 왔다. 

탈세속 (post-secular). 지구화로 인한 생활세계의 압축은 공적이거나 세속적 공간으로 간주 되어

온 사회영역들 속으로 종교의 확장과 개입을 요청하고 초래하는 ‘탈세속적 전환’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이에 대한 학문적 담론들이 ‘종교의 부흥’, ‘공공종교’, ‘종교의 귀환’, ‘현대의 재성화’, ‘종교의 탈분화’ 등의 표제들 아래서 증가해 왔다. 

요컨대 지구화의 종교적 차원 또는 ‘지구종교’는 ‘종교’, ‘탈종교’, ‘탈세속’으로 분리 될 수 있지만 긴밀히 연동되어 작동하는 종교성의 중층적 구성으로서 나타나며, 이러한 종교적 다 원성의 체계는 일련의 관련문제를 만들어 내면서 지역의 상황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맥 락화 된다. 이러한 지구종교의 개념틀을 활용하여 개인의 (종교의) 자유, (종교) 집단 또는 전통의 위치와 역할, 종교적 혼종성, 국가제도의 성격 그리고 사회영역들과 제도들의 형태 등 일련의 관련 문제들(reference problems)이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 고찰해 나갈 수 있다. 

참고문헌

조규훈, 「종교와 지구화: 근대 종교체계의 형성, 탈구, 확장」, 종교연구 제79집 1호, 2019.

조지형, 「지구사란 무엇인가」, 서양사론 제92집, 2007.

주경철, 대항해 시대: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8.

Abu-Lughod, Janet.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Duara, Prasenjit. “Area Studies Scholarship of Asia”, Matthias Middel. The Routledge Handbook of Transnational Studies. London: Routledge, 2018.

Juergensmeyer, Mark. The Oxford Handbook of Global Religion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Robertson, Roland, Globalization: Social Theory and Global Culture, Sage Publication, 1992.

Steger, Manfred B., “What is Global Studies”, Mark Juengensmeyer, Saskia Sassen, Manfred B. Steger and Victor Faessel eds. The Oxford Hanbook of Global Studi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Taylor, Charles. A Secular Age, Cambridge, MA: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Turner, Bryan S., Religion and Modern Society: Citizenship, Secularization and the Stat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지구기학】


5] 夢みる林檎 : 地球芸術学は可能か Dreaming Apple: Is‘Global Art Theory’possible? 奥脇嵩大*

 5] 夢みる林檎 : 地球芸術学は可能か Dreaming Apple: Is‘Global Art Theory’possible? 奥脇嵩大*  

 Table of contents

Ⅰ. 「地球芸術学」を描くために

Ⅱ. 動力としての林檎:雨宮庸介

Ⅲ. 世界を夢見る:崔在銀(Jae-Eun Choi) Ⅳ. まとめ

奥脇嵩大と申します 普段は日本の、青森県にある公立美術館で学芸員をしています 青森県、どこだか分かりますか 日本の東北、本州の北の端、海峡を渡るとすぐ北海道に行けるような地域です 主な特産物は林檎とホタテ 雪が沢山降る、ものすごく寒い土地です この度は素晴らしい学術大会に声をかけて下さっ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趙先生、東北大学の片岡先生には発表前に「地球芸術学」というテーマをいただいておりました 今回の私の発表では、芸術理論と尊敬すべき芸術家らの作品制作の事例などを紹介しながら、人間が芸術制作を介して地球をいかなる形で再認識し得るか その再認識をもとに何を導き出すことができるか といったことの一端を示したいと考えています そうした思考の形式を「地球芸術学」の可能性を検討することに代える、そんな時間にできたらと思います 

Ⅰ. 「地球芸術学」を描くために

「地球芸術学」という未知の学問領域の概要を知るべく、まずは林檎を手がかりとします ここで連想されるのはアイザック・ニュートン(1643-1727)です 一説には落下する林檎をもとに万物を地球内部へ引っぱる重力を発見した人物であることは常識ですが、この重力の作用について、ミシェル・セール

 

* 青森県立美術館学芸員.

(1930-2019)は著書自然契約 Le Contrat Naturel(1990)の中で、「最初の大規模な科学システム」と呼んでいます 万有引力は私たちと地球との結びつきと見なすことができるわけです このとき人は既に「社会契約」を介して人間同士の結びつきとしての社会を手に入れていました そうなると人間社会の膨張すなわち爆発的な人口増加は必定であり、近年のトピックである人間活動が地球に直接影響を及ぼす時代区分「人新世」の到来は、社会契約がなされた時点で決定していたと言えそうです ともあれ、そんな社会契約に代わってセールが唱えたのが人間と地球との、今日においては「共生の」「持続可能な」と言い換えることができそうな、再生関係を結ぶことを唱える「自然契約」でした この人間を縦糸、自然を横糸に地球のための新しいネットワークを構築しようとする提唱が、絶えず変化する関係性の編み目の中で、あらゆる事物のふるまい方を考察するブルーノ・ラトゥール(1947- )のアクター・ネットワーク・セオリーに接続されます ところでセールが示したように「すべての人々の活動が世界に被害をもたらし、その被害がループ回路によって逆転して、即座にあるいは一定の期間の後に、すべての人々の労働の所与となる」ことを信じるのであれば、契約内容を見直して労働内容を問いなおしたい気持ちが生まれます しかし残念ながら契約内容を問うような時期は過ぎているようにも思えます それはどのみち問題にしかなり得ないことを私たちは既に身に染みて分かっているからです 例えば私が住んでいる青森県には「次世代エネルギーパーク」という名前で、放射性廃棄物の中間貯蔵施設や最終処分場とともに再生可能エネルギーを扱う企業が密集するエリアがあります 私たちは自然との共生関係を望みながらも、実際の契約のテーブルにつく相手方として自然か、人間存在の影としての技術かを選ぶことを決めかねているわけです この不毛な契約のテーブルを離れて部屋の窓を開け放つ時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そうして私たち一人ひとりが周囲の文化や自然環境との連なりを基点に世界を再度認識しなおすことが必要です 「台北ビエンナーレ2020:你我不住在同一星球上 You and I Don’t Live o n the Same Planet」はそのための認識のシステムと見なすことが可能なように思われます 先述のラトゥールとマーティン・ギナールのキュレーションにより世界27か国からアーティストや科学者、活動家ら57名の個人や団体が参加した国際芸術祭として開催されました 台湾の亜熱帯環境との調和をもとに台北市美術館内外で展開された本芸術祭を特徴づける鍵となる概念の一つが「Planet TERRESTRIA L」です そこでは地球規模での気候変動を背景に、経済活動の充実化と地球にかけられた負荷との間のバランスのとり方を考えることが主題となりましたが、そのためにラトゥールが地球表面や風土といったニュアンスを託した新たな概念を提示し、芸術祭という形式のもとに検討を加えている、というのはたいへん興味深いことです 地域に根ざした芸術祭を媒体(medium)として、理論を現実化させる働きが見られるからです このような思考の筋を横糸、定義の問いなおしによる領域拡大の連続としてのデュシャン以降の現代芸術の歴史を縦糸として編まれた一枚の布を想像してみてください すると今日の芸術制作の中に人間の地球認識の変容を促す「潜勢力」の気配を読み込むことも可能なように思えてきます そうして媒体としての働きから作品の強度を語るための糸口を設定すると同時に、地球へのイメージを現実化させるための媒体としての可能性を見出したいわけです そのために今回接続を試みるのは美術批評家であるロザリンド・クラウス(1940- )が提唱するポストメディウム理論です 作品における物質性を重視するクレメント・グリーンバーグを師としたクラウスは次第に師を離れ、オルタナティブな批評の可能性を追求するようになります その中で1990年代末から2000年代はじめにかけて提唱されはじめたのがポストメディウム理論でした 対象としては主に写真や映像作品を取り上げ、作品を成り立たせる技術的な特質を考察することをもとに、作品に含まれる創造性を引き出していくことが試みられていました 作品成立の条件としての物質から技術への眼差しが美術批評における創造性を新たにしたわけですが、もちろん現実の作品制作はそんなにすっきりと展開され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実際の作品制作は物質的にも技術的にもいよいよ複雑に絡みあうといった異種混淆性すなわち、なんでもあり状態が自明のものとなってきています この発表においては、今日の芸術作品に内在する技術/物質/精神の異種混淆な状態を中間的な運動状態として読みかえ、それをもとに作品と現実を同時に制作し、規定しなおすような行為を見出すことを提案したいと思います そこではポストメディウム理論を介して新たな地球認識を媒体する芸術制作という可能性が主張されると同時に、その主張は作品固有の強度を語るものとして、絶えず作品そのものに回帰す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そうして地球と芸術作品、それぞれが描く二つの円が少しずつ重なるようにして林檎のような形の放物線を描いていく 「地球芸術学」という思考の形式があり得るとしたら、私はそんな形を考えます そこでは作品をとおして事物の運動状態が表面化するがゆえに芸術作品について語ることが地球を語りなおすための動力ともなる そのことを実際に示すため、次からは二人の芸術家の素晴らしい作品を紹介しますそうしていわば林檎によって見られた夢を、どこまでも現実として引き受けることの可能性に賭けたいと考えています 

Ⅱ. 動力としての林檎:雨宮庸介

再び青森県の林檎の話をすることから始めましょう 青森は日本一の林檎生産県です その歴史は188 7年春、輸入した西洋林檎の苗木3本を植えたことから始まります そこから林檎農業はどんどん発展していって、今も岩木山という山の麓を中心に、林檎畑が続く広大な風景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 あまりにモノカルチャーな風景が延々と続くため、その辺りを歩いたり車で走ったりしていると、青森の自然とか人の営みは、林檎の中にまるっと取り込まれてしまって、まるで一個の林檎の中にいるかのような気さえするくらいです 2019年夏、アーティストの雨宮庸介(1975- )と私は、この林檎世界の一角で林檎農家の方の収穫作業を手伝っていました その年の秋に「いのち耕す場所」をテーマに現代アートと農家仕事の魅力をつなげて紹介する展覧会を準備していて、出品作家の一人である雨宮が取り組んでいる「普遍的な林檎」の制作に関連した調査に立ち会うべくその場所を訪れていました 雨宮は自らの制作を介して現実と空想の境を行き来し、鑑賞者に独自の知覚や体験を促す立体作品やパフォーマンス作品等で国際的に評価が高い芸術家です 2005年頃から林檎の作品シリーズを本格的に手がけるようになった雨宮は、その制作を介して既存の芸術や社会を支える様々な構造を焙り出そうとします その先にあるのは何でしょうか 雨宮が木材に油絵の技法を用いてつくる林檎作品は、現実の林檎に限りなく等しい色や形、質感を有しており、雨宮自身の言葉を借りれば「林檎がどのような気候や地形で育ち、収穫され、どんな保管をされて今手元にあるのかという物語を読み解き、その文脈におけるその現在を表面に描くという作業」をもとにつくられます そんな林檎が腐りもせずに展示された状態に身を置いていると、なんだかそっちの方が自然に思えてきて、育ったり食べることができたり、腐ったりして変化する現実の林檎があることの方が不思議に思えてくるんですね ジャン・ボードリヤール(1 929-2007)の「現実は、現実そのものを緻密なコピーにしてしまうハイパー現実への過程で崩壊する」という言葉をよぎらせつつ、そんな時にふと思うのです 雨宮は林檎の制作に没頭しているように見えて実は世界のすべてを制作しなおしていたのではなかったか 林檎についての深い知見や精緻な技術は、全てがひっくり返る瞬間を現実に呼び入れるための壮大な下準備なのではないか 雨宮の林檎作品には作品世界と現実の越境を誘発し、世界の中の自己の存在形式を変容させるディナミックなシステムとしての面がある このポストメディウム性を指摘し得る雨宮の作品制作には、外在化させることなしには自己を認識し得ない「契約」とは別の手法で、世界との関係をまるごと切り替える手法を読み取ることができそうです 雨宮のこの「普遍的な林檎」は今後、実際の農業を介して果物として現実化する計画です そこでは、バタイユ-ボードリヤールが死を介することでしか脱し得なかった現実世界が、その内部から丸ごとつくりかえられる瞬間が現れ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Ⅲ. 世界を夢見る:崔在銀(Jae-Eun Choi)

雨宮の作品制作を介して世界認識を切り替えることについて指摘しました そうなるとその先で、制作行為は現実にどのような具体的な影響を及ぼすことができるかを考えたくなります 次に紹介するのが韓国出身の芸術家である崔在銀(1953- )によるプロジェクト構想《Dreaming of Earth Project》です 崔は日本の生け花への関心をもとに作品が取り持つ独自の場のあり方を追求し、「地球の治癒と人間の回復」への関心を一貫してもち続けている芸術家です プロジェクトの舞台となるのは北朝鮮と韓国の間に位置する非武装地帯(DMZ) 原則的に人の立ち入りが禁止されたDMZの境界線付近には両国の軍隊が、その内部には300万個を越える地雷が埋められ、現在に至るまで全ての生きものたちの命を脅かし続けています 一方で70年近く人の手を介さない状態が保持されてきたDMZは、2800種を越える動植物が生息する豊かな自然環境を有する場所でもあります プロジェクトでは崔主導のもと、DMZ中、江原道鉄原郡鉄原邑洪元里弓裔都城を中心とした10㎞程度の範囲において4つのプロジェクト「1.空中庭園、東屋、塔の設営 2.生命と知識の地下貯蔵庫 3.弓裔都城の森の治癒 4.地雷撤去」を、複数名のアーティストの作品をもとに実現することが構想されます 「1」では建築家の坂茂による空中庭園の周囲に川俣正、イ・ブル(Lee Bul)、李禹煥、Studio Munbai、Studio Other Spacesによる東屋を点在させる 「2」「3」においてはスン・ヒョサン(Seung H-Sang)が、鳥が休むための場所-「鳥の修道院」を、チョウ・ミンスク(Minsuk Cho)が生態学を主題にした図書館とシードバンクを地下に建造する 作品の他にもこの場所に人間が立ち入る際のルールが設計されるほか、環境に配慮しながらこの場所に滞在するための服のデザインなどが検討されているそうです この非常に壮大なプロジェクトは国連と韓国政府に提案され、実現に向けて現在検討が重ねられているそうですが、その全貌をこの発表時間内で紹介するのは全く不可能です そこでひとまず今回は、このプロジェクト構想が2019年、日本の原美術館での展覧会「自然国家」として紹介された際、崔がどのような作品を提示したかを紹介します 展覧会の冒頭では「No Borders Exit in Nature」と書かれたテキスト作品が掲げられ、DMZに息づく101種の絶滅危惧種の名前や種子を組み合せたインスタレーション《To Call by Name》、DMZにおける境界線として用いられていた鉄条網を鋳直してつくられた鉄の板を組み合せた通路状の作品《hatred melts li ke snow》などが発表されました 両作品においては国家や戦争、鉄、憎悪が崔の想像力の中で変容し、ある一つの志向性を伴いながら再表象させ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 その志向性とは崔にとっての理想である「自然国家(自然の支配する国)」です 崔は自身の作品素材に宿る技術/物質/精神の混淆状態を再帰的に見据えつつ、制作行為を介してそれらに別の運動状態を接ぐことでプロジェクト構想を現実化するための手立てとします 崔の作品のポストメディウム性が基点となり、「世界を自然の支配する国」へとこの現実を厳密につくりかえる可能性への転換を可能にしているわけです その中で先に紹介した様々な作品は、芸術作品であるとともに自然の支配する国家の礎として現実化す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Ⅳ. まとめ

冒頭のニュートンは「万有引力」の着想を1665から1666年にかけての二年間、故郷での休暇中に得たと言われています その休暇は当時ヨーロッパを席捲したペスト禍を逃れることを目的としたものでありました 疫病をやり過ごすさなかに生まれた知恵、という意味で、ニュートンとコロナ禍の最中に地球人文学(Global Humanities)について検討を加える我々との間で反復的かつ引力的な関係を考えたくもなってきますね ともあれ本発表もそろそろ終わり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時間のようです この発表では雨宮の制作を介して世界の中での自己の存在形式を変容させ、崔のプロジェクト構想を介して世界を文字通りつくりかえる可能性について指摘しました 総じて個と世界との位相の反復を、制作を介して変調させること すなわち作品におけるポストメディウム性を見すえることで自己と地球、自我と他我との境が交わる運動状態の過中から「もう一つの」自己(alter ego)を引き出し、人が美的かつ直接的な形でこの地球と共に生きるための存在領域を現実化させることを提案する発表でした この提案を地球芸術学と呼び得るものにするためには、今後もこの現実世界における日々の制作行為の中に埋没し

 

ながら絶えず思索を進めていくことが必要になりそうです 本日の発表はその糸口であることを確認して終えたいと思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지구종교학】


4] 【지구예술학】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

 4] 【지구예술학】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 

요약문   전 세계적 규모로 기후변동과 코로나19의 확대와 같이 인간활동에 기인하는 대재난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예술은 의학이나 과학과 같은 방식으로는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 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는 인간활동의 ‘지구화’의 흐름과, 인간활동으로서의 예술, 특히 마르셀 뒤샹(Marc el Duchamp, 1887~1968)이래의 현대 예술의 역사가 그 정의(定義)에 대한 다시 물음을 통한 영역확대의 연 속임을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예술에서 인간의 지구인식의 변용을 촉구하는 ‘잠재력’의 기미를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 예술계에서의 인류세나 생태계에 대한 관심의 고조에는 그러한 전조의 측면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본 발표에서는 한국의 최재은(1953~)이 DMZ를 무대로 생명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기획한 《대지의 꿈》 프로젝트나 일본의 아메미야 요우스케(雨宮庸介, 1975~)의 ‘사과’를 주제로 한 작품 제작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구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동아시아 현대 아티스트

의 작업을 포스트-미디엄(post-medium)이나 신유물론(new materialism)과 같은 이론을 원용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작품에 내재하는 기술/물질/정신의 고유성의 이종혼잡 상태=중간적 운동상태를 힌트 삼아, 예술제작이나 이론을 지구인식을 새롭게 하는 매체(medium)로서의 가능성으로 전치(轉置)시킬 것을 주장하 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지구를 자신의 반신(半身=alter ego)으로 간주하고, 미적이면서 직접적인 형태로 지구 에 살기 위한 사고영역, 즉 ‘지구예술학’에 이르는 방법을 제창할 생각이다.

차 례

Ⅰ.‘지구예술학’을 그리기 위해서

Ⅱ. 동력으로서의 사과:아메미야 요스케(雨宮庸介, 1975-)

Ⅲ. 세계를 꿈꾼다: 최재은(崔在銀, Jae-Eun Choi)

Ⅳ. 맺으며

이번 발표에서는 예술윤리와 존경할만한 예술가들의 작품제작의 사례 등을 소개하면서, 인간이 예술제작을 통해서 지구를 어떤 형태로 재인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재인식을 토대로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런 사고의 형식을‘지구예술학’의 가능성

 

*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학예원

을 검토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Ⅰ.‘지구예술학’을 그리기 위해서

‘지구예술학’이라는 미지의 학문영역의 개요를 알기 위해서 먼저 사과를 실마리로 삼고자 한 다. 여기에서 연상되는 것은 아이작 뉴톤(1643-1727)이다. 그는 일설에 의하면 낙하하는 사과를 보 고 만물을 지구 내부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중력 작용에 대해서 미셀 세르(193 0-2019)는 그의 저서 자연계약(Le Contrat Naturel)(1990)에서“최초의 대규모적인 과학시스템”이 라고 말했다. 만유인력은 우리와 지구의 결속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 인간은 이미‘사회 계약’을 매개로 인간들끼리의 결속으로서의 사회를 손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인간사회의 팽창, 즉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필연적이고, 최근의 하두인 인간활동이 지구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시대구분인 ‘인류세(anthropocene)’의 도래는 사회계약이 행해진 시점에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사회계약을 대신하여 세르가 주창한 것이 인간과 지구의, 오늘날로 말하 면‘공생의’‘지속가능한’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 재생관계를 맺을 것을 주창한‘자연계약’ 이었다. 인간을 날줄, 자연을 씨줄로 해서 지구를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세르의 제창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성의 그물망 속에서 모든 사물의 행위를 고찰하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 1947- )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과 접속된다. 그런데 세르가 제시한 바와 같이“모든 사람 들의 활동이 세계에 피해를 초래하고, 그 피해가 루프 회로에 의해 역전되어, 곧바로 혹은 일정한 기간 후에 모든 사람들의 노동의 소여가 되는”것을 믿는다면, 계약내용을 재검토하고 노동내용을 다시 묻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계약내용을 물을 시기는 지나가 버린 듯하다. 그것은 결국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미 몸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살고 있는 아오모리현(青森県)은‘차세대 에너지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방사성 폐기물의 중간저장 시설이나 최종처분장과 함께 재생가능에너지를 다루는 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나는 자연과 의 공생관계를 희망하면서도 실제적인 계약테이블에 앉아 있는 상대방으로서 자연인가, 아니면 인 간존재의 그림자로서의 예술인가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비생산적인 계약테이블을 떠 나서 방안의 창문을 열어젖혀야 할 때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위의 문화나 자연환경과의 연대를 기점으로 세계를 다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이페이(台北) 비엔날레2020:你我不住在同一星球上 You and I Don’t Live on the Same Plan et”은 그 작업을 위한 인식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비엔날레는 브뤼노 라투르와 마틴 기나르 (Martin Guinard)의 큐레이션에 의해 전 세계 27개국으로부터 온 아티스트, 과학자, 활동가 57명 그 리고 단체가 참가한 국제예술제로 개최되었다. 타이페이의 아열대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타이 페이미술관 내외에서 개최된 이번 예술제를 특징지우는 키워드 중의 하나는 ‘Planet TERRESTRIA L’이다. 거기에서는 지구 규모의 기후변동을 배경으로, 경제활동의 충실화와 지구에 가해진 부담 사이의 균형을 잡는 문제가 테마가 되었는데, 그것을 위해서 라투르가 지구 표면이나 풍토와 같은 뉘앙스를 담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예술제’라는 형식으로 검토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흥미 로운 일이다. 지역에 뿌리를 둔 예술제를 매체(medium)로 하여, 이론을 현실화시키는 작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의 근육을 씨줄, 정의(定義)의 다시 물음에 의한 영역 확대의 연속으로 서의 마르셀 뒤샹 이래의 현대예술의 역사를 날줄로 해서 짜여진 한 장의 천을 상상해 보라. 그러 면 오늘날의 예술제작 가운데 인간의 지구인식의 변용을 촉구하는‘잠재력’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해서 매체로서의 작용으로부터 작품의 강도를 말하기 위한 실 마리를 설정함과 동시에 지구에 대한 이미지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찾아보고 자 한다. 

그것을 위해 이번에 접속을 시도한 것은 미술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1940 -)가 제창한‘포스트 미디엄 이론’이다. 작품에서의 물질성을 중시하는 클레먼트 그린버그(Clemen t Greenberg, 1909-1994)를 스승으로 삼았던 크라우스는 점차 스승을 떠나 대안적(alernative) 비평 의 가능성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제창되기 시작한 것이 포스트 미디엄 이론이었다. 대상으로는 주로 사진이나 영상 작품을 다루고, 작품을 성립시키 는 기술적 특질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작품에 포함되는 창조성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었다. 작품 성립의 조건으로서의 물질에서 기술로의 시선 이동이 미술비평에서의 창조성을 새롭 게 한 것인데, 물론 현실의 작품제작은 그렇게 깔끔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의 작품제작은 물질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점점 복잡하게 얽히는 이종혼종성, 즉 뭐든지 들어 있는 상태가 자명 하게 되고 있다.     

본 발표에서는 오늘날의 예술작품에 내재하는 기술/물질/정신이 이종혼합되는 상태를 중간적 인 운동상태로 새롭게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과 현실을 동시에 제작하고 새롭게 규정하는 등 의 행위를 발견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거기에서는 포스트 미디엄 이론을 매개로 새로운 지구인 식을 매개하는 예술제작의 가능성이 주장됨과 동시에, 그 주장은 작품 고유의 강도를 말하는 것으 로써, 끊임없이 작품 그 자체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구와 예술작품, 각각이 그리는 두 개의 원이 조금씩 겹치도록 해서 사과와 같은 형태의 방사선을 그려 나간다.‘지구예술학’이 라는 사고의 형식이 있을 수 있다면, 그런 형태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는 작품을 통해 사물의 운 동상태가 표면화되기 때문에 예술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지구를 새롭게 이야기하기 위한 동 력도 된다. 이 점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 이하에서는 두 명의 예술가의 멋진 작품을 소개하고 자 한다. 그렇게 해서 이른바 사과에 의해 보여졌던 꿈을 어디에서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 능성을 기대하고자 한다. 

Ⅱ. 동력으로서의 사과:아메미야 요스케(雨宮庸介, 1975-)

다시 아오모리현의 사과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아오모리는 일본 제일의 사과 생산지다. 그 역

사는 1887년 봄에 수입한 서양 사과 묘목 세 그루를 심은 데에서 시작된다. 그로부터 사과농업은 점점 발전해서, 지금도 이와키산(岩木山)이라는 산기슭을 중심으로 사과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 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너무나 단작농업의 풍경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 주변을 걷거나 차로 달리거 나 하면 아오모리의 자연이나 사람의 활동은 사과 속으로 통째로 빠져 들어가서, 마치 한 개의 사 과 속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2019년 여름, 아티스트인 아메미야 요스케와 나는 이 사과 세계의 일각에서 사과 농가의 수확작 업을 거들고 있었다. 그 해 가을에“생명을 경작하는 장소”를 테마로  현대 아티스트와 농가 일 의 매력을 연결시켜 소개하는 전람회를 준비하면서, 출품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아메미야가 작업하 고 있는‘보편적인 사과’제작과 관련된 조사에 입회하기 위하여 그 장소를 방문하고 있었다. 아 메미야는 자신의 제작을 매개로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오가면서, 감상자에게 독자적인 지각이나 체험을 촉구하는 입체작품이나 퍼포먼스 작품 등으로 국제적으로 평가가 높은 예술가이다. 2005년 무렵부터 사과의 작품시리즈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 아메미야는 그 제작을 매개로 기존의 예술 이나 사회를 지탱하는 다양한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메미야가 목재에 유화의 기법을 사용하여 만드는 사과 작품은 현실의 사과에 한없이 가까운 색채와 형태, 질감을 지니고 있고, 아메미야 자신의 말을 빌리면“사과가 어떤 기후나 지형에서 자라고 수확되 며, 어떻게 보관되어 현재 손 안에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독해하여, 그 문맥에 있어서 그 현재를 표 면에 그리는 작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사과가 썩지도 않은 채 전시된 상태 쪽으로 몸을 가 져가면, 왠지 그쪽이 자연스럽게 생각되어 기르거나 먹을 수 있거나, 썩거나 변화하는 현실의 사과 가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된다. 

쟝 보드리야르(1929-2007)의“현실은, 현실 그 자체를 치밀한 복사로 삼아 버리는 초현실로의 과 정에서 붕괴된다”는 말이 머리에 스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메미야는 사과 제작에 몰두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계의 모든 것을 다시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과 에 대한 깊은 지견이나 정치한 기술은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순간을 현실로 불러들이기 위한 장대 한 사전준비가 아니었을까? 아메미야의 사과작품에는 작품세계와 현실의 월경(越境)을 유발하고, 세계 속의 자기의 존재형식을 변용시키는 다이나믹한 시스템의 측면이 있다. 이 포스트 미디엄성 (性)을 지적할 수 있는 아메미야의 작품제작에는 외재화시키지 않고는 자기를 인식할 수 없는‘계 약’과는 또 다른 수법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통째로 전환시키는 수법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메미야의 이‘보편적인 사과’는 앞으로 실제의 농업을 매개로 과일로 현실화될 계획이다. 거기 에서는 바타이유-보드리야르가 죽음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현실세계가 그 내 부에서 통째로 개벽되는 순간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Ⅲ. 세계를 꿈꾼다: 최재은(崔在銀, Jae-Eun Choi)

아메미야의 작품세계를 매개로 세계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그렇게 되면 그 다 음의 제작행위는 현실에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어 서 소개하는 것은 한국 출신 예술가 최재은(1953-)에 의한 프로젝트 구상《Dreaming of Earth Proj ect》이다. 최재은은 일본의 꽃꽂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품이 지니는 독자적인 장(場)의 존 재방식을 추구하고,‘지구의 치유와 인간의 회복’에 대한 관심을 일관되게 지니고 있는 예술가다. 프로젝트 무대는 북한과 남한 사이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원칙적으로 사람의 출입이 금지 된DMZ의 경계선 부근에는 두 나라의 군대가, 그 내부에는 300만개를 넘는 지뢰가 묻혀 있어, 지금 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70년 가까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상태가 보존되어 온 DMZ는2800종을 넘는 동식물이 생식하는 풍부한 자연환경을 지닌 장소이기도 하다. 프로젝트에서는 최재은의 주도 하에 DMZ중에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궁예도성(弓裔都城)을 중심으로 10㎞ 정도의 범위에서 4개의 프로젝트「1. 궁중정원(空中庭園), 정 자, 탑의 설치 2. 생명과 지식의 지하저장고 3. 궁예도성의 숲의 치유 4. 지뢰제거」를, 몇몇 아 티스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실현하려는 구상이다. 「1」에서는 건축가인 반 시게루(坂 茂)가 설계한 

궁중정원 주위에 카와마타 타다시(川俣 正)、이불(Lee Bul), 이우환, Studio Munbai, Studio Other Sp aces가 만든 정자를 산재시킨다.「2」「3」에서는 승효상(Seung H-Sang)이 새가 쉬기 위한 장소 -「새의 수도원」을, 조민숙(Minsuk Cho)이 생태학을 주제로 한 도서관과 종자은행(Seed bank)을 지 하에 축조한다. 이상의 작품들 이외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갈 때의 규칙이 설계되고, 환경을 배 려하면서 이곳에 체재하기 위한 복장 디자인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 매우 장대한 프로젝 트는 국제연합과 한국정부에 제안되어, 현재 실현을 향해 검토가 거듭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모 를 이 짧은 글에서 소개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다. 그래서 우선 이번에는 이 프로젝트 구상이 2019년에 일본의 하라미술관(原美術館)에서 전람회 ‘자연국가’로 소개되었을 때에 최재은이 어떤 작품을 제시했는지를 소개하겠다. 전람회의 서두에는 “No Borders Exit in Nature”라고 쓰여진 텍스트 작품이 전시되고, DMZ에서 숨쉬는101종의 절멸위기종의 이름이나 종자를 조합한 설치예술 《To Call by Name》, DMZ에서의 경계선으로 사용되었던 철조망을 다시 주조하여 만든 철판을 조 합한 통로 모양의 작품《hatred melts like snow》등이 발표되었다. 두 작품에서는 국가나 전쟁, 철, 증오가 최재은의 상상력 속에서 변용되고, 어느 하나의 지향성을 동반하면서 재표상되게 된다. 그 지향성은 최재은에게 있어서 이상인‘자연국가(자연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최재은은 자신의 작 품 소재에 깃든 기술/물질/정신의 혼합상태를 재귀적으로 응시하면서, 제작행위를 매개로 그것 들에 다른 운동상태를 접목함으로써 프로젝트 구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최재은 의 작품의 포스트미디엄성(性)이 기점이 되어,“세계를 자연이 지배하는 나라”로 이 현실을 엄밀 하게 개벽하는 가능성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앞에서 소개한 다양한 작품은 예술작품임과 동시에 자연이 지배하는 나라의 기초로서 현실화되게 될 것이다. 

Ⅳ. 맺으며

서두에서 말한 뉴톤은 만유인력의 착상을 1665년에서1666년까지 2년 동안 고향에서 휴가를 취하

는 도중에 얻었다고 한다. 그 휴가는 당시 유럽을 석권한 페스트의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염병이 한창인 때에 탄생한 지혜라는 의미에서, 뉴톤의 만유인력과, 코로나 재앙이 한창인 와중 에 지구인문학(Global Humanities)에 대해 검토하는 우리 사이에 반복적이면서 인력적(引力的)인 관 계를 생각하고 싶어졌다. 이 발표에서는 아메미야의 제작을 매개로 세계 속에서의 자기의 존재형 식을 변용시키고, 최재은의 프로젝트 구상을 매개로 세계를 문자 그대로 개벽하는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개체와 세계의 위상의 반복을 제작을 매개로 변조시키는 것. 즉 작품에서의 포스트 미디엄성을 응시함으로써 자기와 지구, 자아와 타아(他我)의 경계가 교차되는 운동상태의 과정에서‘또 하나의’자기(alter ego)를 이끌어 내고, 사람이 미적이면서 직접적인 형태로 이 지구 와 함께 살기 위한 존재영역을 현실화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을 ‘지구예술학’이라고 부 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이 현실세계에서의 매일 매일의 제작행위 속에 매몰되면서도 끊임없이 사색을 추구해 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발표는 그 실마리를 확인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번역: 조성환


3] 地球を活かす霊性学 片岡龍(東北大)

 3] 地球を活かす霊性学  片岡龍(東北大)

はじめに、事前に原稿をお送りできなかったこと、また本日の発表内容もアイディアだけの粗いものしかできなかったことを、お詫び申し上げます。

(スライド2)その「言い訳」になるのですが、2月13日に福島県沖地震があり、そのため研究室が本の海になってしまい、その片付けに追われていました。

(スライド3)次は、地震の5日後の写真ですが、ダウル君ら学生が片づけを手伝ってくれたこともあり、今では研究室はすっかりきれいに片付きました。

(スライド3―1)しかし、研究室とは別に書斎、書庫として借りているアパートの方は、まだほとんど片付いていません。片づけが進まない理由は、地震後2週間を過ぎたくらいから、周囲の雰囲気もすでに地震がなかったかのように、完全に元に戻り、日常の業務等でまた忙しくなったからということもあるのですが、もう一つ私の心の中に、早く片付けて元に戻りたいという気持ちと同時に、元に戻りたくない、「元に戻る」ことで<誤魔化したくない>という矛盾した気持ちが存在しているた

めです。

この矛盾した二つの気持ちは、「災害遺構(メモリアル)」を遺すべきか、遺さない方が良いかという問題にも、つながるように思います。

また、「地震後2週間を過ぎた」というところがポイントなのですが、いわゆる「災害ユートピア

(ブルーシート・ユートピアとも)」(Rebecca Solnit, A Paradise Built in Hell: The Extraordinary 

Communities That Arise in Disaster , 2009)」、つまり災害後、人々は悲惨な状態に置かれるのみでなく、お互い助け合ったり、分かち合ったりすることで、一種のパラダイス的な状況が生まれる、その記憶が2週間過ぎたくらいから薄らいでいくことへの抵抗感のようなものも、元に戻りたくない、

「元に戻る」ことで<誤魔化したくない>という気持ちの中にあるように思います。

(スライド4)もう一つだけエピソードをお伝えすると、わたしは10年前の東日本大震災も経験しました。といっても、被害は地震によって、研究室が先の写真と同じようになったというくらいで、津波や放射能の被害に直接遭っ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わたしは、研究室の片づけが終わると、津波の襲った地域の避難所でボランティア活動を行っていました。そのときのことを書いた文章です。

俺のほんとうの気持ちを言おうか」と、ある晩、避難所の喫煙場所で語りかけられた。

   「もう一度津波が来て、みんなが俺たちと同じ目に遭ってほしい。ボランティアの人にも心から感謝している。でも、誰にも言えないが、これが俺のほんとうの思いだ」。

  皮肉や一時的な感情から出た語でないことは、すぐに伝わった。心の底から通じ合いたい、切実にそう願うからこそ出てくる絶望の叫びだ。」

以上の二つのエピソード、(1)今回の地震に際してわたしが感じている、「元に戻る」ことで<誤魔化したくない>という気持ちの、<誤魔化したくない>とは、何をごまかしたくないのか、(2)10年前に聞いた、「もう一度津波が来て、みんなが俺たちと同じ目に遭ってほしい。」という語の意味するものは何か。今日の発表では、こうした問題を考えてみたいと思っています。

(スライド5)「地球災害学では、災害を、地球という一つの生命につけられた「傷」と捉える」。これが、「地球災害学」における「地球災害」の定義です。

(スライド5-1)従来の「災害」は、自然災害にせよ、人為災害にせよ、被害者は人間です。地球災害学では、加害者に自然(宇宙も含めます)の場合、人間の場合があるように、被害者にも人間だけでなく、自然も(宇宙も)含めて考えます。

(スライド5-2)宇宙も含めて考えるのは、人類の誕生する何倍も前の6550万年前の話ですが、小惑星の衝突によって恐竜等が絶滅した環境変動は、現在地球環境問題と呼ばれる変動とほとんど同じだからですが、この問題は今日は深入りはしません。

(スライド6)「「傷」(汚染)は、(人為的・自然的)地球変動によって生じる」。

「地球変動」とは、「環境」という語が、人間をとりまく人間以外という意味をもつのに対して、人間の行動も含めた全体的な概念です。すなわち地球変動には、人為的・自然(宇宙も)的、二つの変動が含まれます。

(スライド6-1)上の資料では、人為的地球変動のうち、人類にとって不都合なものを「地球環境問題」としていますが、「地球災害学」では、人為的地球変動だけでなく、自然(宇宙も)的地球変動も含め、また変動の影響を受ける対象も、人類だけでなく、自然(宇宙も)も含めます。このことは後でまた述べます。

(スライド6-2)「傷」は、また「汚染」と言うこともできますが、その本質は「変化」(恒常性が破れること)です。実は、生命を損なうマイナスの働きだけではなく、下の資料では、「この汚染こそ、地球を生命の惑星として育んできた」と述べられています。しかし、この問題も今日はこれ以上、深入りしません。

(スライド7)「従来の「災害」は、自然災害にせよ、人為災害にせよ、被害者は人間である。地球災害学では、加害者に自然(宇宙も)の場合、人間の場合があるように、被害者にも人間だけでなく、自然も(宇宙も)含める」。ここまでは、先ほど説明しました。

(スライド7-1)「これは、地球を一つの生命(一つにつながった生命)とする立場から、自然と人間を二別しないということだが、同様に、加害と被害も二別しない。」

(スライド7-2)しかし、加害と被害の事実を無視(忘却)するという意味ではない。よって、

 

被害者だけでなく加害者も向き合うべき「傷」と捉える。

(スライド7-3)以上が、今日わたしがお伝えしたいことの中心です。ただ、「災害」という語に関しては、それを「傷」と捉える点では、「災禍」とした方がよいか、迷っています。Covid-19の流行が、日本では「コロナ禍」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理由も、深く考えてみる必要があると思って

います。

また、そもそも韓国では「災害」というよりも「災難」という方が一般的と聞きましたが、「災難」という語には、「傷」(心的外傷)のニュアンスは含まれているのでしょうか?そうであれば、今日のわたしの発表は、ほとんど何の意味もない、韓国では当たり前の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すが・・・。このあたりのことも教えていただけたらと思っています。

(スライド8)次に、副題に掲げた「地球を活かす霊性学」の方に、話を移したいと思います。これはわたしがつけたのではなく、趙晟桓先生のつけてくださった題ですが、わたしの考えとまさに同じです。

地球災害学、つまり地球という一つの生命に傷をつけることに関する学、それを裏返したものが「地球霊性学」、傷つけられた地球という生命のつながりを、ふたたび活かす(結んで開かせる)霊性学です。

これに関しては、今日は「水俣病」を例にして、その入口のみを窺うくらいしかできませんが、お許しください。

これはみなまた日記 ― 甦える魂を訪ねてという映画の中で、水俣病患者連合の元会長の佐々木清登さんが、晩年に水俣市民に対して切実に訴えかけられた語です。

重度の水俣病に苦しんで死んだお父さんを看病した記憶を思えば、自分は水俣市のみなさんの前では実は話したくないのだが、それでも出てきた以上、一言いいたいのは、「水俣の市民の方々が、自分は加害者、患者の人は被害者、そういうふうに差別」されるのは、自分にはどうしても納得できない、みんな被害者ではないか、と佐々木さんは声をふりしぼるようにして、述べられています。

これは、最初に紹介した「もう一度津波が来て、みんなが俺たちと同じ目に遭ってほしい。」という語に通じるものだと思います。加害者として、あるいは被害を受けていないものとして、上から、あるいは壁越しに憐れむのではなく、被害者の位置まで下に降りてきて、壁を乗り越えてきてほしいという切実な訴えです。

(スライド9)次は、漁師の緒方正人さんの語です。同じく父親を水俣病で亡くした正人さんは、父親に毒を飲ませたチッソという会社をダイナマイトでぶっとばしたいと思っていたといいます。

(スライド10)しかし、「加害者を問うという発想からボールを投げたけど受け止めてくれない」。つまり加害者の責任が、補償という金の問題に、すり替えられ、誤魔化される。これは、やはり最初に述べた「元に戻る」ことで<誤魔化したくない>という私の思いとも通じるように思います。(スライド11)そうして、正人さんは、31歳のときに患者運動から突然離脱します。下の資料はそのころの正人さんの精神状況の回想です。

(スライド12)そこから、正人さんは漁師としての自分を問い直し、魚をとって生活するという点では、自分も泥棒、罪深い存在である。そのような同じ罪人として、チッソの社員を人として受け入れることで、「私自身も許された」と言います。

(スライド13)右の写真は、汚染された魚をドラム缶に詰め込んでいるところです。

(スライド13―1)左の写真は、2500本以上のそうしたドラム缶で海を埋め立てて造られた人口緑地です。

汚染はこれで封じ込められましたが、正人さんはこれで水俣病の問題を終わらせてはいけないとい

います。

(スライド13―2)次の語が、今日の発表と関わり、最も大事な語です。

「政治や権力に対して、消しゴムで消すようにはいかないよと言いたいですね。いくら水俣病のことを終わらせようとしても、そうはいかないよと。私は、毒を毛嫌いして忌避するだけではすまないと思っている。見えなくして蓋をして隠してしまうだけではダメだと思うのです。罪を行った側の人間の目覚めこそが大事です」

地球災害学で、災害を被害者と加害者がともに向き合うべき「傷」と捉える際に、最も「傷」に向き合いにくいのは、加害者の方です。被害者が加害者の罪を許すことも難しいことですが、それよりも難しいのは、加害者側が、「傷」をなかったことにする(誤魔化す)のではなく、生命が「傷」つけられた事実を直視する、それを直視できるような「霊性」に目覚めることです。

(スライド14)生命が「傷」つけられた人間だけではありません。次の写真は、犠牲になった生き物たちを祭るために正人さんたち水俣病患者が作った石仏です。

(スライド14-1)正人さんは言います。「水俣病」という言い方や、「環境問題」という言い方は、人間が海、山、自然界のことを地球的な規模で心配しているということだが、むしろ逆ではないか、「自然界が我々のことを心配している」「目覚めてほしい」と願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

地球災害学で、災害を起こすのは自然でもあり、人間でもあるのと同様に、その裏返しの地球霊性学でも、霊性を働かせるのは、人間でもあり、自然(宇宙も。神といっても良い)でもあるのです。

(スライド15)最後に、本発表のアイディアのもとになった沖縄の喜納昌吉さんの語を紹介します。前半は、今まで述べてきたことなので、後半だけ。

「不思議なことですが、傷の後ろには生命が眠っている部分があるんです。そして、その傷が生命のブロックになってしまっている。[・・・]傷ということは、自分が生命の源に帰れなくなることです。神と私たちのあいだが塞がれているのを傷というんでしょ。」

You Tubeに動画の上がっている「地球の涙に虹がかかるまで」という曲も併せて聴いていただければ幸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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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구살림의 영성학 가타오카 류(片岡 龍)*

 2] 지구살림의 영성학 가타오카 류(片岡 龍)*

76)

차 례

Ⅰ. 들어가며

Ⅱ. 지구재난학

Ⅲ. 지구살림의 영성학

Ⅳ. 맺으며

Ⅰ. 들어가며

2021년 2월 13일, 일본 후쿠시마현 해역 지진에 의해 연구실은 무너져 내린 책들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지진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어떻게든 정돈이 되긴 했으나 다른 서재 한 곳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복구작업이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나 자신의 마음 속에 빨리 복구해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한편에서 ‘원상복귀’함으로써 문제를 얼 버무리고 싶지 않다는 모순된 생각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모순은 ‘재해유구(災害遺構)’를 남길 것이냐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도 연관이 된다. 또한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핵심에는 소위 ‘재해 유토피

아’(Rebecca Solnit, A Paradise Built in Hell: The Extraordinary Communities That Arise in Disaste r , 2009)적 기억이 가셔져 가는 것에 대한 저항심이 저면에 있는 것 같다. 

나는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했다. 경험이라 해도 내가 받은 피해는 이번 지진에 의한 연 구실 피해와 별반 다르지 않는 정도였고, 쓰나미나 방사능 피해를 직접 받은 것은 아니다. 나는 당 시 연구실 정리를 마치고 쓰나미가 덮친 지역의 대피소로 봉사활동을 갔다. 다음 인용문은 그 때 

 

* 도호쿠대학 

있었던 일을 기록한 졸문의 일부분이다. 

‘내 솔직히 터놓을까?’라며 어느 날 밤 대피소 흡연장소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다시 한 번 쓰나미가 와서 모두들 우리랑 같은 처지에 놓여봤으면 좋겠어. 봉사활동 와준 사람들에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하지만 아무한테도 못할 얘기지만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야.’ 빈정댄 것도, 일시적 감정으로 한 말도 아니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서로 통하고 싶다. 이 를 절실히 바랬기에 터져 나온 절망 속의 울부짖음이었다.1)

이상의 내 두 번의 경험, 특히 ‘원상복귀’함으로써 얼버무리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과 ‘다시 

한 번 쓰나미가 와서 모두들 우리랑 같은 처지에 놓여봤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피난소 사람의 말 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지구재난학 구상에 연결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Ⅱ. 지구재난학

지구재난학에서는 ‘재난’을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에 생긴 ‘상처’로 삼는다.

종래의 ‘재난관’은 자연재난이든 인위재난이든 피해자는 인간중심이다. 그러나 지구재난학의 경우, 가해자가 자연 (우주도)인 경우도 인간인 경우도 있듯이 피해자에 인간뿐만이 아니라 자연도 

(우주도) 포함시킨다. 여기서 ‘우주’까지 포함시키는 이유는 인류가 탄생하기 전(K/Pg경계), 소행성 충돌에 의해 

생긴 환경변동은 현재 지구환경문제라 불리는 변동과 거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2) 

‘상처’(오염)는 (인위적・자연적) 지구변동에 의해 생긴다.

‘지구변동’이라는 개념은 다음 인용문에 의거하고 있다.

인류의 활동이 초래하는 지구표면상의 변동을 인위적 지구변동(anthropogenic global change)이라 한다. 현재 그리고 예상되는 미래의 인위적 지구변동 중 인류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리라 여겨지는 변동을 지구환경문제라고 한다. [・・・] ‘환경’에는 인간을 둘러싼 비인간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거기에는 인간주체이고, 인류가 취할 대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학문으로서 생 각할 때는 대상을 객체화하고 또한 인간의 행동도 포함시켜 지구변동(global change)이라 하는 것이 적절하다.3)

 

1) 片岡 龍, 「悲しみを抱えて生きる」, 世界829号, 2012. 4. 1. 2) 松井孝典, 我関わる、ゆえに我あり, 集英社新書, 2012, p.194 참고.

3) 市川惇信, 「20世紀科学技術文明の意味」, 岩波講座 地球環境学1: 現代科学技術と地球環境学, 岩波書店, 

1998, pp.3-4.

지구살림의 영성학 地球を活かす霊性学

‘환경’이라는 말이 ‘인간을 둘러싼 비인간’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에 반해 ‘지구변동’은 인간의 행위도 포함한 전체적 개념이다. 지구변동에는 인위적・자연적 이 두 변동이 모두 포함된

다. 또한 ‘지구환경문제’가 ‘인위적 지구변동 중 인류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변동을 의미하는 데 반해 지구재난학에서는 인위적 지구변동뿐만 아니라 자연적 지구변동도 포함하고 있고, 또한 상술하였듯 변동의 영향을 받는 대상(피해자)에 있어서도 인류뿐만이 아니라 자연을 포함하고 있 다. 

이하 인용문을 참고하면 ‘상처’는 ‘오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본질은 ‘변화’ (항상성이 깨지는 것이)다.

지구 시스템의 구성요소는 시간과 함께 변화해왔습니다. [・・・]구성요소가 바뀔 때마다 지구 시스 템의 상태는 변합니다. 그 때 일어나는 것이 「오염」입니다. 예를 들어 대륙이 탄생하면 비가 내려 침식된 대륙물질이 바다로 유입해 바다의 상태는 변합니다. 이것이 대륙물질에 의한 바다의 ‘오 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바다의 염분이야말로 오염물질입니다. 이렇듯 시스템의 상태변화에 따라 다른 구성요소의 내용물이 변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오염’이라 부르는 것의 본질입니다. 시스템론적으로 지구의 역사를 바라보면 대륙의 탄생과 더불어 바다는 대륙물질에 의해 오염되었 고, 또한 생물권의 탄생과 더불어 대기나 바다나 대륙은 산소에 의해 오염되어 온 셈입니다. 실은 이 ‘오염’이야말로 지구를 생명의 행성으로서 키워내 온 ‘기본과정(elementary process)’이기 도 하다는 것입니다.4)

여기서 일컬어지듯이 ‘상처’(오염)란 꼭 생명을 훼손시키는 부정적인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니

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 과제로 하고자 한다. 

지구재난학에서 자연과 인간을 둘로 나누지(二別)5) 않는다는 것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하나로 이 어진 생명)으로 여기는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인데, 동시에 가해와 피해도 또한 둘로 나눠서 보 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가해와 피해의 사실을 무시(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피 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오히려 가해자야말로) 마주봐야 한다는 의미로 ‘상처’라 한 것이다. 

Ⅲ. 지구살림의 영성학

지구재난학 다시 말해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에 새겨진 ‘상처’에 관한 학문. 이를 반대로 뒤집 은 것이 ‘지구영성학’ 다시말해 상처 입은 지구라는 생명의 고리를 다시 살리는(치유하는) 영성

 

4) 松井孝典, 我関わる、ゆえに我あり, 集英社新書, 2012, p.147.

5)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가 존재의 관계성을 의미하는 ‘호성(互性)’이라는 개념으로 대치시킨 개념. 가타오카 류, 「日本の「周辺」から見た東アジアの平和と宗教―安藤昌益の平和論を中心に―」, 土田健次郎教授退職記念論集 朱子学とその展開, 汲古書院, 2020.2.3.) 참조. 

학이다. 

이에 관해 이번에는 ‘미나마타병(水俣病)’의 예를 통해 ‘지구영성학’의 입문을 들여다 보는 

데 그치고자 한다. 

다음 인용문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개최된 ‘미나마타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 (水俣病を語る会)’에서 사사키 키요토(佐々木 清登)씨 (당시 미나마타병환자연합회장) 가 미나마타 시민에게 말한 내용이다. 

난 120일 정도 아버지 머리맡에서 하루도 떠나지 않고 같은 병실에 머물며 간병해온 그 100일을 넘 는 나날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 고통이랄까요… 뭔가 비참한… 떠올리기만 해도 정말… 이제…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미나마타 시민들 앞에서는 사실 말하고 싶지 는 않습니다만은 이것만은 여러분에게 오늘 여기에 내가 나온 이상, 한 마디는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한다면 왜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이 자기는 가해자, 환자는 피해자라는 식으로 차별… 이 랄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도저히 제게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도 피 해자 아닙니까. 우리들만이 피해자는 아닐껍니다. 일반 소비자 분들도 피해자잖아요. 요는 먹으면 안되는 생선을 먹고 그 때문에 미나마타병 병세가 나타난다. 이걸 알고 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 까. 시민 여러분도 그걸 먹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모두 그런 피해자란 말입니다. 그렇게 이 미나마 타병 문제에 모두가 같이 착수를 했다면 지금처럼 이 환자단체랑 하나가 되라는 둥, 여러 시민과 환자 사이의 벽을 어떻게든 풀어낼 수 없을까 라는 둥 하는 얘기를 여러 운동단체가 각각의 입장에 서 이야기하고 있지만은 사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도 그 책임이 있을 것이라 고 저는 생각합니다.6)

‘미나마타 시민 여러분이 자기는 가해자, 환자는 피해자라는 식으로 차별’하는 것에 대해 사 사키씨 본인이 납득하기 어렵다 모두 피해자이지 않느냐고 한 것은 이 보고서 서두에서 소개했던 ‘다시 한 번 쓰나미가 와서 모두들 우리랑 같은 처지에 놓여봤으면 좋겠어’라는 말과 통하는 부 분이 있다. 가해자로서 또는 피해를 받지 않은 자로서 높은 곳에서 또는 강 건너편에서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위치까지 내려와서, 강을 넘어와서 마주해줬으면 하는 영혼 깊은 곳에서의 호 소였던 것이다. 

또 어부 오가타 마사토(緒方 正人)씨는 인터뷰7)에서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회사에 대한 어린시절

의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도 어리면서도 세상 참 이따위인가 싶었습니다. 자기 마음 다스릴 줄 몰랐죠. 누가 아버지에게 독을 먹였냐고 말입니다. ‘칫소 Chisso8)가 어떤 놈들인가’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

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서 칫소에다가 폭탄을 던져 날려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원수를 갚지 않는 한 한이 풀리지 않는다고, 복수를 하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었던 겁니다.

 

6) 映畫 <みなまた日記 ― 甦える魂を訪ねて>, 監督:土本典昭,  2004.

7) <【특집】미나마타로부터 생각해 보다(1)어부・오가타 마사토(緒方正人)씨>, 기사등록일:2020년 06월 2

3일)https://www.nhk.or.jp/heart-net/article/371/

8) 신일본 질소 주식회사(미나마나시에 화학공장을 처음 설립한 회사)

지구살림의 영성학 地球を活かす霊性学

그러나 피해자 단체와 칫소, 국가 사이의 교섭을 거듭하면서 오가타씨가 느낀 것은 ‘가해자를 

추궁한다고 하는 발상으로 임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다시말해 가해자의 책임이 미나마타사건 을 인정(認定)하거나 보상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로 ‘바꿔치기’ 되고 ‘얼버무려’진 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오가타씨는 31세 떄 미나마타병 환자운동에서 벗어나, 어부로서의 자신과 마주한다. 그 렇게 자신을 되돌아보던 중 자신도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도둑이자 죄가 깊 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자신도 죄인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칫소 사원들과 마주하 였고, 비로소 칫소 사원들도 어엿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가타씨는 그렇게 ‘나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미나마타시가 있는 구마모토현은 오염된 물고기를 채운 2500통 이상의 드럼통으로 바다를 메워 

올려, 그곳에 인공녹지(「생태공원 미나마타(エコパーク水俣)」)를 만듦으로써 오염을 막았다. 그러나 이 미나마타병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오가타씨는 말하고 있다.

정치나 권력에 대해 “지우개로 지우듯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미 나마타병 사건을 종식시키려고 해도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고요. 저는 독을 꺼려하고 기피하는 것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게끔 뚜껑을 덮는 식으로는 안된다는 겁 니다. 죄를 범한 측인 인간의 깨달음이야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지구재난학(지구살림의 영성학)에서 ‘재해’를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마주해야 할 ‘상처’로 삼을 때, 가장 ‘상처’와 마주하기 어려운 것이 실은 피해자보다 가해자 쪽이다. 피해자가 가해자 의 죄를 용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상처’를 없었던 일로 해 버리는(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상처’입혀진 사실을  가해자가 직시하고, 직시할 수 있 을만큼의 ‘영성’을 깨닫는 것이다. 

미나마타병에 의해 생명이 ‘상처’입혀진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오가타씨 등 미나마타병 환

자들은 희생된 생물들의 혼을 모시기 위한 석불을 만들고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25년 이상 계속 세우고 있다.

‘미나타마병’이라는 말 속에 근대문명사회의 병든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환경문제는 극 히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다, 산, 자연계의 일을 지구적인 규모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 고 있죠. 이 견해는 옳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반대로 자연계가 우리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생 각해요. 이대로는 인간의 앞날은 어떻게 되겠느냐고요. “언제 깨달을래 너희들은”이라고 꾸중을 듣고 있는 겁니다. 실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랑은 반대로 우리쪽이 걱정을 받고 있을 거라 봅니다, 부디 깨달아 달라는 바람으로요.

재해를 일으키는 것이 자연이기도 인간이기도 한 것과 같이, 지구영성학에 있어서도 영성을 발

휘하는 것은 인간이기도 자연이기도 하고(지구), 그리고 또 ‘신’(우주)이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영성이란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것이리라. 

Ⅳ. 맺으며

마지막으로 오키나와의 음악가 키나 쇼키치(喜納昌吉)씨의 말을 소개하고 본 보고의 맺음을 대신

하고자 한다. 

우리들 모두가 하나의 생명으로서 만사를 생각할 때 ―‘가이아’란 그런 하나의 개념이죠― 지구 라는 것도 하나의 생명이라 한다면, 상처 입은 것도 상처 입힌 것도 모두 하나라는 거니까, 상처를 입힌 자는 상처를 입은 자를 반영하고 있고, 상처를 입은 자는 입힌 자를 반영합니다. 하나의 생명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그렇게 되겠죠. [・・・] 신기하게도 상처 뒤에는 생명이 잠들어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그 상처가 생명의 장벽이 되어 버리고 있는 겁니다. [・・・] 상처라는 것은 자신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과 우리들 사이가 가로막혀 있 는 것을 상처라고 하는 거죠.9)

 

번역 : 최다울(崔多蔚) 도호쿠대학대학원

 

9) 鎌田東二⋅喜納昌吉, 霊性のネットワーク, 真弓社, 1999, p.112, p.115.


지구화 시대의 인문학 : 경계를 넘는 지구학의 모색 프로그람 +박맹수+박치완

 지구화 시대의 인문학 : 경계를 넘는 지구학의 모색

Globalogy: The Humanities in the Age of Globalization

구분 시간 발 표  및  내 용 진행

개회

기조강연 09:00~09:10 등록/접수 원영상 

09:10~09:20 【개 회 사】 박맹수(원불교사상연구원 원장/ 원광대학교 총장)

09:20~09:40 【기조강연】 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    박치완(한국외국어대학교)

제1부 해외의 지구인문학

09:40~10:00 【1. 지구재난학】 지구살림의 영성학      가타오카 류(片岡龍, 토호쿠대학) 조성환

10:00~10:20 【2. 지구예술학】 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아오모리현립미술관)

10:20~10:40 휴 식

10:40~11:00 【3. 지구종교학】 지구근대성 시대의 종교 연구         조규훈(토론토대학)

11:00~11:20 【4. 지구기학】 지구운화 내 공존재(共存在)로서의 인간 야규 마코토(柳生 眞, 원광대학교)

11:20~12:00 제1부 섹션토론

12:00~13:00                                  점심식사

제2부 지구인문학 의 이론과 상상력

13:00~13:20 【5. 지구형이상학】 두 사건에서 보는 지구적 전환(two geological turn)                    : 우리는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이원진(연세대학교) 이주연

13:20~13:40 【6. 지구인류학】 지구위험 시대의 인류학적 사고       차은정(서울대학교)

13:40~14:00 【7. 지구정치학】 지구정치학을 향하여: 개인·국가·세계 너머의 시선과 사유 

                                                  김석근(역사정치학자)

14:00~14:20 【8. 지구유학】 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 통(通)과 균(均)을 중심으로 김봉곤(원광대학교)

14:20~14:40 【9. 지구살림학】 인류세시대의 한국철학              조성환(원광대학교)

14:40~15:20 제2부 섹션토론

15:20~15:40 휴 식

제3부 지구인문학 의 실천과 연대

15:40~16:00 【10. 지구수양학】 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원광대학교) 김봉곤

16:00~16:20 【11. 지구교육학】 세계시민에서 지구시민으로  

                                               이우진(공주교육대학교)

16:20~16:40 【12. 지구윤리학】 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     

                                                   허남진(원광대학교)

16:40~17:00 【13. 지구평화학】 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원광대학교)

17:00~17:30                            제3부 섹션토론 

종합토론 17:30~18:00                                종합토론 허남진

4

【개회사】지구위험시대의 학문의 전환과 대학의 역할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번 학술대회를 빛내주기 위해 캐나다와 일본, 그리고 한국의 각지에서 참석해 주신 모든 선생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지구위험시대에 요청되는 학문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의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은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매 주 <지구인문학 연구모임>을 진행해 왔고, 그 과정 속에서 경계를 넘어선

다는 것, 시대가 요구하는 학문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1년 넘게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지구라는 단 하나의 공동체에서 서로 공생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학의 사명은 학문적⋅사상적 토대를 확고하게 정 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구’는 전 인류의 삶의 바탕입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구성원들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지구공동체에 대해 무지해 왔고, 무관심하 게 여겼으며, 번거로워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사는 이곳 지구, 그리고 지구에 사는 모든 가 족들을 위해 겸허히 마음의 자리를 내줄 때가 왔습니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지구가 아닌 지구 가 있어 인간이 산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이룰 때가 되었습니다. 그 지구적 전환을 위해 준비한 자 리가 오늘의 ‘지구학 학술대회’입니다.

오늘 학술대회에서는 박치완 교수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가타오카 류 교수님의 지구재난학, 오쿠와키 다카히로 교수님의 지구예술학, 조규훈 교수님의 지구종교학, 야규 마코토 교수님의 지구 기학, 이원진 교수님의 지구형이상학, 차은정 교수님의 지구인류학, 김석근 교수님의 지구정치학, 김봉곤 교수님의 지구유학, 조성환 교수님의 지구살림학, 이주연 교수님의 지구수양학, 이우진 교 수님의 지구교육학, 허남진 교수님의 지구윤리학, 원영상 교수님의 지구평화학 등, 다양한 영역에 서 경계를 넘나드는 지구학 발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5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고정 관념과 낡은 방식을 과감하게 바꾼다 는 것을 뜻합니다. 부디 오늘 진행되는 학술대회가 종래의 인간중심주의를 다시 돌아보고 당면한 지구위기상황을 깊게 고뇌하는 성찰과 사유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오늘 첫걸음을 뗀 ‘지구학’이 장차 21세기에 한국학이 나아가야 할 학문적 지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선생님들이 앞으로도 끈끈한 학문공동체로서 진지한 학술교류를 이어 나가 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이것으로 개회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2021년 3월 19일 

원광대학교 총장 박맹수

 


 

   

 

  차 례

개회사····························································································· 박맹수  4

□ 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 박치완……  9

□ 지구살림의 영성학····························································· 가타오카 류…… 33

□ 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 47

□ 지구근대성 시대의 종교 연구······················································· 조규훈…… 59

□ 지구운화 내 공존재(共存在)로서의 인간·························· 야규 마코토(柳生眞)…… 69

□ 두 사건에서 보는 지구적 전환(two geological turn)····················이원진…… 83

□ 지구위험 시대의 인류학적 사고················································차은정…… 107

□ 지구정치학을 향하여····························································· 김석근……119

□ 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 김봉곤……137

□ 인류세시대의 한국철학···························································· 조성환……151

□ 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161

□ 세계시민주의에서 지구시민주의로·············································· 이우진……177

□ 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 허남진……189

□ 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201

 


 

【기조강연】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 : 지구(인문)학의 연구방법론을 제안하며 박치완(朴治玩)*

요약문   

삶의 공간, 즉 주거지는 그것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위치하건 인간이‘장소-세계(place-world) 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거한다. 그런데 현대인의 생활공간이 점점 도시화, 상업화, 디지 털화되면서 장소-세계를 잃은, 빼앗긴 실향민들의 수가 매년 늘고 있다. 오직 경제-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삶의 진원지인 장소-세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장 소가 자본화되고, 비인간화된 곳에는 예외 없이 무한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공간들이 들어선다. E. 렐프의 표현대로, 현대인은‘장소 상실’이 보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우리가‘장소’개 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인간 = 장소-내-존재(Being-in-place)>라는 의미를 되새 겨보기 위해서다. E. S. 캐이시에 따르면,“장소는 곧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이에 비춰보면,‘철학을 한 다’는 것은 곧 우리가 사는‘장소를 철학화한다(philosophizing Place)’는 말이다. 실존의 장소를 주체, 의 식의 직접적 대상으로 연구한다는 뜻이다.‘장소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place)’은 장소에서 발원하고 전개되는 개인과 집단(공동체)의 문제를 응용현상학적 관점에서 다룬다. 한마디로‘철학을 장소화한다(placin g Philosophy)’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동안 철학은‘어느 곳’에서나‘언제나’ 적용 가능한 일종의‘기하 학적 공간 보편주의’에 함몰돼 있었다. 제3세계의 철학이 재지성(territoriality)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도 여 기에 있다. 재지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보니 제3세계의 철학은 운명적으로 구미 중심의 세계지배적·식민 적 지식체계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0년대를 전후해 이를 자각한 제3세계에서 탈식민적 운동의 일환으로 새롭게 제안한 철학의 디자인이 바로‘지역-로컬 기반의 세계철학(locals-based global philo sophy)’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에서 이제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지구학’을 지역-로컬 기반의 세계 철학 운동과 연대해 어떻게 한국철학을 세계화할 수 있을지 그 방법론에 관한 제안을 하는데 연구 목표가 있다. 주제어 : 장소, 장소 상실, 장소의 현상학, 철학의 장소화, 장소의 철학화, 지역-로컬 기반의 세계철학, 지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차 례 

I. 머리말 : 어디에서 철학을 하는가?

II.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의 구성과 그 방법론 

  1.‘지구학’, 용어 선택 또는 번역어의 문제

2. 제3세계적 관점에서의 방법론 모색의 필요성

3. 로컬과 글로벌, 서구와 비서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E. 두셀의 해법

III. 맺음말 : 제3세계 지식인들의 연대와‘장소감’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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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는“우리가 어디에 있는가?” 또는“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철 학에 대한 권리에 대한 질문은 어디에서 생기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여기서 ‘어디’는 곧 어디가 철학의 권리를 갖는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철 학의 가장 적합한 장소는 어디인가?” 

- Derrida, cited by B. Janz, In“Philosophy as if Place Mattered”

“존재한다는 것은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 E. S. Casey, Getting Back Into Place.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종속된 장소 안에 존재하며, 우리가 장소의 지배를 받는 것은 장소가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장소는 우리 안에 있고, 진정으로 우리 자신이다.” 

- E. S. Casey,“Between Geography and Philosophy: What Does It Mean to Be in the Place-World?”

I. 머리말 :‘어디’에서 철학을 하는가?

철학도 과학도 실제“세계에 대해 더 완전한 그림(a more complete picture of the world)” )을 그리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인간’을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인간’이 철학 과 과학에서 잊혀지고 있다는 것은 인본(인문)주의가 꼬리를 감추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철 학과 과학이 추구하는‘더 완전한 그림’에서 어떻게‘인간’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는가? 철학 자나 과학자마저‘이해관계’에 따라 마치‘비즈니스’나‘사업’을 하듯 행동하는 것을 더는 지 켜보고 있어야 할까?‘인간’과 무관한,‘인간의 삶’과 거리가 있는 철학과 과학은“우리의 지성 사가 정당한(right)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반증이라 아니 할 수 없다.2) 

M.  맥베스가 철학과 과학에 필요한 것은“인간적 관점(human perspective)”,“인본주의적 규율 (humanistic discipline)”이라 강조하며 인간의 지성 활동이“인간의 삶, 우리의 삶, 그것들의 다양 한 측면”을 탐구하는 것이 21세기의 과제라고 역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주어진 현실을‘객관 적으로’,‘과학적으로’,‘절대적으로’ 사고한다고 빙자하며,‘인간’과‘삶’을 망각한 것이 철 학과 과학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 맥베스의 주장인즉, 철학과 과학이 추구해야 할‘더 완전한 그 림’에는 기술-경제의 지배 시대일수록 인간과 인간의 삶을 위한 배려에‘더 많은 고민’을 투자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과 인간의 삶을 배려하고 고민하는 학문은“우리가 사고하고 이해하는 모든 것과 함께 우리가 어디에 존재하는가(where we are)로 부터 시작된다.” ) 

요인즉 철학과 과학은 각자가 존재하는 곳, 즉 삶의 장소에 대한 사고의 촉각을 계발할 때 기술 과 경제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잊혀진‘인간’을 삶의 본래 자리, 하이데거의 표현대로,‘세계-내존재(Being in the world)’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이 세계-내-존재라는 것은 개 인과 사회공동체, 로컬과 글로벌 간에 자유와 평화, 정의와 분배, 인권과 민주주의가 일상의 삶에 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요구와 괘를 같이 한다. 철학과 과학이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것 과 새롭게 등장한 것, 현실의 작은 조각에 대한 연구와 현실 전체를 통찰하는 연구, 한 지역-로컬 문화에서만 통용되는 지식과 전 지구촌에 이롭고 유용한 지식을 종합하는 노력에 더 많은 공을 들 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학자는 단지 과거의 개념들, 과거의 담론들과 장단을 맞추는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임무를 다한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자는 당대에 제기된 물음들과 씨름하는 것이 일차적 임무다. 자신과 씨름하며 자신의 철학을 그가 사는 시대와 장소 위에 새로 운 담론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곧 철학자의 역할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부합해‘창조된’철학적 결과물이라고 해도 5대양 6대주의 독자를 만족시킨 적은 드물거나 거의 없다. 이는 철학에도 기본적으로‘지리-문화적 색깔’이 배태돼 있다는 방증 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이성-진리-보편학인 철학도 지리(더 정확하게는‘장소’)의 제한을 받는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우리가 종종 놓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철학은 그 것이 탄생한‘장소’에서 자양분을 얻는다는 점일 것이다. ) E. S. 캐이시가 장소로 되돌아감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히 말하지만, 재 지성(在地性, territoriality)이 없는 철학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의 재지성은 마 치 개인의 신분증명서와도 같다. 인도에서 출발한 원시·근본불교가 치열한 자기 응시와 직관을 중시하는 한국의 선불교, 염불 수행법을 위주로 하는 일본의 정토 불교, 자비와 이타행(利他行)을 강조하는 티벳 불교와 다른 것도 바로 그것이 탄생한‘장소’의 영향 때문이다. 로컬 지식의 저 자 C. 기어츠의 방식으로 이를 바꿔서 표현하면, 모든 철학은‘로컬 철학’이란 뜻풀이가 가능할 것이다. ) 단적으로 말해, 지리적 환경이 철학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미 숙지하고 있는 바지만, 아테네는 국가의 탄생지이고, 쾨니히스베르크는 순수이성 

비판 등 3대 비판서를 탄생시킨 칸트의 고향이다. 보편성을 추구한다고 믿었던 철학에 이렇게 재 지성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대개는“그럴 리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하 지만 분명한 사실은 다른 장소(지역, 국가)’에서는‘다른 철학’이 탄생한다는 점이다. 단지 하나 의 가정일 뿐이지만, 플라톤이 만일 곡부(曲阜, 취푸)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는 제2의 공자가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가 강원도 평창의 판관대(判官垈)에서 태어났으 면 그는 분명 성찰이나 철학의 원리 대신 성학집요나 인심도심설을 남겼을 것이다. 철학 에는 이렇게 개인과 마찬가지로 장소, 번지수가 따라 붙는다.

철학의 재지성 및 본토성은 거듭 강조하지만 철학이‘장소’를 기반으로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증거이고 ), 철학의 적지(適地)가, 데리다가 믿고 있는 것처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와 같이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즉 철학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세계는 다양한 장소다(C. Geertz)” )라는 말과 같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이런 이유 때문에‘하나의 보편적 대답’을 기대할 수 없으 며, 이를 기대하거나 염두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허황된 꿈인지 모른다. 감히 말하지만, 철학은 모든 사람, 모든 공간에 적용되는‘진리(episteme)의 학’이 아니라 개별 장소에서 각기 자신의 ‘의견들(opinions)’을 자유롭게 제시한 학문이었다고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자기 반성, 자기수련이 미족(未足)한 철학자들(philodox)은 여전히 마치‘야곱처럼’, 모두가 동일한 방식, 동일한 목표로 철학을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 

본고의 논제인 <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를 통해 필자가 근원적으로 역문(逆問)하

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은 기하학적 공간 보편주의자들의 믿음처럼 결코 장소와 무관한 학문이 아니다. 우리는 아테네에서, 슈투트가르트에서, 파리에서, 런던에서, 서울에서, 동경

에서 철학을 한다. 철학은 재지적 세계관〔placial(geographic) worldview〕에 기초한 지적 구성이자 동시에 재지적 창조다. 그 때문에 재지성은“철학이란 무엇인가?”,“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골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결과물이 보편적인가 아니면 특수한(지역-로컬적인) 것인 가를 궁추(窮追)하는 것은 어느 정도 결과물이 축적되었을 때, 즉 추후에 논의할 문제다. 재지적 철 학이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철학을 실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보편성/특수성의 문제가 선머리가 되어 논쟁의 화근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뜻이다. 

감히 말하지만, 한국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만일 탈장소적/초시대적“‘보편(성)’의 망

상”에 사로잡혀 있다면, 대한민국과 같은 제3세계에서는 철학이 뿌리내릴 수도 시발될 수도 없다. 따라서‘비유럽적 개념화’를 시도해 철학을‘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재건해야 하는 것보다 더 큰 과제가 있을 수 없다. ) 데리다가 역설한 것처럼, 오로지‘그리스-서부 유럽’만이 철학의 적지인 것인가? ) 데리다 등 서부 유럽의 철학자들이 장소를 강조하면‘보편적’인 것이고, 비구미권의 학자들 또는 한국의 철학자들이 장소를 언급하면‘상대적인’ 것인가? 

이상에서 필자가 제기한 문제의식과 물음들을 본 연구에서 일일이 해명하거나 소화할 수는 없 다. 따라서 초점을 좀 더 좁혀 아래에서는 <철학 ≒ 장소(화)>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제3세계가 중 심이 된 지구학 구성에 대해 논의를 집중시켜볼까 하며, 이는 곧 지역-로컬 철학의 장소화를 의미 하는 것이자‘지구촌’이라는‘장소’를 새롭게 철학화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II.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의 구성과 그 방법론 

제3세계의 지역-로컬 철학이 궁극적으로 보편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 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D. 슈내퍼도 정확히 지적하고 있듯, 구미에서 보물단지처럼 여겨온‘보 편주의’는 철학을 또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염원일 뿐 그것이 완성된 경우를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참된 보편주의’,‘진정한 보편주의’,‘이상적 보편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한 사람 이 없다는 뜻이다. N. 스코어의 언급대로, 하지만‘거짓 보편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거짓 보편주의’를 타파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제3세계의 지역로컬 철학의 탄생이 사고의 다양성이란 지평 위에서 존재 이유(raison d’être), 정당성을 얻는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미에서는 보편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해 타자, 타문화에 대한 배제를 감행했고, 억압을 정당화했

으며, 불평등을 은폐했다. 구미의‘거짓 보편주의’가 그 명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15) 

“ 오늘날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all-inclusive) 보편주의의 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 

스코어의 위 언급은 지역-로컬의 장소를 철학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서론에서 우리는 장소를 철학화하는 것은 철학을 장소화하는 것이라 했다. 철학 이 장소화될 때, 철학은‘독일의 관념론’,‘미국의 실용주의’처럼 개별화된다. 현실적으로 철학 은 이렇게 장소를 중심으로 개별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보편’의 휘장을 둘러 스스로를 ‘보편적인 것’이라 속이고 또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많은 지역-로컬의 학자들이 이에 속는다. 

‘코로나19와도 같은’ 서구 유럽의 보편주의는 서구 유럽을 절대화함으로써 ) 타자 및‘다르게 세계를 보는 것(seeing the world differently)’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고의 다양성을 자체를 인정하 지 않고 획일화, 단순화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이 한 지역-로컬 철학(서부 유럽 철 학)이 철학 자체를 획일화, 단순화시킴으로서 다른 지역-로컬 철학이 개별화되는 길이 가로막혔다 는 점이다. 서구 유럽 밖에서 지역-로컬을 중심으로 새로운 철학적 운동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이 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맥베스가 철학은“역사적으로 특징지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특징지어진 것이라는 점 때문에 진정으로 세계적인 철학”이다,“어느 장소에도 속하지 않은 철학은 분석철학이 유일하 다”,“장소를 가졌을 때만이 진정으로 세계적인 철학이다”고 강조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 철학은 결국 재지성을 띄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은 없으며, 지역-로컬 철학이 세계화되는 길 도 재지성의 개별화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역설 같지만, 구미의 보편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역-로컬 철학의 탄생에 불을 지폈다.‘기 존의 세계철학’의 지형도가 서구 유럽 중심에서 지구촌 전체로 중심이 이동되고 있는 원인 제공 자가 서구 유럽이라는 것이다.“세계화는 철학을 변화시켰고,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 ) C. 타운 레이의 언급대로‘새로운 세계철학(global philosophy)’은 이런 와중에 탄생한 것이며, 그는‘새로 운 세계철학(지구철학, 지구학)’의 탄생과 관련해 다음 4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i) 비서구적 철학공 동체의 활동이 세계적인 철학적 대화에 있어 두드러진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점; ii) 비서구 철학자 들이‘기존의 세계철학(world philosophy)’에서 노정하고 있는 지적 폭력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 기하고 그 해결책을 새롭게 제안하면서 철학의 중심 무대로 진입하고 있는 점; iii) 새로운 전문학 술지들이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고, 철학적 공동체들 간에 건설적이고 비판적인 교류가 활발해지면 서 철학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변신을 요구하고 있는 점; iv) 환경 문제를 필두로 어느 사회, 국가나 할 것 없이 만연해 있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등 세계적인 이슈와 관련해 초국가적 

보상적 정의(transnational compensatory justice)와 차이를 부인하지 않은 공정한 포용과 인정과 같 은 논제를 제기하고 공유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점.

타운레이가 주목한 이 4가지 변화는 그 근저에“유럽 중심적 관점”은 이제 더 이상 전 지구촌 

시민들에게“타당하지 않으며, 부분적이고, 잘못 인도된(irrelevant, partial, or misguided)” 것이라 는 함의가 숨어 있다. )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오늘날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세계철학, 즉‘새 로운 세계철학’을 향한 변화는“유럽으로부터 물려받은 철학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의 심대한 도 전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한마디로,“철학을 서구적 전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천해온 (different ways of practicing philosophy)” 제3세계철학자들에 의해 그간의 유럽 중심의 철학의 지 형도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1990년을‘워싱턴 컨센서스’와 더불어 본격화된 세계화는 이런 점에서“우리에게 철학의 본질 을 재고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에서 분명‘역설’에 해당하며 ), 이를 서구 유럽 철학계가 새로운 소통과 대화의 기회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전통을 계속해서 고수할 것인지는 그들의 선택 문제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서구 철학계가 전통을 고수하며‘기존의 세 계철학’을 지켜낼 수 있을까? 봇물은 이미 터졌고,‘기존의 세계철학’은‘새로운 세계철학’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바뀔 것이다. ) 

한국철학의 세계화란 기치로‘지구학(global studies)’,‘지구인문학(global humanities)’을 주창 하는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도 바로 이러한 세계철학계의 혁신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연 구의 목표와 방향을 좀 더 분명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며, 철학 대중에게 이 참신한 논의를 확산시 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학국철학의 고유성, 독립성을 재지성(장소성)을 견지하면서 전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겠지만, 서구적 사고틀을 넘어서는‘지구 학’,‘지구인문학’이라는 이념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출발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 게 중요한 것은 새롭게 제기한 이념에 걸맞는 방법론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지구학’,‘지구인문 학’의 목표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유영토에만 국한된 물음이 아니라 전 지구촌이 그 대상인 물음이 기 때문에 그렇다. 나아가 지구공동체(global community)에 거주하는 인류가 바로‘지구학’,‘지구 인문학’의‘주인(주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필자의 문제의식을 아래에서는‘지구학’,‘지구인문학’이란 창의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보강해야 해야 할지를 중심으로 본 논의를 전개해볼 계획이다.

1.‘지구학’, 용어 선택 또는 번역어의 문제

제1세계에서 지구학(global studies, 글로벌 연구: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및 사회적 상황에 관한 연 구 ))에 대해 논의하는 것과 대한민국과 같은 제3세계에서 지구학(지구유학, 지구개벽학, 지구종교 학, 지구재난학 등)에 대해 화제를 삼는 것 간의 차이는 없을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정확히 무 엇일까? 제1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중심으로, 즉 세계의 중심부에서 바깥 세계를 관찰하며 어떻게 계속해서 바깥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배력을 존속시킬 것인지를 고심한다. 반면 중후진국가나 저개발국가가 대부분인 제3세계에서는 지구학에 대한 본연적 연구보다 제1세계 로부터 주어지는 공적 개발원조(ODA)나 지원 정책들에 동참하고 협력해서 어떻게 하면 경제적 수 혜를 입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만일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나아가 상반되기까지 하는 논리와 방식으로 지구학이 연구된다면, 양 자 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제3세계에서 단지 제3세계적 방식으로 지구학을 연구한다 는 것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그 접점을, 앞서 언급한,‘전 지구적 관점(global perspec tive)’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염두하고 있는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지구학은 제3세계가 제1세계와 당당히 맞서 연구 주체로 설 때 비로소 본연적 지구학에 대한 지형도가 그려질 수 있다. 제3세계에서 지구학을 연구하려면 따라서 지역-로컬의 기반학(underlying studies of locals)이 무 엇인지부터 선결(先決)해야 한다. 제1세계와의 문화적 대화나 지적 교류 과정에서 제3세계가 진정 으로 주체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역-로컬의 기반학을 갖추는 것은 일차적 요건이다. 지역 -로컬 기반학이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제1세계의 영향력만이 강화될 뿐 기존의 학문적 지배-종속의 관계는 호전될 수 없다. 냉정한 국제 현실은 정치적·경제적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인 문학, 철학과 같은 순수연구 분야에서도 어김없이 지배-종속의 관계가 적용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제1세계와 비자발적·강압적으로 묶인 학문적 식민성의 매듭을 푸는 주체는 제3세계여야 한다. 제3세계가 주체가 되어야 제3세계의‘지식들(knowledges)’을 제1세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떤 것이 더 유용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지역-로컬의 기반학을 선결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기반학을 기점으로 1단계에서 는 제1세계에 의해 전개·전파되었거나 오늘날에도 전개·전파되고 있는 지구학, 즉‘세계지배 학’과 비교문화적·비교철학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25) 제1세계와 제3세계 간의 지식/철학의 비 교 작업이 필수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제국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제1세계에서는 늘 <global studie s>를 실행해왔고, 현재에도 여전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26) 

2000년대를 전후해 나타난 새로운 변화라면, 예전의 국가 간의 교류, 양자 간 또는 다자 간 합의 등을 단일 국가가 중심이 되어 연구했다면, 오늘날에는 글로벌과 로컬들의 관계를 이슈별로 협력 하며 공동으로 연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글로벌과 로컬들 간의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이 중요한 시대적 화두가 되었고, 제1세계에서의 지구학은 이에 부응 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철학 등의 학제 간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국을 대표하는 글 로벌 문제 전문가를 양성을 목표로 미국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이를 고등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이다. 특히 2008년부터 <global studies>는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까지 결성해 매년 기획 컨퍼런스 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27) 연구 분야를 특정 <그림1>: 제1세계(유럽→미국) 주도의 세계지배학 모형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 시기, 연구이론, 공동연 구 주제까지 연구자들 간에 공유하면서 지구학에 대한 관심은 제1세계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28) 

 

25)‘세계지배학’은 필자가 다음 논문을 참조해‘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 이후 제1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세 계를 지배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순수하게 조어한 것이다: M. Thomas & A. 

Thompson,“Empire and Globalisation: from‘High Imperialism’ to Decolonisation”, 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 Vol. 36, No. 1, 2014. 19세기의 세계화(globalization)가 <Civilization, Westernization, Europeanization, 

Industrialization, Modernization, Colonization>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면 20세기-21세기의 세계화는 

<Americanization, Dollarization, McDonaldization, Virtualization, New Colonization, Digitalization, Hybridization, Planetization>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돌려 말해 후자는 전자의 21세기적 번역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세계의 중심은 이렇게 지배 형태만 바뀌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6) <global studies>는 2008년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1차 컨퍼런스를 개최했으며〔2009년 2차 대회: 두바 이의 전망 – 걸프와 세계화(두바이), 2010년 3차 대회: 글로벌 재조정 – 동아시아와 세계화(부산), 2011년 4차 대회: 신흥 사회와 해방(리오 데 자네이루), 2012년 5차 대회: 유라시아와 세계화 – 복잡성과 글로벌 연구(모스크바), 2013년 6차 대회: 남아시아의 사회 발전(뉴델리) 등이 개최되었음〕, 2021년 제15차 대회 는“팬데믹 이후의 삶: 새로운 글로벌 생명정치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캐나다의 몬트리얼(Concordia 

University)에서 6월 5-6일에 개최되며(원래는 2020년 개최예정이었으나 COVID-19로 순연된 것임), 2022년 에는 그리스의 국립아테네대학교에서 7월 22~23일 개최하기로 예정돼 있다(https://onglobalization.com/).

27) <global studies>를 학제로 운영 중인 대학으로는 미국의 피츠버그대학교, 미네소타대학교, 캘리포니아대 학교 등 49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고, 유럽에는 영국의 런던경제대학,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스페인의 살라망카대학교 등 18개 대학, 캐나다의 경우는 턴대학교 등 6개 대학, 일본의 아키타국제대학, 도시샤대학 등 8개 대학, 홍콩은 홍콩대와 홍콩중문대 2개 대학, 중국은 중국정법대와 상하이대 2개 대학, 그리고 한국은 유일하게 부산대학교만이 연구 네트워크(Research Network)에 참여하고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Global_studies).

28) 학제간 연구를 기초로 하는 <global studies>에서는 정치, 경제, 역사, 지리, 인류학, 사회학, 종교, 기술, 철학, 건강, 환경, 인종 등을 포괄하는 연구를 시도하며, 연구 시기는 그리스/로마 제국의 초국적 활동에

이러한 상황인식은 2020년부터 지구학, 지구인문학, 지구주의을 주창하며 공동(집단)연구를 시작 한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직시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29) 제3세계에서 연구자 몇 명이 모 여‘지구학’을 외친다고 해서 <global studies>가 비약적으로 새로워질 것이라 예측되지 않기 때문 이다. <global studies>를 단지 한글로‘지구학’이라 번역해 사용하는 것만으로 제1세계의 세계지 배학이 제3세계를 위한‘지구생명보호·배려학’으로 일신될 수 있을까?‘지구학’이 만일 제1세 계가 지적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지배학과 연구목표나 연구 대상에 있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서부터 유럽의 식민주의 시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기 등 다양하다. 연구이론은 포스트 식민주의론, 포 스트 비판이론, 다문화주의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으며, 주요 연구 키워드는 상호의존성, 상호연결성, 교 차문화적 지식, 인권, 사회정의, 로컬/글로벌의 관계 및 작용, 글로벌 인지, 정치적 참여, 글로벌 교육, 글로벌 경쟁력, 참여적 민주주의, 세계시민, 효과적 시민의식, 국제테러, 국가안보, 기후변화 및 환경 파괴 등이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Global_studies). 

29) 주지하듯,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는 근년 들어‘개벽학’을‘지구학’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시도로‘지구인문학’이란 신개념을 만들어 다양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도 그 일환이 라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다소 우려스러운 것은 <globalization>을‘지구화’로 <global studies>를 ‘지구학’으로, <global humanities>를‘지구인문학’으로, <globalism>을‘지구주의’로 번역하며 한나 아 렌트, 데이비드 하비, 맨프레드 스테거, 울리히 벡 등의 이론을 전거(典據)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벡이 지구화의 길에서 정확히 언급하고 있듯, 지구화는 정확하게‘위험한 자구화’를 의미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구화, 즉 세계화는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제1세계의 경제적 세계의 확장, 즉 신자유주의 의 전면화에 그 본의가 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벡이 지구화를‘위험하다’고 했던 것이고, 아렌트나 하비도 전 지구촌이 자본 중심의 세계화의 메커니즘 하에 놓이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세계화(지구화)

는 결국 제1세계가 주도해온 식민지적 세계시스템(colonial world-system)의 강화 논리(I. Wallerstein)에 다름 아니다. 만일‘지구인문학’에서 이러한 세계지배학의 논리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의도와는 상반되게 위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한국학, 한국철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개벽학’에서 찾고, 이 개벽학이‘지구학’으로 확장되는 것에는 필자도 이견이 없다. 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다(이상은 조성환, 「장점마을에서 시작하는 지구인문학」, 文학 史학 哲학  제63호, 2020a, 216~220쪽; 조성환, 「현대적 관점에서 본 천도교의 세계주의: 이돈화의 지구주의와 지구 적 인간관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84호, 2020b, 88-89쪽 참조).‘지구인문학’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조성환이 다른 글에서 정확히 짚고 있듯,“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 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래의 개념 세계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조성환, 「다시 개벽을 열 며」, 다시 개벽 제1호, 2020c, 25쪽) 정확히 이런 의도로 지구학,‘지구인문학(Earth-centered Humanities)’을 주창한 것이라면, 이미 구미에서 비판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인 <globalization>, 

<globalism> 안에 儒學, 東學, 西學을 포괄하는 새로운 학문을 담아내겠다는 시도 자체가 엇박자라 생각된 다. 본론에서 언급하겠지만, 가능하다면 더 늦기 전에 제3의 개념(이미 연구팀에서 사용하고 있는‘지구개 벽학’이나‘천지공생학’과 같은)을 창안해 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수순(手順)이 아닐까 싶다. 만일 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봉착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일례로,‘지구인문학’은 최근의 다중우주론과 관련해서 보면 자칫‘지구중심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지구인문학’은 다중우주론자들 에게는 지동설을 천동설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여기에다가‘지구학’은 <Earth Science>란 영어 번역도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Earth Science(Geoscience, Geology)>는 주지하듯 지구 행 성(Planet Earth)과 관계된 자연과학의 모든 연구 영역을 포괄한다(https://en.wikipedia.org/wiki/Earth_science). 최근에는 지구(자연)환경 파괴, 빙하 붕락 등과 관련해 세계인들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으며, 네 분야(암석, 물, 공기, 생명)의 주요 연구 영역 중 특히 생명권은‘지구학’과 직결돼 있으며, 환경 통찰력 개발 (development of environmental insight), 지리윤리(geo-ethics)를 포함해 사회적 웰빙(social wellbeing), 자연적 이고 본능적인 동기, 학습 본능의 생물학적 측면, 효과적인 의사결정 등에 이르기까지 연구 영역을 다변화하고 있다 – N. Orion,“The future challenge of Earth science education research”, Disciplinary and Interdisciplinary Science Education Research, Vol. 1, No. 3, 2019, pp. 1~8 참조. 이런 까닭에 필자는 차제에 <global studies>를‘지구학’이라 그 의미를 특별하게 부여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거듭 제안하는 바이다.

이라면, 이는 결과적으로 제1세계에서의 기존 연구에 편입 또는 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좀 더 효과적인 연구결과의 도출을 위해서라면, 이미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활동 중인 기존 연구 (자) 네트워크와 협력하는 것도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들과 같은 무대 위에서 새 로운 주장을 펼쳐야 독자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그들과 다른 무대 위에서 아무 리 훌륭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만일 독자 대중이나 관객이 없거나 적다면, 이 연구는 빛을 발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과 같은 무대 위에 다른 내용을 함께 올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그때 더 효과적으로 다른 내용을 전할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인문학의 제3지대인 대한민국의 소장학자들이 의기투합해 세계지식계를 겨냥해 지구학 또 는 지구인문학이라는 나름의‘글로벌 지식 디자인’을 그려보고 또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충 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미 관련 연구가 10여 년 이상 축적 된 데다 전 세계의 많은 대학에서 이미 <global studies>를 학과로 운영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을 간 과한 채 외길을 고집하는 것은 소기의 성과를 올리는 데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global studie s>를 굳이‘지구학’ 또는‘지구적 연구(global researches)’라 할 양이면, 제1세계에서의 기존의 연구와 변별점이 무엇인지를 지금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벼리는 작업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안목 은 거시적으로 갖되, 주제는 미시적으로 잡아 연구하는 것이 한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 다. 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마치 과거의 유럽이 그랬고, 현재의 미국이 그러하듯(<그림1> 참조), 제3세계의 연구자가‘새롭다’고 주창한 지구학을 과연 제1세계의 학자들이 거들떠보기나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 제3세계적 관점에서의 방법론 모색의 필요성 앞서 우리는 제3세계에서 지구학을 연구하려면 지역-로컬의 기반학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언급했 다. 같은 논리로 제3세계에서는 제1세계와 비교되는 제3세계의 관점을 방법론적으로 분명히 제시 할 필요가 있다. ) 돌려 말해 제3세계에서 발흥된 지구학은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에 대한 정확한 분석-비판-극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제3세계가 요구하는 지구학은 제1세계에서처럼“신의 관점을 가진 지식(God’s eye-view knowle dge)”을 재생산하는 것이 목표일 수 없지 않은가.31) 부언컨대, 모든“관점을 초월하는(the point-z ero perspective)” 방식에서 ) 모든 관점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지구학에 접근해야 한다. 지구촌의 현실을 탑-다운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텀-업 방식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지구학의 기본적 출발 점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바텀-업 방식으로 세계지배학과 변별되는 지역-로컬 기반학을 독립적 관점으로 구성했다면, 2단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세계지배학 내에 결여돼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연구주제들에 대해 새롭게 물음을 제기하고 이에 부합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2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제1세계 내에 결여된 제3세계의 지식/철학을 맞세워 변증법적으로 이 양자를 융합시키는 작업이 관건이 될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부정의 부정’의 과정을 통해‘제3의 지식’을 탄생시키는 것이 가능해야만 비로소 제3세계에서 주창한‘지구학’은 새로운 이론/학문으로 그 가치를 범지구 적 차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서구의 기독교성/ 개인주의/ 성경 기반의 서구지배학을 동양의 유 불선 사상의 종합이론, 집단주의, 유불선의 다양한 경전들을 새롭게 융합해‘글로벌 공공선’에 기 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철학을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연구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2단계에서는 제1세계와의 지적 대결이 필수조건이다. 이를 피한다면, 진정한“지구적 비판의식(planetary critical consciousness)”33)이 발현된 지구학 연구라 할 수 없다. 제1세계와의 지적 대결이 불가피한 것은‘모든 관점을 배려하는 방식의 지구학’의 구축은 기본적으로 제3세계 가 중심이 된 탈식민적 인식론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34) 

탈식민적 인식론은 앞서 언급한 바 있듯,‘같은 무대(세계지식계) 위에서 새로운 주장을 펴는’ 

데 있어 단계적으로 요구되는‘지적 전략’이다. 정치적 투쟁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서 안 되는 것 처럼, 지구학을 제1세계의 관객이 없는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욱이 최근 들어 제1세계나 제3세계나 할 것 없이 기존의 사상들에‘새로운(new)’이라는 상표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다 (neo-liberalism, neo-Marxism, neo-Christianism, neo-Islamism, neo-Slavism, neo-Afric anism, neo-Judaism, neo-Eurocentrism, neo-Confucianism, neo-Hinduism 등35)). 따라서 지구학은 단

 

33) W. Mignolo,“DELINKING: The rhetoric of modernity, the logic of coloniality and the grammar of de-coloniality”, Cultural Studies, Vol. 21, No. 2~3, 2007, p. 500.

34) 본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제3세계’라는 표현에 대해 혹자는 불유쾌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대한 민국이 어찌 제3세계 수준이냐?”는 반문도 예상된다. 하지만 필자는 감히 대한민국 국민의‘국학(한국

학)’에 대한 관심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연구 자체를 꺼리는 경향도 없지 않고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고, 국제적 수준의 담론 생산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지구학’을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서 필자가 이렇게‘제3세계가 중심이 된 탈식민적 인식론’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i) 이들 제3세계의 연구자 네트워크와 연대해 한국 학, 한국철학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것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 며, ii) 무엇보다도 탈식민적 인식론에서는 제1세계(구미)를 겨냥해 엄연히 구미와‘다른 세계들(worlds)’ 이 존재하고, 따라서 구미에서 추구하는 지식과는‘다른 지식들(knowledges otherwise)’이 존재한다는 사 실을 끝없이 전 세계 지식계에게 환기시키며 나름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들과 연대해 한국학, 한국철학의‘다름’, 즉 특수성, 재지성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면 최소한 제1세계의 거부감 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iii) 게다가 아래에서 두셀의‘초-근대성’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야기하겠지만, 탈식민적 인식론은 모든 지역-로컬의 지식/철학의 비위계적(non-hierarchical), 자기-조직적(self-organic)인 ‘헤테라키(heterarchy, 지식체계 내의 이질적 요소들 간의 관계의 다양성 존중)’를 지향한다. 부언컨대 제3세계주의자들이 꿈꾸는 지식/철학은 동일성, 동질성의 위계(hierarchy)에 근간한 제1세계의 지식/철학 체계와 달리 차이와 바로 이 다양성을 실천(practices of difference, diversity)하면서“더 정의롭고 지속가 능한 세계(worlds), 유럽중심적 근대성〔식민성〕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원리를 통해 정의되는 세계

(worlds)”이다 - A. Escobar,“Beyond the Third World: Imperial Globality, Global Coloniality and Anti-Globalisation Social Movements”, Third World Quarterly, Vol. 25, No. 1, 2004, pp. 220~222 참조.  본고

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것은 탈식민적 인식론은 모든 지역-로컬 지식/철학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재건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는 점이며,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점점 미시화되고 있는‘제국적 세계성(imperial globality)’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35) W. Mignolo(2007), op. cit., p. 500. 이 자리에서 우리는 미뇰로가 왜 자신의 논문의 부제에‘근대성의 수지‘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과거로, 국가·지역중심주의로 회귀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구 분되어야 한다. 지구학은 학문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다시 세우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며, 모든 지역-로컬을 배려하고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제1세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36) 미뇰로가 탈식민적 인식론을 위해서는‘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제1세계의 문법을 따르는 것으로 지구학은 세워질 수 없다. 지구학의 구축을 위해‘제3세계가 중심이 된 탈식민적 인식론’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며, 미뇰 로가 그의‘탈식민적 인식론’을‘지구적 비판의식’과 함께 언급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부언컨대, 지구촌 전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철학에 대한 기존 논의를 다르게(새롭게) 

인식하려면 이를 위한 논리와 문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조성환이 새롭게 밝혀낸 동학 에서의‘자아의 지구성’이나 천도교에서의‘우주적 자아(세계적 자아, 무궁아, 천지아, 한울아) 논 의도, 제1세계에서의 데카르트-훗설 중심의 자아나 주체의 논의와 좀 더 적극적인 대결을 벌였으면 하 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37) 

3단계에서는 이미 탈식민적 연구자들(decolonialist s), 제3세계주의자들(thirdworldists)에 의해‘지방화된 유럽’과‘지방화된 미국’을 포함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최근 새롭게‘정상 지식(n ormal knowledge)’으로 계발·소개되어 전 세계의 지식계에서 널리 수용하고 있는 제3세계의 지식과 의 2차적 결합을 시도해야 한다. 지식/철학의 지역 <그림2>: 지역세계화로서 지구학/철학의 재세계화 개념도 세계화를 목표로 한 이 새로운 밑그림은 <그림2>에서 보듯, 구미(Euro-American)를 포함해 지구촌 의 전 대륙을 포괄하는 지식/철학의‘재-세계화(re-worlding)’가 목표다.38) 

이런 점에서 지구학은 구미 중심의 세계지배학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며 포용적인 철학이라는 점 을 잊어선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윤리적이며 인륜적인, 평등적이며 분배적인, 미시적이고 지역로컬 배려적인 철학이 우리가 제3세계적 관점에서 구상하고자 하는 지구학의 기본적 설계다. 이상의 논의를 다시 한번 더 요약하면, 제1단계에서는 지역-로컬의 고유 지식/철학을 기반학으로 사학’과‘식민성의 논리’에 대응해‘탈식민성의 문법’을 강조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36) A. Escobar, op. cit., p. 219:“제3세계의 이론화는 〔제1세계에 대한, 특히 유럽중심주의〕 비판적 이론이 새로운 지리문화적·인식론적 위치에 포함되고 통합된다는 점에서 제1세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37) 자세한 설명은 조성환(2020b), op. cit., pp. 90-96 참조. 이런 점에서 두셀의“Anti-Cartesian Meditations: 

On the Origin of the Philosophical Anti-Discourse of Modernity”, JCRT, Vol. 13, No. 1, 2014, pp. 11~53 참 조.

38)‘재세계화(re-worlding)’ 개념에 대해서는 Chih-yu Shih and Yih-Jye Hwang,“Re-worlding the‘West’ in post-Western IR: the reception of Sun Zi’s the Art of War in the Anglosphere”,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Asia-Pacific, Vol. 18, 2018, pp. 421~448 참조.

구성(constructioin)하고, 제2단계에서는 다른 지역-로컬 지식들과 융합이 가능한 영역 간의 상호구 성(co-construction)을 시도하며, 마지막 제3단계에서는 제2단계에서 새롭게 연구된 지식들이 지구 촌 차원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제3의 지식으로 재구성(reconstruction)해 내야 한다. 이렇게 재구성 된 지식/철학이라야 비로소 제3세계가 제1세계의 주변부가 아닌 제1세계와 동등한·당당한 주체가 된‘지구학’이 탄생할 수 있다. 

지구학의 3단계적 구성(구성 → 상호구성 → 재구성)에 동의한다면, 지구학을 꿈꾸는 우리 모두 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가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그 명칭이‘지구적 영성학’이건, ‘지구적 윤리학’이건,‘지구적 평화학’이건,‘지구적 개벽학’이건, 목표는 제3단계인‘지식/철 학의 재구성’에 이르는 데 있으며, 그 출발은 1단계인‘지역-로컬의 고유 지식/철학의 구성’ 여 부에 달려 있다. 지구학의 <구성 → 상호구성 → 재구성>에 대한 고민 없이 제3세계에서 단지‘지 구학’이라 목청을 높인다고 제1세계의 지식계가 이에 대해 반응을 하거나 자극을 받을 리는 없 다. 보편주의의 가면을 쓴 제1세계의 패권적 지식/철학의 식민성은 식민주의가 끝났다고 종식된 것 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39)

3. 로컬과 글로벌, 서구와 비서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E. 두셀의 해법 데리다의‘철학의 적지(適地)’,‘철학의 영지(領地)’ 운운이나 하버마스의‘미완의 근대성’이나 할 것 없이 서부 유럽 밖에서의 서부 유럽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수용할 염사(念思)가 전혀 없다는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즉 제3세계에서의‘지구학’ 주창은 명민하면서도 꾀바른 전술이 필요하며, 단독으로‘지구학’을 창안해 전 세계의 지식계에 오랜 시일을 두고 알릴 것인지 아니면 CSG(Center for Global Studies on Culture and Society (CGS) 나 AAGS(Asia Association for Global Studies) 등과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40) 좀 더 빠른 시일 안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글로벌 식민성은 갈수록 진화해가면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기에 선택은 빠를수록 좋을 것 같다. 

감히 필자는 이 자리에서 국제적 연대가 상책이라 제안하며, 준비 중인 지구학의 인식론적 구성 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서구 유럽으로부터의“‘철학’의 해방”을 통해 탈식민 철학을 완성한 E. 두셀(E. Dussel, 1934~ )의‘초-근대성(trans-modernity)’ 개념을 소개해볼까 한다. 두셀은  

39) 식민주의(colonialism)는 분명 끝났다. 하지만 J. R. 리안도 강조하듯, 과거에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와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 간의 관계에서 식민적(지배/종속의) 관계(colonial relation)는 오늘날에도‘재현’,‘재 생산’,‘변형’의 형태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식민주의‘이후’를 의미하는‘포스트식민주의

(postcolonialism)’라는 용어의 등장과 사용이 무색할 정도로‘신식민적(neocolonial), 신제국적(neoimperial) 통치 형태로 변신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식민지배 형태를 과거의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심지어 는“다중식민주의, 준식민주의, 내부적 식민주의(multiple colonialisms, quasi-colonialism, internal colonialism)”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상태며, 이는“미국에 의해 가장 극적으로 대표되는”“제국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 - J. R. Ryan,“Postcolonial Geographies”, A Companion to Cultural Geography, Blackwell Publishing Ltd, 2004, p. 472. 

40) 본 협회(https://www.asianstudies.org/)는 2005년 결성되었으며, 연 2회 정기간행물, Asia Journal of Global Studies를 출간하고 있음.

자신의‘초-근대성’ 개념을 구미 학계에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했으며,“세계현실(world reality)”, 즉“지구 전체(the whole earth)”를 그의 해방 철학의 적 지로 삼고 있다. ) 

두셀에게 철학은“지구 위의 비참한 사람들에게도 또한 현실”인 이 세계현실을 구제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의 탈식민 해방철학 관련 글들은 스페인어권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영어권에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필자가 굳이 두셀의 초근대성 개념을 소개하는 이유는 초-근대성 개념이 갖는 로컬/글로벌, 서구/비서구를 아우르는 탁월 한 방법론적 해법 때문이다. 

3-1) 서부 유럽은 주지하듯 지난 5세기 동안 서부 유럽 밖에서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기독교-계 몽(이성)-과학(기술)을 앞장세워 자신들의 폭력 행사를 정당화했다. 자세히 논할 공간은 없지만, 19 세기 중후반 서학(西學, 천주교)도 유럽의 식민지 확장 과정에 조선에 들어와 조선의 전통사상을 뿌리 체 뒤흔들며, 조선에‘천학(天學, 天主學)’으로 정착했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정신을 지배 하고 있었던 유학을 서학이 일정 부분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두셀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기초교육시스템의 정착 및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역사도, 철 학도, 세계사도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의 관점이 지배적인 현실이라는 점에 대해 개탄한다. 그에게 ‘해방’은 모든 구미적 관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두셀의‘해방’은 미뇰로의 용어로 바꾸어 보완하면 구미와의‘연계의 고리 자체를 끊는 것’로 부터 시작된다. ) 두셀의 3대 해방서(신학의 해방, 철학의 해방, 윤리학의 해방)는 이렇게 구 미와 연결고리를 끊고‘독립적인 라틴아메리카학’을 탈식민적으로 구축하는 데 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제3세계는 두셀이 자신이 소속된 지역-로컬이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라틴아메리카와 거 의 같은 상황이고, 거의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각 국가가 일반 교육을 실시한 기간이 70-80에서 100년 가까이 되었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 전 세계 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게 되자, 이 과정에서 세계지배학에 의 해 무엇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왜곡되고 불공평하게 기술되었는지를 자각하는 기회가 지역-로컬 민에게 자각의 기회가 된다. 자신이 소속한 문화, 국가에 대한 위상을 글로벌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안목, 즉 글로벌 비전에 따라 특히 제3세계에서는 지역-로컬의 식민적 현실에 대한 각성이 일게 되고, 그결과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세계지배학에 대한 비판의 물결이 고개를 들게 된다.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도 이런 배경과 문맥에서 탄생한‘반세계지배학’의 전형이 라 할 수 있다. 앞서 <그림2>을 통해 간략히 필자가 구상하고 있는 지구학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 했듯, 유럽이 지방화되었다는 것은“유럽은 유럽이다”라는 명제로 요약되며 ), 이는 유럽이 세계 철학의 적지가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미국(물론 러시아, 호주를 포함해)과 함께 지식/철학의 미래, 즉 모든 지역-로컬이 상호적 구성을 통해 (새로운) 세계철학의 재구성에 동참해 야 한다는 말과 같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해, 서부 유럽 철학만이 보편주의, 민주주의, 휴머니즘, 평 화의 상징이라는 편견, 착각일랑 이제 접으라는 것이다.

3-2) 이렇게 전 세계의 지식/철학을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로 통제하던 유럽이 지방화됨으로써 이 제 각 지역-로컬은 자신의 고유 지식/철학을 자긍심을 살려 기반학(토대학, 지역-로컬 고유의 인문 학)으로 창설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서부 유럽 철학의 특수성과 유일신론적 편견을 보완할 수 있 는 대안이 모색된다.‘새로운 지구철학’을 위한 아젠다에 지역-로컬의 기반학을 포함시키려면 무

엇보다도 신개념, 신방법론(‘de-coloniality’,‘divesality’,‘pluriversality’나‘東學’과 같은)으로 

기반학을 세워 세계학계에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부 유럽 철학을 겨냥해“소리만 지르고 규 탄만 할 게 아니고 새로운 사유 질서를 만들겠다면 어떤 질서를 잡을 건지 구상을 해야 한다”44) 는 뜻이다. 

새로운 사유 질서(New order of philosophy)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개념에 담아내야 한다. 새로운 개념은 새로운 세계를 담아 타자에게 전달하는데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은 100여 개국 이상의 철학자들이 참여하는 세계철학자대회(World Congress of Philosophy) 등에서 발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참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45) 철학의 중심 이동이나 새로운 중 심에 대한 고민을 세3세계의 학자들이 공동의 노력을 통해 준비할 때가 된 것이다.

3-3) <그림2>에서와 같이 각 대륙이 고유한 기반학으로 제안한 지식/철학이‘새로운 세계철학’ 으로 재구성될 수 있기 위해서는, 앞서‘제3세계적 관점에서의 방법론 모색’을 논하며 강조한 바 있듯, <구성 → 상호구성 → 재구성>이라는 단계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래에서 두셀의 초-근대성 개념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그림3>은 두셀이 자신의 초-근대성(trans-modernity) 개념을 구미 중심의 세계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46) 이 그림의 핵심은‘전체성(식민지배의 주범인 구미의 중심성, 근대성)’과‘외재성(라틴아메리카를 대표로 하는 비구미, 탈근대성)’ 개념의 이해가 관건이다. <그림3>에서 근대성(A)은 본 연구와 연관해 구미가 과거에(또는 현재에도 여전히) 전 세계를 상대 로 전개·전파했고, 오늘날에도  전개·전파하고 있는 지식/철학의 영역이다. 그런데 <그림3>을 자 세히 들여다보면, A 밖에 B, C, E, F가 있고, D는 A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D는 결국 지역-로컬 

 

84집, 2020, 109-144쪽 참조.

44) 백낙청,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박윤철 엮음,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6, 318쪽 – 이는 백낙청 교수가 2016년 데이비드 하비와 창비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하비의 글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읽은 것이라 밝힌 내용을 간접 인용한 것임. 

45) 대한민국은 2008년 <동서문명의 향연>이란 주제로 아시아 최초로 제22차 서울세계철학자대회를 개최했 으며, 제1차는 프랑스 파리 대회였다. 

46) 그림에 대한 설명은 E. Dussel,“World-system and“trans”-Modernity”, Nepantia(View from South), Vol. 3, No. 2, 2002, pp. 234~236 참조. 두셀은 자신의 이 논문이 1960년대 이후부터 고민해온 것들이 집적된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고유의 지식/철학이면서 지속적으로 A와 상호 교류가 가능한, 최소한 A 와 교류경험이나 접점이 있는 지식/ 철학이다. D는 A와 최소한 상호성이 확보된 지식/철학인 셈이다. 반면 B 는 A에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는 비구미적 지식/철학이다. 이를 타운레이의 표현으로 바꾸면,‘새로 운 세계철학’을 지향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A가 어쩔 수 없이 수 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런데 D, B의 작용이 점점 확대되면 <그림3>: E. 두셀의‘외재성’,‘초-근대성’ 개념도 언젠가 A의 테두리 선이 해체될 것이다. 구미에서 오랫동안‘그 밖의 세계(the Rest, the Third wor ld)’의 것으로 명명한 채 방치한 지역-로컬들의 지식/철학이 A 안으로 들어가 A를 구성하는 결정 적 요소가 되고 A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결국 A는 그동안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 배타적으로 경계를 강화하는 데만 공을 들였던 모든 것들이 덧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바로 이 D와 B의 역량으로 결국 A의 경계선, 즉 세계지배라는 폭력의 경계선이 와해되고 나면, 두셀이 꿈꾸는, 기존의 지배하고 종속하는 A와 B, C, D, E, F와의 관계, 즉 한쪽에서는 지식/철학의 표준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를 추종하기만 해야 하는 관계가 해체되어 모든 지 역-로컬의 지식/철학이 중심이 되는 초-근대성이 실현된다. 

두셀의“초-근대성 프로젝트”는,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서구가 그것들을 채택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것들을‘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으로 경멸하기까지 했던 지식/철학의 외재성에 해당 하는데, 바로 이 외재성이 보유하고 있던 잠재성이 전체성에 변화를 가해 21세기에 이르러 중요한 의미의 창조적 기능을 갖게 된 것”이다.  ) 두셀의 초-근대성 프로젝트는“지구촌의 다수 문화들(p lanet’s multiple cultures)”이 동참해 세계사(world history), 보편사(universal history)의 영원한 중심 이 서부 유럽에 있다는“구미적 근대성을 넘어서는(beyond Western modernity)” 데 있다. ) 두셀

에 따르면, 근대성은“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부터 5세기 동안이나 유지된 세계-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그에게 이는“실패한 제국주의적 세계(관)”일 뿐이다. 따라서“근대성에 의해 제거 된 문화들”,“근대성의 밖(‘outside’ of modernity)”에서 여전히“살아 꿈틀대고, 저항하며, 성 장한 다른 문화들, 즉 외재성”이“21세기를 위한 새로운 문명”의 개발에 앞장설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49) 

두셀의 초-근대성 프로젝트는 구미의 전체성의 외재성으로 배치되는 데 그쳤던 것들이 전체성의 

폭력을 단지 비판(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슬기롭게 극복(종합)해 21세기적 전망을 제3세계 적 관점에서 제시한다는 데 있다. 두셀의 프로젝트는 그의 학문적 자긍심과 비전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언급대로“유럽이나 미국 밖에는 수천의 문화들이 존재한다.” ) 이 수천의 문화 들이 존재하기에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문화와 다른 문화들에 대 한 존경과 이질적 정체성에 대한 배려는 두셀이 그의 해방의 철학에서 강조한‘세계현실’에 대 한 반영이자‘지구 전체’에 대한 고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대다수의 인류는 그들의 일상에서, 계몽된 지평에서 각기 문화들을 유지하고, 세계성(globality)의 요소들을 쇄신하고 포함할 수 있도록 재조직하며, 창조적으로 발전시킨다.” ) 

두셀의 이 주장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두셀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A를 향

한 B, C, D, E, F의 활동력을 높이는 데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감히 말하지만, 보편적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역사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문화, 보편적 역사에 대한 환원적 요구는 각 지역-로컬이 역사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창조적 능력에 대한 철저한 부정에 기초한다. 모든 지역-로컬(유럽과 미국도 마찬가지지만)은 각기 독특한 문화와 특정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 되살리고 심화시켜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 식에 기초한 문화관, 역사관, 세계관, 지구관이다. 

지역-로컬의 고유 지식/철학을 기반학으로 구성함에 있어 우리가 굳이 두셀의 초-근대성 개념을 소개한 것은 그의 철학적 주장과 방법론이 본 연구의 화두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 구상은 결국 두셀과 같은 방식으로 중심/주변, 동양(동학)/서양(서학)으 로 지식의 경계를 분할하는 전통의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로컬의 지식이 중심이 되는 방식으 로 재구성해야 한다. 모든 지역-로컬이 중심이 된 대안적 세계화, 즉‘지역세계화(localobalizatio

n)’에 대한 자각이 시급한 시점이란 뜻이다. ) 그렇지 않으면 이미 중심을 전유한 <global>이 더욱 강화되고 비대해져 결과적으로 <grobal>이 되는 불행을 자초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 

III. 맺음말: 제3세계 지식인들의 연대와‘장소감’이 필요한 이유

오늘날 세계화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국가도 거부할 수 없는“후퇴할 수 없는 삶의 사실”(A. Gi ddens)이다.54)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학에 대한 관심은 역으로 세계화의 강화로 인해 세계 화의 피해 지역-로컬인 제3세계권에서‘불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여전히 경계 심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제1세계에서는 세계지배학의 꿈을 과거에 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포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는 세계지배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3세계의 연대가 필요하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 리한다면 지역-로컬의‘불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요인즉 단지 세계화에 맞서 지구학이라는 닻을 올린 것만으로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세계화, 세

계지배학의 피해, 불행이 사라질 것이라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W. 미뇰로는 우리에게“식민적 권력 매트릭스는 밖(outside)이 없기에 밖에서 관찰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고 경고한다.55) 즉“우리〔모두는, 구미인이나 비구미인이나 할 것 없이〕는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56) 미뇰로는 이런 이유 때문에 구미와의‘연결고리를 끊지 않고서 는’ 탈식민적 사유가 불가능하다고 역설할 정도로 식민성은 자체적으로 계속해 진화를 거듭하며 지배의 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E. 두셀이“탈근대성도 유럽중심주의만은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미뇰로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57) 미뇰로의 목표도 결국 두셀과 마찬가지로 구미를 감싸 안고 포용하는 것 이지만, 바로 이 목표를 위해 현 단계에서는“인식적 불복종, 독립적 사고, 탈식민적 자유”가 불 가피하다는 것이며, 그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구미가 비구미에 제안한〕 신세계는 세계 속에 존재하며 알고, 감각하고, 믿고, 살아가는 방법들과 공존하는 것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부인하며, 파괴하고, 악마화했다.”58) 

미뇰로가 이렇게까지 유럽중심주의, 근대성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운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이는 세계화, 세계지배학의 위세에 대항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일종의 절망감의 토로가 아닐까? 그에게 세계화, 세계지배학은“제국주의적·식민적 정치학”에 다름 아니 다. 지식/철학에도 그가‘제국주의적/식민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 이 유가 여기에 있다.59) 이는 제3세계에서 일고 있는 비판적·대안적 세계화 연구가 지역-로컬 지식

 

참조.

54) 재인용: https://en.wikipedia.org/wiki/Global_studies.

55) W. Mignolo,“Interview”, E-International Relations, Jan. 21, 2017, p. 5.

56) Ibid.

57) E. Dussel(2002), op. cit., p. 233. 58) W. Mignolo(2017), op. cit., p. 4.

의  재건 운동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말과 같다. )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 에 맞서 제3세계의 지구학이 지식/철학적‘담론의 복수화와 다원화’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구미로부터의 지식/철학의 독립은 어쩌면 정치적·경제적 독립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 정치나 경제적 저항에 비해 지식/철학의 저항이 약한 것은 물리적 폭력이 정신적 폭력보다 더 직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후자보다 전자에 대해 즉각적 반응을 보인 결과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학에 대한‘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지구학은 인류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에서 외치는‘기존의 세계철학’을 극복한‘새로운 세계철학’, 지구철학에 대한 목소리 가 5대양 6대주를 관통하게 되면, 바텀-업의 방식으로 지식/철학의 재-세계화가 완성되면, <그림3> 에서처럼 비구미의 외재성이 구미의 전체성을 포용하고 감싸는 날이 오면, 타운레이가 제안한‘새 로운 세계철학’으로 중심 이동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면, 두셀의 해방철학은 분명 멀지 않은 장 래에‘지구 전체’에 감로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제3세계권의 실천적 철학자들 덕분에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고 배제된 다수의 목소리를 제1세계 권에서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 음에도,“이성의 지리학이 〔구미에서 비구미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 우리가 긴장의 끈을 놓 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제3세계권 학자들이 중심이 된 신철학 운동이 아직은 엘리트들의 운동 차 원에서 제기되는 수준이고,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regionalization, localization)를 둘러싼 힘 겨루기는 상당 기간 더 지속될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戰勢)는 세계화의 힘이 훨 씬 세기 때문에 지역-로컬이 중심 잡기를 마무리짓기도 전에 <grobal>이 COVID-19처럼 전 세계에 먹구름을 들씌울 확률이 높기에 제3세계의 지식인들이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의 구성은 제3세계의‘권리 회복’의 문제이다. 제3세계는‘장소의 

현상학’을 통해 구성해야 한다. 실존의 장소는‘저기 있는 추상적 세계(world-there)’가 아니라 ‘여기 내 앞에 있는(I-here) 구체적 장소’다. ) 바로 이 구체적 장소, 즉 지역-로컬은 인간의 욕 망, 믿음, 사물들, 사람들이 포함된‘특수하고 특별한’ 장소다. 인간의 모든 현상학적 경험은 이렇 게 구체적 장소에서 실행된다. 구체적 장소에서, 그곳이 어디이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데, 이는 곧 장소, 장소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말과 같다. 캐이시가 자아와 장소를 신체로 성찰한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캐이시에 따르면 우리는 결국“로컬 장소에서 체화된 몸”으로 세계를 경험하며, 소위‘철학’

이란 걸 실천한다. 그런즉“지리적 동물(homo geographicus)” )인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염려를 로컬화하는” ) 것은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사항일 수밖에 없다. 이를 D. 모리스의 표현으로 바꾸 면, 인간은“장소에 뿌리를 둔 존재이기에 장소를 위해 염려를 로컬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렇게 자신의 실존적 염려를 로컬화한‘장소-내-존재’에게 장소는 무엇보다도‘장소감(sense of pl ace, 장소 의식)’을 제공한다.‘장소-내-존재’가 장소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장소가 더 이상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서적·실존적 공간, 사회적·문화적 공간으로 장소의 성격이 존재에게 내밀화·내면화되고 복합적 의미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화론자나 신자유주의자들이 기획하는 글로벌-가상 공간은, 캐이시에 따르면, 전 지구촌을 하나로 병합하려는 자들의“획책된 일반론”에 불과하다. 이는“〔지역-로컬의〕 생활세계가 확장된 순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근대성의 신화”를 연장하려는 속셈에 다름 아니다. ) 글로벌-가 상 공간의 제산자(制産者)인 제1세계권에서는 이렇게 모든 지역-로컬을 자신들이 기획하고 있는 글 로벌 공간의 지배하에 두려고 한다.‘내’가 사고하고 노동하고 상상하는 곳이‘구체적 장소’라 는 인식 전환이 수반되지 않으면‘장소감의 결여’로 인해 종국에 우리 모두는‘장소 상실’을 경 험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제1세계의 공간병합론자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 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아야 하는 종속적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취미도 욕망도 가치관도 세계관도 오직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들이 결정할 것이다. 자기결정권이 없는 제3세계국가들은 제1 세계로부터 밀려드는 상품과 자본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상품과 자본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제1세계의 자본력·경제력은“공간과 장소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결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 우리가 어떻게 공간을 경험하는지도 결정한다.” ) D. 매시가“필연적 반동”으로서“지역-로컬의 장소감(sense of local place)과 그 특수성” )에 대한 인식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장소-정체성은 문화적 정체성, 집단-공동체 의 정체성과 구분되지 않는다. 지구학, 지구인문학이 구체적 장소에 천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과 독립적이면서 포용적인 지구학, 지구인문학을 구성해낼 수 있다.“내가 생각하는 곳에 내가 존재한다” )는 사실을 망각할 때 기존의 관념론적 철학이 그랬 고, 현대의 데이터 과학이 그러하듯,‘인간’이 잊혀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그렇게 장소에 서 사람들(people)이 잊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각기 자신이 속한 장소를 지켜내 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장소를 철학화하는 우리의 과제, 철학을 지역-로컬화는 책무는 장 소-내-존재의 역할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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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재난학】